>>0유준이 성운에게 리조트의 일을 듣고 온 다음 날이었다.
"천혜우, 너 왜 말 안 했어?"
"하? 무슨 말요."
커리큘럼을 수행하러 온 그녀에게 유준은 다짜고짜 물었다.
당연히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 해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그녀를 보고
말로는 안 될 것 같다 생각해, 당장 팔을 붙잡아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아! 아파! 말로 하면 될 걸 왜 이래!?"
"거기서 말로 하면 너 도망갈 거 내가 모를까."
"아으, 뭐 때문인데요, 대체?!"
거칠게 끌고 가는 유준의 손을 그녀가 거세게 털어냈다.
순순히 놔 준 유준은 그녀의 바로 앞에 바짝 서서 말했다.
"너 저번에 누리랜드에서, 이상한 일 있었어, 없었어."
"...거긴 놀러 간 건데 일은 무슨 일요."
"정말 없어?"
"......"
"서성운한테 다 들었어. 숨길 생각 하지 마."
"그! 젠장."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미간을 찡그리던 표정이
성운의 이름을 언급하자마자 깨졌다.
그럴 거면서 여태 그에게 말을 안 했다 이거였다.
유준이 다시 팔을 잡으려 하자 그녀는 몸을 피하며
앞장 서라는 듯 거만하게 턱을 까딱였다.
순간적으로 눈을 흘긴 유준은 곧 돌아서 가려던 방향으로 향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와 그녀를 확인하고, 걸으며 말했다.
"얘기는 다 들었고, 오늘 할 건 네 뇌파를 확인해서 가능한 정확하게 무슨 장치가 걸렸는지를 확인할 거야. 안 그래도 네 바디체크에 이상한 기류가 자주 보였는데 그거 확인하는 날이 되겠군."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있어요? 지금 이대로도 사는데는 지장 없는ㄷ"
"그 말, 서성운 앞에서 똑같이 할 수 있으면 내버려두지. 할 수 있어?"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뇌파 관련된 영역을 연구하는 구역에 다다랐다.
영락은 바이오키네시스 전문인 연구소답게 뇌와 관련된 분야로도 제법 쟁쟁한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 시설 중에 가장 기초적인, 뇌파 측정기를 이용해 이변의 파동을 잡아내고자 했다.
"으... 이건 할 때마다 기분 나빠..."
"참아."
그녀의 투정을 단칼에 자른 유준은
등받이를 젖힌 의자에 누운 그녀의 이마와 목, 가슴팍에 차례로 전극을 붙였다.
빠른 손길로 준비가 끝나자 편안한 자세로 누운 그녀의 위로 상반신을 덮는 형태의 기기가 내려왔다.
그 뒤에선 유준이 모니터와 측정기 등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후... 작게 숨을 내쉰 유준이 그녀에게 말했다.
"분석 가능한 정도의 데이터를 뽑으려면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어. 됐다고 할 때까진... 버텨."
"흥. 끝나고 카페 끌고 갈 거니까요."
"오냐. 그럼, 시작한다."
그리고 유준은 질문했다.
"4학구 저지먼트 사건 이후, 누리랜드에 가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지?"
그리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 사이에, 나는, 그러니까, 나는-"
그러나 대답이 한 문장도 나오기 전에 그녀로부터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니터에도 격렬한 뇌파의 반응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전혀 일정하지 않고 뒤죽박죽 엉망으로 흐트러지는 뇌파를 빠짐없이 기록해가며
유준은... 그녀를 다그쳤다.
"대답해, 천혜우!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이 있었지?"
"긋, 그러, 니, 끄윽! 악! 아아악!"
기기 아래로 부들부들 떠는 가녀린 팔다리가 보였지만
뇌파 기록은 아직 데이터가 부족했다.
십여초간 모니터를 보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던 유준은
데이터가 충분하다는 알림이 뜨자마자 그만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야 천혜우! 멈추라고! 그만! 그만 생각해!"
"아아아악! 아악! 싫어! 싫어어어!!!"
증상의 노출이 길었던 탓일까, 아니면 본디 갖고 있던 히스테리가 겹쳐진 것일까.
유준이 기기를 치우자마자 크게 펄떡이며 악을 쓰는 그녀가 드러났다.
잠깐 사이 얼굴이 붉게 물들어 비명을 지르는 그녀는
두 손으로 눈, 혹은 머리를 감싸쥔 채 발작을 일으켰다.
유준은 그걸 막아보려 팔을 누르고 몸을 압박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강경수단을 써야 하는가 싶어 능력을 쓰려던 찰나-
"아아, 악!"
"...야, 야, 천혜우! 야!"
그가 능력을 쓰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의식이 쇼트된 듯 움직임이 뚝 끊겼다.
놀라서 급히 숨을 확인하자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상황 파악이 되지 않던 그 때,
갑자기 그녀가 눈을 떴다.
"야?! 너 괜찮"
"읍, 웩."
그러더니 그녀를 붙잡고 있던 유준을 밀치고 의자 밖으로 몸을 내밀고서 구토하기 시작했다.
거의 붉은 물 투성이의 토악질을 하던 그녀는 한바탕 쏟아내고 나더니 다시 축 늘어졌다.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이 안 되던 유준은
곧 정신을 차리고 측정기에서 기록이 담긴 USB를 뽑았다.
그리고 혼절한 그녀를 업어 연구소 내 응급처치실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 날 저녁, 성운의 폰에 유준의 연락이 들어갔다.
>[미안하다]
>[뇌파 검사 중에 자극이 심했는지 정신을 잃었다]
>[오늘내일은 연락 없을 테니 알아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