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참고되실까봐, 성운이네 집에 오시는 분들이 있으실 때마다 첨부해드리는 성운이네 집 구조도..
>>329대꾸가 불퉁스러울 뿐이지 행동은 전혀 불퉁스럽지 않다. 리라가 자신에게 예전처럼 구는 게 싫었다고 한다면, 손을 밀어내거나 아니면 애초에 정중하게 거절했겠지.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얌전히 리라의 손에 예전 그때처럼 머리를 내맡겼다. 다만 손에 머리를 치대던 옛날과 달리, 복복을 훨씬 차분하고 의젓하게 받고 있다는 게 역시 커진 티가 난다고나 할까. 아니면 어떤 선을 그어놓는 걸까. ─그을 만도 하다. 공연한 오해는 사고 싶지 않으니.
일단 성운과 그 주변인이 알기로는 서성운은 「갑자기 3레벨로 각성」한 케이스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각성 시점이 블랙크로우 토벌전 당시고, 성운이 이 폐공장으로 옮겨온 것은 명백히 블랙크로우 토벌전보다 한참 전이었고. 리라가 눈을 가늘게 뜨게 만드는 그 생각은 상당히 정확히 적중했다. 성운은 이 집을 꾸미느라 신체적으로도 상당히 고생했다. 심지어 그때는 이 녀석이 가구는커녕 걸상 하나 변변히 들어다 옮길 힘이 있을까가 궁금한 왜소하고 가녀린 꼬맹이가 아니었던가. 무의식중에 발휘한 쥐꼬리만한 능력이라도 있었기에 망정이다.
“─사탕? 아, 나 격리 풀리기 전에 교내에 뭐 사탕 갖고 난리가 났었다던데 그건가.”
아, 꽝이다. 성운은 그 당시 격리 프로토콜에 들어가있었기에, 사탕 이벤트 당시 목화고에 없었다. 그래서 모처럼 갈긴 망언에 무 무슨뜬금없는소리같은걸하는거얏 같은 찰진 반응이 아니라 다른 엉뚱한 반응이 나왔다.
“그보다 뭐야, 친칠라라니, 나 어린 모습일 땐 너한테 친칠라로 보였던 거구나, 이리라.” 감겨있던 성운의 눈이 떠졌다. “그럼 지금은 뭘로 보이는데?”
하고 가만히, 적극적이진 않지만 분명한 호기심을 띄고 리라를 바라보던 성운은, 리라가 와글와글 쏟아놓는 잔소리에 그만 얼굴에 쓴웃음을 걸어버리고 말았다. 이봐, 그거 알아? 누군가가 소중해서 오히려 무언가 털어놓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 그래서 성운은, 쓴웃음을 겸연쩍은 무표정으로 얼버무리며 시선을 👀 하고 피하다가, 까짓것,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친구 앞에 겸허히 내려놔 버리기로 했다.
(딴소리지만, 전기는 원래 이 구 기숙사 시설에 다 전선들이 깔려있었고, 버려져 있던 시설이라 차단기가 막혀있었을 뿐이던 것을 부동산의 도움을 받아 전기를 재연결했다)
“─내가 기숙사를 박차고 나오도록 만든 고민은 이제 어느 정도 해결됐어. 아니, 퇴색됐다고 하는 게 맞을까. 그거였거든-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을 쳐도 너희들 뒤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거. 그게 약이 오르면서도 무서워서, 잠깐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있고 싶었었어. 이제 별로 그럴 필요 없게 되긴 했는데, 잠깐 머무를 피난처에 정성을 너무 많이 들여서 돌아가기도 애매하게 됐어.”
요컨대, 샹그릴라를 먹었던 아이들이 한 것과 결이 매우 비슷한 고민이다. 그리고 이제는 딱히 의미가 없는 고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말대로, 해결됐다고 해야 할지 퇴색됐다고 해야 할지 애매한 질문이다. 0레벨에 체격도 왜소해서 누구에게나 쉽게 얕보이고 두들겨맞기 일쑤이던 그 나약한 아이는 어디 가고, 지금 서성운이라는 이름의 자리에는 다른 애들보다도 시선이 한결 높은 4레벨의 대능력자가 서 있으니. 그러나 그 고민을 넘어서서 소년이 본 것은, 해결된 고민의 뒤에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어야 할 안식이 아닌, 또다른 더 높고 더 험준한 고민들이었다. 그리고, 그 고민들 중 하나를 성운은 리라에게 살짝 내보이기로 마음먹었─ 일단 그 전에, 리라의 말에 성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근처가 일단 본격적인 스트레인지는 아니라 생각보다 위험한 일은 없긴 한데··· 내가 굳이 「출입구가 무너진」 데를 은신처로 삼은 이유를 너도 염두에 두는 게 좋을 거야, 이리라. 이런 외곽지에 살려면, 주변의 인프라나 입지 같은 것 말고도 다른 것들도 따져야 된다고.” 성운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딱히 하지 말라거나, 아니면 꼭 하라거나 같은 의견을 내세우진 않겠는데··· 이 정도 충고는 해야겠어.”
이런. 잔소리가 옮았다. 자신의 주둥이가 모처럼 집에 찾아와준 손님에게 뇌절을 하기 전에, 성운은 거실을 저벅저벅 가로질러 주방으로 향해가서는 냉동실을 열었다. 뜻밖의 집들이 손님에게 소소한 간식 대접을 해줄 생각이었다. 성운은 믹서기를 꺼내어서는 냉동딸기 열두어 알을 굴려넣고는 믹서기를 작동시켰다. 웨에에에엥 하고 기세좋게 냉동딸기가 갈리며 믹서 컵 안에 냉동딸기 엽기살인현장이 펼쳐진다. 잘게 갈려 가루가 된 냉동딸기 위로 레몬즙과 설탕을 탁탁 털어넣으며, 성운은 부탁할 거 있다고 했었지? 하는 리라의 질문에, 대답했다.
“최근에 스트레인지를 드나들면서 조사하고 있는 게 있어서 말이야. 얼굴을 가릴 만한 적당한 인식저해용 가면이라거나 변장도구 같은 걸 네가 만들어줄 수 있나 해서, 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