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깨달음은 더욱 쓰라린 결론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제 이나바뉴 기사단 동방원정대장에겐 피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엑시렌이 퍼뜩 고개를 들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너의 루우젤과 검술을 이용했고, 너의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를 이용했고.
그만두시지요. 라벨 님
젤라하의 목소리는 간드러지게 웃었다. 그러나 비난은 끝나지 않았다.
-네가 사랑한 것은 네 미래이고, 네가 신뢰한 것은 이용할 수 있는 것들뿐이었나.
젤라하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엑시렌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누구도 사랑한 적도, 누구를 신뢰한 적도 없는 것은 라벨 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젤라하의 환청은 침묵했다. 그래서 엑시렌은 작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라벨 님과 저 사이에는 지금 이 순간 커다란 차이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이라?
라벨 님은 죽어서 이젠 아무것도 이용할 수 없지만, 제겐 아직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젤라하의 목소리가 폭소했다.
-믿을 수 없구나. 아직도 이용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상상도 할 수 없군. 그게, 무엇이지?
엑시렌은 하야덴으로 스스로 팔을 자르듯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제 목숨입니다.
"이나바뉴 기사단!"
검붉은 색 그림자가 광풍이 되어 몰아치고 있었다. 단 2백 기로도 대지를 흔드는 그 육중함. 그리고 그 중량감과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절망적인 첨예함. 네프슈네 나이트는 거대한 화살처럼 쏜살같이 죽음을 몰고 이나바뉴 기사단을 향해 돌격해 들어왔다. 엑시렌은 다시 한 번 가슴을 열어젖히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나바뉴 기사단!"
엑시렌의 목소리는 높고 가늘었다. 그러나 그 음성은 효과적으로 그 전장을 울리고 있었다.
"전원-"
엑시렌의 뒤를 따랐던 중군의 별동대, 전과 확대를 위해 후방을 지키고 있던 보병대, 그리고 루우젤 병사들과 무기를 맞대고 있던 동방원정대의 병사들은 모두 엑시렌의 입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엑시렌은 잔인한 웃음을 흘리며 하야덴을 내리쳤다.
살아서 전설이 될 수 없다면,
"산개대형!"
죽어서 신화가 되겠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엑시렌은 하야덴을 팽개치고 정면으로 네프슈네 나이트를 바라보았다. 엑시렌의 명령은 더 이상 명확할 수가 없었다. 모두 프루그 분지에 피를 뿌리고 죽어라. 동방원정대의 총사령관은 그렇게 명령하고 있었다.
“이 순간... 무너지는 황궁과, 붕괴된 제국이 그대가 말하는 이상의 모습이다! 당신의 패배와 함께, 당신은 실패한 것이다! 당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아야할 역사의 망령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는!”
“그것이... 너희의 한계다.”
“.......!”
“스스로를 승자라 생각하는 것도, 나를 패배자라 생각하는 것도 모두가 다 승리한 너희들의 자유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니까.”
“분명히 나는 패배했다. 그러나...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주장하고 실현시키려는 정의라는 것도, 결국에는 힘의 이론 위에 세워진 것. 힘 이상의 것은 존재치 않는다. 힘은 너희들이 말하는 모든 법칙과 정의 위에 서는 것. 너희들은 나의 정의를 사용해 나를 무너뜨리고, 너희들의 정의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나의 정의로서 나의 정의를 부정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
“인정하지.”
그는 말했다.
“네가... 너의 힘이 나를 능가하였음을.”
피의 황제는 미소지었다.
“자아, 그럼 이제 그 검으로 나를 베고 이 땅에 용사의 깃발을 세워라. 그리고... 마음껏 웃어라. 마침내 피의 황제를 쓰러뜨리고 이 땅에 진정한 정의를 가져다준 힘.의. 소.유.자.여.”
"내 희망에 대한 나가의 보답은 무엇이었나! 그들은 내 조국을 멸망시켰다. 그들은 내 아내를 찢어 죽였다. 그들은 내 희망을 가장 잔인한 형태로 짓밟았다! 이 몸! 이 추한 몸뚱이를 제외한 내 모든 것을 파괴했다! 나는 이 몸을 나가의 제삿날에 올릴 번제물로 바쳐도 좋아. 몸을 불사르는 그 불꽃 속에서 나는 웃을 것이다! 입술을 놀릴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가의 죽음에 대해 기쁨의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내가 곧 케이건 드라카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 이상 어떤 나가도 그것이 옛날 일이었다고,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어! 그들이 나라는 것을 만들어내었으니까!"
"과연... 그렇게 되었나. 어떻던가, [중간보스]는. 너의 적으로서 충분하던가? 하하 [중간보스]가 기뻐하겠군. 원래라면 이곳에서 내가 나서는 건 귀찮은 일이 늘어서 사양하고 싶었지만 부하의 무덤에 변변찮은 선물조차 주지 않는 것은 곤란하겠지. 너를 이 성과 함께 [중간보스]의 묘에 선물로 바치도록 하마."
너희들은 항상 그래왔지. 인리를 거스르고, 당연한 것을 부정하고,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것만을 따르는 자들이였어. 예나, 지금이나. 너희들이 그것을 말할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너희들만의 정의를 외치지. 여기까지 왔으니, 너희들중에서는 가장 강한 녀석들이 온거겠지만...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나를 재미있게 해준다면, 너희들이 원하는 소원 중 '단 한가지'만을 들어줄게. 과연, 너희들은 다를지, 조금은 호기심이 이네.
"나에게 대항하고, 맞서는 용기있는 자들. 그 생명이 내뿜는 빛을 미래영겁 사랑하고 싶다! 사랑스럽고, 존중하려는 것이다. 지켜 내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다! 멈추고 싶지 않는 것이야. 너와 나, 네 동료와 같은 인간을! 인간 찬가를 구가하게 해다오, 목이 말라 비틀어질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