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일단 해인이가 어떻게 나올지는 엄청 궁금하긴 해! 세나는... 뭐, 세나대로 열심히 유혹해봐야지! ㅋㅋㅋㅋ
와.. 해인이 그거 운이라기보다는 분석력으로 나오는 거 아니야?!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해도 얼마든지 환영이야! 그러면..이번엔 미션이 아니라 파트너가 된 당일날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 미션은 그 다음 일상으로 해보고.. 개인적으로는 슬슬 여름 느낌으로 넘어가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다음 파트너로 바뀌는 시기가 되었다. 뜨거운 여름이 막 시작되어 학생들의 옷 또한 반팔 차림으로 바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세나의 개인 짐에는 여름옷이 한가득이었다. 물론 여기서 얼마나 또 오래 있을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짐을 가볍게만 준비해둔 상태였다. 금방 정리하고, 금방 쉴 수 있도록. 이 방송에 출연하고 꽤 여러 날이 지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긴 요령 같은 무언가였다.
어쨌든 이번 파트너는 해인이었다. 정확히는 해인이 자신을 지목했다는 것 같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 오빠가 자꾸 나를 진심으로 만들려고 하네. 물론 이미 진심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이전에 그와 함께 지냈던 방으로 다가갔다. 이미 이삿짐은 전부 옮겨진 상태일테니, 자신은 몸만 가면 될 일이었다. 짐 정리는 어차피 이번에는 가볍게만 가지고 왔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을테고. 아마 자연스럽게 자신처럼 다들 이동할때마다 짐을 최소한으로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문을 천천히 노크했다.
"오빠. 해인 오빠. 안에 있어요? 오빠가 기다리는 사람 여기에 왔는데."
계속 밖에서 기다리게 할 거예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녀는 뒷짐을 지고 문이 열리는 것을 조용히 기다렸다. 아마 문이 열리고 해인이 나온다면 살짝 아래에서 위로 보며 윙크를 날리는 그녀의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아침과 저녁은 괜찮았지만 한낮에 밖에 나가본다면 여름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더워진 것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그에 맞추어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해인도 그동안 입던 옷들을 정리하였고 어제 본가에 들러서 여름 옷들을 다시 가져왔다. 여동생들이 세나와 어떤 관계인지 꼬치꼬치 캐묻는 사태가 있었지만 해인은 능숙하게 대답을 회피하고선 새로운 한주를 맞이했다.
이번 파트너는 세나였다. 지금까지처럼 랜덤하게 걸린 것이 아니라 해인이 직접 세나를 지정한 것이었다. 저번 파트너 선정에서 모든 페어를 다 맞추는데에 성공한 해인은 보상으로 파트너 지정권을 얻을 수 있었고 망설이지 않고 이번주 파트너를 세나로 선택했다. 주변에서 격한 반응이 있었지만 감정 표현이 크지 않은 해인은 그저 웃는 얼굴로 물어오는 친구들을 이겨냈고 그렇게 주말이 되었다.
" 어서와. "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해인은 문을 열었다. 자주 봐서 이젠 익숙하지만 여전히 미소녀인 세나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세나의 윙크를 보고선 해인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선 더워진 날씨에 약하게 에어컨을 틀어두었다며 안으로 세나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문을 닫았다.
" 오느라 수고했어. 이젠 좀 덥더라. "
사실 에어컨을 틀기엔 조금 애매한 날씨일수도 있겠지만 전기세라던지 그런 금액적인 부분에선 학생들이 지는 부담이 없었기에 과감하게 에어컨을 튼 것이었다. 약하게 틀어놨으니 엄청 시원하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쾌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실내 온도는 맞춰져있었다. 세나를 곧장 거실의 식탁 겸용으로 쓰는 상으로 안내한 해인은 깜짝 선물이라며 도시락통을 꺼내들었다.
" 아침까지 본가에 있었거든. 그래서 이것저것 만들어봤어. "
계란말이, 김치찌개, 햄구이 같이 흔히 집에서 한끼 식사로 먹는 구성으로 한껏 차려온 해인은 세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았으니 전혀 예상 못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것에 맞춰, 세나 역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일단 자신을 환영해주는 분위기였으니 어떻게 싫어할 수 있을까? 이내 방으로 천천히 들어서자 쾌적한 에어컨 공기가 느껴져 그녀는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신발을 벗었다. 이제 좀 덥다는 말에 공감하듯이 세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죠? 여름이 빨리 찾아왔어요. 생각보다. 후훗. 센스 좋으시네요. 오빠. 아직 본격적으로 더워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밖에 있으면 덥긴 하거든요. 덕분에 좀 살 것 같아요."
괜히 오버하듯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그녀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방 정리를 굳이 바쁘게 할 필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여유가 생긴 덕이었다. 그 와중에 해인이 자신을 상으로 안내하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천천히 따라갔다. 그러다 도시락통을 그가 꺼내들자 그녀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두 눈을 깜빡였다.
"어..어..어..."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이던 그녀는 단번에 해인을 바라봤고 와락 그를 안으려고 했다. 그리고 감동어린 눈동자에 해인의 모습을 조용히 담았다.
"에이. 뭐예요. 오빠. 후훗. 이런 생각도 못한 선물 준비해주기 있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도시락이에요? 물론 저 주는 것은 알겠는데... 진짜 생각도 못했거든요."
정말로 기분이 좋다는 듯, 그녀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렇게 정성어린 선물을 받는 것은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더워지면 세나는 어떤 차림을 할까. 더워진 날씨에선 옷은 더 짧아질테고 그럼 피부가 드러나는 면적이 더 넓어진다. 밖에서 돌아다니는 여학생들을 보다보면 짧은 바지를 입는 경우가 많던데 세나도 과연 그러할까, 하는 생각을 하던 해인은 이상한 생각이라며 고개를 살짝 흔들어 털어내고선 자신이 준비한 것을 꺼내고선 세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 저번부터 해주고 싶었거든. "
피크닉을 갔을때 싸왔던 도시락은 학교에서 만들어야했기에 실력 발휘를 하기 힘들었고 종류도 제한적이었기에 이번엔 정말로 제대로 된 것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물론 실력 자체는 세나에 비해 좀 떨어지겠지만 여동생들을 돌보아주면서 생긴 요리 실력은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 이렇게 안고 있는거 좋긴한데 금방 식을테니 먼저 먹을까? "
안겨온 세나를 마주 안아준 해인은 웃으면서 세나를 쓰다듬어주다가 말했다. 오늘은 첫날이라 딱히 무언가를 할 계획은 안세워두긴 했지만 영화 정도는 볼까 싶어서 찾아둔 것도 있었기에 먼저 밥을 먹으려고 한 것이었다. 옅은 미소와 함께 수저를 건네준 해인은 세나를 먼저 앉히고 반대편에 마주 앉아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궁금하긴 했다. 저번부터 해주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 '저번'이 대체 언제일까? 이전에 파트너를 했을 때? 아니면 공연 때? 그게 아니면 그 중간의 어딘가? 아니면 최근? 답을 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답을 기대하며 그녀는 가볍게 싱글벙글 웃었다. 어쨌든 잠시 해인을 안아주고, 해인의 품에 안겨있던 세나는 살며시 그에게서 떨어졌다. 쓰다듬을 좀 더 받고 싶었지만, 하루종일 그렇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와는 별개로 슬슬 자신도 조금 더 친근한 스킨십을 해도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덤이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다들 움직일 시즌일 것 같았기에.
"저는 좋아요. 그런데 영화요? 무슨 영화인데요?"
전부터 영화 이야기를 은근히 자주 하던 해인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영화를 찾았다고 하니, 그녀는 조금 궁금하다는 듯이 해인을 바라봤다. 어쨌든 식탁에 앉아 수저를 챙긴 그녀는 해인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간편한 옷이라. 여름 옷이라서 조금 짧을 것 같은데 내성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후훗. 물론 노출 있고 그런 옷은 아니지만..."
가끔 있잖아요? 치마 조금 짧아졌다고 뭐라고 하는 남자들. 혹은 검은 흑심만 품는 남자들. 그렇게 두가지 예를 들면서 세나는 장난스럽게 꺄르륵 웃었다. 이어 해인을 바라보며 먹자고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다시 한번 눈웃음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 미션은 어떻게 하고 싶다라던가 있어요?"
/여름 미션 정도는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뭐가 좋을까? 아무튼 갱신할게!!
벚꽃을 보러갔을때 서로 도시락을 싸와 나누어먹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해인은 그때 세나가 싸왔던 도시락이 자신의 것에 비해 상당히 볼륨이 있었기에 나중에 꼭 비슷하게 요리를 해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물론 한동안 그럴 기회가 없었기에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번엔 일정에도 상당히 여유가 생겨서 준비를 하게 된 것이었다. 식탁에 마주 앉아서 먹을 준비를 하며 영화를 보자는 얘기를 꺼내자 세나에게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 여러가지 있는데, 로맨스 영화는 어때? "
공포영화나 코미디, 액션, 로맨스 등등 여러가지를 준비해둔 해인이었지만 그 중에서 고르라면 역시 로맨스였다. 밥을 먹고 편한 옷차림으로 나와서 같이 영화를 보는 그림. 여동생들이랑은 많이 해봤지만 다른 이성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이성이 자신이 호감을 갖고 있는 대상이라면 더더욱 좋을 것이고 말이다.
" 나는 둘 다에 해당하는데. 짧은건 내 앞에서만 입기. "
장난스런 웃음에 해인도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다른 남자들 앞에서 입으면 질투가 날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녀와 사귀는 것도 아니니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겠지만 해인은 세나처럼 이미 진심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진심일지도 몰랐다. 아직 따뜻한 밥을 세나의 앞에 놓아주고서 식사를 시작한 해인은 미션 얘기를 듣자 핸드폰을 열어 공지사항을 확인하고선 말했다.
" 이번 미션은 보물 찾기라고 하네. 정해준 특정 지역에서 힌트를 찾아내고 마지막에 숨겨둔 보물을 얻으면 좋은걸 준다고 써있어. "
상품이 뭔지는 비밀이라 알 수는 없었지만 꽤나 파격적이라는듯 싶었다. 페어마다 장소는 다 달랐기에 서로에게 힌트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고 수행하기 이틀 전에 주최측에 말해두면 미리 준비를 해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의 일은 자신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로부터 꽤 여러 날이 지났는데 그때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니. 무슨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녀는 얼굴만 붉히면서 괜히 미소만 지었다. 뭔가 엄청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럽기도 했고.
"로맨스요? 후훗. 방송 보는 이들이 너무 노골적인거 아니겠냐고 하겠네요. 하지만 전 시청자가 아니니까 로맨스 좋아요. 재밌는 거겠죠? 당연히?"
괜히 장난스럽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세나는 해인의 말에 다시 한번 꺄르륵 웃었다. 짧은 것은 자신 앞에서만 입으라니. 이 오빠 봐라?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살짝 얼굴을 그에게 가깝게 하면서 매혹적인 눈빛을 보였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살짝 머금으며 조용히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그건 조금 힘들지만... 바다에 놀러갈 일 있으면 수영복은 오빠에게만 보여줄게요. 콜?"
아무리 그래도 여름인데 짧은 옷을 한정될 때만 입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그녀는 다른 조건을 제시했다. 수영복은 진짜로 아예 같이 놀러가기로 한 것이 아닌 이상 보여줄 수 없는 차림이 아니겠는가. 물론 수영복은 새로 사야겠지만 그 사실에 대해선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며 그녀는 괜히 꺄르륵 웃을 뿐이었다.
말을 마치며 그녀는 슬슬 식사를 하려는 듯, 젓가락을 들었다. 천천히 해인이 만든 요리를 먹으며 그녀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거 되게 맛있다! 부드러워! 그런 표현을 하면서 그녀는 가만히 해인을 바라보면서 싱긋 웃었다.
"오빠는 결혼하면 아내에게 엄청 사랑받겠네요. 요즘은 요리 잘하는 남자가 엄청 매력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제 기준엔 그래요.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녀는 미션에 대해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힌트를 찾아내고 숨겨진 보물을 찾는다. 보물찾기의 정석이라면 정석이지만 과연 쉬울지는... 일단 해봐야 알 수 있는만큼 그것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으며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에 해요. 그 미션. 미션 빨리 끝내고 자유로운 시간 보내는 것이 좋잖아요? 나중에 미션에 쫓기는 것은 별로라서요."
아이돌 연습생 생활도 해야해서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거든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괜찮겠냐는 듯이 해인을 바라봤다.
도시락을 나눠 먹은 것은 세나가 참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의 이야기이니 봄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벚꽃이 한창 필 시기였으니까 봄이 절정을 향해 나아갈 시기의 일이었고 그때의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것이었다.
" 주변에 물어봐서 재밌다고 하는 것들만 골라왔어. "
물론 로맨스 영화를 물어보는 해인을 향해 친구들은 파트너랑 같이 보는거냐고 집요하게 물어오긴 했었다. 의도가 분명하니 딱히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때까지 파트너를 정하진 않았기 때문에 누구와 보는지는 끝까지 비밀로 했다. 그리고 해인이 세나를 고른 그때가 되어서야 해인이 세나와 함께 보기 위해 영화를 골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럼 바다도 방송이 아닐때 가야겠네? "
이번에도 해인은 특유의 작은 목소리로 세나에게만 들리게 속삭인 뒤에 장난스럽게 웃었다. 자신에게만 보여준다고 했으니 방송까지 내보낼 생각은 없는 것이었다. 물론 수영복이 비키니 같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른 것들도 많았지만 어쨌든 자신만 보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한 것이다. 이어진 세나의 말에 해인은 말없이 웃어보이고선 맛있는 것들을 세나의 그릇에 젓가락으로 옮겨주었다. 최근에 요리 프로그램을 자주 본 것이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 해볼까? 생각보다 안어려울지도 모르고. "
웃으면서 얘기한 해인은 작게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가져와 세나의 컵에 따라주었다. 물론 미션이 보물찾기라는 것은 페어 기간 내내 찾아도 안나올지도 모를 정도의 난이도겠지만 운이 좋아서 금방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개만 봐도 충분한데. 아니면 오늘이 아니라 교체 기간까지 매일매일 같이 영화 보려고요? 후훗. 오빠. 영화 그렇게 좋아했어요?"
이건 또 몰랐던 정보였기에 그녀는 확인을 하려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생각해보면 전에도 영화를 이야기했었으니, 의외로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와 영화를 같이 보는 행위를 좋아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라도 크게 상관없었다. 무슨 답이 나오건 자신은 같이 볼 생각이었으니까. 시간 상 매일매일은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같이 볼 수 있을 때는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글쎄요. 후훗. 그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작은 목소리로 들려오는 말에 그녀 역시 작게 웃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이야기했다. 사실 앞일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미션으로 바다에 다 같이 놀러가는 것이 나오면 어쨌건 수영복을 입어야만 하니까. 사실 그에게만 보여주는 수영복과 모두에게 보여주는 수영복의 차이를 줄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며 그녀는 가만히 싱긋 웃었다. 자신의 그릇에 음식을 옮겨주는 그의 행동을 바라보며 그녀 역시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일부 그의 접시에 담았다. 혼자만 받을 생각은 없다는 듯이.
"참고삼아 묻는건데 오빠의 취향은 어느 쪽인데요? 수영복."
혹시 알아요? 오빠 취향으로 입어줄지. 그렇게 속삭이는 목소리에는 장난끼가 가득했다. 하지만 마냥 장난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는 그의 취향에 맞춰줄지도 모른다는 분위기를 풍기며, 그녀는 곧 들려오는 그의 제안. 내일 해보자는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늘은 뭘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으니까.
이내 식사가 마무리되고 그녀는 손수건으로 자신의 입가를 닦은 후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해인에게 이야기했다.
해인은 영화를 꽤 많이 찾아보는 편이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영화도 찾아보고 개봉한다는 영화들도 시간이 날때마다 영화관에 찾아가서 빠짐없이 보는 편이었다. 거기에 소규모의 독립 영화도 평이 좋은 것들은 전부 찾아볼 정도로 자신의 여가 시간을 영화 시청에 투자하는 편이었다. 최근엔 다시 연습을 시작했으니 그 시간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틈틈히 찾아서 볼 정도였다.
" 생각해보니 영화관을 같이 안갔었네. "
세나와의 데이트에서 영화관을 간 기억은 없었다.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관을 가지 않은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꽤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이랑 보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세나와 같이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게 더 신기한 점이었다. 아마도 세나와 함께 있는것 자체가 즐거워서 그랬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에 같이 가자. "
손 꼭 잡고 보는거야? 이번엔 카메라에 다 들리게 얘기한 그는 옅게 웃었다. 이런 멘트, 소소한 동작 하나하나가 시청자들의 도파민을 샘솟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해인은 잘 알았다. 그가 한창 유명해졌을때 버라이어티 쇼에도 몇번 나갔던 기억이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해인은 세나의 말에 웃으면서 듣고있다가 수영복 취향을 묻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세나를 바라보았다. 황급히 입에 있던 음식들을 물로 넘긴 해인은 정말이냐는듯 세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마찬가지로 작게 말했다.
" 나는 ... 아무래도 비키니? "
잘 어울릴 것 같으니까. 마찬가지로 장난스런 표정으로 대답한 해인은 설거지를 하겠다는 말에 손을 저으며 식기들을 가지고 싱크대로 향했다. 대접을 할거면 끝까지 해야한다는게 그의 신조였으니까 말이다. 세나가 옆에 온다면 아마도 같이 설거지를 할 생각인지라 해인은 그대로 가져온 도시락통을 닦기 시작했다.
" 좀 더웠으니까 씻고 나와서 영화 보면 되겠다. 내가 마실거랑 간단하게 먹을 것도 챙겨놨어. "
물론 영화를 보는 것을 세나는 좋아했다. 하지만 볼 가치가 없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영화관을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쨌건 영화를 보는데 들어가는 돈이 적은 것은 아니었으니, 충분히 볼만한 작품이 아니면 갈 마음은 없다는 듯 그녀는 그 부분에는 살짝 선을 그었다. 물론 해인이 아무 영화나 보러 가자고 할 것 같진 않았지만. 이내 손을 꼭 잡고 보자는 말에 세나는 아무런 대답없이 그저 미소만 내비칠 뿐이었다. 때로는 말이 없는 이런 행동이 섞인 답이 좀 더 깊게 들릴 수도 있는 법이었다.
"흐응. 비키니 말이죠?"
그렇다면 비키니 한번 사러 가볼까나. 그렇게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며 세나는 오른손으로 천천히 입을 막고 조용히 웃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 평소에도 운동을 하고, 본격적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식단을 관리하고 있는 그녀였기에 비키니를 입을 때 나타나는 노출에 대해서 그녀는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생각을 잠시 하다가 마친 세나는 해인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싱긋 웃을 뿐이었다. 특별히 무슨 말을 하진 않았다. 속으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굳이 표현을 하지 않는 것처럼.
"네? 아. 제가 해도 되는데. 후훗. 알았어요. 그러면 일단 먼저 좀 씻고 올게요."
도시락 고마웠어요. 오빠.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녀는 해인을 바라보더니 살며시 다가갔다. 이어 까치발을 들더니, 입술이 살짝 뺨에 닿기 일보직전의 거리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꺄르륵 웃더니 다시 까치발을 내렸다.
"...지금 이 구도. 어떻게 잡혔을까요? 후훗."
조용히 속삭이듯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갈아입을 옷을 챙긴 후,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녹색 실내 원피스 차림으로 다시 나왔을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는 영화는 해인이 보고나서도 확실히 재밌다고 느낀 것만 골라서 보여주는 편이었다. 자신의 의견 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생각까지 전부 듣고 나서야 골랐기에 그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전부 재밌어했다. 하물며 세나와 보는 영화라면 평소보다 더 까다롭게 고를테니 재미는 무조건 보장할 것이 분명했다.
" 그럼 나도 슬슬 운동을 해야겠는걸. "
조금 살이 붙기 시작한 몸을 기억해낸 해인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래도 충분히 보기 좋은 몸에 속하긴 했지만 세나가 아이돌이라는 것을 고려했을때 어울리는 몸을 가지려면 충분히 운동을 해서 예전처럼 몸을 다시 만들 필요가 있어보였다. 해인은 아이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기획사에 소속 되어있는 몸이라 예전부터 계속해서 꾸준한 운동으로 체중을 유지하고 있기도 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 손님 대접은 끝까지 하는거니까. "
슬쩍 웃어보인 해인은 씻으러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개수대로 향했다. 그러다 옆으로 다가온 세나를 느끼고선 뭐지, 하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느껴진 숨결에 살짝 움찔하며 시선만 돌려 세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볼에 입맞춤을 하는듯한 구도. 아마 시청자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세나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못한채로 잠시 굳어있던 해인은 씻으러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선 그녀가 들리지 않게 한숨을 작게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 참느라 힘들었다. "
그렇게 설거지를 끝내고 세나가 나오기 전까지 간단하게 청소를 하고 있던 해인은 녹색 원피스 차림의 세나를 보자 자신도 씻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갈아입을 옷들을 챙기고선 화장실쪽으로 향했다. 세나보단 좀 더 짧은 시간이 지나고서 흰 반팔티에 검은색 반바지라는 편한 복장으로 나온 해인은 에어컨의 시원한 냉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말했다.
" 영화 보기 전에 머리부터 말릴까? "
아마도 세나의 머리가 길어서 말리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 해인은 드라이기를 들고 오며 말했다. 여동생이 둘이나 있는 오빠라서 그런지 머리를 말려주는 것엔 너무나도 익숙했다.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해인이 이어 씻으러 가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어서 씻고 오라는 듯, 세나는 살며시 해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자리를 잡고 자리에 앉았다. 이전에도 왔던 방인만큼 대충 구조는 알고 있었으니, 딱히 구경을 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이전에 있었던 여성의 흔적이 있다면 어떤 여성일지 궁금해서라도 조금 탐색을 했겠지만 왠지 그런 흔적은 없어보이기도 했고. 사실 있어도 별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 흔적을 자신이 지워버리면 그만이니까.
"아. 어서 와요. 오빠."
이내 흰 반팔티에 검은 반바지를 입고 나오는 해인을 바라보며 세나는 미소를 짓고 그를 맞이했다. 쉽게 볼 수 있는 여름 옷차림이라고 생각하며 세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되게 잘생겼다. 그런 말을 조용히 꺼내기도 하면서 그녀는 의미심장한 웃음소리를 냈다.
"머리요? 음. 머리는 어느 정도 말리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머리를 말리지 못하는 이는 아니었다. 이 머리스타일로 지낸 것이 하루이틀도 아니었고. 그렇기에 굳이 머리카락을 말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그렇게 잠시 생각을 하던 그녀는 살며시 묶고 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었다. 이내 긴 뒷머리카락이 그녀의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은 수분을 머금어 윤기가 차르르 흐르고 있었다.
"빗질 부탁해도 될까요? 너무 정성스럽게 할 건 없고... 그냥 가볍게 저일 될 정도로만요."
머리카락 말리는 것보단 이게 조금 더 손이 많이 가서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세나는 어떻게 하겠냐는 듯이 해인을 빤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