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마음. 그 말을 곱씹으며 세나는 아무런 말없이 해인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가 자신에게 가진 호감이나 호의는 이미 꽤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야 방송을 보면 싫어도 알게 되니까. 자신이 조금 더 특별하게 생각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에 대한 마침표를 아직 찍을 생각은 없었다. 방송은 아직 길었고, 그 사이에서 마음이 바뀌는 일은 아주 흔했다. 그렇기에 여기서 딱 이거라고 그녀는 마침표를 찍는 대신, 조금 더 지켜보면서 이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다. 악랄해도 어쩌겠는가. 자신은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적어도 해인만큼 이렇게 밀착한 남자는 아직 없다고 그녀는 자부했다. 재밌게 잘 보내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감은 있는 느낌. 하지만 그러면서도 너무 멀지 않고 같이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고 밥도 같이 먹을 정도의 사이를 다른 참가자들과도 그녀는 유지하고 있었다. 방송은 방송인만큼, 어느 정도 분량도 뽑아야하고 사귀진 않더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방송이 아니었기에, 무슨 일을 당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당장 여기에 오자마자 그는 자신을 끌어안았고, 자신을 이렇게 안고 싶었다고 이야기해오지 않는가. 심장이 뛰었다.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며 세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만 머금을 뿐이었다. 머리카락이 그의 손에 사르륵 깨지다가 다시 뭉치는 것을 반복했다.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는 것에 그녀의 몸이 그의 몸에 더욱 밀착했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아 그 무엇조차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밀착한 그 순간 해인의 얼굴이 다가오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입술을 빼앗기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쉽게 떨어뜨리지 않고 길게도 이어나갔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기만 할 뿐이지만 그 순간의 설렘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입술이 천천히 떨어지자 촉촉함만이 입술에 남아 아쉬움을 표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그 감정을 숨기면서 살며시 해인을 올려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헤에. 오빠. 아직 엄연히 방송도 아닌데 이렇게 입술 뺏기 있기에요? 후훗. 이래보여도 첫키스인데. 이거."
장난스럽게 말을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수줍었다. 얼굴이 붉어진 것도 그렇고. 이어 그녀는 그의 몸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선언하듯 이야기했다.
"...진심이 되어야겠네요. ...다른 여성이 오빠를 꼬셔도 안 넘어가게, 진짜 진심으로 해야겠어요. 오빠는 내 꺼야."
오빠도 진심으로 해올거죠? 다른 남자의 유혹에 안 넘어가게. 장난스럽게 말을 하나, 나름대로의 진지함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꺄르륵 웃으면서 가벼운 목소리를 냈다.
"후훗. 하지만... 이보다 더 진지한 것은 마지막 날에 이야기해요. ...방송이 꽤 오래 남았는데 벌써부터 속박할 필요는 없잖아요?"
마음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진심이 될 생각이었다. 다른 여자의 유혹에 그가 넘어가지 않게. 자신이 더더욱 유혹할 생각이었다.
ㅋㅋㅋㅋㅋ 어..그때면 세나 이미 아이돌 활동중일테니까... 스케쥴을 조절할 필요가 있겠네! 그런데 어차피 오너가 그 날 비었다! 라고 정하면 되는 거니까 문제는 없을 것 같아! 일출보기라! 그것도 괜찮다!! ㅋㅋㅋ 그런데 성인이 되기 바로 전날이라.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이건 좀 궁금해서!
자신이 어째서 이런 행동을 했는지 해인은 아직 잘 알진 못했다. 물론 충동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했다기도 애매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입술에 남은 감촉은 진짜였고 지금 품 안에 안겨있는 세나도 진짜였기에 해인은 세나의 볼을 살짝 어루만지며 말했다.
"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
그에게도 첫 키스였다. 자신이 세나의 처음을 빼앗았다곤 하지만 그도 처음이었으니 나름 세나가 억울하진 않겠다고 속으로 생각한 그는 세나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마치 선전포고를 하듯 진심이 되어야겠다는 말에 해인은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 나는 이미 진심이었는걸. 예전의 그때에도. "
사실 이미 다른 파트너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있었다. 과거 세나에게 품었던 여러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오랫동안 그의 안에서 잠들어있었고 다시금 그 감정의 주인을 만났을때 펑, 하고 터지듯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일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기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을뿐이었다.
" 그때는 피했지만 이젠 그러지 않기로 마음 먹었어. "
분명 그때보다 더한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인은 굴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기에 그저 세나를 보고 미소만 지을뿐이었다.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말에 세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내면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확히 그녀의 입에서 말이 나올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기분이 나쁘다거나 억울하다거나 하는 등의 부정적 생각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지금만 해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절대로 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할 때 나올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예전의 그때는... 지금은 거론 안할래요. 그때의 일은 그때의 일이고, 지금은 지금이니까요."
과거에 자신과 해인의 사이는 어땠던가. 그때도 썸을 타고 계기만 있으면 확 관계가 좁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때의 일. 지금에 와선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물론 아예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세나에겐 그랬다. 가볍게 웃으면서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조금 더 위로 올려 해인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후훗. 그러게요. 방송도 즐기고, 저희도 같이 즐기면 되겠네요. 지금 이 분위기를요. 꼭 사귀어야만 할 수 있는 행동들은 아니기도 하고."
이를테면 지금 있었던 키스라던가. 가볍게 웃으면서 그녀는 손을 뻗어 그녀의 앞머리카락을 살살 매만졌다. 그러다가 살며시 손을 아래로 내렸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있잖아요. 오빠. 방송이 시작되면 못할테니까... 한번만 더 하고 싶다고 하면 좀 그래요?"
말을 마치며 그녀는 팔을 뻗어 그의 목에 살며시 팔을 감았다. 그리고 살며시 오른쪽 눈을 감아 윙크를 보냈다.
"두 번 더 하면 적당히 아쉬운 상태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서 욕심만 더 생겨요. 안돼."
그가 좋았으나,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낼 생각은 그녀에겐 없었다. 지금은 적절하게 이 정도로만. 적당히 아쉽기에 더 원하게 되는 법이고, 더 가지고 싶어지는 법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상태에선 아무런 욕심도 생기지 않으니 금방 식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그녀는 딱 한 번의 횟수만 요구했다. 이내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서툴긴 하지만,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서 키스에 가까운 입맞춤을 조금 더 길게 이어나갔다. 목에 감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며 그녀는 눈을 감다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입숭를 떨어뜨렸다.
"지금은 말 안해도 전 아무런 답도 안할 거예요. 전 확실한 것을 더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요. 그렇게 해도 다시 저에게 오게 만들테니까요. 가볍게 웃지만 말하는 내용은 어떻게 보면 조금 무서운 느낌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저 귀여울 뿐일지도 모르고.
"후훗. 거기다가.. 이런 일, 저런 일. 다양하게 경험하는 쪽도 나중에 플러스면 플러스지. 마이너스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를테면... 오빠가 다른 여자랑 데이트를 간 곳이 나중에 저와 데이트를 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대신 뭐..."
제가 새롭게 그곳에서의 기억을 덮어씌우겠지만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녀는 그에게서 살며시 떨어졌다.
하지만 해인도 전적으로 세나의 말에 동의했기에 이 이상으로 권하지는 않았다. 세나가 자신에게 욕심이라는 감정을 품는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그 이상의 것을 위해선 지금 자중할 필요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이어지는 것은 아쉬움을 담아 좀 더 길게 이어졌고 그가 충분하다고 느꼈을때쯤 입술이 떨어졌다.
" 나야말로 너를 놓을 생각은 없으니까. "
카메라가 없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카메라가 있어서 이런 대화가 방송에 나간다면 분명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 뻔했기에 함부로 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카메라도 없이 둘만의 공간. 이런 밀담 정도는 나눌만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품에 안겨있는 세나를 끌어안고 있던 해인은 그녀의 말에 그저 웃어주었다. 세나가 덮어주는 기억이란 대체 무엇일까. 살짝 기대할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 으음 아니야. 무릎베개 진짜 불편하니까. 대신 ... "
해인은 자세를 잡고 눕더니 그대로 팔을 벌린채 세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안고 자고 싶은데 ... 그건 안될까? "
세나가 별로 피곤하지 않으면 자신의 품 안에서 따분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주 잠깐 조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를 하고 있는 해인이었다.
저기서는 해인이가 뒤에서 안아주는 구도가 조금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긴 해! ㅋㅋㅋ 옆으로 누워서 자는거니 말이야! 앗. 물론 그것도 좋지! ㅋㅋㅋㅋ 아무래도 세나가 키가 더 작으니까 백허그로 뒤에서 안으면 자연스럽게 해인이에게 매달리는 구도가 될 것 같지만..그건 그것대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