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2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카데미는 4개 파벌로 나뉘어져 있어요. 어느 파벌이 좋다는 얘기는 안 할 거에요. 그런 건 얘기해서도 안 되고, 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가서 다니다보면 알아서 어느 파벌에 들어갈지 판단하게 될 거고요. 하지만 그건 알아두세요. 파벌 싸움은 정말로 완벽하게 잘 할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끼지를 마세요."
잭은 진지한 표정으로, 조금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합니다. 어디서나 있는 게 암투와 정쟁 아닌가요? 아무튼 크론은 새겨듣는데, 뭐,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정쟁은 제대로 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남들 가는대로 흘러갔다가 남들 오는대로 흘러오는 세파에 흘러가고 흘러오는 삶을 선택하는 게 차라리 낫죠.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면 말입니다.
"각 학년이나 세대별로 꼭 승리하는 파벌이 하나가 나와요. 그리고 승리하는 파벌의 리더격들은 정말로... 미래가 창창하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별 것 없지만요. 하지만 나머지 패배한 파벌의 리더들은? 차라리 저기서 경비병들한테 쳐맞는 거지떼의 삶이 부러워질 정도로 비참해집니다. 그래도... 나머지 '떨거지'들은 사정이 나아요. 어쨌든 이 제국은 마법사가 없으면 안 돌아가는 나라고, 승리하는 파벌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세 파벌 소속의 졸업생들을 싹 다 죽여버릴 것 같으면 이 나라, 아마 삼백년도 더 전에 망했을 겁니다."
라고 말하고, 그 외에 '꿀팁'이랍시고 가르쳐주는게...
"마법 이론은 꼭 배워두세요. 아예 비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거기서 기초적인 주문을 쓰는 방법을 다 가르쳐주는데, 제 친구 말로는 아기도 마법 적성만 있다면 바로 마법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친다는군요."
"그래요, 그것을 취한다면 분명 굉장한 힘을 거머쥘 수 있겠지요. 게다가... 이렇게 보이는 여럿이라면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일 거에요"
그러한 광경에서 어촌의 모두가 침울해져 있을 그때, 가말라시엘 님이 저에게 말하셨어요. 어느때 보다도 진중하신 것 같은 분위기에요. 그것에 저도 수긍했기에 그렇게 대답했어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금기' 라고 표현될 수도 있을 방법이에요. 살아 있다는 것 자체. 생명. 나아가, 영혼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활용하는 방법. 저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이 광경을 미묘한 표정을 흐릿하게 지으며 바라보았어요
"만약에, 먼 옛 일이 되어 잊혀져가는 것을 다시금 저의 손길로 일깨어야 된다면... 적어도 저들의 결정을 따르고 싶다는 느낌이에요"
"결국 이것은 저들의 앞에 놓여있는 문제이니까요"
가말라시엘 님은 저들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셨고 하고자 한다면 실제로 행할 수도 있을 것이 겠지만 저는 그렇게 가말라시엘 님에게 다시 대답했어요. 이전에 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용맹과 헌신으로 이곳을 지켜내었듯이 저는 스스로의 의지로 발하는 자발적인 희생이여야 본디 그 힘을 전부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그나마 최소한의 위안을 찾아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에는 해야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는 식이에요. 어쩌면 이것은 저의 제멋대로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괜찮을까요? 그들애게 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해결책을 원하고 그 결과에 이르는 수단에, 삶에서는 가끔은... 모르는 것이 더욱 이로운 법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는 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어요. 그것은 어떨때는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도 했었지요.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468 이 일은 플라베르흐의 문제고, 설령 플라베르흐 촌장이 아앨라나에게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앨라나가 문제 해결을 위해 돼지나 소 한두마리를 산제물로 쓰는 것쯤이야 어렵잖은 일이고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인신공양, 그것도 플라베르흐 사람을 산제물로 쓰는 인신공양은 얘기가 다를 것이기에 플라베르흐 촌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아앨라나의 의견은 어느 기준으로 보나 합리적입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의 부상자를 마법 재료로 써도 되느냐는 말을 하자니 선뜻 입이 열리지 않긴 하는데, 아앨라나는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여자가 지적하자 남자가 옆구리를 푹 찌릅니다. 이놈의 도시는 뭐하는 놈들이 만들고 뭐하는 놈들이 살길래 도시 이름도 이렇게 발음하기 더러운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학문이 융성한 도시임은 확실하고, 좀 반응이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인 류드밀라와 함께라 생각하니 약간은 기대도 됩니다. 류드밀라는 엘리의 질문에 고민할 것도 없이 답합니다.
"당연히 저 달구지는 짐 부리는 용도로 쓰고 검은 마차에 너랑 내가 타야지. 설마 너, 저 소달구지를 타고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자해라도 하려고 한 거야?"
>>474 "저는 마법사가 아니니까요. 아카데미 출신 비마법사? 개가 웃을 일이죠. 전 마검사 과정에서, 마검사 이전에 '검사'가 되기 위한 것들을 가르치기 위해 고용된 사람입니다."
...잭은 본의 아니게 크론에게 또다른 팁을 줍니다. 아카데미에 비마법사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크론은 그 존재를 잘 숨겨야 할 것이란 점을. 아무튼 잭은 마차 위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네 파벌은 흑, 적, 금, 백 의 4색으로 나뉘어요. 여기에 뭔 고상한 의미가 있네 없네는 모르겠고... 흑색 파벌은 신비주의고, 적색 파벌은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화끈하고, 금색 파벌은 돈이 많고, 백색 파벌은 수저가 좋거나 태양교의 신임을 받는 이들이 모입니다."
>>479 차라리 소달구지 속에서 뙤약볕의 저주를 받으며 저녁이 올 때까지 노릇노릇하게 겉은 바삭 속은 촉촉 구워지면 구워졌지 언니랑 같은 마차 쓰기 싫다... 는 말을 안 한 것만 해도 엘리는 많이 참은 겁니다. 솔직히 말해 류드밀라는 오빠와 언니의 안 좋은 점만 모아놓은 것 같은 자매였고, 집행자 직위를 얻은 후론 부모님보다도 더 심한 꼰대가 됐으니까요. 바토리의 이명을 가진 뱀파이어가 그렇게 개판으로 꾸미냐, 블라드의 이명을 가진 뱀파이어가 그렇게 겁쟁이같이 구냐, 체페슈의 이명을 가져놓고 그리 놈팽이같이 구냐...
그렇기에 각방도 상당히 순화한 얘기지만, 류드밀라는 방금 전까지 엘리를 반죽이려 해놓고 서운함을 표합니다.
>>481 "사실 떠본 거였어. 어차피 큰 마차고, 최대 두 명까지 수송하는 걸 고려한 마차니까 '각방'은 있어."
...라고 말하면서, 류드밀라와 엘리는 검은 마차로 들어갑니다. 두 고용인이 두꺼운 천막을 통해 만들어준 그늘 사이로 이동하고, 엘리는 문자 그대로 작은 오두막을 옮겨둔 것 같은 마차의 가운데에 난 복도를 통해서 왼쪽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당연히 마차 안에 딸린 방이니만큼 작지만, 바깥에 난 창문은 나무로 밀 수 있는 문으로 완전히 밀폐되어 있어서 어둡고, 인간의 눈에는 침침하지만 엘리 같은 뱀파이어의 눈에는 완벽하게 밝은 침침한 램프불이 있어서 좋습니다. 침대는 작아서 새우잠을 자야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이건 마차 안에 딸린 두 개의 방 중 하나입니다.
@@ >>456 누누코는 요한이 건네준 단검들을 손 안에서 가볍게 빙빙 돌려보였다. 들판에서 만드는 것만큼 손에 맞는 무기는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베고 찌르기에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밸런스가 좋았다. 앞서 썼었던 돌칼이나... 흉기 비슷하게 개조한 삽보다는 말이다. 누누코는 인정해야했다. 그 인간 대장장이가 괜찮은 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공동체에 다가오는 암울한 징조들을 대처하고 끝맺기 위해서 무엇까지 할 수 있으신가요?"
그들은 문제의 해결을 원하고 있고, 저는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만큼 결정을 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저는 숨을 한번 고르고는 그렇게 첫 운을 때고자 그렇게 말했어요
"이미 보이는 비극을 지나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며 그것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제가 촌장 님에게서 들었던 '버섯 폭탄'을 통한 격퇴를 뜻했어요. 촌장 님이 말했던 것처럼, 넬루 이었던 것처럼. 그들의 행동으로 거악을 물러가게 하는 것은 성공했으나 그저 그뿐. 잠깐 동안의 안식을 가질 수 있으나 이대로는 여전히 공포는 도사리고 언제 다시 몰려오는 물처럼 급습할지 모른다고 생각이 들겠지요
"누군가는 자신의 생명을 다한 헌신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마지막 안식은 마땅히 주어져야 할 것이기에 그때에 이르기 까지 이대로 남거나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분들도 있을거에요"
"누군가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고, 그저 이대로 스려져 흙으로 돌아갈 뿐이 아니라, 결국 꺼질 불이라면 그 끝을 맹렬히 불태우는 것으로서 모든 이들의 구하기 위해서 이조차 헌사하고자 마음을 가진 분들도 있을거에요"
"저는 최후의 희생을 통해 거악을 처단할 수 있게 될 것이에요. 저는... 이를 시행하는 것에 여러분의 결정을 따르겠어요. 여러분들의 미래는 여러분의 것이여야 할테니 그 끝도 같아야 하겠지요"
저는 사람들의 동요나 충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시도로 그럴듯해 보이는 말들과 부드럽지만 동시에 진중하며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말하는 것으로서 사람들을 회유하고자 하려고 했어요. 누군가의 생명을 제물로서 힘으로 바꾸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란 많은 것을 뜻하겠지요. 이것이 용납될 수 없다면 저들과 저는 다른 길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477 검사라..내가 노력을 한다면 딱 거기까진 그래도 가능하겠지. 어쩌면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것들 중 나도 가능한 것들이 꽤 있을지도 모른다..잘 익혀두면 여차하면 제국을 떠나서라도 밥벌이로는 충분하겠지.
"흑,적,금,백이라..감사합니다. 적어도 괜한 실수를 할 일은 없겠네요. 그 이상은 직접 가서 겪어보면 알게 되겠죠."
파벌. 자신은 최대한 주목을 피하는 편이 유리할 텐데..문제는 아카데미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입학생이 저 파벌의 소용돌이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애매하게 휘둘릴 바에는 확실히 하는 편이 의심을 피하고 보호를 받기 좋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괜히 다른 파벌에 찍혀서 공격을 받고 조사를 당하다 모든 게 들통날 가능성도 높으니..
>>485 누누코는 요한의 마차에 오릅니다. 온 몸의 상처에서 나던 술 냄새는 아린 통증과 함께 바람에 날아갔고, 옷도 거적때기에서 그나마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 옷으로 바꿔 입었고, 삽날을 날카롭게 갈았을 뿐인 삽보다 훨씬 나은 무기도 생겼습니다. 이쯤 되면 신성한 들판의 동지들을 찾으러 가기에는 딱 좋은 구성입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먼 여행이니 단 것 좀 씹으렴, 바퀴벌레야."
요한은 바퀴벌레의 입가에 각설탕 몇 알을 가져다대고, 바퀴벌레는 요란스레 콧김을 뿜으며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기분 좋은 푸르륵 소리를 냅니다. 요한은 바퀴벌레가 콧구멍까지 핥으며 각설탕의 달달한 여운을 즐기는 동안 지도를 펼쳐 남북 중 먼저 가야 할 곳을 이야기합니다.
"어딜 가던 누누코씨 자유긴 합니다만, 제가 누누코씨라면 일단 보스트만이 지배하는 북쪽의 비더스부터 가겠습니다. 그쪽이 노예 다루는 손속이 잔혹하기로 악명이 높거든요."
>>487 빙빙 돌리고 또 돌리고 아주 길게 꼬았습니다만, 촌장과 넬루는 아앨라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렵잖게 ㅣ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최후의 희생, 헌사 따위를 언급한다면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뻔하고, 또 살아있는 인간의 공양된 생명을 원하는 가말라시엘의 존재감이 그들의 등허리에 끔찍한 소름을 끼치게 만들어 이해를 돕습니다.
"...이들의 목숨을 원하는 거네."
넬루가 말하자, 촌장이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탁 쳐서 막습니다. 적어도 여기서 막 말할 문제는 아닙니다. 특히 그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이들 앞에서는 말입니다. 촌장은 침통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희생하냐가 문제지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촌장은 한참동안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알겠네. 하지만 그건 아무리 촌장이라도 함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니 플라베르흐 사람들을 모아 결정하겠네. 기다려주겠나?"
>>488 두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마차는 어느새 접경 지역의 끝자락까지 도착합니다. 빈민과 난민들을 살벌하게 두들겨패던 곳과는 다르게, 해이한 근무 기강과 나른한 표정이 이곳의 평화 상태를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술을 마시고 얼굴이 홍당무가 된 한 경비병은 마차 앞으로 오더니 귀찮음을 숨기지 않고 손을 뻗는데, 엉덩이가 가려운지 나머지 한 손이 허리춤에 가 있습니다. 그런데...
"씨발! 크론 씨! 엎드려요!"
그 말과 함께 잭이 마부를 걷어차 땅에 처박고, 크론의 머리채를 잡아 넘어뜨립니다. 그리고, 넘어진 크론의 눈에 경비의 허리춤에서 잽싼 단검이 나오는게 보이고, 그 단검을 잡은 손이 잘려나가 제 앞에 떨어지는 게 보입니다. 잭은 믿을 수 없는 반사신경과 온 몸의 협응으로 화살을 쳐내고 손이 잘린 경비를 붙잡아 목을 조른 채 인간방패로 만들고 화살을 막아내며 말합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들의 분위기는 먹구름이 가득낀 하늘처럼 가려져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보여주는 태도에서부터 저의 회유가 어떻게든 괜찮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옛날, 이곳에서는 그러한 것이 이미 있었던 과거에서도 연관되어 있겠지요. 저는 넬루의 그 흘리듯 하는 말에 직접적인 긍정도 부정도 표하지 않았어요.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을 뿐이에요
그뒤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어요. 이때 저는 한번 슬그머니 눈을 한번 감았다가 다시금 뜨고는 대답이 돌아 오기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이내 첫 동작과 말은, 촌장 님의 마지못해 이어가는 듯한 그 말은 이 제안의 수용함을 의미함과 동시에 제게 그렇게 말하셨어요
"그럼요, 이것은 오랜 고뇌 끝에서 부터 이어지게 되는 결단이 될테니까요"
저는 촌장 님의 말에 즉시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촌의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그 조건이 조건인 만큼 정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해요. 그들은 직면한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을 부탁했고, 저는 해답을 제시했어요. 남은 것은 답을 풀기 위한 과정 뿐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여기서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혹시 모르지요. 그동안 그들이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요
>>493 촌장은 금방 플라베르흐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베스니를 비롯한 외부인들은 일이나 계속 하라는 면박과 함께 남겨집니다. 촌장은 아직 의식이 남아있는 부상자들,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부상자들은 그 가족들이라도 죄 긁어모아서 앉히고, 아앨라나나 넬루보다도 어린 사람부터 촌장보다 늙은 이들까지 촌민이라면 전부 모였고, 이들은 촌장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그 얼굴만 보고도 대충 거대한 두족류 괴물 이야기를 하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치 못한 게 두 가지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촌민들이여. 내 할 말이 있네..."
촌장이 마침내 궁극적인 해결책을 들고 왔고, 그 대가도 '궁극적'이란 것입니다. 마녀의 제자가 가지고 온 궁극적인 해법에 촌민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미 불구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누군가 자살돌격을 해서 사냥도 아니고 겨우 격퇴한 마당에, 희생의 방법이 문제지 희생의 여부가 문제가 아닌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 절망이 전염되더니, 이내 체념으로 바뀌고, 그들은 아앨라나에게 전달할 조건을 내세우는데 다들 상식적입니다.
인신공양으로 얻는 마력 및 기타 힘은 당면한 플라베르흐 관련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만 사용하며, 잉여 자원은 오직플라베르흐를 위해 사용함을 원칙으로 함 인신공양 대상자는 의식이 있고 자기희생에 동의한 플라베르흐 촌민으로 한정함
>>495 저기서 곧이곧대로 "아니, 안 돼."라고 말하기에는, 그래도 엘리는 어엿한 80살입니다! 그래도 대충 인간으로 따지면 16살에서 20살 정도는 되었단 말이지요. 즉 사회생활을 알 나이고, '들어가도 돼?'는 '들어간다?'는 의사를 전달해서 '어 들어와'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한 사전 통고지 진짜로 접견 의사의 유무를 묻는게 아님을 알 나이란 말입니다. 엘리는 류드밀라가 들어오게 하고, 류드밀라는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한 손으로 더듬으며 들어오더니, 엘리의 머리를 대충 툭툭 치고는 대충 이쯤이 의자겠거니 하고 앉습니다.
"별 건 아니고, 들어보니까 사람들을 꽤나 구한 것 같던데, 왜 그렇게 사람들을 구하는 데 집착한 거야?"
류드밀라가 물어봅니다. 류드밀라는 다른 일족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적극적인 인간 사냥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좋은 것도 아닌, 지금의 '살아남은' 뱀파이어 일족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립파에 속하는 이니 당연한 느낌입니다.
"너는 태양 아래서도 멀쩡하고 싶다는 미친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거랑 인간을 구하는 거랑은 별로 상관이 없어보이는데."
저는 촌장 님이 말하신 대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면 어촌의 곳곳에서부터 사람들을 모아서 한 자리에 모여가는 것이 보였어요. 거기에서는 외부인들의 존재는 제외되었는데, 이곳 분들의 마음씨를 본다면 아무래도 그럴수 있겠네요. 제가 그것을 표현한다면 '숙고와 결정의 순간을 준비하다' 이라고 말할 수 있을거에요. 그리고 어느정도의 시간이 흘러갔을까요?
저 역시 그들과 함께 뒤따르고 이제 한 자리에서 모여서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촌장 님이 그들에게 설명했어요. 이 순간에도 저는 계속 침묵을 지키며 바라보았어요. 그들에게는 당연하게도 각자의 얼굴에는, 그 곁에는 절망이라는 이름의 늑대의 무리가 사냥감을 에워싸듯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촌장 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이것은 확실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처럼 그 숨을 죽이듯이 이야기를 이어나갔어요
이제 그들은 저에게 그들의 결말을 맞이할 조건을 말해주었어요. 이번에도 제가 거절할 이유는 없어 보였어요. 그것들은 제가 생각하였던 것과도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야기가 한창 이어지는 와중에 누군가의 외침이 울려퍼지는 것을 저는 알았어요. 그래요, 이것도 어느정도는 있을 줄 알았어요. 무엇을 말하고자 할지 예상해볼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겠네요. 그 목소리의 주인의 외침에 깃들어 있듯이 즉시 말하고 싶을거에요, 그러니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가만히 있어보아요
>>497 아앨라나는 그 쪽을 바라봅니다. 한쪽 팔을 잃어버리고, 한쪽 눈도 잃어버린... 딱 봐도, 검은 숲 사람이 아닌 외부인입니다. 촌민들은 이 민감한 이야기 와중에 외부인이 들어오자 웅성거리고, 행여 정보가 새는 건가 우려하는데, 그 사람은 우려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인신공양으로 문어 괴물을 죽인다고? 효과만 확실하다면, 그럼 나도 끼어줘!"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러자, 그 외부인은 자신의 잘린 팔에 붙은 붕대를 확 풀어 검게 썩은 절단면을 보여줍니다. 그걸 보고 마음이 약한 이들은 윽, 하며 눈을 돌리고, 외부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잇는군요.
"내가 여기에 왔다가, 내가 자랑하는 왼손도 잃고 내 눈도 잃고 내 아들도 잃었어. 저 망할 놈의 문어 때문에! 그러니까... 인신 공양이란 거, 할 거면 나도 해!"
이제는 악밖에 남지 않은 외부인이 남은 한쪽 팔로 주먹을 흔들면서 뭐라 외치지만, 촌장은 고개를 젓습니다.
"사정은 안 됐지만, 이건 플라베르흐 마을이 책임져야 할 문제니까, 외부인의 목숨을 요구할 수는..."
"그렇다면, 플라베르흐가 인신 공양을 했다고 사방 팔방에 다 소문을 내겠어! 자아, 마을에 피해를 입히겠다고 협박하는 건 사형 수준의 금기 아닌가?! 사형으로 죽이나, 인신 공양으로 죽이나, 어차피 똑같잖아?!"
"미치겠구만 그래..."
촌장은 쯧, 하고 혀를 차면서 아앨라나의 눈치를 봅니다. 가말라시엘이야 뭐, 10명의 생명이 더 좋냐 11명의 생명이 더 좋냐 물을 것도 없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요상하게도 아앨라나의 의사가 중요해진 느낌입니다.
저는 그 외침의 주인공을 바라보았어요. 그 사람은 돋보이도록 나섰지요. 그 뿐만이 아니라 그 모습으로 보아서도 그랬어요. 그 사람은 외지인이고 이곳에 모여있는 어촌의 주민들과 같은 것을 겪었지만 그 때문에 다를 것이라 여겨질 수 있으나 비슷하다 것을 알았지요
저는 그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끝마치도록 따로 말하지 않고 청취를 계속했어요. 과연 그런가요. 잃어버린 것을 위하는 상처입은 복수자 이로군요. 그 사람은 더는 자신의 생명을 아끼려 하지 않을거에요.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태워서라도 호수에 자라나고 있을 거악을 처단하는 것이 자신의 복수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당신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을 거에요, 복수를 대행할 수 있겠지요"
"이들이 그것을 수용하도록 할 수 있다면요. 당신은 선택할 수 있어요, 남겨진 이들과 같이 삶을 이어나가 대적의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그것을 알고 느끼며 삶의 끝을 맞이했던 이들이 이어가고 싶어했던 내일을, 그 유지와 소망을 이어받아 이루는 것을 할 수 있을거에요"
상황이 이렇게 되어가면, 거기에서 곤란해보이는 모습이 영력하였던 촌장 님으로부터 이어지는 눈길이 저에게 향해 왔어요. 그것은 저에게 또 다른 선택과 결정을 원하는 것이라는 걸 곧바로 알 수 있었어요. 그렇게 되어서야 저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그만두고는 그리 말하며 동시에 모여든 주민들을 향해서 가리키며 손바닥을 보여 펼쳐보았어요
잭의 무용은 분명 뛰어납니다. 세상에 날아오는 화살을 베어낸다고 주장하는 '검객'들은 많지만, 대부분은 내막을 살펴보면 사전에 어느 방향으로 쏘라고 합을 맞춘 다음 상대방이 쏠 궤적을 아니까 그 궤적에 맞춰 베어내는 것뿐이고, 그것마저도 자신이 정확히 어느 위치를 베어낼지를 알아야 하는 만큼 쉬운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잭은, 상대방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쏘는 화살의 궤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어떻게 휘둘러야 그 화살을 쳐내거나 갈라낼 수 있을지를 알 정도, 즉 규격 외의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일이 그렇게 하기는 그가 생각하기에도 못해먹을 짓인지 손목이 잘린 도적을 방패로 쓰고 있지만요. 그 무용 때문에 역으로 도적들의 시선이 잭에게 몰린 동안, 크론은 자신의 눈 앞에 놓인 잘린 손에 들어간 단검을 꽉 붙잡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게 쥐새끼처럼 기어서, 뒤로 갑니다. 그리고...
푹!
"끄윽?!"
살인에 대한 죄책감, 본능적 거부감, 그런 것은 다행히도 크론에게는 없었습니다. 크론은 잭에게 화살을 쏘려던 이 하나를 죽이지만, 그 사람이 쓰러지면서 다른 이들의 이목이 크론에게 쏠립니다.
플라베르흐 촌장은 아앨라나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제 '사실상'이 아니라 그냥 죽음이 확정된 부상자들을 위해서, 잠시 살아있는 상태에서 장례를 치르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합니다. 생소한 문화는 아닙니다. 원래 검은 숲에서 마을이나 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워낙에 가혹한 생존 환경 탓에 생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임무를 맡는 이들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장례식을 치뤄주고 보낸 다음, 그 순간부터 문자 그대로 '고인' 취급하는 문화가 있으니까요. 플라베르흐 사람들은 부상자들에게 미리 준비해두었던 검은 숲의 흰색 꽃과 덩굴로 만든 장례용 모자를 씌워주고, 돌아가면서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 부상자들을 안아줍니다.
"...사랑해, 밀리."
"...재혼할 거면 아키레, 그 년이랑은 말아요. 그 년 애 때려잡기로 유명하니까.."
"그 때 내가 밧줄만 빨리 가져왔어도... 미안하다."
"헛소리 말고, 술이나 한 잔 줘."
"이 새끼야, 그리울 거다."
"넌 벽에 똥칠하다 뒤질 거지? 난 간지나게 간다."
다들 어떻게든 가벼운 말이나 엉뚱한 말을 하면서 속여보려 하지만, 분위기는 참 무겁습니다. 그 때,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 외부인이 슬쩍 손을 들더니 말합니다.
"내가 살던 지방에서는 죽으면 천국 가는 거니까 잘~ 죽었다고 박수 쳐주던데, 혹시 손 멀쩡한 이들은 나한테 박수 좀 쳐줄 수 없나?"
그렇게 말하자, 플라베르흐 촌민들은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수를 칩니다. 박수 소리가 회의하려고 모인 큰 건물 안에 울려퍼지고, 그 소리가 그치고 나면... 침통한 표정을 지키고 있는 주민들 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촌장은 아앨라나에게 이야기하는군요.
류드밀라는 마음에 안 든다면서도 더 이상 캐묻지는 않습니다. 뭐, 어쨌든 돕는 것이 어지간해서는 이득일 수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제아무리 인간이 믿을 수 없는 족속이라 해도, 자신을 살려준 이를 긍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더 높고, 그래서 '뱀파이어라고 해서 전부 사악한 괴물들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인간들의 비율이 높아지면, 그게 뱀파이어 일족의 생존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이면 긍정적이지 부정적일까요? 류드밀라 입장에서도 더 캐물을 계제는 아니고, 실제로도 엘리는 뱀파이어 일족이 죄를 묻는 기준 중에 '과도한 인간 학살로 인해 인간들의 보복을 불러 일족에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있어도, 일족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단순히 '인간을 돕는 행위'를 비난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류드밀라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엘리에게 충고합니다.
"그래. 솔직히 말해, 네가 나 싫어하는 거 아니까 짧게 끊을게. 거기 가서, 아무나 믿지 마. 나처럼 장님 되기 싫으면."
저의 말에 촌장 님을 비롯한 모여든 이들은 그들의 마지막을 위한 순간을 가지는 광경을 차분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것은 죽은 자를 떠나보내기 위한 장례식인 동시에 살아서 그 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원이기도 해요. 여기에서 만큼은 돌아올 수 있는 길은 아니겠지만요. 서로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이것도 전부 그 자체로서 뜻이 있지요
여러 목소리가 울리며 말을 만들어내고 이어지고 있었던 그때 그 외부인이 스스로를 주장하고 말하며 부탁하는 것에 저도 말없이 손에 쥐고 있었던 지팡이를 저의 옆에 허공에 띄어놓고는 그대로 손을 모아서 가볍게 손뼉을 두드리듯 간단하게 박수라고 할만한 것을 해보였어요
그렇게 잠시동안 떠들석했으나 지나가고 찾아온 침묵이 도래했고 때는 왔어요. 촌장 님의 신호와 함께 저는 다시금 지팡이를 손에 잡고는 적절한 장소를 잡으려 했어요
이정도의 크기의 영향력을 끼치는 의식을 홀로 거행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진귀한 경험이 될 거에요. 예전에 마녀 님이 행하시는 의식을 곁에서 도우며 배운 이후 처음이였어요. 긴장감과 기대감, 그리고 제가 이렇게나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느껴져 오는 묘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보듬어 품으시고 잉태하시며 계신 우리를 보우하사 어버이 되시는 하늘과 대지이시여 천지에 만물을 형성하도록 비추시고 지속하시는 태양과 달이시여 저와 이들의 영혼의 울림을 들으소서 이끌어 주시길 바라옵니다"
한번 크게 숨을 고르고는 두 눈을 천천히 감고는 필요한 자세를 잡았어요. 그리고 겸허히 양손으로 쥔 지팡이를 하늘을 향하여 높이 떠올려 기도와 함께 이어질 주문을 읊기로하며 의식을 거행하고자 했어요
".....따라서 준비되고 모여든 이의 삶을 모아서 이곳에 결집하니 끝으로부터의 향하는 시작은 여기 있으라!"
잠시동안 그 동작을 유지하고는 눈을 뜨고는 양 손으로 부여잡은 지팡이를 제 앞으로 가져다 대어 그렇게 말을 외쳤어요
>>506 크론은 눈을 부릅뜨고, 가까이에서 활시위를 거의 다 당긴 도적의 복부에 단검이 박혀 들어가고, 흉갑이 아닌 얇은 천조각을 뚫은 칼날은 당연하다는 듯 그 밑의 살갗과 근육, 내장도 꿰어버리고, 도적의 입에서 올라오는 피거품 끓는 소리와 함께 크론은 도적과 땅바닥을 뒹굽니다. 잡을 수 있는 건 뭐든지 잡아 내리치고, 목은 조르고 눈구멍은 찌르는 개싸움, 크론이 익숙한 싸움입니다...
"이... 개새끼가아아!!!"
...그 개싸움은 기본적인 규칙조차 없어, 다대일, 반대로 일대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문제죠. 왜 이런 서술을 하느냐면, 크론의 등 뒤에서 누군가 칼을 찌르고 밀쳤기 때문입니다. 크론은 몇 번 겪었지만,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통증에 눈을 부릅뜨고, 상황이 뒤집힙니다...
>>507 인신공양. 인간 그 자체를 제사에 사용하는 제물로 올리는 의식이지만, 그 뜻만으로 그 불길함과 엄중함을 다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예로부터 인간의 생명은 주술사들이 '비뵤적' 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급 제물이었고, 주술과 마법은 곧 과학과 공학에 밀릴 거라 확신하는 이들도 최소한 인간 제물이 전 인류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 불길하고도 장엄한 관념의 크기는 인정합니다.
그 목숨의 무게가, 이제 아앨라나의 손에, 가말라시엘의 지팡이로 흐릅니다. 그들의 기억, 생명, 혼백, 살점, 피, 모든 것들이, 목적이야 이유야 어찌되었건 마법의 결정체로 화하고...
아앨라나는 다른 촌민들과 함께 소름돋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들이 입고 있던 옷가지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완벽하게 사라졌단 겁니다. 앨리스 님의 의식은 인간의 마륹부스러기는 남아 미라로 보존되게 남았는데... 가말라시엘이 웃는군요.
"선물이 있다면, 끝까지 활용하는게 예의지요."
...이 순간, 아앨라나는 '제물의 마력 전환 수율'만큼은, 가말라시엘의 도움으로 스승을 뛰어넘었음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