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 '남은 타톤들이 전부 트리무스히드라에게 달라붙고, 암허슈트는 고양이 소녀를 최대한 갱도 밖으로 대피시킨다. 흙의 정령이 지반을 흔들어 유황 기체를 퍼뜨린다. 그리고 수사닌이 남은 바윗돌을 전부 깨부숴 히드라의 몸을 덮어 솥처럼 감싸고 지하수를 그 위에 쏟고, 헬렌의 앞에 헬렌을 가릴만한 바윗돌을 떨군다.'
로지가 내놓은 최적해를 헬렌은 그대로 실행합니다. 한 번에 4개의 사역을 동시에 시행하자, 헬렌은 그 위대한 정령술 적성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찢어지는 것 같은... 아니, 두통에 갖다붙일 수 있는 온갖 비유를 다 끌어들여도 모자랄 두통에 직면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말할 때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시야가 분절하고, 청각이 찢어지는 괴성으로 바뀌고, 그녀의 몸에서 뇌만 남아 입이 없지만 비명을 질러야 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헬렌은 그래야 하기에, 그래야 저 삼두사를 죽일 수 있기에... 로지를 믿고, 자신을 믿고, 이곳에서 자신을 돕고 있는 모든 정령을 믿고 행합니다.
"타, 톤! 타, 톤!!!"
타톤들이 트리무스히드라에게 달라붙습니다. 아직 팔다리가 멀쩡한 타톤들은 하반신이 잘려나가 상반신만 남은 타톤들을 던지고, 상반신이 잘려나가 하반신만 남은 타톤들은 히드라에게 달려들어 무릎을 꿇고, 다른 타톤들이 자신을 짓밟고 올라가게 돕습니다. 동료들을 전부 집어던진 타톤들은 행여 히드라가 튕겨낼까 빨리 올라가고, 히드라가 타톤들을 털어내기도 전에 위에서는 거대한 바위들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고양이 소녀는? 암허슈트의 존재감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솨아아아아아아...
치이이이이이이...
바윗돌이 떨어진 곳으로 지하수가 쏟아지며 차갑고 축축한 물줄기가 헬렌도 때리다가 이내 헬렌 앞에 바윗돌 하나가 떨어집니다. 하지만 바위가 물은 막아도 유황의 지독한 냄새는 막지 못해, 헬렌의 코가 저절로 벌름거리고... 헬렌이 불평할 새도 없이 바윗돌과 바윗돌이 부딪쳐 스파크가 튀더니, 불꽃이 유황과 반응해 폭발합니다.
그 폭발은 천장의 지하수를 일순 증발시키고, 증발한 고온 고압의 수증기는 팽창하면서...
"...정신 차려봐요."
...정신을 차려보면, 헬렌은 낯익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몸이 너무 답답해서 아래를 보니 바위가 헬렌을 깔아뭉갰는데, 고양이 소녀가 지렛대를 끼워넣고 낑낑대면서 겨우 밀어 헬렌을 빼냅니다. 그리고 이야기하는군요.
"...뭔 일을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당신 진짜 세네요."
은광이었던 것을 가리키는데 어... 보글보글 물이 끓고 있고, 펑펑 수증기가 터지는 곳에서 은광석과 유황석이 마구 튀어나와서 사방으로 날아가고 있군요...
그리하여, 저는 베스니와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뒤로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수의 기척과 소리가 점점 저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약간 상체를 돌아서 엿보면 그것은 어촌의 주민들 이였어요. 그들은 저에게 볼 일이 있는 것 처럼 보였고 저는 곧 완전히 몸을 돌려서 그들을 바라보았어요
"후후훗, 제가 해야 할 것이 있을 때 플라베르흐에 방문하게 된다면 그때 저에게 도움을 주세요"
그들에게 있어 저에게 볼 일이란, 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 이였어요. 그와 동시에 그들은 저에게 따로 제대로 보답을 하고자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들의 말에 그렇게 대답해주었어요
"좋아요, 그 말씀대로에요. 그렇다면 가는 길을 같이 하도록 해요"
그리고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닐루, 그녀가 먼저 나서서 그렇게 저에게 부탁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641 "대체 너 같은 모기년이 어떻게 위겔 교수를 접견할 권리를 얻은 건지, 또 무슨 용기로 이 대낮에 나다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슬린 심문관은 엘리 쪽으로 무언가 던집니다. 이상한 보라색 액체가 들어있는 병입니다. 그리고 요구하는군요.
"이 병을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놈들한테 던져라. 그러면 네 년이랑은 볼 일 끝이다. 어떻게 생각하지? 거절한다면..."
그슬린 심문관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전부 무기를 꺼내듭니다. 이거... 좀 안 좋은 상황입니다. 아마 듣지 않는다면 죽이겠다는 이야기로 보이는군요. // 코멘터리: 계속 이야기하지만 플레이어가 고의적으로 데플을 의도하는 수준의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데플은 어지가해선 안남
>>649 헬렌은 눈 앞에 일어난 일을 바라봅니다. 헬렌이 갑자기 어딘가로 순간이동한 게 아닌 이상, 아마 헬렌은 수증기 폭발의 여파로 날아갔다가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게 분명할 겁니다. 그러니까 눈 앞에 펼쳐진 건, 분명 헬렌이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은광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은광의 입구였던 곳은 거대한 수증기 폭발의 여파로 훨씬 넓어져서 물이 빠진다면 마차가, 물이 안 빠진다면 쪽배가 한 척씩 마주보며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습니다. 주변은 수증기 폭발과 그로 인한 여파로 구덩이가 파였는지 쏟아지는 지하수가 찼고, 지하수는 폭발한 유황의 여파로 보글보글 끓고 있습니다. 네, 어찌 본다면 유황 온천입니다. 다만...
"저, 저 년이다! 저 년을 죽여라!"
"저 년이 버섯 괴물들을 막 부렸어!"
...퍽! 깡!
...수증기 폭발이 또 일어나면서 사람 머리통만한 바윗돌이 마구 튀어나오더니 아무데나 막 튀면서, 헬렌을 죽이려던 도적 잔당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부숴버립니다. 옆에 앉아있던 논리의 정령 로지가 손사래를 치는군요.
'저한테 물어보지 마세요. 지금 상태에서 그런거 답한다고 또 당신 머리 썼다가는... 당신 진짜 죽어요.'
...라 말합니다. 고양이 소녀는 헬렌의 옆구리를 툭툭 치면서 말합니다.
"저기 머리 세개 달린 뱀 둥둥 떠 있네요. 은광을 저 꼴로 만들었으면 아마 누구가 좋아할 리는 없겠지만... 상황을 잘 설명하면, 아마 그런가보다 넘어갈 수도 있을 거에요."
@@>>652 도적 잔당의 모습이 확실히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바윗돌이 마구 튀어나와 머리통을 깨부수는 게 통쾌해 보이긴 했다. 우연이라기엔 절묘해서 자신이 아무말 하지 않아도 정령이 자신을 나쁘게 말하는 이들을 혼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적 잔당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옆에 고양이 소녀가 도와주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이고.
‘안 물을게.’
헬렌이 자그만 미소를 띄면서 답한다. 죽고 싶진 않고. 저게 유황 온천이라기보다는 유황불에 끓고 있는 지하수라는 게 돌아가는 머리로 이해할만 하니까 말이다.
...라고 말하면서도, 고양이 소녀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백과사전의 정령이 끼어드는군요.
'각지의 에법은 모두 상이하며, 어떤 지역에서는 최고의 우호 표시가 다른 지역에서는 칼을 뽑는 것보다도 심한 적대의 표시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들이 두 눈과 두 콧구멍, 네 개의 팔다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신체적 보편성을 지니듯 인간들의 사회에도 보편성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고개를 숙이는 행동은 '목례'라 부르는데, 이는 보편적인 인사의 표현이자, 특히 귀족 등 상위 계층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의 표시로 통한다. - 세계의 예절.'
"저는 페로, 보시다시피 펠리네 수인이에요."
...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군요. 그런데 뭐라 더 말하려는데, 뒤에서 몰려오는 이들의 소란에 그녀의 귀가 자꾸 쫑긋거리며 신경이 끌리더니, 결국 페로가 짜증내며 뒤로 돌아섭니다.
>>650 그렇게 넬루와 아앨라나는 함께 길을 나섭니다. 솔직히 말해, 베스니와 넬루는 서로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입니다. 넬루가 동료라면, 베스니는 그냥 걸어다닐 줄 아는 것만 빼면 '짐덩어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걸핏하면 툭 튀어다니고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점에서 짐덩어리보다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천성 자체가 불가해하고 종잡을 수 없는 가말라시엘도, 넬루의 존재를 느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군요.
'사도님. 고맙습니다. 적어도 사람 같은 사람을 동행자로 들이셔서 말이죠.'
넬루는 창을 붙잡고 앞서 갑니다. 베스니와 함께 있을 때는 경계를 서고 있을 때여서 그런지 무장이나 장비가 가벼웠는데, 지금은 배낭에 이것저것 싣고 있고, 창 말고도... 날만 짧았다면 도끼라 오해할 정도로 살벌한 마체테를 허리춤에 차고 있습니다. 아무거나 일단 밟고 보던 베스니와는 달리, 넬루는 창으로 의심스러운 것은 쿡쿡 찔러보고, 움직이면 일단 물러섰다가... 위험하지 않은 것이면 그냥 지나가고, 위험한 것이면... 푹! 찔러서 위험하지 않게 만든 다음에 지나가는군요. 그렇게 넬루는 아앨라나의 앞에서 길을 이끄는데, 아앨라나는 깜짝 놀랍니다.
"...잠시 여기서 쉬죠."
여기는 루미나크톤이 대량으로 서식하는 냇가, 베스니가 보고는 환장했던 그 빛나는 신비한 냇가입니다. 베스니, 그 답답한 외지의 음유시인을 끌고는 개고생하며 겨우겨우 온 거리를 넬루, 같은 검은 숲 사람과 함께하니 벌써 주파한 겁니다.
내가 손에 물 안묻히고 산 아가씨 같나? 아가씨 치고는 말괄량이였던 것 같긴 한데. 하지만 험한 일을 겪지 않고 살아온 것은 맞긴 했다. 헬렌은 소녀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계속 누워있기 그래서 몸을 일으켰다. 삭신이 쑤시긴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일어나야 하니까......
“응, 반가워, 페로.”
너무 늦은 통성명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뭔가 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페로가 짜증내며 뒤를 돌아보자 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광부들이다. 병사들과 함께 말이다.
찾아갈 일은 덜었네.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헬렌은 상황을 설명하라는 듯 페로를 바라봤다. 이야기가 잘 안 되면 그때 말을 얹어도 되겠지 생각하면서.
확실합니다. 이 '그슬린' 이단심문관은 이유야 어찌되었건 위겔 교수의 죽음을 원하고, 엘리 같은 제 3자, 그것도 뱀파이어 같이 죄를 뒤집어씌우기 딱 좋은 제3자의 손을 빌린 죽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화상 자국에 눈썹이고 입술이고 남아나지 않았지만, 엘리는 그 씰룩거리는 얼굴에서 분명한 감정을 파악합니다. 엘리가 인간들에게, 특히 일족 영지 바깥의 인간들에게서 익숙하게 느꼈던 감정... 살의입니다. 그슬린 이단심문관과 그처럼 그슬린 부하들이, 엘리의 미약한 이의에서 거절 의사를 읽었는지 그녀를 죽이려고 다가오지만...
땡그르르르.... 펑!
엘리의 발치에 웬 둥그런 깡통이 굴러오고, 깡통이 펑 하고 터지면서 주변을 자욱한 연기로 물들입니다. 괴한들이 콜록거릴 새도 없이, 아니, 엘리의 눈 앞이 연무로 뒤덮일 새도 없이... 눈 앞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납니다. 예마, 류드밀라를 수행하던 인간 하인 중 한 명입니다. 류드밀라는 엘리의 양 어깨를 팍 밀쳐 바닥에 넘어뜨리고는 연무 속에서 철퇴를 좌우로 마구 휘두르며 달려드는 광신도 하나를, 피의 세례를 받은 붉은 눈으로 뒤돌아보고는 칼로 그어버립니다.
"위대한 태양이여!!!!!!!!!"
"이런 씨...!"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옆에서 그슬린 이단심문관이 철퇴로 예마의 머리를 짓뭉개려는데, 이번에는 덩치가 나타나 이단심문관을 밀쳐버리고는 엘리에게 가까이 옵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하수구 뚜껑을 철퇴의 자루 부분을 지렛대 삼아 까서 열더니, 엘리를 그 안으로 끌고 가는군요.
"여기는 우리가 어떻게든 처리하겠습니다! 일단 지하로 숨으십쇼! 어두운 곳은 아가씨의 집이나 다름없잖습니까!"
페로가 뿌리 깊은 수인족, 특히 펠리네 수인족 차별의 설움을 느끼며 뒤로 물러나기가 무섭게 헬렌이 나섭니다. 비록 부상을 입긴 했어도 귀족 아가씨의 기품은 어디 가지 않고, 귀족의 옷은 찢어지고 더러워져도 귀족의 옷입니다. 의류의 재질과 품질에 상관없이 옷 한 벌 한 벌이 매우 귀하고 비싼 이 시대에, 귀한 옷 중에서도 매우 귀한 티가 나는 헬렌의 옷은 로렌스가의 인장과 함께 헬렌의 계급을 드러냅니다. 페로한테는 야옹이를 운운하며 종족 차별을 일삼던 이들이, 헬렌 앞에서는 갑자기 공손해집니다. 경비병들은 투구를 벗어 고개를 숙이고, 광부들은 검댕 묻은 얼굴로 귀족한테 인사를 할 수 없다는 듯 뜨거운 물로 세수를 하려다 얼굴과 손을 한 번에 데입니다.
"뜨아악! 뜨거워!"
"저 머저리들... 아무튼,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광부들과 경비병들은 트리무스히드라를 보고 탄성을 내지릅니다. 어떻게 저걸 죽일 수가 있냐, 역시 정령사는 다른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데 개중에 좋게 말하면 비판적인 사고를 할 줄 알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 없는 광부가 손을 들어 묻습니다.
"어... 그런데 뭘 어쩌다가 은광이 이렇게 됐습니까?"
//코멘터리: 너무 걱정하지 말 것. 상황이 좀 웃기게 되긴 했는데 아무튼 헬렌은 괴물도 조졌고 도적도 조졌으니 여기서 광부나 경비병들이 따진다면 도와줬더니만 보따리 내놓으란 꼴이고, 헬렌은 귀족 신분임. 그게 아니더라도 암허슈트나 로지 둘 중 하나가 이 상황에서 또 도움을 줄 수 있음.
그러한 일이 되었기에 저는 닐루, 그녀와 함께 어촌을 나와서 돌아가는 길을 함께 하게 되었어요
"닐루 씨는 마음에 드시나요? 그녀가 먼저 나선 것이고 제가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가말라시엘 님의 그런 말에 저는 그렇게 물어보며 말했어요. 베스니가 확실히 나쁜면도 좀 있었지만 그래도 비교하기에 공평한 것은 아니었어요. 장인과 초보자를 두고 보면 당연하게도 초보자가 못 미덥다고 들 수밖에요. 닐루는 오랫동안 어촌을 지키는 일을 해왔던 것 같았어요. 그래도 베스니와는 나쁜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들 속에서 지나쳐 버렸던 새로운 일면을 볼 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얼마 되지 않아서도 곁에서 함께하면서 그녀의 모습과 행동을 보면 그녀의 실력이 크게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베스니가 영 못마땅해 보였던 것 같은 가말라시엘 님이 보기에 이정도가 된다면 그 대비가 확연히 날 수 밖에 없었겠지요
"좋아요, 그렇게해요"
저는 그녀의 그 말에 그리 대답하면서도 고개를 조금씩 움직여 주변을 살펴보았어요. 그것은 베스니와 여정과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저에게 제대로 실감을 하게 해주었어요. 하루가 채 되지 않아서 저희는 벌써 어촌에 방문하기 전에 마주했던 물가에 다시 그 발을 딛게 되었으니까요
>>673 '훨씬 마음에 들죠. 적어도 할 줄 아는 건 없으면서 떠드는 일은 없지 않습니까?'
가말라시엘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뭐, 가말라시엘이 마음에 들어한 아앨라나와 비교해보면 베스니는 상극이긴 합니다. 아앨라나가 완전 과묵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앨라나가 가말라시엘에게 말하던 모든 것들은 검은 숲에 관한 것 같이 그녀 자신이 아주 잘 아는 것이었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고 말을 아끼는 좋은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하지만 베스니는? 아는 것은 따발총처럼 미친듯이 말하고, 모르는 것은 지어내서라도 아는 척하고, 진짜 모르는 것은 알 때까지 알려달라고 아주 미친 듯이 달려들었죠. 가말라시엘과는 상극일 법도 합니다. 가말라시엘이 한쪽 다리를 말다리로 바꾼 것도 엿먹어 보라고 그런 것일 텐데, 그걸 신기하다고 좋아한 시점에서 붙을 수도 있었던 정나미까지 뚝 떨어졌겠죠.
아무튼 넬루는 창을 등에 걸고, 마체테로 주변의 억센 풀들을 내리칩니다. 그리고 나무들 사이에 마체테로 꺾은 굵은 나뭇가지들을 침대 기둥 삼아 붙이고 억센 풀을 밧줄 삼아 엮은 다음, 그 사이에 풀들을 밧줄처럼 단단히 묶어서 임시 침대를 만듭니다. 넬루는 그걸 보여주면서 말합니다.
"오늘 밤은 벌레 걱정 없을 거에요. 마녀님의 제자니까 벌레를 쫓는 마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아니거든요." //
헬렌은 이런 대접이 익숙하다. 자신이 영시 내에서 어떤 사고를 치든 간에 영지민들은 공손하게 헬렌을 대했다. 그야 귀족이니까. 물론 영주인 백작이 한숨을 쉬며 배상을 하곤 했지만 말이다. 어느정도 합리적인 법률이 있는 로렌스가 임에도 계층이란 자연스럽게 존재했고 헬렌은 기득권층이었다.
“트리무스히드라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황과 지하수를 이용해 폭발을 일으켰어요. 원래 위험성이 있는 광산이더군요. 채굴 중에 일어났다면 큰 인명 피해가 났을 텐데 다행이네요. 지금도 추가적인 폭발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하길 바라요.”
힐긋 머리가 수박처럼 깨진 도적들을 바라봤다가 싱긋 웃는다. 겉으로는 웃는 모습이지만 심기가 영 좋지 않다는 것을 앞에 있는 이들이 모두 알 것이리라. 물론 채굴중에 이러한 폭발이 일어날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그냥 하는 말이다.
“저는 이만 치료를 받고 쉬어야 하니 뒷처리를 부탁하죠. 도적 잔당의 처리, 트리무스히드라의 사체 처리, 이 사건의 전말 등 모두 보고받고자 하니 허투루 처리할 생각 말고 꼼꼼히 임해주시길.”
도둑질을 한다고 손목을 자르는 동네이니 그냥 놔두다가 이상하게 처리가 될까 당부한 것이었다. 헬렌은 이만 은광을 나와 여관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피곤해......
광부와 경비병들은 상당히 떨떠름한 반응을 보입니다. 만약 헬렌이 일반적인 용병이거나 하급 귀족이었다면, 당장 "우리가 괴물을 쫓아내랬지 은광을 재난현장으로 만들랬냐"고 항의했을 게 뻔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들이 사는 사회는 태어날 때부터 씨가 다른 신분제 사회고, 헬렌은 백작인 것을. 그리고, 헬렌도 할 말은 많습니다. 어차피 유황 냄새가 자욱하던 것으로 보아 언제 어떻게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헬렌이 자기랑 페로만 들어가 있을때 터뜨린 덕분에 은광에서 수십명의 광부들이 통째로 폭살당하거나 매몰당하는 사태를 피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헬렌은 피곤한 몸을 질질 끌고... 여관으로 돌아갑니다.
"에구. 급사야! 여기 아가씨 짐 좀 들어드리고 그래라!"
여관 주인은 헬렌의 상태를 보더니 여급을 부릅니다. 여급들 중에서 제일 어려보이는 소녀가 달려오더니, 헬렌을 부축하고는 그녀에게 배정된 방으로 데려가고는, 헬렌이 원래 입고 있던 옷에 비하면 훨씬 못하지만, 헬렌이 지금까지 보았던 사람들이 입던 옷들보다는 확실히 나은 단정한 옷 한 벌을 보여주면서 말합니다.
"조금 허름할 수도 있지만... 저희 여관에서 빌려드릴 수 있는 최고의 여벌옷입니다. 일단 목욕재개...재계? 를 하시는 동안, 입고 계신 옷을 세탁해드릴까요?"
잭은 크론의 속임수를 마주치지만, 그렇게 놀란 느낌은 아닙니다. 잭 리거는 오히려 그러길 바랬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짓더니 뒤로 몇 걸음 물러나고, 크론이 자신의 안쪽으로 달려들자 달려들게 내버려둡니다. 그리고, 크론이 예상했던 대로, 잭은 노련하게 그 공격을 흘려냈습니다. 크론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기도 전에, 잭은 크론이 안쪽으로 돌진하며 내지른 칼을 검으로 툭 내친 것만으로 궤적을 틀어버리고, 발을 걸어 크론이 공터를 구르게 만듭니다. 몇 바퀴를 구른 크론의 목젖에 잭의 칼끝이 들어서고, 잭은 크론에게 충고합니다.
"나머지는 마검학 시간에 배울 테니, 일단 중요한 거 두가지만 알려드리죠. 첫째, 동작이 너무 커요. 검술의 기본은 수 싸움이고, 상대방의 수를 읽어내거나 내 수를 속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숨겨야 하는데... 그러게 대놓고 수를 보여주면 최악이죠. 둘째, 힘이 너무 들어갔어요. 힘이 너무 들어갔는데 정교하지가 않으면, 이렇게 상대가 조금만 변칙적으로 대응해도 완전히 넘어지니까요."
...라고 말하면서, 잭은 크론을 일으켜줍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웃는군요.
"그나저나, 크론 씨. 꽤나 난놈입니다? 어느 파벌을 편들고 싶진 않은데, 흑색 파벌에서 진짜 좋아하겠어요. 뭐 농담이고... 잘 해보세요."
@@>>678 헬렌은 떨떠름한 사람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피곤한 몸을 질질 끌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어린 여급 소녀의 시중을 익숙하게 받으며 헬렌은 방으로 들어갔다.
“응, 부탁할게. 그리고 내가 씻고 나오면 바로 치료를 할 수 있게 의사나 치료사를 불러줘.”
곰팡이들이 응급처치를 해주었다지만 확실히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씻고 치료를 받고 나면 한숨 자야지. 몸이 아프고 피로한 것도 그렇지만 머리가 더이상 무리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다. 멍한 느낌. 그러고보니 페로하고 제대로 인사를 못하고 왔는데. 광부들한테 마차값은 받았으려나. 못 받았을지도.......
>>681 크론이 아카데미로 보이는 건물을 찾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역참은 모든 게 잘못되고 거지같은 국경에서 그나마 건물같은 건물을 보고 대충 저게 역참이겠거니 했는데 정말로 역참이었죠. 여기서도, 당연히 어려보이는 학생들이 졸졸 몰려가는데다가 엄청 커보이는 곳이 상식적으로 아카데미 입학처겠죠. 그리고 크론의 직감은 맞아떨어져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입학 수속을 밟으러 오라고 외치는 직원들의 목소리와, 이리저리 안내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그러고보니, 헤르타 선배는 어디에 있대?"
"아마 위데르 언니랑 같은 기숙사 쓸 걸? 그나저나 여기 말이지..."
...크론은 문득, 수많은 이들 사이에서 혼자라는 생각에 빠집니다. 이 많고 많은 이들 중에, 크론처럼 특별한 일행 없이 혼자 다니는 이는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누구는 이미 아카데미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누구는 동향 사람을 만났다며 벌써 입학 수속을 다 마치고 술 먹을 계획까지 세웠고, 그게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두런두런 이야기 정도는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크론은... 뭐...
솔직히 생각해보면 그랬습니다. 크론의 삶에 친구라는 건 없었습니다. 부끄러울 일은 절대 아닙니다. 친구 없는 게 욕인 건 이곳에서나 그렇지, '크론'이 원래 살던 지옥 같은 곳에서, 친구는 '이상할 정도로 배신을 안 하는 놈' 정도의 뜻이었으니까요. 필요하다면 지금부터 만들면 될 일입니다. 바로 이곳, 아카데미에서 말입니다.
입학 수속은 크론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간단했습니다. 오히려 경비병한테 입학증을 내미는 게 더 어려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크론은 기숙사 열쇠와 입학시험 일정이 적힌 종이를 받은 후 돌아섭니다. 입학 시험은 다음날이니, 일단은 다른 일부터 신경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크론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여러 정보를 알게 됩니다.
일단 크론이 당장 가볼 수 있는 건 마법용품점이나 식당들 따위가 몰린 상점가, 크론의 방도 있을 기숙사, 그리고 지금 당장은 문도 안 열렸겠지만 각 대학의 학부들, 독립 동아리 홍보회가 열리고 있는 광장 정도가 있겠군요. 가까이에는... 할 일이 없는지, 가만히 학생들 몇몇이 앉아있는 분수가 보입니다. 아까 전에는 보이지 않던 크론과 비슷한 외톨이입니다. 어떤 마녀 모자를 쓴 여자는 크론이 보기에도 친구가 없을 법한 행색이고, 한 소녀는 마치 북극의 빙산이 자아를 얻은 것처럼 희고 푸른 머리칼과 흰 살결을 가진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녹아가는 북극곰 한 마리와 함께 앉아있고, 어떤 남자는 생긴 건 멀쩡하다 못해 멋진데 허공에 대고 알아들을 수 없는 지리멸렬한 단어를 마구 쏟아붓고 있군요....
>>682 고기도 씹어본 사람이 잘 알고, 시중도 받아본 사람이 잘 압니다. 헬렌 같이 백작가 영애씩이나 되어서 격식 따위 집어치우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시중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 더 피곤해집니다. 왜냐고요? 어디까지고 선이고 어디까지고 무례인지가 더 모호해져서 모시는 게 더 고역이거든요. 역사적으로, 수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격식 없는 이미지를 표방하던 모든 왕족과 귀족 중에 실제 문자 그대로 격식 없는 아랫것을 참아준 이들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이건 오히려 헬렌이 배려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헬렌은 방 안에 딸린 욕실로 들어갑니다. 욕실에는 뜨거운 물이 받아진 욕조가 있고, 물이 뜨겁거나 차가우면 당기라고 걸어놓은 밧줄이 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기계 장치는 아니고 아마 당기면 급사가 있는 다른 방에 연결된 종이 울리면서 차가운 물을 흘리거나 더운 물을 호스에 붓는 정도겠지만, 그래도 이 여관에서 가장 좋은 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헬렌은 귀족 작위와 지불한 방값에 걸맞은 당연한 호의를 누리면서 몸을 씻어내고, 몸에 달라붙은 페실린 곰팡이들을 비누로 닦아내자 그새 딱지가 앉은 것을 발견합니다.
아무튼 헬렌은 목욕을 끝마치고 상쾌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치료사나 의사가 아니라 여급이 우물쭈물하며 서 있군요.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지금 의사들은 전부 은광 복구 작업에 나가서 대기중이고, 약초사들은 영주님 댁에 조산사 일을 보러 갔다고..."
...라고 말하는데, 뒤에서 누가 문을 두들기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군요.
"나도 약초사 겸 외과의사 겸 이발사인데."
쫑긋쫑긋한 귀에 이곳저곳 두들겨맞은 흔적, 아까 전까지만 해도 함께 목숨걸고 싸운 페로입니다. 능력 좋은 도적에 약초사 겸 의사라니, 설정 과잉이군요.
저의 물음에 가말라시엘 님은 그렇게 대답해주었고 저는 그것에 긍정하고는 그렇게 말했어요. 지금 함께 하는 넬루와 날리, 여러가지 의미에서 베스니는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 였어요. 넬루가 숲의 역사에 속하는 사람이기에 더 뛰어나다는 것도 있으니 차이는 클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에 비하면 저로서는 베스니에 대해서 그렇게 평가가 심하지는 않았어요. 말하자면, 장점과 단점의 차이가 확연한 사람 이였고 좋게 볼 수 있는 면모도 있었다. 정도의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람의 성격과 그로 인한 행동은 저마다 다르고 다양하겠지요. 이렇게 경험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에요
"그렇네요,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넬루 씨가 보여주는 것 또한 좋은 기술이시고 이는 멋져요"
그리고 저는 그녀가 즉석에서 초목으로 엮어내 만들어낸 좋아 보이는 잠자리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완성 되었을때 저는 손바닥을 살짝 몸에 가까이 가져대면서 손뼉을 치는 시늉을 해 보이며 그와 함께 눈웃음을 한번 지어 보이고는 그렇게 말했어요
@@>>684 헬렌은 집을 나오면서 여러 불편을 감수하겠다고 생각하며 나왔으나 그래도 역시 몸에 익은 호사를 마다할 이유도 없고 누릴 수 있으면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서 등불을 바꿔가며 지원해준 돈을 언제까지고 펑펑 쓸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돈을 벌긴 해야했다. 헬렌은 몸을 씻으면서 백과사전 정령에게 묻는다.
‘트리무스히드라의 사체 중에 팔아서 돈이 될만한 게 있을까?’
생각따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그래도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모양이었다.
몸을 씻고 나오자 여급이 우물쭈물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런 사정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나저나 영주님 댁에 조산사 일을 갔다는 것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여기 영주가 누구시지?’
본래 잠깐 들렀다가 지나갈 곳이어서 딱히 영주와 같은 이들을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오늘 거한 사고를 치기도 했으니 인사를 한 번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임산부가 있다고 하니 남동생을 출산 후 일어나지 못하고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 남일 같지 않다.
그나저나 치료는 어떡하지? 그냥 자야하나, 생각하던 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페로다!
“페로! 난 네가 쉬러 갔거나 마을을 떠났으려나 했는데! 얼른 들어와.”
헬렌은 여급을 내보내고 페로를 방 안으로 들였다. 방 안에 비치되어 있는 테이블과 의자에 자리를 권하곤 헬렌도 마주 앉는다.
>>688 "이제 곧 떠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아가씨 싸우는 걸 보니, 생각이 좀 바뀌어서."
페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안으로 들어와서는, 능숙하게 헬렌의 상처를 위아래로 눈으로 슥 훑습니다. 굳이 손볼 필요도 없는 가벼운 부상부터 연고 좀 바르면 될 부상, 그리고 부목 정도는 대 줘야 할 부상까지 대충 견적을 확인하던 페로는 스스럼없이 가까이 다가오고, 페로의 펠리네 수인 특유의 세로 동공이 가까이에서 헬른의 몸을 훑고, 고양이 귀가 쫑긋거리면서 헬렌의 몸에서 부상을 발견할 때마다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 반응하는 게 눈에 띕니다. 페로는 헬렌 그녀 자신도 목욕하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부상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적절한 처방들을 제시합니다.
"어디보자. 이 정도 상처들은 아마 별 일 없이 나을 거에요. 이 찰과상은 좀 크긴 한데... 아마 흉터만 좀 남고 끝날 거고, 흉터 남는 거 싫으면 독한 술로 한번 상처 씻은 다음에 돼지 기름이건 소 기름이건 동물 기름을 잘 정제한 걸 바르고 그 위에 붕대를 덮으면 될 거에요. 그리고... 에구, 이 정도면 뼈가 금 갔을 텐데."
쯧쯧, 페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힐끔 헬렌을 쳐다봤다가 제 양 뺨을 짝짝 칩니다.
"아유, 내 정신 좀 봐. 그렇게 큰 돈자루를 생각없이 끌고 다니는 귀족 아가씨한테 그깟 치료비가 없을까... 조금만 기다려봐요. 부목 가지고 와도 될까요?"
헬렌은 이야기를 하려고 들여보낸 건데, 페로는 이야기고 뭐고 일단 치료부터 하려는 것 같군요.
넬루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다시 창을 꺼내듭니다. 그리고 부우우우ㅡ 하는 소리와 함께 옆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 숲 특산의 사람 머리통만한 말벌을 푹 찔러서 바닥에 꽂아버린 다음, 마체테를 꺼내 여러번 내리쳐 으깨 버리는군요. 마치 잡초를 베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살벌한 맹수의 숨통을 끊어버린 넬루는 아앨라나에게 먼저 잘 것을 권합니다.
"먼저 주무시죠. 저는 뭐... 맨날 하는 게 이거라서, 아마 다섯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에요."
확실히, 걸어다니는 짐짝과 다닐 때보다 훨씬 편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앨라나가 베스니와 함께 있을 때도 경보 마법을 걸어두긴 했지만, 지금은 경보 마법에 더해 한 사람이 계속 깨어서 감시한다면 자다가 칼 맞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마법이라는 것 자체가 타고난 능력에 영향 받는 경향이 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저도 올바른 배움이 없다면 제대로 실현할 수 없었겠지요"
그녀가 하는 말에 저는 담백한 느낌으로 두 눈을 반쯤 감으며 말했어요. 마법이라는 것은 마력을 통해 세상 그 자체가 정한 규칙을 타협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이 불꽃을 피워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을 다르게 할 수 있어요. 마녀 님이 거둬 주시지 않았다면 저의 이런 재능을 제대로 살릴 수 없었을 거에요. 마녀 님이 저에게 뛰어난 재능이라고 하시면서 마법을 배우고 성공적으로 실천했을 때 제가 해낸 결과와 칭찬 받은 것에 정말 기뻤답니다
"또 한 번 훌륭한 솜씨이었어요"
그러다가 저에게 어떤 소리를 들려오는 듯하더니 그와 함께 그녀가 창을 들고는 보이는 것은 어느새 곁에 다가오던 보통 숲 큰벌 이라고 이름지어 부르던 위험한 생물이었어요. 그것은 그녀의 재빠른 공격에 짓이겨지는 것이 아니던가요? 저런 위험한 생물을 이렇게 능숙히 제압하는 것을 그 앞에서 보았던 저는 그녀에 대해서 갈수록 크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는 살짝 움츠리고 있었다가 이번에도 눈웃음 지으며 그녀에게 칭찬하며 말했어요
믿음직한 경비병과 믿음직한 지팡이(?)의 가호 아래, 아앨라나는 잠에 듭니다. 그녀의 등허리가 임시 침대에 뉘이는데, 억센 갈대를 대충 엮어 만든 것치고는, 아니, '것치고는' 이 아니라 그냥 다른 침대나 해먹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꽤나 잘 만들어졌습니다. 중간에 막대기를 적절한 곳에 잘 엮은 덕분에 아앨라나의 체중을 잘 지탱하고 있습니다. 아앨라나는 어두워지ㅕㅁ 점점 나타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다가 스르르 잠에 들고... 찌르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소리,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잎 소리는 그녀를 위한 자장가가 됩니다. 그리고...
"...아앨라나 님, 아앨라나 님. 교대할 수 있을까요."
외부의 시계 기준으로 말하자면 새벽 4시쯤, 슬슬 날이 밝아질락 말락 하던 시간대쯤에 넬루가 아앨라나를 깨우며 말합니다.
처음 보는 건물들 투성이여도 뻔한 구석도 있군. 결국 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몰려가는 있어보이는 건물. 그 이상 가는 아카데미 설명이 있을까?
그렇게 진입한 아카데미 속 풍경은 위기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아무래도..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인지 이미 연이 있어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자신은 홀로 아무 연고도 배경도 없으니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하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런 걱정을 하던 와중에 어찌된 일인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입학 수속은 끝나버렸다. 그래..이게 열쇠고 이게 일정..아무튼 내일이라 이거지.
그렇게 복잡한 머리로 이제 어디를 향해야 하는 생각하던 나의 눈에 동류..라고 하기에는 과하겠다만 외톨이들이 보였다.
어째 저렇게 약속이라도 한듯 분수에 모여 앉아서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있는지. 그들 사이에 있으면 '크론'은 아무 개성도 없.. 응? 아 그래.
그렇게 '크론'은 그 외톨이들에게 향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으로, 괴짜를 숨기려면 괴짜들 속으로. 무엇보다 아직 적절한 '크론'의 설정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니.. 저 외톨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 설정이 '크론'에 붙어야 아무 연고도 배경도 없이 아카데미에서 외톨이로라도 지낼 수 있을지 감이 잡힐 것 같았다.
저는 그렇게 그녀의 배려에 감사히 여기며 그녀가 만들어 준 잠자리를 제대로 즐겼어요. 자연은 매번 많은 은혜를 내려 주지만 그것으로 무언가를 실제로 하기 위해서는 그 나름대로의 방법을 터득해야해요 그녀는 이것을 잘 알고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고 저는 보았어요. 그렇게 저는 편안하게 풀에 안겨서 하늘을 덮어서는 잠에 빠져들었어요
"그럼요, 이제 제가 해야 할 차례에요"
그리고는 그녀가 말했던 시간이 되었을까요? 저는 그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잠에서 깨어났어요. 저는 눈가를 비비면서 자리에서 숲의 사이에 스며들어 비추는 빛들을 알아보고 일어나 그녀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어요
"넬루 씨가 저를 지켜주신 것처럼, 이번에는 제가 지켜드릴게요. 그러니 좀 더 주무시는 것은 어떠세요?"
제가 지금까지 그녀가 저에게 보여준 것처럼 한눈에 잘 보이는 성과를 내보이며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것이라면 저도 해볼 수 있겠지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못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좋은 것은 아무런 일도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제안해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