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갑작스러운 비명에 가까운 외침과 가말라시엘 님의 이어지는 말, 그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이것이였나봐요. 그리고 살해라는 행동을 해야하는 이유. 결국, 그래야만 한다면 그 이유와 목적만큼은 제대로 알고 행동하는 것이 좋을거에요. 그 사람은 아마도 마법을 사용했을거에요. 이것이라면 제가 바로 행동했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혹은 이점을 얻거나요
"대지에 속하는 초목들이시어 제게 힘을 빌려주세요"
거대한 크기로 화한 그 사람, 이제 그대고 괴인이라고 칭해도 충분할, 그 존재는 저를 내려다보았어요. 그 존재는 명백히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 같았았어요
그래서 저는 곧바로 들고 있었던 지팡이를 세워 그 끝부분을 그대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어요. 숲에서 할 수 있는 것중에 커다란 존재를 상대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어요. 대지로부터 억세고 굵은 뿌리와, 줄기들이 무수히 솟아올라 뱀과 같이 그 다리와 몸을 옭아매어 헛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거에요
>>4 뭐가 걸어나오는 것인지 확인하려던 이들은, 정말로 익숙한 형체를 마주합니다. 익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목줄을 쥔 괴물놈이 철퇴로 무릎을 부숴 주저앉히고 은검으로 찌른 다음, 마무리로 머리통을 터뜨리고, 혹시 몰라 그 경비들이 창대를 꽂아 못 일어나게 제압했던 그 년이니까요. 그런데 그 년이 멀쩡히 살아서 걸어나오더니, 갑자기 자기가 '사제'라면서 길을 열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경비병들이지만, 그들을 지배한 종양에게도, 최소한의 판단력만 남은 그들에게도 정말로 당황스럽고 이상한 상황인지 한참 동안 엘리를 쳐다봅니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피더니 엘리에게 창을 들고 다가오는군요. 그리고 다른 한 명이 임시 기록보관소에서 나오더니, 다른 경비병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다른 이들을 데려오지."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건 간에 빨리 실행하는 게 좋겠군요. 이 지하에 있을 경비병 수십명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종양을 다 터뜨려주면서, 또 그 흉갑 청년 괴물딱지도 거기서 한번에 죽일 생각이 아닌 이상 말입니다.
>>5 검은 숲뿐만 아니라 모든 숲은 수많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주 처음, 아주 처음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식물들이 제 주기대로 자랐다 시들고, 수많은 동물들이 제 순리를 지키며 살다 간 기억을. 그리고 검은 숲은 가려진 햇빛 때문에 만들어진 어둠 속에 수많은 기억을 창고처럼 쌓아놓았고, 그 기억들이 모이고 얽히고 붙으며 만들어진 힘은, '적절하게' 끌어낼 수 있는 이에게 기적과도 같은 힘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아앨라나는, 적어도 이 검은 숲의 은총을 이용하는 분야의 실력만큼은 '적절' 그 이상입니다. 아앨라나가 눈을 감으면, 그 괴물의 발 아래에 엮인 수많은 생명의 줄기들이, 땅에 박힌 수만의 덩굴손들이 보입니다. 그 덩굴손 사이를 흐르는 힘을 지팡이를 이용해 끌어내고, 이번만큼은 가말라시엘 님의 도움 따위 필요 없습니다. 조용히, 아앨라나는 숲에게 말을 겁니다.
'아 퀘냐 야 웨... 아 베나 야 베....'
괴물로 변한 사내가 주먹을 들고, 베스니가 화들짝 놀라 뒤로 엎어집니다. 하지만, 괴물의 주먹이 아앨라나의 머리를 내려치기도 전에, 갑자기 땅에서 굵은 뿌리들이 마치 괴물의 손처럼 튀어나오더니 거인의 팔다리를 붙잡고 얽어맵니다. 거인이 뿌리 하나를 힘으로 뜯어내면 두 개가 붙고, 그 두 개를 억지로 뿌리치니 네 개가 붙습니다. 괴물은 마구 비명을 지릅니다. 정확히는, 팔다리가 전부 엮이고 목까지 덩굴에 졸려서 아앨라나가 신호하는 순간 그대로 목이 부서지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비명을 지르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아아아아아악!!!!"
"으악, 내 귀!"
베스니가 귀를 잡고 벌벌 떨지만, 아앨라나가 눈을 뜨면 완전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가말라시엘은 묶인 이를 보고 낄낄 비웃으면서 말합니다.
"제가 방법 상관 말고 죽이라고는 했지만, 사도님이 이런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죽일지는 몰랐습니다. 아마 저 상태 그대로 있으면 온갖 날짐승과 숲짐승이 뜯어먹을 것이고, 설령 그리 되지 않더라도 차라리 잡아먹히는 게 나을 정도로 끔찍한 기아와 갈증 속에서 죽어갈 테니까요!"
저의 부탁에 대지와 숲은 응하여 주었고 제 앞의 괴인을 처단하는데 도움을 주었어요. 그 덕분에 크게 어렵지 않게 상황을 마무리하게 될 수 있었어요. 초목은 저의 부탁에 따라 행하였으니 그에 맞게 양분이 될 것으로서 주어서 저는 회답할 거에요
"변변치 않을 것이 겠지만 숲은 가리지 않니하며 숲과 품어주고 있는 이들의 허기를 달래줄 수 있을 거에요. 크기가 되는 만큼 그리하게 된다면 많은 이들의 양식으로서 사용될 수 있겠네요"
저는 가말리시엘 님의 말에 담담하게 그 괴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숲에 생식하는 이들이나 굶주림이 몸이 치고 쇠하거나 어떠하든 결과가 죽음이라면, 그것은 저희를 유인하여 해하려 했으니까요. 다른 이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것처럼 저도 그리하는 거에요.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만큼 양분이 되도록 주는 것도 좋을 것이겠지요
대지와 숲은 많은 것들을 배풀어주어요. 그리고 생명이 떠나가 남겨진 육신은 숲의 몫으로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에요. 그 위에 아래에서 썩어 흙으로 돌아갔을때 그로 하여금 숲에서는 새로운 생명을 피어내는 순환을 달성하겠지요
"자, 이제 해야 될 일을 하고서 다시 길을 가볼까요? 한 번 심호흡하며 심신을 가다듬고서요"
저는 천천히 괴인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다가 이내 베스니에게 한번 그 시선을 향하고는 말하였어요. 다시금 호수를 향한 여정에 오르기 위해서, 지금 상황을 가볍게 점검하고 떠나가야 겠지요
>>10 어차피 아까 전에도 문제가 된 건 그놈이었지 나머지는 솔직히 말해 걸리적거리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걸리적거리는 놈들이 진짜 위협과는 동떨어져 있는 상태면 뭐, 승리는 확실합니다. 어차피 붉은 옷이라 핏물 좀 먹는다고 더 빨개질것도 없으니 엘리는 몸을 아래로 미끄러뜨려 그들의 다리 사이로 통과하고는, 뒤돌아서려는 그들의 팔을 붙잡고 벌떡 일어나 종양들을 할퀴어 찢어버립니다.
"끄아읅!"
예의 그 시체끌이 경비들처럼 이 경비병들도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는데, 그걸 본 다른 이를 부른다던 경비병이 투구를 눌러써 뒷목을 가리고는 뛰기 시작합니다! 엘리의 민첩이라면 쫓아가서 바로 소리없이 죽일 수 있지만, 제압하려 한다면 뒷목의 종양이 가려진 만큼 제압과정에서 소리를 죽이는데 실패할 확률이 있습니다. 아니면 누구를 불러오건 그냥 가게 내버려두는 수도 있고요. 엘리는 어떻게 합니까?
상황을 파악한 베스니가 아앨라나의 눈치를 살피다가 품에서 작은 활을 꺼냅니다. 검은 숲에서는 어린애들도 안 쓸 정도로 작아서 토끼나 잡으면 딱 맞을 활이지만, 그래도 활은 활이고,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베스니는 시위에 화살을 먹이고 당겨서, 벌벌 떨리는 끝을 괴물화된 광인의 눈구멍에 대더니 활시위를 놓습니다
퍽!
힘줄의 반탄력이 화살의 속도와 날카로운 촉이 되어 부드러운 눈, 그 눈 너머 눈과 연결된 머릿속에 꽂힙니다. 베스니는 휴우! 한숨을 쉬고 나서 활을 품속에 넣고 아앨라나를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베스니는 아앨라나에게 묻습니다.
>>15 쓰러지는 경비병들의 어깨를 밟고 날아오른 엘리는 경비의 뒷모습을 눈에 담습니다. 엘리는 그 경비병의 머리를 감싸안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버리고, 제아무리 경비병이 강하다 해도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 성인 여성의 체중을 쉬이 떨쳐낼 재간은 없어 그대로 쓰러집니다. 그래도 종양에 세뇌당해서 어떻게든 엘리를 떼어내거나 비명을 지르려고 악을 쓰는데, 엘리는 바로 그 머리를 투구째로 바닥의 피웅덩이에 처박습니다. 자기 자신을 배신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죽을 수도 없으니 꺼낸 기발한 절충안이 실행되자 투구 사이로 피거품이 부글부글 끓어나오다가 이내 멈춥니다. 엘리는 투구를 벗겨 종양을 뜯어내는데 성공합니다.
"쿨럭!"
자기 신경계를 지배하던 무언가가 강제로 적출되는 충격에 물 먹은 폐로 물기침을 쏟고는 다른 경비들과 함께 이 기이한 광경을 보고 얼굴이 질립니다.
"이 무슨 미친..."
그 와중, 쩔껑거리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옵니다! 발각된 모양입니다. 경비들은 뭔 일이 일어난 거냐고 혼란스러워하는군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들도 엘리를 기억하고 있단 겁니다.
저는 그녀가 괴인의 머리, 그 눈을 화살로 꿰뚫는 것을 흘깃 바라보고는 그렇게 말했어요. 방금 그녀의 모습은 엉성해 보일 수 있겠지만 눈이라는 표적을 한번에 명중시켰어요. 그리고 괴인은 여전히 그 이후로도 침묵을 지키고 있어요.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알겠어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음으로서 후환이 될 일로 만들지 않으라는 말이시지요? 이전에 제가 그러했듯이"
"죽음은 언젠가 그것에게 방문할 것이지만 그것에게 이른 시일에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 안식을 준다면 제가 이를 행해야 하나요?"
그녀가 외말에 걸음걸이를 멈추고는 뒤돌아 보아서는 담담히 말했어요. 저의 그러한 말에 그녀가 무엇이라고 대답해줄지 기다렸어요
무엇이 어떻게 한때 사람이였을, 지금은 흉물이라 칭해도 과함이 없는 것이 되도록 했나요? 아마도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그저 흉물이라 칭해질 것이라 그러한 것만은 아니에요. 가말라시엘 님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저는 선뜻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게 기회를 먼저 내밀었어요. 하지만 그 기회를 내친 것은 그것이지요. 하지만, 안식을 주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아주 못할 것도 없을거에요. 목이 부러졌는데도 크게 쇠약해졌을 지언정 여전히 숨이 붙어있는 괴물이라면... 그 심장을 완전히 끊어내는 것으로 할 수 있을까요?
엘리는 정신을 차린 경비병들을 뒤에 내버려둔 채 어둠 속에 숨어버립니다. 엘리가 높은 매력에 더해 지능까지 뛰어났다면 이 말도 안 되는 막장 상황을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설명시키고 그들이 해야 할 일도 가르쳐줄 수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시체 썩은내가 가득한 곳에 남겨져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벌벌 떨면서 서로를 붙들고 바들바들 떱니다. 그리고 동료들이 보이는군요. 무슨 이상한 기생체인지 종양인지에 지배당해 표정을 잃어버린 동료들 말입니다.
"어이, 너희들...!"
그 동료들은 '지배'에서 풀려난 이들을 보더니 바로 무기를 겨누고 다가가고, 어둠 속에서 엘리는 그들의 뒤에 착지하더니 그들의 뒷목을 할퀴어 전부 쓰러뜨립니다. 그 광경을 본 경비병들은 엘리가 또다시 숨기 전 그녀를 확 붙잡더니 묻습니다.
>>18 "아뇨. 그냥... 화살을 바로 과녁 앞에 대고 쏘는 건 간단하잖아요. 그리고 저는 후환이 두렵다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베스니는 아앨라나를 따라가면서 그녀가 내놓은 두번째 선택지를 긍정합니다. 다리가 부러져서 뼈가 드러날 정도로 끔찍한 부상을 다른 곳도 아니고 숲 속에서 입고 죽어가던 사람이라 그런지, 저렇게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로 꽁꽁 묶여서 숲속에 버려지는 건 못 보겠다는 게 베스니가 하는 이야기의 골자 같습니다.
"아앨라나 님의 마법은 분명 대단할 테니까, 아마 저게 죽을 때까지... 아니, 저게 썩어 바스라질 떄까지도 계속 붙들고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싶어서요. 저 미친 사람이 우리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고통스럽게 천천히 죽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말하자, 가말리세을이 담긴 지팡이에서 아앨라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21 엘리가 경비병들을 공격해서 종양을 떼어내는 게 반복되던 도중, 누군가 엘리의 이야기에도 도망치길 거부합니다.
"아뇨, 기억이... 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게..."
이 친구는 아무래도 경비대 본부 지하가 이 모양이 될 때쯤 세뇌된 모양입니다. 지하에서 썩은내가 나는데도 지하수로 연결 공사가 좀 잘못되어서 그런 거라고 둘러대고, 그러면서도 절대 내려가지 말라길래 좀 이상해서 내려갔다가 이 참상을 보고 그 이후로 기억이 끊겼다는 겁니다. 그는 엘리에게 말합니다.
"사실 저도 좀 이상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헛소리라 무시했는데, 자꾸 실종자가 발생하고..."
그러다가 옆에서 또다른 세뇌된 경비병이 엘리한테 달려들었다가 뒷목이 뜯겨서 정신을 차리는 꼴을 보고는, 엘리에게 다가가 묻습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군요.
"...분명 여기 뭔가 중요한 게 있어서 여기서 그러고 계신 거겠죠. 그런데 지금... 제정신 아닌 애들이 자꾸 와서 방해하는 모양이고요... 뭘 찾는 겁니까. 우리가 당신처럼 싸우진 못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일한게 몇 년인데 당신보다는 더 잘 찾을 거에요."
...아무래도, 의심 많고 따지기 좋아하는, 치안 인력 기준으로는 '유능한' 놈들만 세뇌시킨 모양입니다. 엘리는 어떻게 대답하나요?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고 지휘하던 경비대 본부가 사실은 그 지하수로 미친놈들과 한 패거나 더 심한 무언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일 법도 하지만, 경비대 본부 지하가 시체 썩은내가 나는 이런 핏빛 지옥이 됐다는 사실이 이미 충격으로 그들의 상식을 깨부쉈는지, 엘리의 요구에도 한번도 되묻지 않고 감옥을 개조한 서류보관소로 들어가서 서류를 쏟아내고 마구 찾아대기 시작합니다. 서류 보관소가 넓은 건 아니기에 몇몇 경비들은 나가서 다른 이들을 불러오려고 하다가...
"으, 으아아아악!!!"
"크르륽,, 크그으으윽!!!"
...구울에게 찢겨 버립니다. 구울들은 분노에 찬 듯 경비병들을 마구 찢어발기다가 엘리와 눈이 마주치자, 찢어발긴 경비의 머리통을 벽에 던져버리고 엘리를 노려보기 시작합니다.
>>26 구울은 엘리에게 달려들지만, 본능에 미쳐 날뛰는 놈들의 맹렬함은 인간들에게나 치명적이지 뱀파이어인 그녀에게는 그저 광견병 걸린 발발이 새끼의 발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게다가 저들이 뒤틀리고 지성을 잃었어도 그 뿌리는 인간이고, 인간이 빨라봤자 정말로 전설 속에 나오는 용사가 아닌 이상 그녀와 겨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살점과 피에 미친 나머지, 행동 경로도 너무 쉽게 예측되기에 엘리는 피식 웃으면서 처음으로 달려드는 녀석을 보고는 그냥 손톱을 세운 채 하늘 위로 팔을 들고, 아가리를 쩍 벌리고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른 구울은...
철퍽!
길고 날카로운 손톱과 손이 그 입 안에 들어가면서, 손톱이 아가리 반대편의 경추와 경동맥을 찢어버립니다. 엘리는 다른 한 손으로 그 구울의 어깨를 잡고 손을 뒤틀어 머리를 찢어버리고, 나머지 구울들과 싸웁니다. 구울들이 머릿수로 밀어붙이려 하지만, 앞뒤에서 구울이 달려들어 그녀를 베어물려 하자 엘리는 눈을 감습니다.
박쥐 변신
그녀의 온 몸이 수많은 흡혈 박쥐의 형태로 분리되어 사방으로 날아들고, 앞뒤로 돌격하던 구울들은 돌격할 대상이 사라지자 서로 부딪쳐 이빨만 깹니다. 그 리고 흡혈 박쥐 수백마리가 다시 인간의 형태가 되도록 서로 뭉치고, 엘리는 다시 그 자리에 서서, 경비병에게 구울이 하던 것처럼, 엘리도 구울 한 마리를 본보기로 완전히 베어버립니다. 구울은 식인의 끝에 인간의 지성을 잃고 고통을 느끼는 '동물'의 본능마저 사라진 '인간'일 뿐, 즉 엘리가 내장에 칼을 꼽고 돌려서 찢어버리고, 목을 베어 경동맥을 터뜨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죠. 그렇게 죽은 경비병들의 복수를 마친 엘리는...
"이... 이 서류들입니다!"
경비병들이 애써 찾아낸 서류를 봅니다. 실종자 대량발생 보고, 지하수로 불안 신고, '비밀' 표시된 루마족 유랑민 대량실종 사건 등등... 급한 와중이라 제목만 볼 수밖에 없지만, 뭐, 이건 애가 봐도 눈으로 구린내를 맡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때...
"정말 끈질기군. 네 년."
"어... 어?!"
구울들이 뛰쳐나왔던 곳에서, 엘리에게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흉갑 입은 청년입니다. 그는 엘리를 보고 정신이 멀쩡히 돌아온 경비병들을 보더니 쯧, 하고 말합니다.
"이 녀석들은 너 때문에 여기서 다 죽는 거야. 네가 그 짓만 안했어도 최소한 5년은 더 살려둘 생각이었어."
"저건... 레트 자작님... 이 아니라, 다, 당신 뭐야! 모, 목에...!"
흉갑 입은 청년은 여전히 흉측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흉갑 입은 청년은 그대로 다가오고, 경비병들은 뒤늦게 무기를 들고 벌벌 떨지만, 엘리도 힘들게 싸워야 할 상대인데 경비병들이 상대가 될 리가 있을지는... 여기서, 엘리는 고민에 빠집니다.
이대로 이들을 도와 이 흉갑 청년을 죽이고 난 다음에 에레야를 보러 가야 할까요? 아니면 더 늦어서 동이 트면 최악이니 일단 나갑니까? 선택은 엘리의 자유입니다.
"베스니 씨가 할 수 있었기에, 그렇다는 것이겠이요. 활을 쏘아 마추는 것은 생각하는 것 만큼 쉽기만 한 것은 아니랍니다. 화살을 쏘아본 적이 있으시니 아시겠지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요"
그녀의 말도 맞아요. 하지만 그저 그 뿐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말했어요 활과 화살은 함께 있어야만 의미가 있지만 명백히 분리된 존재이에요. 그러하듯이 과녁을 향해 쏘는과 그것을 맞추는 것은 다른 일이지요. 활이란, 그저 시위를 당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걸맞는 힘과 집중력이 필요할 거에요. 활에 대한 경험은 거의 없더라도 지식을 갖춘 저는 알 수 있어요
"늑대는 토끼를 잡아먹으려 했고, 토끼는 힘껏 달아나지요. 늑대가 굶주리는 것을 불쌍이 여겨 자신의 육신을 내어주는 토끼는 없을거에요. 그리고 늑대는 스스로 오는 먹이를 거절하지 않을 뿐더러 힘껏 뻗는 발톱을 멈추지도 않지요"
"자비로움은 분명 훌륭한 덕목이지만, 그것을 행할 자리를 고르는 것 또한 필요한 법이에요. 저는 그에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이를 올바르게 판단했는지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에 마주하고 스스로가 알아가야 하겠지요"
그녀의 대답에 비유적인 표현을 겯들어서 설명과 동시에 되묻듯이 다시 말했어요. 늑대에게 있어서 토끼는 먹이에 지나지 않을 뿐. 먹히고 싶지 않다면 도망치거나 포식자가 되어야 할거에요. 물론,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해도 좋을거에요. 그렇지만 이렇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좋은 대답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이것이 확실한 방법중 하나였을 것만 같아요
"모든 면에서 그런 것 아닐거에요, 재미를 느끼는 주체가 다를 뿐이겠지요?"
거기에 끼어드는 가말라시엘 님에 말에 저는 그렇게 말했어요. 그녀 자체가 어떨지는 떠나서 지금 상황이 그리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맞는 것 같지만요
>>28 세스타우 성에 온 지 일주일이 가까이 되어서야, 엘리는 마침내 수십명한테 휩싸여 두들겨맞는 입장이 아니라 수십명과 함께 두들겨패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경비병들은 엘리의 말대로 창을 치켜들고, 레트 자작은 자신에게 대드는 이들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그들을 쳐내려고 하지만, 철퇴를 든 팔이 창에 꽂히고 엘리가 경비병들의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들고 자작의 팔 안쪽, 검도 철퇴도 때릴 수 없는 부분으로 파고 들어가 단검으로 온 몸을 찌릅니다. 자작이 침음성을 흘리다가 엘리를 걷어차자 엘리가 날아가 경비병들과 부딪쳐 뒹굴고, 자작이 경비병들을 때려 죽이려는 것을 뒤에서 다른 경비가 창을 찔러 저지합니다.
"뒤, 뒤져!!!"
"몇 년 동안 월급 안 올린 복수다!"
엘리는 다시 일어나서 레트 자작에게 달려드는데, 이번에는 목표가 바뀐 것 같습니다. 자작은 다른 경비병들이 아직 못 일어난 틈을 타서 뒤에 꽂힌 창대를 뚜둑 부러뜨리고, 부러진 창대를 쥔 경비병을 자기 쪽으로 당겨 넘어뜨리더니 머리를 밟아 터뜨립니다. 뒤늦게 엘리가 머리를 붙잡고 달라붙어 손톱으로 얼굴을 마구 할퀴지만...
퍼억!!!
다시, 신성력 가득한 철퇴가 그녀를 때립니다. 다행히도 자세를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탓에 빠르게 휘두르지 못해 타격도 크게 없었지만, 그래도 몸이 불타는 느낌이 고통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나가떨어지고 맙니다. 엘리는 레트 자작의 철퇴를 노려봅니다. 은검이야 어쩔 수 없다쳐도, 저 신성한 사슬을 감은 철퇴만 없다면 어떻게 될 텐데... 그러고보니, 레트 자작 저놈도 자기도 불경한 존재라 피해를 받는지 신성한 사슬을 묶어두고 거기서는 최대한 손을 떼고 있군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뭘 말하려는지는 이해할 것 같은 눈치로 베스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묵히 걸어갑니다. 반강제긴 했지만 철야 행군을 한 덕분에 벌써 70%쯤 온 것 같습니다. 뷔르트겐 호수와 이어지는 길쭉한 냇가가 보이고, 거기에도 베스니의 눈길을 잡아끌 만한 광경이 있습니다. 물 속에서... 반짝거리는 가루들이 야밤중에도, 아니, 야밤이라 그런지 더 밝게 반짝이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신비한 파란색, 어떤 것은 밝은 하얀색으로 빛나고 있군요.
"...우와..."
아까 전에 있었던 일도 잊고 베스니는 이것을 기록하는데, 아앨라나는 이것이 뭔지 바로 알아냅니다. 루미나크톤, 검은 숲의 수원에서 종종 나타나는 아주 작은 생물들인데, 검은 숲에 존재하는 마력과 수원에 부유하는 영양분을 합성해 저장하는 과정에서 빛을 만드는데, 이것이 계속해서 축적되면 강력한 마력을 가진 냇가진주로 응집되어 마법사 완드에 장착하는 보석들 중 하나가 된다고도 하죠. 아앨라나의 기억이 시작된 이후로 냇가에 가면 종종 보던 광경이니, 그녀에게는 아주 신기할 것까진 없습니다.
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엘리와 함께 싸우는 경비 중 하나가 쇠스랑을 내지릅니다. 세 개의 가지로 뻗어나온 쇠스랑 사이에 철퇴가 걸리고, 다른 경비들이 거기에 붙습니다. 레트 자작이 제아무리 강해도 체중을 실어 버티는 성인 남성 몇 명의 힘을 제 팔힘으로 이기지는 못해서 철퇴가 레트 자작의 어깨에 딱 붙고, 신성한 사슬이 레트 자작의 몸에 닿자 치이이익...! 불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을 지릅니다.
"끄아아아악!!!"
저 안 뒤질 것 같던 놈이 비명을 지르니 엘리는 남모를 희망을 느낍니다. 저 놈도 뒤지긴 하는구나, 하고요. 그러자 그 남자는 철퇴를 손에서 놔 버리고는, 경비병들에게 달려들어 경비 하나를 벽에 던져버립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경비병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다른 하나는 은검으로 찔러버립니다. 은검이 괴물한테 더 효과적인 거지 인간한테 무용한 건 아니니까요. 그 난장판에서 살짝 피한 엘리의 눈에, '신성한' 철퇴가 들어옵니다... 손잡이만 잡으면, 아마도 멀쩡... 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현 가주가 엘리의 가출을 말릴 때 했던 경고입니다. 물론 엘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고, 설령 진지하게 들었더래도 뜻을 꺾지는 않았을겁니다. 하지만 엘리는 신성한 철퇴에 무릎과 골통이 박살나자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후회가 됐습니다. 하지만 후회보다도 다른 생각이 더 컸습니다.
날 죽일 정도의 무기가 저놈이라고 못 죽일까?
엘리는 철퇴를 양 손으로 잡슥니다. 신성한 쇠사슬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너무나도 불쾌해 마치 문자 그대로 철퇴 크기만한 똥덩어리를 잡은 것마냥 기분이 더럽고, 손아귀도 따끔따끔한 고통에 반사적으로 놓으려 드는 걸 양 손으로 맞잡고 겨의 버팁니다. 하지만 엘리가 이 모든 불쾌와 불편을 감수하고, 마치 말뚝 박는 인부마냥 머리 뒤로 넘어갈 정도로 철퇴를 올렸다가 내리치자...
철퍽!!!
레트 자작의 어깨 사이에 달려있던 호박이 움푹 패이고, 엘리는 그녀가 당했던 것을 돌려줍니다. 자작이 쓰러지자 그 난리통에도 살아남았던 경비병들이 못 일어나게 창을 꽂고, 위에서 난리통을 알리고 동료와 함께 내려온 경비병들이 그물을 덮습니다. 엘리가 제압당했던 바로 그 방식 그대로입니다. 경비병들은 레트 자작을 보면서 한마디씩 거드는군요.
>>40 경비병들은 서류를 서로 돌려보고 탄식합니다. 몇몇은 차마 필설로 형언하기 힘든 욕설을 쏟아내고, 누군가는 그냥 피냄새와 시체 썩은내가 견디기 힘들어 구토를 쏟습니다. 그래도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는 확실히 알아서, 더 이상 엘리를 방해하지 않기로 하고 그녀에게 서류를 돌려주지만... 그들 중 한 명이 하는 말이 엘리를 소름돋게 만듭니다.
@@ situplay>1597050693>1000 누누코가 취할 행동은 간단했다. 도주의 속도를 늦춰 일부러 적을 유도한다. 가장 먼저 달려올 것은 개일것이다. 네 발 달린 짐승이 언제나 우월하다. 그러나, 개들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먹이사슬의 변수로 군림하는 보팔토끼였다. 누누코는 옥수수밭 속에서 몸을 낮추고 숨어있다가, 개가 튀어나오는 목을 쥐어잡고 즉시 날카로운 이빨로 목을 물어뜯었다. 또 다른 개는 삽을 휘둘러 즉시 목과 몸을 분리시켰고, 또 다른 개는 몸을 덮쳐서 단검으로 갈비뼈를 해집어 심장을 꿰뜷었다.
'편히 쉬길.' 누누코는 몸을 일으키며 들판으로 돌아갈 개들에게 무운을 빌어주었다. 몸을 일으키니 누누코의 옷은 피가 흥건하여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갈아입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사회적인 '의복'의 기능을 다한 것이다. 미약한 개조를 거쳤다고는 하나, 어차피 직물로 짜낸 천으로 만든 옷이 이정도. 특히나 다리 부분이 벌써 너덜거리고 있었다. 이런 옥수수밭에서는 방해밖에 되지 않을거라 생각한 누누코는 즉시 단검을 갖다대어 허벅지정도 길이 아래로는 전부 잘라내어 기장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옥수수를 흔드는 바람을 타고 소란스러운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늦게 인간들이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저의 말에 따로 어떠한 대답을 이어가지 않았지만 어느정도 이해하고 수긍하여 주는 듯 했어요. 그렇게 저희는 계속 길을 걸어나갔어요. 이제 이 행선지에도 그 끝에 도달하고 있는 걸까요. 호수와 연결되는 것이라 여겨지는 물의 흐름이 보였어요. 그리고 거기에는 여러 많은 작은 빛들이 모여들어 반짝이고 있었어요.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어둠이 그 주변을 차지하고 가리고 있기에 되려 자연스럽게도 그 존재감 뚜렷하게 보여요
"예쁜 빛이네요"
저는 금세 그 빛들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어요. 그것은 이전에도 몇번인가 본 적이 있는 현상으로서 숲이 지닌 마력과 생물 작용으로 인한 독특한 환경이 만들어내는 것이였지요. 저는 흐르는 물가에 조금만 가깝게 다가서서 그 속을 흘깃 바라보았어요. 어쩌면, 좋은 것을 찾아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딱히 지금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모처럼의 기회이니까요. 살펴보고 적절하다고 보여지는 것이 있다면 가볍게 하나 쯤 얻으려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그녀에게도 보여줄 수도 있을거에요
>>43 이상하게도 집만큼이나 익숙해진 지하수로로 내려갑니다. 위에서 참 많은 것들을 쏟아부었는지 해골과 시신들이 널려 있는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엘리는 그간 본 것도 본 것이고, 밤의 군주의 형체를 처음으로 취하면서 인간성이 좀 깎인 덕분에 별 감흥이 없습니다. 그냥 시체구나, 피구나, 더럽구나, 그럴 뿐이죠. 엘리는 그것들을 지나쳐서, 대충 신전 쪽으로 향하는 방향이겠거니 싶은 쪽으로 향합니다. 비결은 뭐 없습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더럽고 불쾌해지고, 뭔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잘못한 기분이 들면 그게 신전으로 맞게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털썩
엘리는 팔 잘린 남자의 물건을 가지러 왔던 창고 쯤에서 쓰러집니다. 너무 지친 탓입니다. 피로도 재생할 수 없는 정신과 육체 양쪽의 한계를 넘은 피로가, 그녀에게 한동안 쉬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침, 에레야가 말한 시간은 저녁 6시. 아마 쉰다고 해도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45 누누코도 그렇고, 그 동물들도 그렇고,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무리 사냥'의 기본은, 사냥꾼 무리는 온존하되 사냥감은 무리에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만약 사냥감이 공황에 빠져서 제멋대로 도망다니다 무리에서 떨어진다면, 그 날은 굳이 힘쓸 필요도 없이 일용할 양식 한 끼를 얻는 것이죠. 하지만 누누코는 그 개들과 달리, 모든 것을 한 번, 그리고 두 번 더 꼬아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고, 본능과 경험 역시 여러 겹으로 꼬아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제 한 몸 못 가누는 상황인 요한은 빠져나가게 두고, 누누코는 느릿느릿한 사냥감을 연기합니다. 겁먹은 토끼의 냄새에 개들이 아드레날린과 침을 흘리며 뛰어오지만, 그들이 마지막으로 목격하는 것은 그들의 주인들의 주인을 죽이고, 거기에 더해 인간들 몇 명도 덤으로 지옥에 보낸 괴물토끼, '누누코'입니다.
깨갱! 캥!
개들은 물기는커녕 이빨 단 하나조차 누누코의 살결에 닿지 못하고 몰살당하고, 누누코는 숲 속에서 인간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제기랄! 개새끼들이 안 울잖아!"
"야, 뭉쳐! 뭉치라고!"
이대로 요한을 따라갈 수도 있고, 이들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을 죽인다면 요한을 따라갈 때 고생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겠죠. 누누코는 어떻게 하나요?
>47 아앨라나는 루미나크톤이 부유하는 물 속에 손을 담가봅니다. 덩어리로 응집해서 빛나는 루미나크톤들이 손에 엉겨붙어 손을 빛나게 만들고, 활성화된 루미나크톤의 영향으로 물의 질감도 물이라기보다는 투명하고 빛나는 입자들이 가득한 슬라임에 가깝게 조금 질척해진 듯도 합니다. 아무튼 아앨라나는 그 점질(粘質)의 물 속에 손을 넣으니, 자연스레 루미나크톤이 응집했던 마력의 은총을 받아 조금씩 조금씩 온 몸이 회복되는 가호를 느끼다가, 바닥에서 무언가 딱딱하고, 둥글고, 미끌거리는 무언가를 잡아서 들어올립니다.
"...이게 뭔가요? 설마, 진주...!"
...베스니가 호들갑을 떨면, 항상 결과가 그리 좋진 않습니다. 그래도 먹을 수 있는 게 나왔습니다. 민물조개, 껍질이 단단하지만 구우면 맛있게 익은 속살을 드러내는 종이죠. 진주조개,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루미나크톤에 오래 노출되었는지 조개 껍질도 아름답게 발광하고 있는 것이, 냇가진주만큼은 아니어도 심미적 가치는 좋을 것 같습니다.
>>51 간신히 바닥까지 몸을 끈 엘리는 창고 문을 끌어서 닫고, 마치 영혼이 사라진 듯 맥없이 쓰러진 후 눈을 감습니다. 오자마자 수호부를 받았고, 자려고 하자마자 갑자기 괴물과 싸웠고, 괴물과 싸워서 다 죽이나 싶더니만 이단심문관과 만났고, 이단심문관과 만나서 신전도 끌려가더니만 지하수로에서 식인종, 랫킨, 고블린하고도 싸웠고, 경비대 본부도 털었고... 이 정도면, 너무나도 많은 일이 한번에 일어난 게 맞습니다. 엘리는 잠에 들고... 아무 꿈도 없이, 아주 행복한 단잠을 잡니다. 차갑고 축축한 벽돌바닥에서도 잠이 잘 온다니, 역시 피로야말로 최고의 침실입니다.
엘리는 다시 일어납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휴식을 취한 이상 더 시간을 보낼 이유는 없겠지요.
>>51 간신히 바닥까지 몸을 끈 엘리는 창고 문을 끌어서 닫고, 마치 영혼이 사라진 듯 맥없이 쓰러진 후 눈을 감습니다. 오자마자 수호부를 받았고, 자려고 하자마자 갑자기 괴물과 싸웠고, 괴물과 싸워서 다 죽이나 싶더니만 이단심문관과 만났고, 이단심문관과 만나서 신전도 끌려가더니만 지하수로에서 식인종, 랫킨, 고블린하고도 싸웠고, 경비대 본부도 털었고... 이 정도면, 너무나도 많은 일이 한번에 일어난 게 맞습니다. 엘리는 잠에 들고... 아무 꿈도 없이, 아주 행복한 단잠을 잡니다. 차갑고 축축한 벽돌바닥에서도 잠이 잘 온다니, 역시 피로야말로 최고의 침실입니다.
엘리는 다시 일어납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휴식을 취한 이상 더 시간을 보낼 이유는 없겠지요.
한 손으로 조준했던 석궁을 바로 허리춤에 넣는 요한의 얼굴에 담긴 반가움을 어두운 하늘의 달빛이 비춰줍니다. 뒤에서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려오지만 많이 멀어졌고, 어느새 요한과 누누코는 마차에 도착했습니다. 마차 문을 열고 그 안에 미스터 스위트의 시체를 구겨넣은 요한은 누누코에게 다시 한번 망을 봐달라고 요청합니다.
"일단 시체에 몰약 처리를 좀 해야 합니다. 누누코 씨의 훌륭한 후각을 미스터 스위트의 시체 냄새를 맡는 데 써서 정신적 자해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리고, 시체가 생긴 게 멀쩡해야 우리가 받을 몫도 늘어나구요."
>>55 엘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길을 옮깁니다. 경비병들이 지하수로를 한번 '청소'했는지, 아니면 엘리가 여기서 벌인 끔찍한 살인 행위를 보고 ㅣ지레 겁먹은 이들이 차마 엘리 앞에 나타날 생각을 못하는지, 엘리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신전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존재의 불쾌함이 느껴질 때쯤, 어둠 속에서 램프가 켜지더니 이제는 익숙한 얼굴이 나타납니다. 에레야가 거느리는 거한들 중 하나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아무튼 얼굴이야 워낙에 봐서 대충 에레야 따까리 1 정도로는 알고 있는 얼굴입니다. 거한은 엘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자료는 챙겨왔겠지. 아니라면 날 죽이쇼. 당신마저 실패했다면 이 세스타우가 꼼짝없이 저 위에 새끼들한테 먹히는 꼴을 봐야하는데, 그러느니 걍 죽고 말지."
그렇게 제가 다가가 물 속으로 천천히 부드럽게 손을 뻗어내면 물 속에서 부터 발하는 그 반짝임 자체가 저의 손길을 타고 올라와 몸으로 전해지듯 느껴졌어요. 공기가 피부에 닿고, 내쉬는 숨결처럼 하듯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감각. 마력 이라고 불리는 기운이 저의 몸을 타고 활력을 더해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물 속의 별빛들의 자그마한 이어지는 은혜에 따라 본래에서 부터도 벗어난 제가 걸어왔던 피로조차 풀어지는 듯 하기도 했어요
"진주... 같은 것은 아니에요. 민물 생활성 조개와 같네요. 지닌 껍질은 그 색조와 반짝임에 대해 다른 종류와 보다 휠씬 예쁜 모양을 하고 있어보여요"
그러다 물빛 속 사이에서 보다 깊으 곳에 저에게 유난히 돋보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어요. 저는 그것으로 손을 뻗었고 집어올리면 그것은 예쁘게 반짝이는 껍질을 가진 조개. 이곳에서 처음에 생각하였던 것과 다르지만 저는 이것 나름대로 괜찮았어요
이어서 이내 이 조개를 함께 보게된 그녀의 물음에 있는바를 저는 말해주었어요. 저는 이 조개가 자신의 삶을 이어가도록 이대로 돌려놓을 수도, 그 자태에 흥미로움에 이끌려 제가 가져도록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 조개를 가지기로 했어요. 이를 두고 무엇을 하게 될지는 천천히 생각해보아도 괜찮을 거에요
하지만 기대하던 냇가진주 같은 게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베스니의 검은 숲 사랑이 시드는 일은 없었습니다. 베스니는 이건 또 이것대로 멋지다면서, 자신이 아는 온갖 어휘를 동원해서 민물조개의 표면에 루미나크톤이 흡착하고 반응하며 만들어낸 발광 무늬를 이리저리 관찰하고 묘사합니다. 그녀가 문학적 거품을 최대한 걷어내고 학술적으로 빚어낸 표현을 빌리자면, "패각 표면의 격자 모양으로 구성된 얇은 음각상 안에 푸른색 또는 하얀색 계통의 상세불명의 발광체가 도포되어 빛나고, 물결의 흐름에 따른 곡선형의 부정형적이고 연속적인 무늬가 형성된 민물조개"입니다. 그리고 문학적 표현을 최대한 빌리면... "진주를 품는 대신 진주 그 자체가 되기로 한 조개"라는 묘사가, 베스니가 이 민물조개를 보고 느낀 감상을 표현하는군요. 베스니는 아앨라나가 조개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자기가 더 신나는지 방방 뛰고, 아앨라나에게 묻습니다.
"아앨라나 님! 혹시 평소에도 이런 걸 자주 보고 사셨나요?! 정말 부러워요! 이런 신비가 가득한 곳에서 살면 문학이 무슨 필요겠어요! 눈 앞에 보이는 게 동화고 전설인데!"
@@ >>57 누누코는 요한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땅을 박차고 사뿐히 뛰어 근처의 나무 위에 올랐다. 높게 솟은 귀로는 저 멀리에서 인간들의 비명과 고함이 들려왔다. 뒤늦게 개와, 사람의 시체를 발견한 것일테다. 우스운 일이다, 라고 누누코는 생각했다. 저 영지에서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것은 일상이었을텐데. 그들이 무언가의 죽음에 있어서 저런 높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습다못해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장황하게 이어지는 온갖 표현들에 저는 작고 부드럽게 웃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수긍했어요. 제가 처음에 가졌던 목표와는 다른 것을 얻었더라도 실망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 또한 그러했어요. 어쩌면, 저보다도 그럴 수 있을 거에요. 그녀는 숲 속의 앎이 부족하고 그렇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품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어요. 이미 그림으로 채워진 천과 종이에는 빈 곳이 아닌 곳에 새로운 것을 하기에는 어려운 것처럼요. 다만, 그렇기에 반대로 새로운 틀과 그것의 빈 곳에 제대로 그림을 담아낼 수 없다면 실망감은 보다 커질 수도 있겠지만요
"무엇이라고 해야할까요? 익숙하다고 할 수는 있겠네요. 고요함과 떠들썩한 것을 넘나들며 숲은 많은 것을 품고 있어요. 그것으로서 나타나는 가능성의 표출은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거에요"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추리고 엮어내 스스로의 마음을 글로서 표현하고 정리하여 이를 기록함으로서 그 자체로 문학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에요. 사람의 기억이나 감정은 촛불과도 같아요. 처음에는 불꽃을 피어내고 타오르고 곧 초가 전부 닳아 없어져 그 불꽃은 꺼지고 작은 연기만을 남긴채 희미한 자취만을 두고 잊혀지거나 하지요. 그러나, 이미 문학으로서 남겨진 그것은 그렇지 않을거에요. 그것은 그때의 감동을 다시금 일깨워 볼 수 있게될 수 있지요"
그리고 이어지느 그녀의 말에 저는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부정하고자 그렇게 설명해보았어요. 비록 숲 속의 앎에 제가 전부 깨우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많은 것을 배워 일깨웠어요
>>65 거한은 서류를 뺏듯이 낚아채더니 슬쩍슬쩍 봅니다. 그렇게 봐서야 뭐 얼마나 중요한 내용인지 알겠나 싶더니만, 썩어있던 거한의 표정이 점점 펴지더니 가까이 가서 엘리의 두 손을 딱 잡습니다. 그리고, 평생 웃지 않을 것 같던 인간이 참 밝은 얼굴로, 참 안 어울리는 웃음을 보여주며 감사를 표합니다... 차라리 진지한 표정으로 고맙다 한 마디만 하는게 나았을 텐데요.
"정말로 고맙습니다. 엘리 님."
그리고는, 엘리의 손목을 잡고 위로 끌고 올라가려고 합니다.
"올라가시죠. 에레야 님이 청문회가 시작된 이후 되는대로 말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데, 주 목격자인 당신 진술도 많이 필요합니다."
엘리는 에레야한테 받아놓은 특수 수호부가 있으니 신전에 들어간다고 아마 불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기분은 좀 더럽겠지만요.
>>66 누누코는 반쯤 잘린 귀를 쫑긋, 쫑긋 세우며 소리를 듣습니다.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개들이 짖는 소리는 멀리서만 들리고 가까이로 오지 않고 점점 잦아들어만 갑니다. 그리고 그 잦아들어가는 공백은 찌르르르 하는 귀뚜라미 따위의 풀벌레 소리와 부엉이가 세상 모르고 밤새 우는 소리가 채웁니다. 대농장이 온 농장의 불을 밝히고 램프를 켜면 이 밤하늘을 이길 수 있는 양 난리를 피우지만, 밤은 굳건하고, 멀긴 해도 낮이었으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이 거리에서, 요한이 대놓고 시체에 몰약 처리를 하고 있는데도 인간은커녕 개조차도 두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는 꼴은 퍽 우습기까지 합니다.
"...어디보자. 코에도 넣고, 목에도 넣고... 흠. 누누코 씨가 여기를 쳤군요! 그래도 자기를 노예로 사서 투견으로 쓰려고 한 사람한테 꽤나 자비를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목을 걷어찼으면 경동맥만 그이는 게 아니라 경추와 신경이 부서지고, 아마 기절하면서 자기가 죽는다는 것도 모르고 죽었을 테니까요. 누누코 씨의 동작 속도를 보면 확실합니다."
...라고, 요한이 추리하는 소리와 함께 몰약 특유의 달큰하면서도 톡 쏘는 향기가 코를 간지럽힙니다. 조금만 더 심하면 재채기가 나올 것 같지만, 그래도 이 냄새가 몇 시간 뒤 온 사방에 풍길 썩은 시체 냄새보다야 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잠깐 기다립니다. 정 안 되면 이 냄새는 코에다 솜을 박아서 참을 수라도 있지, 시체 냄새는 솜이 아니라 돌덩이를 박아도 못 참습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나고, 요한이 미스터 스위트를 넣은 마차 문을 쾅 닫고는 누누코를 부릅니다.
대체 무슨 포인트에서 감동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베스니는 감동했습니다. 베스니는 눈물을 찔끔찔끔 흘릴듯하다가, 아앨라나가 한 말들을 전부 받아적습니다. 아무튼 조개 하나 주운 것 가지고 뷔르트겐 호수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두 사람은 계속해서 걷기 시작합니다. 이끼 낀 숲도 지나고, 나무들이 폭풍에 여럿 쓰러져 하늘이 뻥 뚫린 곳도 지나고, 이것저것 지나다보니 어느새 하늘의 명도(明度)가 점점 높아져, 검기만 하던 하늘이 점점 짙푸르게 변하고, 짙푸른 하늘에 푸른빛이 더해지고, 푸른 하늘이 다시 하얘지면서 검은 숲에도 앞의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빛이 돌아옵니다.
"후우... 또 아침이네요오..."
베스니가 밤새 걸었다고 불평하는 사이, 아앨라나는 지도를 펼쳐봅니다. 앞으로 한나절 정도 강행군하면 뷔르트겐 호수지만, 불곰 때문에 하루를 못 잔 게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여기서 못 취한 휴식을 좀 취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situplay>1597051230>17 수많은 명예와 공적이 쌓여 거대한 기념비가 세워지고, 그 거대한 기념비에 으레 따라붙는 그림자조차도 어렵고 힘든 이들을 숨겨주는 안식처가 되어주던 로렌스의 명성은, 베이지색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그녀의 양 어깨의 무겁게 짓눌립니다. 한때 로렌스의 핏줄을 잊었던 정령들이 헬렌이 태어나고 나서야 로렌스의 이름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고, 한때 정령의 왕과 자유롭게 세상을 논하고 작은 정령들을 제2 제3의 손발로 부리던 전성기는 어른들의 동화 이야기처럼 거짓말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녀의 남동생이 이제 더 이상 그녀가 부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울지 않는다는 것일까요, 8살이라면 슬슬 백작가를 잇기 위한 교육을 받기 충분한 나이라는 것일까요. 헬렌에게는 헬렌 나름대로 로렌스의 이름을 되살릴 길이 있고, 리안에게는 리안 나름대로 가문을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을 겁니다.
그래야 합니다.
헬렌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작정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제아무리 기울었다고 해도 백작가는 백작가, 백작 저택의 밤을 밝히는 고래기름 등불을 돼지기름 등불로 바꾸면서 자금에 여유가 생긴 덕분에 헬렌은 꽤나 자금을 많이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택의 장서실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지식 자랑을 들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그녀를 만난 아주 유식한 자칭 '백과사전의 정령'도, 그녀를 돕고 싶어서 안달이 났습니다. 정령은 그녀에게 말을 겁니다. 아마 재잘재잘 쏟아지는 지식은 그녀에게 당장 도움은 안 되겠지만요.
'정령 - 정령이란 '어떤 물체나 자연현상에 깃들거나 그것을 상징하는, 지성을 가진 채 주위의 자극에 반응하는 초자연적 현상의 총합'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앞을 바라봅니다. 한 마을인데, 그래도 커다란 마차 여관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는 마을입니다.
헬렌은 꽤나 큰 각오를 하고 모험길에 올랐다. 아버지를 따라 주변 영지 혹은 가까운 다른 가문의 영지를 방문했을 때를 제외하면 이렇게 멀리까지 나와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목적지를 정해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수도의 방향 쪽으로 향할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명성을 높일 수 있는 고난이 있다면 돕고 혹은 돈을 벌 수 있다면 벌고 혹은 귀인을 만난다면 만나고 혹시 이 모험길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해도 좋으리라.
“고마워.”
조잘거리는 백과사전 정령에게 작은 인사를 건네며 헬렌은 싱긋 웃었다. 그래도 위안인 점은 이 작은 정령이 심심하지 않게 곁을 맴돌아준다는 것일까. 주변에 사람이 있을 때에는 혼잣말보다는 마음속으로 정령과 대화를 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입으로 하는 소통이 확실히 잘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다. 말을 할 일이 없어 심심하기도 했고 말이다.
가는 길에 들르게 된 마을은 묵어가기에 좋아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노숙에 익숙하지도 않고 모험가로는 아직 초짜이니까. 물론 앞으로는 노숙에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 >>70 "자비?" "먹지 못해서 힘을 쓰지 못한 것 뿐이야... 후흥." 그렇게 요한의 말에 대꾸하고는, 능숙한 몸놀림으로 나무 밑에서 미끌어지듯 내려와 땅을 밟는 누누코였다. 땅에 내려오자, 더욱 강해진 시체 처리의 냄새가 누누코의 코를 찔렀다. 자연히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냄새가 가진 고유의 향 문제라기보다는, 인위적인 냄새... 그것이 누누코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러나 딱히 말하지 않고, 사람과 개를 옥수수 밭 비료로 만드느라 피범벅이 된 몸을 마차 위에 올려앉혔다.
"가자." 요한뿐 아니라, 마치 바퀴벌레에게도 말을 걸듯. 바퀴벌레의 등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내가 이 어장을 세우면서 지키고자 한 원칙 1. 무조건 쉽게! 상황극 역시 룰이 느슨한 역할 수행 게임(Role Playing Game, RPG)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게임은 쉬워야 한다"는 건 게임 역사가 몇십년 흐르면서 임상적으로 증명된 사실. 소울라이크처럼 모르면 알 때까지 죽어가는 반례가 있지만 그건 시스템적으로 PC 사망을 패턴 파악, 파훼를 위한 장치로 설계한 거고.
2. 최대한 알려주기! TRPG 마스터링 할때나 TPRG PL로 참여할때나 느낀게 뭐냐면 마스터와 PL의 정보 차이는 극단적이라는 것. 마스터가 답지를 다 찍어주는 수준으로 정보를 퍼줘야 PL 입장에서 정상적인 추론이 가능하고, 마스터가 괜시리 머리 쓴다고 어줍잖게 정보 숨겼다가는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이것도 모르네 너 바보 너 멍청이 낄낄" 하면서 PC 바보 만들고 PL은 죽느니만 못한 상황 만들고 플 다 터지게 되어있음.
3. 시스템 탓이오 시스템 탓이오 시스템의 큰 탓이오 10명 중 1명이 적응 못하면 그건 1명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지만, 10명 중 9명이 적응 못하면 그건 무조건 절대로 시스템 문제. 여기서 상판 참여하는 참치들 다 컴퓨터 끄고 바깥에 나가면 알바하고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고 다 어디서나 0.5인분-2인분 정도는 하는 보통 사람들임. 그런 사람들 대다수가 혼란스러워하고 못 따라가는 시스템이다? 그건 그냥 그 시스템이 심각하게 못 만든 폐급이란 얘기밖에 안 됨. 사람이 시스템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사실 이건 시스템이랄 것도 없어서 '사람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 느낌으로 괜찮게 굴러가고 잇는 느낌이다...
4. 현실성도르 금지. 강간, 고문, 학살은 "중세시대 사람들은 미개해서 고문도 하고 학살도 하고 강간도 하고 나쁜짓은 다 했어요"라 말하면서 잔뜩 넣고, 평민 PC를 플레이하는 PL이 "벽에 걸린 포고문을 읽습니다" 라고 선언했더니 "중세시대 평민이 뭔놈의 글을 읽어요 님 역사시간에 쳐잤음?"이라면서 꼽주는 마스터들 진짜 많았음. 그러면서 현대 사회도 이룩하지 못한 전세계에서 완벽하게 동일한 가치로 통용되는 통일 화폐(골드), 전세계에서 아무 법적 문제 없이 용인되는 무력집단 모험길드 같은건 "에이 그런거 일일이 다 따지면 마스터링 어떻게 해요"하면서 넣으면 플레이가 이상해지는 걸 넘어서 인간까지 추해짐.
내가 이 4개 철칙 세워두고 어떻게든 스토리 끌어가고 있는데, 혹시나 이 4개 원칙에 벗어난다 싶으면 바로 찔러줘. 다른건 몰라도 이건 꼭 지키면서 간다.
>>75 다시 한번, 엘리는, 아니,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는 신전에 올라갑니다. 태양교의 신전에서, 엘리는 자신이 불리고 싶고 자신이 되고 싶은 엘리가 아닌, 뱀파이어인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어쨌든 엘리는 태양을 극복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올라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엘리는 거한에게 붙들려 올라가는데, 적극적으로 몸부림치며 빠져나가려고 시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따라가지도 않는 애매한 상태로 짐짝마냥 질질 끌려갑니다. 위로 올라가면, 신전 지하에 이리저리 베이고 찔린 에레야의 부하들이 끙끙대면서 서로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고,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진한 피냄새와 불길한 살점의 냄새, 매캐한 연기의 냄새, 그리고... 달큰한 아편의 냄새가 그들이 정말로 목숨을 걸고 싸웠음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그들도, 엘리를 끌고 가는 거한의 손에 들린 서류 더미를 보고는 엷은 희망을 품습니다. 그리고...
"이의 있습니다!"
"더 이상 궤변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이단심문관!"
...엘리는, 수많은 천사와 성인들이 지켜보는 것 같은 스테인드 글라스 사이에서, 수많은 귀족들과 사제들 사이에 둘러싸여 비난받고 있는 에레야를 바라봅니다. 비록 그녀는 당당하지만, 처음 엘리가 그녀를 보았을 때 느꼈던 이단심문관 특유의 위압감은 더 이상 없습니다. 에레야는 속으로 욕을 삼키다가, 문득 옆에 선 거한과 엘리를 바라보고는 그제서야 웃는군요.
"참 빨리도 왔군. 자, 여기 증인으로..."
"증인은 무슨! 절차에 맞지 않는..."
"...주교님! 제가 절차상 하자를 지적했을 때 분명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와중에 제가 절차적 하자를 트집 삼아 제 죄를 회피하려 한다고 지적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제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쓸데없는 절차적 하자를 넘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뭡니까?"
"..."
에레야는 거한이 가져온 서류를 받고, 엘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경비대에서 뭘 봤는지 좀 진술하고 있어. 난 서류를 빠르게 검토하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정말 고맙다."
>>76 백과사전의 정령과 이야기를 나누려는 순간, 헬렌은 한 소녀와 부딪칩니다. 소녀는 후드를 쓰고 있는데, 체격이 너무 작아서 헬렌과 부딪치자마자 정말로 크게 넘어지며 나동그라집니다. 데굴데굴 구르다가 대(大)자로 발랑 까진 소녀는 잠시 우우... 하면서 앓는 소리를 내더니 겨우 일어나서는 미안한 눈빛으로 헬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헬렌에게 사과하는데, 그녀가 허리를 숙이면서 그녀의 머리에 달린 길쭉한 고양이귀도 함께 아래로 쭉 뻗어 사죄하는 것만 같습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조심할게요..."
그리고는 부끄러운지 걸음을 돌려 바로 후다닥 뛰어갑니다. 헬렌은 마을에 오자마자 별 일도 다 있다며 양 허리춤에 손을 얹는데... 왠지 모르게 허리춤이 정말로 가벼워진 느낌이라 손으로 더듬어보면, 돈자루가 사라졌습니다. 헬렌이 백작가 저택에서 있을 때나 수행원들과 함께 다닐 때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걱정할 필요도 없었던 일이죠... 그게 정확히 뭔지, 눈치 없는 백과사전의 정령이 나서서 친절히 설명해줍니다.
''절도'란? - 타인의 재물 또는 권리를 남몰래 슬쩍 가져다가 자신의 것으로 삼는 행위입니다. 사유재산권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일부 부족 사회나 특이한 사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범죄로 인식되며, 공개 모욕형부터 불구형, 처형까지 죄질에 따라 다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정령사의 첫 실전은 아무래도 도둑잡기로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로렌스의 핏줄이여! 정령과 대화하는 이여! 도둑에게, 자기가 누구의 무엇을 훔쳤는지 절절히 깨닫는 시간을 줘야겠습니다... //이번 국면은 헬렌주와 내가 정령사가 정령을 어떻게 다루는지 서로서로 맞춰보고 튜토리얼하는 느낌이 될듯
>>78 누누코 때문에 두 번 뒤집어진 미스터 스위트의 대농장을 뒤로 하고, 바퀴벌레가 끄는 마차는 유유히 로데스를 빠져나갑니다. 요한은 누누코가 급한 대로 몸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이 든 가죽부대와 수건을 주고, 누누코가 피범벅이 된 몸과 옷을 대충 닦는 동안 길을 따라 유유히 휘파람을 불면서 마차를 몰고 갑니다. 가끔씩은 마부석 옆에 달린 자루에서 당근이나 사탕무 따위를 꺼내 바퀴벌레의 머리 쪽으로 '훠이!' 하는 소리와 함께 던지고, 그 훠이 소리를 들은 바퀴벌레는 여느 가축과 애완동물이 다 그렇듯 밥 주는 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들어서 입을 떡 벌리고 간식을 확 받아먹어 우적우적 씹으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누누코가 대충 몸에서 피를 닦아내 코맹맹이도 맡을 수 있을 정도의 날카로운 혈향을 대충 지워내서 피비린내보다 몰약 냄새가 더 강해지게 만들었을 때, 요한은 마차 승객칸 쪽에 실린 미스터 스위트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누누코 씨. 그래서 200탈러를 받으면 뭘 할 지 생각해보셨습니까? 뭘 산다던지, 그런 거 말이죠. "
미스터 스위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다 해서 200탈러였는데, 누누코가 200탈러를 다 먹게 되는 건가요? 누누코는 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일단 질문은 끝까지 들어봅니다.
@@>>82 헬렌은 길을 걷다가 부딪힌 소녀에 깜짝 놀랐다. 자신은 거의 타격이 없었지만 그 아이는 나동그라진 데다가 대자로 뻗기까지 했다. “괜찮니?”하고 말을 걸었지만 소녀는 부끄러운 듯 사과만 하고 후다닥 뛰어갈 뿐이었다. 로브 사이로 툭 튀어나온 고양이 귀가 인상적이었다. 수인이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허릿춤에 손을 얹은 순간 도둑이구나! 하는 생각. 헬렌은 백과사전 정령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치챘고 이미 시선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고 이미 발은 그쪽으로 향했다. 헬렌은 백과사전 정령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서 그 소녀를 따라 뛰면서 주변의 정령들의 기운에 귀를 기울였다.
>>86 이 세상의 좋은 성인들이, 뱀파이어를 죽이고, 뱀파이어의 하인들을 죽이고, 뱀파이어의 모든 것을 죽이고 시성되고 시복된 모든 이들이,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된 이들이, 수많은 배심원들과 함께 엘리를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엘리는,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는, 그저 진실을 말하면 되기에, 그러면 되기에, 버벅이다가 결국 진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흉갑 청년이 무엇을 했는지, 자신이 사교 파티에서 무슨 끔찍한 짓을 당할 뻔했는지, 경비병들이 무슨 끔찍한 세뇌를 당했는지, 경비대 지하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공포의 현장이 되었는지. 원래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모든 면에서 완벽히 내적 정합성과 일관성을 갖춘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런 면에서 엘리의 이야기에는 진실성이 더해집니다.
"신성한 무기에 피해를 입었다고?"
"경비대 병사들의 뒷목에 종양이 박혔다고?"
배심에 참석한 이들이 엘리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는 여러 질문을 던지고, 엘리는 열변을 토하며 그 질문들에 사실대로, 자신들이 본 것을 답합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 모든 끔찍한 참상을 겪고도 살아남았다는 엘리의 존재에게 당연히 던질 만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넌 어떻게 그 끔찍한 상황에서 살아남았지?"
...본능적으로 엘리의 시선이 에레야에게 돌아가고, 서류 검토를 거의 다 마친 에레야가 엘리를 흘깃 보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알아서 하란 겁니다.
"글쎄..." 누누코는 그제서야 생각난것처럼, 말 끝을 흐리면서 고개를 돌려 주위에 흘러가는 주변 풍경으로 시선을 넘겼다. 언제까지고 이어질것 같은 나무와 풀숲이 주변을 애워싸고 있었다. 그 사이를, 바퀴벌레는 세 사람 분량의 무게가 찬 마차를 이끌고 요리조리 잘도 해쳐나가고 있었다. 누누코가 다시 말을 이어간 것은 조금 뒤였다.
"놈들을 죽이려면 장비를 사야겠지. 그리고 칼도." "알고 싶은 것도 있어... 돈을 주고 그걸 알아낼거야." 막연한 생각이었다. 인간의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으로 요한을 덮쳤고, 지금은 그와 함께 행동하고 있다.왜냐하면 인간은 그런 생물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누누코가 알기에는- 사냥에 나서려면 적절한 장비와... 잘드는 칼날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가 무엇인지 아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아는 것은 그게 전부였고, 인간을 사냥하러 도시에 나서는 것은 누누코에게 있어서도 난생 처음있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이 '탈러' 라는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막연한 생각이었다.
"우선은... 누누코네 부락으로 돌아가는게 먼저겠지만." 우선은 그것을 하고싶다.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의 누누코에겐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 200탈러를 흩뿌릴 생각조차도 있었다. 어차피 그런것은 누누코에게 있어서 종이조각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87 헬렌이 흙의 정령에게 속삭입니다. 그녀가 장서고에서 보았던 대로라면, 마법의 기본 원리는 '마력을 매개로 자신의 사상을 현실에 투영하여 개찬하는 것'이고, 주술은 '마력이나 생명 등의 대가를 지불하고 자신의 원하는 대가를 세상에 끌어내는 거래'이고, 정령술은 '주변의 정령에게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고 이야기하는 청원'입니다. 그러니, 헬렌이 흙의 정령에게 저 겁도 없는 미친 도둑고양이의 발치에다가 돌부리를 만들라고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열정이 과한 것인지, 흙의 정령은 돌부리를 만듭니다. 아주 큰 돌부리를요.
"갸, 꺄악?!"
돈자루 도둑이 발을 디딘 곳이 갑자기 융기하며, 거대한 돌덩이 하나가 생겨납니다. 졸지에 자신의 키만한 도움닫기 발판이 생긴 도둑은, 고양이 수인의 장기인 반사신경과 기동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저 지붕 위로 휙 뛰어올라 지붕 사이로 도망쳐버립니다. 그리고 융기한 '돌부리'에 헬렌만 볼 수 있는 흙의 정령의 자부심 넘치는 얼굴이 나타나는데, 마치 '잘했지?'라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네, 퍽이나 잘 했군요. 이 순간, 백과사전의 정령이 또 자기 아는 거 많다고 자랑합니다.
'하급 정령 사역 입문 3장 41페이지, '하급 정령은 대부분 자아가 흐릿하고 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초급 정령사들도 쉽게 통제할 수 있고, 청원이 아닌 사실상 명령이나 강제의 형태로 사역하려고 해도 충분히 사역할 수 있다. 하지만 자아가 흐릿하고 지성이 부족해서 정령사들의 청원을 문자 그대로 수행하기 때문에, 자신의 명령에 깔린 잠재적인 맥락을 하급 정령이 읽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정확히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부탁해야 한다'...
...거 참, 이렇게 잘 알면 빨리 알려주지...라 생각하는 순간에, 지붕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제기랄, 저 미친 고양이년은 자고 있는 정령 배를 밟고 지나가네? 확 고양이 가죽베개로 만들어 버려?"
일반적인 사람은 볼 리가 없는, 척 봐도 괴팍하게 생겨서 괴팍한 말을 하고 있는 할머니, '초가집의 정령'이자 부뚜막의 할머니, '바바 페흐'가 지붕 위에서 어딘가를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 다음에 정령과 대화해 도둑이 도망친 곳을 특정할 수 있을 것!
헬렌은 도둑이 발 디딘 곳이 도둑의 키만큼 융기하는 것을 보며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백과사전 정령이 말을 하는 것에 “알고 있었는데........”하고 한탄하기도 했다. 결국 정령이 만든 돌부리까지 뛰어온 헬렌은 뿌듯해하는 얼굴 부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마워. 이만 원래대로 해줄래?”
한숨 쉬듯 웃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말을 들어준 정령에게는 고마운 마음이다. 정령 친화도가 뭐라고 아무런 대가없이 도움을 주는 걸까. 로렌스 가문에서 높은 정령친화도는 너무나 당연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아니었고 오랜만에 재능을 타고난 헬렌은 백작가 내에서도 정말 특별한 존재였다. 물론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햇병아리이지만.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와아, 저 정도 지성이면 중급 이상의 정령일텐데.
“정령님ㅡ! 저는 로렌스 가의 헬렌이라고 합니다. 저 고양이 수인이 제 돈을 가져갔거든요.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아주 잠깐, 신전의 모든 것이 멈춥니다. 마치 공기마저도, 시간마저도 멈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시간과 공기는 멈추지 않았다고 알려주는 것은, 열심히 서류를 펼쳐보고 읽어보고 숨쉬고 있는 에레야의 소리일 뿐입니다. 뱀파이어란 무엇입니까, 인간들을 사냥하는 존재요, 문명 시대에 남은 마지막 인간의 천적이요, 어둠 속에서 암약하며 인간의 목을 노리는 붉은 눈들입니다. 두려워하는 수많은 눈들이 엘리를 향하고, 그들은 이단심문관 에레야를 도와 가짜 뱀파이어들을 사냥하고 세스타우를 지키고자 노력한 엘리가 아닌, 뱀파이어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를 보고는 비난을 쏟아냅니다.
"괴물!!!"
"죽어라!"
"이단심문관이 뱀파이어와 결탁했다!!!"
그 비난에 엘리의 시선이 다시 에레야에게 향하는데, 에레야는 이미 모든 준비를 다 끝냈습니다. 그녀는 '정숙을 바랍니다' '반론권을 행사하겠습니다' '조용히 해 주십시오' 라는 말을 하다가, 말을 듣지 않자 총을 꺼내서 그들 중에 제일... 찌질해보이는 한 귀족을 냅다 쏴버립니다. 이제보니 엘리랑 술게임을 떴던 사교 파티의 그 남자군요. 어떻게 잘 살아있던 거 같은데 운이 안 좋았습니다.
쾅!!!!!
네, 진짜 쐈습니다.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쏴버리는 폭거에 절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아가리 떡 벌어진 상태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지만, 에레야는 자신의 행동이 전적으로 정당함을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자기 변론을 시작합니다.
"심문, 설명, 변론 또는 그 외의 정당한 사유에 의한 이단심문관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자는 이단심문관 직권으로 이단심문관 행동예규에서 정하는 수위의 제재를 가해 지시 이행을 강제할 수 있으며, 행동예규 5조에 의하면 임의로 처형까지 가능합니다. 주교님. 제가 방금 이야기한 내용에 교회법상 틀림이 있습니까?"
"이, 이런 무례한... 하아... 아니, 아닙니다. 없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조용히 하랄 때 조용히 안 하면, 입을 꿰매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쏴서 멈춰버리겠단 얘깁니다. 에레야는 서류를 조목조목 펼치며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이야기할 때마다, 이단심문관 특유의 위압감이 되살아나서, 옆에 앉아있는 엘리가 점점 더 주눅이 드는 것 같습니다. 에레야는 먼저 '실종자 보고'를 펼칩니다.
"먼저 실종자 보고 문서입니다. 경비대가 세스타우 교회와 저한테 그간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실종신고 건수는 계속해서 월 1-2건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경비대 본부에서 실종신고 숫자는 실제로는 월 200건이 넘게 폭증했음에도 강제로 월 1-2건으로 고쳐서 보고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저도 실종자 건수가 탐문한 내역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적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 에레야는 여러 문서들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에레야가 자체적으로 수집한 증거, 에레야가 짜놓은 사건의 실마리, 그리고 엘리가 가져온 증거, 그간 엘리와 에레야가 열심히 밟아죽인 모든 것들이 서서히 아귀가 맞아 들어갑니다. 그리고 귀족들 중에서도, 몇명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어 표정이 점점 공포에 물듭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루마족 유랑민 대량실종 사건 문서입니다. 주교님도 오늘 처음 들으시는 눈치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이곳저곳 유랑하는 루마족들을 납치한 다음 피를 쪽쪽 빨고 시체는 지하의 식인종들에게 인육으로 던져줬지만, 1차적으로 사건을 인지하고 조사해야 할 경비대의 머리통부터 정상이 아니었으니 사건이 제대로 처리됐겠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저와 저 뱀파이어가 공동으로 지하수로의 식인종 본거지를 소탕한 후 이단심문관 자격으로 수집하고 보존한 루마족의 유품들과, 이 대량실종 문서에 적힌 이 루마족들을 어떻게 했는지와..."
에레야는 주교에게 루마족 대량실종 사건 문서를 넘기고, 주교는 참담한 얼굴로 대량실종 사건 문서를 읽습니다. 그리고 에레야는 거한에게 손짓하고, 그나마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아서 미라 꼴이 된 것만 빼고 온 몸은 멀쩡하던 거한이 엘리가 피를 빨아서 입을 열게 만들었던 여자 사교도를 끌고 옵니다. 그래도 정상은 아닌 게 확실해서, 구속복을 입혀가지고 왔군요. 그런데 무섭습니다. 엘리 쪽을 바라보고는 어떻게든 한 입이라도 맛보려는 건지 모가지를 쭉 빼려 듭니다. 하지만 거한은 엘리를 배려하는지, 재판을 진행하려는지, 머리채를 붙잡고 강제로 에레야 쪽으로 돌립니다. 에레야는 마침내 말을 질문으로 끝맺습니다.
"...그 루마족 시신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루마족 시신인 것은 어떻게 판단했는지에 대해 지하수로 초기 수색 작업 중 체포한 여성 사교도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47차 자기변론을 마치겠습니다."
"...당연히 루마족이었지! 남자들은 전부 머리카락을 변발을 했고, 여자들은 등 쪽에 달 모양 문신이 있었어! 피를 많이 빨았는지 덕분에 피비린내가 안 나서 도축하는 맛이 있다고 좋아하더라고! 하지만 멍청이들이지! 어떻게 저런 멋진 뱀파이어님이 된다는 거야?!"
사교도는 온갖 이야기를 다 하다가, 엘리 쪽과 에레야 쪽을 번갈아 보면서 말합니다.
"그나저나, 사법거래 내용을 잊은 건 아니지? 사실대로 다 말하면, 재판 도와주면, 뱀파이어 님한테 인신공양 시켜주는거 맞지?"
.........이거 아무래도 당사자 의사는 전혀 안 물어보고 참 굉장한 내용으로 사법거래를 한 모양입니다? 항상 엘리한테 당당하던 에레야도 갑자기 딴청을 피우려는 눈치군요.
>>91 그 이야기를 듣고 요한은 허허 웃으면서 다행이다, 다행이야, 라고 말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다행이랄 게 있나 싶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한은 누누코의 사회 상식을 생각보다도 더 과소평가하고 있었던거 같습니다. 2백탈러가 아니라 2천탈러, 아니 2만탈러를 받아도 그걸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면, 탈러는 무거운 쇠쪼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 누누코가 탈러를 받아서 동전 자루로 뭉친 다음에 그걸 막대기에 묶어서 즉석 철퇴로 써서 노예상들의 머리통을 퍼석 깨버리며 다닐 거라 생각했을까요? 만약에 쓸 무기가 그것밖에 없다면, 누누코는 절대 주저하지 않을 인물이긴 하지만요.
"무기, 정보! 돈을 쓰는 법을 잘 알고 계시군요. 원래 인간은 자신에게 생소한 무언가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혹시 '탈러', 즉 '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실까봐 좀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잘 알고 계시니 제가 굳이 말을 얹을 필요는 없겠군요."
요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차를 계속 몰고, 어느새 요한이 그녀와 함께 몸을 의탁했던 비든베일을 지날 때쯤 아침이 옵니다. 하지만 요한은 계속해서 마차를 모는군요. 그러다가 문득 누누코에게 묻습니다.
"그나저나 혹시 석궁 쓰시는 법은 아십니까? 아니면 도끼나 단검 등을 던져서 명중시키는 방법이라던지요."
흙의 정령은 헬렌의 분부대로 땅 속으로 다시 움푹 꺼져버리고, 흙의 정령이 '과도하게' 열정적으로 헬렌의 명령을 수행한 흔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립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원래대로 해줄래?'라는 말은 다른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어 정말로 완벽하게, '원래대로' 돌아갔다는 점입니다. 일단 갑자기 길거리에 사람과 마차의 통행을 막는 거대한 돌덩이를 세워버린 민폐를 없애버린 헬렌은 지붕 위에 보이는 바바 페흐에게 인사하고 그녀에게 도망간 고양이 수인에 대한 정보를 묻습니다. 그 성미 괴팍해보이는 노파는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넘어서, 누가 봐도 분명히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분명한 헬렌을 똑바로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목을 가다듬고는 잠시 머리칼도 가다듬습니다. 그걸 보고는, 또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백과사전의 정령이 나섭니다.
'바바 페흐: 여러 지역에서 여러 이름과 여러 외형으로 나타나는 초가집의 정령으로, 그 외형은 대부분 건물의 노후 정도를 반영한 인간의 형태입니다. 민가의 아궁이와 대들보 등 각종 집안의 대소사를 축복하고 관리하며, 도둑이나 집을 소중히 여기고 청소하지 않는 이들을 저주하고 예의를 지키는 손님과 집을 열심히 수리하는 이들을 축복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인간과 매우 가깝게 지내기 때문에 인간과 유사한 지성을 가지고 있으나, 정령술 적성이 없는 이들의 눈에는 전혀 식별되지 않고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시다시피 평소에는 막 삽니다. 노파는 저 쪽을 가리키면서 말합니다.
"그 뭐냐, 그 걸어다니는 고양이 카펫년은 저쪽 닭대가리 모양 굴뚝 있는 집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네가 로렌스네라고? 로렌스네 집안에서 그런 것도 안 가르쳐주더냐? 그렇게 우리한테 대고 큰소리로 빽빽대면 너 벽에다 대고 혼자 대화하는 이상한 애로 보인다?"
...라고 말하는군요. 아마 정령하고만 대화하는 방법도 백과사전의 정령이 잘 알고 있을까요?
오늘은 말한대로 여기까지 그리고 헬렌과 함ㄲㅔ 있는 백과사전의 정령은 '디스코 엘리시움'이라는 게임에서 주인공에게 이야기하는 인격이자 지적 능력들 중 하나인 '백과사전'에서 모티브를 얻었음! 아마 헬렌주가 괜찮다면 헬렌의 강한 지능의 측면(논리, 심문, 연극 등)을 보조할 여러 인지기능 격의 인격들을 넣을 수도 있을듯!
그리고 헬렌주한테 말하자면 바바 페흐의 이야기는 바바 페흐 개인의 의견일 뿐임. 지금 헬렌이 사는 곳은 판타지 세계관이고, 헬렌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만 있다면 헬렌이 척 보기에는 허공에다 대고 대화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정령과 대화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알아봐줄 수도 있는 것. 바바 페흐의 충고를 따라 마음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채택하거나, 아니면 하던대로 계속 그냥 말소리로 이야기하거나 하는건 헬렌의 자유임.
@@>>100 땅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헬렌은 말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를 마음속으로 복기했다. 그리고 지붕 위의 정령을 바라본다. 백과사전의 정령의 말에 따르면 바바 페흐, 초가집의 정령이었다. 물론 초가집의 정령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 영지의 정령과는 다르게 생겨서 그런가 사실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다.
바바 페흐가 자신이 인간의 말로 대화를 건 것에 대해 지적하자 헬렌은 부끄러운지 조금 얼굴이 붉어졌다. 백작성과 영지 내에서 살 때는 자신이 정령과 대화하는 것을 사람들이 다 그러려니 생각하고 용인해주었기 때문에ㅡ가문을 빛낼 정령사의 탄생에 오히려 이런 티를 내는 것을 더 좋아하곤 했다ㅡ 습관처럼 말을 걸었던 것이었다.
‘다급하다보니 그랬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헬렌은 미소를 지으며 바바 페흐에게 말하고는 이제 도둑을 잡으러 가려고 한다.
‘바람의 정령아. 바바 페흐가 말한 닭머리 모양 굴뚝 있는 집으로 가는 길 중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해줄래?’
이번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부탁을 해본다. 바람의 정령이 길을 안내한다면 헬렌은 그 길을 따라 달려갈 것이었다.
/오 그런 모티브가 있었구나~! 백과사전의 정령 은근 개그에 귀엽고 유용해 ㅋㅋㅋ 인지기능 격의 인격이라고 한다면 논리의 정령? 같은 게 붙어서 같이 다니는 느낌이려나? 아니면 다른 방법인가? 캡틴 항상 고마워~~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103 "정말요? 그럼 소개시켜주시는 김에 일족의 가주님을 소개시켜줄 수 없을까요?! 혹시 일족 만찬에 올려주실 수 없나요? 네?!"
"자, 다음으로 청문하실 사항은... 야, 이 년 아가리 물려라."
에레야는 아까 전의 귀족과는 달리 이 사교도 여성에게는 아직 물어볼 것이 남았는지, 이용 가치가 남았는지 재갈마 물리라고 말합니다. 그에 거한은 재갈을 들고 와서 사교도의 아가리에 쑤셔넣는군요. 그러자 사교도는 읍읍대면서도 구속복에 묶인 채 일어나서, 그래도 몸을 꿈틀거려 통통 뛸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엘리 쪽으로 다가가려고 하다가, 보다 못한 거한이 정강이를 걷어차자 쓰러집니다. 거한은 엘리에게 한숨을 쉬고는 그 사교도 위를 깔아뭉개 앉아버리고 에레야가 하는 말을 듣습니다. 다시 상황을 진정시킨 에레야는 이단심문관의 위용을 완전히 회복했고, 그녀를 몰아붙여야 할 청문위원과 배심원들은 오히려 더 주눅이 들어 누가 청문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그, 그, 그렇다면... 왜 하필 뱀파이어입니까? 왜 조사를 위한 현지 요원으로 뱀파이어를..."
"신의 딸 예슈아께서 선한 사마리자 사람의 비유로 이르신 바와 그 이르신 바에 근거해 교회법과 이단심문관 행동예규에 따르면, 필요한 경우 태양교의 교세 확장과 이단의 박멸이라는 대의의 완수를 위하여 다른 이들과 협력할 수 있음은 명백합니다. 여기 앉아있는 뱀파이어는 뱀파이어로 변이하고자 한 반-뱀파이어 혐오체를 혼자서 2마리나 살처분했고, 그 과정에서 민간인을 구출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그 제가 말해봤자 입 아프죠. 증인을 호출합니다!"
에레야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증인을 호출하자, 정문에서 한 작은 소녀가 걸어나옵니다. 안 본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머리카락이 발치까지 닿을 것 같은 하플링 여급 비냐입니다. 비냐는 익숙한 듯 증인석에 앉고 에레야를 똑바로 바라보고, 에레야의 질문에 사실 그대로 답합니다.
"증인 비냐, 당신은 저기 앉아있는 뱀파이어인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에 의해 두 번이나 죽을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그 진술이 사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까?"
"네. 확인합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에레야는 서류를 한참 뒤적거리더니, 큰 소리로 읽기 시작합니다. 서류 내용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귀족들과 주교의 표정이 무섭게 썩어 들어갑니다.
"레트 자작! 방금 엘리가 박살내고 온 레트 자작은 귀족들이 이단심문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면, 이를 세탁해 주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마리엘의 허브 42번 창고, 루마족 행상으로 위장한 비밀 황금마차. 이것도 전부 여기 나와있군요. 그리고 여기에 참여한 귀족 명단. 베르 훈작, 가이세리 남작..."
"닥쳐!"
"모함이다!"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졸지에 부패한 성직자로 지목당한 주교는 일어나더니 에레야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비난합니다.
"지, 지금 신성한 신전에 모기년을 들여와놓고, 이제는 주교를 모함해?! 이건 더 이상 청문회도 아니야! 내가 당장 당신을..."
"아직도 청문회가 끝나고 긴급 이단심문으로 바뀐 걸 몰랐습니까, 주교님?"
에레야의 차갑게 식은 목소리에 모두의 표정이 차갑게 변하고, 그 말과 함께 지하에서 끙끙대던 거한들이 몰려와 연장을 챙긴 채 사람들을 노려봅니다. 에레야를 막아야 할 경비병들과 신전 근위대도, 지금까지 나온 증거와 상황만 봐도 누구 편을 들어야 할 지 확실한지 나서지 않고 상황만 살필 뿐입니다. 에레야는 엘리의 어깨를 툭툭 치고 말합니다.
"엘리. 만약에 저기 배심원석에 앉은 귀족놈들이건, 청문위원석에 앉은 놈팽이들이건, 위원장석에 앉은 주교건, 만약에 도망치려 하면 붙잡아서 제압해. 팔다리 하나 날아가도 상관없어. 지혈하면 되니까 문자 그대로 죽이지만 마."
무심하고 괴팍한듯 하면서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칭찬의 뉘앙스를 뒤로 하고, 헬렌은 바람의 정령에게 부탁합니다.
'바람의 정령아. 바바 페흐가 말한 닭머리 모양 굴뚝 있는 집으로 가는 길 중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해줄래?’
우우우우우우ㅡ
흙의 정령이 헬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융기한 표면에 자신의 얼굴을 만들었던 것처럼, 바람 역시도 자신의 얼굴이나 감정을 표현할 실체는 없지만 마치 말소리처럼 휘이이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멀리서부터 바람을 몰아오고... 바람의 정령이 헬렌의 부탁을 듣자마자 아무런 바람도 없이 정적으로 가라앉은 마을에 갑자기 칼바람이 불고, 엉거주춤하던 헬렌은 마치 뒤에서 누군가 떠미는 것처럼 쫓겨나는 것처럼 바람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꺄아악?!"
"갑자기 이게 뭔 바람이야?!"
"꼬꼬댁!"
바닥에서 애벌레를 쪼아먹던 닭이 갑자기 비둘기와 기러기마냥 하늘을 훨훨 나는 기적이 일어나고 동네 사람들이 쌓아둔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집니다. 헬렌이 쫓겨나듯 바람의 인도를 따라 골목 하나를 돌면,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바뀌어 그녀를 밀치듯이 하고, 그러기를 반복하다 어느샌가 헬렌은 바바 페흐의 표현을 빌려 '닭대가리 모양 굴뚝 있는 집'으로 참 빨리 도착했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이리저리 너무 휙휙 바뀐 나머지 그녀의 돈을 훔쳐간 도둑이 바닥에 쓰러졌다가 겨우 일어났는데, 헬렌을 보자마자 도망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휘이이이이이ㅡ
하급 정령은 정령사의 청원을 기계적으로 이행한다는 원칙은 여기서도 적용되어, 헬렌이 스무 걸음만 가면 그 집인데도 불구하고 정령은 아직 헬렌이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바람을 불어냅니다. 그리고 닭머리 모양 굴뚝 위에 올라가 있던 양동이가 떨어지더니 도둑의 머리를 깨버립니다.
@@>>108 굉장한 바람이 불어오고 헬렌은 그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떠밀려 뛰어가게 되었다. 문제는 그 바람이 주변의 물건들을 떨어뜨리는 난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려나. 이번에는 좀더 상세하게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실패였다. ‘안내’가 아니라 ‘알려’달라고 했어야 했나. 어쨌든 헬렌은 속으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등 떠미는 바람에 따라 달렸다. 체력은 자신있었으니 큰 문제없이 바바 페흐가 말한 집 근처로 도착할 수 있었다.
“앗!”
그리고 그 집 근처에서 도둑을 발견했고 도둑이 바람에 휩쓸려 넘어진 것도 확인했다. 그렇지만 아직 바람의 정령의 길안내는 끝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집까지 떠밀려가는데 이내 양동이가 도둑의 머리 위로 떨어져 그 머리를 깨버렸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쓰러진 도둑. 정령에게 도움을 잘못 요청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성공인 걸까. 헬렌은 어안이 벙벙한 느낌이 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바람이 멈추자 헬렌은 바람의 정령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쓰러진 도둑에게 다가가 돈주머니를 챙겼다. 그리곤 옆에 있는 나무가 있길래 나무의 정령에게 부탁했다.
‘나무의 정령아. 이 아이를 다치지 않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묶어서 내 키 정도 높이에 매달아줄래?’
>>109 조부모대와 부모대에 정령 적성이 발현되지 않은 것까지 한번에 정산이라도 하려는듯 헬렌의 정령 적성은 예외적이고, 특출나고, 규격 외적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평생을 바쳐야 얻을 정령의 총애를 그저 출생의 권리로 얻었고, 하급 정령들에게 있어 그녀의 부탁은 부탁이 아니고 명령조차도 아닌, 이 세상의 맞는 계에 존재하고 있는 이상 따를 수밖에 없는 물리 법칙과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헬렌은 하급 정령을 다룰 때는 마치 세상의 물리법칙을 서술한다는 생각으로 엄밀성을 기해야겠다 절감하며 나무가 도둑고양이를 엮어내는 것을 지켜봅니다.
제가 그녀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서 하였던 설명은 그녀의 마음을 크게 자극하게 된 것만 같아요.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저의 말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살짝 눈웃음을 한번 지어보였어요
그렇게 저희는 물가를 떠나서 목적지를 향하여 계속 이동하였어요. 어느덧 숲을 덮고 있었던 어둠은 빛이 다시금 도래하는 순간이 되었다는 것을 저희에게 보여주듯이 하늘로부터 천천히 내려쬐는 빛줄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어요. 얼마후 어둠은 숲의 구석에 남고 빛이 숲에 더 많은 자리를 얻었어요
"그렇네요... 빛이, 햇빛이 비춰주고 있어요"
저희가 그러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는 못했어요. 멈추지 않는 듯한 기세를 갖고 있던 그녀 이였더라도 사람으로서의 한계가 있을거에요. 저도 그럴 것이고요. 이 쯤에서 저는 소지품에서부터 지도를 꺼내보았어요. 이제 빛 아래서 표식들을 살펴보면서 저희의 위치와 목적지까지의 남은 것을 계산해보았어요. 음~ 저희가 계속 올바르게 갈 수만 있다면 이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어느정도 길을 가던 저는 멈춰서는 그녀에게 못했던 휴식을 이곳에서 마저 하는 것을 제안하기 이전에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기로 했어요
@@>>110 헬렌은 나무에 소녀가 엮여 매달리는 것을 지켜봤다. 일단 상대를 정확히 관찰하려고 했다. 일단... 기절한건가?
“얘. 괜찮니? 일어나 봐.”
하며 고양이 소녀의 뺨을 콕콕 찔러본다. 그래도 안 일어난다면 어깨를 잡아 흔들어 보았을 것이었고.
“어쩐다. 경비대에 넘겨야 하려나?”
절도는 나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헬렌은 앞뒤가 꽉 막힌 고리타분한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낭비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애를 기절까지 시킬 정도로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래. 사실 그냥 잡아서 돈주머니를 받고 훈계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에 과실로 인해 애가 기절까지 했던 점에 대해서는 살짝 미안한 감이 있었다.
아냐. 생각해보니 소매치기가 너무 노련했고 발도 엄청 빨랐다. 상습 절도범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경비대에 넘겨서 다신 이런 일을 하지 못하게 혼쭐이 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단 소녀의 말을 들어보고자 하는 심산이다.
제일 먼저 깨어난 건 꼬리입니다. 움찔움찔거리더니 자기 다리와 사지를 엮은 나무 따위에 아무렇게나 휘감기다가, 나무에 난 가시에 쿡 찔리더니 꼬리가 펑! 하고 터지듯 부풀어오릅니다. 그리고 그 따끔한 통증이 사라진 의식을 일깨워주었군요. 도둑소녀는 헬렌을 보자마자, 그리고 묶인 팔다리를 보자마자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셔서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합니다.
>>111 주변을 둘러보니 나무가 여럿 쓰러져 있어 햇빛이 들어오는 구간이 보입니다. 햇빛이 들어오고 있어 검은 숲이라는 이명이 무색하게 밝게 빛나고, 축축하고 부슬부슬한 나무와 땅이 버석버석하게 말라 붙었습니다. 아마 축축하게 젖었는데 당장 말려야 하는 것들, 예를 들어 건빵이나 육포 같이 젖으면 큰일나는 것들 따위가 있다면 여기서 말리고 가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하는 김에 냇가와 늪지, 습지대를 건너며 잔뜩 젖었을 양말 따위도 좀 말리고 말입니다. 빛, 그것도 햇빛과 같이 뜨거운 고에너지 열선이 없는 이곳에서 이런 곳은 흔치 않습니다. 드워프족들과 같이 적극적인 개발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더더욱이요.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곳은 쉬기 딱 좋습니다.
"후아아... 따뜻하네요."
...그리고 베스니는 벌써 짐을 내려둔 채, 햇빛을 그대로 받아서 바싹 말라 하얗게 타버린 이끼 침대 위에 올라가 눈을 감고 있군요.
고양이 소녀의 얼굴이 움찔움찔거리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사연을 들어보면... 신전에서 모시는 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좋으신 천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악한 악마들도 이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것 참 하며 혀를 차지 않을지 걱정이 되는군요. 소녀는 겨우겨우 입을 열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백과사전의 정령은 이 상황에서 눈치가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없어서 그러는 것인지, 헬렌의 양심을 칼로 찌르는 듯한 배경 설명을 덧붙입니다.
'펠리네 수인족은 절도, 가품 매매 등 각종 경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극단적인 사회적 차별을 겪습니다. 또한 펠리네 수인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사법 체계에도 존재하여, 타인이라면 간단한 벌금이나 훈방으로 끝날 범죄도 펠리네 수인족이라면 신체 불구형이나 화형과 같은 극단적인 처벌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뭐 그렇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둑질은 도둑질이고, 헬렌도 뭐 여기 놀러 나온 건 아니니까, 헬렌이 이 소녀를 봐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요. 봐주면 고마운 거고, 아니어도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119 엘리 딴에는 그냥 조금 빠르게 섰을 뿐이지만, 사람들 입장에서는 고개를 돌렸더니 이쪽에 나타났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더니 저쪽에도 나타나고, 고개를 또 돌렸더니 그쪽에도 있는 상황입니다. 뱀파이어가 이단심문관과 함께해서 자기를 대적하는 것도 무시무시한 상황인데, 거기에 더해 저 정도로 날쌘 뱀파이어가 나타났다고 생각하니 귀족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십니다. 에레야는 한 손에 총을 든 채로, '긴급 이단심문'을 계속합니다. 평소의 결연하지만 정중했던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분노에 찬 듯한 웅변이 신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마치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고 외치는 듯 에레야는 역으로 귀족과 주교를 몰아붙입니다.
"피에흐 뮈테 주교! 당신은 대주교좌에서 사건을 종결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고 이야기하면서 나한테 이 문서를 보여주었죠. 예. 종결하라고 했죠. '수사의 상당성이 의심되는 추가적인 사건이 없을 때' 종결하라고 했는데 당신은 이 부분을 뺐습니다!"
"그, 그건...!"
"이유야 내가 알지! 당신이 저 귀족들한테서 챙긴 돈이 한두푼이 아니니까!"
에레야는 속속들이 증거를 제출합니다. '훔친' 증거부터 정상적으로 수집한 증거까지 모든 것이 내밀어지고, 에레야는 자신이 확보한 것과, 엘리가 경비대 본부에서 처리한 것을 보여주는군요. 물론 신전에 들어오면 반-뱀파이어 혐오체들은 전부 불타야 하지만, 엘리가 수호부의 영향으로 멀쩡한 것처럼 그들도 무언가 특수한 처리가 된 것 같습니다. 레트 자작은 창에 꽂힌 상태 그대로 들어와서 끄르륵거리며 쓰러져 있고, 사제복 입은 여자는 가슴에 태양교 심볼 수십개가 처박힌 채 기절한 상태입니다. 경비병들이 그새 이 레트 자작을 가져온 모양이군요. 세스타우 성의 거대한 음모를 지탱하던 축들 중 두 개가 박살난 꼴을 보자, 귀족들은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십니다.
에레야는 귀족들과 주교를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더니, 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불경한 사술을 통해 태양의 교세를 위축하고자 시도한 혐의, 이단의 유혹에 빠진 혐의, 수백명의 인명을 살상하고 수만명의 인명을 위험에 빠트린 혐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나 이단심문관 에레야는, 이 자리에 모인 너희 벌레들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그리고 너희의 형량은 오직..."
엘리가 기껏 가져온 서류를 바닥에 팍 던진 에레야는 허리춤에서 철퇴를 꺼내고, 그들에게 외칩니다.
"...죽음이라!"
하지만 귀족들과 주교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있고, 거한들도 움직이는 대신에 엘리에게 물어볼 뿐입니다. 아마 이렇게 멋지게 선언한 다음에 좀 복잡한 실무 절차가 있나 보군요. 얼굴을 붕대로 싸맨 거한은 엘리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말합니다.
@@>>121 헬렌은 고양이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백과사전 정령의 설명도 듣는다. ‘알려줘서 고마워.’ 백과사전 정령의 이번 설명은 이제까지 중에 가장 도움이 되는 설명이었다. 물론 그것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사정도 모르고 다그치는 사람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도둑질은 안 돼.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우는 얼굴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을 다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 의심하여 들지도 않았고. 일단 현 상황에서는 정도의 말을 할 뿐이고 보호자 인계라는 방법이 적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혼이 났으면 또 다시 도둑질은 하진 않겠지.
‘나무의 정령아. 이 소녀를 바닥에 내려두고 풀어준 뒤 원래대로 돌아가줘.’
소녀가 안전히 풀려난다면 그 손을 잡고 집 문을 두드리려고 한다. 아이의 어머니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인계하려는 생각이다.
>>120 두 사람은 휴식을 가집니다. 여기서 오래 산 아앨라나도 검은 숲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이 숲에서 햇빛을 쬘 기회는 달에 몇 번 꼽을까말까 할 정도로 별로 없었던 만큼, 아앨라나는 반갑게 햇빛을 맞이하고 잠시 눈을 감습니다. 그간 베스니의 한쪽 다리를 말다리로 바꾸거나 온갖 불행을 만들 것처럼 겁을 주던 가말라시엘도 이번에는 눈치를 챙기기로 결심했는지, 안심이 될 법한 이야기를 합니다.
"잠시 보호 결계를 만들겠습니다. 불곰이나 괴물이 온다고 막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너무 늦기 전에 깨울 수는 있겠죠."
...그렇게 말하니 안심하고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앨라나는 언제까지 휴식하나요?
...라고 말하며 거한이 양피지를 꺼내들어 엘리가 읊어주는 일족 영지의 주소를 적습니다. 뭐, 엘리도 자기 살아있을 때 '인편'으로 산제물을, 그것도 이단심문소가 주는 산제물을 받을 줄은 몰랐을 겁니다. 다른 거한들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단과 괴이를 쳐죽이기 위해 톱니바퀴와 캠이 연결된 기계처럼 배심원석으로 가서, 알아서 차라는 듯 수갑을 던집니다. 그리고 동작이 느리면 어깨를 철퇴로 내려쳐 부숴버리는 방식으로 다른 이들의 동작을 재촉하는군요.
@@ >>98 "...요한은 누누코를 얕보지 마." 그의 반응에 엄중히 경고하듯이 말했다...지만, 딱히 반박할 것은 없고. 괜스레 심드렁한 기분이 들어 정면을 향하고 있던 몸을 마차 바깥쪽으로 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신성한 들판에도 교환 정도는 있었어. '거래' 는 그것의 연장이라 들었고." "붉은 잎 나무의 축복이지... 후흥.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누누코는 그렇게 말했고, 마차와 시간은 그저 유유히 흘러가 어느덧 비든베일을 지나고 있었다. 이르다고 해야할지, 벌써 동이 트고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그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누누코의 귀가 요한의 물음에 쫑긋 올라갔다.
"석궁이라면... 이상한 장치 활이구나. 물론 알고있어." "누누코에게는 그 둘이 좀 더 편할뿐이야." 그 둘이라면 투척을 말하는 것일테다. 당장 손에 있는 것을 던져서 맞추면 되는데 뭣하러 그런 복잡한 장치가 필요하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않아 있었던 저는 자리에서 평온히 몸을 맡기듯이 기대었어요. 그대로 있어서 신체가 한 껏 풀어지자 천천히 졸음이라는 이름의 방문자가 저에게 오고있어요...
"고마워요, 그것은 큰 도움이 될거에요"
저는 이때 먼저 나서서 가말라시엘 님까지 친히 도움이 주는 이 순간에 지팡이를 살며시 품으로 끌어안듯이 잡고는 눈을 감은채로 흐릿하게 미소를 한번 지어보이고는 중얼거리듯 말했어요. 이것은 드문 기회니까 제대로 활용해야겠어요. 충분한 만큼 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시간을 너무 허비해서는 안될 거에요. 기운을 차리고 난 다음에는 다시 행동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지요
>>123 나무의 정령은 헬렌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소녀를 풀어줍니다. 소녀는 헬렌이 도둑인 자신을 그대로 풀어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어안이 벙벙한 채로 헬렌을 올려다보다가 허무하게 손이 채이고, 헬렌은 문을 두드립니다. 하지만 헬렌이 소녀에게 '도둑에게 수갑보다 더 악질적인 구속을 기껏 해놓고, 그걸 그냥 풀어버린다고?'라는 의외를 주었듯, 이번에는 그 소녀가 사는 닭대가리 굴뚝집이 헬렌에게 또다른 의외를 줍니다. 노크를 아무리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아 슬쩍 문을 열어보니, 작은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있고, 비쩍 마른 고양이 수인 한 명이 그녀를 맞이합니다. 긴 머리칼과 갸름한 턱선이 아니라면, 여자라는 것도 겨우 알아봤을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헬렌을 보고는 바로 자기 할 말만 합니다.
"도둑질은 미안하게 됐습니다. 수색대에 쓸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쓸모 없는 년일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오늘 일진이 안 좋았다니깐요! 갑자기 바람이 불지, 갑자기 하늘에서 양동이가 떨어지지..."
"운 좀 안 좋아서 탈락할 놈이라면 잘 탈락한 거다. 아무튼 넌 돈 돌려주고, 꺼져."
쾅!!!!!
닭대가리 모양 굴뚝집이 문전박대하듯 문을 닫아버리고, 정적만이 남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를까봐, 아는척 좋아하는 백과사전의 정령이 이럴 때 필요한 아는척을 해줍니다.
'베르누 수색대: 베르누 수색대는 왕국의 다인종, 다계급, 다계층 정보 기관입니다. 밀정, 조사, 잠입,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공무 수행을 위해 범죄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제한적 범죄 면허를 발급받기도 합니다.'
>>131 "물물교환을 아는 것과, 화폐 경제를 아는 것은 조금 다른 개념이라서 말입니다. 먹을 수 있는 고기 한 덩이와 누군가를 찌를 수 있는 칼 한 자루를 바꾸는, 즉 직관적인 가치를 즉각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 게 아니라, 오지거 개래의 수단을 위해서만 이용되는, '가치가 있다'는 믿음으로만 지탱되는 화폐를 이용한다는 발상은 생소할 수도 있으니까 한 말이었습니다. 제가 자립을 도와드렸던 한 부족민 친구는 화폐 경제에 대한 설명을 장장 일주일 동안 듣고 결론내리기를, 현대 상업을 신봉하는 이들은 전부 정신병자라는 겁니다! 제가 봐도 좀 그런 면이 있지요."
...라고 말합니다. 이 긴긴 말을 대충 요약하자면, 딱 앞에 있는 말만 들으면 됩니다: 물물교환을 아는 것과, 화폐 경제를 아는 것은 조금 다른 개념이라서 말입니다. 아무튼 요한이 보기에도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은지, 요한은 턱짓으로 짐칸을 가리키고, 누누코가 짐칸을 열어보면 도끼와 칼 따위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대체 이렇게나 많은 걸 무슨 목적으로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준비했으니 좋...기는 개뿔. 요한은 상황을 설명합니다.
"그럼 잘 됐습니다. 지금 우리의 정당하고 독점적인 노동의 산물을 빼앗아가려는 비신사적인 친구들이 달라붙어서 말입니다. 그 도끼랑 칼로 비신사적인 놈들에게 비신사적인 방식으로 대응해 주십시오."
잠에 듭니다. 수면 속에서, 아앨라나의 몸은 중력이라는 그녀를 이 땅에 속박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합니다. 앨리스님의 가르침도 떠오르고, 뷔르트겐 호수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의 전경도, 그리고 한때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연락이 끊겨 그냥 잘 지내겠거니ㅡ하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하지만 피로의 마법도 피로가 조금씩 풀릴수록 힘이 약해져서는, 점점 그녀를 속박하는 중력과의 싸움에서 져가기 시작해, 문득 아앨라나는 자신이 잠에서 깼다는 사실을, 햇빛이 참 따갑다는 사실을 느끼고 눈을 뜹니다. 베스니는 아직도 세상 모르고 쿨쿨 자고 있습니다만, 아앨라나는 벗어놓은 양말이 바짝 마른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해가 조금씩 서쪽으로 갈까 말까 하는 것이, 하루에 두 번이나 숙영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슬슬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32 어느새 으악, 아이고 하는 곡소리와 퍽, 딱, 깡! 하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무하는 폭력의 장이 된 신전을 떠나서, 에레야는 자신이 준 특수한 수호부의 영향 없이도 숨쉬고 있을 법한 곳으로 엘리를 데려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레야는 엘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엘리가 생각하던 것처럼 '그동안 수고했다'며 철퇴를 꺼내 머리통을 터뜨리는 대신, 의외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원래는 네 존재는 최대한 숨기고 사건을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배심원들 말마따나 그 모든 끔찍한 상황을 겪고도 살아남은 '협력자'의 존재를 대충 얼버무릴 수는 없어서 말이야. 우연히 만난 별종 뱀파이어의 도움을 받았다고 처리할 거고, 그 별종 뱀파이어는 바로 너야.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길이 갈리지. 이단심문의 꽃은 역시 공개 화형이고, 그 전에 무슨 일을 저질러서 장작더미 위에 끌려가게 되었는지 대중들에게 설명하는데... 그 과정에서 네 존재도 대충은 설명할 거거든. 여기서 어떻게 이야기할지는 네 의사를 들어보려고 해."
에레야는 꽤나 진지한 얼굴로 두 가지 옵션을 제시합니다.
"첫째, 네 이름을 적당히 숨기고, 동방귀족 옐리사베타 같은 다른 가짜 신분이나, 신원 불상의 용병 같은 엉뚱한 신분을 댄다. 이 경우에 넌 세스타우 성을 떠나게 되면 널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고, 이건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내가 보장할 거야. 좋은 의미로는 너한테 복수하려고 칼을 들고 찾아오는 미친 년놈들이 없을 거고, 나쁜 의미로는 어딜 가도 넌 그냥 머리 희고 눈 빨갛고 대낮마다 가면 뒤집어쓰고 다니는 이상한 여편네 취급이나 받는거고. 두번째, 네 정체를 밝히는 거야. 아직도 네가 우리를 도운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뱀파이어가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는 걸 만방에 알리는거지. 이것의 장단점은, 정확히 내가 말했던 첫째 길의 정반대다."
소녀는 헬렌에게 돈을 휙 던져줍니다. 후드에 걸린 고양이귀가 바닥에 깔릴 듯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쭉 올라가더니, 주먹을 꽉 쥐는군요. 그리고는 홀연히 옆으로 사라집니다. 그래도 그 베르누인지 배터져인지 뭔지, 수색대에 들어가려고 시험을 보던 게 사실이긴 한지, 헬렌이 잠시 안 본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헬렌은 다시 돈자루를 얻었습니다. 넉넉한 돈자루도 얻었겠다, 다시 의뢰나 탐사를 알아보기 위해 정보를 사거나, 용병을 알아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 이 정도의 마을이라면 마차 여관이 그나마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군요!
>>143 "넌 정말 뭘 봐도 특이한 뱀파이어다. 내 짧은 삶에서는 두번째고, 이단심문관 되고 나서는 처음이야."
에레야는 그렇고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처음에 불타는 여관, 그 난리통에서 만났던 그때와는 다르게, 에레야는 마치 엘리의 외견적 나잇대, 즉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의 소녀를 보는 것처럼 대견스럽다는 얼굴로 보는군요. 사실 나이차이를 숫자 그대로 적용한다면 입장은 반대지만, 엘리는 뱀파이어의 기준에서 살 날 한참 남은 '아기 때 먹은 젖피가 아직도 안 마른 젊은이'고 에레야는 인생의 절반을 산 좋게 말하면 노익장, 나쁘게 말하면 아지매니까 말입니다.
그리고는 엘리에게, 다른 것을 또 질문하는군요.
"이단심문소 협력자 보상 규정에 따르면, 재량에 따라 좀 달라지긴 하지만... 넌 엄청 많은 일을 해줬어. 네가 만약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세스타우 귀족들도 싹 다 태워버리겠다, 남는 귀족 이름이랑 귀족영지 중에 마음에 드는 거 몇 개 골라서 이 동네에서 지역 유지라도 하라고 시켜줬을 거야. 만약 네 성씨에서 '블라드'만 없었다면... 왜, 블라드 일족이 좀 옛날에 안 좋은 의미로 많이 날렸잖냐... 아무튼 그 성씨만 없었다면 아마 세스타우에 가짜 뱀파이어가 아니라 진짜 뱀파이어인 네가 경영하는 영지가 생겨났을 수도 있었겠지. 각설하고, 그러니까 기본적인 보상은 줄 거야. 예를 들어서 이단심문관 에레야의 이름으로 이 뱀파이어는 '일단은 무해하다'고 보증하는 문서를 써 준다던지. 그리고 다른 보상 하나도, 지역 귀족사회의 대규모 이단 타락 사건을 해결하고 온 이단심문관의 정치력이 닿는 선에서 가능한 소원은 뭐든 하나 들어주는 거로 하지."
뭘 원하나? 라고 묻는군요. 뭐, 원할 수 있는 건 많습니다. 돈도 되고, 책도 되고, 아니면 동료도 되고...
저는 그렇게 잠들었고 꿈 속 세상에 도달했어요. 그곳에서 저는 과거에서 비롯한 여러가지를 보았어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요? 저는 더는 그 곳에 있지 않았어요
"꿈... 빛이 찌르듯이..."
그 모습이 이리저리 달라지는 꿈 속으로부터 다시금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의 그 뜬 그 눈에는 익숙한 숲의 모습과 동시에 이곳에서는 드물게도 강하게 저에게 내려쬐는 빛에 대한 느낌이 남았고 저의 입에서는 말이 흘러가듯이 나왔어요. 주변을 둘러보면 그녀는 지금도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어요. 제가 꿈 속으로 떠나고 돌아온 것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거나, 그녀는 그동안 육체적으로 더 많은 힘을 썼으니 좀 더 피로가 쌓여있던 것이겠지요?
"베스니씨 일어나세요~ 꿈 속 세상으로부터 돌아올 때에요~"
하늘을 올려다 보았을때 해의 위치가 미루어 보면 지나간 시간은 짦은 것도 긴 것도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러니 이제 길을 떠나야할 시간이에요. 저는 챙겨야 될 것들을 가지고는 그녀의 가까이에서 그 신체를 조심스럽게 가볍게 쿡쿡 찌르듯이 하면서 말했어요. 그녀가 실제로 꿈을 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베스니는 아무래도 좋게 말해서 일어나는 스타일은 아닌 듯합니다. 뭐, 많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자겠다. 10분만 더 자겠다 하면서, 그 10분을 되는 한 최대한 연장시키려는 인간 군상이요.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 옆에 있는 아앨라나는 그녀의 어머니도, 보호자도, 아니면 유사한 법적 의무를 지니 늑 누군가도 아닙니다ㅡ 그냥 뷔르트겐 호수까지 우연히 같이 가게 된 동행자일 뿐이죠. 그래서인지, 아앨라나의 수고를 덜기 위해, 아앨라나가 양말을 신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는 동안 가말라시엘이 아앨라나의 수고를 덜어주려는 듯, 난데없는 번개를 만들어냅니다.
콰콰콰쾅!!!!
거대한 천둥 소리에, 베스니가 아마 그 나이를 먹고도 천둥 소리에 쪼는 찔찔이는 아니겠지만, 마른 하늘에, 그것도 자고 있는데 얕은잠에 천둥 소리가 들리면 깰만합니다.
저의 행동에도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어요. 아마도 계속 이럴 것 같아요. 그녀는 잠이 많은 사람, 깊은 사람인가요. 하지만 이대로 계속 두고는 시간이 마냥 가도록 할 수는 없어요. 그녀를 깨우기 위해서는 과감해지거나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제가 이동할 준비를 마무리하는 동안에, 저희가 잠들기 전에 먼저 나서서 도와주신 것처럼 이번에도... 저의 의도보다 과감했던 가말라시엘 님의 조치로 인해 그녀는 확실히 깨어날 수 있었어요. 그녀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거에요. 갑작히 만들어진 천둥의 우렁찬 소리는 그렇겠지요
"그렇지 않아요, 이것은 깨어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울리는 천둥 소리이에요"
저는 소리로 인해 순간적으로 조금 움츠러들었다가 곧바로 돌아왔고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서는 그렇게 묻는 그녀에게 그리 대답해주었어요. 저는 대략 준비가 된 것 같으니까, 이제 그녀가 할 차례에요. 해야 될 것을 하고나면 얼마 남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서 가도록해요
>>148 베스니도 어느새 짐을 다 챙겨서 출발할 채비를 마쳤고, 두 사람은 이제는 정말로 뷔르트겐 호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을 원기 삼아 앞으로 나아갑니다. 장거리 행군 상황에서 애매하게 쉬면 근육이 굳어버려서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푹 쉬었으니 상황이 좀 다릅니다. 밤에 자야 하는데 못 잔 잠을 지금 잔 셈이라 치면, 오히려 컨디션이 아주 좋아졌다 볼 수 있죠. 두 사람은 한층 나아진 기분, 뽀송뽀송해진 양말, 바싹 마른 옷가지와 함께 기분 좋게 발을 내딛습니다. 백 걸음도 못 가 만난 습지에 다시 젖어버렸지만 뭐 어떻습니까. 잠깐이라도 '발'과 '양말'이란 게 마를 수 있는 존재라는 걸 확인했는데.
"후우, 후우, 뷔르트겐 호수..."
베스니는 뷔르트겐 호수를 묘사하기 위해 노트의 가장 많은 페이지를 남겨놨다고 자신만만해하며 웃는군요. 이거, 호수가 대단하지 않으면 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습니다. 정말로...
>>146 축복받은 물건이라. 엄청나게 많을 겁니다. 태양교의 각인부터 그 외 기타등등 모든 것까지. 주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아마 이단심문관이 아니더라도, 신실한 사람이더라도, 그냥 달라면 줄 겁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상대가 그냥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블라드 바토리 체페슈, 뱀파이어라는 겁니다. 네, 태양교의 신성한 힘으로 축복받은 것에 노출되면 고통스러워하고, 너무 오래 노출되면 죽는 존재 말입니다. 그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엘리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에레야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철퇴를 꺼내더니 짧게 성가를 외워 태양의 힘을 담고는, 엘리의 손가락을 때리는 것도 아니고 슬쩍 대봅니다.
치이이이익...
그리고, 엘리는 진심으로 자기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은, 아니, 자기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의 격통에 시달리고, 마치 태양이 어떤 전염병이나 기생충처럼 그녀의 팔을 따라 심장까지 뻗어가려는 듯한 환상에 빠졌다가, 에레야가 철퇴를 빼자마자 그 느낌이 조금씩 사라져 잦아듭니다. 에레야가 이거로 말하려는 것은 명백합니다.
"줄 수야 있는데, 진짜로?"
//왜 안올라오지 하고 있었는데 여태껏 이걸 안보고 있었네 진짜 미안하이 내가 씹을라고 씹은게 아녀 늙어서그래!!!
에레야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손수건을 먼저 꺼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그 손수건을 펼치더니, 그 손수건 위에 태양교의 상징인 태양 인장을 올려둡니다. 에레야 같이 '신실한' 이단심문관의 몸에서 한참 오랫동안 함께 있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축성을 잘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지켜보는 것만으로 눈알이 구워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아무튼 에레야는 손수건에 태양 인장을 돌돌 싸더니 엘리 쪽으로 휙 던지고, 엘리는 잡는 것만으로 마치 인간이 맨손으로 녹기 직전의 쇠를 잡는 것처럼 달달대다가, 장갑을 끼고 나서야 겨우 참을 만하게 잡게 됩니다.
"...그래. 혹시라도 그거 말고 다른 보상을 요구할 생각이 있다면 나를 찾아와라. 아니면 편지를 하던지. 할 수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
에레야는 엘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인간 문화에 꽤나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뱀파이어 같이 보통은 화형당하는 입장에서 화형을 집행하는 건 수천년을 살았대도 쉽게는 못하는 경험이야. 이번에 저놈들이 저지른 짓도 짓이겠다, 그리고 저놈들이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서 이 모든 미친 짓을 벌였겠다, 뱀파이어들은 인간이 뱀파이어가 되길 원하지 않는 걸 넘어서 혐오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의미에서 네가 장작더미에 불을 당겨주는 건 어떨까 싶은데."
...엘리, 뱀파이어한테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군요. 아마 이번에 묶일 인간들은 그냥 태어난 거 자체가 죄인 게 아니라, 진짜 산채로 불태워질 만한 죄를 지은 놈들이긴 합니다만.
에레야는 질렸다는 듯 이야기하고는, 집게를 들고 가던 사람 하나를 붙잡습니다. 그 사람이 갑자기 붙잡혀서 멀뚱멀뚱 쳐다보기도 전에, 그 사람의 가슴팍에 돈자루를 확 던지더니 집게를 냅다 뺏어버리고는, 그 집게를 다시 엘리에게 던집니다. 네. 그제야 좀 나아지는군요. 집게를 써서라도 성물을 꼭 들고야 말겠다는 엘리의 저 집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에레야는, 고개를 젓더니 엘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뭐 됐고, 아무튼 넌 이제 할 일 없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 설마하니 여기까지 와서 사고를 치진 않겠지만, 그러지 말고."
...라 이야기하고, 에레야는 체포해야 할 사람들이 많은 성당으로 들어갑니다.
이제 엘리는 어떻게 하나요? 별달리 할 일이 없을 경우, 다음날 화형식이 거행되는 황혼 시간대까지 시간을 돌릴 수 있습니다.
>>161 네. 셀프 고문입니다. 엘리가 몸에 대자마자 격통에 몸부림치고, 다른 사람한테 슬쩍 갖다대니 무슨 이상한 인간인가 싶으면서도 지나갑니다. 아무래도 엘리가 '특이한 체질'인 것을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대로 이걸 엘리와 비슷한 태양교의 성물에 치명적인 반응을 보이는 '불경한' 존재들에게 무기로 사용하려는 목적이라면 그건 확실히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엘리는 그것을 가지고 지하수로의 안전가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황혼쯤이 되자, 에레야의 부하가 찾아와서 문을 두드립니다. 그는 문을 열고는 엘리에게 말하는군요. 그래도 엘리가 한 일이 일이고, 꽤 오래 봐서 그런지 존댓말이 입에 꽤 익었습니다.
"엘리자베스 님. 화형식 준비가 거의 다 끝났습니다. 아니, 그냥 다 끝났는데, 엘리자베스 님만 오면 진짜 준비 끝입니다."
한마디로 '너만오면ㄱ' 입니다. 엘리는 그 말에 따라 바깥으로 나가고, 에레야가 배려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거한은 빨간 노을빛에 태양의 기세가 약해지는 황혼 시간에도 여전히 뱀파이어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세스타우 성의 건물들 사이의 길어진 그림자 사이로 최대한 나다닐 수 있는 골목길 루트로 엘리를 안내합니다. 그리고 점점 열성적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심해지는 곳에 이르면, 사람들이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지르며 무언가 비난하는 현장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는 장작더미에 꽁꽁 묶인 사람들과 그들과 군중 사이에 서 있는 에레야가 있습니다. 에레야는 군중들 사이의 엘리를 보더니 외치는군요.
"참 빨리도 왔구만! 심문관보들! 빨리 길을 열어줘라! 빨리 태우고 갈 길 가야지!"
그 말에 거한들이 성난 군증들을 헤치고, 그 사이로 경비들이 끼어들어 덩치로 군중들을 밀어 엘리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줍니다. 아마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엘리가 박쥐의 형태를 빌어 이 자리에 나타날 수 있겠지만, 뱀파이어로 변하려던 인간놈들 죽이는 자리에 뱀파이어가 그딴 식으로 나타난다? 난리 납니다.
그녀도 필요한 것들을 재빠르게 챙기는 것을 저는 지켜 보았어요. 그렇게해서 저희는 한 차례, 본래 했어야 했던 휴식을 끝냈고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모두 갖췄어요. 그녀도 같은 느낌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저는 활력을 되찾아 가벼운 느낌마저 드는 상태로 길을 가고 있어요. 이제 호수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니 만큼 그 거리를 빠르게 좁혀서 도착하는 것에 전념하는 일만 남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기록 이외 것으로도... 호수에 도착하면 무엇부터 하시겠어요? "
길을 가면서도 이번에 그녀가 웃으며 그렇게 말해보이면 저는 그렇게 물어보았어요. 그녀는 호수의 풍경을 마음에 들어할까요? 저희가 마침내 호수에 도착하여 이 목표를 완수한다면 그 후에 무엇을 할까요...? 고생해가며 호수까지 왔으니 만큼, 호수에서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저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생각해볼까요
@@ >>136 누누코는 역시나 요한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었다. 지금까지의 일생을 살육에 바쳐온 토끼가 이해하기엔 너무 심오한 내용이었던 까닭이었다. 딱히 관심이 없기도 했던데다가... 이 무가치한 금속에 목숨을 걸고, 원하는 걸 받는다. 인간사회는 그걸로 전부인게 아니었나?
'이 인간은 말하는 걸 정말 좋아하네.' 입술 틈 사이로 짧은 한숨을 내보이며 짐칸으로 몸을 움직여 천을 걷고 트렁크를 열었다.
"탈러를 원한다는 거지." 그렇다면 현상금 사냥꾼 겸 외과의사 겸 이발사가 말하길, 인간 세상은 정신병자들이 가득한 세상. 그런 세상에서 누누코가 믿는 것은 오로지- 신성한 들판에서의 자유로운 바람과, 그곳에 사는 동료들. 그리고 쇠와 피 뿐이었다.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 봐," 누누코의 손을 떠난 도끼가 우아한 원을 그리며 날았다. 그리고 곧 강렬한 충격과 함께 누군가의 두개골을 반으로 쪼개고 파고들었다.
"이 썩은내 나는 송장 덩어리들이여!" 마차 위에 올라선 누누코의 손 마디마디에는, 아직 충분한 양의 쇠붙이들이 끼워져 있었다.
>>163 "음... 일단 뷔르트겐 호수에 있는 생물들을 기록할 거고요. 여기서 있던 일들로 쓸 법한 글감들을 최대한 기록할 거고요. 또 여기서 만난 사람들을 기록할 거고..."
놀랍게도, 베스니가 말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 중에서 '기록'이 아닌 것들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찾고 찾아서 기록이 아닌 것이 딱 하나 나오긴 했는데, 이것도 광의의 의미로 따지자면 기록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검은 숲에서 병신이 되고 죽을 뻔해서 그런지 이 숲을 나름대로 생각한 방식으로 존중하려는 방식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신기한 조약돌 같은게 있으면 기념으로 하나 주워가고 싶어요! 그, 좀 귀중해보이는 생물이나 그런 건... 왠지 그런 거는 나중에 심하게 저주받을 거 같아서 안 되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이런 거 있잖아요! 이거 좋네요. 이렇게..."
베스니는 눈 앞에서 작은 조약돌 하나를 주워서 아앨라나에게 보여줍니다. 우윳빛 색깔의 반투명한 방해석질의, 보송보송하게 구멍이 잔뜩 뚫려 해면 모양이 된 조약돌입니다. 베스니가 그 조약돌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아앨라나는 그 조약돌이 아닌 조약돌 너머를 봅니다. 이 검은 숲에서 보기 힘든, 나무가 단 한 채도 없는, 아니,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는 공간. 가까이에서는 바닥의 흙빛과 초록색 이끼빛이 드러나고 저 멀리는 마치 거울처럼 지평선부터 저 위의 하늘까지 담는 일렁임 없이 수면(水面). 그리고 그 수면이 과연 물인지, 거울인지 의심될 때쯤, 물 위에 둥둥 떠 있던 새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메기를 피해 하늘로 붕 뜨면서, 메기가 물 위로 잠시 나타나면서 그 수면이 일렁여, 밝은 태양빛이 그 일렁임을 기회 삼아 반짝이며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듭니다.
뷔르트겐 호수. 검은 숲이 품은 바다. 호수임에도 수평선을 볼 수 있는 호수가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베스니는 한참 동안 조약돌을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보더니 아앨라나에게 묻습니다.
아마 '년'이라고 말하려 했던 것 같던 사내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하고, 도끼날이 박혀 들어가는 두개골과 함께 두쪽이 나서 어휘가 끊어져 버리며 말 뒤편으로 낙마해 버립니다. 끌어줄 주인을 잃어버린 말은 바로 고삐가 힘없이 풀리자 정처없이 대열에서 이탈하고, 옆에서 다른 남자가 석궁을 쏘지만 누누코는 도끼를 던져 빈 손으로 그 살을 잡아버리는 묘기를 넘어선 신기를 선보이고는, 바로 도끼를 던져 이번에는 명치에 꽂아버립니다. 이번에는 의식이 있어서 피 끓는 소리로 어떻게든 끄아악, 그르아아앓 소리를 내면서 도끼를 빼내려다가 사이좋게 낙마합니다.
"이... 익... 이 개새끼들이!!!!"
그러자 누군가가 마차 앞에서 달려옵니다. 누누코가 도끼를 던지는데, 아까 전 그 놈들이랑은 다른지, 아니면 뇌가 조금 더 나아서 학습능력이 있는지, 도끼들을 피해서 달려옵니다! 어, 이번에는 위험하겠다 싶었는데, 그것을 말고삐를 잡고 있던 요한이 석궁으로 머리통을 쏘는군요. 석궁의 볼트가 날아가 개새끼들이!!!! 라고 욕하느라 벌린 입 안으로 쏙 들어가고, 목젖과 경추를 꿰뚫고 뒤로 나옵니다. 네, 사망입니다. 멍청한 주인을 싣던 말은 마차와 부딪쳐서 죽고 싶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은지라, 슬쩍 피해서 자유를 찾아 훨훨 도망치고, 요한은 누누코에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군요.
"만만하게 생겨서 나쁜 점이 있고 좋은 점이 있습니다. 나쁜 점이야 뭐 아실테고, 좋은 점은..."
요한은 누누코에게 도끼 몇 개만 남긴 채 나머지는 짐칸에 넣고, 석궁에 시위를 다시 먹인 뒤 정리하면서 껄껄 웃으며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이 뭔 놀이를 하겠습니까? 공기치기? 고무줄놀이? 말타기? 술래잡기? 그런 애들 놀이는 애들이나 하라죠. 옛날에 있었던 콜로세움도 그렇고, 역시 진짜 재미는 사람을 죽이는 거다 이겁니다. 그것도 만약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이라면 좀 많이 거시기하고 일부는 이건 정신이 나갔다며 비난하겠지만, 온 세스타우를 혼란에 빠트리고 자기들을 전부 도축할 뻔한 미친놈들이라면... 자기가 직접 불을 못 당기는게 애석할 뿐이죠. 에레야는 엘리에게 불을 주기 직전, 먼저 묶여있는 귀족들의 죄를 낱낱이 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에레야의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크고 쩌렁쩌렁하게 울리는군요.
"이단 화형에 앞서 이들의 죄를 고하겠다! 이들은 뱀파이어가 되겠다는 불경한 마음을 품고 그 악성 종양 같은 뿌리를 여기에 내렸다. 이 귀족, 아니, 인간이란 이름이 아까운 혐오체들은 세스타우의 아편굴에 불법 실험실을 차리고, 경비대의 수뇌부를 차지하고, 세스타우의 밀수를 장악했지. 사람들이 홀연히 사라지는데도 경비대는 제 기능을 못 했고, 지하 수로는 랫킨과 고블린과 식인종이 날뛰는 핏빛 지옥이 되었고, 사교 파티는 식인을 '미식'이랍시고 행하는 광기의 만찬이 되었다. 하지만!"
에레야는 엘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세스타우 귀족사회 타락 사건 해결의 최대 공로자,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 '뱀파이어'를 모두에게 소개합니다.
"...인간이 뱀파이어가 되겠다는 정신나간 발상은, 뱀파이어들에게도 정말로 불경했기에, 여기에 선 뱀파이어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가 적극 협력하여 세스타우 영지민의 보호와 사건 해결에 앞장섰다!"
헉! 사람들이 뱀파이어라는 말에 숨이 멎습니다. 몇몇은 이게 맞는건가, 에레야와 엘리를 번갈아 쳐다보지만, 그들이 뭐라 이의를 제기하기도 전에, 에레야는 다시금 이단심문의 광기로 그들을 선동합니다.
"이제 엘리자베스가 해결사의 권리로, 공로자의 권리로 이들에게, 이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낼 특권을 얻었으니... 귀 있는 자들이여, 들으라! 눈 있는 자들이여, 보라! 입 있는 자들이여, 대답하라! 이 이단들에게 무슨 판결이 합당하리오!!!"
>>169 생각해보면, 세스타우에 온 이래로 참 이상한 일들만 있었습니다. 그녀는 친절로 위장한 악의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친절로 건네준 수호부에 손을 데였고, 지하의 괴물들이 아닌 이단심문관과 함께 일했으며, 마지막에는 화형대에 불을 당기는 역할까지 맡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엘리가 올라가는 게 더 어울렸을 곳을 말입니다. 아직도 엘리의 몸은 뱀파이어, 태양을 제대로 맞으면 불타고, 신성한 무언가에 닿으면 죽어버리는 무언가지만, 적어도 그 아래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갔음은 안심이 됩니다. 그렇기에, 이 불도, '이단'과 '불경'을 태우는 불도,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지고.
화르륵
순간, 엄청난 열기에 엘리는 뒷걸음질치며 눈을 감습니다.
"으...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수많은 사형수들의 비명과,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 엘리가 쏘아올린 작은 불은 거대한 장작불이 되어 세스타우의 어둠을 정화합니다. 이건 갈 데까지 가버린 종교의 광기가 아닙니다. 엘리가 보았듯이, 죽을 만한 이들이었고,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더 고통스럽게 죽일 수도 있었을 이들입니다. 세스타우 사람들은 더 불타라면서 쓰레기 따위를 던지고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그리고 저 수많은 군중들의 편에 서서 사형을 집행한 엘리는, 참으로 이상한 고양감, 집단의 의지를 수행하는 '칼잡이'가 되는 게 이렇게나 끝내주는 기분이었나 잠시 숨을 고르는데, 옆에서 에레야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이야기합니다.
"원한다면 연설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그런 거 취향이 아니라면, 슬슬 눈치 봐서 내려가도 되고."
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말했어요. 저의 질문에서 그녀의 대답은 기록 이라는 주체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 지금까지 해왔던 행동들로 보았을때 어쩌면 그녀의 반응은 당연했던 것일지도 몰라요. 굳이 여기까지와서 다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려나요? 그렇지만 그녀의 대답이 이렇다고 해서 그녀의 행동이 이것 뿐만이 이라고 할 수는 없을거에요
"좋은 선택이네요. 제가 물가에서 조개를 가져왔듯이, 특색이 있는 것을 가져가는 거네요"
이어지는 그녀의 말과 함께 저에게 지목하여 보여주는 꽤 괜찮은 모양새의 조약돌에서 저는 긍정하면서 이전에 제가 했던 행동에 비유를 곁들이며 말했어요. 봐요, 그녀의 행동은 기록을 한다. 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연관될 수는 있을 거에요. 탐험으로서 전문적인 표현을 붙여보자면 연구 표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다음 저는 건너편에서 엿보이는 광활하다고도 할 수 있는 크기와 그 특유의 모습을 과시하는 호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어요. 그 변함이 없는 듯한 아름답고도 신비한듯한 광경은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거에요
베스니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목석처럼 그 자리에 한참동안 서 있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뷔르트겐이라는 자연의 경이를 두 눈에 담으려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돌리고, 앞으로 돌렸을 뿐입니다. 한참 동안 눈으로 보기만을 반복한 그녀는 수첩을 꺼내고, 깃펜을 그 위에 꺼내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거침없이 적어내려갑니다. 쉴새없이 봇물터진 것마냥 떠들던 그녀의 입은 묵언하고, 그 떠들던 속도는 펜을 움직이는 손으로 옮겨간 것만 같습니다.
호수 반대편이 식별 불가할 정도로 넓은 면적, 바닥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생겨난 거울같은 수면, 그 수면에 비춘 파란 하늘, 그걸 바라보는 두 사람. 그걸 한참동안 적고 그려내던 베스니는 아앨라나에게 말합니다.
딸랑딸랑, 문간에 걸린 작은 방울이 흔들리며 손님이 왔다고 알리지만 반갑게 맞이하는 목소리는 없고, 무거운 침묵이 헬렌의 양 어깨를 짓누릅니다. 만약 헬렌에게 정령을 보는 능력이 없었다면, 그래서 맥주잔 주변에서 낄낄거리는 작은 주정뱅이 정령을 못 봤다면 청각이 망가졌나 진지하게 걱정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조용합니다.
"..."
"..."
보면 사람들이 전부 다 표정이 죽상이고, 얼굴에 검댕이 묻어 있는것이 광부로 보입니다. 왜 광산에서 탄을 안 캐고 이러는 걸까요? 그때, 여관 주인이 헬렌에게 퉁명스레 말합니다.
"갈데 없다고 죽치는 놈들은 저 놈들로 충분하니 댁은 여기 있고 싶으면 방 빌리던지 뭐 먹을거 마실거 하나라도 시키쇼."
펼쳐진 호수의 풍경이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한 동안 마치 그대로 멈춰버린 듯한 그녀의 곁에서 저는 같이 호수를 바라보았어요. 이윽고 그녀는 움직였어요. 호수에 홀리듯 열렬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에 천천히 시선을 따라가며 그녀가 하는 것들을 지켜보았어요. 그녀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은 전부 이것을 위해서 있었던 것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거에요. 그만큼 그녀의 행동에는 강한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 엿보여요
저희는 이렇듯 호수에 도달함으로서 목적을 달성했어요. 그러니 그 보상이라고 할까요? 호수가 보여주고 있는 그 자태를, 여기에서 얼마간 머물면서 즐기며 노는 것도 좋을거에요. 잠시동안 그녀와도 같이 저는 줄곧 침묵을 지켰어요. 그리고 이 상황에서 먼저 말을 꺼내게 된 것은 그녀 이였어요
"후후후... 그렇다면 기대하고 있겠어요. 제가 할 일은 그때가 될때까지 기다리는 것, 이겠지요?"
그리고... 충만한 마음이 우러나오는 듯한 그 눈빛과 함께 그렇게 말하는 그녀로부터 저는 한번 다정하게 웃어보이며 대답했어요
@@ >>167 보는 사람이 시원할 정도로 목구멍 가장 안쪽의 자리에 볼트가 자리잡았다. 탈러를 위해 살다 세상과 하직하는 또 다른 인간을 차갑게 바라보며, 누누코는 주변에 잔당이 남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자리에 내려와 앉았다.
"후흥...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이네." 짐승은, 자신의 목숨이 위협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마치 이미 저 멀리 꽁지를 내빼고 있는 주인 잃은 말처럼. 천적과 마주하면 도망가게 되는 것이다. 누누코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요한에게 말을 얹었고, 그들의 주위로는 순식간에 사람의 시체 최소 세 구가 생겨났다. 곧 청소부들이 나타나 그들의 연고를 묻지않고 친히 해체해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간에.
"매번 이런 식인가?" "인간은 다들 요한같은 거야? 아니면..." 아니면- 누누코는 거기까지 말하곤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시체를 살짝 돌아보았다. 이 상황에 어울리는 무언가 적절한 말을 찾고 싶었는데, 결국엔 단어를 찾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그게 '무식하다' 였나?
>>176 사람들은 거대한 불길에 열광하고 있기에, 그저 개인일 뿐인 엘리가 그 열광에서 슬금슬금 피해 내려오는 건 쉬운 일이었습니다. 엘리가 뜨거운 연단에서 내려오면, 붕대로 온몸을 싸맨 거한들이 그녀를 마주합니다. 에레야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신전 지하 고문실의 괴이와 혐오체들에게 보여주었던 증오와 분노는 없고 웃으면서 엘리를 맞이합니다. 다들 감사할 일이 많나봅니다.
"엘리자베스 님 덕분에, 이번에 대주교좌 방첩특무성으로 전근 가게 됐습니다."
"에레야 님께서 절 심문부관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승진이다 이거죠."
누구는 영전, 누구는 승진. 경사났네 경사났어, 엘리는 고맙다며 어깨와 등을 툭툭 치는 거한들을 보고 자기가 이렇게 환영받는 존재였나 혼란스러워합니다. 뭐 아무튼 그건 확실합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 별종 뱀파이어와 함께 싸워본 이들은 이제 이단심문소, 나아가 태양교의 피비린내 나는 모든 부분에 퍼질 것이고, 다른 뱀파이어들은 몰라도 엘리의 평판은 이들 덕분에 조금이나마 나아질 겁니다. 개중 하나가 묻습니다.
"혹시 이 다음에 뭘 할지 생각해봤습니까? 어디로 가서 쉰다던지, 어디로 가서 책을 읽는다던지요."
"아마 내 생각엔 이 근처 슬로인 왕국에 가실 것 같은데. 거기도 비인간 적대 정책이 없거든."
"아니면 대학도시 호르뮈셰도 가실 수 있잖아. 거기가 신성도, 뱀파이어도 다 연구한다던데."
"근데 꼭 떠날 것처럼 얘기하네? 이 근처 숲이나 지하에서 쉴 수도 있잖아."
저들끼리 떠들기 바쁩니다. 그러고보니, 엘리는 어떻게 할 건가요? /// 제3의 방안을 원하면 상담바람
>>180 두 사람은 호수를 거닙니다. 뷔르트겐 호수는 정말로 넓어서 다 탐사할 수는 없고 두 사람이 당장 볼 수 있는 전경만을 눈에 담을 뿐입니다. 베스니야 이 지역에 대해 아는게 없기도 하고, 또 그녀에게는 이 호수의 존재 그 자체가 신비니만큼 그저 기록하기 바쁘지만 아앨라나는 다릅니다. 여기는 검은 숲 내에서 꽤나 풍요로운 곳이고, 덕분에 어촌이 이뤄져 교역이나 어업이 이뤄집니다. 다시 말해 배를 빌리거나 베스니가 나갈 배편을 구할수도 있고, 아앨라나도 책에서나 본 호수의 신비생물을 탐사할 준비를 할 수도 있죠. 아니면 그냥 앨리스 님의 집으로 돌아가거나요.
>>181 "누누코 씨의 부족에도 다양한 군상이 있지 않던가요? 누군가는 누누코 씨 같을 테고, 누군가는 저만큼은 아니어도 현학적인 고찰과 수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명쯤은 있을테고, 누군가는 노래와 춤을 좋아할 테고, 누군가는 조금...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 양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문명 사회도 그렇습니다. 다만 부족 사회와는 다르게, 규모도 크다 보니..."
인간이 많으면 쓰레기도 많다, 뭐 그런 이야기겠죠. 요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차를 계속 끌고 갑니다. 그것 이외에도 여러 말을 했었지만 위에서 했던 말보다도 더욱 더 영양가가 없었기에 누누코는 상큼하게 씹었던 것 같습니다. 마차는 계속 구르고 구르다가, 몰약 냄새에 누누코의 코가 익숙해져서 맡아지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몰약 냄새가 다 날아간 것인지 몰약 냄새가 느껴지지 않을 때쯤, 요한의 마차가 도착하는 곳이... 어... 낯설지가 않습니다. 비든베일(그 촌장네 집에서 토끼뼉다구네 뭐네 대놓고 앞담 들었고 목욕하는거 훔쳐보다가 두들겨처맞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게 된 그놈 보게 된 그 동네 맞습니다.)보다는 훨씬 큽니다.
"낯이 익다면, 우연이 아닙니다."
...라고 말합니다. 네, 누누코가 왔다가 취업사기 한번 거하게 당했던 그 도시입니다. 그새 교수형을 당한 '이상한 열매'들이 잔혹하게 뜯겨먹고 있군요.
>>179 헬렌은 방값을 먼저 계산합니다. 부잣집은 망해도 삼대를 가고, 백작가는 망해도 십대를 갑니다. 헬렌이 이런 마차 여관의 방 한칸 값을 못 낸다면 그게 더 웃길 거고, 설령 진짜로 못 낸다 하더라도 귀족이라는 것을 증명만 할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남들이라면 씨알도 안 먹힐 '외상'을 당당하게 펑펑 쓰고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각설, 헬렌은 방값에 상응하는 동전을 지불하고, 이 사람은 돈도 없는 주제에 갈 곳 없다고 죽치는 놈팽이들이랑은 확실히 다름을 직감한 여관 주인은 태도가 훨씬 싹싹해져서, 혀를 쯧쯧 차면서 저들도 불쌍하게 됐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동네에서 솔직히 농사짓던 치들은 1년 지어 1년 겨우 빌어먹고, 저 광부들이 돈 좀 만지는 치들이었수다. 근데 최근에 괴물이 나왔답시고 용병들이 들어갔다가 통 나오지를 않는데, 뭔 일 있나 해서 광부들 몇 명이 들어갔는데 소식이 없는 게 다 뒤졌는가 하고 있는디... 뭐, 그래서 저렇게 죽상들 되가지고 초상집이지. 그래도 맨날 여기서 부어라 마셔라 돈 써주던 인간들이니 쫓아낼 수도 없고 거 참..."
@@>>191 헬렌은 여관 주인에게 이야기를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던전이다. 헬렌은 사실 로망같은 것이 있었다. 선조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정령의 힘을 빌어 수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그것에는 자연재해도 있었고 전쟁도 있었지만 이와 같은 던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인간을 해치는 괴물들을 없애고 마을을, 도시를, 나라를 지키는 무용담에 얼마나 설레했던가.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여관 주인이 더이상 아는 것이 없다면 광부들에게 다가가 들어보려고 한다. 위치나 규모나 나오는 몬스터의 종류라거나.
지금의 실력으로 혼자 가도 괜찮을지, 아니면 길드에서 사람을 구해 같이 가는 것이 좋을지는 일단 들어보고 고민해도 늦지 않으리라.
거한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하나둘 사라지고, 엘리는 혼자 남습니다. 아마 이런저런 수속 절차가 남겠지만, 이제 남은 가장 큰 일은 '호르뮈셰로 가기'고 나머지는 잘잘하겠군요. 누군가와 할 이야기가 있으면 지금 하고, 사야 할 게 있다면 사고, 팔 게 있다면 팔면 되겠습니다.
여관주인은 공을 광부들한테 넘깁니다. 여관 주인은 설명하는 값 하라며 광부들한테 술 한 잔을 돌리고, 광부들은 술을 마시더니 헬렌을 슬쩍 봅니다. 헬렌의 척 봐도 고풍스러워보이는 행색을 보고는 저들끼리 쑥덕대다가, 그래도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도움을 불러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자기 사정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발단은 한 달 전인데, 광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웬 거대한 뱀 한 마리가 광산으로 들어왔다는 겁니다. 그 뱀이 워낙에 강해서 광부들이야 당연히 탄을 캐도 그건 못 캐던 치들이니 덤벼들다 죽었고 남은 이들은 다 도망쳐 나왔는데, 용병들이 선금을 받고 들어갔는데 아직도 안 나왔다는 겁니다. 그 후로도 계속 용병을 보냈는데 계속, 계속, 계속...
>>200 가는 날이 장날, 쇠뿔도 단김에 빼라, 쇠는 뜨거울 때 두들겨라, 그런 격언들이 헬렌의 머리속에서 요동치고 헬렌은 바로 일어납니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광부들과 방은 세팅해두겠다는 주인장을 뒤로 하고 헬렌은 물어물어 광산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광산의 검은 구멍 속으로 가까이 가면, 주변에 널린 피 묻은 두개골과 뼈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광경에 여기서 일어났다는 습격사건이 헛말이 아니란 건 확실히 알겠다고 생각하려는 순간...
'소름끼치는 광경이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정신 차려. 이런 때일수록 냉철해야지.'
...헬렌의 머릿속에서 정중한 한 노신사의 목소리와 청아하고 당당한 소녀의 목소리가 맞섭니다. 다른 이들이라면 자기가 미쳤나 의심하겠지만, 이미 저택의 보이지 않는 '고용인'과 '문객'들과 안면을 수백번도 튼 헬렌은 이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노신사는 직감과 본능의 총합인 '소름'이요 소녀는 '논리'를 대표하는 존재임은 알겠습니다. 둘은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다 헬렌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안에는, 지금으로선 말할 수 없지만, 매우 위험한 것이 도사립니다.'
'저 왕재수 노인네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내가 싫다면 저 노친네라도 데려가는게 좋을 거야. 야, 백과사전! 우리가 뭔지 네 잘난 지식으로 설명해봐.'
'소름의 정령 암허슈트: 위협을 감지할 수 있는 최소 수준 이상의 지성을 가진 동물들의 본능, 공포, 예감을 관장하는 중급 정령입니다. 논리의 정령 로지: 특정한 조건 내에서 틀리지 않는 합리적인 추론 과정을 뒷받침하는 중급 정령입니다.'
>>203 엘리는 요리에도 재간이 없고 지금까지 인간들 잘 도와줘놓고 이제와서 인간을 사냥해 피를 흘리게 만들어 굳히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부담없는 한끼는 닭피, 좀 뻑뻑하고 진한 맛은 돼지피, 그리고 고급적인 맛은 소 피. 굳이 '품질관리'도 식육을 위한 '품종개량'도 되지 않은 인혈이 뭔 필요란 말입니까. 엘리는 푸줏간에 가서, 블랙 소시지를 사려는데...
꽤애애애액!!!!
돼지의 비명소리가 참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푸줏간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잘게 뭉친 고기반죽을 씻은 창자에 치덕치덕 밀어넣고 있고, 뒤에는 웬 작은 소녀가... 아니, 비냐가 여관 일은 어쩌고 돼지의 목을 자기 팔뚝만한 칼로 40cm 넘게 째면서 쏟아지는 선혈을 대야에 받고 있습니다. 사장은 엘리에게 묻는군요.
그리 말하면서 사장은 건물의 공용 화덕 맨 끝자락에서 매캐한 연기를 쐬고 있는 고깃덩이에서 블랙 소시지를 꺼냅니다. 척 봐도 있는집 아가씨 같으니 인심 좀 써달라고 자연스레 강매를 시도하며 가득 담고, 엘리는 호르뮈셰까지 배터지게 먹을 블랙 소시지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사장이 말하는군요.
"혹시 소, 닭을 사실 생각은 읎슈? 수확제가 금방이라 사놨었는데 지금은 도축해봤자 안 사서 썩을게 뻔하고, 살려두면 사료값만 처먹어서 원... 사신다 하면 소 한마리 값에 닭들이랑 남아있는 사료는 서비스유."
...라고 말하네요. 소는 우마차를 끌게 시키면 되니 다리도 편하고 힘이 다하면 되팔거나 즉석에서 도축하면 되고, 닭은 블랙 소시지가 질리면 특식하는 느낌으로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가진 돈의 절반을 내야겠지만요.
@@>>204 헬렌은 광산에 도착하여 검은 구멍 주변에 인간의 주검들을 발견하였다. 잠시 마음 속으로 애도를 표하는데 뒤에서 들리는 정령의 목소리에 바로 뒤를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이어지는 백과사전의 정령의 설명에 헬렌은 두 정령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있었고.
‘저는 로렌스가의 헬렌이라고 합니다. 두 분 다 같이 가는 건 안 되는 건가요?’
꼭 한 분만 데려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뒤로 하고 헬렌은 정신계 정령들에게 이어 묻는다.
‘그런데 제가 혼자 이 괴물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확실히 그 안에는 매우 위험한 것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령을 부리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빠른 대처가 어려울 수도 있어서 탱킹을 해줄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뱀이라고 하니 꽤나 속도가 빠를 것 같고 한 방에 죽이지 못한다면 공격을 받을 수도 있을테니까.
두 사람이 지금 당장 머리에 들어오면, 헬렌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듭니다. 아주 잠깐,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백과사전의 정령은 패닉에 빠져서 수레 하나 분량의 브리태닉 대사전을 통째로 암송하고 있고, 암허슈트는 로지가 책상물림이라고, 로지는 암허슈트가 미친 점쟁이 새끼라고 서로 옥신각신 헬렌의 양 귀에서 악을 질러대서 헬렌은 정작 손도 못 쓰고 정령들의 비명에 무력화되는 공포를 느낍니다. 헬렌의 정령술 수준이 아직 정령술 재능을 못 따라가서 생기는 문제로, 아직은 한 정령만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혼자 물리칠 수 있겠느냐는 말에, 둘은 어깨를 으쓱합니다.
'글쎄요.'
'글쎄?'
적어도 '확실한 죽음'은 아닙니다만, 이들도 확실하게 안전하다던지 싸우면 이긴다던지 확언은 못하는 눈치입니다.
검은 숲 속의 내해, 그 내부에 위치한 바다라고 비유할 수 있는 호수는 유독 풍요로운 곳중 하나로서 그 받을 수 있는 은혜로 인해 이곳은 누군가에게 자칫 불안하고 외롭게 헤매이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숲 속에서도 온화하고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어떠한 사유로든 사람들이 모여들고 오랜 기간동안 머물면서 어느덧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곧 촌락이 있게되었어요. 그렇다는 것은 그저 풍경을 감상하며 산책하는 것 이상의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거에요
"베스니 씨, 이곳에 어촌이 있어요. 방문해보실 건가요?"
"그리고 어쩌면... 그곳에서 배를 빌려서 호수를 보다 깊게 살펴볼 수도 있을거에요"
흥겨운 기분으로 저는 유유히 호수의 근처를 그녀와 함께 거닐며 여전히 호수로부터 쏟아지는 정보의 물결을 받아내는 것에 여념하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해보았어요. 처음에 약속하였던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지만 저는 그렇기에 호수에서 같이 이렇게 함께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짦은 것도 아닐 거에요. 그녀가 저에게 보답을 보내고자 결심한 것으로도 그렇고 처음 만난 것도, 앞으로도 인연은 맺어져 이어진다고 할 수 있으니 당분간은 계속 함께 놀다가 가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새로운 친구를 사귄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 >>190 그 도시였다. 요한의 목이 순식간에 뜯길 뻔하고 누누코는 통 속에서 절임을 당했던. 누누코의 '전사뇌' 로 생각해도 별로 좋은 기억들은 아니었다. 누누코가 작게 으르렁거리며 '흥' 하고 소리 내었고. 주변 풍경을 눈으로 담았다. 어느새 '열매'들은 맹금류들의 먹이가 되어 쪼아먹히고 있었다. 그것만이 누누코에겐 이 도시의 환영인사였다.
이 근방의 마을은 플라베르흐, 외부의 항구도시에 비하면 가뭄에 콩나듯이긴 하지만 그래도 검은 숲과 외부의 '창구' 역할을 하는 거점들 중 하나인 교역 어촌 중 하나입니다. 걸어서 대충 1시간 정도면 되겠군요... 아마도요. 아앨라나가 대충 방향을 가리키자 베스니는 웃으면서 앞으로 걸어나가고, 아앨라나는 앞으로 나가려는데... 베스니가 벌떡 멈추고 아앨라나는 거기에 얼굴을 딱 부딪쳐버리고 맙니다. 뭐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앞에 있는 괴물딱지들이 베스니가 멈출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줬으니까요.
"우와... 검은 숲은... 게...? 가재...? 도 참 크네요?"
큰적가재, 뷔르트겐 호수나 또는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들이 살 수 있을만큼 크고 깊은 검은 숲의 수원에서 서식하는 호전적인 거대 갑각류입니다. 먹을 수 있는 것으로는 늑대, 사슴, 물고기, 그리고 인간... 등이 있습니다. 지금 적가재 무리 앞에 있는 베스니와 아앨라나 말이죠. 적가재들은 두 사람을 보고 어슬렁어슬렁 기어오고, 가말라시엘이 귀띔합니다.
태양을 극복하겠다, 는 얘기가 사실은 안 오겠다는 이야기를 돌려 말하는 것으로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냐는 엘리를 보더니 조금은 웃어 보입니다. 그리고는 엘리 덕분에 생긴 작은 변화를 말해줍니다.
"그래도 뭐... 예전에는 혹시나 해서 화를 안 냈는데, 이제는 엘리 님 덕분에 화내는 법도 배웠어요. 여관에서 누가 자꾸 엉덩이를 만지거나 시집 오라 해도 그냥 하지 말라고만 했었는데... 엘리 님 싸우는 거 보고 배운 대로, 누가 저한테 계속 집적거리길래 결투를 신청하고 한번 간에다가 찔러 봤거든요. 바로 거꾸러지더라고요. 그래서 여관 급사 일은 잘렸지만, 상대한테도 돈 받고, 또 제가 결투에서 이겨놓고 잘리는 거니까 여관 주인한테도 돈 받고, 그래서 여기서 그 돈으로 이 푸줏간 지분 절반을 샀어요. 제가 지금이야 일을 배우고 있지만 몇 달 뒤면 수익을 반으로 나누게 될 거에요.":
음... 그러니까 엘리 덕분에 살인 한번 끝내주게 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살인 기술로 사람 한명 잡아서 담군 다음에 배상금 뜯어내서 그거로 사업을 바꿨다 이겁니다. 살인을 잘 하게 됐다는 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변태가 자기 몸을 만져도 아무 말도 못하던 사람이 엘리 덕분에 한방에 그 변태를 담구는 법을 배웠으니, 뭐, 나쁘냐 좋냐 둘 중 하나로 따지자면 좋냐로 보는 게 맞겠죠. 비냐는 소에 달린 밧줄을 엘리에게 건네고 말합니다.
암허슈트는 그렇게 말하고, 헬렌은 광산 안으로 들어갑니다. 조금은 따뜻하꼬 때론 덥기도 한 공기와는 달리, 들어가자마자 어둠이 깔림과 동시에 물씬 차가운 느낌이 듭니다. 그 차가운 공기에 소름이 돋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헬렌은 자신의 발소리가, 자신의 부츠가 땅에 닿는 소리가 이렇게 컸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옆에서 발소리도 존재도 없이, 걷지 않되 걸어가던 암허슈트는 우뚝 멈춰서서 시적으로 읊조립니다.
'피 묻은 두개골은, 그 어떠한 살점도, 머리카락도 엉겨붙지 않은 채 바깥에 내던져졌고, 수많은 눈들이 저 어둠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노니.'
본능적으로 읊조리자 헬렌의 몸에 소름이 돋고, 헬렌은 어둠 속에서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려 숨습니다. 그리고, 너무 어두워서 식별할 수는 없지만, 절그럭... 절그럭...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들과 함께... 쨍그랑... 짤그랑... 무언가 끌려다니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굴 속에서 퍼지다가 이내 우우우거리는 무의미한 바람 소리에 섞여 사라집니다. 암허슈트는 헛기침을 하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요한은 곧장 마차를 끌고 도시의 정문으로 들어갑니다. 난민들이 줄지어 서 있지만 그들은 마차를 보자마자 자신들과는 처지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을 아는지 옆으로 비켜서고, 요한은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협조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가 될 리는 없지만) '좋은 하루 되시길!'을 연신 외치며 들어갑니다. '화살 값이 인상되어 경고사격을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와, 쪼아먹히던 이상한 열매들을 보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가기는 힘들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누누코는 요한과 함께, 참 정상적인 방법으로 도시 정문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경비병들이 마차를 잠시 막아세우지만, 요한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과 현학적인 말투로 경비병들을 맞이하는군요.
"좋은 하루입니다! 오늘도 메츠 시의 안전을 위해 노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요한 브룬, 현상금 사냥꾼 겸 외과의사 겸 이발사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제 현상금 사냥 동업자 누누코 씨, 그리고 여기는 제 인생의 동반마 '바퀴벌레'랍니다."
요한은 그렇게 말하며 경비병들의 여러 질문에 답하고, 경비병들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경비병들 중 한명이 주변을 바라보더니 휘파람을 불면서 이야기합니다.
"어이, 외과의사 양반. 외과의사 양반은 우리 도시 들어와서 거지마냥 빌어먹는 건 아니겠지? 우린 일단 일해서 기여하겠다는 놈들 때문에 죽겠다고."
"물론 아니죠. 여기 누누코 씨도 아니고, 여기 바퀴벌레도 아니고요. 어디 보자... 이 도시에 기여하고자 하는 우리의 진심은..."
요한은 가슴팍을 뒤적이고, 단검을 꺼낸다 오인한 경비병들이 바로 창칼을 들지만 요한은 가슴팍에 넣은 손을 흔들어 짤랑짤랑 동전 흔드는 소리를 냅니다. 그러자 경비병들은 피식 웃으며 창칼을 내리고, 요한도 웃으면서 두둑...하진 않지만 '통행세'치곤 꽤나 섭섭잖은 돈자루를 경비병에게 던집니다.
>>232 원래 세스타우 성은 야간 통행이 금지되어 있고, 엘리가 해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그 사건 때문에 더 강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뱀파이어라 대낮에 나갔다간 어포나 훈제마냥 바싹 말라버릴게 뻔하니, 엘리에게는 특별히 예외를 적용하여 저녁에 보내줍니다. 소달구지에 얹힌 그녀는 딱 사람이 빨리 걷는 속도보단 빠르고 뛰는 속도보단 느린 달구지의 위에서 흔들리며 호르뮈셰로 향합니다.
음머ㅡ
꼭꼬댁, 꼭꼬
하루종일 피냄새를 맡으며 죽을 걱정만 하다 졸지에 풀려나와 바깥구경하니 좋나봅니다. 만약 엘리가 소를 일소로 부리려는 농민에게 판다면 이 소의 운은 좀 더 이어질지도 모르죠. 엘리의 등에는 등받이 대신 닭장이 실려서 닭들이 소달구지 진동에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균형을 잡습니다. 그렇게 호르뮈셰로 가는 첫 여정은 마치 브레멘 음악대 같군요...
저의 제안을 흔쾌히 승락한 그녀가 제가 손짓하여 가리키는 방향으로 먼저 앞장서 길을 가려고 하는 것에, 저는 곧바로 뒤따르려 하였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었어요. 일련의 동작이 갑작히, 그녀가 멈춰서는 제가 그녀에게 살짝 부딪쳐버린 것이 관련되어 있기는 했지만 진정으로 문제는 이것이 아니였어요...
제가 그녀의 넘어로 불쑥 고개를 틀어서 엿보면 거기에는 크고 강해보이는, 집게발로 무장한 자연의 갑옷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몸에 두른 존재가 여럿이 모여들고 있었어요. 숲이 품고 있는 신비는 호수에도 이어져 자연스레 그곳에 자생하는 이들에게도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위협적인 모습도 이렇게 실제하는 거겠지요
호수가 바로 옆이니 이번에는 물가의 무리들이 저희를 상대해주려 하네요. 다만, 그들은 아무래도 적대인 것으로 보여요. 생물 도감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갑각류는 일생 동안 성장하고 그에 맞춰 껍질을 허물로서 벗고 몸에 맞는 새로운 껍질을 형성하고 이것을 반복해요. 하지만, 그럴때마다 어려워지고 결국에는 스스로의 껍질을 벗겨내지 못해서 그 속에서 죽고는 해요. 이정도의 크기라면 얼마나 이것을 반복하고 그마다 성공해야 할까요?
"저들에게도, 저희에게도 안된 일이 되겠지만... 그들이 그러하듯 저희도 목적을 위해서 행동해야 해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계속 침묵을 지키며 주시하고 있었을 뿐인 가말라시엘 님이 먼저 그렇게 말을 걸어주었어요. 저는 그렇게하는 것이 옮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에 긍정하는 대답을 돌려주었어요. 과거에서의 그 때의 일을 교훈처럼 삼아 이번에는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크게 망설이지는 않았어요
>>237 엘리는 소달구지를 끌고 바깥으로 나가고, 세스타우 성 외곽의 주도로들을 따라 분포한 가옥들 사이를 지나치고, 가옥들을 지나치면 밭들이 나타납니다. 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밤눈이 어두운고로 보이는건 멀리의 불빛과 달뿐이라, 고삐를 잡은 엘리의 손만 믿고 앞으로 나갑니다.
@@ >>223 "썩은내가 나." 경비병을 지나 도시 안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누누코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것이 첫마디였고, 이 도시에 대한 극단적이고 압축적인 감상이었다. 경비 노릇을 못하는 경비, 우중충한 얼굴의 주민들... 돼지 우리처럼 벽이 높게 올려 가둬진 도시. 무엇보다 인간들의 냄새들.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을 정도야. ...후흥." 마차의 덜컹이는 진동에 몸을 맡기고, 고개를 돌려 주변 전경을 바라보았다.
>>240 "맞는 말입니다. 인간들이 익숙해지니까 인식을 못해서 그렇지, 원래 인간 자체가 냄새가 고약한 동물이죠."
그게 우리가 비든베일에서 목욕재계를 한 이유기도 하고 말입니다, 라는 사족과 함께 요한은 마차를 끌고 정문을 넘어 대로변으로 나갑니다. 요한의 마차에 버금가거나 더 큰 마차들이 여관과 교역소에 줄을 서 있지만, 요한은 그쪽에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이름도 참 생소한 '총괄치안국 메츠시 지소' 라는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로 향합니다.
"미스터 스위트의 시체를 꺼내시죠. 현상금 사냥꾼의 또다른 실무, 현상금 받기를 배우실 시간입니다."
@@ >>243 건물에 거의 다다르자, 요한의 말에 누누코는 별다른 대꾸 없이 자리에서 능숙히 뛰어내려 짐칸안에 손을 넣어서 '미스터 스위츠' 가 담긴 자루를 자신의 앞으로 끄집어왔다. 자루 안에서 부패의 냄새 대신 인위적인 약물의 냄새가 풍겼다. 그것이 '미스터 스위츠' 의 신원 확인을 도와줄 것이었다. 마치 소세지를 연상캐하듯 굉장히 꽉 찬 자루였다. 척 보기에도 무거울 그것을, 누누코는 신음 한 번 없이 단신으로 번쩍 들어올려 갖고 나왔다.
"누누코는 이해 할 수 없어." 시체를 어깨에 짊어지고 걸어가며 요한의 옆에서 중얼거리듯이,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시체를 주고 대가를 받는다니." "여기 인간들은 이 녀석을 고기로라도 만들어 먹을 생각인가?"
가말라시엘 님이 힘을 부려서 주변의 생물체와 환경 그 자체로부터 강제로 마력을 끌어당겨 흡수함으로서 전해주어서 저는 빠르고 대량으로 추가분의 마력을 얻어낼 수 있었어요. 그러므로 저는 자체적으로 큰 소모 없이도 충분히 강한 마법을 부릴 수 있을거에요. 그러한 과정 자체부터 이미 저들의 하나를 처치하게 된 것을 보면서 곧바로 저는 지팡이를 약간 높이 앞으로 들어올려서는 저들을 향하고 그렇게 응축된 마력을 거대한 불씨로 화해 떨어지는 유성과도 같이 저들에게 선사하려 했어요. 저의 생각대로 된다면 이것은 저들을 불사르고 그 떨어지는 충격으로도 상당할 것이기에 흐트러지겠지요
@@>>221 광산 안은 동굴이 그렇듯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 든다. 소름이 돋고 발소리가 커다랗게 들린다. 그건 동굴이기 때문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의 위험성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지도.
그리고 암허슈트의 시적인 말에 본능적으로 웅크려 숨은 헬렌은 절그럭, 쨍그랑 거리는 소리들을 듣게 되었다. 뭘까. 그것만으로는 추론할 수 없겠지만 암허슈트의 두개골이라는 말이 신경쓰인다. 스캘레톤 류의 몬스터를 말하는 걸지도. 아니면 여기에서 죽은 희생자들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무언가가 있고 여기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은 생각을 해도 될 만큼 정보가 모이지 않았으니 편견을 가지지는 않으려고 한다.
‘일단 지나간 것 같으니 안쪽으로 더 들어가보죠.’
헬렌은 동굴의 안으로 더 들어가려고 한다.
/어둡지만 시야는 보이는 정도이려나? 광원이 없을 것 같은데. 불을 밝히는 게 필요할까? 아님 그냥 계속 전진해도 되려나?
>>222 로지와 암허슈트 선택지에 따라 갈리는 거 재밋다! 두근두근한 기분임~ >>226 확인! 나도 시간날 때마다 되는대로 써서 올릴게! 시간이 더 자주 났음 좋겠다........()
>>241 ...졸지에 소달구지는 닭장과 널빤지로 둘러싸인 요상한 모양이 되지만, 그래도 엘리가 대낮동안 제정신을 유지하거나 은신처를 찾게 도와줄 겁니다. 밤에 활동하는 산적들이라면 엘리 입장에서 도시락이 제발로 뛰어오는 셈이지만 만약 대낮에 엘리를 조지고 값나가는 것을 찾으려는 이가 달려든다면...
아무튼 엘리는 닭을 머리위에 얹은듯한 요상한 느낌으로 계속 나아가다, 다리를 건너는 대로길과 숲을 타는 오솔길의 갈림길을 만납니다. 밤이라 어두워서 어디가 더 빠를지는 모르겠지만 일장일단은 상식선에서 확실합니다. 대로는 지도 등 정보를 구하기도 쉽고 '인간 기준에서' 비교적 안전할 겁니다. 숲속 오솔길은 나무의 영향으로 어두컴컴해서 햇빛의 악영향을 상쇄할 수 있고, 저층과 하층으로 매우 입체적인 지형이 전투 돌입시 엘리에게 수많은 변수를 창출해줄 겁니다. 엘리는 어디로 고삐를 돌리나요?
>>244 "누누코 씨도 부족을 그 꼴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한 자들. 예를 들어 침략군의 장군이라던지, 노예상이라던지, 그런 이를 누가 쳐죽여준다면 뭐라도 보답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현상금 제도의 기본입니다. 시체는 어디까지나 확인을 위한 수단이죠."
요한은 이번만큼은 누누코도 이해할 법한 설명을 하며 문을 엽니다. 그 안에는 딱 봐도 나 공무원이요, 나 책상물림이요, 나 안경잡이요, 나 글쟁이요 하는 이들이 창구에 앉아 무의미한 얇은 나무 쪼가리들과 싸우고 있고, 요한은 요령 좋게 '현상금 청구'라 적힌 창구에 찾아가서 직원에게 말을 겁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아름다운 마담! 다름이 아니라, 여기 있는 누누코 아가씨께서 최근 해결한 국가적 관심 사안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청구하기 위해, 제가 실무 보조 겸 대리인 자격으로 함께 왔습니다."
"..."
직원은 들은 체도 안 합니다. 문명인은 골통이 쪼개질 일이 없기에 야만인보다 더 무례하다던 격언이 생각나던 와중에, 요한이 누누코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이야기하는군요.
"여기서 강한 인상을 주면 됩니다.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거나, 또는 누누코 씨가 부족 시절에 누군가를 찢어죽이기 전에 내지르던 전투 함성이나..."
@@ >>248 그러자 누누코 어깨에 들춰매고 있던 자루를 마담의 책상 위에 엎어치듯이 내려놓았다. 철푸덕을 넘어 아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며 푸대자루가 일순 나뒹굴었고... 물론 그것은 미스터 스위츠였다. 누누코와 요한에게 걸린 이상 아무래도 조용히 잠들긴 글른 것 같았다.
"시간이 없어." 그 뒤 누누코가 말하며 시체와 책상 너머로, 상체를 기울여 마담에게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거침없고 정제되지 않은 야생의 몸짓이었다. 누누코는 접수원의 얼굴을 거의 영거리에서 마주봤고, 포식자 특유의 입김을 흘리며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분명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마력이 모였고, 주문 시전의 절차도, 마력을 끌어내는 방법도 완벽했는뗴 감감무소식입니다. 아앨라나는 무언가 잘못됐나 싶어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봅니다. 앨리스님이 가르쳐주셨던 대로, 책에서 봤던 대로, 지나가던 도인이 알려줬던 대로 어떻게든 마법을 시전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 갑자기 하늘 위에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떨어집니다. 아앨라나가 어리둥절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동안 이번에는 베스니가 그 불덩이를 발견하고, 베스니가 당황해서 몸을 던져 아앨라나를 붙잡고 강가의 모래밭에 구릅니다.
"위험해요!"
꽈가가가가가강!!!!!!!
귀에서 피가 흐른다고 착각할 정도의 폭음입니다. 얼굴이 뜨겁고 쓰라립니다. 간신히 눈을 떠보면 폭발을 받아낸 베스니가 고통스럽게 모래사장에 온 몸을 구르고 있고, 옆을 보면... 큰적가재가 있었어야 할 곳에 웬 빨갛게 익어버린 초거대 가재 요리들이 보입니다. 가말라시엘이 사족을 다는군요.
>>246 앞으로 나아가는 헬렌의 눈에는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가지런이 정리되어 주인을 기다리는 낡은 곡괭이들, 한데 쌓인 밀랍 덩어리들, 수많읜 의미없는 돌들 사이에 섞인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 돌들...헬렌은 뭔가 이상함을 느낍니다. 이게 이 컴컴한 동굴 속에서 보일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분명 광부들이 한달째 일을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왜 보일까요. 헬렌은 주변을 바라보고, 생생하게 켜진 램프가 쌍심지를 켜고 그녀를 노려보는 것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암허슈트가 험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잡아끌어 다시 어둠 속으로 밀어넣습니다.
'죽음이냐, 죽임이냐, 선택하십시오.'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암허슈트는 헬렌의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더니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는, 어딘가를 가리키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가리키는 곳을 보면... 갑옷을 입은 이 두 명이 나오더니, 한 명이 척추를 들고 나머지 한 명이 피 담긴 병을 거기에 쏟아서 피로 적시고 있습니다... 헬렌은 아까 입구에서 봤던 피 묻은 두개골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것도...
아무튼 각설, 헬렌은 만약 공격하고자 한다면 완벽한 기습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 이번밤은 여기까지
>>249 자루에 실린 시체에서 무언가 데굴데굴 빠져나옵니다. 요한이 무언가 싶어 보더니 '저런!'하고 혀를 차는군요. 이제 보니 미스터 스위트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있습니다. 그걸 보자 직원도 질려서는 두 손 두 발 다 듭니다. 대성공입니다! 누누코가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미스터 스위트를 살해할 때 놀라운 각력과 치악력으로 목을 물어뜯고, 거기에 더해 요한이 몰약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목에 이것저것 쑤셔넣고, 또 누누코가 여기서 쾅! 하고 내려치니 목이 더 이상 못 버틴 것 같습니다. 요한은 미스터 스위트의 머리를 붙잡아 자루에 다시 담고, 직원은 도망치듯 상급자를 불러옵니다.
"요즘 현상금 사냥꾼들은 극성이구만."
"칭찬 감사합니다!"
상급자의 죽일 것 같은 눈빛에도 요한은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이고, 담당자가 미스터 스위트의 얼굴과 현상수배지를 대조해보는 절차 끝에 두둑한 200탈러, 누누코의 몸값보다도 더 비싼 현상금이 누누코의 가슴팍에 놓입니다. 요한은 웃으면서 누누코의 어깨를 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미스터 스위트의 현상수배지도 같이 두는군요.
"아마 현상금을 의도하고 살해한 건 아니겠지만, 첫 현상금 사냥 성공을 축하합니다. 이것도 가지고 계세요. 현상금 사냥꾼들한테 처음으로 성공한 현상금 사냥 수배지는 행운의 상징이거든요. 특히 더럽게 개고생해서 받았을수록요."
>>251 엘리는 대로 쪽으로 향합니다. 소달구지 바퀴 아래를 받치는 다리의 돌바닥이 엘리의 허리를 두들기는 것 같지만, 그 구간을 지나고 나니 엘리는 광활하게 탁 트인 곳을 보게 됩니다. 달빛이 칠한 밤하늘과 구별되는 지평선이 일자로 넓게 트이고, 엘리는 그곳에서 마치 점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온 건물들과 마을들을 몇 개씩 봅니다. 아마 그곳이 말로만 듣던 방문객을 털어먹는 그런 악질 마을이 아니라면, 엘리는 그곳에서 잠시 묵다가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임시용이긴 하지만, 이 소달구지를 좀 더 쓸만하게 개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둥 붙이고 널빤지만 좀 갖다붙이는 정도라면 얼마 안 들 테니까요. 엘리는 계속 나아가다가, 지나가는 마차와 마주칩니다. 안에서 램프를 든 남자가 나와서 인사하는데, 변발을 했군요.
'...당연히 루마족이었지! 남자들은 전부 머리카락을 변발을 했고, 여자들은 등 쪽에 달 모양 문신이 있었어! 피를 많이 빨았는지 덕분에 피비린내가 안 나서 도축하는 맛이 있다고 좋아하더라고! 하지만 멍청이들이지! 어떻게 저런 멋진 뱀파이어님이 된다는 거야?!'
그 사교도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요. 루마족 같습니다. 루마족 남자는 엘리를 보더니 묻습니다.
헬렌의 청원에, 흙의 정령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라는 듯 사방에서 뻗어나옵니다. 갑옷 입은 이들이 놀랄 새도 없이 갑자기 광산의 지반을 이루던 흙들이 뻗어나오더니 그들을 덮쳐버립니다. 우드득, 몸 속 어딘가의 뼈나 장기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흙의 정령은 문자 그대로 숨 쉴 수 있는 콧구멍만 남겨둔 채 그들을 매몰시켜버립니다.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상대는 헬렌에게 반격하기는커녕 헬렌의 기습을, 아니, 헬렌의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콧구멍만 빼고 묻혀 버렸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 동굴 안에 있는 이들이, 이 모든 것을 들었습니다. 로렌스의 아가씨. 아가씨께서 부탁할 수 있는 모든 작은 친구들을 불러모으십시오.'
...암허슈트의 말대로, 이 동굴 안에 뭐가 있건 간에, 헬렌에게 적의가 있는 이들은 이것을 중대한 비상 사태로 규정할 거라는 겁니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두두두두 하는 진군 소리가 들려오는군요.
저는 제대로 했냈다고 생각했지만,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어요. 다만, 여전히 저의 마법을 위한 마력의 흐름은 여전히 한 점으로 모여들고 발현할 것임을 느껴지고 있었어요
"엣...?!"
마법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저의 생각대로, 아니요. 그 이상으로 발휘되었어요. 제가 한 실수가 있다면 그만큼 강력한 것이라면 그 뒤에 있에 있을 작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일거에요. 저의 스스로만이 아닌 것으로서 모여든 거대한 힘이 집중되는 만큼 균형을 맞춰 섬세하게 강한 통제력이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저는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았아요. 저들에게 날려보내고 닿았을때 터지도록 하려던 저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완전히 발현되기 까지 다다르던 것은 그 이후에 마법은 갑작스럽고 너무 빠르게 작용했던 거에요
"그녀는 쓸모가 없지는 않았어요. 이번처럼 중요한 일을 하지 못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괜찮답니다. 도움을 주시려던 것이잖아요? 그래서, 위협적인 저들을 전부 물리칠 수 있었어요"
그 순간에 그녀가 몸을 직접 내던져 보호해 주었고 저는 상황이 일단락 되자, 저는 잠시 몸을 추스리고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어느정도는 부정하면서 그렇게 말했지만 동시에 가말라시엘 님도 미안했다며 사과하여 주시는 것에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덧붙여 말해주었어요. 베스니가 지금까지 도맡아 짐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녀는 저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녀가 비록 도움과 반대되는 것들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사소하던 중하던 도움이 되었다는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감사드려요, 덕분에 큰 해를 입는 것을 피할 수 있었어요"
저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잡아서 일으켜 세워주도록하면서도 부드럽게 한번 가볍게 안아주고는 정중한 태도로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렇게 감사를 표했어요
@@ >>255 '행운의 상징...' 누누코는 고개를 내려 손안의 수배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증오스러운 돼지의 몽타주가 그려져있었다. 완전히 빼다 박았냐고하면 그건 아니지만,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피부나 재수없이 높은 콧대는 완벽히 그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녀석은 이제 없다. 이 이빨로 그 목에 구멍을 내어, 찢고 뜯어내었으니. 그리고 이것은 사냥의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이 현상수배지는 그것을 의미했다.
"―신성한 들판에서," "커다란 사냥감을 잡게되면 그 발톱과 이빨을 장식으로 만들어 목에 걸어주는 일이 있었어. 전사로서의 증표인 셈이야." "가호라고 했었어. 처음에 누누코는 그런 건 믿지 않았지. 하지만 누누코네 동료들은, 끈질겼어." 살육의 운명을 타고 난 보팔토끼의 수인. 그녀는 거기에 서서 시선을 수배지에서 때지 않은채 홀로 중얼대듯 말했고. 잠시 뒤, 조용히 그 수배지를 말아 접어서 몸 어딘가에 쑤셔넣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이 전단이, 과연 자신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 누누코에게 새롭게 지켜봐야 할 과제가 추가 된 셈이었다.
"그보다 가져가야 할게 있지 않나, 요한?" 그리고 누누코는 걸어가며, 자신에게 놓인 탈러 주머니를 움켜쥐어 요한에게 내밀었다. 아직 배분은 하지 않았을 터다.
그렇게 말하며 루마족 사내는 엘리를 커다란 마차 안으로 들입니다. 안에는 여자아이들이 엘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손뼉을 짝짝 치며, 엘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웃으며 촛불 사이로 인사하는데 아마 환영 같습니다. 여자아이들이 뒤로 물러나면, 온 몸에 별자리로 보이는 검고 파란 점과 선을 새긴 노파가 엘리를 바라보더니 정체를 바로 알아봅니다. 그리고 공용어가 어색하던 사내와는 달리 유창한 공용어로 예를 표하는데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군요.
"뱀파이어 손님. 우리는 대접할 피는 없습니다. 유감이군요."
...라고 말하고는, 바로 공짜로 점을 쳐줍니다.
"내일은 지나가다 구걸하는 장님 두 명을 만날텐데 첫째는 사기꾼이니 무시하고, 둘째는 진짜니 적선하셔서 덕업을 쌓으셔도 됩니다. 이것보다 더 큰 점은 더 큰 대가를 주셔야겠죠."
요한은 총괄치안국 건물의 붉은 벽돌 사이를 나서며, 몫을 나누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누누코를 보고는, 이상하다는 듯 주변을 보더니 주머니를 잡은 누누코의 손을 그녀의 가슴팍 쪽으로 조심스레 다시 밀어냅니다. 그리고, 누누코가 잊고 있었던 사실을 새삼스레 상기시켜줍니다.
"미스터 스위트는, 누누코 씨가 죽였지요. 제가 한 거라곤 시체 도둑질, 시체 염하기, 마차 수송 정도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하나, 둘, 셋... 요즘 인부 노임이, 마차 단가가... 하며 따져보던 요한이 말합니다.
"10탈러 정도. 어떠십니까?"
...그 개고생을 하고도 10탈러라. 그 취업사기 때는 한달 월급이 5탈러였고 밀입경 비용도 5탈러였다는데, 200탈러를 받고 나니 허탈해집니다. 뭐, 아무튼 요한은 바래봤자 10탈러보다 더 바라진 않습니다. 요한은 '공짜 팁'이랄 것을 줍니다.
"현상금 사냥꾼을 할 때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내 몫을 확실히 챙기되, 그만큼 남의 돈 무서운 줄도 아는 겁니다. 남의 몫을 가르치려는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직접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요한은 손날로 정수리를 찍는 시늉을 하면서, 누누코가 도끼를 던져 머리와 가슴을 쪼개버렸던 그 사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저것, 누누코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잊어버리는 것들을 떠올리게 해주는군요.
그녀의 반응에 저 또한 덩달아서 작게 웃어보았어요. 저는 어느덧 그녀와 함께하는 것에 거의 완전하게 익숙해진 것 같아요.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저를 도와주었으니까요. 이렇게 동행하여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미약한 인연이라는 이름의 실가닥을 하나씩 여러가닥을 모아서 실타래에 엮고는 점차 굵게 해나가는 거겠지요? 처음 만났을때의 어색함도 점차 다른 것으로 대체 되어가는 것이에요. 때가 되면 해어지게 될 것이겠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맺어지는 매듭이 있어서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에요
"여러모로 손 재주가 좋으신 것 같아요~"
이후 그녀가 잘 구워진 그것들에게 다가서서는 능숙하게 그 껍질 속의 살점을 꺼내보여주는 것을 저는 지켜보다가 그녀가 그리 묻듯이 말하자 그에 대해 칭찬하며 대답해주었어요. 이 수많은 가재의 고기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전부 먹으려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많다면 그러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어쩌면... 저희가 먹을 분량만 남겨두고는 앞으로 방문할 마을에 파는 것을 해볼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274 가재살을 임시로 한입 먹어보니 맛있긴 한데... 동시에, 이거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마을이 얼마나 가까운지 모르겠는데 당장 가지 않는 이상 이 가재살은 벌레가 꼬이건 썩건 둘 중 하나겠죠. 다행히도 뷔르트겐 호수는 나무가 없어서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덕분에, 베스니의 등짐에 얹고 주기적으로 뒤집어서 말리고, 여기에 더해 아앨라나가 들고 있는 가말라시엘의 지팡이의 힘으로 공간을 비틀어 공간 그 자체를 볼록렌즈로 만들어, 베스니의 등짐 위 가재살이 바싹 마르고 구워집니다. 물론 짊어지는 건 베스니의 수고고 말리는 건 가말라시엘의 수고니 뒤집는 건 아앨라나가 고생 좀 해야겠죠.
>>275 "고마워. 길 위 손님! 어린 암탉이면, 우리 가족 친절해! 손님 소달구지, 지붕 달아줄게!"
루마족 사내는 달구지에 있던 닭들 중에서 가장 어린 암탉, 즉 살아서 계란과 병아리를 오래 뽑아낼 닭을 멋대로 골라내 가져오더니, 또 멋대로 망치와 낡은 천막 따위의 자재를 가지고 바깥으로 나갑니다. 소년과 소녀들도 호기심인지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인지 따라나가고, 마차 벽 너머로 들리는 망치 소리를 배경으로 엘리는 다른 점괘를 듣습니다.
"당신의 혈육이 찾아올건데 화가 아주 많이 났을 겁니다. 만나자마자 변을 당하기 싫으면 인간의 피 한 모금 분량을 준비해서 친교의 뜻을 명확히 하세요."
...음. 인간들만 가득한 곳에서 참 내줄만한 점괘군요. 노파가 잇습니다.
"소녀의 피는 닭 한 마리, 저 남자의 피는 계란 한 알, 제 피는 못 줍니다. 영업의 비결이라."
...무슨 뜻인지 엘리는 알아차립니다. 아마, 스스로의 피에 흐르는 생명력을 촉매로 예언술을 쓰나 봅니다.
구워진 가재의 고기는 따로 제대로된 요리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좋은 맛을 자랑했어요. 제대로 요리에 곁들이거나 재료로서 사용된다면 분명 훌륭한 식사가 만들어 질 수 있었을 거에요. 저는 이 수많은 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생각했고 우선 그 부피를 줄이고자 해보기로 했어요. 그 방식은, 호수의 특색 만큼이나 햇빛이 잘 들지 않던 검은 숲의 다른 장소에 비해서 잘들었기 때문에 수분을 줄이는 것, 말려 건포와 비슷하게 처리하는 것이였어요. 이것들을 옮기는 것도 지금까지 물건들을 가져가던 것처럼 베스니가 하였고, 저는 고기를 제대로 말리는 것을 맡기로 했어요
"그렇네요~ 이렇게 하게 된다니 색다른 느낌이에요~ "
무엇보다 그 과정은 특별하게 이루지게 되었어요. 이번에도 가말라시엘 님의 힘의 도움이 있었고 저는 그렇게 말하는 것에 긍정하며 따라서 그리 말했어요. 불평을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저희를 위해서 뛰어난 발상으로서 힘을, 그렇게 공간을 구부림으로서 빛이 비추는 각도 자체를 조절하는 방식은 특별하고 뭔가 재미난 느낌이였어요. 이대로 저는 고기들의 상태를 보면서 적당히 하면서 근처에 있을 어촌을 향하기로 했어요
>>280 두 사람은 실시간으로 노릇노릇 구워짐과 동시에 바삭바삭 말라가는 어포를 얹은 채 플라베르흐로 향합니다. 건조된다는 건 수분이 빠진다는 뜻이고, 수분이 빠진다는 건 베스니가 들 무게도 가벼워진다는 뜻입니다.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가벼워지는 발걸음을 만끽하며 앞장서 걸어가는 베스니의 눈에 수평선에서 무언가 반사되는 것이 보이고, 아앨라나는 플라베르흐의 반사판 등대임을 알아차립니다. 밤에는 불빛으로, 낮에는 햇빛으로 울창한 숲속에서 마을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고안했다고 알려졌죠.
"우와, 드디어 아앨라나씨 빼고 다른 사람도 본다!!!"
검은 숲의 운둔자들은 심하면 년단위로 사람을 안 봐서 말하는 법도 까먹는다지만, 베스니는 바깥 사람이라 사람 생각에 신이 나서 달려갑니다.
>>282 땅땅땅 땅땅땅 하는 망치 소리가 멈추고, 변발한 남자가 땀범벅이 된 채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뭔가 마시는 시늉을 하며 안에 남아있던 소녀에게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하고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차 안의 물동이를 열어 물을 한 사발 떠줍니다. 그때, 노파가 작은 병을 꺼내더니 주문을 읊조리고 엘리는 그 사내의 목울대에서 핏빛 연기가 피어나 병 안으로 모이고, 연기가 액체의 형태를 취해 피가 되는 것을 봅니다. 사내는 채혈 사실도 모르는 눈치지만, 계란을 받아 좋아합니다.
엘리는 그새 닭이 낳았던 달걀 하나를 잃고 인간의 피 한병을 획득합니다. 공짜점 한번에 어린 암탉과 달걀까지, 엄청난 영업술에 휘말려든 듯도 합니다.
저는 저희가 어촌이라는 두 번째 행선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그때 쯤에 저편의 너머에서는 반짝이는 것이 저희를 그 존재를 들어냈어요. 그것의 정체는 그곳에 보이는 어촌에서의 그 솟은 존재감과 반짝이는 빛으로 길잡이가 되어주는 등대라고 할 수는 것이에요. 비록 이곳은 숲으로서 진짜 바다도, 그에 걸맞는 항구조차 아니지만 거대한 물의 영역을 품고 있고 그것을 가고 오는 뱃길이 있으니까요. 무성하고 가득한 초목으로 이뤄진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돕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등대란, 두 가지의 역할을 해요. 가지 말아야 할 곳과 가야하는 곳을 알려주기 위해서 매번 그 일을 하고 있어요
"신나는 마음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요~ 이것에 유의해주세요~!"
"숲에서는 외지인과의 만남이란 드물어요. 그리고 그 외지인이란 그들의 생활하는 터전 외외 모든 이들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해요. 그러니 그곳 사람들의 반응이 어색할 수 있어요. 저희에게도, 그들에게도요. 천천히 살펴보면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이 것이에요"
그것의 존재가 저희에게 그 모습을 보이자 그렇게 외치듯 달려나가는 그녀에게 가볍게 붙잡듯이 빠르게 뒤따르는 것을 하면서 그렇게 설명했어요. 그녀가 이것을 제대로 숙지하고 행동해줄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상관없이 그녀가 저로 부터 이것에 대해서 들어야 될 이유는 명백해요. 어쨌든간에 이곳은 밖이란 세상과 무역이라는 것으로서 접점이 비교적 여러번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쁘지는 앓을 것이라 할 수 있을 거에요
>>285 엘리는 바깥으로 나가서 자신의 소달구지를 확인합니다. 어린 암탉을 '넘긴' 대가에 따라붙은 서비스정신이 참 지극하다는게 느껴집니다. 뻥 뚫려있던 소달구지의 네 모서리에 기둥을 매달고 그 위에 천막을 엮어 비가림막 겸 그늘막을 만들었고, 옆면도 널빤지와 그물망으로 장식해서 최소한 대낮에도 햇빛에 비명횡사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엘리가 소유한 소달구지가, 암탉과 계란 한 알 값으로 조금 더 개선되었습니다. 이제 대낮에도, 엘리가 이 소달구지를 벗어나지 않는 한 햇빛으로 인한 스탯 페널티는 전 스탯 약함 고정이 아닌 전 스탯 1단계씩 약화로 완화됩니다.
분명 아앨라나가 이런 조언을 한 취지는 베스니의 예기치 못한 돌발행동, 예를 들어 따발총 같은 질문과 부담스러운 관찰, 그 외 기록하기도 힘든 여러 행위들이 플라베르흐 촌민들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자칫 적의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걱정에서 나온 것일테지만... 이제는, 베스니는 아앨라나의 이야기를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입니다.
"오오, 오, 오오오오...!!! 깊은 숲 속 마을의 방문객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관습! 어떤 건가요? 꼭 알고 싶어요!"
검은 숲 풍물기행의 한 페이지를 채울 생각에 신이 난 베스니에게, 아앨라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 시스템적으로, 여기서 아앨라나가 답하는 관습이나 금기에 대한 설명은 플라베르흐의 설정에 전부 또는 일부 반영됨
엘리는 닭들 중에서 수탉을 꺼냅니다. 엘리 같은 뱀파이어들 입장에서 한참 잠이 오기 시작하고 가장 취약해지기 시작하는 이른 새벽에 막 비명을 지르며 동네방네 나 여깄소 광고하는 놈은 살려둬봤자 득될게 없습니다. 엘리는 푸드덕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잡아 뚝 비틀어 그 시끄러운 목청을 영원히 닥치게 만들고 한입 빨아올립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지만, 그게 새벽이 닭 우는 소리로 더럽게 시끄러워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엘리는 계혈을 마시고 원기를 보충합니다. 핏방울 하나 안 남기고 완벽하게 빨아먹어 닭이나 소나 경계조차 못하는군요. 아마 다음 밤까진 허기랑은 잠시 안뇽입니다.
@@ >>272 "...후흥." "누누코의 몫이라고?" 그의 말에 누누코는 언제나와 같은, 버릇같은 콧소리를 흘렸다. 그러더니 말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룰 같은건 아무래도 좋아." "사냥에 참가했으면 제 몫을 가져가야 하지. 그것이 사냥의 규칙이야." "게다가-" 누누코의 고개가 불현듯 돌아가 높게 세워진 도시의 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그보다 좀 더 머나먼,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를 바라보는듯 했다. 그것은 아마도, '신성한 들판' 이 자리잡고 있는 곳일테다.
"―누누코는 동족의 땅으로 돌아갈 거야." "보고 싶거든.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누누코는 독백과 같은 중얼거림을 했고, 이내 다시 앞의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런 누누코의 손 안에는 아직 두둑한 주머니가 들려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수급처럼 자루 끄트머리를 말아잡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다시 요한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전사 특유의 기백이 담긴 날카로운 눈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곳에 이런, 인간의 때묻은 물건은 필요 없어." "200이니까 100으로 나누지. 거절하면 누누코는 이 주머니를 흐르는 강에 빠트려 버릴거야."
요한은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100탈러를 거슬러 받으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누누코를 바라봅니다. 아마 자신의 인상적인 제안에 누누코가 감명박기을 원한 것 같지만, 이 상황에서 감명받은 것은 누누코가 아닌 요한이 된 것 같습니다. 요한은 누누코가 하는 말을 듣다가, 신성한 들판과 그곳에 있을 동족에 대해 이야기하자,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이야기하며 말합니다.
"인간의 때묻은 물건이 그 동족을 찾는데 필요하지 않습니까? 정보상한테 가서 정확히 어떤 이를 죽여야 복수할 수 있고 어떤 이의 손톱을 뽑아야 바른 말이 나올지, 무기상한테 가서 얼마에 얼마나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는지. 누누코 씨가 이 구린내 나는 인간 세상에 있는 이상, 이 때묻은 물건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이거로 먹을 것도 좀 사고, 좋은 정보도 사고, 좋은 무기도 사자는 이야기죠."
암허슈트의 경고를 뒤로 하고, 헬렌은 정령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정령들이 들어오는데, 암허슈트가 경고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아까 전에 두 놈을 매몰시킨 흙의 정령은 물론이고, 동굴 안에도 당연히 바람은 흐르니 바람의 정령, 물이 똑똑똑 하고 흘러나오니 물의 정령은 당연히 나오겠거니 했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이들은 헬렌이 예상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지식 자랑에 미쳐 돌아가려던 백과사전의 정령도 너무 많아서 숨 넘어갈 지경인지 짧게 설명하는군요.
수사닌: 석탄과 철 광맥에 숨어있는 중급 정령, 배시: 동굴 흡혈박쥐들의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만들어낸 특정 동물계 정령, 타톤: 동굴 등 습하고 어두운 환경에서 자생하는 정령의 의지를 담아 움직일 수 있는 반 정령-반 현실 균사 생명체, 크로우: 피의 생명력에서 자아를 얻어 피가 흐를 때마다 힘을 얻는 중급 정령, 그 외 여백이 부족해 차마 언급할 수 없는 정령들...
암허슈트는 헬렌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말합니다.
'하급 정령들이야 그렇다쳐도, 이렇게 좁은 곳에서 중급 정령들을 여럿 부리면 아마 헬렌 씨가 정령 싸움에 허리 부러질 겁니다. 둘 정도를 고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라고 조언합니다. //이번에는 그냥 다 불러도 되고 암허슈트의 조언을 들어도 됨. 암허슈트의 조언을 들으면 정석적인 전투가 될 거고, 씹고 다 부르면 진짜 대환장파티 개판5분전이 뭔지 보게 될 거임.(물론 데플은 아니고 그냥 불꽃놀이 한복판에 서있는 느낌)
>>296 엘리는 소달구지를 몰고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도 피로감 앞에서는 장사가 없어서, 소의 걸음이 점점 둔해집니다. 엘리가 고삐를 잡고 재촉해봐도, 육체는 정신을 지배하고 이건 짐승들한테는 더욱 맞는 말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걸을 필요가 전혀 없는 닭들은 이미 닭장 속에 곤히 잠들어있는 상태고 엘리만 계혈을 빨아마신 채로 소와 씨름하는 상태. 하지만 그 때, 엘리는 불현듯 불안한 감이 뒤통수를 스쳐서 널빤지에 달린 쪽문을 밀어 열고 바깥을 바라봅니다. 제기랄... 동쪽에 산이 걸친 덕분에 해가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동쪽에 어슴푸레하게나마 푸른색이 보이고 분명하게 산의 능선과 하늘이 구분되는 것이 곧 태양이 뜰 것만 같습니다. 엘리는 주변을 바라봅니다. 마을... 이라고 부를 수 있을련지는 모르겠는데, 오두막이 두세개쯤 널린 곳이 앞에 보이고, 오른쪽 아래에는 뜬금없이 동굴이 하나 있습니다. 엘리는 어디로 향합니까?
@@ >>292 "요한은 누누코를 얕보지 않는게 좋아." 주머니. 즉, 100탈러를 그에게 건넨 후 누누코는 말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수인족 전사의 긍지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은연 중 요한에게 다루어지듯 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럼에도 탈러는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은. 탈러란 수중에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탈러가 있다면 그것을 쓸 곳도 필요하다. 적절한 곳에 탈러를 쑤시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말하긴 했었지만- 누누코도 이걸 쓰지 않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지금의 앨리스는 그녀였다.
"요한이 또 말을 길게 하네." 어느정도 이 동행이 이어지자 그가 혓바닥을 놀릴 때에는 무언가 꿍꿍이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누누코마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직감적으로. 누누코와는 거의 정반대에 있는 인물같았다. 그것이 여전히 누누코의 신경을 거스르긴 했지만, 이제는 거의 체념에 가까운듯이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그럼 말해 봐, 누누코가 고철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손 안의 주머니를 가볍게 움직이자, 안에 들어찬 미스터 스위트의 죽음에 대한 가치들이 짤랑이며 탐스런 소리를 내었다.
situplay>1597051230>27 한때 세상에서 가장 강대함을 자랑했고 실제로도 그랬던, 수많은 명예와 탐욕이 피어나고 모든 희극과 웃음과 행복이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눈물의 파도와 공포의 불과 절망의 잿더미 아래 영원히 가라앉은 그곳. 그곳의 잿더미 위를 닦아낸 제국은 그 위에 거대한 아카데미, 마법을 가르치는 제국의 상아탑을 세웠습니다. 제국의 수많은 이들이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 즉, 마법사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로 양분되고, 그 안에서도 다시 어느 깃발의 아래에서 서느냐로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카데미는 태양 아래서 수많은 꿈과 희망이 빛났고, 그 아래에서는 수많은 암투와 음모와 죽음이 그림자로 드리웠습니다. 수많은 성군, 훌륭한 귀족, 성인군자와 천사와 좋으신 제국의 모든 선인들... 수많은 폭군, 사악한 귀족, 온갖 깡패와 괴물과 악한과 제국의 모든 악인들이 이곳에서 나타나 동문을 기리는 표지석보다도 더 정확한 비공개된 학생 명부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마법을 쓸 수 없는, 즉 아카데미에 초대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먼 일을 넘어 다른 세계의 일이었습니다. 마법사는 비(非)마법사를 지배하고, 비마법사는 마법사 아래에서 그들의 연구와 열정과 애욕과 생존을 위해 평생 동안 노동합니다. 마도제국이 새로 이어진 천 년 이래 많은 습속과 제도가 변했지만 이 근본만큼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 평민들이, 그 재능 없는 가라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복종하는 것뿐입니다. 누군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금방 진압했고, 마법사들도 비마법사들이 자신들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언제나 그렇듯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에게 사랑이 아닌 복종과 공포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의 수많은 희로애락과 암투는 오직 그들만의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크론', 마법 이외의 모든 것이 실패한 제국 사회 구조가 낳은 수많은 실패작들 중 하나이자 사회의 쓰레기들은, 우연히 쓰레기더미에서 건어물마냥 바싹 말라서 널부러진 한 입학생을 보고, 그 사람을 '추모'하고는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실제 상황은 좀 많이 다릅니다만, 그건 이 이야기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크론... 이 되기로 한 이 사내가, 꽤나 성공적으로 아카데미 입학생 행세를 성공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카데미 입학생 행세가 그의 발에 날개를 달아주지는 못해서, 그는 지금 한 국경 도시에 서 있습니다. 그가 살던 제국의 접경지이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쓰레기더미를 넘어, 최소한 제국이 관심이라도 가지고 행정력을 뻗는 곳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도시를 각자의 이유로 배회하고 있고, 경비들은 오가는 이들을 삼엄하게 감시합니다. 이제 크론의 변장술이 저 경비들 앞에서 첫 선을 보일 때입니다.
>>298 "언어! Language, 言語, 만약 저 위에 좋으신 신께서 성직자 말마따나 실제로 계신다면, 오직 인간에게만 베풀고 동물에게는 베풀지 않은 은총이죠. 적어도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동물학 지식으로는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해서 협력하고, 오해도 풀고, 소통도 하고, 좋지 않습니까? 혀를 쉬게 내버려둘 이유가 없지요. 아무튼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이곳에서는 돈을 어떻게 쓰냐가 정말 중요한 거죠. 이 도시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던데, 그건 이 도시에 처음 온 사람한테는 맞는 말입니다. 돈 없는 사람은 언제 죽어도 모르고, 돈 있는 사람은 언제 빼앗기고 죽어도 모르거든요. 큰 돈 주고 일 맡겼더니만 사기꾼이라 오히려 그놈이 내 돈으로 고용한 킬러한테 칼 맞고 나머지 돈까지 다 뺏긴다던지..."
어느 쪽이건 죽는 건 똑같습니다만, 마지막에 요한이 예로 드는 사례는 누누코의 피부에, 아니, 본능에 와닿습니다. 그도 당연합니다. 처음에 누누코가 요한이고 뭐고 없이 이 도시에 잠입하고자 했을 때, 어떤 여편네인지는 몰라도 취업사기 한번 거하게 조졌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시기적절하게 요한이 와서 노예 마차를 다 뒤엎어버렸고, 그가 아니었더라도 누누코가 죽을 땐 죽더라도 노예상들을 몇 명은 죽였겠지만 말입니다. 요한은 앞을 길게 말하더니 본론을 이야기합니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저를 따라오시죠. 어떻게 해야 '약해보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대화가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야만적이지는 않은' 그 사이의 센 척과, 정보상과 협상하는 법이라던지, 그런 걸 알려드리겠습니다."
엘리는 언덕 아래로 소달구지를 몰고 갑니다. 마침 근처에 참 편리하기도 나무 기둥이 박혀있길래 엘리는 거기에 소를 묶어두고, 바닥에 소사료를 뿌리고 닭장에도 사료를 좀 뿌린 후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점점 따듯해지는 바깥과는 다르게 이 안은 여전히 차가운 것이 마음에 듭니다. 동굴이 꽤 깊은지 안에서 바람이 불어오는데... 안에는 엘리의 허리에서 갈비뼈까지 오는 커다란 항아리들이 위가 잔뜩 밀봉된 채 싸여있습니다. 어... 아무래도 여기, 누가 됐던 간에 여길 먼저 점유한 사람들이 쓰던 것 같습니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정말 '편리하게도' 눕기 좋은 침대도 여럿 있습니다. 엘리는 어떻게 합니까? 여기서 휴식을 취하나요? 아니면 더 깊이 들어가서 들킬 가능성을 차단합니까?
방금 전의 그녀가 보여준 언행으로 인해, 제가 했었던 말은 아마도 제가 그녀에게 의도했던 것보다 반대의 결과가 있도록 만들어버린 것일지도 몰라요. 우려하였던 일을 방지하고자 했었던 행동이 오히려 그것을 있도록 하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에요
"헤헤... 그러한 느낌으로 말할 만큼 특이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신비로워 하거나 놀랄 일은 아닐 것 같아서 좀 과장된 언동으로 보이지만 이것도, 지금까지 보았던 그녀의 성향인 것일 거에요. 그녀가 이렇게 되물어보면서 보여주는 반응을 보면 그녀는 괜찮을 거에요
"숲의 사람들은 은둔자로서 성향이 좀 있답니다. 그러니 그곳의 사람들에 대해서 그분들이 허락하는 것이 아닌 이상 너무 가깝거나 알려고 하지는 마세요. 대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에요. 이것저것을 살펴보면서 기록하는 행동하는 모습도 잘 보인다면 크게 꺼려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숲 밖에서 유래한 인물에게는 쉽게 신뢰하지는 않거나, 무뚝뚝한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을거에요. 사람들 자체가 나빠서 그러한 것은 아니니까 이점을 생각해서 적절하게 대해주세요"
요점은 숲에 있는 어촌은 외부의 마을과는 그 문화가 유사한 점도 있지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 해야 될 필요가 있다는 거에요. 검은 숲이 품고있는 다소 기이한 특징 때문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들 자신들만의 결속을 가지며 어느정도의 경계심을 품고 대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다만, 저의 경우에는 마녀 님과 함게 몇 번인가 들러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저를 알겠지만 그녀는 아니지요. 하지만 제가 곁에 있으니 그분들도 저를 보아서 크게 그렇지는 않을거에요.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이에요. 그곳은 나름 외부와의 무역 활동도 하고 있기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강하지 않을 것이에요
>>306 엘리가 뱀파이어일지라도, 말이 통하는 지성체라면 통하는 상식이 있습니다. 누구건 간에 자기 영역을 침범당하면 아주 크게 화가 난다는거죠. 어떤 심보 고약하거나 싸움 좋아하는 치들은 그걸 알고 일부러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엘리는, 적어도 오늘의 엘리는 그런 부류가 아닙니다. 엘리는 짚을 채운 침대 위에 앉아서, 혹시라도 올지 모를 이 동굴의 주인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누군가 들어오는데, 막대기로 땅을 두들기며 들어오고 있습니다. 동굴 입구의 햇빛을 등지고 들어오는 그 모습을 살펴보니 허리춤에 여러가지 짤랑대는 장신구를 차고 얼굴은 얇은 천 같은 것을 씌워 가렸습니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오다가 끌끌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엘리 앞에 서서 묻습니다.
>>307 "무뚝뚝함, 외지인 배척... 생각했던 것보단 약하네요. 말 안 듣는 외지인은 꽁꽁 묶어서 뷔르트겐 호수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살았다는 초거대 메기나 신성한 가재떼한테 산제물로 던질 줄 알았는데."
앨리스 님의 설명대로라면 아마 아앨라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아있었을 때까지는 진짜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만, 외부와 교역을 트면서 외지인이 산제물 이외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깨닫고는 마을의 사형수와 동급의 죄를 저지른게 아닌 이상은 그렇게까지 외지인을 잔혹하게 대하지는 않게 되었답니다. 너무 늦은 때도 있다지만 너무 이른 때도 있고, 베스니는 검은 숲 마을의 이국적인 풍속을 기록하기에는 너무 늦게 왔지만 동시에 살아서 여길 빠져나가기에는 참 좋은 때에 온 셈입니다.
얼마 안 가 마을을 둘러친 목책이 보일때쯤, 목책 주변을 서성이던 창 든 소녀가 두 사람 가까이로 옵니다. 소녀는 창끝을 베스니에게 겨눈 채로 두 사람을 봅니다. 아앨라나는 한두번 본 눈치인데 베스니는 아마 완전 처음 보는 얼굴이겠죠.
"한 명은 마녀 쪽이고, 이 외말다리는 또 뭐야?"
아앨라나도, 그 꼴로 만든 가말라시엘도 잊고 있던 베스니의 한쪽 말다리를 가리키며 묻는군요.
창을 든 경비들 사이로 곤봉을 든 경비들이 나와 입경하려는 이들을 두들겨팹니다. 물론 그 아낌없는 폭력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당연하게도 그가 '크론'이 되기 전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입니다. 경비들의 곤봉질에 멍과 핏자국이 늘어나고, 옆에서는 대놓고 들으라는 듯 브로커가 장사를 하지만 거지들 상대라 영 장사가 시원찮습니다.
"자, 마도제국 입경서류가 싸다 싸, 단돈 1은화..."
경비들은 크론의 말소리에 곤봉을 치켜들었다가 말끔한 차림새와 아카데미 언급에 곤봉을 내립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뒤탈없이 편하게 두들겨팰 상대는 절대 아니라고 판단한 경비들 중 고참으로 보이는 한명이 앞으로 나오더니,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신사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합니다.
"신분증이나 아카데미 입학증을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둘 다 진짜 크론이 지금의 그에게 남긴 유산입니다. 즉 당장이라도 보여줄 수 있단 뜻이죠.
@@ >>302 "...후흥, 이젠 누누코의 스승 행세가 해보고 싶어진거야?" "이 동행은 분명 그 돼지를 처분하는 것까지라고 했었을텐데." "마음에 안 들어." 누누코가 말로는 적개심을, 몸과 눈으로는 명백한 불편함을 드러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안쪽으로 송곳니가 보였다. 사람을 찢는 이빨이었다. 요한의 본질이나 사실적인 선택같은 것은 재쳐두고 지금의 누누코에게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증오가 지배적인 것이었다. 후드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숨겨진 귀가 어차피 이곳에선 그녀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안내 해." "너희들의 말로, 누누코가... '야만적' 으로 하기 전에." 그리고 곧 누누코가 결정한듯이 그렇게 말한다. 사실 결정이라기보다는 달리 선택권은 없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일단 숲으로 돌아가면 돈 자루같은건 지방보다 더한 짐덩이에 불과할 뿐이었을테니.
"하지만 인간, 이 결정을 누누코의 나약함이라고 착각하지 마." "이건 단지 누누코가 요한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야."
>>315 솔직히 말해 네가 입학증을 보여줘도 이게 진짠지 아닌지 알 수 있긴 하냐는 비웃음이 새어나옵니다만, 아무튼 크론은 입학증을 보여줍니다. 입학증과 크론을 여러번 번갈아본 고참 경비병은 수건으로 머리를 쓰다듬더니 좀 있어보라며 안으로 들어가고, 성벽에서 다른 경비들보다 척 봐도 좋아보이는, 방어구와 무기의 번드르함만 따지면 기사라 불러도 믿을 이가 나오더니 자신을 이 지역의 국경 검문소장 겸 경비대장이라 소개합니다.
"바토 훈작입니다. 아카데미 입학생을 뵙게 되어 영광이군요. 마음 같아선 식사 대접이라도 하고 싶습니다만 입학 날짜가 얼마 안 남았다니..."
바토 훈작은 휘파람을 불고, 옆에 서 있던 척 봐도 비실비실해보이는 누군가가 나서서 크론 앞으로 돈자루와 종이를 줍니다. 그리고는 바토 훈작이 귓속말을 하는군요.
"제 친필 서명이 되어서 이 지역 일대는 무조건 통할 입경 허가증, 섭섭잖게 마차를 빌릴 돈자루 정도면... 약소하게나마 제 성의를 표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318 "누누코 씨 같이 사냥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생물 병기에게 현상금 사냥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 입장 바꿔 누누코씨라면 참겠습니까?"
요한은 능청스레 이야기하면서 마차에 누누코를 태웁니다. 그리고는 누누코처럼 강한 무력이나 요한과 같은 재치가 없으면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어보이는 빈민굴로 마차를 몰고 가면서 누누코에게 다 잘 되라고 이러는 거라는 투의 설득을 합니다.
"제가 누누코 씨의 고향 들판에 가면 일주일은 버티겠습니까? 당연히 못 버티죠. 그렇듯 누누코 씨도 인간 틈바구니에서는 지금 상태론 유감스럽게도 동족을 찾긴커녕 제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탭니다. 그리 제 도움이 고까우시면 절 호구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아무 대가도 약속받지 않았는데 퍼주고 보는 호구요. 뭐, 저를 호구로 보건 호로자식으로 보건 간에..."
어느새 마차는 거렁뱅이들이 아닌 비루하지만 눈빛 서늘한 이들이 지키는 한 판잣집 앞에 서고, 요한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먼저, 정보상 앞에서 바람은 제가 잡겠습니다. 제가 혀를 끌끌 차면 아무나 한 명, 병신은 안 되지만 며칠에서 몇 주 누워야 할 정도로 때려눕히십시오. 그리고 제가 누누코 씨를 말로 말리면 한 명 병신을 만들고, 제가 몸을 던져 뜯어말리려 하면 절 밀치고 최소 한 명은 죽이십시오."
@@ >>320 "이상한 인간." 요한의 말에 마치 코웃음치듯하는 그런 단편적인 감상을 내놓을 뿐.
"누누코는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 없고." 보팔토끼라면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본능에 의한 살의를, 살육에 최적화 된 몸에 태우고 살아간다. 그리고 상처 입하고 상처 받으며 죽어간다. 적의를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런 굴레에서 누누코를 기꺼이 꺼내준 것이 부락이었다. 누누코는 처음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이제 막 이해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침입자' 들의 등장에 의해 그것은 빠르게 끝이 났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르칠 여유같은 것은 가질 새가 없었던 것이다. 이어져서 지금도, 사색에 잠겨있을 여유같은 건 없었다. 어느새 변한 주위의 풍경은 도시의 중앙과는 다르게 바깥에서 봤던 작은마을처럼 누추하고 초라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요한의 마차가 멈추고 그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어차피 인간일 뿐인 요한의 말은, 모조리 누누코에게 있어서 전부 이해하기 어렵거나 쉽게 동의하기 힘든 것들이었지만, 적어도 이해가 일치할만한 구석은 한 가지 있었다.
"누누코의 일을 하라는 거네." 그녀가 사냥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 누누코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자 후드 아래로 진홍색 눈동자가 은은히 빛났다.
@@ >>322 그리고 그 순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누코의 몸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눈 앞의 남자에게 주먹을 내뻗는다. 말이 좋아 '주먹을 내뻗는' 것이었지, 주변인이 누누코가 움직였음을 인지했을 때에는 이미 그 남자는 바닥으로 천천히 낙하하고 있을 때였다. 범인이 육안으로 쫓기 힘든 움직임이었다. 이제보니 그는 목이 위험한 각도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고보면 아주 찰나에 '우득' 거리는 소리가 난 것도 같았다... 순식간에 사람 하나를 쓰러트린 장본인인 누누코는, 태연히 깜빡이는 눈으로 맥없이 쓰러진 눈 앞의 인간과 자신의 주먹을 번갈아 보더니 조용히 말한다.
"미안하군." 그러나 그 사과는 이곳에 있는 주민들에게 아닌, 동행자인 요한에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가요? 제가 전해듣기로는 옛날에는 비슷한 것이 있었다고해요. 그리고... 이곳의 분들이 지금에도 그토록 다른 이들을 싫어하고 억압하려 했다면 제가 먼저 제안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리고 아마도 제 생각에는 메기나 가재는 아닐 거에요"
"이렇기 때문에, 저희가 그들의 근처를 돌아다닐 지라도 문제를 겪지 않아도 될 것이에요. 그러니 그 점에 대해서 만큼은 좋은 것이겠지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살짝 갸웃하고는 제가 알고 있는 한도내의 사실을 말해보았어요. 그녀가 기대했던 것이라고 해야하나요? 그들이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을 택했다면 저는 이곳을 먼저 제안하지는 않았을 것이에요. 다른 이들을 적대하는 그들을 굳이 자극하여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을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이렇게 바뀌었고 그렇다는 것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교류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공존하려는 성향이 없었다면 바깥 마을과 무역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 당시에는 좀 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기에 이유로 어쩔수 없이 그런 행동들이 이어졌지만 지금은 그것에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몰라요
"안녕하세요, 이전에 방문했던 것에서 꽤나 되었지요? 이 쪽 분은 숲에서 사고을 당하고 고립되어 있었던, 우연히 만나뵈어 지금은 제안을 받아서 함께하고 있어요"
얼마후 저희는 어촌의 경계면이라고 할 수 있을 , 목책들을 보았고 거기에 그 주민인 소녀가 저를 알아보듯이 저도 소녀의 그 모습 만큼은 알아보고 있지만 많이 아는 것은 아니였어요. 소녀의 경계심이 담긴 질문에 저는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려 정중한 태도를 갖추며 상체를 가볍게 앞으로 한번 숙이고는 이후에 베스니를 향하여 양손으로 손바닥이 보이도록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어요
다른 모든 이들처럼 말을 잃은 요한은 그 사람의 맥박을 재봅니다. 그리고는 휘유! 하고 안도하는군요. 안도하는 논리를 들어보니 병신이 된 거지 죽은 건 아니라는 겁니다. 뭐, 목이 꺾인 전신불수 환자 노릇도 일단은 의학적으로 살아는 있어야 가능한 거긴 합니다만 그 설명을 그 동료들이 들어줄지는 의문이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야, 이 새끼들 담ㄱ..."
퍽! 현상금 도둑 때처럼 벌린 아가리에 석궁을 정확히 쏘아 맞추는 기예를 선보이며 한 경비의 말을 끊은 요한이, 이 상황에 과연 적절한가 궁금해지는 사람 좋은 미소로 설명합니다.
"모든 계획은 항상 실행 전까지만 완벽하죠. 그래서 우리가 플랜 B를 두는 거구요. 이번에는 개싸움이 되겠군요."
@@ >>326 "누누코는 플랜 B 얘기는 듣지 못했―" 도중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공격에 누누코는 말을 채 마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상대의 공격이 명중한 것도 아니었다. 우연은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것은, 귀로 상대의 심장 고동을 들으며 눈으로 근육의 움직임을 쫓고, 이빨과 손톱으로 먹이사슬 정점에 선 포식자의 목을 물어 뜯는 보팔토끼. 그에 비해 누누코에겐 그들은 겨우 두 발 달렸을 뿐인 짐승들일 뿐이었다.
"그럼 이제 힘 조절은 필요 없는거겠지? 요한." 누누코가 줄지은 톱날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물었다. 눈으로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탐색하며, 가장 먼저 희생자로 삼을 인간을 고르고 있었다.
>>327 누누코는 가슴이 차가워지면서, 동시에 뜨거워지는 이중적인 느낌에 하아아... 숨을 내쉽니다. 이 느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죽일 각오를 하고 싸울 때의 그 느낌입니다. 누누코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마구 짓쳐냅니다. 정수리에 주먹을 꽂아 박살내고, 칼을 휘두르는 이를 보고는 칼을 뺏어 그대로 목, 간, 폐에 칼자국을 내 줍니다. 시체 두 구 치울 줄 알았던 이들은 어느새 전부 시체가 되어버리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이 지키던 판잣집 문 쪽으로 기어가려 하지만, 요한은 그 사람의 양 눈구멍에 각각 검지와 중지를 파넣어 머리를 위로 제끼고는 그 적의 허리춤에 있던 칼을 뽑아 그어버립니다.
푸슉!
그리고는 누누코가 방금 정수리를 터뜨려버린 한 남자의 손에 들린 장도리를 뺏어든 요한은, 판잣집 문을 두들깁니다.
"제멜바이스! 나의 친애하는 위생학자! 열 문이 남아있을 때 어서 이 문 여는 게 좋을 겁니다!"
@@ >>333 '검과 엄니로 길을 연다. 알기 쉬워서 좋군.' 싸움은 순식간에 결판이 났다. 사실 싸움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휘두른 폭력에 멋대로 쓸려나갔을 뿐인 그림이었다.
"..." 주변을 차가운 시선으로 훑고, 적이 더이상 남지 않음을 확인한 그녀는 뺨에 튄 피들을 손목으로 닦아내며 자세를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격해진 움직임에 어느새인가 후드가 뒤로 젖혀져 있었다. 보팔토끼 수인의 자랑인 길게 솟은 귀와, 하나는 그렇지 못한 붕대 감긴 귀였다. 누누코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 써 그것을 감추며 빗장 풀린 문으로 다가갔다.
이라 말하고, 장님은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치며 돌아 나갑니다. 엘리는 이제 침대 위에 누워서 편히 두 다리 뻗고 해가 질 때까지 쉬려고 합니다. 역시 바깥에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쉴 때는 쉬어줘야 합니다. 특히 대낮에는요. 제아무리 천옷으로 몸을 싸매도 대낮에 돌아다닌다? 인간 아니면 미친놈이나 할 짓이죠. 엘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 잠 열심히 자려는데... 갑자기 동굴 입구 쪽에서 비명이 들려옵니다.
"제기랄, 빨리 들어와! 빨리 들어오라고!"
"여보! 우리 노새는..."
"지금 노새가 중요해?! 제기랄!"
갑자기 뭔 난리인가 싶어서 일어나보니, 한 부부가 아이들을 끌고 들어와서는 엘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뜸 묻는군요.
>>334 문이 열리면, 침침한 촛불에 의지해 온 방을 밝히고 있는 한 노인이 나타납니다. 노인의 주름진 눈가에는 의심과 냉소가 가득해보이고, 그 의심과 냉소는 처음에는 요한을 향했다가 그 다음에는 누누코를 향하는군요. 누누코는 다른 사람들을 보는데 달리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쫄아 있거나 뒤로 물러났는데 이 사람만 테이블에 앉아 두 사람을 당당히 맞고 있으니, 아마 이 사람이 정보상 '제멜바이스'겠지요. 제멜바이스는 누누코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더니 요한에게 말합니다.
"석탄산수를 쓰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또 독한 술로 소독을 했나 보군. 돌팔이."
"있는 대로 하는 거죠. 그리고 덕분에 이 친구는 당신의 그... 봉급 값을 하는지 의문인 어깨들을 때려눕힐 때까지 살아있었고요."
요한은 누누코와 함께 테이블에 앉고, 제멜바이스는 아까 전에 누누코를 개무시하던 이들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누누코의 눈을 똑바로 보고 그녀에게 질문합니다.
"그래. 내가 이 지역의 정보상 겸 전직 위생학자 제멜바이스다. 무슨 문제인지 이야기해주고, 얼마까지 줄 수 있는지 이야기하면, 내가 네 상황에 딱 맞는 정보를 주곤 하지."
"이건 믿어도 됩니다. 제멜바이스가 노인네 될 때까지 정보상들이 수십명이 있었는데, 이 사람하고 다른 몇 명만 남은 건 사실 이 직업윤리를 똑바로 지키는 게 제멜바이스밖에 없어서 그랬거든요."
제멜바이스는 지긋이 요한을 노려보고, 요한은 입을 닫습니다. 여전히 웃고 있지만요. 요한은 누누코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고 옆으로 슬쩍 빠집니다. 제멜바이스는 누누코에게 묻는군요.
건장한 농부가 쇠스랑을 들고 엘리 앞에서 휙휙 내지르고 찌르며 위협하지만, 아내는 엘리를 바라봅니다. 붉은색 계통의 활동성을 극히 강조한 늘씬한 옷에, 흰 머리칼과 그 신비함에 어우러지는 얼굴을 본뜬 가면. 그 가면의 눈구멍너머에 숨은 붉은 눈동자... 이 세상에 제아무리 특이하게 생긴 이들이 많다지만 엘리의 기운은 뭔가 다른지, 아내가 엘리를 보고 말합니다.
"바깥에 뭔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고 있고요?"
뭐, 엘리도 귀 달려있습니다. 대충 늑대들이 컹컹 짖는 소리가... 잠깐, 내 소!!! 내 닭!!!!
@@ >>338 누누코는 자리에 앉는다. 방 안에 가득 들어찬 먼지의 곰팡내, 그리고 인간들의 쉰내와 촛불 특유의 타들어가는 밀랍의 향이 뒤섞이며 범인보다 예민할터인 누누코의 코를 찔러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에선 몸 전체의 상처에 배어있는 술의 냄새가 그나마 나은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조용히 이곳의 주인, 제멜바이스를 그저 보고 있었을 뿐으로-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왔을 때 이렇게 말한다.
"누누코의 동족들을 찾고싶어." 그것은 누누코가 지금 이자리에 있는 이유.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대답이자, 모든 것이 함축된 의미의 요구였다. 그녀는 손 안의 묵직한 탈러 주머니를 무심하게 테이블 위에 툭 얹어놓고서는, 별안간 자신의 어깨에 손을 가져가 옷을 내려재끼고 몸을 가볍게 튼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선명한 노예의 낙인이었다.
"그리고 몇몇 인간들도." 그 목소리는 평탄하기 그지 없었지만, 한 편으로는 마치 포식자의 으르렁거림과 같았다.
저는 소녀의 반응에 살며시 눈웃음을 한번 지어보이고는 그리 말했어요. 이후에 이어지는 반응으로 본다면 다행스럽게도 저의 소개는 충분했던 것 같아요. 그리하여 정식으로 호수의 어촌, 플라베르흐 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저희에게 열린 거에요
"저와 앨리스 님을 그렇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느끼시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시도 해보겠어요"
저는 스스로를 넬루 로서 칭하는 소녀의 대답에 이번에도 상체를 한번 앞으로 고개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는 그리 말했어요. 마녀 님의 제자이며 거둬져 그 아래서 자라난 아이로서, 그들이 저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저에게도 걸맞게 지켜야 할 것이 있겠지요. 그러니 앞으로도 크게 어긋나는 일 없이 할 수 있기를 바래요
"그렇다면 그녀의 잘못은 만회될 수 있을까요? 저는 가능하다면 잘못된 일은 없도록 하고 싶어요. 저들이 준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녀가 제대로 계속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칭찬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그러한 일이 없기를 바라며 대답했어요. 그녀의 모습을 곁에서 적지는 않은 시간 동안 보았고, 그녀와 처음 만나게 되었을때 그녀가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 약간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숲에서 그녀가 충분히 살아남았던 이유는 적절한 능력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 성향 때문에 무사히 성공할법한 시도가 어긋나는 행동이 되어버려서 스스로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그것으로 인한 조금씩 겹겹히 쌓인 결과로서 최후를 맞이하게 될 뻔했지만 저로 인해 빗겨나게 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진실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요?
>>336 크론은 아주 쉽게, 모두의 질시와 경탄을 한몸에 받으며 국경을 넘어섭니다. 쓰레기 더미 속을 헤매던 그의 얼굴을 흐릿하게나마 알아본 누군가가 더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면 어디서 눈을 흘기냐며 경비들이 머리를 대신 때리고 서류나 가져오고 설치라고 악을 씁니다. 그렇게 한숨 돌린 크론은 국경을 뒤로 하고 마을운 바라보는데, 국경이라 그런지 마을들에 가옥이 별로 없고 대부분 병사들이 머무는 막사와 대장간 따위의 일반인 거주 이외 목적이 확실한 곳들입니다. 아마 이곳에서는 마차 값을 내려면...
>>343 '사도님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판단은 사도님의 몫이고, 어차피 큰일이 난다면 베스니야 마뜩찮지만 사도님이야 당연히 지켜드릴 테니까요.'
가말라시엘은 그 정도만 말하고 더 이상 언급을 멈춥니다. 그리고, 베스니와 아앨라나는 플라베르흐로 들어섭니다. 목책 안의 마을은 여러 집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범람과 침수를 막으려는 것인지 길고 두꺼운 기둥을 사방에 박아서 집을 높이 세웠고, 집도 바닥을 까는 재료를 제외하고 벽은 아카시아나무나 갈대를 엮은 것 따위로, 지붕도 갈대와 나뭇가지를 쌓아 새 둥지처럼 지은 것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생긴 게 참 둥지 같은 지붕에서는 정말로 새들이 알을 낳았고, 마을 사람들은 물새 알을 눈치껏 한두개씩 챙겨 내려옵니다.
"그 물자는 여기다가 내려놔!"
"여기 와서 밧줄 좀 당겨!"
그리고 ㅁ교역을 하는 마을이라는 것을 나타내듯, 작은 돛이나 노 한두짝을 단 배들 한 두대가 나와서 짐을 부리고 있습니다. 베스니는 그걸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자기 자리가 있을까 찾아보고 있습니다.
>>350 ㅇㅇ 최대한 풀어서 설명해줘. 누누코의 말투를 지키면서 이야기하기 어렵다면, 누누코가 이렇게 설명했다... 고 하고 그 다음에 그냥 생각했던 설정 주르륵 다 평어로 풀어놔도 됨. 스토리가 진행되면 될수록 캡틴과 참치가 배경 설정에 대해 가지는 공통 심상이 일치해가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거치는 절차 같은거라.
헬렌의 부탁을 들은 균사의 정령 타톤은, 자신이 다루는 실체인 걸어다니는 버섯의 형태로, 헬렌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 상태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헬렌은 백작가의 가세가 기울기 전 후원하던 '버섯 키우기 대회'의 출품작을 보는 것 같습니다. 타톤, 정령이자 버섯인 모순적인 존재들은 앞을 꽉 틀어막고, 달려오던 이들은 자기들이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무슨 새끼손가락만한 버섯이나 겨우 자라던 곳에 자기 키만큼 크고 대장장이마냥 어깨가 거대한 버섯이 '피어난' 광경을 보자 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당황합니다.
"뭐, 뭐야 이 씨발?!"
"이 버섯들 뭐야?!"
아무래도 상대들은 이 타톤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건, 그들의 눈에 이 '타톤'들은 그저 아무리 때리고 베어도 맞고 잘려나갈 버섯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타톤들은 마치 자기들이 하급 정령이라도 되는 양, 반격하지 않고 맞아줍니다. 암허슈트는 혀를 차면서 말하는군요.
'저 무뢰한들이 아가씨의 목까지 칠 지경에 이르지 않는 이상 저 버섯들은 저기 가만히 서 있으면 자기네들이 진짜 잘 한다 여길 겁니다.'
그리고, 백과사전의 정령도 한 마디... 아니, 수십마디를 거듭니다.
'타톤: 타톤은 누룩곰팡이, 버섯 포자, 버섯 등을 아우르는 포자와 균사류 전반의 복합적인 생명 작용을 통해 전 세계에 초개체적으로 존재하는 군체의식에 가까운 정령이자 그 정령에 의해 이동과 공격 등 기초적인 행동이 가능한 수준으로 운동 기능이 발달한 균사류 군체 전반을 통칭합니다. 이들은 곰팡이와 버섯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환경, 즉 상온의 다습하고 어두운 환경이라면 발견될 확률이 높고 전 세계를 여행하는 정령사를 각지의 타톤들이 바로 알아볼 정도로 군체의식이 발달되었으나, 그 대가로 중급 정령에 크게 못 미치는 하급 정령과 비견될 정도의 초보적인 지능을 보여주며, 쉽게 제거하기 어려운 버섯과 곰팡이 포자의 특성상 생존의 위협을 잘 느끼지 않아 독자적으로 공격에 반격할 가능성도 낮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 배시는 도움이 되는군요.
'끼끼끼이이...'
헬렌의 부탁을 똑바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배시는 소름돋는 고주파의 울음소리, 아니, 들리긴 하는지도 애매한 그 소리와 함께 동굴 속에서 수많은 박쥐들을 이끌어내어 병사들을 둘러쌉니다. 병사들은 팔에 달라붙어 마구 물어뜯는 박쥐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고, 사람들이 마구 엎어지자 그제야 암허슈트가 껄껄 웃는군요.
"그런가요. 누군가 삶의 방식을 방향을 지시해줄 수는 있어도 결국, 거기까지 가는 것은 자신이고 그것은 스스로의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말이시지요? 후후~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이렇게 지켜주신다고 말해주시니 더욱 의지되고 기쁘네요!"
저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이번에도 수긍하면서도 작게 한번 웃고는 그렇게 비유해가며 말했어요. 그렇게 저희는 어촌에 들어섰고 그곳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어요. 호수의 품결에서 살아가는 것 이여서 집들은 그곳의 걸맞는 구조를 갖추게 되어 있었어요. 그 재료도 대체로 숲에서, 호수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요. 마녀 님의 자택이나 책에 보았던 본 바깥 마을의 모양과 숲의 끝, 가장자리에서 희미하게 보여지는 것들 처럼 좀더 다양한 재료로 정교하고 건축물은 아닐지라도 이것들은 좋은 보금자리에 되어 줄거에요
"플라베르흐의 특성상 비슷한 것은 있을 것이겠지만 바깥 마을과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기에는 잘 맞지 않을 것이에요. 그래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좋을 거에요"
어촌을 거닐고자 하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저희가 본 것은 사람들이 분주히 물건들을 옮기는 것이였어요. 저도 그것을 흘깃 한 두번 봐라보았어요. 이후 저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어요. 그녀가 이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호수에 왔고 그렇기에 모처럼 어촌까지 오게되었으니 이곳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358 일단은 정령 친화도나 정령사 적성을 일종의 '개연성 드립'으로 해석하고 있는 중. 예를 들어 10만원 빌려주세요 라는 부탁을 존못이 하면 다들 생까지만 장원영이 하면 일단 상환기간이나 이자율 얼마 쳐줄건지 들어보고 결정할 것처럼. 정령들한테 헬렌은 일종의 아이돌로 보인다 생각하고 있음.
>>356 엘리는 상대를 똑바로 바라봅니다. 회색의 털, 오두막만하게 커진 몸집, 동굴에 꽉 끼는 게 아닐까 걱정되는 등빨. 농부와 아내는 그 늑대를 보더니 자기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는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이 상황에서 해야 하고, 또한 가장 잘 할 수 있는 '도망'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엘리는 늑대를 바라봅니다. 늑대인간이 엘리를 동굴 안으로 내친 것은 확실히 늑대인간의 실책이자 엘리의 행운입니다. 왜냐고요? 늑대인간이 몸을 웅크려도, 여긴 상당히 비좁거든요.
"크르르..."
엘리는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탐색합니다. 늑대인간의 순간적인 반사신경과 내지르는 속도를 볼 때 엘리의 속도와 버금가는 것 같긴 하지만, 늑대인간의 덩치가 너무 큰 탓에 이 동굴이 사실상 엘리와 함께 싸우는 느낌이 됩니다. 그리고...
>>360 정령 적성 아예 없음: 정령을 인식도 못함. 정령 적성 낮음: 정령을 인식은 하는데 대화가 안 됨. 정령 적성 보통: 정령 인식하고 대화도 가능한데 부탁하면 어지간히 쉬운 부탁이거나 진짜 아주 좋게 말하고 좋은 대가를 제시하거나 어지간히 하급 정령한테 부탁하는게 아닌이상 "니 뭐 되세요?" 소리 나옴 정령 적성 높음: 정령 인식하고 대화도 가능하고 정령들이 호감을 가지며 어지간한 부탁은 들어줌. 로렌스가 이 급, 또는 이것보다 한 급 더 위인것으로 생각중
헬렌의 정중한 질문은, 유감스럽게도 하나도 정중하지 않은 이 상황 속에서 전혀 들려오지 않습니다. 헬렌이 곤란해하며 다시 여러번 물어봐도 상황은 똑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배시가 자리를 물리게 할 수도 없습니다. 배시가 박쥐들을 뒤로 물리는 순간 이 병사들은 울면서 뒤로 돌아가 더 많은 지원군을 불러올 것이고, 그렇다고 타톤을 시켜 이들을 억류하라고 하자니, 흙의 정령 때처럼 이 타톤들이 이 놈들의 몸에 갑자기 버섯을 틔워서 버섯 좀비화시키거나 아예 깔아뭉개 터뜨리는 등 사실상 살인이나 다름없는 짓을 할까봐 걱정입니다. 그래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등골에, 박쥐를 포함한 모든 생물의 등골에 소름이 돋습니다.
'아가씨가 말씀하시잖습니까, 교양 없는 족속들아.'
"..."
"......"
"........."
침묵. 암허슈트가 나직이 노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헬렌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의 입술이 얼어붙습니다. 헬렌이 다시 한번, 당신들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요? 뱀이 나온다고 들었는데요, 라고 묻자... 갑옷 입은 사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말해도 되는 상황인지 창백한 얼굴로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리고 백과사전의 정령은, 질문에 충실히 답해줍니다.
'피와 연관된 사술 및 의식은 그 예식의 정밀성과 절차 등이 원시 부족부터 도시의 비밀 사교도 조직까지 매우 다양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현재 백작가 서고에서 접근 가능한 수준의 이단학 서적 수준에서는 피와 사체를 이용한 인신공양 및 잔혹의식에 대한 분류를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즉, 저게 사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럴 때만 참 묘하게 도움 안 되는 놈이군요 이거.
>>357 아무래도 여기는 바깥 사람들도 드나들긴 하는 만큼 '여관'이라 부를 만한 곳이 있긴 있습니다. 정확히는 가족 3대가 살 수 있을 정도로 큰 촌장댁이긴 하지만요. 플라베르흐와 교역을 튼 거래처에서 취급하는 화폐나, 이곳에서 유용하게 쓸 법한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대가를 치르고, 그 화폐가 없다면 그럼 몸으로 때우고 하룻밤의 휴식을 벌어가는 그런 곳입니다. 이전에 앨리스 님과 함께 왔을 때 팻말에 동전과 곡괭이 표시가 함께 그려진 것에 대고 앨리스 님이 설명해준 독특한 습속이었는데 요즘도 그런가봅니다. 촌장은 베스니와 아앨라나를 보고, 베스니 등짝에 실린 건가재포를 보더니, 척 봐도 '외지인' 같아보이는 베스니에게 말합니다.
"그 건가재포 전부 우리한테 팔아. 외부로 나가는 배가 사흘 뒤에 오는데, 그 뱃삯이랑 그때까지 이 집에서 머무르면서 하루 한 끼씩 먹여주는 값으로 사지."
"어... 하루 세끼는 안 되나요?"
"그건 일해서 벌어."
촌장이 그렇게 말하자 베스니는 아앨라나를 돌아봅니다. 어찌 됐든, 가재살을 발라서 들고 온 건 베스니지만 애시당초 큰적가재를 빨갛게 익은 가재구이로 만들어버린 건 아앨라나였으니까, 굳이 소유권을 따지자면 이건 아앨라나의 물건이고 아무리 아앨라나의 소유권을 부정한다 해도, 아앨라나의 지분이 최소 70%는 된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365 오~~~ 확 이해했다! 궁금한 점은 정령들이 원하는 대가라는게 뭘까? 정령마다 원하는거 갖고싶은 게 다르려나? 아니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게 있으려나. 정령들은 정령사가 이런 행동을 하면 싫어한다 뭐 이런 게 있을까? 아무리 아이돌이라도 싫은 행동을 하면 확 깨거나 싫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지~
@@>>348 역참이라. '크론'은 모르겠지만, 나는 딱히 마차를 타본 경험이 없다. 그야 마차가 뭔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야 지나다니는 것을 보긴 했지만 직접 타본 적도 없고 역참인지 뭔지에 가본 적도 없다.
그러니 오히려 재밌는 경험이 되겠지. 살다 보니 마차여행 같은 것도 다 해보는구나.
그래도 '크론'은 태연하게 움직인다. 굳이 역참이 어디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런 규모의 마을이면 살짝만 돌아다녀도 금방 발견할 수 있으니..모르긴 몰라도 마차를 탈 수 있는 곳이면 말과 마차가 있어야 하니깐 좀 넓게 외곽에 자리 잡지 않았을까. 아마 층고도 꽤 높은 건물이어야 할 테고.
그래서 그녀가 물어보았던 것처럼 저희가 어촌에서 먼저 들러보기로 하는 곳은 괜찮게 휴식을 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곳이였어요. 그리고 도달한 그곳은 바로, 어촌의 촌장 님의 자택이였어요. 그것은 엄연한 의미에서 여관에 맞는 곳은 아닐지라도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해줄수는 있어요. 제가 비슷하지만 같게 느끼는 것에는 어렵다 라고 표현하였던 이유이기도 하였어요. 제가 예전에 보았고 기억하였던대로 어촌에는 지금도 이렇게 되는 듯 했어요
"저에게 그것은 괜찮아 보여요. 그렇게 하도록 할까요?"
그리고 저희는 촌장 님과 만나뵙고 저희가 가진 것들을 보이자 그러한 제안을 받을 수 있었어요. 거기에서 저를 돌아보는 베스니의 반응은 제가 이에 대해서 뭔가 말해주길 바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저의 의중을 말없이 행동으로 묻는 것일까요. 어느쪽이 되었더라도 이 제안에 대하여 그녀에게는 어떨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는 굳이 거절할만한 것은 느끼지 못했어요. 생각해본다면... 이것도 나름대로 그녀가 보고 싶다고 말했던 '플라베르흐만의 독특한 것' 이라고 할 수도 있을거에요
엘리의 손톱이 파고드는데, 아무래도 인간이나 고블린들이 대다수이던 세스타우와는 달리, 두꺼운 가죽과 지방질과 근육 때문에 타격이 덜한 것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본래 엘리의 싸움 방식은 개개 공격의 운동 에너지보다는 그 민첩함과 눈을 뜨지 못하는 맹렬함에 있기에, 하나하나가 단검같은 양 손의 다섯 손톱이 번갈아 인랑(人狼)의 목덜미를 난도질하자 늑대인간이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마구 뒤틉니다. 그리고...
쾅!!!!!!
안 그래도 천장에 거치적거릴 정도로 늑대인간의 키가 큰데, 엘리가 그 위에 올라간 상태에서 늑대인간이 위로 몸을 제끼자 천장과 엘리의 정수리가 박치기를 하고, 엘리는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환상과 함께 떨어져나가고, 엘리의 발을 잡은 늑대인간이 그녀를 쾅! 쾅! 쾅! 내동댕이칩니다.
>>369 그들의 눈이 매몰당한 동료에게 향합니다. 그 몰골은, 문자 그대로 살아'만' 있다고 말할 수준이고, 백 마디 말보다도 그 몰골이 그들의 아가리를 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암허슈트의 존재는 그들이 헬렌을 바라볼 때마다 비이성적인 공포에 질리게 만들어서, 그들의 입에서 저절로 바른 말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도 그냥 명령받는 입장이야...요. 두목이 삼두구렁이를 광산으로 몰아넣었어...요. 그리고 광부들한테 이 문제를 해결해줄 용병인 것처럼 속여서 돈을 받았어...요."
이 놈들은 존댓말이, 특히 헬렌처럼 새파랗게 어린 여자한테는 어색해 보이지만, 모든 지형지물과 자연현상이 그 새파랗게 어린 여자의 뜻대로 조종되는 무시무시한 광경은 수천대의 매보다도 효율적인 예절 주입기로 기능합니다.
>>371 크론의 판단은 정확했습니다. 역참 건물은 이 시대의 여러 건물 그렇듯 역참라고 크게 써붙여주진 않았지만, 마차와 말들이 줄을 서서 올라탈 누군가만 기다리고 있는 곳이 역참이 아니라면 어디가 역참이겠습니까? 크론은 그 앞에 섭니다. 화강암질의 단단하고 큰 돌을 직육면체로 깎아 주춧돌 삼고, 그 위로도 두꺼운 나무 기둥들 사이로 붉게 구운 벽돌을 쌓아올려 축조한 역참이 들어옵니다. 역참의 커다란 문을 지키는 두 경비병의 머리 위에는 마도제국의 문양과 이 지역을 다스리는 귀족의 인장이 각각 새겨진 깃발이 휘날리며 이곳을 들어오려는 이들에게, 과엿 자신에베 그럴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물론 크론에게는, 저 나부끼는 깃발이 마치 자신을 환영하는 손처럼도 보이고, 입은 옷이나 걸음걸이나 당당했기에 경비들의 제지 없이 쉽게 역참에 들어섭니다. 그리고 크론은 그 안을 살펴봅니다.
>>372 아앨라나의 양해 덕분에 벅스니는 건가재포를 전부 촌장에게 넘깁니다. 가말라시엘이 중력 렌즈로 바삭바삭 말린 건가재포는 마치 나무껍질을 벗겨낸 비쩍 마른 장작처럼도 보이고, 서로 부딪치면 팅팅 소리가 사는게 꼭 장작같습니다. 촌장의 가족이 건가재포를 가는 새끼줄로 꽁꽁 싸매고, 베스니는 며칠간의 체류와 외부행 배편을 얻습니다.
그렇게 거래는 성사되었고 저희가 가진 것들은 촌장 님에게로 넘겨주었어요. 곧이어 그것들이 이리저리 손질이 되어가는 것을 엿볼수 볼 수 있었어요. 그것에서 나는 소리는 생물의 고기라기 보다는 좀 더 무기질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려왔어요
"후후훗... 그런 것 같네요~"
저는 베스니의 말에 부드럽게 웃고는 그녀의 옆에서 모습을 바라보고는 그리 말했어요. 지금 그녀가 말한 것처럼 촌장 님이 말하셨던 몇 일 후 맞이하게 될 배에 오르게 된다면 비로소 검은 숲에서의 여정은 마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아직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꽤나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렇게 그녀와 저는, 결과에 제대로 도달할때 까지는 어떻게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생각나는 것 정도로는 이렇게 어촌까지 와서 날을 보내기로 하게 된다면... 좀 더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도 좋을거에요. 약간 산책 같은 느낌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동굴을 무너뜨릴 것, 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턱, 헬렌의 어깨에 손이 얹히고 헬렌은 반사적으로 뒤를 바라봅니다. 아까 전에, 베르누 수색대인지 뭔지에 입단한답시고 헬렌의 돈자루를 훔쳤다가 보기 좋게 실패한 그 수인 소녀입니다. 그녀의 귀에 달린 고양이귀가 쫑긋거리는데... 암허슈트는 그녀를 보고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더 깊은 동굴 안쪽을 노려봅니다.
'안쪽의 마법사, 분명 그냥 마법사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반(半) 정령 마법을 연구한 모양이군요. 제아무리 기척을 잘 지워도, 신화 속의 인물이 아닌 이상에야 제가 아가씨의 뒤에서 누가 오는데도 경고를 못할 정도로 교란당할 리가 없는데...'
암허슈트가 그렇게 말하니, 암허슈트가 만들어낸 정령적인 소름이 아닌 자연산(?) 소름이 헬렌의 등골에 쫙 돋습니다. 하지만 그럴 새도 없이, 그 수인 소녀가 단검을 꺼내더니 헬렌에게 이야기합니다.
"보니까 상당히 강한 것 같던데,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쓰려는 걸 보니까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 중에 골치아픈 놈이 있나 보네요. 이야기해보세요. 제가 처리할 수 있을지 볼게요."
>>379 엘리가 80년을 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팔이 잘리는 것보다도 손톱이 찍히는 게 훨씬 아프다는 것이고, 누군가를 움찔하게 만들려면 굳이 팔을 자를 필요도 없이 손톱 같은 부분만 어떻게 찍어도 된다는 겁니다. 엘리는 양 손으로 인랑(人狼)의 손가락 중 하나를 꽉 잡고, 손톱을 길게 뻗어 꽉 찔러버리고, 살가죽과 지방이 덮기에는 너무 얇고 세밀한 손가락에 갑자기 격통이 다가오자 인랑이 엘리를 놓칩니다. 그리고 엘리는 동굴 밖으로 나가는데...
치이이이익....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 그녀는 이럴 때마다 뱀파이어라는 자신의 혈통이 끔찍하게 저주스러워집니다. 노새는 도망을 쳤는지 챙기질 못했는지 보이지가 않고, 소는 묶여서 오도가도 못하고 벌벌 떨면서 오줌을 싸고 있군요. 햇빛이 마치 수천근의 족쇄가 되어 그녀의 몸을 묶어버린 것 같은데, 엘리는 어떻게든 그 소에게 다가가서 피를 빨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때 뒤에서 두두두두, 하며 무언가 달려오는 소리가 나고, 엘리는 그게 늑대인간임을 알아차립니다. 햇빛 아래에서 모든 것이 약해진 상태에서, 늑대인간이 온다면 이건 확실한 죽음이지만...
쌔애애애액!!!! 퍽!
"캥!"
엘리의 귓전을 스친 여러발의 화살, 늑대인간의 비명. 햇빛에 타는 것 같은 눈알로 어떻게든 앞을 바라보면, 엘리의 소달구지와는 다르게 검게 칠한 고딕 양식의 달리는 작은 저택 같은 마차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말들은 각자의 몸에 맞지만 기이한 빛을 더하는 검은 마갑을 쓰고 달려오고, 마부의 옆에 앉은 누군가는 여러발의 화살을 연거푸 쏴서 늑대인간을 다시 동굴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마차는 엘리 앞에 멈추더니, 마부석에 앉아있던 여자가 소 쪽으로 기어가는 엘리를 흘깃 보다가, 무시하고는 마차를 두들깁니다.
"엘레네 아가씨! 사냥감을 동굴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화살을 쏘던 남자가 마차에서 내리는 남자와 함께 두꺼워서 햇빛을 가리는 천을 펼쳐 마차 문앞을 가리고, 마차 문이 열리자 눈가에 안대를 써서 가리고 검은 옷을 치렁치렁하게 입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귀족 여성이 내립니다. 그녀는 엘리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동굴 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갑니다.
베스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좀 무서울 법도 합니다. 아앨라나가 발견했을 때부터만 해도 뼈가 부러져서 피부를 찢고 나오는 끔찍한 개방성 골절 상태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불곰을 만나질 않나, 숲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환각버섯들 사이를 떠돌지를 않나, 사람보다 더 큰 식인가재 떼를 만나지를 않나. 여태까지는 검은 숲ㅇ에 대한 모험정신이 그녀를 지탱했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있다 생각하니 자기 목숨은 두개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도 새삼스레 깨달은 듯합니다.
@@>>389 헬렌은 소녀가 타톤을 뛰어넘어 적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 용기에 감탄했다. 나보고 저기 들어가라고 한다면 절대 못들어갔을 거야. 물론 정령사가 전방에서 적들과 맞서는 건 마법사가 완드로 적을 패는 것과 비슷할테다. 소녀가 타톤 사이를 지나가려다 실패하는 모습은 꽤 귀여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명소리, 그리고 끔찍한 소리들이 들린 뒤 정령들이 경련을 멈추고 암허슈트가 성공을 알려왔다. 와, 대단하잖아.
‘흙의 정령아. 고양이 수인 소녀를 제외한 앞의 적들의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흙으로 묻어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만! 다치거나 부러지지는 않게! 동굴이 무너지지 않게 조심하고!’
>>390 엘리가 닭을 한 마리 해치우는 동안 안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대부분은 짐승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쾅! 쾅! 쾅! 하며 동굴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닭장에서 닭 한마리를 붙잡아서, 밤과는 다르게 정말로 약해져서 낑낑대면서 박히지도 않는 송곳니를 억지로 꽂아서 닭피를 빨아먹는 몰골을 보고, 그 소녀를 데려온 여자와 남자가 혀를 차더니 엘리를 양쪽에서 부축합니다. 그리고는 엘리를 단박에 알아보는군요.
"엘리자베스 아가씨. 태양을 극복하네,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닌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허술하게 바깥을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류드밀라 아가씨께서 싸우고 계신데 도우셔야죠. 빨리 들어가시죠."
류드밀라 바토리 이뮈르스,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와 다섯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언니이자... 두 번 죽어 세 번 살아 돌아온 일족의 집행자. 햇빛이 워낙에 뜨거워서 정신이 없던 나머지, 엘리는 자기 언니가 이단심문관에게 한쪽 눈을 잃고 마녀들을 사냥하면서 나머지 한쪽 눈을 잃은 다음, 불태워져 사라졌는데 시력을 대가로 다시 살아 돌아왔음을 이제야 기억해냅니다. 엘리는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류드밀라, 엘리의 언니가 양 손으로 인랑의 양 앞발을 붙잡은 채 힘싸움을 하는 것을 봅니다.
광산의 깊은 동굴 속에서 흙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천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흙가루가 쏟아져나옵니다. 헬렌은 본능적으로 암허슈트를 쳐다보지만, 그도 별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괜찮을 겁니다... 아마. 하지만 박쥐의 정령 배시가 이끄는 박쥐들은 생존 본능이 정령의 통제력을 끝내 이겨버린 탓에 바깥으로 급격히 날아가기 시작하면서, 배시는 반강제로 자리를 이탈하며 전투에서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동굴이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알아서 자랄 타톤들이 남아서 헬렌의 앞을 막는데...
"으아아아아!!"
"공격!!!"
어째 정령술이 잘 통하는 눈치가 아닙니다. 그때, 백과사전의 정령이 또 나섭니다.
'정령술의 기초 5장: 하급 정령은 역설적으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하급인 이유를 가진 정령들이다.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온갖 파멸적인 결과를 이끌지만, 구체적인 지시는 잘 이해하지 못해 답답한 결과를 만들거나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한 것이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령사가 정령 그 자체와 잠시 동화하는 정령화를 깨치거나, 또는 정령이 담당하는 속성이나 원소의 상위 개념을 담당하는 상급의 정령을 찾거나, 임의로 정령의 격을 승격시켜야 한다...'
암허슈트는 그 말을 끊고 시를 읊습니다.
'하늘의 거대한 구름도 흔들리고, 내 가족의 가족도 머무를 땅마저 흔들리는 이 세상에서, 내 어찌 아니 흔들리리.'
그러자 엄청나게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헬렌은 어떻게든 균형을 잡는데, 안쪽에서는 비명 소리와 함께 남자들이 살려달라고 공황에 빠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흙의 정령이 발을 묶지는 못하지만, 정령술을 쓰는 과정에서 지반이 흔들려서 패닉을 유발한 것 같습니다. 아마 나머지는 타톤들에게 맡겨도 되지 않...을까요? 학살극이 되겠지만.
헬렌은 이번엔 지시가 너무 복잡해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고양이 소녀에게는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했으면서! 차라리 배시를 이용해 공격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책한다.
‘배시, 고마웠어.’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배시를 보내고는 암허슈트의 도움으로 지진을 견뎠다. 하..... 어쩌면 좋을까. 학살 만큼은 막고 싶은데. 이들이 그렇게 죽일 만큼 잘못했나 한다면 그것도 아닐테다. 아니면 아직까지는 자신의 마음가짐이 무른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 전투를 끝내긴 해야 할터인데..... 결국 부름에 응답했던 중급 정령 중에 하나를 다시 부르기로 한다.
‘수사닌, 도와주세요. 저 적들을 기절시키려고 하는데, 광석을 좀 떨어뜨려줄래요? 고양이 수인 소녀가 맞지 않게 그 주변을 피해서 부탁드려요.’
돌 맞고 기절.......하다가 죽을수도 있겠지만 아 모르겠다... 나름 조절하는 거라고...... 헬렌은 눈물을 머금는다.
"그럴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그것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해 되어야 할까~ 하고 알아보기 위한 느낌에 닿고자 하는 것에 비슷해요"
산책에 대해서 그녀가 저와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아니였는지 모르겠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말에 어느정도 수긍하면서도 저는 그렇게 말했어요. 저 역시 같이 겪은 것이지만 그녀가 숲에서 한 경험들은 겁먹기에는 충분한 것들이였어요. 저에게도 그러한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익숙함이란 이름의 보호구와 마법이라는 무기가 있었기에 괜찮을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아니였을 것이니까요
이 산책이라는 것도 그 자체가 필요해서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어떤 과정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어요. 다른 때에 산책 자체를 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생각이나 계기를 확인하고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니까요
"후후훗... 어떠려나요? 그럼, 저에게 무엇을 주시겠어요?"
저는 그녀의 새로운 부탁에 상체를 앞으로 조금 숙이고 올려다보며 장난스러운 태도로 말했어요. 지금 이렇게 말해 보았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무언가를 저에게 주지 않아도 그녀에게 도움이 정말로 필요할 것 같다면 도움을 줄 수도 있을거에요. 그녀와의 첫 만남처럼 구하는데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던 것처럼요
수사닌은 그렇게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철광과 석탄 등을 관장하는 수사닌이라는 중급 정령은, 어찌 보면 흙의 정령의 상위급이라 볼 수 있습니다. 흙의 정령 같이 하급에겐 너무 어려울 명령도 그 취지를 눈치껏 이해한 그는,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쿵쿵거리는 소리가 점점 심해지더니, 째질 것 같던 적들의 비명소리도 어느새 멎어버립니다. 두두두두두... 하던 진동이 다시 멎고 나면, 수사닌이 헬렌에게 다가오더니 턱짓으로 이야기합니다.
베스니는 자기가 뭘 줄 수 있나 생각해봅니다. 자기 옷가지? 그렇게 되면 베스니는 집에 돌아갈 때까지 사실상 반나체로 돌아다니는 인간의 존엄을 붕괴시키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며, 결정적으로 아앨라나가 베스니의 옷을 원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검은 숲에서의 생활이 물자가 부족하다지만, 남의 옷까지 벗겨먹을 정도는 아닙니다. 돈? 베스니는 여기 오느라고 돈을 다 썼습니다. 결국 남는 건 공수표뿐입니다.
저의 그 말에 그녀가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의 대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얼마후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저번처럼 무언가를 주겠다는 것과 비슷했어요. 그때의 것은 그녀가 직접 말한 것이니 선물이라 칭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요구나 보상이라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그녀에게서 꼭 댓가를 받고 하려는 것도 아니였으니까요.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 할 수 있겠네요
"그래요, 무언가 확신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할만 것은 없어요.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주는 것 있다면 돌아오는 것도 있을거에요. 혹시 알겠나요? 언젠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요..."
그 때 가말라시엘 님이 그리 말하셨고 그 말에는 저도 수긍하기에 부정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그것이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라 생각하였던 저는 그렇게 대답해보았어요
"헤에~, 그런가요? 후후훗..."
"전부 도와드릴 수는 없겠지만 당분간은 좀 더 함께 해드릴게요"
그래서 가말라시엘 님의 말도 있으니 저는 그리 애메하게 말하는 것으로 다른 여지를 두는 것으로서 이번에도 조금 장난스러운 태도로 그렇게 말해주었어요
>>400 동굴로 던져지듯 들어가자마자, 엘리의 몸 상태는 갑자기 폭발적으로 좋아집니다. 순식간에 지옥과 천국을 모두 맛본 그녀의 몸은 이제 천국의 복락을 누리면서 인랑의 옆구리에 통렬한 발길질을 날립니다. 세스타우 때처럼, 때리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이나 신경쓰지 않는 뱀파이어이기에 가능한 속도의 공격이 작렬하자, 늑대인간의 갈비뼈와 엘리의 발목이 함께 부러지면서 인랑은 힘을 잃고 넘어집니다.
"캬아악!"
그러자 류드밀라, 엘리의 언니가 상대를 넘어뜨려 덮치고, 양 손을 맞잡아 주먹을 만들어 망치처럼 뭉치더니 그대로 늑대인간의 머리를 내리칩니다. 처음 몇 번의 강타는 버티던 머리는 주둥이가 점점 평평해지더니 결국 못 견디고 수박처럼 터져버리고, 램프를 들고 들어온 하인들이 그녀의 손을 닦을 수건을 가져와서 바칩니다. 류드밀라는 손을 닦고, 하인들이 늑대인간의 시체에 끌을 꽂아 당기는 동안... 반갑다는 말도 없이, 일족의 집행자 류드밀라 바토리 이뮈르스는 동굴 안의 혈향 속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냄새를 잡아내고 대뜸 묻습니다.
>>399 헬렌은 동굴 안으로 진입합니다. 비록 헬렌이 광부나 농부 같은 평민들에 대면 손에 흙, 물 안 묻히고 곱게 자란 편에 속하지만 그래도 향후 백작가를 이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광업도 좀 배웠고, 그녀의 눈으로 볼 때 단순히 유용 광물의 비중이 높은 정도를 넘어 이렇게 대놓고 '나 석탄이요' '나 철이요' 하며 광물이 알알이 박히거나 대놓고 차지한 것들은 최상급품입니다. 헬렌이 이 동굴을 무너뜨렸다면...
'아가씨, 앞에서 달려옵니다.'
...이란 상념에 빠질새도 없이, 헬렌은 등골에 쭉 뻗는 소름에 순간 뒤로 물러나고 그 한 발짝이, 목에 닿으려던 칼로부터 헬렌을 살려냅니다. 그 칼의 주인은 고양이 수인 소녀로, 그녀의 눈은 째질 듯 날카롭고 꼬리는 터진 듯 부풀었습니다. 그녀는 헬렌을 죽일듯 노려보면서 외칩니다.
"당신, 일부러 그랬지!!! 내가 당신 돈 훔쳤으니 싫을 법한건 이해하지만, 이럴 거면 그냥 꺼지라고 말하던가!!!"
머리에는 흙먼지가, 온 몸에는 석탄검댕이 가득합니다. 옆에 선 수사닌이 난처함을 숨기지 못하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녀가 어촌의 일을 돕게되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그녀가 하게된 일들은 여지없이 고된 일이겠지만 그녀가 외치는 것처럼 심각한 일은 아닐 거에요. 정말로 그렇다면 그녀도 주변 분들도 멈추고 상태를 살펴보았을 거에요. 무엇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큰 짐을 이고서도 지금까지의 역경에서 지금의 위치를 당당히 지켜냈으니까요
그녀도 다른 분들도 이때의 고생으로서 보답으로 전체의 생황을 좀 더 좋게 하고 연장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을거에요. 생물들에게 먹을 식량이 필요한 것처럼, 어촌에는 성장과 유지를 위해서 자재가 필요할 거에요
"저에게만 주어질 일인가요? 우선 무엇에 대한 것인지 설명을 들어보아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그리 생각하고 있었던 때에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제가 뒤돌아 보았을때 그 목소리의 주인은 촌장 님과 넬루 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였던 소녀이였어요. 이 어촌에서 저에게만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에 약간의 관심을 표하며 그리 대답했어요. 아마도, 제가 가진 능력에 관련되어 있다고 예상해볼 수 있을거에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이겠지요?
>>347 눈 앞의 노인의 말을 들은 누누코는 잠시 갈등했다. 과연 이런 미덥지 못한 인간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선뜻 넘겨도 좋을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은 곧 부족과 동료들을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택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다. 누누코는 잠시 뒤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이야기해 나가기 시작한다...
// 누누코네 부족 이름은 '신성한 들판'. 신성한 들판은 지역명 같은 것이 아니고, 정확히는 그들이 모시고 있는 신수와 연관이 깊다. 신성한 들판이 모시는 성물은 '붉은 잎 신수, 오르달리아' 라는 고목인데 일찍이 그들의 영웅이었던 '오르달리아'. 전사한 그녀의 유해를 시든 나무 아래에 묻자 그녀의 의지를 양분삼은듯 나무가 붉은 잎으로 개화하게 된 것이다. 신성한 들판은 다들 이런 나무에 모여 부족을 이룬다. 이러한 전설은 신성한 들판의 동족들 사이에서 대대로 전해져왔지만, 사실은 '오르달리아' 가 이 전설의 시작점인 것이 아니며 유일한 것도 아니다. 수인족의 역사는 항상 인간들의 습격, 그리고 충돌과 싸움으로 계속 되어왔고, 격동의 시기를 보내며 인간과는 달리 그들 대부분은 숲에 남아 모습을 감추고 자신들만의 문화와 땅을 개척했다. 즉, 이러한 과정에서 신격화 된 영웅의 유해가 묻힌 곳, '신수' 가 있는 곳이 곧 그들의 고향이자, 그 영웅의 의지를 잇고자 하는 수인들이 모인 곳이 '신성한 들판' 이 되는 것이다. 누누코는 이것을 자신의 스승이 되는 존재이자, 또 다른 토끼 수인 전사 '얼어붙는 피네' 에게서 배움받았으며 이러한 전설들의 기원과 수인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이해해가면서 현재의 '신성한 들판' 을 수호하는 전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직원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크론을 가리킵니다. 직원은 어느 관료 조직의 어느 관료가 그렇듯, 눈 앞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크론을 위해 마차를 잡아주는 일입니다. 묻는 말에 대답이요? 그의 담당업무에 그런 건 없습니다. 직원은 크론에게 말합니다.
"아카데미로 가는 연락마차는 100은화에 빌리실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도와드릴까요?"
그리고 실랑이를 벌이던 사내가 이 소란의 원인을 설명하는군요. 어째 희망이 엿보이는 말투입니다.
"입학생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저는 해머할 마검학 교수님의 검술조수 잭 리거입니다. 잠시 이웃 왕국의 고향에 휴가를 갔다오는 길에 아카데미 직원증을 잃었는데, 그것 하나 때문에 마차를 무료로 못 내준다지 뭡니까!"
>>412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제멜바이스의 희끗한 눈섭이 꿈틀거리더니, 두꺼운 책자와 서류더미 사이에서 무언가 찾습니다. 누누코가 부족 출신이라는 게 그녀가 글도 못 읽는 까막눈이란 뜻은 아니기에, 그녀는 제멜바이스가 읽고 있는 전단지에 '로데스 대농장주 노예에게 피살' 이라 적힌 것을 똑똑히 읽습니다.
"다른 부족들 내버려두고 여길 공격했다길래 이런 상병신들이 있나 했더니만, 그 상병신들이 공격한 곳이 자네 부족이었군. 뭐, 인간이 꼭 계산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내 싸구려 유감이나 슬픔이 자네 부족원들을 되돌려보내진 않을 테니, 본론이나 말하겠네. 누누코, 만약에..."
제멜바이스는 책상에 칼과 밧줄을 올립니다. 그리고 누누코에게 묻는군요.
"우리 정보력도 한계가 있고, 누군가한테 한번에 너무 많은 걸 알려주면 정보원이 노출될 수 있어. 그래서 한번에 하나씩 묻지. 먼저 피의 복수를 원하나, 아니면 동료를 구출하길 원하나?"
엘리가 뭐라 말하자마자 류드밀라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려퍼지고, 늑대인간을 바깥으로 끌어내려던 두 사람은 늑대인간을 끌던 끌을 땅에 내팽개친 채로 동굴 깊숙이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조금 있자, 아까 전에 동굴 안으로 뿔뿔이 도망쳤던 농부 부부와 아이들이 사색이 된 채 양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줄줄이 서서 나오고, 그 뒤에는 류드밀라의 부하들이 석궁을 들어 그들의 뒤통수에 조준한 채로 따라나오고 있습니다. 농부 부부는 짓이겨진 늑대인간의 머리통과, 아직 덜 닦은 피가 선한 류드밀라의 손을 보고 누가 이 모든 짓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를 깨닫고, 사색이 되다 못해 얼굴이 마치 회칠한 것마냥 하얘집니다. 류드밀라는 그들의 냄새를 맡다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명령합니다.
"오늘 죽일 놈년은 이 늑대인간, 그리고 내 앞에 이 년 하나면 충분해. 거기 농부들. 이 동굴 내일 아침까지만 좀 쓸 테니까 있어봐."
"알겠습니다."
류드밀라의 명령에 부하들이 석궁을 거두고, 농부 가족도 귀는 달려있는 만큼 쏜살같이 튀어 나갑니다. 그리고 부하들도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동굴 바깥으로 나가고, 류드밀라는 뚜둑, 뚜두둑, 손을 풀면서 땅을 더듬고, 끌... 끌... 하는 소리를 내면서 반사되는 파동으로 엘리의 위치를 대충 알아내더니 그녀의 손목을 붙잡습니다. 물론 좋은 의도는 아닌 게 손목에 느껴지는 끔찍한 손아귀 힘으로 느껴집니다. 인간 중에서도 좀 약한 축에 속하는 인간이면 당장 손목이 부러지거나 뽑혔을 수준의 악력입니다. 류드밀라의 목소리가 험악해지면서, 루마족 점쟁이가 말했던 대로,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를 설명해줍니다.
"가주님 저택 앞으로 '이단심문 공로답례' 라는 이름에, 발신인은 이단심문소인 관짝 하나가 왔어. 관짝을 까보니까 피 빨아달라는 미친년 하나가 들어있더라? 그거 때문에 이단심문소에서 지금 일족을 엎어버리려는 거냐,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난리가 났고, 좀 알아보니까 네가 세스타우에서 뭐 했던 그거 때문이더라고. 그러니까... 이야기 듣기 전에, 내가 널 당장 반쯤 찢어서 영지로 데려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대봐."
직원이 마차 수속을 차리하고 있지만 아마 시간이 걸릴 겁니다. 잭 리거, 아직까지는 '조교'를 자칭하는 이 남자는 자신의 실력은 잠깐이면 보여줄 수 있다면서 바깥으로 크론을 데리고 나가더니, 대뜸 역참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 두 명에게 은화가 든 자루를 확 던져서 가슴팍에 치이게 만듭니다. 경비병들은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해지는데, 잭 리거는 오히려 당당합니다.
"이봐, 어차피 거지 발싸개 새끼들은 저 바깥 경비들이 다 때려잡고 있겠다, 솔직히 심심하지 않아? 나랑 한 판 하자고. 검술 대련, 2:1. 만약에 날 이기면 이 자루에 든 50은화를 전부 주지."
"...만약 지면 어떻게 되는데?"
"지면 지는 거지. 나는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 실력이 사기가 아니란 걸 증명해야 해서 말이지."
그렇단 말인가... 경비병들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대뜸 칼을 들어 달려드립니다. 칼을 뽑지도 않았던 잭은 비겁하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달려든 이의 칼을 몸을 왼쪽으로 살짝 틀어 피하고, 두번째로 횡으로 베려는 칼을 처음 달려든 이의 팔을 팍 내리쳐 간섭하게 만들어 부딪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칼을 꺼내드는데, 몇 합 만에 경비 한 명은 검에 달린 폼멜로 여러 방 맞아 나가떨어지고, 나머지 한 명은 몇 번이나 목과 가슴, 고간 등 실전에서라면 무조건 죽을 약점 부위 근처에 수십번이나 칼이 들어오는 경험을 한 후 인정합니다.
@@ >>417 책상 위에 밧줄과 짧은 칼날이 올라온다. 누누코는 마치 그것에 이끌리듯 손을 뻗어서 칼날을 매만졌다. 둘 다.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누누코의 몸은 하나였고, 시간도 그랬다. 달과 하늘도 하나였다. 누누코는 말한다.
"누누코는 전사다." "싸우고 죽으면 그걸로 좋아. 그걸 위한 목숨이다." "하지만 신성한 들판에는 전사가 아닌 부족들도 있어." 누누코는 칼날을 자신의 눈 가까이로 들어올렸다. 때가 탄 칼날로 자신의 모습이 반사되어 보였다. 마치 야생으로 돌아간듯한 야수 하나. 그것은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말이 걸려지고 있었다. 우스운 모습이었다.
"그들이 이런 일을 겪어서 좋은 일 같은 건 없을테다." 칼을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다시 나란히 자리를 잡은 밧줄과 단검. 누누코는 선택한다.
>>422 그러자, 제멜바이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뒤에 서 있던 부하들이 누누코 앞에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을 가져옵니다. 제멜바이스는 서류들을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누누코에게, 어디로 가야 신성한 들판의 부족원들을 구출할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빨리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지는군요.
"부족들을 습격해서 획득한 노예는 일단 칸톤, 이라는 곳에서 먼저 선별해서, 여기서 '큰손'들이 노예 사냥꾼들한테 노예를 도떼기로 구입하지. 그리고 그 도매로 구입한 노예들을 큰손들이 다시 자기 경매장에다가 파는 거야. 너희 부족은, 이걸 다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절반이 보스트만, 나머지 절반이 하이르 앗 딘에게 팔려갔고... 이 큰손들은 각자 노예들을 파는 구역을 정해놨어."
제멜바이스는 지도를 꺼냅니다. 메츠 시와 멀찍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는 '보스트만'이라고 적혀있는 영역, 남쪽에는 '하이르 앗 딘'이라 적혀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요한은 시키지 않았지만 능숙하게 그것을 받아적기 시작하고, 제멜바이스는 필기는 요한에게 맡겨둔 채 누누코에게 설명을 계속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너희 부족은 메츠 시로부터 남쪽과 북쪽에 퍼져서 팔려갔을 거란 이야기야. 구체적으로 어디에 몇 명이 얼마나 팔려갔는지는 몰라. 하지만... 북쪽에는 '비더스'라는 지역이 노예 경매장으로 유명하고 남쪽에는 '베슨빌'이라는 지역이 유명해. 일단은 여기까지."
제멜바이스는 설명을 끊고 조언합니다.
"나머지는 현상금을 받건, 누구를 죽여서 뺏건 해서 돈을 벌어서, 그거로 그 지역의 노예상 밑에서 일하는 담당자를 매수하던지, 아니면 안 내놓으면 죽인다고 해서 영수증을 찾아보던지 해. 이 이상 알려주면 우리 쪽 정보원이 바로 노출될 거거든. 일단 여기까지. 더 질문 있나?"
>>425 "정말 고맙습니다. 나중에 마검술 수업을 하게 되면 절 보게 될 텐데... 그 때는, 아시겠죠?"
뭐, 크론이 아무리 아카데미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고, 쓰레기더미 바깥의 사회를 잘 모른다지마는 이건 명백합니다. 기브 앤 테이크, 좋은 걸 줬으면 좋은 걸 받거나 최소한 좋은 걸 준 인간한테 엿같은 것을 날려먹진 않는다. 크론이 살던 곳은 당장 내일 살아서 눈을 뜰지도 모르는 곳이니 인정과 친절은 천박한 농담이 되고 배신과 뒤통수가 덕목이 되는 기이한 곳이었지만, 조금만 바깥으로 나와도 그나마 살만한 곳이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크론이 목표를 낮춰서 '적당히' 사기를 쳐서 '적당히' 어딘가에서 새 신분을 얻어 '적당히' 평민으로 사는 정도야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은, 기왕 사기친 것 '크론'이라는 건어물이 된 입학생의 신분까지 사기를 쳤으니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지만요.
"안 들어오세요? 마차 수속 다 끝났는데."
참 빠르게, 100은화를 지불한 크론과 잭 앞에 마차가 나타납니다. 잭 리거는 편하게 갈 수 있게 됐다며 양 손을 싹싹 비비고, 크론에게 묻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느 지역 출신이십니까? 마법 적성은 지역 차별이 없다보니, 정말 다양한 곳에서 몰려오거든요. 이 지역에서 나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혹시 유학생인가요?"
@@ >>424 "아니. 충분해." 제멜바이스에게서 정보를 건네받자, 누누코는 말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그렇게 말할 뿐으로- 자리에서 즉시 일어났다. 이제 막 정보를 받았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듯,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거침따윈 없는 움직임이었다.
@@ >>432 "어디든 상관 없어." 바깥으로 나온 누누코는 요한의 말에 그렇게 대꾸했다. 둘 중 더 가까운 곳이 있다면 가겠지만, 서로의 거리는 어차피 그게 그것인 상황이었다. 게다가 퍼져있었으니... 어떻게 되든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였다.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야할지도 모른다.
엘리는 격통을 느낍니다. 이거, 엘리가 맷집이 강한 축이라 그냥 아픈 정도로 끝나지, 다른 이에게 이랬다면 팔을 뽑아버리려는 악의가 가득한 행위입니다. 뒤에서 보고 있던 하인들 중 여자가 말리려다가, 남자가 너까지 죽고 싶냐면서 뜯어말리고 질질 바깥으로 끌고 나가고, '하던 거 계속 하시면 됩니다!'라고 외칩니다. 네, 지금 상황에서 엘리를 도와줄 사람은 없습니다. 류드밀라는 주먹을 꽉 쥐더니, 엘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눈알 파인 다음에 한동안 안 맞았지?"
...엘리가 태어나기 전까지, 류드밀라는 막내이자 그 세대의 유일한 딸이었습니다. 위로는 다섯명의 뱀파이어 형제들이 있었고, 숫기 없는 성격부터 다혈질 성격까지 다양했지만... 류드밀라에게 가정 교사가 붙기 전까지 그녀에게 사회화 과정에서 상당히 '남성적'인 면모를 주입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을 못 차렸다 싶으면 대뜸 주먹부터 들고 보는 그런 것 말입니다. 가정교사가 일찍 붙은 엘리한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류드밀라한테는 정말로 이런 면이 많았고, 엘리는 류드밀라가 눈알 파이고 돌아온 이후에 솔직히 안 맞아도 되는 것만큼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악몽이 돌아오자 순간 소름이 돋습니다. 하지만...
땡그르르르...
엘리의 멱살을 잡자마자 아래에 점쟁이한테 구입했던 피가 담긴 병이 아래로 흘러나오고, 류드밀라는 밀봉된 병에서도 느껴지는 생생한 피 냄새에 쥔 주먹을 풀더니 바닥을 훑어서 피가 담긴 병을 잡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의 피 한 모금 분량을 마시고는 진정하는군요.
"좋아, 한번 더 기회를 주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 두 번 말했는데, 세 번 말하게 하면 그때는 바로 가주님 앞으로 끌고 간다."
...라고 하는데, 어떻게 말하나요? 에레야에게 심문받던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그냥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조금 사실을 누락하거나 거짓을 고할 수도 있고요.
"일단 무기를 사시죠. 누누코 씨에게 딱 맞는 무기들 말입니다. 물론 누누코 씨는 온 몸이 무기라고는 하지만, 온 몸이 무기인 사람이 진짜 '무기'까지 들면 정말로 무서워지는 법이거든요. 살인 무기들 말입니다. 도끼와 단검은 투척용이니 제껴두고, 본격적인 살인용으로 한두개쯤 들고 있어야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요한은 잠시 멈추더니 어느 쪽을 가리키는군요. 그리고 누누코에게 묻습니다.
"혹시 저 여자, 아는 사람입니까?"
누누코의 고개가 돌아가면, 경악해서 그 자리에 굳어버린 여자가 보입니다. 모를 리가 없죠.
이 어촌을 이끌고 있을, 마을의 대표라고 할 수도 있을 촌장 님은 저희가 넘겨주었던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계셨어요. 저는 눈웃음을 한번 지어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긍정하여 그렇게 대답하였어요. 가재는 호수의 생물이고 이곳 또한 호수의 영역을 공유하는 일원이니 가재들를 익히 보아왔을 것이에요. 다양한 관계가 있을 것이지만 주로 있는 관계는 포식자와 피식자로서의 관계이겠지요. 그것은 경험으로 다듬어진 노련함으로 나타나는 것일거에요
"저는 앨리스 님의 훌륭함에 비교될 수는 없겠지만, 그분의 제자로서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을거에요!"
이후 본격적으로 촌장 님은 이야기를 말해주셨어요.그 일이란, 꽤나 진중한 것이였던 것 같아요. 알지 못한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에 경계하듯 숲의 사람들이 만들고 이어가는 특유의 언어로 말해주었어요. 숲의 품 속에서 자라나고 생활했다고 할 수 있는 제가 그것을 모를리가 없었지요
저는 부탁에 승락하듯 고개를 여러번 살짝 끄덕이면서 말했어요. 아직 그 정확한 정체나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호수에 어떠한 두족류와 같은 존재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어촌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왔는데 어촌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는 원인을 무시할 수만은 없지요. 그렇다 제가 얼마만큼 할 수 있을까요?
>>442 촌장은 넬루와 함께 아앨라나를 데리고, 으슥한 곳에 있는 창고로 갑니다. 하지만 가까이 가자마자, 아앨라나는 창고에서 나면 안 되는 불쾌한 냄새에 코를 찡그립니다. 그녀가 검은 숲에 살면서 온갖 '발효식품'(갯지렁이 식해, 흙마늘, 토끼뇌 초절임) 냄새는 다 맡아봤는데 이건 명백한 죽음과 고통, 그것을 가리기 위한 독주와 향료의 냄새의 칵테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창고 주변을 서성이며 창칼로 지키는 촌민들은 아앨라나의 합리적 의심에 확증을 더합니다.
"이 안에 피해자들이 있네."
촌민들은 아앨라나를 본 적이 별로 없지만, 촌장이 데려온사람이니 굳이 실랑이 벌이지 않고 금방 비켜줍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들이 검은 숲 토박이, 외부인 할것 없이 널렸는데 출신이나 생긴건 달라도 다들 팔다리 하나씩 해먹은건 공통점이라 할 만합니다.
>>444 류드밀라와의 대화는 그간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단심문관에게 안전가옥도 받고, 지하수로에서 식인종들과 싸우다 하플링 소녀도 구출하고, 지하수로에서 가짜 뱀파이어를 죽이려고 이단심문관이 주는 피를 빨아서 밤의 군주로 변하고... 그 '미친년' 피도 빨고, 인간의 사교파티에 잠입했다가 뒤통수 맞고 기절한 후 일어나서 사교파티를 박살내고... 마지막으로 경비대 본부에 들어가서는 가짜 뱀파이어를 제압하고 세뇌된 경비병들을 구하고,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해 세스타우 귀족들을 화형하고, 재판 과정에서 도움을 준 광신도를 일족 저택으로 던져버리고.... 한 것 참 많습니다.
"...나도 선택받지 못한 밤의 군주의 자격을 고작 그거 때문에 쓰다니. 한심해."
엘리는 단순히 태양빛 아래에서 멀쩡하길 바래서 특별한게 아니라, 이런 면에서도 특별했습니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 하나만 붙어도 대단할 일족의 이명을 세 개나 받았고, 일족 중 그녀의 세대에서 밤의 군주라는 권리를 발현한 것은 엘리가 유일합니다. 한심하다는 류드밀라의 목소리에 어쩐지 조금의 질투도 섞인 느낌인데, 사정을 다 들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좋아. 그러면 일단 태형이나 수치형은 면하게 해줄게. 하지만... 호르뮈셰로 간다고? 거기서도 이렇게 사고칠 생각이야?"
그렇게 저는 이야기를 나누고는 이어 뒤따라 장소를 옮기게 되었어요. 촌장 님과 함께 오게 된 곳은 어촌의 어느 한 창고와 같은 곳으로서 흔히 '나쁜 냄새' 라고 하는 것들과 달리 좀 더, 본질적 면모와 닿는 불쾌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향료나 술 처럼 자극이 강한 같은 것들로 속이려는 행위에도 무색하게 오는, 이것은... 죽음이 다가오며 풍기는 냄새 이였어요
창고 내부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 저마다 스스로의 상실된 신체의 일부에 신음하고 있었어요. 숲의 사람들은 물론, 외부인들조차 있었지요
이번에도 저는 촌장 님의 그런 말에 다른 말없이 그저 광경을 바라보았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이야기의 실체는 심각했어요. 아니요, 이것은 그 존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예고장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되는 것이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맞이할 그 끝은....
@@ >>449 "...후흥." 요한의 돈자루를 힐긋 보며 소리낸 누누코는, 천천히 나아가 대장간 안의 무기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든 것은 장검이었다. 그것을 들어올려 능숙한 폼으로 두어번 가볍게 휘둘러보인다. 야만적이지 않은, 제대로 모습을 갖춘 정제된 움직임이었다. 다음은 레이피어였다. 손을 서로 바꿔가며 전방에 검날을 겨눠보지만 이것 역시도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는듯이 장검보다도 빠르게 금방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 다음 들어올린 것은 둘의 단검이었다. 하나는 짧은 검신이 곡도처럼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는 칼이었다. 쉽게 벨 수 있도록 돕는 형태였고, 손잡이의 모양새로 보아 역수로 쥐고 사용하도록 되어있는 물건같았다. 나머지 하나의 단검은 그저 곧게 뻗은, 방금 것과는 비교적 평범한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좌우로 넓게 전개 된 핸드가드와 빗장처럼 줄지은 홈이 단검의 날 안쪽에 세공되어 자리잡고 있었다.
코그선, 인가요... 책으로는 보았지만 실제로 직접 본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은 크고 강한 배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조차 파괴할 정도의 힘을 지닌 것이라면 위협적인 야수들 중에서도 특이한, 우두머리 격의 존재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이내 이어지는 말과 함께 어느 분에게 새겨진 흔적은 마치, 공포라는 이름의 송곳니를 저를 향해서 번뜩이듯이 보이는 것처럼 상상이 될 수 있었어요
"스스로를 바칠 각오가 된, 뛰어난 헌신으로서 모두를 구하셨던 것이네요"
그러한 말과 모습에 저는 감탄하면서도 조금 위축되어서 그렇게 말했어요. 이렇게까지 강력하고 위험한 존재를 제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요? 어떨까요, 저는 이분들 만큼 용맹하거나 각오를 다지는 것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어촌의 분들도 어떻게든 힘을 내서 그것을 쫒아내는 것에는 성공했어요. 그렇다면 저 또한 시도하여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과연, 이렇기 때문에 저만이 해낼 수 있을, 일이라고 하셨던 것 이였어요...
>>452 요한은 단검 세트를 내려다봅니다. 장검처럼 길지도 레이피어처럼 뾰족하지도 않지만... 누누코 같은 무기이고, 누누코의 살인 방식에 딱 맞는 무기입니다. 상대의 창칼이 닿지도 않는 품 속으로 파고들어가 온 몸을 벌집 삼겹살마냥 꿰어버리고, 수십개의 핏구멍을 만드는 유식한 말로 인파이터, 무식한 말로 개싸움꾼 말입니다.
"좋습니다. 마스터! 금액을 계산해주시죠."
유지관리를 위한 돼지기름, 헝겊, 그 외 기타 세금까지 포함해 50탈러가 깨졌습니다. 요한은 포장을 바로 뜯어 누누코에게 넘기고 묻습니다.
...라고 가말라시엘이 아앨라나의 마음속에서 운을 뗍니다. 그 목소리는 분명 자신의 강대한 힘으로 가재살이나 말리고, 베스니의 멍청한 행동을 비웃던 그 가말라시엘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분명한 죽음의 냄새 앞에서 가말라시엘의 존재는 더 강해지고, 더 섬뜩해졌습니다. 가말라시엘은 수확할 준비가 된 영혼들, 수많은 죽음의 문턱을 보고 입맛을 다시며 제안하는군요.
'저들의 생명력이라면, 그 문어도 그냥 거대한 문어 숙회가 될 겁니다. 사도님. 생각해보십시오ㅡ 고작 잡초들이 큰적가재들의 불쌍한 삶에 위대한 마침표를 찍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의 영혼이라면...'
인신공양, 인간의 생명을 바치는 의식. 검은 숲에서도 정말로 일부만이, 또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한다는 그것입니다.
'어차피 곧 죽을지도 모를 이들입니다. 빨려 죽어도 부상을 못 버텼다 여기겠죠. 그들이 이걸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이 그 괴물의 확실한 죽음을 약속한다면 뭐든 안 되겠습니까?'
...라 하는군요. 인신공양. 그녀의 스승 앨리스도 당장 방법은 없는데 조치를 안 하면 큰일나는 상황(지맥망 붕괴, 세계수 썩음병 등) 에서 사람을 연료 삼아 거대한 해결책을 만들긴 했습니다만, 음, 어...
>>455 "어머니께서 변경 개척민 출신이셨나 보군요. 한번 가면 돌아가느니 고향을 잊는게 낫다고는 들었는데."
뭔가 크론의 예상보다도 오해가 커지는것 같긴 한데, 신경쓰지 맙시다. 어차피 건어물도 아닌 비마법사가 크론으로 불리고 입학생 취급받는 것부터가 거대한 오해인데요. 마부는 두 사람이 타자마자 훠이, 소리와 함께 말을 몰아 출발합니다. 두 사람의 발보다도 빠르게, 바람을 느끼며 나아갑니다.
"여기서면 며칠 정도 걸릴 겁니다. 제가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팁을 알려드릴테니 적어두시죠."
>>462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카데미는 4개 파벌로 나뉘어져 있어요. 어느 파벌이 좋다는 얘기는 안 할 거에요. 그런 건 얘기해서도 안 되고, 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가서 다니다보면 알아서 어느 파벌에 들어갈지 판단하게 될 거고요. 하지만 그건 알아두세요. 파벌 싸움은 정말로 완벽하게 잘 할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끼지를 마세요."
잭은 진지한 표정으로, 조금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합니다. 어디서나 있는 게 암투와 정쟁 아닌가요? 아무튼 크론은 새겨듣는데, 뭐,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정쟁은 제대로 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남들 가는대로 흘러갔다가 남들 오는대로 흘러오는 세파에 흘러가고 흘러오는 삶을 선택하는 게 차라리 낫죠.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면 말입니다.
"각 학년이나 세대별로 꼭 승리하는 파벌이 하나가 나와요. 그리고 승리하는 파벌의 리더격들은 정말로... 미래가 창창하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별 것 없지만요. 하지만 나머지 패배한 파벌의 리더들은? 차라리 저기서 경비병들한테 쳐맞는 거지떼의 삶이 부러워질 정도로 비참해집니다. 그래도... 나머지 '떨거지'들은 사정이 나아요. 어쨌든 이 제국은 마법사가 없으면 안 돌아가는 나라고, 승리하는 파벌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세 파벌 소속의 졸업생들을 싹 다 죽여버릴 것 같으면 이 나라, 아마 삼백년도 더 전에 망했을 겁니다."
라고 말하고, 그 외에 '꿀팁'이랍시고 가르쳐주는게...
"마법 이론은 꼭 배워두세요. 아예 비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거기서 기초적인 주문을 쓰는 방법을 다 가르쳐주는데, 제 친구 말로는 아기도 마법 적성만 있다면 바로 마법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친다는군요."
"그래요, 그것을 취한다면 분명 굉장한 힘을 거머쥘 수 있겠지요. 게다가... 이렇게 보이는 여럿이라면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일 거에요"
그러한 광경에서 어촌의 모두가 침울해져 있을 그때, 가말라시엘 님이 저에게 말하셨어요. 어느때 보다도 진중하신 것 같은 분위기에요. 그것에 저도 수긍했기에 그렇게 대답했어요.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금기' 라고 표현될 수도 있을 방법이에요. 살아 있다는 것 자체. 생명. 나아가, 영혼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활용하는 방법. 저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이 광경을 미묘한 표정을 흐릿하게 지으며 바라보았어요
"만약에, 먼 옛 일이 되어 잊혀져가는 것을 다시금 저의 손길로 일깨어야 된다면... 적어도 저들의 결정을 따르고 싶다는 느낌이에요"
"결국 이것은 저들의 앞에 놓여있는 문제이니까요"
가말라시엘 님은 저들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셨고 하고자 한다면 실제로 행할 수도 있을 것이 겠지만 저는 그렇게 가말라시엘 님에게 다시 대답했어요. 이전에 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용맹과 헌신으로 이곳을 지켜내었듯이 저는 스스로의 의지로 발하는 자발적인 희생이여야 본디 그 힘을 전부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그나마 최소한의 위안을 찾아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에는 해야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는 식이에요. 어쩌면 이것은 저의 제멋대로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괜찮을까요? 그들애게 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해결책을 원하고 그 결과에 이르는 수단에, 삶에서는 가끔은... 모르는 것이 더욱 이로운 법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는 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어요. 그것은 어떨때는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도 했었지요.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468 이 일은 플라베르흐의 문제고, 설령 플라베르흐 촌장이 아앨라나에게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앨라나가 문제 해결을 위해 돼지나 소 한두마리를 산제물로 쓰는 것쯤이야 어렵잖은 일이고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인신공양, 그것도 플라베르흐 사람을 산제물로 쓰는 인신공양은 얘기가 다를 것이기에 플라베르흐 촌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아앨라나의 의견은 어느 기준으로 보나 합리적입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의 부상자를 마법 재료로 써도 되느냐는 말을 하자니 선뜻 입이 열리지 않긴 하는데, 아앨라나는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여자가 지적하자 남자가 옆구리를 푹 찌릅니다. 이놈의 도시는 뭐하는 놈들이 만들고 뭐하는 놈들이 살길래 도시 이름도 이렇게 발음하기 더러운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학문이 융성한 도시임은 확실하고, 좀 반응이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인 류드밀라와 함께라 생각하니 약간은 기대도 됩니다. 류드밀라는 엘리의 질문에 고민할 것도 없이 답합니다.
"당연히 저 달구지는 짐 부리는 용도로 쓰고 검은 마차에 너랑 내가 타야지. 설마 너, 저 소달구지를 타고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자해라도 하려고 한 거야?"
>>474 "저는 마법사가 아니니까요. 아카데미 출신 비마법사? 개가 웃을 일이죠. 전 마검사 과정에서, 마검사 이전에 '검사'가 되기 위한 것들을 가르치기 위해 고용된 사람입니다."
...잭은 본의 아니게 크론에게 또다른 팁을 줍니다. 아카데미에 비마법사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크론은 그 존재를 잘 숨겨야 할 것이란 점을. 아무튼 잭은 마차 위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네 파벌은 흑, 적, 금, 백 의 4색으로 나뉘어요. 여기에 뭔 고상한 의미가 있네 없네는 모르겠고... 흑색 파벌은 신비주의고, 적색 파벌은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화끈하고, 금색 파벌은 돈이 많고, 백색 파벌은 수저가 좋거나 태양교의 신임을 받는 이들이 모입니다."
>>479 차라리 소달구지 속에서 뙤약볕의 저주를 받으며 저녁이 올 때까지 노릇노릇하게 겉은 바삭 속은 촉촉 구워지면 구워졌지 언니랑 같은 마차 쓰기 싫다... 는 말을 안 한 것만 해도 엘리는 많이 참은 겁니다. 솔직히 말해 류드밀라는 오빠와 언니의 안 좋은 점만 모아놓은 것 같은 자매였고, 집행자 직위를 얻은 후론 부모님보다도 더 심한 꼰대가 됐으니까요. 바토리의 이명을 가진 뱀파이어가 그렇게 개판으로 꾸미냐, 블라드의 이명을 가진 뱀파이어가 그렇게 겁쟁이같이 구냐, 체페슈의 이명을 가져놓고 그리 놈팽이같이 구냐...
그렇기에 각방도 상당히 순화한 얘기지만, 류드밀라는 방금 전까지 엘리를 반죽이려 해놓고 서운함을 표합니다.
>>481 "사실 떠본 거였어. 어차피 큰 마차고, 최대 두 명까지 수송하는 걸 고려한 마차니까 '각방'은 있어."
...라고 말하면서, 류드밀라와 엘리는 검은 마차로 들어갑니다. 두 고용인이 두꺼운 천막을 통해 만들어준 그늘 사이로 이동하고, 엘리는 문자 그대로 작은 오두막을 옮겨둔 것 같은 마차의 가운데에 난 복도를 통해서 왼쪽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당연히 마차 안에 딸린 방이니만큼 작지만, 바깥에 난 창문은 나무로 밀 수 있는 문으로 완전히 밀폐되어 있어서 어둡고, 인간의 눈에는 침침하지만 엘리 같은 뱀파이어의 눈에는 완벽하게 밝은 침침한 램프불이 있어서 좋습니다. 침대는 작아서 새우잠을 자야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이건 마차 안에 딸린 두 개의 방 중 하나입니다.
@@ >>456 누누코는 요한이 건네준 단검들을 손 안에서 가볍게 빙빙 돌려보였다. 들판에서 만드는 것만큼 손에 맞는 무기는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베고 찌르기에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밸런스가 좋았다. 앞서 썼었던 돌칼이나... 흉기 비슷하게 개조한 삽보다는 말이다. 누누코는 인정해야했다. 그 인간 대장장이가 괜찮은 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공동체에 다가오는 암울한 징조들을 대처하고 끝맺기 위해서 무엇까지 할 수 있으신가요?"
그들은 문제의 해결을 원하고 있고, 저는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만큼 결정을 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저는 숨을 한번 고르고는 그렇게 첫 운을 때고자 그렇게 말했어요
"이미 보이는 비극을 지나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며 그것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제가 촌장 님에게서 들었던 '버섯 폭탄'을 통한 격퇴를 뜻했어요. 촌장 님이 말했던 것처럼, 넬루 이었던 것처럼. 그들의 행동으로 거악을 물러가게 하는 것은 성공했으나 그저 그뿐. 잠깐 동안의 안식을 가질 수 있으나 이대로는 여전히 공포는 도사리고 언제 다시 몰려오는 물처럼 급습할지 모른다고 생각이 들겠지요
"누군가는 자신의 생명을 다한 헌신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마지막 안식은 마땅히 주어져야 할 것이기에 그때에 이르기 까지 이대로 남거나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분들도 있을거에요"
"누군가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고, 그저 이대로 스려져 흙으로 돌아갈 뿐이 아니라, 결국 꺼질 불이라면 그 끝을 맹렬히 불태우는 것으로서 모든 이들의 구하기 위해서 이조차 헌사하고자 마음을 가진 분들도 있을거에요"
"저는 최후의 희생을 통해 거악을 처단할 수 있게 될 것이에요. 저는... 이를 시행하는 것에 여러분의 결정을 따르겠어요. 여러분들의 미래는 여러분의 것이여야 할테니 그 끝도 같아야 하겠지요"
저는 사람들의 동요나 충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시도로 그럴듯해 보이는 말들과 부드럽지만 동시에 진중하며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말하는 것으로서 사람들을 회유하고자 하려고 했어요. 누군가의 생명을 제물로서 힘으로 바꾸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란 많은 것을 뜻하겠지요. 이것이 용납될 수 없다면 저들과 저는 다른 길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477 검사라..내가 노력을 한다면 딱 거기까진 그래도 가능하겠지. 어쩌면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것들 중 나도 가능한 것들이 꽤 있을지도 모른다..잘 익혀두면 여차하면 제국을 떠나서라도 밥벌이로는 충분하겠지.
"흑,적,금,백이라..감사합니다. 적어도 괜한 실수를 할 일은 없겠네요. 그 이상은 직접 가서 겪어보면 알게 되겠죠."
파벌. 자신은 최대한 주목을 피하는 편이 유리할 텐데..문제는 아카데미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입학생이 저 파벌의 소용돌이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애매하게 휘둘릴 바에는 확실히 하는 편이 의심을 피하고 보호를 받기 좋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괜히 다른 파벌에 찍혀서 공격을 받고 조사를 당하다 모든 게 들통날 가능성도 높으니..
>>485 누누코는 요한의 마차에 오릅니다. 온 몸의 상처에서 나던 술 냄새는 아린 통증과 함께 바람에 날아갔고, 옷도 거적때기에서 그나마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 옷으로 바꿔 입었고, 삽날을 날카롭게 갈았을 뿐인 삽보다 훨씬 나은 무기도 생겼습니다. 이쯤 되면 신성한 들판의 동지들을 찾으러 가기에는 딱 좋은 구성입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먼 여행이니 단 것 좀 씹으렴, 바퀴벌레야."
요한은 바퀴벌레의 입가에 각설탕 몇 알을 가져다대고, 바퀴벌레는 요란스레 콧김을 뿜으며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기분 좋은 푸르륵 소리를 냅니다. 요한은 바퀴벌레가 콧구멍까지 핥으며 각설탕의 달달한 여운을 즐기는 동안 지도를 펼쳐 남북 중 먼저 가야 할 곳을 이야기합니다.
"어딜 가던 누누코씨 자유긴 합니다만, 제가 누누코씨라면 일단 보스트만이 지배하는 북쪽의 비더스부터 가겠습니다. 그쪽이 노예 다루는 손속이 잔혹하기로 악명이 높거든요."
>>487 빙빙 돌리고 또 돌리고 아주 길게 꼬았습니다만, 촌장과 넬루는 아앨라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렵잖게 ㅣ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최후의 희생, 헌사 따위를 언급한다면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뻔하고, 또 살아있는 인간의 공양된 생명을 원하는 가말라시엘의 존재감이 그들의 등허리에 끔찍한 소름을 끼치게 만들어 이해를 돕습니다.
"...이들의 목숨을 원하는 거네."
넬루가 말하자, 촌장이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탁 쳐서 막습니다. 적어도 여기서 막 말할 문제는 아닙니다. 특히 그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이들 앞에서는 말입니다. 촌장은 침통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희생하냐가 문제지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촌장은 한참동안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알겠네. 하지만 그건 아무리 촌장이라도 함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니 플라베르흐 사람들을 모아 결정하겠네. 기다려주겠나?"
>>488 두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마차는 어느새 접경 지역의 끝자락까지 도착합니다. 빈민과 난민들을 살벌하게 두들겨패던 곳과는 다르게, 해이한 근무 기강과 나른한 표정이 이곳의 평화 상태를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술을 마시고 얼굴이 홍당무가 된 한 경비병은 마차 앞으로 오더니 귀찮음을 숨기지 않고 손을 뻗는데, 엉덩이가 가려운지 나머지 한 손이 허리춤에 가 있습니다. 그런데...
"씨발! 크론 씨! 엎드려요!"
그 말과 함께 잭이 마부를 걷어차 땅에 처박고, 크론의 머리채를 잡아 넘어뜨립니다. 그리고, 넘어진 크론의 눈에 경비의 허리춤에서 잽싼 단검이 나오는게 보이고, 그 단검을 잡은 손이 잘려나가 제 앞에 떨어지는 게 보입니다. 잭은 믿을 수 없는 반사신경과 온 몸의 협응으로 화살을 쳐내고 손이 잘린 경비를 붙잡아 목을 조른 채 인간방패로 만들고 화살을 막아내며 말합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들의 분위기는 먹구름이 가득낀 하늘처럼 가려져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보여주는 태도에서부터 저의 회유가 어떻게든 괜찮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옛날, 이곳에서는 그러한 것이 이미 있었던 과거에서도 연관되어 있겠지요. 저는 넬루의 그 흘리듯 하는 말에 직접적인 긍정도 부정도 표하지 않았어요.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을 뿐이에요
그뒤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어요. 이때 저는 한번 슬그머니 눈을 한번 감았다가 다시금 뜨고는 대답이 돌아 오기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이내 첫 동작과 말은, 촌장 님의 마지못해 이어가는 듯한 그 말은 이 제안의 수용함을 의미함과 동시에 제게 그렇게 말하셨어요
"그럼요, 이것은 오랜 고뇌 끝에서 부터 이어지게 되는 결단이 될테니까요"
저는 촌장 님의 말에 즉시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촌의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그 조건이 조건인 만큼 정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해요. 그들은 직면한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을 부탁했고, 저는 해답을 제시했어요. 남은 것은 답을 풀기 위한 과정 뿐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여기서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혹시 모르지요. 그동안 그들이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요
>>493 촌장은 금방 플라베르흐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베스니를 비롯한 외부인들은 일이나 계속 하라는 면박과 함께 남겨집니다. 촌장은 아직 의식이 남아있는 부상자들,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부상자들은 그 가족들이라도 죄 긁어모아서 앉히고, 아앨라나나 넬루보다도 어린 사람부터 촌장보다 늙은 이들까지 촌민이라면 전부 모였고, 이들은 촌장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그 얼굴만 보고도 대충 거대한 두족류 괴물 이야기를 하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치 못한 게 두 가지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촌민들이여. 내 할 말이 있네..."
촌장이 마침내 궁극적인 해결책을 들고 왔고, 그 대가도 '궁극적'이란 것입니다. 마녀의 제자가 가지고 온 궁극적인 해법에 촌민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미 불구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누군가 자살돌격을 해서 사냥도 아니고 겨우 격퇴한 마당에, 희생의 방법이 문제지 희생의 여부가 문제가 아닌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 절망이 전염되더니, 이내 체념으로 바뀌고, 그들은 아앨라나에게 전달할 조건을 내세우는데 다들 상식적입니다.
인신공양으로 얻는 마력 및 기타 힘은 당면한 플라베르흐 관련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만 사용하며, 잉여 자원은 오직플라베르흐를 위해 사용함을 원칙으로 함 인신공양 대상자는 의식이 있고 자기희생에 동의한 플라베르흐 촌민으로 한정함
>>495 저기서 곧이곧대로 "아니, 안 돼."라고 말하기에는, 그래도 엘리는 어엿한 80살입니다! 그래도 대충 인간으로 따지면 16살에서 20살 정도는 되었단 말이지요. 즉 사회생활을 알 나이고, '들어가도 돼?'는 '들어간다?'는 의사를 전달해서 '어 들어와'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한 사전 통고지 진짜로 접견 의사의 유무를 묻는게 아님을 알 나이란 말입니다. 엘리는 류드밀라가 들어오게 하고, 류드밀라는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한 손으로 더듬으며 들어오더니, 엘리의 머리를 대충 툭툭 치고는 대충 이쯤이 의자겠거니 하고 앉습니다.
"별 건 아니고, 들어보니까 사람들을 꽤나 구한 것 같던데, 왜 그렇게 사람들을 구하는 데 집착한 거야?"
류드밀라가 물어봅니다. 류드밀라는 다른 일족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적극적인 인간 사냥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좋은 것도 아닌, 지금의 '살아남은' 뱀파이어 일족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립파에 속하는 이니 당연한 느낌입니다.
"너는 태양 아래서도 멀쩡하고 싶다는 미친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거랑 인간을 구하는 거랑은 별로 상관이 없어보이는데."
저는 촌장 님이 말하신 대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면 어촌의 곳곳에서부터 사람들을 모아서 한 자리에 모여가는 것이 보였어요. 거기에서는 외부인들의 존재는 제외되었는데, 이곳 분들의 마음씨를 본다면 아무래도 그럴수 있겠네요. 제가 그것을 표현한다면 '숙고와 결정의 순간을 준비하다' 이라고 말할 수 있을거에요. 그리고 어느정도의 시간이 흘러갔을까요?
저 역시 그들과 함께 뒤따르고 이제 한 자리에서 모여서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촌장 님이 그들에게 설명했어요. 이 순간에도 저는 계속 침묵을 지키며 바라보았어요. 그들에게는 당연하게도 각자의 얼굴에는, 그 곁에는 절망이라는 이름의 늑대의 무리가 사냥감을 에워싸듯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촌장 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이것은 확실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처럼 그 숨을 죽이듯이 이야기를 이어나갔어요
이제 그들은 저에게 그들의 결말을 맞이할 조건을 말해주었어요. 이번에도 제가 거절할 이유는 없어 보였어요. 그것들은 제가 생각하였던 것과도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야기가 한창 이어지는 와중에 누군가의 외침이 울려퍼지는 것을 저는 알았어요. 그래요, 이것도 어느정도는 있을 줄 알았어요. 무엇을 말하고자 할지 예상해볼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겠네요. 그 목소리의 주인의 외침에 깃들어 있듯이 즉시 말하고 싶을거에요, 그러니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가만히 있어보아요
>>497 아앨라나는 그 쪽을 바라봅니다. 한쪽 팔을 잃어버리고, 한쪽 눈도 잃어버린... 딱 봐도, 검은 숲 사람이 아닌 외부인입니다. 촌민들은 이 민감한 이야기 와중에 외부인이 들어오자 웅성거리고, 행여 정보가 새는 건가 우려하는데, 그 사람은 우려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인신공양으로 문어 괴물을 죽인다고? 효과만 확실하다면, 그럼 나도 끼어줘!"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러자, 그 외부인은 자신의 잘린 팔에 붙은 붕대를 확 풀어 검게 썩은 절단면을 보여줍니다. 그걸 보고 마음이 약한 이들은 윽, 하며 눈을 돌리고, 외부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잇는군요.
"내가 여기에 왔다가, 내가 자랑하는 왼손도 잃고 내 눈도 잃고 내 아들도 잃었어. 저 망할 놈의 문어 때문에! 그러니까... 인신 공양이란 거, 할 거면 나도 해!"
이제는 악밖에 남지 않은 외부인이 남은 한쪽 팔로 주먹을 흔들면서 뭐라 외치지만, 촌장은 고개를 젓습니다.
"사정은 안 됐지만, 이건 플라베르흐 마을이 책임져야 할 문제니까, 외부인의 목숨을 요구할 수는..."
"그렇다면, 플라베르흐가 인신 공양을 했다고 사방 팔방에 다 소문을 내겠어! 자아, 마을에 피해를 입히겠다고 협박하는 건 사형 수준의 금기 아닌가?! 사형으로 죽이나, 인신 공양으로 죽이나, 어차피 똑같잖아?!"
"미치겠구만 그래..."
촌장은 쯧, 하고 혀를 차면서 아앨라나의 눈치를 봅니다. 가말라시엘이야 뭐, 10명의 생명이 더 좋냐 11명의 생명이 더 좋냐 물을 것도 없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요상하게도 아앨라나의 의사가 중요해진 느낌입니다.
저는 그 외침의 주인공을 바라보았어요. 그 사람은 돋보이도록 나섰지요. 그 뿐만이 아니라 그 모습으로 보아서도 그랬어요. 그 사람은 외지인이고 이곳에 모여있는 어촌의 주민들과 같은 것을 겪었지만 그 때문에 다를 것이라 여겨질 수 있으나 비슷하다 것을 알았지요
저는 그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끝마치도록 따로 말하지 않고 청취를 계속했어요. 과연 그런가요. 잃어버린 것을 위하는 상처입은 복수자 이로군요. 그 사람은 더는 자신의 생명을 아끼려 하지 않을거에요.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태워서라도 호수에 자라나고 있을 거악을 처단하는 것이 자신의 복수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당신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을 거에요, 복수를 대행할 수 있겠지요"
"이들이 그것을 수용하도록 할 수 있다면요. 당신은 선택할 수 있어요, 남겨진 이들과 같이 삶을 이어나가 대적의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그것을 알고 느끼며 삶의 끝을 맞이했던 이들이 이어가고 싶어했던 내일을, 그 유지와 소망을 이어받아 이루는 것을 할 수 있을거에요"
상황이 이렇게 되어가면, 거기에서 곤란해보이는 모습이 영력하였던 촌장 님으로부터 이어지는 눈길이 저에게 향해 왔어요. 그것은 저에게 또 다른 선택과 결정을 원하는 것이라는 걸 곧바로 알 수 있었어요. 그렇게 되어서야 저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그만두고는 그리 말하며 동시에 모여든 주민들을 향해서 가리키며 손바닥을 보여 펼쳐보았어요
잭의 무용은 분명 뛰어납니다. 세상에 날아오는 화살을 베어낸다고 주장하는 '검객'들은 많지만, 대부분은 내막을 살펴보면 사전에 어느 방향으로 쏘라고 합을 맞춘 다음 상대방이 쏠 궤적을 아니까 그 궤적에 맞춰 베어내는 것뿐이고, 그것마저도 자신이 정확히 어느 위치를 베어낼지를 알아야 하는 만큼 쉬운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잭은, 상대방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쏘는 화살의 궤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어떻게 휘둘러야 그 화살을 쳐내거나 갈라낼 수 있을지를 알 정도, 즉 규격 외의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일이 그렇게 하기는 그가 생각하기에도 못해먹을 짓인지 손목이 잘린 도적을 방패로 쓰고 있지만요. 그 무용 때문에 역으로 도적들의 시선이 잭에게 몰린 동안, 크론은 자신의 눈 앞에 놓인 잘린 손에 들어간 단검을 꽉 붙잡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게 쥐새끼처럼 기어서, 뒤로 갑니다. 그리고...
푹!
"끄윽?!"
살인에 대한 죄책감, 본능적 거부감, 그런 것은 다행히도 크론에게는 없었습니다. 크론은 잭에게 화살을 쏘려던 이 하나를 죽이지만, 그 사람이 쓰러지면서 다른 이들의 이목이 크론에게 쏠립니다.
플라베르흐 촌장은 아앨라나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제 '사실상'이 아니라 그냥 죽음이 확정된 부상자들을 위해서, 잠시 살아있는 상태에서 장례를 치르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합니다. 생소한 문화는 아닙니다. 원래 검은 숲에서 마을이나 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워낙에 가혹한 생존 환경 탓에 생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임무를 맡는 이들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장례식을 치뤄주고 보낸 다음, 그 순간부터 문자 그대로 '고인' 취급하는 문화가 있으니까요. 플라베르흐 사람들은 부상자들에게 미리 준비해두었던 검은 숲의 흰색 꽃과 덩굴로 만든 장례용 모자를 씌워주고, 돌아가면서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 부상자들을 안아줍니다.
"...사랑해, 밀리."
"...재혼할 거면 아키레, 그 년이랑은 말아요. 그 년 애 때려잡기로 유명하니까.."
"그 때 내가 밧줄만 빨리 가져왔어도... 미안하다."
"헛소리 말고, 술이나 한 잔 줘."
"이 새끼야, 그리울 거다."
"넌 벽에 똥칠하다 뒤질 거지? 난 간지나게 간다."
다들 어떻게든 가벼운 말이나 엉뚱한 말을 하면서 속여보려 하지만, 분위기는 참 무겁습니다. 그 때,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 외부인이 슬쩍 손을 들더니 말합니다.
"내가 살던 지방에서는 죽으면 천국 가는 거니까 잘~ 죽었다고 박수 쳐주던데, 혹시 손 멀쩡한 이들은 나한테 박수 좀 쳐줄 수 없나?"
그렇게 말하자, 플라베르흐 촌민들은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수를 칩니다. 박수 소리가 회의하려고 모인 큰 건물 안에 울려퍼지고, 그 소리가 그치고 나면... 침통한 표정을 지키고 있는 주민들 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촌장은 아앨라나에게 이야기하는군요.
류드밀라는 마음에 안 든다면서도 더 이상 캐묻지는 않습니다. 뭐, 어쨌든 돕는 것이 어지간해서는 이득일 수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제아무리 인간이 믿을 수 없는 족속이라 해도, 자신을 살려준 이를 긍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더 높고, 그래서 '뱀파이어라고 해서 전부 사악한 괴물들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인간들의 비율이 높아지면, 그게 뱀파이어 일족의 생존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이면 긍정적이지 부정적일까요? 류드밀라 입장에서도 더 캐물을 계제는 아니고, 실제로도 엘리는 뱀파이어 일족이 죄를 묻는 기준 중에 '과도한 인간 학살로 인해 인간들의 보복을 불러 일족에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있어도, 일족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단순히 '인간을 돕는 행위'를 비난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류드밀라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엘리에게 충고합니다.
"그래. 솔직히 말해, 네가 나 싫어하는 거 아니까 짧게 끊을게. 거기 가서, 아무나 믿지 마. 나처럼 장님 되기 싫으면."
저의 말에 촌장 님을 비롯한 모여든 이들은 그들의 마지막을 위한 순간을 가지는 광경을 차분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것은 죽은 자를 떠나보내기 위한 장례식인 동시에 살아서 그 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원이기도 해요. 여기에서 만큼은 돌아올 수 있는 길은 아니겠지만요. 서로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이것도 전부 그 자체로서 뜻이 있지요
여러 목소리가 울리며 말을 만들어내고 이어지고 있었던 그때 그 외부인이 스스로를 주장하고 말하며 부탁하는 것에 저도 말없이 손에 쥐고 있었던 지팡이를 저의 옆에 허공에 띄어놓고는 그대로 손을 모아서 가볍게 손뼉을 두드리듯 간단하게 박수라고 할만한 것을 해보였어요
그렇게 잠시동안 떠들석했으나 지나가고 찾아온 침묵이 도래했고 때는 왔어요. 촌장 님의 신호와 함께 저는 다시금 지팡이를 손에 잡고는 적절한 장소를 잡으려 했어요
이정도의 크기의 영향력을 끼치는 의식을 홀로 거행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진귀한 경험이 될 거에요. 예전에 마녀 님이 행하시는 의식을 곁에서 도우며 배운 이후 처음이였어요. 긴장감과 기대감, 그리고 제가 이렇게나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느껴져 오는 묘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보듬어 품으시고 잉태하시며 계신 우리를 보우하사 어버이 되시는 하늘과 대지이시여 천지에 만물을 형성하도록 비추시고 지속하시는 태양과 달이시여 저와 이들의 영혼의 울림을 들으소서 이끌어 주시길 바라옵니다"
한번 크게 숨을 고르고는 두 눈을 천천히 감고는 필요한 자세를 잡았어요. 그리고 겸허히 양손으로 쥔 지팡이를 하늘을 향하여 높이 떠올려 기도와 함께 이어질 주문을 읊기로하며 의식을 거행하고자 했어요
".....따라서 준비되고 모여든 이의 삶을 모아서 이곳에 결집하니 끝으로부터의 향하는 시작은 여기 있으라!"
잠시동안 그 동작을 유지하고는 눈을 뜨고는 양 손으로 부여잡은 지팡이를 제 앞으로 가져다 대어 그렇게 말을 외쳤어요
>>506 크론은 눈을 부릅뜨고, 가까이에서 활시위를 거의 다 당긴 도적의 복부에 단검이 박혀 들어가고, 흉갑이 아닌 얇은 천조각을 뚫은 칼날은 당연하다는 듯 그 밑의 살갗과 근육, 내장도 꿰어버리고, 도적의 입에서 올라오는 피거품 끓는 소리와 함께 크론은 도적과 땅바닥을 뒹굽니다. 잡을 수 있는 건 뭐든지 잡아 내리치고, 목은 조르고 눈구멍은 찌르는 개싸움, 크론이 익숙한 싸움입니다...
"이... 개새끼가아아!!!"
...그 개싸움은 기본적인 규칙조차 없어, 다대일, 반대로 일대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문제죠. 왜 이런 서술을 하느냐면, 크론의 등 뒤에서 누군가 칼을 찌르고 밀쳤기 때문입니다. 크론은 몇 번 겪었지만,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통증에 눈을 부릅뜨고, 상황이 뒤집힙니다...
>>507 인신공양. 인간 그 자체를 제사에 사용하는 제물로 올리는 의식이지만, 그 뜻만으로 그 불길함과 엄중함을 다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예로부터 인간의 생명은 주술사들이 '비뵤적' 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급 제물이었고, 주술과 마법은 곧 과학과 공학에 밀릴 거라 확신하는 이들도 최소한 인간 제물이 전 인류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 불길하고도 장엄한 관념의 크기는 인정합니다.
그 목숨의 무게가, 이제 아앨라나의 손에, 가말라시엘의 지팡이로 흐릅니다. 그들의 기억, 생명, 혼백, 살점, 피, 모든 것들이, 목적이야 이유야 어찌되었건 마법의 결정체로 화하고...
아앨라나는 다른 촌민들과 함께 소름돋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들이 입고 있던 옷가지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완벽하게 사라졌단 겁니다. 앨리스 님의 의식은 인간의 마륹부스러기는 남아 미라로 보존되게 남았는데... 가말라시엘이 웃는군요.
"선물이 있다면, 끝까지 활용하는게 예의지요."
...이 순간, 아앨라나는 '제물의 마력 전환 수율'만큼은, 가말라시엘의 도움으로 스승을 뛰어넘었음을 깨닫습니다.
>>512 크론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바닥을 긁고 할퀴지만, 이건 도망가려고 기는 움직임이 아닙니다. 크론의 핏빛 섞인 손톱 끝에 먼지와 흙, 자갈, 모래 따위가 모여 손아귀를 채우고 크론은 온 몸을 돌려 상대의 얼굴에 그걸 뿌려버립니다. 뒤늦게 눈을 감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아윽, 씨팔!"
아무리 눈이 돌아가서 뵈는게 없대도, 수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눈에 뵈는게 없어지는 건 한참 다른 겁니다. 앞이 먼 도적과 칼에 찔린 크론이 땅에 뒹굴고, 크론은 칼에 찔려 시시각각 힘이 빠지는 와중에도 아직 멀쩡한 이빨 힘으로 상대를 물고 손가락으로 눈구멍이나 콧구멍 따위의 아픈 부위를 마구 찍어대고, 상대는 팔다리를 휘저으며 아무거나 때립니다. 이 진흙탕 돼지우리 개싸움에, 다행히도 이번에는 종지부를 찍는 이가 나타나고, 그는 크론의 편입니다.
"그만 죽어, 인마."
잭은 순식간에 도적을 걷어차고는 바로 치명적인 부위를 아래부터 위로 명치/목/눈구멍에 차례로 꽂고는 크론을 지혈합니다.
"제기랄. 심한데, 이거."
잭은 크론의 등허리에 붕대를 감..는게 아니라 그냥 쑤셔박고, 크론은 출혈 대신 고통으로 죽을 것 같은 격통과 함께 겨의 살아납니다.
엘리 말마따나 류드밀라나 하인이나 뱀파이어 일족에 속한다는 게 딱히 부끄럽진 않기에, 티호미르는 선선히 물러나고 류드밀라도 손을 더듬어 문고리를 찾고는 잡아 돌려서 자기 방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웅성거리는 소리가 마차의 육중한 벽을 뚫고 들어오고, 멈출 줄 모르고 구르던 마차는 구르다 말았다를 반복하는 것이 확실히 호르뮈셰건 어디건 도착하긴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인 중 여자가 노크합니다.
"예마입니다. 호르뮈셰 경비대에서 마차 안의 뱀파이어 귀족을 확인하겠다고, 진입하겠답니다."
옛부터 생명을, 사람을 제물로서 결과를 이루기 위한 원천으로 삼는 것은 그것이 줄 수 있는 확실성에도 이를 사용하는데 있어 크게 문제가 되었어요. 사람을 위해 원하여 이루고자 하지만 이를 위해선 정작 사람 자체를 잃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러한 수단은 많은 사례에서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을 위한 것으로 믿어져 왔어요
이렇게하여 의식은 성공적으로 되어 모여든 모든 이들은 그들이 존재했다는 자취만을 남긴체 사라졌어요. 그 광경은 마녀 님의 때와는 달랐어요. 하지만 그들은 육신을 허물어져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이에요. 그것은 앞으로 행해지게 될 힘과 행위의 원천이 되어주어 저에게 느껴져 이렇게 흐르고 있는 이 강대한 힘과 기운으로서 명백히 흐려지지 않는 존재감이 되어서 있었어요
"그래요... 이들의 목적을 향한 결의로서 넘겨준 생명, 그 삶의 모든 것을 허투로 낭비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긍정하며 말했어요. 이유와 원인은 하나가 아닐지라도, 이들은 결국에는 하나의 목적으로 모든 것을 받쳐 도사린 거대한 악을 파멸시킬 힘으로서 저와 함께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의 희생을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하겠지요. 그리고 이들의 힘이 함께한다면 그것은 더는 문제가 아니라 단지 하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있겠지요
>>520 아마 가말라시엘은 참으로 오랜만에 맛본 인간의 맛에 감탄해 흔적 하나 없이 쪽 빨아먹고 그런 감탄사를 남겼겠지만, 아앨라나는 그것보다는 훨씬 더 경건한 이미지로 받아들입니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면, 마나는 마법사의 육체를 지배하고 즉 정신을 지배합니다. 열한 명의 산제물로 일순 초월을 맛본 듯한 아앨라나의 시야에, 맥동하는 거대한 심장이 호수에 숨어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마나를 통해 그녀의 머리에서 뻗어나온 불가해한 신경 시냅스가 그것의 정체를 과거와 미래, 멀리와 가까이, 논리와 이성을 뛰어넘어 알려주고, 아앨라나는 그것을 읊습니다.
희생으로 맺어져 하나로 모인 힘, 불사사의한 소용돌이와 같은 그것에 서려있는 듯한 의지는 저에게 보여주었어요. 저의 입을 통하여 전하였어요. 호수에 자리하고 있는 깊은 곳의 박동하고 있을 심장. 그것은 심연으로 끌어가는 거대한 수십의 손길, 신화적인 바다의 악몽... 크라켄. 이라 할만했어요. 그것의 정체가 맞다면 어째서 그러한 존재가 바다로부터가 아닌 숲의 호수에 있는 것인지 궁금하여 좀 더 알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서눈 그보다 처단해야 하는 것을 우선해야 할 것이에요
"네, 그렇게 하기 위한 의식이며 희생이였으니까요"
저는 촌장 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어요. 이 모든 것은 호수의 도사리고 있는 자가 다른 이들을 끝내었던 것처럼 그조차도 끝을 내고자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였기에 된 것이니까요. 이렇게까지 되었는데 그 약속을 저버릴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지금의 저의 상태라면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거에요
>>522 아앨라나는 질척한 호수로 나아갑니다. 뷔르트겐 호수는 언제나처럼,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불지 않으면 불지 않는대로 평온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 아래에 숨어있는 끔찍한 괴물을, 그 괴물을 잡기 위해 희생시켜야 했던 이들의 숫자를, 그들의 목숨의 무게를 알고 있는 아앨라나의 눈은 결코 예전과 똑같이 그 호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앨라나는 눈을 감고, 그 크라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냅니다... 이곳으로부터 약 30km 지점에 있는, 침몰한지 너무도 오래되어 이제는 기억하는 이도 몇 없는 외부 세계의 코그선 잔해가 뻘에 처박혀 만들어낸 은신처에, 라투그... 그녀가 그리 부른 크라켄이 숨어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배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이 정도의 마력이라면... 제 힘으로, 사도님을 물 위에서 걷게 만드는 것 정도야 간단하니까요. 만약 30km를 걷는 게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면, 쪽배 하나 정도는 빌리셔도 됩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머리가 아닌 날카로운 창끝입니다. 그리고 일광(日光)이 차폐된 검은 마차 속에 있는 엘리의 세밀한 눈에, 그 창끝이 벌벌 떨리고 있는 게 보입니다. 그 창끝은 이리저리 휘둘려져 살짝 열린 문틈을 벌리고, 겁에 질린 경비병이 보입니다. 딱 봐도 앳되보이는 것이, 인간의 나이 세는 법대로라면 열여섯? 성인식은 마쳤을까 싶은 초짜입니다. 양측이 피 튀기도록 싸우며 종의 운명을 걸고 격돌하고, 낮에는 인간들이 뱀파이어의 가슴에 말뚝을 꽂고 밤에는 뱀파이어들이 어둠에 눈이 먼 인간들을 사냥하던 시대는 엘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끝났지만, 그 시기에 만들어진 뱀파이어에 대한 인간들의 공포는 아직도 남아있음이, 경비병의 눈으로 보입니다.
"...화, 확인해쓰, 씁니다."
이거, 뭐... 항의하기에는 급도 안 맞을 놈이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을 들어본 엘리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맙니다.
"저, 저저절차일, 뿐입니다. 경비대장님께서, 지직접, 확인하라고..."
뭐겠습니까. 뱀파이어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그것도 귀족급이 들어있다는 말에 경비병들이 잔뜩 쫄아서 차라리 죽이라고 드러누웠고 경비병들 중 그나마 만만한 막내한테 다 떠넘긴 거겠죠. 세스타우는 엘리의 존재 덕분에 어느정도 뱀파이어에 대한 경계심을 풀긴 했겠지만, 아직도 이런 동네가 많습니다.
어촌은 호수의 일부라고 해도 될 수 있었기에 그곳에서 부터 호수의 좀 더 가까운 그 곁으로 가는 것은 따로 시간을 길게 들여서 할 일이 아니었어요. 잠시 동안이면 되었지요. 호수의 풍경은 여전히 보이고, 보였던 것처럼 잔잔하고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이제 저는 볼 수 있으며 알고 있어요. 보이는 것 이상을 볼 수 있게 되었던 저는 호수의 깊은 곳으로 부터 전해지는 것을...
호수와 자연들 이외의 많은, 모두로 부터 잊혀졌지만 한 때 바다의 꿈을 품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먼 옛날을 아직도 간직한 잔재로부터 제가, 그들이 마주해야 될 그것이 있어요
수면 위로부터 곧바로 가는 것에도 이 정도 인 걸까요. 호수가 지닌 그 넓이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게 되었네요. 과연, 숲 속의 자그마한 바다 라는 표현이 걸맞는 장소 다워요
"제가 날아서 가는 것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 위를 걸어보는 것도 특이한 경험이 될 것이 겠지만 거리가 꽤 되는 만큼 이번을 기회로서 배 자체를 빌리기 보다는 저는 가말라시엘 님에게 이렇게 하면 어떠할지 대해서 그렇게 물어보았어요. 호수 위를 높지도 낮지도 않게 비행하는 것도 값진 경험이 될 거에요. 할 수 있을때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지요?
가말라시엘의 지팡이에서 거대한 마나가 무리지어 방출되더니, 아앨라나의 양 어깻죽지에 마구 달라붙습니다. 뜨겁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은 열감과 함께 아앨라나는 그녀가 원했던 날개를 얻고, 플라베르흐 사람들의 경외에 찬 시선을 받으며 열려있던 창문을 통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녀의 머리칼이 세찬 비행풍에 휘날리고, 눈동자가 바람에 바짝바짝 마르지만 아앨라나는 난생 처음, 참새이자 물총새이자 비둘기이자 독수리가 된 기분을 느끼며... 아니, 그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올라 플라베르흐를 모래낙서처럼, 뷔르트겐 호수를 냇가처럼, 검은 숲을 제 발 아래처럼 두고 웃습니다.
>>532 잭은 고개를 끄덕이며, 크론이 뒹구는동안 자신이 처리한 이들을 보여줍니다. 어떤 도적은 전신이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정확히 세로 방향으로 반으로 갈라졌고, 어떤 도적은 도마 위 소세지마냥 동강동강 팔다리가 썰렸습니다. 그나마 제일 곱게 죽은게 머리와 몸이 분리된 궁수입니다.
"가끔씩 경비대가 너무 해이해지면 이런 일도 일어나죠. 이런 식으로 외진 경비초소를 그냥 집어삼킨 뒤에 경비병 행세를 하면서 척 봐도 강해보이면 그냥 보내고 만만해보이면 덮치고."
붕대를 쑤신 상처 위로 붕대를 칭칭 감아주면서 설명하던 잭은, 본의 아니게 크론의 본모습을 그의 전투 방식을 통해 어느 정도 읽어냅니다.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대단하군요. 다른 싸움 방법은 하나도 안 알려줬는데, 살인에 대한 거부감만 딱 없애다니."
...그렇습니다. 크론은 인간을 무의식적으로 타자화하는 뱀파이어도, 투쟁이 곧 삶인 보팔토끼 수인 전사도, 능력 여하에 따라 너무나도 쉽게 인간을 죽일 수 있기에 무던해지는 마법사도, 그 무엇도 아닌데도 살인에 아무 거리낌이 없단 겁니다. 하지만 잭은 딱히 뭐라 더 묻지 않고 고개를 처박은채 떨고 있던 마부를 툭툭 차서 일으켜세웁니다.
"도적들 죽이는건 우리가 다 했으니, 마차 모는건 마부 양반이 다 해야 맞죠. 안 그렇습니까."
>>533 "그, 제 아버지께서 모시던 시절에 그늘꽃 제일 많이 태운게 인간 하인들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아가씨라고 하던데요?"
그늘꽃, 식물은 햇빛이 있어야 자란다는 상식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햇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자라나, 처음 보는 이들에겐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듯한 자줏빛을 띄는 꽃을 피우는 식물입니다. 햇빛이 닿으면 소금 만난 거머리, 약 먹은 쥐마냥 쪼그라드는 뱀파이어처럼 햇빛을 보면 바스러지거나 심하면 불타기에 인간 하인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 중 하나였는데... 그래도 밝은 바깥을 보겠다고 설친 엘리만큼 많이 태우진 않았습니다. 예마가 혹시 몰라 경고하는군요.
"류드밀라님께서 혹시 엘리자베스 아가씨가 또 그런 짓 하는지 잘 감시하라고도 하셨습니다."
>>534 인간의 한 걸음이 달팽이의 일평생이듯, 거대한 마법 날개를 단 새의 날갯짓 한 번은 인간의 반나절 달음질이나 다름없읍니다. 아앨라나는 라투그가 숨어있는 곳으로 몸을 굽혀 급강하하면서 온 몸의 피가 발가락으로 쏠리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게 급강하한 그녀는 코그선의 돛대 끝부분이 물 위에 튀어나온 것을 보고 그 상공에 멈춥니다.
세상의 존재들이 저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속도로 그 생활을 이루어 지내지만 지금의 저는 그것을 넘어서서 상당히 되는 거리였음에도 제가 얻은 힘의 날개는 저를 빠르게 목적지까지 이끌어주었어요. 그 속력은 생각했었던 것보다도 휠씬 높았어요. 제가 한 동작임에도 그것은 주어진 속도 때문에 신체로부터 묘한 느낌을 만들어내었지만 그로인해 보여지는 광경은 그런 느낌을 금세 잊게 만들어주었어요. 이윽고 목적지에 근접하였던 저는 수면으로부터 돋보이는 돚대의 끝자락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멈추었어요
"이곳에... 그것이 있는 것이겠네요"
저는 그것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서 그렇게 속삭이듯이 중얼거렸어요. 이후 집중하여 물에 힘을 가하고 조작하려고 시도했어요. 물은 지금까지 그것을 숨겨주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겠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속박하고 징벌하는 기구가 될 수 있을 거에요. 지금의 저의 상태라 할지라도 광활하기 이를데 없는 호수에 전부 영향을 주는 것은 힘들 것이 겠지만 그렇게 할 필요 조차 없을 거에요. 이 자리에서면 충분할테니까요
예마가 그리 말하고 문을 닫으면 마차는 다시 구릅니다. 학술대회 기간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듯 왁자지껄한 소리가 마차의 벽을 뚫고 엘리에게 전달되고, 이곳에서라면 엘리가 원하는 뱀파이어들이라면 진조부터 엷은 피까지 피할 수 없는 저주의 비밀에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전합니다. 그리고 티호미르와 예마는 마차 여관에 마차를 대고 전합니다.
>>539 인간이 항상 그 안에 거하기에 망각하는 사실이 있다면,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가 아닌 공기와 여러 입자들이 섞이고 그것들이 상호작용하는 기체들의 공간을 거닐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크라켄, 라투그 역시도 뷔르트겐 호수의 물을 완전히 지배하고 제 집처럼 여기기에 자신은 물 속에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다가 그 대가를 치릅니다.
ㅡㅡㅡㅡㅡ!!!!!!!!!!!!!!!!!
크라켄이 온 몸을 휘감는 끔찍한 힘에 저항하면서 뷔르트겐 호수의 물결이 폭발하다가, 아앨라나의 지배에 다시 잠잠해지기를 반복합니다. 크라켄은 두 눈으로 자신을 옥죄는 힘의 근원, 아앨라나 당신을 바라보고는 뒤집어쓴 코그선 잔해를 힘겹게 뜯어내 던집니다!
거대한 호수를 이루고 있는 대량의 물은 이 장소에 저의 뜻대로 그 아래에 기거하는 존재을 얾매이도록 해주었지만 아직은 부족했어요. 많은 이들을 공격해왔던 괴수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속박하는 것만으로는 완수할 수 없어요. 그것만으로 되었다면 어촌의 사람들이 그렇게 당하지도 배가 난파하지도 않았을 거에요
이 괴수는 어떻게든 버텨내면서 물 속에 오랫동안 잠겨져 잊혀진 잔재를 오늘 날에야 다시금 하늘 아래서 그 밖으로 꺼내보이며 이내 잔재를 저에게 던져 향하고 있었어요. 즉시 저는 잔재를 회피하기 위해서 내려다 보던 허공에서 다른 쪽으로 움직였어요. 힘의 날개로 이곳까지 도달하게 될때의 속력은 매우 뛰어났던 것처럼 저를 향해 오는 저 잔재 또한 피하는 것은 어렵지는 않겠지만 이것만이 아닐 것이에요
그러니까 반격을 준비해야 될 거에요. 저는 근처에서 물을 끌어와 고도로 압력을 주어서 압축하고는 적당한 때를 노려서 강렬하게 쏘아내는 것을 시도하고자 했어요. 물의 힘은 종종 과소 평가되고는 하지만 제대로 활용한다면 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은 휠씬 크지요
>>542 크라켄이 던지는 판자들은 위력적이지만, 그 위력은 맞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뚫는 창도, 베는 칼도, 부수는 망치도 안 맞으면 그만이고, 아앨라나에게도 저 판자가 위험해봤자 안 맞으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크라켄은 속박되어서 균형감각과 자세제어 능력을 크게 잃어 명중률이 처참한 공격만 반복하다, 아앨라나가 만들어낸 예리한 수류(水流)에 자신의 촉수마디 중 하나가 절단나자 크게 분노하더니 아앨라나의 능력을 역이용합니다.
"오, 흥미로운데요?"
그르느르르르르...
크라켄은 물이 자신을 속박하기 위해 밀도가 미친듯이 높아져 고체와 다름없는 상태로 변한 걸 역이용해 자신의 미끌미끌한 몸으로 타오르고, 그대로 도움닫기해서 아앨라나에게 달려듭니다!
적당히 처리... 라는 말에 두 사람은 고민하는 투도 내지 않고 대답합니다. 예마는 앞이 보이지 않는 류드밀라를 2층의 방으로 데려가고, 엘리는 그 뒤를 따라갑니다. 창 밖으로 보면, 아플 정도로 밝은 햇빛 사이로 티호미르가 남아있는 닭을 옆구리에 낀 채 소를 끌고 가는 것이 보입니다. 아마 팔아서 활동 자금에 조금이라도 보태던지, 아니면 고기파티라도 하던지. 뭐라도 하겠죠. 아무튼, 위로 올라가자...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류드밀라는 엘리 쪽으로 손을 젓다가, 엘리의 몸을 더듬어 손을 잡고는 그녀에게 말합니다.
"어차피 넌 말한다고 듣는 애 아니었으니까, 더 큰 사고 치기 전에 그냥 너가 찾고 있을 법한 사람을 알려줄게."
약간은 체념, 약간은 '그래도 동생인데...'같은 가족애가 느껴지는 복잡한 목소리로, 류드밀라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이야기합니다.
"뱀파이어 전문가는 위겔 교수야. 동쪽 성탑에 자기 학부를 거느리고 있지. 그런데 그건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뱀파이어도 그렇고, 이단심문관도 그렇고 그 사람을 아주 좋아해서... 만날 수 있으면 한번 잘 만나 봐."
괴수의 그런 시도는 제가 전부 회피 해냄으로서 무력했어요. 그와는 반대로 그러다 결국에는 괴수는 저에게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지요. 그 괴수에게 다른 이들이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렸던 것처럼 그것에게도 그에 마땅한 댓가를 치르게 되도록 했었요. 이에 괴수는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와 같이 희생자들의 분노 또한 강렬했을 것이에요
그러던 한 순간에, 괴수는 그것 대로 수단을 강구한 것 같아요. 상대를 파악하고 환경을 잘 이용하는 것은 효과적인 싸움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에요. 이것은 저에게도 괴수에게도 같을 거에요. 봐요, 저것을... 하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극복할 수단이 있지요. 이 전투에서 저 괴수와 대치하고 있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니에요
"그래요, 꽤 재주를 부렸네요. 저것을 제대로 처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효과적일까요! 제게 가르침을 배풀어주세요"
저의 공격이 이어주는 다리처럼 되었다는 것은 필히 그 수단, 뿜어진 물과 접촉을 했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요? 저는 이번에도 그 공격을 회피하고자 하면서 괴수가 저에게 다가서고자 하여 닿았을 물줄기를 순간적인 동결과 변형을 시도하여 예리하고 퍼져나갈 냉기를 담은 얼음의 검으로 화해 찔어 베어내도록 시도하고는 그 때의 순간을 노리도록하여 저는 가말라시엘 님에게 전투에서 이어질 공격을 어떻게 하면 될지 물어보며 도움을 청했어요
물줄기가 얼음으로 변해 얼음 송곳이 되는 것을 본 가말라시엘이 껄껄 웃으며, 순식간에 크라켄을 꿰어버린 아앨라나의 기지와 재치를 칭찬하고는 또다른 계책을 내어줍니다. 이 시대에는 아직 이르지만, 검은 숲에서는 '찌릿장어', 바깥세상 대학도시는 전류라고 흐릿하게 알고 있는 번개의 권능입니다. 가말라시엘은 물에 젖은, 그리고 점막으로 이루어진 특성상 촉촉할 수밖에 없는 그 크라켄의 몸에...
콰지직!
...인간이었다면 숯덩이로 만들었을 거대한 번개가 번쩍이며 아앨라나의 눈 앞을 섬광으로 가리고
콰까까깡!!!!!!!!!!!!!!!!!!!!!!!!!
천둥 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섬광을 몰아냅니다. 눈을 뜨면, 살벌하던 그 기세는 어디가고 감전되어 쭈글쭈글하게 온 몸이 쪼그라든 크라켄이 물 위에 둥둥 떠서 발발대고 있습니다. 가말라시엘이 속삭이는군요.
마부는 도마 위의 무마냥 동강동강 썰린 시신들을 애써 무시하고, 말을 진정시키고는 다시 출발합니다. 아까 전의 전투에서 도적들이나 잭이나 마차를 온전한 상태로 내버려두려고 했기에 마차는 피가 묻은 것을 제외하면 멀쩡하게 구르기 시작합니다. 다시 평화로운 광경이 펼쳐지고, 크론과 잭은 별 일 없이 며칠간 마차 위에서 자고 마신 끝에...
"거의 다 왔군요."
...라고 잭이 말합니다. 지평선에 그어진 넓은 회색에 금빛,은빛의 수많은 지붕들이 반짝이고, 그 주변으로는 '마법'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기후대에 맞지 않는 신비(빙해, 열대우림)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법학교를 재정적으로 지탱하는 황금 평야가 둘러싸고 있고, 크론은 평야 초입에서 바람에 따라 넘실넘실 파도를 타는 황금 밀밭을 난생 처음 보고는 경외감에 빠지고, 한참 동안 바라봅니다. 잭은 그런 크론의 옆구리를 찌릅니다.
"슬슬 준비하시죠. 가도 경비대가 거수자와 입학생을 구분하려 들 겁니다. 입학증이라던지 그런 게 없으면..."
저의 시도는 이번에도 괴수의 행동을 저지하고 제대로 반격해냈어요. 그것에 따라 저는 가말라시엘 님께서 그렇게 말해주시어 칭찬을 받는 것에 흥겹게 순간의 성취감에 차 말했어요. 저는 가말라시엘 님에게 도움과 가르침을 청했지요. 그런데, 저의 물음과 조언이 있기를 넘어서 저는 이미 그에 알맞는 행동을 먼저 했냈던 것이에요. 제가 한층 더 마녀 님과 같이 완전함을 따라갈 수 있도록 성장하게 된 것 같았아요
그리고는 이어지는 광경에서 제가 목도하게 된 것은 강렬한 소음과 빛과 함께 번개가 내리치며 마치 괴수의 최후와 그 전투의 마지막에 이르는 것이라 예감이 들었어요. 저는 괴수가 흉한 몰골로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았어요
"그렇다면 이것으로서 이 장면도 대단원 이겠어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저는 이것으로 희생자들과 그들의 헌신으로 그들의 몫까지 살아갈 이들의 목적을 완수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여 그렇게 말했어요
저는 집중하며 힘을 분출하고 넒은 면적의 수면이 순식간에 얼어붙을 정도로 강렬한 한기가 몰아치듯이 호수의 물로부터 화한 햇빛을 받아 창백한 빛으로 반짝이는 얼음, 거꾸로 뒤집혀 있는 듯한 거대한 된 빙산과도 같은 것이 여러개가 허공에 솟아올라서 그것은 제대로 되었다면 말뚝처럼 그 심장과 신체를 꿰뚫어 호수의 괴수를 처단하여 그 끝을 낼 수 있을거에요
엘리의 온 몸에 다시 햇빛이 내려쬐고, 혈통에 깃든 저주가 그녀의 날카로운 반사신경을, 무시무시한 맷집을, 믿을 수 없는 속도를, 그 모든 능력에 족쇄를 채워 그 무엇보다도 약한 존재로 격하시킵니다. 온 몸이 산 채로 불타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실제로 불타지는 않는게 다행입니다. 엘리가 로브를 뒤집어쓴채로 언니가 알려준 곳으로 향합니다.
임학회 주최 식용버섯 요리대회, 탕가니카 원시부족의 장신구 박람회, 엘프와 드워프 인체의 신비전, 고대 연금학사(史) 논문 발표회 등등,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 법한 주제부터 진지함이 묻어나는 학자들만의 주제까지 각종 홍보 전단지가 붙은 벽들을 지나면, 엘리는 점점 화기애애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무거워지는 공기를, 살기마저 느껴지는 분위기를 직감합니다. 그리고...
"당신, 누구요?"
딱 봐도 '나 수상하오' 하는 마법진을 그린 문 앞에서, 딱 봐도 '나 수상하오' 하는 옷을 입은 경비가 철퇴를 꺼낸 채 엘리에게 물어옵니다. 저 철퇴...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에레야를 따르던 거한들이 들던 그것과 비슷합니다.
>>551 얼음. 얼음(Ice, 氷)이란 물이 섭씨 온도 0도 이하에서 응고되어 '고체' 형태로 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 얼음은 당연하게도 액체 상태의 물보다 차갑고... 더욱 단단하죠. 그리고 그 특성상, 검은 숲에서는 정말 깊은 동굴 속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 아앨라나가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빌린 권능으로, 하늘 위에 수많은, 거대한 빙산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들은 뭉툭하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합니다. 동시에 파랗기도 하고, 하얗기도 하고, 투명하기도 하고, 불투명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다양해도, 아앨라나는 자신의 마법으로 공통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모든 유빙(流氷)들은 하나하나가 바깥 세상의 전열함들을 일격에 박살낼 정도로 거대하고... 모두 라투그, 감전되어 벌벌 떨고 있는 민물 크라켄을 향하고 있습니다. 아앨라나가 이 거대한 얼음 운석들로, 저 크라켄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냥 좀 죽어.
그리고 아앨라나는, 손을 휘저어 자신의 소망을 관철합니다.
하나, 둘, 셋, 거대한 얼음들이 크라켄의 온 몸을 짓누르고, 그 얼음의 거대한 존재감을 이기지 못한 호수는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고, 그 해일은 뷔르트겐 호수 전체를 일렁이게 만들고 주변 몇백미터의 물과 땅을 뒤엎어버립니다. 물론 크라켄은? 남아났을 리가 없죠.
>>554 얼마 가지 않아 말을 탄 이들이 먼지구름을 요란하게 일으키며 나타납니다. 마부는 그들을 보자마자, 작은 파란색 깃발을 들어서 빙글빙글 흔들어대고, 말을 탄 이들은 마차를 둘러싼 채 말을 타고 빙글빙글 돌다가 점점 속도를 늦추고, 크론의 눈에 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크론이 국경에서 보았던 난민들을 두들겨패는 경비대, 경비대를 가장했던 도적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무장입니다. 가슴과 목, 머리, 허벅지는 판갑으로 덮여 햇빛을 받아 흰색으로 번쩍거리고, 어깻죽지와 발목 같은 평범한 기간병들의 복장에서는 방호를 포기하거나 두꺼운 천옷으로만 방어하는 부분도 찰갑이나 사슬갑을 달아서 보통 사람이 든 보통 창칼로는 도저히 죽일 수 없는 걷는 요새처럼 보입니다. 그런 이들 하나하나가 마치 공주의 넓은 치마폭처럼 말의 보폭을 커버하는 마갑을 입은 거대한 말에 타고 있으니, '크론'이나 그를 연기하고 있는 변경의 이름없는 참칭범이나 감히 반항할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잭은 크론의 옆구리를 다시 찌릅니다.
"쫄지 마세요. 가도 경비대입니다. 어이! 난 잭 리거, 해머할 마검학 교수님의 검술조수다. 직원증을 잃어버렸는데, 내 얼굴은 다들 알잖아? 그리고 이 쪽은 크론, 입학생이고."
가도 경비는 가까이 와서 잭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크론에게서는 입학증을 받더니 또다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는 수정구 하나를 내어주는군요.
"이 수정구가 있으면, 이제 아카데미 입학처로 갈 때까지 가도 경비대에게 검문받지 않을 겁니다. 저희가 순찰하면서 위험 요소는 전부 배제하고 있지만, 만약 공격당한다면 여기에 마력을 조금만 흘려넣으십시오. 그러면 바로 수정구가 폭발하면서 인근 50km에 구조 신호를 송신할 겁니다."
저의 손짓과 함께 괴수와 호수에게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꽤 좋은 볼거리 이였어요. 저에게 주어지고 그래서 가진 힘으로서 만들어내고 해낸 그 일련의 과정을 거쳐 그렇게 괴수를 처치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저는 부탁으로 받은 임무를 완수했어요. 이제 어촌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겠지요. 죽은 괴수는 호수의 어천, 플라베르흐의 악몽이였어요. 꿈은 결국에는 언젠가는 깨어나기 마련이에요. 악몽 역시 꿈일 뿐이기에 사라지게 되겠지요. 어촌과 이 상황은 실제이고 현실이지만 괴수는 더는 어촌을 습격하지 못할 것이고 이것도 시간이 지나 사람들 사이에서 흐릿하게 된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지요
저는 제가 해낸 이 모든 것들에 스스로가 뭔가 대단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큰 성취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일까요? 저는 기쁜 기분이 되어 마음이 들떴어요. 그들은 무엇을 위해 희생했나요? 이렇게 되기 위한 의식이였지요. 그러니 이렇게 되어야만 했어요 다르게 되는 것이 나쁜 것이지요
"가말라시엘 님, 이 존재의 파편을 재료로 사용하여 좋은 무언가에 쓰일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보다는 따로 '뒷처리' 같은 것을 해야할까요?"
방금 전까지의 그 큰 일에도 고요함을 되찾은 호수 위에서 유유히 떠있던 저는 죽은 괴수의 흩어진 파편을 바라보았다가 그것들을 방치하거나 처분 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쓸만한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가말라시엘 님에게 그렇게 물어보았어요. 이 승전보를 기념하거나 확실히 매듭짓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으려나요
>>556 "글쎄요. 지금 남아있는 살덩이들을 수천 포로 떠서 말릴 수 있다면 플라베르흐 촌민들이 앞으로 몇 달 동안 아예 일을 안 하고 손 놓고 있어도 될 정도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겠죠. 하지만, 뭐 가치 있는 게 있냐고 하면..."
가말라시엘은 크라켄의 상태를 지적합니다. 라투그, 한때 플라베르흐를 비롯한 뭇 뷔르트겐 호수의 모두를 공포에 떨게 했던 민물 크라켄은 아앨라나의 현명한 마법과 가말라시엘의 적절한 개입 아래 얼려지고 감전당한 다음 끝내는 거대한 얼음 운석에 밟혀 찍혀 형체도 얼마 못 남기고 죽어버렸습니다... 소나 돼지, 닭 같은 동물을 도축할 때도 최대한 멀쩡한 원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경동맥 같은 급소를 노려서 죽여야 최대한 많은 고기, 즉 더 큰 효용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이 크라켄도 아마...
"크라켄은 수십개의 다리로 수백개의 동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뇌수 추출물은 '기지의 비약'이라 하여, 한 번에 집중을 요하는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하는 학자들과 고위 관료들이 비싼 값으로 구입합니다. 또한 크라켄의 이빨은 '바다의 상아'라 불리면서 비싸게 거래되지요. 아, 아앨라나 씨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역시 크라켄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크라켄의 부속지 중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 이빨, 부속지. 그게 뭐건 간에 다 터져버렸군요. 그리고 뒤처리에 대해 언급하자 가말라시엘이 되묻습니다.
"글쎄요. 뷔르트겐 호수에는 시체를 던지면 좋다고 달려들 게 많지 않습니까? 크게는 악어부터, 작게는 골뱅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