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걸어가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것을 그녀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허나 세나에게 있어서 이런 시선이 오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대에 올라가본 경험도 있으며 ㅡ물론 메인은 아니지만ㅡ 아이돌로 이름을 알리기로 한 이상... 무엇보다 내년에 데뷔를 앞두고 있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긴장하거나 부끄럽다고 느낄 생각 따윈 그녀에게 없었다. 데뷔한 후에 무대에 올라간 직후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 떨리고 긴장된다고 할 순 없지 않겠는가. 이 또한 그녀에게 있어선 경험이었다.
"인지도를 생각해보면 그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제가 아닐까 싶지만요. 후훗."
애초에 자신은 연습생에 지나지 않고 상대는 이미 천재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존재였다. 그런 이와 열애설이 난다고 한다면 일단 당황스럽고 곤란하고 난감한 감정을 전부 지운다고 했을 때, 영광스러운 것은 자신 쪽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나 역시 조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여러모로 이런저런 구설수가 있었던 것을 그녀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벚꽃잎이 살랑살랑 떨어지는 가운데, 그녀가 핸드폰을 셀카모드로 바꾸는 것이 보였다. 사진을 찍자는 것에는 그녀 역시 동의했다. 밀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동의했다. 설사 셀카봉을 쓴다고 하더라도 핸드폰의 앵글과 화면은 한정적이었으니까. 조금 더 크고 전문적인 카메라를 쓴다면 넓게 찍을 수 있겠지만, 핸드폰은 결국 핸드폰에 지나지 않았다.
제 어깨를 살짝 끌어안으면서 실례한다는 말을 하자 세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해인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듯이. 허나 이렇게 당하기만 하는 것도 조금 그렇잖아?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그녀는 살며시 몸을 옆으로 틀더니 그의 허리에 살며시 두 팔을 감았다. 그야말로 안는 자세. 그리고 그녀는 작게 웃으면서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이쪽이야말로요."
재밌네. 이 프로그램도.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환한 아이돌로서의 미소를 보였다. 물로 연습생이었지만.
물론 유명한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볼땐 그들 각각의 인지도, 그러니까 유명한 정도를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타인이 그들을 볼때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남녀 사이의 관계에선 인지도보단 서로의 매력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어느쪽이 상대방한테 더 빠져드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 매력이 더 중요한 법이지. 마치 세나처럼? "
이전에 구설수가 나왔을때도 해인은 자신보단 세나의 안위를 좀 더 걱정했었다. 지금도 있지만 그때도 극성팬들이 꽤나 있었으니까. 그래서 강경하게 대응하려고 했고 선도 딱 그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자신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하게 된 해인은 얼마 뒤부터 활동을 점차 줄이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 신문부에 보내면 좋아하겠네. "
세나가 허리를 자연스럽게 팔을 감아오자 해인은 몇장을 촬영해서 세나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 중에서도 세나가 잘 나온걸 고르라는 뜻이었다. 똑같은 자세로 찍었어도 분명 잘 나온게 있을테니까 말이다. 사진을 찍고나서 도시락을 먹을 장소가 있을까 고민하던 해인은 마침 비어있는 자리를 발견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나쁘지 않은 곳처럼 보이기도 하고.
" 저기 가서 도시락 먹을까. "
백팩에는 돗자리도 들어 있었고 어제 사둔 음료수가 얼음이 담긴 보온병과 함께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자리만 잡으면 일단 만사형통이라는 것. 마침 식사도 안한 참이라 도시락을 먹고 움직이는게 좋아보여 얘기를 꺼낸 것이기도 했다.
이 방송 보면서 오빠 옆에 서 있고 싶어하는 여자애들이 얼마나 많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세나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이 자리를 누군가에게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지금 이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차후 결과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고, 제 마음도 어떻게 흘러갈진 모르겠고 다른 사람과 함께 페어로 놀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그녀에게 있어서 상당히 즐거웠다. 그런만큼 딱히 그녀는 누군가에게 현재 이 자리를 양보해줄 생각은 없었다.
정 원한다면 신청서 써서 들어오라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그녀는 오른손을 아래로 내렸다.
"하지만 신문부에 안 보낼 거잖아요. 안 그래요?"
해인이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세나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예쁘게 잘 찍혔다. 뒤의 배경도 정말로 좋아.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몇 장을 손으로 콕콕 가리켰다. 그리고 해인에게 나중에 톡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참고로 오빠의 베스트 픽은 뭐에요?"
조금 궁금하다는 긋, 그렇게 물어본 이후, 세나는 해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락을 슬슬 먹는 것이 좋을테니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그녀는 살며시 그가 가리킨 장소로 향했다. 근처에 커다란 벚꽃나무도 있겠다. 구경을 하면서 먹기에는 딱 좋았다.
"어제 나름대로 신경써서 도시락을 준비했어요. 맛은 기대해도 좋아요. 후훗. 오늘 맛있다는 말 제대로 듣기 위해서 꽤 신경써서 준비했거든요. 조금 양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같이 먹으면 못 먹을 정도는 아닐 거예요."
자신의 가방에 있는 3단 도시락을 떠올리며 세나는 배시시 웃었다. 이어 자리에 도착한 그녀를 바라보며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냥 도시락만 먹으면 심심하잖아요. 우리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질문 하나씩 던져볼까요? 진 사람은 그게 무엇이건 솔직하게 답하기. 어때요?"
나름대로 이 방송을 보는 이들을 위한 서비스였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자신도 즐기고 싶었고.
세나가 골라둔 사진 이외의 사진은 지우려던 해인은 베스트픽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른 사진들도 곰곰히 보고 있다가 이내 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찍어둔 사진은 대부분 비슷한 구도이긴 했으나 해인이 그 중에서 세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 것처럼 보이게 머리에 손을 올려둔 것을 고른 것이었다.
" 난 이거. "
사진의 베스트픽까지 섞어서 세나의 톡으로 보내둔 해인은 보아두었던 자리로 가서 돗자리를 깔고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가방을 구석에 올려둔 뒤에 조심스럽게 위에 앉았다. 돗자리 특유의 부스럭거리는 느낌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또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라 나름 괜찮기도 했다. 그리고선 자신이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든 해인은 뚜껑을 열며 말했다.
" 나는 거창한건 아니고 유부초밥이랑 베이컨 말이 정도. "
아무래도 부엌의 한계가 있어서 그렇게 거창한건 만들기 힘들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무난한 것을 만들어온 것이었다. 거기에 어젯밤에 사둔 오렌지 주스와 얼음이 들어있는 보온병까지 꺼내 놓아둔 해인은 세나가 꺼낸 이야기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가위바위보는 자신 없으니까 ...
" 차라리 서로 번갈아가면서 질문하기는 어때? "
그게 좀 더 시청자들이 좋아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대신 먼저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세나에게 제안해보았다.
해인이 고른 사진을 바라보며 세나는 순수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밝게 웃었다. 이건 몰래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해둘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물론 핸드폰 바탕화면을 하나만 설정하란 법은 없으니, 오늘 받은 사진을 각각 다른 페이지의 바탕화면으로 설정해도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어 다음에도 사진 또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며 세나는 기분 좋게 눈웃음을 보냈다.
돗자리가 아래에 깔리자 세나는 세나대로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근처에 있는 돌을 주워온 후에 돗자리 꼭지점 부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가방과 합쳐진 무게감은 돗자리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줬고, 세나는 신발을 벗은 후에 조심스럽게 돗자리 위에 올라갔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을 받은 후, 그 안에서 3단 도시락 통을 꺼냈다.
"거창하지 않으면 어때요. 누군가를 위해서 만들어줬다는 사실이 여성에겐 감동으로 전해지는 거라고요. 후훗. 요즘도 요리는 여자만 해야 한다거나, 이런 자리에 오면 당연히 여자 쪽에서 도시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물론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말 끝을 흐리면서 그녀는 자신의 도시락 통을 열었다. 일단 3층에는 남자들이 좋아할법한 제육볶음, 문어 모양 소시지가 들어있었다. 그 옆에는 같이 먹을 수 있는 김치도 있었으며 두부조림도 함께 들어있었다. 그리고 2층에는 하얀색 쌀밥과 함께 키위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 감자조림, 댤갈말이가 들어있었다. 마지막으로 1층은 사과, 방울토마토, 딸기가 곱게 놓여있었다. 스스로가 봐도 조금 과했나 싶어 그녀는 괜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만들다보니 이것저것 다양하게 나와버렸어요. 후훗. 하지만 양은 그렇게 많진 않으니까 가볍게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아무튼 유부초밥과 베이컨말이요? 유부초밥은 꽤 손이 많이 갔을텐데. 고마워요. 오빠."
보온병으로 시선을 잠시 옮긴 세나는 이어 해인의 제안이 들려오자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번갈아가면서 질문하기는 어떠냐는 말에 세나는 가만히 고민했다. 오히려 게임 쪽이 조금 더 두근두근한 느낌이 들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하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빠가 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나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그럼 먼저 질문할게요. 해인이 오빠. 이 프로그램. 참여한 거 후회하지 않아요? 정말로 솔직하게... 무섭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연애 프로그램. 확실하게 인지도를 올릴 수도 있고, 이런저런 경험을 쌓을 수도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기 때문에, 별 시덥지도 않은 것으로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 있었다. 사소한 행동 하나. 혹은 다른 페어가 생겼을 때 조금만 더 친밀하게 굴면 이전의 파트너는 그저 놀이대상일 뿐이었냐는 비꼬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는 일전에 자신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지 않던가. 그렇기에 그렇게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꽤 진지했다.
옆구리에 야물딱지게 꽂아넣은 스트레이트 한 방. 딸꾹질같은 소리가 나며 호랑의 몸이 비틀거렸다. 자세는 두어 발짝만에 다시 가다듬었지만, 마음은 가다듬지를 못하겠다. 지나가 찔러넣은 스트레이트가 몸보다 마음에 몇십 배는 아프다.
지당한 일침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미련은 부리고 있는 꼴이라니.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해야 될까. 다른 사람은 선아 옆에 서도 되는가- 그렇다, 머리로는 차라리 다른 사람이 선아 옆에 서기를 바랐다! 자신같은 인간 말고, 선아에게 확고한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서기를 바랐다... 그래서 호랑은 선아에게서 멀어지려고 시도했고, 성공했다.
"모르겠어. 머리는 그래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나 일종의 정신적 재활이라 생각하고 신청한 이 프로그램에서, 참으로 얄궂게도 호랑은 선아와 재회해 버리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겸허한 자세로 임했다. 그러나 매 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자꾸만... 가슴 속에서,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것은 단지 지독한 불운일 뿐이었다고, 그 불운이 있기 전에 너희 두 사람이 어땠느냐고, 자꾸만 호랑의 마음을 울려오는 것이다. 호랑은 종이가방을 팔에서 미끄러뜨려 손에 걸었다.
"선아를 다시 만나고 나니까... 여기 어딘가가..."
그리고는 가슴팍 가운데를, 명치 조금 위를, 꾹꾹 눌렀다. 강철로 된 솔을 여기에다 대고, 망치질을 쾅쾅 하는 느낌.
"말을 안 들어."
어두운 비구름이 드리운 그늘 속에서, 호랑의 얼굴은 지나에게 거짓 없이 솔직했다. 푹 젖어 있는 한쪽 어깨가 오늘따라 유달리 처져있는 것 같았다. 호안석과 같은 눈동자가, 햇빛을 받으면 찬란한 노란색 얼을 머금고 반짝이는 그 눈동자가 차분히 가라앉은 갈색이 되어 지나를 바라보고... 아니, 지나와 시선을 맞추지도 못하고 저 앞에 놓인 기숙사를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어느 한 쪽을 택하고 싶은데, 어느것도 마음대로 안돼, 누나. 이거 나 어쩌면 좋냐."
>>650 내가잘쓴다->상대가즐거워한다->상대가 즐거움을담아 반응을 써준다->나도 즐거워한다의 통곡의 4중나생문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편안함... 크윽... 흐음 해인주의 생각과 세나주의 자평이 어찌될지는 내 섣불리 짐작할 수 없지만 일단 관전자인 내 입장에서는 옥시토신이 살살 올라오는 것이 실로 봄날이지 않나싶으요 (산처럼 쌓인 빈도시락 가리킴)
지나는 이내 이어지는 호랑의 말에 눈썹을 늘어뜨렸다. 완전히 공감해줄 순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간접 경험도 경험이라고 지나에게는 많은 사랑 이야기들을 마음 속에 담고 있었다. 머리가 이해한다고 해서 가슴이 따라주는 것은 아니다. 가슴이 말하는 대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둘 다 못하겠으면... 남은 방법이 하나 있어.”
지나는 호랑의 손에 위태위태 걸려있는 종이가방을 뺏어서 품 안에 안았다.
“선아한테 선택하게 하는 거지. 말하는 거야. 너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잡겠다고.”
지나의 따뜻한 색감의 눈동자는 호랑을 똑바로 바라봤다. 지나가 생각하기에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이었다.
“봐 봐. 내 생각에는 처음부터 잘못 됐다고 봐. 선아 옆에 설 자격? 그걸 누가 결정하는데? 네가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 오만 아냐? 옆 자리에 누구를 세울지, 그리고 그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건 선아야. 네가 아니라.”
만약 지나가 호랑만 알고 선아를 몰랐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참견이었다. 하지만 지나는 호랑도 소중하고 선아도 소중했다. 그랬기에 어떤 결과가 일어나든 간에 완전한 끝마무리가 되기를 바랐다. 차라리 두 사람이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렇게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흐지부지 가는 것은 지나가 참고 보기 힘들었다. 둘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뜯겨져 나가는 게 보여서.
그리고 나도 이 스레 자체가 깊은 감정이 오가는 연애 스레라서 적당히 하고 있는지 모르겟따...! 지나 캐입을 하니까 호랑이랑 선아랑 너무 가까운 사이라 그런지 얘가 주체 못하고 껴드는데 이래도 되나 싶고........ 혹시나 호랑주나 선아주 혹은 다른 참치들이 이건 좀 싶으면 찔러줘...... 어렵다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