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방정식’. 그렇게 와닿는 제목은 아니다. ‘사랑’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자신은 남들의 연애를 구경하면 구경했지, 절대 그 주역이 되고자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표버들이 ‘사랑의 방정식’에 참가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어쩌면 변덕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것에 대해 더 알 수 있겠다는⋯⋯. 물론 양질의 기삿거리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동거인 배정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표버들의 동거인은⋯⋯ 강소호라는 3학년 선배였다. 어떤 사람일까? 소년은 꽤 들뜬 마음으로 짐을 챙겼다. 사실 챙겨갈 짐도 별로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가벼운 가방을 메고, 표버들은 배정받은 기숙사로 향했다. 참 신묘한 게 제가 도착하자마자 방문이 덜컥 열렸다는 것이다. 현관에 서있는 사람은 저보다도 키가 한 뼘은 큰 미모의 여학생이었고. 표버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뺨을 긁적였다. 일단 첫인상은 합격이라고 할까⋯⋯.
“아⋯⋯ 안녕하세요~”
그리고 꾸벅 인사한다. 허리를 어찌나 굽혔는지 등에 멘 가방이 앞으로 불쑥 쏠렸다. 다시 몸을 꼿꼿이 세운 버들은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고 있다.
“강소호 선배님이시죠~ 앞으로 2주동안 동거하게 된 표버들이라고 합니다~”
소개하는 목소리가 제법 발랄하다. 그와 함께 버들의 머릿속 사고회로도 팔팔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가볍게 인터뷰부터 해보는 것도⋯⋯. ‘사랑의 방정식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특별히 눈여겨보고 있는 참가자가 있나요?’, ‘앞으로의 프로그램 진행에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등등. 아니, 너무 부담되려나⋯⋯.
말이 좋아 데이트지. 자세히 보자면 결국 그냥 바람 쐬러 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이 어떻게 보면 데이트일까? 세나는 그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하루 놀러가는 거야, 중학생 시절에는 가끔 있던 일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벚꽃을 보거나 따로 밥을 먹거나 할 정도로 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그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딱히 나쁘지 않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해인과의 데이트라. 응. 나쁘지 않았다.
"저는 오빠가 없고, 동생도 없어서 솔직히 첫째의 특성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제 친구 오빠들의 말을 들어보면 해인이 오빠처럼 섬세하게 챙겨주고 신경 써주는 케이스는 없었어요."
오히려 싸우기만 싸우고, 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는 케이스만 가득 들었다고 하면서, 그와 동시에 자신은 '친오빠'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쨌든 잡담은 여기까지. 슬슬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세나는 해인을 바라보며 오른쪽 눈을 살며시 감아 다시 윙크를 보냈다.
"그럼 안내 부탁해도 될까요? 오빠."
생각해둔 곳이 있다고 했으니, 안내는 결국 해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안내를 위해서 앞장선다면 아마 세나는 그의 옆에 나란히 서서 천천히 걸어갔을 것이다.
/일단 페어로서의 미션은 다 끝났고..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긴 한데... 이후에 스테이크를 먹고 산책을 했습니다! 라는 정도로 가볍게 정리하고 끝내도 괜찮고... 조금 더 길게 일상을 즐기고 싶다면 더 이어도 괜찮아! 이 부분은 해인주가 편한대로 해도 될 것 같아!
음.. 일단 페어라고 해서 해인주하고만 계속계속 돌리는 것만 아니면 괜찮겠...지? 아마도? 사실 여기 시스템과 분위기를 내가 다 파악한 것은 아니라서! 그러면 캡틴 답변 나오기 전엔 저 일상 후일담 썰이나 풀래? 어차피 지금 깨어있는 거 나와 해인주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나도 그렇게 오래 깨어있진 못하긴 하지만.. 내일 이어서 풀어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니까!
>>29 세나도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니까 아마 해인이가 공원에 쉬러 가자고 하면 알았다고 하면서 따라갔을 것 같아. 그리고 해인이에게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것저것 물어볼 것 같아. 중학생 때 이야기라면 소속사에 있었을 때 함께 활동햇던 이야기려나? 아마 세나는 그때 이야기를 하면 덕분에 많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배시시 웃을 것 같아. 무대에도 많이 익숙해졌다고 이야기도 할 것 같네.
>>31 해인이가 그렇게 근황을 말하면 아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럼 이번에는 평범한 학교 생활도 마음껏 즐기라고 이야기를 할 것 같아. 그래도 가끔은 기타 연주 들려달라고 살짝 조를 것 같기도 하고! 앗. ㅋㅋㅋㅋ 그러면 세나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짓궂은 목소리로 그럼 지금은 안 귀엽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말을 할 것 같네. 장난스러움 99%로! 그리고 여동생을 보여주면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고개도 끄덕일 것 같아. 그래도 제가 조금 더 예쁘네요. 라고 이렇게 장난스럽게 또 말을 할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바로 이어서 농담인 거 알죠? 라고 말하면서 웃을 것 같아.
>>32 기타 연주는 들려달라고하면 들려줄꺼야. 곡도 원하는거 얘기하면 바로바로 해준다구~ 세나가 그렇게 말하면 해인이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다가 음, 지금은 더 예뻐졌으니까? 하고 받아치겠네. 해인이 입장에선 여동생보다 세나가 더 낫다고 느끼긴할껄? 해인이가 여동생들 소중히 여긴다고해도 어디까지나 여동생이니까 ...
>>33 그러면 아마 세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다음에 방에서 느긋하게 듣고 싶다고 할 것 같아. 어차피 공원이니까 당장 연주할 수도 없을테고! 앗. 그렇게 나오는구나. 애초에 세나는 해인이가 살짝 당황할 것을 유도하고 말한건데, 오히려 그렇게 돌아오니까 살짝 당황할 것 같긴 한데... ㅋㅋㅋㅋㅋ 그럼 세나는 가만히 해인이를 바라보다가 살풋 웃으면서 오빠도 되게 잘생겨진 거 아시죠? 저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고등학생 매직인가봐요. 이게. 이렇게 대꾸할 것 같네!
조금 더 썰을 풀고 싶지만..슬슬 자러 가야 할 것 같다..;ㅁ; 해인주도 잘 자고 다른 이들도 잘 자!! 이만 가볼게! 나!
생각했던 것보다 과하게 몸을 숙여 인사하는 세나의 모습에 지나는 눈을 깜빡였다. 아. 1학년이었지 참. 도서부에 1학년 후배들이 들어와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럴 때에 새삼 자신이 3학년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1학년들보다 더 어른스러운 것 같지는 않지만.
“책? 무슨 책 찾는데?”
지나는 신뢰감있는 미소를 지으ㅡ려고 애쓰ㅡ며 말했다. 그래 오늘이야말로 선배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
“나 도서부원이니까! 책 찾는 거 도와줄게.”
하고 어깨를 펴고 가슴을 두어번 쳤다. 지난 방송에서는 너무 어리숙한 모습만 보여준 것 같아 이미지 쇄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으니까. 물론 이런 것이 방송에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운이 좋다고 세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딱 도서부원을 만나다니. 도서부원이면 지금 그녀가 말한대로 책의 위치를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지나를 바라보면서 바로 부탁했다.
"그럼 혹시 '요리'와 관련된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도시락을 조금 만들어볼까 하는데 기왕이면 좀 맛있는 것을 만들고 싶어서 레시피 참고를 할까 해서요. 인터넷도 좋지만, 가끔은 책에서 나오는 좋은 것들도 있잖아요?"
딱히 누군가를 위해서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개인적인 취미이자 만족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급식이 안 나오는 주말에 직접 요리를 해서 만들어서 먹는 것도 제맛이었으니까. 그러다가 다른 이에게 나눠줄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 와중에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세나는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데? 라는 표정으로 빤히 지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우리.. 어딘가에서 만난 적 있어요? 묘하게 낯이 익은데."
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것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고민이 된다는 듯, 그녀는 빤히, 정말로 빤히 지나를 바라봤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최근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끄응...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는 절로 표정을 찡그렸다.
"어머. 선배님처럼 귀여운 사람이 있으면 작업해보고 싶을 것 같은데. 후훗. 하지만 지금 것은 유감스럽게도 작업은 아니에요. 정말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기분이라서요. 어디였으려나."
영 기억이 나지 않는지,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히 어디에서 봤는데. 그것도 아주 최근에. 어디였었지. 끄응! 생각해내! 내 머리야! 생각해봐! 그렇게 괜히 자신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콩콩 가볍게 꿀밤을 먹이면서 생각을 하던 도중, 그녀는 답을 떠올렸다. 사랑의 방정식! 맞아. 그 방송에서 봤었어! 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나를 빤히 바라봤다.
"사랑의 방정식! 맞죠? 거기 나온 선배! 아. 근데...저도 알아요? 물론 세나 맞긴 한데..."
그녀의 이름 이지나. 그것을 들으니 더욱 확실하게 떠올랐는지, 세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기서 자신의 이름이 바로 나올 것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녀는 살짝 놀라 두 눈을 깜빡이며 지나를 빤히 바라봤다.
"어..제 이름은 어떻게... 아! 후훗. 저도 생각보다 유명인일까요? 아니면 방송 나갔나? 벌써?"
그렇다고 한다면 어쩌면 봤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지나를 천천히 따라갔고 요리 관련이 모여있는 구역에 도착했다. 참으로 많은 요리 관련 서적이 있는 것을 확인한 세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이어 그녀는 지나를 바라보면서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선배님! 아까부터 계속 찾아다녔는데 도저히 이 구간이 안 보이더라고요. 후훗. 정말로 감사해요!"
>>672 10차 정화까지 이제 한 번... 00 ㅋㅋㅋ 그렇게 토닥임 받다가 안심해서 잠들게 될까 아님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할까... 궁금하구만! 다음에 기회되면 돌리는 걸로~~ 0< 그리고 픽크루 감사합니다...! 0-ㅠ♡ 호랑이 너무 귀여운거 아닌가~~~! 00 지나주가 말해준 !!!행복했던 어느날!!! 찍은 사진이라는 말 들으니까... 이번에 틱톡 찍은 영상에서 마지막에 저렇게 서있는데 그게 그날 저 사진이랑 똑같았다 하는게 떠올라 버렸다... 일단 파트너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폴더 인사)
>>675 !!!돈 많이 줘?!!! 0-ㅠ 아니 돈이면 되는 거였어....? 행운, 불행, 평범 나눠주는 해인이 너무 엄청나~~~~~!! >< 진단... 짱이야...!!
다들 왜 이렇게 귀여우시죠? 00 도현다미 소민현우 세나해인 소호태훈 픽크루도 그렇고 흉가체험에 현우 독백까지... 이렇게 도파민 넘쳐도 되는 건가~~~~!! (미쳐버림~~~!) 세나주가 올려준 건 못보다니 억울하다...!! 0-ㅠ 노아주, 버들주 어서와! 환영해~~~~~! 00 진아주, 태훈주, 찬주는 잘가...! 0-ㅠ 즐거웠구 나중에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0-ㅠ
해인주, 세나주 안녕~~~!! 오랜만이야! 0< 드디어 봤다 세나~~~~!! 이히히 00 나도 세나 봤다 세나... 너무 귀여워~~~~~!! 분홍색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 아이...! 요즘 계속 얼굴만 비추고 사라져서 더하지... 0-ㅠ 어장에만 붙어있고 싶다... (늘어지기) 그리고 선아주는... 오늘도... 안녕... 0-ㅠ 다들 미리 잘 자고~~~~! 미리 좋은 꿈 꿔~~~~! 00♡
학교에서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일단 세나는 고1이고 해인이는 고3이니까 아예 생활하는 복도 자체가 완전히 다를 것 같거든. 그리고 고3은 아무래도 입시생활을 하니까 다른 학년이 출입하는 것을 보통 막거나 금지하는 분위기고.. 해인이가 굳이 고1 교실이 있는 복도까지는 오지 않을 것 같으니... 그래도 가끔 점심시간에 우연히 만나서 밥 같이 먹는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
일단 둘 다 방송 타고 있으니까 아마 분위기 자체가.. 다른 페어도 그럴 것 같지만 뭔가 둘이서 함께 뭐하는 분위기가 되어있을 것 같은 예감도 들고?
일단 연습 스케줄이 없다고 가정하면 노트북을 켜서 아이돌 인기 차트나 곡이나 이런 것을 체크하기도 하고, 요리관련 동영상을 보는 일이 많을 것 같아!
학생이니까 공부를 할 때도 있고, 귀여운 동물 동영상 같은 거 찾아서 보기도 해! 지금은 프로그램 참가 중이니까 아마 일부러 방송 분량 늘어날만한 행동을 하기도 할 것 같네! ㅋㅋㅋㅋ 예를 들면 잠깐 부엌을 빌려서 새롭게 요리를 하나 만든 다음에 해인이에게 대접해준다거나 하는 그런 식?
원래 고3은 공부한다고 바쁘니까 쉴 때는 푹 쉬어야 해! 잠도 푹 자고 그래야 시험 점수도 높게 나오고 그러는 법이니까! 앗. 아마 해인이가 그렇게 말을 걸면 세나도 웃으면서 대화하고 그럴 것 같아! 오늘 학교에서 무슨무슨 일이 있었는데로 시작해서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아마 수다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네! 앗앗 ㅋㅋㅋ 해인이도 요리 만들어주는구나! 세나가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할거래!
“정답ㅡ! 너 알고 있지. 일단 방송을 다 챙겨보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참가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좀더 신경쓰게 된달까. 그리고 기숙사에서 너랑 해인이랑 지나가는 거 우연히 봤었거든. 아, 참고로 해인이랑은 같은 반 친구야. 이렇게 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나는 세나가 신경쓰이지 않게 세나를 알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해줬다. 확실히 같은 기숙사를 쓰게 되니까 우연찮게 마주치는 일도 종종 있을 테니까.
“여기가 좀 숨어있어서 잘 못 찾았나보다. 그나저나 요리하고 도시락? 해인이한테 사랑의 도시락이라도 싸주려는 걸려나~?”
이건 또 생각도 못한 연결고리라고 생각하며 세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눈앞의 이 선배님은 그 오빠와 같은 반 친구라는 거지? 이런 인연이 다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절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돌아가면 해인이에게 말해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찌되었건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는 정식으로 지나에게 인사했다.
"후훗. 어쨌든 반가워요. 제대로 소개할게요. 17살 신입생인 정세나에요!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꾸벅. 확실하게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올린 그녀는 다시 허리를 펴고 밝은 미소를 보였다. 같은 연애 프로그램에 참여를 한다면 어떻게 보면 라이벌이 될 수도 있는 사이였으나 굳이 그런 것을 신경 쓸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현 시점에선. 물론 그렇다고 정말로 충돌하게 되었을 때 물러설 생각도 없었다. 뭐가 어찌되었건 서로가 최선을 다하고 후회할 수 없는 순간을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한편 지나의 말에 세나는 살짝 놀라면서 오른손으로 자신의 입을 살며시 가렸다. 이렇게 훅 들어온다고? 두 눈을 깜빡이며 아무런 말 없이 지나를 바라보던 세나는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진심이 된다면 사랑의 도시락보다 더 정성가득한 것을 줄지도요? 후훗."
명확하게 대답하진 않으면서, 어떻게 보면 살짝 도발적인 발언에 가깝지 않았을까. 물론 이렇게 말하는 그녀라고 해서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냥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책을 빌리려고 한 것이었으니까. 그저 이렇게 훅 들어왔기에 나름대로 분위기를 맞춰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러다가 진심이 되면 어쩌나 싶기도 하나, 그에 대해서 그녀는 가능성 자체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지는 있지만, 확신은 스스로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제 막 참가를 한 자신이 진심이니 뭐니 해도 아무런 설득력도 없지 않을까라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최대한 재미있게 보내자.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미소를 머금었다. 연애를 하고 싶어서 참여를 하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이 곧 들리자 세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였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자신도 어떻게 보면 호기심에 참여한 것이 크긴 했으니까. 그러다가 좋은 연인이 생기면 좋은거고.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선배님도 진심이 되고 싶은 이가 생길지도요. 그런 이가 각각 생긴다면 겹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지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것이 좋잖아요?"
이 착하고 귀여운 선배님과는 특히나 더 평화롭게 있고 싶은 것이 세나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설사 붙게 된다면, 쉽사리 지진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 프로그램에 묘하게 진심이 아니었을까. 어쨌건 슬슬 책을 찾아보기 위해서 그녀는 책장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러다 지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세나는 싱긋 웃었다.
"혹시라도 읽고 싶다면 찾아갈게요. 도서부원 일 힘내요. 선배님!"
손을 덩달아 흔든 후, 그녀는 다시 책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도시락 반찬. 그런 제목의 책을 보면서 그녀는 흥미를 보였다. 오늘은 이걸 빌려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렇다면 이렇게 막레를 할게! 일상 수고했어! 지나주! 지나는 귀엽고 착한 선배님이로구나!
나도 모르겠는걸. 연애하려나? 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어쩌면 초반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사실 성비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냥 여캐로 짜고 온 거라서 딱히 누구 시트 보고 들어온 것도 아니다보니 나도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 그건 차후 관계를 즐기다보면 알겠지 뭐! ㅋㅋㅋ
타이밍이⋯ 이게 되네? 소호는 신기하단 눈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방송으로 먼저 들은 이름이 낯설기에 예상은 했지만 당연하게도 초면이다. 눈을 마주치려면 정면보다 살짝 아래로 내려가는 시선. 순진해보이는 낯과 숙여진 허리, 깍듯한 호칭까지. 첫번째로 든 생각은 2주동안 불편할 일은 없겠다. 그리고,
"선배님?"
강소호가 작게 되묻는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고개를 갸웃이다가 "말 편하게 해." 말하고는 문고리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뺀다. 살면서 들을 선배님 소리를 여기서 다 듣고 있는 거 같은데. 애초에 나서서 사람을 찾는 타입이 아니니 또래가 아니면 마주칠 일이 없었다. 문을 조금 더 열어 틈을 벌린 소호가 질문한다.
나는 한숨처럼 웃어버렸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사랑하면 닮는 다던데— 라는 식으로 장난이라도 쳤겠으나, 사실이 그러하니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잘 아는 노래라고는 언니가 좋아하던 노래와 뮤지컬 노래 뿐이었고, 이후로는 그의 음악 편식에 그녀도 물들어 버렸으니. 하지만, 그걸 너에게 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저 모르는 척 요즘 노래를 늘어놓고, 그중에 선택하고, 그러게 말이야— 라며 대답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리웠던 감촉, 그의 반응. 별로 티 나지 않는, 그러나 마구잡이로 헝클어졌을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모습을 웃으며 보고 있다가 자신을 샐쭉하게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결국 아하하, 하고 못 참겠다는 것처럼 작게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웃음 소리는 흔적도 없이 금방 사라졌지만, 마치 위로라도 받은 사람처럼 이전보다 조금이나마 풀어진 선아의 분위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당연하지. 기대하고 있을게?"
그새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전부 입력했는지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그를 향해 농담처럼 툭 말을 던지고 그대로 전화를 연결해 버린다. 곧 안녕하세요, 라는 말로 시작해 간짜장 곱빼기 하나와 옛날 짜장면 하나까지 잘 주문하더니 말을 하다 말고 눈치를 보듯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그리고 탕수육도 하나 부탁드려요. 라며 은근슬쩍 메뉴 하나를 추가시켰다. 그렇게 마무리하며 전화를 끊고 난 다음, 똑바로 앉으며 그가 보여주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잠시 집중해서 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곤 그를 바라보았다.
그 지긋지긋한 틱톡 소동에서 며칠이나 지났는지? 방송 다음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온 몸에 꽂혔던 관심들은 그야말로 일생 잊지 못 할 기억이 되리라. 그럼에도 바득바득 속으로 이 갈면서 애써 무시하고 지내 왔다. 조금만 지나면, 앞으로 조금만 더 지나면. 방송 분량 뽑았다고 즐거워하던 그 얼굴이랑도.
......그리고 시간은 지나,
익숙한 듯 낯선 복도에 발소리 울린다. 느리지만 또렷하다. 뚜벅, 뚜벅, 뚜벅, 천천히 코너 돌아나온 남현우가 문 앞에 서면. 이어서 도어락 소리. 방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제법 지친 기색이다. 현우야 수퍼노바 춰 주면 안 돼? 하도 들어서 이젠 귀에 윙윙 울리는 것 같아. 하도 여기저기서 된통 당한 턱에 영 공부에 집중을 못 하겠다. 성적에 영향 가면.. 안 되는데. 방에 소민이 먼저 와 있었든, 아니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똑바로 책상까지 걸어가 앉았다. 뭘 하는려는지 지켜본다면,
턱, 턱, 턱, 두꺼운 참고서며 공책들이 몇 권이고 나와 책상 한 켠을 채우고. 피로 몰아내려 미간을 잠시 내리눌렀다가 펜을 들었다. 카메라는 돌고 있는데 신경도 안 쓰는 양 사각, 사각, 종이소리만 한참.
>>339 방송실에서 한참 편집을 마치고 돌아온 유소민, 어김없이 카메라가 돌아가있는 것을 체크하고 들어왔다. 띠리릭, 하고 울리는 도어락 소리와 함께 가볍게 문이 열렸다 닫힌다. 안으로 들어가면 사각이기만 반복하는 남현우의 모습이 비친다. 이제는 지겹다는 듯 질린 낯빛으로 "에~~~" 하면서 건네는 한마디.
"남현우 학생~? 너무 공부만 하는 거 아닌가요? "
"우리는 방송을 하러 왔잖아요~! 방송을 해야죠! " 같은 말을 재잘거리며 가방을 제 침대 쪽에 내려놓고는 갖가지 "제발 노잼공부그만해라" 같은 결론인 말들을 늘어놓다가. 유소민은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하기에 이르렀다.
"바깥 공기. 마시고 싶지 않나요~? "
"산책이나 가죠~! " 따위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유소민 되시겠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347 사각, 사각, 사각, 몇 장이고 문제지가 넘어가기를 한참. 도어락 소리 울리면 잠깐 현관에 눈길 줬다가 금새 다시 공부에 집중한다. 아니, 정확히는 집중'하려고' 했다. 또 다시 재잘거리는 그 목소리가 작은 방을 울린다. 다크서클 내려앉은 눈가가 미묘하게 움찔거렸다. 너무 공부만 하는 거 안닌가요? 안 들려. 우리는 방송을 하러 왔잖아요, 방송을 해야죠! 안 들린다고. 말대꾸 않고 스스로 세뇌하듯 풀리지 않는 문제만 노려보고 있었다. 한참 무어라고 소란스레 말 꺼내더니 바깥 공기 마시고 싶지 않냐느니, 산책 가고 싶지 않냐느니, 들리지 않게 한숨 쉰다. 삐거덕, 그제서야 의자 돌려 소민을 똑바로 쳐다봤다.
".....시간 없어. 진도 끝내려면 오늘은 안 돼."
안 그래도 촬영 때문에 공부 몰아서 하느라 죽을 맛인데, 오늘마저 별 소득 없이 끝내면 다음 모의고사 점수는 어떤 꼴이 날 지 모른다. 게다가 자기도 수능 앞둔 고3이면서 이리 태평스럽게 굴어도 좋은가. 안경 너머로 느껴질 지 모를 조금 따가운 시선.
"방송 분량 때문이라면 다른 팀도 있잖아."
앗차, 저도 모르게 말투에 은근한 날이 섰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사과하는 건 그림이 또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다시 의자 돌려 앉으려는 찰나.
아니잖-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반박하려 훽 몸을 돌리는 순간 마주친 얼굴엔, ...웃어? 동공에 들이박히는 모습엔 분명 어떠한 힘도 없을 터인데 마치 날카롭게 잘 갈린 어떤 날붙이처럼. 몇 초간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하, 먼저 실소가 튀어나온 건 이 쪽이다. 그래, 방송 분량. 지금 너한텐 그게 제일 중요하겠지. 도파민. 남들 이목 끌기에 좋은 자극적인 무언가. 잠시 말문 막힌 것처럼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차마 말이 나오질 않았다. 온 몸의 체온이 머리로 몰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속에서 뭔가 부글거리는 느낌이. 토해낼 수도 없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 아. 그래.
"너."
부르는 목소리가 대번에 바뀌었다. 이 악문 듯 웅얼거림처럼 들려오는 낮은 소리, 평소에 깔려 있던 희미한 부드러움조차 없고 어쩐지 차갑다. 이어지는 행동, 책상 위에 펼쳐 뒀던 참고서 탁 소리 나도록 덮어 두고. 의자 밀고 일어선다. 드르륵, 어쩌면 위협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방송 분량이 중요하다는 말이 들려오자마자 바로 몰아넣듯 밀쳐진다. 체격의 차이는 생각 이상이었고, 유소민은 힘없이 바로 밀려져 나갔다. 어디로? 침대 있는 벽으로. 하필이면 카메라가 있는 사각지대 가까이다. 오......벌써부터 시청자들의 환호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남현우 학생......... "
다소 놀란 듯 눈을 크게 띄우며 올려다보는 유소민이, 작게 남현우를 향해 이렇게 물으려 하였다.
어설프게? 평소의 남현우였다면 이 쯤에서 머쓱한 얼굴로 얼굴 붉히며 물러났겠지만, 지금은 되려 불에 기름 붙는 꼴 되었다. 허? 뭐라고? 어처구니 없는 코웃음과 함께 얼굴에 떠오르는 것은 비틀린 조소다. 발걸음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두 걸음, 이제 그대로 밀기만 하면 침대 위로 툭 넘어질 수 있는 거리.
"그래. 네 말마따나 난 어설프지."
미간에 간 금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다. 소민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민다. 손길에 분노 조금 묻어 있으나 다행히 난폭하지는 않다. 아마 중심 잃어 넘어지거나 했다면 자세 낮춘 채 시트 위에 두 팔 짚어 무게 지탱하고. 겉에서 보기엔 제법 훌륭?히? 덮쳐드는 모양새가 되었다. 카메라 흘끔 쳐다보더니.
"그러니 어설프지 않은 네가 알려주면 되겠네. 뽑아야 하잖아? 분량."
응? 비릿한 웃음과 함께. 이 자식, 아무래도 공부 스트레스로 드디어 어딘가 돌아버린 게 분명하다...
시간이 드리운 그늘 속에 서로의 자국을 숨겨놓고, 현재의 가면을 쓰고 괜찮다는 듯이 서로가 서로의 웃는 얼굴을 그린다. 쉽지 않다. 웃는 얼굴을 만들라치면 서로의 모양으로 남은 자국이 짚인다. 서로가 서로에게 남긴 자국이 웃음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므로, 자국을 짚다가 자칫 가시에 찔릴까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방금 어떤 자국을 짚으면서 얼굴에 떠올린 웃음은... 만든 웃음이 아니었다. 호랑은 부러 뚱한 표정으로 그걸 보다가, 못 이기겠다는 듯 키득키득 웃어버렸다. 그래, 얼버무렸다. 안 그러면 뭔가 사고를 칠 것만 같았으므로.
당신이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는 동안, 호랑은 자신의 핸드폰을 만져보며 동영상을 찾았고, 당신이 주문을 마쳤을 때쯤에는 호랑 역시도 괜찮은 예시를 여럿 찾아 화면에 띄워둔 뒤였다. 쇼츠의 짧은 노래가 흘러간다. You know, 내 스타일이 아닌 음악을 들어도 You know,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도 우산 없이 비가 와 홀딱 다 젖어도 좋아...
촬영은 언제가 좋을까, 하는 당신의 중얼거림에 호랑은 손가락 두 개를 들어보였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하나는 시간도 넉넉하겠다 저녁에 하기. 다른 하나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배달 오기 전에 해치우기."
배달 오기 전에 해치우기-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당신의 타고난 소질이나 호랑의 운동신경을 이야기할 것도 없이, 퍽 간단한 챌린지였으니. 식사 오기 전에 해치워도 좋고, 주말에 해치워도 좋겠다. 모르는 척 요즘 노래에 몸을 맡기고, 희극 한 장면을 가져가기로 하자. 어쩌면, 두 사람이 같이 나눠 들었던 노래를 다시 나눠들을 때가 돌아올지도 모르니.
그건... 확실히 정신이 들게 만들긴 하겠군요... ^^* 아 어쩌지 넘 고민되는데???? 아??? 이것도 저것도 넘 좋은데?????? 근데 냅다 키갈이라니 진짜 소민이는.. 상여자군아......(oO 하.. 우짜지... 전 진짜 어느 쪽도 다 좋아서 모든 것을 캡틴께 맡깁니다 ....
>>411 서서히 가까워 지는 거리. 이내 그대로 밀쳐져 뒤로 나자빠진다. 이 정도 거리에서 밀쳐진다는 것은 그대로 뒤로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란 소리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유소민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남현우의 모습을 보고 유소민은 웃었다. 깔깔거리며 웃었다. 왜 웃었냐고?
그냥……..연애 프로그램 PD보고 뭘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 하는 것이 우스워서?
“하하! 먼저 말한 것은 남현우 학생이에요. “ “그러니….. 후회 말고. “ 내게 모든 걸 맡기도록 하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냅다 옷깃을 잡고 고개를 들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언제 겹쳐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지금 감히 숨을 겹치려 시도하는 것은 유소민. 숨은 과연 닿았을까, 서로가 서로를 삼켰을까?
사실은 진심으로 어떻게 해 볼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냥 시청자들 볼 거리 좀 던져 주고, 눈 앞의 녀석 좀 위축되어 오늘은 가만히 공부할 시간만 만들 수 있으면 그걸로 되었는데. 깔깔거리는 웃음과 영문 알 수 없는 말, 당겨지는 옷깃, 그리고,
... ...... ..
다 부서진 조각같은 찰나. 이전에 남의 숨을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느껴 본 적이 있었던가? 전혀 그럴 리 없지. 아무리 재미 없는 공부벌레 인생을 살았어도 후에 언젠가 만나게 될 소중한 사람과의 첫키스에 대한 환상 즈음은 머릿속에 있는 법이다.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분위기 있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서, 그런데,
끊어진 선이 다시 연결됐을 땐 이미 얼굴이 마구 들끓어올라 시뻘겋게 변한 다음이었다. 얇은 피부 떨어져 나간 부분에 아직도 감각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지?
미친.
소민의 위에서 내려와 후다닥 곁으로 물러났다. 손등으로 입술 훔쳐낸다. ...눈 마주칠 자신이 없다.
>>472 후다닥 곁으로 물러나는 남현우와 달리 유소민의 낯빛은 의연하기만 하다. 별 거 아니라는 듯 입술을 닦아내려 하는 것은 덤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글쎄.....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볍게 핸드폰을 들어 유소민은 지금의 제 모습만 카메라에 담아 셀카를 찍으려 하였다. 붉게 칠한 틴트가 보기 좋게 번졌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남현우를 바라보며, 유소민은 히죽 웃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먼저 도발한 건 남현우 학생이에요~? "
그리고 다시금 이어지는 깔깔 웃음. 무엇부터 말하려고 했더라? 아.....방송 분량?
"으음, 오늘 방송 분량은~? 잘 모르겠네~? 어디서 우와아아 하는 소리 안들리나~? "
바깥에 귀를 들이대듯 손짓하며 유소민은 피식 입꼬리만 올렸다. 물론 실제로 들리지는 않았고 단순 시늉이다. 이내 남현우를 향해 이어지는 한마디.
>>488 역시 말랑함 담당. 맨아래 골랐으면 드렁큰타이거 or 오토바이호랑이 둘 중 하나일 수도 있었는데 피해가는군 아마 적당히 시내? 아니면 대형 마트? 아니면 카페? 지나주가 원하는 건물에 세워둬도 좋다 지나가 우산을 갖고 있어도 좋고 마찬가지 비피해 도망왔다 만난 게 호랑이여도 좋지
언제부터 이렇게 빗소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빗소리를 좋아한다고 했지 비를 좋아한다고는 한 적 없다. 이런 식으로까지 흠뻑 즐기고 싶진 않았다. 하늘이 말갛길래 저녁 반찬 장 보려고 크록스 끌고 떨레떨레 나왔다가 갑자기 우르르 쏟아지는 봄비에 처마 밑에 오도가도못하고 갇혀서 빗소리를 실컷 즐기고 싶지는 않았다...! 유유히 장 보고 돌아와서 쾌적한 기숙사 주방에서 야채 손질하면서 듣는 빗소리가 좋은 거지 이런 빗소리는 싫다!
그래, 호랑이 차라리 빈손이라면 그냥 쿨하게 봄비 샤워를 즐기며 유유히 기숙사로 걸어갔을지 모르겠으나, 문제는 지금 호랑의 품에 먹을거리로 가득 찬 종이가방이 들려있다는 거다. 밀봉되어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냥 봉지에 담긴 채소들도 있었고, 종이 한 장에 싸인 바게트도 있었다.
도움을 청하자니 딱히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다. 눈 딱 감고 룸메이트인 선아를 부르면 될지 모르나, 선아가 스케줄이 있다고 나갔기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 그 끝에, 지금 정호랑은 쏟아지는 비 아래에서 처마 하나에 의지해 된통 갇혀버린 꼴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타난 것이, 우산을 쓰고 나타난 병아리콩...... 아니, 절친한 소꿉친구이자 누나인 지나였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이런데서 다보네, 우리 숏다ㄹ... 아니, 병아리콩 어서오고."
이 자식 그럴 거면 2인칭을 왜 굳이 고치는 거냐.
"저녁은 여기 있는데(그는 종이가방을 흔들어보였다) 우산이 없네. 그 짧은 사이에 쏟아질 줄은 몰랐지."
호랑의 품 안에는 먹거리로 가득한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우르르 내리는 비와 종이봉투. 확실히 환경에는 종이봉투가 좋지만 이대로 빗속을 달렸다간 종이 봉투가 다 젖어 찢어지는 바람에 내용물이...... 끔찍한 상상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확실히 요리라곤 관심 없어보이는 이모ㅡ호랑의 어머니ㅡ라던가 닭가슴살을 냉장고에 잔뜩 채워넣기를 좋아하는 아저씨ㅡ호랑의 아버지ㅡ를 생각하면 호랑은 어디서 온 흥미인 건지 요리를 퍽 잘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우리 엄마가 요리를 잘하는 것과 자신의 요리 실력은 상관이 없던데. 혹시 내가 받아야 할 엄마의 요리실력을 정호랑이 뺏어간 건 아닐까? 그건 마치 호랑네 집에 자주 간 반찬 배달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랑의 환영 인사가 무척 건방지다. 얘는 내가 누나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일부러 흐린 눈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병아리콩이라고 고친 것에 부루퉁한 얼굴을 하는 정도로 끝낸다.
“우산은 여기 하나 있으니까 씌워줄게. 가는 길은 같을 테니까. 음, 우산을 네가 들고 내가 종이가방을 드는 게 좋겠지?”
지나는 우산을 주고 자신이 종이가방을 들려고 했다. 갈 준비가 끝났으면 같이 걸음을 옮기려고 했을 것이었고.
“오늘 저녁은 뭐야? 선아랑 같이 먹어?”
처음에 호랑이 선아와 같은 페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나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다. 변화는 항상 파장을 불러오는 법이니까.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 조금은 안정되었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 다시 부딪혔을 때 올 충격이 과연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지난 방송 영상을 봤을 때 그리 나쁘진 않아 보였다. 그래서 조금은 수월하게 선아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물론 호랑이 속앓이를 하고 있을 것은 뻔히 보였지만.
/내 마음대로 적폐가 섞였는데 혹시 아니라면 꼭 이야기해달라...... 전에 호랑마마랑 호랑파파 썰 듣고 한 생각인데(흠) 아니면 호랑파파가 음식에 조예가 있는 걸까?(흠티콘)
지나의 기억은 정확하다. 호랑의 어머니인 천진영은 음악적 능력을 대가로 그 외 모든 능력이 바닥난 글러먹은 어른으로, 지나에게 흔히 하는 입버릇이 '나같은 어른은 되지 마라'인 사람이다. 그 대신 호랑의 아버지가 요리실력이 있긴 하나, 모든 식단을 몹시 건강하게 짜는 사람이라 호랑이 종종 보여주곤 하는 그나잇대 고등학생치곤 제법인 요리실력의 출처라고 하기엔 어렵다.
호랑의 요리실력에 지나의 어머니의 반찬이 한몫 했을 거라는 지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외에도 출처가 2군데 더 있었는데, 헬스 센터를 운영하면서 태릉선수촌의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는 바쁜 아버지가 밥을 차려주지 못할 때면 어머니가 이런저런 식당에를 데려가는 일이 잦았고, 종종 할머니가 오셔서는 맛있는 거 먹고 자라야 할 애한테 밥상이 너무 삭막한 거 아니냐고 아버지의 등짝을 때리며 밥을 차려주시는 일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랑은 건강한 식단과 맛있는 식단 양쪽을 다 접하며 자랐다- 아무튼, 먹을 거 때문에 사람이 비뚤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타고난 성격이 짓궂을 뿐. 지나의 부루퉁한 얼굴에 호랑은 낄낄대며 어깨를 툭툭 쳐줬다.
"에이, 우산 얻어쓰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누나한테 짐까지 들려줄 수야 있나."
지금 상황에서 제가 을이라는 걸 아는지 은근슬쩍 호칭을 누나라고 바꾸는 것도 킹받는다. 호랑은 종이가방을 품에 안은 채로, 지나의 손에서 우산을 받아들었다.
"글쎄다, 선아가 언제 올지 몰라서? 좀 해놓게."
지나가 선아를 언급했을 때, 지나는 순간적으로 호랑의 얼굴에 스쳐지나가는 착잡한 기색을 볼 수 있었다. 저번 영상에서 지나가 보았던 것들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지, 지나가 걱정할 필요가 있는 새로운 어떤 고민거리가 엿보이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오랜 고민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흉터로 남아있는 것은 분명했다.
"미트볼 넣은 에그 인 헬을 좀 해놓을까 싶걸랑. 그렇지, 재료도 충분한데 우리 강낭콩은 저녁 드셨어?"
호랑이 지나의 어깨를 툭툭 치자 지나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호랑의 키가 너무나 컸다. 분명히 어릴 적엔 키가 비슷한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호랑이 키가 쑥쑥 크기 시작하더니 거의 두 배나 차이나기 시작했다ㅡ그 정도는 아니다ㅡ. 왠지 분해진다.
“이럴 때만 누나라고 하지.”
지나가 샐쭉하게 호랑을 흘긴다. 물론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서 익숙할 지경이다. 호랑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때야 말로 긴장해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호랑이 우산을 들자 두 사람은 빗속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선아 어디 나갔구나. 선아는 좋겠네. 무료로 요리사 한 명 고용한 셈이니까ㅡ.”
지나의 눈에는 순식간에 지나간 호랑의 착잡한 표정을 캐치할 수 있었다. 그야 꽤나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으니 말이다. 지나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호랑이 선아와 헤어진 것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호랑은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런 자격이라는 게 어떤 걸 말하는 것이냔 말이다.
“떡볶이 먹긴 했는데...... 그거 맛있겠다.”
지나는 침을 꼴깍 삼킨다. 미트볼 넣은 에그 인 헬이라니... 그거 엄청 맛있는데. 물론 강낭콩이라는 말이 지나간 것 같은데 슬쩍 무시한다.
“그나저나 좀 어때? 선아랑 지내는 거.”
이왕 이렇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 겸 지나는 가타부타 말 없이 벌써 본론을 꺼내든다. 찰박찰박 걸음을 옮기면서 호랑의 표정을 살핀다.
체중으로 따지면 두 배가 넘긴 한다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호랑이 이렇게 자라나면서 변한 것도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호랑이 지나를 아주 가까이, 일종의 손윗누이쯤으로 여기고 있는 점이라던가, 그래서 친근감 표현도 자주 한다던가. 지나에게는, 지나의 키를 갖고 장난스런 별명을 붙이는 건 좀 변했으면 싶겠지만. 이럴 때만 누나라고 부르냐는 지나의 타박에 호랑은 넉살을 부린다.
"아 이럴 때 안 부르면 언제 불러."
하고 얄궂게 받아넘기고는, 이어지는 지나의 말엔 이렇게 대답한다.
"어휴, 걔 스케줄이 얼마나 빡센데 밥이라도 맛있는 거 먹어야지."
사람을 단련시키는 데 달인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호랑이 갖게 된 생각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고된 일정을 마친 사람에겐 건강한 식사보다 맛있는 식사가 더 도움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호랑이 다음 마디를 덧붙일 때는,
"해줄 수 있는 게 그런 것들뿐이기도 하고..."
문득, 먹구름의 그림자에 우산 그림자까지 겹친 어둑한 그림자 속에 있는 얼굴이 더 어둑해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 들려온 그거 맛있겠다 하는 지나의 말에 호랑은 고개를 돌린다. 마침 옆의 가게의 조명이 호랑의 얼굴에 비쳐, 호랑의 얼굴은 평소와 같은 능청스러운 웃음을 건 느긋한 얼굴로 돌아왔다.
"맛이나 좀 보셔. 바게트 썰어다가 얹어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하며 호랑은 넉살좋게 품안에 안은 식료품 봉투를 흔들어보였다. 그러다 지나가 선아 이야기를 꺼내자, 호랑은 윽, 하고 정곡을 찔린 것 같은 표정이 됐다.
"어, 뭐..."
다른 사람이 물어봤더라면, 호랑은 대충 둘러대는 말을 했을 것이다. 괜찮아. 잘 지내고 있어. 생각보다 아무 일도 없이 무난해. 우리는 괜찮고,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아... 그러나 상대는 지나였다. 호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없이 무난해."
그래, 앞서 말했듯 이것은 둘러대는 말의 예시로 쓰였다. 그러나 앞과 뒤에 괜찮아, 라는 말이 붙지 않았기에, 이것은 지나에게 털어놓는 솔직한 고민이 되었다.
그렇게 세나와 파트너가 된지 며칠이 지나고 해인은 학교의 가정 실습실을 빌려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머무는 방에는 안전상의 이유로 부엌이 없고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같은 것들만 배치가 되어있었기에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위해선 이렇게 가정 실습실에 방문을 해야했다. 해인이 만들고 있는 것은 도시락. 한쪽에는 장을 봐왔는지 봉투가 놓여있었고 해인은 거기서 재료들을 꺼내 손질하며 차근차근 요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 너무 많이 만들 필요는 없겠지. "
그가 만든 것은 유부초밥과 베이컨 말이 정도였지만 말이다. 딱히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은 아니라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라 그도 금방 요리를 끝내고 뒷정리까지 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전부 다 싸고 나니 딱 적당한 시간이라 해인은 방으로 돌아가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세나와 벚꽃 구경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 흠 ... "
평소엔 잘 안입는 착장을 입은채 거울 앞에서 둘러보던 해인은 마지막으로 머리까지 스프레이로 살짝 정리하고선 방을 나섰다. 대체로 교복을 선호하기에 사복을 입을 일이 잘 없는 해인은 오늘만큼은 오버핏 셔츠에 후드티를 매치하고 검은색 와이드 팬츠를 입고 있었다. 아무래도 데이트라는 명목이 있다보니 옷장에서 오랜만에 꺼낸듯했다.
지나가 빽 소리를 지르면서 주먹으로 호랑의 복부를 쳤다. 물론 격투기를 한 놈에게 지나의 주먹 정도는 솜방망이처럼 느껴졌겠지만. 지나의 주먹질은 늘 호랑에게만 향한다는 건 그만큼 친근하다는 뜻이다. 아마도...
“응. 선아는 늘 바빠 보이더라.”
호랑과 선아가 사귀기 전에 둘이 어떠한 썸띵이 있다는 사실도 알기 전에 지나는 선아와 이미 알고 지내는 사이었다. 예쁘고 친근한 후배. 그건 확실히 귀했다. 거기에다 노래도 연기도 잘하는 대단한 후배. 무대 보러 갔었을 때 얼마나 잘 하던지 반짝반짝해 보였다. 그만큼의 실력을 가지려면 그만큼 노력했겠지. 그런 것이 눈에 보였다.
언뜻 지나간 호랑의 그늘 진 얼굴을 보며 지나는 호랑과 헤어진 후의 선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파도 아픈 티 안내려고 하는 그늘진 얼굴. 지나는 선아와 호랑이 이런 점은 닮았다고 생각했다. 쓸데 없이 이런 점만 닮아가지고는. 지나는 중간에서 답답해 죽을 맛이다.
“...그럴까?”
바게트에 올린 에그 인 헬....... 순식간에 꿈뻑 넘어간다. 지나는 먹을 거에 약하다. 호랑도 그걸 잘 알고 있고.
지나는 정곡을 찔린 호랑의 모습과 한숨을 내쉬며 솔직하게 털어놓는 호랑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다. 지나는 호랑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안다. 당시 호랑이 얼마나 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지. 그래서 술을 입에 대며 비행했던 것도 안다. 하지만 선아는 모른다. 이유 모를 일방적인 이별 통보는 선아에게 큰 상처를 남겼을 것이었다. 선아는 감추려 했으나 지나는 선아의 상처를 엿봤다. 그래서 지나는 안다. 하지만 호랑은 모른다.
“음... 뺨 한대로 퉁치기에는 네가 더 잘못했지.”
지나의 생각은 그렇다. 호랑은 선아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대신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이야기 했어야 했다. 아니, 이별을 통보하더라도 상황 설명을 해줬어야 했다. 선아는 이별 통보를 받았음에도 호랑을 걱정했다. 뺨을 때릴 수 있을리가 없다. 선아는 호랑을 나쁜 놈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지나는 선아만 생각하면 호랑이 나쁜 놈 같았다.
“그래서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그렇게 무난한 척 지나갈 거야? 너 아직 선아 좋아하잖아.”
지나는 솔직하게 숨김 없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물론 그것이 호랑에게는 스트레이트 펀치 같았겠지만.
데이트라는 명복으로 말이 나오긴 했지만, 결국 오랜만에 놀러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세나는 생각했다. 물론 방송을 보는 이들의 눈에는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시선까지 모두 즐기는 것이 바로 이 방송의 취지 아니겠는가. 말도 안되는 오해나, 상대를 상처주는 그런 것이 아니면 자유롭게 상상하게 해도 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바로 전 날. 자신의 소속사 식당으로 향한 그녀는 그곳의 조리기구를 사용했다. 그래도 벚꽃을 보러 가는데 도시락 하나 없어서야 말이 안되지 않겠는가. 한번 정도는 제대로 만들어주고 싶기도 했고. 식재료는 모두 자신이 구입했으니 소속사 입장에서도 금전적으로 크게 나가는 것은 없었다. 휘파람을 불며 이것저것을 만들어보니 도시락 크기가 3칸이었다. 어머. 생각보다 많이 만들어졌네. 뭐 어때. 싱긋 웃으면서 그녀는 분홍색 사각형 3층 도시락통을 챙긴 후에 방으로 돌아와 바로 냉장고 안에 집어넣었다. 같이 사용하는 냉장고니 내용물이 들킬 위험이 있긴 했으나 해인이라면 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어쨌건 아침 이른 시간. 그녀는 샤워를 마친 후,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뭘 입을까 고민을 하다 최근에 산 분홍색 봄 셔츠를 입은 후, 길이가 짧은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당연히 속바지 또한 잊지 않았다. 그리고 검은색 스타킹을 신으며 나름대로 산뜻하면서도 귀여운 봄 스타일을 완성했다. 방에 있는 전신거울을 바라보며 가볍게 뱅그르 돈 후, 뒤로 묶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번 더 가다듬고, 앞머리카락을 빗으로 정리한 후에야 그녀는 방 밖으로 나왔고 어제 냉장고에 넣어둔 도시락을 하얀색 손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저도 준비 다 했어요!"
해맑게 배시시 웃으면서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해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무런 말 없이 빤히 바라보던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오른쪽 눈을 살며시 감아 윙크를 보냈다.
"뭐예요? 엄청 꾸미신 것 같은데? 예전에 저랑 공연할 때보다 더. 데이트라고 힘 팍팍 주신 거예요? 후훗."
세나의 옷차림을 보고 해인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교복 차림보다 더 분위기가 사는게 아이돌은 아이돌이다 싶었다. 엄격한 체중관리를 하고 있으니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겠지만 세나는 특히나 더한 느낌이었다. 놀리듯이 얘기하는 세나의 말에 해인은 흐음,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시선을 맞췄다.
" 잘 보이고 싶은 법이니까. "
일부러 애매한 말만 하는 것인지 해인은 그렇게 얘기하고선 한쪽 어깨에 걸치고 있던 백팩을 양 어깨에 제대로 맸다. 이젠 출발할 일만 남았고 ... 벚꽃을 보기 좋은 곳은 마침 근처에 있었기에 멀리 갈 일도 없었다. 다만 짐이 좀 있으니 버스보단 택시로 이동하는게 나을 것 같아 미리 핸드폰으로 택시를 호출한 해인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 가방, 내가 들어줄께. "
평소보다 좀 더 말이 없어진건 아무래도 아침 일찍 일어난게 원인인듯 싶었다. 물론 피곤한 기색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말 자체가 적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니까 말이다. 택시는 금방 도착할 위치에 있었기에 미리 내려가있겠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고 나선 해인은 말했다.
흐응. 그렇게 나오시겠다? 잘 보이고 싶은 법이라는 해인의 말에 세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입을 살며시 가리면서 작게 소리없이 웃었다. 자.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가만히 해인을 올려다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렇죠? 시청자들에게 멋진 모습 보이고 싶잖아요. 그래야 이거 끝났을 때 해인이 오빠 인기도 올라가죠. 그런데... 오빠. 그거 알아요?"
이어 그녀는 가만히 자신의 전신을 보여주려는 듯, 아주 가볍고 유연하게 오른쪽 발을 축 삼아 뱅그르르 돌고 천천히 멈췄다. 그리고 오른쪽 눈을 살며시 감아 다시 윙크를 보내면서 이야기했다.
"전 시청자는 잘 모르겠고 오빠에게만 예쁘게 보이면 그만인데. 후훗."
그 순간의 표정은 살짝 진지한 느낌이었지만, 과연 그게 진심인지. 아니면 방송용 서비스인진 아무도 알 길이 없었다. 어쩌면 나름대로 경험을 쌓기 위해서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진실은 오직 제 가슴 속에 품어두면서 그녀는 해인이 손을 내밀자 고개를 갸웃했다. 손 잡자는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가방을 내밀었다.
"든 것은 별로 없긴 한데... 그래도 너무 무거우면 얘기하세요. 아. 가방 안의 내용물은 함부로 보면 안되는 거 알죠? 손가방 안에는 여성의 비밀이 가득 들어있거든요. 그 너머는 함부로 엿보면 안돼요."
설사 그게 여자친구라도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가볍게 웃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해인의 뒤를 따랐다.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갈지는 정했어요? 벚꽃 명소가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사람이 많아도 되니까 제일 화려한 곳에 가보고 싶어요. 역시 벚꽃놀이를 한다고 하면 가장 화려한 곳이 좋잖아요?"
친구인지 웬수인지 모를 이 철딱서니없는 왕덩치에게 지나가 이런 물리적 응징을 가할 때면 늘 그래왔듯이, 호랑은 과장된 비명과 함께 우찔근 하고 몸을 움츠리며 지나의 응징을 찰지게 접수했다. 그러면서도 우산은 흔들림없이 그 위치에 있는 것도 용한 재주다.
"저녁을 떡볶이로 때워서 쓰나. 식사다운 걸로 먹어야지."
이렇게 거침없는 지나와의 관계와는 반대로, 호랑은 선아 이야기만 나오면 조심스러워졌다. 소중함- 물론 지나 역시도 소중한 존재였지만, 지나에게 표현하는 소중함과 선아에게 표현하는 소중함은 그 궤가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가 세번째 포지션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지나를 갑갑하게 만든다.
"그렇고말고."
자신의 잘못이라는 지나의 지적에, 호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싸다- 이것은 지나와 호랑이, 선아에게 호랑이 했던 일에 대해 갖고 있는 공통적인 견해였다. 아무렴, 나쁜 놈이다. 선아에게 자신은 더 이상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것 같다, 너와 함께 행복하기엔 너무 모자란 사람인 것 같다-는 그 설명은 선아에게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설명이었으니.
그러나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호랑의 견해와 지나의 견해는 그 궤가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는 호랑에게, 지금까지 맞아본 그 어떤 펀치보다도 선명하고 통렬한 펀치가 되어 호랑의 정신적 안면에 직격했다.
"──아."
호랑의 발이 덜컥 접질린다. 그러나 넘어지지는 않고, 호랑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했다. 우산이 흔들려 빗물이 여기저기 튄다. 호랑은 흔들린 우산을 황급히 지나의 머리 위로 다시 기울여주면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네."
머리를 벅벅 긁고 싶었지만, 한 손에는 우산이 들려있고 한 손에는 종이가방이 안겨있다. 호랑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나의 보폭을 맞춰 나란히 걸어가면서 가만히 침묵하며, 저만치 보이는 기숙사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툭, 하고, 쓴웃음과 함께 한 마디를 내려놓는 것뿐이다.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거네, 주제도 모르고..."
...애써 무시하고 있었는데.
"난..." 한숨.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아. 나같은 게 어떻게 선아 옆에 서있겠냐고."
그래놓고서는, 뻔뻔하게 다음 주차의 페어를 새로 매칭하느냐 기존 페어를 유지하느냐의 여부를 묻는 용지에, 유지 쪽을 체크해서 제출해버리고 말았지. 그저 미련이라고 딱지를 붙여놓고 있었다. 그 정도로 끝났으면 했으니까, 서로 추억 한 번 되짚어보고, 갈 길을 갈 준비를 마칠 시간이 필요하다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핑계를 댔으니까. 미련이라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게... 좀 많이 클 뿐이다.
"아 나, 술 말리네."
호랑은 부러 웃는 얼굴을 지으며 허장성세를 놓았다. ...허세라 하기도 그런 게 한 팔할 정도 진심이지만.
분명 호랑이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픈 척 한다는 걸 지나는 알기에 과장된 몸짓에도 흥 하고 넘어간다. 확실히 안 아파도 아픈 척 해주는 게 괜히 기분에는 좋다. 그걸 아니까 호랑도 매번 그렇게 구는 것이겠지만.
“하긴, 그렇지?”
히히. 오랜만에 호랑이 요리 먹을 생각에 신나는 마음이 든다.
지나는 제 말에 호랑이 갑자기 덜컥 넘어지려고 해서 덩달아 놀라 걸음을 멈췄다. 우산이 흔들렸으나 호랑은 금방 균형을 잡았다. 지나는 호랑을 올려다봤다. 빗물이 우산을 두드린다. 호랑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이다. 얼씨구? 지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다시 걸음이 옮겨지고 지나는 호랑에게 감정을 갈무리할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말은 정말 답답한 말 뿐이다.
“그럼 다른 사람은 선아 옆에 서도 되고? 너 그거 보고만 있을 수 있어?”
흐응, 소리를 내며 지나는 호랑을 쳐다봤다. 발걸음은 찰박찰박 젖은 땅을 밟는다. 바보 호랑. 바보.
“야! 내가 술 마시지 말랬지!”
지나가 이번에는 진심 펀치로 호랑의 옆구리를 가격하려 했다. “너 진짜 아저씨한테 말한다? 그 이후로 또 마셨던 거 아냐? 아니, 도대체 술은 어디서 나는 건데. 어느 편의점이야. 내가 찔러버릴까보다!” 하는 잔소리는 덤이다. 지나는 양 허리에 손을 올리고 호랑을 내려다보듯ㅡ물론 올려다보는 자세지만ㅡ 쳐다봤다.
“넌 언제 철 들래? 진짜 선아를 위한다면 확실하게 해. 애매모호한 태도로 더 상처줄 생각하지 말고. 끊어낼 거면 확실히 끊어내던가, 다가갈 거면 확실히 다가가던가.”
세나의 윙크에 해인은 잠시 움찔했지만 금방 평정심을 찾고선 아까처럼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해인도 어쨌거나 관중들의 시선엔 무척이나 익숙했으니 이런 상황에서도 당황한 기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세나만 들을 수 있을법한 목소리-물론 시청자들에게도 들리겠지만-로 작게 속삭여주었다.
" 그럼 오늘은 나만 봐. "
그런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해인은 세나의 가방을 받아들면서 당연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택시를 타러 향하던중 들려온 세나의 질문에 해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 강가에 벚꽃이 잔뜩 피어있는 곳이 있어. 호수공원 같은 느낌? 가로수가 다 벚꽃이라 엄청 예뻐. "
물론 그만큼이나 사람이 많긴 했지만 세나가 원하는 곳이 화려한 곳이라 그곳을 말한 것이었다. 만약 사람 적은 곳을 원했다면 물론 그런 곳도 준비는 해두었다. 언제나 여러가지 계획을 세워두는 것이 해인의 장점이었으니까 말이다. 금방 택시가 도착하고 세나를 먼저 태운뒤 뒤따라 탑승한 해인은 목적지를 말하고선 살짝 눈을 감았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세나를 다시금 바라보면서 말했다.
" 사람 많은 곳 괜찮겠어? "
연습생이라지만 아이돌은 아이돌이니 노출을 꽤 줄여야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자신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한 일이라는 것을 해인도 잘 알고 있긴 했지만 괜시리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거리가 좀 있는지 택시는 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해인은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세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신에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크게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다. 지금 발언은 방송에서는 아예 안 들리는 대사 아닌가?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대사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나만 들으라고 한 소리야? 어? 어? 어버버하는 모습을 보이던 세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장차 아이돌이 될 나. 이 정도로 표정에 티를 내면 안돼.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세나는 애써 호흡을 정리했다.
"호수 공원이요? 아.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저 거기 좋아해요! 센스 좋으시네요. 오빠."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그녀는 도착한 택시에 탔다. 자신을 먼저 태운 해인을 바라보며 세나는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작게 웃었다. 이렇게 섬세하게 챙기는 부분은 여전하구나. 물론 자신의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소속사에서 본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오랜 기간은 아니었고, 한번씩이었으니까. 물론 공연을 같이 했을 때는 뭔가 이것저것 챙겨주는 느낌이 분명히 있긴 했지만. 괜히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서 콧노래를 부르던 세나는 해인의 물음에 바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정식 아이돌이 아니라 연습생이니까요. 연습생의 얼굴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걸요. 데뷔한다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요. 후훗. 걱정해주는 거예요?"
대답을 마치며 세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했다. 괜히 고개를 흔들어서 자신의 뒷머리카락을 살살 흔들어서 위치를 조절하기도 하고. 핸드폰을 꺼내서 셀카 모드로 돌린 후, 자신의 얼굴을 다시 체크하기도 했다. 화장..예쁘게 잘 된 것 같네. 그렇게 뿌듯하게 느끼며 그녀는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화려한 분홍빛이 가득했다. 가로수만이 아니라 다른 나무들도 모두 분홍빛으로 물들어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세나는 절로 두 눈을 반짝였다. 예쁘다! 예뻐! 절로 감탄하며 그녀는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여기도 벚꽃. 저기도 벚꽃. 좀 더 안쪽에선 벚꽃잎이 춤을 추듯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와중, 해인의 손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기꺼이요. 나중에 열애설 생겨서 곤란하다고 저에게 말하기 없기에요."
먼저 내민 것은 오빠잖아.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세나는 해인의 손을 잡았다. 자연히 자신보다 커다란 손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손과 손을 엮어보려고 하면서 그녀는 앞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제가 오빠 팬들에게 이런저런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요. 후훗. 뭐, 상관없긴 하지만요!"
아무래도 SNS 같은 매체가 발달하는데다 일반인 중에서도 예쁜 사람들은 곧잘 유명해지는 시대이기도 하니 그런 일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세나 정도면 최상위권 미모니까 데뷔를 하면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에도 눈에만 띄면 엄청 유명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벚꽃놀이 구경은 대중들에게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기도 했고.
" 그 상대가 세나라면 영광이죠. "
아침의 피로가 조금 풀렸는지 아까보단 좀 더 말이 많아진 해인은 자신의 손을 잡은 세나를 슬쩍 보고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인과 세나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선남선녀가 그렇게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으면 시선이 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해인은 그런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높이 들어 셀카 모드로 바꾸며 말했다.
"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이나 같이 찍어야지. "
앵글이 한정적이라 조금 붙어야할듯 싶어 해인은 자연스럽게 세나와 밀착할 수 밖에 없었다. 손을 어떻게할까 고민하던 해인은 마땅히 자연스럽게 놓을만한 곳이 없자 결국 어깨를 살짝 끌어안으려하며 말했다.
손을 잡고 걸어가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것을 그녀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허나 세나에게 있어서 이런 시선이 오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대에 올라가본 경험도 있으며 ㅡ물론 메인은 아니지만ㅡ 아이돌로 이름을 알리기로 한 이상... 무엇보다 내년에 데뷔를 앞두고 있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긴장하거나 부끄럽다고 느낄 생각 따윈 그녀에게 없었다. 데뷔한 후에 무대에 올라간 직후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 떨리고 긴장된다고 할 순 없지 않겠는가. 이 또한 그녀에게 있어선 경험이었다.
"인지도를 생각해보면 그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제가 아닐까 싶지만요. 후훗."
애초에 자신은 연습생에 지나지 않고 상대는 이미 천재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존재였다. 그런 이와 열애설이 난다고 한다면 일단 당황스럽고 곤란하고 난감한 감정을 전부 지운다고 했을 때, 영광스러운 것은 자신 쪽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나 역시 조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여러모로 이런저런 구설수가 있었던 것을 그녀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벚꽃잎이 살랑살랑 떨어지는 가운데, 그녀가 핸드폰을 셀카모드로 바꾸는 것이 보였다. 사진을 찍자는 것에는 그녀 역시 동의했다. 밀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동의했다. 설사 셀카봉을 쓴다고 하더라도 핸드폰의 앵글과 화면은 한정적이었으니까. 조금 더 크고 전문적인 카메라를 쓴다면 넓게 찍을 수 있겠지만, 핸드폰은 결국 핸드폰에 지나지 않았다.
제 어깨를 살짝 끌어안으면서 실례한다는 말을 하자 세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해인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듯이. 허나 이렇게 당하기만 하는 것도 조금 그렇잖아?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그녀는 살며시 몸을 옆으로 틀더니 그의 허리에 살며시 두 팔을 감았다. 그야말로 안는 자세. 그리고 그녀는 작게 웃으면서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이쪽이야말로요."
재밌네. 이 프로그램도.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환한 아이돌로서의 미소를 보였다. 물로 연습생이었지만.
물론 유명한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볼땐 그들 각각의 인지도, 그러니까 유명한 정도를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타인이 그들을 볼때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남녀 사이의 관계에선 인지도보단 서로의 매력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어느쪽이 상대방한테 더 빠져드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 매력이 더 중요한 법이지. 마치 세나처럼? "
이전에 구설수가 나왔을때도 해인은 자신보단 세나의 안위를 좀 더 걱정했었다. 지금도 있지만 그때도 극성팬들이 꽤나 있었으니까. 그래서 강경하게 대응하려고 했고 선도 딱 그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자신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하게 된 해인은 얼마 뒤부터 활동을 점차 줄이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 신문부에 보내면 좋아하겠네. "
세나가 허리를 자연스럽게 팔을 감아오자 해인은 몇장을 촬영해서 세나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 중에서도 세나가 잘 나온걸 고르라는 뜻이었다. 똑같은 자세로 찍었어도 분명 잘 나온게 있을테니까 말이다. 사진을 찍고나서 도시락을 먹을 장소가 있을까 고민하던 해인은 마침 비어있는 자리를 발견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나쁘지 않은 곳처럼 보이기도 하고.
" 저기 가서 도시락 먹을까. "
백팩에는 돗자리도 들어 있었고 어제 사둔 음료수가 얼음이 담긴 보온병과 함께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자리만 잡으면 일단 만사형통이라는 것. 마침 식사도 안한 참이라 도시락을 먹고 움직이는게 좋아보여 얘기를 꺼낸 것이기도 했다.
이 방송 보면서 오빠 옆에 서 있고 싶어하는 여자애들이 얼마나 많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세나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이 자리를 누군가에게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지금 이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차후 결과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고, 제 마음도 어떻게 흘러갈진 모르겠고 다른 사람과 함께 페어로 놀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그녀에게 있어서 상당히 즐거웠다. 그런만큼 딱히 그녀는 누군가에게 현재 이 자리를 양보해줄 생각은 없었다.
정 원한다면 신청서 써서 들어오라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그녀는 오른손을 아래로 내렸다.
"하지만 신문부에 안 보낼 거잖아요. 안 그래요?"
해인이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세나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예쁘게 잘 찍혔다. 뒤의 배경도 정말로 좋아.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몇 장을 손으로 콕콕 가리켰다. 그리고 해인에게 나중에 톡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참고로 오빠의 베스트 픽은 뭐에요?"
조금 궁금하다는 긋, 그렇게 물어본 이후, 세나는 해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락을 슬슬 먹는 것이 좋을테니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그녀는 살며시 그가 가리킨 장소로 향했다. 근처에 커다란 벚꽃나무도 있겠다. 구경을 하면서 먹기에는 딱 좋았다.
"어제 나름대로 신경써서 도시락을 준비했어요. 맛은 기대해도 좋아요. 후훗. 오늘 맛있다는 말 제대로 듣기 위해서 꽤 신경써서 준비했거든요. 조금 양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같이 먹으면 못 먹을 정도는 아닐 거예요."
자신의 가방에 있는 3단 도시락을 떠올리며 세나는 배시시 웃었다. 이어 자리에 도착한 그녀를 바라보며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냥 도시락만 먹으면 심심하잖아요. 우리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질문 하나씩 던져볼까요? 진 사람은 그게 무엇이건 솔직하게 답하기. 어때요?"
나름대로 이 방송을 보는 이들을 위한 서비스였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자신도 즐기고 싶었고.
세나가 골라둔 사진 이외의 사진은 지우려던 해인은 베스트픽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른 사진들도 곰곰히 보고 있다가 이내 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찍어둔 사진은 대부분 비슷한 구도이긴 했으나 해인이 그 중에서 세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 것처럼 보이게 머리에 손을 올려둔 것을 고른 것이었다.
" 난 이거. "
사진의 베스트픽까지 섞어서 세나의 톡으로 보내둔 해인은 보아두었던 자리로 가서 돗자리를 깔고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가방을 구석에 올려둔 뒤에 조심스럽게 위에 앉았다. 돗자리 특유의 부스럭거리는 느낌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또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라 나름 괜찮기도 했다. 그리고선 자신이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든 해인은 뚜껑을 열며 말했다.
" 나는 거창한건 아니고 유부초밥이랑 베이컨 말이 정도. "
아무래도 부엌의 한계가 있어서 그렇게 거창한건 만들기 힘들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무난한 것을 만들어온 것이었다. 거기에 어젯밤에 사둔 오렌지 주스와 얼음이 들어있는 보온병까지 꺼내 놓아둔 해인은 세나가 꺼낸 이야기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가위바위보는 자신 없으니까 ...
" 차라리 서로 번갈아가면서 질문하기는 어때? "
그게 좀 더 시청자들이 좋아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대신 먼저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세나에게 제안해보았다.
해인이 고른 사진을 바라보며 세나는 순수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밝게 웃었다. 이건 몰래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해둘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물론 핸드폰 바탕화면을 하나만 설정하란 법은 없으니, 오늘 받은 사진을 각각 다른 페이지의 바탕화면으로 설정해도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어 다음에도 사진 또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며 세나는 기분 좋게 눈웃음을 보냈다.
돗자리가 아래에 깔리자 세나는 세나대로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근처에 있는 돌을 주워온 후에 돗자리 꼭지점 부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가방과 합쳐진 무게감은 돗자리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줬고, 세나는 신발을 벗은 후에 조심스럽게 돗자리 위에 올라갔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을 받은 후, 그 안에서 3단 도시락 통을 꺼냈다.
"거창하지 않으면 어때요. 누군가를 위해서 만들어줬다는 사실이 여성에겐 감동으로 전해지는 거라고요. 후훗. 요즘도 요리는 여자만 해야 한다거나, 이런 자리에 오면 당연히 여자 쪽에서 도시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물론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말 끝을 흐리면서 그녀는 자신의 도시락 통을 열었다. 일단 3층에는 남자들이 좋아할법한 제육볶음, 문어 모양 소시지가 들어있었다. 그 옆에는 같이 먹을 수 있는 김치도 있었으며 두부조림도 함께 들어있었다. 그리고 2층에는 하얀색 쌀밥과 함께 키위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 감자조림, 댤갈말이가 들어있었다. 마지막으로 1층은 사과, 방울토마토, 딸기가 곱게 놓여있었다. 스스로가 봐도 조금 과했나 싶어 그녀는 괜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만들다보니 이것저것 다양하게 나와버렸어요. 후훗. 하지만 양은 그렇게 많진 않으니까 가볍게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아무튼 유부초밥과 베이컨말이요? 유부초밥은 꽤 손이 많이 갔을텐데. 고마워요. 오빠."
보온병으로 시선을 잠시 옮긴 세나는 이어 해인의 제안이 들려오자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번갈아가면서 질문하기는 어떠냐는 말에 세나는 가만히 고민했다. 오히려 게임 쪽이 조금 더 두근두근한 느낌이 들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하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빠가 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나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그럼 먼저 질문할게요. 해인이 오빠. 이 프로그램. 참여한 거 후회하지 않아요? 정말로 솔직하게... 무섭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연애 프로그램. 확실하게 인지도를 올릴 수도 있고, 이런저런 경험을 쌓을 수도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기 때문에, 별 시덥지도 않은 것으로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 있었다. 사소한 행동 하나. 혹은 다른 페어가 생겼을 때 조금만 더 친밀하게 굴면 이전의 파트너는 그저 놀이대상일 뿐이었냐는 비꼬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는 일전에 자신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지 않던가. 그렇기에 그렇게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꽤 진지했다.
옆구리에 야물딱지게 꽂아넣은 스트레이트 한 방. 딸꾹질같은 소리가 나며 호랑의 몸이 비틀거렸다. 자세는 두어 발짝만에 다시 가다듬었지만, 마음은 가다듬지를 못하겠다. 지나가 찔러넣은 스트레이트가 몸보다 마음에 몇십 배는 아프다.
지당한 일침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미련은 부리고 있는 꼴이라니.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해야 될까. 다른 사람은 선아 옆에 서도 되는가- 그렇다, 머리로는 차라리 다른 사람이 선아 옆에 서기를 바랐다! 자신같은 인간 말고, 선아에게 확고한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서기를 바랐다... 그래서 호랑은 선아에게서 멀어지려고 시도했고, 성공했다.
"모르겠어. 머리는 그래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나 일종의 정신적 재활이라 생각하고 신청한 이 프로그램에서, 참으로 얄궂게도 호랑은 선아와 재회해 버리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겸허한 자세로 임했다. 그러나 매 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자꾸만... 가슴 속에서,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것은 단지 지독한 불운일 뿐이었다고, 그 불운이 있기 전에 너희 두 사람이 어땠느냐고, 자꾸만 호랑의 마음을 울려오는 것이다. 호랑은 종이가방을 팔에서 미끄러뜨려 손에 걸었다.
"선아를 다시 만나고 나니까... 여기 어딘가가..."
그리고는 가슴팍 가운데를, 명치 조금 위를, 꾹꾹 눌렀다. 강철로 된 솔을 여기에다 대고, 망치질을 쾅쾅 하는 느낌.
"말을 안 들어."
어두운 비구름이 드리운 그늘 속에서, 호랑의 얼굴은 지나에게 거짓 없이 솔직했다. 푹 젖어 있는 한쪽 어깨가 오늘따라 유달리 처져있는 것 같았다. 호안석과 같은 눈동자가, 햇빛을 받으면 찬란한 노란색 얼을 머금고 반짝이는 그 눈동자가 차분히 가라앉은 갈색이 되어 지나를 바라보고... 아니, 지나와 시선을 맞추지도 못하고 저 앞에 놓인 기숙사를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어느 한 쪽을 택하고 싶은데, 어느것도 마음대로 안돼, 누나. 이거 나 어쩌면 좋냐."
>>650 내가잘쓴다->상대가즐거워한다->상대가 즐거움을담아 반응을 써준다->나도 즐거워한다의 통곡의 4중나생문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편안함... 크윽... 흐음 해인주의 생각과 세나주의 자평이 어찌될지는 내 섣불리 짐작할 수 없지만 일단 관전자인 내 입장에서는 옥시토신이 살살 올라오는 것이 실로 봄날이지 않나싶으요 (산처럼 쌓인 빈도시락 가리킴)
지나는 이내 이어지는 호랑의 말에 눈썹을 늘어뜨렸다. 완전히 공감해줄 순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간접 경험도 경험이라고 지나에게는 많은 사랑 이야기들을 마음 속에 담고 있었다. 머리가 이해한다고 해서 가슴이 따라주는 것은 아니다. 가슴이 말하는 대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둘 다 못하겠으면... 남은 방법이 하나 있어.”
지나는 호랑의 손에 위태위태 걸려있는 종이가방을 뺏어서 품 안에 안았다.
“선아한테 선택하게 하는 거지. 말하는 거야. 너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잡겠다고.”
지나의 따뜻한 색감의 눈동자는 호랑을 똑바로 바라봤다. 지나가 생각하기에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이었다.
“봐 봐. 내 생각에는 처음부터 잘못 됐다고 봐. 선아 옆에 설 자격? 그걸 누가 결정하는데? 네가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 오만 아냐? 옆 자리에 누구를 세울지, 그리고 그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건 선아야. 네가 아니라.”
만약 지나가 호랑만 알고 선아를 몰랐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참견이었다. 하지만 지나는 호랑도 소중하고 선아도 소중했다. 그랬기에 어떤 결과가 일어나든 간에 완전한 끝마무리가 되기를 바랐다. 차라리 두 사람이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렇게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흐지부지 가는 것은 지나가 참고 보기 힘들었다. 둘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뜯겨져 나가는 게 보여서.
그리고 나도 이 스레 자체가 깊은 감정이 오가는 연애 스레라서 적당히 하고 있는지 모르겟따...! 지나 캐입을 하니까 호랑이랑 선아랑 너무 가까운 사이라 그런지 얘가 주체 못하고 껴드는데 이래도 되나 싶고........ 혹시나 호랑주나 선아주 혹은 다른 참치들이 이건 좀 싶으면 찔러줘...... 어렵다 어려워~~
그런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시대의 트렌드를 잘 못따라가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 해인의 아버지만 해도 해외 출장이 잦을뿐 집에 있을땐 자상한 아버지인데다 집안일도 도맡아서 하는 가장이니까 말이다. 물론 해인의 어머니도 같은 직장인이니 어느 정도 분담을 하는게 당연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세나의 도시락을 본 해인은 다양한 음식들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 이걸 혼자 다 만들었어? "
자기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짓수나 종류나 손이 많이 갔을 것은 확실해보였다. 이 정도까지 해줄거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해인의 놀람은 한층 컸다. 이렇게 보니 자신이 만들어온게 좀 초라해보이긴 했지만 ...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의 것을 한 것이니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한 해인은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 그렇다기보단 가위바위보에 자신이 없어서. "
드물게 조금 부끄럽단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인 해인은 세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는듯 가져온 컵에 얼음을 넣고 음료수를 따를때도 말 한마디 없이 조용할뿐이었다. 아무래도 방송에 나올 수도 있는 질문이니만큼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는게 아닐까 싶었는데 ... 이윽고 해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 후회 안해. "
자신도 어쨌든 사람들에게 얼굴 정도는 알려진 몸이니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몇몇 있었고. 하지만 자신은 그런 것에 굴하지 않았다.
" 내가 자원해서 참여한게 아니긴 하지만, 거절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어. 중도 하차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럼에도 내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유는 ... 재밌어보였으니까, 하고싶었으니까. "
해인은 이번에도 잘 보여주지 않는 쓴웃음을 지은 표정을 지은채 말했다.
" 안좋은 말이 나올수도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예전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때는 너에게 피해가 갈까봐 그랬던거야. "
솔직히 세나와 이런저런 관계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후속 기사도 없이 금방 수그러든 소문이긴 했지만 그 기사 때문에 세나가 혹시 나쁜 일이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하고 노심초사했던 해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 이건 프로그램이니까 내가 이렇게 행동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아. 설령 내 진심이 담겨있다고해도 말이야. "
결국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다른 법이었다. 그 구시대적인 발상을 여전히 따라야한다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것처럼. 여자 쪽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없으리란 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적어도 자신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뭔가를 만들어주면 고맙고, 이렇게 준비를 해주면 소소하게 기뻤다. 뭔가 이 사람은 날 생각해주는구나...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래보여도 요리는 잘하는 편이거든요. 물론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어제 학교 끝나고 조금 쉬었다가 바로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못 만들 것도 없더라고요. 이 또한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니까 꽤 즐겁기도 했고요."
이만큼 만들었으니, 자신의 요리 실력이 조금은 더 좋아지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기분 좋게 배시시 웃었다. 그가 젓가락을 집어들자 그녀는 바로 젓가락을 집어들었고, 해인이 만든 유부초밥을 집어서 입에 쏙 집어넣었다. 음. 맛있어! 간도 딱 맞고! 그런 혼잣말을 하면서 그녀는 천천히 입에 넣은 유부초밥을 천천히 씹어서 삼켰다.
그 와중에 자신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 나오자 자연히 세나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시작해서 이어지는 말에 그녀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해인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깊고 진지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물러설 마음이 없어보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저런 모습이 꽤나 멋있다고 생각하며 세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요. 오빠가 후회하지 않고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무섭지 않다고 한다면 제가 이 관련으로 무슨 말을 더 하겠어요? 후훗. 오빠의 그 진심이 참가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이걸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그렇게 나오기에요? 후훗."
자신에게 오는 질문은 꽤나 날카로우면서도 민감한 부분이었다. 누군가와 연인이 되었는데, 데뷔를 하게 되었다. 즉, 데뷔를 하기 전에 연애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 그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하던 세나는 오렌지 주스를 입에 담은 후,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야기했다.
"솔직히 데뷔 후라고 한다면, 저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어도 누구와도 안 사귈 거예요. 소속사에서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제가 생각해도 너무 리스크가 크거든요. 하지만 데뷔 전에 연인이 생긴다고 한다면... 저는 아무 것도 포기 안할 거예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컨트롤한다고 컨트롤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데뷔 전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전 그 사람을 포기 못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쟁취할 거예요. 그리고 아이돌도 할 거예요. 대신 비밀연애가 되겠지만요?"
아. 이거 그대로 나가나?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그리고 요즘은 아이돌 중에서도 연애를 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열애설이 터졌을 때 순순히 인정하고 공개 연애로 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자신도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녀는 일부러 꺄르륵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니까 사랑도 일도 전부 제 꺼에요. 데뷔 전이라면 말이에요. 후훗. 이렇게 말을 하지만 누군가와 사귈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연애라는 거. 제가 하고 싶다고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자. 그럼 이번엔 제 차례죠?"
이어 그녀는 반찬을 마음껏 먹으라는 듯이, 도시락 통을 살며시 그에게 밀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 바로 해인에게 질문했다.
"오빠의 참가자 인터뷰도 봤는데... 커플댄스. 그렇게 아쉬웠어요? 후훗. 포켓몬 댄스 추고 싶었다고 했었나요?"
해인은 음식 하나를 집어먹고선 말했다. 진짜 맛있다는 말도 덧붙여주며 그는 샐러드도 약간 집어 입에 넣어 삼킨 뒤에 세나를 바라보며 다시금 말하기 시작했다.
" 나도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 누군가 차려주는 밥이 좋으니까. 항상 내가 만들어주는 편이라. "
그의 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진 못하는 편이었다. 워킹맘하면 떠올릴 수 있는 전형적인 사람이었고 애초에 요리를 배울 맘도 딱히 없어보였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지만 요리는 사먹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해인은 자연스럽게 요리를 할 수 있게 됐고 그 수혜자는 그의 여동생들이었다.
" 맛없는게 없네. "
하나씩 다 먹어보면서 엄지를 치켜들며 칭찬해준 해인은 이어지는 세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확실히 아이돌의 연애는 리스크가 너무 크기도 했다. 물론 데뷔하고서 꽤 시간이 지났을때는 오히려 연애를 하는게 좋다고도 하지만 세나의 나이쯤에 데뷔했을땐 역시 그런 스캔들은 좋지 못했다.
" 세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네. 두마리 토끼쯤이야 우습게 잡을 것 같으니까. "
그렇게 말한 해인은 잠시 고민했다가 아까처럼 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생각해보면 나랑은 공개연애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일반인도 아니고. "
진심인지 아닐지 모를 얘기지만 해인은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뮤지션이고 이쪽 방면에서는 꽤 유명한 편인데다 둘 다 나잇대도 비슷하니 오히려 마케팅 측면에선 플러스 요인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 그래도 나름 열심히 고민했는데 아쉬운거지 ... 근데 포켓몬 댄스는 파트너 생각해서 쉬운거 얘기한라서. 세나랑 추면 더 어려운거 해야하지 않을까? "
맛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의 말에 그녀는 기분 좋게 웃었다. 자신이 만든 요리가 맛이 좋다고 하는데 기분이 나빠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괜히 자신이 만든 계란말이를 집어서 입에 쏙 넣고 그녀는 맛있다는 듯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잊지 않았다. 밥을 먹는 것은 좋지만, 지금은 그와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했으니까.
그러던 와중 그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깜빡깜빡. 아무런 말없이 두 눈을 깜빡이던 그녀는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후훗. 왜요? 저랑 공개연애 하고 싶어요? 아. 이거 다음 질문으로 물을걸 그랬나? 하지만 오빠도 곤란할테니까 이런 것은 안 물을게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넘겨버리면서 그녀는 다시 주스를 천천히 마셨다. 딸기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지금 있는 이 주스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시원하고 신선하게 먹으면서 그녀는 분홍색 손수건을 꺼낸 후에, 자신의 입가를 천천히 닦았다.
"저와 추면요? 확실히 포켓몬 댄스보다는 좀 더 화려한 것을 추고 싶어요. 제가 춘다고 한다면 말이에요. 그렇다고 막 떠오르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아. 역시 처음 시작할 때 참여를 했어야 했었나. 그때는 되게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하고 싶긴 한데 해도 될까? 이거 나중에 문제 되지 않나? 그런 고민이 계속 되더라고요. 결국엔 신청서를 냈지만요."
바로 옆에서 떨어지는 벚꽃잎을 바라보던 그녀는 아주 가볍게 그 벚꽃잎을 잡았다. 손바닥 위에 자리잡은 그 분홍색 꽃잎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후우 불어 그 꽃잎을 저 멀리 날려보냈다.
"그리고 덕분에 이런 예쁜 곳에서 벚꽃도 구경하고 있고요. 응. 신청하길 잘한 것 같아요."
[ 지난 4주간 여러분들의 활약을 눈에 띄게 지켜본 결과~! ] [ 다들 의외로 서로 합이 잘 맞는 조가 있고 그런 것 같아요~! ] [ 시청자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하하! 하고 가볍게 웃는 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목소리.
[ 해서,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조를 정해볼까 한답니다. ] [ "자신이 원하는 사람" 을 지목해서 조를 만드는 식으로! ] [ 지금까지와는 달리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드리고 싶은데, 문제 없겠죠~? ] [ 어찌보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는지 안 생겼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방식이랍니다. 아하하!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려오는 학생들의 환호소리. 연애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건 그거죠. 결국에는 눈이 맞느냐 안맞느냐 입니다. 4주간이나 진행되었는데, 이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안 생겼을리가 없을테니까요. 안그렇습니까?
[ ......물론, 지목하지 않거나 지목되지 않은 사람은, ] [ 이전과 다름없이 제비뽑기로 결정될거란 사실. 기억해 주시길. ]
후후 하고 가볍게 웃는 소리와 함께, 유소민의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 투표는 오늘부터 정확히 3일동안 받을 예정이니, 기한에 맞춰서 신중하게 지목해 주시길. ] [ 그럼, 저는 오늘도 여러분의 활약을 지켜보겠습니다. ] [ 모쪼록 남은 기한 재밌게 즐겨주시길! ]
💕 웹박수를 통해 페어를 하고 싶은 상대를 [ 지목 ] 할 수 있습니다. 💕 단, 캐입을 통해 지목해야 하며, 오너로써 지목은 불가능합니다. 💕 지목되지 않거나 지목하지 않을 경우 이전과 다름없이 사다리타기로 페어가 정해집니다.
공개연애를 하고싶냐는 질문에 해인은 역으로 되물었다. 표정은 짓궂음이 가득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장난식으로 물어본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어차피 대답하기에도 곤란할테니 딱히 답을 기다리진 않는듯 해인은 자연스럽게 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 이전 미션을 해보고 싶다면 같이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굳이 미션이 아니더라도 해볼 수 있는거잖아. "
나중에 세나가 유명해지고나서 그 영상이 재발굴 되어 돌아다니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고 해인은 생각했다. 물론 그녀 말대로 좀 더 화려하고 퍼포먼스적인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물론 자기도 춤을 못추는건 아닌데 세나보단 당연하게도 실력이 떨어질테니 연습을 할 시간이 필요하긴 하니까 지금 당장은 무리였지만.
" 조용한 곳을 원했으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어. 거기는 산 근처라서 벚꽃은 좀 적은데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 "
해인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만든 베이컨 말이를 하나 집어 세나의 입에 가져다주며 말했다.
지금 단계에서는 딱히 언급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보이며 그녀는 가볍게 그의 말을 넘겼다. 물론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이들은 비명소리를 지를지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는 어느 한 쪽이 조금 더 진지하고 진심이 되었을 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물론 이러다가 자신 쪽이 생각보다 훨씬 진심이 되어서 그를 꼬실지도 모르지만...그건 지금은 알 수 없는 나중의 이야기였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기분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미션으로 추는 것과 그냥 재미로 추는 것은 분위기부터가 다르잖아요. 방송용으로 추면 괜히 좀 더 이것저것 보여주게 되고. 그렇다고 그냥 출 때 대충 추는 것은 아니지만요. 이래보여도 댄스부의 떠오르는 샛별이라구요. 저."
살짝 자리에서 일어나서 유연한 웨이브를 보여주는 모습이 조금은 섹시하게 비쳤을까? 아니면 그저 귀엽게 비쳤을까? 그것까진 깊게 생각하지 않으며 세나는 작게 웃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편 해인이 베이컨말이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오자 세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베이컨말이를 바라봤다. 엄청 자연스럽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입을 벌려 받어먹었다.
"후훗. 엄청 맛있네요. 저 베이컨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오빠가 싸 온 도시락. 되게 만족스러워요. 맛도 괜찮으니까 금상첨화네요. 아. 그러면 이번엔 제 차례려나?"
이어 그녀는 가만히 도시락 반찬을 바라보다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그리고 해인을 바라보면서 일부러 짓궂은 표정일 지으면서 굳이 '아~' 하는 소리까지 덧붙였다.
"저는 화려한 곳이 좋아요. 사람이 많아도 말이에요. 물론 조용한 곳은 조용한 곳대로 좋긴 하지만... 역시 벚꽃은 화려한 풍경이 일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어 그녀는 살짝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오른쪽 눈만 살짝 감고 그를 유혹하듯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다음에 제가 오빠와 미션이 아니라 자의로 데이트를 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땐 둘만 있는 곳으로 가요. 이번엔 모두에게 예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거라면... 다음에는 진짜 저와 오빠. 오직 둘만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곳."
장소는 생각해봐야겠지만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표정을 풀면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남은 반찬을 천천히 먹으며 젓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이긴 했지만 일단 흥미롭다는 분위기는 풍기며 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이런 얘기는 쉽게 꺼낼 수 있는게 아니었다. 평소엔 그냥 조용한 부장님 느낌이던 해인이니까 이걸 보고 있는 밴드부원들은 아마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해인도 딱히 대답을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세나의 대답은 의외였을지도 모른다.
" 확실히 그렇겠네. 세나는 아이돌이기도 하니까? "
일어나서 보여주는 유연한 웨이브에 해인은 놀랐는지 눈이 잠시 커졌다. 물론 금방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분위기가 아까보단 더 묘하게 변한 것 같기도 했다. 하긴 아이돌이 눈 앞에서 춤까지 살짝 춰줬는데 거기서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해인은 자신의 베이컨말이를 먹고 맛있다며 말한 세나를 웃으며 바라보다가 입으로 다가온 계란말이를 보고선 바로 한 입 먹어버렸다. 이미 아까 하나 집어먹은 계란말이였지만 이렇게 먹으니 맛이 좀 더 좋았다고 해야할까.
" 그런 장소라면 내가 알고 있어. "
세나의 유혹하는듯한 표정에 해인도 지지 않고 눈을 살짝 감은채 세나를 바라보고선 이번에도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물론 이것도 시청자들이 집중하면 들릴법한 목소리 정도긴 했지만 말이다. 대답의 의도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해인의 표정은 만족한듯 싶었다. 다음을 기약한다라 ... 다음에 만났을땐 어떤 관계일지 그도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 다 먹고 하고싶은거 있어? "
데이트라는걸 나왔으니 밥 먹고 산책만 하면 섭섭하지 않을까 싶었다. 해인은 그렇게 물어보고선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 찾아보더니 세나에게 보여주었다.
" 여기 카페ㅡ, 벚꽃이 핀 기간 동안만 파는 한정 굿즈를 판다고 했어. 키링도 있는것 같던데 ... "
여기서 말은 끊어졌지만 해인은 같이 사러가자고 하는듯 했다. 그야 딱봐도 비슷하게 생긴 키링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직 연습생이고 오빠에 비하면 인지도도 많이 떨어지지만요. 두고 봐요. 언젠간 제가 더 인기있을테니까! ...10년 정도면 되려나? 20년?"
스스로 말하고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며 세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눈앞의 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인지도가 있고 인기가 있는 천재였다. 그런 이의 인기를 따라잡으려면 과연 20년으로도 충분할지. 그동안 해인이 놀기만 할리도 없지 않은가. 조금 분했는지 그녀는 괜히 볼을 약하게 부풀리다가 입 속의 공기를 밖으로 빼냈다. 이어 그녀는 다시 머리카락을 손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어머."
지금 목소리는 시청자들에게 안 들리는 크기이지 않나? 편집으로 들리나? 그보다 알고 있다니. 대체 어떤 장소?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해인을 바라봤다. 이어 그의 표정을 가만히 살피며 세나는 흐~응 소리를 내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물어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냥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다 일단은 묻지 않았다. 혹시라도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때의 재미로 두는 것이 좋을 듯 했으니까. 무엇보다... 이번 기간이 끝난 후에 자신과 그가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었고. 당장 다음주에 자신이 짐을 빼고 다른 이가 들어와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장소는 저에게만 킵해줘요. 저에게 이렇게 말했는데, 다른 이와 가면 조금 삐질지도 몰라요. 저."
그가 낸 목소리보다 더욱 작게... 정말로 해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말없이 싱긋 웃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냐는 물음이 이내 나오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키링?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빠가 식사 끝내면 바로 가봐요. 거기! 키링은 저도 가지고 싶거든요. 그리고... 음. 글쎄요. 후훗. 벚꽃놀이는 벚꽃을 구경하는 거잖아요. 이미 벚꽃은 여기서 밥 먹으면서 많이 봐서...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긴 한데..."
이어 세나는 가만히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컵을 완전히 비우고, 조심스럽게 돗자리 아래에 내렸다. 그리고 해인을 바라보며 살며시 제안했다.
"조금 더 걷고 싶어요. 내년에도 벚꽃이 필지도 모르지만.. 올해 벚꽃은 지금뿐이잖아요? 연애 프로그램 상관없이...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어요. 후훗. 너무 소소한가요? 하지만 어떡해요. 난 지금 이 순간이 즐겁고 좋아서 좀 더 즐기고 싶은데."
이건 진심이었다. 해인은 세나가 자신보다 훨씬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연습실에서 춤 추는 것을 우연히 봤을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해인이었기에 그때 바로 세나와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던 것이었다.
" 분명 데뷔하자마자 팬들이 엄청 늘어날껄? "
그렇게 말하며 해인은 세나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톡톡 두드려주었다. 구태여 쓰다듬지 않은 이유는 머리가 망가질까봐 그래서였다. 그래도 방송까지 나와야하는데 머리가 망가지면 수습하기 힘들테니까 말이다.
" 그래. 약속할께. "
해인은 정말로 그럴 생각이라는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세나와 자신이 정말로 이어질거란 생각을 ... 안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확신을 가지진 않았다. 어쨌든 페어가 2주마다 바뀌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세나와 다시 만나게 되었을때는 어떻게 될지 자신도 아직 잘 몰랐다.
" 대신 그때는 좀 각오해야할껄? "
어떤걸 각오하란 것인진 알려주지 않은채 더 걷고싶다는 세나의 말을 듣던 해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음식이 좀 남았지만 배가 좀 부르기도 했고, 어차피 같이 사는 입장이니 저녁으로 먹으면 될 것 같았다.
"당연히 데뷔를 앞둔 아이돌인데 팬이 늘어나지 않으면 곤란한걸요! 하지만... 역시 오빠를 팬이나 음악성으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오빠는 스스로의 매력을 알 필요가 있어요."
이게 자신만 모르는 그거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세나는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물론 이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일단 그런 것보다는 데뷔 후에는 천천히 인기를 올리고 계단을 오를 생각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세나는 그 정도로 생각을 멈췄다. 그 와중에 그녀의 눈은 다시 한번 크고 동그랗게 바뀌었다. 뭘? 뭘 각오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물끄러미 해인을 바라보던 세나는 아무런 말 없이 방금 내려둔 컵을 두 손으로 잡더니 괜히 만지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용히 컵을 아래로 내리면서 살며시 시선을 회피하며 이야기했다.
"...평가란에 어떻게 쓰일려고. 바보 오빠."
인터뷰를 하고 난 뒤에 평론이 있다는 것은 세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렇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뭘 각오해야한느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눈을 감으면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표정을 관리하며 숨을 골랐다. 괜히 손으로 제 얼굴을 부채질하던 세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남은 것은 저녁에 먹어요. 그럼."
굳이 억지로 다 먹게 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오늘내일내로만 먹으면 되는 음식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도시락통을 정리했다. 3단으로 나뉘어진 도시락을 다시 하나로 합친 후, 자신의 손가방 안에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다시 신발을 신고, 해인이 돗자리에서 내려오면 같이 접으려고 했을 것이다.
"아. 오빠는 질문하지 않았지만 저 마지막으로 진실로 답하는 질문 하나만 할게요. 오빠는 지금 즐거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소소하긴 해도 이런저런 것을 했다. 자신은 상당히 즐거웠고, 지금 이 순간이 좋았다. 그렇다면 해인은? 오빠는? 궁금증을 가득 품은 눈빛에 그의 얼굴이 담겼다.
맥없이, 호랑의 품에 들려있던 식료품 가방이 쑥 뽑혀 지나의 손에 들린다. 아이쿠, 조금 묵직할지도. 호랑은 별말없이, 묵묵히 지나의 말을 들었다. 지나의 상냥함까지 일일이 가로막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리고 지나의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지나의 말을 경청하던 호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누군가는 먼저 말을 꺼내야지. 그래야 하는데..."
호랑은 빈 손으로 옆머리를 거칠게 거머쥐었다. 어느 날 자신에게 뜬금없이 건네어진 편지가 너무 무거웠던 탓이다. 선아에게 사실을 말해주는 것도, 사실을 숨기며 뻔뻔하게 구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부끄럽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멀어졌는데... 어떻게 멀어졌는데.
거짓말. 기대하고 있었잖아?
호랑은 비가 차박차박 쏟아지는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머리를 한번 더 할퀴듯이 긁고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에, 지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장자리에서부터 뜯겨져나가던 마음이, 문득 그 사이의 틈을 지나에게로 향했다.
호랑의 종이가방은 조금 묵직했지만 그래도 지나에게는 이 정도는 가뿐했다. 원체 몸이 튼튼한 데다가 의외로 강골이었고. 게다가 호랑과 뛰어다니면서 자란 데다가 호랑의 아버지가 하는 호랑의 트레이닝에 끌려간 적도 종종 있었다. 지나는 그런 쪽에는 흥미가 없었으나 만약 키만 좀더 컸다면 운동부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재목이었을텐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나는 고민하는 호랑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입장은 조언자이고 조력자일 뿐 대신 결정할 수도 대신 행동할 수도 없었으니까. 나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호랑이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나는 애꿎은 머리카락만 괴롭히는 호랑을 올려다보다가 호랑이 한숨을 폭 내쉬며 하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나가 ‘그 일’에 대해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호랑이 다치던 날의 시합을 직관한 것은 아니었지만 방송으로 보고 있었고 호랑의 부상 소식에 부모님과 헐레벌떡 달려가기도 했었다. 그 이후 상대 선수를 따로 만나 때려 눕힌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무도 지나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부모님들의 이야기나 그 어떤 분위기로 인해 호랑이 시합과 관련된 억울한 일을 당했고 호랑이 그로 인해 크게 낙심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호랑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호랑은 대답하지 않았고 지나는 구태여 더 묻지는 않았다. 어떤 일들은 마음 속에서 끄집어내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네가 괜찮다면. 아, 좀 걸을까?”
지나는 자신은 준비 되었다는 듯 상냥하게 웃었다. 호랑이 걷기 시작한다면 찬찬히 따라 걸었을 것이었고.
해인주 안녕~ 어제 기절해버리는 바람에 ㅋㅋㅋ큐ㅠㅠㅠ 페어 잘 부탁해~~ 지나는 아는 사람하고의 페어는 처음이라 공지 들었을 때 눈 땡글해졌을 것 같애 ㅋㅋㅋ 짐 풀러 와서는 잘 부탁한다고 얘기했을 것 같고 둘이 어느정도 아는 사이이니까 바로 흉가 체험 일상 돌리면 될 것 같은데? 해인주 생각은 어때?
3주차가 시작되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니! 지나는 왠지 눈이 동그래지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시간 빨라!
3주차의 파트너는 해인이었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해인과는 옆자리였기에 이미 어느정도 익숙하고 친한 상태였지만 왠지 그래서인지 같은 기숙사를 쓴다는 게 훨씬 민망하게 느껴지긴 했다. 짐을 풀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긴 했지만.
그리고 지금은 3주차 미션을 하기 위해 해인과 함께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해는 어둑어둑 지고 있고 지나는 두 손으로 손전등만 꽉 쥐고 있다. 기숙사 밖으로 나올 때는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산의 초입이 가까워 질수록 지나의 표정은 점점 긴장이 차올랐다. 결국 산의 입구에서 지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방송부에서 뭔가를.... 설치해놓은 건 아니겠지...?”
지나가 겁을 먹은 표정으로 해인을 올려다봤다. 확실히 믿을 것은 같이 갈 파트너 밖에 없다. 해인이 무언가를 무서워 할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기에 기숙사 밖으로 나오면서도 조금 걱정이 덜하긴 했지만.
“폐가를 체험하라니.... 어디까지 해야 체험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냥 주변만 둘러보면.... 안 되겠지...?”
체험의 의미를 대폭 줄이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물어본다. 하지만 확실히 방송 분량을 챙기려면 안까지 들어가봐야 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무서워!
/일단 선레 들고와봤는데~ 혹시 아니다 싶은 것 있으면 알려줘~~ 해인주 바쁜 것 같아서 미리 가져와봤다~~!!
그것과는 별개로 스레 홍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지금 자주 활동하는 이가 나와 지나주, 그래고 해인주 정도고 가끔 한번씩 호랑주와 선아주가 들어오는 식이니까... 뭔가 정체가 되었다는 느낌이야. 저번 주에도 나와 해인주가 일상을 돌리는 동안 지나주는 살짝 방치되는 느낌에 가깝기도 했고.. 그래서 홍보를 해서 사람을 조금 더 불러오는 느낌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확실히 세나주 말도 일리가 있지만 뭐랄까~ 스레 홍보로 뭔가 바뀔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다른 스레들을 봤을 때 과연 효용이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사람이 없다는 문제의 해결책은 보통 없어서...... 흐음...... 캡이 바빠진다면 역시 스레 존속은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아쉽겠지만~ 물론 한달 내에 새로운 유입이나 다시 기존 레스주들끼리 활발해 진다거나 해서 서로 일상도 많이 돌릴수 있게 되면 베스트일 거고~
사실 뭐랄까. 지금 이대로 계속 지속된다고 한다면 결국 누구 한명은 계속 방치되는 느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가장 베스트는 다른 이들의 현생이 좋게 좋게 풀리는 거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생각하는지라... 물론 그렇다고 바쁜 이들 탓하는 것은 아니야! 해인주는...글쎄. 아마 접속한 후에 레스 보면 의견을 남겨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내어준다. 봉투도 내어주고, 마음 속에 가있는 금까지 내어준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나는 그 작은 체격에 비해 강했으니까. 비단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조그만 만큼 차돌처럼 야무진 사람- 그것이 호랑이 지나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였다. 겉으로는 병아리콩이니 숏다리니 몽당연필이니 신나게 놀려먹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랑은 내심으로 지나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고, 인정하고 있었다. 결국 자신이 덩칫값 못하고 머리나 가슴팍을 싸쥘 때, 가장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은 지나였다. 좀 걸을까? 하는 말에 호랑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덮고 있는 우산을 흘낏 올려다보며 웃었다.
"비가 와서 좀 그래."
호랑의 어깨는 이미 한쪽이 흠씬 젖어있었고, 바짓자락도 이미 물을 머금고 있는 상태였다.
"들어가서 밥 차리면서 이야기해도 안 늦을 듯? 공용주방이라고 뭐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어디 더 안 걸어가도, 어쩌면 기숙사에 도착하기 전에 이야기가 다 끝날지도 모르지."
호랑은 그렇게 말하며,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기숙사에 도착하기 전에 이야기가 다 끝날지도 모르겠다고 하기엔, 기숙사 건물이 이미 꽤 가까워져 있다. 기숙사 정문의 뚜렷한 형상이 보일 정도니까. 후다닥 달려서 들어가면 비를 그렇게 많이 맞지 않고도 건물 현관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우산을 쥐고 있는 호랑이, 딱히 내달릴 기색이나 그러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을 뿐. 그 대신 호랑은 급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Q. 아이돌을 지망하게 된 계기 세나:그야 화려하고 예쁘고 귀엽잖아요? 저도 나름 예쁘고 귀여운데 이 정도면 노려볼만 하지 않나요? 후훗. 세나:농담이고 그냥 노래 부르는 것도 좋고 춤 추는 것도 좋아해서요. 그리고 기왕이면 화려하게 반짝반짝하는 그런 삶도 살아보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어요. 내년에 데뷔하면 팬 해주실거죠? (윙크)
Q. 자신에게 가장 자신있는 부분 세나:글쎄요. 세나:역시 얼굴? 아니면 아직은 귀여운 분위기? 세나:언니는 어디가 좋아보여요? 후훗. 세나:아. 저 그래도 요리는 되게 잘 만드니까 그것도 매력 포인트 아니려나?
Q. 이전의 연애 경험이 있는지 세나:(가만히 휘파람 불기) 세나:그게요. 지금까지 딱 이거다 하는 사람이 없었단 말이에요. 세나:그래서 아직 모솔이에요. 세나:...별 상관없잖아요. ...연애 안해도... 어차피 아이돌이 되면 팬들이 연인이 되는데...(작게 중얼중얼)
Q. 이상형!!!! 세나:그다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세나:동갑이라고 하더라도 좀 의지가 되고 든든한 그런 사람? 세나: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좋아요. 세나:소심하고 눈치보고, 우물쭈물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로는 조금... 세나:아. 어디까지나 이상형일 뿐인 거 알죠? (윙크)
이번 페어는 지나였다. 지나도 참여하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언젠간 페어가 될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돌아와서 해인도 좀 당황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같이 돌아와서 지낸다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묘하긴 했지만, 지나와는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그렇게 불편할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이번 주차의 미션은 폐가 탐험. 지정해준 폐가에서 특정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무언가 설치해놓은 것이 있으니 여기를 가라고 했을 것이라 생각한 해인은 무서워하는 지나를 보며 말했다.
" 아무래도 설치해놨겠지. "
그래야 보는 사람들도 재밌을테니까 말이다. 주변만 둘러보면 안되냐는 지나의 물음에 해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분명 불만이 나올테니까 말이다. 기본적으로 이런걸 시청하는건 도파민을 위한 목적이 강하니까.
"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
해인은 이런걸 딱히 무서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누가 놀래키는 장난을 쳐도 덤덤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은지라 재미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던 해인은 지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확실히 옆자리라 학교에서 내내 붙어있는 편인데 기숙사 같은 방을 쓰게되니 확실히 더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각 방이 있어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때도 많지만 자연스럽게 같이 하교하고 같이 등교하게 된 것은 덤이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시선이 엄청나게 부담스럽지만!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으으. 그렇겠지...?”
아직 여름도 아닌데! 갑자기 낭량 특집이라니! 방송부 녀석들! 이게 무슨 일이냐구ㅡ!!
지나는 그렇게 속으로 외치다가 평소와 같이 무덤덤한 해인을 보며 조금 안도했다. 다행이다. 해인이마저 무서워했다면 나 엄청 무서웠을 거야.
“으응.......”
결국은 일단 산길을 올라간 다음에 보이는 폐가로 들어가고 그리고 뭔가를 한 뒤에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이었다. 힘내자 지나. 할 수 있다 지나.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데 해인이 손을 내밀며 하는 말에 지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해인을 올려다봤다. 와. 남주력 높아. 실력 출중, 외모 준수에 상냥하기까지. 세나 와의 지난 방송도 봤었다. 티는 안 냈지만 꺄아악!! 하는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봤단 말이다. 해인의 팬들이 해인에게 꺅꺅하는 마음을 알 것 같달까.
“헤헤. 그럼 좀 실례할게.”
사양할 수 있을리가 없다. 지나는 배시시 웃으며 해인의 손을 잡고 해인의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 왜냐! 무서우니까! 해인도 방송이니까 손을 잡자고 했겠지만 말이다. 역시 방송에 많이 나온 유명인이라 그런가 역시 방송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1. 지나는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참여했는데, 참여하다보니 뭐랄까 방송!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보다 엄청 신경쓰이잖아?! 하는 느낌? 일반인으로만 살다가 뭔가 유명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다 같은 학교 친구들이니까 엄청 긴장되기보다는 재밌기도 하고 그렇대! 그런데 이걸로 과연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든대 ㅋㅋㅋㅋ
2. 지나는 스스로 자신이 매력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밝고 잘 웃고 긍정적인 면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야하나?
3. 지나 휴대폰 단축키 설정 안 해두는데? ㅋㅋㅋㅋ!! 하지만 한다고 하면 1 엄마 2 아빠 3 호랑 일 것 같음
4. 지나 이상형........... 지난번에도 고민했었는데 얘가 너무 소설로 다져진 취향이 태평양이라 자기도 잘 모르겠대. 그 때 그 때 빠진 소설의 남주들로 계속 바뀌는 중이야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그야말로 방송이라는 것 자체를 엄청 즐기고 있구나! 이걸로 연애가 가능한가라는 것은 확실히 그런 의문이 들 것 같기도 해. 아직까진 뭐 특별히 이렇다 할 것이 없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폐가 체험은 꽤나 좋은 소재지! 으앗! 지나는 엄청 매력있는데!! 맞아. 웃는 모습 엄청 예쁠 것 같아! 와. 그 와중에 3번 호랑이로구나. 역시 이게 소꿉친구의 파워? 아앗..ㅋㅋㅋㅋㅋ 계속 바뀌는 편이로구나! 책 많이 읽으면 그렇게 되는 성향이 있더라! 도시락 반찬은 소세지야채볶음! 그럼 다음에 지나가 책 골라준 답례라고 하면서 반찬통에 싸서 슬쩍 책상에 넣어두고 가야겠다!
지나가 손을 잡아오자 해인은 자신의 몸쪽으로 살짝 끌어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나는 체구가 작으니까 등 뒤에 숨기도 편할 것 같기도 했으니까. 폐가로 가는 길은 미리 정돈해두었는지 딱히 걸리는 것도 없이 말끔했다. 방송을 위해 준비한 곳이니까 사고가 없도록 철저하게 사전에 준비해두었겠지. 그래서 해인은 더더욱 무서움이 덜했다.
" 혹시 뭐라도 튀어나오면 내가 막아줄테니까. "
아마 사람이 있진 않을 것이라고 해인은 생각했다. 이번 참여자 중에서는 격투기를 하는 학생들도 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러니 누군가 놀래켰다가 반사적으로 주먹이라도 휘둘렀다간 그땐 방송사고가 일어나버릴테니 대부분 놀래키는 장치로 되어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인형 같은게 튀어나와도 그냥 밀어내면 그만.
" 도착했네. "
깊은 곳에 있는 곳은 아닌지 산길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했던 곳이 나왔다. 폐가라는 말을 듣고와서 그런지 좀 더 스산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은 방치된지 오래된 건물 느낌이 강했다. 듣기로는 예전에 어느 회사가 사용하던 숙소였다는데 그래서인지 4층 정도 높이의 건물이었다. 그리고 해야하는 일은 ...
>>980 즐기고 있는건가?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방송은 방송이니까. 그래도 재미있는 이벤트 같은 거라고 생각해. 지나는 다른 사람들 방송 보는게 더 재미잇다고 하지만 ㅋㅋㅋ 3번부터는 그냥 친한 친구 순서대로 이어질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 확실히 호랑이랑은 엄청 친하니까. 가족끼리 아는 사이이기도 하고. 거의 가족에 가깝기도 한 느낌이니까? 허어억..... 세나가 반찬통에 쏘야볶음 넣어준다면 지나 엄청 감동할거라고 ㅠㅠ!!!!! 완전 고맙다고 잘먹겠다고 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