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뱃살 구이에 야채 계란찜, 그리고 토마토와 낫토...를 섞은 묘한 범벅과 현미밥. 작은 나물 무침과 단무지생강절임까지, 완전 밸런스 잡힌 식사다. 지방이 풍부한 연어 뱃살구이를 먹다가 입이 텁텁하면 나물과 단무지를 먹으면 되고. 토마토와 낫토라는 생경한 조합은 의외로 잘 맞았다. 낫토에 겨자를 넣어 상큼함을 더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달까. 그러다가 너무 짭조롬한가 싶으면 슴슴한 연어자반을 한 점 집어먹고. 현미밥으로 배도 채우고. 마지막으로 계란찜을 호로록 털어넣기.
우와... 나 요리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일본식만을 조지는 스페셜리스트에게는 한참 못 미치는구나. 한 상 안에서 골고루 반찬을 최전하며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이야. 감탄하며 연어 살을 한 점 집어들었는데.
- 한 번 더 해줘...
라는 말에 툭 떨어졌다. 뭘? 어제 한 거? ...키스를?
"조용히해메이사식당이잖아그보다키스는원래우리안하기로한거잖아...!!!"
속닥거리며 반박하지만 우마무스메 종업원들의 귀가 쫑긋거리고 있다. 그리고 메이사의 🥺 혼욕... 하는 말에 꼬리가 겉옷들을 삭삭삭 스치는 소리가... 아... 씹...
"알았어해줄테니까제발남들다있는곳에서말하지말아줄래메이사..."
콧구멍을 하나 더 만들어줄 기세로(물론, 메이사는 😸 콧구멍 세개인 유우가여도 좋아~ 남들이 좋아해주지 않으니까 오히려 최고야~ 라고 하겠지.) 날 낑낑 올려다보니깐은 밥도 얹힐 거 같았다. 그리고 아닌 척 하면서 저 직원 분, 왜 같은 곳 청소를 계속 하고 계신 건데. 저 테이블 몇 번째 닦고 있는 거냐고. 다 보이거든요?!
내가 하아아아 깊은 한숨을 내쉬― ―려던 찰나, 쨍 하고 들리는 무서운 소리에 움찔했다. 내 뒷자리에 앉았던 토네이도 대쉬가 계란찜 그릇에 식기를 세게 내려놓은 것.
"어, 어 안녕 대쉬야. 마, 만나서 바 반가워 온 천은 잘즐 겼" - 더러워.
그리고는 다 먹지도 않고 가버렸다... 메이사 반응도 아랑곳 않고 뻐큐를 날리고 갔다.
......네, 저는 담당 말딸에게 혼인신고서도 써놓고 키스도 해놓고 혼욕도 했고 더 할 예정이고 도망도 칠 생각인 더러운 트레이너예요. 더럽네요. 응...
주변에서 엄청 신경쓰는 기척이 나지만 난 신경쓰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유우가와의 혼욕 이벤트를 다시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밥상을 싹싹 비워나가다보면 유우가가 깊은 한숨을 쉬고, 유우가의 뒤쪽 테이블에서 쨍!!하고 큰 소리가 울렸다. 아, 아무리 신경 안 써도 이건 귀가 아픈데. 움찔하고 귀를 떨면서 얼굴을 한껏 찌푸린다.
"흥, 성질머리하곤."
더럽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뻐큐를 날리며 퇴장하는 토네이도를 향해 나도 똑같이 손으로 날려준다. 흥. 밥맛 떨어지게 뭐하는 거야. 썩 꺼지라고.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면 거기엔 시무룩해 보이는 유우가가 있었다. 윽, 토네이도 이자식.. 우리 유우가 기를 죽이다니. 진짜 죽여버릴까보다...
"유, 유우가. 신경쓰지마. 저녀석은 우리가 젠가나 브루마블 하면서 놀자고 말했어도 저러고 가버렸을 녀석이잖아." "매번 쓸데없이 시비나 걸고. 그렇게 할 일 없는 거냐고."
...솔직히 헤실헤실 웃는 메이사를 보면 괜히 해준다고 했나 하는 마음이 들긴 한다. 토네이도가 더럽다고 한 것의 지분도 크긴 했지만, 그건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서 타격을 크게 받은 게 좀 있다. 저 녀석은 원래 나와 메이사를 안 좋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온천에서 처음 봤을 땐 그렇게까지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츠나페스에서 우리가 붙어다닐 때도 징그럽다, 키모이, 정도는 말해도 더럽다... 정도는 아니었다고. 왤까.
몰라. 밥 먹어야징.
"어쩌면 자기랑 안 놀아줘서 저러는지도 몰라."
토네이도가 들었으면 "겠냐고―!!" 라며 포크를 던졌겠지만 이미 가버렸지. 음해와 날조를 하면서 결국에는 완식했다. 이렇게 맛있는 밥을 남기고 가다니 불쌍한 토네이도 같으니라고.
"소화시키게 정원이나 좀 걸을까. 그러면서 물어볼 것도 있긴 한데."
정원의 정취를 즐기면서 묻는 거는...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고.
"지금 혼욕할래, 아니면 저녁에 할래.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해."
혼욕은 하루에 딱 한 번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고르려면 아침 아니면 저녁. 점심엔 뭐하냐고?
"나 점심에는 남탕에 들어갈 거야. 제대로 된 물을 좀 맛보고 싶다고."
이런 물 저런 물 다 들어가보면서 반들반들한 피부가 되고 싶다. 메이사 없는 곳에서 마음 편히 푹 늘어지고 싶기도 하고.
음해와 날조로 토네이도의 뒷담을 가득 까면서 식사를 마무리하고, 정원이나 좀 걷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느긋하게 정원을 거닐면서 유우가가 말한 건, 아침에 혼욕을 할 건지, 저녁에 할 건지를 고르라는 말이었다. 에에. 하루종일은 안되는 건가. 살짝 불만스러워지려다가, 하긴 아무리 그래도 하루종일 탕에 들어가있기는 어렵겠지 싶어서 수긍했다. 마지막 날이라 아쉽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에우...."
점심에는 남탕에 들어간다고. 아, 하긴 아직 여기 대욕탕은 들어가본 적이 없네. 나도 여탕에 가보고 싶....지만 어쩐지 높은 확률로 토네이도랑 마주쳐서, 의자라던가 대야라던가 샤워기를 던지면서 진심격투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난 그냥 방에 있는 탕으로 만족해야겠다.
"알겠어.... 그러면 저녁에 할래." "마지막 날이니까, 집에 가기 전에 추억으로 남기는 거지. 응. 완벽하네."
진짜 완벽해. ...마음같아선 아침에도 하고 싶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아침도 꽤 많이 먹었고. 식후에 바로 들어가면 안 좋다고도 하고. 아침엔 적당히 뒹굴거리면서 어제 밤에 산 간식 먹으면서 시간 보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정원을 걷다보면 문득, 어제 밤에 있던 일이 생각난다. 아까 아침을 먹으면서 유우가가 당황했던 걸 생각하면, 꿈이나 내 망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키스는 기쁘지만, 진짜로 좋지만, 또 다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 저녁에... 오늘 저녁엔 꼭 결행해야겠어. 어떻게든. 유우가보다 조금 앞서서 걸어가며, 괜히 정원에 있는 동백꽃을 톡 건드린다. 꽃 위에 쌓여있던 눈이 우수수 떨어지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롱패딩을 덮어주고 흡연실로 향하는 유우가를 멀뚱히 보다가, 슬그머니 패딩을 여몄다. 그러자 안주머니에서 뭔가... ....패딩이 아닌 것의 감촉이 느껴진다. 조금 작은 박스같은데. 앗, 유우가 흡연실 가면서 담배 두고 간 거야? 진짜 덜렁이라니까. 어쩔 수 없네. 담배 냄새는 싫지만, 꺼내서 가져다 주는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상자를 꺼낸다. 작은 상자는 담배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절대 담배갑이 아닌 모양이었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래. 구체적으로는 심야의 편의점에서 알바생이 추천했던 그거를 닮았네.
아니. 닮은 게 아니라 그거 맞잖아. 이, 이게 왜 유우가의 패딩에서?! 그, 그때 계산하지 말고 빼달라고 했었잖아??? 근데 왜??? 설마 이거 저주받은 ○○라서 한번 집으면 다 쓰거나 죽을 때까지 쫓아오는 그런 거???
"하? 에??" "..........흠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왕 따라온 거 좋은 곳에 써주자. 일단 슬쩍 내 코트 주머니로 거처를 옮겨주도록 하자. 그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헛기침을 조금 하면서 마저 패딩을 여몄다.
그리고 그 직후에 흡연실에서 나온, 약간 담배 냄새가 나는 유우가랑 같이 방으로 돌아왔다. 유우가는 감땅콩 과자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죽순과자 먹을까. 죽순과자를 뜯어 테이블에 놓고 하나 집어먹었다. 음, 달다. 그리고 별 의미없는 쇼츠를 슥슥 넘겨가며 보다가, 유우가의 말에 귀가 쫑긋 섰다.
"음.... 난 유우가가 제일 좋은데." "아, 그치만 어렸을 때 그런 적은 있어. 그러니까... 아...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그땐 꼭지 아저씨라고 불렀던 거 같기도..." "아니 꼭지가 아니라 꼬치였나? 아무튼 그런 아저씨 한 명 있었는데."
엄청 오래 전이지, 하야나미 리모델링 하던 때였고, 나는 초등학생이었으니까. 한 번 떠올리니까 추억이 몽글몽글 솟아나기 시작한다. 페인트 냄새가 가득했던, 낯선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가게. 처음으로 집이 아닌 호텔에서 잤을 때의 기분이라던가, 그때 종종 같이 놀아줬던 아저씨라던가. 하지만 엄청 예전이라 기억이 선명하진 않았다. 아저씨의 이름도 그렇고, 구체적으로 뭘 했고 어떤 사람이었고 그런 건 싹 빠지고, 추억이란 이름의 빛바래고 두루뭉술한 전체적인 느낌만 남아있다고 할까.
"아마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듯한.... 아 맞아. 맨날 후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안 보였어. 머리도 부스스했고. 맨날 가족이랑 싸웠다고 했던 거 같아." "그리고 그때 리모델링 중이라 집에서 못 자고 호텔에서 생활했던 거 같아. 그래서 학교 끝나고 호텔로 가야하는데 그 아저씨가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었던가...? 으음... 어쩌다 그랬더라...??"
별 생각없이 '나 마츠다 유사쿠가 좋아' 정도의 답변을 기대하고 물었는데 뭔가... 뭔가? 뭔가를 알게 된 거 같다? 아니, 뭔가 수준으로 퉁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거.
그보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데 왜지... 큭... 분명 어질어질한 일화를 들어서 그런 거다. 확실해. 뭔가 익숙한 감도 있지만 그런 얄팍한 감을 붙잡기에는 나의 상식이 더 앞섰다.
"미친새끼아이가이거!!!!!!!!!!!!!!!!!!!!!!!!!!!!!!!!!!!" "니 뭐 이상한 일 당한 거 아니야? 그, 뭐, 딱 듣기에도 이상한 아저씨 같고 그런 식으로 불렀다는 건 그, 뭐야, 니는 기억 몬하더라도 이 뭐 바바리맨이라던가 그런 거였다 아이가? 범죄자 새끼가 니한테 몬 짓 할라고 막 끌고 가고, 그랬던 거는..."
각혈할 거 같다...... 메이사가 요구했다곤 하지만 더러운 짓(키스입니다) 하는 나랑 막상막하, 어쩌면 그 이상인 새끼다......
"아니, 아니, 아니아니아니, 말 끊어서 미안. 근데 괜찮은 거지, 지금은...???"
그게 자기자신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로 진심걱정을 쏟아부었다. 그야 나도 어지간히 수상하게 하고 다니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자각이 없었던 데다... 무엇보다 가출 이후로 도파민 쫓는 생활을 너무 많이 해서 뇌가 녹아버렸거든. 파칭코 구슬을 멍하니 보다보면 건방진 쿠소가키는 뇌 저편으로 토로토로 녹아버려서... 어쩔 수 없었다.
"엑, 아, 아니 그런 일 당한 기억은 없는데...." "아 그치만 그때 호텔에 돌아갔을 때, 마마랑 파파가 지금이랑 비슷한 질문 했던 거 같기도."
그때나 지금이나 내 대답은 똑같았을...걸? 그런 일 없었고, 그냥 꼭지 아저씨가 꼬치 아저씨라고 부른 건....
"아아 맞아 생각났다! 왜 꼭지 아저씨, 꼬치 아저씨라고 했는지!!" "처음으로 그 아저씨 집에 갔을 때, 체리 꼭지를 입으로 묶는 거 배웠거든! 그래서 꼭지 아저씨라고 했었고, 그게 싫다고 해서 체리 아저씨라고 했다가 체리는 아니라고 해서? 꼬치 아저씨가 됐던 거 같아. 오... 꽤 예전 일인데, 나 꽤 기억력 좋지 않아?"
괜찮은 거지? 지금은??이라는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사실, 두어번 만난 이후로는 영 소식 못 듣기도 했고, 만나지도 못했고... 그러고보니 그 아저씨, 지금은 몇 살이려나. 잘 지낼까 모르겠네.
"그래도 꽤 좋은 사람이었는데. 만날 때마다 맛있는 거 먹었거든. 체리라던가, 수박화채도 해줬었고." "근데.... ....어쩌다 못 만나게 됐더라? 그것까진 기억이 안 나네... 잘 살고 있을라나."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네. 아아~ 어쩐지 무진장 그리운 기분이 됐다.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퐁퐁 솟아난다구. 마-사바랑 사-미랑 지냈던 것도. 어쩐지 잔뜩 향수에 젖어버린 느낌. 조금 아련하게 웃으면서 죽순과자...를 먹는 척하다 유우가의 감땅콩을 탐한다. 우헤헤, 이것도 맛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