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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이런데 안 올 것 같은데라는 그 말에 은우는 윽. 소리를 내면서 시선을 회피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는 굳이 혼자서 이런 곳까지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아주 가끔. 정말로 가끔. 좋아하는 게임이나, 혹은 이곳에서만 파는 물건을 살 때는 가끔 오긴 하지만, 굳이 이런 곳까지 나오는 일은 잘 없었다. 그렇기에 차마 그녀의 말을 부정하진 못하고 그는 아랫입술만 약하게 깨물었다.
"세은이랑 나온 거 아니야. 그 녀석. 조만간에 여자애들과 겨울 옷 쇼핑할 거니까 오빠는 끼이지 마. 라고 하면서 끼워줄 마음이 전혀 없단 말이야. 물론 나도 끼일 생각 없어. 애초에 세은이와 쇼핑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니야."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부정했다. 물론 가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자신의 여동생과 함께 쇼핑을 하긴 하지만, 그것도 아주 가끔이었다. 나이를 먹은 남매는 자연스럽게 따로따로 다니기 마련이었으니까. 이어 그는 숨을 후우 내뱉으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보라가 물건을 같이 사자고 해서 말이야. 그래서 같이 왔어. 잠깐 인사하고 올 곳이 있다고 해서 여기서 기다리는 중이고. ...그보다 말이야."
이어 그는 가만히 혜우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후우 내뱉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어 그는 살며시 시선을 회피한 후에, 조금은 딱딱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일단 눈 감아주기는 했고, 크리에이터 쪽에서도 일단은 지켜보라고 이야기를 해서 크게 신경을 안 쓰는데... 그 애.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도 될까? 데리고 간 애 있잖아. 리버티 중에서."
"나도 플레어와 쇼핑 가고 그러진 않거든? 어느 정도 친분이 있으니까 가는 거야. 디스트로이어도 싫어. 크리에이터 아저씨가 함께라면 모를까."
자신도 사람은 가린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애초에 디스트로이어와 크리에이터와 함께 쇼핑을 가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살다보면 한번은 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면 퍼스트클래스가 전원이 다 모여서 쇼핑을 가는 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괜히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자신의 물음에 대한 대답에 대해 알아서 뭐할 거냐는 물음에 은우는 가만히 혜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알아서 뭐하진 않아. 그저 이유 정도는 묻고 싶은 것 뿐이야. 리버티의 멤버들의 죄목을 하나하나 나도 들어서 체크했지만, 그 빨간 머리 녀석은 특별히 사람을 죽이거나 공격한 것은 없어보이거든. 물론 그 능력의 영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긴 했지만... 그건 따지고 보면 민우 그 바보 녀석이 저지른 일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딱히 그쪽으로 뭐라고 할 마음은 없어."
이전 2학구에서 있었던 대형 참사를 떠올리면서 은우는 작게 혀를 찼다. 아직도 그때의 순간은 그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바보 자식. 그런 말을 혼자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그는 눈을 감았다.
"거기다가 그 애. 호문쿨루스라서 ID카드도 없잖아. ...여러모로 보증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네가 데리고 간 이유가 나쁜 쪽이 아니라면 도와줄까 싶어서 말이야. 물론 네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은 부장으로서 이유는 듣고 싶어. 왜 그렇게 데리고 간거고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
그 녀석에게 뭐가 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는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의외로 뭔가 날카로운 부분이 콕 찔린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혜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은 그때 현장의 책임자 중 한 명이며, 알아야만 했다. 어쨌건 이들은 저지먼트 부원이었고, 자신은 부원들의 행동을 책임지는 입장이었으니까. 리버티는 인첨공을 무너뜨리려고 한 이들. 그 중 하나를 빼돌렸다고 한다면 그 이유 정도는 자신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혜우는 쉽사리 말할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일행이 있어서 길게 시간은 뺄 수 없지만... 조금이라면."
어차피 보라도 자리를 비웠으니 자신도 잠깐 자리를 비워도 상관없겠지. 하지만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핸드폰을 꺼낸 후에 보라에게 톡으로 '부원을 만나서 잠깐 나도 다녀올게. 볼일이 끝나면 연락할게. 천천히 와' 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보라에게서 '그럼 나도 조금 더 수다 떨다가 갈게~' 라는 메시지가 들어왔고 은우는 그 메시지를 읽으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그렇게 물으며 은우는 그녀의 뒤를 천천히 뒤따라가려고 했다.
"그건 그렇고... 어릴 적의 너는 이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뭐... 어린 시절의 너를 그렇게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세은이가 어찌나 말 걸지 말라고 하던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세은이에게까지 아양을 떨 필요가 있었냐라는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 적어도 자신이 본 그녀의 모습은 세은이와 함께 있는 모습 정도였다. 밖에서의 모습은 알 길이 없었다. 딱히 어릴 때의 자신과 혜우는 그렇게 많은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집에서 봤을 때 인사를 한 정도였으니까. 집에서 세은이와 놀 때의 모습밖에는 보지 못했기에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쨌든 여성 옷 매장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뒤를 따라 그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옷을 살 생각인걸까? 적당히 보이면 들어갈거라는 말을 하지만, 아예 목적없이 여기에 오진 않았을테니 대충 이것저것. 겨울 용품을 사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그는 판단했다.
"밖에서의 네 모습은 솔직히 내가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당시에는 나도 어린아이였고,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았기 때문에... 별로 본 적도 없었고..."
세은이에게 물어봐야하나?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은우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굳이 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 꼴'이라는 말로 보아 그다지 좋은 일은 없었던 것 같으니 서로간에 아픈 것을 굳이 꺼낼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옷 사려고? 아. 저쪽에 있는 것들이 신상품인 것 같던데. 아까 전에 이 가게도 대충 본 것 같은데... 뭐였더라. 상의 하의 세트로 사면 10% 할인이었던가 그런 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옷 같이 봐주면 돼?"
아니면 적당히 기다려줘? 그렇게 물어보면서 가시 돋힌 말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는 태연하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딱히 신경 쓰일 것도 없다는 듯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의 버튼을 누르지 말아주세요! 혜우주!! 8ㅁ8 물론 곧 자러 가긴 할 것 같아요. 적어도 2시 전에는? 사실 지금은 게임실황 방송 보고 있어서 아주 조금 늦게 잘 것 같지만..그래도 2시는 안 넘길 것 같네요. 내일 아침 출근하려면 그 이상 늦게 자면 안돼. (진지)
"아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잖아. 나에게 한마디도 한 적이 없는데. 내가 마음 속을 읽는 능력자도 아니고. 반대로 너도 세은이가 그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랐잖아."
결국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이건 사정이건 알 길이 없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 아니냐는 듯이 은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적어도 자신은 혜우에게 그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었고, 그 어떤 상담도 요청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말하는 것은 왜 자신의 속마음을 몰라주냐는 식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걸 자신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이건 조금 억울하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지는 말. 들을 말만 다 들으면 그만이지 않냐는 그 말에 은우는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가만히 혜우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분명하게 하고, 뭘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분명해 이야기해. 지금 네 모습. 마음 속에 1에서 100중에서 하나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맞추라고 하고 왜 못 맞추냐고, 그것도 모르냐고. 자신을 알 생각이 있긴 하냐고 따지는 것 같아. 역으로 너는 내가 지금 생각하는 숫자를 맞출 수 있어?"
어느 정도는 따지는 내용이었으나, 그래도 목소리에 언성은 올라가지 않았다.
"분명하게 물어서 원하는 것이 뭐야? 그것부터 확실하게 들어볼게. 지금 일이건, 다른 일이건. 혼자 있고 싶으니까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갈거고, 화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분명하게 얘기해줘."
/어...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아슬아슬한 분위기인데... 아마 경우에 따라서는 진짜 바로 일상이 끊어질 것 같네요. 은우 입장에선 지금 이 상황은 진짜 말 그대로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말한건 진짜 한마디도 없는데 왜 몰라주느냐 라고 따지는 것처럼 들릴 것 같기에.. 물론 은우가 화를 내진 않지만,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라는 생각밖엔 안 날 것 같아서...(절레절레)
괜히, 심사가 뒤틀려서 괜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딱 한 순간만 참았으면 괜찮았을 것이었다. 끝끝내 고쳐지지 못 할 빌어먹을 불화성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으니 정중히 사과한 뒤 사정 설명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방금까지는.
[나에게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었는데.]
그의 말 중에 그 한 마디가 귓가로 꽂혔다. 그가 억울한 만큼 나 또한 반박할 말이 떠올랐다.
내가- 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을 끝내려 했는지. 왜, 그를 상대로 신경 안 쓸거라고 먼저 생각해버렸는지.
사과를 할 때는 하더라도 그것만큼은 말해야겠다.
나는 성의 없이 옷을 만지던 손을 행거에서 내려 늘어뜨리고 천천히, 그를 향해 돌아섰다. 그를 향하는 내 얼굴은 딱히 화가 난 표정도, 짜증 난 표정도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마주하는 것 만으로 혀끝이 씁쓸해질 것 같은 바닥에 내리 깔린 듯, 그늘 드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장님이 먼저, 관심 없다고 하셨었잖아요. 내가 무슨 일을 겪었고, 어떤 삶을 살았건, 관심 없다고,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그 왜, 성하제 전에, 쓰레기통에서 주운 편지를 들고 찾아갔던 날."
목소리도 표정만큼이나 차분했다. 어조가 가라앉았긴 했지만.
"그 때는 먼저 끊어놓고, 이제 와서는 왜 말을 안 하냐 닥달하시네요. 부장님. 그 때는 여유가 없어서 안 들어줬지만 이제는 이렇게 느긋하게 쇼핑도 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으니 슬슬 내 얘기도 들어주겠다 이건가요? 감사하기도 하셔라. 나야말로 독심술사가 아니라 통탄스럽고 죄송스럽네요. 부장님 마음씀씀이 하나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 하는 머저리라서."
거기까지 말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생각을 쏟아내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똑바로 들고, 음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원하는 거,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여기서 먼저 인사했던 것도 그 애 얘기도 예전의 내가 어땠느니 한 것도 부장님이잖아요. 굳이 부장으로써라는 명분까지 꺼내며 그 애 얘기를 들으려고 한 사람은 부장님이었잖아요. 그럼 그 얘기만 들으면 그만 아닌가요? 왜 나에 대한 걸로 말이 튀어요? 뭐, 이제 와서 관심이라도 생겼어요?"
그늘진 얼굴이 쓴 웃음을 지었다.
"부장님이야말로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확실히 해주세요. 제발."
말을 끝낸 내가 입을 딱 다무는 순간, 가게 안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은 기분 탓일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