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샤워하려다 물줄기에 흠칫했다. 또 트라우마 생겼나;;;;;;;;;; 웨이버 그 망할 물수박!!!! 바로 끄고 쪼그려 앉았다. 이런 주제에 거인을 무는 개미는 무슨...
내가 껴서 나아진 상황이 하나라도 있었나? 아니. 안경에다 사이코메트리를 써서 내 활동 내역을 샅샅이 되짚어 봐도 정신승리할 건덕지조차 없었다. 검은 샹그릴라?? 어떻게든 써먹어 보려 했더니 플라스틱 모형이었고, 실험 막을 방도도 못 찾아서 애꿎은 차일드 에러들이 실험당했다. 그나마 생산 시설 발견하고 새봄이가 먹을 거로 바꿔 줘서 한숨 돌렸더니만 이미 리버티한테 뿌려 댈 정도로 넉넉했고!!! 뉴트로미니컬 에너지는 또 어떻지?? 선배가 그 에너지에 주목한 순간 이후 줄곧 전전긍긍했는데, 여차하면 생산 중단 및 폐기도 고려해야 한다는 보고서도 썼었는데, 아무 소용 없었잖아...... 정식 부원이 된 뒤로 입증된 건 딱 하나다. 내 능력도, 존재도 저지먼트엔 있으나 마나라는 것. 내가 껴서 보탬이 될 부분을 억지로라도 찾아보자면, 머릿수가 하나는 는다는 건데;;;; 퍼클들이 모두 협력한다면, 부장 포함 저지먼트에서 5~6명만 출동해도 머릿수가 모자라서 곤란해지진 않을 거 같다. 이제까지 수적으로 밀린 적은 없었으니...(수박씨도 헌터 대장인데 헌터 1명도 동원 안 했는걸...;;;;;) 더구나 머릿수도 머릿수 나름이라, 5~6명 중에 1명이 나면 매우 난감하지만 나머진 베테랑들인걸.
그렇다고 꼈을 때 나한테 이점이 있나? 역시 아니. 일단 부장 말씀마따나 이승 탈출 넘버원 각이다. 저지먼트 전원이 덤벼도 공격 하나 비껴가는 게 고작이던 그때보다 약해지지 않고서야 대처 한 번 하기도 어렵겠지. 그 위험을 눈막귀막하고 생각해도, 급박한 상황에 버벅거리다 무력감만 지겹도록 느낄 미래가 보인다. 거기까진 내가 무능하고 머리도 나쁜 대가라 치자. 근데 선배가 다치면?? 근데도 아무것도 못하면???
물론 막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어 멘탈 작살난 주제에 선배한테 큰소리도 쳤다. 근데...... 암만 궁리해 봐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부장 말씀마따나 그네들이 12월 말에 일을 터뜨릴 작정이라 쳐도, 그게 자기 취향에 꼭 맞는 날짜에 예술적으로 날리자고 대기 타는 변태 취향이라서가 아니라면, 지금은 준비가 덜 됐다는 의미일 텐데, 그러니 맞서자면 저쪽 준비가 끝나기 전에 수를 쓰는 게 그나마 상책일 텐데(폭파 직전인 시한 폭탄을 박형오가 있는 그 실험실로 텔포시키는 미친 방법도 상상해 봤다. 살인 기도이기 이전에 내가 텔포 능력자가 아니라 못한다......;;;;;;) 3주 동안 손놓고 있자는 결론이었잖아.
이래저래 환장할 노릇인데 머리까지 돌아 버렸는지, 한편으론 행복회로스러운 예감도 든다. 내가 뭘 해도 소용없긴 한데, 반대로 아무것도 안 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그 예감이 뭣에 씐 것처럼 강렬해서, 한 달간 인첨공 주요 관광지를 투어하고 돌아오면 다 해결된 뒤일 거라는 기대까지 들 거 같다. 더 노골적으로는, 선배도 말리고 싶어진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일을 꼭 내가 할 필요는 없다고. 난 다른 거 모르겠고 선배가 안 다치기만 바란다고.
하지만, 돌아버린 머리로도, 알겠다. 말려선 안 된다. 말려지지도 않을... 아니, 기적적으로 말려진대도 그게 선배를 망가뜨리고 말 거다. 선배가 다칠까 무섭지만, 상상만 해도 피가 마르는 듯하지만, 안 된다. 못 말린다......
별수 있나? 내가 바뀔 밖에. 0명스러운 1명이라 멘탈 나가든, 쥐어터져서 너덜해지든, 아득바득 버텨야지. 죽어도 선배마저 망가뜨리진 않도록. 한숨과 함께 웃으려니, 토실이가 품에서 꼬물거렸다. 처음 만난 그날처럼 빵싯 웃는 것도 같았다. 그런 토실일 꼭 끌어안으며 마저 다짐했다. 만약에 만약에 살아남으면, 저지먼트는 퇴부할래. 글고 내가 한 사람 몫은 한다고 마음 놓을 수 있는, 다른 분야를 찾아볼래! 저지먼트론 무능해도 내 인생을 이끌어 갈 순 있으니까!! 일단 죽을 동 살 동 챙겨온 고철들(???)을 써먹을 방법부터 찾아봐야겠다.
은우의 일상 90%가 항상 부실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쇼핑몰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은우도 일단 겨울 물품 정도는 사야 할테니까. 하지만 은우가 혼자서 쇼핑몰에 올 확률은 상당히 적을 것 같으니..다이스야! 답을 알려줘!
.dice 1 5. = 4 1.세은이와 쇼핑을 와서 잠깐 별개 행동중 2.그런 거 없이 그냥 혼자 물건 보러 온 상태 3.디스트로이어와 크리에이터와 함께 물건 보러왔다가 별개 행동중 4.레드윙과 함게 물건 보러왔다가 별개 행동중 5.그냥 단순하게 추위를 피해서 들어온 상태
플레어:...나는 왜 없어? 은우:우리가 따로 쇼핑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해. (진지)
이곳은 제 3학구에 있는 거대 쇼핑몰이었다. 평소의 은우라면 굳이 이곳에 방문하는 일은 잘 없었지만,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온 것이었다. 이른바 제 4학구의 아이돌인 보라와 함께 그는 이곳에 방문했다. 겨울이 다가왔으니 겨울 물건이라도 사자는 보라의 제안에 은우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했다. 슬슬 자신도 이것저것 구입하긴 해야 했으니까. 뭔가 대부분이 옷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이외에도 이런저런 용품은 필요한 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보라와 함께 쇼핑몰로 온 은우는 정말 이곳저곳을 다양하게 다녔다. 물론 은우의 예상대로 대부분이 보라가 입을 옷이었다. 어쩌다보니 짐이 점점 많아지긴 했으나, 보라는 딱히 은우에게 짐을 들게 하지 않고 택배 서비스를 이용해서 모조리 자신의 집으로 배달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렇기에 은우의 두 손이 짐으로 가득 찰 일은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3시간 정도 쇼핑을 하던 보라는 잠깐 이곳 담당자에게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하며 자리를 비웠다. 자연히 혼자 남은 은우는 다녀오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곳에서 조용히 서성였다. 금방 오겠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아마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그러던 와중, 그의 눈에 보이는 이가 있었다. 혜우의 모습이었다. 어라. 저 애가 왜? 세은이와 쇼핑왔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별 생각없이 혜우를 바라보면서 그녀를 불렀다.
혼자서는 이런데 안 올 것 같은데라는 그 말에 은우는 윽. 소리를 내면서 시선을 회피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는 굳이 혼자서 이런 곳까지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아주 가끔. 정말로 가끔. 좋아하는 게임이나, 혹은 이곳에서만 파는 물건을 살 때는 가끔 오긴 하지만, 굳이 이런 곳까지 나오는 일은 잘 없었다. 그렇기에 차마 그녀의 말을 부정하진 못하고 그는 아랫입술만 약하게 깨물었다.
"세은이랑 나온 거 아니야. 그 녀석. 조만간에 여자애들과 겨울 옷 쇼핑할 거니까 오빠는 끼이지 마. 라고 하면서 끼워줄 마음이 전혀 없단 말이야. 물론 나도 끼일 생각 없어. 애초에 세은이와 쇼핑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니야."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부정했다. 물론 가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자신의 여동생과 함께 쇼핑을 하긴 하지만, 그것도 아주 가끔이었다. 나이를 먹은 남매는 자연스럽게 따로따로 다니기 마련이었으니까. 이어 그는 숨을 후우 내뱉으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보라가 물건을 같이 사자고 해서 말이야. 그래서 같이 왔어. 잠깐 인사하고 올 곳이 있다고 해서 여기서 기다리는 중이고. ...그보다 말이야."
이어 그는 가만히 혜우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후우 내뱉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어 그는 살며시 시선을 회피한 후에, 조금은 딱딱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일단 눈 감아주기는 했고, 크리에이터 쪽에서도 일단은 지켜보라고 이야기를 해서 크게 신경을 안 쓰는데... 그 애.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도 될까? 데리고 간 애 있잖아. 리버티 중에서."
"나도 플레어와 쇼핑 가고 그러진 않거든? 어느 정도 친분이 있으니까 가는 거야. 디스트로이어도 싫어. 크리에이터 아저씨가 함께라면 모를까."
자신도 사람은 가린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애초에 디스트로이어와 크리에이터와 함께 쇼핑을 가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살다보면 한번은 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면 퍼스트클래스가 전원이 다 모여서 쇼핑을 가는 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괜히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자신의 물음에 대한 대답에 대해 알아서 뭐할 거냐는 물음에 은우는 가만히 혜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알아서 뭐하진 않아. 그저 이유 정도는 묻고 싶은 것 뿐이야. 리버티의 멤버들의 죄목을 하나하나 나도 들어서 체크했지만, 그 빨간 머리 녀석은 특별히 사람을 죽이거나 공격한 것은 없어보이거든. 물론 그 능력의 영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긴 했지만... 그건 따지고 보면 민우 그 바보 녀석이 저지른 일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딱히 그쪽으로 뭐라고 할 마음은 없어."
이전 2학구에서 있었던 대형 참사를 떠올리면서 은우는 작게 혀를 찼다. 아직도 그때의 순간은 그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바보 자식. 그런 말을 혼자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그는 눈을 감았다.
"거기다가 그 애. 호문쿨루스라서 ID카드도 없잖아. ...여러모로 보증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네가 데리고 간 이유가 나쁜 쪽이 아니라면 도와줄까 싶어서 말이야. 물론 네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은 부장으로서 이유는 듣고 싶어. 왜 그렇게 데리고 간거고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
그 녀석에게 뭐가 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는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의외로 뭔가 날카로운 부분이 콕 찔린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혜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은 그때 현장의 책임자 중 한 명이며, 알아야만 했다. 어쨌건 이들은 저지먼트 부원이었고, 자신은 부원들의 행동을 책임지는 입장이었으니까. 리버티는 인첨공을 무너뜨리려고 한 이들. 그 중 하나를 빼돌렸다고 한다면 그 이유 정도는 자신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혜우는 쉽사리 말할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일행이 있어서 길게 시간은 뺄 수 없지만... 조금이라면."
어차피 보라도 자리를 비웠으니 자신도 잠깐 자리를 비워도 상관없겠지. 하지만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핸드폰을 꺼낸 후에 보라에게 톡으로 '부원을 만나서 잠깐 나도 다녀올게. 볼일이 끝나면 연락할게. 천천히 와' 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보라에게서 '그럼 나도 조금 더 수다 떨다가 갈게~' 라는 메시지가 들어왔고 은우는 그 메시지를 읽으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그렇게 물으며 은우는 그녀의 뒤를 천천히 뒤따라가려고 했다.
"그건 그렇고... 어릴 적의 너는 이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뭐... 어린 시절의 너를 그렇게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세은이가 어찌나 말 걸지 말라고 하던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세은이에게까지 아양을 떨 필요가 있었냐라는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 적어도 자신이 본 그녀의 모습은 세은이와 함께 있는 모습 정도였다. 밖에서의 모습은 알 길이 없었다. 딱히 어릴 때의 자신과 혜우는 그렇게 많은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집에서 봤을 때 인사를 한 정도였으니까. 집에서 세은이와 놀 때의 모습밖에는 보지 못했기에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쨌든 여성 옷 매장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뒤를 따라 그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옷을 살 생각인걸까? 적당히 보이면 들어갈거라는 말을 하지만, 아예 목적없이 여기에 오진 않았을테니 대충 이것저것. 겨울 용품을 사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그는 판단했다.
"밖에서의 네 모습은 솔직히 내가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당시에는 나도 어린아이였고,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았기 때문에... 별로 본 적도 없었고..."
세은이에게 물어봐야하나?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은우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굳이 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 꼴'이라는 말로 보아 그다지 좋은 일은 없었던 것 같으니 서로간에 아픈 것을 굳이 꺼낼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옷 사려고? 아. 저쪽에 있는 것들이 신상품인 것 같던데. 아까 전에 이 가게도 대충 본 것 같은데... 뭐였더라. 상의 하의 세트로 사면 10% 할인이었던가 그런 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옷 같이 봐주면 돼?"
아니면 적당히 기다려줘? 그렇게 물어보면서 가시 돋힌 말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는 태연하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딱히 신경 쓰일 것도 없다는 듯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의 버튼을 누르지 말아주세요! 혜우주!! 8ㅁ8 물론 곧 자러 가긴 할 것 같아요. 적어도 2시 전에는? 사실 지금은 게임실황 방송 보고 있어서 아주 조금 늦게 잘 것 같지만..그래도 2시는 안 넘길 것 같네요. 내일 아침 출근하려면 그 이상 늦게 자면 안돼. (진지)
"아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잖아. 나에게 한마디도 한 적이 없는데. 내가 마음 속을 읽는 능력자도 아니고. 반대로 너도 세은이가 그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랐잖아."
결국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이건 사정이건 알 길이 없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 아니냐는 듯이 은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적어도 자신은 혜우에게 그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었고, 그 어떤 상담도 요청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말하는 것은 왜 자신의 속마음을 몰라주냐는 식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걸 자신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이건 조금 억울하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지는 말. 들을 말만 다 들으면 그만이지 않냐는 그 말에 은우는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가만히 혜우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분명하게 하고, 뭘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분명해 이야기해. 지금 네 모습. 마음 속에 1에서 100중에서 하나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맞추라고 하고 왜 못 맞추냐고, 그것도 모르냐고. 자신을 알 생각이 있긴 하냐고 따지는 것 같아. 역으로 너는 내가 지금 생각하는 숫자를 맞출 수 있어?"
어느 정도는 따지는 내용이었으나, 그래도 목소리에 언성은 올라가지 않았다.
"분명하게 물어서 원하는 것이 뭐야? 그것부터 확실하게 들어볼게. 지금 일이건, 다른 일이건. 혼자 있고 싶으니까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갈거고, 화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분명하게 얘기해줘."
/어...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아슬아슬한 분위기인데... 아마 경우에 따라서는 진짜 바로 일상이 끊어질 것 같네요. 은우 입장에선 지금 이 상황은 진짜 말 그대로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말한건 진짜 한마디도 없는데 왜 몰라주느냐 라고 따지는 것처럼 들릴 것 같기에.. 물론 은우가 화를 내진 않지만,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라는 생각밖엔 안 날 것 같아서...(절레절레)
괜히, 심사가 뒤틀려서 괜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딱 한 순간만 참았으면 괜찮았을 것이었다. 끝끝내 고쳐지지 못 할 빌어먹을 불화성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으니 정중히 사과한 뒤 사정 설명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방금까지는.
[나에게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었는데.]
그의 말 중에 그 한 마디가 귓가로 꽂혔다. 그가 억울한 만큼 나 또한 반박할 말이 떠올랐다.
내가- 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을 끝내려 했는지. 왜, 그를 상대로 신경 안 쓸거라고 먼저 생각해버렸는지.
사과를 할 때는 하더라도 그것만큼은 말해야겠다.
나는 성의 없이 옷을 만지던 손을 행거에서 내려 늘어뜨리고 천천히, 그를 향해 돌아섰다. 그를 향하는 내 얼굴은 딱히 화가 난 표정도, 짜증 난 표정도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마주하는 것 만으로 혀끝이 씁쓸해질 것 같은 바닥에 내리 깔린 듯, 그늘 드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장님이 먼저, 관심 없다고 하셨었잖아요. 내가 무슨 일을 겪었고, 어떤 삶을 살았건, 관심 없다고,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그 왜, 성하제 전에, 쓰레기통에서 주운 편지를 들고 찾아갔던 날."
목소리도 표정만큼이나 차분했다. 어조가 가라앉았긴 했지만.
"그 때는 먼저 끊어놓고, 이제 와서는 왜 말을 안 하냐 닥달하시네요. 부장님. 그 때는 여유가 없어서 안 들어줬지만 이제는 이렇게 느긋하게 쇼핑도 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으니 슬슬 내 얘기도 들어주겠다 이건가요? 감사하기도 하셔라. 나야말로 독심술사가 아니라 통탄스럽고 죄송스럽네요. 부장님 마음씀씀이 하나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 하는 머저리라서."
거기까지 말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생각을 쏟아내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똑바로 들고, 음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원하는 거,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여기서 먼저 인사했던 것도 그 애 얘기도 예전의 내가 어땠느니 한 것도 부장님이잖아요. 굳이 부장으로써라는 명분까지 꺼내며 그 애 얘기를 들으려고 한 사람은 부장님이었잖아요. 그럼 그 얘기만 들으면 그만 아닌가요? 왜 나에 대한 걸로 말이 튀어요? 뭐, 이제 와서 관심이라도 생겼어요?"
그늘진 얼굴이 쓴 웃음을 지었다.
"부장님이야말로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확실히 해주세요. 제발."
말을 끝낸 내가 입을 딱 다무는 순간, 가게 안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은 기분 탓일까, 아니었을까.
크게 불러볼까 했지만, 양손 무겁게 서류같은걸 들고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인수인계를 받고있는 모양이다. 퍼스트 클래스가 사라진 저지먼트의 힘은 조금 깎일지도 모르나, 다수의 5레벨과 똑부러지는 부장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운영되겠지. 우리의 똑부러지는 오목눈이는 부장에게서 완벽한 인수인계를 받고 더없이 완벽한 부장이 될테다. 그렇게 되면 지적인 사람이 된 이청윤은 조금 더 딱딱해질지도 모르고, 그러면 재미없는 사람이...
그렇게 만들 순 없지!!!
머릿속에 헛소리가 생각난 것과 동월이 땅을 박찬 것은 거의 동시였다. 푸슝, 하고 뛰쳐나간 동월이 그녀의 옆을 지나며 칼자루를 이용해 서류를 올려치려 했고, 그게 성공했다면 떠오른 서류 뭉치를 동월이 받아들고서... 튀었을 것이다.
" 러닝백 스프린트!!!!!!!!!! "
미식축구도 해본 적이 없으니 러닝백이 뭐하는지도 모르긴 하지만, 일단 이렇게 공 들고 냅다 뛰는 역할일거라 생각하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미안하다 청윤아...! 하지만 나는 네가 재미없는 부장이 되는건 바라지 않는다...! (그럴 일이 없겠지만)
바람구멍이라니! 살벌한 경고에 동월은 죽을때까지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직 할 일이 그렇게나 많은데! 벌써부터 바람구멍이 나서 고꾸라지는건 사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쫓기는 와중에도 동월의 입은 쉬는 줄을 몰랐다. 뒤에 있는 청윤에게 거의 소리치듯이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 야! 차기 부장! 인수인계 안빡세냐! "
그것은 단지 말만 놓고 보면 힘들어하는 친구를 격려하는 것 같지만... 현재의 상황이나, 목소리의 크기를 보면 그런 상황이 쉬이 그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해도 정말 평생 뛸 수는 없는 법. 게다가 페이스 조절따윈 하지도 않고 완전 전력질주로 달리고 있으니, 인간의 체력상 한계가 찾아오는 법이었다.
" 괜찮아! 난 리라를 믿어! "
대체 어디를, 왜 믿는건진 모르겠지만... 아마 이 얘기를 리라가 들었다간 동월 추격자가 한명 더 늘어나겠지. 리라에게 가혹한 일이 생기는 것을 싫어할만한 한 명이 더 낄지도 모르겠다.
" 이 서류가 세상에서 사라질 때 까지! "
...라는 공약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로부터 잠시 뒤에, 동월은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동월의 지근거리까지 청윤이 다가왔다면, 그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띄게 어두워진... 아니, 아무것도 없이 그저 검은색만이 보이는 창밖과, 겨울이라고 해도 소름이 돋을만큼 한기가 주변에 드리운 것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다리나 팔에 난다면야 어떻게든 지혈로 살 수 있겠지만, 보통은 그걸 단순하게 '바람 구멍이 났다' 정도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난데없이 펼쳐진 이상현상에, 어느샌가 끝이 보이지 않게 된 복도를 마주하게 된 동월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학교에서까지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요새들어 활동 범위가 넓어지는 괴이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저지먼트 부원들도 괴이를 꽤나 많이 경험하게 되어... 이제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찾는게 더 빠를 정도였다.
" 가끔 들어본 적 있지? 흔적도 뭣도 없이 실종돼서 사라진 사람들 얘기. "
인터넷을 둘러보다보면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음모론, 괴담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혜우의 설명을 들으면서 은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은 분명히 그때 그런 의미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일일히 설명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적당히 무마시키는 것이 좋을지. 그는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되었건 변명이 되고, 뭐가 되었건 의견이 충돌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허나 일단 확실한 것을 그녀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지금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 네가 여기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겪었고, 어떤 삶을 살았건 그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어. ...나도 내가 여기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겪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줄 생각은 없고. ...뭐, 반강제로 다 알려져버린 것 같지만 말이야. 어쨌든... 그 말은 너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야. ...단지,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지금의 너야. 과거의 네가 아니라. 인첨공 밖의 혜우라는 애를 알아봐야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탄밖에는 안 나올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지금의 네가 아니면 솔직히 관심이 없어. 그건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야. 네가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건, 어떤 삶을 살고 밖에서 무슨 일을 겪었건... 너는 너. 천혜우. 그게 내 지론이야. 적어도 난 그래. 다른 부원들도 다 마찬가지야. 지금 있는 그 모습이 내가 이끄는 부원들이고, 나랑 3년차 저지먼트 생활을 한 동기들이야. 나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 아이들을 보고 싶고, 대하고 싶으니까."
어설프게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느니, 상처가 있으면 감싸주겠다라던가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지금도 은우에겐 없었다. 애초에 자기 자신부터가 자신이 겪은 일들을 누군가에게 위로받을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가 그때 힘들지 않았어요? 라고 말한들 은우는 입은 다물고 그저 쓴 웃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그에게 있어선 중요했고, 과거는 굳이 되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자신은 그게 안되어서 곤란하지만.
"하지만 그 말이 너에게 상처가 되었고 매정하게 들렸다고 한다면 그건 사과해야겠지. 미안. 그 부분은 내가 좀 더 섬세하게 대할게. 어쨌든 그 얘기만 들으면 그만일리가 없잖아. 여기서 세은이의 친구를 사적인 시간에 우연히라도 만났으니까 당연히 이것저것 나도 말하고 싶어진다고. 뭐... 그 붉은머리는 여러모로 나도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일단은 묻는 것이기도 하고... 하... 망할 디스트로이어."
자세한 상황은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는 듯, 그는 괜히 혀를 차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어 그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래도 이건 확실히 이야기할게. 네 옛날 이야기나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아니. 정확히는 부원들의 옛날 이야기는 관심이 없지만, 지금의 부원들이나 동기들에겐 관심이 많아. 평소에 뭘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지금 이 상황을 어쩔까라던가... 그런 것들. ...상황이 좋다면 조금 더 사적인 시간을 보내보고 싶지만... 미안. 지금은 머리가 좀 여러모로 복잡해서. 그래서 솔직히 순수하게 완전히 즐기기는 힘들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는 은우의 표정엔 씁쓸함이 가득 녹아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물론 티는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부원들과의 기본적인 교류도 원하고, 지금의 부원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이거야. 너나 새봄이나 정하나 아무튼 너희는 세은이의 어릴적 친구잖아. 세은이 녀석이 말도 못 붙이게 막아서 뭐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신경은 쓰고 있다고. 세은이와 잘 지내줘서 고맙습니다라던가... 세은이가 신세 많이 졌습니다라던가... 아. 이건 좀 다른가. 복잡하네. 아무튼 너희들에게 관심없는 것은 아니야.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입시형 커리큘럼이 진짜로 출석으로 인정받게 됐단다. 마침 잘됐다고 부실에 짱박아 뒀던 고철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포세이돈의 겉면 쪼가리랑 파이프 쪼가리. 초능력이 안 통하게 만든 거래서 별별 생쇼 다 해가며 챙겼으니, 이걸로 방패든 슈트든 총알이든 만들 수 있었으면 했다. 근데 연구원한테 얘기하자마자 욕부터 먹었다. 우리 연구소는 ESP 계열의 초능력을 연구하는 데지, 전투 장비 제작하는 데가 아니란다. 기한도 터무니없고 뭐 하자는 짓거린지 모르겠다는 말에 커리큘럼 싫어서 꼬장 부리는 거냔 말까지 나왔다.
막막했다. 어떻게 설득한다? 고민하다가 도저히 방법이 안 떠올라서, 또 연구원도 알 건 알아야 한다 싶어서 그간의 얘길 털어놓았다. 템빨이라도 없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로 0이라서 부탁하는 거라고. 근데 한참 진지하게 듣던 연구원이 돌연 심드렁한 얼굴로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사실이면 안티스킬에 신고하든, 언론에 터뜨리든 공론화해서 인첨공의 지도층이 대처하게 할 일이라고. 인첨공의 지도층 역시 능력자고 민간인이고 모조리 학살할 계획이래도, 지들이 살해당하긴 싫을 테니 조치를 취하지 않겠냐고 박형오가 유니온의 위크니스랬는데, 그럼 인첨공의 지도층이 버튼 한 번 누르면 유니온은 끝이라고. 인첨공의 지도층도 유니온도 학살에 미쳐 있다면 한쪽이라도 확실히 끝낸 뒤 대처하는 게 낫다고.
말문이 막혔다. 대표이사나 오맨들이 유니온의 속셈을 알기만 하면, 그래서 제로 시리즈가 자기네 명령이 아니라 유니온 말만 듣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유니온과 제로 시리즈를 다 없애지 않을까? 그러면 자기네가 확보한 병기도 없어지니, 학살 계획을 밀어붙이기도 어려워질 거 같은데?? 유니온만 아니면 제로 시리즈가 자기네 말을 들으리라 기대하고 유니온만 없앤대도, 지금보다는 상황이 낫잖아??? 내가 사람 죽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나락 인성이 돼서 이런 생각 드나????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연구원이 더 퍼부었다. 다 집어치우고 간다 쳐도 거기서 니가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접촉해서 정보 캐내는 거밖에 못 하는데, 듣자니 정보 캐고 앉았을 상황도, 정보 캐서 득 볼 만한 상황도 아니겠다고. 이대론 죽는댔지만, 넌 템 둘둘해 봤자 민간인1 피지컬이라 죽는다고. 퍼클도 나서고 저지먼트의 전투 능력자 다 출동하면 차라리 가만있는 편이 생존 확률 높다고. 그러더니 0명이나 다름없는 거 알면서도 고집 부리는 이유가 대체 뭐냐더라. 도저히 노 이해라면서.
그러게. 나도 어이없다, 연구원 말 맞말 하면서도 이러고 있는 내가. 1도 대꾸 못 하고 웃는데 연구원이 정곡을 찔렀다. 설마하니 남친 때문이냐 한마디에 온몸이 뜨끔해진 듯했다. 그러자 연구원이 아예 썩소를 지었다. 그러고 이어지는 독설. 무슨 대단한 사랑이라고 같이 죽으러 가냔 소리도 참기 힘들었지만, 남친 다칠 때 아무것도 못할 것만 걱정되고 남친이 너 땜에 다치는 거 걱정은 안 되냐는 소린... 듣자마자 비명부터 나왔다. 악을 쓰고 쓰고 또 썼다. 나도 싫고, 무섭고,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땐, 연구원이 내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이어 연구원이 말하길, 자긴 내 담당 연구원이고, 난 우리 연구소의 유일한 대능력자니, 죽으러 가는 걸 거들 생각은 없단다. 그러고 덧붙이는 말이 지금은 남친이 세상 전부처럼 느껴지겠지만 내년 4월만 되어도 지금같진 못할 거란다. 대학교는 고등학교랑 전혀 다른 세계라 내가 잊히는 건 시간 문제라면서.
내년 4월. 그 네 음절에 정신이 확 들었다. 연구원은 내년이 있으리라 확신하는구나. 하긴, 왜 안 그럴까. 나도 한 달쯤 존버 타면 이 사태가 말끔히 해결되어 있을 것만 같다는 행복회로가 쿨탐마다 팽팽 도는데. 그래서 그냥 웃었다. 웃으며 그리 잊히는 날이라도 왔으면 좋겠댔다. 그럼 다들 살아남은 거 아니겠냐고. 그랬더니 연구원이 얼척없는지 입을 못 다물더라. 내친 김에 자학 모드 작정하고 했다. 지금 나 정신 나간 걸로 보이겠다고. 근데 안 가면 정신 완전히 나갈 거 같다고. 그러니 유일한 대능력자 미치는 꼴 보기 싫으면, 뭐든 만들어 달라고 우겼다. 연구원이 뒷목을 잡았지만, 나 같아도 뒷목 잡았겠다만, 어쩌겠나.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인걸.
그런 침묵 끝에 와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연구원이 물었던 사탕을 씹어먹은 모양이었다. 이윽고 연구원은 대능력자 갑질 더럽다고, 만만한 게 자기냐고 투덜거렸다. 맞말이다. 내가 요청하면 안 들어줄 수 없으리라 배짱 부린 거니 갑질 맞지, 뭐. 그러고 있었더니, 뭐가 됐든 만들려는 시도는 해 보겠다만 비용은 알아서 하란다. 전적으로 나 개인의 일이니 연구소 차원의 지원까지 끌어내진 못하겠다고. 이번엔 정말 파산 각인가;;;;;;;;;;;;;;;;; 모르겠다. 나도 연구원도 지쳐 빠져서. 그래서 입시형 커리큘럼도 집어치우고 정맥 주사로 때웠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전달되었을까. 혹시나 또 다시 잘못 알고 있는 이가 있다면 정정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몇 명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모든 것을 다 끝낸 후로 하는 것이 좋을까.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었고, 종말은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사람들은 오늘도 시끄럽게 웃으면서 활기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해서 은우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정하에게도 말했다시피 자신은 그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지금의 평화마저도 무너질 혼란이 다가올것만 같았기에.
어쨌든 나가서 이야기를 하자는 그 말에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카페에 대해서는 조금 난감하게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카페는 힘들 것 같아. 말했다시피 일행이 있으니 말이야. 아니면 너도 함께 할래? 레드윙과 너, 동갑이잖아."
참으로 눈치가 없다못해 이놈은 왜 이러나 싶을 정도의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은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일단 밖으로 향하고 말없이 걷기만 하는 혜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은우는 괜히 반대편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말하기 곤란하면 하지 않아도 돼. 대신 이것만 답해줘.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니지?"
말 그대로 네 스스로의 신념이건, 정의건, 다른 무엇이건 당당한 것을 하고 있냐는 물음이었다. 솔직히 붉은 머리를 대체 왜 빼돌린 것인진 모르겠지만... 그녀가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크게 따질 필요는 없다고 은우는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은 곧 졸업해서 나갈 몸이기에 더 깊게 간섭할 순 없었다. 그저 제 부원들이 언제나 당당하게 떳떳하게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쇼핑몰은 안이든 밖이든 사람들로 북적이며 시끄러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엔 곧 있을 크리스마스며 연말에 대한 기대로 제각각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걸으며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무지한 사람들과, 그를 돌아보았다. 카페는 사양하면서도 동행할 것을 권하는 말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끼면 너무 눈치 없는 사람이 되는 걸요. 얘기만 마치면 갈게요."
그리고 다시 앞을 향했다. 아니, 그저 보이는 쇼핑몰의 벽을 따라 갈 뿐이었다.
이야기의 운을 뗀 것은, 떳떳함에 대해 그가 물은 후였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딱히 비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정말로 모르겠어서 그렇게 대답했다.
내가- 하고 있는, 하려는 일이 과연 떳떳한 일인지, 아닌지- 스스로는 알 수가 없어서. 그래서.
"듣고 판단해 주세요. 꾸짖음이라면 얼마든지 들을 테니."
그렇게 말하고, 계속 말했다. 걸음이 한층 느려졌다.
"부장님은 인첨공 바깥에서의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관심 없다고 했지만, 그 애를 거둔 것에 대해 말하려면 어쩔 수 없이 언급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내가 인첨공에 버려지기 전- 다섯살까지, 나는 그 애랑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였어요. 그 애는 실험체로 살았고 나는 무시와 학대와 방치 속에 살았다는 점이 다르겠지요. 인첨공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누군가에게 이름으로 불려본 적도 없었어요. 집도 가족도 없었죠. 그 집에 내 공간은 없었고, 그들 사이에 내 자리는 없었으니까요. 살아서 태어난 것. 그것이 내 죄이자 잘못이었죠, 지금도."
하.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인간으로 살고 싶었을 뿐이라는 그 애를 그냥 보낼 수 없었어요. 그 애가 누군가를 다치게 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온전히 그 애 만의 잘못일까요? 그 애는 단지 한 명의 인간으로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누구나 태어나 가지게 되는 권리를, 인정 받고 싶었을 뿐이에요. 가장 기본적인 인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죄갚음을 하라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겪어본 적도 없는 세상에게 속죄하라는 건, 너무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어요. 미안하게도 그애에게서 내가 겹쳐보였기에, 나처럼은 되지 않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 뿐이에요."
잠시 얘기를 끊었다. 그가 듣고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걸음은 느려졌으나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녀석의 뒤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일까. 아니.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좀 더 깊은 느낌도 있겠지. 물론 자신은 단순히 자신이 겹쳐보이기에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쨌건 그녀의 의도는 잘 알았기에 그는 생각을 제대로 정리했고 입을 열었다.
"호문쿨루스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내가 연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이후에 또 다시 다른 이들을 공격하거나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면 내가 그에 대해서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 같네. 너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를 도와주고 싶은 거잖아? 무슨 이유로 데리고 간 것인지는 잘 알겠어."
그는 그녀의 그 말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저지먼트 부장으로서는 이 일은 반대해야만 했다. 어찌되었건 문제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고, 그에 대해서 죄값을 치뤄야 하는 것도 맞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말 중에서 '기본적인 인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죄갚음을 하라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라는 말에 그는 크게 공감했다. 결국 그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머지않아 죽을 운명이었고, 그에 벗어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것이 그런 것 뿐이었기에 그렇게 했다라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그럼 잘 돌봐줘. 그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이는... 연구원 쪽은 내가 다 만날 수 없으니 뭐라고 하긴 힘들지만, 이쪽 관계자 중에서 있으면 내가 설득할테니까. 대신에 그 애가 뭘하려고 했었는지, 무슨 결과를 만들려고 했었는지는 분명하게 가르쳐줘. 조금 잔인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자신이 하려고 한 일, 했던 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가르쳐줘야 해. 그래야 그 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게 언제가 되었건. 당장이 되었건, 이후가 되었건. 그건 너의 선택에 맡길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은우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그래서. 걔. 이름이 어떻게 돼? 나는 딱히 들어보지 못해서. ID 카드를 만들어줄테니까 이름과 생일. 그리고 그 애의 얼굴 사진만 나에게 보내줘. 인체실험 후에 만들어진 복제인간 뭐..그런 느낌으로 설명하면 어떻게든 통과를 못 시킬 것도 없을 것 같으니까. 아니. 통과하게 해줄게."
내 말에 대한 반향은 알았다, 정도로 귀결할 수 있는 정도였다.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게 알겠다는 그 정도의.
묵묵히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그 아이를 도와주고 싶은 것이 맞을까. 아니면 망가진 나를 다시 시작하고 싶을 뿐인 걸까.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않았다.
"...언젠가, 그 애가 그걸 깨달을 때가 된다면요."
무거운 입을 움직여 겨우 말했다. 그럴 예정이기도 했으니.
근처에서 몸을 푸는 기척이 느껴졌다. 시야엔 어느새 내 발끝만 보였다. 뒤늦게, 이름 따위를 알려달라는 말이 들려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홍류에요. 주홍류. 생일과 사진은, 며칠 내로 파일을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보호자로, 연구소 영락의 주현성 소장을 지정해주셨으면 해요. 데려간 이상, 책임도 의무도 이쪽이 져야 하니까."
그런 말을 하며 걷던 중 나도 모르게 몸이 휘청 기울어 벽에 툭 부딪혔다. 그리고 몰려오는 피로함과...
나는 느릿하게 돌아서서 그를 보고 말했다.
"그리고, 보고 드릴게 있어요. 부장님. 일전 웨이버와 교전 중에 파괴한 드론에서 수상한 장치를 습득했어요. 당시 포세이돈호에 있었던 리버티 멤버의 근처에서도, 수신기 같은 것을 발견해서요. 내일 중으로 자리에 둘 테니 부장님 쪽 연구원에게 조사를 부탁드릴게요. 내 쪽에선 아무래도 기술이 부족해서 조사가 불가능하더군요."
한 숨 쉬어간 후에, 말을 이었다.
"내 퇴부서를, 미리 제출해둘테니, 이번 일이 끝나면 수리 부탁드립니다. 차기 부장에게 넘어가지 않게, 부장님 선에서 처리해주세요."
"...홍류랴. 알겠어. 보내주면 ID 카드를 만들어볼게. 그건 저지먼트 부실에서 주면 되겠지?"
아마 만드는 것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납득을 시키느냐인데... 그건 이제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저렇게까지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믿어주고 밀어주는 것 역시 자신이 할 일이겠지. 그런 생각도 아주 잠시. 이어지는 말에 그는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드론에서 수상한 장치. 그러고 보니 드론이 파괴된 것이 많았지. 그때 기절한 상태였기에, 그는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 깨어난 후, 바로 현장을 파악했기에 드론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드론이라. ...알겠어. 이쪽에서 알아볼게. 일단 알아내는 것이 있으면 다음에 저지먼트 정기 모임때 알려주도록 할게. 그건 우리 둘만이 아니라 모두가 알아야 할 사안 같으니 말이야."
리버티 멤버의 근처에 수신기 같은 것이 있고, 드론에서 수상한 장치가 발견되었다는 그 말에 은우는 괜히 불안감을 느꼈다. 또 뭐가 있는 것일까.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만약 뒤에 또 뭔가가 있다고 한다면... 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여러모로 골치아픈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혜우의 입에서 퇴부서라는 말이 나오자 그는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래. 알겠어. 퇴부하는 것 또한 너의 자유지. 내 선에서 처리해줄게. 하지만... 세은이와는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놀아줘. ...그 애.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를 되게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야."
저지먼트 퇴부했다고 휙 사라지지 말고. 피식 웃으면서 그는 그 부분은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았다. 저지먼트에 들어오는 것은 자유이며, 나가는 것 또한 자유였다. 아쉬운 마음은 있으나 퇴부하겠다고 하는 이를 막을 순 없었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 속에서는.
"가끔은...그.. 내가 없을 때 우리 집에 놀러와도 돼. 세은이가 있을테니까. ...나는 뭐, 적당히 눈치보다가 알아서 나가줄테니까."
태오~ 운전은 잘 하는 편인데 입이 험해짐... 그렇게 급했으면 어머니가 아니라 조모께 태어나질 그랬나요 운전 배로 빨리 했을 텐데…… x같은 새끼. 막 이럼🤦♀️ 스트레인지 출신 아니랄까봐 '밟아야 한다' 싶으면 차로 아키라 찍음 이제 일 치기 전에 고개 돌려서 동승자한테 "벨트 잘 맸죠?"하고 물어봄 물어만 봄 얌전하게 운전하다 이제 저거 리버티임? 싶으면 한블리 나가겠지... 성인 되면 과속딱지 한 번은 뗄 듯싶고
자신을 지나치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은우는 딱 잘라 그녀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녀가 왜 그렇게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자신이 닿기 힘든 좀 더 깊은 쪽의 이야기일테니까. 허나 그 부분만큼은 그렇게 분명하게 그는 이야기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그걸 지금 내가 묻는다고 해서 가르쳐줄지는 솔직히 모르겠어.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이야기할게. 너는 없어지겠다고 하지만 네가 없어질 순 없어. 세상에서? 모두에게서? 그런 것이 진심으로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처음부터 아무와도 연관이 되지 않고, 아무에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너는 다른 이와 연관이 되었고, 좋건 싫건 인간관계가 생겼고, 인연이 생겼어. 네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한들 그 사실이 변하진 않아."
스스로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한들 그 사실만큼은 바뀌지 않는다. 저지먼트에서 보낸 약 1년의 시간.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외의 사람들과 쌓아온 이런저런 일들. 그 모든 것이 있는데 어떻게 없어진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네가 저지먼트를 퇴부하건, 학교에 자퇴서를 내건 그건 아무런 상관 없어. 세은이는 널 절대로 잊지 않고, 반드시 널 찾아낼거고, 나도 세은이가 도와달라고 하면 너를 찾을거야. 네가 모습을 안 보인다고 모두에게 잊혀질 정도로 세상이 단순하게 돌아가진 않아. 천헤우. 아니면 죽을 생각이야? 설사 죽는다고 해도 네 이름은 절대로 안 잊혀져. 세은이가 네 이름을 쭉 기억하고, 나도 기억할 거고, 저지먼트 애들 중에서도 널 기억할 이는 천지야."
저 말이 마치 붙잡아달라는 것처럼 들리기에.
"내기해도 좋아. 설사 여기서 5년이 지난다고 해도 네 이름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아. 천혜우는 사라지지 못해.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다고 멋대로 정하지 마. 여기에 오기 전에 무시당하고, 이름으로도 불린 적이 없이 살았다고? 인간의 말을 나불거릴 뿐인 20년 전의 세계에 살고 있는 쓰레기가 뭐라고 지껄이고 무슨 명분으로 행동을 하건 결국 쓰레기에 지나지 않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이런저런 명분을 내뱉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라고. 알게 뭐야. 결국 제 자식에게 이러쿵저러쿵 인간의 말을 나불거리는 쓰레기잖아. 3류 소설에 나와도 비웃음이나 당할 쓰레기가 널 어떻게 대했건 너는 너야. 천혜우. 지금도 살아서 태어난 것이 죄라고? 저지먼트의 부장이나 에어버스터가 아니라 세은이의 오빠로서 분명하게 이야기할게. 그 쓰레기들은 너를 죄인이라고 나불나불거릴지도 모르지만, 세은이에게 있어서 너는 은인이고, 인첨공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었던 희망이었어."
자신들이 왔을 당시를 떠올리며 은우는 한숨을 내쉬면서 시선을 위로 올렸다. 제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는 얄팍한 행동이었다.
"...사라지지마. 천혜우.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다고 네가 생각한다면 세은이의 오빠로서 내가 말할게. 여기에 있어. 천혜우로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와서, '진짜 죄인'인 못난 오빠만 따라와서 겁 먹고 무서워하면서 지냈던 한 여자애를 구해준 은인으로서."
멈춰선 채, 멈추어 선 채로 들리는 말을 들었다. 앞서 얘기할 때와 다름 없이 단호하고 또박또박한 말들이 귀에 박혔다. 반박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저렇게까지 말한다니, 싶어졌다.
그래, 지금까지 폼으로 저지먼트 부장이었던 건 아닌 거겠지.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였던 걸까, 그 곳은.
여전히 시야엔 발끝과 쇼핑몰 바닥이 보였다. 희고 검은 타일들 위로 시린 조명빛이 연신 비추고 있었다. 그 위에 얹어진 한 쌍의 캔버스화는 무채색이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며 눈을 내리 감았다. 시야에 여전히 희고 검은 바닥만이 담기도록.
"...여기가 어딘지 잊었나보네요. 부장님. 저 벽 너머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는, 상상으로나 해볼 법한 능력자가 실존하는 인첨공 아니던가요. 종말조차도 농담이 아니게 될 수 있는 장소인데, 고작해야 뇌 속 데이터 조작하는 일이 어려울까요."
그렇게 어설프게 할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 했다.
"인간관계? 인연? 그런 무형의 가치가 얼마나 보존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물리적 데이터는 더더욱 조작하기 쉬우니, 이 바닥에서 사람 하나 지우는 일 쯤,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에요."
문득, 참 재밌는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쯤은, 이런 접전도 있겠거니, 했었는데 접점이 또, 이렇게 작용하리라곤, 몰랐으니까.
"그리고- 내기해도 좋다니, 괜한 소리 마세요. 그랬다가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구요. 5년까지 갈 것도 없어요. 앞으로 1개월, 그리고 한, 반년. 그거면 충분히 지우고도 남으니까. 부장님조차 그 언젠가는, 나와 이렇게 얘기했던 것조차, 잊어버릴테니, 별 생각 말고 그러려니 하세요. 부장님이 뭘 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하하, 영혼 없이 메마른 웃음소리가 났다. 곧 한숨으로 이어진 뒤에,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이미 너무나도 지쳤어요. 이미, 이미 지친지 오래라서, 세상도 사람도 너무 버겁네요. 그러니 내버려 두세요. 말했잖아요. 나는 이미 늦었다고..."
지쳤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니 더는 무시할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와 가까이 있던 휴식용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구부정히 앉아 고개를 숙여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태오는 자신의 손톱 사이에 낀 피와 엉겨붙은 머리카락을 멍하니 응시했다. 한결은 태오의 귓바퀴 위를 큼직한 손으로 고이 감쌌다. "아." 쓰라린 감각에 태오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고, 한결은 엄지에 묻어나오는 피를 보며 걱정스러운 듯 구급상자를 찾고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괜찮아?" "……예, 괜찮, 습니다.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 "일이라니요……. 늘 그렇듯 안온하지요. 여타 인간의 삶 그러하듯이……."
태오는 상자를 꺼내 핀셋으로 능숙하게 소독용 솜을 집어 적시는 한결을 마주하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만 크게 깜빡였다. 한결은 그런 태오에게 다가서더니, 귓바퀴에 자리한 머리카락을 곱게 쓸어 들어주며 상처 부위를 소독해주기 시작했다.
사실 은우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고 더 나아가 그렇게 대폭적으로 뇌속 데이터를 함부로 조작하려고 하면 특수부대가 출동해서 다 엎어버릴 수도 있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지만...(복구방법도 굉장히 많음) 일단은 뭐 캐릭터를 그리 하고 싶다면야 제 쪽에선 더 아무런 말도 안하는걸로..
뭐 정확히는 >>277 사태만 해도 특수부대 오퍼레이터가 뭔 짓거리 하는가 싶어서 집중 감시로 들어갈 것 같네요. 이쪽은 특히나 인첨공을 감시하는 쪽에 특화된 애들이기도 해서 은근히 데이터 교차검증도 많이 하거든요. >>277 사태로 움직이진 않지만 이놈들 인첨공에서 기억을 지워서 뭐 기밀 유출하고 지들이 하는 짓 지우려는거 아니야? 라는 식으로 눈여겨보는 정도? 다만 특수부대는 알다시피 일반인들이 있는지도 모르는게 대다수이긴 하니까요! 아무튼 결론만 말하면 정신계 능력자들이 대폭적으로 뭐하려고 하면 여기서 움직인다는 것만 살짝 남겨둘게요!
"……반장님." "……어." "반장님은 어떻게 견뎠습니까?" "김재현." "예, 반장님." "너는 나랑 같지 않잖냐." "……." "괴롭겠지만 견디라고 하지는 않으마." "……지율이가 깨어날 수 있을까요." "……." "드레스도 마음에 든다고, 그렇게 좋아하던게 엊그제인데."
태휘는 담배를 입에 빼물었다.
"…어쩌다가 그랬다고?" "레이브랑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요." "레이브라면, 그 미술가?" "예. 자주 만나거든요." "블랙박스는?" "당연히 확인을 해봤죠. 차가 이상하다고, 브레이크가 왜 이렇게 딱딱하냐고 외치는 것도 다 녹음 됐어요." "……."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은 알지만, 그게 왜 지율이한테도 그래야만 했는지를…….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죠." "……."
어쩌면 하늘을 쥐고자 하는 놈이 있겠지. 태휘는 심증만 있는 것을 굳이 입 밖으로 뱉지 않았다. 대신 형식적인 위로만 던질 뿐이었다.
"하늘한테 빌지 마라. 알아서 깨어날 사람이야."
태휘는 허공에 연기를 뱉었다. 구름처럼 수놓는 연기를 뒤로 태오는 느릿하게 하늘에서 고개를 뗀다.
커리큘럼 하러 왔더니 연구원이 없더라. 확인해 보니 나 땜에 초과 근무도 아니고 창조 근무 중이라 으르렁거리더라. 양심통도 오고 해서 이론서나 사이코메트리로 읽었다. 거기 적힌 연산식이 내가 사이코메트리를 쓸 때마다 뇌에서 처리된다는 게 실감 안 나서 묘했다.
늦은 오후쯤엔가, 연구원이 칙칙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박찬유인지 싸패새낀지 안티스킬에 신고해야겠다면서 증거 없냔다. 밑도 끝도 없이 신고하면 장난이나 미친 걸로 보이지 않겠냐면서. 리버티 조종에 써먹은 안테나라도 제출해야 하나? 거짓말 탐지기로 검사받으며 사이코메트리 결괄 보고하면 신빙성이 생길까? 하다가 정하가 챙겨온 문서들이 떠올랐다. 거기 박형오가 지 따까리한테 잠수함 맡겼단 내용도 있고, 인첨공 파괴에 뉴트로미니컬 에너지를 써먹을 거란 내용도 있고, 박형오가 제로 시리즈를 제어하기 위해 식물인간 되기를 택했다는 내용도 있고, 박형오가 현 대표이사에게 적대적이란 내용까지 다 있다. 그게 윗대가리들한테 전달만 되면, 못해도 유니온은 바로 끝......
오싹해졌다. 이건 명명백백히 의도적인 살인 기도 아닌가? 선배한테 인간인 이상 뉘우칠 기회를 아예 박탈당해선 안 된다 큰소리치고, 새봄이가 살인 얘기 꺼낼 때도 부득부득 말려 놓고선. 게다가 그 방식은 위크니스를 만드는 게 옳았노라 웅변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걸로 윗대가리들도 합리화되겠지.
망설이는 사이 연구원이 없는 증거를 만들어서라도 신고해야 할 판 아니냐고 노발대발했다. 정말로 절박한 상황이면 수단 방법 가릴 정신도 없을 텐데 아주 태평하다며. 맞말이다. 부부장이 몰살 계획 저지가 최우선이고 나머진 그 다음이라고 정리해 주던 것도 떠올랐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인첨공의 계획을 완전히 갈아서 엎어버리는 거에요. 우리요..아, 나는 제외일 수 있으려나. 인첨공의 계획에 따르면 폐기 당하잖아요.
인첨공뿐만 아니라 유니온의 계획에 따라도 폐기되지. 이러고 앉았을 시간에 한쪽이라도 확실히 없애야 살 확률이 높아질 텐데. 그걸 아는데도 센터장님의 말씀과 선배의 얘기 역시 떠올라 버렸다.
" 퍼클과 위크니스의 폭발을 결정할 수 있는 자가 이 도시를 파괴할 마음을 먹으면 무슨 수로 막죠? " " 그자들에겐 폭탄도 안 심어졌는데요. "
"결국 실리를 위해 인권 침해 요소를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우리가 그 망할 영감들과 뭐가 다르겠어?"
이렇게 망설일 땐가? 한숨만 나올 때, 연구원이 '송양지인'이란 말을 아냐 묻더니 알 리 없겠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송나라의 양공이란 사람이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갔을 때, 주변에서 적군이 강을 건너는 사이 공격하면 이길 수 있다고 조언해 줬단다. 근데 양공은 남의 약점을 노리는 비겁한 짓을 해선 안 된다며 적군이 강을 다 건너기까지 기다렸고, 결국 전쟁에서 지고 본인도 죽었다나?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저 양공만큼이나 멍청하단다.
무리도 아니다. 나도 내가 답답한데 연구원은 오죽할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유니온의 그 말만은 맞다는 생각이 들어 버린다. 인첨공은 새장이다. 동시에 유니온은 이 새장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리란 직감도 들었다.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에 몰이당해서(어쩌면 본인 역시 리버티한테 심은 안테나 같은 걸 달고 있을지도...) 유니온은 이 새장이 있어야만 유의미한 존재가 되어 버린 거 같다고. 그래서 그 미친 계획이 어떻게 되든 새장에 속박당할 거라고. 온갖 걸 다 할 수 있는 유니온도 그 지경이니 난 말할 것도 없지. 인첨공이 하루아침에 오픈 월드라도 되지 않고서야 방향만 다를 뿐 몰이당하긴 똑같을 거다. 그런 결론에 이르자 신고고 뭐고 생각하기 피곤해졌다.
결국 연구원이 폭발했다. 다 죽을 위기라 떠들더니 슈퍼히어로 놀이 하냔다. 나 하는 꼬라지 보니 가도 아주 멀쩡하겠다며 맘대로 하라고도 쏘아붙였다. 뒤이어 연구원은 을 신세라 시킨 일은 어쩔 수 없이 맡았다만 내 고집에 휘말리는 건 그걸로 끝이라 선언했다. 나도 무슨 낯으로 더 매달릴까? 알겠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대답하다가 연구원이 질색하기에 입 다물었다.
>>386 삡삡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호칭 엄청 맘에든다 아임삡삡이에yo. (와바바바바박 복실삡삡)(마주 와바바바바바ㅏ바바바바바바바바박) 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ㅠㅠㅠ 크아아아아아아악 안 돼~~!!! 이녀석들 토끼를 너무 좋아하는거 아니냐고🥺🥺🥺 그런 인기... 필요없는데도... 그만 근성있으시길 바랍니다. 모기장 같은 걸로다가 물리적 차단을 해버리면 좋은데... 요즘 모기는 그것도 뚫는다는 말이 있어서 무섭다...🫠
"너야말로 잊은 거 아니야? 지금 네 눈앞에 선 이가 얼마나 이곳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지 말이야. 고작 뇌 속 데이터 조작하는 일 따위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그거 하나 원래대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알아? 이 인첨공에서? 차라리 잠수를 타고 30년쯤 뒤에 성형수술을 하고고 신분세탁을 해. 그게 더 빠를테니까."
그녀가 뭘 계획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헛수고라고 은우는 확신했다. 뇌속의 데이터를 조작해? 기억을 지워? 애석하지만 그런 기억을 되살리고 복구시키는 능력자와 기술이 있는 곳이 바로 이 인첨공이었다. 멀리 갈 것이 뭐가 있는가. 당장 저지먼트의 이경에게 부탁만 해도 그 정도 일은 가볍게 해결 할 수 있었다. 기억을 꺼내서 재생시킬 수 있는 능력자. 그보다 더한 능력자도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물론 한번에 만인의 기억을 전부 조작해버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자는 이 인첨공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은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인첨공의 기밀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인첨공 전역을 감시하고 확인하고 있는 특수부대 '오퍼레이터'. 만인의 정신을 조작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들이 필시 움직일테고, 숨는다고 한들 특수부대 '사냥개'가 움직이면 도망칠수조차 없었다. 허나 은우는 굳이 그런 사실까지 모두 알려주진 않았다. 굳이 알아서 좋을 것은 없었고, 이 사안들은 모두 기밀이니까.
"반년 후에 내가 여전히 이 사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면 그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지는데? 그때는 1년, 1년 반. 그렇게 늘릴 참이야? 내가 뭘 할 수 있냐고? 알고 싶어?"
한번 건드려봐. 내 기억을. 어떻게 되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은우의 목소리는 상당히 여유로웠다. 정말 할테면 해보라는 듯이.
지쳤다고 이야기를 하며 주저앉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은우는 한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반. 하지만 모르는 척 하기도 힘들다는 것이 반.
"그래. 그 말은 맞아. 세상도 사람도, 살아가는 것도 너무 버거워. 그래도 결국 그것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좋긴 하더라. ...다 놓아버리면 정말 아무 것도 없고 거기서 끝이고, 정말로 내 옆에 있는 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지면... 힘들어도 앞을 보고 살아가면, 결국 또 다른 좋은 일이 생기고, 또 다른 것, 그리고 보이지 않던 다른 것이 보이기 마련이니까."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부끄럽기에 그는 그 정도로만 대답했다. 제대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딱 지금 떠오르는 다섯 명을 떠올리며.
"슬슬 가볼게. 또 보자. 저지먼트 부실이건, 또 다른 곳에서건."
지금은 더 건들지 않으려는 듯, 그는 서서히 돌아가려고 했다. 이 이상은 자신이 건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 점을 조금 쓰게 느끼며 그는 천천히 걸어갔다. 세은이라면, 그리고 혹은 그녀와 친한 누군가라면... 조금 더 들어갈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막레로 받으셔도 되고 막레를 쓰셔도 되고 아무튼 그렇습니다! 갱신할게요! 다들 안녕하세요!
어... 안 잡으면 일단 가겠죠? 아무래도? 은우 입장에선 지금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일단 좀 쉬게 해야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 하지만 그냥 가진 않고 태오에게 연락해서 '네 취향 여동생이 힘들어하니까 좀 데리고 가서 케어 좀 해줘.' 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 같네요.
은우는 퍼클이 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욕실 욕탕에 물 받아놓고 그 물을 붉게 물들인 사건이 있었죠. 진짜 이것도 저것도 다 싫고, 절망스럽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서.... 그게 대충 고1이 가까워질 때의 일. 어쨌건 그때 살아남아서 좀 어두운 분위기로 목화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저지먼트에 들어왔는데 그때 만난 것이 바로 동기조 다섯 명.
모든 것을 짊어지고 천천히 걸어가자 보이는 새로운 존재들은 은우에게 있어서 인첨공에서 아직 더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꽃피웠고, 같이 활동하면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470 서류가 다섯자리 수 < ?? 이게 뭐죠??????? 으어???... 아니 이건 체력이 갈릴 수밖에 없는 거 같은데 어떻게 사람이 다섯자리 수 서류를... 나눠서 해도 되는거면 그날그날 분량으로 주면 안되는 걸까... 심리적 압박이 너무 클 거 같은데🫠 캡틴 현실에서 계수를 깎고 있는 거 아니냐고 이게머선일이고 회사야 돈 마니 줘라... 복복.복복복복.복복...
>>459 "공포 스토리 같은 거 보다보면 이런 세계에 떨어져서 막 울고, 너무 놀라서 정신 못차리고 있으면 바로 옆에 떡하니 출구가 있어도 이상한 방향으로 가려다 죽고 케이지에 열쇠가 꽂혀 있는데도 칼날 입구에 손을 집어넣어서 죽어버리곤 하더라. 솔직히 무섭지만, 정신 차려야 여기서 살아나가지. 안 그래?"
청윤은 영화들 얘기를 꺼내면서도 한숨을 쉬었다. 책임감 덕분인지 한바탕 달려서 힘이 빠지니 냉정함을 찾기도 더욱 쉬워졌는지, 어쨌든 비교적 태연하게 있기로 했다.
"정말이야?"
청윤은 동윌이 다 말하지 않고 멈춘 말에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의구심을 가진 듯 했지만, 동월 본인도 말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더 묻진 않기로 했다.
"그거.. 다 지금 상황 아냐..?"
동월이 말하는 것에 반응이라도 하는지 이상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자 청윤은 당황한 듯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아이 진짜..!"
영화에선 하라는대로 했더니 살았더만, 이건 도대체 뭐냐고! 청윤은 일단 서류를 꽉 끌어안고 다시 전력질주를 시작해 동월을 따라갔다.
이게 업무를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 없어서 좀 엄청 커보이는데..막 엄청 시간 잡아먹고 그러진 않아요. 사실 서류라기보다는 '자료'라서. 제가 대충 하루에 3000개 정도 처리하는 것 같네요. 그날 그날 분량으로 주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이 또한 업무의 특성 때문에...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진 않은데 조금 피곤한 감은 있긴 하고..아무튼 그래요. 캡틴도 돌을 깎습니다. (어?)
문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색채의 향연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로 표출해야할지 모를 분노와 어디로 흘러가게 할지 모를 슬픔, 혹은 안타까움이 담긴 소음들이 색이 되어 흘러들어온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제 무릎 위에 자리를 잡은 카오스 고양이만이 평온하게 고르릉거릴 뿐이다.
오랜만에 혜성은 비사문천 아지트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오자마자 한 일은, 언제나 그러했듯 일방적인 통보였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비사문천 활동 중지. 또한, 자신이 안티스킬 시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대리인을 내세울 거라는 일방적인 선언. 대부분 제 결정을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와중, 늘 그러하듯 반발하는 이 한명정도는 있을거라 직감했기에 혜성은 흘러들어오는 소리의 색채들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퍼져나가는 풍경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동안 스트레인지가 시끄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소란을 무시로 일관하겠습니다. 그 어떤 소동에도, 그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다못해 아지트 자체가 습격받는 최악의 상황이라도. 절대로 응전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들의 싸움을 방관합니다. 또한 지금부터 비사문천은 대외적으로 잠적하는 걸로 합니다. 꼬리가 밟힐 일이 없도록 제가 최대한 노력해볼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무기한 잠적기에 접어든 김에 정상적인 생활로 각자도생하는걸로.
고르릉거리는 고양이의 머리에 손을 대고 혜성은 천천히 쓰다듬으며 달큰한 향이 배어든 연기를 길게 뱉어낸다. 비사문천의 단원들이 소중하기에 어떻게든 그들의 안전을 우선시해야했다. 그들이 있어야 언제가 되더라도 비사문천은 부활할 수 있으니. 언젠가는 제 생각과 판단을 저들이 받아들여줄 거라고 혜성은 감히 그렇게 믿었다.
그러니,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철저하게 흔적을 지우고 숨죽이고 계세요. 때가 되면 제가 다시 여러분들을 불러들일테니.
남겨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왁자지껄한 쇼핑몰의 소음. 무수히 지나가는 기척과 발소리. 차갑게 비산하는 조명빛.
그 틈새를 가르고 다가온 한 행인이 그녀의 빈 옆자리에 앉았다. 검고 긴 머리가 벤치의 빈 공간을 채웠다.
손가락 틈새로 드러난 검푸른 눈동자에 검은 머리카락이 비쳤다. 긴 터럭을 따라 올라간 끝에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손가락의 틈새는 사라졌다.
메마른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어요." "후배님이 가게에서 나왔을 때부터랍니다." "처음부터가, 아니고?" "네,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에요. 믿지 않겠지만요." "...어련하실까."
한바탕 지나가는 교복 차림 여학생들. 두 사람은 안중에도 없듯이.
"그래서- 정말로 할 건가요?" "...뭘요." "뭐긴요. 후배님이 큰소리 친 계획 말이죠." "......" "전에도 말 했지만, 그 정도 규모로 건드리게 되면, 꽤나 귀찮답니다. 요즘도 뒷통수며 등이며 따가운 걸요." "...어쨌든 할 수는 있는 거, 잖아요." "그래봤자 되돌려지면 의미 없지 않을까요?" "그럼" "또 하면 된다, 라고 하겠죠. 당신이라면."
찌를 듯한 검푸른 시선이 옆을 향했다. 붉은 눈동자는 가만히 휘어 웃었다.
"그렇게 번거로운 과정 없이 깔끔하게 끝낼 방법이 있답니다." "......" "당신도 사실 알고 있죠? 그러니까 제게 그런 부탁을 했겠지요."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하얀 얼굴이 환한 조명빛을 받아 더욱 희어졌다. 동공 좁아진 눈동자는 미동도 없었다. 마주한 가는 입술이 미소지었다.
"바다를 보러 갈 거라면, 지금 가는게 좋지 않을까요? 곧 해가 질 테니까요."
그 말을 듣고도 하이얀 얼굴은 한동안 그 상태로 굳어 있었다.
또다시 몇 명의 사람이 스쳐지나가고 멀찍이 보이는 바깥이, 붉어질 즈음-
한 명이 먼저 일어섰다. 비틀거리며 걸어 쇼핑몰을 나갔다. 차고 비린 바람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머물렀던 자리는 긴 머리를 올렸던 검은 리본 만이 남았다. 진청색 머리카락이 몇 가닥 얽혀 장식처럼 반짝였다.
조용히 웃는 그 앞으로 몇 명의 사람이 지나갔다. 단란하게 얘기하는 사람들 뒤로 빈 벤치 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빈 자리에, 언제 치워질 지 모르는 리본 한 가닥이 처량하게 식어갈 뿐이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이후에는 별도의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이후에는 별도의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이후에는 별도의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또다시, 어떻게든 살아나왔다. 그러나 수중에서 올라와 밟은 뭍의 온도는 물속보다 더 차가웠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흐리멍텅한 하늘이 폐부에 건조한 잿빛 공기를 채운다. 예고된 종말까지 앞으로 3주의 유예가 걸렸고,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뒤로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 우리는 몰릴 대로 몰렸고, 무지했던 때로 돌아갈 방법조차 요원하며, 머리 뒤에는 직접적인 총구가 겨눠진 상태니까.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 아래 뿐이다. 살아남을 확률이 없다시피 한 건 피차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홀로 빠져나와 뻔한 확인사살을 맞는 것보다는 모두의 손을 잡고 미지의 변수를 따라 뛰어내리는 편이 낫겠지. 그렇게 믿고,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그게 총구보다 협곡이 무섭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리라는 미뤄왔던 걸음을 옮겼다. 용기를 내는 데에도 마중물이 필요한 법이니까.
화단의 시든 꽃잎 위에 서리가 내렸다. 낙엽이 전부 떨어져 내린 탓에 고스란히 드러난 마른 나뭇가지가 찬바람을 따라 흐느적거린다. 그러나 겨울 특유의 침잠에도 불구하고 선 아녜스 아동 청소년 복지 센터는 여전히 따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담벼락 한구석에 새롭게 그려진 알록달록한 벽화와 연말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방에 배치된 크리스마스 오브젝트들이 여기저기 감긴 작은 LED 전구의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바깥이 추운 탓인지 앞마당에는 평소보다 아이들이 적었지만, 그 반작용으로 내부는 훨씬 붐볐다. 리라는 로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교실을 찾아가는 어린이들과 서류를 들고 바삐 걷는 선생님들을 하나씩 훑다가 곧장 방향을 틀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목적지는 선경의 사무실이다.
"아, 죄송합니다. ......어? 야, 오랜만이다!" "......시현 선생님?"
띵. 문이 열립니다. 단정한 안내 음성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고, 동시에 안쪽에서 길쭉한 인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졸지에 부딪혀 떠밀린 리라는 그대로 몇 발자국을 휘청휘청 물러나서야 상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반가운 얼굴이다.
"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불러, 조금 안 왔다고 그새 얼굴도 까먹었냐? 응?"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으악." "안색은 왜 이래? 퀭~ 하니 허~ 얘가지고 길 가다 픽 쓰러질 것 같네. 잠 못 잤냐? 아님 새 병원이 안 맞아?"
머리를 쓰다듬는 건지 흐트러뜨리는 건지 모를 투박한 손짓이 지나가면 명백히 다정한 관심이 어린 목소리가 건네진다. 그러니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너 울어?" "아닌데요?" "아니, 왜 울고 그래?!" "안 운다니까요!"
하필 이런 건 또 귀신같이 알아보지. 리라는 몸을 숙여서까지 저를 들여다보려 하는 시현으로부터 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는 동시에 남은 쪽 손으로 상대의 얼굴을 쭉 밀어냈다. 어리광 부리려고 온 것도 아닌데 눈물샘이 주책이다. 그나마 지금 마주친 사람이 하나뿐이라 다행이지......
"......그래서 보급품이 더 필요해요. 이제 겨울이라...." "...렇군요, 그럼—... 아니, 차라리 같이..." "안 돼요. 위험하니까 저 혼자. 애초에 대부분은 저희 같은 일 하는 사람들을 안 반겨서요. 경 선생님까지 가시면 공연히 거기 사는 사람들 신경만 긁을 거예요." "번번히 혼자 맡겨두기 미안한데." "괜찮아요. 이 정도야 거뜬하고, 리스크 지는 거 감수하고 다니는 거니까... 응? 잠시만요, 선경 선생님. 저거... 어? 맞네! 리라야! 이게 얼마만이야! 놀러 왔...? ...잠깐. 뭐야? 울어?"
는 무슨. 와중에 익숙한 목소리가 다가오자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진짜 아닌데... 다미 쌤도 오랜만이에요..." "우는 거 맞잖아? 왜 울어? 시현 쌤이 뭐라고 했어? 어이구, 이리 와, 이리 와." "왜 갑자기 화살이 이리로 튀지? 나 아무 것도 안 했거든? 다미쌤아? 주다미야? 듣고 있냐?"
조금 작지만 단단한 손이 등을 두드리면 기어코 시야가 흐려진다. 직후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반사적으로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 아. 또다시 익숙한 신발코가 시야에 들어온다. 단정한 단화.
"선경 선생님..."
대답은 따뜻한 포옹으로 대체된다.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한 번의 온기에 리라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쏟아낸다.
눈물젖은 만남 후 결성된 티타임에 꺼내기엔 다소 뜬금없는 주제다. 시현은 따뜻한 머그잔을 들어올려 입가로 가져가는 리라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평소 같았으면 카페테리아로 갔겠지만, 이리라의 눈물샘이 예상치 못하게 터져버린 탓에 현재 네 사람은 선경의 사무실에 차곡차곡 앉아 직접 담근 유자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덕분에 필연적으로 주위는 고요했고, 툭 하니 던진 말 한마디는 귓속에 효과적으로 박혀 들어온다.
"갑자기?" "네.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너 혹시 잠 덜 깼냐? 악몽이라도 꿨어?" "아니요. 그냥, 다들 이런 생각 한번씩은 하잖아요."
멸망이라. 멸망. 인류의 번영 이래로 주구장창 멀고도 가까운 단어이긴 했지만 이 상황에 적절한지는 역시 잘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할 타이밍인가? 지금이? 근황 토크나 할 줄 알았더니. 차를 한 모금 넘긴 시현은 머그잔을 다시 테이블 위에 돌려놓는다.
"나는 뭐... 잘 모르겠다. 그냥 끝까지 할 일 하다 가겠지 싶은데. 다미쌤은?" "음, 아마 저도 그러지 않을까요? 많이 심란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이 확실하게 예정되어 있다면 그날엔 늦잠 자고, 맛있는 거 잔뜩 먹고 일찍 자고 싶네요." "경 선생님은 어떠십니까?" "글쎄요,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정이라... 음, 어떨 것 같냐고 묻는다면— 슬프고 공허할 것 같아요. 하지만 역시 저도 제가 할 일을 하겠죠. 그래도... 다미 선생님 말씀대로 마지막 날만큼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어쩌면 바다를 보러 가는 것도 좋겠네요. 리라가 찾아다 준 것들과 함께."
움찔. 그 대목에서 머그잔을 감싸고 있던 리라의 손가락이 떨리는 걸 시현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의 동료들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셋 중 그 누구도 섣부르게 입을 열지 않는다. 적어도 이리라가 다시 말을 시작할 때까지는.
"......경 선생님은 그간 괜찮으셨어요? 제가 그렇게 얘기한 다음에, 바로 병원도 바꿨어야 해서... 오지도 못하고, 아니, 사실 안 오려고 하고, 그랬는데..." "왜 안 오려고 했나요?" "......무서워서요. 진실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하겠지만 제 행동이 오히려 선생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한번 더 남겼을까 봐 걱정됐어요." "음, 확실히 아예 아프지 않은 일은 아니었죠." "......" "그게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어줬지만요. 처음부터 괜찮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지금은 분명 괜찮아졌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일상을 이어나가고 하던 일을 지속하는 게 그 애가 바라는 일일 테고, 애써 내가 모르던 걸 찾아내 알려준 리라를 위한 일이니까요."
두 사람 사이에서 묵직하게 오가는 대화를 듣던 시현은 문득 손목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디지털 숫자가 초 단위로 변화하며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리라야. 들었지? 선생님은 그러시단다. 그러니까 눈치 보지 말고 오고 싶을 때 그냥 와. 에휴, 난 또 너무 안 오길래 별 생각을 다 했네." "무슨 생각이요?" "그냥 뭐, 새 병원이 너무 좋아서 안 오나? 이런 생각." "뭐야, 그런 건 아니었어요! 거긴 그냥 병원일 뿐이에요. 전 여기가 더 좋아요."
그새 머그잔 하나를 전부 비운 다미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라고 거들며 의자 뒤로 다가와 리라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다. 각자의 잔 속에서 유자차가 줄어듦에 따라 다소 경직되었던 분위기도 점차 녹아내려갔다. 벽난로를 앞에 둔 고드름처럼 또다시 그렇게 평화로운 온기가 가슴 속에 퍼져나간다.
"그래서 아까 그 질문은 뭐야?" "어떤 거요? 아~ 멸망 이야기?" "그래 인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티타임은 선경의 다음 상담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자연스레 마무리지어졌다. 엘리베이터 내부의 공기는 몇 주만에 더욱 차갑게 식었고, 실내에서도 겉옷을 챙겨 입어야겠다고 자각할 때마다 시현은 시간이 폭풍처럼 흘러갔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다만 1년간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변화에는 유독 이 꼬맹이가 많이, 또 깊게 얽혀있었다는 게 시현의 신경을 자극했다. 이리라. 사건을 몰고 다니며 그 자신도 급격하게 변해버린 어린애. 여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혈기만 있는 애송이에 불과했는데.
"사실 뭐가 될 만한 질문도 아니었어요. 그냥 선생님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지가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그러니까 그 질문을 갑자기 왜 했냐고." "비밀이에요." "참 내 어이가 없어서. 그래, 마음대로 해라. 대신 나도 하나 묻자." "뭔데요?" "만약 몇 주 뒤에 세상이 멸망한다면 넌 어떨 것 같냐?"
띵. 문이 열립니다. 단정한 안내 음성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고, 리라가 걸음을 옮긴다. 먹구름 걷힌 하늘에서 쏟아지는 하얀 겨울 햇살이 로비의 통유리를 통해 들이치며 역광을 드리운다.
"글쎄요. 딱 어떻다고 말하긴 애매해요. 한없이 화가 나다가 우울해지기도 하고, 두렵다가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치기도 해요. 하지만 확실한 건,"
구름이 걷혀서 아이들이 밖으로 나간 탓인지 로비는 조금 전보다 한산해져 있었다. 두 선생은 한 학생이 가는 길을 따라 걷다가 출입문 앞에서 멈춰섰다. 한껏 길어지고 더욱 풍성하게 굽이치는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핼쑥했지만 적어도 막 도착했을 때보다는 조금 더 나아 보였다.
"저도 끝까지 할 일을 할 거라는 거예요. 소중한 것들이 이 세상에 있으니까."
사실 질문에 대한 이리라의 답변은 이상했다. 그저 동문서답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제하는 멸망 시나리오를 두고 하는 말 같기도 했으니까. 다만 장황한 감상을 매듭지은 결단은 여태껏 들어왔던 어떤 목소리보다 단단해서 시현은 굳이 더 말을 얹지 않았다.
>>562 하지만 한입앙 하지 않고서는 못배겼는걸(?) 다갓ㅋㅋㅋㅋㅋㅋㅋ고양이는 한명이면 충분하다는 의견이로군ㅋㅋㅋㅋㅋ그럼 밥 챙겨주는 것 정도는 갠찮지?🤔 아마 색으로 보여도 금이 표정보는 걸 우선으로 할 거고 평소에도 보이는 건 있지만 일상으로 느끼다보니 무던히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별 일 없나 해서." "별 일 없어, 야. 너를 좀 봐라. 나같아도 뭘 할 생각 같은 건 하나도 안 들겠구만."
그건, 사실이긴 했다. 레벨 5라고 분류되는 초능력자, 사소한 위협이라도 놓치는 일은 없는 랑이 있는 한... 몰래 나쁜 일을 꾸밀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스트레인지 내에 도는 소문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런 시기인 것일까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거라면, 어떡할 건데." "뭘 어떡해, 그게 확실하면 해산이지. 각자 자기 인생 좀 살아야 하지 않겠어?"
이미 그런 생각까지 해 뒀구나 싶어, 랑은 입을 다문 채 창 밖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무뎌진 걸까, 그저 과거의 악몽으로만 남겨둔 채, 앞으로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인 걸까.
"너도 그러니까 그만 좀 찾아와, 아직도 네가 저지먼트라는 게 이상하냐? 그렇다고 해도 네가 뭘 어쩔 수 있는데, 여기 돌아다니는 녀석들한테 다 물어봐라, 나랑 다른 말 하나." "여기도 내 집인데."
탕 하고 탁자를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비단이 소리를 쳤다.
"개소리좀 하지 마! 여기가 왜 네 집인데, 여긴 내 은신처야. 그 동안엔 갈 곳도 없고 하니까 냅뒀지만 이젠 아니잖아. 너 돈 잘 벌고 친구들도 있다며. 이제 좀 그만 찾아와. 귀찮아 죽겠네 진짜."
"인정 좀 해라, 넌 이제 나랑 서 있는 장소가 달라. 그러니까 그 자리에 맞게 좀 살라고, 애초에 너랑 나랑 무슨 관곈데? 이제 신경 좀 끄자 제발."
"여기서 더 이상 네가 할 건 없다니까. 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더니 기억 안 나냐? 이 곳에 저지먼트는 필요 없다고." "......"
비단은 자신 앞에 마주 앉은 랑의 팔에 걸쳐져 있는 코뿔소 형상의 완장을 빤히 쳐다보고는 혀를 쯧 하고 찼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됐네. 아무튼 난 할 말 다 했으니까 가." "...기분이 좀 가라앉으면 다시 오지." "난 지금 100% 냉정하거든? 오지 말라고 좀."
끝까지 냉정하게 구는 비단을 뒤로 하고, 랑은 낡아 빠진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떠나는 랑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비단은 그제야 담배를 꼬나물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은 채 필터의 끝을 질겅질겅 씹을 뿐이었다.
"진짜 괜찮겠슴까?" "뭐가?"
그제서야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온 준명의 물음에, 비단은 짜증스럽게 되묻는다.
"아무 일 없는 거 아니잖슴까, 그... 뭐더라, 데 뭐시기..." "너, 바깥에서도 이런 식으로 입 열고 다니면 어디 한 곳 부러지는 걸론 안 끝날 줄 알아." "죄송함다..."
서슬 퍼런 비단의 목소리에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인 준명의 뒤로 도환과 림이 걸어들어왔다.
"복귀했습니다." "대강 일정이 잡힌 것 같은데, 어떡할까?" "유정이는?"
비단의 물음에 도환이 어깨를 으쓱이고, 림이 고갤 저으며 대답했다.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도 말씀하신 대로 다른 곳에 맡겨 뒀으니까... 일이 끝나기 전까진 못 따라올 겁니다." "그럼 됐어, 이제 일정 공유해. 확인하는 대로 어떻게 할 지 결정할 테니까."
씹어댄 필터가 끊어지고 불을 붙이지도 않은 담배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비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게 중얼거렸다.
무너지고 있는 3학구 제 45번 도로는 그야말로 혼란이 가득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땅바닥에 엎어져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의 표정엔 절망이 녹아있었습니다. 그 절망의 가운데에 있는 것은 피투성이가 되어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은우의 모습입니다.
그런 그의 앞에는 파워 슈트를 타고 있는 유니온의 심복인 그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아니. 어디 그 뿐일가요? 정말로 수많은 드론이 공중에 떠 있었습니다. 살상병기가 가득 달려있는 드론에선 음파가 지속적으로 발사되고 있었고, 은우는 좀처럼 힘을 낼 수 없었습니다. 원래라면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는 아무런 힘도 못 쓰는 레벨0와 다를 것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아니. 실제로 레벨 0였습니다.
"천하의 에어버스터도 결국 이 모양이네요? 아. 약오르죠? 아무 것도 못하죠?" "이제 남는 것은 죽는 것 뿐이죠?" "뭐 해보려고 해도 도망도 못 치죠?"
"...재미없네." "...어쨌든 유니온님의 지시라서 말이야. 슬슬 완전히 퇴장해줘야겠어. 에어버스터."
"........"
은우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품에 안고 있는 것은 아직 이곳에서 도망가지 못한 어린 여자아이였습니다. 어떻게든 상황을 보고 이곳에서 도망치게 해주고 싶었으나, 좀처럼 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는 피식 웃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애를 놓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네. 에어버스터." "그러니까 지금 그 모양 그 꼴이 된 거야. 키키킥." "일단 시작은 당신부터야. 당신만 없어지면 유니온님을 방해할 이들의 구심점이 사라지게 돼. 그것만으로도 작전은 문제없이 수행될거야." "저지먼트 부원들에게 연락할 틈도 없게 일부러 이 시간을 노렸으니까... 기대를 실망시키지 말아줘. 바이바이"
>>547 😒....... 난... 솔직히 이것들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양심 밥말아먹은넘들... 이제와서 혜우한테 접근한다는게(이번엔 혜우측에서 접선한 것 같긴 하지만) 😒😒😒😒😒 혜우야... 이제 뭐하려는지 명확해져서 좀 머리가 아찔하군요
>>578 하 비단웅니 이러지마세요 왤케 걸어다니는 플래그처럼(가슴 줘뜯는중) 맘에도 없는 소리를 어 🫠🫠🫠 아 울어버릴거야 크아아아악. 저 죽 을 게 요. 간만에 글레이프니르들이랑 랑이랑 봐서 너무좋은데? 너무무섭고? 심지 거의 다 타들어간 다이너마이트같고? 흥미진진하고? 그렇다 유정이가 딴데 있는 걸 보면 유정이를 통해 랑이가 이 계획을 알게 된느 것일까...
>>585 당신만 없어지면 유니온님을 방해할 이들의 구심점이 사라지게 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니 잼민아...........? 은우가 브레이크라는 생각은 못하는거임(?)
랑은 자신의 보금자리인 폐교의 별관으로 돌아왔다. 본래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지만, 사람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곳이 된 장소, 그 곳에 놓인 소파에 털썩 소리를 내며 앉으면, 전등을 켜지 않아 그림자가 진 건물 내부로 창문의 살을 넘어 빛이 새어들어온다. 본래 아무런 색도 지니지 않았을 그 빛은 별관 바닥 특유의 누런 빛깔과 만나 실내를 은은한 노란 빛으로 채우고 있었다.
"......"
비단과의 대화를 떠올려 보지만, 그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말 같은 건 없었다. 의심되던 그 연구 재단에서도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는다. 성환의 끈질긴 거절 때문이었을까, 성환 역시도 따로 알아보았지만 그때 이야기해 줬던 이론을 바탕으로 실험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기록은 없다고 했다. 그저 수많은 이론 중 하나를 꺼내보였을 뿐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비단의 말은 틀린 게 없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애초부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자신이 변한 것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자신이 있는 곳과 그녀가 있는 장소는 많이 달랐다.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언제든 깨지고 떨어질 관계였던 것이다. 언제까지고 함께할 수는 없다. 혈육도 아니고, 그저 공동의 적을 노리는 사람이었을 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명히 자신은 비단에게 적잖은 폐를 끼쳤다. 비단은 역정을 내며 아니라고 몇 번이고 부정했지만 글레이프니르가 조직된 것은 온전히 자신의 돌발행동을 제어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이나 자신은 비단으로 하여금 신경을 쏟게 만드는 존재였으니, 귀찮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평화로운 시기가 되어가고 있으니,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적잖은 스트레스일 것이다.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은 저지먼트, 그녀는 엄연히 스킬 아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로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배제할 수 없는 관계니까.
"...때가 된 건가."
이해해야 하는 건가. 새롭게 생긴 인연과 관계를 위해서 과거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전혀 끊을 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래도 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에게 생긴 새로운 인연으로부터 얻은 안정감 역시 떠오른다. 그런가. 나는 더 이상...
랑은 비단의 표정과 말투를 다시 떠올렸다. 지금까지 그 정도로 자신에게 적대적인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일을 치고 잡혀왔을 때 조차도 한심하다고 볼 뿐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순순히 숙여주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쉽게 이 장소를 떠날 수는 없지, 랑은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양 손을 뒤통수에 깍지 껴 댄 뒤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두 발이 가로겹친 채 소파의 팔걸이 위에 오른다.
세상엔 괴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 그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도시전설 따위로나 취급될 뿐. 그러므로 동월같은 수색자들은 당연하게도 물밑에서만 활동하며, 사람들에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 괴이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가 있다. 이미 죽은 자들, 평범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망자들. 그들은 대개, 귀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동월은 귀신에 대해선 딱히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야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귀신이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는 이야기는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괴담들 투성이라 무엇이 진짜인지도 알아볼 수 없었으며, 괴이들처럼 직접적으로 죽일 수 있는 존재들도 아니었기에.
사실 귀신이라는 것들은 볼 수 있다고 해도 알아보기 어렵다. 그들도 사람이니까. 당연하게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봐서는 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한을 품고있는. 흔히 말하는 악귀라는 존재들은 어떨까? 인과율. 그러니까, 인간으로 치면 법을 어기고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각오를 한 채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들. 이들은 꽤나 위험하다고 한다. 동월도 괴이와 관련된 것을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정보였기에 그리 잘 기억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 그...래서, 이번엔 귀신을 잡아달라구요? " -네... 이미 한 번 구해주신 목숨이라 염치는 없지만요...- " 아니 뭐, 원래 그런 일 하는 사람이니까요. 근데 귀신이라고 해도... 잡아 본 적이 없는데요. " -그래도, 괴이부 말고는 부탁할만한데가 없어서요...- " 오컬트부나 괴담부는요? " -오컬트부는 귀신과 소통하는게 목적이라며 거절당했고, 괴담부는 그냥 괴담 이야기만 하는 곳이라 해서...- " 이래도 괜찮은거냐 초능력 학교... "
한숨을 푹 내쉰 동월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대충 어떤지나 봐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으악!" "무슨 소리야?" "방지턱을 너무 세게 넘었나 봐." "조심 좀 하지. 자기는 너무 세게 밟는다니까."
우웅…….
"감자야, 내가 세게 밟는 게 아니라 방지턱이 높은 거야!" "말은." "먹고 싶은 건 없어? 가는 길에 사가지고 갈게. 우리 감자 또 밥 안 먹었지?" "나 두고 가버려서." "으응~ 미안해~ 감자 삐진 건 아니지? 피자 사갈까? 우리 감자가 좋아하는 걸로." "글쎄……." "새우 토핑도 얹어서." "……엣지도 추가할래." "이 돼지감자를 어쩌면 좋아! 응, 사갈게. 우리 감자 열심히 일하니까 힘내야지." 그런데 자기야." "응?" "소리가 좀 이상하다?" "아, 응. 그런가? 잠깐만… 블루투스 연결이 잘 안 됐나…."
우우우웅-
"어?" "왜 그래?" "어? 어……? 잠깐만."
덜컹, 덜컹. 우우웅-
"지율아?" "가, 감자야. 나 차가 이상해." "이지율, 침착히 브레이크 밟고-" "브레이크가 딱딱해, 감자야, 나 차가 안 멈춰- 잠깐만, 사, 사람! 사람! 악!!" "지율아!!" "재현아, 재현아, 나, 나 무서워. 재현아!" "침착해, 침착하고-" "재현아-"
쾅- 띵동. 똑딱, 똑딱, 똑딱, 똑딱.
"-아?" "지율아?" "지율-" 어제 오후 8시 40분 경, 1학구에서 4학구로 향하는 대로에서 차량 한 대가 가드레일에 충돌해 전복해 운전자가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운전자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현재 의식불명 상태이며, 안티스킬이 확보한 블랙박스에서는 급발진이 의심되어 수사에 나섰습니다…….
"아, 살았네.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텐데……. 가여운 신부. 신랑인가? 뭐 어때."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이후에는 별도의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마지막 기회였는데." "……정말 더 붙잡지 않을 겁니까?" "작별인사 할 시간이 굳이 필요할까?" "……저지먼트가 꼬리를 물 건데." "물라고 하지. 내가 뭘 하기라도 했나."
태오는 느릿하게 담배를 입에 빼물었다.
"쨀 거면 째라며? 그래서 내려줬지. 꼬리." "시기가 적절하다 해야 할지……." "아- 그래도 아쉽다. 얼굴은 한 번쯤은 보고 싶었는데. 뭐, 어때. 퇴부서 내러 가자."
※ 사상 및 옹호, 그리고 비윤리적 요소 - 본 이벤트의 진엔딩 루트에서는 암부의 수장, 도올(백서휘)이 구속되지 않고 꼬리를 자르는 피카레스크적 요소가 있습니다. 이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 본 이벤트에는 약물, 인체실험, 정신적인 붕괴 및 유년시절 겪은 학대, 살인 등의 반인륜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단, 진행자는 어떠한 현실의 범죄나 비윤리적 행태에 찬동하거나, 미화, 범죄 행위의 불구속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 전체적인 흐름 - 이벤트의 흐름은 '수색 및 심문' 1챕터와, 본격적인 전투를 2챕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1챕터의 경우 과거 행했던 춘치자명 이벤트와 동일하게 '불규칙한 시간에 이루어지는 개인 진행'을 채택하고 있으며, 저번과 달리 턴 제한이 없습니다. - 단, 캐릭터들의 원활한 활약을 위해 '단서'를 찾으면 턴이 자동적으로 종료됩니다. - 일정 개수의 단서가 모이거나, 캐릭터가 진행자가 의도한 것을 찾을 경우 '키 포인트 단서'가 등장하며, 이 포인트 단서로 하여금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는 '명분'이 생깁니다. 누구도 명분을 찾지 못할 경우 npc 찬스를 단 1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혼자서도 찾아낼 수 있도록 진행자가 최대한 조율하겠습니다. - 2챕터의 경우 타 스토리 진행과 동일한 '체크 후 정해진 시간 진행' 요소를 채택했습니다. - 전투는 모두 취합하는 방식이나, 다이스를 굴리기 때문에 빗나갈 수 있다는 점 참고 바랍니다. - 바로 기절시키려 했다...와 같은 원턴킬 방식을 그렇게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예? 빠르게 끝나면 좋은 거 아니냐고요? 에이. 설마요. 여기는 세이브도, 로드도 없는 낙장불입 세계관인걸요. 본 진행은 플레이어 우선적인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타 진행보다 더욱 우호적인 보정이 들어간 판정을 내리고, 판정에는 여타 긍정, 부정의 구분이 없이 모두 잘 들어갑니다. - 레벨 3은 권총, 레벨 4는 잘 훈련된 병사. 명심하십시오. 레벨 3만 해도 권총입니다. 지금껏 여러 사건이 오가면서 인명피해는 적었지만, 명분 없이 단번에 끝내려다간……. 에어버스터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를 겁니다. 은닉을 도와주긴 할진 모르겠지만?
※ 전지적 스트레인지 시점 - 개인이벤트 기간 동안, 진행자 태오주의 모든 서술이 경박해집니다., 서술은 여러분의 편이지만 가끔가다 npc를 과도하게 비꼬거나, 캐릭터를 조롱하거나, 동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단, 이는 악의가 아닌 점을 미리 고지합니다. - 흔들리지 마십시오. 상황을 이끌기 위해 의도된 경박함이 몇 파트 존재합니다. - 불쾌할 경우 진행자를 호출해주시면 바로 조율 버전으로 제공하겠습니다.
※ 캐조종 묘사 - npc 윤찬혁, 백서휘, 류시원이 지닌 능력의 특수성으로 인해 경우에 따라 캐조종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본 진행에서 불쾌하지 않은 선에서 행동할 계획임과 동시에, 윤찬혁의 능력은 다이스로 저항할 수 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예시 1. 캐릭터는 서휘의 시선을 마주치자 오한을 느낍니다. 레벨 5의, 오로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개발된 능력. 그 사실을 깨달은 이상 본능의 공포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할 입은 남아있겠지요. 2. 캐릭터는 찬혁의 눈을 마주치자 적개심이 일순 흔들립니다. 무한한 자비, 사랑, 그리고 경외…… 그 모든 것이 느껴지려 합니다. 아, 저 사람은 나의 구원자이다! (다이스로 저항 가능, 1에서 100까지 다이스를 굴려주세요. 30 이상의 경우 저항에 성공합니다!)
※ 삼진아웃 및 조언제 - 해당 이벤트는 세이브, 로드 기능이 없습니다. 또한 플레이어들은 많은 정보가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나아가야만 합니다. 진행자는 이 루트를 누구보다 잘 알고, npc의 주인이기에 어떠한 것에서 호감을 느끼고, 비호감을 느끼며 상호작용이 원활하고, 어떻게 해야 보다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지를 알지요. - 이런 요소로 비롯된 진행의 난관을 해소하고자, 그리고 원활한 엔딩으로 이어가고자 맨 처음,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진행자의 시점에서 몇가지의 힌트를 드리며, 이는 캐릭터가 모두 알 수 있다는 설정을 걸어두었습니다. - 단, 이 힌트로만 파훼할 수 있는 요소가 많고, 모든 것을 코뿔소로 해결하는 일을 방지하고자 루트에서 몇 가지 제한을 걸어두었습니다. - 오로지 코뿔소로 해결할 경우 벌어지는 분기점 및 힌트로도 알려주지 않는 함정 루트가 있습니다. 이 루트를 적절하게 파훼하는 것이 키 포인트입니다. - 이렇게 보듯, 잘못된 루트로 갈 것 같다, 이대로면 소득이 없을 것 같다, 혹은 '코뿔소 했다간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진행자가 '아웃 카운트 및 조언'을 제시합니다. - 조언은 각 '장소'마다 총 3개씩, 그리고 2챕터에서는 5개가 주어집니다. - 1챕터에서는 캐릭터들이 흩어지기에 3개를 소진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2챕터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동일한 장소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삼진, 그리고 5아웃 이후에는 어떠한 조언도 하지 않고 예정된 루트대로 진행합니다.
예시 당신은 조를 꾸려 태오의 집으로 향합니다. 이 자식,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았다니!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펜트하우스 내부는 깔끔합니다.
> 태오의 개인주의적,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꽤 비싸 보이는 물건도요. 무언가 크게 어지르거나, 무작정 문을 열지 않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이곳은 방탈출 카페가 아닙니다. 누군가 명백히 거주하는 집이지요. > 그러니, 여기에서 무언가 챙기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당신은 저지먼트입니다. 뭐, 챙겨도 괜찮긴 하겠지만……. 선배나 친구에게 제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 굳게 닫힌 문이 있습니다. 어쩐지 열지 않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감이 그렇게 부르짖고 있군요.
...당신은 저 굳게 닫힌 문을 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때,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그래요, 레이브. 인첨공에서 예술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그 천재의 정체가 밝혀졌지요. 예. 그렇습니다. 현태오 말입니다. 이제 보니 문고리는 오랜 시간 기름에 젖은 손으로 열었는지 손잡이 부분이 번들번들하고, 슬쩍 귀를 대보니 내부는 조용합니다. 그리고 이곳만 유일하게 뭔가 끌고 다닌 듯한 흔적이 보입니다. 무거운 무언가를, 수십, 수백, 수천 번, 다리 끝을 질질 끈 흔적이.
아무래도 여긴 작업실인 듯합니다. ...괜히 열었다가 안에 있는 작품이 박살이라도 나 수억의 배상을 물거나, 난장판을 만드느니 그냥 놔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오, 마침 다른 것이 눈에 보입니다. 작은 방이요. 열쇠가 꽂혀있는 걸 보니 돌려서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길 탐색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요.
정말 이 문을 열 것입니까? 저는 '조언'했습니다…. 아웃카운트 하나가 올라갑니다. 총 2개 남았습니다!
※ 다이스 전투제 - 다이스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턴 누적 및 일부 명중 시스템을 차용했습니다.
예시 - 진행자는3턴 동안 다이스의 총합이 500을 넘겨야한다. 단, 2턴째에선 명중과 빗나감 다이스를 굴려야 한다와 같은 제시를 합니다. - 캐릭터들은 3턴 동안, 다이스식을 사용하셔서 공격 묘사를 넣으시면 됩니다. 또한 캐릭터들이 '특정 행동'을 취할 경우 다이스 값에 보정이 들어갈 수 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이 특정 행동은 힌트로 제공됩니다.
- 전투에서 적으로 나오는 npc 중에서는 다이스를 굴려 무작위로 선별된 캐릭터의 공격을 회피하거나, 역으로 받아치고, 발악으로 hp를 회복하는 패턴이 있습니다. 이 또한 파훼가 가능합니다. - 해당 다이스가 어렵다 싶으면 그냥 명중 빗나감 돌려서 명중 n개 이상으로 바꾸는 극단적 행위도 가능한데 이걸 하면 그... 빗나감 파티가 될 것 같아서... 알지?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7051089/556/557 에 이어서)
리라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레벨 5가 되어서 시간의 운용이 자유로워지긴 했다지만 뭘 안 시켜도 늘 뭔가를 하고 있던 사람이니까. 그래도 회포를 풀기엔 충분했다. 시현과 다미는 리라의 레벨 5 달성을 재차 축하해주며 등을 두드려 보냈고, 그 뒤에는 각자의 업무에 전념했다. 때문에 두 사람이 다시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건 늦은 밤이 다 되어서였다.
"시현 쌤. 바빠요? 나 할 말 있어요." "어, 마침 잘됐네. 나도 할 말 있었는데... 일단 너 먼저 해. 뭔데?" "아까 제가 리라 뒤에 서 있었을 때, 어쩌다 보니 웃옷 안쪽... 그러니까 뒷목이랑 어깨. 이런 걸 좀 보게 됐거든요?" "그래서?" "몸이 완전 멍투성이였어요. 다 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본 곳은 다 그러던데요." "......뭐야?" "물론 저지먼트고, 이래저래 다쳐올 때가 많긴 하지만... 좀 느낌이 이상하죠. 안 그래요?" "......" "경 선생님께 전달해둘까요?" "......일단 직접 물어보고." "그래요."
...
"그래서 나한테 할 말은 뭐예요?" "아, 맞다. 너 스트레인지 당분간 가지 말라고." "저기요? 지금 한겨울인데요?" "한겨울이고 뭐고 간에 가지 마. 요즘 그것들 동태가 이상해. 바닥에 저 편지들 보이냐? 2학구 연구소로 배달 왔다는데,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죄다 협박장. 메일 주소도 테러당해서 한 달 안에 몇 번이나 바꿨어. 숨어있는 나한테도 이 난리를 치는데 하물며 나다니는 넌 어떻겠냐고."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지금은 안 돼요. 간이 쉼터 관리도 해야 하고 열선 설치도 덜 끝났어. 그리고—" "말 좀 들어, 위험하다니까?!" "왜 소리를 질러 지르길? 난 안 위험해요! 여태 시현 쌤 죽을 고비 넘길 때마다 구해준 게 어디의 누군데?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냐? 그래, 주다미. 너 강하지. 근데 그 새끼들 손아귀에도 강한 놈들은 차고 넘쳐. 거기다가 수가 더럽고 영악하지. 넌 아니잖아. 개싸움에서 힘이 비슷하면 무조건 비겁한 놈이 이기는 것도 알잖아?"
"아, 시끄러워. 내가 알아서 해! 누굴 아직도 애새끼로 보나. 그 정도 판단도 못 하고 움직이는 줄 알아? 꼭 그것들이 아니더라도 스트레인지는 항상 위험했어! 도박장 운영하는 뒷세계 큰손이 손가락 하나 까딱이면 목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고, 그쪽 눈에 거슬리지 않아도 삐끗하면 자경단이랑 부딪혀서 심력 소모해야 하고, 어떻게 어떻게 말로 해결 봐도 온 사방에서 바깥의 자칭 자원봉사자는 아니꼽게 보니까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하지. 그래도 안 죽었어요 난. 라디오인지 뭔지 하는 스트레인지 소식통에도 한번 안 걸렸고. 이 정도면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거 하나 좀 미룬다고 어떻게 되는 거 아니잖아!" "무슨 소리에요, 한겨울인데 미뤘다가 동사하는 꼴 보라고? 그렇겐 안 되지. 적어도 내 오지랖으로 살려놓고 지켜놓은 애들이면 내가 끝까지 보고 있어야 해요."
이건 신념일까, 고집일까. 어쩌면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시현은 침묵하길 택했다.
>>649-650 👀👀👀👀 스케일이 정말 어마무시해요? 전지적 스트레인지 시점이라. 기대되기도 하고 두근거리게 되네요.
>>651 (목덜미 물린 금냥이) 응. 다갓은 거슬러버리고, 그 큰 그림으로 가지요. uvu 큰 고양이가 작은 고양이 ㅋㅋㅋㅋㅋㅋㅋ 아 좋아요. 금이 뒤늦게 혜성이 보면 짐짓 태연하게 굴까요. 그 뒤로도 종종 무언갈 긁으려고 하면 씁, 하며 혼내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면 받아 내려다 주거나 그럴 거예요.
바람이 얇은 틈으로 날카롭게 빠져나오는 소리를 내며 유정은 자신을 붙잡은 남성의 팔을 있는 힘껏 뿌리쳤다.
"유정아, 미안해." "......"
마스크로 가려진 입가의 표정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으나, 남성을 노려보는 눈에는 극심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게까지 심하게 적대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들은 날 여기에 맡겨두고 떠나버린 걸까?
"삼촌이 많이 잘못한 거 알아. 그래도 이번만큼은 안 돼... 또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어." "...아악!!"
새된 비명소리와 함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크러뜨리며 간신히 소리를 지른 유정은 굳게 닫힌 연구실의 문을 노려보았다.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조용해진 연구실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크게 들리고 있다.
"...조금 진정했니?" "......"
자신의 상태를 묻는 남성. 그러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 남자가, 지금 자신에게 있는 유일한 혈육.
그렇게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면서. 엄마에 대한 거짓말을 하고. 나를 지옥같은 곳에 보내고 나 몰라라 한 사람.
이제 와서 살갑게 굴어봤자.
의미 없는데.
"......" "진정 되면 다시 이야기하자. 자리는... 비켜줄게."
그렇게 자신에게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성환에게서 아예 등을 돌린 채, 상담실에나 있을 법한 의자에 앉은 유정은. 연구실의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힌 뒤 잠기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숨을 골랐다.
왜 날 여기에 맡긴 거야. 왜... 나한텐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거야.
숨을 고르고 나서도 한참 동안을 입술을 깨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유정은, 갑작스레 뭔가 떠오른 듯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마 전화해도, 문자를 보내도 답은 없겠지. 자신을 이 곳에 데려와 맡긴 두 사람의 표정을 떠올리면, 아마 그럴 거다.
그렇다면...
"......"
유정은 무심코 주머니를 뒤지다가 손에 걸린 막대사탕을 꺼내들었다. 너무 달아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닮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가지고 다녔던 사탕의 포장을 뜯어 입에 물고, 연락처에서 한 전화번호를 찾아 꾹 눌렀다. 성환이 다시 돌아왔을 때, 유정은 아까 전보다 훨씬 얌전해진 상태였다. 성환이 뭔가를 한 것은 아니었고, 여전히 유정은 성환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는 있었으나 아까처럼 나가려는 듯 난동을 피우거나 성질을 내지는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성환이 읽고 싶으면 읽으라는 듯 준비해 둔 책 중 하나를 펼쳐 읽고 있었을 뿐.
유정이 정확히 어느 부분을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펼친 페이지에는 이러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진 얇고 작은 끈에 묶인 펜리르는 멸망의 때에 끈으로부터 풀려난다고 한다. - 끈이 끊어지는 것은 멸망의 전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 여기서 해석의 차이가 발생한다. 펜리르가 풀려나는 것이 멸망의 때라는 것은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펜리르라는 존재 자체가 멸망을 일으킬 만한 힘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해석. - 혹은 끈에서 풀려난 펜리르 역시 멸망이라는 거대한 운명에 묶인 존재일 뿐, 멸망은 별개라는 해석. - 둘 다 충분한 근거가 존재하나, 펜리르 역시 멸망의 때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통념상 후자의 해석을 따른다.
"......" "아, 북유럽 신화 이야기구나. 나도 이거 꽤 많이 읽었는데..."
여전히 반응이 없는 유정의 모습에, 머쓱해진 성환은 유정의 시선이 향한 곳을 멀찍이서 내려다보았다.
- 얼핏 보아서는 별 이상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신화란 신들의 이야기이기에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넘쳐난다. - 입을 벌리면 하늘에서부터 땅끝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한 입을 가진, 신들조차 두려워할 강함을 지닌 강대한 존재인 펜리르가 얇디 얇은 끈에 매여 옴짝달싹 못하는 것도. - 그렇게 자유를 잃은 펜리르가 유폐된 장소가 화사하기 짝이 없는 히스 꽃이 가득 피어 있는, 낙원의 모습이나 다름 없는 링비 섬이라는 것도 모두 크나큰 아이러니를 유발한다.
- 그러므로 해석에 아이러니를 첨가하는 것 역시 잘못된 선택은 아닐 것이니, 필자는 다음과 같은 사소한 질문을 떠올리곤 한다.
- 펜리르를 영원히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져, 링비 섬에 가두는 데 쓰였던 그 끈, 글레이프니르는 어쩌면. -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죽음이라는 운명으로부터 펜리르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모두의 독백을 보고 일단 침착하게 제 손을 봄)(쓰읍) 하지만 현생을 포기할수 없는걸.... 여력 안되면 참가 못할 수도 있겠다... (놓친 것들이 많고 바보라서 추리에 자신도 없음)
>>661 (앙냥냥) 나중에는 침실과 거실이 같이 있는 괜찮은 전세로 갔겠지..? 그럼 침실문에 기대서 껌뻑껌뻑 보다가 태연하게 구는 금이 쓰담쓰담 하고 카오스냥이 한팔에 안아들고 휘적휘적 부엌으로 감(?) 높은 곳에 올라가면 받아준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워 고양이 둘
언젠가 올 순간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전에 닥치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지러이 뒤엉켜있던- 나를 구성하던 것들이 하나 둘 바스라져 사라져갔다. 내 눈에만 비치는 광경을 보며 천천히 숨을 쉬었다. 잔잔하던 시야가 흔들리며 누군가 비쳤다.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은데, 나도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나는...
승진 얘기 나오는데 혜우가 상사 같다는 건 ... 자리 비워줄게 잘 살아 < 이거 아님? 돌아버려
캡틴 말대로 오늘따라 엄청 어둡네... 🫠 머리녹다 그나저나 죽을 때 잊어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건 역시 혜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잊혀지는 것 그 자체는 아니라는 방증 같기도 하네... 적폐 캐해일 수도 있는데 혜우는 잊혀짐을 바란다기보다는 잊혀짐을 수단으로 쓰려는 것 같음
>>667 (역 깨물) 응. 지원금 단위도 다를 테고. 금이야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모아둔 돈이었으니 탈탈 털었을 테니까요. 안겨가는 카오스 냥이가 부러워...! 금이도 졸졸 따라서 혜성이 옆에 딱 붙어서 뭔가 준비하면 같이 도울 거니까요. 그리고 우히히 uvu 받아주거나, 금이가 키가 크니까. 잡아서 내려다 주던가. 둘 중 하나 응. 귀엽다면 그만큼 사랑해 줘야 해요?
>>670 왜 해시까지 이래요? 고민하다 내뱉지 못하고, 마지막 내쉬는 숨으로 끝난다니. 우우우.. 🥺
수경 TMI 주세요! 우리 수경... 일기는 쓰나요? 오늘의 일기 한번 써 주세요! Date. -일 -흰크리샌디뮴으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클립스를 한 알 섭취. ㄴ맛이 의미하는 것 중 용서, 희망이 필요. -어떤 사안에서도 스냅드래곤...의 사항이 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 -상기 사항들은 방해가 있을 것으로 사료됨. -해결책. ..... 것을 추천.
지금은 아니요. 병원 갔다 오니까 갑자기 확 나빠진 기분이... 목스프레이 좀 뿌리고 다시 자려고요.
너무 축약해서 그.. 실험일지처럼 보일 수 있는데
성실하게 준비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그걸 준비했는데 점심 먹고나서 이클립스를 줘서 한 알 먹었는데. 딱 그 이클립스의 맛을 보고 떠올린 게 있어요. 그걸 알려주려고 준 거였을까요? (중략) 주제넘게 참견하는 이들을 주의해야 하는데 그 방법 중에 일부는 방해를 받을 거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되네요.. (이하생략)
>>694 현실에 때려맞아서.....(죽은 눈) 이 캡틴이 미안해!! 8ㅁ8 그리고 하이힐 꽤 아프던데 리라는 익숙하군요. 뭔가...뭔가 신기하다!! 그리고...ㅋㅋㅋㅋㅋ 안돼요! 인첨공에 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죠!! 그게 가장 중요한건데!! 들어오면 종말을 맞이해! 어린 리라야!! (어?)
>>695 후 후후...(?) 꼭 스토리에서만 영향 받은 건 아니니까 괜차나용~~ 들어오기 전에도 충분히 때려맞았으니...(끄덕)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돌 트레이닝 할 때 하이힐 익숙해지는 트레이닝도 받았어서 잘 신고 다닌대~ 물론 불편해하는 건 같아서 길바닥에서 신고 걸으라 하면 사람 없을 때 벗고 맨발로 다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아니 그리고 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안돼~~~~~ 인첨공 안 오면 저지먼트 아이들과 랑이를 못 만난다고!!!(?) 밖에서 온 친구들은 모르겠는데 특히 랑이는... 인첨공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사라지지 않는 한 리라가 오지 않으면 만날수없서... 종말... 설령 종말을 맞이한다 해도 다같이 있으면 달콤할거야...(???)
참고로 혜우우 바다에서 물놀이 이후 시점이면 태오는 "연락도 안 받고 어디 다녀왔어? 뻔뻔한 건 안 좋아해……." 하면서 눈 가늘게 휜 채로 빤-히 쳐다봄. 책상 위에는 두통약 종류별로 굴러다니고 있고 하교 후에는 "일하러 가야겠다-"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냥 가버릴듯. 미친놈 대가리를 확...
그런 생각을 하는 머릿속이 멍했다. 아무래도 열병이 난 듯 했다. 그런 무모한 짓거리를 '또'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스르륵
"...뭐야. 벌써 깼냐."
병실 특유의 무소음 미닫이 문 움직이는 소리가 나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만 겨우 굴려 그 쪽을 보자 익숙한 백의 차림의 유준이 침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자 일정한 보폭으로 가까이 온 유준이 링거줄을 만졌다. 두 개의 팩에서 똑, 똑, 떨어지는 수액에 시선을 올리는데 에휴, 하는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소리를 따라갔다. 자색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한동안 얌전하더니 또 왜 그러는데. 뭔 일 있었냐."
무슨 일...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깊은 한숨소리가 돌아왔다.
"없긴. 꼭 뭐 심기 뒤틀려야 이 X랄 치면서, 숨길 걸 숨겨라."
그랬나...
멀뚱히 눈만 깜빡거리고 있으니 벌써 세번째 한숨소리가 들렸다.
"X발,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쩌다 애X끼들 치다꺼리 담당이 되어가지곤."
...아.
애- 들, 이란 말에 생각났다. 마른 입술을 움직여 겨우 말했다.
"홍류... 어딨, 어요...?"
어이 없다는 시선이 내게 꽂혔다.
"이제야 생각났냐? 어딨긴, 연구동 휴게실에 있지. 여선생들이 귀엽다고 난리도 아니다. 부탁도 안 했는데 옷 이거저거 사다가 입히고 뭐 먹이고 하려고 아주 난리들이야." "ㅎ... 짜증... 내고... 있겠네요..." "말도 마라. 태생이 그래서 그러려니 하긴 하는데, 그거 감안하고도 뭐 저렇게 X랄맞은지. 저거 언제 사람 만들어서 학교도 보내고 한다냐. 에휴! 생각만으로 10년은 늙는다." "흐..."
웃듯이 숨을 내쉬자 유준의 표정이 별 꼴을 다 본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을 다시금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기침을 콜록, 내뱉었다.
"...선생님... 이거... 감기에요...?" "아니, 열하고 몸살. 내일이면 어떻게 될 지 모르긴 한데 일단 지금은 그래." "그럼... 내일, 학교, 오전에만, 다녀오면..."
쿨럭!
거칠게 마른 기침을 하는 나를 한심하게 내려다보는 유준이었다.
"그 꼴을 하고 학교를? 이유나 한 번 들어보자." "저지먼트에, 내야 할게... 아." "왜 말을 하다 말어?" "홍류, ID카드..." "그거 소장님이 어떻게 하시기로 했잖아." "그... 부장님이, 통과, 시켜준대서... 기다리면, 된대요... 카드..." "아 그래? 일 하나 줄었네. 어. 그래서 저지먼트 그거는 너 아니면 안 되는 거고?" "네..."
마음이 착잡하군요... 진짜 개착잡함 현태오 대가리 진짜로 깨버려야만 윤뽀메는 "어! 어 너 왜 울어...? 어, 너……." 하면서 입 다물다가 그냥 다독다독 해주는데 그게 좀 어색할 것 같음 누구 다독다독 해준 적 없는 그런 손길 울지 마... 하고 달래주면서 어쩌지 하다가 꼭 안고 토닥토닥
연구원이 오늘도 부재 중이라 혼자 사이코메트리 연산식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내가 기억하든 말든 내 뇌는 연산 잘만 하는데 굳이 읽을 필요 있나도 싶었지만, 와 놓고 암것도 안 하긴 뭣해서. 당연히 집중 못해서 사이코메트리로 어제 일이나 되새겼다.
송양지인. 부정을 못 하겠다. 지금이라도 정하가 챙겨 둔 문서를 복사해다가 오맨들한테든 대표이사한테든 익명 투서라도 보내고프다. 하지만... 유니온이 대학살을 저지를 작정이고 그래서 이런저런 계획을 실행하고 있어도 그 만행은 아직 안 벌어졌다.(저질러 버리면 돌이킬 수도, 단죄할 수도 없단 게 함정이지만;;;; ) 아무리 대량 학살을 도모하고 있대도, 아직 살인자는 아닌 거다. 근데도 살인자 취급해서 해쳐도 될까? 것도 생체 폭탄이라는 악랄한 수단에 기대서?? 그렇다 해도 이케 손놓고 있다 유니온한테 당하면??? 과연 지금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차마 생체 폭탄으로 죽일 순 없다는 게, 여기 사는 모두가 살해당하는 미래까지 감당할 만한 가치관이야????? 절대 아니다!!!!!!!! 근데도, 못 하겠다. 난 똥멍청이 중에서도 최고 똥멍청이다............
꿀꿀해져 양 볼따구를 후려쳤다. 딴 거 하자. 뭐든 딴 거. 하여 가방을 뒤적거리다 얼마 전 사 놓은 카드를 찾았다. 그제야 소원 쿠폰을 선배한테 깜짝 선물로 줘야겠다 맘먹었던 게 생각났다. 부랴부랴 문구부터 적다가 '단, 소원은 김서연이 직접 할 수 있는 일로 한정됩니다.'에서 멈칫했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잖아...... 이게 선물이 될까?;;;;;;;
그러다 토실이랑 눈이 마주쳤다. 빵싯 웃어 주는 거 같았다. 토실이한텐 무심했다는 양심통에 토실이용 쿠폰도 만들어 건넸다. 그러자 토실인 그 쿠폰을 도로 주더니, 내 품에 쪼르르 매달렸다. 내게 안기는 게 소원이라는 듯이. 품에 들어찬 포근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자긴 가족이라고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순간, 속에서 뭔가 넘쳤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나도 토실이도 눈물범벅이었다. 그리 축축해지고도 토실인 아늑하고 든든했다. 내겐 언제든 곁을 내어줄 것처럼. 그게 고맙고 마음 놓여 토실이를 한껏 끌어안았다.
@강철현 ☆ 소원 쿠폰 ☆ 본 쿠폰을 제시하면 김서연이 소원을 하나 이루어 드립니다. 말하기 어려운 소원은 본 쿠폰에 적어 주셔도 됩니다. 단, 소원은 김서연이 직접 할 수 있는 일로 한정됩니다. 본 쿠폰은 1회용이지만, 유효기간은 무기한입니다. 타인에게 양도는 불가합니다.
/ situplay>1597051012>538에서 공개하겠다고 했던 선물입니다!! 디자인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똥손이라...👀👀👀 아래 링크 같은 걸 찾아보긴 했어요^c^;;;; https://m.blog.naver.com/sonia30/222644421029
>>790 수경주 편히 쉬세요. 어지간하면 주말 약속도 양해 구하신 뒤에 푹 쉬시는 걸 추천할게요 ㅠㅠㅠㅠㅠㅠㅠㅠ
>>792 청윤주 이번 주말이 마지막 휴일이실 거 같네요. 즐기세요!!!! 2학기는 2학기의 빡셈이 있을 테니 ㅠㅠㅠㅠㅠㅠㅠㅠ 아, 글고 보니 율럭키 관련 질문이라기는 뭣하지마는 어... 청윤이의 아버지가 승진을 못하도록 훼방놓은 인물이 혹시 현재 3학구 안티스킬로 있는 모시호인가요? 모시호가 그 율럭키랑 뒷거래하는 안티스킬이고요??
독백 쓴거에 사족 붙히면 겁나 못쓴 글이라던데 뒤늦게 사족을 좀 붙혀봄. 스루 얼마든지 가능. 반응 없어도 됨.
태오가 시간이 갈수록 트로트 가수 뺨후리는 캐릭이 된다면 이혜성은 그 반대의 루트를 타고 있기 때문에 무던함을 넘어 무심함에 가까운 태도를 고수하는 중임. 또한 비사문천 한정으로 폭군같은 성향이 보이는데 스트레인지 영향을 받은 탓에 스트레인지 내에선 좀 또라이 기질이 두드러짐. 그리고 사실 종말 속에서 살아남아서 다시 만납시다 같은 오그라드는 대사도 넣어보고 싶었는데 기력이슈가 그만
오늘은 연구원이 있어서 입시형 커리큘럼을 진행했다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그래도 커리큘럼 끝난 뒤엔 깡통 로봇 같은 뭔가의 설계도를 보여 주면서 기한이 촉박해 기성품에 고철을 덧대기로 했다고 설명해 줬다. 그러고 견적서도 보여 줬는데...... 더 늘어날 수 있다는데도 비용이 엄청났다. 이미 내가 모아 둔 돈의 두 배야;;;;;;;;;;;;;; 이런 속을 읽기라도 했는지 연구원은 알아서 지불하라고 다시금 강조했다. 골이 지끈거렸다. 혹시 대출은 안 되냐고 물었더니, 시중 금리대로 이자도 지불하는 조건으로 차용증 작성하란다. 맙소사... 고3도 되기 전에 빚쟁이라니!!?? 전적으로 내 선택이지만 막막한데,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다. 못 돌려받을지 모르는데도 대출은 해 준단 거잖아? 돈 없으니 못 해 준다는 식이었음 어쩔 뻔했어??
그렇게 넘어갔으니 짤없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텐데, 차용증 작성하고 나오자마자 부실에 채울 먹거리부터 질렀다. 내가 여태 모아 놨던 돈만큼을 하루아침에 빚져서 금전 감각에 문제가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아님 여차하면 갚을 일 없어지는 빚이라고 막가파가 됐거나. 그만큼 제정신 아닌 거 같은 짓이지만 후회는 없다. 원인이 뭐든, 과정이 어쨌든, 부원들 아니었으면 짤없이 죽었을 목숨 또 건졌으니, 먹을 거라도 채워 넣어야 속 편하지. 특히나 웨이버 그 물수박 땐, 리라랑 로운이랑 정하랑 혜우 덕 못 봤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그렇게 몸서리치던 중 불쑥 유니온이 리버티한테 심은 안테나 생각이 났다. 웨이버는 그거 아나? 웨이버한테 심었으면 웨이버가 낭군님 낭군님 하는, 월광고 저지먼트 부부장한테도 심었을 거 같은데. 알려는 봐야겠다. 글고 보니 강수연씨는 어쩌고 지내려나... 확인해 봐야지.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드리자니 귀하는 귀하대로 전혀 안녕하지 못한 상황일 거 같고, 저는 저대로 귀하께 안부를 물을 만한 사이는 못되는 거 같습니다. 전하고픈 말이 있어 쓰기 시작했으니, 그 말만 전하겠습니다.
귀하와의 싸움 직후 귀하의 머리에 자그마한 안테나가 붙어 있던 걸 확인했습니다. 그 안테나는 늦여름에 설치된 걸로 추정되며, 전파를 수신해 뇌에서 특정 감정을 유발하는 장치였습니다. 귀하 말고도 귀하의 낭군님을 비롯한 리버티 주요 인물들에게 모두 붙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안테나를 만든 자는 유니온이고, 붙인 자는 리버티의 간부 중 계수 복사 능력자일 겁니다. 그 자는 유니온의 부하거든요.
그 안테나를 붙인 목적은, 리버티 주요 인물들이 품을 수 밖에 없었던 분노와 복수심을 이용하는 것이었겠지요. 유니온의 진짜 목표는 일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본인 포함 인첨공에 사는 사람을 모조리 죽이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유니온은 퍼클 수준의 바이오로이드인 제로 시리즈 7기와 뉴트로미니컬 에너지를 이용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싸우는 동안 귀하의 데이터를 탈취했고, 제로 시리즈의 초능력을 강화하는 약물인 검은 샹그릴라 실험을 마쳤으며, 뉴트로미니컬 에너지로 가동되던 저희 측 잠수함을 탈취했으니 유니온은 대학살의 준비를 마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리버티와 목화고 저지먼트는 적이었고, 저는 귀하의 목도 졸랐으니, 믿기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사실을 알리는 게 귀하에게 가혹한 짓일지도 모른다는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편지를 쓴 이유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귀하가 유니온을 적대시하여 저희를 도와줬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타인에게 조종당했다는 현실이 아무리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지라도, 그 진실을 모른 채 내 의지 내 감정대로 움직였다 믿는 건 더더욱 참혹할 것 같아서이기도 합니다.
전하고자 했던 내용은 모두 담았으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안녕하시냐 인사하자니 되게 뻘쭘하네요. 전 강수연씨를 고작 두 번 본 사이, 것도 적대하던 사이였으니요. 용건이라긴 애매하지만 할 말이 있어서 적기 시작한 편지니 가능한 한 용건을 명확히 전달하도록 해 볼게요.
음, 일단... 기계 장치가 고장나서 불편했을 듯한데 몸은 좀 괜찮나요?
다음으론... 사실 여기부터가 본론이에요. 그때 검은 샹그릴라 먹지 않아 줘서 고마워요. 그 약의 부작용을 알렸긴 해도 그땐 서로 적이었으니까 그 부작용을 무릅쓰고라도 먹으려면 먹을 수 있는 입장이었잖아요. 그랬다면 우린 꼼짝없이 그때 죽었을 거고요. 수연씨한테 우릴 도와주려는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덕분에 우린 살았으니 수연씨의 의도가 어떻든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음...;;;; 동정하는 척한 거 같았다면 미안해요. 그때도 얘기한 대로 당신이 검은 샹그릴라의 부작용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알면 그 약을 안 먹을지도 모르니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줄어드니까. 얘기하는 동안 무섭고 쫄았으면 쫄았지 당신 인생을 동정하고 말고 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어요. 근데 이건 어디까지나 제 입장이 이랬다는 거니까, 그런가 보다 알아 주면 고마울 거 같아요.
마지막으론... 그,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고 했잖아요? 저도 그래요. 전투나 전쟁에 중독돼서 실성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언성 높이거나 다툴 일 없이 평화롭게 살고 싶잖아요~ 당장은 저부터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서 무섭고 막막하지만요. 그래서, 제 바램도 강수연씨의 바램도 이뤄지는 세상이 됐음 좋겠어요. 이 얘긴 그냥 하고 싶어져서 적었어요. 혹시 여건이 된다면, 그리고 내킨다면 강수연씨도 이렇게 적어 줘도 좋아요!
진지하게 수경주... 상판을 조금 쉬고 치료나 회복에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죄송한 말일 수도 있는데... 지금 몸이 계속 안 좋다. 아프다라는 발언이 계속 나오잖아요? 그리고 몸이 안 좋은 것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모카고에서만 해도 몇달 되었거든요.
그 정도로 계속 몸이 아프다면 이게 단순히 조금 쉬는 것으로 나아질 것 같진 않아보이고...뭔가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것 같거든요. 지금도 몸이 안 좋다는 것이 제대로 보일 정도고요.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면 뭔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해서... 제가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진지하게 걱정이 되어서..8ㅁ8
아무리 머리가 나쁘고, 사람 속마음을 읽어대는 괴이라곤 해도 도넛이 학교 복도에 떨어지거나 할 일은 없을테니까. 공간 자체를 병원으로 바꿔야 하는 동월의 트라우마도 아마 여기에선 괴이들에게 그다지 좋은 패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 대신 이렇게 몸이 고생하지만 말야. " " 아무튼 고맙다. "
청윤의 공기탄으로 문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기점으로 동월도 칼을 빼들었고, 쉴새없이 날아드는 유리 조각들을 쳐내며 최대한 앞으로 뛰었다. 그렇게 잠시간 뛰다보니 점점 흔들림도 잦아들고, 웃음소리도 희미해져갔다. 무엇보다 끝이 없을것만 같던 복도 저 멀리에 문이 하나 있는 것이 보였다.
" 그러고보면 보스(이경)랑 아침마다 달리기 한댔나? "
분명 나갈 곳이라곤 저 문 하나밖에 없으니 탈출일지 어떨진 몰라도 이 거지같은 일자 복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할텐데도, 동월의 표정은 한층 더 창백해져있었다.
" 너 지금 멈추면 죽는다!!! 아니 죽진 않겠지만 그거보다 못하게 된다!!!!! "
다급하게 외치며 동월은 더욱 속력을 냈다.
" 뒤 돌아보는건 상관 없는데 절대!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안된다! 뭔 일이 일어나도 멈추지 마!! "
잽싸게 달려 어느새 처음 문을 보았을 때 보다 절반 정도 가까이 왔다고 생각되었을 때 쯤에, 청윤과 동월의 몇 걸음 뒤에서 교실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는, 겁에 질린 것 같은 표정의 누군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단순한 실종자인지, 변장한 괴이인지는 알 수 없다.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문제지만... 동월은 발을 멈추는 일 없이, 고개만 뒤로 돌려 말을 뱉어낸다.
" 뛰어!!! 뒈지기 싫으면 뛰라고!!!! " -에...네? 에에?-
어느새부터인가 수많은 발소리가, 마치 지진이라도 낼 듯이 복도를 울리고 있었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 발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져오고 있었다. .....이건 너무 빠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뭔 1000m 뛰는 것도 아니고.. 동월이 장난만 안 쳤어도 훨씬 나았을탠데! 하고 한탄하며 청윤은 계속해서 달려갔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뒤에 보고 뛰다 넘어지지 말고 앞 보고 뛰기나 해!"
그렇게 생각하니 짜증이 조금 나서 외쳤다.
"...!"
그러던 중,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사람일까? 더미일까? 달리는 3걸음 동안 청윤은 빠르게 생각했다.
'만약 저게 사람이라면 아마 손을 잡고 달려나가지 않으면 죽을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만약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다가 죽는다면 3명 중 1명만 살아나가는 것이겠지. 그리고 만약 저게 더미라면... 그게 더 최악일 것이고. 동월조차 그냥 달려나갔다면, 나도 그냥 달려갈 수 밖에 없어.'
글쎄, 워낙 변칙적인 공간이라 동월도 단언하긴 힘들었다. 그야 '확실히 탈출' 을 할 수 있는 루트가 있긴 하지만, 저 문은 '운이 좋으면' 탈출할 수 있는 문이었다. 하지만 동월의 운으로 쉬운 탈출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 괜찮아! 넘어질 일은 없지만 넘어지면 그대로 칼 박을거니까! "
전혀 괜찮을 일이 없는 말이었다.
이제는 지척까지 무수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뒤에서 나타났던 사람은 심상치않은 발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검은색 파카 같은 것을 입은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점이라면, 목이 180도 돌아가 앞으로 뛰고 있음에도 우리가 보는 것은 뒷통수들 뿐이었다는거? 아무튼 그것들은 복도를 가득 메워 피할 틈도 없이 전진하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 왜 하필 밑군단이 이딴데에서 나와! "
밑군단. 동월이 최초로 조우한 곳은 대영공장(괴이)의 땅굴 속. 지금 보는 것 처럼 군집을 이루어다니며, 좁은 곳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그것들을 보자마자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전력으로 뛰었대도 이제 막 뛰기 시작한거라 속도가 붙을 리가 없었다. 누군가는 채 3걸음을 딛기도 전에 밑군단에게 채여 넘어졌고, 그들 사이로 사라지며 끔찍한 비명을 남겼다.
밑군단에게 묻히면 어떻게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저것들은 처음 조우한 이래로 계속해서 군집을 이루는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 ..... "
동월은 끔찍하리만큼 분한 표정으로 이를 갈며, 자신들도 같은 꼴이 되기 전에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문을 쾅 닫아버리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 처럼 문 건너편이 조용했다.
밖이다. '운이 좋으면 탈출할 수 있다' 라고 하긴 했지만... 어쩐지 허탈해져서 바닥에 털썩 주저않았다. 그 뒤에서야 청윤이 했던 말들에 하나씩 답변을 해줄 수 있었다.
" .....그게 괴이야. 저 썩을 것들.... 평범한 괴이라면 그냥, 잡아먹겠지. 피와 살을 좋아하는 놈들이니. 하지만, 방금 만났던 밑군단처럼 특이한 놈들이 있어. 죽지 않은 인간을... 자기들과 같이 만드는거지. "
인간의 괴이화. 그것은 결코 자연적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괴이 놈들에 의한 변화. 동월이 괴이를 끔찍히고 증오하는 이유들 중에 하나였다.
" 밑군단... 저놈들은 저렇게 뛰어다니면서 사람을 집어삼켜. 사람은 밟히거나 하는 식으로 죽지 않아. 저놈들의 '일부' 가 돼. "
처음 봤을땐 저만큼 많지 않았는데... 몇 년 사이에 몇 명이나 집어삼킨걸까. 동월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자신을 비하하며 눈물을 흘리고있는 청윤에게 비척비척 다가간 동월은, 그 옆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 사람을 구하지 못한 나약한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어. 사실이거든. " " 하지만 쓰레기는 아니야. " "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중요한건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구하겠다는 각오가 용기 따위가 아니야. " " 살겠다는 의지지. " " 목숨 바쳐서 다른 사람을 살리고, 나는 잘 됐다며 편안하게 죽어간다? " " 개소리지. "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한 동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 그렇게 울고 있을 시간 있으면 일어나서 앞이나 봐. " " '남을 위해 죽는다' 가 아니야. '남을 위해 살아간다' 지. " " 네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데 죽긴 죽어? 그게 더 쓰레기야. "
통증으로 수면욕을 몰아내다니... 나같은 삶을 살고 있어 이 사람... (고통) >>996 짭짤헤오... 바삭하진 않아오... 미쿡 사람들이 괜히 한번 나가면 차까지 끌고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오는게 아니니깐... (담쓰담쓰담쓰담쓰담쓰담쓰담쓰담쓰) 정신적 힐링이라도 하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