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050693> [판타지/모험/개인서사] 이야기들 (임시스레) :: 1001

◆MjRAeKhiz2

2024-08-13 09:12:58 - 2024-09-23 18:13:26

0 ◆MjRAeKhiz2 (NchKwKy7oA)

2024-08-13 (FIRE!) 09:12:58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의 소품이자, 단역이자, 조연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는 비참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고, 기승전결이 갖춰졌거나 이야기의 어떤 구성요소 하나도 제대로 된게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엉망인 이야기가 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선택하고, 때로는 강요당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써낸다. 이야기의 악마 이프가 이제 마침표를 찍으라 권할 때까지, 죽음이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왜냐면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니까.

920 ◆MjRAeKhiz2 (lhSeC9XwPs)

2024-09-18 (水) 18:35:50

>>916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만 그거 꽤 비싼 삽입니다."

요한은 조심히 다뤄달라는 말이겠지만, 누누코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소리입니다. 그때그떄 필요하면 만들어 쓰고, 정말로 소중한 물건은 '싸다' '비싸다'의 개념이 없었으니까요. 소중하면 소중한 거고 소중하지 않으면 소중하지 않을 뿐입니다. 누누코는 이 삽으로 사람 여럿을 파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요한과 함께 숲 속으로 나아갑니다. 요한은 이곳의 지리를 알아왔고, 누누코의 본능은 피해야 할 때와 나아갸아 할 때를 귀신같이 구분합니다. 누누코가 아니라 요한보다도 큰 옥수수대를 헤치고, 솨아아아 불어오는 바람은 두 사람이 거침없이 땅을 휘적거리는 것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며 그들을 가려줍니다. 그리고 옥수수밭을 헤치면 옥수수가 또 나오고 옥수수가 또 나오던 풍경을 지나서, 누누코가 마침내 바깥으로 발을 내딛기 직전 요한이 누누코의 어깨를 턱 잡습니다.

"잠깐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누누코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킵니다. 울타리에 석궁과 칼로 무장한 두 남자가 껄껄거리며 저들끼리 이야기하고 있고, 모닥불에는 쥐와 새로 추정되는 것들을 꿰어놓은 꼬치를 여럿 걸어두고 있습니다. 요한은 누누코를 돌아보며,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매우 진지한 낯빛으로 말합닏.

"제가 '아, 이런. 내가 술을 가져오지 않았는데!'라고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절대 끼어들지 마십시오."

921 아앨라나 - 진행 (zz2XgEX.V6)

2024-09-18 (水) 18:51:13


@@ >>918

"계속하세요, 하고 있는 행동을 하세요. 어쩌면 저희는 잘못된 장소에서 행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만일, 그렇다면 바로잡야겠지요"

저는 그녀가 물어보면서도 먼저 자리를 정리하는 것에 동조하여 그렇게 말했어요. 아무래도 저희가 머물러야 하는 장소를 잘못 선정한 것 같네요. 어쩌면 장소가 아니라 저희가 틀린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온전하게 휴식은 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필요로 하게될 것을 어느정도 해냈어요

"소리가... 이것은 목소리인가요? 어떠한 징조일까요?"

빛이 찾아올 수 있더라도 낮이 아닌 이상 숲은 여전히 곳곳에 어둠이 내려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주변을 살펴 보았지만 소리의 근원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잘 모르겠어요. 예감으로 봐본다면 이것은 또 다른 숲 속의 존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닐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묘한 느낌이요. 저희는 그 소리로부터 할 수 있는 만큼 멀리 떨어져야 할까요? 다른 무언가가 있나요?

922 누누코 (3UQBnlePXA)

2024-09-18 (水) 18:53:47

@@ >>920
'인간이다.'
누누코의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전방에 있는 익숙하고도 아주 역겨운 냄새- 인간을 감지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요한이 누누코의 움직임을 제지하듯 어깨를 붙잡으며 기다리라며 말한다.
요한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곳에는 둘의 남자가 있었다. 누누코가 보기에는 그저 사냥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뿌리 깊은 증오탓인지, 아니면 누누코의 동물적 직감때문인지. 누누코는 그들을 시선 안에 가두면 알 수 없는 기분 나쁨이 느껴지고 있었다.

"알겠어."
누누코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근처의 나무로 재빠르게 움직여 몸을 숨겼다. 요한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이 없는듯한 모습이었다. 남은 것은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923 누누코주 (3UQBnlePXA)

2024-09-18 (水) 18:54:03

다들 안녕하세요~~ 잘 쉬고 계신가요~

924 ◆MjRAeKhiz2 (lhSeC9XwPs)

2024-09-18 (水) 19:27:23

>>919
"...좋아. 심증이 하나 더 늘었군. 그런데 제기랄놈의 물증이 없구만."

에레야는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두들기면서 한숨을 쉽니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옐리사베타 블라디미로비나 예페슈카, 아니...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를 아무리 탈탈 털어도, 아예 내장을 갈라 버려도 그녀가 찾는 물증이 나올 리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에레야는 손을 휘휘 저어서 엘리가 볼일을 보도록 합니다. 하지만 지금 위에는 한참 난장판이고, 엘리의 인상착의에 수배령이 걸린 이상 함부로 올라갈 수는 없기에, 거한들이 빈 포도주 통을 들고 오더니 거기에 양동이로 물을 붓고는 수건과 갈아입을 엘리의 새 평상복만 남겨둔 채 문을 걸어잠가 버립니다.

엘리는 다시 한번, 피에 젖고 지하수로까지 거닐어 썩은 물내가 밴 몸에 휴식을 선사합니다. 포도주의 단내와 알코올의 쓴내가 배이는 것 같지만, 단내는 좀 '고급스러운' 목욕 하는 셈 치고 알코올은 이거로 혹시 모를 잔상처를 소독하는 셈 칩시다. 엘리가 다 씻고 나오면, 거한들이 아앨라나에게 수갑과 재갈을 내밀고, 에레야는 무거운 얼굴로 말합니다.

"잠시만 참아줘."

왜 그러냐ㅡ고 물어볼 것도 없이, 에레야보다도, 아니, 엘리의 질문보다도 위에서 먼저 대답이 들려옵니다.

"이단심문관 에레야 님! 이단심문관 지위를 남용한 폭력 행위에 대한 조사에 협조해주셔야겠습니다!"

925 ◆MjRAeKhiz2 (lhSeC9XwPs)

2024-09-18 (水) 19:33:55

>>921
"무슨 소리요? 뭐 들려요?"

베스니는 귀를 기울이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그녀의 귀에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가끔씩 우는 부엉이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베스니는 괜히 불안하게 만든다며 토라진 소리를 내고, 아앨라나도 더 신경쓰지 않고 넘기기로 합니다. 어두운 밤이지만, 아앨라나는 앨리스 님에게 배운 밤하늘의 별 보는 법을 떠올리며 별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앞으로 향합니다. 뷔르트겐 호수는 워낙에 크니, 대충 '이 방향이겠거니' 하고 따라가도 나온다는 것은 위안입니다. 하지만...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베스니는 묵묵히 아앨라나를 따라오는데, 아앨라나에게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슬리는 그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옵니다.

926 ◆MjRAeKhiz2 (lhSeC9XwPs)

2024-09-18 (水) 19:44:00

>>922
요한은 슬쩍 옥수수밭에서 나가더니, 얼굴빛을 싹 고치고 자연스럽게 "어이! 어이!"라고 말하면서 두 남자의 시선을 끕니다. 모닥불 앞에서 노가리를 까던 두 사람은 갑작스레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타나자 석궁을 조준하는데, 요한은 석궁을 조준하건 말건 양 손을 들고 그들 앞에 가까이 서더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바보같고 어수룩한 말투로 그들에게 묻습니다. 이건 평소에 누누코가 알고 있던 요한의 그 말투가 아니라, 마치 마을의 코흘리개한테 옮은 듯한 바보 말투입니다.

"내가 미스터 스위트님 대농장에 고용됐다고 편지를 받았는데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삽 쓰는 일을 해야 한대서 삽을 들고 왔는데..."

"뭐?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이거 진짜 맞아? 그 사람은..."

한 남자가 뭐라 말하려다가 옆에 있던 이에게 정강이를 탁 맞고 입을 닥칩니다. 정강이를 걷어찬 남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요한에게 성큼성큼 걸어가서, 요한의 멱살을 확 붙잡고 울타리 쪽으로 밀칩니다. 그리고는 칼을 꺼내드는군요.

"어어, 어어어..."

하지만 요한은 바보 행세만 할 뿐 반격도, 억울하다는 표현도 하지 않습니다... 옥수수밭 사이에 숨은 누누코는, 멱살을 잡은 남자에게 살의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남자의 칼이 요한의 목으로 향하는 것이 보입니다!

927 ◆MjRAeKhiz2 (lhSeC9XwPs)

2024-09-18 (水) 19:44:28

오늘은 여기까지...
사유: 내일 새벽 4시 기상해야함
추석이라고 많이 쉴줄 알았는데 미안하이 낼모레는 진행 좀 될듯

928 엘리주 (/stGyLNbFQ)

2024-09-18 (水) 19:54:44

아냐 덕분에 고맙지 모~~

929 엘리 - 진행 (/stGyLNbFQ)

2024-09-18 (水) 20:54:30

@@>>924

"앗—"

하긴. 이단심문청의 권위. 귀족의 권위. 순간적으론 전자가 압도하지만, 어지간히 귀족을 죽여댔으니... 슬슬 커버할 수 없는 정도가 된 것이었다.

"이건 어쩔 수 없네."

하지만 이단심문청의 힘이 이대로 패배할 쏘냐! 일단은 얌전히 포박당해있다면 언젠간 에레야가 구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제 손으로 수갑을 찼다.

930 ◆MjRAeKhiz2 (2u8kjj9Wb.)

2024-09-19 (거의 끝나감) 10:47:44

>>929
세상 일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른다지만, 엘리는 세상 일이, 그것도 자기 인생이 이런 식으로 돌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에레야와 함께 죽인 놈들의 숫자가 좀 된다지만, 그래도 엘리는 뱀파이어고 에레야는 이단심문관일진대 살다살다 이단심문관과 이단심문의 권위가 누군가를 이기길 이리도 바라게 되다니요.

"좀 아플 거다... 겁니다. 참아...요."

엘리는 입에 물려지는 재갈에 해면이 꽂혀있는 걸 느낍니다. 저도 모르게 혀를 굴리면 해면 특유의 꺼끌꺼끌한 촉감과 함께 달콤한 피 맛이 느껴지고, 거한은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묶습니다. 그리고 거한들이 몽둥이를 들고 엘리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쟤 너네가 힘빠져 죽을 때까지 때려도 안 죽어. 그래도 허리, 무릎, 어깨같이 아프기는 죽도록 아픈데 소리 안 사는 데는 때리지 말고."

즉, 쇼 좀 하라는 건데... 확실히, 소리만 퍽!! 퍽!! 엄청 나지 아프진 않습니다. 기분은 더럽지만요.

"...문 열어."

그 말과 함께 경비병들이 들이닥치고 아까 봤던 높아보이는 경비가 앞장서서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다릅니다. 손에 영장을 들고 있고 개중에는 교회의 인이 찍힌 것도 있습니다.

"이단심문관님의 노고는 인정합니다만, 최근 이단심문관님의 불법행위에 대한 믿을만한 증거를 다수 확보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렇다면 아주 좋은 증거가 필요할 겁니다."

에레야는 경비와 단 한 마디도 밀리지 않습니다. 에레야의 지위, 종교의 권위, 사건의 특수성, 특유의 블랙유머를 총동원하지만, 사실 이단심문관이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부터 뭔가 일이 개판으로 됐다는 신호입니다. 어쨌든 둘은 팽팽하게 기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경비가 한 발 물러섭니다.

"내일 저녁 6시, 신전에서 에레야 이단심문관님의 정직 여부를 검토하는 긴급 청문회가 태양교단 세스타우 교회 주관으로 열릴 예정입니다. 제 미약한 경비로서의 권위는 몰라도 부디 같은 교우의 부름은 무시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경비대장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올라가고, 거한들은 엘리를 때리던 것을 멈추고 바로 풀어줍니다. 그리고 에레야는 한숨을 아주 길게 내쉽니다.

931 ◆MjRAeKhiz2 (2u8kjj9Wb.)

2024-09-19 (거의 끝나감) 13:21:11

다들 안녕

932 엘리 - 진행 (cPPIVZzQc2)

2024-09-19 (거의 끝나감) 15:14:57

@@>>930

"이단심문관이 심문당하네."

농담을 통해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시도... 음. 안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구나.

"으음, 이번엔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새파랗게 어리지만 에레야는 내 친구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겠지? 라는 불안감이 일순간 머릿속을 스쳤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할 수 있다면 돕고 싶다. 하지만 흡혈귀의 신분에 정치적인 기반도 없는 이 성에서 청문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내 목이라도 가져다 제출할래?"

물론 농담이었다. 농담이었지만, 도울 수 있는 스른 이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933 엘리 - 진행 (cPPIVZzQc2)

2024-09-19 (거의 끝나감) 15:14:58

@@>>930

"이단심문관이 심문당하네."

농담을 통해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시도... 음. 안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구나.

"으음, 이번엔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새파랗게 어리지만 에레야는 내 친구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겠지? 라는 불안감이 일순간 머릿속을 스쳤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할 수 있다면 돕고 싶다. 하지만 흡혈귀의 신분에 정치적인 기반도 없는 이 성에서 청문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내 목이라도 가져다 제출할래?"

물론 농담이었다. 농담이었지만, 도울 수 있는 스른 이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934 엘리주 (cPPIVZzQc2)

2024-09-19 (거의 끝나감) 15:15:18

악 두번써짐!!
>>931 안녕~~

935 누누코 (/jM.LI1PTA)

2024-09-19 (거의 끝나감) 17:02:41

@@ >>926
남자의 칼이 요한의 목으로 빠르게 향한다.

"..."
그러나 누누코는 그저 귀를 가볍게 움직일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나무 위에서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요한이 미리 해둔말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누누코에게 있어서 이것은 일종의 시험이기도 했다.
요한이 그저 입만 산 인간인지, 아니면 전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영혼인지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누코는 개입하지 않았다.
여기서 협력은 끝나는가? 아니면 그 새치같은 혀로 상황을 모면할 것인가?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그의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누누코는 그저 그것만을 흥미에두고 이 상황을 보고있었다.

936 누누코주 (/jM.LI1PTA)

2024-09-19 (거의 끝나감) 17:03:01

다들 안녕하세요~~~ 벌써 목요일에요~~

937 엘리주 (h/M6YoBUgQ)

2024-09-19 (거의 끝나감) 20:15:50

하루만 버티면!

938 ◆MjRAeKhiz2 (2u8kjj9Wb.)

2024-09-19 (거의 끝나감) 21:10:52

>>933
"달라 하면 줄 생각은 있고?"

에레야는 의자에 침통한 표정으로 주저앉고 거한은 눈치껏 술 한 병을 에레야의 손에 쥐여줍니다. 에레야는 술 한 병을 그대로 쭉 들이키는데 술이 그리 도수가 낮지도 않은 눈치입니다. 그런데도 한 병을 금방 해치운 에레야는 이 위기 상황에서도 엘리에게 지금 상황을 알려줍니다.

"그래, 이판사판이다. 저 새끼들이 비밀기지 위치도 알았겠다, 소환장도 냈겠다, 그 전에 내 애들은 다 죽을지도 몰라. 네 정확한 정체는 몰라도 네가 내 끄나풀인건 눈치챈 모양이니 내 수족을 다 자르고, 날 정직시켜서 보호 특권을 말소시킨 다음 제거할 생각이겠지."

에레야는 술 취한 상태로 이야기하면서 엘리 쪽에 세스타우 성의 지도를 던집니다. 엘리가 옐리사베타라는 명의로 한바탕 뒤집은 귀족가의 사교 파티장, 세스타우 경비대 건물, 그리고... 아직 가보지 않은 빈민가의 아편굴까지... 새삼 이 동네 참 막장이란 생각이 듭니다. 에레야는 엘리가 할 일을 설명합니다.

"네가 사교파티에서 흡혈귀식 사교를 즐기는 동안 우리도 논 건 아냐. 그 피빨이 지망생들이 숨어있을 만한 곳을 뒤져봤고, 뭔가 확실히 있을법한 곳들을 찾아냈어. 분명 경계가 삼엄할 거야. 우리 애들은 아마 쳐들어가더라도, 자료를 전부 파기해버리겠지. 하지만 넌 이야기가 달라."

모두의 시선이 엘리에게 몰립니다. 엘리가 이단심문관과 험상궂은 따까리들에게서 기대는커녕 상상도 못한 유능한 동료를 보는 시선입니다.

"사교 파티는 뒤집었으니 빼고, 한 곳을 선택해서 침투해. 우리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나머지 한 곳을 습격해서, 설령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놈들의 계획이 단 하루라도 늦어지게 만들 거다."

939 엘리 - 진행 (h/M6YoBUgQ)

2024-09-19 (거의 끝나감) 21:25:51

@@>>938
"엇, 으, 응."

대답에 묘하게 자신감이 없지 않냐고?

어쩔 수 없다. 자료를 가져오는 걸 기대받는다니. 여태까지 내가 한 일이...

'찢기, 피 빨기, 부수기.'

정적인 잠입과는 꽤나 판이한 것들이었다. 조용하게 끝내는 거. 나한텐 은근 어려운 것 같은데.

"그럼 내가 경비대로 갈게. 이단심문관이 경비대를 터는건 모양새가 안 좋지만, 아편굴을 정화하는 건 있을 법한 일이니까."

아편굴. 대놓고 나 음지요, 하는 티가 풀풀 풍기지 않는가. 거기서라면 주변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폭주해버릴 성 싶은 기분이 들었다. 경비대라면 자중할 수 있겠지. 아마도?

940 ◆MjRAeKhiz2 (HESlbE5Zl2)

2024-09-19 (거의 끝나감) 22:27:45

>>935


사내의 칼날이 요한의 목 앞에서 멈추고, 사내는 잠시 요한의 얼빠진 얼굴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고는 칼날을 거둡니다. 사내는 칼을 칼집에 넣고는 요한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장난치곤 심했던 협박 행위를 뒤늦게 수습합니다. 그 와중에도 요한은 계속 상황파악 안되는 바보연기를 하고 있고요.

"장난이야, 임마."

"아, 아...?"

"오늘은 날이 너무 늦었어. 왼쪽 길 따라 쭉 가면 길쭉한 헛간이 있을텐데 거기 가서 하룻밤 자고 가."

그렇게 말하고 사내는 동료와 함께 모닥불을 짓밟더니 어디론가 가버립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요한은 누누코가 숨어있을 풀밭 쪽으로 손짓합니다. 나와도 좋다는 신호입니다.

941 누누코 (/1oa25Sp/.)

2024-09-20 (불탄다..!) 00:57:31

@@ >>940
요한이 손짓하자, 바로 머리 위에서 누누코가 요령좋게 떨어져 사뿐히 땅에 섰다. 그러나 여전히 당장에라도 '무언가를 덮칠' 자세를 풀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아 경계는 풀지 않은 것 같았다.

"안 죽이는 거야?"
누누코는 눈동자를 굴려서 요한을 힐긋 바라보곤 물었다.

942 ◆MjRAeKhiz2 (AhDIQ0Okho)

2024-09-20 (불탄다..!) 08:51:23

>>941
"살인은 정말로 훌륭한 수단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문제도 없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 죽이는 것이죠. 예를 들어 누군가 굶주리고 있다면, 죽이면 평생 굶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 상처가 썩어서 고통스러워한다면, 머리통을 이 삽으로 내리쳐 쪼개면 더 이상 고통도 없겠죠."

요한은 누누코를 데리고 걸어가면서, 누누코가 그랬던 것처럼 삽을 휘둘러봅니다. 지금 보면 삽의 옆면에는 톱니가 나 있고 날이 날카롭게 서 있는 것이, 요한도 상황이 미쳐돌아갈 것을 예측하고 삽을 '개조'한 모양입니다. 이쯤 되면 누누코의 기준으로도 귀중한 물건... 까진 아니더라도, 누누코가 필요하면 쓸 만한 살인 무기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요한은 선문답 같은 설명을 먼저 하더니, 그 다음으로 요한이 그들을 '살려준'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확실한 만큼, 부작용도 확실하죠. 그 두 사람이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들을 어디에 버리죠? 묻나요? 묻으면 우리가 원래 해야 할 일은 어느 시간에 하죠? 만약 대농장의 고용인들이 우리가 죽인 시체를 발견한다면? 일이 더 커질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요한은 허허 웃으면서 램프불을 켜고 지도를 살핍니다. 그러더니 헛간의 위치를 살피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어디로 가야 할 지 확인합니다.

"누누코 씨, 저기에 가시죠. 아마 대농장에서 공동묘지로 쓰고 있는 곳은 저기일 겁니다."

943 ◆MjRAeKhiz2 (AhDIQ0Okho)

2024-09-20 (불탄다..!) 09:03:52

>>939
"들었지, 얘들아?"

에레야가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거한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흉갑을 입고 투구를 낍니다. 이번에는 경비병들의 지원을 못 받는 게 아니라, 재수 없으면 그 경비병들과 싸워야 할 수 있으니, 이전에는 경비병들에게 맡겼던 석궁 등의 무기도 챙기고, 철퇴를 휘둘러 그 묵직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진지하지만 자신감이 넘치던 지하수로에서의 눈빛과는 달리, 이번에는 아직 누가 죽지도 않았는데도 처절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처절함은 투구의 눈구멍 사이가 아니라, 그들이 꺼내는 살벌한 더더욱 살벌한 무기들로 강조됩니다. 거한들이 쥐에게서 뺏은 방독면을 나눠주고, 척 봐도 불길한 초록색의 액체가 담긴 유리구슬들을 챙깁니다... 독바람 척탄병이 쓰던 가스 폭탄입니다. 그리고 검은색의 고색창연한 폭탄까지... 이거, 경비대 막사를 털기로 했다면 진짜 세스타우가 문자 그대로 뒤집혔겠습니다.

"여명까지 몇 시간 남지 않았어. 실종자 수를 조작한 증거, 식인종 활동을 은폐한 증거, 범죄 활동을 덮은 증거 등등. 전부 가져와야 해. 이단심문관이 되어서 뱀파이어한테 사람 죽이고 다니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필요하다면..."

에레야는 지하층에 난 쪽문을 걷어차고, 어둠 속에서 비밀 통로가 열립니다. 에레야는 거한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사라지기 전, 엘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주저하지 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

944 엘리 - 진행 (.4YeWEGUDo)

2024-09-20 (불탄다..!) 09:32:42

@@>>942

"그냥 병사들은, 기절까지만 가보도록 해볼게!"

여지껏 일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간— 음.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았다.

물론 내가 '피 적당히 빨기'를 성공한 적 따위, 에레야와 함께 사도를 상대했을때 정도밖에 없었지만.

"그럼... 가볼까."

경비대로. 정말정말 안 싸우려고 최대한 노력해야지!

945 ◆MjRAeKhiz2 (AhDIQ0Okho)

2024-09-20 (불탄다..!) 10:24:15

>>944
엘리는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여관을 나섭니다. 사람들은 여저히 술을 마시고 있고, 술 냄새와 떠드는 소리 속에서 엘리의 흰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 평범한 인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그녀의 외관도, 경비병들이 막지 못한 흥과 취기 앞에서 자연스레 밀려납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 뱀파이어의 심장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경비대 본부 막사에 점점 더 가까워질 때마다 박동이 더 커집니다. 인간은 여럿 죽여봤습니다. '체페슈'의 이름으로 지배하던 영지에서 노인의 임종을 지키러 가면, 그 노인의 마지막 피를 빨아들인 것은 엘리였습니다. 엘리를 대책 없이 돌아다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로 착각한 도적들은 산 채로 비장과 간을 절개해 피를 짜냈고, 이곳에 오면 식인종과 고블린의 피도 열심히 빨았습니다. 하지만 이건 다릅니다.

"...어이, 요즘 그거 들었어? 요새 안 보이는 그 친구 말이야..."

"...뱀파이어인가? 늑대인간인가?"

뱀파이어, 그녀는 어찌 됐건 인간의 공포를 사는 존재입니다. 인간을 먹는 존재입니다. 이제는 손 다 털었다지만 엘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경비대를, 인간들을 지키는 인간을 죽이러 갑니다. 비록 그들이 괴물들에게 목줄이 걸린 개새끼더라도, 엘리는 그놈들을 상대하러 가는 겁니다. 에레야는 최대한 침투해서 자료를 빼오라 했으니 살인이 제1목표는 아니지만, 자료를 빼오는 과정에서 뭔가 일이 생긴다면...

아무튼, 세스타우 성에서 누군가를 내려다보듯 높이 솟은 곳은 그리 많지 않고, 그중에서 횃불과 총안구, 경비대 인장을 단 곳은 한 곳밖에 없기에 엘리는 쉽게 그 곳으로 향합니다. 당장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정문이고, 엘리가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이 있다면 성벽을 등반하거나, 박쥐 형태로 변신해서 날아들어가도 됩니다.

946 ◆MjRAeKhiz2 (AhDIQ0Okho)

2024-09-20 (불탄다..!) 10:26:10

임시스레 폭파까지 50레스 남짓 남은 상황에서 엘리 보면서 든 생각
외모 보고 처음에는 이 생각 했었는데 얘가 한 것 보면 도저히 매칭이 안 된다...

947 엘리주 (mSmAMJe6y.)

2024-09-20 (불탄다..!) 10:52:27

찢?고 죽인?다!

948 엘리주 (uunDvjhvxY)

2024-09-20 (불탄다..!) 10:55:08

모 완전생물이 모티브기도 하다보니...!

949 엘리 - 진행 (ZPamDXYtkI)

2024-09-20 (불탄다..!) 12:23:52

@@>>945

'등반...'

어느정도 힘이 필요한 구석이 있었다. 손으로 스스로의 몸을 지탱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정문이나 박쥐보다 어려운 선택이 되겠지.

"한 번 해보자."

하지만 어두운 밤 날. 이목을 제일 적게 끌 방법이라 생각했다. 등반가가 도구를 벽에 박아넣듯, 나 역시도 손톱을 늘어트려 벽에 걸어 스스로를 지탱했다.

'힘은 부족하지만 민첩은 충분해.'

버텨야 하는 시간은 조금. 이판사판으로 올라간다면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섰다.

950 ◆MjRAeKhiz2 (AhDIQ0Okho)

2024-09-20 (불탄다..!) 15:03:13

>>949
박쥐가 자주 나타나는 지역도 아닌데 박쥐가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마리가 떼로 몰려들어 경비대 성문을 타넘는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심스러울 것이고, 그렇다고 정문을 뚫자니 그건 벌써부터 살인을 하겠단 소리밖에 안 됩니다. 엘리는 특유의 밤눈으로 성벽을 올려다보고, 사이사이에 튀어나온 나무 기둥이나 돌 사이 틈들을 보고 어떻게 올라갈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대충 계산을 마친 엘리는 족제비처럼 점프해 나무 기둥을 붙잡고, 그대로 몸을 휘둘러 발을 돌 틈에 끼운 후 다리를 당겨 한 발 두 발 올라갑니다. 엘리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올라오자마자...

"하암..."

"야, 하품 소리도 내지 마."

"내 입으로 하품 소리도 못 내냐?"

위기입니다! 엘리가 바로 착지한 성벽 위 보도로 경비 두 명이 걸어옵니다. 대낮이면 이미 들켰겠지만 밤이라 밤눈이 없어 엘리를 아직 못 본 모양입니다. 하지만 더 가까워지면 들킬 겁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당장 숨을 만한 곳은 크게 없어보이고 (엘리가 스스로의 팔근육을 믿는다면) 벽에 매달려서 버티던지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겁니다!

951 엘리 - 진행 (wSj9aXUWI2)

2024-09-20 (불탄다..!) 15:25:21

@@>>950

'이건 진짜 무식한 방법이긴 한데...'

근육에 축적된 피로의 근원은 무엇인가? 팔! 파괴한다!

...라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긴 했지만, 틀린 말은 없었다. 내게는 재생하는 힘이 있었으니. 근육을 내 손으로 파괴하면, 재생되면서 그 안의 피로도 사라질 것이다.

효율이 좋냐고? 아니. 최악.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을 키우는 게 낫겠지. 하지만 방도는 이것 뿐이었다.

나는 송곳니로 팔을 한 번 물어뜯어, 재생을 시작시켰다. 부탁한다. 조금만 버텨다오!!

952 누누코 (/1oa25Sp/.)

2024-09-20 (불탄다..!) 16:35:28

@@ >>942
언제나 그렇듯이, 누누코는 요한의 말을 절반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지는, 섵불리 사람을 죽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모종의 준법정신과 윤리를 막론하고, 그것이 그들이 이 일을 하기로 한 방식이며- 나아가서는 인간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게 누누코가 인간의 싫어하는 점이야."
그렇기에 누누코는 역겨움을 느꼈다. 죽음에 문제를 만들고, 호들갑을 떨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들에게만 통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그 범주에서 조금만 벗어난다면, 요한이 말한 것들 중에 적용 되는 것은 머리를 내려쳐 쪼개 죽이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 누누코의 동족들은 죽어갔다. 어쩌면, 지금도. 누누코는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비치면서. 그와는 별개로 능숙하게 살기의 창을 닫았다.
그렇게 누누코는 요한을 따라 공동묘지로 향했다.

953 ◆MjRAeKhiz2 (AhDIQ0Okho)

2024-09-20 (불탄다..!) 18:58:22

>>951
정말이지 무식한 방법입니다! 인간성을 완전히 잃기 직전 '나를 죽이고 계승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전대 가주가 이 꼴을 봤다면, 아마 잃어버렸던 인간성이 엘리의 이 폭거에 반쯤은 돌아왔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엘리는 양 손의 손톱을 길게 해서 성벽의 돌틈 사이에 끼우고, 그것만으로는 모자란지 발을 디딥니다. 누군가 마취 없이 손톱을 생으로 위로 까뒤집어 버리려는 느낌이 칼에 찔리는 것보다 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엘리는 이를 악물고 버팁니다. 결국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경비병들은 저들끼리 다투던 와중, 엘리는 무언가 듣습니다.

"이봐, 이단심문관한테 이번에 수색 영장을 발부했다면서?"

"살다살다 이런 일도 다 보네. 그러면 우리가 이단심문관을 하옥시키는 건가?"

"그건 모르지... 잠깐, 저거 뭐야?"

경비병들이 저게 뭐냐고 말하고, 엘리는 설마 들켰나 싶어 온 몸에 힘이 쫙 들어가지만 사실 그들은 엘리를 발견한 게 아니라, 더 멀리, 빈민가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엘리도 고개를 그쪽으로 틀어서 보면 빈민가 쪽에 불이 여럿 붙은 게... 아무래도 에레야와 부하들이 벌써 행동을 개시한 모양입니다. 경비병들은 바로 어딘가로 달려가 경종을 치고, 경비대원들이 막사에서 우루루 쏟아져나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게 호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당장은 경비가 나갔으니 엘리는 다시 위로 올라와서, 성벽 위에서 들어갈만한 곳을 봅니다.

일단은 1층의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고, 1층 정문, 높은 망루, 2층 창문 등 들어갈 곳은 많습니다. 엘리는 어디로 진행하나요?

954 ◆MjRAeKhiz2 (AhDIQ0Okho)

2024-09-20 (불탄다..!) 19:28:13

>>952
"싫던 좋던, 누누코 씨는 지금 인간이 지배하는 인간의 땅을 밟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가장 무서운 점이라면 따를 생각이 없더라도 따라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단 점이죠."

누누코와 함께 공동묘지 쪽으로 걸어간 요한은 묘비들을 살핍니다. 묘비조차 없거나 대충 작대기 몇 개 세워둔 곳은 안 봐도 노예나 갈 곳 없는 고용인들의 시신일 것이고, 참 고맙게도 비석은 '받을 만한' 사람의 시체 위에만 세운 모양입니다. 아예 씨가 다르다고 공언이라도 할 요량인지 막무덤과는 단도 다릅니다. 요한은 그 위를 성큼성큼 걸어다니며 비석을 살피다가, 흙을 만져보고 갓 묻었음이 분명한 곳을 보더니 그곳의 이름을 확인하고 누누코를 부릅니다.

"이제 팔 시간이군요."

요한과 누누코는 그렇게 열심히 파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묻을 때 몇 명은 동원했을 무덤을 고작 두 명이서 도로 되파는 건 진짜로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동이 트면 끝장이니 열심히 파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옵니다. 요한은 이번에는 좋은 말로 넘어가기 힘들 것이라 판단했는지, 누누코를 툭툭 치는군요.

"누누코 씨."

그리고 살벌한 표정으로 누누코가 들고 있는 삽을 툭툭 치면서 위쪽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하고 싶으셨던 살인을 하러 갈 시간입니다."

955 ◆MjRAeKhiz2 (AhDIQ0Okho)

2024-09-20 (불탄다..!) 19:30:27

오늘은 여기까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내일은 1답레 정도만 하고 낼모레 좀더 답레쓸듯!

956 아앨라나 - 진행 (OOofOahBRU)

2024-09-20 (불탄다..!) 19:32:19

@@ >>925


"숲의 존재로서 추측 할 수 있을 뿐인 이가 저에게 관심을 가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더이상 소리에 대해서 말해보아도 이제는, 더이상 하면 나쁘게 될 뿐일 거에요. 그래서 저는 이를 무시하고 넘기려 했었어요.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게 될 일이라면 좋았겠지만 그 소리는... 신음을 흘리며 저를 계속 뒤따라 오고 있어요. 아무래도 이 소리의 존재는 저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왜 그러한 것일까요?

길을 계속 걸으며 생각해보았어요. 이 존재가 저에게 무언가를 중요한 것을 알려주고 싶지만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이 그것이 유일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거나, 혹은... 저의 주의를 끌어들이고 이 기이한 존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하려는 것이거나요. 검은 숲은 깊고 거기에는 마력이 강줄기처럼 흘러가며 담겨지고 풀어지는 곳. 그에 따라서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은 있을 거에요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그 존재는 저에게 소리일 뿐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길을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어쩌면... 그 소리의 존재에게 무엇을 위해서 저를 뒤따르는지 소통을 시도해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만약, 그 존재가 심음 밖에 낼 수 없다면 구별을 위한 신호 방식을 가정하여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 는 신음을 한번, '아니오' 는 신음을 두 번 내는 것이에요. 이 존재가 이것을 따라준다면요

957 아앨라나주 (OOofOahBRU)

2024-09-20 (불탄다..!) 19:33:34

조금 늦었네요. 진행 수고하셨어요~

958 ◆MjRAeKhiz2 (AhDIQ0Okho)

2024-09-20 (불탄다..!) 19:43:53

>>956
"오오... 오오오!!!!"

베스니는 아앨라나의 설명에 괜히 무섭게 한다고 칭얼거리던 것을 멈추고 다시 눈을 반짝입니다. 이번에도 아앨라나의 말이 베스니의 호기심을 자극한 듯합니다. 그도 그럴 ㄹ것이, 남들은 듣지 못하는데 나는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시대가 몇백년 흘러가면 정신병에 의한 환각, 환청으로 치부될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신성하게 여겨집니다. 너무나도 중요하고 신성한 목소리를 들은 나머지, 아니면 오직 자격 있는 자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인 나머지 이방인인 베스니는 듣지 못하고 이 숲에 평생을 바친 아앨라나만 들을 수 있다, 좀 그렇게 착각을 한 것 같습니다. 베스니는 어둠 속에서 수첩에자기 감이 이끄는 대로 마구 휘갈겨 적으며 이 경험을 풀어내면서도 같이 갑니다. 하지만...

퍽!

"꺄악?!"

베스니는 수첩에 무언가를 다 쓰고 앞서나가다가 부딪칩니다. 매번 사람과 부딪칠 일이 많은 도시인답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려던 그녀는, 여기가 숲임을 알아차리고 앞을 봅니다. 이건 나무도, 바위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털이 가득한 짐승도 아닙니다. 이건 인간인데.... 베스니는 무심코 램프를 들어 그 사람을 비추고 기겁합니다.

숭숭 빠진 머리, 좌우로 돌아가 초점을 맞출 수 없는 눈, 이빨 다 빠져서 무너진 하관, 줄줄 새는 침, 허리춤만 겨우 가리는 거적때기, 앙상한 몰골... 두 글자로 줄이면 '광인'이 두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아앨라나 쪽을 보고 있군요. 그리고, 아앨라나만 들었던 말소리를 이번에는 베스니에게, 이 숲 근처의 모두에게 들려줍니다.

"우우우우우우우...."

959 ◆MjRAeKhiz2 (AhDIQ0Okho)

2024-09-20 (불탄다..!) 19:44:18

오랜만에 보기도 했고 절묘하게 딱 2분차로 끝나면 너무 거시기할거 같아서 >>958 딱 여기까지... 진짜 수고많았어 다들!

960 엘리주 (x1zuVTbwrg)

2024-09-20 (불탄다..!) 20:37:56

캡틴 항상 고맙다~~

961 엘리 - 진행 (x1zuVTbwrg)

2024-09-20 (불탄다..!) 20:55:26

>>953

"아하하..."

평범한 사고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쌩고생하는 것보다 방에서 피나 한 잔 하면서 귀족처럼 사는 게 좋다고 여길지도 몰랐다.

그치만 말이다. 아무래도 내 성미에는 그런 '귀족적인' 것보다 모양빠지고 추한 게 더 맞는 모양이다. 이 순간에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으니!

'그나마 이목이 적게 끌릴 법한 곳이—'

창문이다. 경비대원이 암만 빠져나가더라도 설마 정문을 비워두겠으며, 망루를 비워두겠는가. 상정 이상의 미친놈들이 아닌 이상에야.

반면에 창문은? 깨지면서 나는 소리가 조금 요란... 하겠지만. 병사들이 와르르 빠져나가는 소리에 어느정도 묻히겠지. 나로써도 살살 깨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손톱으로 살살 긁으면 소리 안나겠지?"

...음.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나치게 희망적인 추측이었다.

962 ◆MjRAeKhiz2 (M4c8djnpdE)

2024-09-21 (파란날) 07:33:15

>>961
엘리는 돌 틈 사이에 끼운 목재 기둥을 밟으며 위험천만하게 2층 창문으로 향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밑으로 머리부터 떨어져 골통이 터지고 난리도 아니겠지만 그녀는 엘리, 뱀파이어, 즉 타고난 침투자이자 암살자입니다. 엘리는 일반적인 인간들은 쉬이 올라갈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가, 창문을 깨려고 합니다. 그것도 손톱을 꽃고 아래로 그어서 조용히 부수는 참 기발한 방식으로요. 하지만...

"어우, 졸려라..."

엘리한테 굳이 그래야겠냐고 알려주려는 듯, 바로 밑층에서 누군가 창문 밑턱을 잡고 위로 올려버립니다. 그리고는 오늘같이 지랄인 날 본부 근무라 잘됐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그새 코를 곱니다.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되고 있다는건 엘리한테는 분명 희소식이니, 엘리는 창문 밑턱을 들어올려 2층 안으로 침투합니다. 이 안은... 2층 침대 여럿이 줄지어 있고 사람들이 자고 있는 침실입니다. 아마 2층은 병사들의 생활 공간일 텐데 여기서 큰 정보를 얻긴 힘들어보입니다. 엘리는 나가기 전 어디로 갈지 고민해봅니다.

어디로 가나요? 위로? 아래로?

963 엘리 - 진행 (76dvCh2lUk)

2024-09-21 (파란날) 11:36:11

@@>>962

'우와...'

경비병 소굴에 내 손으로 들어왔구나. 한 명에게라도 들켰다간 죽이게 되야 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어둠에 녹아드는 뱀파이어를 간파할 수 있을 만큼 수준높은 경비병은 없어 보였지만.

'어쩐지 의미심장한 비밀정보는 아래에 있을 것 같지?'

철저히 편견에 기반한 판단이었다. 왜, 저런 녀석들은. 보통 지하에 꽁꽁 숨겨두니까. 아래로 한 번.

964 ◆MjRAeKhiz2 (M4c8djnpdE)

2024-09-21 (파란날) 13:53:14

>>963
엘히는 경비대 본부를 통째로 떼가도 모를 정도로 세상 모르고 자는 경비병들을 뒤로 한 채 문을 열어제낍니다. 이 경비견들의 목줄을 쥔 이가 그놈의 '뱀파이어리즘'을 동경했는지, 아니면 동네가 워낙에 개판이라 예산을 아끼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문 사이사이에 촛대가 여럿인데도 켜져있는 촛불은 몇 되지 않아서 복도가 참 어둡습니다. 뭐 엘리에게는 어느 이유건 간에 고맙게 된 일입니다. 엘리는 야음을 틈타 쉽게 아래로 내려가고... 내려가는 길에 경비병을 마주쳐 경동맥을 그어버릴까 고민하지만, 경비는 이 세스타우 인간들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예상 외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밑에 청소 좀 제대로 해주세요. 고양이 사체를 묵혀놨나, 썩은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거 같단 말이에요."


어둠 속에서 엘리를 청소하는 하녀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엘리는 경비의 말을 들은 척 간단히 고개만 끄덕이고 아래로 내려가는데 어우... 진짜 썩은내가 나는군요. 엘리는 1층 구석에서 갈 수 있는 방향을 살핍니다. 지하로 가는 층계참, 양쪽으로 여는 크고 웅장한 문, 어두운 복도. 어두운 복도를 제외하면 모두 두 명의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엘리는 어디로 가나요?

965 아앨라나 - 진행 (b.C9O9vr0o)

2024-09-21 (파란날) 15:17:04

@@ >>958


"제가 듣고 느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들, 그렇게 해서 예감이 들었던 것뿐이에요. 사실은 다를 수 있어요. 확실하다고 할만 한 것은 아직은 없으니까요"

그녀가 저의 말을 듣고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언뜻 그 태도를 바라보았을때 그녀가 저에게 한 껏 기대감과 호기심에 마치 그 눈빛을 반짝이는 듯한 모습을 보고는 설명을 해보았어요.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면 아무래도 실망감이 엄습하니까요

그리하며 저희는 계속 길을 걸어갔을 거에요. 이번에는 조금 앞서 나아가던 그녀가 무언가에 부딪히면서 상황은 달라졌어요. 아마도 저희는 기이한 신음 소리의 정체가 되는 이를 찾은 것만 같아요. 아니면 저희에게 찾아온 것일까요? 그녀가 들고 있던 램프에서 발하는 빛이 비치어 주는 그곳에는 누군가가 있었어요. 그곳에는 비틀리고 병든 듯한 모습과 신음만 울리는 그 언행은 아무래도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어요. 왜 그러한 상태로 어떻게 이곳에서 저희와 만나게 된 것일까요? 저희가 그 사람을 바라보듯이 그 사람도 저희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은 저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이... 저희가 가는 길에서 저를 부르셨나요? 저희의 말이 들리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신음을 짦게 한번만 말해주세요. 이후에 이어지는 대화에서도 그렇다면 짦게 신음을 한번, 아니라면 신음을 두번 말해주세요"

그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경계심은 여전히 충분히 가져야 하겠지만 이렇게 된 것도 그 사람이 저희와 이야기를 할 의도가 있다면 이 말의 뜻이 제대로 통한다면 그 사람은 대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전에 길을 걸으며 생각해 보았던 것에서 추려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보았어요

966 ◆MjRAeKhiz2 (M4c8djnpdE)

2024-09-21 (파란날) 16:00:13

>>965
"우우우우우우..."

...소리 자체는 들리는 것 같지만 아앨라나가 무슨 뜻을 전하려는 건지, 아니, 그 전에 언어라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는건지 의문입니다. 이 숲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아앨라나가 모른다면 베스니라고 알 리가 없으니 서로 곤란해진 마당에, 불곰의 눈을 구워버린 후 한동안 말이 없던 가말라시엘이 입을 엽니다.

"이게 누구야! 저를 파괴하려 하길래 경고 의미에서 정신을 간단하게 손봐준 친구인데 아직도 잘 살아있었군요!"

가말라시엘은 못 알아보겠다, 저게 요새 백색마탑 유행 패션이냐고 한참 비꼬며 웃더니 아앨라나에게 참 오랜만에 절대자와 사도의 관계로, 참 갑작스럽게 명령합니다.

"사도님. 저 친구를 당장 죽이십시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 테니."

가말라시엘의 목소리엔 웃음기도 장난기도 없이 냉혹합니다. 네, 이 지팡이에 깃든 영은 지금 아주 진지합니다.

967 엘리 - 진행 (76dvCh2lUk)

2024-09-21 (파란날) 17:33:56

@@>>964

'뭐 경비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킨다거나...'

무리다. 난 인간을 죽일 힘은 차고 넘쳤지만, 제압 시도는 언제나 실패할 리스크가 따랐다. 어두운 복도 쪽은 누군가와 마주쳐도 잘 피해갈수 있을 법 했으며 경비도 없었으니.

나는 어둠 속에 숨어들어 복도를 향했다.

968 ◆MjRAeKhiz2 (M4c8djnpdE)

2024-09-21 (파란날) 19:42:23

>>967
에레야가 만약 살인이 불가피해진다면 주저하지 말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피할 수 없는 싸움을 피하지 말란 얘기지 안 해도 될 싸움을 굳이 일으켜서 경비대 본부를 피바다로 만들라는 얘기는 분명 아니었을 겁니다. 엘리는 어두운 복도로 들어가고, 워낙 어두운 나머지 엘리 그녀마저도 물체의 크기와 큰 움직임만 파악하지 자세한 실루엣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엘리는 천천히 움직이다가, 무언가 밟습니다.

콰직!

이건 엘리가 썩은 마룻바닥을 밟으며 난 소리가 아닙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형체가 엘리의 흉곽을 강타하며, 갈비뼈가 심장과 폐 대신 우그러진 소리입니다. 그리고 그 형체는 엘리를 붙잡더니, 그대로 바닥에 쾅! 쾅! 쾅! 내리칩니다.

꽝!

한번 부딪치니 순간 시야가 암전하고

콰캉!

두번 부딪치니 눈 앞이 빨개지고 그녀의 코가 피와 회반죽 냄새와 '멍한' 냄새가 가득차고

콰지직!

세번 부딪치니 엘리는 굳이 지하에 걸어 내려갈것도 없이 1층의 바닥이자 지하층의 천장을 뚫고 아래로 떨어집니다. 기습에 완전히 당했지만 두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엘리는 이제 이 토할 것 같은 썩은내의 근원을 알아차렸다는 게 하나, 그리고 바닥에 피와 살점이 쌓여있어 박살난 온 몸을 재생하기 쉽단 겁니다. 그리고 촛불과 조명이 있어서, 구멍 사이로 뛰어내린 상대가 보입니다.

"이렇게 맞고도 숨이 붙은 걸 보니 지하수로 그 년이 맞나보군."

먼저 보이는 건 기이한 종양과 촉수, 돌기, 눈알, 이빨 등이 돋아난 목입니다. 그 목에서 자라난 기형종양은 창백한 머리를 금방이라도 밀어낼 것 같고, 머리의 눈알은 엘리를 바라보지만 초점이 금방 풀리고 입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침을 질질 흘립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아래를 내려보면 피 묻은 흉갑이 보입니다... 엘리가 아예 목을 땄던 그 흉갑 입은 청년입니다.

"그리고 식재료 주제에 미식회를 박살낸 그 동방귀족년도 너고."

그렇게 말하는 청년은 양 손에 각각 철퇴와 검을 들고, 그그 옆으로 경비병들이 도열하는데... 다들 상태가 이상합니다. 전부 정교한 밀랍 인형처럼 이질적일 정도로 눈빛이 죽었고, 제 대장이 저렇게 보기 싫은 꼬라지가 됐음에도 대경하긴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고 엘리만 노려봅니다... 최소 수십대 일의 상황, 청년은 거기에 더해 경비병을 시켜 딱 봐도 '신성해보이는' 빛나는 쇠사슬을 철퇴에 감습니다.

"이단심문관 하나도 골치아픈데 적이랑 아군도, 똥이랑 소시지도 구분 못하는 년까지 참 상황 좆같구만. 그러니까..."


그는 엘리를 무기로 가리키며, 그녀의 죽음을 선언합니다.

"...저 년 빨리 죽이고, 아편굴 처리 지원하러 간다."

엘리의 감각이 말합니다. 무기술도 무기술이고, 목을 쳤는데도 살아있는 걸 보니 재생능력도 엘리의 그것에 버금갈 거라고. 조심하십시오.

이번 싸움, 진짜 힘들 겁니다.

969 엘리 - 진행 (76dvCh2lUk)

2024-09-21 (파란날) 20:25:41

@@>>968

"이건..."

잠입은 실패. 정면승부 국면이다. 죽도록 맞아도 죽지 않을 자신만은 있었는데, '신성한' 쪽의 무기라니.

그렇다면 나도 평소에 사용하던 '재생력을 믿고 정면돌격'이란 전략을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선 회피의 필요성이 애초에 없기에, 잘 사용하지 않던 회피 전법이다.

"빨리 죽이고 지원하러 간다? 어디 한번 잡아보시지!"

휙— 휙— 내 인영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병사들로 포위망을 조여온다면 위험하겠지만, 포위망이란 건 애초에 '보여야' 먀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970 ◆MjRAeKhiz2 (M4c8djnpdE)

2024-09-21 (파란날) 22:37:08

>>969
엘리가 분명 상대를 오판한 면도 없잖아 있을 겁니다. 어차피 어둠 속에선 장님이나 다름없는 게 인간들이니, 그 인간들이 모인 경비대 본부야 정말 뒤집으려 하면 얼마든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엘리는 창을 들고 덤벼대는 경비들을 보면서, 상대 역시 엘리를 한참 오판했음을 깨닫습니다.

"이익!"

이렇게 허접하게 휘두르고 내지르다가, 엘리는커녕 서로의 창대를 치고 끝나는 창놀림은 굳이 피할 필요도 없습니다. 뒤에서 달려들던 이는 엘리가 뒤통수에 눈이 없다는 것만 너무 믿은 나머지, 보지 않아도 뻔할 정도로 정직하게 내질러 엘리가 옆으로 몸을 틀자 허공을 찌릅니다. 그렇게 경비들은 엘리를 제압하려다 스스로가 제압당하는 한 편의 어릿광대 희극을 찍고, 엘리는 이런 놈들이라면 늙어죽을 때까지도 놀아줄 수 있겠다 생각하는데...

깡!!!

엘리의 오금이 비정상적인 격통과 함께 무너지고, 주저앉은 그녀의 등허리에 박히는 칼날이 서늘합니다. 뒤를 돌아보자 흉갑 입은 청년이 그녀를 끝장내겠다는 악의를, 아니 묵직한 사슬 감긴 철퇴를 휘두르고 엘리의 얼굴이 맞은 그대로 뭉개지며 쓰러집니다. 식인종들이 그랬던 것처럼 경비병들이 창으로 엘리가 못 도망치게 콱콱 찍어버립니다. 함몰되지 않은 한쪽 눈으로 보면, 그가 든 검에서 엘리의 피가 지글지글 익더니 끓어오릅니다. 즉 은검입니다.

축성한 사슬에 두 방이나 맞고 은검에 주요 장기를 찔렸으니 이제 끝입니다. 허무하지만, 그래도 꽤나 재밌게 산 것 같다고 생각하며, 뒤돌아선 흉갑 청년의 흉한 뒷모슥을 바라보며 죽으려는데...

"시체는 어쩔까요?"

"아편굴 쪽 상태 보고 판단한다. 일단 여기 둬."

...이상하게도 엘리는 죽지 않고, 주마등만 스쳐 지나갑니다. 태어났을 때, 첫 피를 마셨을 때, 성인식 날 피로 가득찬 욕조에서 세례받았을 때, 일족을 떠난 때, 세스타우에 온 때, 그리고 수호부를 받은 때.

'이단 정보 수집 등의 목적으로, 신께 봉헌된 장소에 발을 디딘 불경한 놈들에게 배포해서 잠시 체류를 허락해주는 수호부다. 다시 말해, 이거 없이 맨몸으로 몇발짝 더 디디면 굳이 내가 싸울 수고도 없이 잿더미가 된단 말이지.'

...잠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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