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의 소품이자, 단역이자, 조연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는 비참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고, 기승전결이 갖춰졌거나 이야기의 어떤 구성요소 하나도 제대로 된게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엉망인 이야기가 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선택하고, 때로는 강요당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써낸다. 이야기의 악마 이프가 이제 마침표를 찍으라 권할 때까지, 죽음이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왜냐면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니까.
>>760 좋은 선택입니다! 아앨라나와 베스니 일행은 나올 때부터 장비보다 식량을 우선해 챙겼고, 그 말은 부족한 것은 최대한 자연물을 이용해 때워야 한다는 뜻이죠. 그리고, 좋은 지붕 겸 집이 되어주는 저 텅 빈 큰 나무는, 적어도 지금 이곳에서는 두 사람들의 부족한 자재를 때워지는 좋은 '자재'가 되어줄 것입니다. 베스니는 야삽을 꺼내 나무밑둥 앞의 땅을 팍팍 파내기 시작하고, 안나는 쓰러진 나무에 천막을 엮어 임시 은신처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베스니는 헤헤 웃으면서 이야기합니다.
"제가 여기 들어온 지 며칠이 됐는데 드디어 야영다운 야영을 해보네요."
그 말과 함께, 가말라시엘의 지팡이가 흔들립니다.
"그간 살려두느라 고생 좀 했죠. 한심하길래 좋게는 안 살려놨습니다."
// 아앨라나주 이 가말라시엘 성격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데... 2. 세상을 파멸시키는게 아니라 파멸로 몰아가는 음모가형 3. 호구형 악마 중간의 느낌이 좀 어렵다... 그리고 2번으로 간다면 그 면모를 보이기 위해 베스니나 주변 인물 하나가 죽거나 죽느니만도 못한 꼴 보게 될 것도 같은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 두마리가 경쾌하게 사교 파티장으로 나가고, 엘리는 마차가 이렇게 편할 수 있었나 감탄하며 말 그대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만끽하면서 지나갑니다. 원래 인가들은 밤길을 좋아하지 않는다지마, 세스타우는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없습니다. 집을 구하지 못한 거지들이 있을 법한데도 거지들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엘리가 있던 지하수로처럼, 어딘가 한 곳에 모여서 어떻게든 횃불이나 짱돌, 막대기처럼 저항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을 든 채로 벌벌 떨고 있겠죠. 이 동네가 그렇게 된 이유는, 엘리에게 피를 빨리길 원햇던 그 미친 사교도가 말한 바와, 엘리가 싸웠던 두 유사-뱀파이어와, 식인종들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마차 마부석과 마차 사이에 난 쪽문으로, 거한이 작은 쪽지 하나를 던져 넣습니다.
"'아가씨'. 어느 정도 기본 교양은 알아두셔야 합니다. 숙지해두시길."
그 쪽지를 보면... 나로즈녜 차르국의 간략한 정세가 적혀 있습니다.
- 현재 나로즈녜 차르국은 차리나 나타샤가 통치하고 있으며, 반대하는 귀족들을 학살하고 제압하는 데 성공했음. - 차리나 나타샤는 극동으로 탐험대를 보내 영토를 넓히려는 시도를 하는 중.
"그래야겠어... 이런 장비로는 어떤 적도 죽일 수 없어..." "냄새를 없애고, 칼날을 갈거야... 마주치는대로 목을 뜯어주지..." "...누누코가 전부 죽일거니까..." 얼마나 지났다고 입에서 피비린내 진한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갈라졌고 말꼬리에선 힘이 빠졌다. 누누코의 눈꺼풀이 자신도 모르게 감기고 있었다. 미스터 스위츠의 영지부터 요한의 마차까지, 한시라도 제대로 잠든 적이 없기에 묵은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누누코는 간헐적으로 눈을뜨며 저항했지만, 그런 '동물적 법칙'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죽이겠어..." 그런 잠꼬대를 마지막으로, 어느새인가 누누코는 마차에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잠들어있었다.
>>770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고, 토대가 상부를 정의합니다. 이걸 '유물론'이라 부르며 구체화하는 건 이 시대에는 너무 이르지만, 어쨌든 이 시대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동물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지쳐 쓰러지게 한 다음 잡아먹고 사람들 입에서 바른 말이 나올 때까지 육체에 온갖 고문을 가하지요. 아무튼 누누코의 육체도 피로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미스터 스위트를 죽인 이래 무슨 범죄자들을 나무열매마냥 매달아둔 정신나간 도시까지 뜬 눈으로 걸어왔고, 거기서 납치당했고, 납치당한 다음에도 계속 끌려왔고, 끌려간 다음에도 요한의 마차에서 뜬눈으로 계속 있었습니다. 자지 않는다면 심장이 자버릴 정신나간 스케줄이죠.
"...이런."
...정신을 차리면, 흰색 천장입니다. 곰팡이들이 파란색, 흰색으로 알록달록한 천장입니다. 일어나보면 누누코는 곡물푸대 사이에 누워있고 옆에는 쪽지가 놓여있습니다.
>>772 짧은 '마차 체험'이 끝나고, 엘리는 마차에서 내립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뱀파이어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가 아닌 인간 귀족 옐리사베타 블리디미로비나 예페슈카로서의 첫 시간입니다. 연미복을 입은 거한이 그녀의 앞에 서서 파티가 열리고 있는 대저택의 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 앞에 서고, 경비들 중에 잘 차려입은 남자가 나와서 손을 뻗습니다.
"초대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자고로, 귀족들의 '행정 절차'라는 것은 귀족들끼리 면대면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런 '천것들'끼리 이루어지죠. 실무교섭을 다 마친 다음에 마지막에 서명이나 결재는 본인 서명으로 할 수도 있다지마는... 아무튼, 거한이 초대장을 건네자 경비병은 초대장을 확인하더니 목례합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옐리사베타 남작영애님.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그간 엘리가 봐왔던 것들과는 정반대로 화려한 것들이 엘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유리잔도, 식사도, 옷도, 사람들도, 전부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람들은 호호 웃고 허허 웃으면서, 각자 좋은 말만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고, 옐리사베타는 여기 웃기 위해가 아니라 듣기 위해 왔습니다. 그것을 꼭 명심하십시오.
@@ >>773 낯선 천장이었다. 상투적이지만 그랬다. 그도 그럴게 누누코에게는 열린 하늘보다 닫힌 천장에 훨씬 낯선 것일테니. 개운한 기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되찾을 정도는 되었다. 누누코가 머리를 긁으며 상체를 일으켰고, 기다란 토끼귀가 살랑대며 흔들렸다. 그녀는 곧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글씨로부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후흥." 누누코는 짧게 소리내고는, 쪽지를 아무데나 던져버리고는 땅을 딛고 일어났다. 이곳이 어딘지 파악할 시간이었다.
저는 그녀가 말하는 야영다운 야영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물아보았어요.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를, 지금까지에 이르게되는 것들을 다시 되돌아 생각해보았어요. 그녀는 탐험가이고 세상을 걷다가 숲으로 넘어왔을 거에요. 그렇지만 딱히 야영을 위한 장비나 기제를 온전히 갖추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어요. 다만, 그녀에게는 나름대로 경험이 있을것이니만큼 간접적이거나 조금 가깝게 저도 참고로삼아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상하다고 여길수 있지만 그것이 그녀의 개성일지도 몰라요"
긍정적으로 말한다면 개성적이에요, 나쁘게 말한다면 괴상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와 상관없이 그녀가 대신 짐을 나르거나 밑작업을 대신 해주어서 저는, 저희가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저에게는 한 결 일이 편하게 되었어요. 올바르게 넘어갈 일도 좀 틀어지는 것도 있었지만요
이제 얼추 저희가 야영을 하며 날을 보내게 될 곳이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저는 제대로 시간을 보내고 휴식으로서 가만히 있거나 다른 행동을 해봐야 될지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평범하게 싸움이 난 평온한(?) 집구석입니다. 기름을 먹인 종이로 만든 창문을 밀어서 열어보면 마을의 풍경이 보입니다. 그다지 풍족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마을 말입니다. 마을 아낙들은 우물가에 모여서 수다를 떨면서 물을 한 동이 두 동이 길어가고, 남정네들은 삽을 들고 나와서 동네 배수로를 푹푹 퍼내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밀들은 아직 수확기가 덜 됐는지 푸른 빛이 도는군요. 마을 이름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노예 추적자랄 만한 사람도 안 보입니다. 수상할 사람이라곤 누누코와 요한 브룬이 가장 '수상'할 겁니다.
>>777 이게 좀 아앨라나가 옆에서 부대끼던 사람 죽어나가도 그런갑다 하면 좀 캐릭터가 사악하게 묘사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주변인한테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걸 과연 아앨라나주가 좋아할까? 싶어서... 아앨라나가 가말라시엘을 좀 좋을대로 이용하고 벗겨먹는 느낌으로 갈지, 아니면 정말로 "가말라시엘이 아앨라나 빼고 다 파멸시키는 느낌"으로 가도 될지 모르겠음...
@@ >>780 또 다른 마을이었다. 언뜻 보기엔 평화로웠지만, 그래봤자 수인족인 누누코에겐 인간들의 마을일 뿐이었다. 몸에 긴장과 흥분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몇 일 내내 도망과 은신을 반복하며 이런 짓을 하고있으니 세상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누누코도 혼자는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요한은 어딨지.' 자연스럽게 누누코의 머릿속에서도 그런 의문이 피어났다. 하지만 이내 그런 의문도 빠르게 흩어져버렸다. 누누코가 무관심해서가 아니고, 그 인간이라면 알아서 잘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누누코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향했다. 누누코의 진홍색 눈이, 잠시 하루의 요람 역할을 해준 이 방 안을 샅샅히 훑기 시작했다.
>>776 '제가 대신 말씀드리죠. 처음에는 목 대신 가방을 불곰에게 잃었고, 그 다음에는 보셨던 대로 다리가 부러졌답니다.'
가말라시엘이 비웃듯 이야기합니다. 이 다음에 가말라시엘은 이 여자의 다리 한짝을 말다리로 만들어버렸죠. 이 다음에는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요? 아니, 살아는 있을까요? 뭐, 뷔르트겐 호수까지 간 다음에, 더 아나가 그녀가 헤어진 다음에는 아앨라나가 알 바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베스니는 자신이 챙겨왔던 부싯돌을 꺼내들지만, 그러기가 민망하게 아앨라나가 손가락 끝에 불을 훅 피워내 모아낸 장작 위에 불을 붙입니다. 그리고, 휴식이냐 다른 일이냐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베스니가 묻습니다.
"아앨라나 씨! 혹시 앨리스 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세요? 혹시 어떤 마녀신가요? 저, 엄청 궁금한 게 많거든요!"
오호호, 우호호, 아하하, 허허허, 옐리사베타는 몰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엘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아가리 닥치고 그냥 할 말만 해"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을 참느라 힘들어집니다. 뱀파이어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성 관리를 똑바로 안 하면 점점 이성이 뭉텅뭉텅 깎여서 말이 직설적으로 변해가는 바람에, 엘리가 마지막으로 전대 가주를 보았을 때, 그녀는 엘리더러 '돌연변이, 가.' 라고 말하며 엘리의 바깥 여행을 허락했지요. 그 때는 좀 말이 너무하고 매정하다 생각했지만 여기 오니 뱀파이어 일족들의 무서울 정도로 직설적인 발언들이 너무나도 그리워집니다. 그러던 와중, 한 남자가 다가옵니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제 이름은 젠튼, 혹시 아가씨와 합석하는 영광을 누려도 되겠습니까?"
>>791 에고 소드와 비슷한 그냥 자아를 가진 지팡이라 하면 악마까진 아니어도 내가 다루긴 좀 편할듯. 아니면 그냥 jrpg에 나오는 호구형 대악마를 봉인해놔서 가말라시엘이 "나 쟤 죽일래"라고 했을때 아앨라나가 지팡이 불태우려 들고 그러니까 가말라시엘이 "나쟤죽일래 로 5행시 해보겠습니다"로 말바꾸거나
"행운과 불운이 그 자리를 바꿔가며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행운과 불운이 서로에게 누가 이길지 내기를 하는 것만 같아요"
저의 물음을 그녀가 아닌 가말라시엘 님이 말해주었고 그것에 저는 그렇게 평을 내렸어요. 그러한 일들을 당하고도 결국 그녀는 저와 만나서 이렇게 괜찮게 있어요. 이런 만남은 단순히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느것이 되었더라도 이렇게 곁에 있을때 만큼은 그녀를 살펴보면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을거에요
"저의 존경스러운 스승님이시자, 위대한 마녀이신 분, 그분께서 바로 앨리스 님이랍니다! 정확한 나이는 알려주시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화사하고 아름다우셔요. 훌륭한 기예와 지혜로 함께 온갖 마법들을 능히 발휘하시기도해요"
그녀의 그런 질문에 저는 자랑스런 표정을 지으며 당당하게 설명해 보았어요. 제가 이렇게 좋은 솜씨와 지식, 그리고 적절한 생활을 하는 것도 마녀 님께서 거두워주신 덕분이지요. 마녀 님은 제게 말해주셨어요. 마법의 길을 타고난 아이로서 장차 뒤를 이어갈 좋은 마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랬기 때문일까요? 저는 마녀 님에게 배우고 수련을 거듭해왔고 크게 어렵지 않게 마법을 사용할 방법을 배우고 이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고 어느덧 능숙해졌어요. 그러니까, 저는 앨리스 님이 말해주신대로 훌륭한 마녀가 되고 싶어요
>>782 누누코의 시각이 보기에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진짜로 그냥 곡물을 쟁여두는 곳으로밖에 보이지 않고, 제일 윗칸에는 천장과 비슷한 색의 곰팡이가 핀 치즈가 놓여있습니다. 기러기, 토끼 따위를 사냥한 후 속을 비워 말려둔 것이나 민물고기 어포도 놓여있습니다. 옆에는 마늘뭉치부터 바질 묶음까지, 곡물에 비하면 그다지 많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럭저럭 구색은 갖출 정도입니다.
후각으로 가면, 곡물이 가득한 곳에서 풍기는 특유의 노란 밀 같은 냄새와, 마늘의 묵직하고 알싸한 냄새, 치즈의 쿰쿰하지만 기름진 냄새, 바질의 가볍고 산뜻한 냄새, 마른 어포에 남은 짠내와 약간의 비린내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네, 그냥 창고고, 누누코는 곡물부대 겸 침대, 광주리 겸 서랍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공짜라 치면 뭐 감방도 고맙고, 아니라도 뭐...
"아유, 당신 말 잘했다! 무슨 사기꾼놈이랑 어서 굴러쳐먹은지모를 토끼뼈다구 좋다구 데려와놓고 뭐? 당신이 그렇게 대책없으니 평생 밀죽이지!"
'...그 광대가 적절한 바보를 찾은 모양이네.' 그리고 누누코의 입가에는 옅게 웃음이 걸렸다. 어쩐지 요한이 저 바깥의 남자를 구워삶는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웃음은 빠르게 흩어졌다. 대신, 어제 걸치고 왔던 넝마에게로 시선이 향했고 누누코는 그것을 붙들고 몸에 휘둘러 걸치고서는 망설임 없이 바깥으로 나왔다.
"..." 어디서 굴러쳐먹은지 모를 토끼뼈다구가 그렇게 그들 앞에 나타났다. 다만 누누코는 가만히 서서 진홍색 눈으로 그들을 지켜볼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 그렇게 서서 응시하더니 이내 곧 다리를 움직여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넝마 아래는 거의 속옷과도 같은 차림이 드문드문 드러났지만 누누코는 딱히 수치심도 없이 걸었다. 그런 그녀에겐 목적지도 없었지만, 누굴 찾아야 할지는 알고있었다.
>>797 베스니는 그 어둠 속에서도, 장작을 검댕이 좀먹어가며 커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불안정한 불빛에 의지해 안나의 이야기를 적어갑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길 좋아하고 또 그걸 받아적어 펴내는게 일인 음유시인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그리 별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베스니는 관심이 정말 많아보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여러 이야기를 꺼내는군요.
"마녀의 과자집. 마녀의 가마솥. 마녀의 개구리. 이런 관념적인 것들을 정말 많지만 실제로 마녀가 어떤지를 다루는 건 찾아보기 어렵죠. 그래서 제가 적어보려구요!"
젠튼은 엘리를 이끌고 사교 파티의 더 깊숙한 곳으로 향합니다. 좀 더... '은밀'하고 기이한 향이 퍼지는 향로가 온갖 곳에 놓여있고, 귀족들이 성별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곳에서 기분 좋게 늘어져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고,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리거나 술 더 많이 마시기 게임을 하는 등 다양한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젠튼은 하나하나 설명해주는데, 먼저 향로입니다.
"어렵게 구한 향로라고 하더군요. 파티 주최자가 설치해놨는데... 피부 미용에도 좋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하니 한번 체험해보시죠."
그리고 그 다음으로 지목하는 것은 그림입니다.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물감을 머금은 천주머니를 흰 천막에 던져 색물이 튀게 하는데... 물감이 전부 채도와 명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붉은색 계통입니다. 젠튼은 자랑스레 설명하는군요.
"레이디의 고향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요즘 세스타우 성이 속한 벨레윈 지역에서는 '뱀파이어리즘' 사조가 유행이랍니다. 물론 우리가 뱀파이어가 될 순 없지만... 이런 식으로, 붉은색 계통의 그림을 많이 그려보는 것이죠."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술 게임입니다. 사람들 중 하나가 술을 마시다가 나가떨어지고, 한 쪽이 웃으면서 승리를 선언합니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게임을 설명하는군요.
"간단합니다. 누가 더 많이 마시나로 강함을 겨뤘던, 옛날 전통에서 비롯된 일종의... 싸움이죠. 그러고보니, 나로즈녜 차르국 사람들이 그렇게 술을 잘 마신다고 하던데..."
>>799 "아유, 저 년 눈 좀 봐! 아주 눈알로 사람도 쏴죽이겠어! 좋다고 저런 년을...!"
"이 미친 여편네야! 다 들린다고 다 들려!"
집을 나서면 마을 전경이 좀 더 눈에 잡힙니다. 산지기 겸 돼지치기가 숲에서 돼지 한 마리를 끌고 오는데, 돼지가 온 동네에 꽥꽥대는 소리를 내자 몇몇 사람들이 짜증을 내며 가서 돼지 끌고 가는 걸 도와줍니다. 그 돼지 멱 따는 듯한 울음소리가 누누코의 귀를 자연스레 접어버리고... 주변을 다시 둘러봅니다. 생각해보니 요한은 마차를 가지고 있으니, 그 마차를 찾으면 간단할 일입니다. 이 작은 마을에 마차가 있어봤자 얼마나 찾기 힘들려고요. 그리고 그 판단대로, 요한은 마차 앞에 탁자를 놓고 사람들을 하나둘 보고 있습니다...
저는 질문에 대답하고는 그 이후 있어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았어요. 그녀가 소개했을때 스스로를 음유시인이라고 했어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남기고 전달하는 이들로서 그것과 비숫하지만 수단을 달리하는 이들도 다수 있어요. 그녀는 스스로의 행동에 확신을 갖고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저도 마법과 지식, 특별한 것들을 획득하고 탐구하려고 하기에 그녀의 열의에 공감할 수도 있을거에요
"그러네요, 책에서도 그러한 묘사를 보았어요. 종종 이상함에 가볍게 웃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마법적으로 실제로 시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저는 수긍하면서 말했어요. 거짓과 전실이 뒤섞여 재미있는 말들을 만들어내요. 실제로 과자로 집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식사가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네요. 지니고 있는 식량을 풀고 취식할 준비를 해보아요"
그렇지 않은 이는 제외하고는 사람은, 생물은 음식을 먹어야만 해요. 그녀의 위장이 먼저 주장하고 있어요. 이러한 자리인 만큼 저 또한 크게 허기가 지기 전에 같이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810 젠튼과 엘ㄹㅣ... 아니, 옐리사베타는 한 자리에 앉습니다. 딱 봐도 건장해보이는 남자와 여자의 대결, 몇몇 사람들은 대진표가 너무 재미가 없다며 아예 자리를 돌아서지만, 누군가는 이런 경기가 오히려 흥미진진하다면서 주변을 둘러쌉니다. 옆에서 나온 사람이 술을 꺼내들고, 젠튼과 옐리사베타는 먼저 가벼운 포도주 한 병부터 시작합니다. 네, 한 잔이 아닌 한 병입니다. 낮은 도수의 술은 술 따위로도 안 쳐준다는 것 같습니다. 옐리사베타는 술을 음미하고... 눈을 확 뜹니다. 옐리사베타가 아닌 엘리자베스로서.
포도주인 걸 감안해도,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황홀한 단맛. 그렇습니다. 이거, 피입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이상할 정도로 다들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 않아서, 엘리는 계속 옐리사베타로서 연기를 해나갑니다. 덕분에 엘리는 포도주 한 병을 마셨는데도, 취하긴커녕 오히려 더 멀쩡해지고, 옆에서 구경하던 이들 중 몇몇이 엘리의 가짜 신분을 칭찬합니다.
"이야, 이거 봐! 나로즈녜 차르국 사람은 역시 포도주 따위는 술로도 안 본다 이거야?!"
"차르국 사람들은 술을 조금 먹은 상태가 좀 정신을 차린 상태라던데, 이 말이 딱 맞구만!"
>>813 "알죠. 불철주야 농사만 지으시는 분들에게 제가 어찌 비싼 값을 물어내라 합니까? 그러니까, 이빨 발치하는 제 공임은 받지 않겠으니 아편값과 소독용 증류주 값 등 기타 재료비만 해서 딱 낳은지 1년 안 된 암오리나 암탉 두 마리만..."
예, 장사 잘 하고 있는데, 중간에 누누코가 나타납니다. 거적때기를 입은 몰골이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만, 누누코나 요한이나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요한은 잠시 기다려보라는 듯 손사래를 치더니, 금방 암오리와 암탉 한 마리씩을 받아냅니다. 요한은 마을 주민에게 이빨에 관해 간단한 이야기를 해두고 누누코를 봅니다.
"아무튼, 집에 가서 물을 뜨겁게 끓여두시고... 그래요. 누누코 씨? 제가 옷을 안 갖다뒀었나요? 아니면 거기서 챙겨주는 걸 까먹었나? 뭐 상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