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의 소품이자, 단역이자, 조연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는 비참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고, 기승전결이 갖춰졌거나 이야기의 어떤 구성요소 하나도 제대로 된게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엉망인 이야기가 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선택하고, 때로는 강요당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써낸다. 이야기의 악마 이프가 이제 마침표를 찍으라 권할 때까지, 죽음이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왜냐면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니까.
인간의 의지란 실로 대단합니다. 하지만 엘리는 그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려보고 싶다'는 부분에서 느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인간이 무서울 줄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인간들이 뿔이 나서 엘리를 죽이려 들고, 십자가에 엘리를 묶어서 화형시키려 하는 것에서 느낄 줄 알았던 것이지, 엘리한테서 기어코 피를 빨려 보려는 미친년한테서 느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엘리는 몇 번이나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고, 그녀의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 세상의 어떤 마약을 가져와도 못 지을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옆에서 보던 거한도 고개를 젓습니다.
"인생 이 새끼처럼 살면 힘들 게 뭐 있냐..."
엘리는 몇 번 피를 빨고 빼려고 하지만, 그 여자는 기이한 힘으로 엘리의 뒤통수를 잡습니다. 그리고 더!!!!! 라고 외치는군요. 엘리는 놀라서 저도 모르게 빨아들이는 힘을 더 강하게 하고, 원치 않는 몇 모금을 더 마십니다. 그 피는 분명 달콤합니다. 스스로를 바치는 이의 피는 달콤하니까요. 하지만, 인간으로 따지면 설탕을 퍼부은 과자만 먹으면 구토를 하듯, 엘리도 구역질을 할 것 같고, 하필 이런 변태의 피라는 생각에 엘리는 당장이라도 구토를 하고 싶어집니다. 아무튼 그 여자는 웃더니, 약속대로 입을 엽니다.
"우리 교단은 세스타우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서 깨끗하게, 떳떳하게 운영했어! 방금 내 공물을 받아주신 뱀파이어 님처럼 된다는 멍청한 생각을 한 건 웃기지만, 그래도 그럴 법도 하지! 뱀파이어는 정말 아름다우니까!"
저희는 한 동안 이곳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연약했던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어요. 그러던 중에 어느 소리가 들려왔어요 당연히 빗소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이 곳에 선객이 있었나 보네요. 아니면 그 반대거나요. 어쩌면, 둘 다 해당하지 않을지도요
"숲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머물고, 생활하고 있어요. 저의 추측이 맞다면 지금은 우리의 곁이 맴도는 이는 정령일 거에요"
빗줄기 자체가 폭포처럼, 이윽고 마치 얼굴처럼 보이는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며 베스니가 제게 이 목소리와 형상에 대해서 물어보면 저는 그렇게 설명해주었어요. 목소리와 물의 형상을 취한 이 존재는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지만, 정확한 정체가 무엇이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나쁘지 않을 거에요, 오히려 좋다면 좋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정령'이 저희에게 그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보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어요
대답이 없습니다. 뭔가 이상해서 뒤를 보면, 거한은 헐레벌떡 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니, 에레야가 급한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그 여자 앞에 서고, 그 여자의 턱을 꽉 붙잡고 그녀를 노려봅니다. 그리고는, 그녀가 전해들은 이야기를 그 여자에게 되묻습니다.
"방금 넌 세스타우 귀족들이 뱀파이어로 변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네가 소속된 뱀파이어 숭배 및 식인 활동을 자행한 사교도를 비밀리에 지원했다고 진술했다. 방금 진술한 내용에는 일점 일획의 거짓도 없는가?"
되묻는 것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던 엘리는, 갑자기 자신이 옷뿐만 아니라 살가죽과 뼈, 장기까지 발가벗겨져서, 불쾌한 수십억개의 시선에 노출되어 찢겨나가는 듯한 불쾌감에 몸부림칩니다. 다시 에레야를 바라보니, 에레야의 두 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성한 태양의 힘으로 빛나며 피떡이 된 사교도를 노려보고 있고, 그 여신도는 그 시선을 보고도 당당하게 끄덕입니다.
"당연하지. 어떻게 뱀파이어 님 앞에서 거짓을 고하겠어?"
...이야, 이거 진짜 신념형 개또라입니다. 아무튼, 에레야는 그걸 듣더니 머리를 싸매고 한숨을 쉽니다.
"이 년이 말한 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확실해. 이 년, 거짓말은 안 했어."
엘리는 그 말을 듣고, 일족이 이단 사냥에 풍비박산을 당해 이단심문 대응법을 알려주며 연명하던 한 뱀파이어가 강연하던 내용을 떠올립니다. 태양의 눈. 이 세상을 비춰 어둠 속에 숨지 못하게 만드는 태양처럼, 사람의 마음 속 어둠을 모두 비추는 이단심문관의 심문 기법이라고요. 물론 만능은 아니지만, '예, '아니오' 정도의 간단한 정보값은 거의 100%라 봐도 좋다는 심문 기법입니다. 에레야가 '천국까지 달려보고 싶나?'고 말한 게 괜한게 아니군요.
@@ >>710 "싫어." 누누코가 딱 잘라 대답했다. 단호한 대답이었고, 마치 벌써부터 둘 사이에 불화가 생기는 듯이 했다. 하지만 누누코는 별 생각 없다는 듯이 노예 마차에서 괜찮은 거적대기를 하나 찾아내고는, 그것을 판초 두르듯이 머리위로 둘렀다. 거적대기가 펄럭이며 내려오면서 그녀의 두 토끼귀와 흉터 많은 몸을 가렸다. 이어서 그녀는 말했다.
"확신할 수 없거든. 신성한 들판의 전사는, 지키지 못하는 약속따위는 하지 않아." 딱히 요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장에서, 신용하지 못하는 인간과 약속 같은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녀가 갖고 있는 복수심은 거의 그정도의 뜨거운 열기로 불타며 사방으로 튀고 있는 것일테다. 누누코는 다음 순간, 토끼 수인 특유의 각력을 뽐내듯 뛰어올라 그의 제스처에 따라 능숙하게 말에 올랐다. 그의 옆자리에서, 그녀는 요한에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하지만..." "말을 좀 줄여 볼 순 있겠지. ...후흥." 마침 자신도 인간과 말을 섞는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끝내는 순순히 부탁을 받아주겠다고는 말하지는 않는 것이, 둘의 운명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은 여행길이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누코는 손을 뻗었다. 그녀에게서는 보기 힘든 친밀한 손길이었다. 그 손은 말의 갈퀴에 닿아, 피부까지 부드럽게 훑으며 그의 말을 쓰다듬어주었다.
검은 숲에 사는 아앨라나가 아닌, 어떤 것이든 피곤하게 따지고 엄밀하게 '정의'라는 것을 하려 들며 그 '정의'란 것도 '정의'하고자 하는 베스니가 살던 곳의 기준으로 '정의'하자면, 정령이란 '어떤 물체나 자연현상에 깃들어 지성을 가진 채 주위의 자극에 반응하는 초자연적 현상의 총합'입니다. 하지만 검은 숲의 마녀뿐만 아니라, 바깥 세상 사람들도 어지간히 엄격한 학자가 아닌 이상 그딴 재미없는 정의로 정령을 재단하지 않습니다. 왜냐? 정령은 재밌으니까요! 정령은 흥미로우니까요! 베스니는 눈을 빛내며 그것을 기록하는 손에 불이 나도록 가속하고, 다른 한 손은 흔듭니다.
"안녕! 정령아! 안녕!!!"
하지만 정령은 계속해서 웃기만 할 뿐이고, 어느 순간 비가 그치자 그 정령은 그치면서 바닥으로 푹 꺼지는 물웅덩이와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자 베스니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군요.
>>720 "인간 사회의 어법도 배워두면 좋답니다. '노력해보겠다'. 해보려고는 하겠는데, 실패해도 어쩔 수 없단 뜻이지요."
요한은 그렇게 말하고, 지도를 펼쳐서 램프를 대고 어디로 가야 할지 살펴봅니다. 보팔 토끼의 각력으로 한번에 뛰어 올라오자, 그 각력에 한번 흘깃할 뿐 다시 지도를 보는군요. 그러다가 누누코가 자기 말에 대해 묻자, 지도를 뒤로 휙 던지고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바퀴벌레라고 부른답니다!"
...바퀴벌레, 말한테 붙이기에 퍽이나 좋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아니면 바퀴벌레라는 이름이 붙어도 어차피 말이라 못 알아듣는 건지 기분 좋게 푸르륵거립니다.
하염없이 웃기만을 반복할 뿐인 빗줄기, 그 존재는 무엇에 그리 재미있어하는 것일까요? 저는 옆에서 베스니가 열심히 분주하게 스스로 할 일을 하는 것을 조금 그대로 지켜보았어요. 상황이 이러하니, 모처럼 이렇게 가까이서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거에요. 숲을 비롯하여 다른 온갖 것들을 그녀는 이렇게 기록함으로서 그 경험과 지식을 남겨두는 것은 그녀를 위해서도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되려나요. 그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마음에 드는 것들을 수집해서 모아다가 간직하는 것과 같을까요?
"정령이란 달리 말하자면 자연의 의인화이며 그 모습은 계속 바뀔 뿐, 사라지는 것이 아닌 어느곳이든 있을거에요. 단지, 저희가 알아보거나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것일뿐이려나요"
얼마정도 시간이 지났을까요, 짦지는 않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고 거세던 빗줄기도 점차 시들어가면서 이내 우리에게서 그 모습을 감췄어요. 그렇지만 비가 내렸다는 것을 여전히 알 수 있는 흔적들은 남아있어요
"그 존재는 가버렸어요, 아니면 그저 보이지 않을뿐인 것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저희도 가보도록 할까요? 호수를 향해요"
저는 슬슬 자리에서 벗어나 다시금 호수를 향하기로 하고자, 밖으로 나와 다시 보이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는 그녀에게 그리 말했어요
에레야는 눈을 질끈 감고 주저앉고 거한들이 그런 그녀를 달려가 부축합니다. 과연, 그런 미친 능력을 아무런 제약도 대가도 없이 쓸 수 있었다면 엘리자베스는커녕 그 증조모 대에 뱀파이어가 죄 멸족되었겠죠. 거한들은 성수를 에레야의 양 눈에 부어 식혀주고, 에레야는 두 눈알을 달군 인두로 지지는 고통 속에서도 엘리에게 말합니다.
"식인종이 이렇게 날뛰는데도 실종자 신고가 턱없이 적었던 것, 지하수로에서 인육이 저리 떨어지던 것, 부검된 반-뱀파이어 혐오체들 영양 상태로 대충 가설은 세워 놨지. 그리고 그게 이번에 심증이 생겼네."
간신히 눈을 뜬 에레야는, 엘리가 오늘 밤 해야 할 일을 알려줍니다.
"오늘 밤, 세스타우 성에서 열리는 사교 파티에 참석해. 드레스는 베르야가, 신분은 내가 꾸민다."
베스니는 다시 한번 힘을 내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비가 온 땅이 젖으면 질퍽해질 법도 하지만, 풀과 나뭇조각이 가득 깔린 땅은 두 사람의 발을 부드럽게 안아줍니다. 폭신폭신한 땅을 밟으면서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 비가 그치자 아앨라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던 아앨라나는 , 점점 땅거미가 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네, 시간이 가고 있고, 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어딘가에 캠프를 차리고 야영을 해야 할 겁니다. 베스니는 그런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구슬같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웃기만 합니다.
>>733 "대충 아가씨인 척하고 존댓말 해. 전 엘리자베스와요. 이런 식으로. 얼굴이 그렇게 생겨먹은 덕분에, 눈동자 분장만 잘 하면 알아서 동부 귀족이라고 속아넘어가 줄거다. 원래 싸울 줄 모르는 귀족들은 전부 병신이고, 여기 귀족들은 죄 싸울 줄 모르거든."
워, 정말 신랄한 발언입니다. 에레야가 신분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거한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척 봐도 품질이 좋아보이는 양피지에 엘리자베스의 인간으로서의 신분을 적어내기 시작합니다. 옐리사베타 블라디미로비나 예페슈카, 동부 나로즈녜 차르국을 섬기는 남작가의 자유분방한 딸. 어릴 적부터 저택 안에서만 자유롭게 나다녔기에 나로즈녜 차르국의 문화도, 귀족의 예법도 잘 익히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귀족적인 기풍은 가지고 있다는 그런 설정입니다. 에레야는 엘리에게 설명합니다.
"너무 불평 가지지 마. 네 원래 성격과 정반대의 신분을 부여하면 그 신분을 유지하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아야 해서 임무 수행 못 해. 이제, 베르야가 분장을 해줄 거다."
그러자, 거한이 지하실에서 계단으로 올라가더니 베르야를 데리고 옵니다. 베르야는 '연행'된것 치곤 꽤나 멀쩡한 상태로 오더니 에레야를 노려보는군요. 그리고 한 마디 쏘아붙입니다.
>>734 "그렇습니다!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으라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이고, 실제로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주었죠."
요한은 밤하늘의 별을 세는 것보다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밌는지, 그 '바퀴벌레'와 엮인 이야기를 해 줍니다. 화살을 여러 발 맞았는데도 산 이야기, '바퀴벌레'를 산 채로 해부해야 했던 이야기, '바퀴벌레'의 폐에 농양이 생겨 구더기를 집어넣어 썩은 살을 제거한 이야기 등등. 온갖 난해하고 '유식한' 단어로 점철되었던 요한의 다른 말들과는 다르게, 이 말에 대한 이야기는 간결하고 정확한 것이, 드디어 누누코도 진지하게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진심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누누코의 일족도 말 자체는 생소하지 않은 만큼 다른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그나마 들어줄 만도 합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요한은 누누코에게 묻습니다.
"그나저나 누누코 씨. 신성한 들판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니... 누누코 씨는 유목 민족이거나, 또는 반농반목 민족 계통의 부족 전사셨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혹시 가능하시다면, 누누코 씨가 이런 비인도적인 수모를 당하시기 전 좋았던 시절에 대해 저에게 말해주실 의향이 있으신지 궁금하군요."
>>740 베르야는 엘리를 위한 옷을 즉석에서 만들기 시작합니다. 나로즈녜 차르국, 추운 동네 특유의 모피와 가죽 코트를 먼저 만들고 그 아래에 입을 복잡한 패턴으로 짜낸 직물 드레스를 만들어냅니다. 거한들은 빛나는 손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를 못하고, 입을 다물고 보던 엘리는 아주 옛날 어릴 적, 외증조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블라드 체페슈'라는 성씨가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읽어주셨던 그림책의 내용을 떠올립니다. 블라드 체페슈라는 가문명은 먼 동쪽에서 시작했고, 그 동쪽 고향보다도 먼 동쪽에 있는 차르국 사람들과 교류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살았다고 동화책을 읽어 주셨죠... 그 동화책에 나오던 드레스가 좀 더 화려해졌다면 이런 느낌일 겁니다.
"...언제 봐도 솜씨가 대단하군."
"대단하면 돈이나 똑바로 내놔. 30금화. 깎으려고 하면 입술 꼬매버릴 줄 알아."
베르야는 엘리를 위해 드레스 한 벌을 후딱 만들어치우고는, 눈에 넣는 빨간 물약을 줍니다.
"별 건 없어요. 그냥 눈 색깔을 좀 더 진하게 만들어 줍니다. 뱀파이어처럼 선혈로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진홍색으로 보여서 뱀파이어라는 의심을 피할 거에요."
공지 내일부터 내가 시작하는 일이 격일 단위로 기쁨이 넘치는 하루 14시간 노동 - 휴식 - 기쁨이 넘치는 하루 14시간 노동 - 휴식을 반복하는지라 오늘은 저녁 7-8시쯤에 들어가보고 내일은 ㄹㅇ 인당 1답레씩만 진행할수도 있을듯; 노동착취를 당하는 캡틴이라 미안하다. 내일 모레는 일어나는 대로 좀 더 많은답레 주도록 노력할개...
@@ >>739 "인간... 아니,"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누누코는 중얼거리듯이 운을 텄다. 그러더니 이내 "요한은 바퀴벌레를 아끼는구나."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을 해쳐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시선을 '바퀴벌레' 에게로 옮겼다. 바퀴벌레는 쭉 뻗은 네 다리를 움직이며 두 사람과 마차를 이끌고 있었다. 터프한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아직까지도 자신의 직무를 놓지 않고 있었다. 짐승은 때때로 인간보다 더욱 활기를 띄곤한다. 어쩌면 신성한 들판의 아이들, 자신과 같은 동족들보다도 더욱. 누누코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치 바퀴벌레를 인정해주듯 손을 뻗어 갈퀴를 쓰다듬어주었다. 마치 그를 전사로 인정해주듯이.
"누누코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네." "――요한에게 별로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닐거야." 그리고 마차가 굴러가는 동안, 누누코는 이야기해주었다. 자신이 처음 부족으로 인정 받고 전사가 되기로 맹세한 날. 그렇게 하기까지의 노력. 신성한 들판의 자유로움. 드넓음. 어떻게 일곱 다리 야수를 사냥하는지. 그 소재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신성한 들판의 나뭇잎 칼을 어떻게 휘두르는지. 마치 인간과 수인의 경계를 허문듯이 보였다.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녀는 어디까지나 요한같은 인간을 인정한 것이 아니고 딱히 할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선 긋듯이 말했지만 이야기를 푸는 사이에 어쨌든 그녀는 잠시동안이나마 고통을 잊고 즐거워보였다. 그리고 때로는 우수에 찬 눈이 되기도 했다. 자신의 동족을 기리는 눈이었다.
"누누코는... 누누코네 부락으로 돌아가려고 했어." "부끄러운 일인걸 알아. 하지만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싶거든. 그곳에서 누누코의 동족들과 만남을 가지고, 영혼을 담금질 할거야." "...그리고 죽이겠어... 그 날, 그 자리에 있던 인간들을 남김 없이, 말이지. ...후흥." 그리고는 평소대로 피비린내 나는 문장을 입에 담으며, 그것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듯 입가를 비틀면서 버릇과 같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참고가 될 진 모르겠지만... 누누코도 말해주고 있으니까 풀어보는 시트에 적지 못했던 설정! 누누코의 종족인 보팔토끼 수인은 인간은 물론이고 수인들 사이에서도 맹수로 느끼고 위협적이라고 생각해서 보통 배척받는 종족이에요~ 그래서 누누코는 원래부터 신선한 들판의 주민이 아니고, 방황하고 있던 그녀를 신성한 들판에서 포획하고 받아들여줬어요. 보팔토끼 수인과 보통의 토끼 수인은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확실한 차이가 있고, 보팔토끼 수인쪽이 확실하게 희귀해서 보통 토끼 수인인 줄 알고 다가가다가 일어나는 사고가 빈번한 편이에요. 보팔토끼 수인 그 특유의 희귀성과 호전성 때문에 연구는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교양이 깊게 있는 인물이 아니라면 그 존재조차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해요. 아마 누누코도 그래서 신성한 들판에 더 애착을 갖고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네요~
>>744 거한이 거울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자... 엘리는,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마주합니다. 선혈처럼 붉은 눈이 아닌 어둡고 그윽한 진홍색의 눈동자. 매일 입고 다니던 작업복이나 새로 입게 된 늘씬한 일상복이 아닌 나로즈녜 차르국 식의 모피를 걸친 화려한 패턴의 직물 옷을 입은, 옐리사베타 블라디미로비나 예페슈카, 나로즈녜 차르국의 블라디미르 예페슈크 남작가의 말괄량이 영애가 됩니다. 에레야는 엘리에게 다시 한번 설명해줍니다.
"시간이 없으니, 지금부터 익숙해져야 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널 그 뱀파이어 엘리자베스가 아닌 동방 귀족 옐리사베타로 간주할 거야."
에레야는 엘리... 아니, 옐리사베타의 가슴팍에 초대장을 팍 밀어제낍니다. 엘리/옐리사베타는 그 초대장을 봅니다. '옐리사베타'의 이름과 '블라디미르 예페슈크' 남작가의 인장이 찍혀 있군요. 그리고, 에레야는 다음 말부터는 갑자기 엘리를 엘리가 아닌, 옐리사베타로서 존대하면서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옐리사베타 아가씨. 1층으로 나가시면 우리 애들이 사교 파티로 가는 마차를 준비해놨을 겁니다. 거기로 가서, 밝은 밤귀와 밤눈으로 귀족들이 무슨 호박씨를 까는지 들어 주십시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도, 좀 이상하다 싶으면 전부 수집해주세요. 알겠습니까?"
요한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누누코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칩니다. 모든 인간들에게 자신을 일원으로 받아들여주는 '공동체'란 것은 소중합니다. 공동체 따위는 필요 없고 혼자 살아도 된다는 이들은, 사실 너무나도 큰 공동체에 살고 있어서 그 공동체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거나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죠. 그리고 태어난 혈통을 이유로 배척당하던 누누코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받아들여준 신성한 들판은 너무나도 소중했습니다. 그렇기에, 누누코는 그 소중한 들판에 패악질을 부린 이들을 다 죽이겠다는 결심을 굳힙니다.
"원래 저는 동종업계 사람들의 사업은 방해하지 않습니다만, 노예 사냥꾼들은 예외죠."
요한은 누누코를 구하길 잘 했다면서, 그녀의 무운을 간접적으로 빌더니 그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만, 누누코 씨만 잡혀간 것이 아닐 텐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건가요?"
@@ >>751 "몰라." "...모르겠어." 누누코가 자신의 무릎 정도로 시선을 내리깔고는 말했다. 멍청한 대답이었지만 동시에 차가운 사실이다. 그것이 그녀가 겪고있는 상황의 가장 큰 문제였다. 누누코의 힘은 대단한 것이나, 손이 닿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렇다고 그녀에게는 인간 사회에 녹아들 요령조차도 갖고있지 않았다. 다른 동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고있지 못했다. 누누코가 알고있는 것은 그저 사람의 모습을 한 돼지들의 냄새. 그리고 얼굴. 오직 그것 뿐이었다.
"하지만 누누코가 붉은 잎에 맹세코 전부 찾아낼 거야." 누누코는 오직 기억에 눌러붙은 그 피비린내나는 감각을 상기하며, 몸에 걸친 넝마를 주먹으로 꾹 쥐며 맹세했다.
>>753 안타깝게도 이 세상이란 곳은 원래 그렇습니다. 죽는지도 모르고,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 이들.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가득한 세상. 유령으로라도 다시 만나면 좋으련만, 그럴 수조차 없어서 죽어서 다음 생에서 만나자고 기약 없는 눈물로 맹세할 뿐이지요. 그것이 이 세상의 현실이었고, 누누코와 함께 끌려갔던 이들도 그랬고, 요한이 그간 구했던 수많은 노예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요한은 웃음기를 완전히 빼고 닥치고 있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나직이 묻습니다.
"감히, 제가 영업을 하나 해보고자 합니다만."
영업. 이 와중에 영업이라니, 정말로 좋은 이유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요한 브룬은 자기 머리가 따일 각오도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좋은 사업 아이템을 제시했군요.
"저는 현상금 사냥꾼이지만, '살아있는 상태'로 누군가를 찾아내서 데려오는 것에도 꽤 능합니다. 그러니까, 저와 함께, 누누코 씨가 당하셨던 유감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을 이들의 위치와 구체적인 구제 방안을 알아볼 수 있을 거란 말이지요."
요한은 그렇게 말하고 대가에 대해서는 그답지 않게 말을 피합니다.
"뭐, 대가는 좀 있다가 생각해보는 것으로 하고요. 한 명이 찾는 것보단 두 명이 찾는 게 더 효율이 좋지 않겠습니까?" // 오늘은 여기까지!
"누구인가에 따라서 다를 것이에요. 비슷한 효능을 내는 약을 만들수 있을거에요, 그에 뒤쫒아 오는 부작용도 감내해야겠지요"
저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주면서 제가 실제로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덧붙여 말해주었어요. 그렇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이르도록 보여준 모습을 바라보았을때 굳이 이러한 약이 없어도 그녀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약간 들었어요
숲의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빛이 마치 그 힘을 잃어가듯 연약하게 사그라들고, 슬쩍 하늘을 바라보면 해가 지고 숲에 밤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숲에 어둠이 자리잡으면 그 모습은 좀 달라요. 검은색 물감으로 색을 입힌 도화지 같다고 해야할까요? 생물발광성을 지닌 버섯이나 이끼들 그리고 동물들이 눈에 잘들어 온다는 것은 괜찮은 일이 되겠지만요
"어둠이 완전히 숲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저희가 당분간 머물고 가게될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기로해요. 길로 향함에 있어서 적절한 휴식은 필요할 것이에요"
그렇게 되었니 저는 그녀가 알고 있는지 아닌지, 여전히 가야될 길을 걷는 것에 몰두하는 것에 멈춰세우듯 말하였어요. 적당한 휴식도 없이, 밤새도록 계속 움직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닐 거에요. 그래서 제대로 야영을 할만한 장소를 찾아보아야 겠어요. 저는 한 손으로 손가락을 튕겨내 보이고는 손가락 끝에 촛불과도 같이 불꽃을 피어냈어요. 저는 마녀 님에게는 비할바는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바로 마녀 님의 바로 아래서 이어질 제자로서 배워왔어요. 이정도의 작은 마법을 부리는 것은 간단한 편에 속할 거에요
@@ >>754 "...영업?" 마차가 이동하는 내내 바퀴벌레 아니면 주변의 자연물만 보고 있던 누누코의 눈이, 처음으로 요한에게로 돌아갔다. 요한같은 일반적인 인간에게, 그 보팔토끼 수인의 눈빛은 굉장히 서슬어린 스산한 것이었지만 누누코는 그저 '영업' 이라는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되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영업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금방 들을 수 있었다.
"피네가 대가 없는 거래는 없다고 하던게 기억 나." 누누코가 동족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게다가 이것은 하물며 인간이 먼저 제안하는 거래였다. 안타까운 일인지, 누누코에게는 요한이 제안한 것이 함정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따질 수 있는 지능이 되지 못했다. 지금 그의 손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결정일지도 알지 못했다. 마치 이미 멀어진, 피로 얼룩진 노예마차처럼 말이다. 이미 지긋지긋했다. 만약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마차가 또 다른 미래가 되어 닥쳐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누코가 동족을 찾지 못하면, 누누코가 숨쉬는 의미따윈 없을거야." 그러나 누누코는 생각했다. 사실은 언제나 생각했던 일이었다. 단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누누코는 그러지 못했다. 누누코는 매순간 그 일을 원망하며 자책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쨌든 선택을 해야했고 이내 체념과 결심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구태여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암시적인 승낙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758 엘리를 모시고 갈 마차는 여태껏 엘리가 직접 본 마차들과는 비교를 불허합니다. 여객마차는 그냥 가축마차나 다름없었고, 짐마차의 승객칸은 인간을 짐짝 취급합니다. 하지만 엘리, 아니, 옐리사베타 아가씨를 위해 준비된 이 마차는... 정말 엘리가 탔던 다른 마차들과 같은 종류로 보는게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말들은 갈기며 털이며 윤기가 흐르고, 마부는 (가면 뒤집어쓴 거한이지만) 수행원의 옷을 입고 그녀를 기다립니다. 마차, 딱 엘리 한 명이 들어갈 마차는 다리를 쭉 뻗는게 아니라 그냥 자도 될 정돕니다. 거한은 '옐리사베타'를 보자마자 마차 문을 열어 정중히 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