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의 소품이자, 단역이자, 조연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는 비참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고, 기승전결이 갖춰졌거나 이야기의 어떤 구성요소 하나도 제대로 된게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엉망인 이야기가 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선택하고, 때로는 강요당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써낸다. 이야기의 악마 이프가 이제 마침표를 찍으라 권할 때까지, 죽음이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왜냐면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니까.
힘레먼 할범은 포치에게 손짓하고, 또 '뼈다귀'는 기가 막히게 알아들은 포치는 꼬리를 흔들면서 힘레먼 할범 주위를 뛰어다닙니다. 서역인들이 데려왔다는 묵서가국 원산의 단모 치와와도 평소에는 광견병 걸린 것마냥 날뛰는 것이 어르신이 키우면 참 착하게 잘 따른다니 포치는 오죽하겠냐 싶기도 하지만서도, 개는 주인이 아니라 먹을 걸 따른다는 농담이 생각나 조금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히사히메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곧 이곳을 떠난다면 포치는 당연히 자기를 따를 것이란 점을요! 아무튼 포치는 마차를 옮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리는 없으니 가 보면...
"아이고, 하필 빠져도 이런 데 빠져!"
"행님요! 다음번엔 마차를 좀 작은 걸 사던지, 아니면 동네 사람들이랑 길을 넓히던지 합시데이!"
동네 장정들이 모여서 도랑에 빠진 마차를 당기고 있는데, 척 보면 빼기 힘들 법도 합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 도랑의 각도가 40도가 넘는 데다가, 마차의 크기도 작은 오두막 정도는 됩니다. 그래서인지 말에 더해 사람들도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미는데도 빠질 생각을 안 하는군요. 뭐, 히사히메야 혓바닥 길어질 게 변명할 것도 없이 흡 하고 힘줘서 좀 쎄게 밀면 그만이겠지요.
상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기도 합니다. 지금은 전근대, 의학 학교에서 제대로 된 외과의사가 배출되기 시작한 지 백년도 지나지 않았고 아직도 머리 깎는 이발사가 외과의사도 겸하는 시대입니다. 다리가 부러진 여성은 이 정도 골절이라면 당장 다리를 잘라버려도 할 말이 없으니, 그저 아앨라나가 고통 없이 고치는 방법을 알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앨라나는 지팡이를 들어서, 가말라시엘의 제안대로 그 힘을 이용해 고쳐보기로 합니다. 심호흡을 하고, 아앨라나는 아주 잠깐, 가말라시엘의 의지를 조금 더 폭넓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가말라시엘의 명령이, 그 악마를 따르는 이 시대 유일의 사도 아앨라나의 입으로, 이 세상에 전해집니다.
דיין פיס וואַקסן צוריק.
아앨라나 그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속삭임과 함께, 조난당한 여자의 부러진 다리가 검게 물듭니다. 그 여자는 아앨라나를 바라봅니다. 무언가 이상한 것에 빙의된 것 같은 눈동자, 점점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변해가는 다리, 사라져가는 감각에 당황해서 번갈아 보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혹시 내가 부탁할 사람을 잘못 골랐나 벌벌 떨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녀에게 선택권은 없었습니다.
가말라시엘이 다시 자신의 은거지인 지팡이로 물러나고, 정신을 차린 아앨라나는 그녀의 다리를 내려다봅니다. 다리는 말끔하게 나았습니다. 마치 말의 다리처럼... 아니, 문자 그대로 말의 다리처럼 변했습니다. 여자는 완전히 사라진 통증, 말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봅니다.
"이, 이게 무슨..."
어쩌면 악마의 농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그녀는 분노에 빠져 따지거나 공포에 빠져 도망치는 대신 눈을 빛내며 감사를 표하는군요.
"...대, 대단해요!!! 어, 어떻게 이런 일을 한 거죠?! 사람의 다리를 말의 다리로 만들다니! 검은 숲에는 정말 강한 마녀가 산다는데, 호, 혹시 당신인가요?!"
귀인국에서는 주로 바깥활동을 할때 마차보다는 가마를 이용했느니라. 지형적인 이유로 마차로만 움직이면 다닐 수 있는 곳이 제한되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 이상으로 어지간해선 숙련된 가마꾼이상으로 그런 돌투성이 지형을 건너는 것에 특화된 이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느니라. 그렇기에 기실, 이런 것은 처음이니라!!! 무엇이냐 저것은!!! 뭔놈의 마차가 저리 무식하게 크단 말이더냐?! 이건 마치 애영지... 아니 이미 집이 아니더냐!!!! 이렇게 커다란 마차라면 안에는 국서라도 타고 있는 것더냐?!
"비키거라 비켜!!! 그냥 짐이 하는 것이 빨라보이느니라!!!"
장정들을 물리고 가볍게 힘을 줘 마차를 들어올렸느니라. 으음, 목재가 좋아서 그런지 무게는 그리 엄청나진 않은 것 같구나! 짐이 타기에는 다소 너무 나약해보이니 일단 넘기도록 할까.
>>414 엘리는 암살쥐에게서 빼앗은 녹색 단검을 듭니다. 이거에 찔린 암살쥐의 목은 환부가 초록색으로 발광하며 썩어들어감과 동시에 타들어갔고, 자폭쥐들도 이것 앞에서는 무력하게 쓰러졌습니다. 물론 칼을 맞으면 일반적인 생명체는 죽습니다. 하지만, 이건 다릅니다. 엘리 같이, '일반적이지 않는' 생명체에게도 통하는 악마 같은 무기입니다.
뭐라도 해보라고?
에레야의 선언 덕분에 다른 건 몰라도 저 괴물의 속도만큼은 확실히 느려졌습니다. 그래도 뱀파이어는 뱀파이어, 엘리에게 죽어나갔던 다른 식인종들이나 랫킨과는 다르게 엘리가 뭘 하려는 건지, 얼마나 빨리 달려오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알고 당하나, 모르고 당하나, 결국 '당한다'는 건 똑같습니다. 엘리는 씩 웃고, 달려듭니다.
그래, 뭐라도 해볼게.
제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제아무리 불경한 힘으로 축복받았다 해도, 그 근본은 강해진 수많은 근육 하나하나의 협응으로 이뤄질 뿐입니다. 그 말은, 운동 수행에 치명적인 부위를 찌른다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뱀파이어의 본능으로, 일족의 교육으로, 수많은 사냥 경험으로, 엘리는 인간 비스무리한 놈들이라면 어딜 찔러야 병신이 되는지, 어딜 찔러야 제일 고통스럽게 죽는지 잘 압니다.
철퍽!
"크웨엑!!!"
엘리가 무릎을 찌르자, 안 그래도 칼이 찔리면 세상이 노래질 정도로 아픈 무릎에 녹색 단검의 작열통까지 더해지며 끔찍한 고통이 괴물의 광기를 잠시 짓누릅니다. 그 다음은 어깨를, 그 다음의 다음은 척추를 노려 찌릅니다. 이 세상에 육을 빌려 존재하는 이상, 육체가 정신을 지배할 순 있어도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순 없습니다. 어떻게든 멀쩡한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어 서 있으려던 괴물은 이를 악물고 버티려 합니다. 하지만, 이 괴물이 불가해한 공포가 아니라 정신만 차리면 극복할 수 있는 또다른 적임을 목도한 경비들이, 용기를 얻어서 도끼와 망치로 나머지 다리를 찍어버립니다.
"뒤, 뒤져!"
괴물의 무릎이 우드득, 하며 꺾이면 안될 방향으로 꺾이고, 괴물의 자세는 무너집니다. 만세! 경비병들은 사기가 충전해서 이 괴물에게 달려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괴물을 죽였다는 경험은 언제 해보겠습니까? 경비들은 도끼와 망치로 괴물을 마구 내려치고, 단창을 꽂았던 경비들은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괴물을 푹푹 찌릅니다. 엘리도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녹색 단검으로 찌르면 정말 아플 법한 부위를 골라서 찌르려는데... 뭔가, 경비들의 눈이 이상합니다. 눈이 붉게 물들고, 표정은 기이할 정도로 웃고 있습니다. 엘리는 방금 전에 이걸 본 적이 있었는데... 라고 생각하다, 이게 고블린들이 주술에 광폭화되었을 때임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생각이 닿자마자...
간만에 힘 좀 써보기로 한 히샤히메가 장정을 툭툭 치자, 장정은 마치 곤장을 옆구리에 맞은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며 옆으로 물러납니다. 히샤히메의 힘을 잘 아는 다른 장정은, 행여 히샤히메의 힘 때문에 말까지 마차에 매달려 올라갈까 황급히 말과 마차를 묶은 줄을 풉니다. 그리고 마차주인 고드뢰는 대머리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닦으면서, 행여 히샤히메의 힘 때문에 마차가 개박살날까 벌벌 떨면서 바라봅니다. 장정들과 말이 주변에서 물러나서 한나절 힘 빼느라 지친 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회복하는 동안, 히샤히메는 잡을 만한 모서리에 양 손을 얹더니 힘을 줍니다.
흡.
히샤히메의 양 근육이 순간 팽창하고, 그녀의 몸을 지탱하는 등골의 근육이 수축하며 사람들이 오니를 상상할 때마다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얼굴이 등근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마차의 모서리는 히샤히메의 무시무시한 손아귀힘을 이기지 못해 콰직, 하고 손아귀의 형태대로 파고들어가고... 쪼그려 앉은 히샤히메가 구부린 무릎을 펼치자, 히샤히메는 기이한 동방의 도술을 선보입니다. 기대하시라!
마차가 하늘에 붕 뜨는 마술입니다!
서커스의 속임수도 그 무엇도 없는, 우월한 완력과 마법이 도저히 구분되지 않는 경지에 장정들이 입을 떡 벌립니다. 마차 모서리가 박살난 고드뢰는 울다가 웃다가 난리도 아니지만요.
>>423 에레야가 이렇게 절박하게 외쳤던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불타서 다 쓰러져가는 여관에서도, 엘리에게 여유롭게 여기서 싸우면 너 반드시 죽는다고 말했던 그 이단심문관이요. 그 말은, 정말 어지간히 큰일난 게 아니란 소리죠. 에레야 휘하의 이단심문소 소속 방패병들은 이미 에레야를 둘러싸고 있고, 석궁병과 나팔총병도 기이할 정도로 폭력적으로 돌변한 동료들을 보고 뒤로 물러난 상태입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아니면 이번 주 급료를 삭감 없이 제대로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치, 폭력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 같습니다. 에레야는 흉갑에 새겨진 철십자 인장에 왼손을 얹은 채 조용히 기도문을 암송하고, 이 폭력성의 영향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경비병들은 언제 도망치게 해주나 발을 동동 구르며 에레야만 쳐다봅니다.
"죽어! 죽어! 죽어!"
"크하하하하하하하!!!"
괴물 위에 올라탄 경비병들이, 하나 둘 그 괴물의 몸속에 파고들어갑니다. 피에 침식하는데도, 괴물의 피가 덩굴처럼 엉겨붙으며 그들의 팔다리를 집어삼키는데도, 기쁘게 폭력을 반복합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으라고!!!!! 간신히 기도를 마친 에레야, 간신히 빠져나온 엘리는 폭력에 사로잡힌 경비들을 봅니다. 처음에는 괴물을 찌르던 경비들이, 이제는 피웅덩이 속에서 헤엄치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누가 죽으라고 말하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괴물과 한 몸이 됩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눈 앞에 드러난 것은, 에레야의 신앙과 엘리자베스의 혈통을 모두 모독하는 무언가입니다.
인간보다 반은 더 큰 키, 무시무시하게 벌어진 어깨, 매끈한 유선형의 머리, 그리고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날개.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는 이 형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뱀파이어 중에서도 선택받은 뱀파이어만이 취할 수 있는 진정한 형태입니다. 이 사제는, 뱀파이어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 아름다운 형체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에레야의 눈도 떨립니다. 심장 등 필수 장기, 뼈를 제외한 모든 살덩이들은 갈려나가 걸쭉하고 끈적하게 엉겨붙은 피죽으로 변했고, 심장이 한 번 고동할 때마다 그간 저 괴물이 잡아먹었을 수많은 이들이 죽기 직전 지었던 표정이 와류 속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살아있지 말아야 할 이들 중에서도, 진정 살아있지 말아야 할 자.
에레야는 엘리를 제외한 남아있는 이들에게 명령합니다.
"이 작전은 실패다! 모두 후퇴해! 신전으로 가서 비상 사태라고 알려!"
그러자, 방패병들이 일사불란하게 나가는 동안 석궁사수와 나팔총사수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칩니다. 하지만, 불운한 방패병 하나가 그 괴물의 손아귀에 잡힙니다. 방패병은 붙잡힌 상태에서도 메이스로 저항하지만, 그 괴물이 세 갈래로 쪼개진 머리로 방패병을 그대로 삼켜버립니다. 그 안에서, 무언가 저항하는 듯 뒤틀리지만, 이내 괴물이 자신의 배를 강타하자 침묵합니다. 에레야는 쯥, 하고 혀를 찹니다.
"살다살다 뱀파이어하고 편 먹고 싸우다 죽게 될 줄은 몰랐군."
싸울 생각이라면 조심하십시오. 대체 어떻게 인간이 이 경지에 이르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모독적이라도, 이 괴물은 뱀파이어의 진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공지할게. 지금처럼 사람이 적다면 하루 1개를 넘어 합이 잘 맞으면 4-5개도 진행할수 있긴 한데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도 사람이라(손가락에 챗gpt 달렸으면 좋겠다 ㅜㅜ) 진행레스가 내가 공언한대로 하루 1개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까 참고해줘!
이단심문관, 이단심문관과 그 아래에서 이끄는 수많은 병력들과 정보망은 그 사제가 불경한 세상에 몸을 담았을 때부터 무슨 대가를 치르고라도 도망쳤던 공포의 대상입니다. 이단심문관은 신의 권능으로 심판을 행했고, 병력들은 항상 어둠에 숨어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부하들과 협력자들을 잔인하게 찢어발겼고, 정보망은 물리적인 그물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그물이 되어 사제의 온 몸을 옥죄곤 했습니다. 이들은 자비도, 타협도, 후회도 없었습니다.
뱀파이어, 뱀파이어는 그가 어릴적부터 동경했던 진정한 '생득권자'이자 먹이사슬 최상위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암약하면서, 온갖 인간들을 가축처럼 사역하고 부릴 권리를 지닌 존재. 그래서 되고 싶었습니다. 온갖 연구를 다 했고 안 해본 방법이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그럴싸한 방법부터 척 봐도 사기가 분명한 방법까지, 모든 것을 시도했습니다. 그럴 만큼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이단심문관도 그에게는 발라먹을 가시가 조금 많은 생선처럼 보이고, 뱀파이어마저도 감히 그의 하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를 먼저 공격할까 고민하던 그 형체는, 그간 어둠의 영역까지도 거침없이 쳐들어오던 이단심문관에게 쌓인 울분을 먼저 풀기로 합니다. 수많은 이들의 가죽을 엮어 만든 날개를 펼쳐 올리고는, 그간 올려다보며 도망쳤던 이단심문관을 이제 쫓으며 내려봅니다. 반대로 에레야는 항상 태양신에 맹세할 때만 올려다보던 하늘을, 이제는 저 끔찍한 괴물을 보고자 올려다봅니다.
이거 진짜 죽겠는데?
자신에게 급강하하는 괴물을 바라봅니다. 에레야는 저게 달려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피할 수는 없습니다. 눈을 감고, 신을 향한 자신의 헌신이 충분했나 생각하려는 그 순간...
키야아아아악!!!
엘리가 사제에게 달라붙어 암살쥐의 단검으로 날갯죽지를 찌르고 비틉니다. '승천'한 몸으로도 피할 수 없는 필멸의 고통에 사제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틉니다. 몸을 뒤틀며 비행 궤도가 변한 탓에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한 에레야는, 엘리와 사제가 지하수로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보고 달려듭니다. 그리고 신의 권능을 받아 빛나는 망치로 사제를 내려칩니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을 것 같던 사제의 형체가 뒤틀리며 불안정하게 변하고, 고통을 넘어 신의 심판에 끌려가는 것 같은 공포에 사제가 비명을 지릅니다.
이익, 이이익!
사제가 뒤에 붙은 엘리를 끝장내려 하면 에레야가 망치로 후려쳐 방해하고, 에레야를 죽이려고 아가리를 내밀면 엘리가 대신 머리를 내밀어 할큅니다. 뱀파이어와 이단심문관이, 뱀파이어보다 더한 무언가에 맞서다보니 합이 잘 맞고, 에레야와 엘리의 머리에 똑같은 생각이 스칩니다.
곰을 잡을 수 있느냐는 말에는 조금 당황하기는 했다만 그것 역시 왕으로서의 넓은 아량으로 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니라! 전래 동화중에는 그런 식으로 곰과 스모를 하여 동료로 만든 용사의 이야기도 있었으니! 짐 역시 그런 이야기는 아주아주 좋아하느니라! 헌데 이상하구나. 짐이 이리도 도움을 주었거늘 고드뢰녀석은 어찌 저리 울상인고? 고작해야 끝부분이 살짝 부서진 정도. 그정도야 고치면 그만이거늘! 전부를 폐기시키는 돈보다야 수리비용이 싸게 치이지 않겠더냐?
"실로 좋구나! 헌데, 이 마차는 무엇이더냐? 마을에서 이런 커다란 것을 탈만한 녀석은 못 봤던 것 같은데. 거인이라도 오는것이냐?!"
>>435 날개, 특히 익막은 조금이라도 찢기거나 구멍이 나면 제기능 하기 힘들어지는 신체부위입니다. 비록 이 시대에는 공기저항이네, 유체역학이네, 같은 대단한 물리학적 이해는 없지만, 집채만한 돛에 구멍이 뚫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벌어진 상처가 있는 팔을 계속 쓴다면 상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포 속에서 희망을 잡자, 엘리는 이성을 회복하고, 그 이성으로 적절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사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채고 엘리를 내동댕이치지만, 엘리는 데굴데굴 구르다가 낙법으로 몸을 말더니, 그대로 튀어나가 다시 사제의 날갯죽지에 붙어 양 손톱을 길게 세우고, 날갯죽지를 뜯어버릴 기세로 손톱을 쳐박습니다.
하지만, 살과 뼈가 아닌 걸쭉한 수프를 휘젓는 것 같은 맥없는 느낌과 함께, 엘리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낍니다. 박혀 들어갔지만, 벨 수 없습니다. 찌를 수 없습니다. 마치 물을 베려는 것 같이 모든 공격이 의미없이 느껴지는 맥빠지는 감각. 마치, 붉은 슬라임을 칼로 베려고 한 것처럼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빈틈.
고작 한 합, 많이 쳐봤자 세 합 정도만 낭비했을 뿐인데, 이것만으로 빈틈이 생겼습니다. 사제는 에레야의 망치 자루를 붙잡습니다. 엘리를 도우려던 에레야는, 홀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자리에 정지한 워해머를 보고는 욕을 내뱉습니다.
"이런 썅."
쾅!!!!
욕 한마디 할 시간만 주고, 사제는 에레야를 망치째로 들어 내팽겨칩니다. 에레야는 벽에 쳐박혔다가 떨어지고, 그녀의 등골 대신 우그러진 흉갑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쪼개졌습니다. 에레야는 쿨럭거리며 내장 섞인 피를 뱉습니다. 그리고, 사제는 이단심문관 대신 뱀파이어를 먼저 처리하기로 방침을 바꿨는지, 엘리를 돌아봅니다. 엘리도 바보가 아니니 물러나려고 하지만...
스르륵...
살 대신 핏물로 이루어진 몸이 변하더니, 분명 엘리가 찌를 때만 해도 등이었던 곳이 이제는 어깨가 되었고, 엘리는 사제의 뒤가 아니라 앞에 매달린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제는 엘리의 것보다 훨씬 긴 손톱을 뻗어, 엘리를 양 손으로 찔러버립니다. 격통과 함께 엘리는 힘없이 위로 들어올려지고, 이단심문관에게 사냥당해 말뚝에 꽂혔던 놈들마냥 하늘 위로 솟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공포감도 없습니다.
그냥 도망칠 걸.
핏물로 이루어진 사제의 얼굴에서 소용돌이가 치더니, 순수한 기쁨으로 환희하는 그 혐오스러운 얼굴이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그 얼굴이 세 갈래로 갈라져서 지옥의 꽃봉오리가 되어, 엘리를 집어삼키려 합니다. 이렇게 잡아먹히는군요. 이렇게 끝나는군요. 엘리는 눈을 감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은... 의외로 공포심도 아니고, 허무함도 아닙니다.
가소로움입니다.
뱀파이어, 그 중에서도 오직 선택받은 뱀파이어만이 취할 수 있는 진정한 형태. 한때 뱀파이어를 두려워하던 인간들이 지어주고, 뱀파이어를 한낱 모기 따위로 격하하려는 종교인들조차도 차마 깎아내리지 못하고 남겨둔 그 이름.
지금 여기서 엘리를 집어삼킨다고, 이 녀석이 뱀파이어가 될까요? 아니면, 뱀파이어의 노예라도 될 수 있을까요?
개소리죠.
유일하게 유감인 게 있다면, 지금 그 뱀파이어 참칭자에게 엘리가 잡아먹히게 생겼다는 것뿐...
펑!!!!!!!!
그 순간, 사제의 등에서 실명할 것 같은 빛과 함께 폭발이 일어납니다. 엄청난 폭압에 사제와 엘리는 동시에 밀려나고, 순간 육과 혼이 멀어졌다가 다시 붙는 것 같은 끔찍한 느낌에, 엘리는 신성력이 깃든 폭발임을 감지하며 땅을 구릅니다! 강력한 사제마저도 비틀거리고, 엘리는 갑작스런 신성력의 파동에 노출되어 발작처럼 온 몸을 떱니다.
피만 좀 충분하다면, 저 한심한 참칭자에게 진짜 뱀파이어의 형태를 보여줄 텐데, 진짜 밤의 군주로 선택받은 이의 위용을 보여줄 텐데. 하지만 엘리는 무력하게 벌벌 떨고만 있을 뿐.
그 때... 엘리의 입에 피가 쏟아집니다. 얼굴에 마구 튀는 피를 닦아내고 보면, 아편을 씹으며 간신히 기어온 에레야가 엘리를 내려다보며, 고블린의 잘린 머리를 쭉 짜서 피를 엘리의 입에 마구 쏟아넣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도 엘리가 못 일어나자, 에레야는 엘리의 턱을 억지로 벌리고 자신의 팔뚝을 엘리의 입에 물립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군요.
서운한 기색을 감지했는지, 마을 장정들은 울상이 된 마차 주인 고드뢰를 툭툭 치면서 일어나라고 핀잔을 줍니다. 여기서는 히샤히메와 그녀를 두둔하는 장정들이 객관적으로 옳습니다. 만약 히샤히메가 없었거나 돕지 않았다면, 고드뢰는 저 부서진 자국을 수리하는 데 드는 돈의 50배는 되는 인건비와 말 빌리는 값을 들여서 마차를 빼냈어야 할 겁니다. 그 사이에 마차를 못 써서 발생하는 일실수입 손해를 생각하면? 셈이 조금이라도 되는 인간이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도 소름이 팍 돋습니다. 그렇기에 고드뢰도 감정을 접어두고, 집채만한 마차를 보고 히샤히메가 묻자 대답합니다.
"예에. 이샤힘 공주님은 키타이에서 오셔서 잘 모르겠지만... 루마족이라고, 이리저리 마차 타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마차에서 살던 가족이 자기네 대에서 유랑 생활을 끝내고 싶다고 해서, 땅 몇 개랑 이 마차랑 맞바꿨습죠."
루마족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들으니 마차가 문자 그대로 집채만한 게 이해가 됩니다. 좁아터졌어도 일가족이 좀 참고 살만하려면 집채만해야죠! 히샤히메가 쓸 서역견문록 한 구절이 벌써 정해진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참고로 이 루마족은 알 수도 있겠지만 집시족(Romani people)에서 따온 거야!
만약에 이걸 신실한 신부가 들었다면 도끼눈을 떴을 거고, 감 좋은 이단심문관 귀에 들어갔다면 다짜고짜 칼을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여긴 검은 숲, 자기네 신 빼면 모두 잡귀일 뿐이라는 편협한 머저리들이 아닌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기에 서로 내버려두는 신비가 머무는 장소입니다. 그렇기에 이 여자는 말의 튼실한 그것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한쪽 다리를 만지면서, 이 지팡이에 봉인된 대악마가 아니라 강력한 마녀, 드루이드가 도와준 것이라 좋게좋게 해석하고는, 아앨라나가 다시 지팡이를 들어 자기 다리를 '회복' 시키려고 하자 달라붙더니 소리를 지릅니다.
"아, 안 돼!!!! 내 탐험의 증거가!!!!! 안 돼요!"
대충 알 것 같습니다. 가말라시엘의 힘을 빌린 결과로, 아앨라나는 부러져버린 다리를 '말의 다리'로 바꿔서, 한 쪽은 사람의 다리요 한 쪽은 말의 다리라는 부정할 수 없는 신비의 증거를 남겼습니다. 그러니 기왕 고쳐주는 거 제대로 고쳐주려고 다시 지팡이를 든 아앨라나의 선의를, 증거를 지워버리려는 시도로 이해했겠지요.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좋다고 달라붙고, 해주고도 욕먹을 것 같은 기분이라 제대로 고치려고 해도 안 된다고 뜯어말린다니. 검은 숲 바깥의 사람들이 전부 이런 별종인지는 아앨라나로서는 전혀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이 여자만큼은 별종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그러지 말라고 사정사정하던 여자는, 어느 순간 진정하더니 묻는군요.
"그건 그렇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베스니, 음유시인이에요. 혹시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448 스스로를 바치는 자의 피는 달콤했습니다. 갓 성년을 넘긴 마을의 젊은 남녀들의 싱싱한 피, 숨을 다하기 전 마지막으로 문안 인사차 찾아온 노인의 숙성된 피, 그리고...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 뱀파이어에게 자신의 피를 판돈 삼아 마지막 도박에 나서려는 이의 피.
하지만, 엘리는 이런 피는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이단심문관의 피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 교단은 정말로 성가셨습니다. 이단심문관은 수많은 동족들을 꼬챙이에 꿰었고, 엘리의 가문은 처신을 잘했다곤 해도 이단심문관은 정말로 끔찍했습니다. 그런 이단심문관이, 자신의 팔을 들이밀고 피를 빨라고 합니다.
콰직
박혀 들어간 이빨 사이로 피가 샙니다. 끄윽, 으윽... 에레야는 힘없이 신음하고, 엘리는 피비린내 속에서 절박함을 음미합니다. 그 무시무시한 이단심문관도 피를 빨 수 있는 또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에 취해 피를 들이마시고, 에레야가 피가 너무 빠져나가 기절했을 때쯤 일어난 엘리는 뒤를 돌아봅니다. 비틀거리다 충격에서 회복한 사제가 그녀의 가슴에 손톱을 휘두르지만...
턱.
엘리는 허무할 정도로, 그 개고생이 무색할 정도로, 어이없게 그 손톱을 멈춥니다. 이제 소꿉장난은 여기까지. 엘리의 날개뼈에서, 손아귀처럼 말린 칼날이 살갗과 옷을 찢고 나오더니, 활짝 펴져 거대한 날개가 됩니다. 그리고 엘리의 손아귀도, 다리도, 발도, 아니, 온 몸이 거대해지고... 인간의 탈을 벗어난 엘리는, 거대해보이던 사제를 이제는 내려다보고, 그가 되고 싶었지만 영원히 되지 못할 어둠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밤의 군주.
엘리자베스 바토리 블라드 체페슈, 고귀한 이명으로 세 번 찬양받고, 모든 괴이에게 세번 경외받을 이여.
베스니는 안나의 이름을 수첩에 받아적습니다. 안나, 라는 별칭은 안중에도 없고 아앨라나라는 본명에 팍 꽂힌 나머지 그것만 적고, 아앨라나의 외형도 일일이 기록합니다. 한참동안이나 기록에 열중한 베스니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히야! 덕분에 살았어요! 안 맞는 지도를 보고 가다가 잘못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을 땐 이렇게 끝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마음씨 좋은 마녀를 만나 얼마나 다햇인지 몰라요! 아차차! 내 정신 좋 봐! 뭔가 보답을 해야지!"
베스니는 주머니를 뒤집니다. 하지만 준비성이 영 꽝인지 깃펜, 양피지 두루마리 따위의 생존술 상황에서는 영 필요성이 의심스러운 것들만 우수수 떨어지고, 지팡이에서 가말라시엘의 깊은 한숨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찾아낸 것은 버덕버적 마른 육포 한 단, 베스니는 자신만만하게 건넵니다.
"악어 육포에요! 한번 드셔보세요!"
꼬르르르르르르륵
...라 말하기가 무섭게, 베스니의 배꼽시계가 우렁차게 울립니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지고, 가말라시엘이 비웃듯 안나에게 말을 건넵니다.
"구해줬더니 밥도 내놓으라는군요. 하지만 사도님이라면, 분명 한 끼를 차려주겠죠. 친절이라! 필요하지만, 악마의 힘을 구하는 이들에겐 사라진 덕목이죠."
>>456 뱀파이어가 동족을 집어삼키는 행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사제가 뱀파이어에 대해 유일하게 옳게 알고 있는 것이라면,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로 살지만 동족의 피로 강해진다는 겁니다. 가문의 가주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지성이 마모되었을 때, 사전에 약속한 후계자가 그 피를 들이마셔 흡수하면 핏빛 계승이라 부르고, 큰 잘못을 저지른 뱀파이어를 처형할 때는 '재활용'이라 불러 사람 취급조차 안 합니다. 별 죄 없는 동족의 피를 전부 흡수하면, 그건, 별 대단한 건 아니고 살인이라 부르죠.
우드득
"끼이이익?!"
엘리는 사제의 어깨를 붙잡고 가볍게 비틀어 부숴버립니다. 그렇다면, 뱀파이어조차 아니고 인간도 아닌, 이 이도저도 되다 만 참칭자를 흡수한다면 그건 뭐라 부를까요? 잠시 고민하던 엘리는, 찢고 씹어 집어삼키는 기능만 남은 아가리로 어색하게 웃으면서 간단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뭐긴 뭡니까. 식사죠.
인간은 어린아이조차도 그간 먹은 빵의 갯수를 대답할 수 없고, 뱀파이어 역시 그간 피를 받아낸 인간의 수효를 셀 수 없습니다. 이건 재활용도 살인도 아닙니다. 엘리는 아가리를 쩍 벌려, 사제에게 다가갑니다. 아직 멀쩡한 한쪽 팔로 엘리의 턱을 치자, 되려 사제의 팔이 부서지고, 엘리는 사제를 들어서 걸쭉한 핏물을 마십니다. 꿀꺽... 꿀꺽...
저항하던 사제는 얼마 못 가 힘을 잃고, 살과 거죽을 대체한 핏물이 빠지자 흉측한 뼈대와 장기만 보입니다. 결국, 사제는 자신이 잡아먹으리라 선언한 뱀파이어에게 먹히고, 음미를 끝마친 엘리는, 자신의 몸 어딘가에 새로운 장기가 숨쉬기 시작한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뇌처럼 생각하고, 심장처럼 맥동하고, 혀처럼 음미합니다. 일족의 주치의가 가끔씩 생길수도 있다던, 공생성 기형종양 같군요. 쉽게 말하면, 엘리가 죽음에 이르면 그녀의 몸 속 장기를 대체해 두번째 삶을 줄 무언가라는 겁니다.
보통 이 종양은 뱀파이어가 인간을 과식한 결과 영양 과잉으로 생겨나는, 인간으로 치면 비만에 대응하는 질환의 일종입니다. 즉 사제는 엘리에게 있어 좀 쥬씨한 인간이었을 뿐이죠.
...그런데, 쓰러져 뼈와 장기만 남은 사제의 시체에서 위장만 꿈틀대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사제가 방패병을 통째로 주워먹었네요.
>>459 밤의 군주의 위용이 무색하게, 엘리는 궁상맞게 쪼그려앉아 위장을 가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엘리의 손톱이 워낙에 날카로워진 덕분에 그냥 ㆍ해도 잘 잘려나갑니다. 그렇게 위장을 열면, 손 하나가 위장 밖으로 나오더니 곧이어 소화액으로 범벅이 된 몸이 기어나옵니다. 갑옷 덕분에 아직 안 녹은 모양인데, 엘리는 배려 차원에서 좀 더럽긴 하지만 수로에 던집니다. 뭐, 똥물이 아무리 더러워야 염산통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엘리의 커다란 손을 잡습니다. 내려다보면, 그새 정신을 차린 에레야입니다. 에레야가 이리 작게 보이는 것에 신기해할 새도, 이단심문관 앞에서 이걸 보였다는 거에 뻘쭘해할 새도 없이...
"카르밀라?"
...엘리에 대고 전혀 모르는 사람 이름을 부르다가, 고개를 떨구더니 한숨을 쉽니다.
"아니, 그 녀석일 리가..."
떨리던 목소리와 그리운 표정을 그치고, 에레야는 엘리에게 조언합니다.
"나갈 때는 그 모습 말고 인간 비스무리한 모습으로 돌아와라. 애초에 나가지도 못할 거고, 입장 바꿔서 너가 성직자라면 그 모습 보면 무슨 생각 들지는 이해가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