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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사람의 이름과 얼굴이 스쳐지나갔지만, 언급하지는 않은 상태로 넘겼다. 그야 상대의 머릿속을 마이가 들여다 볼 수는 없으니. 대신 달콤한 메론소다의 빨대만 입에 물은 체 대답하고, 어린 아이처럼 빨대를 바라보며 압력차이에 의해 빨대 위아래로 움직이는 메론소다의 높이를 찬찬히 지켜보았다.
조용히 타케루의 불평을 듣고, 빨대 보기도 지겨워진 것인지 생강손질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큰 소리에 마이는 움찔 하고 놀라고야 말았다.
젠틀하다, 혹은 느긋하다는 평이 있지만 나같은 똥개들은 단번에 알아차렸지. 엄청나게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아닌 척 하면서 실컷 굴릴 생각이잖아. 주체 못할 성미에 얘기조차 못들은 사람이 있겠지. 그런 말에 대꾸도 못하고 실컷 화만 냈다.
“야야, 물티슈 있으니까 빨리 닦아. 그거 가만 놔두면 물든다?”
뭐야, 언제 흘렸어? 소다가 찔끔 흐르는 걸 보곤 혹시나 입고 있던 티에 묻었나 빨리 닦아내라고 한다. 짜증이 확 올라와서 그런지 손이 급해진 탓에 통 안에 가득 들어있는 생강을 뚝딱 해치워버렸다. 물기 잘 빠지라고 한번 탁탁 두드려주고 손을 훅 털어내며 주방을 나선다.
“아하아잇~ 오늘도 풀근이네. 이거 진짜 노동청에 고발해야하는거 아냐? 아무리 아부지 아들이라지만.”
기지개를 쭉 켜며 경박한 하이톤으로 쫑알쫑알 혼잣말 하듯이 말을 흘린다. 복학 후 타케루의 평균 수면시간은 대략 5시간 남짓. 밤새 돌아가는 가게를 지키고 돌아오면 벌써 학교 갈 시간이 된다. 그러니 학교 가면 퍼질러 잠만 자는게 일상이다. 손님이 없는 날이나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몇시간이라도 푹 잔다지만 오늘처럼 가게 문 닫을 때까지 일하는 날은 정말 답도 없다.
아픈데 쿡쿡 웃음소리를 내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서로의 피온의 차이를 느껴보려 했다. 하지만 같은 에어컨 바람을 쐰 사이라 그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하나요가 괜찮다는 말에야 눈을 떴다. 하나짱의 눈이 살짝 마주치자 미야마 마이는 눈을 감고 천천히 이마를 멀리 하려 한 것이다.
"응. 진정했어."
학교에서 배운 라디오체조 심호흡 자세까지 따라하며 몇 번 깊게 숨을 쉰 마이는 일어섰던 곳에 다시 앉아 주섬 주섬 어질러진 구급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거즈는 여기, 파스는 저기..
"하나짱 심심해서 그런 소리 내 본 거야?"
선풍기 앞에 앉아서 아/아/아- 하고 목소리가 끊어지는 소리를 내는 것은 재미 있으니까, 하나요도 그런 이유로 머리를 잡았던걸까.
쨍쨍한 한낮, 운동장 구석. 연록색 이파리가 파릇하니 빼곡히 올라온 나무들 틈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누가 봐도 인위적인 움직임 탓에 나는 소리. 가지 꺾이는 소리 따위가 같이 섞여 들리고. 그 틈새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꽃 필 시기는 한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분홍색 꽃송이 같은 것이,
...라고 생각했더니 웬 이상한 여자애가 커다란 나무가지 위에 드러눕듯 아슬아슬하게 몸을 걸치고 있다. 그 배 위에는 작은 고양이가 하나 제법 애타는 목소리로 야옹, 하고 두리번거리며 울고 있고. 가볍게 할퀸 자국이 팔다리에 고스란히 남아 조금 발갛게 부었다.
"....제엔장~..."
열정과 정의감에 불타 나무를 열심히 기어 올라와서 아기 고양이를 구하는 것까지는 딱 좋았다, 이거야. 그런데.. 큰일이 났다. 고양이도 저도 내려가지 못 하게 된 이 당황스런 상황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 와중에 누워서 나뭇잎 틈새로 조각조각 보이는 하늘이 꽤 보기 좋아서, 그냥 오늘은 여기서 자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는데,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지 아래로 늘어뜨린 다리만 달랑거린다.
집행부 명단에 이름이 들어갔단 소식에 ‘욘사마 닮은 국어쌤’에서 ‘털보 아저씨로’ 바로 강등. 느긋하게 다가오는 목소리에 ‘속 좋네!’ 라며 잔뜩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이름 올려봐야 뭘 어쩔 수 있는데? 전력을 다해서 땡땡이 쳐줄거라고. 그런 반항심리가 이글이글 눈빛으로 타오른다.
“이나리? 그 신사에서 모시는 신 말하는거냐? 잘 들어라 미야마 마이!! 인생은 자기 스스로 개척하는거야!! 그딴데 어슬렁거리면서 백날 합장해봐야 정신승리밖에 안되는거라고오오!!”
가뜩이나 성질 나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딴 거 믿지 말라고 와악 불을 내뿜듯이 데시벨을 높였다. 마치 아버지에게 털렸던 걸 재연하듯이. 그럼 팔이라도 다시 솟아나게 해달라고 소원 빌면 다시 운동이라도 할 수 있다는거냐,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한 줄 알아!? 다친 팔쪽으로 손가락을 확 치켜들었다가 뻐근한 느낌에 어깨를 돌린다.
“근데 그거 어떻게 비는거임? 세전함에 돈 넣어야돼?”
실컷 내뱉곤 화가 풀렸는지. 바로 순한 양처럼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목청껏 왁왁거렸지만 냄비처럼 들끓는 이 철부지에겐 고작 ‘소노’ 정도였다는걸. 이해심이 아주 깊은 사람이라야 알아차릴 수 있을거다.
더운 여름날은 오늘도 지속되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운동장을 카나타는 조용히 걷고 있었다. 별다른 목적이 있어서 걷는 것은 아니었고, 집행부 일을 가볍게 마친 후에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 애매해서 그냥 발길 닿는 방향으로 걷는 중이었다. 물론 고양이와 개를 좋아하긴 하지만, 정확히는 자신의 집에서 하는 카페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하루종일 고양이와 개를 돌보고 카페일만 할 순 없는 것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자신은 아르바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일을 돕는다고 해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용돈이 더 추가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적당히 조금만 더 이렇게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서 그는 조금 더 페이스를 빠르게 한 상태에서 나무가 있는 곳 근처까지 왔다. 그리고 이내 그의 귓가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크게 띄운 그는 가만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나무 위를 바라봤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으니, 나무 위에서 나는 소리가 아닐까라고 추측해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분홍빛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이 계절에 왠 벚꽃이 피었나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은 벚꽃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슬아슬하게 몸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기에 딱 좋았다. 꽤 놀랐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던 카나타는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
평소 내는 무덤덤한 목소리에 약간의 다급함과 긴장감이 녹아있었다. 그만큼 현 상황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이어 카나타는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