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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녀석들이- 하는 엔도 선생의 타박에 이 자리에서 정당한 반박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나가쿠모 미카즈키였다. 몇 년만에 고시엔 본선 진출티켓 확보라는 쾌거를 올린 야구부. 이대로 본선진출을 포기하고 동네 야구 좋아하는 아이들로 남는 것은 어떤가 했으나, 동네 야구 좋아하는 아이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은 동네의 야구 좋아하는 아이인 지금 그대로 고시엔 구장을 밟아보고 싶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야구부는 여름 특훈 중이었다.
오늘은 비록 야구부 훈련이 없는 날이긴 했으나, 훈련 계획 짜야 한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둘러댄다고 할 것도 없는 것이 거기에 시간투자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야구부 훈련에 조언을 해주는 조건으로 집행부 활동에 충실하라는 말을 한 통에, 미카즈키는 말없이 집행부 아이들의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삼삼오오 엔도 선생의 지시에 군말은 있어도 따르는 분위기가 되자, 미카즈키는 별달리 불만을 표하지 않고 기자재를 운반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면을 튼 이들과의 인사는, 눈인사 정도로 끝내(려고 하)고.
야구부 비품창고 정리에 일가견이 있는 미카즈키는 이 창고에서의 정리정돈도 수월하게 해냈고, 이젠 키타토라 씨가 맡긴 상자를 들고 짧은 오솔길을 거슬러 되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딱히 청춘같은 거 없는 귀찮은 작업과, 작업 이후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돌아가는 산책길 정도였다.
키타토라 씨가 부자연스럽게 단호한 말투로 적어도 두 사람이 함께 이동하라고 언질할 때에서야, 미카즈키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마운드 위에 올라서서 포수가 할 걱정까지 다 해오면서 단련된 촉이, 지금껏 전혀 반응한 적 없는 방향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왜인지 이 돌아가는 길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약간 다른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누군가 시끄럽다고 화내지 않은 것이 용하다 싶을 만큼 회의 내내 한 구석에서 연신 뽀시락거리던 소리가 뚝 끊겼다. 짧은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쁘게 일어나던, 딱 그 때였다. 헉, 인제 집에 가도 됩니까?!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마치 회의 내용은 전혀 듣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뭐, 거의 들은 내용이 없음은 진실이다. 뭔가를 결정한다고 여럿이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건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방학숙제 면제란 메리트를 얻었으니 누군가 일을 시키면 냅다 예이, 하고 받들어 몸으로 뛰는 수 밖에.
손가락 끝에 남아 있던 간장맛 센베의 희미한 짠맛을 낼름 혀로 핥고는, 의자 등받이에 걸어 놓았던 가방을 냉큼 챙겨 후다닥 일어났다. 아직 해도 쨍쨍하고, 냇가에 들러서 물장구라도 좀 칠까? 수고하셨십니데이ㅡ 흥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문을 나서려는데.
"예에?"
왐마야ㅡ 귀신맹키로 할 일이 생기노. 몰래 도망이라도 쳐 볼까 싶어 스으윽, 발소리를 죽이고 몇 걸음 내디뎠으나 어쩐지 엔도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돌아왔다. 아~ 집 가서 십령특집 방송 볼라캤는디. 누가 봐도 실망한 걸 알 만큼 얼굴이 구겨졌다. 우잇. 입술 비죽이며 내는 이상한 추임새.
"...야ㅡ 이 완전 보물창곤데여. 머 필요 없는거 찌끄만거 하나 가지가믄 안 댑니까?"
예? 가능할 리 없는 질문을 하며 이 쪽을 돌아보는 눈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짝반짝, 얼굴이 확 폈다. 오래된 창고! 보물! 보물찾기다! 아니, 일단 보물같은 건 없고 그냥 창고 정리 비슷한 거니까. 누군가 옆에서 츳코미를 걸어도 눈의 초롱거림이 사라질 기미는 전혀 없다. 딱 대라, 청소루키, 청소괴물, 청소의 권위자 우치야마 사쿠라 들어간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결이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아니면 청소하다 나온 무언가를 슥삭 할 생각 만만인 건지. 반팔 소매를 걷어붙이며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무것! 지 몸만한 상자 함 들어 보겠다고 벌써부터 시끌시끌 유난이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정리정돈도 슬슬 끝이 났다. 어라? 이상하다. 초반에 바쁘게 여기저기 쏘다니던 핑크색 머리가 영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어디로 갔는고 하면,
".......와~.... 한계다, 죽는디....."
이전의 초롱함은 찾아볼 수도 없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구석에 반쯤 눕듯 널브러진 소녀가 있다. 아무래도 초반에 지나치게 무거운 상자들을 가지고 낑낑댔던 게 체력 소진의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모두가 창고에서 나가고 나서야 느적느적 발을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가서는, 이제 집 가믄 됩니까~? 맥 없는 소리로 물어보는데. 뭐라고, 이 짐들을 또 옮겨야 한다고~? 우와~. 탄식에 가까운 추임새. 아, 거, 두 명이든 세 명이든 다 좋은데요, 그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실망하는 마이주의 맘이 너무 파아악 다가와버려서 넘... 넘귀엽다... 라는 생각을 하고말앗스... (마이주 벅벅벅쓰다듬기) 다들.. 금요일 밤을 불태우러 가신 걸까... 아님 피곤해서 일찍 주무시러 가신 걸까.. >:3... 11시까지만 있어보구 없으면 제가 찔러보도록 하겟스빈다
산책하던 카나타 오빠를 만난 모양이었습니다. 다행히 남에게서 이야기가 들려온 것에 신경쓰이는 쪽이었던 하나요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납득했습니다. 카나타 오빠든, 마이 쨩이든, 모여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쁘게 했을 리는 없다고 믿습니다. 그 신뢰는 방긋 웃는 미소로 현현합니다.
엉뚱하게 무엇인지 모를 생각을 하다가 에어컨에게 합장하는 마이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한 하나요. 푸후후, 웃고서 마이에게 묻습니다.
"마이 쨩, 무슨 생각 해?"
여차하면 나도 같이 할까- 똑같이 두 손을 모으고 몸을 기울여 마이 쨩의 시야에 듭니다.
"앗-차."
봐도 될까~?? 하지만, 마이 쨩이 도와달라고 한 상황이니 조금 봐도 되지 않을까요? 응응, 카렌 쨩의 편지를 본 일은 없으니까 아마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레 마이 쨩의 편지를 뒤에서 보기로 합니다. 싫어하면, 바로 물러서려 했으나 마이 쨩,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후후후.."
소개하는 부분까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풋풋한 두 친구의 자기소개에 자신도 풋풋함이 전염되는 기분으로 보고있었지만, '여자아이인 것이~' 부터는 어레렛?! 하는 표정이 됩니다.
situplay>1597049538>722 “앗, 아아.. 뭐야. 아니 그게 그거였다고? 왜 나만 몰랐지?”
‘방학 숙제’ 얘기에 눈이 번쩍 틔였다. 엔도 선생님이 이러쿵저러쿵 뭔가 얘기 했다고. 앞뒤는 싹 자르고 숙제 면제라는 얘기만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는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다는건데. 왜 아무도 나한테 말 안해줬지? 황당해서 헛웃음을 ‘허’ 흘려버렸다.
“그러니까 숙제 대신에 더 빡센거 시킨다는거 아냐. 아니!? 나 방학때 진짜 가게 더 바쁜데 내 이름은 언제 올린건데 그 털보 아저씨.”
아 갑자기 또 화악 올라오네? 이번건 진짜 스팀 올라서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귀찮은거 싫어서 학교도 조용히 다니는데 적어도 의사는 물어보고 이름 올려야 하는거 아니냐고!! 생강을 손질하는 손길이 더욱 거칠어졌다.
“이거 선 넘은거잖아!! 어이 미야마!! 맞냐 틀리냐!!”
신메뉴니 뭐니 벌써 잊어버리고 당장 일복 터질 상황에 미간에 핏줄이 쫘악 올라온 사백안 표정으로 ‘답은 정해졌으니 넌 대답만 해라.’ 같은 말을 묵직하게 내던졌다.
하나요의 물음에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대답하는 마이. 서로 이야기 해 본 사람이라면 친한 사람의 범주에 넣는 마이라지만, 다행히 카나타는 서로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것 이상의 교류가 있는 상대이다.
"카렌짱에게 쓸 답장 생각-"
옆으로 몸을 기울여오는 하나요를 보며 베시시 웃으며 대답을 하고는 펜을 테이블 위에 얹어둔다. 더 이상 쓸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인데,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부여잡는 하나요의 모습에 내심 놀라고야 말았다. 눈을 크게 뜨고 상대를 빤히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서서는 사무실 구석에 둔 구급상자를 가지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마이.
"하나짱 두통이야? 현기증? 목 말라서 그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구급통을 열며 이런 저런 약을 챙기다가 우르르 쏟아버리고는 하나요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얹어 체온이 높지는 않은지 확인하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