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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즈키의 팔에 입질을 하는 것은 쉬웠다.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아니면 방심한 건지 아니면 그냥 애가 이렇게 맹한 건지, 이번에도 미카즈키는 마시로가 자기 팔뚝에 입을 들이대건 말건 치료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꽈아악. 거즈를 자르던 미카즈키가 당혹감이 약간 섞인 하? 하는 표정으로 마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톰처럼 아오옷홋홋홋홋홋호까지는 안 바라더라도, 일반적인 사람 팔을 이 정도로 깨물었을 때 나오는 평균적인 리액션에 비해서 좀 무덤덤하다.
아무튼 거즈를 붙이려면 결국 거즈를 붙들고 있을 손과 반창고를 붙일 손 두 개가 필요하니, 미카즈키는 이거 놔- 하고 점잖게 마시로의 이마(안 다친 부분)에 꾹꾹이를 해야 했다.
그때 네 이름은 뭐야-? 하고 되물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때서야 미카는 기억해냈다. 자신이 미카─! 하고 소리쳤을 때 어떤 소리가 마시로의 귀를 막았었던 것인지.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그래, 건널목 알람음 소리였다. 차단기가 내려온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 미카는 자신의 이름을 소리쳤었던 거다. 그리고 나서, 네 이름은 뭐야-? 하고 물었지만, 그때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휘이잉, 하고 한 바탕 몰아닥치는 바람.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한 순간도 끊임없이 몰아치는 레일의 충격음. 뒤에 끝이 없어 보이는 MAERSK나 HUSQVANA라는 로고가 찍혀있는 화물차의 행렬. 아이들은 끝없이 멀어져가고. 미카는 열차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애들이 벌써 저만치 점처럼 보일 지경이 되자, 결국은 '내일 다시 만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에 몸을 돌려 아이들에게로 향했던 것이다.
그 내일이라는 녀석이 몇 년이나 지각해버린 것이 문제다. 아무튼, 무슨 뜻에서인지 자주 웃어야겠다 하고 권장해오는 마시로를- 아직 자신은 이름을 모르는 그 어엿하게 커서 재회한 까만 고양이를 바라보며, 미카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무심하게 대답한다.
"딱히 웃음을 참고 살지는 않는걸... 웃기지 않을 때 웃지도 않을 뿐이야."
하고 대답은 했지만,
"...확실히 웃는 게 오랜만이네."
미카는 수긍을 덧붙였다. "읍." 그리고 마시로의 꾹꾹이에 이번엔 좌우로 쪽 잡아땡겨졌다가, 원래 얼굴로 되돌아갔다. 자신의 뺨에 남은 자국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그제서야 미카는 마시로에게 응급처치를 해주고 생긴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마시로에게 이름을 알려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그때 예기치 못한 마시로의 돌발행동. 번트 대고 1루로 튀는 주자마냥 호다닥 도망가는 마시로를 보며, 미카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땅을 박차고, 거진 두 배는 되는 속도로 마시로를 추격해 비탈길을 올라가서는 마시로를 앞지르며 손을 붙잡았다. 발이 몇 번이나 미끄러지는 폼이 저러다가 또 다치겠다는 걱정이 든 탓이다. 미카는 후우 하며 숨을 고르고는, 뾰루퉁한 표정이 되어 마시로에게 톡 쏘았다.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녀석들이- 하는 엔도 선생의 타박에 이 자리에서 정당한 반박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나가쿠모 미카즈키였다. 몇 년만에 고시엔 본선 진출티켓 확보라는 쾌거를 올린 야구부. 이대로 본선진출을 포기하고 동네 야구 좋아하는 아이들로 남는 것은 어떤가 했으나, 동네 야구 좋아하는 아이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은 동네의 야구 좋아하는 아이인 지금 그대로 고시엔 구장을 밟아보고 싶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야구부는 여름 특훈 중이었다.
오늘은 비록 야구부 훈련이 없는 날이긴 했으나, 훈련 계획 짜야 한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둘러댄다고 할 것도 없는 것이 거기에 시간투자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야구부 훈련에 조언을 해주는 조건으로 집행부 활동에 충실하라는 말을 한 통에, 미카즈키는 말없이 집행부 아이들의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삼삼오오 엔도 선생의 지시에 군말은 있어도 따르는 분위기가 되자, 미카즈키는 별달리 불만을 표하지 않고 기자재를 운반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면을 튼 이들과의 인사는, 눈인사 정도로 끝내(려고 하)고.
야구부 비품창고 정리에 일가견이 있는 미카즈키는 이 창고에서의 정리정돈도 수월하게 해냈고, 이젠 키타토라 씨가 맡긴 상자를 들고 짧은 오솔길을 거슬러 되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딱히 청춘같은 거 없는 귀찮은 작업과, 작업 이후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돌아가는 산책길 정도였다.
키타토라 씨가 부자연스럽게 단호한 말투로 적어도 두 사람이 함께 이동하라고 언질할 때에서야, 미카즈키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마운드 위에 올라서서 포수가 할 걱정까지 다 해오면서 단련된 촉이, 지금껏 전혀 반응한 적 없는 방향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왜인지 이 돌아가는 길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약간 다른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누군가 시끄럽다고 화내지 않은 것이 용하다 싶을 만큼 회의 내내 한 구석에서 연신 뽀시락거리던 소리가 뚝 끊겼다. 짧은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쁘게 일어나던, 딱 그 때였다. 헉, 인제 집에 가도 됩니까?!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마치 회의 내용은 전혀 듣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뭐, 거의 들은 내용이 없음은 진실이다. 뭔가를 결정한다고 여럿이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건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방학숙제 면제란 메리트를 얻었으니 누군가 일을 시키면 냅다 예이, 하고 받들어 몸으로 뛰는 수 밖에.
손가락 끝에 남아 있던 간장맛 센베의 희미한 짠맛을 낼름 혀로 핥고는, 의자 등받이에 걸어 놓았던 가방을 냉큼 챙겨 후다닥 일어났다. 아직 해도 쨍쨍하고, 냇가에 들러서 물장구라도 좀 칠까? 수고하셨십니데이ㅡ 흥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문을 나서려는데.
"예에?"
왐마야ㅡ 귀신맹키로 할 일이 생기노. 몰래 도망이라도 쳐 볼까 싶어 스으윽, 발소리를 죽이고 몇 걸음 내디뎠으나 어쩐지 엔도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돌아왔다. 아~ 집 가서 십령특집 방송 볼라캤는디. 누가 봐도 실망한 걸 알 만큼 얼굴이 구겨졌다. 우잇. 입술 비죽이며 내는 이상한 추임새.
"...야ㅡ 이 완전 보물창곤데여. 머 필요 없는거 찌끄만거 하나 가지가믄 안 댑니까?"
예? 가능할 리 없는 질문을 하며 이 쪽을 돌아보는 눈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짝반짝, 얼굴이 확 폈다. 오래된 창고! 보물! 보물찾기다! 아니, 일단 보물같은 건 없고 그냥 창고 정리 비슷한 거니까. 누군가 옆에서 츳코미를 걸어도 눈의 초롱거림이 사라질 기미는 전혀 없다. 딱 대라, 청소루키, 청소괴물, 청소의 권위자 우치야마 사쿠라 들어간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결이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아니면 청소하다 나온 무언가를 슥삭 할 생각 만만인 건지. 반팔 소매를 걷어붙이며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무것! 지 몸만한 상자 함 들어 보겠다고 벌써부터 시끌시끌 유난이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정리정돈도 슬슬 끝이 났다. 어라? 이상하다. 초반에 바쁘게 여기저기 쏘다니던 핑크색 머리가 영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어디로 갔는고 하면,
".......와~.... 한계다, 죽는디....."
이전의 초롱함은 찾아볼 수도 없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구석에 반쯤 눕듯 널브러진 소녀가 있다. 아무래도 초반에 지나치게 무거운 상자들을 가지고 낑낑댔던 게 체력 소진의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모두가 창고에서 나가고 나서야 느적느적 발을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가서는, 이제 집 가믄 됩니까~? 맥 없는 소리로 물어보는데. 뭐라고, 이 짐들을 또 옮겨야 한다고~? 우와~. 탄식에 가까운 추임새. 아, 거, 두 명이든 세 명이든 다 좋은데요,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