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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 "잠깐만. 다시 돌려보자." "......외계인 손인가?" "저런 구위라면 저 구속으로 프로리그에서 활약하는 게 말이 되네. 우타자들이 진짜 싫어할 공이야." "그런데 저러면 제구가..." "저게 스트라이크야? 왜?" "심판들이 선수 구질에 따라 관대해지거나 엄해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저 선수는 좀 후하게 봐주네." "......좋은 공은 맞는데 이상해. 할아버지가 말하길 옆동네 리그는 기인들이 많다더니 맞는 말인 것 같아."
>>126 "번트? 저 사람 공에, 아니면 내 공에?" "딱히 별생각 없어. 번트도 전략인걸." "번트 잘 대서 1루로 나갔으면 거기서부턴 야수들을 믿어야지."
미카즈키가 지금까지 유난히 퉁명스레 굴어댔던 것은, 그것보다 더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발버둥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왠지 모를 위기심에서 나오는 거부감이 있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일방적으로 읽힌다는 기분이 얼핏 들었던 것이다. 스즈네는 읽으려 시도하고 있고, 이 고양이는 이미 유의미한 정보를 읽어낸 모양이다. 그에 반해서 자신은, 이렇게 막막하게까지 상대를 못 읽어낸 적이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마운드 위에서 타자 생각을 읽는 것은 아주 마르고 닳도록 숙련되어 있는 것이 그이지만, 야구선수로서 필드 위에서 야구선수를 상대하는 것 이외의 다른 심리는 딱히 모르기 때문이다. 뭘 원해서 나와 가까워지려는 거야. 모르겠어. 무서워. 어차피 당신도 날 떠날 텐데... 결국 우리 모두 혼자 죽지 않던가.
아, 바지, 엉망진창... 미카즈키는 고양이 털 범벅이 된 바지를 그제서야 발견했다. -나중에 털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미카는 스즈네를 마주했다.
오사카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미카즈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그때 미카즈키는 오해하고 말았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결국 상처로 귀결된다고. 사람으로서 다치면 안 될 부분까지 다쳐버릴 정도로 호되게 마음을 다친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관계라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 얻을 것이 있기에 성립되는 게 아니던가. 자신에게 다가온 이들은 모두 그들마다 미카즈키에게서 가장 맛있어보이는 부분만을 물어뜯고 사라져갔다.
"...그게 바라는 것의 전부인가요?"
그래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듯, 미카즈키가 기억하던 그 토키와라다운 상냥함으로 다가오는 스즈네에게 미카즈키가 가장 먼저 가진 감정은 경계심이었다. 그저 사람과 만나는 것이 좋기에 사람과 친해진다,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친애에 대한 개념 또한 미카즈키가 상처입은 부분의 하나였으니. 그리고 그 경계심은 아직 다 풀리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어요."
이해할 수 없어서, 믿을 수 없다- 아니 믿을 수 없다는 냉정한 표현보다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표현인 믿기지 않는다, 라는 표현이 미카즈키가 하고 있는 생각을 좀더 정확히 대변해주는 말이겠다. 손을 조금이라도 더 잡아주겠다는 말에, 미카즈키는 흔들리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문득 들어서 내려다본다. 주인의 얼굴만큼 새하얗고, 다른 이들보다 손가락이 더 긴데다, 흉한 굳은살로 뒤덮여 있으며, 손등과 손바닥에 근육과 혈관이 쩍쩍 갈라진 자국이 여실한 그것은 영장류의 손이라기보다 흉물스러운 절지류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바보라고 정곡 찔린 마시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검지로 한쪽 입꼬리를 벌려 뾰족한 송곳니를 보란듯이 자랑하더니 이내 이마의 상처를 치료해주고있는 미카즈키의 팔뚝을 깨물기 위해 여러차례 입질한다. 어떻게해서든 깨물어 부숴주마. 가 아니라 놀리지 말라는 위협 정도였으니 실제로 깨물 생각은 없었다. 시늉 정도지. 다만 그가 전혀 피하지 않는다면 마시로의 성격 상, 이왕 하얀 피부의 맛을 본 이상 여지 없이 세게 꽉 깨물었을 것이다. 바보마시로는 참지않긔.
초등학생 때 도쿄로 전학가고 내려오는 방학마다 연습 중인 야구부의 모습을 지나가며 가끔 구경하긴 했었으나 직접적인 접점은 없었다. 애초에 그 이후로 야구공이 약간 무서워져 너무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그래도 멀리서도 보이는 그 애의 웃는 얼굴이 무척 귀여웠던 것은 또렷하다. 거뭇거뭇한 소년들 사이 하얀 피부와 푸른 눈으로 혼자만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던 그 애의 청순함이 좋았는데. 굉장한 몸치인 본인과 다르게 제비같이 날렵하고 오차 없이 몸을 쓰던 것도. 그런데 그때부터 그냥 가련하고 예쁘장하게 생겼을 뿐인 남자애였었다는 거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커진 몸집으로 더 이상 헷갈릴 일은 분명 없을 테다.
“왕-.”
구겨진 미간으로 저를 불만스레 불렀으나 마시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능청스레 웃는 얼굴로 그의 볼을 붙잡고 주물주물 장난치더니 하찮은 강아지 소리를 멋대로 만든 미카즈키의 입모양에 맞춘다. 하얀 미카쨩이 왕왕.. 어라, 근데 웃네? 무정하게 바라 볼 때는 언제고 웃을 줄도 아네? 미카즈키의 웃음이 터지자 마시로의 눈이 동그래진다. 해로운데? 해롭다.
“너...... 자주 웃어야겠다.”
한참을 그 모습을 눈여겨 보던 마시로는 무심한 말투로 진지하게 설득한다. 이런 얼굴과 표정을 숨겨두고 사는 건 좀 불공평 한 것 같다. 남녀 가리지 않고 오해사고 싶지 않아 일부러 참는 게 아니라면. 소년의 이름을 처음 들은 소녀는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여전히 소년의 볼을 두 손으로 잡고 늘려 일직선의 입으로 주욱 무표정으로 만든 후에
“미카즈키.“
하고 이름을 불렀다. 곧이어 손가락으로 그의 웃는 입을 직접 만들어 내고서는 ‘미카.’ 덧붙였다. 체감 온도가 확연히 다른 두 표정에 큭큭 웃고 있을 때 즈음 이제 놓아달라고 하자 ‘싫어.’ 라고 했지만 그녀의 손은 이미 그의 볼을 떠난 후였다. 놓고나서 보니 하얀 눈밭 같았던 미카즈키의 볼에 불그스레 한 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조금 미안했었나? 아닐지도. 하여튼 웃었잖아.
“잡으면 알려줄게.”
이름을 알려줘? 나는 몇 년만에 넘어져가면서 어렵게 겨우 들었는데? 용서 못하지. 마시로는 제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벤치에서 튀어나가 가파른 비탈길 쪽으로 향해 뛰었다. 그야 땀도 좀 흘렸고 목이 마를 타이밍이었으니 마시로의 참을성에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돌아갈게 아니라, 곧장 시원한 포카리를 목구멍에 때려넣고 싶었다. 그러니까 위험하든 말든 시합이다! 비탈길은 비탈길이기에 급하게 올라간다면 위험 할 만 했으나 또 조심조심 올라간다면 못 올라 갈 경사도 아니었다. 하지만 말 안듣는 고양이 마시로는 그런 거 모르겠고 잡히지 않고 미카즈키보다 먼저 도착한다는 일념 하나로 빠르게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중간중간 발이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몸을 낮춰 간신히 중심을 잡으며.
물론 바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고3은 한가한 것은 아니지 않나요? 선생님. 이라는 말을 카나타는 애써 속으로 삼켰다. 물론 실제로 바쁜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듣자하니 신사 뒤편에 있는 창고의 기자재를 가지고 오면 되는 모양이었다. 대체 기자재가 얼마나 많길래 이렇게 우르르 가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은 집행부고 이런 잡일을 싫어하진 않았기에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본 적도 없는 작은 헛간에는 여러 물건들이 많았다. 여기에 보관하고 있었구나. 위치를 기억하려는 듯, 카나타는 가만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는 길은 확실하게 외웠으니, 주변의 특징적인 것 하나 정도만 기억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기에 그는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며 제법 큰 크기의 상자를 챙긴 그는 두 손으로 상자를 꽉 붙잡고 길을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는 와중 미라이의 '두 사람이 함께 움직여라'라는 지시가 나오자 그는 가만히 미라이를 바라봤다. 그냥 가도 상관없지 않나? 반달가슴곰이 나와도 곰 퇴치 스프레이를 뿌리면 어떻게든 될텐데. 하지만 굳이 반박하진 않으며 그는 다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 명에게 가자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미래에 도달하지 못하고 창고에 갇혀 문만 쾅쾅쾅 두들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