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uplay>1597049157>946@김서연
학기 초에는 서로 서로 안면도 익힐 겸 먼저 연락도 하던 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단톡방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거르기 일쑤였다.
요근래 내가 먼저 연락을 보낸 사람은
한 손으로 꼽고도 손가락이 남았다.
그랬던 톡에 새로운 대화창이 생겨났다.
부른 이는 김서연, 저지먼트 부원이었다.
그저 할 말이 있다는 이유로 부실에 와달라길래
간단히 답장으로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갈게요]>
무슨 용건일 지는, 예상이 되고 있었다.
이 사람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오래지 않아 부실에 도착하니
잘 준비된 다과상과 함께 서연이 있었다.
인사말 대신 고개를 까딱이며 들어가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아마 새봄표인 디저트와
까만 커피가 나름 신경 써서 준비한 티가 났다.
그 다과상과 서연을 번갈아 보다가
먹으란 권유가 들리자 쿠키에 손을 뻗었다.
포슬포슬 부드러운 버터 쿠키는 제법 잘 먹는 것 중 하나였다.
일부러 천천히 먹었는데도, 쿠키를 한 세 개쯤 먹었을 때에야
서연은 나를 부른 용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뭐, 예상한 내용이었다.
중학교 시절까지 조사한 건 예상 밖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않나 싶고.
할 말이 많아 보이길래 일부러 말을 아꼈다.
쿠키를 우물거리며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말,
속 시원하게 다 털어놓을 때까지 듣고만 있었다.
아, 물론 듣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마저 말 하란 듯 손짓을 하기도 했다.
기분 나쁘다던가, 화가 난 티는 전혀 없었다.
톡을 받은 순간부터 줄곧, 내 상태는 평온했다.
어느덧 접시에 담겨있던 쿠키가 움푹 줄어들고
서연의 말이 지극히 당연할 질문으로 마무리 되자
잠자코 손을 뻗어 케이크를 한 조각 집었다.
그래, 초콜릿 케이크 조각 하나를
그대로 손으로 집어들어와
입가로 가져가며 내 말을 시작했다.
"일단, 사과하실 거 없어요. 그런 사건과 소문이 들리면 진상이 어떤 건지 궁금해서 찾아볼 법 하다고 생각해요. 선조사 후보고이긴 한데, 자진해서 얘기를 해주니 뭐라고 할까,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존경스럽네요. 감탄스럽기도 하구요. 그 행동력이."
그제야 싱긋 웃어보이고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달콤한 크림과 빵의 조화가 정말 환상적이었다.
기분 좋게 케이크를 삼키곤,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보자. 질문을 몇 개 했었죠. 제일 먼저 인첨스타의 비공계에 대해서 아는지. 네, 알아요. 중학교 때 내게 환심을 사려던 어떤 멍청이가, 지랑 만나주면 이런 말 안 돌게 해주겠다면서 보여줬거든요. 웃기지 않나요? 그걸 보여줬다는 건 지도 그 계정을 팔로우 했다는 건데, 그 안에서 그들과 똑같이 나를 씹었다는 건데- 만나주면 거기를 조용하게 만들어주겠다? 계정주와 팔로워 전부 죽이기라도 할 셈이었을까요? 거짓말이겠지만."
앞서 서연이 보냈던 녹취 파일을 잠깐 틀자
양아름의 목소리가 들리길래, 바로 껐다.
"정말 철두철미하게 증거들을 모으긴 했지만, 이런 대답을 하게 되서 미안하게 됐어요. 선배. 나는 학폭위도 고소도, 하물며 복수도 할 생각이 없어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거든요. 분명 몇 년을 시달렸고 앞으로도 시달릴 거고, 이제부터는 더한 일도 당할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해도, 복수심이라던가 억울하다던가,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아요. 그래서 이번 사건도 선처로 넘어간 거구요."
후후, 작게 웃고 케이크를 또 한 입.
이럴 때 당분은 참 좋은 성분이었다.
그저 평범한 다과회를 하듯 계속 말했다.
"난 단 한 순간도 참은 적이 없어요. 참을 것이 없었거든요. 그 시절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더라. 어쩌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살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말 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주변과 통하질 않아서. 걔들이 나 말고도 다른 타깃을 잡고 있다면 나 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겠네요. 그러면 그 부분을 찾아서 그 부분으로 걔들을, 음, 단속해 주면 좋겠네요. 내 일은 아무래도 좋으니까요."
먹고 있는 케이크와 달리 내 말과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서연에게 과연 내 말들이 어떻게 들릴까 궁금했다.
아마 평생 알 수 없겠지만.
"저지먼트에서 의무를 다하고 있는 건 내가 그러기 위해 여기 있기 때문이에요. 저지먼트 활동을 하기 위해 저지먼트에 들어왔으니, 당연한 일이잖아요? 당연한 일에 대해 역으로 의무를 받을 이유는 없다고 봐요. 아, 물론 선배가 보고서를 올리든 어딘가에 이 사건을 공론화 하든, 선배가 손수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거니 자유롭게 해주세요. 난 또, 조사부터 마음대로 해놓고 뭘 그런 걸 묻나 했네요."
손 안에서 점점 작아지며 뭉그러지는 케이크 조각을
조심조심 입 안에 밀어넣고 씹었다.
혀로 누르기만 해도 무너지는 그 잔해를
꿀꺽, 삼켰다.
손에 남은 크림 덩어리를 혀끝으로 살짝 핥곤 말했다.
"다음은 뭐더라, 아, 건강 문제. 원래 체질적으로 약했고 후유증이 꽤 남긴 했는데, 내 능력이랑 약만 잘 먹으면 사는데 지장 없대요. 기술이 더 발전하면 이 이상의 치료도 가능해진다니 그 때까지 살아만 있으면 되겠죠. 아마. 그리고 다음 질문은-"
스트레인지 관련이라.
흠, 하고 숨을 한 번 고르고, 대답을 이었다.
"죽고 싶어서, 정확히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서, 그럴 만한 곳을 찾아다녔죠. 이 도시에서 스트레인지만큼 그러기 좋은 장소도 달리 없으니까요."
후후후!
무슨 농담이라도 한 듯 웃었다.
크림의 유분이 번들거리는 손을 티슈로 닦기 시작했다.
"선배, 나는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도 온전치 못 한 인간이에요. 딱히 그런 일들을 겪어서가 아니에요. 태어나면서부터거나 혹은 아직 자아도 의지도 없는 시절에- 머리인지 마음인지 혹은 둘 다인지, 망가뜨려졌고, 그래서 어딘가 좀 많이 어긋나 있어요. 내가 그런 일을 겪는 건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니 죽으면 된다고 생각한게 예시죠. 거기에 아무런 희노애락도 없어요. 내겐 그게 보통이자 이성적인 판단이거든요."
다 쓴 티슈를 뭉쳐 부실 쓰레기통으로 휙 던져넣었다.
"그리고 소문이란 건 말이죠, 한 번 퍼진 이상, 거둘 수도 자를 수도 없는 거에요. 더는 내 귀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혀 아니죠. 갓 뿌려졌을 때면 모를까, 이미 4학구까지도 뻗친 소문을 무슨 수로 거둘 수 있겠어요."
가볍게 말하며 표정 또한 가볍게 미소지었다.
커피를 마셔 입가심을 하곤, 말을 조금 덧붙였다.
"별 거 아닌 개인적인 일을 이렇게나 파헤치고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 준 것은 고마워요. 하지만 그건 확실히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 일에 대해 수습이나 대책 같은 건 바라지 않아요. 보고서를 올려 대책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건 저지먼트나 선배의 자유지만, 조금 전 선배가 말했듯이, 선배가 원하고 저지먼트가 원했기 때문에 했을 뿐인 거에요. 하지 말라곤 안 해요. 단지 '나를 위해서' 라곤 말도, 생각도 하지 말아주세요. 아, 내 일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의 일어날 지도 모를 사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거라면 오케이네요. 바로 바로 대입하기 쉬운 사례가 있으면 대안과 방법을 찾기도 쉬우니까요."
그리고- 또 할 말이 남았나.
잠시 생각해보고, 없는 것 같아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대답은 다 한 것 같은데, 더 할 말 없으면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서연을 올곧게 마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