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situplay>1597049086>997 ㅋㅋㅋ 양아름 뜻밖의 평가를 받네 설정주로서는 악역으로 만든 모브가 되려 동정받으니 기분이 좀 묘하다 양아름 관련으로는 그 정도면 되지? 그 나중에 서연이 중학교 찾아가서 사이코메트리 한댔잖아 장소를 정확히 짚어서 하는 걸 추천해 막연하게 학교 곳곳 말고 어느 학년의 교실, 복도, 화장실 등등
>>4 혜우주 네~~ 말씀해 주신 거 조합해서 밤에 반응이랑 훈련 정리해 볼게요!! 귀띔해 주신 대로 장소도 정확히 짚는 방향으로 해 보겠습니다~~>< 악행은 악행이지만 측은한 구석이 없지는 않으니요👀👀👀 측은한 구석이 있다고 해서 그 행각들이 악행이 아니게 될 수는 없는 거랑 마찬가지랄까요^c^;;;; 암튼 감사해요오오오 ><
과거에 정하가 은우에게 메트로폴리스 관련 보고서 올렸을 때도 '지금 하는 일에 손 떼고 여기에 더 깊이 파고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에어버스터조차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 메트로폴리스고, 은우도 태오에게 들은 게 있어서 거기가 나리가 주축인 암부의 돈세탁 장소인걸 알아. 동시에 메트로폴리스는 위키에 나와있듯 '여러 위험한 스킬아웃과 상호 공존관계를 맺고있다' 라서, 도박장엔 질 나쁜 스킬아웃들이 득시글하지. 신호등에 사람 매단 블랙 크로우와 같은 위험도의 녀석들이야.😒
그런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에 학생이 드나들고, 저지먼트가 계속 드나들면 메트로폴리스 측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경우에 따라선 '에어버스터' 당해서 메폴과 백서휘가 서사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보거든, 나는.🤔
그리고 아마 서연이가 찾아가서 만난다 한들 나리 쪽에서는
"당돌한 제안이긴 하다마는 에어버스터가 그 애 부모니? 하지 말라고 주변에서 말렸고 나 또한 마지막 기회라 했단다. 하지만 스트레인지로 온 것도 그 아이, 하물며 본인이 직접 서명까지 하는 내부 대출 시스템으로 3억을 당겨 쓴 것도 그 아이. 미안하지만 학생, 저지먼트 일을 하고자 한다지만 모순적이구나. 지금 밑에서 도박에 흥청망청 인생 쏟아붓는 스킬아웃은 같은 미성년자라도 스킬아웃이라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하면서 녹취록 들려줄 거야
- 자, 지금부터 녹음 시작할 거란다. 마지막 기회야, 학생. 더 말하지 않아. 지금이라도 아르바이트로 갚으면 학생이 갚을 수 있는 한도에서 변제해줄 수 있어. - 아뇨, 할게요!!! 할 수 있어요, 딱 한 판이잖아요!! - 나는 분명 말렸어, 학생. (이후 패 섞는 소리) (패 내리치는 소리와 홍단, 고도리, 비삼광 등의 고스톱 용어.)
이런 녹취록. 그리고 녹취록 끄면서 눈 슬쩍 드러내고는
"여기는 스트레인지다. 다시는 내게 이런 양심있는 말 들리지 않게 하렴, 학생. 아무리 에어버스터가 여기를 박살낸들 이 자리에서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거든……. 목숨 귀히 여겨야지."
하더니 반응 보고 껄껄 웃으면서 초콜릿 가득 담긴 상자 밀어주지 않을까~
"농담이다 농담! 요즘 아이들은 놀려먹는 게 재밌어. 자, 먹으렴. 아저씨가 특히 좋아하는 건데 속에 커피가 좀 들어있어서. 카페인 민감하면 다른 걸 주마. 뭐, 이미 빚 변제해달란 요청이 들어왔거든." "성인까지 꾸준히 주 4일, 5시간씩 주휴수당 제외한 아르바이트 해야만 갚을 정도로 변제해줬지! 본인 잘못도 있다며 사정사정을 하기도 했고, 나도 에어버스터 얼굴 두 번은 보기 싫었으니 말이다. 눈빛도 살벌하거니와 젊은 애가 왜 인생이 그렇게 꼬였다니?"
>>53 태오주 으와와아 @ㅁ@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풀어 주실 줄은 몰랐는데 감사해요 >< 이전에 메폴 관련 여러 일이 있었네요 👀👀👀 저런 얘기 들으면 스트레인지 얼씬도 못하고 살던 서연이는 이래저래 충공깽이겠어요 나리는 역시 무섭고(호달달) 이 참에 양아름이 도박은 백해무익하다는 걸 배울 수 있기나 바래야겠습니다...(먼눈)(옆눈)
보호자 면담은 내담자 상담이 끝난 후 이루어진다. 정인은 느릿하게 선경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리라를 응시하다가 뒤이어 사무실 안으로 걸음했다. 따스한 햇살이 드는 방 안, 같지만 다른 백의를 걸치는 나이 든 여성이 그를 반긴다.
"어서 오세요, 정인 연구원님~ 전화로만 종종 말씀 나눴지 이렇게 제대로 만나뵙는 건 처음이네요." "안녕하십니까." "네, 앉으세요. 차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금방 가 봐야 해서요."
부드럽게 웃어보인 선경은 이내 허리를 바로 세우고 정인을 마주보았다.
"네. 그럼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연구원님께서 리라 학생에 대해 가장 궁금한 건 무엇일까요?" "아뇨... 전 선생님께 말씀 드릴 게 있어서 온 겁니다." "어머, 그런가요? 어떤..." "이리라 학생이 얘기하지 않았나 봅니다. 상담소를 바꾸기로 했거든요." "아~"
연신 같은 표정을 고수하는 건 피차 마찬가지지만 정인은 변함없이 웃고 있는 저 얼굴에서 기묘함을 느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온기 가득찬 방 안이 못내 껄끄럽다.
"그 이야기는 들었어요. 바꾸고 싶지 않다는 말도 들었고요. 실례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상담소를 변경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상담 받는 장소와 약 처방을 받는 장소가 나뉘어져 있는 건 학생의 시간 관리에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네, 그렇군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나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리라 학생은 안 그래도 참여하는 활동이 많아서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니까요." "그렇군요~ 하지만 리라 학생은 비효율을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에서 상담받고 싶다는 입장이던데." "그건 학생이 정하는 게 아닙니다."
침묵.
"정인 연구원님. 상담을 받는 건 학생이에요. 그리고 센터는 내담자의 의견을 가장 최우선으로 둡니다." "괜찮습니다. 마지막 상담일에는 자발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러 올 테니까요."
또다시 침묵. 그러나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말이 이어졌다.
"리라 학생 말에 따르면, 정인 연구원님과 저희 센터의 선생님 중 한 분이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상당히 갑작스러운 말이군요. 이 일과는 무관합니다. 그렇게까지 큰 문제도 아니고요." "아뇨. 큰 문제이지 않나요. 얼마 전 두 분이 대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답니다."
탁자 아래로 숨겨진 정인의 손끝이 꿈틀거린다. 밝은 갈색 눈동자는 그처럼 자연스러운, 커리큘럼을 받지 않았음이 명백한 색깔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불쾌하다. 하여간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마음에 들지 않는 작자. 면대면으로 마주앉아 대화하면 아주 약간이라도 인상이 달라질까 싶었거늘, 대단한 착각이었다.
"저희 센터에서도 시즈 연구소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어요. 그곳이 얼마나 잔혹한 곳이었는지도, 시작과 끝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그걸 그쪽이 어떻게." "정인 연구원님이 그곳의 가르침을 착실히 따르고자 하는 분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봐요." "하지만 선 아녜스 아동 청소년 복지 센터는 인첨공에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에요. 모든 센터 소속 인원들은 아이들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존중하고, 이 어려운 도시에서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우려고 노력한답니다."
"그래서 저는 리라 학생의 의견을 되도록 존중해 줄 거고, 정인 연구원님의 일부 방식에도 동의할 수 없어요. 예전 약물 커리큘럼 때 그랬듯이요." "내 방식이 뭐가 어쨌다고, 그보다 다 알면서 엄시현을 고용했다는 겁니까? 그 인간도 나와 똑같은— 아니, 더한 인간인데요. 그걸 전부 알면서 아동복지를 표방하다니 너무 위선적인 것 아닙니까?"
위선이라. 선경은 정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 마신 종이컵을 거둬들여 책상 아래의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반성 없이 악행을 계승하는 사람과 위선일지언정 선행하고 있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당장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무례하군요. 당신은 이쪽 사람들이 하는 일을 마냥 악행으로만 보는 겁니까?" "아뇨. 연구원 또한 숭고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학생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커리큘럼은 악행입니다."
더 들을 것도 없다. 정인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번 통화 때 커리큘럼은 전적으로 연구원의 관할이라고 말했던 건 선경 선생님 본인이십니다. 그리고 커리큘럼을 떠나서 이리라 학생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인첨공 내부에서 법적 보호자 역할을 공식적으로 맡는 건 담당 연구원이고요. 여기에 한낱 외부인 상담사가 끼어들 구석은 없습니다." "알아요. 하지만 정인 연구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연구원님에게는 연구원님만의 지향점이, 저에게는 저만의 지향점이 있으니까요. 제가 지향하는 세상은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랍니다."
그리고 제 지향점은 곧 센터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어요. 우리는 그것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니까요. 가만히 읊조린 선경은 더 이상 눈높이가 맞지 않는 정인의 시선을 따라가며 미소짓는다.
"보호자로서 담당 학생을 살피고 보호해주세요.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통을 해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한낱 외부인 상담사는 끼어들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이윽고 정인이 사무실을 나가자 선경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상담 차트를 두드렸다.
'센터' 는 정황이 보다 명확해야만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부디 그럴 만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귀엽고 얌전한 이쁜이 담당인게 뭐 그렇게 어렵대- 쭌- 엄살이 너무 심하당-" "네가 한 번 겪어보면 다신 그 말 못 한다. 내 전재산 다 걸고 장담해." "또 또- 요 엄살쟁이! 하여간 못됐다니까!" "두고 보던가. 내가 정말 엄살인지, 현실은 더한지."
유준과 그런 대화를 나눴던게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정말로 그 말을 체감하는 경험을 이리 빠르게 하게 될 줄은 천하의 이 진도, 감히 예상하지 못 했다.
이 정신 나간 인첨공에서 별별 사람을 다 겪고 온갖 일을 저지르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바닥 어딘가에서 그런 일이, 그리고 이런 사람이 있을 줄은...
고작해야 열일곱 소녀가.
목화고등학교에서 꽤나 논란이 될 법한 일이 일어났다고 진은 개인적인 인맥을 통해 전해들었다.
두 여학생이 서로 치고 받았다는, 아니, 한 명이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계단에서 낙하까지 했다는 그 광경을 구경하던 학생들이 고스란히 보게 되는 충격적인 전개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일의 주체 중 한 명이 현재 진이 근무하는 연구소 소속이며 진이 일의 관할로 담당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에- 또 귀찮게 되겠네-"
그 연락을 받은 진은 별 생각이 없었다.
자극과 스트레스에 예민한 애니까 또 한동안 컨디션 챙겨주는 것에 신경써야겠구나- 정도였다. 그러니 오늘 연구소에 온다면 일단 맛있는 거 먹이고 드라이브로 기분 전환이라도 시켜줄까 하고 있었는데.
"어? 진짜?" "그럼 가짜겠냐."
오늘 그 애가 안 온다고, 유준이 말했다.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도랬다. 등하교도 알아서 할 테니 안 와도 된다 했다. 거짓말 치지 말라고 했지만, 유준은 내가 왜 시간낭비 하겠나며 딱 잘랐다.
"흠- 그럼 나 뭐해?" "퇴근해. 내일은 오지 말고." "오옥케- 외로우면 연락해용 준쨩-" "X랄 그만 하고 가라, 좀."
뜻밖의 휴일을 얻은 진은 다음날까지도 별 생각 없이 본업에 집중했다. 직장동료 A와 B와 함께 새로운 영상 작업을 하고, 스튜디오에 쌓인 잡동사니를 정리하는 목적으로 가지고 놀고, 쓸데없는 물건들을 새롭게 쇼핑해서 기껏 비운 자리를 채우고...
"진진, 제발 청소를 하던지 정리를 하던지 하나만 해." "응- 나중에 청소- 악!" "제발 나잇값 좀 하자. 이것아."
간만에 직장동료들과 노는 시간도 가지며 평화로운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점심시간 쯤이었다.
"느엥?"
<[진 씨] <[이따 저녁에 시간 있어요? 4학구에 가고 싶은데]
그 애한테서 먼저 톡이 왔다. 진이 기억하기로 처음이었다. 항상 진이 먼저 스팸급으로 보내야 사무적인 단답 몇 개 받는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하루 안 본 사이, 선톡이 오고, 심지어 말투도 제법 평범했다. 진은 이게 무슨 일이냐고 생각하며 답장을 보냈다.
[시간 완전 차고 넘치지!]> [내 시간은 언제나 우리 이쁜이 거>.0]> <[그럼 이따 수업 끝날 시간에 맞춰서 정문으로 와주세요] <[4학구 미술관이랑 쇼핑 좀 하러 갈 거에요] <[같이 가요] [오키★도키]> [이따 봥 이쁜아ㅏㅏㅏㅏ!!!!!!!!!!!!!!!!!!!!!!!]> <[ㅋㅋㅋㅋ 네]
"와 머임? 이게 머임?"
그 이쁜이가 쇼핑을 하고 같이 가잔 소리를 하고 심지어 ㅋㅋㅋ까지 쓴다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진의 짐작에 걸리는 일은 최근의 그 일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애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조금 더 조사해 보기로 했다.
"뇨로롱-"
오랜만에 진의 고오급 인맥 찬스를 쓸 때가 왔다. 개인 컴과 태블릿과 폰까지 연달아 늘어놓은 진이 손을 바쁘게 놀렸다. 인튜브부터 시작해 온갖 플랫폼들을 들락거리며 목화고 폭행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수집하다보니 그 사건 말고도 요즘 자잘하게 일이 많았다. 아무래도 리버티니 뭐니 사회적으로 시끄럽기 때문인 듯 했다. 그러니 그 애의 사건도 그 연장선이겠거니 했는데 그랬는데.
"...이게, 지금..."
일의 진상과 그 뒤에 깔린 그늘을 알아버린 진은 차라리 모르는게 나았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정보를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신 차려보니 당장 준비하고 나가야만 했다.
처음으로, 못 가겠다 연락할까 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연락으로... 뭔가가 들킬 것 같았다. 그래서 급하게 준비를 하고 차를 몰아 목화고로 출발했다. 가는 내내 어떻게든 표정 관리를 해보는게 고작이었다.
어찌저찌 목화고 정문 앞에 도착하니 이제 막 종례가 끝났는지 학생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었다. 늦은 건 아닌 듯 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차에서 내려 문에 기댄 채 나오는 학생들을 구경했다.
"음- 이쁘다 이뻐- 풋풋해-"
한창 파릇한 고등학생들을 보며 어느새 심란함을 잊은 진은 저멀리 그 애- 천혜우가 나오자 반갑게 다가갔다. 그 애가 교문을 넘기 무섭게 달려가서 끌어안고 호들갑스럽게 반겼다.
"이쁜아-! 오구구 보고싶었엉- 하루 안 봤는데 더 이뻐졌네에!"
주변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하는 건 진의 종특이었지만-
"킥킥... 저 봐..." "진짜인가 봐..."
어쩐지, 귀가 간지러웠다. 그 찝찝함의 출처를 찾기 전에 끌어안긴 그 애가 반응했다.
"갑자기 불러서 죄송해요. 진 씨. 오늘 바쁜 일 있었던 거 아니죠?" "응? 응? 아냐 아냐! 이쁜이가 언제 불러줄까 하고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지용?" "그랬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갈까요?" "옥케- 에스콧 해드리겠습니당 아가씨-" "프흐흐, 네에 네에."
진은 처음 보는 그 애의 웃는 얼굴에 잠시 눈을 끔뻑였다. 어째서인지, 잊었던 심란함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 것 같아 더 느껴지기 전에 그 애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 손수 조수석 문을 열어 그 애를 먼저 태우고 운전석에 탄 진은 네비를 4학구 미술관으로 지정하며 말했다.
"어디 보자- 미술관 갔다가 쇼핑? 저기 중심가로 갈 거지?" "아, 아뇨. 오늘은 4학구 쇼핑 센터에 가려구요." "응? 굳이? 아니다, 굳이는 아닌가? 그런데 왜?" "찾는 물건이 거기 있을 거 같아서요."
진은 대화를 이으며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시켰다. 부드럽게 도로를 따라 주행하는 차 위로 오후의 햇살이 참 밝기도 했다.
"흐흥-뭐 찾는데엥? 누구 줄 선물이라두?" "어라, 어떻게 알았어요? 신세 진 사람에게 줄 것을 좀 찾고 있어요. 받을지는 모르지만." "에이! 우리 이쁜이가 주는 건데 당연히 받지! 누구야 누구 이쁜이 선물 안 받겠다는게! 말만 해- 내가 그냥 확!" "프흐, 앞 보고 운전에 집중이나 하세요. 안전운전 안 한다고 선생님한테 일러요?" "게엑 그건 안 돼- 그러면 월급 깎여-" "그러면 처신 잘 하시라구요- 어디 보자, 지금 제한 속도 살짝 넘은 거 같은데?" "악! 아님다! 시정하겠슴다!"
처음으로 그 애와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4학구로 향했다. 시간이 너무 늦진 않을까 싶었지만 미술관에 도착하니 제법 여유로웠다.
차를 주차하고, 그 애와 같이 내린 진은 미술관도 함께 들어갔다. 그 애는 들어가면서도 얘기를 했는데, 오늘 오자고 한 이유가 레이브의 신작을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왜 공개된 첫 날 오지 않았냐고 되묻자 그 때는 사람이 많지 않냐며, 느긋하게 보고 싶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흐음- 나야 이쁜이랑 오니까 더 좋지만?" "진짜 말 하나는 잘 한다니까요. 진 씨는."
미술관에서의 동선은 온전히 그 애의 흐름을 따라갔다. 그 애는 거의 레이브의 작품만 보러다녀서, 지루한 동선은 아니었다. 화폭에 담긴 작품들부터 하나하나 찬찬히 감상하고 다음은 안드로이드 작품으로 향했다.
레이브의 안드로이드는 크게 인공지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었다. 그 중 없는 쪽인 작품들을 순차적으로 돌아보는데, 왠일로 [Mare]를 가볍게 지나치더니 [상봉과 상실] 앞에 조금 머물렀다. 그 애의 시선은 잘린 머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뭔가 생각하는게 분명한 시선이었지만, 감상을 방해하기 싫어 묻지 않았다. 머무른 시간은 길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다른 안드로이드 작품에게 갔다.
"안녕. 오랜만이네."
다음은 보통 인공지능 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그 애는 감정 에디션 쪽으로 먼저 갔다. 가서 하나 하나 인사를 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진이 보기엔 전혀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작품도 있었지만 그 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이기도 하며 감상을 이어갔다.
그 행동은 보통 인공지능 쪽으로 가서도 똑같았다. 감정들에게 했듯 인사로 시작한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작품 하나 하나를 사람 대하듯 했다.
전에도 같이 온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각자 감상하느라 몰랐던 모습이었다. 연주를 하는 사람이니 그 애도 나름 예술가의 기질이 있나보다 했다.
"안녕, 신데렐라. 오늘도 아름답네."
그 애는 신데렐라에겐 조금 다른 인사를 건네며 대화했다. 남성형에게 아름답다는 표현은 좀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뭐, 감상이란 건 각자 다른 거니까, 그러려니 했다. 역시나 보통 사람 대하듯 평범하게 대화하는 걸 지켜보다가 그 다음에서야 레이브의 신작을 보러 갔다.
"그니까- 이름이 뭐랬드라?" "순수요." "아 맞당-"
[순수], 아이의 순수함을 표현한 듯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그 작품은 웃는 얼굴로 머리를 열어 내부를 보여주는 행동으로 엄청난 화제가 됐었다. 마침 그 타이밍이었는지 진과 그 애가 작품 앞으로 가자 머리 속 새빨간 근육을 드러낸 [순수]가 이 쪽을 보았다.
진은 그 모습이 아무래도 기괴해서 흠칫거렸지만 그 애는 유아형 안드로이드의 시선에 맞추듯 경계선 바깥에 수그려 앉더니 웃으며, 심지어 그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며 안드로이드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넌 처음 보는 아이구나. 처음이니까- 이름을 선물해도 될까? 순수니까, 음, 이노스, 어때? 마음에 드니?"
한 발짝 떨어져서 그 애와 작품의 대화를 지켜보던 진은 어느새 미술관의 폐장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말했다.
"이쁜아- 오늘은 그만 놀고 가야해용- 우리 친구들 슬슬 잘 시간이랭-" "벌써 시간이 그래요? 아쉽네. 다음에 보자. 이노스야."
그렇게 [순수]의 감상을 끝으로 폐장 준비를 하는 미술관에서 퇴장했다. 만족스러운 감상을 했는지 표정이 좋은 그 애를 보고 진은 아까와 같은 기분이 들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그런 진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발 앞서 가던 그 애가 빙글 돌아섰다.
"가볍게 쇼핑하고 저녁 먹으면 딱이겠네요. 얼른 가요." "우리 이쁜이 계획이 아주 철저한 걸? 쪼아! 여기서 제일 큰 쇼핑센터 가즈아-!" "와아 가자-"
또다시 처음으로 그 애의 리액션을 받으며 4학구에서 제일 큰 쇼핑센터로 갔다. 지하 2층에 지상 10층이라는, 층수도 층수지만 그 면적도 어마어마해서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놀 수도 있는 장소였다.
"쇼핑하구- 꼭대기층 가자- 거기 파스타 끝내주게 하는 가게 있당!" "그래요? 기대되네요. 쇼핑이 잘 끝나면 밥맛도 좋겠죠." "당연한 소릴 하네 우리 이쁜이! 여기라면 찾는 거 무조건 있어! 없으면 내가 만든다!" "아하하, 진 씨는 정말 못 당한다니까요."
틈틈히 대화를 하며 에스컬레이터로 5층에 향했다. 5층은 온갖 편집샾과 캐주얼한 악세사리 전문점들이 모여 있었다. 입점한 가게 특성상, 학생들이 가장 많이 가는 층이기도 했다. 그 애도 역시 학생은 학생이구나 하며 따라갔다.
"근데 근데- 이쁜이가 찾는 건 모에요옹?" "음- 계절에 맞춘, 간단한 소품?" "소품? 향초 같은 거?" "아, 그것도 좋겠네요. 하나 넣을까. 진 씨도 하나 사줄까요?" "엣, 나도 선물이야? 꺄악 우리 이쁜이 최고-"
진열된 상품을 보며 얘기를 하던 중, 진이 또 호들갑을 떨며 그 애를 껴안았다. 그 애는 싫지 않은 듯 웃으면서 무거워요- 하고 말했다. 거부하지 않으니 내친김에 볼까지 부비며 조금 과하다시피 그러고 있는데.
"...야야, 저기..." "뭐야, 진짜였어?" "X발 역겨워..."
학교 정문에서 느꼈던 그 찝찝함이 다시 느껴졌다. 진은 곧장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상한 수군거림은 그새 사라졌다. 그 애가 왜 그러냐는 얼굴로 보길래 태연히 웃으며 장난을 쳤다.
"기특한 이쁜이는 양갈래 형에 처한다!" "그게 뭐에요-푸흐흐."
그렇게, 지나간 순간일 줄 알았다. 정문에서처럼 그저 지나가는 낌새일 줄 알았으나...
그 뒤로 어느 매장을 들어가도, 뭘 보고 있어도,
"...미XX..." "이제 하다하다..." "여긴 왜 옴? X 같네..." "야야, 찍어, 찍어서 올려..."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보내지는 무형의 악의는 정확하게, 그 애에게 향해 있었다.
그걸 옆에서 간접적으로 느끼던 진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어떤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졌다. 생각의 갈무리를 할 수 없게 되자 자연스럽게 말도 줄었다. 자연스럽게 진과 그 애의 쇼핑은 묵언으로 진행되었다.
"...씨, 진 씨." "...에, 어, 어?! 어어 왜 그래 이쁜아?!" "저 살 거 다 샀어요. 이제 저녁 먹으러 가요." "그래? 으응 그러자- 데이트의 마무리는 역시 맛있는 저녁식사 아니겠어-"
말 뿐만 아니라 잠시 정신도 나가 있었는지 진은 그 애가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제정신 잡고 보니, 품에 쇼핑백을 고이 안은 그 애가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저녁을 얘기하는 그 애를 잠시 바라보다가 가자 가자 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여기 엘베가 야경 보기 딱이다? 특히 꼭대기 층이 장관이야-" "그럼 안 볼 수가 없죠. 아, 왔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마침 빈 칸이 도착해 열렸다. 또 마침, 타는 사람이 진과 그 애 뿐이라 올라가는 동안 느긋하게 바깥 감상을 할 수 있을 듯 했다.
"캬- 이거지 이거지-" "와-"
예상대로 중간에 멈춤 없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환히 보이는 바깥을 감상하며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올라가기만 하는 줄 알았다. 진은 그랬다.
"진 씨." "응응? 왜 불렁 이쁜아?" "할 말 있지 않아요? 나한테?" "으, 으응?!"
바깥면이 강화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는 경치 감상을 위해 저속으로 운행되었다. 그만큼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 애가 돌을 던졌다. 그것도 꽉 찬 직구였다.
진은 당황을 감추지 못 하는 얼굴로 그 애를 보았다. 잠시 할 말마저 잃고 가만히 서 있자 마주 본 그 애가 싱긋 웃었다. 그 웃음에 진은 척추가 쭈뼛해졌다. 제발, 저 입이 움직이지 않았으면 했지만 그 애는 창백한 입술을 움직여 말을 했다...
"아까 교문에서부터 여기 5층에까지, 줄곧 알고 있었죠? 기분 나쁜 소리랑 시선 느껴진 거. 그거 왜 그런지, 그것도 알고 있죠? 진 씨.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묻고 싶은게 있는 정도는 알 거라고 예상해요." "...그, 그게 무슨 소린지..." "에이, 왜 모른 척이에요. 진 씨는 어지간한 건 다 알 수 있잖아요. 스트레인지는 위험하니 안 건드는 거 같고." "그- 렇긴 한데-"
그 순간,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스르륵 열린 문 너머는 식당들이 즐비한 10층이 아니었다. 그 위, 옥상 정원이 있는 층이었다.
"바람 쐬면서 마저 얘기할까요?"
그 애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내렸다. 진은 걸음이 선뜻 나서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걸어서 그 뒤를 따라갔다.
시간이 딱 저녁 식사 시간이라 그런지 정원엔 사람이 없었다. 그 애는 정원을 가로질러 조명이 장식된 난간으로 다가갔다. 딱, 한 군데 조명이 망가진 곳이 있어, 거기에 등을 기대고 서서 주변 불빛에 역광을 드리운 채 진을 바라보았다. 하얀 얼굴이 어둠 속에 일렁거렸다.
"그래서- 어디부터 얘기할까. 솔직히 진 씨가 오늘 안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직전에라도 못 나가겠다 연락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락은 없었고 평소처럼 나와주었죠.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나? 했는데, 정문에서 바로 알아버렸네요. 그 때라도 돌아가지 그랬어요. 아, 그건 싫었으려나? 돌아가려면 나를 연구소로 데려다줘야 하니까." "...에, 에이, 모처럼 데이트 신청을 해줬는데 팽치기 싫어서-" "정말요?" "ㅇ,응?" "정말이냐구요. 그 말."
역광 속 검푸른 눈이 똑바로 진을 응시했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노을 뒤로, 깊은 바다와 같은 어둠이...
진은 어쩐지 숨쉬기가 답답해진다고 느꼈다. 지상에, 그것도 탁 트인 바깥에 있건만 점점 바다 속으로 끌려들어가듯이,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그 답답함을 쥐어짜 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 이쁜아,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야...?" "음? 그런 거 없어요. 묻고 싶은 말이 있는 건 진 씨잖아요." "그런 거 없는..."
아니,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 말을 입에서 꺼내 묻는 순간, 온 화면을 꽉 채우던 그 익명 중 하나가 될 것만 같아서, 그건 싫어서. 그러니까.
"음- 직접 말하기 무서운 걸까요? 그럼 내가 대신 말해줄까요?"
하지 마. 하지만.
"그러니까, 진 씨가 나한테 묻고 싶은 말은-"
막아야 하는데. 막기 싫다.
"박유준 씨와 나 사이에 그렇고 그런 썸씽이 있었던 거 아니냐-"
그 말이 그 애의 입에서 나온 순간 진은 안도하며 동시에 심장이 철렁였다. 차마 할 수 없던 말을 대신 꺼내 준 것에 대한 안도와 진의 속내를 꿰뚫린 것에 대한 수치심이 동시에 치밀어 그 두 감정이 맞닿은 부분부터 새까맣게 뒤섞였다.
저기 서서 진을 보며 웃는 그 애를-
"대답, 해줄까요? 아니면, 진 씨'도' 원하는 대로 생각할래요?"
진은 선택할 수 없었다. 노을이 완전히 져서 세상이 어두워질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다가, 그 애가 돌아가자고 하자 그 때에서야 움직였다.
그리고 쇼핑센터를 나와 3학구로 돌아오는 내내 차 안은 정적을 넘은 더한 침묵으로 가득했다.
진은 그 날 처음으로 유준의 말을 실감했다. 어째서 유준이 그 애를 대할 때, 미증유의 두려움을 가졌는지도.
4학구에서 곧장 거주하는 빌라로 돌아온 나는 집에 들러 짐만 내려놓고 다시 나왔다.
나오긴 했으나 빌라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 쇼핑센터처럼은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자그맣게 정원을 꾸며두어서 가끔 올라가서 쉬곤 했다.
"...Who gives a f*** about my..."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문득 생각난 가사를 흥얼거렸다. 그대로 허밍 반 가사 반 흘리며 옥상에 도착했다.
시간은 이미 이른 밤이라, 옥상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들고 온 물건을 손에 들고 흔들며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텅 빈 정원을 사뿐거리며 조금 걷다가, 혼자 춤을 추듯 한 발끝을 세우고 빙그르르 돌다가, 그 짓거리가 웃겨서 혼자 킥킥대고 웃다가, 또 빙그르르 돌고, 웃고, 걷고, 노래하고, 그 끝에 난간 앞에 멈춰섰다.
"하-"
어느새 차오른 숨을 잠시 가다듬었다. 숨을 고르며 바라 본 난간 너머는 3학구의 야경이 멀리 보였다.
나와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던 풍경,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풍경, 그러나 지금은 더욱 멀어졌을.
보호 철조망 없는 난간 위에 올라갔다. 바깥을 향해 다리를 뻗고 걸터앉았다.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바람이 금방이라도 나를 끌어내릴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앉아서 가져온 물건을 들었다. 조잡한 손잡이를 열고 차칵차칵 흔들어 쭉 꺼낸 막대 끝을 후- 하고 불자-
포르르르-
오색 찬란한 비눗방울 한 무리가 밤공기에 흩어졌다. 서로 합쳐지고 나눠지던 비눗방울들이 사라지자 다시 불었다. 다시 흩어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또 불었다.
몇 번이고 반복했다. 새 것이던 비눗방울의 액상이 반 이상 사라지고 더는 숨 불기도 힘들어질 때까지.
"...하하, 아하하! 하하하하하하!!!"
불어도 불어도 계속 사라지기만 하는 비눗방울을 보다가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그냥 웃음이 났다.
그래서 난간에 걸터앉은 몸을 들썩이며 웃고 또 웃었다. 또다시 숨이 차서 몸을 수그려야 할 정도로. 폭이 고작 50센치 정도는 될까 싶은 그 난간에 엎드려야 할 정도로.
"하아, 후..."
또다시 숨을 고르고, 남은 비눗방울 장난감을 닫아 옆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빈 손으로 난간을 짚고 일어섰다. 난간 위에 서서 그 너머를 보았다. 완전히 새까매진 하늘과, 멀디 먼 3학구의 풍경과, 아득히 높은 지상까지.
부감풍경이라는 말을 아는가? 있는 그대로 풀면, 높은 곳에서 바라본 풍경이란 의미다. 그리고 다른 의미론, 그 상황으로부터 오는 괴리감을 가리키기도 한다. 인간의 뇌는 처리 가능한 정보의 범주가 한없이 제한적이라서 느닷없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을 때 그 높이감으로부터 오는 비현실성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감각을 현실성으로 되돌리기 위해 그 아래 존재하는 지상에 닿기를 추구하는
"...아."
그 순간, 밑에서 바람이 불어올라왔다. 위태로이 서 있던 내 몸은 속절없이 휘청였다. 어두운 밤풍경에 검푸른 머리카락이 물결쳤다. 허공을 휘젓는 다리는 인어의 지느러미를 닮았다. 비늘 없는 다리는 물 없는 수중을 몇 번인가 헤엄쳐 풀썩, 떨어졌다.
올려다 본 밤하늘이 너무나 검고 검었다.
"...But it's nothing you should worry yourself about..."
《백한결》 • 실은 녹색 눈을 가진, 겉보기엔 여린 사람이 취향이다. 남들 다 아는 소나무 취향을 본인은 모른다……. • 인천첨단대학 수석 입학 및 수석 졸업. 본인은 이 사실이 상당히 부끄럽다고. • 첫 담배는 중학생 때. 달동네 구석에서 나무젓가락 사이에 끼워서 피웠다. 물론 울면서 정신을 차리고 끊었지만 대학생활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 박 교수와 함께 바오 패밀리 팬이다. • 사소한 재주지만 길가에 핀 꽃과 나무를 보고 무엇인지 맞출 수 있다.
《현태오》 • 좋아하는 과일을 모두 포도로 알고 있지만 사과도 좋아한다. 하지만 사과맛 액상은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맛이었다. 참고로 음식 중에서는 미트볼이 들어간 크림 스파게티도 좋아한다. • 사시사철 덥지도 않나 싶을 정도로 꽁꽁 싸매고 다니는 이유는 본인의 상반신을 당당히 여기지 못하는 탓이다. • 한 번 본 건 어지간하면 잘 잊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그날 뭘 먹었는지는 잊어버린다. • 요즘, 연인들 앞에서는 물러 터지는 것 같다. 이런 자기자신을 불안해한다. •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면 네일 색이나 피어싱을 바꿨다. 유일하게 자기관리를 하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화영》 • 크림소스와 미트볼을 잘 만든다. 태영이가 특히나 좋아한다. 어린 리라가 집에 초대를 받았더라면 해줬을지도? • 남편은 남편으로 존중 받아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어, '태영이 아빠'로 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건 남편도 마찬가지다. • 사실 햄버거를 좋아한다. 젊었을 때 파파라치에게 밥 먹는 것까지 찍느라 고생이 많다며 한심하다는 듯 감자튀김을 준 적도 있다. • 닻별 촬영 도중에 대사를 까먹었지만 애드립으로 넘어간 적이 있다. • 남편과 집에서 뮤지컬 놀이를 하는 것이 요즘 삶의 낙. 태영이는 처음엔 싫어했지만 요즘엔 나서서 한다.
소문은 무섭다. 그건 다름아닌 동월이 잘 안다. 그 이유를 찾아보자면 과거로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지루한 등장인물의 회상 따위. 가볍게 넘기는 것이 동월의 특성이다. 자신의 머리 속으로만 회상을 마친 그는, 부실에 몰래 만들어둔 비밀 보관 공간(은우에겐 비밀이다)을 뒤져서, 엄청난 것을 꺼냈다.
그렇게 한 손에 엄청난 것을 들고 복도를 거닐다 보면, 최근들어 유행중인 소문이 속속들이 귀로 들어온다. 소문에 대해 이야기중인 그 무리들을 미소 띈 얼굴로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다들 따가운 시선에 동월을 바라보았다가, 그의 손으로 시선이 갔다가, 이내 경악하는 얼굴로 바뀐다.
[? 월이다.] " 소문이 무서운건 잘 아는데... " [어... 그냥 월이가 아니네...?] " 그건.... " [미친 또라이 월이다!!!!!!!!!!] " 통할때나 무서운거지!!!!!!!!!!!!!! " [다 튀어!!!!!!!!!!]
그의 손에 들린 최신식 강철 쇄빙기가 소문을 이야기하던 아이들 중앙 바닥에 꽂힌다. 그에게 소문따위 안통하니... 이미 그가 도라이이라는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있지만, 동월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를 헐뜯던 목소리도 줄었다. 결국 다들 납득해버렸으니... 이런 짓을 해도 아주 잠깐 불타오르다가, 결국에는 '저 또라이가 그럼 그렇지' 라며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안돌아가도 신경 안쓰긴 하겠지만... ...은우야 미안해.
전혀 놀랍지 않게도 둘은 지금 그 소문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들은 상태에요. 하지만 아마 직접적으로 행동을 하진 않을 것 같고.. 일단은 각자 알아볼 수 있는 선에서 한번 알아볼 것 같네요. 정확하게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이고 애초에 그 소문이 퍼진 이유는 뭐고,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세은이의 경우는 이제 조금만 악의적인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 직접 찾아가서 책상을 발로 걷어찬 후에 "자신 있지?" 라고 그냥 차가운 목소리로 한번 물어볼 것 같아요. 그리고 싱긋 웃으면서 "나도 한번 소문 퍼뜨려봐. 오빠 믿고 난동 부린 애라고." 라는 식으로 말이에요.
"왜? 못하겠어? 설마 그렇게 대놓고 이런저런 소문을 퍼뜨리고서 이런 것은 못한다는건 아니지? 그치? 너 별로 뒷감당 생각 안하잖아." "저지먼트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문까지 나오던데... 응. 맞아. 그런데 뭐? 어쩌라고." "이미 저지먼트를 거론한 시점에서 이렇게 될 거 몰랐어?" "됐고 나도 소문 퍼뜨려봐. 어떻게 퍼뜨리고 어떻게 나오는지 보게."
그런 식으로 해서 스스로 시작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줄 것 같네요. 은우는 아마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을 것 같고... 진상을 알게 되면 피식 웃고는...
"우리가 직접 건들면 남자를 꼬시니 뭐니 그런 말들이 또 나오고 참 시끄럽겠지?" "남자는 빠지고 여자부원들만 들어줄래?" "걔들 그냥 교칙 어긴거 다 털어버려. 벌점 있는대로 다 부여해." "교복 차림부터 시작해서 안 지키는 교칙까지 모두 다 동원해서 털어버려. 아니. 걔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걔네 주변 애들. 그리고 걔네 반도 다 털어버려." "...모든 것은 룰에 의거해서. 알지?"
아마 이렇게 해서 아예 '남자를 꼬셔서 그렇다니 뭐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서 합법적으로 철저하게 피를 말려버릴 것 같네요.
situplay>1597048449>578 " 네 직할이지, 네가 아니잖아. " " 유지혁은 뭐, 네 직할이라고 하기도 하고 일단 위급한 상황이라 넘겨준거지. " " 내가 너 없는데 그 인간들 따라갔겠냐? "
저지먼트 외부인은 딱히 믿지 않았다. 굳이 믿음을 줘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고. 당장 신경써야 할 내부 일이 몇갠데, 거기에까지 신경을 쏟고 싶진 않았다. 실제로 지혁도,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팔아넘기냐고(?) 항의하긴 했었다. 그럼 죽게 냅두냐는 말에 조용해지긴 했지만
" 앵간한건 사실 지금까지도 우리가 거의 알아서 하긴 했지. "
죽기 직전일때 빼고는... 그때는 혜우를 부르지 않으면 진짜 죽었을지도 모른다.
" 근데 그러면, 지금까지는 왜 신경썼어? "
혜우의 말에 따르면, 괴이부 일 쪽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는 이야기인데... 괴이부 활동중에 다쳤던 동월은 어째서 지금까지 신경쓰고 치료해줬던 것일까? 단지 저지먼트 부원이기 때문에? 전력 손실을 줄이기 위해? 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 혹시나 괴이에서 한번 구해줬으니까 빚 갚는거라고 하는건 관둬라. " " 그건 변명보다도 못한 변명이니까. "
뭐...일단 혜우가 둘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세은이는 여전히 혜우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고, 처음부터 소문이 마음에 안 들고 이게 뭐야? 싶지만 그래도 무작정 감정적으로 나서면 필시 역공당할 가능성이 크니 철저하게 응징하기 위해서 정보를 모으는 것에 가깝고...
은우는 혜우에 대해서 좀 여러모로 어떻게 대해야할지 잘 모르겠고, 좀 난감하긴 한데 그래도 세은이 친구이고 저지먼트 부원이라서 괜히 짜증나는데... 그렇다고 자기가 직접 움직이면 이번엔 혜우가 '퍼스트클래스를 꼬셨다'라는 말이 나올테니까 아마 자신이 직접적으로 나가는 일 없이 저렇게 행동할 것 같아요.
괜히 행동에 트집을 잡는 식으로 가면 혜우 때문에 이런다라는 식이 되니까 아예 위반사항을 있는대로 다 잡아서 철저하게 벌점으로 피를 말려버리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걔들만 타겟팅하면 너무 티나니까 주변 애들, 그리고 같은 반 애들. 필요하다면 1학년 애들을 중심적으로 해서 내부에서 '걔들이 자꾸 안 지키고 문제를 일으켜서 그렇다' 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것에 가깝답니다. 명분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니까요. 1학년들이 요즘 교칙을 어기는 것이 너무 많아서 '특별단속기간'이다. 라는 느낌으로 말이에요.
>>96 동월주 ...쇄빙기면;;;; 설마 소문 입에 담는 학생들을 갈아 버리려는 걸까요∑@ㅁ@ 그래서 부상자가 발생해 버리면 소문이 문제가 아니게 될 거 같은데요(호달달)
>>124 리라주 리라는 참 반듯하고 햇살 속성 잔뜩이에요!!! 본인의 아픈 과거에 기반해 믿어 주는 거니 공감 능력도 좋고요
>>126 >>142 캡 세은이는 자기도 힘든 상황일 텐데도 친구 일에 발 벗고 나서며 어그로를 끌어 주네요:) 근데 부장님...ㅋㅋㅋㅋㅋ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 작전일까요? 당분간은 저지먼트도 털어도 먼지 안 나오게 처신 빡시게 해야겠네요 부장님...피꺼솟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딱하네요ㅠㅠㅠㅠ (저주 인형한테 분풀이라도 하지 그랬어8ㅁ8 )
>>129에서 혜우주께서 언질 주신 대로 소문의 진상은 서연이가 조사 중이긴 한데(사이코메트리로 다 털어 버리겠다!!!!) 아직 정확한 정보는 몰라서 혜우하고만 상의하고 함구할지, 보고서까지 작성할지는 모르겠어요.
《백서휘》 • 여름까지는 연인이라기엔 한 번 만나고 끝인 사이를 지속해왔다. "키스는 사귀는 것 같잖아."를 시전한 탓에 지켜보던 라바나가 '이게 뭔 포타 500p 2092자 썰에서 나올 법한 발언'이냐며 기함한 적이 있다. • 몸에 흉터가 많지만 등의 흉터는 거의 드물다. • 적어도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착한 어른이고 싶다. 그런데 이놈의 인첨공과 현태오가 • 스플릿 텅을 하게 된 이유는 '그냥'. 피어싱에 이유가 필요한가…? 물론 하고나서 한 달 정도는 후회했다. • 우는 사람이 취향이라는 걸 최근 깨달았다. 본인도 깨달은 이후 진지하게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안희야》 • 증기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 고양이랑 눈으로 대화하는 스킬이 뛰어나고, 어째 다 때려맞추는 방식이지만 나름 말도 알아듣는 것 같다. 마성의 인간 캣닢. • 요즘엔 렛잇고 고음이 잘 올라가는 것 같다...고 주장하지만 본인만의 착각이다. • 어째서인지, 아직도 태양의 아이들 재단에서 나눠준 뱃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 춘치자명 이후 태휘네 집에서 살고있다.
《안승환》 • 많은 것을 후회하고, 많은 것을 바로잡고자 지금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고자 한다. • 최근 한결을 선임 연구원직까지 올렸다. 역방향 커리큘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덕분이다. • 수염을 밀까, 고민한 적이 있다. • 최근 편지 하나를 발견했고, 이 편지를 들켜서는 안 된다 생각했다. • 그때는 억압만이 방법이라 생각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곰곰히 녹은 뇌로 생각해봤는데 혜우 사건(이 명칭이 맞나 싶지만)에 대해 이혜성이 알게 됐어도 행동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 같다. 주변 저지먼트 부원들이 알아서 행동해 주겠거니 하는 막연함, 자기가 나서기에는 사건 자체에 대한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 등등 이것저것 따지느냐고 그랬을 듯. 그래도 주의깊게 흘러가는 상황을 살피긴 했을 것 같네. 이래 보니까 의외로 아이 키우면 양육방식이 엄할 스탈같니
정인이 보호자 면담을 하는 동안은 시간이 남는다. 덕분에 리라는 오랜만에 센터의 마당에서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때마침 다미가 주도해서 벽화 그리기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끼어들기도 적절했다.
- 언니! 사탕 꽃 덩굴 그려주세요! - 야! 안 돼! 벌레 꼬여! - 아, 그런가... 벌레 안 꼬이게 할 수는 없어요? "흐음~ 글쎄. 한번 해볼까요? 대신 시간은 좀 걸리니까 가서 놀고 있어요. 완성되면 불러줄게요~"
머리를 묶고, 교복 소매를 걷어붙이고, 앞치마를 두르고. 그러나 이리저리 채비한 게 무색할 만큼 군데군데 물감을 묻힌 채 크고 작은 붓으로 벽화를 그려나가던 리라는 귀여운 리퀘스트에 살짝 웃으며 조금 전까지 그리고 있던 나무의 기둥과 가지를 타고 오르는 덩굴을 그려낸다. 연녹색 덩굴과 연녹색 잎.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주황색인 꽃잎들. 모양은 장미. 맛은 각각 라즈베리, 복숭아, 레몬, 오렌지... 재질은 사탕. 꺾어 먹으면 이틀에 걸쳐 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고, 달콤하지만 벌레는 꼬이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그려낸 설정이 충분히 구체화되면 그림 또한 실체화 시켜도 문제 없을 만큼 밀도가 쌓인다. 리라는 나뭇가지와 덩굴에 손을 대고 사탕 꽃 덩굴을 실체화 시켰다. 나무의 일부와 꽃이 피어난 덩굴이 현실로 끌려나와 달콤한 향을 내뿜는다.
"다 됐다! 자! 이렇게?" - 우와아아! 네! 얘들아 이것 봐 봐! - 와, 사탕! ...근데 벌레가 먹으면... "벌레가 못 먹게 만들었으니까 괜찮아요. 한번 맛볼래요?" - ...네! 그럼 전 복숭아요!
분홍색 꽃을 꺾어 아이의 손에 쥐여준 리라는 이윽고 한발짝 물러나 그림 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리라야, 이 꽃잎 사탕 맛있다." "괜찮죠?" "응. 당 충전 제대로 되네. 근데 너 괜찮니?" "네? 뭐가요?"
노란색 꽃잎을 오독오독 씹어 삼킨 다미는 이윽고 제 눈가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린다.
"상담 막 끝났을 때는 완전 울상이었잖아. 눈가도 요렇게 붉어져서는." "아~ 이제 괜찮아요. 어쩌다 보니 좀 울어서." "그래...?" "......있잖아요 다미 쌤, 저 여기 상담 안 다녀도 가끔은 놀러와도 되죠?" "뭐? 당연하지! 새삼스럽게! 그나저나 상담을 안 다닌다니? 너 혹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라. 다미의 옅은 하늘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잠시 말을 고르던 리라는 문득 겉옷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음에 몸을 굳혔다.
(윤정인) <[주차장으로 와요.]
"쌤, 저 이제 가 봐야 돼요. 면담 끝났나 봐요." "벌써? 고작 사탕 덩굴이랑 병아리 하나밖에 안 그렸잖아. 꼭 같이 돌아가야 해? 나중에 따로 가면 안 되나?" "그러게요. 저도 더 있고 싶긴 한데, 아마 안 된다고 하실 것 같아요." "여태 혼자 다녔는데 이제 와서 안될 건 또 뭐람. 그냥 더 있고 싶다고 해! 아니면 내가 같이 가서 얘기해줄까?"
리라는 생글생글 웃어보이는 다미를 바라보다가 이내 마주 미소 짓는다. 과연 정인이 허락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돌아가는 길이 막연히 불안하지만은 않게 되었으니까. 지금은 그것으로 족하다.
"네. 그럼 주차장까지만 같이 가주실래요?"
단체로 이동할 만한 일정이 없는 이상 아녜스 센터의 지하 주차장은 시현의 사무실 다음으로 아이들의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공간이었다. 언제나 따스하고 밝은 지상층과는 달리 제법 어둡고, 답답하고, 서늘한 곳. 그래서 다미는 평소 이곳에 자주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어둡고 답답하고 서늘한 데다 지하였으니까. 가장 싫어하는 공간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에 일부러 발을 들여놓을 필요가 어디 있을까.
"연구원님, 저 왔어요." "좀 늦었......"
하지만 가끔은 거지 같은 공간에도 굳이 찾아올 만한 가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다미는 제 곁에 선 리라를 바라보다가 자신에게로 옮겨온 검은 눈동자 한 쌍이 명백히 흔들리는 모습을 가만히 마주보았다. 저 고리타분하고 빳빳한 스타일은 여전하구나. 그래도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이를 먹었나. 다미의 머릿속에 자잘한 감상이 드문드문 떠오르는 동안, 말을 잃었던 정인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이리라 학생이 왜 그것과 같이 있습니까?" "네? 그것이요?" "'그것' 이라니! 말이 심하네, 윤정인 연구생님. 나한테도 이름이 있어요?"
아, 아니지. 이젠 연구생이 아니라 연구원이랬던가? 리라의 어깨를 살짝 잡으며 활짝 웃어보인 다미는 이내 몇 발자국 더 나아가 정인의 앞에 선다.
"반갑습니다, 주다미에요. 선 아녜스 아동 청소년 복지 센터의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습니다." "...허?" "다미 쌤? 연구원님? 두 분 아는 사이셨어요?"
마주선 두 사람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던 리라의 입에서 이윽고 의문 섞인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정인은 당황을 금치 못하고 시선을 방황하는 리라를 쳐다보다가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리라 학생. 돌아갑시다. 차에 타요."
여전히 방황하는 시선. 정인은 두 사람 사이에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리라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우선은 이 자리를 벗어나고 생각이든 추궁이든 해야겠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이었다.
- 휘잉, 팅!
하지만 리라의 팔을 붙잡기 직전, 정인과 리라의 사이를 무언가가 막아선다. 그건 유형의 방패 같은 한편 무형의 바람 같기도 한 옅은 푸른색의 벽이다.
"...어? 이게 무슨?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내가 한 거야, 리라야. 저기~ 미안한데 그렇게 막 잡으려고 하는 거 별로 좋게 보이지 않거든. 데려갈 거면 착하게 데려가, 착하게. 안 그러면 내가 안 좋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바람에 이걸로 그쪽 머리를 탕탕~ 쳐버릴지도 몰라?" "네... 네? 다미 쌤! 전에는 능력 못 쓴다고, 레벨 0이라고 하셨잖아요!" "아, 거짓말 했어! 미안! 이해해주라! 나도 사정이 좀 있어서."
뻔뻔스레 윙크까지 날리는 다미의 태도에 정인과 리라는 순간 할 말을 잃는다. 이윽고 정인이 손을 거두자 다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던 공기의 방패를 거둬들였다. 아마 엄시현이 알면 난리 치겠지. 하지만 윤정인이 언제까지 여길 들락거릴지도 모르는 판국에 마냥 숨어다니는 것도 슬슬 지치던 중이었으니까.
"...프리드웬. 네가 왜 여기 있지?" "그쪽이 알 바인가? 볼일 끝났으면 빨리 차 빼요. 애는 냅두고." "내 담당 학생은 내가 관리한다. 네가 상관할 영역이 아니야." "우리 센터 학생이기도 해요."
정인의 표정이 순조롭게 찌푸려진다.
"저기요, 저기요!"
그러던 중, 문득 하얀 손이 번쩍 올라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곧장 리라에게로 돌아간다.
"저 그냥 제가 알아서 집에 갈게요." "응? 리라야, 더 놀다 가고 싶다며." "아니에요. 집에 가고 싶어졌어요." "그럼 내가..." "아뇨. 제가, 혼자, 알아서 갈게요. 딴 길로 안 새고 바로 집으로. 그럼 되죠?"
침묵이 흘렀다. 정인은 리라를, 다미를, 그리고 어느새 손에 빗자루를 꺼내 쥔 리라를 바라보다가 무거운 한숨을 뱉어낸다. 젠장. 피곤해서 돌아가실 것 같군.
"......내일 마저 얘기합시다." "네, 그럼 저 갈게요. 다미 쌤도 안녕.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어, 응. 그래그래. 조심해서 가아~... 에구, 벌써 갔네. 그럼 나도 이만 갈까..." "잠깐, 프리드웬. 멈ㅊ—"
주차장 출구를 타고 저공비행으로 사라지는 리라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정인은 곧 은근슬쩍 사라지려는 다미를 목격하고 손을 뻗었다. 어떻게, 몇 년 전에 사라진 시즈의 피험자가 여기 있지. 그런 의문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 탕!
그러나 조금 전과 같이 그의 손은 다미에게 닿지 못했다. 옅은 푸른색의 벽에 부딪힌 창백한 손이 충돌의 여파로 조금씩 붉게 달아오른다.
"윤정인. 손대지 말랬지. 아직도 내가 손바닥 만한 리모컨 하나로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실험쥐로 보여?"
벽 뒤에서 돌아선 다미의 눈은 조금 전 마주했던 것보다 더 밝게 푸르렀다. 길게 뻗어 두 사람 사이를 온전히 단절한 벽을 사이에 둔 채 시선이 얽히고 섥힌다.
혜우의 답장은 오래지 않아 도착했다.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자마자 한숨이 터져나왔다. 진짜로 그렇게 말했구나. 사실이 아니길 바랐는데.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씁쓸하고 영문을 모르겠을 뿐. 내가 나를 챙기느라 애쓰던 그 몇년 동안 혜우는 전과는 많이 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도 씁쓸했고, 능력도, 재력도, 권력도 남 부러울 것 없는 그 애가 가해자에게 법이 아닌 성희롱으로 대응했다는 사실이 어리둥절했다.
듣자 하니, 혜우와 가해자의 악연은 햇수단위로 오래된 모양이었다. 과거에야 어땠을 지 몰라도 레벨 5가 된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사실적시든 허위사실적시든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서 가해자를 응징하고, 뒷말하는 애들을 견제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그런 저급한 방법으로 대응했을까.
왜 그랬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세상에 이해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났다면, 박형오가 고작 1년밖에 못 견뎌서 인첨공을 세우는 데 앞장서고, 2대 대표이사가 여지껏 그림자들과 진상부리고, 박찬유가 이대론 안되겠으니 우리보고 지랑 다같이 죽자고 할까. 그래서 그냥 이렇게 보냈다.
@천혜우 [내가 널 너무 몰랐구나.] [지금도 모르고 있을 테고.] [알겠어, 솔직하게 대답해줘서 고마워.]
워치에 녹취가 제대로 된 걸 확인하고서 서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양아름과 이야기를 해 보기 전까지는 사실 꽤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혜우가 중학교 때 남학생들과 어떤 관계였는지 물으면서 녹취한 뒤 혜우네 중학교에서 사이코메트리로 진상을 확인해 본다. 내가 저지먼트 소속이라 양아름이 과연 날 신용하고 얘기할지나 외부인 출입 금지일 학교에 어떻게 침투할지가 골치 아프겠단 예상은 했지만, 위험하거나 골치 아플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선배한테도 편하게 알릴 수 있었고.
근데, 인생은 실전이다...;;;;; 내가 궁금한 점이랑 선밸 좋아한다는 얘기만으로 양아름의 경계심을 풀었을 땐 마음이 놓였고, 양아름이 짝남과 썸 탔었다고 할 땐 측은한 마음에 토닥이기도 했다.(토닥이는 척 사이코메트리를 쓸까 갈등했으나 그건 관뒀다. 양아름에겐 썸 탔다가 진실일 거 같거니와 당사자 동의 없는 사이코메트리는 사생활 침해니까) 썸남이랑 다시 만나 보려고는 안 했냐고 물었다가 사람 잡을 듯한 눈빛 공격을 당했을 때도, 나라면 나중에라도 다시 만나고 싶었을 거 같아서 물었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고 솔직히 사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첨스타의 비공계에서 타래글을 본 순간, 머리를 거하게 처맞은 것 같았다. 2년 전 학기 초부터 수십 명이 학교 곳곳은 물론 스트레인지에서까지 사진을 찍고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었으니... 이 정도면 최소 스토킹인데??;;;;;;;; 대체 무슨 일을 겪으면 이렇게나 집요하다 못해 정성스러워지는(???) 걸까? 보통은 현생 살기 바빠서라도 못 이럴 거 같은데. 이렇게까지 해서 얘네가 얻는 게 대체 뭐지?? 하다가 이른 황당하면서도 참담한 결론.
마녀 사냥
시작부터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첨엔 그저 부럽고 샘났겠지.(혜우의 능력이면 선배의 뇌에 행여 이상이 생기더라도 바로 조치해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내가 부러워했듯이) 내 맘대로는 절대 안 되는 짝사랑 상대의 마음이 (혜우가 거들떠도 안 봤든 진짜로 꼬셨든) 혜우한테는 너무나도 쉽게 넘어가 버려서. 그게 속상하고 서러운데, 배신감도 드는데, 짝사랑 상대를 차마 원망할 순 없어서 혜우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렸을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원망에 좀먹혀 버려서, 혜우를 탓함으로써 쾌감과 안정감을 얻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으리라. 탓하자면 그럴 만한 구실이 필요하니 혜우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하고, 결과물을 인첨스타에 공유하며 혜우의 사악함을 드러내는 증거가 이렇게나 많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그런 끝에 혜우를 욕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거 아닐까. 누군가를 밑도 끝도 없는 괴물로 만드는 게 사는 낙이 되다니, 참혹한 인생들이다.
증거를 확보해야겠다는 정신머리는 남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양아름이 계정 공개도, 폰 촬영도 막은 탓에 제대로 남은 건 녹취뿐이다만, 저들이 모두 같은 중학교 출신이고 사진을 직접 찍기도 했으며 증거를 넘기지 않고자 했다는 발언은 확실히 녹음됐다. 내가 인첨스타 화면을 직접 봤으니 증언이 가능하고, 내 안경으로 인첨스타 화면을 사이코메트리할 수도 있으며, 다른 사이코메트리스트를 섭외하면 내 증언이 사실임을 확인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 내가 본 타래글들이 얼마나 사실인지를 확인해 봐야겠다. 하여 찾아갈 곳을 대강 정리해 봤더니
혜우의 1~3학년 때 교실과 그 층의 복도 보건실 도서실 강당 체육 창고 방송실 미술실 음악실 급식실 과학실 건물 밖 인적 드문 공터 계단 수돗가
" ......;;;;;; "
다 돌려면 답도 없다. 결국 연구원한테 톡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 연구원님, 저 오늘은 커리큘럼 못 해요! ]> [ 놀 건 아니고요, 훈련은 실전으로 때울게요!! ]>
혜우네 중학교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약 1시간 뒤였다. 편의점 배달원인 척 울 점포 유니폼을 입고(유니폼 안쪽엔 토실이를 숨겼다) 바 아이스크림을 한 박스 사다가 공공자전거로 날라 오니 그 정도 걸렸다. 그러고 교무실로 향하자 남아 있던 교사들이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지만, 아이스크림 배달 받아 달라고 투덜거렸더니 긴장들을 풀어 주었다. 그렇게 교사들의 시야를 끄는 동안 토실이는 특수 교실들의 카드키를 챙겨서 나갔고, 나도 배달 끝났으니 가 보겠다 하고는 토실이를 따라갔다.
건물들을 잠그기 전에 실내부터 싹 돌아봐야지. 일단 혜우의 1~3학년 때 교실부터. 방과 후라선지 문이 잠겨 있었지만, 디지털 도어락이야 교실 문을 열 때 어떤 숫자와 기호를 눌렀었는지를 사이코메트리로 확인하면 금세 열 수 있어서 상관없...잠시만, 그럼 사이코메트리가 절도에도 쓰일 수 있단 거네?? 하긴 오맨들씨의 노트북 비밀번호를 뚫은 것도 절도라면 절도네;;;;; 그렇게 들어가서는 사이코메트리로 인첨스타에서 확인했던 사진을 되새긴 뒤, 사진과 가장 비슷해 보이는 자리를 짚고 다시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했다. 이렇게 모든 장소를 확인해 봐야 한단 말이지? 개빡세네. 실전으로 훈련 때운단 말이 씨가 됐다!!!
/ @혜우주 일단 이런 식으로 후기 및 훈련을 작성해 봤는데요👀👀👀 나머지 장소들에 관한 정보도 얻으려면 접근 과정을 이 정도로 상술해야 할까요? 생략해도 괜찮을까요? ^c^;;;;;;;;;
얼마나 굉장했으면 남은 트릿 간식을 거의 전부 소진시킬 정도였으니까. 리라는 지난밤 하늘을 수놓는 폭죽처럼 공중에 휘날리던 트릿들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문득 머리를 짚었다. 보통 고양이들은 샌드백을 때리듯 퍼즐을 때려서 한두개씩 꺼내 먹던데, 찡찡이는 제 몸의 무게로 한참을 눌렀다가 올라오는 반동을 이용해 안에 있는 간식을 전부 꺼내 버렸으니... 이걸 똑똑하다고 해 줘야 할지, 혼을 내야 할지, 그런데 뭣도 모르고 간식을 그만큼이나 넣은 건 자신이니 스스로를 탓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 우에우우웅. "응, 알았어. 샀잖아. 간식. 여기 여기!" - 우오오옹. "아니이... 네가 다 먹었잖아... 사주긴 하는데 당분간은 안 돼. 간식 금지야." - 우웨오오오오오오오!
그 와중에 간식의 부족을 귀신같이 알아챈 반려 고양이의 항의로, 리라는 귀가하자마자 짐을 풀 새도 없이 도로 외출해 반려동물 용품점에 걸음한 참이었다. 먹기는 본인이 다 먹었으면서 집사를 부려먹는 솜씨가 아주 수준급이다.
"화내지 말고! 언니 이제 집 간다?" - 웨오오오오오옹! "뭐? 오지 말라고? 거기 내 집이거든?"
영상통화 기능이 달린 특수 펫캠으로 찡찡이와 대화(?)하며 걷고 있던 리라는 들고 있는 트릿 통을 가방에 넣으려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스케치북과 학교 수업용 필기 노트 사이로 보이는 낡은 노트가 못내 눈에 밟힌 탓이다. 그러고 보니 그 이후로는 만날 일이 없었던가. 하긴, 아무리 저지먼트라 해도 특수부대원과 마주칠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만은. 임무 때가 아니면 어림도 없지. 그럼 이건 어쩐다—...
"...응?"
하지만 가끔 세상은 시트콤보다 더 시트콤처럼 돌아가기도 한다. 불과 30초 전에 일반적으로 만날 일 없을 거라 생각한 사람을, 이런 식으로, 정말 우연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경로로 마주쳐 버리기도 하니까.
입을 벙긋거리던 리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뭐라고 불러야 하지. 디스트로이어? 그거 막 불러도 되나?
- 우에옹!!!!! "앗, 깜짝이야!"
아 참. 전화를 끊지 않았다는 걸 잊었다. 리라는 순간적으로 귀를 찌르는 거대한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무심코 허둥거리다가, 어쩌면 저 앞에서 같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철준과 눈이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뭐, 그냥 우연일 수도 있지만.
"......아, 안녕하세요. 강철준 씨. 오랜만에 뵙네요."
조금 머쓱해져 버렸다. 리라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천천히 말을 이어본다.
"무슨 일 있으세요? 괜한 오지랖이긴 한데, 기분이 안 좋아보이셔서..." - 웨옹. "앗, 전화. 찡찡아, 언니 잠깐만! 좀 늦어!" - 웨ㅇ
뚝. 통화 종료. 이제 이리라는 조금 더 차분한 상태로 철준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너희 학교 요즘 시끄럽더라." "항상 시끄러웠던 것 같은데요. 요즘 뿐만 아니라.." "너희 부원 관련인데 그렇게 무관심해도 괜찮냐?" "제가 아니여도, 이미 발빠른 후배들이 먼저 움직이고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게 무관심이라고 생각 안하고?" "....무관심이 아니라 지켜보는거죠. 정말로 해결이 될 기미없이 악화만 될 것 같다면 누구든 3학년들에게 도움을 청할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당사자든, 그 일에 끼어들기 시작한 오지랖 넓고 타인의 불행을 보고 넘길 줄 모르는 후배들이든. 제 능력으로 분쇄되어 너덜거리는 커리큘럼용 타깃 로봇을 바라보고 혜성은 중얼거렸다.
>>0 랑은 오늘도 다소 평범한 커리큘럼을 소화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협조를 요청했던 연구소는 일정이 미뤄졌다며 추후 다시 요청하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 때문에 일정이 비어버린 것을 기본적인 커리큘럼으로 채우고 있는 셈이다.
"할 일이 많아져서 귀찮겠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재해의 전조증상 등을 정리해 둔 자료를 읽던 랑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성환은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할까 생각하다가도 웃으면서 고갤 가로저었다.
"아냐, 사실 내가 협력은 어려울 거 같다고 했어."
확실히 제안을 가져온 성환은 그다지 랑이 꼭 해주기를 바라는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이런 제안이 왔다. 정도의 이야기였을 뿐. 랑도 처음에는 거절했었고, 나중에 생각을 바꿨을 때도 성환은 기쁘거나 신나하지 않았지. 그러나 아예 협력을 성환이 거절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기에 손에 들린 자료를 슥 하고 내려놓은 랑의 시선이 성환에게 향했다.
"왜." "그냥, 보내는 게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어.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
직감이라는 말을 꺼내던 성환은 하하, 하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 앞에서 직감이라는 말을 하니까 좀 부끄럽다." "...뭔가 있나 보군."
뭔가 눈치챈 듯한 랑의 대답에, 성환은 웃으며 시선을 피하다가 차트를 내려놓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맞아, 예전에 실수한 게 있거든." "들어줄 테니까 말해 봐."
"......"
잠시 침묵하던 성환은 테이블 한 켠에 있는 액자를 쳐다보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연구원과 담당 학생의 관계는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이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과한 수준의 관계 형성은 금기로 여겨진다. 결국 담당 학생은 연구 대상의 성격을 띄는 존재, 연구 과정에 사감이 포함된다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다. 아예 신뢰 자체를 쌓지 못해 연구가 불가능한 정도가 아니라면 신뢰 형성 역시 필수가 아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연구원들과 연구소가 다소 비윤리적인 방법을 쓰고 있음에도 멀쩡히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겠지. 그런 점에서 성환은 선배와 동료 연구원들에게 별종 취급을 받아왔다. 너는 너무 마음이 약해, 한 학생을 평생 돌보는 경우는 없어, 결국 스쳐 지나가는 존재에게 너무 감정이입하지 마. 언제까지 계속 낙오자에 가까운 녀석들만 맡을 거냐, 좀 더 성과를 내서 더 좋은 조건으로 연구원 생활 해야지.
투덜투덜. 오늘 철준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조만간에 '플레어'와 부딪쳐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으니, 괜찮다면 3학구에 와서 상황을 조금만 파악해달라는 것이었고 철준은 일단 그 요청에 응해서 3학구에 왔다. 그리고 조금 전, 문제의 포인트 지점에서 플레어와 잠깐 마주쳤지만 다행히 교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플레어는 언제나처럼 초점없는 눈빛으로 조용히 철준을 바라봤고, 철준은 그 표정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는 등, 잔뜩 긴장하다가 겨우 여기까지 도망쳐 온 길이었다.
"그 자식은 언제봐도 눈매가 마음에 안 들어. 뭐야. 진짜. 감정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물론 철준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충 들은 것이 있을 뿐. 그렇기에 그가 아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상당히 단편적인 내용들 뿐이었다. 한편,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자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절로 리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를 보자마자 그는 작게 혀를 차면서 칫- 소리를 냈다.
"뭐야 애송이. 우리가 서로 만나면 인사할 사이던가? 그래도 기본적인 예의는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그녀의 인사에 그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내면서 그녀의 인사를 일단 받아줬다. 하지만 곧 무슨 일이 있냐는 물음에 그는 표정을 찡그리면서 리라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했다.
"네 녀석의 부장이라는 작자가 워낙 귀찮게 해서 말이야. 핫. 뭐... 어느 정도 도와주겠다고는 했으니 도와주긴 하겠다만... 아무튼 이쪽 일은 됐고... 네 녀석. 고양이라도 키우는거냐? 고양이 울음소리가 완전 섭섭함에 미쳐 죽으려고 하는데... 너 말이야. 고양이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야. 키우는 거라면 섭섭하게 만들지 말고 제대로 돌봐."
사정을 알 리 없었던 철준은 섭섭함이 가득 묻어나오던 고양이의 울음소리만 듣고 모든 상황을 판단했다.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채로.
>>307 >>314 혜성주 오지랖 넓......에서 뜨끔해 버린 참치 1마리에오오오오 ㅎㅎㅎㅎㅎ 근데 혜성 언니가 무관심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움 청하면 얼마든지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거잖아요~~ >< 여기 오훈완 하고 늘어진 액괴(???) 한마리 추가요오오오오
>>308 랑주 연구원과 학생 간 관계가 보통은 건조해도 성환씨랑 나랑 언니는 유대가 찐한 거죠? (오늘은 묘하게 성환씨가 동생 같은 느낌이라 살짝 신기합니다ㅎㅎㅎㅎ )
>>310 캡 이 시기에 디스트로이어가 부장님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을 이유라곤 그거밖에 없을 거 같더라고요 ^c^;;;; 그 와중에 고양이와의 영상 통화까지 챙길 만큼 고양이한테 진심인 디스트로이어... 고양이 사랑이 정말 대단해요!!!
>>313 혜우주 으하하 치밀해 보였다니 뿌듯한데요~~!! 서연이다운 잠입(???)으론 편의점 코스프레밖에 안 떠오르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사 서술 충분하다니 다행이에요 >< 저거 반응 다 이어 주시려면 혜우주께서 엄청 빡세시겠지만👀👀👀;;;; 아무쪼록 부탁드립니다!!! (도게자)(굽신굽신)
그래, 인사할 사이는 아니지. 빈말로도 반갑게 인사 나눌 사이라고 할 순 없었다. 저쪽은 저지먼트를 진심으로 죽이려고 한 적이 있었고, 이쪽도... 여러모로 가지가지 했으니까. 다만 그런 것 치곤 받아준다는 점이 의외긴 하다. 무시하진 않네?
"부장님이요? 무슨 일을? 리버티 일이에요? 아니면..."
리버티에 관한 일? 코드에 관한 일? 어느쪽이든 철준이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기정사실화 된 것 같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이런 사람과 적으로 마주하는 건 사양이다. 봄의 그 일도, 최근 가을의 그 일도 리라의 뼛속에 아직 두려운 기억으로 각인되어 잔류 중이었으니까.
"네? 아니, 근데 그걸 들었어요? 귀가 되게 좋으시네요."
그런데, 그런데 이건 좀 억울하다! 리라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가 제 가방을 도로 뒤적여 새 고양이 트릿 통을 꺼냈다. 500ml 생수통보다 조금 더 크고 넓은 직사각형 모양의 통에는 간식이 꽉 차 있었지만, 리라는 손가락을 벌려 개중에 정확히 절반을 짚었다. 집고양이의 간식 양으로는 적다고 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이다.
"키우는 건 맞는데요, 아무리 예뻐한다고 해도 어젯밤에 간식을 이만큼이나 먹은 애한테 또 주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남은 간식의 거의 전부를 털어 먹었다고요. 물론 제가 실수한 것도 있는데... 아무튼 떼를 쓴다고 달라는 대로 줄 순 없잖아요. 고양이는 통통해도 귀엽지만 너무 통통해지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
그렇지만 철준의 말도 옳다. 섭섭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는데. 아, 하지만 건강이 나빠지면 그게 더 문제라고! 짧은 내적 갈등을 지나보낸 후 도로 트릿을 가방에 넣으려던 리라의 눈에 또다시 문제의 노트가 밟힌다.
"그래도 마침 잘 만났네요. 이걸 편지로라도 보내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잠깐 드릴 게 있는데. 여쭤볼 것도 좀 있고."
트릿 통을 가방에 꽂은 리라는 이윽고 노란색 커버의 노트를 꺼내든다. 그리고, 그 안에 책갈피처럼 끼워져 있던 낡은 사진을 꺼내 철준에게 건넸다. 류빈과 함께 찍은 철준의 목화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바쁘면 가셔도 되지만 그래도 이건 가져가세요. 노트 내용을 읽고,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여러번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강철준 씨가 가지고 계시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물론 이것을 임무로 봐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철준에게는 임무로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따라서 자신의 입으로 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철준은 분명하게 밝혔다. 아마 다시 물어도 철준이 제대로 가르쳐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짜증을 냈으면 내지 않았을까? 물론 실제로 물어본다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리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철준의 눈은 자연스럽게 그녀가 꺼낸 트릿 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혀를 찬 후에 그는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당연히 안되지. 그 정도로 많이 먹었으면 오늘내일은 간식 주지 마. 그건 섭섭해해도 어쩔 수 없어. 고양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은 있을 수 있지만, 있는대로 다 주면 버릇도 나빠지고 건강도 나빠져. 안돼. 단호하게 거절하고 섭섭해해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대신 많이 놀아줘. 운동 많이 시키고. 그거 있잖아. 낚시대 흔드는 거. 그거 가지고 많이 놀아줘. 간식 생각 못하게."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사실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철준다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애초에 그의 입에서 사과가 나오는 일이 있긴 할까. 그런 의문을 누군가가 품어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그는 리라가 내미는 졸업 사진을 바라봤다. 그 사진을 조용히 바라보던 그는 눈을 꽉 감고 한숨을 내쉬더니, 그 상태에서 사진을 뺏어가듯이 가져간 후에,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사진이군. 핫. 다시는 볼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여줘서 안 좋은 기억만 떠오르잖아. 진짜. 짜증나게. ....그래서 뭐. 뭘 물어보려는건데? 임무에 대해서는 답할 생각 없으니까 묻지 말고. 시간 낭비해서 좋을 거 없잖아. 나도 애새끼가 알려줄 마음 없는 거, 계속 가르쳐달라는 거 싫어."
서로 시간낭비는 하지 말자는 듯이 그렇게 선을 그으면서 그는 리라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게 아니면 내가 답할 수 있는 선에선 답해주마. 내키진 않지만, 어쨌건 너희들에게 힘을 빌려주기로 했으니 말이야. 이쪽도 성의는 보여야 맞는 거겠지."
하긴, 이런 길바닥에서 하긴 좀 민감한 이야기인가. 리라는 철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답해주기 싫다는 걸 굳이 캐물어서 화를 살 필요는 없으니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아직 용건도 꺼내지 못했으니까.
"역시 그렇죠? 아까도 이것 때문에 화내고 있었던 거예요. 편식이 있는데 이걸 유독 좋아해서... 그래도 강철준 씨 말이 맞아요. 아무리 그래도 달라는 대로 다 주면 안 되죠. 운동도 시키고 안 넘어가게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어요~ 사실 버릇 없는 건 지금도 조금 위험하긴 하거든요. 아! 그래도 원래 착한 애라 애교 수준이긴 하지만요! ...그런데 강철준 씨도 고양이 키우세요?"
뭔가... 뭔가 되게 디테일하지 않나? 기분 탓인가? 아니면 그냥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일수도 있겠다. 하긴, 고등학교 시절에도 사육부였다고 하니까. 흘러흘러 가는 의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자니 새삼 눈앞에 선 이 퍼스트클래스의 과거를 저도 모르게 많이도 들춰봤구나 싶어진다. 벽 뒤에 묻힌 그곳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그건 짜증나고 안 좋은 기억이었나요?"
주머니 속에 들어간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던 리라가 가장 먼저 꺼낸 질문은 그것이었다. 손가락 끝이 철준의 주머니를 잠시 가리킨다.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괴로운 사고였으니까. ......역시 이제 와서 끄집어내면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수습되지 않은 커리큘럼실의 먼지 쌓인 유품들. 동월과 함께 벚나무 아래 묻었던 류빈의 신발 조각. 그리고, 손조차 댈 수 없는 공간에 흩어져 있던 한때 살아있던 인간의 흔적. 그걸 차례로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져만 간다.
"제가 4학구에서 떠들어댄 내용 때문에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그 커리큘럼실이요. 벽 뒤의. 어쩌다 보니 제가 거기 들어가게 됐고, 또 어쩌다 보니 좀 자세히 알게 됐어요. 거기서 죽은 사람이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 그 사람의 주변인이 누구였는지. 뭐 그런 것들을요."
그리고 남아있는 기록 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선류빈의 주변인들은 생각보다 이리라와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강철준이 그렇고, 선경이 그렇다.
"아까 안 좋은 기억이라고 하셨죠. 그럼, 혹시 강철준 씨는 그분의 죽음을 알게 된 걸 후회하시나요?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그 사실을 잊게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잊는 게 낫다고 생각하세요?"
>>322 이 은은한 광기의 눈을 보라... 너언 좀 많이 혼나야 해 이자식 류시원 심판의날 기원 정권지르기 1일차 뚜쉬
>>327 그런 요소 하나하나까지 활용하는 서연주 리스펙이야- 음 서연이의 해석에 대한 감상이라 인첨공에 사는 사람인데도 상당히 인간적이다? 사실 양아름의 행동과 보여준 것만 해도 꺼려질만 한데 그걸 직접 해석하려 하고 이해하려는게 이색적이랄까 제공한 소재를 잘 즐겨줘서 고맙지만 한편으론 혜우보다 이 모브들이 더 인정받는 기분이라 묘해-
"안 키워. 키울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어. 그냥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도둑고양이가 몇 마리 있을 뿐이야."
고양이에게 밥은 챙겨주지만, 적어도 기르지는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밥그릇에 사료가 충분했던가? 나중에 돌아가면 그것부터 체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추가적으로 그 녀석들 건강 상태도 조만간에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케이지를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는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는 도중 리라의 말이 들려오자 그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리라를 눈에 담았다.
"...시끄러워. 내가 그때의 일을 어떻게 느끼건 네가 무슨 상관이야. 사고? 핫. 그게 사고인가."
다른 이들이 어떻게 느끼는진 몰라도 그는 그 일을 사고라고 인정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굳이 무슨 말을 더 꺼내지 않았다. 그저 짜증난다는 듯이 혀를 찰 뿐. 하지만 그러면서도 철준은 리라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벽 뒤의 커리큘럼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당연히 철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자신대로 혼자서 조사해서 진실에 도달했으니까. 그때 있었던 일. 그리고 그 이후의 일까지 모두. 그것을 알려야한다고 이야기하다가 눈을 잃은 그 날의 기억까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대를 차고 있는 자신의 눈가에 손을 올리다가 빠르게 손을 내렸다.
"시끄러워."
죽음을 알게 된 것을 후회하냐는 물음에 그는 차가운 목소리를 내면서 리라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홱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 애는 약했어. 약하니까 그렇게 된 거야. 만약 누구보다도 강했다면 그렇게 살해당하는 일은 없었겠지. 잊고 싶냐고? 아니. ...전부 죽여버릴거야. 시간을 되돌려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 죽여버리고 다 박살내버릴거야. 약한 자이기 때문에 죽은 거라면, 더욱 강한 내가 그 자식의 운명을 바꿔버리면 그만이니 말이야. 핫. 하지만 시간을 되돌아갈 순 없어. 이제 와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생각이고 대답이지."
어느 순간, 철준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팔을 떨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감정이 상당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 녀석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왜 그때 그 일을 자꾸 들먹이는거지? 퍼스트클래스는 언제쯤 폭발하는지 시험이라도 하는거냐? 응?"
"ASTC의 공간적인 부분과 시간적인 부분은.... 축의 길이를 볼 수도 있으며 차원적인..." 수경이 동백소장님을 최대한 흉내내서 말을 하는데. 진짜 미친듯 졸릴 것 같은데요. 까랑까랑한 목소리인데도 어째서..?
"네.. 요즘은 괜찮은 거 같아요." "그.. 몇가지 사안의 처리만 적절히 된다면요." 같은 반의 학생이 갑자기 전기를 쏘려 해서 놀랐다..일 뿐이니까요? 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케이스는 그으읏 거리면서 부들부들거리며 여로를 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흥. 하기만 합니다.
-흐응... 여로 씨가요? 하지만 저는 말리고 싶네요~ "그래도 이야기는 나눠 보려고요" -인터뷰가 잘려나가고 제멋대로 붙여지고 그럴 거니까 녹취랑 바디캠은 켜야해요. 기사로는 이미 나올 준비 만만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사실 이 고양이가 되어버린 것도 일종의 잠입용 테스트와 자백같은 걸 테스트해보려다가... 의 일이었을지도?
-확실한 처리는 저지먼트의 방식은 아닐걸요. -아 물론 비가역적인 상해나, 감당할 수 없는 금전적인 문제나, 살해같은 건 아니에요. 어쩌면 그것보다 더 잔인해질 수 있겠지만 뭐. 케이스는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353 새봄주 아... 그거 아직 못 정했어요 ^^;;; 일단 정보 다 수집하는 대로 녹취 파일을 혜우한테 넘겨야겠다까진 생각했는데, 나머지는 사이코메트리로 나오는 정보 보면서 생각해 보려고요. 알린다면 서연이가 주구장창 써먹었던 보고서 방식일 거 같긴 해요.
>>364 혜우주 아... 현재 상황에서 혜우는 수십 명한테 몇 년째 스토킹당하고 조롱당하고 있으니 인류애가 싹 증발하겠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데 양아름 일당은 대체 왜 저러나가 의문이라, 현재까지 서연이가 이 사건으로 직접 대면한 쪽은 양아름이라 서술이 그렇게 나온 거 같아요👀👀👀 수집한 증거들 혜우한테 넘기고 싶은데(혜우가 고소 같은 법적 조치를 동원할 생각이 없다는 걸 저는 알지만 서연이는 모르니까요^c^;;;; ) 혜우에 대한 소감은 그때 차근차근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청윤 샹그릴라 사태가 일단락 된 뒤에도 여전히 열화되거나 마음대로 개량한 샹그릴라를 유통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샹그릴라를 제조했던 그림자가 전부 포획된 것도 아니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강함이란 크나큰 유혹이니까, 부작용을 아는 이들은 절대 섭취하지 않겠지만 잘 모르거나 알고 있더라도 힘에 대한 갈망이 우선인 이들은 차고 넘친다.
그렇기에 여전히 관련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그리고 그 위치가 3학구 목화고 근처라면 저지먼트는 출동할 수밖에.
그래서 지금 랑은 샹그릴라가 보관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하나 찾아내 대기 중이다. 혼자 진입해도 좋겠지만 지원이 있으면 더 좋겠다 싶어 저지먼트 톡방에 간단히 지원을 요청한 상태, 아무나 가까이 있다면 와줄 것이다.
>>384 새봄주 어디까지가 보호해야 하는 사생활이고 어디부터 공개가 가능할지... 제가 가늠을 못 하고 있는 게 문제 같아요. 내일 결과 확인한 뒤에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아요... 는 @ㅁ@ 오? 서연이 보고서가 스토리 복기에 유용하다면 작성한 보람이 있는데요!! 잘 써먹어 주셔서 감사해요오오오오 ><
>>388 태오주 태오 선배가 얼굴 없는 예술가(???)를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암시일까요? 저번에 성훈이라는 npc랑도 비슷한 얘길 했던 거 같은데요
>>390 여로주:3 >>392 태오주 잘은 모르겠지만 암튼 두 분이 응원하는 팀이 오늘 이겼단 거죠? 잘됐네요~~☆ 축하드려요!!! ><
>>393 율럭키라는 이름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율럭키라는 것을 알 방법은 특징적인 간부들 아니라면 모를 것이었다.
"샹그릴라라..."
샹그릴라의 유통 관련된 사건이라곤 해도, 이것이 율럭키와 관련이 있는 일일까? 청윤은 가장 먼저 그 생각부터 했다가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며 스스로 자책했다. 어쨌든, 샹그릴라란 것은 좋은 징조는 아니고, 공교롭게 거리도 매우 가까우니 청윤은 바로 랑의 호출에 향하기로 했다.
"차라리 마취제를 들고 다니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레시피북에 나온대로 제조한 건 있긴 한데요." -으에. 녹음은 안돼욧. 동백소장님의 악명이 더 퍼지면 곤란한걸요? 라는 말을 덧붙입니다.(하지만 동백소장님의 강의를 보고싶다면 줄수도 있고... 그 강의는 끔찍하게 졸릴 겁니다.) 그러다가 뱀에게는 뱀의 길이라는 것에 조금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을 짓습니다.
-저는 상해나 능력을 사용하는.. 그런 블랙옵스적 방식밖에 몰라서요. 기레기와 그 기레기에 동조하는 이들을 어떻게 할건지 생각하면 그낭 중독자로 만들어버릴 거 같아서 말이지요~ 라는 살벌한 말을 하다니.
"그냥 평범한 방식이 낫지 않을까요?" "쓰려고 했던 건 근본부터 바뀌어버리는 거잖아요." 그것 외에도 치러야 하는 것이 제법 되는 것이니만큼 수경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일 겁니다. 아 물론 찍어누르지 않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거였구나. 듣다 보니 찡찡이와의 첫만남이 생각나 리라는 조금 미묘한 기분이 되고 만다. 찡찡이도 그런 식으로 밥을 챙겨주다가 나무에 올라가 다친 걸 계기로 데려오게 되었는데. 전혀 맞는 구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과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건 이다지도 기묘한 경험이구나.
짧은 감상은 거기서 끝난다. 다음 이야기에 대한 반응은 보다 격렬했으므로.
"아뇨. 짜증나고 안 좋은 기억이 난다고 말씀하시길래 역시 상처를 굳이 다시 헤집는 건 좋지 않은 일일까, 같은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사고. 리라는 그제서야 제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래. 그건 사고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몰아붙여진 커리큘럼 끝에 이루어진 사망 사건이었다. 그걸 사고라고 하는 건 고인에 대한 모독이지. 리라의 시선이 철준의 안대로 가려진 눈에 가 닿는다. 서연이 읽고 전달해준 바에 따르면 저 상처도 분명 이 사건의 진상을 알고 난 뒤에 생긴 것이었지. 다만 거기에 1학구에서 읽은 정보까지 종합하자면... 저 상처도, 그리고 은폐한 의도도. 어쩌면.
이걸 말하는 게 맞을까? 그러나 제대로 고민하기도 전에 차가운 목소리가 날카롭게 내리꽂힌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사고라고 부른 건. 제가 말실수를 했어요. 그건 사고 같은 게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모든 사건 끝에 리라에게 남은 강철준의 인상은 '두려운 사람' 이다. 은우의 목을 붙잡고 있던 그 봄의 기억도, 모두를 죽일 뻔했던 4학구의 기억도, 그리고 지금 이런 발언이 모두 그렇다. 조금은 대화고 뭐고 놓아버리고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하지만.
"......결국 잊는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네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실을 알게 된 걸 후회하지는 않으시는 거죠?"
기억하고 되새김으로서 괴로워져도 잊는다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리라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철준을 마주보았다.
"이걸 여쭤본 이유는, 그분과 가깝지만 아직까지 그분의 죽음을 모르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선류빈 씨의 어머니죠. 3학구에 있는 선 아녜스 아동 청소년 복지 센터의 대표직을 맡고 계세요."
어쩌면 철준에게도 그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아녜스' 라는 것은 과거 류빈이 사육부 토끼에게 지어준 이름 중 하나였으니까.
"저의 상담 선생님이기도 하세요. 그리고 그분은... 선생님은, 아직 따님의 생사를 몰라요. 그 일에 얽힌 자세한 사정도 모르고요. 지금까지도 계속 나름의 방식으로 선류빈 씨의 행적을 쫓고 계신 것 같아요. 잘 되진 않는 것 같지만."
그래서 고민했어요. 살아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부수지 말아야 하는지, 잔인하더라도 진실을 알려드려야 하는지. 낮게 중얼거리는 리라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전 최종적으로 묻혀버린 그 일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그게 발견한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진실을 모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망설여지더라고요. ...강철준 씨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의견을 여쭤보고 싶었어요. 어느 쪽이 옳은 일인지. 진실을 밝히는 게 맞는지, 그렇지 않는 게 맞는지. 어떤 게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나은 방향일지."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 그 어떤 것도 참고 견뎠고, 터질 것 같은 울분을 꾹 참으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기에 철준은 그 진실을 알게 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 애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 물론 자신이 졸업한 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현실적으로 철준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분통이 터지는 것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시간을 돌려서 돌아갈 수 있다면... 역시 자신은 모든 것을 박살내지 않았을까. 자신의 이명처럼. 철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인가. 그 와중에 아녜스라. 핫.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
하필 이름을 지어도 그걸로. 괜히 머리를 북북 긁으면서 그는 그녀의 다음 물음. 자신의 상담 선생님인 그 사람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 좋을지,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지. 그것을 묻고 싶다는 그 말에 철준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답은 철준도 쉽사리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때로는 알리지 않는 것이 당사자에게 좋을 수도 있었고, 그때의 일은 그 영역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철준이 내놓은 답은 그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알리는 것이 좋겠지. 발견한 사람의 의무를 떠나서... 덧없고 찾을 수 없는 희망을 쫓는 이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그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사람 마음 속에 있던 희망은 점점 사라질테고 결국 절망의 영역에 이르게 될테지. 그렇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후회 뿐이야. 내가 조금만 더 찾았으면...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이런 식으로 계속 생각하기 마련이지."
물론 철준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제대로 마주한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하는 말은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철준의 가치관 속에서 나오는 말들이었다.
"진실을 알았을 때 가슴이 찢어질지도 모르지만... 결국 희망을 찾지 못하고 절망의 영역에 들어서서 후회하고 자신을 평생 원망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물론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그건 남이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하지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덧없는 희망을 쫓다가 절망할바에는 차라리 희망을 더 이상 쫓지 않고 진실을 듣고 판단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말을 마친 후, 그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주변에 들릴 정도로 크게 한숨을 후우 내뱉은 후 다시 고개를 내려 리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 문제에 뭐가 옳냐는 없어.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가치관 속에서 나온 내 생각일 뿐이고... 네가 따르고 싶지 않다면 네가 마음대로 해. 덧없는 희망을 계속 쫓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이도 있는 법이고 나는 그런 족속들과 말싸움 할 생각 없으니까."
이어 그는 잠시 말을 끊더니 주머니에 넣었던 사진을 끄집어냈고, 그 사진 속에 담긴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다시 사진을 주머니 속에 쑤셔넣었다.
"...만약 말한다면 이 말은 전해둬라. 그 애는 설사 자신이 그렇게 되었어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녀석이라고. 부모도 다른 이도 말이야. ...약해빠진 주제에 바보같이 착하기나 해서는... 칫."
시간이 지날쑤록 더 인원이 쌓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을 테니 언젠가는 빠져나가는 사람이 생기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손가락을 푸는 청윤이 자신의 신호를 따라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해오자. 랑은 그렇게 하자며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입구에 지키는 사람은 없고, 안에는 인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는 느낌.
랑은 닫혀 있는 문을 쳐다보다가 청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람이 없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다. 애초에 속임수였을지도 몰라."
일단은 돌입할까.
"셋 하면 문을 걷어찰 테니까 천천히 밀고 들어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랑은 문을 걷어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경첩이 떨어진 문이 쓰러지며 크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랑은 턱, 하고 쓰러진 문짝 위에 발을 올리곤, 문이 박살나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스킬아웃들을 쳐다보며 입을 움직였다.
"셋." "뭐해! 조져!"
문 아래에 깔려 기절한 스킬 아웃 외에, 족히 십수명은 되어 보이는 스킬 아웃 중 한 명이 소리치는 게 들린다.
눈을 감고 생각하는 철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리라는 이어지는 말에 뭐라고 형용하지 못할 감정을 느낀다. 여러 가지의 감정이 순차적으로 휘몰아치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리라가 가장 처음 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그랬고, 이어지는 말이 논리정연하다는 게 그랬다.
"...진실을 알려주는 게 그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물론 알아야 할 권리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가 실제로 알게 되면서 받을 충격을 상상하면 두려움이 앞섰거든요."
그런가. 구하는 일일까. 희망을 찾지 못하고 예정된 절망의 수렁에 빠질 사람을 건져내는 일일까. 리라는 하늘을 바라보는 철준을 따라 시선을 올린다.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서, 조금만 주의를 집중한다면 이 마천루의 도시에서도 별 한 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윽고 시선을 내린 철준과 눈을 맞춘 리라는 맑게 웃어보인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강철준 씨. 때가 온다면 그 말도 꼭 전해드릴게요."
물론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있다. 선류빈의 유품을 그곳에서 빼내 와야 하고, 빼내온 후에는 말을 잘 골라 유품과 함께 건네야 한다. 그 다음 선경에게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도 지금으로선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진실을 알았음에도 그것 자체로는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기에, 그리고 그 사람이 판단할 기회를 주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말했기에 행동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게 참 고마웠다.
"저, 선경 선생님께 말씀드린 후에는 그 일 자체를 재조명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쉽지 않겠죠. 오래된 일이고, 그 정도 규모의 일을 묻어버릴 만한 배후를 상대하는 것도 어려울 테니까요. 무엇보다 지금은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 없어서 어렵겠고요. 하지만, 만약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끝난다면 언젠가는 다시 이 일을 함께 세상에 알려보지 않으실래요?"
이제와서 이런 행동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철준도 더 이상 이 일을 알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니까. 그러니까, 만약 언젠가— 가 실재하게 된다면.
아주 오래전에 잘못된 일을 다시 옳은 쪽으로 옮겨놓고자 하는 하찮은 행위라도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리라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리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반가운 주제도 아닌 데다가 뜬금없는 소리였을 텐데... 헤헤. 아, 혹시 저희 측에 궁금하신 거나 따로 필요하신 게 있으실까요? 할 수 있는 선에선 보답하고 싶어서요."
"소름 끼치는 말 하지 마. ...네 녀석에게 감사 인사 들을 일 없어. 정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면 네 주변 사람들에게나 오늘도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감사인사나 하고 돌아다녀. 나에겐 하지 말고. 칫."
강하게 혀를 차면서 철준은 훠이훠이 하는 느낌으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단순히 부끄럽거나 쑥스러워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들을 이유가 없고, 들을 마음도 없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소름이 돋는다는 듯이 그는 으으 소리를 내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평소에 감사 인사를 잘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센 척 하는 것인진 오직 그만이 알 일이었다.
"......"
진실을 말한 후에는 이 일 자체를 재조명하고 싶다. 그러니까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끝난다면 함께 세상에 알리지 않겠냐는 물음에 철준은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리라를 바라봤다.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서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른발로 땅을 콕콕 찍더니 이내 몇 번이나 혀를 차면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다시 뜬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이야기했다.
"...네 녀석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진 알고 있는거냐? 네 녀석이 하는 말은 인첨공 그 자체를 상대하고 인첨공의 어둠을 그대로 공표하고 밝히겠다는 말이야. 뒈지지 않을 자신이라도 있는거냐? 너 같이 약한 녀석이? 하찮은 도덕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라면 집어치워. 진짜로 뒈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말은 거칠었지만 결국엔 목숨이 위험하니까 이상한 일은 하지 마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철준은 자신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녀가 멈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가치관이나 정의론을 내세워서 반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그것까지 하지 마라고 할 생각은 그에겐 없었다. 이어 그는 다시 훠이훠이 손짓했다.
"없어. 필요한 것 말이야. 다 필요없으니까 편지 적당히 보내고, 수박같은 거 보내지 마. 뜬금없으니까. 그런 것을 줄 여유가 있다면 내가 아니라 다른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나 나눠줘. ...진짜로 중요한 이는 어느 순간 갑자기 확 사라지는 법이니까. ...특히 너희처럼 필요 이상으로 어둠과 싸우려고 하는 이들은 더더욱 말이야. ...뭐, 그래도 학교 후배니까 뒈지지 않게 나름대로 신경은 써주겠지만..."
거기서 잠시 말을 끊던 그는 눈빛을 날카롭게 바꾸었다. 그리고 리라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자신과 각오는 다진거냐? 그 진실을 공표하고 인첨공 그 자체의 어둠을 폭로할 자신과 각오가 말이야.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것 뿐이야."
핸드폰 액정을 끄고, 탕비실 한구석에서 연심차를 꺼내 뜨거운 물에 우려 한모금 넘겼다. 당연스럽게도 진한 쓴 맛이 미뢰를 덮쳤지만, 플라시보 효과 때문인지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진실을 알았지만, 달라질 건 없다. 일방 폭행이 한 쪽 과실이 더 큰 쌍방 과실이 된 것 뿐이다. 양아름이 아직 아무 처분도 받지 않았듯 혜우 역시 그럴 것이다. 무엇보다도 혜우는 저지먼트에 있어 귀한 인력이다. 언제 박찬유가 우릴 죽이려 들 지 모르는 상황이니 더더욱 그렇다.
애초에, 받아들일 때도 된 것 같다.
저지먼트라고 해서 과정이나 수단 모두에서 정의만을 지향하는 집단은 아니라는 것을.
저지먼트가 정의롭지 않은 수단과 과정을 일절 배제하는 집단이었다면 정인 선생님이 물리적 위협을 당하시고, 리라 언니가 박쥐 공격으로 소문을 틀어막는 강경책을 쓰고, 태오 선배가 치정 문제로 담당 연구원에게 자해를 하며, 월광고의 저지먼트 소속 학생(무슨 민우였더라)이 리버티가 되는 일이 있었겠는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서형의 사건 때 서형도 그 수박들에게 총으로 (실탄총이 아니고 테이저건이겠지만) 협박하고, 랑 선배도 폭력으로 대응하셨던 것 같고. (팔이 안쪽으로 굽어선가, 무심코 그럴만한 일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부터 들어버리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적들을 숱하게 달콤하게... 아니 강제로 입고 있는 옷을 먹을 것으로 만들어 망가뜨리거나 없애버리고도 아무런 탈이 없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긴 하고 말이지.
물론 이번 주말에도 전투가 있다면 그 수단부터 적극 써먹을 거라 누가 그걸로 비난한다면 할 말이 없다. 옯고 그름 이전의 생존의 문제니까. 다른 사람들도 입장은 비슷하겠지.
그러니, 나도 정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 집단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활동할 지를.
...잠깐만. 지금 손쉽게 할 수 있는게 있겠는데?
나는 청소용구 함에서 빗자루를 들고 먼지를 싹싹 긁어모았다. 부실부터 탕비실까지 구석구석 꼼꼼히 쓸으니 세주먹은 나온것같다. 그 먼지에 빈 과자봉지와 작은 페트병까지 합해서 동그란 미니 버터쿠키를 잔뜩 만들고, 어느새 텅 비어있는 "미운떡" 바구니에 담았다. (물론, 멀쩡하게 잘 만들었는지 맛보는 것도 잊지 않고.) 그런 뒤, 이 쿠키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사진 두장을 짤막한 글과 함께 단톡방에 올렸다.
@저지먼트 단톡방 [<미운 사람을 위한 떡>이 오랜만에 업데이트 됐어요!] [이번 미운떡은 미니 버터쿠키입니다><] [우리 부실 곳곳을 쓸어 모은 먼지와 빈 과자봉지와 페트병으로 만들었어요!] [이번 미운떡은 매일매일 생산할 예정이니 많은 이용 부탁드려요!><]
그 정도로 싫어할 일인가. 리라의 고개가 살짝 모로 기울어졌다. 그저 감사 인사일 뿐인데 왜 이렇게 싫어하지. 애초에 우린 지금 적도 아니고, 정말 감사할 만한 말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을 뿐인데. 아니면 혹시 낯선 건가? 감사 인사가?
"그것도 하고 이것도 하면 되죠, 뭐! 애초에 강철준 씨가 고마운 말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한 건데 다른 사람한테 가서 말하면 소용이 없지 않을까요?"
꼭 받아달라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다고요~ 조금 가벼워진 음성이 웃음기 띈 채 흘러간다. 다만 이어지는 대꾸에는 리라의 목소리도 다시 진중함을 찾는다. 무슨 의미인지 아냐고.
"알아요. 무슨 의미인지. 그래서 죽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고요. 아니, 살 거예요. 죽으면 안 될 이유가 있으니까. 사실 강철준 씨 말씀대로 제일 안전한 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진실을 알린 뒤 여태까지 이 세상이 그래왔던 것처럼 침묵하는 거겠죠. 하지만... 글쎄요. 제 마음이 정말 하찮은 도덕심일 뿐일까요?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걸 본 이상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하나만은 분명히 알아요. 외면하면 한평생 손톱 아래 박힌 가시처럼 신경 쓰이겠죠."
무엇보다 인첨공의 어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이미 하고 있지 않나. 물론 다같이 덤벼드는 것과 혼자 파헤치는 건 한참 다르지만, 행위 자체야 익숙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다라. 네. 이미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더더욱 그래볼게요. 수박도 안 보내고요. 근데 강철준 씨는 수박을 받으셨어요? 누구한테요? 특이한 선물이네."
다만 이 말은 뜻하게 않게도 조금 무겁다. 리라는 제 손목에 늘 걸려 있는 붉은색 실 팔찌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로 철준에게 시선을 두었다. 날카로운 적색 눈동자와 연한 라벤더색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부딪힌다.
대답은 한 모금의 호흡이 지나간 후에야 혀 끝에서 튕긴다.
"네. 각오됐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 또한 코뿔소니까요."
두 팔이 없다면 얼마나 무능해질지 알 수 없는,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작은 성냥 한 개비로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위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쉽게 약해질 수 있는 초능력자지만. 잘 무너지고 휘청거리는 평범한 마음의 사람일 뿐이지만.
"게다가 아까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진실은 언제나 거짓된 것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각오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음~ 그리고 역시 조언만 홀랑 받고 끝나는 건 좀 양심에 걸린달까... 수박이 별로라면 이건 어떠세요?"
직후, 짧게 고민하던 리라는 주머니에서 포스트잇을 꺼내 작은 상자를 하나 그린 뒤 트릿 통을 다시 꺼내어 만들어낸 상자에 트릿을 일부 나눠 담는다. 그리고 상자의 뚜껑을 덮은 후, 철준에게 그것을 건넸다.
"별로 인상적이거나 특별한 선물은 아니지만 아마 강철준 씨 댁에 들르는 고양이들은 좋아할 거예요."
"흥. 정말 뜬금없다 못해 대체 뭘 하고 싶은건지 모를 선물이었지. 덕분에 대원들과 수박은 시원하게 먹었지만 말이야."
아직도 대체 왜 자신에게 수박을 보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철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굳이 이유를 물을 생각은 없었다. 악의가 없었으면 된거지. 일단 그렇게 넘기기로 하며 그는 괜히 혀를 찼다. 어쩌면 이것은 그의 습관이 아니었을까? 한편, 각오가 되었다는 그 말에 철준은 조용히 리라를 바라봤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괜히 도리도리 저었다.
"막상 위험하고 무서운 순간에 네 녀석이 먹은 그 각오라는 것이 허상이 아니길 빌어주지."
마치 별 기대는 안한다는 듯이 정말로 가볍게 말하며 철준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아무래도 아직 저지먼트는 그의 신뢰를 받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가 다른 이들을 기본적으로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까? 워낙 이것저것 많은 것을 본 그였기에... 강함을 추구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믿음 자체가 없는 그였기에...
"그림을 실체화하는 능력이냐. 리얼리티 계열이겠군. 최근에 리얼리티 계열의 녀석에게 참으로 하찮기 짝이 없는 골탕을 먹었는데...네 녀석도 그런 것을 준비한 것이 아니길 바라지. 나는 상관없지만 고양이에게는 죄가 없으니 말이야."
리라가 주는 트릿 통을 받은 후에 그는 그것을 아주 가볍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서 공중에 띄웠다. 물론 중력을 이용해서 올린 것에 가까웠기에 트릿 통은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둥둥 떠있다 모습에 가까웠다.
"네 녀석이 죽던지 말던지 나하고는 상관없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죽지 마라. ...같은 학교 후배가 뒈져버리는 것은 역시 영 내키지 않으니 말이야. 임무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학생들은 이런 어둠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연애도 하고, 놀기도 놀고, 공부도 하고, 땡땡이도 치고, 동물도 기르고 그렇게 살아야하는 법이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지, 요즘은 네 녀석 같은 애새끼들이 인첨공을 위해서니 뭐니하는 명분으로 전쟁놀이를 하고 있지만 말이야."
마치 리버티를 저격하듯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철준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가볍게 그녀를 향해 손만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럼 조만간에 보자. ...좋건 싫건 또 만나게 될거다. 싫어도 어쩔 수 없어. 네 녀석들이 참아."
/슬슬 잘 시간이 다가오는고로 일단 막레 비슷하게 쓰긴 했는데...좀 더 잇고 싶다면 이어도 괜찮아요!
로벨 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는_니삭스파_스타킹파_레깅스파_맨다리파 후. 너무 고민되긴 합니다만 이분은 보통은 맨다리일걸요. 가끔 오버니삭스나 니삭스+가터벨트로 절대영역 보이며 꿀벅지를 강조할수도 있긴 한데.
자캐의_가사_능력치 능력 없으면(청소나 정리정돈은 능력 덕분에 괜찮은데) 처참하다. 이분은 요리 잘 못해요.(?)
짝사랑하던_사람의_결혼식에_간_자캐 어쩌면 어딘가의 만약으로 아버님이 다른 여자랑 결혼했다면... 으로 생각하면 딱히 이상한 옷을 입거나 그러지는 않고 어딘가 허무한 듯함을 느끼지만 그것을 잘 모르고 연이 끊기고.. 깨닫지 못한 채로.. 일지도요. 약간 사진을 보고 기묘한 감상을 느끼기에 사진을 깊이 묻어뒀을지도.
>>0 금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자정이 넘은 새벽이었다. 빛 한 줌 들어오지 못하게 쳐둔 암막 커튼으로 방 내부는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는 차가운 초침 소리만 째깍거렸다. 금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허청허청 창가로 다가가 섰다. 암막 커튼을 살짝 펼쳐 밖을 내다보면, 거리에 깔려있는 어둠에 자신이 잠을 얼마나 잔 건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때 무언가 움직이 느껴져 보면, 한 사람이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다른 이를 부축하며 지나가는 것을 보고서 금은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리고, 너무 많은 사건을 겪은 지금에서. 눈을 뜰 때마다 무슨 사건이 생기진 않을까. 감시하는 사람이 붙은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일상을 보내면서도 가끔은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가 많았다. 금은 냉장고에서 꺼낸 물로 목을 축였다. 차가운 물이 남은 잠을 깨우고, 날카로운 신경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다. 정말 불과 몇 개월 전이 아득하다. 지금까지 겪은 모든 사건들은 아무런 경고도 없었고, 그것이 어떤 결과가 될지는 자신도, 주변의 다른 이들도 알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재앙의 전조였음을. 더 좋은 미래를 염원하나 막상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은 힘겨운 악몽일 뿐이라는 것에 금은 두통을 느꼈다.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만 들려오는 것이었으니.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금은 항공 점퍼를 걸쳐 입고서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렇게 닥쳐오는 재앙이야,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떠올리면 마냥 재앙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금의 담당 연구원인 안라는 커리큘럼 훈련에 열중하는 금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디서 다친 건지 모르는 잔상처, 타박상이 늘어 오기도 했고, 제 능력 탓에 약한 화상에 입은 채 치료 해달라며 찾아오곤 했을까.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 것인지. 위험한 일은 안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금이 두 타깃을 동시에 불태우면, 안라는 소화액 버튼을 누르고서 마이크를 통해 금을 불렀다.
>>299 양아름과 천혜우가 나온 중학교는 막말로라도 좋은 학교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인첨공 내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혹은 인첨공에 갓 들어왔으나 개화도 성장도 못 한 열등생들이 주로 모이는 그런 학교였다.
학교가 그렇다보니, 서연이 만난 교사들 역시 하나같이 심드렁하고 건성으로 보였으며 서연이 인형을 동원해 키들을 빼돌린 후에도 소란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성장 기미가 없는 건 학생들 뿐만이 아닌 학교임이 여실했다.
덕분에 서연이 교내를 돌아다니며 조사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각각의 공간을 사이코메트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학년 교실 및 복도] 학기 초부터 겉도는 천혜우의 모습이 비친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으며 오로지 수업 외에는 자리에서 이동하는 것도 드물다. 종종 점심시간 즈음 일어나 조퇴한 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색이 굉장히 좋지 않으며 가끔 수업 중에도 마스크를 쓴 채 엎드린 모습도 있다. 결석했는지 자리가 하루종일 빈 날도 있다.
2학기 쯤부터 교실과 복도에서 잡담하던 여자애들 입소문에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이 때까지는 그거 들었어? 정도의 가벼운 잡담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2학년 교실 및 복도] 양아름과 천혜우가 같은 반에 배치된다. 학기 초는 전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학교 생활 역시 1학년 때보다는 덜하지만 비슷하다.
시간상 5월쯤부터 양아름이 천혜우를 적대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1학년 때와는 비교되지 않는 수군거림이 동반된다.
복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뒷담과 앞담의 빈도가 늘어간다. 양아름은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서슴없이 떠들며 천혜우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지나간다. 그 뒤로 나즈막한 욕설들이 따라붙는다. 분위기 만으로 악의가 쌓이는 것이 느껴진다.
[3학년 교실 및 복도] 2학년 때와 인원의 구성이 같다. 완전히 고립된 천혜우와 고립시키는 무리, 방관하는 나머지로 형성되어있다. 천혜우의 학교 생활은 여전히 거의 변함이 없으나 양아름의 행동은 상당히 악질이다.
책상을 창 밖으로 던져놓거나 물건을 숨기고 버리거나 쓰레기로 범벅을 해놓거나 상한 우유를 부어놓거나 미리 나사를 빼놓아 앉는 순간 붕괴하게 만들거나 교실에 달리 보는 이가 없으면 책상 째로 밀어서 벽에 밀치기도 한다.
교실 내의 분위기는 이 모든 것을 방관한다. 교사조차도 개입하지 않는다.
복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시점에선 같은 반과 양아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동급생들이 동참하거나 방관한다. 미약한 능력들이 잡다하게 천혜우를 괴롭힌다. 천혜우는 반항도 저항도 없이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갈 길 만을 간다.
[보건실] 긴 시간 여러 학생들이 이용한다. 그 중 천혜우가 들어와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제법 잦다. 단순히 컨디션 악화로 온 것으로 보일 때가 있는가 하면 뭔가를 뒤집어 썼거나 가벼운 찰과상 등을 입고 온 모습도 있다. 보건 선생이 뭔가 물어도 천혜우는 대답하지 않는다.
[도서실, 방송실] 주로 방관하는 학생들이 있는 장소다. 그들은 천혜우에 대한 악질적인 소문에 동참하지는 않으나 그것의 언급을 꺼리며 쉬쉬한다. 천혜우의 존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간혹 의문을 비치는 학생이 있으나 깊이 다뤄지지 않고 흘려보내진다.
도서실의 경우, 서가와 서가 사이,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자리에 천혜우가 앉아있는 모습이 여럿 비친다. 보이는 빈도수는 학년을 거듭할수록 늘어난다. 머무르는 시간 역시 학년을 거듭할 수록 늘어난다. 간혹 웅크린 채 떨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강당, 미술실, 음악실, 과학실] 주로 관련 수업과 부활동에 이용된 장소다. 교실에서보다는 분위기가 덜하지만 고립되고 고립시키는 분위기가 확실하다. 관련 수업 교사들 역시 분위기를 주의줄 뿐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강당의 경우, 천혜우는 거의 모든 실습 수업을 참관만 한다. 참관 중 고의임이 분명한 행동으로 공에 맞거나 바닥에 고꾸라지거나 한다. 수업 후 도구 정리를 혼자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과정에서 도구를 이용해 괴롭혀지는 장면도 보인다.
미술실, 음악실의 경우, 실기 평가 중에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것도 있다. 작품을 실수라는 명목으로 망가뜨리거나 악기를 사전에 망가뜨린다.
과학실의 경우, 파손에 취약한 도구를 다룰 때 일부러 방해한다. 이 결과 도구가 파손되어 주의받는 것은 천혜우다.
[체육 창고] 체육 수업의 연장선과 남자 관련 소문의 시발점인 장소다. 도구 정리 중 괴롭힘이 다수 포착된다. 그 중, 천혜우가 운동장 등 실외 수업 후 사용한 도구를 가져다 둘 때, 누군가 고의적으로 문을 닫고 잠가 나가지 못 하게 된다. 몇 번 문을 두드려 보지만 열리지 않는다. 문 앞에 앉아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쓰러진다.
창고 밖의 경우, 양아름을 포함한 여학생 서넛이 키득대며 문을 닫고 쇠막대 같은 것으로 문을 고정시켜버린다. 다음 날 아침, 체육 선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문을 열었다가 쓰러진 천혜우를 들처업어 데려간다.
비슷한 괴롭힘이 2년여간 반복된다.
창고 바깥의 근처에서 천혜우의 모습이 잡힌다. 3년여에 걸쳐 꽤 자주 보이는데 매번 다른 남학생 한 명 혹은 둘셋과 함께다. 남학생들 중에는 진지하게 고백하는 이들이 있으나 딱 봐도 불순한 목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천혜우는 그 모두에게 허리를 깊숙히 숙여 거절한다.
양아름이 앙심을 품게 된 상대 역시 이곳이다. 5월 초순 쯤, 번듯하게 생긴 남학생이 양아름과 천혜우의 외모를 비교하며 환심을 사려는 듯한 대사를 하나 천혜우는 거절과 침묵으로 일관한다. 남학생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으며 사라진다.
그 외로 남학생들만 모일 때도 있다. 그 때마다 한 번씩은 천혜우에 대한 추잡한 소리들이 나온다.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한 작당모의도 있다.
[급식실] 유일하게 별다른 접점이 없는 장소다. 천혜우는 3년여동안 급식실에 오지 않는다. 양아름과 그 패거리만이 식사 시간마다 모여서 떠들썩하게 식사하며 온갖 잡담을 떨어댄다. 그 중 태반이 천혜우를 겨냥한 뒷담이며 욕이다.
오며 가며 듣는 타 학생들은 못 들은 척 그냥 지나가고 교사들 또한 시끄러우니 조용히 하라는 말 외에는 하지 않는다.
[건물 밖 인적 드문 공터] 남자 관련 소문의 장소 중 한 곳이며 불량 학생들의 집합지인 장소다.
체육 창고와 마찬가지로 고백의 명목으로 불려나온 천혜우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이 시점엔 남학생 측도 괴롭힘의 일환으로 불린 학생이 몇몇 보인다. 이곳에서 또한 모든 고백을 거절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남학생들이 동류의 여학생들과 모여 담배를 태우면서 떠든다. 듣기만으로도 추잡하고 불쾌한 잡담들을 하며 낄낄댄다.
[계단] 무수히 많은 학생들과 교사들이 오가는 장소다. 각 학년의 복도와 마찬가지로 오가는 천혜우를 향한 앞담과 약간의 괴롭힘이 있다. 괴롭힘으로 인해 몇 개의 계단을 구르거나 발을 삐끗하거나 어디선가 진득한 액체 덩어리 같은게 날아와 머리와 옷을 더럽히기도 한다. 교사가 지나가다 목격해도 천혜우에게 주의를 주거나 청소를 시키고 지나갈 뿐이다. 그 뒤 묵묵히 지나가는 천혜우로 이어진다.
[수돗가] 야외 수업 후 가벼운 세안을 하거나 청소 시간에 걸레빨이를 하러 나오는 장소다. 어느 오후 수업 후, 수도꼭지가 저절로 돌아가더니 손을 씻기 위해 가까이 간 천혜우에게 물줄기가 뻗친다. 능력적 강압이 있는건지 물줄기에 맞은 천혜우가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수돗가 반대편에서 양아름을 포함한 몇몇 여자애들이 보란듯이 웃고 있다.
어느 청소 시간, 대걸레를 세척하러 간 천혜우에게 양동이 하나가 엎어진다. 머리 위에서부터 떨어진 양동이는 구정물을 한가득 쏟아내고 양동이 모서리가 이마를 치고 지나가 그 자리부터 붉게 번진다. 역시나 양아름을 포함한 패거리가 웃으며 지나간다. 일부러 천혜우의 옆을 지나가며 들으란 듯 모욕적이고 추잡한 욕설을 한 마디씩 내뱉는다.
천혜우는 어느 상황에서도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다가, 혹은 일어서서, 주변을 정리한 후 돌아간다. 수돗가에서는 위와 같은 일이 2년간 번갈아가며 거의 매일같이 일어난다.
서연이 조사한 정보의 양은 매우 방대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시간 안에 담긴 정황들의 빈도수가 상당했다. 빈도 뿐일까, 어떻게 이런 처사를 받고도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지 싶은 정황들 뿐이었다.
그 모든 장면 속에서 천혜우에게 양아름이 주장하고 비공계 속 타래들이 말하던 부정함 따윈 없었다. 점점 창백해져 가던 낯빛과, 죽어가는 눈빛과, 잦아지던 조퇴와 결석 일수 뿐이었다.
그저 진상을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기엔, 현실은 너무나 지독했다. 그러나 이미 알아버렸으니, 몰랐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음이라.
거하게 일 하나 쳤으니 한동안 학교가 시끄러워지겠거니 했는데 다음 날 등교하니 예상보다 훨씬 조용했다. 혹시나 학교 차원에서 뭔가 했나 싶었지만, 알고보니 당일날 소문을 자제시키는 현상이 있었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소문 얘기를 하면 뭔가가 날아와서 물었다던가.
그러고보니 반에 얼굴 이상한 애들이 여럿 있었다. 특히, 양아름과 그 가까이 지내던 애들이 그랬다.
그 애들은 그런 일이 있고도 멀쩡히, 태연히 등교한 나를 보고 질림과 혐오가 동시에 담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대놓고 욕하거나 또 시비를 걸어오진 않았다. 덕분에 오전 시간을 별 일 없이 보냈다.
뭐- 대부분 교무실에서 담임과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얘기했지만.
어떻게 해줄까 라는 담임의 물음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담임은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재차 물었고 확실하게, 번복하지 않고 다시 대답했다.
그 대답 하나로 한 오후를 들썩였던 사건은 정리되었다. 그러나 이미 퍼진 소문은 막을 길이 없으니, 조심하란 담임의 말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게 목적이었으니 조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는 걸 나 말고 또 누가 알까 싶지만.
일이 정리되었으니 이제-
점심시간이 되어 교실로 돌아왔다. 중학교 시절처럼 나를 피하는 학생들을 피해 내 자리에 앉아 폰을 만졌다.
뜻하지 않은 조력을 받았으니 당장 보이는 것부터 처리할까 싶었다. 한 번에 처리하려 했다간 꼬일게 분명하니까-
[진 씨]> [이따 저녁에 시간 있어요? 4학구에 가고 싶은데]>
생각나는 대로 하나하나 풀어나가는게 좋을 것이었다. 그래, 먼저 가까운 곳부터.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났다. 예상보다 늘어난 짐을 들고 등교했다. 전날 저지른 짓 때문인지 아침부터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게 들렸지만 그러던가 말던가, 뻔뻔히 앉아 수업을 들었다. 계속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 쪽으론 시선 끝자락도 주지 않았다.
딱 3교시가 끝나자마자, 들고 온 짐 중 쇼핑백 하나를 챙겨 들고 교실을 나왔다. 쉬는 시간은 짧으니까 빨리 움직여야 했다.
바깥보다 교내가 시선 받는게 심했지만 뭐, 익숙했다. 빠르게 내 용건만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잰걸음으로 향한 곳은 2학년 교실이었다. 저지먼트 부원이기도 한 이리라의 교실이었다.
"리라 선배!"
일전과는 아마 하늘과 땅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밝은 목소리였을 것이었다. 표정 또한 그런 일이 있었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았다. 거리낌없이 교실로 들어가 리라의 책상에 쇼핑백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요즘 계속 신세만 지는 것 같아서, 답례로 준비했어요. 별 거 아니니까 사양 말고 받아주세요."
따로 구매해서 준비한 연보라 종이 쇼핑백 안에는 포슬한 주름지로 포장된 꾸러미가 셋, 투명 비닐로 감싸인 향초가 하나, 들어있었다.
https://ibb.co/Wc0b0Pk (컬러는 리라가 원하는 걸로)
꾸러미 중 두 개는 디자인이 같으나 색이 다른 체크 무늬 목도리였다. 모직 원단의 목도리는 두께가 얇지만 폭이 넓어서 겹쳐서 두르면 목도리가 되고 펼쳐서 덮으면 숄이 되는 물건이었다. 리라와 랑의 것까지 두 개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머지 하나는 목도리와 무늬를 맞춘 작은 케이프와 모자였다. 딱, 찡찡이 같은 반려동물에게 입혀주기 좋은 사이즈였다. 케이프는 똑딱 단추가 3개까지 있으니 사이즈도 편하게 바꿀 수 있어보였다.
향초는 포장 안에 두개가 겹쳐 들어 있었다. 모양 자체는 투박한 원기둥 형태였으나 초의 컬러가 포인트였다. 파스텔 무지개 그라데이션의 솜사탕 향과 하늘색과 연보라색 그라데이션의 상쾌한 플로럴 향, 이렇게 두 가지였다.
"편하게 쓰시구- 뭐 막 쓰다가 버리셔도 되요! 그럼 가볼게요-"
즉석에서 뜯어보기엔 쉬는 시간이 짧았다. 시간 날 때 천천히 보란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종종걸음으로 나가는데-
"진짜 미쳤나봐..."
누군가 참지 못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며 내 교실로 돌아갔다.
다음은 5교시가 끝난 후였다.
이번에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쇼핑백 하나를 들고 2학년 교실로 갔다. 오전과는 다른 교실로 가 뒷문에 서서 그 뒷통수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저 멀리 자리에 빨간 머리 뒷통수가 보이자, 재빠르게 다가갔다. 눈치 채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성훈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야! 오다 주웠다. 너 가져."
리라에게 줬던 것보단 작은, 크라프트지로 된 쇼핑백을 성훈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내용물은 리본이 정갈하게 묶인 얇은 상자 하나와 사각으로 각진 향초 하나가 랩핑 포장 그대로 들어 있었다.
https://ibb.co/r0Zw8qq
상자에는 모직으로 된 남성용 장갑이 들었다. 차콜 컬러에, 얇은 기모 안감이 있어 곧 올 겨울에 착용하면 딱일 물건이었다. 손 끝에 터치용 원단 처리도 확실히 되어 있었다. 성훈의 손에 아주 약간 큰 사이즈였지만 더 성장할 것을 생각하면 큰 것도 아니었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산 듯한 픽이었다.
향초는 루빅 큐브처럼 꾸며진 물건이었다. 심지가 있긴 했지만 그냥 꺼내놓기만 해도 방향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향은 흔하다면 흔한 편백나무 향이었다.
"필요 없으면 버리던가."
선배를 향한 존경이나 그런 건 씹어먹은 듯이 삐딱하게 서서 할 말만 툭 하고 돌아섰다. 그대로 나가나 싶었으나, 별안간 다시 돌아오더니 성훈의 머리에 초크를 걸려 했다. 말이 초크지, 얄팍한 팔뚝과 말랑한 가슴팍 사이에 끼고 질식시킬 듯이 누르는게 전부였다. 그래놓고 흥, 한 다음 도도하게 걸어서 교실을 나갔다.
역시나 나가는데 낄낄대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들을 필요도 없는 저급한 내용에 나 또한 킥, 웃으며 내 교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가져온 쇼핑백 중 두 개를 전달하고 남은 건 하나였다. 가장 작은 그 쇼핑백은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하교할 때까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방과 후, 학교를 나온 나는 집도 연구소도 아닌 곳으로 향했다. 저번에 성훈의 소개로 가게 된 한 카페였다.
정말로, 아는 사람만 찾아올 것 같은 위치에 있는 그 카페로 가서 안에 그- 전령이라던 여성이 있는지 확인하곤, 들어가진 않고 문을 빠끔 열어 문 안 쪽 손잡이에 쇼핑백을 걸어놓고 도망쳤다. 근래 가장 빠른 달리기였다.
제일 작았던 그 쇼핑백에는 손바닥만한 벨벳 케이스와 역시나 향초가 한 세트 들어 있었다.
https://ibb.co/8XXRbGP
벨벳 케이스는 안에 같은 벨벳으로 된 장미 초커가 두 개 들었다. 다른 장식 없이, 끈으로 둘둘 감아 메는 타입의 초커는 장미의 퀄리티에 몰두한 듯 상당히 정교한 검붉은 장미가 달려 있었다. 두 장미 사이즈가 다르니 어떻게 코디할 지는 받은 사람의 재량껏인 듯 했다.
향초는 초커와 디자인을 맞춘 듯이 장미 모양이며 향 또한 장미와 다른 꽃 향을 조합해 매혹적인 향을 내었다. 크기가 제일 큰 건 손바닥을 가득 채울 정도에 가장 작은 건 앙증맞은 꽃봉오리 모양을 한 것까지, 붉은 장미 다섯 송이가 한 케이스에 나란히 꽂혀 있었다. 그대로 꺼내만 둬도 충분히 장식과 방향제의 역할을 다할 듯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 쇼핑백에는 작은 엽서도 한 장 첨부되어 있었다.
[케이크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정갈하게 쓰인 감사 인사와 한 귀퉁이에 찍힌 파란 고양이 발도장이 내용의 전부였다. 엽서의 그림 역시 둥글게 몸을 만 러시안 블루의 고양이가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일러스트였다.
모든 '선물'을 주고자 했던 이들에게 전한 하루는 꽤나 보람찼다. 평소라면 피곤했을 오후지만, 오늘은 조금 더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폰을 꺼내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 지금부터 그 쪽으로 가겠단 약속을 잡고, 그 곳으로 향했다.
문득 불어온 가을바람이 걸음을 잠시 멈춰 세울 정도로 시렸지만 멈춘 건 아주 잠시였고, 곧 다시 걷기 시작했다. 더는 멈출 수 없는 것처럼.
>>566 성훈은 키득거리는 목소리에도 장갑을 복슬복슬 매만지고 꾹 눌린 머리를 괜히 손으로 벅벅 긁다가도, 저거 꼬리치는 거 달라지지 않는다니까? 하는 소리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리를 쳐야 하는 건 너희잖아." "뭐라는 거야?" "윤성훈이~ 네 얘기 아니야." "……레벨 올려달라 바짓가랑이 붙들며 무릎발로 기어도 모자랄 버러지들이." "뭐?" "으응, 이건 너희 얘기.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파나케이아처럼 역작도 되질 못하고 발치에서 선망만 할 녀석들이 입 잘 놀린다고." "이 x발, 너 말 다했-" "야, 야." "왜!! 저 새끼가 시비 털잖아!! 야, 아가리 놀리면 다냐? 열등생인 건 너도 똑같잖아!!" "그래서?" "그래서? 미친 새끼네, 이거." "쓰다 버릴 장난감인 너희와 주인인 내가 급이 같다고 말하고자 해?"
성훈은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식은땀에 축축해진 주먹을 숨겼다. 책상에 대충 걸터앉자 목에 걸린 연구원증이 뒤집히고, 짤랑이는 소리와 함께 금강저 장식이 흔들렸다. 성훈은 조그마한 털짐승이 제 털을 잔뜩 부풀리듯 최대한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는, 계속해서 속으로 한 생각을 새겼다.
"불만 있으면 놀까? 왜, 리버티 선망해서 내 배라도 쑤시고 싶어? 네 급이 거기서 거기인 거지. 전쟁 병기야. 연구자료로 쓸만하겠네. 그러고 보니 너, 대분류가 뭐더라."
"우리 깜찍이, 대가리를 열어도 레벨 0, 기껏 오르니 2, 레벨이 낮은 연구원이면 압도적인 상하관계라도 세우라니까 그것도 못 해서 나한테 혼나놓고." "이제야 좀 사람답게 구네, 으응. 잘-했어요. 칭찬 정도는 해줄게. 자, 머리 대." < 이후 복복복 하면서 다음엔 그러지 말고 배때지 후벼판 뒤에 말해도 돼... 너한텐 파나케이아 있잖아. 해버리겠지
3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니, 어쩌면 조금 달랐을까.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더니 박쥐를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2학년 복도까지 술렁이는 게 다 보였다. 덕분에 이리라는 모처럼 기분이 저조했다. 1학년 애 하나 데리고 물고 뜯는 게 즐거운가? 레벨 5라곤 해도 공인이 아닌 일반인을 이렇게까지 조목조목 후벼팔 일인가. 그런 식으로 작금의 상황에 대한 환멸이 싹을 틔우고 심장의 표면을 따라 무럭무럭 퍼져나갈 참이었다.
"응? 혜우 후배님?"
그런데, 혜우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그간 보여주고 들려줬던 모습들과 전혀 다른 밝은 목소리와 태도는 때에 맞지 않아 다소 기묘하게까지 다가왔다. 정말 괜찮은 건가? 아니면 괜찮은 척을 하는 걸까. 높은 확률로 후자겠지. 다만 어쩌면 단순히 괜찮은 척보다 조금 더 복잡한 심중일 거라는 모호한 확신이 든다.
"세상에, 이게 뭐야? 나 주는 거예요? 답례라니. 한두 개도 아니네? 이렇게 많이..."
포슬한 주름지로 포장된 꾸러미가 셋, 투명 비닐로 포장된 향초 묶음이 하나. 따로 준비한 티가 나는 연보라색 종이백 표면을 쓰다듬던 손길이 이윽고 주름지의 끄트머리를 매만지다가, 곧 향초 묶음을 들어올린다. 단단히 포장되어 있었지만 비닐 한 겹으로 향을 온전히 막아낼 순 없는 법. 은근한 향기와 예쁜 색깔의 조합에 리라의 표정이 절로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표정은 곧장 혜우에게로 돌아간다.
"너무 예쁘다~ 고마워서 어쩌지? 다른 물건들도— 앗. 쉬는 시간 거의 다 됐네? 응! 천천히 뜯어볼게요~ 참. 몸은 좀 괜찮아요? 병원은 갔고요? 많이 아팠을 텐데... 당분간 무리 말고, 도와줄 일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얘기해줘요. 알았죠?"
이런저런 말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것도 잠시. 학급 내에서도 느껴지는 따끔한 시선들에 리라는 부러 더 맑게 웃어보인다. 그리고 혜우가 돌아서기 직전, 주머니에서 하얀색과 캐러멜 색이 반반 섞인 밀크 크림 캐러멜 한 통을 꺼내어 혜우의 손에 쥐여주려고 했을 것이다.
"잘 쓸게요. 고마워요, 혜우 후배님!"
간식을 받아주었다면, 돌아가는 등 뒤에 대고 손을 크게 흔들어 보였겠다.
"자아~ 그리고... 방금 내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뭐라고 했더라? 아. 기억났다. '진짜 미쳤나 봐.' 그런 말이었어. 누굴까? 누굴 두고 한 말일까? 나여도, 우리 후배님이어도 미쳤다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기엔 영 적절치 않은데 말이지."
가는 사람 등에 대고 미쳤나 봐, 한 마디를 굳이 덧붙인 학생에 대한 응징은 혜우가 떠나간 직후 곧장 이어진다.
"우리 반 친구 중에 택도 없는 헛소문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니, 믿기지가 않네. 아~ 너무너무 슬프다." "......" "얘들아. 부탁인데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아줘."
그거 꼴사나워. 웃는 낯으로 쏘아붙인 후 돌아선 리라의 뒤통수에 이윽고 수십의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뭐. 그러라지.
커플 목도리 한 쌍과 같은 패턴의 반려동물용 의상 하나. 귀가 후 선물을 풀어본 리라의 얼굴에는 또다시 부드러운 미소가 깔렸다.
그렇게 물으면 동월은 어쩔 수 없이 고찰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밀크는, 토끼이다. 메이드이고. 그렇기에 토끼 메이드지.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아무리 리라의 능력으로 만들어졌다지만 밀크가 존재하는 곳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밀크는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 ....처키 같은 존재인가? "
아니다.
" ....절반만 팩트인걸 팩트라고 하나 보통? " " 팩트가 절반밖에 없고 거짓이 절반이나 있잖아!! "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는 것도 여전하다.
" 어프헥, "
팔을 물려는 와중에 혜우의 손날이 정수리에 꽂힌다. 정통으로 당한 동월은 괴상한 소음을 내며 바닥에 꽂혀버렸다. 잠시 홍알거리던 그가 몸을 픽 돌려 바닥에 대자로 눕는다. 그리고는 눈을 도륵 굴려 혜우와 눈을 맞춘다.
" ....너, " " 화 안났냐? "
새하얀 시선은, 평소와 다름없이 한껏 감정을 품고 있다. 그리고 어떤 보라색 시선은, 색은 담을 수 있지만 감정은 담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알 수 있다. 한껏 감정을 담은 그 시선으로, 감정 없는 시선을 매일 보고 있으니까.
situplay>1597049157>561 @천혜우 최근 학교는 레벨 5 파나케이아에게 가해진 폭력 사태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자극적인 소재와 누군가의 주도로 이루어진 게 분명한 악의 가득한 소문은 가을 날씨를 달구기 충분했고, 학생들은 진위의 여부를 가리지 않고 열정 가득한 입방아 스포츠를 즐겼다.
- 파나케이아가 그랬대. 꼬리를 치고 다녔대. - 아름이한테 성적인 조롱을 했대. - 어제 박쥐 봤어? 이리라 걔 짓이래. 본인이 했던 일이 있어서 쉴드 치는 건가? - 그런데 걔가 꼬리 치고 다녔단 3학년 선배가 며칠 전에 연구원 하나랑 끌어안고 있던 거 연서가 봤대…….
근거 없는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애먼 사람의 이야기까지 뻗쳤고, 성훈의 교실까지 들어와 공기를 후끈하게 달궜다. 그렇지만 성훈은 그 소문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헛소문이다. 진실이라고 해도 인첨공에서 윤리관 멀쩡한 사람 없다. 다들 그 애보고 뭐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는 어리고 미숙하지 않나? 아직 곁에서 잘 가르쳐 준다 해도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고, 그런 식으로 싸울 수도 있는 유치한 나이다. 도덕적이지 못한 발언이니, 상대를 인신공격을 했다느니……. 물론 혜우도 그런 말을 한 건 잘못이지만 아직 17살 밖에 안 된, 감정적으로 서투르고 한참 어린 나이에게 많은 걸 강요한다. 도덕적으로 무결한 사람은 없다. 모두 시행착오를 겪을 뿐이고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된다.
"으……."
무엇보다 그런 거 다 제쳐두고 오늘 내 목숨 부지가 더 중요하다! 성훈은 핸드폰을 매만지며 부소장님과 진행할 커리큘럼 스케줄을 확인하고, 다리를 달달 떨며 오늘은 제발 해부만 안 했으면 좋겠다 빌었다. 하도 핸드폰에 집중했던 나머지 누가 다가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히에엑-!"
어깨를 건드리자 성훈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핸드폰을 무릎 위로 툭 떨어뜨렸다. 다행스럽게 허벅지로 꽉 붙들었지만, 핸드폰을 손으로 주울 여력은 없었다. 고개를 휙 돌린 성훈은 익숙한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문의 주인공이다.
"므, 머, 뭐, 뭐야? 나 오늘은 형님께 안 갔어! 책상 걷어차면- 응……?"
쇼핑백을 본 성훈은 눈을 깜빡, 깜빡. 하고 두어 번 끔뻑이더니 쇼핑백을 한 번, 그리고 혜우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은은한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본인과 같은 연구원 지망생이면 모를까 이외의 교우관계 하나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철옹성처럼 살아오던 성훈은 어, 하고 짧게 운을 떼더니 눈을 굴렸다.
"어, 으응. 고마워. 그런데 버린다니? 이거? 왜 버려……?"
이거 버리라고 준 건가? 눈치라곤 하나 없던 성훈은 잠시 생각하다 아! 선물이라고 말을 하지! 따위의 결론을 내며 허리를 잔뜩 세우더니, 흐흥- 하고는 혜우가 나가려는 것도 모르고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비죽비죽 올렸다.
"주고 싶으면 말을 하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오- 으벡!"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성훈은 초크가 걸리자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파닥거리다 파하! 하고 놓아줄 적에야 숨을 쉬었다. 상황을 파악하기가 무섭게 눈이 핑핑 돌았다. 성훈이 고개를 휙 돌려 너! 하고 소리를 빽 질렀지만 이미 혜우는 문 근처로 휭 가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낄낄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쟤 방금 한 거 봤어? 미쳤네, 진짜. 저거 노리고 한 거 맞지? 소문이 사실인가 봐……. 성훈은 무시하고 쇼핑백 안을 확인했다. 향초! 좋은 냄새! 이건 뭐지? 부스럭거리며 상자를 열어보니 장갑이 있었다. 장갑, 정말 좋아하는 건데. 키득거리는 목소리에도 장갑을 복슬복슬 매만지고 꾹 눌린 머리를 괜히 손으로 벅벅 긁던 성훈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자 괜히 눈을 슥 흘기기도 했고, 눈치를 보기도 했다.
"저거 꼬리치는 거 달라지지 않는다니까? 야, 나도 꼬리 한 번 쳐볼까? 혹시 몰라, 걔가 놀아줄지."
그리고 다짐한 듯, 장갑을 꾹 손으로 쥐며 한 번 품에 안고 상자 속에 고이 모시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우들이 낄낄거리며 혜우에 대한 입방아를 찧느라 여념이 없었다.
"ㄲ, 꼬리를 쳐야 하는 건 너희잖아." "뭐라는 거야?" "야, 윤성훈이~ 네 얘기 아니야~" "……레벨 올려달라 바짓가랑이 붙들며 무릎발로 기어도 모자랄 버러지들이." "뭐?"
학생 하나가 고개를 치들었다. 지금 낙오된 주제에 무리 지어 자기들끼리만 노는 소외된 녀석이, 뭐라고? 눈을 마주친 성훈은 우는 듯, 웃는 듯, 기묘하게 눈을 휘고 있었다.
"으응, 이건 너희 얘기.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파나케이아처럼 역작도 되질 못하고 발치에서 선망만 할 녀석들이 입 잘 놀린다고." "이 x발, 너 말 다했-" "야, 야. 진정해. 윤성훈이가 발언한답시잖냐." "왜!! 저 찐 새끼가 시비 털잖아!! 야, 아가리 놀리면 다냐? 열등생인 건 너도 똑같잖아!!" "그래서?" "그래서? 미친 새끼네, 이거." "쓰다 버릴 장난감인 너희와 주인인 내가 급이 같다고 말하고자 해?"
성훈은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식은땀에 축축해진 주먹을 숨겼다. 책상에 대충 걸터앉자 목에 걸린 연구원증이 뒤집히고, 짤랑이는 소리와 함께 금강저 장식이 흔들렸다. 성훈은 조그마한 털 짐승이 제 털을 잔뜩 부풀리듯 최대한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는, 계속해서 속으로 되뇌었다.
"불만 있으면 놀까? 왜, 리버티 선망해서 내 배라도 쑤시고 싶어? 네 급이 거기서 거기인 거지. 전쟁 병기야. 연구자료로 쓸만하겠네. 그러고 보니 너, 대분류가 뭐더라."
나, 나는 부소장님이다, 나는 부소장님이다……. 성훈의 모습에 학생 하나가 성큼 다가와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목소리를 긁어댔다.
"대분류가 뭐, 새끼야. 나는 이미 연구원이랑 커리큘럼 받고 있는데, 내가 뭐 대분류 말한다고 쫄 것 같냐? 주제도 모르는 찐따 새끼ㄱ-" "이름도, 주제도, 힘도 없는 모르모트야."
성훈은 제비꽃에 가까운 색의 눈을 홉떴다. 순간
"네 연구원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버리면 아쉽잖아……." "이 미친 새끼가!!"
그리고 세상이 핑 돌았다. 학생이 주먹을 후려갈긴 탓이었으나, 동시에 성훈 또한 맞서듯 파지직 소리가 났다. "네가 파나케이아 욕했잖아! 네가! 네가 뭔데! 레벨도 낮은 게 왜 파나케이아 괴롭혀!" 한바탕의 소란은 선생님과 교내에 상주하는 안티스킬이 제압하고 나서야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카페 '라인'은 오늘도 한가했다. 구움과자를 만들었는지 문을 살짝만 열어도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고, 언뜻 보이는 쇼케이스에는 초콜릿과 레몬 아이싱으로 코팅이 된 쿠키와 휘낭시에가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라바나가 고개를 돌렸지만 혜우는 이미 도망 친지 오래였고, 설거지 하던 것을 내려두고 문고리에 걸린 것을 향해 다가간 라바나는 기우뚱,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요것이 무엇~이람~?"
사람 여럿 때려죽인 손치고 제법 섬세한 손길이 쇼핑백을 바스락거리며 열었다. 벨벳 케이스와 향초를 본 라바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동시에 손가락 사이로 딸려오는 엽서를 슥 뒤집더니 긴 인조 속눈썹이 위로 향할 정도로 눈을 크게 치떴다.
"도련님 싸움 잘 하나?"
"형님!" "……얼굴이 그게 뭐람." "이건 영광의 상처라고요!" "……."
태오는 뺨에 커다란 밴드를 붙였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자꾸만 장갑 낀 손을 어필하는 성훈을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영광의 상처? 나지막이 되묻자 성훈의 어깨가 하늘로 치솟으려 했다.
"파나케이아가 줬어요!" "하아……?"
수난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교 후 과자라도 가져가라는 라바나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태오는, 라바나 목에 달린 못 보던 초커와 좋은 향에 눈을 반개했다.
"도~련~님~ 있지, 도련님, 싸움 잘 해?" "무슨 소리람." "이거~ 누가 줬~게~ 이 기특한 고양이 누구게~"
엽서를 팔랑거리는 라바나의 모습에 태오는 잠시 고민하다가도, 익숙한 글씨체에 눈을 찌푸렸다.
"이러려고 날 카페로 불렀군요." "정답~ 그리고 청소 도와줘." "뻔뻔하기 짝이 없어."
태오는 청소를 도우면서도 생각에 잠긴 듯했다. 깊다 못해 혼자만의 세계에 열중하던 태오는 그날 돌아가서도 생각에 잠긴 탓에 밤을 새웠다. 다음날 등교하여 머리를 모나미 볼펜으로 아무렇게나 쪽지고, 비척비척 1학년 교실로 내려갈 적 쑥덕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선배 지금 천혜우 만나러 가는 거지? 저 선배가 그……. 태오가 눈을 휙 돌리자 학생들은 움찔 떨었고, 태오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평소보다 조금 더 날카로운 눈으로 학생들을 쳐다보다 자리를 떠났다.
"우화야."
그리고 학생들이 보든 말든, 냅다 허리를 숙여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대듯 고개를 파묻더니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0 요새 학교가 동물원이 되었나 싶을 때가 있다. 그 생각은 복도에서 본 박쥐가 팔을 냅다 물었을 때 들었으며, 복도에서 아기 코끼리가 물을 뿌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들었으며, 또 몇십분 뒤에 쥐들이 바닥을 닦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들었다. ...덕배는 어딨지?
아무튼 동월은, 청소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했다. 다만 청소가 이루어지는 곳은 학교 복도고, 통행을 위해선 복도를 필수불가결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무리없이 통행을 하면서도 복도를 이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찰을 하다가, 얼마 신지 않고 슬리퍼로 바꿔버리는 통에 사물함 구석에 처박혀있는 실내화가 하나 떠오른다.
잠시 뒤.
대충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모두 날카롭게 만들어 실내화에 박고, 그것을 스파이크 슈즈 삼아.... 천장을 걷고있다.
" 열심히들 하네. "
주변 친구들과 인사(...)하며 지나다니는 것이, 머리에 피가 쏠리는건 아무렇지 않다는 모습이다.
-하지만 저지먼트... 박살내는 거 잘하잖아요. -저는 목격자가 없도록 은밀한 암살같은 걸 생각하는데 저지먼트는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지! 하면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구요? 비유적으로요. 너네들이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같은 원망이나 그런 쪽이 아니라.. 지금까지 봐온바로는 이런 성향 아니신가요...같은 걸 말한다는 느낌입니다.
-그...그으읏... 고양이인 편이 귀여운 건 인정하는데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을 고양이로 평생살라고하면안되는데요(*여로는 그런말은 한적없다) 아직 붙어있는 고양이귀가 납작해집니다. 솔직한 고양이귀.
"청산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피해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걸 부추긴 건.. 원인이 일부 있긴 하니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자기보다 밑인 이가 성장했다는 것에 급발진하신 것입니다만.. 그래도 청산 하겠다! 라는 건 꽤 큰 발전입니다.
"그래도 도와주신다고 선뜻 말하시는 거.. 조금 힘이 되네요" 여로에게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하려 합니다. 케이스도 돌아오긴 했으니 이제 데려다줘야 할 시간이기는 합니다.
공공자전거를 타고 알바하러 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페달을 밟아 속도를 내 보려 해도 힘이 잘 안 들어갔다. 그럴 만하긴 했다. 사이코메트리를 대체 얼마나 남발했는지. 중간중간 현기증이 나는 걸 무시하고 밀어붙였더니, 어느 순간 코피가 터져 양쪽 코를 다 막아야 했다. 다 끝난 지금도 골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힘들어 죽겠네!! 사이코메트리의 특성상 대리 체험적인 성격이 강해서 더 빡센 거 같다. 토실이가 감싸 주듯 머리에 엎드린 게 그나마 힐링이다.
" 수박... "
원랜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사이코메트리를 써 댈 생각은 없었다. 양아름의 말이, 그 비공계의 타래글이 사실인지 아닌지만 딱 확인할 생각이었다. 내가 진상을 알아내서 얘기하고 다녀 봤자 저쪽은 수십 명이라 상대가 안 될지라도, 진상을 알고서 대거리하면 모르고서 대거리하는 거랑은 다를 수 있으리라 믿어서. 적어도 내 주변에서 말이 나오는 건 반박하고 차단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 수박!!!!!!!!!!! "
이건 소문이 문제가 아니잖아!!!!!!!!!!!!
개바닥 천지였다. 발상 추잡스럽던 남학생들이 이목 드문 장소에서도 거절만으로 순순히 물러가고 다른 엄한 짓거리릴 안 벌인 게 의외일 정도로
사람이 어떻게 그래? 아무리 질투가 나도, 아무리 원망스러워도, 어떻게 그런 짓을 몇 년씩이나 계속할 수가 있지? 짝남이 고백한 상대란 거 말곤 얽힌 게 1도 없는데 고작 그 이유만으로?? 남자 말곤 눈에 뵈는 게 없어?! 백 번 양보해 (본인에겐 너무나 귀한 남자애라 고백을 거절당할 거라곤 상상도 못한 탓에) 혜우가 그 고백들을 다 받아 버린 줄 알았다 쳐도, 사람이 사람으로 안 보여??!! 만만한 사람 하나 샌드백 삼아 다굴 까면 쾌감 들고 짜릿해?!? 그런 짓이 스스로를 추하고 하찮게 만든다는 정도의 생각조차 없나??!! 게다가 쪽팔린 줄도 모르고 저지먼트에다 뭐 어째!?!?
" 토실아, 그것들 어떻게 엿먹여야 시원할까? "
가만 안 둬. 가만 안 둘 거야. 이건 너무 비열하고 치졸하잖아. 세상이 암만 인과응보나 사이다 결말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지만, 그런 짓거리를 한 애들이 멀쩡하게 학교 다니는 건 너무 억울해. 내가 꼬와서라도 무슨 엿이든 맥일 거야!!!!! 일단 오늘 확보한 증거부터 혜우한테 넘기고 학폭위든 고소든......
하다가 몸이 딱 굳었다. 멈춘 자전거의 중심을 못 잡아 그만 넘어질 뻔했다.
" 이크크!!! "
머리 위의 토실이를 딱 붙들고 고개를 흔들어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혜우는 왜 당하고만 있을까?
중학생 땐 어쩔 수 없었을 거 같다. 대놓고든 몰래든 수십 명이 다굴 까는데 무슨 깡으로 맞서? 무서워서라도 못한다. 혜우로선 영문 모를 괴롭힘이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도 방도가 없었을 거고, 도움받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고 보복도 두려워 사실을 밝히기도 힘들었을 거다. 사이코메트리로 확인한, 혼자 웅크린 채 떨던 혜우의 모습이 다시금 선해져 왈칵 눈물이 솟았다. 당하고만 있어야 했던 그 시간이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난 반나절 간접 체험한 것만으로도 속이 터지겠는데.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혜우는 저지먼트의 핵심 인원일 뿐만 아니라, 인첨공을 통틀어도 손에 꼽히는 5렙 능력자다. 바라기만 하면 양아름을 학교에서 내쫓는 건 일도 아닐 것이고, 고소에 이은 금융치료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마침 명분도 확실하다, 폭행! (신발에 쥐 넣은 걸로도 무기정학 떨어질 만큼 고레벨 능력자가 우대받는데, 그런 적나라한 폭행이면 빼박이지!!) 근데도 양아름은 교내 봉사만 하고 있다. 혜우가 적극적으로 선처를 호소하지 않았다면 이럴 수가 없다. 그렇게나 당했으면서 대체 왜? 예수님이야? 왼뺨 치면 오른뺨도 내 줘??
문득 수경이가 로벨에게 감금당했을 때 혜우가 보여 준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때 혜우는 보기도 섬뜩한 시신들에까지 애도를 표해 줬었다. 인류애가 1도 안 남아도 안 이상할 일을 겪은 판에 아직도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 강경한 대응은 차마 못하는 걸까. 아이고, 골이야... 서연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양아름은 가만있을수록 만만하게 보고 더한 짓거리를 할 타입이다. 눈눈이이가 상책이다. 그니까 녹취 파일 넘겨 주자. 필요하다면 그 빌어먹을 인첨스타 본 거랑, 오늘 학교에서 확인한 내용들도 싹 다 증언하자. 다른 사이코메트리스트랑 대질 심문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검색해 보니 학폭 공소시효는 5년, 유니온이 깽판만 안 치면 법의 철퇴로 얼마든지...!!!
" 우와아아!!!! "
..............가드레일에 박을 뻔했다. 급브레이크 잡은 손아귀가 뻐근하고 떨린다. 그 통에 토실이를 미처 못 잡아 줬는데, 다행히 토실이가 내 머리칼을 붙들고 중심을 잡아 주었다. (머리털이 뽑혀서 좀 아프긴 하다ㅠㅠㅠㅠㅠㅠㅠ)
" 토실아, 미안...;;;;; "
토실이를 토닥이다 한숨이 나왔다. 내가 미안해할 상대는 토실이만이 아니다. 따지고 들면 혜우한테 제일 미안해해야지. 말이 좋아 진상 확인이지, 사실 혜우의 동의 없이 혜우의 과거사를 뒷조사한 거 아닌가. 뒷조사당하는 건 누구라도 기분 좋을 순 없는 일이고, 특히나 혜우는 저지먼트 업무 외엔 교류를 피하려는 성향이라 더 불쾌할 거다. 낄끼빠빠 못하고 참견질이라 욕 먹어도 할 말 없지, 뭐.
그래도 이미 저질러 버린 짓을 어쩌겠는가? 게다가 이렇게까지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괴롭힘이 저지먼트 부원에게 현재진행형으로 가해지고 있다면, 저지먼트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거 같다. 과연 어떤 대처가 가능할지까지는 통 안 떠오르지만, 그건 다른 부원들이 생각해 주겠지. 저지먼트엔 머리 좋은 부원 많은걸. 그럼 내일 할 일은 대략 세 가진가? 혜우한테 녹취 전달, 보고서 작성, 그리고...내 개인적인 분풀이. 딴 건 몰라도 개인적인 분풀이는 선배한테... 얘기해 둬야겠다. 나 사고 친다고;;;;;;;
"그건 그 사람들인 거고- 애초에 내가 하는 건- 싸울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 정도일까- 어떻게 보면 여론전이긴 하네-"
여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밀어버리는 건, 단순히 싸우는 것 뿐이잖아? 완벽하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너희도 잘 알고 있을테고- 때로는 가장 피를 적게 흘리면서 피해를 최대한으로 입히는 것도 방법이라구- 두 번 다시,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하게. 약점이든 역린이든 잡고 전부 다 까발려놓는 게 내 취미라☆"
-본 게 그런 거이긴 해서 첫인상이 헤에.. 거릴 수밖에 없긴 했어요.. -아 그거 좋죠.. 약점을 잡고.. 까발리지는 않지만 까발리는 거랑 다를 바없고 확실하게 찍어누르고... 의외로.. 저지먼트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여로랑도 잘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로와 케이스와 기척 지우기와 빛을 굴절시켜서 진짜 투명화와 사이코메트리가 모이면 여론전 팟이 되는건가. 그렇지만 반응이 솔직하다는 것에 귀는 잡았지만 이번엔 꼬리가 휘릭? 그래도 곧 사라졌으니 다행이지만요.
"곤란하거나 해선 안 되는 걸 하실 생각이신가요?" 저지먼트에게는 그러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걸요. 라는 말을 합니다. 담담한... 일종의 저지먼트에.. 그리고 저지먼트에 소속된 여로에 대한 약한 신뢰에 가까울것 같네요.
"그들은... 결국 몰락하겠네요. 그 점은 안타깝지만 응당한 대가이긴 하니까요" 그렇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괜찮았어요. 라고 말을 한 다음. 케이스와 함께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밀크가 뭐냐니까 설명은 안 하고 처키 같다 하질 않나, 팩트가 반이면 거짓도 절반이지 않냐며 날뛰질 않나, 저 저, 깨물려고 하는 건 뭔데?
"또X이냐고. 너."
제대로 정수리를 맞고 자빠진 월을 향해 가감없이 내뱉었다. 별로 아프지도 않을 텐데 엄살은, 이라고 생각하며 작아진 사탕을 깨물었다. 사탕이었던 것을 잘각잘각 씹다가 월의 시선과 물음에 태연히 대꾸했다.
"왜 화를 내야 하는데."
무감정하게.
"너 방금 미친 짓 한 거에? 아님 요즘 소문 도는 거에? 뭐하러? 네가 그러는 거야 하루이틀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는 거고. 소문도 뭐, 이제야 네 귀에까지 들리게 된 거지, 어제오늘 일이 아냐. 그거."
덜 녹은 사탕과 녹은 단물을 함께 삼켜버렸다. 사탕 조각이 식도를 아슬아슬하게 훑고 지나갔다.
"기억하지? 학기 초, 괴이에서 만났을 때, 내가 했던 말. 사라지고 싶으니 내버려 두라고. 지쳤다고. 지금도 여전해. 나는. 만사가 지긋지긋하고, 지겹고, 왜 살아있는지 모르겠고, 학교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은데. 그래도 가기 전에 발 담근 일은 끝내야지 않겠어. 뭐, 정확히는 내가 사라질 세계가 없어지는게 싫은 거지만."
무릎에 놓았던 사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닥에 누운 월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 같은 거에 신경 쓸 시간 있으면, 네 옆이나 한 번 더 봐.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시간 안 아깝냐. 하여간 태평해."
situplay>1597049157>443 조지라는 목소리에 반응해서 뛰어들던 스킬아웃 몇몇이 청윤이 쏜 제압탄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살해 목적이 아니라 제압이 목적이니 심각한 부상은 입지 않았겠지만 충격이 꽤 큰 듯 신음을 흘리며 자빠진 녀석들을 무시하며 랑은 방금 전 명령?을 내린 스킬 아웃 쪽으로 움직이며 청윤에게 슬쩍 이야기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쏴, 알아서 피할 테니까."
그리 이야기하며 앞을 막아선 스킬 아웃 한 명의 오금을 걷어차 무릎 꿇린 뒤 수갑을 채우는 동안, 항복하라는 청윤의 말에 "하겠냐!" 라고 소리치며 전기충격기를 꺼내드는 또 다른 스킬 아웃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 청윤의 수준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달려들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듯, 여럿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게 눈에 띈다.
>>678 >>680 철현주 어? 어? 반응은 감사하고 기쁩니다만 혼자 씩씩거리고 있는 거의 어디가 착한지 모르겠어서 부끄러워요^c^;;;;;;;;;;;;;;;;;;;; 추천할 만한 장소를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서울알못이라ㅠㅠㅠㅠㅠㅠ 근데 타이밍도 많이 늦었네요👀👀👀 다행히 태오주 점례주 여로주 동월주 캡께서 좋은 데 추천들 해 주셨네요
>>684 동월주 월주께서도 더위에 눌리지 마시고 하루 잘 넘기셨길요!!!
>>687 >>729 캡 기력 없는 주간이라도 이직 성공 맞이 휴가 기간이라 다행이에요 >< 쉬세요 쉬세요 엥? 부장님은 왜 잠적하시나요;;;;;;;;;
>>688 점례주 오늘만 사는 거처럼 일하고 먹고 일하시는 거 위험하게 느껴지는데요;;;; 건강도 챙기세요;;;;;
>>710 혜우주 어... 음... 엄청 좋은 말, 대단한 말을 하지는 못할 거 같은데요👀👀👀 혜우 기분 상하게만 하지 않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전 ^^;;;;;;;; 고소 생각 없는 혜우한테 고소 얘기해 봤자고, 남남처럼 지내다시피 한 주제에 어떤 사실 하나 알았다고 그 사실을 지껄이는 거부터가 욕 먹어도 할 말 없는 짓이니요(먼눈)(옆눈)
>>711 한양주 저런;;;; 엄청 빡치는 일이 있으셨다거나?8ㅁ8 그냥 심경 변화시면 불행 중 다행입니다만...
《류시원》 • 누구든 첫만남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관계와 사건을 형성하는 것이 루틴. 그렇게 하면 은혜를 갚으러 오든, 원수를 갚으러 오든 할 것 아닌가? 어떤 방식이든 또 볼 수 있으니 좋다. • 한결이 다 해줬던 시절이 있다. 없으니 일이 많아져서 귀찮다. 이렇게 귀찮을 줄 알았다면 결혼할 걸 그랬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글쎄? • 로드킬 당한 동물 박제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다른 거 말고, 반드시 로드킬 당한 동물이어야만 한다. • 윤성훈의 법적 보호자. 의외로 잘 돌봐주긴 했다. 나 말고 보다못한 남들이. • 좋아하는 건 흰 우유와 쿠키. 밀크티도 좋아하고 우유가 들어가면 뭐든 좋은 듯하다. 특히 우유는 커리큘럼 전에 꼭 마신다.
원래 모카고R2의 숨겨진 진실은 '인첨공에 지원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초능력 연구의 기반이 되는 호문쿨루스를 만들기 위한 DNA를 제공하는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었답니다. 인첨공은 말 그대로 제공된 DNA를 이용해서 만든 호문쿨루스들이 살아가는 세상이었어요. DNA를 제공한 사람들은 밖에서 원래 살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고 있고요.
호문쿨루스가 밖에 유출되지 않게 하려고 인첨공 밖으로 나가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빠져나가는 이들을 사살했던 것이고, 외부인들이 들어올때도 호문쿨루스들이 살아가는 세상이고 자신들이 호문쿨루스라는 것을 모르니 그에 대해서 철저하게 발설하지 않도록 교육을 시켜서 제한적으로 들어오게 하는 느낌이었고요.
그러니까 이 설정대로 갔으면 여러분들의 캐릭터는 다 호문쿨루스였던거고, 실제로 겪지도 않은 일인데 '오리지널'의 기억을 베이스로 자신이 실제로 그 일을 겪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설정이었답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니라 호문쿨루스였기에 비인간적인 실험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구원들이 하는 것이었고요.
하지만 이러면 아무리 생각해도 캐릭터들의 서사자체가 우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기에 시나리오를 엎었다는 그런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요.
>>744 >>758 캡 아유 그건 잠적이 아니라 유유자적이죠. 서연이도 올해 끝나면 저지먼트 탈퇴할 거 같아서 남 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엄청 많이 뒷북이지만 situplay>1597049157>500에 할 말 있어요!!!(바둥바둥) 서연이는 디스트로이어가 수박을 좋아하는 줄 알았을 뿐입니다ㅋㅋㅋㅋㅋㅋ 설정 앞뒤가 착착 맞아떨어지긴 하는데 전 이런 설정이었으면 솔직히 사기당한 기분 들었을 거 같아요ㅎㅎㅎㅎㅎㅎ
>>745 수경주 오늘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근무라도 널널하길 바라겠습니다...
>>747 태오주 류시원은 초봄에 농촌 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맘때 농촌에선 뱀이랑 개구리들이 로드킬당한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749 한양주 아, 나쁜 일 때문에 속상해서 흡연하신 건 아니라 다행이네요!! 그럼 다시 금연 모드 들어가셨나요?
>>751 점례주 그 말씀은 맞습니다만 뭐든 과유불급이에요오오오... 이 시간에 일하러 가시면 언제 퇴근하십니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괜찮으신 거 맞나요;;;;;
>>753 혜우주 ㅎㅎㅎㅎㅎ 정말 별거 없을 텐데요 ^c^;;;;; 암튼 말씀 감사해요오오오오 서연이가 영역 침범을 하게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만(계단 사이코메트리한 시점에 이미 사생활 침해👀👀👀 ) 혜우한테 2차 가해만은 안 하도록 뇌 잡아 볼게요...
>>756 랑주 이 더위에도 운동을 빼먹지 않으시는 랑주 리스펙!!!! 잘 다녀오세요오오오오 ><
>>761 철현주 에 에 에...👀👀 그냥 지 감정이 앞서 버린 거 같지만요^c^;;; 암튼 좋게 봐 주셨으니 저로선 핵이득입니다(◀뭐?)
/ 여태 훈련 레스 1도 생각 못한 거 실화인지(눈물)(통곡) 훈련 레스랑 혜우 찾아가서 할 말 나오게 머리 깨고 오겠습니다아아아아 (침몰)
/크하하하하! 용케도 여기까지 왔군! 그래, 이제야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이 든건가?/ /그럴까보냐!! 그 사이에 이런 더러운 수작을 부리다니 이 비겁한 녀석, 어서 친구들을 놓아줘!! 내가 할수 있는건 전부 다 했잖아!!/ /이런이런... 아무래도 넌 악당이 왜 악당인지 모르는가보군... 너같은 덜떨어진 녀석들이 말하는 '히어로'따위의 순진해빠진 개념을 믿고 사니까 그모양이었던 거다. 실제로 내가 시킨대로 했더니 어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았나?/
"크윽... 겁내 비겁한 녀석임다... 주인공이 온갖 굴욕을 겪으면서 비밀을 파헤치니 설마 트롤의 딜레마같은 함정을 파놓았을줄이야..."
[트롤리 딜레마거든... 그리고 자꾸 시끄럽게 굴지 말아줄래...]
/그딴건 아무래도 좋아!! 더이상 네 말에 놀아나지 않겠어!! 이건 비인간적이야!!/ /비인간적이라고? 언제부터 네가 인간찬가를 외쳤었지? 오히려 그 반대 아니었나?/ /이 베라 하프갤런 혼자서 처먹을 배신자가!!/ /배신이라... 그것 참 슬픈 말이군... 무엇보다 배신은 그쪽이 먼저 하지 않았나? 아니면 그 부모의 자식이라서 똑같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건가?/ /우리 부모님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하지 마!! 이번에야말로 이 잘못된 순환을 끊으려 하는 거니까!!/
"그렇슴다!!! 비겁한 변명임다!!! 더러운 메드-X 사이언티스트!"
[...시끄럽거든.]
/다들 처음엔 그렇게 말하지... 자신이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항해 새로운 길을 개척할 거라고... 이 세상의 썩은뿌리를 반드시 떼어내어 평화롭게 만들겠다고... 하지만 결국 사람들을 좌지우지할수 있는 위치에 서면 그런 말은 게눈 감추듯 사라지는 법이야.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들도 자신이 대적하겠다던 자들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건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 타락이란건 반드시 어떤 나쁜일을 겪어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깨달음... 세상의 이치를 알게된 후의 일그러짐, 그 잔재일 수도 있지.../ /더이상 네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이젠 그런건 안먹혀!!/ /바로 진정 썩어빠졌던건... 그동안 살아왔던 스스로의 저열한 행동이었기 때문이지... 하등 쓸모없이 밑바닥에서 꾸물거리며 그나마 할줄 아는거라곤 가끔 튀어오르는것 밖에 없었던 실패작들 같은 행동 말이다. 그러니, 그만한 대우를 받아도 감히 변명할수 없겠지./ /그만둬!!/
"앙대!!! 샬럿!!!앨리스!!!카밀라!!!"
[시끄럽다 했지.]
"마이크 타이슨!!!"
정확히 뒷목을 노린 여학생의 날렵한 타격에 그녀는 의자와 함께 앞으로 뒹굴며 그대로 뻗어버렸다.
수능 보기로 약속해서 수업은 안 째려고 했는데. 암만 해도 수업 다 듣고는 보고서 쓸 짬이 안 날 거 같아 결국 마지막 수업은 쨌다. (체육이라 출석은 부르고 튀었다) 근데 막상 수업을 째고도 보고서에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할지가 골치였다. 요지야 확실하지. 양아름을 비롯한 수십 명이 2년 전부터 현재진행형으로 혜우를 음해하고 괴롭히는 중이라고. 그 증거로 제시할 만한 게... 인첨스타 비공계랑 이번 폭행인가? 지금까지 다굴 까고 있다는 게 핵심이고 사생활 문제도 있으니 2년 전 일은 괴롭힘이 지속적이다 정도로 간략하게만 언급하자. 근데 인첨스타 비공계는 캡처고 뭐고 없이 녹취 파일만 있어서 아쉽네. 어쩔까 하다 안경에다 사이코메트리를 써서 인첨스타 비공계명이랑 거기 타래글을 작성한 ID를 다시 확인해 메모했다. 비공계 염탐하는 방법도 검색해 보면 나올 법한데, 당연히 법적 증거는 못 되겠지만 그 막장 짓거리들을 저지먼트에 공론화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런저런 잡소리 다 넣어서 보고서 작성은 끝냈다. 양아름, 니 얘기 저지먼트에 꼭 해 달랬지? 오냐. 기꺼이 그래 주마!!!
아지트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노곤노곤한 기분을 느끼며 혜성은 제 배 위에 자리를 잡고 기분좋게 갸르릉 하며 꾹꾹이를 하고 있는 카오스 고양이의 무게감을 느꼈다. 이러면 잘 아물지 않을텐데. 근데 옮겨놓기는 귀찮고. 느릿하게 눈 깜빡이고 있던 혜성은 결국 포기하고 기분좋게 골골거리는 카오스 고양이의 턱을 긁어주기로 했다.
청윤이 동시에 여럿을 상대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스킬아웃 열 명이 제압탄에 얻어맞아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기세는 크게 줄지 않았다. 그래도 상대하기 어렵지는 않다, 한 명 한 명의 수준이 낮은 편이니까. 다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의아하긴 했다, 그 정도 되는 샹그릴라를 운반하면서 이렇게 수준이 낮을 수가 있나? 복용자는 없나? 그런 합리적인 의심이 들 즈음, 청윤의 뒤에 쓰러진 스킬 아웃의 품에서 무언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동안 쓰러진 스킬아웃의 팔에 수갑을 채워가며 주동자로 보이는 스킬 아웃에게 다가가던 랑은,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감각에 청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돌린 랑의 시선에 쓰러져 있던 스킬 아웃 중 한 명이 품에서 권총을 꺼내드는 모습이 포착되자, 랑은 휴대하던 방패를 펼치며 청윤과 그 스킬 아웃 사이를 막아섰다.
탕 하는 소리와 동시에 방패에 파열음이 들리며 랑이 이를 악무는 게 보였을지도. 랑은 총탄을 막아낸 직후 곧바로 그 스킬아웃을 걷어차 기절시키며 멀찍이 선(아까 큰소리를 내던 스킬 아웃이 아니라 덤비는 척 하면서 우물쭈물 하고 있던) 스킬 아웃을 가리켰다.
"저 놈이 대장 같다, 맞출 수 있겠지?"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주변으로 몰려드는 스킬 아웃들, 청윤은 그 사이를 뚫고 명중시킬 수 있을까?
말을 뱉고 나니 세상에서 최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한 기분이다. 생각이 있었으면 양아름이 나한테 이 녹취를 따일 일도 없었지. 이미 학교에 나오질 못했을 테니;;;;;;
" ...... " " ...하지도 않은 일로 몇 년을 시달렸잖아. " " 앞담 뒷담도 모자라서 별의별 짓 다 당했잖아. " " 계속 참고만 있기 안 억울해? " " ......그, 난, 걔네 싸그리 다 얼굴 못 들고 다녔으면 싶거든. " " 사람 하나 몇 년을 엿 맥였으면 그 정도는 당해야 공평할 거 같고;;;;;; "
내가 썩은 거야? 8ㅁ8 나만 썩은 거야??!! 888ㅁ888 몰라!!! 썩었어도 난 그따구로 왼뺨 맞으면 눈눈이이로 나도 팰겨!!!!!
" 어, 또...;;;; "
당사자도 가만있는데 지레 흥분해 버린 게 뻘쭘해 늦게나마 목청을 낮춰 체면치레를 해 보려는 서연이었다.
" 네 개인사를 노출해도 되나 고민했는데 " " 수십 명이 지금도 널 다굴 까고 있으니까 " " 너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거 같더라. " " 게다가 넌 저지먼트 부원이고 " " 저지먼트가 널 필요로 할 때 네 의무를 다해 주고 있으니 "
그 덕에 수박씨가 내 뼈를 아작냈을 때 목숨을 건졌고, 선배가 미친 싸이코들 때문에 부상당했을 때도 단숨에 나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혜우에게 평생 감사해도 모자라고, 다른 부원도 혜우 덕을 안 본 사람이 드물다. 그러니...
" 저지먼트 역시 네게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 " " 그래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보고서 올릴 생각이야. " " 괜...찮을까? "
말하고 나니 기만적이다. 지금 혜우가 안 괜찮다면 안 올릴 거야? 아니잖아;;;; 이게 뭐가 질문이야? 통보지. 차라리 까놓고 말하자!!
" 미안!!! 정정할게. " " 니가 싫대도 난 보고서 올릴 거야. " " 내 속 편하고파서니까 웬 수박이 미쳐 날뛰나 보다 쳐!! "
자, 여기까지는 싸다구 맞아 싼 소리였고 다음은...... 역시 싸다구 맞아 싼 소리네;;;;;;;;;;;;;;; 아, 간만에 서해 바다 생각난다... 후다닥 물어 버려야지.
" 두 개만 더 물을게. " " 너 중학생 때도 병치레 잦았던 거 같은데 건강엔 문제 없어? 괜찮아? "
선배가 무사히 구출되자마자 죽은듯 쓰러져서 기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태오 선배께서 잘 조치해 주셔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났을지도;;;;;
" 그리고... 네가 스트레인지 드나드는 사진을 봤는데, 무슨 용무가 있었어? "
난 왜 이런 걸 묻고 있을까. 내가 알건 모르건 뭐가 달라진다고. 이래서야 알량한 호기심 채우자고 혜우를 불편하게 하는 거잖아;;;;; 아, 모르겠다. 오늘 토실이한테 흑역사 박제되겠네... 속으로 한탄을 거듭 뱉는 서연이었다.
1) 천혜우 학생이 2년 전부터 사이버불링과 학폭을 당하고 있음이 확인됨 ▸2년 전 일은 현 시점에 문제 삼을 수 없으나, 현재도 지속되고 있음
2) 가해자는 양아름 학생 등 천혜우 학생과 같은 중학교 출신인 학생들임 situplay>1597049086>946 ▸양아름 학생의 진술 등에 기반하여 조사한 결과 가해 학생은 수십 명임 ▸사이버불링은 그 특성상 타교의 학생도 동참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됨
3) 사이버불링은 인첨스타 비공계 XXXXXX에서 진행되고 있음 situplay>1597049086>506 ▸미행, 도촬 등을 통해 사실무근의 소문을 생산, 공유하며 학폭을 합리화함 ▸양아름이 계정 팔로우 및 사진 촬영을 거부하여 물증은 확보하지 못함 situplay>1597049086>946 ▸녹취 파일 확보.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비공계의 게시물 작성자 ID 확보 ▸필요 시, @류애린 학생에게 협조를 요청하면 열람 시도는 가능할 듯
4) ◇월 ◇일의 폭행 사건situplay>1597048449>566은 학폭이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임 ▸사건 이후 양아름 학생은 보고자에게도 저지먼트에 소문을 퍼트릴 것을 주문 situplay>1597049086>506 ▸본교에서는 물리적 폭행보다 사이버불링과 언어폭력에 주력한 것으로 보임 ▸폭행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상황에 따라 물리적 폭행도 가해질 위험 있음 ▸과거에는 물리적 폭행도 있었음을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확인함 situplay>1597049157>549
5) 지속되고 있는 폭력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 필요 ▸교칙에 따른 징계, 학폭위 개최, 법적 조치 등은 천혜우 학생의 의사에 달렸음 ▸단, 소문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는 필요해 보임 - 이 부분은 보고자가 대안을 찾지 못함 - 관련 발언을 아예 막을 경우 반발 심리로 역효과 우려 - 관련 발언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소문 확산을 막기 어려움 - 보고자는 관련 발언을 접할 때마다 반박하는 것을 고려 중 - 그 외 가능한 대안이 있다면 제안 바람
별첨1 : 인첨스타 비공계에서의 싸불 관련 녹취 파일 situplay>1597049086>946 별첨2 : 인첨스타 비공계 XXXXXX의 타래글 작성자 ID 목록
>>960 태오주 한 번 폭행으로 도박장 데려가는 건 과하다고 볼 여지가 없진 않지만, 몇 년간 지속적으로 괴롭힌 걸 알고선 도박장이 데려가는 정도가 아니라 살가죽을 벗겨 버리고 싶어진대도 무리는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물론 서연이는 양아름이 억대 도박빚 졌다는 걸 알게 되면 자기가 사달 낸 탓인가 찝찝해할 가능성이 높지만요👀👀👀
>>961 여로주:3 반응 감사해요오오오오 >< 보고서 작성 원툴이랍니다 핫핫 (끌려감)(묻힘)
>>964 흠~ 서연이는 걱정이 많은 친구라서 그 점이 매력적이야. 사람을 위해 나설 줄 아는 용기 있는 모습도 그렇구. 그렇지만 너무 찝찝해하지 않음 좋겠다는 생각이랍니다아 왜냐면 그건 서연이로 비롯된 일이 아니라 태오의 입장에서는 스트레인지에 혜우가 몇 번이고 드나들 적 혜우의 상태를 알고 있었고, 무슨 일인지 짐작은 갔을 테니까.
태오에게 있어서는 '언젠가는 일어났어야만 하는 일'이자 '재수없게 걸린 행운의 여신'인 거야. 물론 이 전말을 서연이가 알지는 못하겠지만, 억대의 빚은 몇 번이고 말렸지만 행한 아름이의 선택이고, 서연이의 탓은 아니지.
제 2학구 근처에 있는 바닷속. 그곳엔 수중전함 포세이돈이 잠수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무슨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현재는 계속해서 대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 안도 조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포세이돈 가장 안쪽에 있는 사령실에는 리버티에 속한 간부 능력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아직 레벨5가 아닌 능력자 4명이 모여있었습니다.
"이곳에 모이라고 한 이유가 뭐죠?"
선혜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파란머리 여성을 바라봤습니다. 상당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인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지금 계속 대기를 하는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어 파란머리 여성은 선혜를 바라보더니 싱긋 웃었습니다.
"몇 번이나 움직였지만 그때마다 목화고등학교 저지먼트가 움직인 것은 알고 있죠? 솔직히 여기에 있는 모두가 다 패배했으니까 특히 더 말이에요."
"......."
"......."
수연과 빨간머리 남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습니다. 말 그대로 여기에 있는 이들은 모두 저지먼트와 교전해서 패배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승리를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어 빨간머리가 큰 목소리로 이야기 했습니다.
"젠장!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야! 지금 우리가 졌다고 반성회라도 하자고 부른거야?"
"그럴리가요. 이후에 우리가 움직일 커다란 작전을 위해서... 대책을 마련하려는 것 뿐이에요."
"대책? 무슨 대책?"
"무슨 방법이 있는 거야?"
빨간머리와 수연은 각각 파란머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파란머리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습니다. 그건 검은색 알약이었습니다. 그 알약의 모습을 본 수연은 순간 움찔했습니다.
"...샤, 샹그릴라는 아니지?! 검은색...이지만 아무리 봐도 샹그릴라인데?! 뭐야! 그거!"
"네. 샹그릴라가 맞아요. 정확히는 리버티의 수장이자 제 삼촌이 제 2학구에서 빼온 거에요. 암부 그림자에게서 말이에요. 듣자하니, 이것이 샹그릴라의 완성체라는 모양이에요."
"...잠깐만. 완성체 샹그릴라를 여기서 왜 꺼내는거죠? 지금 이 타이밍에?"
"뭐긴 뭐겠어요. 이걸 먹어서 대적하자는거지. 샹그릴라는 부작용이 어마무시한 약물. 하지만 그 대신 효과는 뛰어나죠."
"부작용이 어마무시하면 이걸 먹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거잖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수장이 확인한 데이터에 의하면... 이 샹그릴라는 '부작용이 제거된 완전체'라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효능은 퍼스트클래스에 필적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즉... 이 샹그릴라 하나면, 우리는 퍼스트클래스에 필적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거죠. 퍼스트클래스급. 아니. 아무리 못해도 레벨5급이 여섯. ...아무리 목화고등학교 저지먼트라도 쉽게 격파할 순 없죠."
"난 반대야. 그 영감탱이가 만든 약물이 부작용이 없을리 없어. 만약 있는데 없다고 한다면?"
"상관없어요. ...지금 와서 우리들이 뭘 두려워해야하죠? ...우리들의 목적을 잊은건가요? 이 썩어빠진 인첨공을 없애버리고... 모든 초능력 데이터를 말소한 후에 능력자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 진정한 자유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목적."
이어 파란머리는 차가운 눈빛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모두의 손에 직접 검은색 샹그릴라를 올려줬습니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 우리의 목숨을 잃는 것일 가능성도 있죠. 죽음은 무섭지 않지만... 자유를 만들기 전에 죽을 순 없는 법이에요. 그러니까...이 알약은 만일의 경우... 만약 저지먼트가 이곳에 도달하게 되면 그때 먹는 것으로 해요. ...어차피 그때는 사투밖엔 없으니까."
"......"
"......"
"......"
선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손 안에 든 검은색 샹그릴라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빨간머리는 작게 혀를 찬 후에 샹그릴라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수연은 파들파들 몸을 떨었습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들은 절대로 지면 안돼요. 지금까지는 졌다고 치더라도 다음 작전만큼은 절대로 져선 안돼.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작전에 임하세요. 만일 그 때문에 여기가 침범당하면 죽을 각오로 수호하세요. 인첨공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마치 인간의 마음이 사라진 것처럼, 파란머리의 눈빛은 너무나 차가웠습니다. 그 목소리 너머에 있는 증오는 절대로 꺼지지 않을 불꽃이었고, 깊고 깊은 어둠에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 . . . . . .
"차일드에러로 확보한 데이터보다 더욱 많은 데이터 확보가 필요." "리버티에게 검은색 샹그릴라 제공." "모든 것은 마스터의 뜻. 그리고 유니온 님을 위해서."
청윤이 분명 대장을 저격할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인지 사격 연습을 많이 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쓰러진 스킬 아웃의 신병을 확보하던 랑은, 청윤ㅇ의 손가락 끝에서 두 발의 공기 탄환이 발사되자 채찍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청윤의 저격을 방해하려고 경로에 서 있던 스킬 아웃 하나의 발목을 휘감아 잡아당겨 넘어뜨리는 정도의 소소한 도움을 주곤, 두 발의 탄환이 그 앞을 가로막는 스킬 아웃의 사이를 지나 대장에게 명중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컥, 하고 비명 대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진 대장과 그 상황에 당황한 듯 보이는 스킬 아웃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랑은 방패를 바닥에 콱 하고 내리꽂듯이 내려놓으며 채찍을 손에 꽉 쥐었다.
"더 할 사람."
아까 전까지만 해도 방패도, 채찍도 들고 있지 않았던 랑이 양 손에 장비를 쥐고 있으니 더 이상 덤볐다가는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청윤의 저격을 보고 수준 차이를 느껴 전의를 상실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킬 아웃들은 우물쭈물대며 더 이상 덤비지는 않고 있었다.
"이럴 때 뭐라고 하더라... 묵비권인가 뭔가."
생각이 잘 안 나는 듯 눈을 지그시 감으며 허리춤에 손을 올리던 랑의 시선이 청윤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