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김서연
천혜우 그 미XX!
양아름은 방과 후 혼자 모든 현관 청소를 하며 속으로 몇 번이고 욕을 곱씹고 있었다.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해 교내에서 사고를 일으켰음에도
피해자인 천혜우가 학폭위를 소집하지 않아,
고작 교내봉사 겸 청소로 처벌을 대신하게 되었음에도 그랬다.
학생주임은 천혜우가 양아름을 선처해준 것이라며 감사히 생각하라 했으나
양아름의 머릿속에는, 천혜우가 드디어 선생에게도 손을 뻗쳤나 하고 이죽거릴 뿐이었다.
그 XXX!
빗질 한 번 할 때마다 욕을 속으로 씹던 양아름은
서연이 다가와 말을 걸자 바로 눈매를 가늘게 떠 흘겨보았다.
특히, 저지먼트란 말이 나오자마자 눈매가 찢어질 듯 좁아졌다.
"하? 뭐 어쩌라고요. 같은 저지먼트랍시고 따지러 왔어요?"
시작을 표독스럽게 내뱉은 양아름이었으나, 서연이 조금 더 말을 하자 바로 표정이 바뀌었다.
언제 미간 구겼냐는 듯이 환하게 밝아지며 그래 이거지! 하는 표정으로
목소리도 확 바뀌어 신이 나서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뭐야 그러셨구나! 죄송해요- 제가 지금 좀 예민해서. 그, 잠깐 이 쪽으로 와보실래요? 쌤한테 들키면 ㅈ, 아니 혼나서요."
그 와중에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건지, 상스러울 뻔 했던 말을 급히 수습한 양아름은
현관 뒤쪽, 사람이 잘 지나지 않는 구석으로 서연을 데려갔다.
거기서 바깥을 향해 고개를 쭉 내밀어 누가 지나가나 잠시 확인하더니
치마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뭔가를 막 찾으며 말했다.
"저 찾아왔다는 건 소문 다 들으신 거죠? 엄청 놀라셨겠다- 같은 부에 그런 파렴치한 애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쵸? 제가 알고 있는 거 다 알려드릴 테니까 다른 저지먼트 부원들하고도 꼭 공유해 주세요. 네?"
"그러니까, 제가 그 ㄴ, 아니, 걔랑 같은 중학교를 나왔거든요. 같이 입학하고 졸업까지 했는데 아으 진짜 생각만 해도 소름끼쳐서. 그, 1학년 때는 다른 반이라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2학년 때- 같은 반으로 올라가고 얼마 안 되서 저랑 썸 타던 옆반 애가 천혜우 걔한테 고백을 한 거에요. 제가 진짜 그 남자애 엄청 좋아했고 그 애도 저랑 좀 일케 티키타카 잘 맞고 그랬단 말이에요. 매일 등하교도 같이 하고 그랬는데, 거의 사귀기 직전이었던 애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마음이 바뀌겠어요? 그 X이 작정하고 꼬리친게 아니면 뭐겠냐구요."
양아름의 얘기는 얼핏 들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은 내용이었다.
가증스럽게 눈물을 글썽이며 억울한 연기도 잘 했으니, 순진한 제 3자라면 깜빡 속을 만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리고, 여기도 좀 보세요."
양아름은 한참 만지던 폰의 화면을 서연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 뜬 건 인첨스타의 비공계 계정의 내용이었는데, 온통 한 사람을 물어뜯는 타래글로 도배되어 있었다.
타래의 날짜는 2년 전 학기초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타래글을 쓴 건 양아름 뿐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서른명은 넘어보이는 아이디들이 온갖 말들을 쏟아놓은게 선명했다.
"그 때 제가 하도 쎄해서 몰래 애들한테 물어보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저 말고도 피해자가 수두룩 한거에요.
막 호감 가진 애가 갑자기 돌변했는데 알고보니 그 X한테 관심이 생겼다던가
전날 사귀자고 했는데 대뜸 다음날 상대 남자애가 그 X한테 고백했단 말이 들리거나
관심 있는 애한테 선물을 줬는데 그 X이 그걸 가로채서 버렸다던가
잘 사귀고 있었는데 그 X한테 관심이 생겼다며 일방적으로 차였다던가
저처럼 서로 호감 오가던 사이인데 그 X 때문에 깨졌다던가..."
양아름이 설명이랍시고 입에 담는 말과 계정에 적힌 내용들은 하나같이 저급하고 추잡한 것들이었다.
어쩌면, 각자 본인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을 전부 천혜우의 탓을 하고 뒤집어 씌운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그러나 그 중에는 충분히 의구심이 들 만한 것들도 있었다.
일부, 사진이 첨부된 타래글이 그랬다.
"그리고 이것 좀 보세요. 그 X 있죠, 1학년 때부터 스트레인지에 드나들었대요. 중1짜리가 스트레인지에 가서 뭘 하겠어요? 뻔하죠. 앞에서는 내숭 있는대로 다 떨고 남들 안 보이는데서 할 거 못 할 거 다 하고 다닌 거 아니겠어요? 걔 3년 내내 출석일수도 엄청 간당간당했어요. 쌤들 말로는 아팠다 어쩐다 했는데 그런 날도 꼭 스트레인지에서 보였다구요."
주절주절, 양아름의 말과 함께 보이는 사진들은
천혜우로 보이는 교복 차림의 소녀가 스트레인지에 있는 모습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썼거나 겉옷의 깃을 세워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검푸른 긴 머리와 언뜻 보이는 창백한 옆얼굴이 너무나 천혜우였다.
지금보다 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야윈 천혜우가 어두운 스트레인지 골목 곳곳에 있는 모습들이
한 두 장도 아닌 여러장, 그것도 꽤 많이 찍혀 있었다.
"그 X, 막 몸 떨고 토하고 X랄하지 않아요? 그거 약해서 그렇다는 소문도 있었어요. 스트레인지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거니까요. 가끔 진짜 약쟁이처럼 마스크 쓰고 등교했다가 쓰러진 적도 있어요. 진짜 개X친X이라니까요."
양아름은 어느새 말을 가리지 않고 하고 있었다.
듣기에도 거북한 욕설을 서슴없이 입에 담으며 진실인지 날조인지 모를 얘기들을 줄줄 늘어놓았다.
"요즘은 듣자하니 여자한테도 손을 뻗치고 있다나봐요. 그 X 학교 오갈 때 왠 차가 와서 데려가고 하거든요? 전 뭐 이제 어른까지 꼬시나 했는데 듣기로 어른 여자라는 거에요. 그것도 꽤 이쁜 사람이래요. 저지먼트에 예쁜 부원들도 많잖아요. 그 사람들한테도 꼭 좀 얘기해주세요. 혹시 애인 있는 사람한테는 무조건이요."
거기까지 말했을 무렵, 양아름이 청소하던 현관 쪽에서 학생주임이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X발, 하고 중얼거린 양아름은 마지막으로 빠르게 말했다.
"그래놓고 목화고 와서는 아무 것도 안 한 양 시침 떼고 살길래 꼴뵈기 싫었는데, 이 참에 모두가 그 X 진상을 알아서 다행이네요. 선배도 꼭 제 얘기 저지먼트에 해주셔야 해요? 아, 그 X이 부장인지 뭔지한테도 꼬리 쳐서 손 썼을 수 있으니까, 부원들끼리만 조용히 알고 슬슬 손절 치게끔요."
양아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더니 청소하느라 쓰던 빗자루를 챙겨 후다닥 현관으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죄의식도,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