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닥, 닥치라고...?" 너무해, 닥치라니! 그게 자신을 향한 말인줄만 알고 소녀는 다시금 충격에 빠진다. 말 너무 심하잖아, 진짜! 혼자서 뾰루퉁한 표정 짓던 소녀는 뒤이은 질문에 무심하게 답한다.
"몇 살인지 몰라. 보호자 없어. 이름은 알레프."
라클레시아를 보호자라고 하는 건 좀 그렇겠지, 후지마 메구무면 어느 쪽이 이름이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뒤이어 그가 가방 꺼내놓자 소녀의 몸이 잠깐 움찔댄다. 가방을 열면 무시무시한 무기가 나온다거나... 역시 납치범이라거나... 그런 망상이 무색하게도 가방 안엔 사소한 물건들만 있었다. 봐도 무슨 물건인지 모르겠긴 하지만, 약사라고 했으니 약이겠지. 그래도 마냥 신기한 듯 약들을 자세히 바라보는 소녀. 그새 호기심 가득 순수한 눈망울이 되어선 열심히 구경한다. 약이 원래 이렇게 생긴 거였어? 포션 같은 게 아니었다구?
"응. 하늘에서 뚝 떨어졌어."
그리고 소녀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야!" 혹시 그가 믿지 않을까 싶어 괜히 말 덧붙이기도 한다.
미하엘과 헤어진 이후 그도 가게 주인에게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섰다. 짧은 시간 사이 너무도 많은 일이 지나간 바람에 아직도 정신은 얼떨떨하지만, 친절한 안내자를 만난 것만은 다행이었다. 처음의 혼란이 가신 자리에는 어느덧 새로이 겪게 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들어찼다. 물론 제법 낙관적인 상태가 된 그라고 해서 걱정되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또 아까처럼 인기척을 견디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한편에서 들어오기도 했고. 하지만 처음 입성했던 당시의 혼란은 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많은 인파와 생명들을 마주친 탓이 아니었던가. 충분히 마음이 안정되고 대비할 준비까지 된 지금이라면 충분히 괜찮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 미리 걱정했던 그 부분에서는 정말 괜찮긴 했는데,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갑자기 터질 거라곤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동쪽 상가의 외진 골목 안, 그는 현재 초로의 취객 하나에게 멱살이 잡혀 있었다. 이유는 별 것 없었다. 웬 사람 하나가 골목 안쪽에 쓰러진 채 잠들어 있길래, 미하엘과의 약속을 떠올린 그가─쓰러져 있으니 살아는 있나 걱정되기도 했고─ 남자를 깨우다 봉변을 당한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게 하지 말라며 드러눕던 양반은 몇 번 더 건드리자 벌떡 일어나서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엔 그의 무지도 한몫 하기는 했다. 그는 사람이 술에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애당초 술에 취한다는 현상을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상대가 ‘앞뒤가 맞지 않고 도무지 논지를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반복하며 ‘이상할 정도의 발열’을 하고 있으니 남자의 몸과 정신상태를 걱정할 수밖에 없없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천 년만에 다시금 인간을 접하게 된 불사신은, 취객의 현란한 호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야아… 이 **야. 대답 안 해?”
라고 물으시기에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 목이 낫지 않아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대답을 하려 종이에 시선을 두었더니 이번에는 자길 무시하느냐며 더 화를 내니 도통 대화가 이어질 수가 없고……. 그나마 다행으로 여길 만한 점만은 하나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던가. 영이라는 작자는 이 세상에 누군가가 존재하는 생명이기만 하다면 그 누구라도 좋아해 버리곤 하는 태평한 인간이었기에, 멱살이 잡히고도 그리 서럽거나 두렵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마저도 무척이나 반가운지 그러잖아도 가벼운 몸 짤짤 흔들려대는 와중에 기어이 활짝 웃고야 만다.
니보고 닥치라고 한 건 아닌데... 여자의 뾰루퉁한 얼굴에 메구무는 뚱한 얼굴로 뇌까렸다. 하기야, 아이리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나 뿐이니까. 미친놈 취급 받아도 그럴만 하지. 잠시 뒤 메구무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략한 자기 소개에 벙찐 얼굴로 '머 이런게 다 있노?' 라고 생각했다.
"보호자가 없는데, 나이도 모른다꼬? 용케 이름은 기억했네." 「그럴 수도 있제. 우리 영감님도 가끔 나이 까먹고 글지 않았나?」 "그건 영감탱이가 노망끼가 있어가 그런기다."
무심하게 아이리와 대화하던 메구무는 가방에 약을 넣는 일에 집중하다가, 귀를 스치듯 지나가는 알레프의 말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는 말했다.
"하늘에서 뚝 널쩌져? 니도?"
여전히 정체 모를 여자이지만 나처럼 추락했다면... 그리고 나보다도 일찍 떨어졌다면 뭐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메구무는 알레프에게 물었다.
알레프와 한끼 식사를 마치고 윈터가 기다리고 있을 나무 그늘로 향했을땐 이미 시간이 꽤 지난 뒤였다. 하지만 거기에 도착해서도 윈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혹시 엇갈린게 아닌가 싶어 알레프와 함께 윈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알레프는 결국 심심했는지 절!대! 길을 잃지 않겠다고 자신하며 혼자서 어딘가로 가버렸다.
" ... 좀 불안한데. "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가는 사람치고 결과가 좋은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붙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만 하고선 잠시 윈터를 더 기다려본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났고 아마도 밤이 찾아올 것이기에 나는 일단 잘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오는 길에 여관 하나를 딱 본게 있어서 그곳으로 가보기로 하고 돌아왔을땐 윈터가 있기를 바라며 다시금 자리를 옮겼다. 아, 알레프가 돌아오면 가만히 있으라고 쪽지는 하나 남겨두긴 했다. " 실례합니다. "
이 근처에선 아마도 유일한 여관인지 근처에서 다른 여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들락날락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고. 나오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들어간 여관은 안쪽에도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 북적북적한 느낌을 상당히 많이 주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있는건 여기선 처음 보는것 같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간 나는 손님맞이를 하고 있는 목소리를 듣고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혹시 숙박이 가능할까요? 아마 인원은 세명 정도 ... "
윈터가 동행할지 아닐지는 아직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 돌아오게 되면 밤일것이고 여기서 헤어지더라도 밤은 보내고 보내야할듯 싶었기 때문에 세명을 불렀다. 다만 그렇게 물어본 것치곤 가진 것 하나 없긴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먹을 것처럼 여기서 머물고 여러 심부름이라도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어 무리해서 질러본 것이긴 했다.
벙찐 표정 해보이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여, 영감탱이? 노망?! 이번에도 약간 기분 상할 뻔 한다. ...아니, 아까도 나보고 닥치라고 한 건 아니랬으니까, 그냥 좀 혼잣말이 심한 타입인가보다! 혼자서 납득해버리고 만 소녀였다.
"후지마도? 하늘에서 떨어졌어?"
반문하는 것에는 오히려 이쪽이 더 놀란다. 널쩌진다는 게 뭔진 몰라도 대충 비슷한 의미겠지? 라클레시아도 떨어졌다고 했는데!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면 바깥 세계라는 게, 원래 하늘에서 사람이 막 떨어지고 그러는 건가...?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가 닿는다. 우와, 여기 무서운 곳이었구나...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소녀는, 이어진 질문에 정신 차린다.
순간 메구무는 그 말에 딴지를 걸려다가, 보호자도 없이 오래 떠돌아다녀 자기 나이도 잊은 천애고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답을 말자고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지. 나도 한때 보호자 없이 떠돌아 다니는 신세였으니깐... 요괴니 뭐니 죽음의 경계에 늘 맞닿아있던지라 메구무가 잘 쓰지 않았던 공감회로가 다시금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래. 내도 널쪄졌다. 높은 하늘에서. 그땐 정말 디지는 줄 알았디. 잠시만, 니도 숲에서 왔나?"
"후... 그래. 모를 수도 있다. 괘안타."
그러나 모른다는 알레프의 말에 그는 살짝 실망한 듯 한숨을 작게 쉬었다가 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했다. 나와 이 여자만 콕 집어 추락한 게 아니라면, 추락자는 더 있다는 이야기겠지? 보호자가 없다지만, 그녀는 어쩌면 다른 추락자와 접촉했을 수도 있다. 메구무는 다시 물었다.
미하엘에게 마음에도 없는 작별을 고한 직후, 윈터는 라크가 기다리고 있을 나무를 향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작금의 세상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후련했고, 또 먹먹했다. 낯선 엘프와의 동행을 당연시 여겼듯, 소녀와 다시 만날 것을 홀로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하나하나 옮기던 중이었다.
적막했을 골목이 소란스럽다. 같은 길을 두어 번 지나보았을 뿐이지만, 여태 얌전히 묻혀있던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바보도 알 수 있듯이 달라 보여서.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멀리서 보아도 사람이 사람을 일방적으로 괴롭히고 있는 모습.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엄한 멱을 붙들고 고함이나 치고 있는 것이 술 깨나 자셨지 싶다. 그냥 지나치기엔 아무런 저항도 않고 있는 소년이 못내 거슬려, 윈터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윈터는 소년의 멱을 쥐고 있는 취객의 손목을 붙들어 떼어내고선, 그의 어깨를 세게 밀치며 낮은 소리로 경고했다.
"술 마셨으면 집에 가 잠이나 자지, 대낮부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보아하니..."
방금까지 멱이 붙들려있던 소년을 흘금 돌아본 윈터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질적이라는 추상적인 감상을 떠나 심장이 서늘해왔다. 덧없이 괴롭힘당하던 소년은 세상 활짝 웃고 있었다. 곱상한 면상에 내리 앉은 흉. 외에 자상한 상처들. 표정은 웃지만 소리는 조금도 나오지 않아. 잠시 숨 쉬는 것을 잊었던 윈터는 시선을 돌려,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성을 내고 있는 취객의 정강이를 발끝으로 세게 차 주었다.
"꺼져, **아."
조금만 더 힘을 주었더라면 저 치의 다리는 불구가 되었을 것이라 직감하며 놈이 허둥지둥 도망하는 것을 지켜보다, 소년에게는 눈길 주지 않고 원체 가려던 길로 돌아가려 했다.
뒤늦게 옮긴 시선에 딱 들어온 손님의 모습. 여관 장사를 도운 요 며칠동안 이런저런 모습들에 기겁하지 않을 만큼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온통 새하얀 그 모습은 또 아예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에 손님들 틈에서도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라 조금 움츠러들고야 말았다. 그러나, 아마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니 새로운 손님을 바라보던 것은 비단 그런 것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 그것 말고도 이 사람도.. 이 세계 사람이 아닌가? 하는 알 수 없는 확신 같은 것에 사로잡혀ㅡ
벙쪄 있다가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 인원은 세 명 정도, 거기까지만 듣고 냅다 마시를 불렀는데. 어머나? 이어진 얘길 듣고 뒤따라 나오려던 말을 막듯이 벌어졌던 입을 하아압, 하고 천천히 오므렸지만. 주방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마시와 마주친 시선은... 피할 수 없다. 왜 불렀니, 니아? 바쁜 마음에 재촉하듯 외치는 마시와 눈 앞의 손님 사이, 당황 가득한 푸른색 눈동자가 몇 번이고 왕복하더니,
"..자, 자, 잠시만 기다려, 주, 주시겠어요...?"
손에 들렸던 행주를 두 손으로 꽉 말아쥐고 거진 애원하듯 목소릴 내더니, 제 집 찾아가는 쥐처럼 쪼르르, 빨리도 주방을 향해 종종걸음친다. 주방을 일부 가린 덧문 틈새, 여주인과 소녀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어쩌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해도, 두 사람이 당신을 힐끔거리는 시선을 두어 번 정도는 느꼈을 수도 있고. 소녀가 돌아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 기, 기다리셨죠~.."
그렇게 말하며 살살살 다가오는데, 그 뒤에는...
"그래서, 니아의 친구라고?"
앞치마에 손을 문질러 닦으며 대뜸, 그렇게 물어 오는 여주인이 있다.
"네? 아, 아니, 마시, 그게 아, 아아니고⋯ 그냥 아는, 아는 사람⋯"
....아무래도 뭔가를 하려고는 했는데, 어디선가 약간 꼬인 모양이지. 필사적으로 손님에게 눈빛을 보낸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 주세요! 아는 사람이라고 해 주세요!
몸을 흔들어대는 힘이 제법 강했다. 힘이 빠져서 누워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 사람은 걱정했던 것보다 건강한 듯해 다행이었다. ……속으로 아무리 그런 생각을 한들 겉으로 보기엔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대응밖에 되지 않는다. 뜬금없이 터져나온 웃음은 자신이 무시당하는 듯한 상황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던 취객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멱살을 붙들던 손아귀에 불끈 힘이 들었다. 두 손으로 옷깃 쥐어잡고 있던 손 중 하나가 주먹 쥔 모양으로 위로 들려 갔다. 이쯤 되면 아무리 상식이 부족한 그라고 해도 뒤이을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다. 굳게 말아쥔 주먹이 멀뚱멀뚱한 얼굴에 내리꽂히기 직전.
갑작스레 시야 곁으로부터 누군가의 손이 불쑥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낯선 얼굴 하나가 새로이 난입해 있었다. 그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의아한 표정만 짓고 있던 사이에 모든 일이 정리되었다. 뻑 소리가 나오록 거세게 다리를 차인 취객과, 홀연히 나타났다가 쌩하니 사라지려는 누군가. 그는 여전히 어리둥절해서는 둘을 번갈아 쳐다보다, 걸음을 빨리하여 새롭게 나타난 쪽의 인물을 따라잡았다. 이쪽에게 다가간 데는 큰 이유가 없었다. 도망치느라 이미 거리가 멀어져 버린 선객보다야 미하엘을 닮은─머리 위에 귀가 달렸다는 점에서─ 사람 쪽이 더 가까웠던 탓이다. 그는 뒤에서부터 몸을 건드리기보다는 걸음을 앞서는 방법을 택했다. 상대의 시야 앞에 나타난 그는, 취객에게 시달리느라 꾸깃꾸깃 구겨져버린 종잇장을 슬며시 내밀었다. 걷는 도중에 급하게 쓴 탓인지 글씨는 어김없이 흔들려 있었다.
[ 막아줘서 고마워 ]
맞기 직전까지 태연하게 서 있던 모습과는 별개로 그도 상황을 판단할 줄은 알았다. 이대로 그 주먹에 부딪혔더라면 자칫 얼굴이 망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얼굴은 이런저런 감각 기관이 밀집해 있기에 추후에 조치하기 힘든 부위였는데, 곤란한 상황을 겪지 않게 해 준 점에는 무척 감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시선은 연신 저 멀리를 향한다. 끄적끄적 이어지는 말은 역시나 태평하기 짝이 없어서는.
나와 눈을 마주친 종업원은 알레프처럼 주황빛- 아니, 붉은빛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였다. 알레프와 나잇대는 비슷해보였지만 좀 더 나이가 많아보이는 소녀는 분명 이 세계 주민처럼 여관에서 자연스럽게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을 들게했다. 근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다니 내 얼굴에 뭐라도 있나싶어서 괜시리 만지게된다.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주인 아주머니로 보이는 사람과 주방으로 들어간 종업원을 기다리며 나는 여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딱 중세~근대쯤에 보일법한 여관의 양식이었다. 이런 양식은 우리 세계에서도 종종 본적 있지. 한번은 여관에서 일어난 결투로 제국 간의 전쟁이 발발하고 그걸 원인으로 해서-.
" 아? "
어느새 얘기가 끝났는지 여관의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종업원이 다가왔다. 얘기가 잘 된것일까해서 기쁜 마음으로 그들에게 살짝 다가가니 대뜸 누군가의 친구냐는 물음이 들려왔다. 잠깐동안 이게 무슨 일인가싶어 뒤의 소녀를 바라보니 소녀는 필사적인 눈빛으로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 그런 시나리오?
" 맞아요. 이래봬도 나이가 니아보단 한참 많은지라 친구는 아니고 그냥 아는 사이 정도입니다. "
이런 식의 연기는 수없이도 해봤기에 자연스럽게 소녀를 지인이라고 한 나는 뒷쪽의 소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통성명을 한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그녀의 이름을 들었으니 나도 자연스럽게 이름을 알려주기 위해 마시라는 이름의 주인장에게 오른손을 건넸다. 소녀가 내 이름을 모르면 곤란한 상황이 나올테니까.
"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라클레시아 테시어, 이름이 기니까 간단하게 '라크' 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
이 정도면 된거죠? 자연스러운 눈짓으로 니아에게 신호를 보낸 나는 주인장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여관의 인테리어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어디는 고풍스러운 느낌이 난다느니 음식은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나서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느니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