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치고 죽는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픈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힘을 늘려야 한다. 때아닌 죽음으로 슬퍼하는 자가 없도록. 나쁜 자더라도 다시 착한 삶을 살수 있도록.
여길 진짜 물리적으로 탐사할 생각은 하지 않았지. 나는 환상의 도서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처음 이 곳에 온 뒤로 지금까지 여러 권의 책을 읽었고 가끔, 네로에게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도 하였다만, 여기를 진짜 '탐색'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얼마나 넓은 지도 모르고 그게 가능한 지도 모르니까.
커다란 모비 위에 올라탄 채. 무릎에는 캐시를 올리고. 어깨에는 플루가 자리잡았고, 옆구리에는 돌핀이 누웠고, 등 뒤에는 카셀라가 있다. 그리고 오늘 비는 고요하게 내린다. 기분 좋게 뺨을 적시는 물기에 슬며시 미소를 걸고 오늘은 모두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우성은 아직 미완성인 심상의 영역화를 습득하고, 심상의 영역화는 아직 무리지만 좋은 응용법이 하나 생각났다. 바로 혼돈의 힘을 외부로 방출시켜서 이치를 흔드는 '혼파천휘'의 영역화. 기존의 혼파천휘의 위력이 강하지 않았던 이유가, 혼돈의 기가 한 곳에 밀집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기존에는 그저 밖으로 방출할 뿐이니깐 먼 거리까지 기가 흘러가면서 기의 밀도가 높지 않았던 것.
심상의 영역화를 시도할 때 썼던 '결계'를 다시금 전개하면서 '혼파천휘'를 전개한다. 범위를 스스로 제한시켜서 기의 밀도를 증가시키면서 결계 안의 이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험하던 중
오늘 주로 할 훈련은 구미화의 유지시간을 늘리는 것이였죠. 우선 여우 자매 중 동생인 청요와 링크해 구미화를 한 제나는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앉은 뒤, 자신의 마력과 소환수와의 연결을 좀 더 안정적으로 늘리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뭐,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그녀가 훈련을 하는 동안 한참 장난 좋아할 나이인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많이 당해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는 미리!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여우 자매들을 앞에 두고 '훈련하는동안 둘 다 얌전히 잘 있으면 오늘은 너희가 지칠 때까지 놀아준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친밀감을 높이는 것 또한 어찌 보면 훈련의 일종이기도 할 테니까요.
무난하게 훈련을 마친 뒤, 제나는 약속대로 여우자매와 루루(자매가 불러서 같이 왔답니다) 와 함께 하루종일 하고 싶다는거 다 해주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하면서 실컷 놀아줬답니다. 네? 제나가 애기들 감당할 체력이 되냐고요? 글세요.. 어련히 잘 했겠죠. 아마도요..
여느때처럼 훈련장을 찾아간 록시아는 어떻게 하면 신기를 더 개방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여러가지 스킬들을 조합해보려고 했다. 그러다 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는데 그것은 우성이었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져 슬쩍 바라보고 있으니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결계로 무언가 하고 있는 것 같아 록시아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 결계를 응용하려는거죠? "
그래도 몇번이나 같이 싸운 사이니까 딱히 낯선 느낌은 아니라서 인사를 건넨 나는 그에게 어떤걸 하려는지 대충 전해들었다. 결계를 사용해서 기의 방출 범위를 제한하고 밀도를 높이는 것.
" 그거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
결계에 대해선 누구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앱솔루트 테리토리를 전개하여 우성이 좀 더 기를 모아놓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며 록시아는 말했다.
" 결계를 치는건 쉽지만 그렇게 하는건 면밀한 컨트롤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처음엔 제가 도와드릴께요. "
우성이 기를 컨트롤하는건 자신보다 우위일테니 록시아는 그가 기를 영역 안에 모아두기 위해 시도할때 흘러나오는 기가 있는지 그 방향을 체크해주었고 견고하게 유지하는 법 같은 것도 가끔 알려주었다.
" 아예 범위를 몸 주변으로 극히 축소 시켜서 갑옷처럼 쓰는 것도 가능해질지 모르겠네요. "
신의 갑옷을 보여주며 이런 식으로 결계를 응용한다면 자신이나 우성이 좀 더 견고한 방어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우성도 점차 익숙해지는 것 같아 록시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 저보다 더 잘하실 것 같으니까 이젠 알려드리면 안되겠는데요. "
그렇게 록시아는 인사를 하고선 원래 하려던 신기 탐색과 함께 Sin 계열 스킬들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훈련을 좀 더 진행하고선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갔다.
“이봐, 필리아 대장. 일단 대충 짓밟고 한순 돌리는 동안 골치 아픈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말이야.”
“지금은 그런 것은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만, 일단 듣도록 하지. 왜 그러나. 이제 와서 용병단을 나온 것이 후회되나?”
그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며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남성은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저 녀석들, 지금은 철수하고 있지만 아마도 얼마 안 가서 병력을 추가해올거야.”
정면, 광대한 설원은 전장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장막이 내린 하늘은 군데군데 진주를 갈아 넣은 검은 비단처럼 아름다웠으나 그 아래에는 대부분이 흰색. 그리고 그 넓은 공간 위에는 북방 이민족의 전사단과 기사들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다.
멀리 건너편과 주위를 둘러싼 숲근처에서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이들을 구조하며 철수하는 것이 한창이었으나, 군데군데에 흰색 옷으로 정체를 감춘 이들이 정찰을 하는 것이 대놓고 보였다. 전사들의 나라이기에 이런 방식의 싸움에는 익숙하지 않은 거겠지.
아쉽게 되었군, 필리아는 그리 말하며 수행인이 가져온 의자에 자연스레 앉았다.
“솜씨가 좋은 것은 알고 있었네. 문양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 다른 부족일 가능성이 높군. 국경… 아니 마을의 경계라고 하나? 여기서는 잘 모르겠지만 숫자는 대략 300명 정도인가.”
“아마 선봉이 그 정도니 본대는 적어도 배는 될거야. 소수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다른 민족에 비하면 그렇다는 뜻이니까.”
“곤란하게 되었어.”
그러면,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위치는 북서, 유일하게 숲이 없고 평원이 이어진 곳이었다.
“계속 싸울 거라면 퇴로 정도는 확보 하는게 어때?”
“오늘은 마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단 말일세. 마력에만 의지한다면 권의 예기가 줄어들 테니.”
필리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일전에 있었던 전투의 기억을 되새김질 하며 레오넬의 장원에서 주먹을 휘두르기를 몇시간. 해가 질 때쯤 시작한 훈련은 곧 동이 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무극을 보았다.
정확히는 무극에 이르기 위한 길을 본 이후부터 그녀는 이렇게 생각에 잠겨 수련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이번에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은 분명 재해라고 불렸던 남자였을테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분명 강해졌으나, 그렇다고 하여 역시 아직은 재해에 닿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버티는 것 만으로도 육신은 한계에 봉착했다.
굳이 변명을 더한 다면 직전의 전투에서 다른 이들이 받을 공격을 대신 받은 탓이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현실이 변하지는 않는 노릇이었으니 그녀는 맞서는 것을 선택했다.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심상에 빠져든다. 감각의 확장과 함께 권에는 예기가 서린다. 허나 부족했다.
대지는 넓다. 하늘은 아직 검다. 그것을 아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드디어 명상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필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덤벼드는 살수의 다리를 떨쳐내고 온 힘을 다해 주먹을 적의 심장에 때려넣은 뒤 손을 떼고,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상대방에게서 무기를 빼앗은 뒤 체중을 실어 휘두르면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살수는 반으로 갈라졌다. 다시 놓친 무기를 잡은 뒤 부수고 놓고, 휘두르고 버리고, 빼앗고 때려놓고. 황금색의 궤적이 나부끼는 것보다도 무기를 휘두른다.
“하아아아아아………!!”
울음소리는 하늘 높이 뚫고 온몸으로 머리카락을 찢어버릴 듯이 공간을 뛰어넘는다. 무기를 빼앗아 자르고,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칼을 던지고, 다리가 부서져 쓰러진 사람을 방패이자, 발판삼아 뛰어오르고 가속해 빼앗은 무기를 제 것인 것마냥 양 팔로 휘두른다.
쓰러찌려는 이가 있으면 몸을 회전시키며 걷어차 하늘 높이 날린다. 물러나는 상대보다 빠른 속도로 지나쳐 그 순간 칼을 꽂아 넣어 휘두르고 적인 놓친 무기를 몇 번이나 바꾸어가며 장원 안을 휩쓸었다. 고리가 달려있는 검에는 손가락을 걸쳐 휘두르고 던지고 꿰뚫고.
“하아아아………”
몇 수 아래인 상대를 대상으로 펼친 것이라고는 하나 그녀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최근 나태해졌다. 강함이 무리를 지은 것이 패착이었던 것일까. 아니, 그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기사단의 인간은 하나같이 소중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것만큼은 후회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의 오만. 전부를 가지겠다 하여 놓고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천천히 다시 상념에 빠진다. 순수한 무. 외공을 넘어라. 심상은 확장된다. 저 멀리 깊은 곳 까지. 아직 닿을 것 같다 하여도 이 땅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나의 주먹은 우주에도 닿아야만 했다.
누군가에게는 요정 왕자라 불리는 금발의 소년이 있다. 물가에 쪼그려 앉은 채로 무언가 고심하듯 끄응 소리를 내는 게 뭔가 잘 안 풀리는 일이 있는 듯 하다. 소년의 주변에는 어느 신성 가문의 자제에게도 평이 좋았던 물고양이, 주변을 헤엄치는 돌고래와 그의 앞에서 뿌우! 소리를 내는 귀여운 얼굴의 고래까지 있었다. 또한 그 어깨에는 자그마한 요정이 앉아 있었으니,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카셀라가 삐졌어."
그 가운데 소년이 품은 고민이란 일상적이고 귀여운 것이었다. 캐시는 관심이 없다는 듯 하품이나 크게 하고, 돌핀은 잘 모르는 것처럼 그냥 코를 연신 소년에게 문지르며 애교를 부릴 뿐이었다. 그나마 함께 여행을 다니며 카셀라와 친해진 모비가 있었지만, 왜 삐졌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 할 뿐이었다.
이에 소년은 조금 더 곤란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소년은 곧 한숨을 뱉더니 일단 돌진하고 보기로 생각하고, 물에 발을 내디뎠다. 잠시 소년을 중심으로 물이 빛나는가 싶더니, 잠시 후 소년은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졌다. 이윽고 소년이 나타난 곳은 그가 카셀라와 처음 만난 호수. 소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호수 안쪽으로 몸을 집어 넣고, 수류를 조작하며 카셀라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이윽고 소년은 도착한 오두막 앞에서 두어번 노크를 하고 카셀라를 기다렸다. 아마 이 시간에는 보통 집에 있던 것 같으니까.. 어떻게 해야할지는 소년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단 칭찬을 쏟아붓고, 겉으로는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격이 올라간게 느껴진다고 또 칭찬을 해볼까.
일단 첫째, 라디온 선배의 부탁으로 학생회 홍보문을 작성했다. 일단 홍보문은 열심히 쓰긴 했다. 한동안 학생회를 따라다니며 본 업무와 학생회 인원들을 즐겁고 친근하게, 학생회가 너무 멀지 않게 느껴지도록 작성하였다. 근데 이걸로 학생회에 올 사람이 늘어날 지는 모르겠다. 글 하나로 입부를 결심할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학생회 문을 두드렸을 걸.. 그와 별개로 나는 영감을 받았고 아서도 무언가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청춘물을 쓸까 싶었다. 그리고- 다양한 체험이 중요한건가? 하는 의문을 느꼈다. 나는 이제는 조용해진 도서관의 열쇠를 보았다.
그리고 두번째. 일루미나씨가 환상의 도서관에 왔다. 이곳에 허락된 것이 나 하나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놀라긴 했어도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근데 어.. 들어오고 나서 일루미나씨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책을 대여하는 건 대여하는 건데 그 값을 왜 나에게 주지..? 나를 사서로 생각했던 걸까?
세번째. 이건 네로에 관한 일. 최근 내가 모르는 문자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많이 아쉽지만, 이게 내 이야기라는 건 신기하게도 알 수 있었다. 완성되면 나도 읽을 수 있게 될까? 어찌되었든 문자인 만큼 노력하면 학습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노트에 기록하던 펜을 놓고 네로를 조심히 잡아 들어올렸다. 황금빛의 화려한 표지와 마치 눈을 마주하듯 나란히 세웠다. 애초에 네로는 대체 무얼까? 마도서는 아니다. 성장하고 있지만, 딱 그것까지만 알 수 있다. 환상의 도서관을 여러번 왔다갔다 했지만 네로같은 책은 또 본 적이 없다. 네로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의지가 있다는 건 분명한데... 나는 빤히 네로를 바라보다 툭, 이마를 맞대었다.
"너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늘 고마워 네로."
네로는 나를 위해 힘이 담긴 구슬을 주었지. 그것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믿는다. 이야기는 이제야 프롤로그를 조금 지났을 것이니. 나는 펜과 노트를 정리한 뒤 네로를 들어올..릴 필요는 없이, 떠오르는 네로를 옆에 두고 환상의 도서관의 문을 열었다. 네로는 여기서 왔다. 그러면 여기에 힌트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일루미나 씨가 던져준 작은 돌, 3층으로의 입장권을 쥐고 걸음을 옮겼다.
지난번에 록시아와 합동 훈련을 한 뒤로 권능에 변화가 생겼었죠. 그 동안 의뢰를 포함한 다른 일들을 하느라 신경쓰지 못했지만.. 이제야 시간이 생겼던가요! 훈련장으로 향한 제나는 우선 원죄의 악마를 사용해 악마의 모습으로 변한 다음, 새로 발현된 힘을 써보려 했..는데
" 음..... "
정확히 뭐가 바뀐건지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아, 강해졌다거나- 한 것은 맞는데, 그걸 제외하면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모르겠다가 더 적당하겠네요. 빛을 먹는다곤 했는데, 이걸 어떻게 확인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말이에요. 신성 쓰는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고.. 이런 것 가지고 록시아를 다시 부르기도 뭣하고..
어느 새 소환되어 뿔에 매달려 놀던 여우 자매의 앞발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던 제나는 아주 간단한 결론을 내렸답니다. 이 힘은 결국 메이드의 힘이잖아요? 그럼 직접 불러서 물어보면 되죠. 어떻게 쓰는지- 라거나, 응용하는 방법이라거나- 뭐 그런 거 말이에요.
모비와 눈을 맞춘 렌지아는 뺨을 긁적거렸다. 쏟아지는 비의 요정, 아득히 먼 과거부터 그래왔던 소년은 지금 카셀라가 왜 마음이 안 좋은가에 대해 잘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문제는 소년이 그런 타인의 외형에 둔감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미추의 구분은 커녕 사람을 분위기와 기운으로 분류하는 그에게 외견은 그다지도 중요치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것과 별개로 변했는데. 문에 등을 기대고 앉은 소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왜 기분이 안 좋은거야 카셀라?"
이는 카셀라를 설득하기 위한 것도, 다독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소년이 진심으로 품은 의문이었다. 만물은 변한다. 생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고, 강과 바다도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나무는 자라고 비는 쏟아지다 바다로 흘러들고. 에벌레는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겠지. 언제나 가만히 있는 것 같은 호수 역시 변화한다.
"탈피를 했는데도 변한 게 없어서 그래?"
소년은 곤란하다는 듯 뒷통수를 문에 슥슥 비볐다.
"으음, 미안하지만 역시 잘 모르겠어. 마력은 정돈되었고 강해졌으며 격이 올랐지. 나는 충분히 카셀라가 변했다고 생각하거든."
'환상의 도서관'이라는, 비현실적인 장소인 만큼 언어에 대해서는 크게 고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다시 생각하면, 다소 신비한 일이다. 세상 모든 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장소가 지닌 술식, 일전에 '문'을 만났던 그 곳의 마력을 흡수하는 벽처럼 이 장소 특유의 술식이거나. 아니면 내게 특정한 권한이 있거나? 나는 내 주머니에서 황금 열쇠를 꺼내 잘 살펴보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탐구 과제가 하나 늘었네. 다만 지금은, 다른 것에 집중할 생각이다.
나는 알 수 없는, 네로에게 적히고 있는 문자로 이루어진 책을 한 권 골랐다. 그리고 도서회랑에서 사전 한 권을 또 꺼낸 뒤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펜과 노트를 준비한 후에는 둥실둥실 떠있는 네로를 불렀다.
"네로, 공부 도와줄 수 있을까요?"
마침 이 문자들을 알고 있는 네로가 있다. 네로는 말은 하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제스쳐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사전에 있는 문장과 알 수 없는 고대의 언어를 대조하면서 하나하나 밝혀나가자. 다행히 나는 공부에 재미를 붙인 사람이다!
진룡파의 사제인 룡성이 성급에 도달한 소식이 우성에게 들렸다. 우성은 자신이 테이밍한 마수들을 풀어두고, 테라스에서 커피와 함께 여유롭게 신문을 읽고 있었다. 사제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지.
"영역화를 알려달라고요?"
우성은 흔쾌히 받아들이고, 강한 마수들이 우글대는 던전으로 향했다. 천소예에게 들은 조언을 바탕으로 룡성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마수들이 살벌하게 둘에게 덤벼들려고 달려옴에도, 우성은 이를 신경쓰지 않고 여유롭게 설명한다.
"심상의 영역화는 단순히 심상의 범위를 늘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영역화'이기에 심상의 범위는 늘어나지만.. 이 영역을 바탕으로 자신의 힘을 두 배 정도는 더 발휘할 수 있는 것이죠. 간단히 말해서 버프를 영역 단위로 전개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본인의 신념이나 인생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라요. 그거는 이미 가지고 있잖아요?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한 '힘'의 개념이죠."
우성은 자신의 영역을 전개하면서 말한다.
"이렇게 제 심상의 영역을 전개하고, 평소보다 더 강해지지만 역시 심상은 심상이더라고요? 개인마다 영역에 고유한 효과가 있더군요. 개인마다 어떻게 전개하고 응용하냐에 따라 달라지고요."
우성의 영역에 있던 마수들은 살벌한 기세는 어디로 가고, 맞아도 간지럽거나 피하기 쉬운 공격들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말이다. 우성은 느릿느릿하게 걸어가며 마수들을 천천히 처리해나가며 말했다.
"제 영역의 효과는 '완전한 혼돈의 통제력'을 부여해주는 것이죠. '균형'이 제 심상인 만큼, 여기서는 제가 감당이 안 될 출력의 혼돈을 전개해도 균형으로 인해 마음대로 날뛰지 않아요. 그것은 곧 제가 통제권을 얻었다는 의미고요. 마수들은 완전한 혼돈에 정신이 감당이 안 돼서 환각에 빠지고, 계속해서 엉뚱한 공격들만 남발하죠."
"눈에 보이는 효과로만 보면 균형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죠? 영역화는 개인이 어떻게 응용하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더라고요."
우성은 마수들을 전부 처리한 뒤에 영역을 끄고 말했다.
"여기서 팁을 주자면.. 본인의 기로 영역을 전개할 결계를 미리 전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심상의 영역화도 결국 마력을 쓰는 것이니, 마력을 일정한 범위 안에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밀도있게 담아두는 것이죠. 풍선이나 그릇을 생각하면 될까요?"
"사실 제 설명이 사제에게는 틀린 말이 될 수도 있어요. 심상이란 것은 굉장히 애매모호해서, 어떠한 정석적인 방법이 아니고 본인의 해석에 따라 깨닫고 전개해나가는 느낌이더라고요."
"여튼..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우성은 미소를 지으며 조언을 마치지만.. 룡성의 익숙하면서도 다른 기운 때문이었을까? 우성의 진혼성룡이 꿈틀대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카셀라는 자꾸만 다른 이야기를 하는 당신의 모습에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곧 피잉- 하고 털어내곤 잔뜩 삐진 모습으로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죠.
"너는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싸우면서, 왜 나는 안 돼?"
약간 애매한 부분이지만, 카셀라는 렌지아 주변 사람들은 전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견문이 좁은 카셀라 입장에선 같이 싸우네! -> 그럼 다 친구들인가보네! 하고 생각하고 있는것이었죠. 그렇기에 자신만 부르지 않는거에 대해 불만이 컸던 모양입니다. 대부분 먼저 불러주지 않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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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는 신기하게도 언어를 당신이 쓰는 언어에 맞춰 기록해주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금방 읽을 수 있을거 같았죠. . . 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당신에게도 있었습니다. 언어는 한 종류만 있는게 아닌 여러 언어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중에는 같은 글자를 쓰면서 뜻이 다른것도 있고 참으로 다양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정말로 언어들을 해석 할 수 있게 되었을때는 많은 시간이 지나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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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같이 훈련하는걸로 용의 기운이 상당히 꿈틀거리는걸 두 사람 모두가 느끼고 있을겁니다. 그 중에서도 많이 변화해서 이미 진룡이라 부르기엔 좀 애매해진 우성의 힘은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받기도 했죠.
어쨌든 그런 와중에서도 심상의 영역화는 긴 시간을 들이긴 했지만 이내 성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성 본인은 가르치면서 심상이 조금 성장함을 느꼈고, 룡성은 안정화된 영역을 구현하는데 이르렀죠.
결과적으로 진룡의 힘 자체에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결국 근본이 같다보니 그저 서로의 힘을 늘려주는 정도인거 같군요.
소년은 조금 놀라서, 살짝 당황스런 어조로 말했다. 카셀라가 싸우고 싶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가 아는 카셀라는 인간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조금 외로움을 타고, 순진한데다가 다소, 심약하다.
"너와의 첫만남을 기억해. 호수에서 강한 척을 하였지만, 실제로는 다투는 걸 싫어하던 너를 알아."
가볍게 떠올라 물속 어느 즈음, 카셀라와 시선이 맞는 곳에 선 소년은 일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카셀라를 보았다. 함께 여행을 하고, 탈피를 하고, 많은 것을 보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첫만남의 그 아이를 생각한다.
"나는 그냥, 너와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걸 먹고, 종종 찾아와서 함께 놀고싶어."
그에게 있어 친구란 그런 것이다. 굳이 같은 전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평화로운 한 때를 함께 보내는 것. 차라리 처음부터 함께 싸울 전력으로서 계약한 것이면 모를까, 소년과 카셀라와의 계약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주 만날 수 있는 약속,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한 대비책. 적어도 소년에게는 그러하였다.
"거대한 괴조와 싸웠을 때, 그 이전 타락한 정령에 의해 위험에 빠졌을 때. 네가 도와주러 온 건 정말 기뻤어. 네가 싸우겠다면, 나는 말리지는 않겠지만..."
늘 평온한 소년으로서는 드물게도 다소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카셀라, 함께 싸워야만 친구인 건 아니야."
빗소리가 들린다. 물 속임에도.
"나는 네가 하고싶은대로 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럼에도 네가 나와 전장에 서고자 한다면..."
꽤 오랜 시간 끝에 고대의 언어들을 익힐 수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였을 지는 몰랐다. 과거에 여러 나라가 있었을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닌데. 멍하니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펜을 들었다. 네로가 적는 내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그건 조금 더 많이 적혀있을 때 보고 싶다. 하이라이트에서 끊기는 것도 나름의 맛이 있지만 나는 묵혀뒀다 한번에 읽는 쪽이 좋다.
그러니 지금 하려는 것은 일종의 시도. 오래된 '고대의 언어'로 글을 써보고싶다는 간질거림을 해소하고자 한다!
로자가 우성에게 꽃을 피울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로자가 피운 꽃에서도 자연의 기를 확실히 느끼고 그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 그 외에도 바다,땅,햇빛,식물 등의 기를 확실히 느끼고 몸에 담는 것까지는 능숙했다.
거기까지였다.
분명히 여러 자연의 기를 받아서 몸에 담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쓰는 것은 서툴었다. 서툴다는 표현보다는 어떤 방향으로 쓰는지 제대로 방향이 안 잡혔다는 것이지. 확실한 것은 로자처럼 자연 자체를 움직이는 힘이 아닌, 자연의 힘을 우성의 힘으로 변환해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1년 동안의 수련기간 중 혼돈으로 회복하는 것을 연구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자연'의 기 덕분이었다.
맞아.
태양,바다,산,땅,비,공기 등... 각자의 성질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우성의 힘은 자연을 담은 심법으로 인해 안정적이고 데미지를 입어도 자연스레 저절로 몸이 회복되고 마력도 복구됐었다.
하지만 우성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자연의 힘에 대한 이해를 하니, 이미 자신의 몸으로 익숙하게 쓰고 있었던 힘이었으니깐 말이다.
"자연이 꼭 생명을 유지하게만 한다는 법은 없지.."
그래. 생명체를 살리는 것도 자연이지만.. 반대로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것 또한 자연이었다.
태양은 생명체들이 말려죽일 수 있고, 비도 폭우가 되어서 쓸어버릴 수 있고, 바람도 폭풍이 되어 휩쓸어버릴 수 있다. 땅도 지진을 일으키고, 바다는 쓰나미를 일으킨다. '자연재해'라는 것이었다.
이 힘을 회복이 아닌, 공격의 방향으로 쓰려면 자연재해의 시점으로 기를 해석해서 사용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자연의 힘으로 혼돈으로 '치유'가 가능했다면.. 이번에는 혼돈으로 자연의 힘을 '파괴'로 쓸 수 있게 성질을 변환하여 사용해보려고 했다.
"....?"
왠지 모르게 낯이 익는 느낌. 진용창용환파식 3초였다. 1년 전에 익히고 쓰지 않았던 이 기술.. 풍,수,토의 힘으로 공격한다지만 무엇이 메리트인지 몰랐기에 썩혀둔 기술이었다. 생각해보니깐 자연의 기를 파괴적으로 쓰는 것은 이 기술을 익힌 시점부터였군. 지금의 마력과 자연의 기의 이해도로 기술을 해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