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었다. 우성은 자연스럽게 혼돈을 머금은 음기를 허공에 쏘았다. 검보라색의 인력을 가진 구체가 주변의 나무와 나뭇잎들을 소용돌이 처럼 끌어들이면서 휩쓸고다닌다. 그 다음으로 우성은 혼돈을 머금은 양기를 쏴보았다. 연보라색의 척력을 가진 구체가 빛을 내면서, 자신에게 접촉을 거부하듯이 주변의 물체를 밀어내면서 지나간다. 이어서 우성은 두 기를 능숙하게 합쳐서 '음양극파'를 생성해서 더 강력한 에너지로 주변을 끌어들이고 강력하게 밀어버림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
"이 두 기의 조화는 이제 가능해.. 그런데.. 음기와 양기의 완전한 중간값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을까?"
음기가 음수고 양기가 양수라면.. 우성이 찾는 기는 완전한 0. 책에서 봤을 때 이런 힘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게 강력한 힘이었다면 이미 많은 학생들이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사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마법이나 무공들도 정말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우리 수준에서 배울 수 있는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것들이니깐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혼돈이 들어갔을 때는 다르지."
이 어둡고 축축하기만 했던 음기에 인력을 불어넣은 것도.. 이 밝고 뜨겁기만 했던 양기에 척력을 불어넣은 것도 결국은 혼돈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성이 찾는 기도 혼돈을 불어넣으면 쓸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우성은 바로 이 기를 찾기 시작했다. 아니, 느끼기 시작했다. 이 기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딱히 깊은 명상까지 동원해야 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우성은 주변에 '혼파천휘'를 전개한다. 더불어 '백화안'을 전개하여서 우성이 전개하는 기의 본질을 시야로도 파악하기 시작한다. 주변의 이치를 조금씩 비트는 이 권능 그리고 음기를 풀어버림으로, 우성에게 나무들과 나뭇잎들이 강제로 끌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좋아.. 그 다음은.. 양기.."
그 다음에는 양기를 전개한다. 역시 우성의 주변으로 끌려왔던 것들이 이번에는 반발하듯이 확 튕겨져나가기 시작한다. 다시금 음기를 전개하여서 우성에게 물체들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음기와 양기의 전개를 모두 느껴본 우성.. 두 기의 명확한 차이를 느꼈으니깐 이제는 중간값으로 조절...이 쉬울 줄 알았는데..
아무리 제로로 고정을 하려고 해도, 음기가 0.000001%라도 남으면 그것은 음기가 되어 아주 미세한 힘으로 먼지들이라도 끌어오기 시작하고, 양기가 이와 동일하게 남으면 그것은 양기가 되어 먼지들이라도 조금씩 튕겨내기 시작한다. 우성은 깨달았다. 우성이 찾던 기를 느끼려면 학생의 수준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엄청난 기의 컨트롤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이것을 강제로 제로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우성의 심상인 '균형의 경지'였다. 우성은 동시에 균형의 경지를 전개하면서 음기와 양기의 완전한 중간의 제로값으로 조절하고 혼돈을 입히며 주변의 현상을 분석하려고 했다. 심상과 혼파천휘 그리고 미세한 기의 컨트롤로 마력의 소비가 크지 않냐고? 우성에게는 뭐가 있지? 마력을 실시간으로 회복시켜주는 '혼화심법'이 있다. 실시간으로 손실된 기를 모으기에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양 손바닥을 모으고 그 위에 플루를 올려놓았다. 눈을 마주하면서 일전 전투에서 본 플루의, 힘의 단편을 떠올렸다. 나는 가능한 모든 이를 지키고자 하지만, 모든 이들이 내게 종속되는 것은 정말로 싫다. 그리고 모든 아이는 성장하는 것이 옳으니까. 언제고 지켜주고 싶지만.. 이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아무래도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나는, 혼자 싸우는 특기는 없단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조금 힘내볼까."
사람의 상처를 덮는 비를 내린다. 그리고 요정의 연회를 시작한다.
"일단은, 놀자. 응."
노움도 부르고, 친해진 아이들을 불러서 조금 놀자. 플루는 즐거울 때 힘을 내는 것 같으니까. ..오랜만에 요정 친구들과 만나고 싶어서 꼭 그런 건 아니다. 정말로. 음.. 조금은..
지친다.. 나는 엎드렸다. 책상은 아니고, 전에 나를 크게 도와준 유유 노사의 등딱지에. 온화안 유유 노사가 힘껏 나를 도와준 것이 떠올라서 보답을 하고자 부르고, 일을 끝낸 참이었다. 솔로 등딱지를 박박 닦아준 것이다. 원본이 되는 이야기에서 유유 노사가 좋아했던 것이다. 지금도, 음, 기뻐보이는 것 같으니 나도 좋았다. 지쳤지만 그래도 뿌듯해서 헤실거리고 있자니, 구름이 주변에 몰리며 나를 들어서 노사의 위로 올렸다.
"어어? 어- 고맙습니다 선생님!"
나는 노사에게 방방 손을 흔들고 편하게 앉았다. 동쪽에서는 가부좌라고 하던가? 그렇게.
자 그럼 이번 전투에 대해서 생각하자. 일단 여러가지로 고민하자면, 예열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게 문제였다. 스킬을 저장해두는 '책갈피'와, 두 가지 마법을 한 번에 사용하는 '단편집'이 있지만, 그걸로도 부족한 느낌. 기본적으로 복수 마법 사용에 대한 기교는 '메모라이즈'로 알고 있다. 비슷한 메커니즘의 '권능'을 가지고 있으니 유사하게 꾸며낼 수 있지 않을까?
'크로스 오버'라는 것이 있다. 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교차되는 것인데, 엄밀히 말하면 정식 이야기라기 보다는 독자들을 위한 외전에 가깝다. 뭐 그래도..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한 번 노력해보자!
우성은 자신의 마수들과 함께 아카데미 밖의 야생꽃밭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손길이 사실상 닿은 적이 거의 없는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았을까? 어쨋거나 쇼콜라도 꽃향기를 기분좋은 표정으로 맡고 있었고, 실비아도 신난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며 우성보나 앞서나가고 있었다. 베히모스 녀석도 딱히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고.. 그렇게 걷고 있다가, 쇼콜라가 우성의 어깨에 파닥파닥 튕기면서 위험을 예고하기 시작했다.
늦은 새벽. 다른 사람 다 잠들었을 시각에 그녀는 잠을 설치고 있었습니다. 왜냐고요? 당연히 오늘 있었던 전투 때문이죠. 어떻게든 반격에 성공하긴 했지만 상대는 재해. 다친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고, 피해 자체도 꽤나 컸지만.. 무엇보다 가장 신경쓰였던 것은 그 점이였을까요. 적들이 바이러스를 퍼트렸을 때 자기는 아무 것도 못한 점이요.
물론 그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자신이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는 것을요. 자신이 카르마 가문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 걸어줄 수 있는 치료 스킬 -응급처치가 있긴 했지만 쓰나마나였으니 논외로 칩시다- 이나 권능이 있는 것도 아니였으니까요.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다' 였죠. 그리고 어차피 물고양이 후배가 자신의 심상으로 다 치료해줘서 상황 자체는 잘 풀렸지만요...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괜히 찝찝하고 신경쓰이는건 어쩔 수 없던가요?
괜히 짜증스레 이불을 걷어찬 그녀는 잠을 쫒기 위해 마른세수를 가볍게 하며 생각합니다. 레오넬은 대가문이고, 오랜 역사를 지녔으니 다른 사람이건 자신이건 상태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스킬 하나정도는 어쩌면 당연히 있겠죠. 마법 계열로 들어간다면 배우는 것 자체도 큰 무리는 없을 테고요. 그래서,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을 텐데도 그녀는 괜히 중얼거립니다.
이건 그냥 혹시나 해서 찾아보는 거지, 절대 오늘 일이 신경쓰여서 그러는 건 아니야- 라고요.
우성은 슈고의 싸움을 떠올린다. '개진'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즉사했던 기억을 말이다. 티켓이 없었고, 슈고가 심상을 끄지 않았다면 초승달 아카데미의 강자들은 전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개진'이라는 단어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천소예와 린스마이어에게 심상의 영역화에 대한 대화를 할 때 어렴풋이 들었던 단어인 것이었다.
"....."
개진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동쪽 출신의 우성이기에 한문으로 된 이 단어의 의미를 대충 유추해낼 수 있었다. 첫 째로는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의미.. 둘 째로는 '기술이나 낡은 제도 따위가 점차 나아져 발전한다.'는 의미. 마지막으로는 '주장이나 사실 따위를 밝히기 위하여 의견이나 내용을 드러내어 말하거나 글로 쓰다.'라는 의미였다.
이 '개진'을 '심상의 영역화'라는 것과 연결시킨다면 아마 세 번째 의미가 적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진짜로 자신의 심상을 글로 쓴다는 의미는 아니고.. '영역화'라는 것은 심상을 자신의 힘에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닌, 일정한 거리까지 자신의 심상을 외부로 드러내어서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심상의 영역화'에는 '개진'이라는 요소가 필요하고, 이 개진이라는 것은 자신의 심상을 외부로 방출시키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성은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단 바로 수련장에 달려가고서는, 갑자기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영역화를 실험하기 전에 자신의 심상에 대해서 재확인을 하려는 과정이었다. 심상의 본질과 특성, 그리고 심상이 어떻게 우성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우성의 심상은 '균형'이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상태의 균형을 유지해서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것.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균형'을 이룬다고 했지, 무언가를 바로잡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바로잡는 개념 역시 무언가를 휩쓰는 개념과 동등하게 유지시킨다고 보면 됐었다. 특정한 사상이나 현상에 대한 '강요'가 아닌, 말 그대로 모두가 안정적으로 공존하게 만드는 '균형'이었다. 우성은 자신의 심상의 본질을 다시금 확인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성은 본격적으로 '개진'을 하기 전에, 자신의 몸에서 기를 방출하여서.. 자신을 기준으로 좁은 범위의 공간을 마치 '결계'처럼 감싸려고 했다. 여기서부터 영역화가 마냥 쉬운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역화를 하는데 왜 결계가 필요하냐?
결국 심상의 방출도 '기'나 '마력'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인데, 이 에너지들이 결계 없이 방출된다면 의도하지 않은 거리까지 흘러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성이 영향을 주고자 한 영역에 심상의 영향이 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심상을 외부로 방출시켜서 주변의 현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굉장한 마력소모가 예상되니, 일정거리까지 결계를 펼쳐서 스스로 마력의 영향에 제한을 두어서 마력의 낭비를 예방하는 것이다.
어쩌면 '심상의 방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계'일 것이다. 결계가 조금이라도 깨지면 심상의 영역화의 영향이 풍선처럼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영향이 줄어들거나 아예 영역화가 강제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느정도의 강도를 지닌 결계가 영역화를 담을 수 있는지 스스로 계속해서 결계를 형성하여서 알아내야 된다. 너무 약한 결계는 심상이 빠져나가서 영역화가 불가능하고, 너무 강한 결계는 심상의 영역화를 충분히 담으나 시전자의 마력이 금방 소모되면서 영역화의 지속시간이 매우 짧거나, 마력을 결계에만 써버려서 영역화를 시전할 마력이 다 소진되었을 수도 있다. 우성의 심상대로 '균형'이란 것이 매우 요구되는 부분이었지.
다음 단계로는 이 심상을 외부로 어떻게 방출하냐는 것이다. 우성은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을 택했다. 바로 '심상의 시각화' 였다. 자신의 심상이 주변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시각화를 하여, 자신의 심상을 담은 기를 외부로 방출하는 것이었다. 우성의 심상이 그 어떤 것도 너무 적거나 많은 것이 아닌,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 너무 강한 적도 이 영역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강함을 가지게 될 것이고, 우성의 통제 불가능한 파괴적인 혼돈은 혼돈에 통제하려는 세상의 이치와 맞물려 통제가 가능해지고.. 뭐 그런 시각화였다. 실제 효과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시각화를 하여서 방출한다면 그래도 그냥 방출하는 것보다 낫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방출한 것이었다.
사람은 다치고 죽는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픈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힘을 늘려야 한다. 때아닌 죽음으로 슬퍼하는 자가 없도록. 나쁜 자더라도 다시 착한 삶을 살수 있도록.
여길 진짜 물리적으로 탐사할 생각은 하지 않았지. 나는 환상의 도서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처음 이 곳에 온 뒤로 지금까지 여러 권의 책을 읽었고 가끔, 네로에게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도 하였다만, 여기를 진짜 '탐색'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얼마나 넓은 지도 모르고 그게 가능한 지도 모르니까.
커다란 모비 위에 올라탄 채. 무릎에는 캐시를 올리고. 어깨에는 플루가 자리잡았고, 옆구리에는 돌핀이 누웠고, 등 뒤에는 카셀라가 있다. 그리고 오늘 비는 고요하게 내린다. 기분 좋게 뺨을 적시는 물기에 슬며시 미소를 걸고 오늘은 모두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우성은 아직 미완성인 심상의 영역화를 습득하고, 심상의 영역화는 아직 무리지만 좋은 응용법이 하나 생각났다. 바로 혼돈의 힘을 외부로 방출시켜서 이치를 흔드는 '혼파천휘'의 영역화. 기존의 혼파천휘의 위력이 강하지 않았던 이유가, 혼돈의 기가 한 곳에 밀집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기존에는 그저 밖으로 방출할 뿐이니깐 먼 거리까지 기가 흘러가면서 기의 밀도가 높지 않았던 것.
심상의 영역화를 시도할 때 썼던 '결계'를 다시금 전개하면서 '혼파천휘'를 전개한다. 범위를 스스로 제한시켜서 기의 밀도를 증가시키면서 결계 안의 이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험하던 중
오늘 주로 할 훈련은 구미화의 유지시간을 늘리는 것이였죠. 우선 여우 자매 중 동생인 청요와 링크해 구미화를 한 제나는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앉은 뒤, 자신의 마력과 소환수와의 연결을 좀 더 안정적으로 늘리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뭐,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그녀가 훈련을 하는 동안 한참 장난 좋아할 나이인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많이 당해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는 미리!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여우 자매들을 앞에 두고 '훈련하는동안 둘 다 얌전히 잘 있으면 오늘은 너희가 지칠 때까지 놀아준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친밀감을 높이는 것 또한 어찌 보면 훈련의 일종이기도 할 테니까요.
무난하게 훈련을 마친 뒤, 제나는 약속대로 여우자매와 루루(자매가 불러서 같이 왔답니다) 와 함께 하루종일 하고 싶다는거 다 해주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하면서 실컷 놀아줬답니다. 네? 제나가 애기들 감당할 체력이 되냐고요? 글세요.. 어련히 잘 했겠죠. 아마도요..
여느때처럼 훈련장을 찾아간 록시아는 어떻게 하면 신기를 더 개방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여러가지 스킬들을 조합해보려고 했다. 그러다 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는데 그것은 우성이었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져 슬쩍 바라보고 있으니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결계로 무언가 하고 있는 것 같아 록시아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 결계를 응용하려는거죠? "
그래도 몇번이나 같이 싸운 사이니까 딱히 낯선 느낌은 아니라서 인사를 건넨 나는 그에게 어떤걸 하려는지 대충 전해들었다. 결계를 사용해서 기의 방출 범위를 제한하고 밀도를 높이는 것.
" 그거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
결계에 대해선 누구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앱솔루트 테리토리를 전개하여 우성이 좀 더 기를 모아놓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며 록시아는 말했다.
" 결계를 치는건 쉽지만 그렇게 하는건 면밀한 컨트롤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처음엔 제가 도와드릴께요. "
우성이 기를 컨트롤하는건 자신보다 우위일테니 록시아는 그가 기를 영역 안에 모아두기 위해 시도할때 흘러나오는 기가 있는지 그 방향을 체크해주었고 견고하게 유지하는 법 같은 것도 가끔 알려주었다.
" 아예 범위를 몸 주변으로 극히 축소 시켜서 갑옷처럼 쓰는 것도 가능해질지 모르겠네요. "
신의 갑옷을 보여주며 이런 식으로 결계를 응용한다면 자신이나 우성이 좀 더 견고한 방어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우성도 점차 익숙해지는 것 같아 록시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 저보다 더 잘하실 것 같으니까 이젠 알려드리면 안되겠는데요. "
그렇게 록시아는 인사를 하고선 원래 하려던 신기 탐색과 함께 Sin 계열 스킬들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훈련을 좀 더 진행하고선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갔다.
“이봐, 필리아 대장. 일단 대충 짓밟고 한순 돌리는 동안 골치 아픈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말이야.”
“지금은 그런 것은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만, 일단 듣도록 하지. 왜 그러나. 이제 와서 용병단을 나온 것이 후회되나?”
그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며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남성은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저 녀석들, 지금은 철수하고 있지만 아마도 얼마 안 가서 병력을 추가해올거야.”
정면, 광대한 설원은 전장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장막이 내린 하늘은 군데군데 진주를 갈아 넣은 검은 비단처럼 아름다웠으나 그 아래에는 대부분이 흰색. 그리고 그 넓은 공간 위에는 북방 이민족의 전사단과 기사들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다.
멀리 건너편과 주위를 둘러싼 숲근처에서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이들을 구조하며 철수하는 것이 한창이었으나, 군데군데에 흰색 옷으로 정체를 감춘 이들이 정찰을 하는 것이 대놓고 보였다. 전사들의 나라이기에 이런 방식의 싸움에는 익숙하지 않은 거겠지.
아쉽게 되었군, 필리아는 그리 말하며 수행인이 가져온 의자에 자연스레 앉았다.
“솜씨가 좋은 것은 알고 있었네. 문양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 다른 부족일 가능성이 높군. 국경… 아니 마을의 경계라고 하나? 여기서는 잘 모르겠지만 숫자는 대략 300명 정도인가.”
“아마 선봉이 그 정도니 본대는 적어도 배는 될거야. 소수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다른 민족에 비하면 그렇다는 뜻이니까.”
“곤란하게 되었어.”
그러면,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위치는 북서, 유일하게 숲이 없고 평원이 이어진 곳이었다.
“계속 싸울 거라면 퇴로 정도는 확보 하는게 어때?”
“오늘은 마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단 말일세. 마력에만 의지한다면 권의 예기가 줄어들 테니.”
필리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일전에 있었던 전투의 기억을 되새김질 하며 레오넬의 장원에서 주먹을 휘두르기를 몇시간. 해가 질 때쯤 시작한 훈련은 곧 동이 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무극을 보았다.
정확히는 무극에 이르기 위한 길을 본 이후부터 그녀는 이렇게 생각에 잠겨 수련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이번에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은 분명 재해라고 불렸던 남자였을테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분명 강해졌으나, 그렇다고 하여 역시 아직은 재해에 닿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버티는 것 만으로도 육신은 한계에 봉착했다.
굳이 변명을 더한 다면 직전의 전투에서 다른 이들이 받을 공격을 대신 받은 탓이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현실이 변하지는 않는 노릇이었으니 그녀는 맞서는 것을 선택했다.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심상에 빠져든다. 감각의 확장과 함께 권에는 예기가 서린다. 허나 부족했다.
대지는 넓다. 하늘은 아직 검다. 그것을 아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드디어 명상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필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덤벼드는 살수의 다리를 떨쳐내고 온 힘을 다해 주먹을 적의 심장에 때려넣은 뒤 손을 떼고,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상대방에게서 무기를 빼앗은 뒤 체중을 실어 휘두르면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살수는 반으로 갈라졌다. 다시 놓친 무기를 잡은 뒤 부수고 놓고, 휘두르고 버리고, 빼앗고 때려놓고. 황금색의 궤적이 나부끼는 것보다도 무기를 휘두른다.
“하아아아아아………!!”
울음소리는 하늘 높이 뚫고 온몸으로 머리카락을 찢어버릴 듯이 공간을 뛰어넘는다. 무기를 빼앗아 자르고,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칼을 던지고, 다리가 부서져 쓰러진 사람을 방패이자, 발판삼아 뛰어오르고 가속해 빼앗은 무기를 제 것인 것마냥 양 팔로 휘두른다.
쓰러찌려는 이가 있으면 몸을 회전시키며 걷어차 하늘 높이 날린다. 물러나는 상대보다 빠른 속도로 지나쳐 그 순간 칼을 꽂아 넣어 휘두르고 적인 놓친 무기를 몇 번이나 바꾸어가며 장원 안을 휩쓸었다. 고리가 달려있는 검에는 손가락을 걸쳐 휘두르고 던지고 꿰뚫고.
“하아아아………”
몇 수 아래인 상대를 대상으로 펼친 것이라고는 하나 그녀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최근 나태해졌다. 강함이 무리를 지은 것이 패착이었던 것일까. 아니, 그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기사단의 인간은 하나같이 소중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것만큼은 후회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의 오만. 전부를 가지겠다 하여 놓고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천천히 다시 상념에 빠진다. 순수한 무. 외공을 넘어라. 심상은 확장된다. 저 멀리 깊은 곳 까지. 아직 닿을 것 같다 하여도 이 땅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나의 주먹은 우주에도 닿아야만 했다.
누군가에게는 요정 왕자라 불리는 금발의 소년이 있다. 물가에 쪼그려 앉은 채로 무언가 고심하듯 끄응 소리를 내는 게 뭔가 잘 안 풀리는 일이 있는 듯 하다. 소년의 주변에는 어느 신성 가문의 자제에게도 평이 좋았던 물고양이, 주변을 헤엄치는 돌고래와 그의 앞에서 뿌우! 소리를 내는 귀여운 얼굴의 고래까지 있었다. 또한 그 어깨에는 자그마한 요정이 앉아 있었으니,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카셀라가 삐졌어."
그 가운데 소년이 품은 고민이란 일상적이고 귀여운 것이었다. 캐시는 관심이 없다는 듯 하품이나 크게 하고, 돌핀은 잘 모르는 것처럼 그냥 코를 연신 소년에게 문지르며 애교를 부릴 뿐이었다. 그나마 함께 여행을 다니며 카셀라와 친해진 모비가 있었지만, 왜 삐졌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 할 뿐이었다.
이에 소년은 조금 더 곤란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소년은 곧 한숨을 뱉더니 일단 돌진하고 보기로 생각하고, 물에 발을 내디뎠다. 잠시 소년을 중심으로 물이 빛나는가 싶더니, 잠시 후 소년은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졌다. 이윽고 소년이 나타난 곳은 그가 카셀라와 처음 만난 호수. 소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호수 안쪽으로 몸을 집어 넣고, 수류를 조작하며 카셀라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이윽고 소년은 도착한 오두막 앞에서 두어번 노크를 하고 카셀라를 기다렸다. 아마 이 시간에는 보통 집에 있던 것 같으니까.. 어떻게 해야할지는 소년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단 칭찬을 쏟아붓고, 겉으로는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격이 올라간게 느껴진다고 또 칭찬을 해볼까.
일단 첫째, 라디온 선배의 부탁으로 학생회 홍보문을 작성했다. 일단 홍보문은 열심히 쓰긴 했다. 한동안 학생회를 따라다니며 본 업무와 학생회 인원들을 즐겁고 친근하게, 학생회가 너무 멀지 않게 느껴지도록 작성하였다. 근데 이걸로 학생회에 올 사람이 늘어날 지는 모르겠다. 글 하나로 입부를 결심할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학생회 문을 두드렸을 걸.. 그와 별개로 나는 영감을 받았고 아서도 무언가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청춘물을 쓸까 싶었다. 그리고- 다양한 체험이 중요한건가? 하는 의문을 느꼈다. 나는 이제는 조용해진 도서관의 열쇠를 보았다.
그리고 두번째. 일루미나씨가 환상의 도서관에 왔다. 이곳에 허락된 것이 나 하나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놀라긴 했어도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근데 어.. 들어오고 나서 일루미나씨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책을 대여하는 건 대여하는 건데 그 값을 왜 나에게 주지..? 나를 사서로 생각했던 걸까?
세번째. 이건 네로에 관한 일. 최근 내가 모르는 문자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많이 아쉽지만, 이게 내 이야기라는 건 신기하게도 알 수 있었다. 완성되면 나도 읽을 수 있게 될까? 어찌되었든 문자인 만큼 노력하면 학습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노트에 기록하던 펜을 놓고 네로를 조심히 잡아 들어올렸다. 황금빛의 화려한 표지와 마치 눈을 마주하듯 나란히 세웠다. 애초에 네로는 대체 무얼까? 마도서는 아니다. 성장하고 있지만, 딱 그것까지만 알 수 있다. 환상의 도서관을 여러번 왔다갔다 했지만 네로같은 책은 또 본 적이 없다. 네로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의지가 있다는 건 분명한데... 나는 빤히 네로를 바라보다 툭, 이마를 맞대었다.
"너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늘 고마워 네로."
네로는 나를 위해 힘이 담긴 구슬을 주었지. 그것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믿는다. 이야기는 이제야 프롤로그를 조금 지났을 것이니. 나는 펜과 노트를 정리한 뒤 네로를 들어올..릴 필요는 없이, 떠오르는 네로를 옆에 두고 환상의 도서관의 문을 열었다. 네로는 여기서 왔다. 그러면 여기에 힌트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일루미나 씨가 던져준 작은 돌, 3층으로의 입장권을 쥐고 걸음을 옮겼다.
지난번에 록시아와 합동 훈련을 한 뒤로 권능에 변화가 생겼었죠. 그 동안 의뢰를 포함한 다른 일들을 하느라 신경쓰지 못했지만.. 이제야 시간이 생겼던가요! 훈련장으로 향한 제나는 우선 원죄의 악마를 사용해 악마의 모습으로 변한 다음, 새로 발현된 힘을 써보려 했..는데
" 음..... "
정확히 뭐가 바뀐건지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아, 강해졌다거나- 한 것은 맞는데, 그걸 제외하면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모르겠다가 더 적당하겠네요. 빛을 먹는다곤 했는데, 이걸 어떻게 확인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말이에요. 신성 쓰는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고.. 이런 것 가지고 록시아를 다시 부르기도 뭣하고..
어느 새 소환되어 뿔에 매달려 놀던 여우 자매의 앞발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던 제나는 아주 간단한 결론을 내렸답니다. 이 힘은 결국 메이드의 힘이잖아요? 그럼 직접 불러서 물어보면 되죠. 어떻게 쓰는지- 라거나, 응용하는 방법이라거나- 뭐 그런 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