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장이었다. 하우성은 저녁의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창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창, 블러디 쉐도우.. 신창합일의 경지를 이루기 전, 그러니깐 창의 공명이라는 경지를 넘었을 시기부터 이상하게 창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우성은 이를 헛것이라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수련이든 실전이든.. 이상하게 우성의 의지와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하는 창술의 초식들.. 분명 자세와 호흡 그리고 타이밍까지 완벽했는데도.. 엇나가기 시작했다.
신창합일의 경지를 이루고나서는, 이상하게도 창의 의지가 더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말을 안 걸어주냐는 듯이.. 우성은 혹시나 진짜로 창에게도 의지가 있는가 생각을 하여서, 창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하우성은 먼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한 바람 소리만이 그의 귓가에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자신의 심장의 박동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천천히 눈을 뜨며, 하우성은 창을 쥐고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고,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 속삭이기 시작했다.
"혹시 화가 많이 났니?"
"미안해, 내가 몰라서 그랬던 거였어. 지금까지 나와 함께 싸워오느라 많이 참았을 텐데.. 많이 외로웠지? 고생했어."
이러니저러니해도 현재는 '요정'이 차지하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단 말이지, 나. 자그마한 꽃을 피워 캐시(물고양이)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며 고민하고 있자니, 일단 요정의 영역에 가까운 '물'이 아니라, 조금 더 다른 걸 다뤄볼까 고민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내 손안에서 하늘거리는 꽃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만들어낸 스킬이나 권능도 꽃에 가까우니까..
"흐음."
꽃에 관련된 마법에 대해 좀 물어볼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누구에게? 레미 선생님에게!
책, 책이라.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일전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생각했다. 어쩌다보니 진룡파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 알게되었고, 먼 과거에 있는 실패한 광신에 대한 것도 알게 되었다. 같이 간 우성 선배가 진룡파의 대사형이니까 혹시 '우리 문파의 그림자를 알게 되다니 그대로 둘 수는 없겠군'이라 하는 전개도 상상해봤지만, 당시 화내신 걸 생각하면 그런 일은 없겠지? 품안에 있는 '네로'를 살살 쓰다듬으며, 그 이후를 다시 떠올렸다.
알 수 없는 공간, 누군지 모를 목소리. 황금빛의 문자들, 그리고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 나는 얌전한 네로를 들어올린 뒤 눈을 마주치듯, 표지를 보았다.
"..너는 뭔가 아나요?"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채 중얼거리고 일어섰다. 늘 주머니에 들어있는 열쇠를 꺼내 허공에 꽂아넣고 빙글 돌렸다. 곧, 문이 열리고 나는- 이제는 익숙한 세상에 발을 디뎠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책냄새. 그리고 시야를 가득 메우는, 끝 없는 책장의 숲. 사랑해 마지않는 환상의 도서관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엄밀히 말하면,"
손에서 놓은 네로는 어느새 내 옆을 둥실 따라오고 있다.
"모든 책은 일종의 역사서..의 성격도 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이야기에서 보이는 시간, 공간적 배경. 인물들의 태도, 사고방식이나 보여지는 문화. 대사의 형식, 문체, 이야기를 이루는 형식 등등. 해당 이야기가 작성된 시기의 특징이 반영되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소설만 모았다고 하여, 후세에 단순히 이야기만 보내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으음.
"...사실 저는 그냥 소설이 좋아서 모았을 것도 같습니다. 그, 제가 그럴 것 같거든요. ...네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필리아는 훈련장의 정 중앙에서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은 이미 박살이 나버려 아슬아슬하게 형체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 제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한계에 이른 듯 보였다. 방금 있었던 자그마한 폭발의 여파인지 얼음 조각과 빨갛게 달아오른 돌덩이들이 주변에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나는 왜 이렇게 야무지지 못할까, 필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닥에 땀이 섞인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1년이 지났지만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육체적으로는 확실히 성장했으며 스스로도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다른 이들에 대한 기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나 그렇다고 하여 바라는 수준에 이를 수 있었나 하고 생각을 다시 해본다면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야무지지 못하다.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배워온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자해를 해야 겨우겨우 남들의 발끝을 따라가는 정도.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훈련장 바깥에서 대기하던 여학생과 남학생들. 신입생이라고 들었기에 큰 신경을 두고 있지는 않았으나 서로 훈련을 하는 시간이 겹쳐 만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끔이나마 훈련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돌아온 이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생각해본다면 정말 짧은 시간 동안 함께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딱히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잊었는지 평범한 모포를 들고 달려오는 여자도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태도는 어떤 의미를 지닌다. 내가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것.
“괜찮으신가요?”
괜찮다. 나는 괜찮아. 그저
“---아직 마력 조작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야.”
필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을 닦고 가져다 준 모포를 들어 흘렀던 땀까지 닦아냈다. 모포를 가져온 여자가 피가 잔뜩 묻어나오는 것을 보고 으아, 소리를 지르자 훈련장 위에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필리아는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이미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스승님과 나누었던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나는 재해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분명히 그것은 이런 사소한 즐거움을 지키기 위해. 그래서일까. 아니면 상관없이 예전부터 그런 걸까. 다들 서스럼없이 다가오며 신경 써주고 있다. 내 그릇에는 이들의 마음이 담긴 것이다. 이들이 나를 받쳐준 덕분이다. 설령 극단적으로 짧은 인연이라고 하더라도 가감없이 이야기해주고, 말해주고, 나는.
“음, 충분하군. 다들 고맙네. 답례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선배로서 훈련을 조금 도와주고 싶네만.”
필리아는 훈련장에서 두 가지 흐름을 보았다. 하나는 이미 나의 훈련을 경험해 슬금슬금 도망치고 있는 동기와 후배들. 그 앞을 차지한 선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직 무엇도 모르는 신입생들. 고작해야 훈련이거늘 그런 식으로 도망치는 것은 좋지 않지. 무엇보다도 스승님과의 훈련에 비한다면 내가 감독하는 근육트레이닝은 아주 상냥한 편이었다.
“자 우선은 다들 근육을 식히는 것부터 해보세나.”
문신의 마력을 돌린다. 자연적으로 흐르고 있는 화염의 마력을 침식하는 냉기로 몸을 식히고 가볍게 도약하여 문을 잠그었다. 잡기가 생기다보니 이런 점은 아주 즐거웠다.
그녀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립니다. 정체모를 문을 열고 공간의 틈새로 빠졌던 그 때의 일이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 - 암월검이라거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무언가라거나, 네 개의 가문이 힘을 합친다거나(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요)- 도 있었고, 명백히 레오넬과 연관된 대화도 있었죠.
레오넬의 비기라는 말에 초대 가주인가 싶었지만 그녀가 알고 있던 초대 가주와는 목소리 - 정확히는 성별-이 달랐으니 초대 가주는 아닌 것 같은데, 가주 이전의.. 그러니까 가주랑 별개로 레오넬 가문 자체를 세운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등을 생각하던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이름이 맴돕니다. 아그니. 라고 했었죠
뭐, 아그니라는 이름 자체가 아예 처음 듣는 이름은 아니였습니다. 당장 그녀가 가지고 있는 권능에도 언급되는 이름이였으니까요. 염신 아그니. 레오넬 가문에 대대로 내려지는 가호의 주인이자, 가문 종특인 급발ㅈ.. 아니아니, 불같은 성격의 근원인 레오넬 하트 또한 불의 신과의 계약의 부가효과로 추정된다고 했었으니까요.
이쯤 되면 네. 궁금증이 더 일 수밖에 없죠. 마음먹은건 행동으로 옮기라고 했던가요? 그녀는 가문의 고서 중에서도 오래된 것들을 찾아보고, 그것과 별개로 가주인 자신의 아버지에게도 찾아가 아그니에 대해 물어보려고 합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고서랑 별개로 가주들만 알고 있는 무언가! 가 더 있을지.
저번 동굴에서 록시아는 신기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엘펜하임은 자신이 신기가 아니고 내가 사용하는 것들이 신기라고 하였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신기들은 카르마의 방패와 성창 브류나크. 그렇다면 다른 신기들도 있는 것일까? 창이 있다면 검도 있을 것이고 활도 있는 것일까?
" 아니면 신기란 그저 개념적인 것에 불과한 것인가? "
내가 신기라고 인식한다면 그것이 신기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은 어째서 방패와 창만 있는 것일까? 계속 꼬리를 무는 의문에 나는 결국 답을 내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무언가 방향성은 정할 수 있었기에 결국 나는 신성력으로 검을 만들어 보았다.
" 검술을 모르니 휘두르는건 안되겠지만 ... 염력으로 여러 자루 날리는건 되지 않을까? "
조용히 중얼거리며 나는 신성력과 마성력으로 이루어진 검을 여러 자루 만들어 염력을 이용해 날리는 연습을 진행해보았다.
오늘은 실습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각자 자유롭게 연습을 하고 그것을 보여주면 된다고 했기에 나는 가장 자신 있는 번개 마법을 연습하기로 했다. 번개 마법엔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난 그중에서도 파괴력이 높은 번개를 한줄기 떨어뜨리는 라이트닝 마법을 좋아한다. 록시아님이 칭찬해준 것도 그거고!
뿅! 당신이 말을 걸었을때 묵묵부답이던 창이었지만, 갑자기 떨리는가 싶더니 창날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습니다. 그것은 손가락 마디 두개 정도의 요정같은 무언가. 아마 이 경우에는 창의 정령이라거나 생령이라고 봐야할거 같습니다. 생긴것은 당신의 창과 닮은 검은 머리색을 시작으로 창의 배색을 그대로 따라간 옷을 입고 있습니다.
"맨날 내 말 무시하고!"
쒸익- 쒸익-. 생령은 허공에 발을 구르며 화를 냈습니다.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거 같습니다.
『Bloody shadow』 - 공격 최대값 +200, 공격 적중때마다 출혈*
신창합일 +5 : 창, 장류 무기 사용시 공격 최소값 +300, 회피 최소값 +20 | [CP]
책은 말을 할 수 없다. 이것은 상식이다. 세상 어디에 말을 하고 소리를 내는 책이.. 있긴 하겠지. 세상은 무척이나 넓고, 마법은 글자의 수만큼 다양하다. 그러니 그런 책이 있을 순 있는데, 대부분은 아니다. 허나 그들이 침묵을 하는 것 역시 아니다. 몸에 새긴 단어, 잉크로 적힌 글씨로 그들은 자신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
나는 심연의 깃펜을 들었다. 여태껏 모아두었던 돈을 써서 고급 잉크까지 구비해두었다. 그리고 네로를 펼친 뒤, 조심스럽게 펜끝을 대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까? 깃펜을 든 것은 좋고, 네로를 펼친 것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을 쓸지에 대해서는 머뭇거리게 되었다. 인삿말을 적을까? 대화를 하는 것처럼?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 고민 끝에 나는-
그날은 유독 아침이 빨랐다. 새가 아침녘에 인사를 하기도 전에 일어났으니. 평소라면 조금 더 자자며 이불을 둘러썼을 시간에도 이상하게 정신이 맑았고 눈꺼풀이 끈적거리며 떨어지길 거부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도 오랜만이라, 모처럼이니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 몸을 일으켰을 때 머리맡에서 뭔가 침대의 요동과 함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곳에 있던 건 한 장의 종이였다. 누가 둔 것인지도 모를 그건 펼쳐서 확인하니 지도였다. 어디서,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언제, 어떻게 가져다 놓은 것인지 모를 수상쩍인 지도를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그저 어디로 향하는 지도인지 확인했을 때- 나는 이게 함정이라도 어쩔 수 없겠구나 하는 확신을 얻었다.
'환상의 도서관' 그 여섯 글자를 보았을 때 나는 가장 먼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내가 여행을 떠나게 되겠구나, 평생 책이나 읽을 줄 알았던 인생이 이리 흘러갈 줄은 몰랐다. 그리고는 짐을 챙겼다. 가진 재화와, 몇 권의 책. 옷 몇 벌, 필기구. 커다란 가방에 물건을 집어 넣으면서 나는 점차 가슴께가 두근거렸다. 이야기의 시작 같지 않은가?
천천히, 내가 네로를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나는 정갈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그 위에 '물의 요정'을 올려다두었다. 내 양 손바닥 위에 올라갈 정도로 작고, 귀여운, 내 친구 물의 요정. 언어는 사용할 수 없으나 소리를 어느 정도 내는 것이 가능한 이 아이는 발랄하게 방긋방긋 웃으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여행 길에 만나서 잠시 동행하다 자연스럽게 친해진 이 친구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슬슬 이름을 정해주려고 해. 괜찮을까?"
아이는 어렴풋이라도 이해한듯 방방, 손바닥 위에서 뛰어올랐다. 손에 느껴지는 말랑한 촉감이 슬그머니 웃고선, 최근 고민했던 이름을 말했다.
"'플루'. '흐름'을 의미하는 오래된 말에서 따왔어."
네가 크게 자라서, 거대한 흐름이 되어 너 자신을, 또 많은 이들을 지킬 수 있기를. 또한 모든 자연은 결국 흐름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있으니, 네가 대단해지길 바라. 플루.
우성은 자신 앞에 나타난 작은 생령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창의 생령이 이렇게까지 분노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 그 전에 창에 생령까지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우성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며 생령을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다.
"미안해.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지? 내가 네 말을 애써 부정하며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용서해줘."
"네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 혼돈이고 뭐고 결국은 너가 없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지 못했어. 너가 그렇게 고생했는데, 정작 나는 모르고 있어서 미안해."
"이제부터는 네 말을 잘 들을게. 같이 싸우고 수련하면서 잘 지내자, 응?"
이어서 우성은 창을 챙기더니, 어디론가 가며 말했다.
"역시 행동으로도 증명해야겠지? 잠시 나를 믿고 너를 맡겨볼래?"
30분 뒤..
"어때? 너의 날이 많이 무뎌지고, 녹슬었더라고. 그래서 내가 직접 정비를 하고 있어. 기분 좋지?"
우성은 창의 무뎌진 날을 정성스레 날아서 날카롭게 만들고, 묻은 녹을 제거해주면서 창을 청결하게 만들고 있었다. 적절한 온도의 물도 적셔주면서 말이지. 창의 금속부분에는 적당히 기름침도 해주면서 부식을 방지하고, 매끄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창을 거울로 보이면서 말했다.
"짠, 엄청 깔끔해졌지? 이제 말리자. 습기가 차면 다시 녹이 슨단 말이야."
그렇게 창을 말린 뒤에 향한 곳은 따스한 햇빛을 쫼 수 있는 자연공원이었다.
"따뜻하지? 바람도 선선하고 말이야. 생각해보니깐 너를 데리고 이런 곳에 온 적은 없었더라고. 마수들이 드글대는 숲이라면 모를까.. 지금까지 본 곳들이랑은 많이 다르지?"
"......"
"혹시 뭘 더 원하는지 알 수 있을까? 너랑 얘기하기로 했으니깐, 당분간은 너가 원하는대로 해줄게. 지금까지 내 의지로만 끌려다니니깐 얼마나 힘들고 서운했을 테니깐."
조금 늦은 시간. 네로 전용으로 만들어둔 책꽂이에 네로가 얌전히 들어가있고, 나는 자그마한 마법등을 켠 채로 노트에 펜을 놀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 쓰기 시작한 소설, '길잡이'를 이어가고 있는 참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놀러왔다가 길을 잃은 소년이,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가, 황금빛 나비와 만나 함께 인도를 받으며 여행을 하는 이야기. 환상적이고, 현실이 아닌 어느 꿈 속을 거니는 듯한 분위기를 중심으로 잡은 이야기는, 그 폭신함과 별개로 썩 밝지는 않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고 버려진 것이라, 소년은 돌아갈 곳이 없다. 미아가 되어버린 그는 자신이 있을 곳을 찾기 위해 떠돈다.
...단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적어도 세 권 정도로 나뉠 분량의 이야기. 그마저도 계획일 뿐이지 막상 쓰기 시작하면 얼마나 늘어날지, 혹은 줄어들 지도 모른다. 제목도 가칭이니.
달각 "..아. 아서, 고마워."
다음 내용을 고민하며 노트 가장자리에 깃펜을 툭툭 치고 있으니, 옆에 무늬 없는 찻잔이 놓였다. 차를 준비해준 아서는 내게 방긋 웃어보이더니 물러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내 마법은 특정한 인물, 혹은 동물을 부르는 것이 많다. 공격 행위를 시키지 않은 채 그저 불러놓고 가벼운 부탁을 하는 것도 가능한데, 유독 아서는 자의식이랄까, 그런 것이 강해서 비교적 여러가지를 부탁할 수 있었다. ..아니면 그냥 성격 문제일지도? '마녀'는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고, 꼬마 광부 '팍'은 나보다도 어린 아이인 만큼 뭘 부탁하기 어렵다. '블라드'는 아무래도 대공이라 그냥 내가 대하기 힘들고. '그림리퍼'는... 일단 말은 들어주는데 아무튼 논외.
"..."
아서 말고는 이런 부탁을 할만한 인물이 없구나-하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내가 처음으로 쓴 소설의 주인공이라 원래도 정이 좀 많이 가던 애인데, 여러모로 의지가 많이 된다.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생각보다 맛이 괜찮아서 놀랐다) 다시금 펜을 붙잡았다. 문자는 힘이 된다. 그러니, 이 우울한 이야기도 행복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도록 만들 셈이었다. 그러면 현실도 조금은 더, 즐거워지지 않으려나!
꽃이나 식물에 대한 마법은 땅속성. 그렇다면 나는 여러모로 좋은 게 있다. 나는 늘 가지고 다니는 우산, 랜드렐라를 보았다. 땅의 요정의 힘이 들어간 만큼 이것도 땅에 대한 친화력을 높여주었다. 심지어 이제는 노움도 부를 수 있다! 응. 그러니까 이걸 이용해 땅속성의 마법을 수련하고자 한다. 물론 꽃의 형상을 띄면 더 좋고.
{?} "왜 굳이 그러냐는 듯한 표정이네. 음, 나는 요정이지만 인간이기도 해서 그래, 플루."
나는 자주 사용하는 워터샷, 이제는 '워터 쏜'이 된 기본적은 수속성 마법을 떠올리며 우산을 과녁에 겨누었다. 물을 압축하여 쏘아내어 위력을 올리는 워터 샷. 내가 지금 만드려는 것은 그것의 땅속성 버전이었다. 위력을 생각하면 바위를 쏘아내는 게 가장 단순하게 위력이 높겠지만- 미학이란 중요한 거라고 배웠어. ...사실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야.
..아마 전생도 이런 성격이었던 것 아닐까... 나는 괜한 생각은 적당히 접고 옆에서 보고 있는 플루를 향해 웃었다.
"나는 욕심쟁이라서 말이지? 요정도 인간도 포기하기 싫거든."
자 그럼 '꽃'을 쏘자! 그러면 위력이 부족하겠지? 그러면 바위나..그래 광석, 그런걸 꽃의 형상으로 다듬어 쏘는 건 어떨까? 특별한 효과는 필요 없고 단순한 공격기. 좀 많이 예쁜 땅속성 워터샷을 상상하면서.
"그러고보니까 모비나 카셀라가 여행에 취미가 붙었던 것 같네. 머지 않아 어디로 가볼까."
글솜씨 +3 : 글을 잘 쓰게 된다. 생성되는 스킬값에 보정 | [P] 서사시Epic Journey +4 : 성장에 보정 | [P]
situplay>1597047901>315
-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냈습니다.
「꽃잎포」 – 공격 최소, 최대값 +230 | [At] [회무] [쿨 4]
「땅의 인장 +4」 – 땅속성 스킬 보정 | [P]
situplay>1597047901>316
「더티 카운터 (改) +5」- 받은 데미지의 170%를 자신의 공격값에 더해 돌려준다. | [Do] [쿨 1]
situplay>1597047901>317
창의 생령은 생각했습니다. 싸우고 있는거 찾아서 구해주고 주워가는건 너무 인위적인게 아닌가 하고.
'..... 상관없나!'
에이 모르겠다. . . 당신은 어째서 이 숲에 있었는지 모를 응애 펜릴을 주웠다.
「테이밍」 - 마수를 길들인다. | [P]
situplay>1597047901>318
여신의 방패의 효과로 마도천경과의 복수 발동은 지금까지도 해온 기술이었지만. 그것을 하나로 바꿔서 발동하려고 하니 상당한 반발력에 제대로 섞이지 않았습니다. 기껏 반사한다 싶으면 그 궤도가 이상하게 날아가고. 아니면 아예 여신의 방패가 취소되어 버리곤 했죠. 아마도 여신의 방패 자체의 신성력이 너무나 방대한게 문제인거 같습니다.. 일단 수련하면서 각각의 스킬들은 강해지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마도경 +5」 -> 「마도천경」 - 적의 최종값 x1.2을 반사. 데미지는 판정대로 받는다. | [Bu] [쿨 5]
우성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상상하는 혼돈을 다루기 위해서는 '성'급의 경지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 경지가 아니니.. 할 게 없다. 우성은 쇼콜라와 안에 있는 실비아 그리고 창에게 말을 건다.
"너네도 심심하지? 나도 몸이 근질근질하단 말이야.. 실비아도 실전감각 좀 키울 겸, 우리 사냥이나 나가볼까?"
우성은 바로 던전으로 향했다. 저번과 같은 숲이 아닌 늪지대로 말이야. 우성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전장파악'으로 잠시 늪지대의 환경을 살피고 실비아에게 말한다.
"실비아? 너의 임무를 줄게. 지금부터 너는 주변을 정찰해서 사냥감이 보이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줘. 하지만 정찰 중에 너보다 강한 마수가 덤비면.. 무모하게 맞서지 말고 나에게 바로 돌아와. 알겠지? 돌아오지 못하면.. 그냥 울어. 내가 너 울음소리는 알잖아? 듣고 바로 달려갈게.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는 꼭 구하러 올 거니깐 겁먹을 필요가 없어."
빠른 기동전이 특기인 실비아. 이와 더불어 펜릴 마수이기에 다른 마수들보다 후각이 훨씬 뛰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후각을 이용해서 빠른 움직임으로 정찰전을 펼치는 것이다.
"내가 파악해본 결과.. 이 지대는 수렁하고 진흙으로 덮여 있어서 이동이 힘들어. 늪지대니깐 말이야. 나무,덤불,이끼들도 우거져 있어서 시야확보도 힘들지. 보니깐 독성식물도 있고, 해충들도 많아서 방해가 될 거야."
우성은 실비아에게 나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이 위험요소는 땅을 밟았을 때나 그런 거고.. 나처럼 나무를 타서 은밀히 이동하면 돼. 실비아 너도 날렵하니깐 나무들 사이를 넘나드는 건 쉬울 거야. 하지만 마수들에게 노출될 가능성도 있어. 그러니깐 항상 주위를 잘 살피고, 나무들 사이의 간격도 신중히 고려해서 너가 이동경로를 잘 선택해야 돼. 이동경로는 내가 어떻게 못해줘. 너에게 내 눈이 달린 것도 아니니깐. 이거는 너가 직접 극복해야 돼."
그렇게 실비아를 정찰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비아는 신난 표정으로 우성에게 돌아와 옷을 물고 잡아당긴다.
"알았어..옷 늘어나겠다. 가보자."
실비아가 안내한 곳으로 가보자.. 이런? 이번에도 마수들끼리의 싸움이 있었다. 1대 다수의 규모의 싸움.. 단단한 가죽과 거대한 덩치를 가진 포유류.. 그러니깐 하마,코뿔소,들소 등이 연상되는.. 그러니깐 그런 터프하고 단단한 포유류에 이족보행이 추가된 마수라고 보면 될까? 분명 1대1이면 저 마수들이야 간단히 죽이는데, 하필 상대의 수가 너무 많네.
"실비아,쇼콜라,블러디? 다들 잘 들어. 싸울 때 가장 화나는 게 뭔지 알아?"
"나보다 훨씬 더 강한 적을 상대하는 것? 아니야.. 분명히 혼자면 별 것도 아닌 녀석들인데, 그것들이 뭉쳐서 덤비는 거야. 공격은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한 녀석 쓰러뜨리고 다른 녀석 상대하면.. 그 쓰러진 녀석이 다시 회복해서 덤벼들고.. 게다가 이렇게 환경까지 불친절하다면.. 으으.. 싫어."
"분명 저 마수가 간신히 이긴다고 해도, 싸움에서 얻은 부상 때문에 이후에 본인보다 약한 마수임에도 잡아먹히거나 부상이 악화되어서 죽을 거야. 근데 아깝지 않냐? 나는 저 단단한 녀석이 저렇게 죽는 게 너무 아까운데."
블러디는 이 말을 듣고, 우성이 밑밥을 깔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도 있었겠다.
"자, 그러니깐 우리는 저 마수를 구하기 위해서 싸우는 거야. 실비아? 나는 정면에서 녀석들을 상대할게. 너는 정면에서는 빠져있어. 싸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야. 너는 빠르고 치악력도 좋잖아? 너에게 맞는 스타일이 있어."
"분명 내가 정면에서 상대하면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기습하는 녀석이 있을 거야. 너는 그런 녀석들을 먼저 기습해서 없애면 돼. 기습을 한 후에는 아까처럼 나무로 올라가서 다시 상황을 살펴. 하지만 매번 같은 나무에 올라가면 안 된다? 적들에게 너의 위치를 대놓고 알려주는 꼴이니깐. 매번 너의 위치는 달라야 돼. 그래야 적들이 혼란에 빠지니깐. 어렵지 않지?"
그렇게 우성은 늪지대에 뛰어든다. 진흙과 수렁이 많은 늪지대의 특성.. 그렇기에 우성은 땅이나 물가를 밟지 않는다. 그저 마수들의 등이나 머리를 발판삼아서 기동할 뿐. 우성은 그동안 갈고닦은 창술과 혼돈의 기를 적절히 조화롭게 펼치고, 실비아의 어시스트를 통해 마수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싸움이 끝난 뒤, 우성은 포유류 마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상처들을 치료해주려고 했었다.
"음.. 너, 무슨 마수인지 모르겠거든? '베히모스'..그러니깐 '베히'라고 부를게?"
"너도 알지? 원래라면 너가 얘네들을 이겨도 곧 죽을 운명이라는 걸 말이야. 이런 불친절한 야생에서 나처럼 치료해주는 사람은 없으니깐."
"자, 선택해. 언제 죽을지 불안한 야생에서 계속 살래? 아니면 나랑 같이 가서 더 강해지면서도 평소에는 평화롭게 살래? 너가 선택해. 너가 거절하고 나에게 덤벼도, 나는 안 싸우고 도망갈 거니깐 편하게 선택해. 거절한다고 딱히 너가 나랑 싸울 일도 없으니깐."
오늘도 어김없이 훈련장을 방문! 내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피곤해도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을 해야만 한다. 허나 오늘은 훈련장에 사람들이 들어가있지 않고 큰 화면을 통해서 안쪽의 상황을 보고 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자 내 눈은 크게 떠질 수 밖에 없었다.
" 록시아님이랑 제나님이잖아! "
두 분은 서로 거리를 두고서 제나님은 공격 스킬을, 록시아님은 방어 스킬만을 사용하면서 합동 훈련을 하고 있는듯 했다. 이런 광경을 보다니 오늘은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눈을 반짝거리며 두 분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으니 수많은 불꽃들과 그것을 막아내거나 피해내는 일련의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나도 언젠가는! "
아직 발 끝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지만 ... 열심히 한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두 분의 훈련이 끝나자 모여있던 사람들은 다시 제각기의 할 일을 하러 흩어졌는데 나는 곧장 훈련장으로 들어가 라이트닝을 연습했다. 좀 더 강한 위력! 좀 더 빠른 속도!
우연히 록시아와 만나 훈련을 같이 하게 된 약속을 잡은 제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훈련장으로 나왔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누군가랑 같이 훈련을 한 적도 거의 없었을 뿐더러, 자신의 불꽃을 적이 아닌 친구한테 써본 적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요.
그래서 약속 당일, 훈련장으로 나온 그녀는 처음부터 화력을 펑펑 터트리기보다는 대략 감을 잡는 식으로 약하게 공격을 몇번 해 보고, 적당히 감을 잡은 다음부터 제대로 스킬을 써 가면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뭐 일단 감을 잡으니 훈련 자체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됬었죠. 방어나 회피를 주력으로 연습한다는걸 들었던 만큼, 그녀도 자신의 주 공격 스킬인 불꽃이나 회피를 무시하는 버프계인 바인딩 오브 헬니즘을 쓴 채로 대응하고, 아예 공격 자체를 막아버리는 여신의 방패는 구미화와 작렬 마력까지 써 가면서 화력을 내 봤지만.. 으음, 공격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아예 안 드는건 착각이 아닐지도요?
훈련이 끝난 다음에는 록시아가 만들어낸 공간에서 그와 함께 루루와 여우 자매를 놀아줬답니다. 왠지 모르게 훈련이 아니라 이게 본 목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으면서요.
「책속의 인물 +5」 - 인물을 소환하는 형태의 마법 최종값 +200 | [P] 「용사 아서의 검 +4」 - 적 전체에게 공격 최종값 +410, 단일 대상을 공격할때 1.5배 | [At] [쿨 4] 「종막 +5」 - 12턴 뒤, 공격 최종값 +2000. 시전중 사용한 스킬마다 1턴 감소. | [At] [방/회무]
한계를 넘어서, '벽'을 깨고 귀(鬼)급의 문을 열었습니다.
<캐릭터 최초 등급 업 보너스> 스킬 강화권 +3 티켓 +2 권능진화 :: 이름 없는 책Unnameed Book +1 -> 이름 없는 책Unnameed Book : 이야기를 기록하여 스킬로 만든다, 고등급 생성 확률 업. | [P] 스킬진화 :: 「신비한 동물사전 +1」 -> 「신비한 동물사전」 - 책속의 어떤 동물이든 구현해낸다. 특수효과 랜덤 발동 | [Bu]
..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인사드리게된 용사, '아서'라고 합니다! 저에 대해서는 대강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어기 지금, [책속의 인물]을 동물계 친구들에게까지 범위를 넓힐 수 없을까?를 고민하게 된 결과 여러 동물을 불러 놀다가- 아틀란타의 수호자, 명명 '란테'(원작에서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네요)에 올라타 무작정 뛰어다니는 안데르센이 최초로 직접 작성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아 참고로 지금 여기는, 아카데미에서 좀 멀리 벗어난 언덕입니다. '시간을 잇는 문'을 통해서 왔지요.
"흐아아아악!" 쌔앵!
아, 안데르센이 방금도 제 앞을 지나쳐갔네요. 그 뒤로 페가서스랑, '네로', 그리고 나비가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아 황금룡 '아르한투스'는 저기 엎드려 자고 있군요. 전부터 생각했는데 저 나비는 대체 어떻게 이동하는 걸까요? 천천히 팔랑거리는데 어느새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게 가끔 신기합니다. ..아니, 사실 가장 신기한 건 우리지. 안데르센이 가장 먼저, 홀로 떠올린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나는 유독 자의식이 강해. 그렇다고해서 안데르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불만 정도는 보여줄 수 있지.
원래라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우리는 아무런 생각이 없이 현실에 오랜 장면을 재현하는 인형이어야 정상이야. 내 옆에서 붉은 무언가로 이루어진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있는 블라드는 안데르센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아 내가 보는 걸 눈치챘다. 잠깐 꼬챙이는 쏘지 말고! 크흠, 아무튼 나보다도 자의식이 약한 블라드도 저 정도인 건, 확연한 이상한 일이지. 사실 우리는 말도 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저렇게, 즐겁게 뛰어다니고, 낮잠을 자고, 바보취급을 하고, 평화로운 경치를 보며 몸을 흔들거릴 수 있는 건-
-안데르센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겠죠.
'동심'을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를 사랑하며 '책속의 환상'이라 할지라도 진심을 다해 바라는. 이제 아이가 아님에도 어리다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기 떄문일 것입니다. 너덜너덜해지면서도 전장에서 벗어나지 않고, 해피엔딩을 꿈꾸며 이를 악무는 용감한 어린아이이기에. 특히 동물들이 점차 기억을 이어받으며 자신을 확고히 다져나가는 것은 동물의 순수함과 이어져서일까. 그럼에도 우리에게 힘이 들어가는 것은 친해지고 싶기 때문일까.
우리는 안데르센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한낱 그 뿐인 존재다. 다음에 다시 불렸을 때 이런 깊-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은 사라질 수도 있어. 일전의 일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고. 그럼에도 나는 한가지 확신할 수 있어. 아무리 다시 태어나도 나는 나니까.
'우리'는 모두, 너와 친해지고 싶어. 네가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사랑하는 아이를, 이야기가 어떻게 싫어하겠어?
"흐아아악.."
지쳤다. 화원의 수호자 란테에게 올라타서 언덕을 돌아다니게 된지.. 모르겠다. 아무튼 체감상 꽤 오래 걸렸다. 풀밭에 엎어진 채 멍하니 풀내음을 맡고 있을 때,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한쪽 무릎을 꿇은 아서와, 그가 내민 손이 보였다.
"아, 고마워."
그 손을 잡고 일어서니 아서가 정말, 집사라도 된 마냥 내 몸에 묻은 풀을 털어내주었다. 왠지 정말 갈수록 집사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겹쳐지고 있는 걸까? 아서를 포함한 모두는 내 마법으로 이루어진 생물이기에 아마 내 이미지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으음, 나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아서를 보다 어깨를 으쓱했다. 둥실 떠다니던 네로가 툭, 내 머리 위에 자리잡았다.
이것도 이제 익숙하네. 나는 키득거리고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많고, 많은 이들. 앞으로도 늘어날.. 응, 친구들. 이들과 친해지면 좋겠다고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이만 돌아갈까."
끄응! 나는 기지개를 쭉-펴며 말했다. 마력을 끊자, 곧 그들은 황금빛을 흩으며 사라져갔다.
"응?"
그리고 나는 그들이 나중에 보자는 듯, 손을 흔드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을 보고 나는 한동안, 어쩌면 좀 오래.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