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요즘 이론 수업에 학생들이 늘었습니다. 아무래도 곧 시험이라 그런걸까요? 졸업을 노리는 학생들은 더욱 더 혈안이 되어있었기에 교실은 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죠.
아라크네드니 뭐니 하지만, 역시 학생들한테는 아카데미의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 마력랭크 +350
공부 : 성적이 올라간다, 선생님들에게 호감을 사기 쉽다. | [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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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의 학습 +2 : 스텔라 관련 보정, 스텔라가 성장한다 | [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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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의 재능 +5 : 공격 최소, 최대값 +100 | [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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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읽기 +2 : 회피 최종값 +60, 자신에게 큰 보정, 상대에게 큰 역보정 | [발동계] [쿨 3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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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군? 어서와요."
우성의 소문과 다르게 아르돈은 딱히 당신을 보고는 무시하지도 경멸하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평범하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오히려 저번에 말한 마공은 어떻게 됐냐던가 하면서 친근하게 묻고 있었죠.
"하하, 저도 마에 가까운 사람이랍니다. 사람의 본질을 보는 힘 정도는 있어요."
아마 당신을 보고 놀라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겠죠. 그녀는 차를 한잔 마시고는 허리숙인 당신을 보며 말했습니다.
"급해보이네요. 그럼 본격적인 마공 수업을 시작해볼까요."
혼마신공 +5 : 공격 최소, 최대값 +120. 음기에 저항 | [패시브] 음양양립 +5 : 음과 양이 동시에 존재해도 반발하지 않는다. | [패시브]
"중요한건 힘을 합치면서도 합치지 않는거에요. 물과 기름을 연상하면 좀 편할까요. 하나로 뭉쳐져있는 힘이 그 안을 자세히 보면 나눠져 있는거죠. 양립하기에 음과 양의 힘을 다 쓸 수 있지만 합쳐졌기에 더 강해진 힘. 태극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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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어로 정확하게 상대를 속박하고, 마성을 균등하게 흘려 전신을 파괴한다.
듣기로기는 쉬워보이지만 긴박한 전투. 움직이고 있는 상대를 완벽하게 속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그 문제를 해결시켜준건 뜻밖의 신성으로. 비교적 유연한 컨트롤이 가능한 신성을 와이어에 담아 적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속박하고. 그 이후 마성을 흘리는겁니다. 신성으로 내구가 강화되어 와이어가 마성에 파괴되지 않는 효과도 있죠. 물론 컨트롤 부분에서 더 힘들어지긴 했지만..
「Sin 바인딩 앱소드」 - 적을 속박하여 행동에 역보정, 고정 400 데미지 | [공격계] [쿨 3턴] 「Sin 조곡 +2」 - 공격 최대값 +180, 데미지의 50%를 회복. | [공격계] [쿨 1턴]
훈련을 한다. 훈련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언가를 단련하는 것? 무언가를 익숙해지게 한다는 것? 무언가를 더 강하게 하는것?
그렇다면, 그것은 일상이 아닐까. 일상 속에서도 당연하게 쓸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수족처럼 어떤 것을 다룰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훈련이라면, 그것을 훈련 시간에 꼭 할 필요가 있을까. 새로운것을 만들 필요는 없다. 이미 자신 이전의 선조들이 그 필요성에 따라 만든 것이 마법, 신성력을 운용하는 방법. 그리고 선조들이 아니더라도 마수들, 마물들. 그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방어요, 공격. 그렇다면 그것을 배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스텔라가 나는 것도 자연스럽게 하는 것. 스텔라가 숨결을 내뱉는것도 자연스럽게 하는 것. 그렇다면 그 모습을 따라하고, 제어하는 것도 훈련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훈련을 하는 파트리샤였다.
적당한 물가에 쪼그려 앉은 소년이 고민하고 있다. 투명한 물이 소년의 생각에 잠겨 다소 멍한 얼굴을 그대로 비추었다. 그의 고민이 무엇이냐면, 일전에 본 공간이동의 '요술'에 관한 일이다. 바위벽을 통과하여 이동하고, 광석을 매개로 하여 이동한다. 즉, 그 요정이 속한 영역을 '이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소년 본인도 그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 아주 비슷하진 않더라도 약간 유사성이 있도록..
"...호수."
고민 중 그에게 떠오른 것은 고향의 '호수'였다. 숲으로 둘러쌓인 호수.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그 모든 시간에 각자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품고 보여주는, 영지 사람들이 칭하기를 '요정의 호수', 혹은 '비의 호수'. 시조인 '비의 요정'과 연관이 있다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더랜다. 실제로 소년은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비의 요정이, 인간과 발맞추는 삶을 고르고 자신의 영생을 한 번 버렸을 때의 일이 소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회상, 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만큼 인연이 가득한 장소라면, 비교적 쉽지 않을까? 잠시 고민한 소년은 물웅덩이에 발을 디뎠다. 물에서 물로, 여행하는 빗물처럼, '나'의 호수로 갈 수 있도록, 마력을 끌어올려 요술을 사용해본다.
최근에 얻은 '권능'이었다. 아마 이렇게 유용한 권능은 드물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책을 꺼낼 수 있는 개인 도서관이라니, 모든 독서가들의 소원 중 하나일 것이라 장담한다. 나는 곧장, 도서 회랑에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죄 등록시켰다. 사실, 대부분 내가 구입한 것이 아니라 마을의 '선행님'에게서 받은 것들이지만. 아카데미에 온다고 했더니 박수를 치며 기뻐하시고선, 여러 서적을 넘겨주셨지. 나는 흐흥,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참지 않으며 책등을 톡톡 두드렸다. 오래된 신화의 번역본들이나, 그것을 현대에 재해석한 소설들. 용을 잡은 대마법사의 이야기나, 반대로 용과 우정을 맺은 용사의 이야기. 동쪽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동화를 모아 놓은 동화집.
-그리고, 인간을 사랑한 인어, 엄지만한 공주, 깨진 거울조각과 눈의 여왕, 겨울날의 성냥팔이, 완두콩을 참지 못한 공주님, 자기가 오리인 줄 알았던 백조와, 허영심 많은 임금님. 백조로 변한 왕자, 왕을 구한 밤꾀꼬리
바람을 두르고 달려나가는 페가서스, 겨울과 함께 무도회에 나간 마녀 친우의 복수를 결심한 황금의 뇌룡
지금의 호신기는 그저 몸 주변에 둘러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강도도 딱 그 정도일 뿐. 허나 방어만 해서는 승리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공방일체의 기공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공격이 단순히 막히는 것이 아니라 튕겨낼 수 있거나... 오히려 공격에 응용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소 애매한 방향성이었지만 천은 호신기를 운용하며 반탄력을 부여하거나 신체 일부에 국한해 공격에 써먹을 수 없을지를 고민했다.
우성은 아르돈의 가르침 이후, 다음 날 홀로 산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번에는 음양합일을 저번보다 더 완성시키기 위해서 다시 수련을 시작한다.
우선 우성은 음과 양, 두 에너지가 몸속에서 어떻게 흐르는지 깊이 탐구한다. 처음에는 두 에너지가 서로 충돌하고 반발하면서 혼란스러웠지만, 차츰 아르돈의 조언대로 두 힘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기로 했다. 물과 기름이 하나의 병 속에서 조화를 이루듯, 음과 양의 에너지가 섞이면서도 독립적인 성질을 유지하도록 마인드를 컨트롤하려고 했다.
우성은 깊은 숨을 내쉬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는 음기와 양기를 분리하여 인식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한다. 음기는 차갑고 어두운 느낌으로, 양기는 따뜻하고 밝은 느낌으로 느껴진다. 두 에너지를 동시에 인식하며, 각각의 흐름을 따라가고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먼저 우성은 음기를 제어하는 연습에 집중했다. 음기는 차분하고 고요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걸로 느껴졌다. 우성은 음기를 몸 전체로 퍼뜨리며, 차분하게 흐르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내면의 깊은 고요함을 느끼며, 음기가 자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조절하려고 한다.
다음으로 양기를 제어하는 연습에 집중한다. 양기는 열정적이고 활기찬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우성은 양기를 몸 전체로 퍼뜨리며, 강렬하게 흐르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뭔지 모르는 열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도 양기가 자신을 삼키지 않게 조절하려고 했다.
우성은 음과 양의 에너지를 각각 조절하는 연습을 반복한 후, 두 에너지를 동시에 유지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는 음기와 양기가 서로 반발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조절하며, 두 에너지가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유도한다. 마치 물과 기름이 하나의 병 속에서 섞이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음과 양의 에너지가 몸속에서 동시에 흐르도록 했다.
저번처럼 두 에너지가 서로 충돌하고 혼란을 일으켰지만, 우성은 혼돈을 통해 점차 두 에너지를 합치려고 하지만 저번처럼 어거지로 불안정하게 합치는 것이 아닌, 균형의 경지를 동시에 발동시켜서 서로 합쳐지면서도 음기와 양기가 서로 곡선을 그리며 섞이지 않게 조절하려고 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그 경계의 선들이 마냥 직선적이고 딱딱하지 않고, 곡선적이고 부드러워야 할 것.
저번 수련과의 차이점이라면, 저번에는 급한 마음에 혼돈으로 불안정하게 강제적으로 서로 섞이면서 합일을 시키고.. 후에 균형의 경지로 불안정한 부작용을 없애는 시도로 아르돈의 가르침대로 '애매한 힘'이 되었다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혼돈과 심상을 동시에 쓰면서 서로 합일을 시도시키면서도 균형의 경지로 서로 섞이지 않게 밸런스를 조절하려고 시도한다는 것. 물론 결과는 모른다.
우성은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떤 힘이 나왔는지 실험해보자는 심정으로, 방금 만들어낸 기를 창끝까지 흘러들게 만들고..
스텔라는 신성력을 먹고, 신성력을 내뿜는다. 그렇다면 파트리샤 자신도 신성력을 흡수하거나, 주위의 신성력을 모아 정화해 다시 스텔라에게 줄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어, 스텔라가 뿜어내는 신성력을 잠시 다루어보며 정화해보려 했다. 있지 않은가. 내 아이에게는 가장 고급만 먹여주고 싶은 그런 것.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 하더라고, 그래도 우리 스텔라가 먹는 것인데 깨끗하게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 자신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스텔라가 먹는 신성력의 맛이 어떤지 궁금한 것 또한 사실이였기에. 그리고 자신의 신성력으로 시험해보았을때는 그저 낭비를 하는 것 같이 느껴졌기에.
사실 스텔라가 옆에 있기에 할 수 있는 것일 터이다. 이정도로 신성력이 모이는 방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기껏해야 기도실 정도려나. 그래도 주위의 신성력을 운용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스텔라도, 자신도.
모래사막보다도 바짝 말라 갈라져버린 바닥 위에서 얼굴에 피칠갑을 한 거대한 여자가 크게 소리쳤다. 이곳 저곳에 피를 흘리며 널부러진 레슬러들의 모습과 과할정도로 피가 묻은 주먹에서는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가늠하게 만들었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주변을 떠나기는 커녕 두려움에 떨면서도 흥분한듯한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하!!! 이렇게 쓰러진 벌레놈들이 네놈들보다 낫다는건 알고있나?"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몸에 꽃힌 비와 그녀에게 사용되었던 둔기들이 경기장 이곳 저곳에 굴러다니며 그녀가 지금 정상이 아니라는 상태를 증명했음에도 그 귀기서린 모습 자체가 도전자들의 기를 꺾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여인은 흥분한듯 이미 쓰러진 격투가를 들어올려 박치기를 하더니 이내 종이를 던지듯 여러 격투가들이 쌓인 곳에 던져버렸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방금 전까지 강하다 이름높았던 격투가들을 모두 때려눕히고 피를 흘리며 웃는 여자의 무엇을 믿고 목숨을 넘긴단 말인가. 격투가들도 관중들도 이곳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그정도로 머리가 나쁜이들은 없었다.
"원한은 묻지 않겠다! 죽이려 들어도 된다!!! 네놈들이 원하는 만큼!!!"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언제나 선역으로 등장하던 격투가의 캐릭터 체인지는 관중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합을 맞추기는 했다지만 평소보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언행, 평소의 그녀가 주력으로 삼던 베이비 페이스의 히어로쇼가 아닌 원초적인 폭력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열을 올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덕분에 오늘의 전적은 10전 10승. 새벽 동이 틀때 시작된 경기는 마침내 예정된 도전자 전원의 줄행랑이라는 역대급 결과와 최악의 악역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남기고 끝을 맞이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연기 좋더라? 갑자기 기획 변경을 하고싶다고 할때는 무슨 일인가 했는데 이정도면 앞으로도 부탁하고싶을 정도여."
"선배님들의 지도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아쉽지만 이 역할은 저랑은 안맞는것 같습니다."
"음, 너는 평생 선역만 했으니까. 그럴수는 있겠다 싶었는데. 무슨 심경변화라도 있던거냐?"
"최근에 좀 다른 방식을 선택해볼까 한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악역을 때려잡는 악역이라는 한마디에 어쩐지 목에 가시가 박힌 것 마냥 소화가 되지 않았다. 분명 그날 날 죽이려 들었던 자신을 재해라고 칭하던 남자는 괴물같이 강했고 그를 제압한 선생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악이라.
"대련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재해라고 불릴정도의 강함. 그리고 그 강함에 대해 필요한 댓가. 그것이 인간성이라고 한다면. 조금 망설여졌다. 스스로가 나아갈 길을 누군가에게 맡겨버리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재해라 불리더라도 위험해보이지 않는 이 역시 있음을 알기에.
주먹을 휘두른다. 폭발을 넣고, 근육으로 버틴다. 뼈가 고통을 호소하지만 그것을 전부 받아줄 시간이 내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언제 봉인이 풀릴지 모른다. 아라크네드의 전면적인 행동. 다른 이들이 그것과 만나지 않았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조바심. 조바심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레오넬은 불과 사자. 나는 그 어느 하나라도 되어있을까. 아버지나 제나처럼 거대한 화염을 자유자재로 휘두르지도 못한다. 세상을 집어삼킬듯 타오르는 겁화를 다루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어머니나 스승님처럼 완력적으로 완숙하지도 못했다. 어디를 보더라도 부족하기만한 모습. 여전히 화를 삭힐 수가 없어 점점 주먹의 속도를 높히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휘두르고 휘두르고 휘두른다. 그냥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근육이 부족하면 키우면 되고 체력이 모자라면 운동장이라도 몇번 돌면 되지만 애초부터 재능이 없는 것 만큼은 몇번을 해도 개화시킬 수 없었다. 그 탓에 어린 시절에는 내가 정말 아버지의 딸이 맞는지를 의심한 적도 있었지. 문제를 외부에서 찾으려 했기에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 흘려내던 선배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피로가 쌓여있던거겠지. 놓쳐서는 안된다. 선배는 검술가로 어린 시절부터 몇번 정도 같은 경기에 나가고는 했다. 주로 팀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버릇을 알수 있다. 피로가 쌓인 팔은 선배의 말을 듣지 않는다. 평소였으면 날카롭게 들어왔을 검격은 눈에 띌정도로 느렸고 그때를 틈타 품안에 들어간다. 거리를 벌리려는 선배를 쫒듯 풀컨택트를 유지하며 바디를 집중적으로 구타한다. 점점 자세가 흐뜨러지고 이윽고 선배가 바닥에 쓰러졌지만, 멈추지 않는다. 한쪽 팔로 선배의 목을 짓누른채 계속해 공격한다. 스파링이었다면 쓰러뜨린 시점에서 그만두었겠지만 이건 정당한 대련이다. 선배는 무기를 들었고 경기내내 온갖 무기를 몸으로 받은 적수공권의 나에게 패배했다. 그뿐.
아카데미 내에 자리한 공원 벤치 적절한 곳에 앉아서, 펜을 놀리던 중이었다. 동쪽 사람도 아닌데 검은 머리가 눈에 띄게 선명한 학생이 내게 말을 걸었다. 친한 친구인 장 보델. 나름 성이 붙은 귀족이지만, 그런 건 잘 모르고 친해져서 그럴까? 그나마 귀족 중에서는 편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나와 비슷한, 책을 좋아하는 친구였고. 하지만 경어가 나오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 옆에 주저앉은 장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네 이야기니까 멋대로 훔쳐볼 생각은 없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네" "아하하.."
나름 선을 지켜주는 사람이라 늘 고맙다. 멋대로 훔쳐가서 보더라도 나는 어쩔 수 없을 텐데. 호기심이 가득한 장의 표정을 보며 뺨을 긁적이다가 말을 골랐다. 어떤 말을 하는 게 좋을까. 펜을 놀리는 게 아니라 입 밖으로 내는 건 고칠 수 없어서, 늘 조금씩 만드는데에 시간이 걸린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세상의 이야기라고할까.." "무슨 말이야?" "..요즘 있잖아요? 가만히 있다보면 여러 이야기가 들리잖아요? 카르마의 새로운 가주, 성녀에, 레오넬의 가주 대리가 유독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데다가 어느 인물은 무투대회에서 우승했고... 동쪽의 이야기는 아직 잘 모르지만.. 저번 수업에서 단신으로 보스를 쓰러뜨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건 듣기 싫어도 들려요. 진짜 용이라거나, 하늘을 갈랐다는 사람도 있고. 문학에서나 볼 법한 신실한 기사에 요정의 환생, 그림자 속의 암살자. 어느 메이드는 악마란 소문이 있고 린스마이어 선생님에게도 어떤 비밀이 있을 게 분명하고. 아라크네드란 집단에 대한 소문도 범람하니.." "흠흠. 그렇구나." "응. 그러니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르고, 평화롭다. 이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언젠가 밤보다 그늘지게 가라앉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었다. 두각을 드러내는 특수한 인물들과 세상을 위협하는 강대한 적. 일어나는 사건사고들.
"저는 지금, 영웅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후대에 전할 기록을, 이야기로 남기고 싶어요. 그러면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다소 두꺼운 노트를, 아직 '이름 없는 책'의 표지를 쓰다듬었다. 그러니 이 책에 이름을 줄 생각은 아직 없다. 마지막 마침표가 없는 이야기에 제목을 붙이는 건 너무 성급하니까.
"...네 이야기는 쓸 생각 없어?" "에에.. 언젠가는 쓰겠죠? 사실, 아이디어는 좀 있는데." "...그 말이 아니긴 한데.. 뭐 됐나. 아무튼, 무슨 이야기인데?" "아직은 말 못해요!"
주변에 만발한, 물로 이루어진 수국을 바라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자주 만들다보니 이제 만드는 것 자체는 익숙해졌지만, 별 능력이 없는 단순한 수국이라는 건 조금 아쉽다. ..요술이란 담당하는 속성에 관해 강력한 장악력을 행사하는 요정의 힘. 물을 통해 포탈을 만들거나. 모비를 부르면 나오는 바다, 그리고.. '비'. 그 모든 것이 요술이라면, 이런 '꽃'에 힘을 담는 것 역시 요술이 아닐까?
카셀라가 준 정체불명의 구슬을 매만진다. 요정이 만든 물건... 아직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특수한 힘을 담아 만들 수 있다는 걸 안다. 물론 이렇게 오래도록 남는 진짜 '물건'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다. 돌핀이나, 레인 콜 같은, 아군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기술.
"..좋아."
노력을 해볼까? 효과는....음... 그거까지 노릴 수는 없겠지.. 일단 시도라도 해보자.
우성은 안정적인 음양합일을 이룬 후, 자신의 심법에 대한 깊은 의문에 빠졌다. 룡혼진마심법은 진룡이 혼돈을 삼킴으로써 진혼룡이 되어 용아진혼심법으로 변화한 것이고, 그 기운이 더욱 진해져 현재의 룡혼진마심법이 되었다. 이 심법은 잘못하면 마의 기운에 빠질 위험이 있지만, 잘 제어하면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어하지 못하면 마기에 취하는 위험이 따른다. 이는 우성에게 금기와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그는 자신의 심법을 더욱 교정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정자에 앉아 차분히 명상하며 심법을 이용한 호흡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평소보다 더 깊고 진한 호흡으로 리미트를 풀어내듯이 시도했다.
우성은 스스로의 의지로 마의 기운을 제어하기 위해 심법의 본래 힘을 내지 못한다고 생각했기에, 최근에 성립해낸 음양합일을 통해 호흡의 음기와 양기의 균형을 무의식적으로도 조절했다. 이는 '제어'라는 리미트를 없애서 마의 기운에 빠질 걱정 없이 출력을 증가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음양합일로도 모자라다면, 심법에 '균형의 경지'를 입혀 진마의 균형을 잡으려 했다.
이렇게 호흡을 하던 중, 그는 다시금 의문에 빠졌다. 진룡심법에서 용아진혼심법, 그리고 룡혼진마심법으로 변한 원인은 단순히 혼돈만이 원인은 아닌 것 같았다. 우성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혼백저'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심법의 균형을 잡으면서도, 백령의 힘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성의 목적은 내면의 진혼룡이 삼킨 혼돈을 백령으로 정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진혼룡의 혼돈을 정화해서 순수한 '진룡'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진혼룡을 정화하는 것이 아닌, 진혼룡이 삼킨 혼돈을 정화해서 더 순수한 혼돈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깊은 호흡과 함께 내면의 기운을 느끼며 백령의 힘을 끌어올렸다. 백령의 힘은 생과 사를 잇는 강력한 에너지로, 이를 통해 혼돈을 정화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우성은 내면에서 진혼룡의 기운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세심하게 탐구했다. 혼돈의 기운이 탁해지지 않도록 백령의 힘을 조절하며 정화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검은 불꽃이 넘실거리는 훈련장 한가운데. 여우 귀와 꼬리를 한 제나가 드러눕는다. 구미화에서의 불꽃 강화는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순수한 "불꽃" 만을 강화하는 거였구나. 안 될것 같다고 짐작은 했지만 결과를 보니까 조금 시무룩해진 그녀였을까.
애초에 변신 시간 자체도 너무 짧아서 뭘 하는것도 힘들고, 계속 반복해서 그런지 체력도 슬 딸리는것 같고. 그 새 변신이 풀리고 주인의 몸 위에 축 늘어진 언니 여우를 뽀담뽀담하며 한숨을 내쉬던 그녀의 눈이 훈련용 표적에 남아있는 검은 불꽃으로 향했다가, 제 몸 위에 누워있는 여우를 향한다.
만약에, 이 불꽃 자체를 여우에게 먹이면 어떻게 될까.
소환수는 소환사의 마력을 먹는 존재. 지옥의 불꽃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제나 자신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는가.
" ........ "
가장 가까운 곳에 피어있는 검은 불꽃을 손 위에 올린 제나는 언니 여우를 향해 손짓하더니, 긴장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불꽃을 먹여 보려고 한다
허공에서 하얀, 날개달린 말이 튀어나와 달려나간다. 쫙 펼친 날개는 어지간한 어른의 키보다 컸고 허공을 밟는 발굽에는 힘이 넘쳤다. 마력을 품은 하늘색 바람이 주변 일대를 날개짓과 함께 장렬히 휩쓸고 지나갔다.
오오- 하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괜히 내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니, 괜한 것은 아니지. 내가 만들어낸 나의 마법이니까 나는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좋았다. 저기 있는 인물 중 나보다 마력 랭크가 낮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건 일단 넘겨두고 적어도 오늘의 나는 엣헴! 하면서 가슴을 쭉 펴도 좋았다.
"만년 꼴등이 웬일이래" "...꼭 그렇게 말해야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니 그제야 미안하다며 네 머리를 헝클인다. 딱히 작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유독 막내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들어서 늘 묘했다. 세모꼴 눈을 하고 있자니 킬킬 거리며 물러서는 친구 놈의 정강이를 걷어차려다 실패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에잇!"
그리고는 그새 대기시간이 끝난 페가서스를 녀석한테 날려버렸다. 그러게 누가 놀리라고 했나요!
역시 스킬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무엇이 부족한걸까? 잠시 고민하자니 조금 알 것 같았다. 이미지가, 부족했던 것 아닐까? 나는 활짝 피어난 물의 수국을 파하고, 잠시 정신을 집중하였다.
-어렸을 적 별명 중 하나는 '고양이'였다. 인상의 영향이 큰 별명이었는데, 싫어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였고. 고양이들도 나를 잘 따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내가 자연에 가까운 존재여서 그랬던 것 아닐까? 잠시 옅은 웃음과 함께 옛 기억을 떠올린 나는 돌핀을 불렀다. 자연스럽게 주변을 헤엄치는 나의 돌고래. ....이미 전례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전례가. 그러니까..
물의 고양이를 부르자. 장난스럽고 변덕스러운 고양이는 내가 싫어하는 이들을 괴롭히는 걸 좋아한다. 그건, 나의 아군에게 힘을 주는 것이기도 하겠지. 돌핀 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하지만 훨씬 공격적인, 고양이.
우성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백화안을 통해 진룡의 본질을 직시했다. 그 본질은 매우 간단했다.
진룡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우성의 의지가 용의 형태로 사념체가 되어 탄생한 것에 불과했다. 형태가 용이었던 이유는 우성이 진룡파의 일원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진룡과 함께 싸우며 진룡이 살아있는 존재처럼 자신에게 깃든 것처럼 행동했던 것도, 결국 우성의 의지였다. 우성은 평범한 인간이다. 그의 몸 안에 진짜 용이 깃든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진룡이 혼돈을 머금어 진혼룡이 된 것도 결국 우성의 혼돈을 제어하고자 하는 '질서'의 의지가 진룡의 형태로 발현된 것이었지.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은 우성을 불쾌감하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제까지 자신을 속박하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진룡이 자신의 의지임을 깨달은 것이다.
우성은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창 끝에 진혼룡의 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다르게 보아야 했다. 더 이상 '진혼룡' 기가 아닌 '우성'의 기였다. 우성은 창을 들고 초식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창끝에 자신의 기를 머금고, 베고, 휩쓸고, 찌르고, 연속으로 공격했다. 그의 모든 움직임은 더 이상 진룡의 것이 아닌, 우성의 것이었다.
'도서 회랑'에 가능한 많은 책들을 넣어두었지만 나는 여전히 도서관에 자주 발걸음을 옮긴다. 구매하지도 않은 책을 멋대로 회랑에 등록시키는 건 도둑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첫번째고, 두번째는, 도서관의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소음을 허락하지 않는 고요함 속에 퍼지는 책 넘기는 소리. 가끔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는 즐거운 목소리와, 책냄새. 베이지색 커튼 틈새로 흘러나오는 햇볕을 한움큼만 어깨에 올려두고 차분한 도서관 등불에 기대어 하나, 하나, 글자를 읽어가는 시간.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이미 구입한 뒤 회랑에 넣어둔 책을 읽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러고보면, 이 회랑은 다소 신기했다. 단순히 책의 '사본'을 담아둘 수 있는 아공간인줄 알았으나, 얼마 전 '세상 모든 어린 아이들을 위한 실감 나고 즐거운 옛날이야기 모음집'에 나온 이야기 중 하나 '페가서스 구름'이 하나의 마법으로 구현된 것을 보고 무언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된 구조일까? 단순히 도서를 담아두는 곳이 아니라, 어쩌면, 나와 아주 '연결된' 특수한 것이 아닐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고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혹시 모르니 훈련실에서 고찰을 하는 편이 안전해보였다.
맨몸으로 전장에 나서는 무투가에게 있어 육체의 손상은 어느정도 필연적인 것이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칼에 맞으면 죽고, 화살에 쏘여도 죽으며 망치에 머리가 깨져도 죽는다. 지금까지 내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강건한 육체의 덕도 있겠으나 어느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사용중이었던 마력의 사용법의 덕도 있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내 마음대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이 필요하다는 점과 그렇게 회복되는 것에 수반되는 고통이 과도하다는 점 정도.
"이미지가 부족해."
치유의 이미지. 지금은 상처를 불로 지져서 강제로 봉합하는 이미지라 고통이 수반되는 것은 어느정도 당연하다면 당연할테지만 카르마나 다른 치유술사를 보더라도 그런 것은 없을 터. 그들과 나의 차이라고 한다면 마력의 성질이 대부분일것인데...
불꽃... 불꽃이 가지는 파괴적인 이미지 이외의 것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저 드넓은 천구의 중앙에서 우리를 비추는 태양역시 불꽃의 덩어리라는 말이 있던데 그렇게 치더라도 한여름의 살인적인 더위정도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으니.
"...곤란하군."
흔히들 생명의 불꽃이 타오른다고 표현을 하지만 그것을 납득하지는 못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불꽃... 불꽃... 나는 왜 애초에 생명을 불꽃과 연관지으려 했지? 불꽃이란 대체 뭐지? 육체에 흐르는 미약한 불꽃의 마력을 느끼며 명상에 잠긴다. 답을 얻을 날은 요원한듯 싶다.
전장에서, 다소, 많은 일이 있었다. 어디 갔었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애써, 그냥 길거리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고 넘기고 돌아오는 길. 기숙사 방에 앉아 멍하니 창문 밖을 보았다. 약간, 아주 약간. 무언가 할 수 있었지만 결국 자신은 아슬아슬하게 방해만 안 된 수준에서 멈췄다. 느릿하게 숙인 고개로 이름 없는 나의 책과, 깃펜이 보였다. 나는 곧장 책상 앞에 앉았다. 책을 펼치고, 빈 페이지에 깃펜을 데었다.
"...남겨야지."
응, 남겨야해. 이야기를. 어른에게, 선생님에게, 아카데미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유려한 필체라 칭찬받은 글씨가 흘러간다. 오늘 직접 본 이야기, 귀동냥으로 들었던 내가 가지 못한 곳의 이야기. 내 마음 속의 이야기. 그것을 한데 적어내렸다. 그래, 이야기로 남기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렇게 만들고 싶으니까.
"..역시 해피엔딩이 좋아."
오늘은 엔딩이 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1권의 마지막장이 끝난 느낌. 장기 연재가 기대되는 시리즈 물의 첫 권. 그 에필로그. 혹은 그 앞의 에피소드. 수천개의 마침표 중 겨우 하나다.
언젠가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저 남기고만 싶은가?
그 전장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정말로 즐거웠다. 떨리고 긴장되고 약간은 두려웠지만. 그와 함께 마음 속에 두근거림이 있었다. 격동의 시대, 영웅들의 이야기. 그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 나 역시, 발자국을 남기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멈춰서고 싶지 않았다.
탁.
오늘 있었던 기록을 마무리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일의 제목은- 역시, '시작되는 전란' 정도, 려나.
호수 위에 '누운' 채 하늘을 보았다. 뻥 뚫린 밤하늘의 별을 하나하나 세보려다 그만두고 오늘을 되새겼다. 정말로 위험한 일이 많았다. 진-짜로. 레오넬은 내가 갔음에도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다. 인형사와의 전투에서 나름 역할은 하였지만, 카르마의 전 가주 '레이나스'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겠지. 거대한 손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정의 힘을 부를 시간도 부족해서- 꾸역꾸역 밀고나간 것이 최선이었다. 모비도 힘을 많이 썼지.
역시 아직 부족한 것일까? 나는 인간이다. 동시에 요정이기도 하다. 나 자신의 인식은 아직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요정의 삶은 현생보다는 전생이고, 나는 이 삶에서 아직 인간으로 산 세월이 길었다. 하지만 어떨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 인간의 수명을 넘어선 뒤에는? 나는 여전히 나를 인간으로 여길까. 요정의 삶이 싫지 않다. 요정들 역시 좋아한다. 아직 나는 많-이 부족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요정들을 지켜야한다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면서도 요정, 요정이면서도 인간. 그 어느것도 놓치지 않은 지금의 내 상태는 독특하고, 또 무척 마음에 든다. 선택은 최소한 100살 때 하는 게 맞지만.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나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구나.
"..인간은, 요정의 격을 넘볼 수 없는걸까?"
내가 이상한 상태라 그런가.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으로써의 격을, 나의 요정으로써의 격과 맞추고. 일생, 평생, 아득히 남은 시간동안 그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수는 없을지.
"일단, 요술에 의존하지는 말자."
땅의 요정이 보상으로 준 '랜드렐라'는 땅에 대한 친화력을 높여주었다. 카셀라와의 계약은 얼음에 대한 친화력을 높여주었다. 이건 나의, '요정'으로써의 영역은 아니지만, '마법'으로 다룰 수는 있다. 언제까지나 요정에게만 의존하지 않도록, 인간의 기술인 마법에도 힘을 쏟아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