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동월 @류애린
(
>>890의 시점으로 작성함)
"선생님."
"왜."
"내가 죽어달라고 하면 죽어줄 거에요?"
"또 또 뜬금없는 소리 한다. 네가 죽여달란다고 순순히 죽여줄 인물이긴 하고?"
"어- 그렇긴 해요. 솔직히 그냥 죽이는 건 시시하죠. 아슬아슬하게 살려놓는 쪽이 훨씬 난이도도 높고 그만큼 보상감도 큰데, 픽픽 죽여대면 좀 그렇지."
"그러게나 말이다. 덕분에 갇혀 있는 그 양반만 죽어나지만."
"에이, 제대로 수복 다 해주잖아요. 훌륭하게 역할을 다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게 역할이라면 나는 절대 너한테 죽여달라고 안 한다."
"어련하시랴. 아."
대화 중 뜬 톡을 보고 소파에 늘어진 몸을 일으켰다.
곧 죽는다니, 하여간 이 선배란 놈은.
"선생님, 내 키트 꺼내주세요. 병원에 올타입 수혈팩 하나 대기요."
"또 누가 부르냐? 옛다."
"저지먼트에서요. 그럼 다녀올게요."
"오냐. 주변 조심하고."
은백색 아타셰 케이스를 받아들고 타다닥 빠르게 걸어 연구소를 나섰다.
가는 길에 부설 병원에 들러 급히 요청한 수혈 키트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 선배한테 불리는 거 오랜만이네.
선선한 가을의 한낮은 조금 서둘러 뛰어도 딱 덥지 않을 날씨였다.
조금만 지나면 서늘한 바람 슬슬 불며 안 그래도 예민한 내 체온을 사정 없이 낮출 것이었다.
올 겨울은 제발 작년보다 덜 추웠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톡으로 보내진 좌표에 도착했다.
같이 연락을 받았는지, 뒤이어 도착한 애린을 보고 싱긋 웃어주곤 곧장 깨끗한 임시 매트부터 펼쳤다.
인첨공의 기술이 좋긴 좋아- 딸깍 한 번이면 토퍼 매트리스 정도는 짜잔이라니까.
"괜찮아- 이러려고 배운 공부고 능력이니까. 그리고 부실에서 피냄새 풀풀 풍겼을 테니까 어떻게든 들켰을 거야. 내가 그 냄새에 민감하거든. 그러길래 평소에도 나오면 재깍재깍 좀 부르지. 나 참."
이 지경 아니면 부르질 않는다며 쓴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애린에게 하체를 좀 받쳐달라 부탁했다.
"하나 둘 셋 하면 옮기는 거야-"
보아하니 상태 처참한데, 그냥 바닥에 두고 시술을 할 수는 없으니까.
애린의 도움을 받아 깨끗한 매트 위로 옮기고 라텍스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했다.
빠른 손길로 마취제부터 주사하고, 메스를 꺼내기 전에-
"도중에 눈 뜨면 귀찮아질 거 같으니까 눈 좀 가리고 있어줘."
애린에게 그런 부탁을 하고 시술에 착수했다.
의료용 가위로 사정없이 웃옷을 반 갈라서 가장 심한 부상의 상태를 확인했다.
피범벅인 상체와 튀어나온 뼈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기웃거리며 상태를 살폈다.
"음- 흐음, 음, 깔끔하네."
출혈에 비해 큰 부상이 아니다, 라는 말을 참 가볍게도 중얼거리곤
뼈가 나온 옆구리 밑에 조심스럽게 두툼한 탈지면을 댔다.
특제 매트가 피를 다 흡수해주고 있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다시금 절개와 접합을 가할 부위를 면밀히 살피며, 애린을 향해 말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그런 마인드로 살았을 사람이야. 하루아침에 바뀌는 거 쉽지 않지. 그러니 네가 계속 끌어당겨서 바꿔. 관자놀이는 훅 가니까 뚫지 말고. 나 죽은 거는 못 살린다?"
농담 같은 어조로 말하곤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살짝 절개함과 동시에 부러진 뼈를 접합, 뼈의 원상복구를 진행하며 절개한 부위도 빠르게 수복해버리면-
"휴! 끝났다. 이제 포션 먹을 시간이다. 이 선배님아."
전보다 한층 능력으로 간단히 시술을 마치곤, 자잘한 상처들도 이참에 싹 회복시켰다.
그리고 지체 없이 수혈 키트에서 수혈용 혈액팩과 수액팩을 하나씩 꺼냈다.
옆에 간이 링겔을 설치해 팩을 걸고 월의 팔뚝에 가차없이 바늘을 꽂으며
태연한 얼굴로 애린을 향해 말했다.
"월월이 팩 꽂아놓고 우리끼리 뭐라도 먹고 올래? 마취 고려하면 한 시간? 걸릴 건데."
물론 농담이라고 덧붙였지만.
"기다리는 동안 너희 얘기나 들어볼까. 어쩌다 그런 사이가 됐는지?"
애린이라면 가리지 않고 얘기해 줄 거 같고,
면전에서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아무 저항 없이 듣기만 하는 것 만큼
월이에게 효과적인 벌(?)은 달리 없지 않았을까.
못 들었다면 아쉽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