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놓는 것으로 그가 마음을 조금 더 열어준 듯해 내심 기뻤다. 태연하게 말을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을 하면서 반말을 요구하는 손을 더러 상대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조숙녀처럼 얌전 떠는 것으로 보이기 싫어서이기도 했다. 아무에게나 그럴 일 없겠지만 그에게 치대는 중에까지 존댓말을 하고 있자니 꼭 불순한 관계를 갖는 것같이 느껴져 마음이 걸리적거리곤 했단 말이다. 그를 살며시 밀어내자 그는 허리에 감은 팔을 거두다 말고 놓치기 싫다는 듯이 손을 덥석 잡아왔다. 아찔했다. 이번에도 가슴이 찌릿해와, 나는 이런 것에 약하구나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응. 나 사람 많은 거 싫어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언덕은 상관없으니까 거기로 가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인파에 치이는 것은 질색이라 사람이 적다는 말만 들어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같은 걸음으로 나란히 걷고 있으면 그가 힘들면 업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해온다.
"욕심쟁이."
그 한마디 툭 던지면서 그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살짝 건드렸다. 업히는 거, 한 번쯤 해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닿는 면적이 너무 넓으니까. 지금까지 팔을 끌어안고 과하게 치댔던 것이 못내 켕겨서 장난스레 대꾸했다.
"나도 혼자 잘 걸을 수 있거든. 우리 계주 우승 커플이잖아. 내가 이거 신고 언덕도 못 오를 것 같아? 이거 봐."
등등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마치 행군을 하듯이 다리를 과장되게 쭉쭉 뻗으며 언덕길을 올라가 보였다.
또박또박... 삐끗.
"먀아아아악...."
사람이 적은 곳이라 멀리서 비추어오는 등불마저 희미했던 탓일까, 발밑의 돌부리를 미처 보지 못하고 비뚜름히 밟아버렸다.
저의 주인의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 이 어린 요괴 잘 들었다. 아주 잘 듣다 못해 귓볼까지 붉어져 온 뺨이 붉은 빛이다. 새빨갛게 물든 지금의 낯빛 아주 볼 만한 모습이었다. 슬그머니 품으로 파고들으려고 하며 이 어린 요괴 살며시 이렇게 작게 속삭이려 하였다.
”아야나도, 이 화려한 불꽃도 좋지만 카가리 신님이 더 좋사와요… “
폭음은 여전히 우렁차게 들려오고 있다. 하늘이 오색찬란한 각종 불꽃으로 물들어간다. 그 속에서 말하는 속삭임 들릴까 말까 싶겠지만 제 주인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속삭인 말이니 확실히 들렸을 것이다.
ー 퍼버벙 - !!!!!
한참을 계속 불꽃이 수놓는 것을 지켜보던 와중. 슬그머니 웃으며 이 어린 요괴 제 주인의 정면 앞에 선다. 그리고는 제 주인의 손을 슬그머니 잡아보이려 하며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이려 하는 것이었다.
“……..카가리 신님, ” ”쨔쟈쟌. “
꺼내 보이려 한 것은….. 조그마한 반지 상자 였다. 제 주인의 머리색을 닮은 붉고 붉은 상자. 그리고 그 안을 열으려 하면 각기 커다란 아쿠아마린과 에메랄드가 박혀 있는 한쌍의 은반지가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리라. 후히히 웃으며 어린 요괴 제 주인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말이와요, 서로에게 영원을 맹세하고 싶을때 반지를 맞추어 교환하여 같이 끼고 다닌다고 하여요. 그래서 아야나도 카가리 신님께 인간들의 것과 비슷한? [ 복종의 증표 ] 를 준비해본 것이와요. 카가리 신님이 아야나의 주인이시고, 아야나는 영원히 카가리 신님만의 것임을 증명하는 증표를. 준비해 봤사와요. “
“마음에 드시와요? ” 하고 묻는 모습 천진하게 웃는 낯빛이다. 기쁜 것인지 기쁘다 못해 울컥한 것인지, 살짝 눈에 물기가 어리고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아야나….. 이 자리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사와요. “ ”전부터 줄곧 카가리 신님께 꼭 해드리고 싶었사와요. “
후히히 웃으며 어린 요괴 제 주인을 향해 물었다.
”저의 주인이시라는 걸 증명하는 이 증표……. ” “카가리 신님께 직접 끼워드려도 되와요? “
64명중 42명이, 42명중 14명이 돌을 사가는 사이에 이 어린 요괴는 진짜로 64마리나 되는 요괴들에게 프리허그를 하고......아니 당하고 있었다. 이정도면 껴안기요괴라 불려도 할말이 없는 수준이 아닐까????? 흐 물 흐 물 해진 표정으로 진열대 위에 엎어지다시피 누운 채 노점상을 정리하고 있는 테루에게로 아야카에루는 지친 기색이 역력해보이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아야나 안아주시는 것이와요......." 라 말하는 목소리 지나치게 갸냘프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뻗을 것이다........
"테아쨩, 테아쨩도 오늘 정말로 즐거우셨지요? "
후히히 웃으며 아야카에루 안아달라는 듯 두 팔을 뻗어보이며 테루를 향해 말해보이려 하였다.
"자아, 돌아가는 것이와요. 우리들의 집으로. "
이제는 [ 집 ] 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테루는 아야나에게 있어 그런 존재가 되었다. 항상 같이 같은 집에서 살고 밥을 먹으며? 학교에 같이 다니는 그런 사이. 물론 등하교는 따로 하지만 이정도면 그래, 충분히 서로에게 있어 [ 가족 ] 이라 불러도 되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또 하나를 알게 되었네. 어떻게 알았냐기보다는... 그냥 불꽃놀이는 사람이 적은 곳에서 구경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거든. 사람이 많으면 불꽃이 보기 힘들어지고, 인파 때문에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오늘 하루는 최대한 떨어지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마음을 먹었기에 유우키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와는 별개로 또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만족스러워 유우키는 뿌듯함을 느꼈다.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아직 그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았기에 더더욱. 그 와중에 욕심쟁이라며 자신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살짝 건드는 것에 유우키는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몸을 움찔했다. 진심으로 때리기보단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 같았기에 그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여자친구에게 욕심 좀 가지는 것이 뭐가 어때서. 남자친구에게 욕심 가지는 것도 문제 없다고 생각해. 난."
물론 선을 넘는 욕심은 곤란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 욕심을 가지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어쨌든 걸어올라갈 수 있다는 말에 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보폭이 좀 넓지 않은가 싶어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히나의 모습만 빤히 바라봤다. 게타는 그 특성상 제대로 걷기 힘든 신발이었다. 거기다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일본 전통 옷. 큰 보폭으로 다니기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상태였다. 그런 마당에 저렇게 보폭을 넓히면...
"히나!"
비명소리와 함께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그녀의 몸을 유우키는 덥썩 잡아 단번에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제 품에 살포시 기대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깜짝 놀랐는지 그의 표정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어서 그는 가만히 히나를 바라보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삐끗한 것 같았는데... 붓거나 삐진 않았어?! 괜찮아?"
그 상태에서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한쪽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게 자세를 만들었다. 그녀가 균형을 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너무 무리하게 걷지 마. 그러다가 발목이 삐이면 엄청 아프잖아. 일단 아프면 바로 얘기하고."
어떻게 할지는 그녀의 대답 여부에 달려있었다. 이대로 계속 앞으로 가서 반 정도 남은 언덕길을 마저 오를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업고 올라갈 것인지. 유우키는 조용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