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연민이었다. 도대체 무엇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거냐고 묻는다면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아이자와를 향해 느끼는 것은, 그런 종류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그냥 편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하니까. 말투에서 묻어나오는 회환과 슬픔의 형태에도, 나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뿐이다.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 그것은 형태조차 갖추지 않기에. 나는 그저 조용히 웃으면서 거짓에 거짓을 더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며.
“………같이 먹을까 해서.”
기다리고 있었지.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너를 불렀던 건지. 모르겠다. 그저 연락처 맨 위에 보였다는 것 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고개를 들고 시선을 피한다. 눈에 비춰지는 것은 처량할 정도로 밝은 야경이었다. 이 낮은 곳에서조차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땅을 수놓은 불꽃의 행렬은 소녀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은 모른다는 듯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지더라.
좋은 날이다. 이름을 모르는 벗을 한 명 배웅했고, 이름을 알고 있는 친구와 만났다. 세상 마음 편한 밤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로, 걱정 없는 사람들의 틈새에 섞이듯이 걸어가다가 무언가 번뜩인 듯이 뒤를 돌아보고는 아이자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네 말대로, 오늘은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검은 흔적 따위 금새 흘러가듯이 지워질 것이 뻔했으니까. 적어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자. 길을 잃지 않도록.
서로 짓고있는 웃음은 김빠진 탄산음료 같아서. 감정의 기복도 타인에게의 자극도 없고 내용물만이 빠져버려 모양을 흉내 냈을 뿐인 번뇌와 고뇌만이 가득한 껍데기뿐이다. 네가 그랬듯이. 나 역시 그랬다. 너는 아닐지라도 그 이외의 것들은 나에겐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냥 나도 임시방편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째서인지 어색한 느낌이었다. 나 홀로 느끼는 거리감이었기에 대놓고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아이자와와 함께 있었을 때에는 언제나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는 제법 오래 대화를 이었던 것 같지만 그 이후로는… 왜일까. 그냥 하늘이 높아서, 비가 내려서. 그저 하고 싶은 말 대신 한번 더 기타의 현을 튕기는 것으로 답했다. 오히려 신선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 이외에는 좋았다. 어차피 오지 않으리라 확신한 탓에 취기를 날려버렸던 것이 잘못되었던 걸까. 거의 확실했다. 멀쩡해진 정신으로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주제에. 그 탓이 언제나 죽지 않음을 알면서 죽으려 드는 주제에. 도망치지도 않고 맞서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 하나에게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버리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저 아이자와의 앞을 걸었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손을 무시하고. 걸었다. 그냥 걸었다. 웃음 소리의 틈새로 몰려오는 풀벌레 소리의 박자에 맞추어서. 걸었다. 얇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행복으로 가득한 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한숨이 축제가 한창인 거리에 내려앉았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은 TMI지만 현시각 유우키는 점점 더워지는 날씨를 느끼면서 워터파크를 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어. 아야나가 간다고 한다면 집사 포지션이니까 안전을 확인할겸 같이 가기야 하겠지만, 보나마나 카가리를 데리고 갈 것 같으니 둘 사이에 끼이진 않고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으로 있을 것 같네. 물론 카가리가 따라갈지는... 카가리주가 제일 잘 알겠지만 말이야!
학교에서 신들이 몇 모여 떠드는 이야기로, 그런 소문을 언뜻 들은 적이 있다. 감히 신을 위한 축제의 뒤에 이런 불경한 판을 벌여놓았다느니, 모두 잡아들여 벌레 죽이듯 구제해 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느니…… 그리 관심 가는 이야기는 아니라 이야기 그 뒤로 어찌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던 것도 같다. 여하간 그리 궁금하지도 않은 그 축제는 알 바 아니다. 저와 함께하는 축제가 더 즐겁다 한 만큼. 그래, 무신의 것임을 자처했다면 응당 주인만을 눈에 담아야 옳다. 경외도 공포도 애정도 희락도, 무엇이 되었건 무신은 타자를 압도하고 그의 '전부'로서 군림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신이었으니. 손목 위에 닿은 이 감질만 나게 몇 번쯤 더 지근대다 손 내려 주었다. 멀어지는 손등 위로 미련 남은 숨 길게 달라붙는다. 물기는 괜히 물었다. 괜히 아쉽기만 하여 기미 없던 충동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든다. 이리 간질이지만 말고 더욱 아프게 만든다면 어떨까, 무연히 이 가냘픈 손목을 산산이 부서뜨리고 싶어진다. 그리하면 낭랑한 웃음소리 흘리기도 그치고 가는 달처럼 휜 눈가에도 물기 서릴는지 모르겠다. ……한데 그리 생각하려니 고취되려던 욕망 돌연 가라앉았다. ……그래, 무신은 우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저 녀석이 혹여라도 울기라도 했다간 시끄러워질 테니 그것이 싫어 이러는 것이라 해 두자.
어렸던 시절 이후로 누군가의 뒤를 잠자코 따르기만 하는 경험은 이제 와서는 퍽 낯선 기분이었다. 시선이 물끄럼 주위를 훑었다. 장사치들이 너도 나도 틀어 놓은 음악들은 제각각 뒤섞여 요란스럽고, 밤이 되어도 변함없는 후끈한 습기 속에 군중을 헤치고 나다니자니 은근한 짜증 자꾸만 치솟는다. 인간들이 이런 어수선하고 신경 거슬리는 장소를 왜 그리도 좋아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다만, 뒤를 돌아본 녀석과 눈이 마주쳤을 때. 어질어질 야단스럽게만 뵈던 조명이 별무리처럼 빛날 수도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이 잡란한 장이 마냥 거슬리는 구석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상념에 빠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잘 가는 중이 맞냐는 물음이 들린 탓이다. 물론 행선이 올바른지 알 수 없기는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대충 눈만 게슴츠레 뜨며 표정으로써 답을 대신했다.
"에스코트……를 한다면서 가는 길을 모르면 어쩌잔 게냐."
그는 한 손으로 제 머리 신경질적으로 긁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데 주변으로 휘휘 돌아가던 고갯짓 갑자기 멈춘 까닭 무언지. 무신 무엇인가에 시선이 꽂혀서는 말도 없이 한 곳만을 응시하고 있다. 시선 향한 곳을 조용히 따라가보면, 노점의 가판대 위에 웬 시커멓고 둥글둥글한 정체불명의 먹거리가…….
"……."
무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야나를 내려다보았다. 단순히 내려다보기에 그치지 않고 턱을 쓸며 무언가 진중한 고민을 하는 듯한 표정까지 짓고…… 시커먼 물떡과 아야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행동으로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훤히 보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