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소리 없이 깨진 틈새를 타고 나온 눈물은 제 의지를 벗어나 계속 흘러내렸고 머리가 뜨겁고 아팠다. 그가 검사로서 실력이 뛰어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여태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것도 단순해 보일 수도 있으나 그만큼 확고하며 솔직한 신념을 지닌 것도 맞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위태롭고 난폭하게 군 것도 사실이다.
'가면 뒤를 들킨건 어쩔 수 없으니 적당히 친하게 지내며 저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게 지켜보면 될 것이에요.' 몇 번씩 함정 속에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악착같이 달려왔다. 이 정도 간단한 계산이야 지금은 별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린은 그 이상으로 그를 신경썼고 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그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어떻게든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필요한 행동이라 합리화 했지만 린이 알렌을 계속 필요이상의 감정을 쓰며 신경쓰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사소한 이변이 한 가지 답을 가르키고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왜 하필 이 순간에 이 사람이어야 할까. 멍하게 울리는 머리로 그저 이 상황에서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혹은 바로 주저앉아 이 얄궂은 상황을 선사한 무언가에게 원망과 저주를 퍼붓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끝끝내 원망은 돌고 돌아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어리석은 하야시시타 나시네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구차해도 좋아. 비겁해도 좋아. 거짓말을 해도 좋고 중간에 포기해서 도망쳐도 좋아." 그 날 오라버니에게, 아버지에게, 길드원들에게 하지 못해던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과열되어 고장난 머리와 마침내 해방되어 소용돌이 치는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을 하라 자신을 부추긴다.
"힘들면 도와달라고 말하셔도 좋아요. 그러니 죽는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오세요." 눈물을 흘려 앞이 흐리다. 그가 물끄러미 처량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린은 그에 대해 왜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지 큰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다시 혼자 남겨지는 건 싫어...정말 최악이야." 거의 스러져가듯 흐느끼며 알렌에게 말을 건다기보다 거의 혼잣말을 하듯이 희미하게 중얼거린다. //14
한편...하품을 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던 강산. 그의 눈에 숙소 복도에 열린 한 방문과 주변에 내놓아진 짐이 들어온다.
뭐지, 몰래 튀려는 건가? 처음에는 대운동회에서 별다른 활약도 못하고 거하게 깨진 직후라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었지만... 강산의 눈초리가 매서워지다 곧 풀린다. 잘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서다. 진짜로 그냥 튀는 거였으면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날랐겠지. 이렇게 물건을 밖에 내놓고 부산을 떨 게 아니라.
그럼 대청소인가? 열린 문 사이로 고개를 슬쩍 들이밀어 살펴본다. 강산이 입학식 이후로 본 적 없던 사람이 방 주인이었다. 부산하게 방을 뒤지며 물건을 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학교 관두게?'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처음에 대뜸 그러긴 좀 그런가. 방해될 수도 있으니까.
+얘기 나온 김에 설명해두자면... 저때 특별반이 베니온 아카데미 학생회한테 전멸 수준으로 깨진 상황이라... 강산이가 우울한 상태인 것도 그것 때문이고 학교 관둘거냐고 물어보려다 만 것도 특별반 관두고 방 빼려고 짐 정리하는 건가 생각한겁니다. 나중에 멘탈 다시 괜찮아지긴 하지만 대운동회 직후면 멘탈 완전히 회복되기 전일 거 같아서요.
한결주 혹시 답레를 너무 잇기 어렵게 준거 같다거나 그외에 다른 문제가 있으시면 편히 말씀 남겨주세요.😅
천천히, 오랫동안 뛰어온 듯 가쁘게 뛰던 박동소리가 사그러들고 몸의 떨림도 그에 따라 멎어간다. 한여름임에도 기운이 빠져 서늘하게 느껴지던 주변을 어느새 따스한 온기가 감싸고 막는 것이 느껴진다. 안긴 이후로도 잠시 감정이 남아 흐느끼다가 서서히 진정한다. 밭은 숨을 내쉬다가 남은 눈물을 대충 흘려보내고 입술을 꾹 문다.
자신을 감싸안은 품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서있으려고 하는 것처럼 버티다가 그를 양 손으로 살짝, 마치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밀어낸다.
"이제 괜찮아요." 그가 자신을 달래려고 안아줄 줄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잠시 멍한 얼굴로 당황하고 있었었다. 당황하던 것도 잠시, 감정이 멎어가자 이러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주 오랜 시간 숨을 붙들듯 사랑했던 사람을 제 손으로 죽이기 위해 떠나는 그에게 자신이 이런 식으로 기대고 싶어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공평해. 어린아이가 마구잡이로 심술을 부리는 것 같은 감정이 울컥 치솟는다. 자신은 어차피 그에게 까탈스러운 동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텐데.
"그러면 되었어요. 제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폐를 끼쳤어요." 한 두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찬찬히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다. 평소에도 흰 편이지만 울어서 붉어진 눈시울로 더 창백해보이는 얼굴로 상대의 눈을 응시한다.
"...동료니까, 만일 맞서다가 어려울 땐 도와달라 말하세요. 굳이 극단적인 상황을 말하지 않아도 신의 이름으로 도와드릴테니까요." 잠시 진정하려는 듯 눈을 감고 침묵하다가 흐리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당신도 알다시피 전 신의 뜻을 거역하는 이들을 두고 볼 수 없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요."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