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uplay>1597033188>493"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해? 라는 물음에 내놓을 답변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리라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내 기억 속에는 저지먼트로서 충분히 활약한 네 모습밖에 없는걸. 체포할 때 미란다 법칙도 잘 외우고, 순찰도 착실히 돌고, 누군가 선을 넘을 것 같은 낌새가 보일 때는 이성을 잡고 말릴 줄도 알고."
때문에 이어지는 말과 흐릿한 웃음에도 리라는 흔들림 없이 주관을 내세울 수 있다.
"성운아. 나도 결과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던 때가 있었거든.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렇지도 않다는 걸 조금씩 느껴. 언제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고, 노력해도 결과는 내 마음대로 나오지 않잖아. 결과에 닿기까지 가해지는 외부 요인과 변수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가 심사숙고 해야 할 건 결과를 향한 과정까지야. 그리고 그 과정과 동기가 '남을 돕기 위해서' 라면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 무슨 일을 할 때 품고 있던 마음이 남을 돕길 바라는 이타심이라면, 그걸로 넌 충분히 따뜻한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는 얼굴은 가벼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망쳤다라... 글쎄, 뭘 망쳤다고 생각해? 그때 제로와 싸웠을 당시 있었던 일? 난 그걸 딱히 망쳤다고 보지 않는데.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 우리는 가지고 있던 정보에 맞지 않는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에 맞는 대응을 했을 뿐이야. 게다가 그 사람이 공격받았을지언정 공격한 주체는 제로잖아. 그 사람이 맞을 걸 알고 한 일도 아니고, 게시판에 붙인 것만 봐도 반성은 충분히 한 거 같던데? 네가 겉으로만 반성하고 넘길 위인도 아니고 말이야. ...있지, 나는 그게 너한테도 나름대로 크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너무 스스로 자책하진 마. 실수를 돌아보고 개선하려는 건 좋지만 그게 너 자신의 마음을 곪게 만들면 너무 고통스럽잖아."
잘은 몰라도 성운의 말을 하나 둘 곱씹다 보면 저 안에 쌓아둔 것이 꽤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리라는 되도록 조심스럽게, 하지만 전부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그 작았던 시절부터 훌쩍 자라버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온량하지 않았던 적 없었다고.
"그리고... 효과를 본 게 없나? 너 초봄 때 생각 한번 해 볼래? 그땐 왕게임에서 되도록 조용히 앉아있었는데 최근에는 춤도 추고 끝내주게 벌칙 수행했지. 그거 하나만 봐도 꽤 성장 아닌가~?"
농담을 뱉으며 살짝 웃은 리라는 이내 성운을 마주본다. 독특한 색채의 눈동자는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우주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오묘하면서도, 그 우주에 빛나는 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기괴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블랙 크로우와 싸울 때 네가 저지먼트를 위해 보여줬던 강인한 모습과 활약, 각성, 친구들과 어울리며 관계를 쌓아나가던 지난날, 갑작스럽게 몸이 자라서 혼란한 상황에서도 내 일 하나 돕겠다고 나와준 모습이나 박호수에게 시원하게 쏘아붙여주던 목소리. 그 모든 모습에서 난 네 따뜻함과 다정함을 보고 있어.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동월이나 유한이, 또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중에는 네 그런 면면에 빠져들어 너를 더 마음 깊숙이까지 담은 사람도 존재하겠지. 그건 아직 확언할 수 없는 영역이라 말을 아낀다. 다만— 리라의 시선이 잠시 팔찌를 스쳤다.
"그래서 나는 네가 뭘 두고 왔단 건지는 잘 모르겠어. 내 눈에 서성운은 항상 내가 알던 서성운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느낄 만한 일들이 분명 있었겠지. 지난 반년이 좀 복잡했니? 저지먼트 안에서 공유하는 경험뿐만이 아니더라도 분명 그 외에 더한 사건들이 네 나름대로 있었을 거 같아. 당장 네가 지금 말해준 금교 파이넌스도 그렇고 말야."
복잡하고 긴 이야기들. 과거에 얽힌 악연을 구해주었는데 그 끝에 더한 것이 얽혀있다는 걸 알아버렸을 당시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의 친구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솔직히 나는 네가 이 일에 너무 깊게 파고들진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가 다칠 수 있는 일에 엮이는 것도 불안하고,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네가 부채감을 가질 필요 없는 일이잖아. 너는 저지먼트로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해결했을 뿐이고 그 뒤에 무슨 후폭풍이 불더라도 그건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야. —하지만 넌 그런 애가 아니지. 이런 반인륜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는데 멈출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마냥 하지 말라고 하기도 어렵네~"
가볍게 기지개를 편 리라는 곧 성운이 타다 준 딸기 라떼를 한모금 머금는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 퍼지자 머리를 굴릴 에너지가 솟았다.
"뭐, 나도 그런 사람은 아니고. 그러니까 도와줄 거야! 안 도와줘도 되기는 무슨. 이걸 말한 시점에서 참견당할 각오 정도는 했어야지? 자, 그럼 제대로 의뢰를 걸어보시죠. 목걸이 디자인은 어떤 게 좋아? 들어갈 보석 색깔은?"
수첩 낱장을 촥촥 넘기던 그는 문득 다시 성운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그나저나 윤강목 이라는 애 도와준 것도 대단하네. 난 박호수가 그러고 있으면 그냥 내버려두고 지나갔을 거 같은데. 아니,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지금 네 얘기 듣고 나니 윤강목인지 뭔지 한 대 치러 가고 싶어졌는데... 흐음, 그랬단 말이지."
그때 그 자식이 오즈에도 얽혀 있고 이딴 일에도 얽혀 있다 이거지.
간도 크네.
"걔 우리랑 동갑이지? 몇 반인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