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마자 이쪽을 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친다. 마주친다고 하기는 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교실 안에 있는 의자나 책상을 보는 듯한, 별 감흥도 없고 관심도 없는 눈이었겠지.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전혀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빛나지 않으니까. 눈길을 줄 필요도,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억지로 흥미를 쥐어짜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눈길을 끌 정도로 강렬하게 반짝이는, 내가 추구하는 무언가는— 여기엔 없다. 언제나처럼 축 처진 귀가 아주 조금,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간다.
"......냄새."
이곳에는, 이 빈 교실에는 반짝이는 것은 없지만 그걸 대신하듯 현실을 가리는 희뿌연 연기와 속을 태우는 매캐함이 가득했다. 창문이 열려있는데도 이 정도다. 마치 밤하늘을 옅게 가린 구름같아서, 자그마한 별을 가려버리는 그 지긋지긋한 구름에 방해받았던 날이 생각나 저절로 인상을 쓰게 된다. 그렇게 깊고,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대신 툭 내뱉은 말에 약간의 감정이 실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좋지만."
하지만 결국 아무래도 좋을 일이지. 여기엔 내가 찾는 게 없으니까. 아무래도 좋을 곳이다. 이곳을 매캐하게 만든, 그리고 계속해서 매캐하게 만들고 있는 인물과, 책상과 의자, 그리고 창문을 차례로 보며 계속해서 문가에 머물러 있었다.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은 채로.
멍하니, 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드륵, 하고 문이 열린다. 나는 느릿하게 담배연기를 뱉으면서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의 실루엣을 흝었다. 작네, 선생님은 아닐테니까,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테고. 그렇다면 소문을 듣고 온 아이인가? 아아... 귀찮아.
푸른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이제 저녁놀이 고요하게 땅 아래로 숨을 시간. 학교도 평온하게 불빛을 잃고, 어둠 속에서 나부끼는 바람, 나 홀로. 유일한 구원. 온전한 평온. 혼자있고 싶었는데. 그 시선은 너를 보지 않았다. 책상이나 의자를 보는듯 한, 감흥없는 시선. 허나 철저히 계산되어 네게 향한 시선이었다. 눈꼬리가 접혔고, 입가에는 미소가 띄워진다.
“안녕, 아기 네코쨩.”
의도적인 침묵.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그 나쁜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채였다. 그녀에게는 고칠 생각조차 없는 버릇이었지만. 냄새, 라는 말에도 전혀 듣지 못한것처럼 느릿하게 웃으며, 천천히 담배를 피운다. 타닥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교실에 울려퍼지고, 희뿌연 안개처럼 입에서 퍼져나가지.
“소문, 듣고 온거 아니었어?”
물끄러미 바라보며, 천천히 켜지는 도시의 희끄무레한 불빛을 등지고는, 두 팔을 벌렸다. 어서 와서 안기라는듯이. 그래, 날카로워보이는 타입이네. 저런 아이들을 많이 만나본건 아니지만, 결국 전부... 달콤하게 녹아내려 내게 사랑을 속삭였지. 눅진한 초콜릿처럼, 입가를 느릿하게 핥으며.
“어서 와서 안아줄래? 나, 외롭던 참인데.”
학교의 불빛은 모두 꺼졌다. 새빨갛게 타오르던 저녁놀은 의미를 잃어버린채 목에 진하게 남아있는 입술자국으로 떨어졌고, 맑은 하늘 위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던 구름은 짙은 담배연기가 되어 무거이 교실 아래로 떨어진다.
밤은 고요의 시간이다. 영원한 평온, 나의 유일한 구원, 나의 안식. 놀아보자. 아래로 떨어지자. 너와 나 단 둘이서.
차분한 목소리에 부드러이 웃으며, 하시하라는 이와 같이 강조하였다. 그렇다, 니시카타 가와 야나기하라 가 모두 트레이너 가문. 트레이너에 전문적으로 종사하고 있는 집안이다. 부드러이 웃고 있으나 미묘하게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코우는 볼 수 있었다. 하시하라는 아무래도, 단순히 전통있는 집안임을 듣기를 바란 것이 아닌 것 같다…….
“당신의 가문 역시 트레이너 가문이니 짐작하겠지만, 우리 가문은 이 업계에 꾸준히 오랫동안 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당신과 당신의 가문 역시 그러하겠지요. “
하시하라는 가볍게 물잔을 들어올리며, 코우를 향해 이같이 물으려 하였다.
“이 업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일하실 생각이신가요, 야나기하라 씨? “
.....아, 이걸 듣고 있는 미즈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 식탁 밑으로 코우의 손을 꽉 잡아 오려 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덤덤한 목소리로 그렇게 내뱉었다. 이곳에 있는 건 연기와 책상과 의자와 열린 창문 뿐. 교실을 이루는 부품들만이 가득한 곳에 고양이란 변수는 없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다가 소문이란 말에 고개를 가만히 기울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런 소문에 그다지 관심은 없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언제나 그것들을 입에 담고 떠들며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마련이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내 관심 밖이다. 귀에 들어와도 금새 흘려보내고, 내 머리 속에 발자취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곤 했다.
다만 눈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입가를 느릿하게 핥으며 뱉는 말이 어떤 뜻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아까 꺼낸 소문이라는 말과 겹쳐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감이 잡히는 것이다.
"—너는,"
조금 전까지는 무기질적이고, 교실을 이루는 부품 중 하나에 불과하고,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네가 약간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아- 그렇지. 난 다른 건 몰라도 별은 좋아하니까. 별 만큼은.
"꼭 블랙홀 같네."
이 문은 경계다. 사상 지평이라는 것이다. 이 앞으로 발을 내딛으면 그 뒤는 저 두 팔에 잡혀버리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되겠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 앞에 발을 내딛고,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로 늘어지고, 결국엔 나오지 못하게 되었을까. ......하지만 뭐어, 결국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왜냐하면 역시, 너... ...빛나지 않는 걸.
느릿하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발을 천천히 까딱거린다. 두 팔 네게로 뻗은것을 천천히 내리며, 왼손으로는 턱을 괴고, 느릿하게 담배를 피웠다.
“블랙홀이라.“
시야에 온전하게 네가 잡힌다. 담배를 든 오른손으로 교복 셔츠의 단추를 하나, 둘 풀었다. 새하얀 탱크탑. 왼쪽 가슴 위로 새겨진 피안화. 한 눈에 흉터자국임을 알수 있듯, 부어오른 살결을 꾹꾹 누른다.
”나는 부서진 흑색 왜성에 더 가까울지도 몰라.“
”빛을 잃은 태양, 독을 품은 거미, 가장 달콤한 사과.“
짧게 타들어간 담배를 책상 위에 비벼 끄며, 여전히 반쯤 접혀있는 눈꼬리 사이로 너를 바라보다 미소지었다. 철저히 계산된 표정, 철저히 계산해 만들어낸 아름다움.
“그래서, 뭘 원해서 온거야?“
꼬았던 다리를 풀고, 천천히 일어나 한걸음씩 걷는다. 운동화가 차가운 바닥에 맞닿는 소리가 느릿하게 울린다. 한 눈에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왼쪽 다리를 끌면서 걷고 있었지.
”네가 원하는게 무엇이든, 사랑이 아니라면 전부 이뤄줄 수 있어, 아기 네코쨩.“
우뚝, 문 앞에 멈추어 선다. 블랙홀은 움직이지 않는다. 허나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것또한 너를 들여다보는것처럼. 그것이 움직이는것으로 보일 정도로, 너를 빨아들이겠지. 끌림이란 그런 불나방처럼 부질없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제 우리는 문턱을 경계선 삼아, 사상 지평 앞에 서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덧없는 선악과 떨어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