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말해주기 좀 그런가? 그는 별 다른 대꾸를 하지 않는 여성의 반응에 별로 중요한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캐묻지 않았다. 하기사 특이하기 짝이없는 이 상황에 갑자기 이름을 묻는건 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미련이라도 남았나.."
대신에 들려온 그녀의 다른 말은 매우 옳은 의견이었다. 그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럼에도 지금 이러고 있는건 그의 말 마따나 미련이라도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굳이 처량하게 말하기보단. 가끔은 수심에 잠기는것도 나쁘지 않겠냐며 농담식으로 말한 뒤 작게 웃었다. 무엇보다 꽃잎에 누운 상대방으로 보고 있자니 사소한건 별 상관없어 보이기도 했고.
"거기다 그 덕에 예쁜 여신님도 만났으니 손해를 본건 아니라고 하죠."
기민한 통찰이라는 말에 그는 그렇게 답했으나.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신 소리를 듣는걸 좋아하는 스타일인가?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진짜 특이한 사람이구나 싶어 여성을 쳐다볼뿐. 그러나 갑작스레 몸을 일으켜서 한 이야기는 그가 들을 수 없었다.
"????"
들리지 않았다? 아니, 잘려나갔다? 잘못 들었나? 여러가지 생각이 맴돌아 그는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작게 말했다거나 하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흠, 그러면 제가 부를 수 있는 말로는 없을까요?"
다소 이상한 상황이긴 했으나, 그는 지금 그런걸 따질 기력이 없었으므로 그저 미소를 띄우며 여성에게 다시 물었다. 뭐 자신이 모르는 나라의 말이라거나 그런걸수도 있으니까.
"입맛에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점은 선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나선 당당하게 손을 뻗는 여성에게 그는 도시락 통과 젓가락을 건넸다. 꽃잎 하나 붙어있지 않은 가지만 무성한 나무 아래에서, 주변이 조용해진 꽃놀이라니 썩 운치있고 좋지않나.
누구에게나 문득 찾아오는 감성적인 나날. 그런 날의 청자로서 무신은 썩 괜찮은 상대였다.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좋은 청자는 아니지만, 심중에 담긴 깊은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죄 흘려 들으니 대나무숲에 대고 말하는 정도의 효능은 있겠다는 지점에서. 지금 모습만 봐도 그렇다. 카즈키가 가진 미련이라는 것을 더 캐 묻거나 애써 모르는 척하지도 않고, 그저 심드렁하게 딴생각만 하고 있으니. 그는 영 엉뚱한 단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 얼굴이 예쁜가?"
그렇게 말하며 중대한 고민이라도 하듯 한 손으로 제 턱을 쓸어댄다.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두 번씩이나 그렇게 불렸다. 인간의 탐미란 좇기가 어려워 외견에 관해 내심 고민을 해 왔는데, 이만하면 처음 의도했던 대로 잘 조형된 모양이다. 의도치 않게 고민을 한결 덜어낸 셈이 된 그는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졌다.
"한데 나로 인해 네가 얻는 것은 무엇이냐?"
손해의 반대라면 필시 저 인간도 무언가 얻은 것이 있단 뜻이렷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레 맥락을 추측할 수 있었겠지만, 무신에게 그런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니. 사실 이 무신도 과거엔 예의발랐던 시절 존재하긴 했으니 이해하고자 하기만 한다면 파악할 수 있었겠으나 사회성도 안 쓰면 퇴화하기 마련인 법. 대화보단 밥이 더 중요한 그는 냅다 도시락을 받아들고 저 먼저 한 입 집어먹었다. 고맙다는 말도 없고 같이 먹자는 눈짓조차 보내지 않으니 그야말로 유아독존이시다. 카즈키란 소년이 손수 진상한 음식의 맛은, 대단한 진미까지는 되지 못해도 죄 고기로 만들었다는 점만은 마음에 든다.
"나쁘지 않군."
이 정도 대답이라면 선처를 더 부탁할 필요는 없겠다. 말 마치고 한 입 더 집어먹는다. 의외라면 의외로, 무신은 식사마저도 우악스럽게 하는 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법 평범하게 음식을 씹어 삼킨 그가 다시금 짧은 말 내놓는다.
마치 자신이 이쁘다는걸 확신하지 못한다는 말투. 여신이라고 하는건 좋아하는거 같았는데 이상하네.. 그는 여성을 다시 한번 찬찬히, 그러면서도 너무 빤히 바라보지는 않았다. 이쁜거 맞는데?
"그런거 있잖아요? 이쁜 사람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다던가?"
사실 잘 모른다. 그는 그저 그녀의 성격이 맘에 들었을뿐이라.. 얼굴을 보는걸로 기분이 좋아지진 않는데. 그래도 초면에 님 성격이 너무 취향이라서요. 보다는 그냥 얼빠로 여겨지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그리고 도시락도 꽤 맛있게 먹어주고 있으니까 괜찮겠지 싶어 그는 몸을 반쯤 뉘었다.
"무카이씨. 라고 부를게요 그럼."
설마 이 사람이 자신의 후배일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그는 여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나선 바닥에 흩뿌려져있는 꽃잎을 슬쩍 들어서 괜시리 밖으로 뿌려본다.
"그러고보니 꽃놀이하러 온건 아닐테고.. 그냥 산책중이었나요?"
아 맞다. 그는 질문을 함과 동시에 뭔가 생각난듯 다시 가방을 뒤적였고. 차가 담긴 보온통을 꺼내서 무카이에게 건넸다. 궁시렁 거린 주제에 챙길건 다 챙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