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카미 신사에서 뽑을 수 있는 분홍빛 벚꽃 오미쿠지를 유우키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경내의 벚꽃나무의 색과 비슷하며, 따뜻한 봄의 분위기가 가득 담긴 오미쿠지를 바라보며 유우키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분홍빛 꽃잎, 그리고 눈앞에 있는 오미쿠지. 여기저기서 팔고 있는 벛꽃을 주제로 한 상품들. 특히 저 벚꽃색의 부적까지... 봄이 왔다는 것을 그는 다시 한 번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뽑아볼까요."
돈을 낸 후, 그는 통을 천천히 흔들었다. 딸랑딸랑딸랑. 기분 좋은 소리가 울리며, 수많은 쪽지 중 하나가 뾱하고 튀어나왔다. 이어 유우키는 그 쪽지를 꺼낸 후에 살며시 내용물을 읽었다. 과연 뭐라고 쓰여있었을까. 그것은 오직 유우키만이 알 뿐이었다. 그는 내용물을 확인한 후, 그것을 곱게 접은 후에 자신이 입고 있는 바지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의 시선이 저 앞에 있는 신사 건물로 향했다. 운이 좋은 것인지, 텅 비어있는 그곳을 바라보며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세전함 앞에 선 그는 탁탁, 두 손으로 합장을 한 후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이어 주머니 속에서 10엔 동전을 꺼낸 후에 쏙 집어넣으며 앞에 있는 줄을 천천히 흔들었다.
딸랑. 딸랑. 딸랑.
"특별히 빌 소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신사에 신이 있다면... 올 한 해도 모두에게 행복을 선사해주세요. 그런 혼잣말을 조용히 삼키며, 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살며시 고개를 숙인 후, 합장을 한 그는 그제야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여기까지 온 이상, 바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조금 둘러보다가 돌아가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따스한 봄바람이 묻어나는 분홍빛 꽃방울을 바라보며, 그는 손을 뻗어 아주 가볍게, 꽃잎을 잡았다.
"이건 기념으로 가져갈게요. 괜찮겠죠? 신 님."
부디, 요괴 집안을 모시는 이라고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혼잣말을 조용히 삼키며 그는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유의 머릿속 이런저런 말들이 와글와글 오가고 있는데, 앞에 쪼그려앉아 시선 맞춘 하얀 머리카락을 한 사람은 사유와 달리 아무 흔들림 없어보이는 듯한 평온한 얼굴 하고 사유를 바라본다.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던 미인은, 내가 가판대 주인인데 하는 사유의 대답에 대답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것을 내놓아버렸는데-
어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새하얀 손이 사유의 정수리에 얹혀서는 사유의 파란 머리카락을 사락사락 쓰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치 학교 토끼장의 토끼나 길 가다 마주친 귀여운 고양이를 쓰다듬는 듯한 흐뭇한 얼굴로.
다시 말하지만 인간 대한 경험 적어 상식이 모자란 겨울신의 부덕이란 이러한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귀엽고 어려 보이는 게고, 실제 귀엽고 어린 사유라면 더더욱 귀엽게 느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이란 것이 '기특해, 인간. 벌써부터 스스로 먹고 살며 한 사람 노릇을 하기 위해 자기 손으로 자신 삶을 꾸려나가는구나.' 하는, 이런 쿨한 얼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인네 같은 사고방식이었으니. 사려고? 하는 말에 이름 모를 이 사람은 쓰담을 멈추지 않은 채로 고개 갸웃 기울인다.
평소에는 도시에 내려갈 일이 없는 이누였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신학기가 시작된 이후로 처음 맞는 꽃놀이였기 때문이지. 이누는 이른 아침부터 잠이 깨어선 하지도 않던 세수를 하고 아야카미 신사로 향했다. 그것도 귀와 꼬리를 감추어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는. 도시에 들어서면 분홍으로 물든 아야카미 신사가 멀리서도 눈에 들어와. 가만히 길을 걷고 있으면 희미한 벚나무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몇 번이고 느꼈던 따스한 봄기운, 몇 번이고 보았던 분홍 꽃무리인데. 그 사소했던 것들이 오늘만큼은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다.
응당 요괴라면 신사 입구의 토리이를 지나는 것도 무서워 벌벌 떨었을 것인데. 신이 강하던 무섭던 역시 위아래가 없는 이누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아래를 훌쩍 지나가는 것이다. 이누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인간들이 하는 참배라는 것을 어설프게 따라 해본다. 그러다 옆의 아이가 제 어미에게 무언가 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것을 따라가 보면, 다들 무언가를 하나씩 뽑아가고 있는데. 이누도 한번 해볼까.
딸랑딸랑- 함을 흔들면 .dice 1 100. = 23 대인(待人)의 내용이 적힌 쪽지가 손에 쥐여진다. 이누는 종이를 펼쳐 들고 글자를 읽어보려 하지만. 전혀 뜻을 알 수 없다. 다들 좋네 마네 떠들고 있는데. 내용이 너무 궁금했던 이누는 결국...
"저기. 이거 뭐라고 적힌 거야?"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검은 머리의 남성을 옆에서 툭툭 건드리며 맹랑한 목소리로 고개를 바짝 들고서 그에게 손에 든 종이를 내밀어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