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사의 선물 상자는 중간 정도의 크기. 살짝 흔들어보면 빈 공간이 있는지 무게감 있는 것이 툭, 하고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든다. 선물 여러 개를 큰 상자 하나에 넣은 걸까? 짐작하며 일단 신발장 위에 올려놓았다.
“줘 봐, 신겨줄 테니까.”
그리고 스툴에 앉은 메이사에게서 워커 한 짝을 가져갔다. 몸을 낮추고 마치 수발이라도 들듯 무릎을 꿇고선, 달싹거리는 발목을 잡고 현관용 슬리퍼를 벗겨낸다. 그리고 집안에서 신는 양말도 조심스럽게 내려당겼다.
바깥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손으로 따끈한 발을 붙잡고 니삭스를 신겼다. 메이사의 발은 계속 잡고 있고 싶을 정도로 따듯했고 손에 한 번에 들어올만큼 작아서, 그냥 정말, 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버린다.
그냥 그렇게 묵묵히 양말과 신 한 켤레씩을 신기고 나서, 슬쩍 올려다보며 웃었다.
“잘 어울리네. 마음에 들어?“
메이사의 발에 꼭 맞는 워커. 원래 신발은 선물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이 신발은 질기고 단단하니까, 오랜 시간 신고 길들이며 너와 함께 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선물했다. 내가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도 같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이제 나도 선물 열어봐도 되지?“
그렇게 열어본 상자에 들어가 있는 건… 세일러 만년필 상자와 손수건. 혹여라도 흐트러질세라 가지런히 고정시켜둔 상자 안에는 프리지아가 연장될 때 보았던 듯한 밤하늘이 만년필의 형상으로 놓여있었다. 구매처에서 동봉해둔 보증서는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새 것. …이걸 선물해주려고 학생이 꽤 큰 돈을 모았겠다 싶다. 그 옆에 있는 손수건은…
H.Y라고 서툴게 수가 놓여 있었다. 나는 손수건 위로 도드라진 실의 윤곽을 더듬어보다가…
내 발을 잡응 유우가의 손은 차가웠다. 그보다 신겨주는 거였어?! 신발이야 그럴 수 있다쳐도 양말까지?!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주 어릴 때가 아니고서야 양말을 신겨준다는 건 거의 없는 일이니까... 어쩐지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지켜봤다. 그러다 슬쩍 올려다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쳐서,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응! 에헤헤. 엄청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빨리 열어봐! .....어때? 마음에 들어? 아, 손수건은... 자수는 좀 엉망이긴 하지만."
손수건은 좀 부끄럽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면 좋겠네. 내 선물을 풀어보는 유우가를 보며 어떨까, 어떨라나 하고 살짝 몸을 기울였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서툰 자수 부분을 손으로 더듬던 유우가의 말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에?갑자기??
"응? 응. 뭔데?"
뭘 물어보려고...? 선물에 대한 감상 대신 던져질 질문에 살짝 긴장하면서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만년필을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있었다. 나는 그런 고급 학용품과는 전혀 연이 없던 사람이니까 말이지.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히 들지만 그냥, 학생이 군것질을 참아가면서 선물한 것을 내가 가치있게 써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손수건, 그렇게 비싸보이지는 않지만 서툴게 자수를 넣은 것이 특별한 그 손수건이 마음에 걸렸다. 크게 걸렸다. 메이사가 어떤 녀석인가? 꼬리에 달린 빨간 리본에 걸맞게 우악스럽고, 아기자기한 손재주와는 연이 없는 녀석 아닌가. 그런 애가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가며 자수를 놨다. 내 이름을.
확언하건대, 나는 그런 노력을 할 만한 인간이 아니다.
아니, 더 분명히 말하건대.
“메이사, 너 나 좋아하냐?”
나는 좋아할 만한 인간이 못된다.
어떻게 모르겠냐? 마음에 사람을 들여놓는 게 무척이나 오래 걸리는 메이사가 나를 대뜸 이름으로 부르는데. 그 뿐인가. 집에 들어오고 싶어하고, 다른 애한테 열쇠를 줬다고 쿡 찌르질 않나,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하잖아. 모모카랑 싸웠던 계기는 내가 못 들은 척 해줬지만, 그럴 수 있을 만한 사안도 아니었다. 다 들었다.
무엇보다, 한심한 유우가여도 좋다고 했는걸.
그 때는 내가 모른 척 했다. 프리지아의 연장으로 묻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렇지 않더라. 메이사는 그 이전 이후 언제나 꾸준히, 한결같이, 나를 좋아하던 녀석들이 하던 눈빛 그대로 날 바라봤다.
알았다. 다 알고 있었는데, 난 늘 모른 척 해왔다. 그리고 구태여 묻지 않았다.
고작해야 9개월 만난 사람이다. 그 나잇대에는 나같은 반푼이도 다 어른스럽게 보이는 법이다. 어른과 어울리며 ‘나는 다른 또래들과는 달라’ 하는 기분에 취할 수도 있고. 마사바에게서 느껴지는 열등감, 또래와 사이가 갈라지는 불안감, 그런 것에서부터 회피하려 주변의 가장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징하게도, 그 눈빛이 바뀌질 않아.
그래서 나는 아주 쓰레기같은 내 본성 그대로 물었다. 네 입으로 다시 말하게 한다. 너는 날 좋아한다고.
...좋다. 한 가지 사실 먼저 짚고 가보도록 하자. 큰 키와 덩치만큼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자신의 사랑스러운 연인이 중요한 순간에선 눈치가 모자란 바보라는 것 정도는 레이니・왈츠도 알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약간 파생해 보자면, 사람의 모든 단점이 그러하듯 다이고의 눈치 또한 때로는 레이니와의 상황에 +가 되고 -가 되기도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라는 사실을 새로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냐고? 이쯤에서 시점을 돌려 레이니에게로 돌아간다면, 다이고가 양팔을 잡아당긴 덕에 다이고에게 바싹 붙은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말이다.
“...바보.”
몸 안을 가득 채우던 열기와 두근거림이 서서히 감정의 바다 저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면서, 레이니는 눈을 질끈 감는다.
“유혹하는 거잖아. 다이고가 안아줬으면 해서.”
돌봐줘야 하는 귀여운 아이가 아니라, 여자로 봐줬으면 하는 거잖아. 눈을 감는다고 해서 흘러나오는 눈물이 멈추지는 않기 때문에, 괜히 다이고의 어깨에 얼굴을 비벼 유카타에 선명한 눈물 자국을 남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