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이력 보니까 중학교 올라가면서 커리큘럼 받던 연구소를 옮겼더라고. 이유야 뭐 그럴 만 하던데. 이전 연구소랑 능력적 성향이 안 맞으니까. 본인 희망도 있었다곤 하더라.
아무튼 옮겨온 연구소에서 하필 내가 담당이 된 거지. 애X끼는 딱 질색인데. 내가 진짜 실적만 아니었어도. 하, 그래. 싫어도 어쩌겠어. 여기는 인첨공이고 나는 일개 수석 연구원일 뿐이고, 하라는 대로 굴러야지.
그, 걔 첫인상 있잖냐. 아주 죽상이었던 거 아냐? 그걸 어떻게 잊어. 세상 불행 지혼자 다 받은 양 아주 죽을 상을 하고선, 그래놓고 또 울지는 않어. 저 저 금방이라도 처울듯한 얼굴을 하고 입 꾹 다물고 있는데, 아 나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터진다니까.
애X끼잖아. 기껏해야 열 네살이라고! 울고 싶음 울고 웃고 싶음 웃으면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 양 참고 있는 꼬라지가 사람 성질을 살살 긁고 있어!
걔가 애만 아니었으면 진작 멱살 잡고 소리 질렀어. 애였으니까 봐줬다. 지금도 애X끼긴 한데.
후... 그 면상도 면상인데 그걸 매일매일 보는 것도 고역이긴 했다. 애가 뭐 말을 안 해. 연구소 올 때마다 희멀건하게 죽은 낯짝 하고 와선 시키는 거만 하는데 무슨 안드로이드, 아니다, 안드로이드가 더 생생하겠다. 뭘 배운다는 티라도 좀 내지. 저래가지곤 계수가 떨어지면 떨어졌지 오르진 않겠더라. 뭘 배우는데 감흥이 없어. 안 그래도 심리상태가 요주의였는데.
그리고, 그 뭐냐, 그 때는 좀 덜 하드한 커리큘럼 위주였어. 강의에 첼로에 실습도 간단한 거 위주여서 매일 끝나고 시간이 조금씩 남았지. 그 때마다 걔 폰만 잡고 있더라. 폰 잡고 뭐했냐고? 아무 것도 안 해! 화면도 안 켜고 그냥 가만히 보고 있어! 그 꼴이 또 사람 미치게 해 아주! 뭘 하고 싶으면 하면 돼지!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를 지 면상 거기 다 비칠 텐데 보면서 대체 뭔 생각을 했나 몰라. 아오.
솔직히 그 때 나 성질도 더럽고 애X끼는 싫고 해서 걔랑 진짜 최소한으로만 대화했다. 물론 지금도 성질 더럽긴 해. 어. 그런데 그 때는 더했어. 다혈질도 그런 다혈질이 없었을 걸. 그걸 왜 말하냐면, 내가 그 성질머리로 사고쳤거든. 그 일 때문에 개 같이 까이고 여태 이 모양이잖냐.
대충 언제냐. 한 10월인가. 11월인가. 그 해 말 가까이 되갈 쯤인데. 그 동안 애 상태가 점점 꼬라박으면 박았지 나아지질 않더라고. 허옇다못해 진짜 뒤진 면상 하고서, 밥은 제대로 처먹긴 하는지 홀쭉해져가지고 비실비실 연구소 다니는데 아... 내 인내심 시험 하는 줄 알았다. 아니 정말로 시험 당했고 나는 보기 좋게 낙제점을 받았다.
그 날도 걔가 커리큘럼 받기 전에 폰만 보고 있었어. 그 날은 그게 왜 더 거슬렸나 몰라. 폰 든 손이 덜덜 떨고 있어서 그랬나? 화면을 켤지 말지 조차 고민하는게 보여서 그랬나? 도저히 그냥 못 지나가겠어서 한 마디 했어. 진짜 딱 한 마디였다. 딱 한 마디.
네가 그 모양이니까 올 연락도 안 오는 거다.
아니... 매일 폰을 보니까 기다리는 연락이 있을 거 같았고, 그런데 그게 안 오니까 매일 죽상인가 보다 대충 생각만 했었어. 그게 그 날 그 한 마디가 되어 튀어 나간 거야. 매일 그 모양인데 그 말 좀 듣는다고 무슨 일이 나겠냐 하는 안일한 생각이었어.
처음에 걔 표정은 그냥 그랬어. 항상 보는 표정이었는데 그게 점점... 울상이 되었어. 거기서 끝날 줄 알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던 거야. 눈물이... 나 진짜 사람이 눈물 그렇게 많이 흘릴 줄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울 수 있는 줄도 몰랐어. 그냥 말 그대로 세상 무너진 양 울더라. 어찌나 울어대던지 지나가던 연구원들이 뭐냐고 들여다보고 난리도 아니었어. 이유를 물어봐도 걔가 대답은 안 했지만 내 성질머리 모르는 사람이 없을 때라 뭐 그대로 추궁당했지. 곧장 끌려나갔기 때문에 그 뒤는 잘 모르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실신했다더라. 그리고 깨서 또 울고, 또 실신했다가 또 깨서 울고, 답이 없어서 그냥 진정제 맞춰서 아예 재워버렸다고 하던데.
그리고 나는 뭐 사실 그대로 말했다가 개 같이 까였지. 까이고 그 때 들었어. 걔 뒷사정. 인첨공 오는 애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 좀 지나면서 자꾸 그 동안의 모습이랑 오버랩 되는 거야. 뭘 그렇게 기다렸을지. 거기다 대고 내가 뭐라 한 건지. ...내가 미친 놈이었지 뭐. 그래서 근신 기간 끝나면 사과하려고 했어.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 다시 걔 보니까.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왜 내가 걔 담당이냐면, 걔가 그랬대. 바꾸지 말아달라고. 걔가 나쁜 거라고. 나는 잘못 없다면서. ...그래서 그냥 남았다. 그게 내가 승진도 포기하고 몇 년째 수석으로만 남아있는 이유기도 하지. 저지른 일 끝까지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냐. 최소한의 사람 도리라는게 그런거지. 아무튼 그랬다고. 예전에는...
>>0 오늘도 별 진전 없이 커리큘럼이 끝났다. 반응 속도 자체는 점점 향상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대로면 금방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쯤은 안다, 능력의 각성으로 얻어진 힘 같은 게 아니니까. 그래도 조바심 내지 않는다, 그동안 침묵했던 것에 비하면 이보다 가파른 성장은 바랄 수 없다.
아직 쓸만해지려면 멀었다. 단련해둔 몸이 없었다면 이런 커리큘럼 자체를 소화하기도 전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이미 병원 신세를 몇 번이나 지고, 고통스러운 시술을 받았을 것이다. 긴 시간, 천천히, 조금씩 다가오는 고통으로 만들어 낸 결과를 따라잡기 위해서, 한번에 몰아 받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난 이 자리에 없겠지.
폐기.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드럼통에 붉은 락카로 쓰인 두 글자. 드럼통은 검고 긴 승합차 주변에 놓여 있었다, 폐기물을 옮기는 데 승합차라니, 드럼통은 폐기물이 담긴 모양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저 두 글자가 자꾸만 머리에서 맴돈다.
이번에도 실패네. 너무 많은 걸 바란 거 아냐? 생각이 좀 여문 애들을 데려다 놓고 해야 되나. 그게 되면 진즉에 했겠지, 지금은 이쪽이 뒤처리도 쉬우니까 그러려니 해. 아직 &% ^*있는 %&@은? 어차피 폐기야, 가져다 버려.
뭔가 더 걷고 싶은 기분이 사라져, 근처에 있는 놀이터의 그네를 하나 차지했다, 주머니에서 꺼내든 사탕을 먹기 위해 포장을 까고 있자니, 어느새 옆에 꼬맹이 한 명이 와 있었다.
"...왜." "그거 무슨 맛이에요?"
"모카." "모카...? 그게 뭐지?"
모카향이 나는 사탕을 처음 보는지, 눈이 땡글땡글해져서 물어오길래, 그냥 줘버렸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꼬맹이였지만 준 뒤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체 하니 경계를 거두고 입에 넣는다, 모카향에 눈이 휘둥그레져선 오물거리는 모습, 크기가 꽤 되는 알사탕이었기 때문에 부풀어오르는 볼을 보면 좀 다람쥐 같기도 하고.
요 며칠 계속해서 불안감을 자극하는 커리큘럼을 수행해서 그런가, 지금은 번아웃 직전이다. 이런 한적하고, 위험 요소도 없는 놀이터는 편히 쉬기 좋지, 바로 앞에 골목이 있는, 솔직히 말하면 좋은 위치는 아닌 놀이터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이도 지금 옆 그네에 앉아버린 꼬맹이 한 명 밖엔 없다.
"사탕 맛있다, 누나는 사탕 좋아해요?" "어."
"나도 좋아하는데, 아저씨는 사탕을 잘 안 줘요." "...많이 먹으면 이 썩는대냐."
"으응, 그것도 있는데... 사줄 돈이 없대요. 그래도 오늘은 괜찮아서 말만 잘 들으면 맛있는 거 많이 사준댔어요." "......"
"누가 데리러 오는 거냐?" "네, 여기서 모래로 연습하고 있으면 좀 있다가 데리러 온대요, 혹시 시계 있어요 누나?" "있어." "그럼 지금 몇 시에요?" "7시 40분." "그럼 10분 남았네, 얼른 연습해야겠다."
연습? 하고 묻기도 전에 그네에서 내린 꼬맹이는 모래에 손을 댔다, 그러자 천천히 모래가 한 곳으로 모이는가 싶더니, 자그마한 모래성을 만들어가고 있어서, 가만히 그 성이 지어지는 것을 봤다, 중간에 무너져 버리긴 했지만. 한동안 그렇게 모래성이 만들어지다 무너지는 걸 보다보니, 어느새 10분의 시간이 지나, 한 남자 한 명이 놀이터로 왔다.
"어, 아저씨다." "잘 기다렸어? 응? 저 사람은 누구니?" "아, 저 누나가 사탕 주고 내가 연습하는거 봐 줬어요! 저 열심히 했어요, 그쵸?"
말없이 고갤 끄덕인다. 그런 모습을 탐탁잖게 쳐다보던 남성은 꼬맹이를 보며 모르는 사람이 주는 사탕 같은 거 받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고 설교를 하고 있어서,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그네에서 일어선다.
"응 알겠어요, 아, 누나! 잘 가요!" "그러지 말라니까, 모르는 사람이잖니?"
사람의 생김새로 됨됨이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봤을 때 떠오를 정도로만, 그 이상은 담아두지 않은 채 말없이 자리를 떴다.
뒤에서는 남자가 얼마나 연습했는지 보자며 아이를 채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나왔던 길을 다시 되밟아가며, 놀이터 근처에 있던 폐기물 드럼통을 지나친다. 모서리를 돌아 더 이상 드럼통도, 놀이터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감각.
"......"
그러나 막연하던 이전과는 조금 다른, 그런 감각. 보다 선명히 떠오르는 상은, 분명히. 한 놀이터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서 그 자리에 멈춰섰다. 호기심이 동했지만 조금 지친 지금은, 원래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어차피 커리큘럼도 끝났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놀이터가 너무 낯이 익어서. 아니, 낯익은 수준이 아니라.
"...하아."
발이 내딛는 방향이 반대로 바뀐다, 일정하던 발걸음이 빨라지고, 두 발이 동시에 땅에 닿지 않는 시간도 생긴다. 모서리를 돌자마자 향한 시선은 머릿속에 떠올랐던 놀이터가 있는 자리, 거기엔 지어지다 만 모래성이 있었고.
아이를 돌보는 걸로 보였던 남자와, 양복을 입은 인영 둘. 검은 승합차 하나. 그리고, 차 안으로 눈치를 보며 오르는 아이.
XX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무시하고, 주변에 있던 드럼통을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찬다. 덜컹거리며 비탈을 타고 내려가는 드럼통들은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충분했고, 둥근 드럼통이 덜컹거리며 지나친 자리를 따라 내딛다가 땅을 박찼다.
"이 XXX들아!!!"
승합차의 뒤에 부딪히거나 주변으로 굴러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지는 드럼통을 피해 움직이던 양복쟁이 한 명을 향해, 두꺼운 밑창이 날아들었다. 동시에 드럼통을 꿰뚫고 날아든 열선에 귓볼이 뜯겨나갔지만, 멈추지 않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쓰러진 놈의 얼굴에는 방금 전의 타격으로 금이 간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나머지 한 명도 가면, 보호자라던 남자만이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야, 나와." "어? 누나?"
한 놈이 쓰러져 소란이 일어나는 동안 차 안에 올라탄 아이를 잡아끌자,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 나머지 한 명이 손을 뻗었다. 손 끝에서부터 뭉치는 검은 가루, 사철인가.
"이런 XX, 이게 뭐야!" "다, 당신 뭐하는 거야!"
날카롭게 모인 사철은 몸통을 노려 내찔러졌지만, 머리에서 계속해서 울려대는 경보로 온통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기에 몸을 비틀어 옆구리를 찢기는 선으로 무마한 뒤, 그대로 놈의 양쪽 손을 붙잡았다.
"이 양 손으로 하는구나." "무 무슨 힘이...! 으아악!"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손목의 관절이 끊어진 놈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보호자를 자처하던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러섰다. 그러고 보니 운전자가 없었는데. 이 놈이구나. 그제야 처음 승합차를 지나치며 운전석에 누군가 앉아있었던 게 떠오른다.
"자 잠깐만... 어차피 그 애 부모도 없고, 데려가서 잘만 되면 풍족하게 살 수 있다고, 난 거짓말한 적 없어!" "개소리 마."
이런 수법은 이미 질리도록 봐 왔다, 따라가면. 돌아올 수 없어. 어떤 변명도 듣지 않겠다는 듯, 한 걸음씩 다가가면, 어느새 차에서 내린 아이가 소매를 잡아끈다.
"누나, 괜찮아요." "......아니야, 아니야."
"으깨버려야 해." "태워버려야 해." "가둬놔야 해." "전부, 없애 버려야 돼."
아이가 소매를 잡아끌지만 시선은 아이를 향하지 않고 옆에 이리저리 널부러진 텅 빈 드럼통들로 향한다. 비어 있었구나. 딱 좋아.
다리에 힘이 풀린 남자, 양 손목이 빠진 가면 한 놈, 발에 걷어차여 목이 꺾였을지도 모르는 가면 한 놈. 전부 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드럼통으로 걸어가려니 소매를 붙잡는 힘이 사라지고 발걸음 소리와 함께 앞에 작은 인영이 섰다.
"누나, 그만하고 나랑 다른 데 가요, 옷이 빨개요, 그러지 말고, 네?" "......"
내려다본 옆구리에서 배어나온 피가 어느새 흰 와이셔츠를 흠뻑 적셨다. 뜯겨나간 귓볼은 열선으로 인해 상처가 지져져 핏방울이 떨어지지는 않았으니까, 옆구리의 상처가 원인이다. 퀭해져 가는 듯한 눈으로 아이를 보던 시선은 바닥에 마구잡이로 쓰러진 사람들로 옮겨가는가 싶더니, 드럼통을 쥐었던 손에서 힘이 빠진다.
"...그래."
그 대신 아이의 작은 손을 붙잡는다. 남은 손으로 옆구리를 쥐어뜯듯이 꽉 누른다. 혈관이 조여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놀이터에서 멀어졌다. 골목을 빠져나와 또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
점점 눈이 가물가물해지고, 졸려와서. 눈이 감기던 와중 아이에게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엔 어떤 이름 하나와 번호 여러 개가 적혀 있었다. 아이는 아마 제대로 읽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읽는 법을 알 때까지는 읽지 못했으니까.
맨 위를 손가락으로 짚어 주고, 휴대 전화를 내민 뒤에 벽에 기댔다. 졸리다. 눈이 감기고 깜깜해지는 순간, 가면을 쓴 놈들의 옷에 붙어 있던 배지의 모양이 떠올랐다. 나무 같은 무언가, 나무와 함께 자라지만 분명히 나무는 아닌 것. 이름이 떠오르려고 할 때, 의식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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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숨죽여 눈을 감은 랑의 옆에 서서, 휴대전화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에 랑이 짚어 준 맨 위의 번호, 그 위에 써 있는 건 읽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걱정이나 연민은 지긋지긋할 뿐이다. 왜 날 내버려 두지 못하는 거야. 자기들이 내 인생을 살아 줄 것도 아닌데. 그냥 무시하면 되잖아. 어차피 타인이고, 이해하지 못할 것인데. 나 역시 그 연민이 온전히 진심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 네 말에 류화는 아랫입술을 반사적으로 꽉 깨문다. 차라리 외면했으면, 경멸했으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데.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네게 모진 말로 뱉어 낼 것만 같아 피가 날 듯 입술을 더욱 깨문다. 신경 쓰지 말아. 제발. 자신의 죄책감을 건드는 그 말에 류화는 부끄러움과 함께 죄책감을 느낀다. 스스로를 혐오하니 그 연민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해 그 감정은 정점을 찍는다. 더 듣고 싶지 않아. 도망치고 싶어. 치미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을 적에, 주먹이 날아들면 류화는 힘 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류화는 멍하니 있다 더욱 차가워진 눈으로 널 올려다본다.
"나락? 네가 말한 그 '능력 계수'가 아니면 내 인생은 이미 나락이야. 더 떨어질 곳도 없다고!"
맞아 붉어진 뺨을 손으로 덮으며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비명을 지르듯 뱉는다. 비겁해지지 않으려 했지만, 가난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이 길에서도 여전히 꿈은 멀기만 했으니. 샹그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이었으며, 비현실적일 만큼 솔깃한 것이었다. 한 알의 알약. 그 한 알의 알약이면 강해질 수 있다니. 능력 계수로 인해 레벨이 정해지는 이곳에서, 레벨이 상승한다는 것은 삶의 여러 조건들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다른 이유에서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류화는 고개를 떨군다. 뺨을 덮고 있던 손으로 제 머리를 부여잡고 깊게 심호흡한다.
"아니. 알아. 계속 먹으면 부작용에 뇌가 녹을 것도. 다 안다고. 그런데, 위험을 감수하고 샹그릴라를 먹었는데." "아무것도 못 해보고 이전으로 돌아가라니. 그건..... 너무 하잖아."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후였다. 미래를 소모한 만큼이나마 무언가 손에 쥐고 돌아가야만. 그래야만 덜 억울할 것만 같았으니까. 류화는 주머니에서 샹그릴라가 담긴 약통을 꺼내 네 쪽으로 던진다. 네 발치로 약통이 굴러와 부딪치며 멈춘다.
갑작스레 시야에 들이찬 탓일까, 응답이 더디다. 뭐야, 왜 고장 났어? 커리큘럼이라도 험하게 받았나. 풀만 우물거리며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보였다. 마치 이봐, 라고 말하는 듯한 손짓. 이내 넉살 좋게 반응하는 리라에 의아함을 담아 고개를 갸웃한다. “내 이름을 알아? 나도 너 얼굴은 알아. 백발.” ‘이름을 어떻게 알지?’라고 얼굴에 그대로 쓴 채 허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슬슬 머리로 피가 쏠리는 감각이 느껴진지라 다시 나무 위로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리라. 전직 아이돌인 그녀는 눈에 띄는 외모인데다 무성한 소문을 두른 이가 틀림없을 테지만 가십에 영 무관심한 낙조 입장에선 알기가 어려웠다. 아는 거라곤, 저와 같은 완장을 찬 백발에 라벤더색 눈을 한 여자애라는 거. 사람을 멋대로 부르는 낙조 특성상 여기서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면 영원히 백발, 내지는 포도-눈 색- 따위로 부를지도 모른다. “근무태만 파수꾼 짓.” 참새마냥 되게 종알종알 대네. 속으로 무례한 생각을 하며 귓전을 다다다 때리는 질문들을 한 귀로 흘리다가 물풀 끝에서 입까지 흘러들어온 반동에 움찔, 하고 눈을 깜빡였다. 다소 놀란 낯을 금방 갈무리하곤 나무에서 뛰어내려 가뿐히 착지했다. 아무래도 나무 위로 올라가는 걸 허용하진 않을 태도다. 높이도 높이거니와 영 위험했다. “좋지. 근데 이제 곧 한 명 더 올 거야. 쟤네 입모양 봤거든.” 그 말인즉슨, 일망타진하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하나 더 들렸다. “여섯 명 완성~” 약간의 기쁨을 담은 속삭임. 낙조는 가볍게 몸을 풀더니 먼저 앞장을 서 길목으로 들어갔다. 무사히 리라가 따라온다면 자연스레 흠칫 놀란 스킬 아웃들의 면면들이 보이고. 이내 담배와 샹그릴라 약통을 서둘러 숨기곤 말할 것이다. -허, 저지먼트가 어쩐 일? 이젠 가만히 있는 일반 학생들한테까지 갑질 좀 해보시겠다 이거냐? 엄연히 스킬 아웃이다. 이 녀석들, 이미 레벨 좀 있으면 몰려가서 난타한 전적이 5회가 넘는다. 저지먼트 사이에선 정보가 공유됐을 수도 있다.
>>15 그렇구나....... 하긴 말투가 평소 사람이랑 좀 달랐어 좀 친해? 보여서 좋은 사람인가 했는데 전적이 화려했구만 아 심란해 아아(죽다)
>>13 글레이프니르 이거 펜리르 묶는 끈이잖아 이게 랑이네 가족... 같은 스킬아웃 조직 이름인가? 근데 구속구의 이름이라는 게 의아하네... 랑이랑 글레이프니르의 관계가 정확히 어떨지 궁금하다 그동안은 어렴풋하게만 가닥 잡았었는데 이름 알게 되니까 묘해지는걸 랑이 과거사에 납치가 있나? 갇혀있었다는 떡밥이 있었어서 그런건가 하고 생각은 했었는데ㅋㅋㅋㅋㅋ 폐기⬅️이거 보니까 정신 아득해짐 떡밥이 너무 커요 선생님 좋은데 괴로워... 흑흑🥲 하 쟤네 저지먼트가 가서 묻을게 랑이는 치료 받으러 가자 이게 뭔일 머핀 잘먹는거 보고 헤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애 옆구리가 찢겼어요
>>25, >>33 이건 숨길 필요 없을것같으니 대답해주지, 맞다! 그런 아이러니를 푸는 것이 여러분의 몫입니다 (모두들:뭐래;;) >>머핀 잘먹는거 보고 헤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애 옆구리가 찢겼어요<<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미안해 리라야 그래도 머핀먹어서 기분좋았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아 류화 답레 지금봤어 류화야... 겉으로 보이던 모습이랑 내면에서 끓는 묘사가 너무 달라서... 힝ㅇ잉잉 뭔가 지금 이성의 끈으로 간신히 붙들고 있는 모습인데... 혹시 류화... 샹그릴라 더 먹고 이성까지 놓는 건 아니지...? 무ㅝ 뭔가 10알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 강하게 반응할 거 같은 느낌인데...
어떻게 본인 이름을 아냐고 말하는 듯한 얼굴에 리라는 살짝 웃는다. 모를 리가. 그는 몇 번의 소집 이후 부원 대부분의 얼굴과 이름을 외웠다. 저지먼트는 결코 규모가 작은 클럽이 아니지만 팬사인회에 몰려드는 팬들 중 다소 집요하게 구는 자들을 유연하게 흘려보내기 위해서 머리를 꽤나 굴려봤던 리라에겐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고, 무엇보다 그들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낙조는 내 이름 모르는구나? 나는 리라야. 이리라!"
백발. 이라는 호칭엔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태연하게 제 이름을 꺼내놓은 리라는 뒤이은 발언에 고개를 기울였다. 근무태만이라기엔 꽤 열심히 지켜보고 있던 거 아닌가? 내 쪽이나 저 쪽이나. 이어진 발언은 그의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근무태만 보다는 잠복에 가깝지 않나, 이거? 아무튼 그건 그렇고 저 높은 데에서 훌쩍 뛰어내려오는 태가 날렵해 리라는 저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한다.
"잠깐만, 같이... 같이 가!"
같이 가자고 조잘거리며 뒤를 따르면 머잖아 와글와글 몰린 6인의 스킬아웃이 눈에 들어왔다. 공기 중을 감도는 담배의 탁한 향이 방금 전까지 이곳에서 그들이 무엇을 태우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되어준다. 리라는 낙조의 등 뒤에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띄우곤 성큼성큼 걸어 다가갔다.
"딱히 갑질하러 온 건 아닌데~ 음, 잠시만."
그리고 스킬아웃 중 하나의 옷자락을 잡아채 냄새를 맡곤 가볍게 털어낸다.
"역시 담배 냄새 나네. 학교 앞에서 이러면 어떡하니? 고등학교는 금연 구역인 거 몰라? 아. 그리고, 우리 너희 여기 있던 거 다 보고 온 거거든. 뭐 하는지도 다~ 봤는데?"
리라는 손을 뻗어 스킬아웃의 팔을 잡아당긴다. 숨긴 담배나 약통이나 아니면 그 무엇이라도 찾아 뺏기 위해서.
텔레파시의 훈련은 때로 곤란할 때가 있다. 사용할 대상이 정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자신의 정신을 이용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소년은 가급적, 타인에게든 자신에게든 문제가 생기지 않을 선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어딘가의 고양이과 짐승이 떠오르는 선배에게 해대는 백지화 같은 건.. ...텔레파시에게 주먹을 들이미는 것부터 문제이니 넘기자
여하튼 홀로 있을 때 소년의 훈련은 기억의 되새김질이 주를 이룬다.
"...."
텔레파시의 훈련은 때로 곤란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아주 가끔, 흑역사를 끄집어 낼 때, 같은 것.
>>5 초반부터 내가 다 상처받은…… (._. 애*끼라니……. 세상 불행 다 받았나보지 사람이 세상 불행 한 번 다 받아볼 수도 있지!!!!!!!!! 뭘 그렇게까지 까대는 거야 너 이자식아!!!!!!!! (화남) 어뜩할거야 어뜩할거야 (멱살짤짤) 그치만 혜우가 그대로 해달라고 했고……(천사다) 본인도 잘못했다구 하구……반성하는 것 같구………. (혼란) 그때 혜우 혹시 누구 연락 기다렸는지 나왔나요………? 희야랑 친구인 건 얼핏 봤는데. 화력이 워낙 쎄서 제가 기억이 안나는거보면 못 본 것 같아서 ;-; 아무튼 혜우 진짜 서러웠나보다 실신까지 할 정도면…… 소중한 사람일건데, 집안에서도 없는 애 취급 당하던 애가 기다릴 연락이면 그 크기가 지 세상일 텐데. 그 세상이 한번 무너진 거잖아요 한 마디에.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픔……….
>>13 폐기? 저 단어에 꽂힌 거랑 저 뭉뚱그려진 글자들 보면 아마 랑이가 물건처럼 폐기할 수 있는 무언가로 취급되었던 것 같은데…(왈칵) 아니 랑주, 나 진짜 눈앞에서 선명하게 상영되는 영화보듯 이 앙물고 봤잖아요. 너무 흥미진진하고 생생해서….근데 이건 또 뭔가요………. "으깨버려야 해." "태워버려야 해." "가둬놔야 해." "전부, 없애 버려야 돼." 이거 뭔가요……… 설마 가두고 태웠어? 랑이를? 그러려고 했어? 진짜 정신 나갈 거 같다 진짜야…? 마지막 글레이프니르라고 저장된거… 무색무취라고 하는 거 보면 전화 상대에 대해 무감정하다는 걸 나타내는 걸까요 🤔🤔 하지만 글레이프니르 해석을 보면……… 글레이프니르는 신들이 늑대 펜리르를 묶을 수 있도록 난쟁이들이 만들어준 족쇄………….(…) 아 정신 나갈 거 같다. 그에게 전화를 걸지마!!!!!!!!!!!!! 다음 독백이 두려워지는데요…… 랑이에게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거야………?
>>84 헤헤... 그쪽은 노코멘트 하겠슴! 다만 랑주 본인은 아이러니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살짝 알려주겠다! 즐겁게 추리해보세요(낙조주:않이;;) 후일담은 시간 좀 보고 쓸까말까 결정해야쥐! 원래는 말해볼까 했는데 낙조주 반응 보니 너무 맛있어서 다음 글에서 설명하는걸로 해야지(사악함
>>86 엗 알겟슴다 얼른 치료해줄게!!!! 다 다음 글에 하게써!! 축하 고마어!!!!!!!!!! 히히 어떻게 하면 좀 그럴듯하게 연출할 수 있을까 고민 좀 했지! 사실 내 글솜씨보단 리라주 상상력이 대단한 게 아닐?까? 덕분에 전달 잘 되는 거 같아 조크든요 흐흐
>>5 어린 나이에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린 아이들이 스레에 너무 많아요. (흐린 눈)
오지 않는 연락을 어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그 연락만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는 오지 않고. 점점 지쳐가고 있을 때, 그런 연구원의 말을 들었으니 무너질 수밖에 없지요. 그 뒤로는 안 울었다지만, 괜히 감정이 메말라버렸다고 읽히니. 안쓰럽네요.
>>13 폐기. 드럼통. 블러 처리된 내용. 인체 실험일까요. 그 실험에서 실패 한 대상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 싫어도 상상 할 수밖에 없게 되어요. 그리고 글레이프니르라. 앞으로 어떻게 될련지. 그리고 지금은 글레이프니르에게 벗어나 있는데, 그것이 랑이 화상을 입은 것과 관련이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103 1번 해금해금해금해금해금 우리이것밖애안돼??(???) 3번 너무 힘들어요 마음이 힘들어요 점례야 아아아 ㅋㅋㅋ 으앙
>>104 약속이다~~~!!! 랑주를 믿어 흑 아 마음이 힘들다 랑이 다친 거 알면 리라가 쟤네 찾아가서 다 담가버릴거야(?) 랑주 글솜씨 최고인데 무슨 말씀을 인풋이 좋아야 아웃풋이 좋은 거라고 랑주의 글이 생생하니까 내 뇌내망상도 팽팽 돌아가는 거다~~ 다시 한번 축하하고 치료. 해"줘"
“응. 리라. 외우기 쉽네.” 어쩐지 낯익은 이름. 무던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매끄러운 발음이 운율 같은 건지 두어 번 리라, 리라, 하고 혀 위에서 굴렸다. 그러다 문득 위화감을 느낀다. 조화되지 않는 감각, 맞지 않는 옷을 껴입은 느낌. 한쪽 눈썹을 올리며 위화감의 뿌리가 무엇인지 기억을 더듬다보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손바닥 위로 주먹을 올리게 된다. 그걸 깨닫은 기쁨은 삽시간에 소거되고 뚱한 표정만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아까부터 너 왜 유치원 선생님처럼 말해? 난 유치원생이 아니라고.” 안타깝지만 리라의 다정하고도 상냥한 말씨가 낙조에겐 아이 어르듯 들린 듯하다. 능숙한 착지에 감탄하는 소리에도 기분은 풀리지 않는지 여전히 못마땅한 낯이다. 어쩐지 입술도 댓 발 나왔다. 하는 짓만 보면 어린애가 맞다. 길목에 들어가선 블레이저 재킷의 소매를 걷어올리며 리라가 하는 양을 가만 지켜봤다. 말 잘하네. 한가하게 그런 생각이나 하던 낙조가 뇌리를 스치는 여러 말소리들에 잠시 멈칫했다. 아이돌, 온더로드, 세븐 어쩌구, 제비꽃색 눈, 이리라. —이리라? 낙조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돌인지 뭔지 하는 이리 하라는 애가 쟤였구나. 어쩐지 붙임성도 좋고 언변이 시원하다 했더니. 뒤늦게 납득하며 가장 근처에 있던 다른 스킬아웃 한 명의 멱살을 덥석 틀어쥐곤 리라가 상대하고 있던 이에게 집어던졌다. 리라의 말을 듣던 그들이 끝에 가선 슬그머니 공격할 자세를 취했기에 기선제압 한 번 해보려 했다. 딱하게도 부딪혀서 넘어진 뒤 비틀비틀 일어나는 둘이나 나머지 넷은 전부 그걸 기점으로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낙조는 리라와 등을 맞대고 서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핫⋯. “네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걸 그랬네?”
"에이..대단하긴요. 그 무술 자체를 마스터 한 건 아닌데요, 뭘. 말 그대로 쓸만해 보이는 기술만 뽑아서 익힌 거지. 오히려 이렇게 무술을 익히면 다들 제가 룰이 없는 실전에서는 약할 거라고 생각해요. 룰에 제한받으며 단련된 사람이 룰에서 해방되면 더 날아다닌다는 생각은 못 하나 봐-"
한양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오? 결국은 다니기로 결정했군요. 잘 생각했어요, 청윤양. 감사하다뇨, 저는 그저 견학만 시켜드린 건데.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하세요~"
진짜 매운맛 서사같은거 생각나는거임 아지가 샹그릴라 폐기 부탁하려고 본가로 약통 안고가고 있는데 누군가 자기로서는 막을 수 없는 큰 사고 당할 뻔한 것임 아지는 타파할 길 생각하다가 샹그릴라 모조리 삼켜버리고 그 사람을 구함 그리고 그 사람은 묵직한 죄책감을 떠안고 아지는 부작용을 떠안음
유치원생이 아니라고 하는 것치곤 하는 게 꼭... 음, 이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리라는 속에서 치미는 웃음을 씹어 삼키며 입술이 댓 발 나온 얼굴을 바라본다. 키도 크고 날카롭게 생긴 애. 게시판에 붙었던 것을 바탕으로 고려했을 때 아마도 몸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 애. 유도부실로 오라고 부르는 친구. 그래서 내심 대하기 어렵거나 까칠할까 싶어 걱정했는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꽤 준수하지 않나. 그런 생각들은 속에서만 맴돈다. 당장 급한 건 이게 아니니까. 리라는 집어던져진 사람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가, 얽혀 넘어진 인간 덩어리를 약간 멍한 얼굴로 본다. 이런.
"으음~ 뭐, 어쩔 수 없지. 사실 내놓으라는 대로 줄 거란 기대는 안 했거든. 어쩌면 낙조가 먼저 쳐 줘서 한대 맞고 시작할 일이 없어진 걸 수도 있겠네~ 지금 저 애들 하는 걸 보면 말이야?"
어색한 웃음에도 그닥 타박하는 티 없는 목소리로 매끄럽게 대답한 리라는 삼단봉을 든 손에 힘을 준다.
"참, 너 이따 의무실 가. 아까 보니까 거즈 교체할 때가 된 것 같더라."
안 가면 내가 데려간다. 그렇게 말하며 덤벼드는 스킬아웃의 손목을 향해 삼단봉을 휘둘렀다. 타격은 있었지만 그렇게 훌륭한 공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는 곧 기운을 차린다. 리라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후 스케치북을 펼쳤다. 쟤 뭐 하는 거냐? 의아해 하는 소리도 잠시, 리라의 손에 알록달록한 물풍선 따위가 들리자 의문은 곧 조롱과 짜증 섞인 비웃음으로 바뀐다. 야, 뭐냐? 그거 가지고 뭘 어쩔 건데? 우릴 만만히 봐도 정도가 있지—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그 말을 하던 입을 향해 리라가 물풍선을 집어던졌으니까.
끈적이는 형광 녹색의 풀이 얼굴에 달라붙고, 당황해서 떼내려는 손에도 달라붙는다. 리라는 지체 없이 또 다른 스킬아웃의 발치에 또 다른 물풍선을 던졌다. 이번에는 형광 분홍색의 끈끈이 풀이 그의 발을 묶는다. 형광펜으로 그려진 색색깔의 물풍선은 끈덕지게 달라붙는 트랩이 되어 하나씩 하나씩 스킬아웃들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리라는 그것을 밟지 않기 위해 주의하며 까치발로 걸어가 얼굴에 풀이 달라붙은 스킬아웃의 정수리를 삼단봉으로 딱!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0 한동안 오른손을 사용하지 말라는 당부와 약처방을 받았으나, 그는 이 말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말았다.
"오른손으로는 어려우니 이번에는 왼손을 쓰면 되는거네요!"
훈련장에 들어서자 이미 와있던 학생들 중 몇몇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진지하게 훈련하러 나온 애가 한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니 저래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었겠지만. 지난번처럼 똑같은 조건에서 이번에는 왼손으로 예비동작을 취하고 기합과 함께 놓여진 기와 위로 손을 내리쳤다.
예쁜 이름이라는 얘기에 유독 환하게 웃는 한아지다. 겉치레일 뿐일 수도 있는. 어쩌면 칭찬을 들어서 그냥 형식적으로 돌려주는 인사일 수도 있는데 꽤나 순수한 것 같다. 그러나 이 소년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 등등으로 놀림당하거나 이름이 특이하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이다.
"엄마한테 배웠어~" "엄마가 시력이 나빠지셔서 이런 건 나한테 부탁하시거드은"
솔솔 웃으며 대답하는 것이다. 다행이다!! 더럽다거나 생각하지 않아서~!
"괜찮아~ 괜찮아~" "긴장하면 더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편하게 해줘어"
굳이 그렇게 말하니 보통이라면 더 찔릴까 걱정하게 되겠지만 아지는 다른 쪽 손을 설레설레 저으면서 괜찮다고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제 해도 되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렇게 팔을 내밀고 있으니 헌혈이나 피검사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이레에게 괜히 얘기는 하지 않는다. 더 긴장해버리면 곤란하다.
이레가 집중하기 시작했다면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계속 시선이 못 박혀 있어서 어쩌면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0 오늘의 커리큘럼은 숲 속에서 진행했습니다. 숲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식물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게다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조절이 안되다 보니 이런 숲속이 더 마음이 편해지는 것입니다.
이곳의 식물들은 제 능력의 영향을 받아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요. 사실 능력이 안정될 때까지 원예부실은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피면 안 되는 꽃이 피거나 식물이 시들거나 하는 일이 있었거든요. 당분간은 능력을 키우는데에 강제적으로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절묘하게 타이밍이 안 맞았을지도 몰라요······. 어쨌건, 한번 뵙기는 해야 될 텐데요.”
한탄하는 얼굴보다는, 하기 겁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을 앞두고 결의를 다지는 듯한 얼굴에 가깝다. 혜성의 독려 덕분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결국 언젠가는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인 것은 사실이다. 한양이나 은우, 둘 중에 한 사람을 최소한 한 번은 꼭 만나봐야 한다. 그러나 일단 그건 그거고, 혜성이 호신용품을 꺼내놓는 이야기에 성운의 얼굴이 다시금 풀이 죽었다.
“네, 그래야겠어요.”
그러고는, 성운은 혜성에게서 의약품을 받아 얼굴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치료라는 것이 엉망이다. 약을 바른 면봉은 제 위치에 약을 바르기가 세 번에 한 번이고, 반창고를 두 번 붙였는데 둘 다 잘못 붙였다.
“네?”
그래도 나름대로 거울 없이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성운은, 눈을 깜빡이다가 내가 영 약을 잘못 바르고 있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고는, 조심스레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치? 그치? 던지길 잘했지?” 어쩐지 안도한 기색이 역력한 낯으로 사람을 던져놓고 잘했느냐고 묻는다. 능청스러운 척 부스스한 머리칼을 겸연쩍게 매만지기까지. 뒤이어 들려오는 충고에 뒤에 있는 리라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너 진짜 유치원 선생님이야? 간다, 가.” 짜증이나 성가심 전무한, 순전히 의아함 가득한 어조. 일순 얘가 실은 아이돌이 아니라 유치원 선생님 지망생이 아닐까 싶었다.동시에 보통 이럴 때 나올 엄마보다 유치원 선생님이 먼저 튀어나왔다는 점은 그의 가정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고. 간다고는 했으나 낌새를 보면 대강 싸운 뒤 잊어먹고 안 갈 거 같은 못 미더운 낯이긴 했다. 그리곤 즉각 튀어나가 한 명의 정수리를 잡고 벽에 박았다. 한 명 기절. 옆에서 무기를 치켜들며 달려오길래 발을 걸어 하체 중심을 무너뜨린 뒤 얼굴에 주먹질 몇 번 해줬더니 이놈도 기절. 대강 동시에 무기와 주먹을 휘둘러서 그 중심에 가 신나게 뒤엉켜 싸움질을 하다가 기절 직전인 남은 한명의 멱살을 쥐고 한방 때리려는 참이었다. 고개를 든 낙조의 얼굴에 어느새 거즈 몇 개는 떨어져나갔고 새로운 상처들이 생겨났다. 열중하느라 못 들었던 푹, 푹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면 끈적이는 형형색색의 풍선에 의해 엉망이 된 풍경. 클라이맥스로 정수리 타격까지! 낙조는 일순 푸, 하는 바람 빠진 소리를 내더니. “아하하하하하하학! 뭐야, 진짜 최고네 너!” 배를 잡고 웃어재꼈다.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바닥을 쾅쾅 치고, 기절 직전인 스킬아웃 뺨도 팡팡 치고(이로 인해 기절했다), 눈가에 맺힌 눈물까지 훔쳤다. 정수리를 맞은 스킬아웃은 고통에 눈물이 찔끔 났는지 욕설과 함께 “아이씨, 주면 되잖아.”라고 뇌까리며 숨겼던 담뱃갑과 샹그릴라 약통을 리라에게 건넨다. 한참이나 허파에 들어찬 웃음을 토해내다 전부 비운 낙조는 기절한 스킬아웃들 주머니를 뒤져 마찬가지로 담뱃갑과 샹그릴라를 회수하곤 쭈그려앉아있던 몸을 일으킨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스킬아웃 여섯 마리 목화고 골목에서 자빠져있으니 회수 바람]이라고 문자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 털며 “처리 완료~”라고 낭랑하게 말한 낙조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리라를 쳐다봤다. “너 능력 최고잖아? 그걸로 강한 사람도 만들어낼 수 있어?”
나의 주먹이, 붉은 색으로 점철되었다. 그것이 방금 류화의 뺨을 제대로 갈겨서인지, 아니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깊게 파고든 손톱이 드디어 피를 배어나오게 하여 손을 적시는 중이라서 그런 건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이제 알겠어. 너는 나나, 다른 부원들을 속이고 있던게 아니야."
그렇지만 크게 상관도 없다. 이걸로 겨우 알게 됐으니까.
"속이고 속고 있던 것은 스스로이자 너 자신이었어. 알고 있던 거겠지. 눈 뜨면 보일 현실이 얼마나 어두운지 아니까. 보고 싶지 않으니까, 이렇게나 힘든 세상이니까, 그럼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이 약이면 괜찮아 질 거라고, 너는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있던 거다."
분노하듯, 오열하듯, 어쩌면 자신이 선택한 것을 자조하는 듯도 한 녀석의 빈 눈동자 앞으로 물러서지 않고 다가선다. 조금도 물러설 수 없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녀석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녀석이었다. 그정도로, 내게 너는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알고 있냐. 그렇지만 그냥 그것뿐이야. 아직 늦지 않았어. 아직 우리에겐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았다고. 사람은 말야,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단지 그걸 정하는 것은 너 스스로일 뿐이야. 그냥 그러기로 정하기만 하면 되는데 왜 엉뚱한 곳에서 이유같은 걸 찾는 거냐고. 샹그릴라 숨겨온 그 영리한 머리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고...! 세상에 결점 없는 완전한 인간 따위가, 있을 리가 없잖냐!!"
―이 녀석은, 따지자면 피해자다. 이 불합리한 현실에 잠겨버린, 그 중압감에 익사하기 직전인 불쌍한 녀석이다. 그렇기에 화가 나는 것이다. 이녀석을 향해서가 아닌, 그 뒤에 드리운 파렴치한 배경에.
"뭐가 나락이냐, 뭐가 '능력 계수'냐. 뭐가 샹그릴라냐!!! 다들 그런 형편 좋은 건 한 번쯤 생각해 본다고! 아, 그래- 머리 나쁜 나조차 너무 원해서 꿈꿔본 적 있을 정도야. 하지만 다들 저마다의 치부를 숨기면서 숨기면서, 그냥 이 악물고 버티면서, 필사적으로 되는대로 적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뿐이라고! 그럼에도 자신이 바라는 이상을 위해 계속 일어나는 것. 그런게 원래 사람의 삶인거라고!! 그런데 진통제랍시고 자신을 속여서 이딴 비겁한 약을 입에 물어봤자, 오히려 그딴 잔인한 현실에 끌려다니는 건 너 자신밖에 없을게 뻔하지않냐!!!!"
하지만 제일 화나는 것은 그런 현실을 바꿀 수 없는 무능한 자신. ...그러니까 내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는 거라고. 그게 바로 여기 서있는 이유다.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 있으니까. 어떻게 해도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있으니까. 그런 건 치사하니까.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걸, 이 손으로 비틀어 버리고 싶으니까. 젖먹던 힘까지 다 해서 죽어버릴 각오로 있는 힘껏 저항하는 거라고.
"...그래, 어쩌면 와닿지 않겠지. 그야 당연하잖아. 나는 너가 아니라서 네가 얼마나 힘든지 그딴 건 당연히 몰라. 그렇지만, 힘들겠지만... 적어도 너는 나보단 훨씬 훌륭한 능력자잖아. 그럼 이제부터라도 똑바로 걸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 나의 멋대로의 생각에 따라오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래서야 우리의 위에 드리운 현실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 그렇지만 류화도 그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냥 하는 생각이 아니다. 왜냐면 나는 그런 거창한 불꽃따위 낼 수 없으니까... 방금 네게서 도움받은 내가 보증할 수 있다. 만약 반대로 도움을 요청했던 게 나고 도우러 와준게 류화라면 나는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그런 건 보장할 수 없다. 벌써 레벨 2, 레벨 3을 바라보고 있는 동급생들 중에서 아직도 주먹 하나 믿고 나대는 건 나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힘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 그리고 누구보다 힘을 원하는 녀석이 왜 그런 사실은 모르고 사는 건지.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 혼자 마주 하지 않아도 돼. 네가 봐야 할 것들이 얼마나 어둡건 같이 봐줄게. 내가 싫다면 다른 녀석들도 얼마든지 있다고. 부장은 꽤 무섭지만 믿을 수 있는 선배야. 오빠를 닮아 똑부러진 동생이나 조금 짓궂지만 실력은 확실한 부부장도 있어. 정하는 자기 힘으로 레벨 4까지 올라온 멋진 녀석이야. 유급생이지만 제대로 저지먼트 하고 있는 녀석도 있어... ...보라고, 나 뿐만이 아니야. 30인. 자그마치 무려 30인 이상이야. 그녀석들 전부 너를 지탱해 줄 녀석들이라고."
"계수라는 줄에 걸려 꼭두각시처럼 살다 버려지고 죽을 바에... 걸음마 수준일지라도 제대로 네 두 발로 걸으면서 사는게 낫잖아."
잊고있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방금 전 연락했던 스킬아웃의 사이렌 소리가 경종 역할을 하듯 멀리서부터 가까워져서 분노에 잠겨있던 나를 깨웠다. 나는 방금 네가 그랬던 것처럼, 눈 앞의 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줄곧 아까부터 하고 싶던 말을 지금 한다.
감각을 경험하는 커리큘럼 마지막. 오늘의 수업이 어떤 형식으로 흘러갈지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오감 중 촉감을 제외한 감각 중 아직 경험하지 못한 건 미각뿐이니까. 게다가 미각과 경험. 두 단어를 조합하면 자연히 먹고 마시는 행위가 떠오르게 된다. 솔직하게 이레는 조금 기대했다.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음식들과 마주하기 전까자.
"저기, 저, 이거, 왜...?"
온전한 문장으로 완성되지도 못한 짤막한 말들이 두서없이 쏟아져나온다. 당혹감에 확장된 동공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웃는 낯의 연구원은 잘만 보였다.
"감각을 경험하는 거잖니? 기왕 할 거면 흔해빠진 것들 치우고 제대로 해야지. 모아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를걸."
"그, 그렇군요... 그치만 조금... 으... 아니에요. 고마워요..."
저를 위해 고생했다는데 차마 못 먹겠단 말 못하겠다. 목 끝까지 차오른 말 도로 삼키며 젓가락을 든다. 그대로 눈 질끈 감고 물컹한 촉감이 나는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었다.
"긴장할 필요는 없어. 걔네들 인트라넷이나 게시판에 상담요청합니다- 하고 적어두면 바로 응해줄걸. 부부장은 모르겠지만, 부장은 100%일거야."
자신의 턱을 건드리던 손이 허리께에 묶어놓은 방울로 내려갔다. 방울이 울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매만지던 혜성은 눈을 도록 굴리고 대답했을 것이다. 딱 그 대답만 하고 더 말을 덧붙히지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호신용품 이야기에 풀이 죽어있는 후배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혜성은 끌어온 의자에 앉아 마주 바라봤다. 얼굴을 보고 있던 혜성의 입에서 아이구, 하는 탄식이 터져나온다. 치료를 하려고 애썼지만 영 어설픈 모습은 혜성이 짐짓 눈을 돌리게 하기 충분했다.
바라보면 어렵게 웃음을 참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안해. 내가 거울을 줬어야 했어. 많이-...까지는 아닌데, 응. 많이...는 아니야."
일단 먼저 잘못된 위치에 붙혀져 있는 반창고를 떼어내고, 소독약을 거즈에 묻혀서 엉뚱한 곳에 발린 연고를 닦는 김에 상처 부위를 닦아주려하며 혜성은 애써 웃음을 참고 말할 수 있었다.
"치료하는데 시간 좀 걸리니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봐. 내가 아는 선에서 알려줄게. 가만히 있기 힘들잖아?"
>>383 아, 그런 기분. 저도 간간히 느껴요. 내가 너무 막나가나? 남에게 기분 나쁠 말이려나? 눈새짓해서 분위기 흐리나? 싶고 그런데 어쩌겠어요. 만약 누군가 지적한다면 거기서 고쳐나가야죠. 이렇게 불안함을 느끼면서 얻은 자세라면 너무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나름대로 고쳐나가고 있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조금씩 스스로에게 나름의 규칙을 걸어보고 지키는 일도 해보고요.
부드럽게 굴러가던 어감을 떠올리며 의문을 표했다. 다른 의미로 이름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인 이레였기에 스쳐가듯 던진 말은 아니었다.
"와. 그럼 연륜에서 나온 가르침이셨나 봐요. 그, 어머니께서 손재주가 좋으시다든지...?"
관심 분야에 관한 주제가 나왔기 때문인지 드물게 말이 술술 이어진다. 어머니에게서 전수받았다고 들었기 때문인지 더욱 더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네, 네! 편하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내뱉은 말은 사실상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레는 심호흡 한번 하고는 찢어진 소매를 잡고는 조심히 바늘로 천을 뚫었다. 천 아래로 사라진 바늘은 곧 반대쪽 천의 위로 나타난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던 손이 우뚝 멈춘다. 긴장감을 더해주는 요소가 생겼기 때문이다.
"저기, 그... 지금... 지금...! 몇 시일까요?"
사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지금 그렇게 보고 있는 게 더 긴장됩니다.' 였다. 하지만 자신이 뭐라고 상대의 시선 처리까지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겠는가. 기분 나빠하는 건 싫다. 결국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어찌 되었든 최소한 시계나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만큼은 벌 수 있을 거다.
너 진짜 유치원 선생님이야? 그 말에 리라는 생뚱맞게도 미래에 대한 또 다른 루트를 진지하게 고려한다. 지금 만난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저런 말을 여러 번 듣고 있는 걸 보면 정말 낙조의 말대로 그쪽에 적성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인생에 걸쳐 쌓아온 커리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지 오래고, 그럼 정말 그리 빠져도 나쁠 건 없겠다며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았다. 남은 스킬아웃은 낙조의 손에 전부 나가떨어졌으니까.
"그러게 진작 주지 그랬어~ 꼭 이렇게 한바탕 해야 직성이 풀리니? 첨단기술로 뒤덮인 도시에 살면서 왜 하는 짓은 구시대인보다 못하는지 몰라. 꼭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응? 그런 취향이야?"
신나게 웃는 낙조를 뒤로 하고 웃는 낯으로 담뱃갑과 샹그릴라 통을 건네받은 리라는 조곤조곤 쏘아붙이며 담뱃갑을 열었다. 반쯤 빈 통 안에는 일회용 라이터가 삐딱하게 구겨들어가 있다. 리라는 무슨 생각인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담배 한 대를 꺼냈다. 그리고 입에 문 뒤 라이터를 찰칵거려 불을 붙였다.
눈 앞의 스킬아웃은 당황한 눈치다. 리라는 입술 사이에 문 걸 가볍게 한번 빨아들였다가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곧장 뱉은 뒤 방금 담배와 샹그릴라를 내놓은 스킬아웃의 입에 친절히 꽂아주었다.
"그리고 피워도 왜 이런 걸 피우니?"
뭐 얼마나 좋길래 학교 앞에서까지 태우나 했다. 멍한 얼굴의 스킬아웃을 날카롭게 흘겨본 리라는 곧 낙조를 향해 돌아선다. 그리고 그제서야 깔끔히 정리된 주변 상황을 똑바로 인식할 수 있었다.
"최고는 낙조가 더 최고인 것 같은데~? 어쩜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 아까 나무에서 뛰어내릴 때도 그렇고, 너 대단하다."
진심이 담긴 칭찬이다. 신기하네. 인첨공은 원래 이렇게 운동 잘 하는 사람들이 많나?
"응? 요즘 사람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많네. 글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여태까지는 물건만 만들어 봤거든. 조만간 시도해 볼 생각이긴 한데..."
솔직하게 대답하고 있자니 마주본 얼굴에 새롭게 생겨난 상처들과 흔적만 남기고 자취를 감춘 거즈 아래 낡은 상처가 눈에 띈다. 말꼬리를 흐린 리라는 곧 낙조의 옷소매로 손을 뻗는다. 잡혀주었다면 그대로 끌어당겼울 것이다.
>>383 그 기분 이해하지~ 하지만 그런 걸로 이익 밉다. 아지주 싫다. 거슬린다! 이런 거 느끼는 사람 없다구~ >:ㅁ 나는 아지주가 사리지 말았으면 해... 오히려 그런 서사도 필요한 법이고, 고민하면 본인 맘만 상하니까. 무엇보다 그 썰들 직관한 입장에서 아지주는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보고 설정도 하나하나 연관지어 짜보는구나, 멋지다! 같은 생각 많이 했다구 나! >:3
뭐..일단 이 부분을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캡틴은 일단 기본적으로는 자유롭게 놀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막 선을 넘고 도를 넘는 그런 것이 아니면 딱히 별 생각없이 와..노는구나.. 하고 넘기는 편이에요.
제가 기본적으로 싫어하고 진짜 지적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한데...
너무 노골적인 편파와 편애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의 고집을 부리는 것 친해질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차별당한다고, 캐릭터에게 다가와주지 않는다고 투정 부리는 것 불행서사면 불행서사고 현재 캐릭터가 힘들면 힘들지. 그것으로 협박질(애인이 안 생기면 배드엔딩이에요. 이대로 가면 내 캐릭터는 홀로 떠돌다 죽겠죠)하는 것. 수위 선을 심각하게 넘는 것을 여럿 반복하는 것
대충 이 정도가 될 것 같네요.
저런 거 아니면 캡틴은 딱히 싫어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니까 안심하면서 노세요. 여러분.
기본적으로 블러핑이 일상이고 첫 이벤트에서부터 블러핑 수위가 제법 높았다는 자각 있고. 얘가 자아 얻고 내 손 벗어나고 있다고 외치지만 여기에 붙박이처럼 있는 나도 있는 걸 뭐. 솔직히? 캐릭터가 어떻게 창작자의 손을 벗어나냐? 라고 충분히 시빌 걸릴 수 있다 생각하긴 해. 근데 사실인 걸 어떡해. 나는 매번 여로를 굴릴 때 여로와 타협하면서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우고 있고.
뭐 다들 자신의 굴리는 방식이나 캐릭터에 대해 그런 느낌을 받을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동월주만 해도 좀 눈치보이긴 하지만 열정 고수하고 뇌 비어있는 동월이 굴리면서 좀 그런 느낌을 받긴 해도? '불편하면 말해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굴리는 중이니까요. 뭐 가장 좋은건 자기자신의 문제점을 알아볼 수 있는거지만 그게 쉬운게 아니잖아요? 다같이 즐기는 곳에서 민폐 안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드백도 꽤나 중요하니까요.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굴리고 편하게 말하면서 고칠 건 고치고 그러면서 어장생활 즐겼으면 좋겠다입니다!! 글이 두서가 없고 난잡해 보일 수 있지만 그건 동월주의 곰손 탓.... 정리하자면 대충 다같이 즐기면서, 필요한 피드백은 바로바로 하자.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런 고 로!!!!!!!!!!!!!!!!! 동월주의 느낌표.... 이거 맛들려서 계속 하고있긴 하지만 솔직히 가독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은것도 사실이고? 난잡해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혹시나 원하시는 분이 있으면 느낌표 빼고 평범하게 글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그냥 동월주가 재밌자고 하는거니까 불편하다고 참지 말고 말해주기~~!!!!
물론 내일의 성운주가 갑자기 상판신이 들려서(상판 돌리다 보면 갑자기 접신하는 모먼트 있음) 뭔가 갑자기 이능력배틀물 3부작 한 시리즈를 갖다가 성운이 설정에 덜컥 얹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그게 고민이네요... 빈자리가 많다는 건 다른 분들이랑 꾸며나갈 여백이 많다는 뜻도 되지만 다른 분들 캐릭터를 보자면 뭔가 캐릭터를 너무 준비 못하고 급하게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곤 해요
>>0 상황은 완전히 이쪽이 압도하고 있다. 쉴틈 없는 주먹질과 그 사이에도 이어지는 견제. 상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걸 먹고 죽거나, 아님 막거나. 꽤 하잖아. ―하지만 그 생각이 무르다고. 여기서 보여주지. 너같은 어중이 떠중이들을 무참하게 짓밟아온 나의 기술. 계속 상체에만 집중 하고 있는 동안에 상체를 숙여서-
"크아아아아아아!! 아―! 열받네 증말! 거기서 대체 뭔 생각을 해야! 이 체력에서! 막기를 입력 할 수 있는 거냐고오오오오오오."
그거 알아? 적당한 양의 도파민은 인간이 살아갈 의욕과 흥미를 부여한대. 하지만 나는 글레이즈드 도넛이라서 적당한 양은 몰라. 폭신하게 튀겨지고 달콤한 설탕 시럽만 묻을 줄 알거든. 그래도 충분히 맛의 흥미는 부여할 수 있으니 나도 적당한 도파민인가?
너도 글레이즈드 도넛이 되는 건 어때? 무언가의 적당함을 모를 땐 대충 달고 기름진 걸로 흥미를 이끌 수 있을 테니까. 적당한 단 맛으로 하루를 보내는 거야.
그렇게 말해놓고 대표적인 도파민 자극제를 보내는 나는야 글레이즈드 도넛. (동글동글한 도넛 그림)
오늘은 짧게 쓴 것 같아서 뿌듯하다. 어... 아닌가?"
팝콘세트가 포함된 영화 티켓
6.올빼미 -> 혜성
"안녕하세요. 혜성님? 올빼미에요. 선물은 잘 받으셨나요? 답장을 보니깐 마음에 안 들어하시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저는 오늘 하루를 괜찮게 보냈어요. 아무런 탈 하나 없이 무난한 하루였죠.
봄이 오면서 자외선도 더 강해졌어요. 우리는 겨울의 낮은 자외선에 익숙해져 있어서, 봄의 강한 자외선에 노출되면 피부가 금방 안 좋아진대요.
그래서 이렇게 선크림을 드려요. 동물성 성분이 안 들어간 저자극 비건 선크림으로요.
오늘 하루도 잘 보내길 바랍니다!"
저자극 비건 선크림
7.리콜 -> 나랑
"너의 마니또 리콜이야! 너 마스크 자주 쓰는 거 같던데, 귀 안 아파? 그런 너에게 선물하는~ 아이템! 잘 써야해!"
마스크 귀 보호대(검은색) 막대사탕 다섯개
8.제로원 -> 정하
""이제부터 당신의 마니또를 맡게 된 코드네임 제로원입니다. 불량 저지먼트, 첩보 결과에 의하면 아무래도 너는 스쿠터를 몰고 다니는 모양이더군. 교통에 주의는 하고 있나? 도로는 전장이다. 어쩌면 얌전한 넌 좀 더 눈에 띄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이걸 주마. 한 여름에도 빠트리지 않고 장비하도록."
매우 긴 붉은 울 목도리
9.갈까마귀 -> 이경
"이번에는 조금 큰 힌트로 주는 선물. 내가 누구인지 알았어?"
하얀 종이학 모양의 조각이 달린 핸드폰 스트랩. 핸드폰 카메라와 하단 부분을 걸쳐서 연결하는 형태
10.뜨개모자 -> 한양
"안녕? 일주일 잘 보내고 있을까? 간식이 입에 맞았다니 다행이야 :) 떡을 맛있게 먹은 것 같아서 오늘도 간식으로 준비했어. 이것도 입맛에 맞기를."
망개떡과 미니약과
11.유노마네임 -> 류화
"커피 한잔 마시고, 열심히 순찰하는거야! 나랑 약간.. 동질감이 느껴진달까?"
학교 근처 카페에서 쓸 수 있는 커피 무료 시음권
12.안전제일메론소다 -> 희야
"커리큘럼을 할 때 혹시 춥지는 않으려나요?"
망토 모양의 담요. 겉은 연하늘색 담요 재질, 안은 흰색의 폭닥폭닥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양털로 되어있다. 목 부분에 리본을 묶어서 흘러내리지 않게 한다.
13.nineteen`s kitsch -> 리라
"요새 힘들어 보여서 많이 걱정이 돼 。° ૮₍°´ᯅ`°₎ა °。 무엇을 좋아할까 많이 생각해봤는데, 한 번에 딱 떠오르는게 없더라구. 그래서 내가 힘들때 듣는 노래가 담긴 앨범을 보내주면 좋을까 싶었어⁽⁽٩(๑˃ᗨ˂)۶⁾⁾"
옛날 아이돌 앨범
14.도둑고양이 -> 아영
"도둑고양이가 말하길, 인간들은 이걸 먹으면서 항상 행복해 보였다고. 너도 행복하게 미소 짓는 걸 볼 수 있으면 좋겠데."
풍성한 생크림으로 둘러싸인 조각 케이크. 꼭대기에는 큰 딸기가 하나 올려져 있다.
15.코뿔 공룡 -> 청윤
"굴소스는 맛있게 드셨나요?! 무려 프리미엄이라 구하는데 깨나 시간이 걸렸어요!
제 정체는 슬슬 눈치 채셨나요? 눈치 빠르신 선배님이라면 이미 알법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감도 안잡혀서 조금 슬프네요. 이번 선물은 레벨이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준비했어요!"
>>54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신기하게 혜성이 하면, 되게 청아하게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들린단 말이지. 귓가에 맴도는 느낌.흠터레스팅. 근데 카드 뒤집는 사람이냐고 물어봐서 썰 하나 생각났어... 그.. 지인 중에 그걸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값 내고 여러 가지 봐달라 하면, 무조건 내 상태에서 [왕]카드가 나온대..ㅋㅋㅋㅋㅋ 이렇게 우직우직하게 카드 나오는 사람 처음 봤대....ㅋ...
>>540 호박은 안에 무언가가 감춰져있을지도 모르잖아. 그 점이 매력적이야. 이 안에는 와아~ 서프라이즈~ 같은 느낌이랄까!
>>549 아지주와 아지 둘 다 다르게 떠오르는데! 색은 아직 흐리멍텅하게 보여서 나중에 풀기로 하고(찡긋)
>>563 확인했어요! 상관은 없긴 한데...아마 딱 설정 정도로만 끝나고 스토리에 영향을 준다거나 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이 부분은 세계관과 조금 맞닿은 부분이기도 하고... 그냥 이런 설정이다.. 정도가 고작일 것 같고 그것으로 어떤 영향력을 준다거나..하는 것은 힘들다는 점. 미리 이야기를 할게요.
situplay>1596988070>569 혹시 카드 뒤집는 일을 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제가 어떻게든 찾아가서 볼 생각이 있는데(친목 컷) 되게 신기하네요. 저도 혜성이가 움직일 때마다 방울 들리는 거 상정하고 제스처가 조심스럽다는 가정으로 행동지문 쓰는데.(흠터레스팅) 그만큼 여로주가 굉장한 사람이군요! 납득했다!
대롱 매단 눈물을 훔치며 리라와 스킬아웃을 구경하는데 의외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와 오, 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참새 같은 선생님이 아니라 호랑이 선생님이었나. 리라에 대한 인상이 재정립된다. 리라가 담배를 물었을 땐 표정이 서서히 사라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미지근한 낯 그대로 스킬 아웃에게 담배를 물려주는 것까지 물끄러미 응시한다. 과거를 회고하는 이의 눈. 기실 누가 됐든-그게 미성년자라 할지라도-흡연하는 사실은 제게 있어서 별 중한 일이 못된다. 허나 법 안에 메여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기로 한 몸이다. 이리라는 저지먼트였고, 송낙조가 이곳에 처음 발 디뎌 결속되겠노라 결심한 곳이 첫째는 목화고등학교고 둘째는 저지먼트다. 응, 곤란하네. 그런 것치곤 싱겁게 생각한 낙조는 나지막이 불렀다. 리라. “피우지 마. 곤란해.” 주어 대신 제 입술을 검지로 콕콕 찌르다 브이 자로 담배 잡는 시늉을 한다. 불명료하고 미온한 웃음을 띤 채였다. “나 도덕이란 걸 챙기고 살아보려는 중이거든.” 윤리는 안 챙겨도 도덕이란 건 챙기기로 했다. 송영현(*부친)도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애정을 받았거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생각을 냉소적으로 뇌까린 낙조는 언제 묘한 웃음을 띠었다는 양 예의 악동 같은 얼굴을 했다. 씩- 하고 웃었다는 의미다. “나 원래 세. 그리고 유치원생 취급하지 마.” 막바지에 가선 다시금 뚱한 낯이 됐다. “나, 나, 나! 시도할 때 나 불러줘!”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땐 리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을 꽉 쥐고 활짝 핀 얼굴로 응? 응? 하고 거듭 되묻기 시작한다. 여간 기대되는 게 아닌 모양. “별로 안 아픈데.” 방어를 버리고 공격만 해대는 낙조의 싸움 특성상 우위에 선 싸움에서도 상처를 적잖이 달고 오는 타입이다. 다만 그렇기에 고통에 익숙해 웬만한 아픔엔 둔감해 안 아프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투덜거림에도 순순히 끌려가주며 보건실로 발길을 터덜터덜 옮기기 시작했다.
/ 막레 타이밍인가 눈치보는 중.... ◑◑ 눈치보느라 애매하게 끊겼는데 더 이어주셔도 되어요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3
랑주 답레 아침에 막레식으로 줄게 랑이 차분하고 의외로 애들한테 유한거 너무 좋아서 평생 나랑 돌리게 앉혀두고 싶은데!!! 갑자기 통보받은게 있어서 운 나쁘면 내일까지 못 이을거 같아서 너무 질질 끌기 미안해서 그렇다....;-; 미리 수고했어 이렇게 랑이랑 일상 돌리기라는 내 버킷리스트 하나가 선 그이고
"아이고, 이 봐라. 봐. 여기랑 여기랑 여기. 보이지? 어이구... 두개골 안 깨진 게 다행이네. 안 그래도 연약한 녀석인데... 어이구, 불쌍타, 불쌍혀. 애 팔자가 왜이리 꼬였다니." "박 교수 이 사람이 말이야. 말 조심해!"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했다구 또 잡드리를 한대? 거 안 교수 자네 애 앞에서만 눈 돌아가는 게 아주 헬리콥터 그 뭐여. 그 거시기. 아무튼 비행기 애비여 그냥." "우리 희야 불쌍한 애 아니야. 그렇게까지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사회가 불쌍한 거지." "에잉, 지네 애만 끔찍하게 예뻐해 아주 그냥. 잘나셨소, 잘나. 그래서, 어쩔 건데? 사회 구조 바꾸겠다고 데모라도 하려구?" "맘만 같으면 그러고 싶지." "이 양반 큰일날 소릴 하네! 데모는 우리 국민학교 때 일이야, 이 사람아. 여기가 국민학교 때처럼 학우들이 단합하고 그러는 줄 알아! 요즘 애들 다 단합하긴커녕 서로 그 주제로 갈라치면서 싸우기 바쁜데 되겠어? 저기 높으신 분들 봐라. 인첨공에서 그랬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에이잉, 난 모르겠다. 세상 돌아가는 일엔 지식인들 다 입다문다는데 나는 도통 다물질 못하겠어." "어이구, 그 점은 큰 안 선생 닮았어. 그 양반 대학생 때 기억 나?" "기억하지. 세상 심약한 철학쟁이인줄 알았는데 대자보 쓰고 시위하던 놈이 누군데 말이야. 하하!" "그럼 희야도 그 기질 닮았나?" "그건 나도 모르지. 툭툭 뱉는 거나 가끔 행동하는 거 보면 우재 그 녀석 참 많이 닮았는데." "어쩌자고 그 놈은 먼저 가서. 하늘도 무심하지!" "하늘이란 게 사람 염병에만 온 심혈을 쏟지 축복해줄 만큼 대인배는 아닌 것을 어쩌겠나? 그래서 우리 애는 언제 깨는지 알 수는 없나?" "이것도 하늘에 달렸지!" "에잉, 이 돌팔이 의사 같으니라고." "끌끌, 같은 돌팔이끼리 말이야. 곧 깰 테니 그 뭐여. 비행기 애비는 그만 하구 푹 쉬어. 그짝도 할 일 많을 거 아녀."
>>621 희야주 왜이리 사투리를 맛깔나게 쓰시는거죠…… 이곳이 서울인지 어어딘지 (어디사투린지모름) <세상 심약한 철학쟁이인줄 알았는데 대자보 쓰고 시위하던 놈>이 누굴까… 닮았다고 하는데… 혹시 영혼을 옮기고 다닌다던가 라고 생각했다가 너무 간 걸 알고 입을 다물었어요. 잠깐 스킬아웃공격?!!!! 어디야 내가 병실 갈게!!!!!!!!!! 내가 지켜조야겟서!!!!!!!!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결심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한양이나 은우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로 남겨두기로 하자. 지금은 당장 몸에 생긴 상처에 응급처치를 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긴 잠에서 방금 깨어나기라도 한 마냥 어벙벙하고 어설픈 소년에게는 확실히 아직 조금 더 도움이 필요한 것 같다. 뜻밖의 힘겨운 웃참 챌린지를 하고 있는 혜성의 모습을 보자, 뭔가 제대로 못했다는 것을 직감한 성운의 시선이 아래로 축 처졌다. 머리 위에 개 귀 같은 거라도 달려 있었더라면 시선을 따라 아래로 축 처졌을 것 같다.
“···죄송합니다··· 그러면, 다시 부탁드릴게요.”
하고, 성운은 눈을 감고 상처투성이 얼굴을 혜성에게 다시 내맡겼다. 소독약 묻힌 거즈로 엉뚱한 곳에 발린 연고를 닦아내고, 찢어진 상처에서 흐른 피를 닦는 동안 성운의 얼굴은 차가움과 따가움에 조금씩 움찔하는 것을 빼고는 비교적 얌전히 혜성의 치료를 받아주고 있었다.
“······이상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혹시 저지먼트 내에서 격투기나 체력단련 등을 배우려면 어느 분께 여쭤봐야 하나요?”
오늘, 정확히는 아까 전의 그 드잡이질을 생각하면, 이 체구 작은 소년이 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어쩌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어딘가 기묘하다. 리라는 고개를 돌리고 낙조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는다. 말을 대신하는 제스처를 보고 불명료하고 미온한 미소를 본다. 문제가... 있었지. 리라는 새삼 같은 저지먼트 부원 앞에서 너무 생각 없이 굴었나 싶어 짧게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혜승이 같은 친구였다면 등짝을 맞아도 할 말 없는 행동이긴 했다. 그렇지만 궁금했단 말이지. 불쾌할 정도로 실패해버렸으니 두번 할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작은 일탈의 처음이자 마지막 목격자는 낙조 하나뿐이다.
"응, 미안. 안 할게. 좀 궁금해서 그랬어."
이거 비밀로 해 줘? 순순하게 인정하는 것 치곤 입단속을 빼놓지 않으며 리라는 미소짓는다. 낙조의 얼굴에서 묘한 웃음이 사라지고 악동 같은 표정이 자리잡을 때까지 줄곧 같은 얼굴로.
그나저나, 유치원생 취급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런 게 꼭 어린이 같단 말이지. 리라는 주먹을 꽉 쥐고 한껏 핀 얼굴로 거듭 되묻는 낙조를 가만히 바라본다. 비슷한 걸 요구하는데 이렇게 다르다니.
"응, 해 줄게. 그러니까 안 아파도 의무실 가자~ 얼른! 자~ 자~ 빨리 빨리! 얼굴 이거 흉 진다!"
유치원생 취급 말라는 말에 대한 답은 어디로 날려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리라는 짐짓 밝은 목소리로 낙조를 이끈다. 다 까진 얼굴의 살이 올바르게 차오르도록 돕기 위해 귀찮은 잔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낙조의 얼굴에 밴드와 거즈 따위를 붙이려고 시도하는 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참 힘겹게 참고 있던 웃음은 어렵사리 숨을 몇번 억지로 삼켜내자 금방 잦아들었다. 대신 혜성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억지로 웃음을 참은 후폭풍으로 눈물이 눈가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휴, 큰일나는 줄 알았네. 안경을 치켜올려서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혜성은 숨을 몰아쉬었고 그제야 제대로 후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혼난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 사과는 하는 게 맞았지만 누구든 그 모습을 보면 안쓰러우면서 웃음을 참을 수 밖에 없다고 자기 자신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네. 후배님. 지금은 미안해요보다 감사합니다가 더 맞는 말 아닐까? 그냥 내 생각은 그렇다는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후배의 얼굴에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히고 또 거즈가 필요해보이는 곳에는 거즈까지 붙혀주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것과 다르게 혜성의 목소리는 나긋하고 차분했다. 움직임에 따라 방울 소리가 양호실에 울려퍼졌지만 혜성의 목소리를 묻어버릴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응? 마무리로 커다란 반창고를 붙혀주던 혜성은 후배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동그랗게 눈을 뜬다.
"격투기랑 체력 단련 말이지?"
이런 쪽의 질문이 나올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혜성은 알고 있는 부원들의 이름들을 더듬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부부장인데. 부부장 말고 추천할만한 애들이.. 이름들을 더듬으며 사용한 것들을 정리해놓고 붕대를 집어든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애들 선에서는 부부장? 그리고 능력이 그 방향으로 치중되어 있는 애들 정도네. 애들 대부분 싸움이나 체력단련 정도는 기본으로 하고 있지 않으려나.."
>>671 세나여?? 글쎄오........ 갓 전학와서 능력 문외한이라는 설정이다보니 일단 능력을 어케 써야하는지부터 감을 잡아야 한다구 생각은 하지만여 그래도 배우고 싶다고 한다면!! 지금은 공기제어계 능력자들에 해당되는 법률이 있는지, 법적으로 허용되는 고도가 어디까지인지~~ 최고로 높게 날아간 능력자는 누군지 그런 걸 알고 싶어 하지 않을까여? ㅋㅅㅋ 오너적으로는 바람 능력은 어떤 상황에 적절한지 어떤 상황에는 주의하는 것이 좋고 그런 때에는 이러는 것이 좋다~~ 하는 요령을 은우가 알려줬음 하네여!
>>680 세나주는 당연히 10이조~~~! 애초에 제가 만들었는걸여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어는 평소엔 좀 어둡고 뒤가 구린 캐릭을 주로 돌리다 보니까 좀 각별한 느낌이 있긴 하네오! (초안들을 봄 (안 봄
1. 저번에 나왔었던 해변 관련 괴이의 후속편 2. EX타워 이어쓰기 3. IF의 배드엔딩? 4. 해당 목록에 3번 항목은 없습니다. 혹여나 3번 항목을 발견하셨다면 무시하십시오. 절대 3번 항목에 관심을 줘선 안됩니다. 5. 괴이부원들의 일상 6. 어떤 괴이의 수색일지 7. 거 그냥 일상독백이나 쓰쇼.
휴...!!!!!!!!!! 투표를 받아볼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평범한 삶을 바랐으나 세상은 지독하기만 했다. 그러니 류화 역시 지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게 헛일이었다. 미래를 포기한 것과 달리 현재는 너무 비루하기만 했다. 꿈 때문이었다.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 끊임없는 욕망으로 일렁이며 류화 자신을 속아 넘어가게 만들었다.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을, 좀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에 쫓겼던 류화였기에. 욕망에 취약하니, 그 유혹에 스스로를 속이게 되었을까. 샹그릴라를 복용하는 것을 멈춰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때를 찾지 못했으니 계속 복용하는 것 외에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음에 류화는 시선을 돌린다. 감정이 격해지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거칠게 숨을 내쉰다. 각자의 삶에 막다른 길이 있지만, 그런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끈질기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이 삶이라 너는 말한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이 사실을 바꾸지 못하고, 죄의식이 반성으로 사라지진 않는다. 다시 시작하려 해보아도, 번번이 좌절 속에서 길을 잃어본 경험밖에 없었기에. 출구를 찾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늪에 빠져들었었으니. 희망하기에는 절망이 너무나도 깊었다. 환경이라는 것이 류화를 그렇게 무력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너를, 다른 저지먼트 부원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면 그들이 나를 바라볼 싸늘한 시선과, 비난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류화는 쓴웃음을 짓는다.
"... 넌 정말 좋은 사람이네."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지쳐있었으므로, 혼자서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었다. 류화는 쓴웃음을 짓고, 힘없이 팔을 들어 네 손을 잡았다. 이번엔 정말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샹그릴라 같은 것에 기대지 않고도. 류화는 힘 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고백하며 털어놓아야 할 죄가 너무나도 많았다.
아버지를 뵙지 못하는 삶에 만족하고 살아갔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요. 어머니와 함께, 다른 아이들처럼 성장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나면서, 지금보다 키가 훨씬 커지고, 이런저런 사고에도 휘말리고, 친구들을 사귀고, 왁자하게 떠들고, 어느 날에는 여름의 뙤약볕에 피부가 까맣게 익으면서 축구도 하고, 어느 날에는 실내 수영장에를, 어느 날에는 농구를... 그런 삶에 만족하면서 평범히 자라가기로 했더라면, 그러면서 언젠가 어린 날의 그리움으로 남은 아버지를 재회할 날을 기약없이 기다리면서 살기만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요.
내 탓입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헌신짝처럼 버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건 아마 그 벌일 겁니다.
자고 일어나니 온 몸이 뻐근합니다. 손가락이 잘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병상의 날카롭고 알싸한 청결한 냄새가 익숙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퇴원하고 며칠 동안은 약을 잘 먹으면서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퇴원한 바로 당일에 이렇게 박살이 나서 들어오냐고 저를 타박하고 가셨습니다. 다친 데 더 다쳐서 덧나는 바람에, 못해도 사나흘 정도는 입원해 있어야 한다나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만나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야 할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만 지금은 몸을 조금만 움직일라쳐도 온 몸이 비명을 지릅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 틀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뭔가를 해야 합니다. 아니, 뭐라도 해야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약을 먹을 때 쓰는 물컵이 침대 옆의 소탁자 겸 서랍장에 얹혀져 있습니다. 어깨가 아픈 걸 무릅쓰고 몸을 조금 돌려서 그 물컵을 응시합니다. mg번째 팔. 글자로 놓고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소린지 감도 안 잡히는데, 머리 한켠으로는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왜인지, 옛날 어느 때에는 그 팔을 상당히 자유자재로 썼던 기억이 있는 것도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기분뿐이고, 지금 그 뚜렷하지도 않은 기억을 떠올리면서 컵을 주시해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요.
17살. 목화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1학년. 최세은. 제 오빠와 같이 살고 있긴 하지만 같이 등교를 하는 일은 극히 적었습니다. 어릴 때라면 모를까. 지금 이 나이에도 같이 오빠와 등교라니. 정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닭살이 돋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세은이 은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좋아하는 편입니다. 단 하나밖에 없고,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 하지만 그것과 이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춘기에 들어서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부끄러움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눈에 너무 띄는 것이 싫은 것인지는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겠지요.
앞으로 걸어가면서 보이는 이들 대다수가 모르는 이들입니다. 분명히 목화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지만 대다수 모르는 이들입니다. 그게 당연하긴 했지만, 과연 저들은 어떨까요. 에어버스터의 동생인 자신을 알아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은연중에 떡고물을 먹으려고 다가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중학생때 정말로 지긋지긋할 정도로 겪은 일이었기에 세은은 한숨을 내쉬며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곳은 피해다녔습니다. 주말 번화가라면 모를까. 지금 이곳에선 에어버스터의 동생인 자신을 알아보는 이도 분명히 있을테니까요.
조금 돌아서 공원쪽을 통해서 가려고 하니 중간에 자판기가 하나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목이 조금 마른 것 같은데. 학교의 식수대에서 물을 마실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주스를 하나 먹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세은은 지갑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천원을 집어넣었습니다. 위이이잉. 아. 뭐야. 왜 빠져 나와. 중얼거리며 세은은 지폐를 쫙 펼친 후에 다시 집어넣었습니다. 위이이잉. 아. 왜 또 나오는건데! 짜증을 내며 세은은 지갑에서 다른 지폐를 집어넣었습니다. 위이이잉. 이번에는 잘 들어갔습니다.
콕. 가장 먼저 보이는 오렌지 주스를 눌렀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잔돈은 줄어들었는데, 음료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야! 야! 소리를 지르면서 세은은 자판기를 빤히 바라봤습니다. 돈이 잘 안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돈까지 먹다니. 이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망할 자판기를 응징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세은은 자판기를 향해 있는 힘껏 오른발을 내둘렀습니다. 콰앙!! 삐빅. 삐비빅. 자판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이내 그 안에서 주스가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응?! 응?! 뭐야?! 뭐야?! 뭔데?! 뭐인건데?!"
아니. 이 자판기는 무슨 골판지로 만들었어? 어이가 없었는지 세은은 당황하며 두 눈을 깜빡였습니다. 그 와중에 주스가 계속 쏟아져나와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은 것을 먹고 싶진 않은데! 웅성웅성 뭐야. 무슨 소리야? 삐삐~ 삐삐삐~ 기물 파손 반응이 포착되었습니다. 지나다니는 청소로봇들의 소리까지 사람들 목소리에 섞여 들려옵니다.
"....읏!"
순식간에 이곳에 사람이 몰려올 것이 뻔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비장의 수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 . . . . .
"에어버스터 삐빅. 이 자판기를 걷어찬 이를 못 보셨습니까? 삐빅."
"자판기가 이렇게 되자마자 저 편으로 도망쳤어. 양갈래 머리였고 왼쪽은 금빛, 오른쪽은 은빛으로 물든 이였어. 그리고 키는... 179는 된 것 같았고... 남자였어! 생긴 것은... 중학생 정도?"
"알겠습니다. 삐빅. 협조 감사합니다. 삐빅."
청소 로봇들은 자판기를 고장낸 존재를 찾으려는지, 어쩐 이유인지 여기에 있는 에어버스터, 은우에게 정보를 요청했습니다. 은우는 살며시 시선을 돌리면서 저쪽 편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길을 넘어서서 근처에 있는 도서관이 있는 방향이었습니다. 방금 들은 정보를 몽타주로 만들어 기억 회로에 저장한 청소 로봇들은 빠르게 그 문제의 남성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은우는 후우, 숨을 조용히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로봇들이 간 방향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조금 빠르게, 아니. 정말로 빠르게, 그것도 아니라 전력질주를 하듯이 뛰었습니다.
아무래도 은우는 은우대로 상당히 바쁜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어쩌면 샹그릴라를 거래하는 이를 발견한 것일수도 있고, 따로 저지먼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목화고등학교와는 조금 거리가 멀고,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전력질주로 달려간 은우는 이내 어딘가로 들어가고 더 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 큰 힘을 가지고도 , 그 힘을 옳은 곳에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데 사용하는 자. 간혹이란 말이 틀렸군. 꽤나 많지.
"서준아~ 내가 담배 사오라고 했잖아. 왜 말을 안 들어서 이렇게 맞는 거야?"
한 학생 무리가 학교의 근처 골목길에서 약한 학생 한 명을 괴롭히고 있었다.
"미..미안해..하지만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무리의 뒤에서 말없이 괴롭힘을 구경하며 즐기다가 나서서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의 뺨을 때리는 한 올백머리의 학생이었다.
"어이..레벨 제로씨.. 혓바닥이 기네? 사오라면 묻지도 말고 그냥 사와. 너네 레벨 제로는 나처럼 고레벨인 사람이 걸으라고 하면 걷고, 뛰라고 하면 뛰어야 돼. 그게 너네 인생이야."
그러던 중 어디선가 한양의 목소리가 들린다.
"역겹네."
무리들은 목소리의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른 학교 녀석인데?"
"저지먼트 완장? 저 녀석 저지먼트네."
"그래서 어쩌라고..킥킥..우리는 가윤이가 있잖ㅇ.."
한 학생이 웃으며 입을 놀리자, 얼굴의 바로 옆에 무언가가 굉장히 빠르게 지나가면서 마치 벽에 총알이 박힌 것마냥 벽에 구멍이 생긴다. 한양이 염동력으로 바닥에 있는 돌을 총알처럼 쏜 것이다.
"주둥이 싸물고 있어. 진짜로 머리통 박살내기 전에."
"....."
한양의 경고에 조용해지는 학생. 그러다가 가윤이라고 불리는 올백의 남학생이 웃으면서 무리에서 나온다.
"뭘 쫄고 그래. 어이! 저지먼트? 저지먼트가 이래도 되는 건가 모르겠어~ 잘 못 행동하면 징계도 받고~ 그냥 이쯤 넘어가지?"
"징계 받지 뭐, 병X아."
"말이 안 통하는 저지먼트일세..불쌍해서 그냥 봐주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건 너가 자초한 상황이야!"
가윤이란 자는 능력을 전개했고, 한양은 가윤을 능력으로 잡아서 바닥에 매친다.
"크큭...내 몸은 내구도가 엄청나다고. 이렇게 보여도 레벨 4란 말이지?"
"그래?"
"하루종일 패면서 가지고 놀 수 있겠네."
한양은 가윤이란 학생의 머리채를 염동력으로 잡아서 계속해서 벽에 박기 시작한다.
"가윤이가 밀리잖아..!"
"너가 가서 기습해..!! 너 격투기 선수 출신이라며..!!"
한 근육질의 남학생이 한양에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한양은 가윤을 손 봐주다가, 달려오는 기척을 느낀다. 그대로 달려오는 학생에게 오른쪽 주먹으로 복싱의 펀치 중 하나인 '스트레이트'를 날카롭게 날린다. 하지만 학생은 상체를 왼쪽으로 숙여서 능숙하게 피한다.
"펀치 괜찮은데~?"
학생은 카운터로 왼손의 주먹을 쥐고 한양의 옆구리를 치려고 한다. 하지만 한양이 뻗은 오른손. 회수해서 자세를 다시 잡지 않고, 주먹에서 손날로 바뀐다. 그대로 곧게 뻗은 펀치를 손날로 변형해서 남학생이 반격을 하기 전에 채찍처럼 남학생의 오른쪽 목을 손날로 가격한다. 극진공수도의 '수도'를 펀치와 연계해서 응용한 것이다. 주먹을 뻗느라 중심이 앞으로 옮겨졌지만, 상대가 맞지를 않게 되었고 앞으로 몰린 중심을 반동삼아, 앞으로 뻗은 오른쪽 광배근을 옆으로 펼친다고 생각하여 채찍처럼 친 것이다.
손날 한 방에 기절해버린 남학생.
하지만 이 학생을 신경쓰느라 가윤에게 능력을 잠시 풀어버리고, 틈을 내줘버렸다. 가윤은 이미 한양의 코앞까지 왔고, 주먹을 뻗으려고 한다. 순간적으로 상체를 뒤로 빼서 왼쪽 어깨로 주먹을 흘러내며 기습에는 실패했지만 말이야.
"와..너 맷집 진짜 좋다..그런데 목 졸리면 어떡하게?"
염동력으로 가윤의 목을 잡아서 그대로 공중으로 들어버린다.
"스킬아웃도 본래 너 같은 녀석 때문에 생겨난 거랬어- 약한 애들 좀 괴롭히지 마. 그게 다 업보로 돌아오는 거야."
"에고, 설교 중에 기절해버렸네."
한양은 기절한 가윤을 바닥에 툭 던져버린다. 자신의 대장이 압도적으로 패배하자, 기세가 죽은 무리들.
진짜 예상치도 못한 선물이네. 첫 선물은 라이더 자켓이었고, 이번에는...선크림. 그것도 비건 선크림. 답장을 줄 종이를 앞에 두고 혜성은 책상을 펜 끝으로 두드렸다.
"...누군지 전혀 모르겠네."
「 안녕하세요 올빼미씨. 선물 잘 받았어요. 라이더 자켓도 그렇고 선크림까지. 올빼미씨의 선물은 도무지 예상을 하지 못하겠어요. 좋은 뜻이니까 기분 좋게 받아주세요. 그래서 올빼미씨를 알아볼 수 있는 힌트는 언제쯤 주실건지 궁금해요. 선물도 안부인사도 감사해요. 올빼미씨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답장을 적은 종이로 작게 쪽지 접기를 한 뒤 동그란 수제 초콜렛이 담긴 봉투에 붙혀놓고 혜성은 선크림을 챙겼다.
내가 저지먼트가 되길 선택한 이유는 물론, 머리 하나 돌아가지 않고 할 줄 아는건 쌈박질 밖에 없는 내가 남에게 피해만 주는 꼴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가끔은...
샹그릴라 건 때문에 홀로 외곽을 순찰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나는 부장에게 건의해 가능한 그런 곳으로 내가 갈 때는 혼자 순찰을 가게 해달라고 건의한 적이 있다. 당연히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그래야 하는 이유를 말하며 그를 설득시켰다.
간단하게 처리했다. 남들보다 두배 더 순찰을 자주 나가는 대신, 한번은 조를 짜서. 또 한번은 혼자서 가기로.
그래서 내가 왜 혼자 이런, 스킬 아웃들이 득실대는 거리를 순찰하겠다고 주장한건지는... 지금부터 그 이유들이 드러난다. 짓밟고 짓밟아도 어디서 또 한 주 단위로 미치광이들이 나온다. 이쯤 되면 이게 무슨 온라인 게임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하기엔 하나같이 표정들이 살벌하다. 손에 든 것들도... 살벌하다.
"이번엔 또 몇 명이냐? 넌 왜 또 왔고?"
이젠 이 녀석들과 얼굴을 틀 지경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이미 내 얼굴을 알고서 찾아왔지. 적색투귀인지 적색무신인지 알 바 아니고, 어찌되었든 이런 양아치들은 대부분 그런 마인드가 있다. 자기보다 세면 꼽다. 뭐 남자로서 호승심이 있는거야 당연한 이야기다. 경쟁심리는 있을 수 밖에 없어. 다만 그 센 놈이 그들 가까이에서 힘을 과시하면 그들은 졸개가 된다. 힘의 법칙이다.
하지만 과시하지 않고, 그들과 멀어지려 하면... 쓰러트려야만 할 강적으로 본다. 내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사람 없는 데로 가서 놀자기에는... 이미 그럴 생각 없어 보이네."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또 빡신 일이 되겠는걸.
'장태진! 이 새X, 오늘은 반드시 죽인다!'
험상궂은 인상을 한 스킬아웃 한명이 벌써부터 웬 자전거 체인 같은걸 들고 덤빈다. 화가 폭발해 직선으로 달려온다. 보통 이런 경우 웬만한 녀석들은 쫄아서 제대로 대처를 못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놈은 그걸 최대한 이용해 왔겠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이번에도.
놈이 채 체인을 휘두르기도 전에 품으로 뛰어들고, 몸을 돌리며 바닥을 강하게 딛어 어깨와 등으로 들이받는다. 그 큰 몸뚱아리가 저만치 나가떨어질거라 생각은 못 했는데.
쇠파이프가 허공을 찢는다. 무기를 들고 있는 녀석들은 그 무기의 범위 안으로 들어간다. 머리채를 잡고 당긴다.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먹을 틀어쥐고, 머리채를 쥔 녀석의 얼굴에다가 마구 주먹을 날린다. 다섯 번, 여섯 번! 당연히 이걸 보고만 있지는 않을거다. 기합을 질러대며 칼을 앞으로 내밀고 돌진하는 놈에게, 방금 쥐어패던 녀석들 던진다. 자기들끼리 칼을 맞든 어쩌든 내 알 바는 아니다.
"이젠 아주 대놓고 그런걸 쓴다 이거지?"
또 다른 스킬아웃이 들고 온 무장에 기가 차다는 투로 말했다. 녀석은 해머를 들고 있었다. 그냥 장도리가 아니라, 양손으로 휘두르는 그런 해머 말이다. 무어라 소리를 질러대며 휘두르는 해머. 이건 위험하다. 내 머리를 내리고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두른 망치를 가까스로 피하자, 보도블럭이 박살나며 콘크리트 조각이 내 뺨까지 튄다. 이거다.
재빨리 고개를 숙여 반으로 부숴져서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보도블럭 하나를 줍는다. 해머를 든 녀석보다는, 바로 내 옆에서 기습을 하려던 놈의 머리통에다가 보도블럭을 내던진다. 그대로 머리통이 깨졌으면 좋겠는데.
툭. 등에 무언가가 닿았다. 적이 아니길 바랬고, 다행히 그랬다. 전화 부스인가. 하지만 그게 내 마지막 생각이 되기 전에, 고개를 숙였다. 커다랗게 횡으로 휘두른 망치가 부스를 박살내고 깨진 유리조각이 땅바닥에 흩어진다. 기물 파손에 대한 시말서에 대한 생각을 하려던 찰나 뒷통수에서 강렬한 고통이 느껴지고, 고막 뿐만이 아니라 뼈를 타고 알루미늄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식이 흐려진다.
그제서야 나가떨어졌던 놈들도 내게 달려와, 무어라 욕을 하고 죽으라고 외쳐대며 발로 밟고 무기로 때린다. 몸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구석이 없다. 놈들이 마침내 끝장을 내려던 듯 잠깐 흩어진다. 그리고 그때, 재빨리 일어선다. 엎드리느라 가려졌던 손에는 깨진 유리 조각이, 저지먼트 완장에 감싸여서 들려져 있다.
해머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던 놈의 복부에 주먹을 지르고, 얼른 뒤를 잡아 녀석의 목에 깨진 유리를 들이댄다.
"이 자식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얌전히 집에 가라."
놈의 숨결이 팔을 타고 느껴졌다. 심장이 뛰고 맥박이 요동치는 것도, 슬쩍 본 눈이 두려움으로 떨리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주 약간만 손을 움직이면 목을 그어서 이 자식들이 영영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피부에 날카로운 유리 칼날이 살짝 닿는다. 피가 흘러나오고, 공포에 질린 처절한 비명이 목에서 터져나온다. 시뻘건 피가, 유리를 감싼 저지먼트 완장에 묻는다. 코뿔소가 그려진 완장에...
"젠장."
나는 놈의 목에 겨누던 유리 조각을 치우고, 등짝을 걷어찬다. 유리 칼로부터 내 손을 보호하고자 쓰던 완장을 다시 팔뚝에 메고, 유리 조각을 바닥에 던진다.
바닥에 떨어진 해머를 들어올리고, 쓰러진 스킬 아웃의 손목에 내려친다. 뼈가 부서지기도 전에 두려움과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울려퍼진다. 스킬 아웃의 손목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놈을 걷어차 치워내고 몰려 있는 녀석들을 향해 해머를 집어던졌다.
"다음에 걸리면 손모가지만으론 안 봐줄테니까, 집에 가라."
상황이 그제서야 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가끔은, 내가 저지먼트에 들어온 것이 나를 위해서라고도 생각했다. 마지막 선 만큼은 넘지 않도록 버티게 할 목줄이라고 해야 할지. 하지만 점점 그 선에서 벗어날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부디,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악명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분명 이가 갈리도록 아플 텐데 그는 손수건을 안 물겠다고 했다. 권했으나 거절한 건 그였다. 조용히 손수건을 치우고 칼의 제거를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베인 자상과 달리 칼이 꽂힌 자상은 찔러 들어가며 한 번, 뽑아내며 또 한 번, 거듭해서 상처를 입힌다는 특징이 있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가능한 꽂힌 궤도 그대로 뽑아내어 2차 상처를 최소화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수복해야 할 범위도 좁아지고 능력을 집중할 수도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이 떨리지 않게 칼날을 꼭 잡고 손을 뒤로 빼내었다. 마취를 했어도 아플 텐데 그는 정말로 앓는 소리 하나 없었다. 고통에 익숙한 걸까. 덕분에 신경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다. 등줄기와 이마에 땀이 슬슬 흘렀지만 그 정도는 무시했다.
이윽고 칼이 전부 나오자 재빨리 절개부를 닫고 회복에 박차를 가했다. 빼낸 칼은 손이 급해 바닥에 대강 내려놓았다. 찰그랑대는 쇳소리가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봉합까지 합니다."
그제야 더럽게 아프다며 입을 연 그에게 단호하게 주의를 주었다. 아직 내 레벨로는 완치가 불가능하니 봉합이 필수였다. 아슬아슬하게 회복을 진행시켜두며 미리 꺼내놓은 실과 바늘을 집어왔다. 손이 굳고 떨리려 했지만 주먹 한 번 꽉 쥐어서 풀어냈다. 슬슬 마취가 풀려가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다시 하거나 할 여유는 없었다. 그대로 봉합까지 강행한 뒤 표면 소독과 거즈를 붙이는 것까지 하고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급한 건... 끝났어요. 잠깐 쉬고, 마저 봐드릴게요..."
마스크 속으로 숨을 몰아쉬며 말하고 잠시 의자에 앉아 무릎 위로 웅크렸다. 잠깐만 진정하고, 다른 상처 보고, 붕대까지 감으면 끝날 것이었다. 그 전에 잠시만, 잠깐만이었다.
어떻게 바깥과 과학 기술이 20년 넘게 차이가 난다면서 병원 밥은 한결같이 맛이 없을 수 있을까. 희야는 잔치국수가 맛이 없을 수 있다는 점에 한 번 감탄했고, 그 잔치국수가 자신의 저녁이라는 사실에 두 번 감탄했으며, 후식은 야쿠르트 하나라는 사실에 인간의 고문 기술이 일상에 녹아들었음을 깨닫고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식사 하나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놀라게 할 수 있는지! 경탄스럽기 그지없다.
"있죠, 희야 사실 면 대장인데 반도 입에 못 대는 건 네가 처음이에요."
희야는 고개를 숙여 손날을 세우더니, 누가 들을새라 국수에게 속삭였다.
"너 되게 맛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건 코코넛 워터랑 삼촌이 해준 샐러리 주스인줄 알았는데 네가 세 번째로 등극됐어요. 소감은 어때요?"
물론 국수가 대답하면 그때부터는 여기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병실로 옮겨야 하겠지만. 희야는 숙였던 허리를 세우고 면이 불어가는 국수를 내려다 봤다. 이걸 어쩌지. 정말 밥을 먹은 건 맞냐고 추궁할 것 같이 남아버린 국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애물단지를 보듯 고심하던 희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려서 눈송이로 만들고 창밖에 던져버리자……!
정말이지, 천재같은 생각이다! 희야는 맛없는 잔치국수를 노려보며 살얼음이 끼는 것을 생생히 두 눈에 담았다. 반질반질하게 국수가 얼어붙었을 때.
"얼씨구, 저거 저저저. 삼촌들 온 것도 모르고 잘 하는 짓이다 아주." "병원 밥이 그만큼 맛이 없나보지."
끈질기게 매달렸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가족도, 지인도, 현실도, 구질구질하게 매달렸으면 바뀌는게 있었을까.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 때도, 지금도. 나는 계속 알지 못 할 것이었다.
사람을 대상을 직접 능력을 쓰는 일을 겪어보니 조금 더 배워야겠다는 분야가 생겼다. 배운다기보다 지식을 늘리고 가능한 실습으로 감각을 터득하는 것에 가까웠다. 연구원에게 말하니 당장 실습을 잡아줄 수는 없으니 오늘은 강의를 들으러 가라고 했다. 그 지시에 군말없이 짐을 챙겨 지정된 강의실로 가고 있었다.
"저기이...!"
오늘도 어김없이 타닥타닥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지긋지긋함을 넘어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매번 거절 당하면서 어떻게 매번 다시 다가오는 걸까. 어떻게 매번, 그 애는.
"꺅!"
갑작스럽게 울리는 비명에 나도 주변 사람도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여학생이 넘어졌다가 비틀비틀 일어서고 있었다. 바닥에 쓸리기라도 했는지 무릎이 까져 피가 나는게 보였다. 하. 귀찮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피가 나는 무릎에 살짝 대주고 능력을 쓰자 금새 피가 멎고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살짝 흐른 피를 닦아주고 그 손수건을 여학생에게 쥐어주었다.
"마저 닦고 버려주세요."
그 때까지 어벙하게 서 있던 여학생은 내가 뒤돌자 급하게 내 팔을 잡았다.
"저, 저기! 잠깐만!"
하-. 이번엔 확실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고개만 돌려 뒤를 보자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 보였다. 바보 같은 웃음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저기. 그러니까..."
여학생은 내 이름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팔만 비틀어 빼내고 다시 내 길 가려했다. 다시 잡는 일은 없었지만 그런 말은 들렸다.
"저기 있지! 다음에 새 손수건 가져올게!"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여학생에게서 멀어져 내가 들어야 할 강의실을 찾아갈 뿐이었다.
어줍잖은 신입 교사가 애들은 애들답게 놀아야 한다며 시행했었지만 결과는 실패였던 걸로 기억했다. 그야 여긴 인첨공이었다. 평범히 노는 것보다 능력을 개화하고 개발하는 것에 특화된 도시였다. 그런 곳에 있는 아이들이니 당연히 능력에 도움이 안 되는 건 안 하려 했다. 그렇게 실패한 마니또 이후로 처음이었다.
...익명으로 선물을 받는다는 건 신기한 기분이었다.
오늘로써 세 개, 마니또 선물이 들어왔다. 카페 애프터눈 티 서비스 이용권, 쿠키, 고급 말차.
이용권은 2인이라 혼자 쓸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같이 갈 사람이 있긴 할까.
쿠키는 수제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하지만 쉽게 먹을 수 없어 책상에 장식마냥 쌓아놓았다.
고급 말차는 제법 괜찮은 물건이었다. 커피나 차를 자주 마시니까 있으면 있을 수록 유용했다.
기숙사 방에서 말차 한 잔을 진하게 타서 놓고, 쌓아놓았던 쿠키 중 하나를 집었다. 포장을 가만히 응시하다 뜯어서 한 조각 입에 넣었다. 그리고 말차 한 모금을 넘겼다. 나 만이 존재하는 방에 홀로 보내는 다과 시간이 평온했다.
다시 차를 마시며 선물과 함께 온 쪽지를 보았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장난인가 싶었지만 세번째는 조금 고민이 들었다.
받고 싶은 것...
차와 과자를 먹으며, 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다음날, 선물이 놓여지는 자리에 포스트잇 하나를 붙였다. 제때 볼지 모르겠지만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었다. 엄지로 접착제 꾹꾹 눌러 붙이고 돌아섰다. 단단히 붙은 포스트잇 내용은 지극히 짧고 간결했다.
리라는 침대 위에 길게 늘어진 달걀귀신 같은 인형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가짜 사람을 원하는 부원들이 많아서 연습은 해 보는 중인데, 다른 것도 다른 거지만 의외로 가장 큰 문제는 얼굴로, 도대체가 누구의 얼굴을 해야 기이한 느낌이 안 들지 모르겠는 게 그 이유다. 결국 다른 곳은 얼추 인간 같지만—그마저도 위화감은 존재한다. 왜냐면 색칠을 하지 않았으니까—얼굴만은 매끈한 괴생명체를 제작하고 말았다.
"......와아, 귀신의 집에 기부해야 할 것 같은 포스인데."
그리면서 별 생각 안 했으니까 갑자기 일어나진 않겠지 이거. 리라는 다소 떨떠름한 얼굴로 커터칼을 집어들어 인형을 가른다. 형태를 제외하고 큰 설정 덧붙이지 않은 신체에선 종이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적당한 크기의 흠집이 나면 곧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괴생명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situplay>1596988070>797 이건가 이건가 이거야?? 혜우주의 친절 안내에 냥혜우랑 눈 마주치고 일말의 피로까지 싹 날아감 어떻게 이런 존재가 세상에 실존 픽크루는 모두가 사용할 수 있지만 혜우우주의 손을 거친 혜우우 픽크루는 그 결을 달리한다........... 청금석과 같은 고귀함.... 유니크함.... 아름다움과 귀여움 모든 걸 갖췄네 낚싯대 장난감 들고 쫒아갈래 헤 헤헤 헤 좋다 혜우........ 쪼오오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