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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은 하루종일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들긴다. 어제 부장이 주의한 과잉진압에 대한 주의를 했으니, 부원들에게 정확하게 교육할 교육자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귀에 버즈를 끼고 자료를 만들다가 무엇이 막혔나보다. 혼자서 "이걸 어디서 찾지.."라고 반복하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집중한 나머지 아지의 시선은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어, 난데. 그래, 잘 지냈어? 다름이 아니고 혹시 너네 저지먼트에서는 진압 매뉴얼이 있나해서. 교육자료 만드는 중인데 참고하려고. 어, 있어? 그러면 메일로 바로 쏴줄 수 있ㅇ.."
다른 학교의 저지먼트 동기에게 자료를 부탁하는 듯한 한양. 버즈를 끼고 있어서 통화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아지의 음료수가 한양에게로 온다. 결국 상의가 음료수에 조금 젖어버렸다. 한양은 살짝 놀란 듯 했지만 바로 휴지를 뽑아들고는 묻은 부위를 닦기 시작했다.
"어? 아, 뭔 일 일어난 건 아니야. 별거 아니야. 그래, 고맙다. 나중에 시간 되면 한 번 보자. 그래, 고생해."
한양은 거의 울기 직전으로 보이는 아지에게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고의로 그런 것은 딱 봐도 아닌 것 같고, 이런 실수 가지고 뭐라고 꾸짖을 성격도 아니었다.
한양은 능력을 이용해서 수건으로 책상을 슥슥 닦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지 금방 깨끗해지는 책상이었다. 그리고 용건을 들으려고 한 한양은..
"네?"
갑자기 뛰쳐나가려고 하는 아지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한양이었다. 닫힌 문에 부딪히는 아지의 모습을 보고 "아이고" 라고 말하는 모습도 덤. 한양은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무서웠나 곰곰히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무서운 스타일은 아닌데 말이야. 역시 신입생 입장에서 3학년은 좀 부담스러운 존재인가..'
방해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들은 한양은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는 투로 달래기 시작했다.
"아뇨아뇨. 전혀 방해 안 됐어요. 일하는 도중에 와도 괜찮아요. 저 그렇게 까칠한 사람 아니에요."
한양은 능력으로 한 서랍을 열고 구급상자를 공중으로 띄운 뒤에 아지의 옆에 두고, 아지에게 다가갔다.
"부장은 워낙에 바쁘고 퍼스트클래스라서 신입생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깐.. 무슨 일이 있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저한테 부담없이 말해주세요. 그러라고 제가 부부장으로 있는 거예요. 제가 아까 말했잖아요? 애로사항이나 힘든 일 있으면 혼자서 끙끙 앓지 말라고."
>>715 이 정도 레벨의 사람이 말하는 걸 보면 역시 반복학습이 중요하구나, 수긍하면서 청윤은 하나하나 잘 듣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계속 노력하다보면 잡히는 무언가가 있나보네요. 이게 근육처럼 좀 더 눈에 잘 보이는거라면 좋을탠데~."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청윤은 고민했다. 선배와 본인의 능력이 비슷한 점이 제법 있긴 했지만 과연 손바닥도 아니고 손끝에서 모은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든 발사는 되는 걸 보면 아예 불가능한 것 같진 않겠지만.
"역시.. 레벨 5.."
청윤은 입을 벌리고 시연을 자세히 지켜봤다. 역시 레벨 5답게 손쉽게 날리고, 터트렸다. 압축도, 정확도도 뛰어났다. 머릿속으로 배경을 칠하는 것처럼 공기를 집어 넣는 이미지를 그리고, 압축이 풀리지 않는 정신력과 체력이 중요하다라.. 그래도 뭔가 아예 존재하지 않던 빈 종이 같은 것에서 약간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잡히니 훨씬 든든한 느낌이었다. 은우가 옆으로 자리를 비키며 한번 해보라고 하자 청윤은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은우가 서 있었던 자리에 섰다.
"사실 어떻게 보면 원소를 다루는 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아닐까 싶어. 그나마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아서 문제지만."
한숨을 약하게 내뱉으며 은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와 동시에 과연 방금 자신의 조언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스스로 걱정했다. 나름대로 신경써서 말하긴 했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서로 시간낭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말 없이 탄산수를 꿀꺽 마셨다.
"이건 레벨5가 아니어도 열심히 연습하다보면 할 수 있는 경지야.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전력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그 점은 조금 이해해줘. 여길 날려버릴 순 없잖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는 듯이 그는 두 손을 가볍게 휘저으며 웃음소리를 냈다. 한편 자신이 옆으로 자리를 비키자 청윤이 긴장하면서 해보겠다고 답했고 은우는 웃으면서 긴장할 거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심호흡을 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그것을 따랐을지,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진 당연히 은우도 그 시점에선 알 길이 없었다.
한편 자신의 능력으로 표적을 맞추는 것에 은우는 오. 소리를 내며 크게 손뼉을 쳤다.
"대단하네. 꽤 자질이 있는 거 아니니? 보통 이렇게 갑자기 해보라고 했을 때 하는 이는 잘 없거든. 요령만 잘 익히면 어느 순간 훅 실력이 늘어나겠는데? 좋아. 그러면 여기서 조금 업그레이드를 해볼까?"
이어 은우는 표적을 조작하는 기기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방금 명중시킨 표적의 양 옆으로 표적 4개를 더 세웠다. 즉, 표적 5개를 세운 셈이었다.
"스쳐지나가건, 정중앙을 맞추건 상관없어. 압축을 유지하면서 어쨌든 명중 비슷하게라도 3개를 할 수 있다면 소원 하나를 들어줄게. 아. 물론 내가 가능한 것으로."
물론 자신이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그는 선택권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할지 말지는 결국 청윤의 자유였다.
레벨의 차이를 보여주는 듯한 수건의 움직임에 넋을 놓고 구경하던 것도 잠시다. 결국엔 닦는 것도 제대로 못 해줬어!! 라고 충격받는다. 문에 부딪치는 바람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어버린 아지는 부끄럽고 미안하고 민망하고 매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라 자기 다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파묻어버린다. 가물락 꺼져가는 비명소리가 나온다. 비명 치고는 느리고 작아서 그렇게 비명같지도 않다. 오히려 절규같달까.
"우아아아아~"
어쩌면 좋지이 창피해애애~ 하지만 달래려는 목소리가 들려 파묻은 고개를 스을쩍 들어본다.
"정말요~?"
저런. 이마에 혹이 생겼군... 옆에 어느샌가 구급상자가 와 있다. 아지는 조금 놀란다. 저지먼트 부실은 물건들도 특별한 건가!! 부딪친 걸 알고 다리... 다리가 없네... 미끄러져서 여기로 와 준 것일까!!
"...!... 상자가 생겼어요..."
어느새 민망함도 잊고 놀라서 눈을 꿈뻑거리며 상자와 부부장을 번갈아 보던 아지다.
"아... 저어...."
좋은 사람이다! 정말 착한 부부장이다!! 부장도 그렇게 부담스러운 성격은 아닌 것 같았지만 부부장도 이런 성격이라면 쉽게 적응해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근데 그것과 이 상황은 별개다. 머뭇머뭇거리다 말을 꺼낸다.
"...그런 건 없지만 저기..."
용건은 없고요!! 수다떨고 싶어서 왔는데요!! 라고 왜 말을 못하니!! 아지는 자기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다.
"...옆에서 구경해도 될까요오"
일 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며언... 하고 덧붙이며 손가락 사이를 띄워 그 사이로 한양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