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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작년 부장이나 재작년 부장은 상당히 날카롭고 엄격하고 무서웠던지라 부장다운건진 잘 모르겠는걸?"
자신이 처음 들어왔을 때, 그리고 작년 때의 부장을 떠올리면서 은우는 쓴 표정을 지었다. 물론 사람 잡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엄격한 분위기를 원하고 요구했었고, 그는 그것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올해, 부장이 되면서 그런 분위기를 없애보려고 노력할 생각이었으나 과연 얼마나 잘 따라주고, 얼마나 잘 유지가 될지. 상당히 시범적인 일이었으나 그래도 일단 하려고 한대로 해보자는 마음가짐을 가지며 은우는 미소를 지었다.
"압축쪽이라. 확실히 어렵지. 나도 처음 인첨공에 오고, 능력을 연마할 땐 얼마나 머리가 아프던지. 공기를 압축해서 공처럼 만들 수 있다는데 대체 보이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압축해야 좋을까 고민밖에 안 되고 그랬거든."
차라리 형태가 있는 것이라면 눈에 보이니 압축을 어떻게라도 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것을 압축해서 특정 형태로 만들라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에어로기네시스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이기도 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다뤄야만 했으니까. 물론 자신의 컴프레스 볼은 압축하면 공 형태를 볼 수 있긴 하나, 다른 것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팔짱을 끼며 공감하던 은우는 잠시 생각하다 이야기했다.
"일단 무작정 압축하기보단 이미지를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앞으로 쭉 이런 형태로 대기를 압축하겠다는 식으로 말이야. 예를 들면 나는 대기를 공처럼 압축할 수 있는데 공도 여러가지 형태가 있잖아? 축구공, 농구공, 배구공, 탁구공 식으로 말이야. 그래서 나는 무작정 동그란 형태보다는 야구공이라는 형태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그 형태로 공기를 꾹꾹 누르는 식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실제로 꾹꾹 눌러서 담아보려고 했거든."
설명을 마친 후 그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한쪽 공간이 비어있는 것을 바라보며 그쪽으로 가자는 듯 손짓했다.
"일단 저곳으로 가볼까? 기왕 연습하러 왔으니 자리는 하나 잡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잠시 이 답레를 남기고 저는 편의점에 잠깐 다녀올게요! 킵은 아니에요! 금방 다녀올 거예요!
본격적으로 각이 잡힌 모임 자리는 오랜만이기도 했고 어렵지 않게 녹아들 수 있는 분위기도 좋았다. 그 중간에서 헤실헤실 웃으며 잘 데운 식빵 사이의 버터처럼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는 소년이 있었다.
명단을 쭈욱 훑다가 부부장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 이름은 흑발에 안경을 쓴 상대방의 외양과 매치된다. 부부장님이면 저지먼트에서 지낸 경력도 많겠지? 한번 말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상대방을 빤히 보고 있기는 한데 낯을 가리는 바람에 대번에 우물쭈물이다. 거기에 느린 성질이 합쳐져 한참동안 보고만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시선에 뚫릴 것 같다고 생각해도 모를 것이다.
부부장님? 아니면 한양 선배? 둘 중에 뭘로 불러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전자를 택한다. 높은 직함이 있으면 직함으로 불러주는 걸 보통 좋아하는 편이지 않나?
이제 말을 걸어야지...
진짜 말을 걸어야지...
잠깐마안 긴장되니까 음료수 한 잔만 더 마시고...
그렇게 손을 뻗었던 음료수 뚜껑이 닫혀있지 않을 것을 어떻게 예상했을까. 음료수는 야속하게도 자신이 말을 걸려 했던 한양 부부장의 쪽으로 쏟아지려 한다.
"... !!!"
급하게 통을 바로 붙잡으려 했지만 속도가 늦은 탓에 얼마나 옷을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운이 좋으면 탁자에만 쏟아지고 말았을 수도 있겠지만... 울 것 같은 눈망울이 되어 미안한 마음에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물어본다.
"솔직히 하다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것은 있어. 하지만 사람마다 그 기간이 다 다르고, 느낌이 다 다르니까 다 그렇다고는 못하겠지만... 나는 일단 계속해서 공기를 야구공 크기로 압축하다보니 어느 순간 요령이 생겼거든. 그 후부터는 압축이 쉬워졌어."
어떻게 보면 반복학습이나 다를바 없다고 이야기하며 은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 이상 뭐라고 더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적어도 자신은 이미지를 확실하게 잡고 무작정 계속 그렇게 압축하다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압축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계속 여러가지 시도를 하다보니 어느 순간 능력이 점점 올랐으니까.
이어 청윤이 자리를 먼저 잡겠다는 듯이 쪼르르 달려나가더니 자리를 잡자 은우는 웃으면서 손에 쥐고 있던 탄산수 뚜껑을 연 후에 탄산수를 마시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가 맡은 자리에 들어서며 그는 눈앞에 있는 표적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렇게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 대기를 조종해서 명중시키는... 어떻게 보면 에어로기네시스 능력자들에게 있어 가장 기초적인 훈련 때 사용하는 그 표적을 바라보면서 그는 가만히 바라보다 오른손을 앞으로 내민 후에 손을 짝 펼쳤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야구공을 잡는 것처럼 허공을 꾹 잡았다. 이내 녹색으로 빛나는 야구공 크기의 녹색 공이 그의 손에 생성되었고 그는 그 공을 꽈악 잡았다.
"네 능력에 대해서는 내가 자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으로 그려낸 이미지 속으로 공기를 꾹꾹 집어넣는 것처럼, 그러니까 하얀색 배경 안에 공기라는 색을 가득 칠하는 감각으로 압축을 시도하면 어느 순간부터 압축이 잘 될거야. 그리고 남은 것은..."
이어 그는 그 녹색 공을 표적지가 있는 곳으로, 야구공을 집어던지는 것처럼 힘껏 집어던졌다. 그리고 표적지 근처까지 날아가자 그는 손가락으로 탁 신호를 주었고, 이내 녹색 공은 펑 터지면서 주변으로 강한 풍압을 방출했고 표적지를 강하게 흔들었다.
"압축이 풀리지 않도록 고정할 수 있는 정신력과 그것을 다루는 신체 능력인데... 이것만큼은 스스로 노력해서 체력을 기를 수밖에 없으니까 뭐라고 할 수가 없네. 아무튼 청윤이도 한 번 해볼래? 잘 못해도 상관없으니 말이야. 공기를 압축해서 표적지를 공격하는 것까지. 빗나가도 괜찮아. 일단은 맞추냐 맞추지 못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 맞추고 맞추지 못하고는 그 이후의 문제야."
일단 단계별로 나눠서 하나하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듯,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은우는 옆으로 살며시 자리를 비켰다.
한양은 하루종일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들긴다. 어제 부장이 주의한 과잉진압에 대한 주의를 했으니, 부원들에게 정확하게 교육할 교육자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귀에 버즈를 끼고 자료를 만들다가 무엇이 막혔나보다. 혼자서 "이걸 어디서 찾지.."라고 반복하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집중한 나머지 아지의 시선은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어, 난데. 그래, 잘 지냈어? 다름이 아니고 혹시 너네 저지먼트에서는 진압 매뉴얼이 있나해서. 교육자료 만드는 중인데 참고하려고. 어, 있어? 그러면 메일로 바로 쏴줄 수 있ㅇ.."
다른 학교의 저지먼트 동기에게 자료를 부탁하는 듯한 한양. 버즈를 끼고 있어서 통화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아지의 음료수가 한양에게로 온다. 결국 상의가 음료수에 조금 젖어버렸다. 한양은 살짝 놀란 듯 했지만 바로 휴지를 뽑아들고는 묻은 부위를 닦기 시작했다.
"어? 아, 뭔 일 일어난 건 아니야. 별거 아니야. 그래, 고맙다. 나중에 시간 되면 한 번 보자. 그래, 고생해."
한양은 거의 울기 직전으로 보이는 아지에게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고의로 그런 것은 딱 봐도 아닌 것 같고, 이런 실수 가지고 뭐라고 꾸짖을 성격도 아니었다.
한양은 능력을 이용해서 수건으로 책상을 슥슥 닦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지 금방 깨끗해지는 책상이었다. 그리고 용건을 들으려고 한 한양은..
"네?"
갑자기 뛰쳐나가려고 하는 아지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한양이었다. 닫힌 문에 부딪히는 아지의 모습을 보고 "아이고" 라고 말하는 모습도 덤. 한양은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무서웠나 곰곰히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무서운 스타일은 아닌데 말이야. 역시 신입생 입장에서 3학년은 좀 부담스러운 존재인가..'
방해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들은 한양은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는 투로 달래기 시작했다.
"아뇨아뇨. 전혀 방해 안 됐어요. 일하는 도중에 와도 괜찮아요. 저 그렇게 까칠한 사람 아니에요."
한양은 능력으로 한 서랍을 열고 구급상자를 공중으로 띄운 뒤에 아지의 옆에 두고, 아지에게 다가갔다.
"부장은 워낙에 바쁘고 퍼스트클래스라서 신입생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깐.. 무슨 일이 있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저한테 부담없이 말해주세요. 그러라고 제가 부부장으로 있는 거예요. 제가 아까 말했잖아요? 애로사항이나 힘든 일 있으면 혼자서 끙끙 앓지 말라고."
>>715 이 정도 레벨의 사람이 말하는 걸 보면 역시 반복학습이 중요하구나, 수긍하면서 청윤은 하나하나 잘 듣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계속 노력하다보면 잡히는 무언가가 있나보네요. 이게 근육처럼 좀 더 눈에 잘 보이는거라면 좋을탠데~."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청윤은 고민했다. 선배와 본인의 능력이 비슷한 점이 제법 있긴 했지만 과연 손바닥도 아니고 손끝에서 모은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든 발사는 되는 걸 보면 아예 불가능한 것 같진 않겠지만.
"역시.. 레벨 5.."
청윤은 입을 벌리고 시연을 자세히 지켜봤다. 역시 레벨 5답게 손쉽게 날리고, 터트렸다. 압축도, 정확도도 뛰어났다. 머릿속으로 배경을 칠하는 것처럼 공기를 집어 넣는 이미지를 그리고, 압축이 풀리지 않는 정신력과 체력이 중요하다라.. 그래도 뭔가 아예 존재하지 않던 빈 종이 같은 것에서 약간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잡히니 훨씬 든든한 느낌이었다. 은우가 옆으로 자리를 비키며 한번 해보라고 하자 청윤은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은우가 서 있었던 자리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