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꽤 내부에 꽂힌 사진이 많았는지, 몇몇 사진이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팔락이며 떨어졌습니다. 당신의 눈 앞에 보인 첫 사진은....
피칠갑 된 정장을 입은 채 연기가 피어오르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英사감의 사진입니다. 밑에 XXXX. XX.XX. 라 적혀있습니다. 날짜를 보아, 최소 그가 100년 이상은 산 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연기가 계속 움직이는 것을 보아, 마법사 사회의 사진은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밑에 무어라 더 적혀있지만, 당신이 읽을 수 없는 문자입니다. 아마, 마법사 사회의 문자 같습니다.
다른 사진들도 봅니까?
[>본다] [>보지 않는다]
>>673 아회
' 어, 어... 우, 우유요..! '
후배가 우물우물 대답했습니다. 그는 아회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듯 아...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 그, 그... 저... '
우물대던 후배가 무언갈 말하려던 순간, 방석 위에서 한 번 앞구르기 하다가 까르르 웃는 목화의 삑삑 소리에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목화는 두 발로 당당하게 섰습니다.
별사탕!!!
이번에도 별사탕이 목화의 선택인 듯 합니다.
' ....... '
후배는 어딘가 안절부절합니다.
[>후배에게 말하라 한다] [>그냥 둔다]
>>678 유현
' ....... 말이나 못하면. '
英사감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 끝을 유현에게로 가져갔습니다.
' *에피스키 '
*작은 상처를 치료하는 주문.
상처가 아물어가는 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탁한 액체가 담긴 병을 하나 꺼내, 당신의 손에 부으려 했습니다.
' 쓰려도 참아라. 효과는 끝내주니. '
참아야 할 듯 합니다.
' 사감이란 자리는 균형을 잡는 존재이지. 그리고 일종의 거름망이 되어준다. 이 곳의 사감들은 그런 역할이야. 내 고향은.... 신탁을 전달해주는 역할이었지. 심부름꾼 그 자체나 다름 없다. '
英사감이 나직이 말했습니다. 그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 꽤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만, 나도 전부 알지는 못해. 뭐가 가장 듣고 싶나. 많이는 말 못해준다. 여기에서의 세월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
무엇을 물어보겠습니까?
[>마법사 사회의 신수들] [>마법사 사회의 사감들] [>사감이 거름망인 이유] [>그 외?]
살짝 열었는데도 튀어나오는 사진들에 대체 얼마나 쑤셔넣고 있었던 걸까 싶다. 얼결에 흐트러진 사진들 보다 한 장 집어서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피투성이 영 사감이 특이한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 저거 아버지도 갖고 있는 건데. 이 사진도 배경이 움직이는 걸 보면 저쪽 사진은 다 이런가 보다. 재밌네.
그런데 누가 이런 모습을 찍어준 거지? 왜 이런 사진을 보관하고 있는 거고? 날짜는 대강 이해하겠는데 이 글자는 모르겠다. 에잇. 다음 거 다음 거!
방구석, 테이블보가 깔린 원목 테이블 위 작은 찬장을 뒤적거리던 아회는 우유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앉은 자리가 아닌, 구석 자리의 오크 원목으로 된 테이블 위에는 찬장 말고도 여러가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회는 그 구석이 놓인 제법 큰 목함의 걸쇠를 열었다. 딱, 소리가 나며 냉기가 흐르는 목함 속에서 과실로 만든 음료가 든 병을 손가락이 스쳐 달그랑 소리가 나고, 잠시 뒤적거리다 차게 식은 우유가 든 병이 손에 딸려 나왔다. 손가락을 퉁기자 부적이 코르크 마개와 병에 달라붙고는, 당신이 있는 곳을 향해 둥실둥실 날아간다. 이내 마개가 홀로 열리더니 당신 앞에 놓인 잔에 우유를 따르고 다시금 스스로 마개를 닫는다. 이후 아회의 손에 쥐여 목함 속에 들어갔을 적, 아회는 당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목화 또한.
"……별사탕이라, 알겠습니다. 앞구르기를 하실 정도로 장성하셨으니 오늘은 세 개를 드리도록 하지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손님 대우를 형편없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걸까.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잘라 접시 위로 옮기고 나서야 아회는 당신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듣는 인간은 하나 뿐이고, 신수는 입이 무거운 존재요."
그러니 이야기 해도 괜찮다는 듯, 아회는 접시와 작은 병을 내려 놓으며 맞은 편에 앉았다. 밑면에 설탕이 알알이 박힌 가수저라(加須底羅) 두 조각과 까눌레가 접시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병에는 우유에 넣을 수 있게끔 꿀에 허니스틱이 담겨져 있었다. 아회는 목화를 위해 별사탕 두 개를 담은 손바닥만한 접시 또한 목화 앞에 놓아주며 인자하게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앨범을 더 뒤적였습니다. 사진 하나가 당신의 눈길을 끕니다. 흰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채 어딘가 퀭해 보이는 남성의 앞에 英사감으로 추정되는 검은 머리 남학생이 지팡이를 빼며 웃는 사진입니다. 한복 차림인 것은 물론, 훨씬 더 키가 작고 앳된 모습으로 보아, 학생 시절의 英사감인 듯 합니다. 계속해서 지팡이를 앞으로 빼는 모습이 반복됩니다.
XXXX.XX.XX.이라 적힌 글자를 보니, 처음 본 사진보다 훨씬 과거에 찍힌 사진 같습니다. 사진 밑에 적힌 글귀가 보입니다. 첫 사진과 동일해 보이는 문자가 적힌 것을 보면, 아마 英사감의 본명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