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들어온 고양이마냥 방 안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니니. 참으로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에서 본 건 작은 액자와 그림- 인 줄 알았으나. 움직이는 사진이었다. 간혹 도술로 족자 속 그림이 움직이는 건 보았지만. 이런 건 처음이다. 오래되어 보이는 사진 속 인물은 아마도 영 사감이겠지. 나이가 멈추기 전이거나 그보다 젊을 때일까? 빤히 들여다보다 책장으로 넘어간다. 무슨 책이 있나- 슥 둘러본 결과. 제가 볼 수 있는 건 없단 결론이 난다. 그야 모르는 글자 투성이인데 뭘 어쩔까! 고개 절레절레 흔들고 화단 보러 갔다.
"어... 밈뷰으... 밈뷸루습. 에잇."
화단 속에 신기한 이름이 있길래 소리 내어 읽을려다 말았다. 발음 뭐 이렇게 어려워! 게다가 다 처음 보는 거다. 이것들도 넘어올 때 같이 가져온 건가? 저 쪽의 약을 만들 때 쓰는 건가. 호기심 슬쩍 가져보고 지나간다.
그러고보니 뭔가 추출해야 한댔는데. 그게 저 냄비 속에 있는 건가 보다. 부글대는 냄비도 힐끔 보고 그 아래 불에 있을 은빛 뱀 구경을 한다. 아까는 제대로 못 봤는데 지금은 저 귀여운 녀석이랑 눈도 마주쳤다! 지능이 꽤 있는 녀석인가 봐.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은빛 뱀- 애쉬와인더가 알을 보여주었다. 동그란 똬리 속 옹기종기 모인 알들도 귀엽다. 기쁜 마음으로 마음껏 보고 나니 다시 똬리를 틀길래. 싱긋 웃으며 말했다.
"보여줘서 고마워. 귀엽고 예쁜 알이네. 너도 그렇고."
불 속만 아니었으면 저 매끈한 비늘을 쓰다듬어 주었을 텐데. 아쉽다. 이제 애쉬와인더가 편안히 알 품도록 벽난로 앞을 떠나 방 안을 휘젓- 지는 않고 다시 구경에 나선다. 책장은 모르는 글자 투성이라 재미 없고. 책상이나 더 봐볼까. 하여 다시 책상으로 가 다른 사진은 없는지 뭔가 제가 읽을 만한 건 있는지 기웃거려 보았다.
무게감이 느껴진다. 제법 묵직하고 따끈따끈하니, 자신이 만약 조금 더 감정을 더 잘 느끼고,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면 금방이라도 뺨을 파묻고 비비적댔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던지라, 아회는 목화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쓸어줄 수밖에 없었다. ……더 정을 주면 소중해지니까.
"……오는 자도, 가는 자도 막지 않소."
덤덤하게 얘기하며 학생이 들어올 수 있게 문 주변을 지켰다.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회는 천천히 문을 닫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피 묻은 옷은 이미 벽난로 속에서 타들어가 잿더미가 되어버린지 오래고, 방은 도술 덕분에 깨끗하니.
"……무 아회라고 하외다. 올해로 6학년이니, 편히 선배나 아회라 불러주시오."
백 씨라.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범죄자 배출한 두 집안의 만남은 제법 우스울 터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둘 다 적룡인데 잘 맞는 부분 있겠지. 아회는 부드러운 방석 위에 목화가 내려갈 수 있도록 돕고는, 당신에게 편히 앉으라는 듯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짓을 하자 부적이 불타며 무언가 테이블 위로 안착했다. 찻잔과 접시였다.
"커피는 마실 수 있나? 마시지 못한다면 우유와 차 중 어떤 것이 좋겠는지……."
지팡이를 짚고 여유로이 걸어 찬장에 다가서더니, 찬장을 뒤적거리며 목화에게도 덤덤하게 물었다. 아마 이쯤 두었을 터인데…….
성급했다. 드러내지 않고자 했던 모습을 너무도 무방비하게 보이고 말았다. 모순적이게도 그는, 언제나 무감했기에 드물게 동한 감정에 더없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의 과도한 충동은 발화를 지나자 급속하게 식어 버렸고, 유현은 냉정을 되찾았다. 그 다음으로 행한 것은 자신이 어떤 태도를 보여야 좋을지에 관한 셈이었다. ……역시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양 몰염치하게 구는 편이 가장 낫겠지. 그는 비척비척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눈길에 묻어나는 미묘한 집념을 지울 수는 없었다. 기회만 생긴다면 방금 같은 짓 언제고 다시 시도하리라. 유현은 습관처럼 머리칼 정리하려다 뒤늦게 제 몰골 엉망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지하고 나서야 기다렸다는 듯 일시에 통증 몰려든다. 그는 영 사감을 향해 곳곳에 유리 박히고 찢어진 손 느긋하게 흔들어 보였다.
"아, 언제 이런 상처가. 과경엔 다친 곳 없었는데 방금 생겼군요. 제압이 과하셨던 것 같습니다. 치료해 주시겠어요?"
사실상 자해를 한 주제에 뻔뻔하기는. 거짓부렁 무척 자연스럽다.
"사감이라는 자리는 얼마나 중요한 역이기에 그 자체로 계약의 조건이 되나요? 그러고 보면 나머지 사감들도 모두 범상한 존재는 아닌 듯한데 말입니다. 이 학당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런 자들이 사감 노릇하며 여기에 묶여 있는 거죠?"
그보다는, 마법사 사회? 전혀 모를 이야기에 눈매 미미하게 좁혀진다. 그는 조금 전에 박차고 일어났던 자리에 다시 앉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꽤 내부에 꽂힌 사진이 많았는지, 몇몇 사진이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팔락이며 떨어졌습니다. 당신의 눈 앞에 보인 첫 사진은....
피칠갑 된 정장을 입은 채 연기가 피어오르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英사감의 사진입니다. 밑에 XXXX. XX.XX. 라 적혀있습니다. 날짜를 보아, 최소 그가 100년 이상은 산 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연기가 계속 움직이는 것을 보아, 마법사 사회의 사진은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밑에 무어라 더 적혀있지만, 당신이 읽을 수 없는 문자입니다. 아마, 마법사 사회의 문자 같습니다.
다른 사진들도 봅니까?
[>본다] [>보지 않는다]
>>673 아회
' 어, 어... 우, 우유요..! '
후배가 우물우물 대답했습니다. 그는 아회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듯 아...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 그, 그... 저... '
우물대던 후배가 무언갈 말하려던 순간, 방석 위에서 한 번 앞구르기 하다가 까르르 웃는 목화의 삑삑 소리에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목화는 두 발로 당당하게 섰습니다.
별사탕!!!
이번에도 별사탕이 목화의 선택인 듯 합니다.
' ....... '
후배는 어딘가 안절부절합니다.
[>후배에게 말하라 한다] [>그냥 둔다]
>>678 유현
' ....... 말이나 못하면. '
英사감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 끝을 유현에게로 가져갔습니다.
' *에피스키 '
*작은 상처를 치료하는 주문.
상처가 아물어가는 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탁한 액체가 담긴 병을 하나 꺼내, 당신의 손에 부으려 했습니다.
' 쓰려도 참아라. 효과는 끝내주니. '
참아야 할 듯 합니다.
' 사감이란 자리는 균형을 잡는 존재이지. 그리고 일종의 거름망이 되어준다. 이 곳의 사감들은 그런 역할이야. 내 고향은.... 신탁을 전달해주는 역할이었지. 심부름꾼 그 자체나 다름 없다. '
英사감이 나직이 말했습니다. 그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 꽤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만, 나도 전부 알지는 못해. 뭐가 가장 듣고 싶나. 많이는 말 못해준다. 여기에서의 세월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
무엇을 물어보겠습니까?
[>마법사 사회의 신수들] [>마법사 사회의 사감들] [>사감이 거름망인 이유] [>그 외?]
살짝 열었는데도 튀어나오는 사진들에 대체 얼마나 쑤셔넣고 있었던 걸까 싶다. 얼결에 흐트러진 사진들 보다 한 장 집어서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피투성이 영 사감이 특이한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 저거 아버지도 갖고 있는 건데. 이 사진도 배경이 움직이는 걸 보면 저쪽 사진은 다 이런가 보다. 재밌네.
그런데 누가 이런 모습을 찍어준 거지? 왜 이런 사진을 보관하고 있는 거고? 날짜는 대강 이해하겠는데 이 글자는 모르겠다. 에잇. 다음 거 다음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