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지. 문제는, 사감들의 감이 꽤 뛰어나단 거다. 나도 학생 시절엔 일부러 학원에 남아있던 적도 종종 있었으니 그런 학생들은 적지 않았지. '
그리운 시절을 회상하듯 英사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가 당신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정답이다. 나름 冬사감은 본인 성격과도 어느 정도 맞으니, 흉내는 잘 낸 셈이지. 다른 사감들은 모르겠지만. '
기쁘다는 듯 말한 英사감은 축하의 의미인 건지, 당신에게 박수쳤습니다.
' 균형이다. '
英사감이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 기린 중 한 쪽은 격이 낮춰져 [무기]라는 이름으로 황궁의 사감으로 존재한다. 그 자가 다시 격을 되찾고 이 곳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도사들을 양성해, 하늘섬으로 넘기는 게 유일하다. 그리고 그만큼 사라진 존재들을 채워서 마법사 사회로 보내는 게 내 역할이다. 어느 한 쪽이 많거나 적으면 안 돼. '
그 균형이 무엇일지 英사감은 구태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 안 그래도 이미 한 번 열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같은 학생을 말하는 것 같군. '
英사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는 이제 흔적조차 남지 않은 제 가슴팍을 흘긋 곁눈질로 살폈습니다.
' ..... 원래 [나]는 범죄자들을 잡는 것을 업으로 삼았었다. 그런데, [건]사감님이 날 부르더군. 부탁이 있다면서. 그 때 이 곳의 사감들을 마주했다. 그 자리에서 몇 가지 물건, 몇 마리 신비한 동물들과 함께 보쌈 되듯이 납치 당했지. '
가볍게 이야기 한 그가 고개를 까딱였습니다.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난 英사감이 당신을 보며 한 마디 하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무아회가 어째서 지금까지 혹독한 북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아는가? 탈주의 장인이었기 때문이다……는 그럴 리가 없지. 아회는 사감실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부적을 태웠고, 한 걸음 성큼 걷기가 무섭게 자신의 방으로 안개가 되듯 사라져 들어갔다. 무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에잉, 두 번만 더 했다간 죽겠어. 사과도 영 못 해먹을 짓이구먼……."
이 몰골로도 오래 있을 수 없으니. 상처 부근 피떡진 부분도 정결케 하고 옷도 갈아입든지 해야겠다.
하나, 아니, 두 번의 큰 사건을 겪으니 지금 상황이 익숙하지 않다. 평온을 즐겨도 되는 것인가? 금방이라도 누군가 오면 어쩌지?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다가도, 차라리 쉬는 것이 심신에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모순적인 생각이 서로 상충한다.
"……일단은."
다른 계획을 세우고 떠올리려면... 아회는 영 사감님이 만들었다는,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물약을 협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고는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둔다. 욕실로 들어서 얼마 있지 않아 물기가 바닥을 적시고, 부적 두엇 태우자 바람 스치며 머리의 물기 빼낸다. 방에 묻은 피도 죄 깨끗하게, 옷의 핏기도……. 비녀를 소매에서 빼고, 그 귀한 비단옷 벽난로에 넣어 태워버린다. 가주님께는 적당히 찢어져서 그랬다 변명해야지. 이윽고 새 옷 걸치며 생각 하나 떠올렸다.
목화는 지금쯤 영이가 잘 데려가서 놀고 있을까.
"……데려다 드리는 것이 낫겠지."
선물 가게로 다시금. 이제는 정 붙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정 붙여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연약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회는 가라앉은 눈으로 비녀가 아닌 붓을 들어 머리를 틀어 올리기 시작했다. 인간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그 존재에게, 인간인지 아닌지도 모를 제 형님과 신수들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시선 피하는 영 사감 향해 온화 얄궂은 표정으로 떠들었다. 그것 가능하게 하는 신수들 여기에 있었더라도. 가능케 하는 법은 물론 안 된다고 딱 잘랐을 것 아니냐고.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저 사감이라면.
다른 사감들을 보면 그저 잘 흉내내고 있구나. 싶은 감상 뿐이지만. 영 사감은 역시 표정부터가 다르다. 원래 인간이었고 지금도 생사만 여탈당했을 뿐 내용물은 그대로이지 않나. 아. 심장이 없을테니 내용물도 좀 다른가. 아무튼. 조금 전의 반응이나 저 그리운 듯한 표정이나 보고 있으면 그냥 인간 같다. 하지만 가장 인간다운 점을 잃었으니. 스스로 느낄 이질감과 괴리감은 제가 감히 가늠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사감에게도 학생 시절이 있었다니. 쉬이 상상하기가 어렵구만- 내 아버지도 종종 학당 시절 언급하는데. 지금의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상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으이. 그 아버지가 나만 할 적. 아니. 더 작을 때가 있었다고? 믿을 수가 없구만. 뭐 그런 느낌이네."
하여 이 말 만큼은 짖궂음을 덜고 보통의 어른 보듯 했다. 언행이 다소 버릇없기는 했지만.
사감들 맞춘 것 듣자 보란 듯 뿌듯하게 웃었다. 그런데 너무 쉬운 문제 아니었나 싶다. 어찌됐건 예상이 맞다니 마음 놓고 다른 생각 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지. 왜 학생들을 오고 가게 하는지. 영 사감의 내력은 어떠한지 등등.
"균형이라- 진부한 이유라 재미없군. 결국 저쪽 학생들도 신수의 격 위해 이용 당하는 것 없잖아 있다는 얘기구려. 그래도 여기보단 낫나. 아무렴 여기보다는."
원래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법이라지만. 아무리 봐도 이 천공섬보다 저 마법사 세상이 숨 쉬며 살기에는 나아보인다. 어땠을까. 제 가문도 저도 본디 저곳이었다면 지금처럼 뒤틀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본들 의미 없는 헛소리다.
"아. 저런. 거 험한 꼴 보셨겠네. 안타까워."
들려온 말이나 시선 보아 이미 유현이 영 사감 거쳐간 듯 해 안타까운 웃음 흘렸다. 그 녀석- 어땠을지 환하지. 눈 돌자 제 배에 서슴없이 손가락 찔러 넣던 녀석인데. 조만간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해줄 말도 많고.
"보쌈이라니! 하하! 여기 신수들은 정말 한결같았구만 그래. 사감도 어쩌다 신수 눈에 들어서는 욕만 보는가 몰러."
영 사감의 내력 간략히 들은 후엔 그리 웃으며 말했다. 어찌 왔나 했더니 보쌈이라니! 그런데 신비한 동물은 또 무언가. 여기의 요괴 같은 것인가? 또 묻기 전에 영 사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라며 남겨두고 가는 영 사감 빤히 보다가 씨익 웃었다.
기다리랬지. 얌전히 있으라곤 안 했다?
역린은 잠시 소파에 내려두고 조용히 일어나 방 안 구경에 나서본다. 책상 슬쩍 기웃거려보고. 책꽂이 같은게 있으면 겉만 슥 훑어보기도 하고. 조금 전 보지 못 했던 화단에 가서 뭐가 있나 둘러본다. 뭐가 뭔지 모르니 손 대지는 않고 전부 눈으로 보기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벽난로에 다가가 아직 은빛 뱀이 있는지 들여다본다. 있으면 움직이는 걸 가만히 보고 있었겠지.
기다리는 동안 창문에 시선을 두었다. 아직 창문은 열려있었으나, 바깥을 향해 부러 시선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들어오고 나갔는지 알아서 무엇 하겠나. 동 사감의 보안을 뚫고 들어왔다는 것이 중요하지. 창문을 향해 손짓하자 알아서 문이 닫힌다. 아회는 다시금 적막 속에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회는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목화와 영이인가? 그렇다기엔 영이는 이렇게 노크할 존재가 아니다. 바로 자신이라고 말했겠지.
"……누구시오?"
아회는 자리에서 일어나 플루 가루가 남았는지, 가루가 있을 작은 목함을 뒤적였다. 또 저번처럼 문을 두드리다 학생들이 쏟아져 들어오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