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추를 잡으려 할 때 그런 경고가 들렸기에. 선추를 잡음과 동시에 얼른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어디론가 끌어당겨지는 느낌 강해지며 아 이동되는구나- 싶은 생각 들었다. 익숙해지기 전까진 좀 불편한 느낌일까 싶기도 했다.
어쨌거나 말 잘 들은 덕인지 눈을 떴을 땐 새로운 방에 있었다. 어쩐지 제일 먼저 화려한 천장이 눈에 들어와 고개를 들고 잠시 멍하니 보다가 방 안 휘휘 둘러보았다. 누구씨 방이랑은 천지차이로 깔끔하구만. 혼자 생각하고 키득대며 벽난로 속 뱀을 구경해본다. 은빛 뱀이라. 만져보고 싶은데 안 되겠지. 무슨 팻말 꽂힌 화단도 있는데 뭘까. 귀마개? 아. 느긋하게 방 구경하러 온 날이 아니라서 아쉽다.
순순히 앉으란 자리에 가서 앉은 온화 이젠 익숙하게 역린 풀어 제 무릎 위에 뉘여놓았다. 요즘 어디 나가 앉을 일 생기면 꼭 이래 두고 저 늑대 조각 만지작대는 것이 일종의 습관 다 되어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손 역린에 올려놓고 자세 조금 느슨히 풀었다. 앉아서 영 사감이 지팡이로 찻잔이며 다과며 허공에서 불러내는 것 구경하고. 이 자리의 이유 물을 적엔 씩 웃었다.
"내 곧 죽어도 전과할 생각은 없으니 여태 여기나 사감이나 별 관심 없었는데. 내 처지가 이래저래 바뀌다 보니 한 번은 이런 자리가 필요하겠거니 싶더이다. 사감이면서 신수 아닌 이는 영 사감 뿐이시니."
사감이면서 신수 아닌 이. 명백한 제 3자의 관점이 필요했노라 태연히 말한 온화 턱 괴고 잠시 영 사감 빤히 보았다. 영 사감의 기색 살핀다- 기보다 그냥 그러면서 생각 고르는 듯 하다. 무슨 말부터 꺼낼지에 대한 고민일까. 그 고민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흠. 작게 숨 내쉬고 눈동자 옆으로 슥 굴렸다가. 다시 영 사감 보곤 첫 질문부터 꺼내었다.
"구구절절 서론 늘어놓기 귀찮으니 바로 묻지요. 영 사감.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궁금합니다. 사감 노릇 하는 신수들이 무슨 목적 가졌는지. 이 학당에서 무엇 하고자 하는지."
일단 시작은 그리 하자며 질문 두엇 내놓고 대답 기다리려다 아. 하며 말 덧붙였다.
"혹시 사감도 금기니 뭐니 그런 것 있지는 않지? 있으면 뭐- 알아서 하시게."
금기가 있든 없든 어찌 대답할 지는 영 사감 마음대로 하라며 히죽이는 것이 참 건방지기도 하였다.
' 뱀 키우고 싶나? 저 뱀은 애쉬와인더다. 불에서 태어나서 하루 만에 불에서 죽지. 그리고... 저 알의 껍데기는 아모텐시아 라는 사랑의 묘약 재료로 쓰인다. . '
온화가 뱀을 한 번 보자, 英사감이 말했습니다. 그는 온화가 만지는 늑대 조각을 가만히 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 夏사감이 보고 있겠군. ' 이라 나직이 말했습니다.
' 秋사감도 있을텐데? '
짐짓 시치미를 떼듯 혹은 떠보듯 英사감이 말했습니다. 그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근 마시곤 웃었습니다.
' 그래, 언젠가는 그걸 물을 학생이 올 거라곤 예상했지. 어디서부터 말하는 게 좋을까... '
英사감이 천천히 말 끝을 늘였습니다. 그는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습니다. 결론이 난 것 같습니다.
' 夏사감이 용생구자 두 마리가 섞인 것은 알고 있겠지. 더불어, 용생구자 하나가 이미 죽었다는 것도. '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습니다.
' 그들이 하려던 건, 가장 폭주하기 쉬운 부분을 분리하고자 했다. 인간 중에서 쓸만한 그릇이 있다면 죽은 형제를 대신할 인간을 찾고자 하기도 했지. ' ' 죽은 형제가 그만큼 그들에게 소중했기 때문이고 夏사감이 폭주하기 쉽기도 했거든. 봐라, 이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그가 폭주한 거. '
英사감은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 금기를 어긴다 한들, 나는 죽지 않아. 금기를 발설한 대가는 황룡님이 치르시니. ' ' 폭주하기 쉬운 쪽을 만족스러운 그릇을 지닌 인간의 몸에 심고 그 성정을 좀 억누르려 한 셈이지. '
이번에 있었던 습격은 틈이 발견되었으나, 지금 상황은 그 전제조차 없었단 건가. 아회는 머리를 굴렸다.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지만 제법 괜찮은 실마리 하나 정도는 쥐고 싶었다. 형님은 어떻게 들어온 걸까. 죽지 않는다 했으니 영 사감님처럼 어떠한 존재로 거듭난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언제부터?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
아회는 당신을 마주하며 표정을 굳혔다. 반 푼의 눈으로 당신을 볼 적, 아무런 초점도 맞지 않았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선명했다. 확신.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눈동자에 무언가 드러날 수 있을 정도니, 속은 그만큼 격한 감정일 테다.
"제 형제가 맞습니다."
실은 의심하게 됐다. 형제가 맞나? 그렇다면 언제부터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지? 형제가 아니라면 대체 언제부터 형님의 껍질을 뒤집어 쓴 것이지? 당신은 계약과 격이 높은 신수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회는 잠시 고개를 숙여 소매를 자신의 입가에 댔다. 무언가를 뱉어내듯 한참이고 대고 있던 아회가 소매로 거칠게 입가를 훔쳤다.
"……."
말을 할까. 내가 당신들의 간략한 정보가 담긴 수첩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지만 같은 존재로 몰리면 어쩌지? 의심과 불신이 싹트고, 아회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하거나 넘기기엔 아직 계기가 부족했다. 피를 온전히 닦아낸 아회는 눈을 감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는 학당 내부로 침입할 터입니다. 조만간 찾아가겠노라 하였고."
하지만 이것만큼은 말할 수 있으리라. 아회는 잠시 그때의 대화를 더듬었다. 아. 잠깐.
"…여기에 아마 인간이 아닌 게 온 거 같은데…… 그것의 눈을 받은 게 네가 아닌 건……."
아회는 무언가 중얼거리다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거, 허구한 날 쫓아와 눈알 좀 가져가라 지ㄹ…… 아니, 말도 안 되는 거래를 요구하는 그 개…… 아니, 신수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형님께선 그 존재까지 눈치채고 있단 것일 터이니…… 하나만 묻겠습니다. 혹시 당신들보다 격 높은 신수 중에서, 당신들이나 그 신수가 미움을 단단히 산 존재라도 있습니까?"
당신들이 아무리 금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쳐도 답하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그때의 모습은 뭔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에 더 가까웠으니. 아회는 당신에게 묻곤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형님도 문제지만 그 눈알 신수도 있었지. 그 존재는 돕기 싫은데 면전에 대고 싫은 티를 낼 수도 없고……. 산 넘어 산이다.
애쉬와인더 라는 불 속의 뱀에게 관심을 가지니 키우고 싶냐는 말 들려와 곧장 반색했다. 껍데기가 무슨 약의 재료라는데 그건 관심 없고. 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는게 귀여워- 여기 뱀들은 징그럽거나 꺼림칙한데. 게다가 하루 만에 죽는다니. 그 덧없음도 어쩐지 마음에 든달까.
조금 더 뱀 구경이나 했으면 싶지만. 먼저 용건부터 해소하는게 저에게나 영 사감에게나 좋을 듯 했다. 역린 보고 뭐라 중얼거린 것 같은데 아마 하 사감 얘기겠지. 치우란 말은 없으니 이대로 둬야겠다. 저를 떠보듯 할 때는 웃는 얼굴로 그런 대꾸도 했다.
"아. 필요하면 찾아갈 거요. '그쪽' 견해도 듣고 싶긴 하니."
신수이면서 사감인 쪽의 얘기도 필요하다면 들으러 갈 것이라. 다 안다는 투로 대답했으니 됐을 것이다. 제가 자리를 청한 만큼 가벼운 서두로 대화를 시작하자 영 사감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사이 온화 제 앞의 찻잔 빤히 보기만 하고 손대지는 않고 있었다. 저걸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듯이. 이윽고 영 사감이 입 열자 차에 향했던 시선 영 사감에게로 돌아갔다.
아는 것에 대해서는 간단히 고개만 끄덕였다. 하 사감이 두 신수 섞인 존재인 것. 그리고 그의 죽은 형제 있는 것. 요컨데 각 사안이 가진 문제를 인간 이용해서 해결 혹은 조치하려 했다- 이 얘기였다. 어렴풋이 그런 감은 느꼈는데 사실이었다니 놀랍다. 잠깐 무릎에 놓은 역린 콕콕 누르며 그런 걸 하려 했냐는 듯 건드려댄다. 그러다 또 손 올려 쓰다듬으며 얘기 들었다. 그런데 금기의 대가를 영 사감이 아닌 황룡이 대신 치른다라.
"그렇다면야 사양 않고 이것저것 물을 수 있어서 좋구만. 하기사. 죽지도 못 하게 해놨는데 그 정도는 받아낼 만 한가?"
키득키득. 경망스러운 웃음 소리 짧게 흘렸다. 말 잇기에 앞서 사양하지 않겠다 했으니 이제부터는 가리지 않고 물을 셈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인간을 죽은 형제 대신하려고 했던 거요? 인간을 신수로 만들려 했나?"
그 죽은 형제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는 제가 들은 금기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금기를 져가면서까지 형제의 죄를 씻고 다시 살려내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하 사감에게서 폭주하기 쉬운 부분을 분리한다는 건 다시 둘로 나뉜다는 의미요? 가령 그 부분 떼어내 인간에게 심으면 어찌 되는 거요. 그리고 그것 지금도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고?"
' 하루만에 자라서 알을 낳고 죽는다. 키워도 무관은 하다만. 알 낳을 땐 날 불러라. 방이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는 걸 원한다면 그대로 둬도 좋고. '
英사감은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 이상한 거 안 탔으니 마셔라. 가끔 고향에서 오는 것들이 있긴 한데, 그것들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
온화가 차에 입을 대지 않자, 그는 턱짓으로 찻잔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 황룡님은 네 마리 용과 시작점부터가 다르거든. '
무언갈 회상하던 英사감은 그리운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그것을 얼굴에서 지웠습니다.
' 그 방법까진 난 모른다. 대신할 대체제로 뽑으려 했다는 것만 알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닫고 협박을 해대시니... '
夏사감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만히 자신이 들었던 찻잔을 내려놓았습니다.
' 지금은 형제의 목을 찾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찾으면, 더 이상 안 할 생각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외부에서 자꾸 형제들을 불러모으는 것일테고. '
거기까지 말하던 그는 미간을 좁혔습니다. 밖에 있는 남은 하나도 언제 들어올 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죠.
' 분리가 된다면, 아마 夏사감이라는 존재 자체는 사라질지도 모르지. 인간에게 심은 쪽을 새로운 夏사감으로 쓰려 했을지도 모르고. 인간에게 심으면 어찌 되는지는 나도 모른다. 나라고 모든 걸 알고 있지 않아. 그리고 내 고향에서도 그런 행동을 하는 신수나 사감은 없었어. '
쯧, 그는 혀를 작게 찼습니다.
' 심장을 매개 삼아, 자신의 분신 같은 존재를 만든 자는 있었지만 그 방식과도 너무 달라. '
방이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된다? 알 낳을 때 불이라도 내나. 귀여운 것 치고 관리가 까다로운가 보다. 제 평소 생활 생각하면 정말 깜빡해서 방 홀라당 태워먹을 가능성 다분했다. 키우는 건 좀 신중해질까...
제가 노골적으로 차에 손 대지 않으니 이상한 것 안 탔단다. 어쩔까- 하다가 그냥 지나가듯 툭 말했다.
"맛을 못 느끼니 먹는게 좀 힘들 뿐이오."
제대로 된 식욕이 없는 삶은 참 재미 없는 법이다. 그러니 자연히 말 많아진 것 같기도 하고.
찻잔 대신 응시한 영 사감의 표정 순간순간 바뀌는 것 보았다. 그리움? 아득하거나 아련한 무언가가 비출 듯 했는데. 그 감정의 근원과 황룡이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당장 들어야 할 것도 산더미인데 매순간 새로운 의문 쌓여간다. 곤란한 인생이야. 뭐가 그리 궁금하고 알고 싶은지. 당장 살 길만 모색해도 시간 부족할 것을.
아무튼 들은 것들부터 정리하자.
"목을 찾느냐. 대체제로 대신하느냐. 그건가. 목 찾는데는 다른 이유도 있는 듯 보였는데."
제가 알기로는 목을 찾는 것도 속죄의 일부분이지 않을까 했건만. 학당에서 나갈 수 있게 되는 조건 중에 있었으니. 헌데 그건 너무 앞서갔나. 그들끼리 입단속을 했다 하니 더는 캐낼 수 없을 듯 싶다. 하 사감에 대한 것도.
"그쪽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거군. 흠. 만일 그리 된다면 어찌 될 지 궁금해지기는 하는구만."
만일 그리 되어 지금의 하 사감이 없어진다면 제 반려는 누가 되는 것일까. 반려의 연 자체조차 무효가 되진 않을까? 갖은 생각 들길래 눈 감고 슥 한 번 밀어낸다. 생각 많이 해서 그런가 허기가 올라온다. 슬슬 차라도 마실까-
"그- 아. 그건 무슨 얘기요? 심장으로 분신 만들었다는 건. 그 고향에서 있었던 일이요?"
형님이길 바랄 뿐이지. 학생 때도 골치가 아팠노라 얘기하는 당신의 말을 타인이 듣는다면 천하의 장난꾸러기였나 싶겠지만 아회는 그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꿈 속에서 마주했던 그 모습도 그렇고, 가문 내부에서 깽판치고 나갔던 것도 눈으로 본 당사자인데 어찌 저 말을 모르랴.
……그렇다면 어떤 신수와 계약했는지는 알 수 없겠구나. 하기사 범인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다마는, 저렇게 된다면 대체 누구와 계약했는지 범위 자체를 좁힐 수 없게 되니 안타깝다. 그러다가도 당신의 평가에 떨떠름한 듯 입술을 꾹 다문다. 그렇구나, 형님이구나. 이 세계는 어딜 가도 형님이 문제인 건가?
"……."
사소한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건지. 역린을 가지지 않겠냔 말에 아회의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평시 품고 있던 평온함도, 해탈도 없는 무표정은 누가 귀기 무 씨 아니랄까, 온기 하나 없이 농담 들어도 삭막하게 반응할 듯 딱딱했다.
"송구하오나 벼룩을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지는 않지요. 호의를 베풀어주심엔 감사하나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이번에는 받아가지 못했던 장기 가져갈까, 글쎄. 이젠 내어줄 생각 없다. 불탈 몸뚱이에 거창한 것은 필요치 않다. 제 아무리 신수라 할지언정 믿지 않는다. 또한 당신과 짤막하게 있었던 갈등의 원인과, 그간 신수와의 싸움에서 수상할만치 온화만을 향했던 공격들을 생각하면 받는 것이 이상할 상황이었으니.
"내버려 두면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깨달음 얻을 날이 오겠지요."
아회는 유감스럽게도 당신을 포함한 형제자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나아가, 대다수의 영적 존재와 사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