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숨 넘어가는 소리가 가면인의 마음에 닿은 걸까 . 가면인은 당신을 베는 대신에 땅을 베어 당신의 배후로부터 치솟아 오르는 괴기를 저지해냈다 . 치명상이 못 되는 상처의 깊이에 괴기가 발버둥치자 , 가면인은 당신을 발로 차 멀리 밀어냈다 . 낭패라는 듯이 아주 급박한 움직임이었다 .
- BeEEE,EEeEE
당신을 대신해 괴기의 턱에 씹혀 모래 밑으로 빠져드는 가면인 . 이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일어난 것임을 감안하면 ,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이럴 수가 없다 .
우와악!!! 순간 자신을 베려는 줄 알고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팔로 감싸던 한나는 그것이 자신이 아닌 땅을 향한 공격임을 알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실 못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순간 몸이 굳어버렸으니까. 그러나 무어라 말도 하기 전에 발로 차여 밀려나자 그녀는 억소리 밖에 내지 못하고 그대로 밀려났다.
'뭐지? 설마 나를 구하려고...?'
이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자 가면을 쓴 무언가는 또 다른 무언가에 씹혀져 모래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한나는 소리쳤다.
잘그락 잘그락, 쇠가 맞물리는 거친 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들어올려 길다란 형체를 쳐다본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늘 아래 응어리진 어둠과 만난 모래는 순식간에 시퍼런 날붙이가 되었다. 사내는 그 광경에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표정만은 달리하지 않는다.
"나약하게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낫습니다."
남자의 앞에는 꿈을 누비듯 아득한 것들이 도사렸고, 미지와의 조우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그의 앞에 한 괴인이 나타났고 그것은 말했다. 거짓으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스스로를 떠올리는 것뿐. 그렇기에 사내는 자신이 마음이 기우는 곳으로 향하길 원했다. 다시 나타난 괴인을 마주하며 어쩌면 그가 이곳을 빠져나갈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고, 곱씹으면서.
오 , 도망치는 게 현명하지 , 백 번 천 번 현명하다 , 하지만 , 하지만 말이다 , 당신 대신 모래 목욕을 하게 된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당신이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 시작하면 , 아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뒤에서 펑 ~ 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 분수가 치솟았다 . 아니 , 분수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겸양 떠는 거겠지 . 어디 다이너 마이트나 수류탄이라도 터뜨린 듯한 위용이었다 . 하늘로 솟구친 모래는 비가 되어 쏟아졌고 이는 당신의 머리 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 당신이 뒤를 돌아본다면 ,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면 , 엉망진창 땋은 머리가 풀리고 산발이 되어 , 가면도 삐뚤어진 채 숨을 몰아쉬는 예의 가면인이 보일 것이다 .
그녀가 등을 돌린지 얼마나 되었다고, 뒤에서 폭발 소리와 함께 모래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폭탄이 터진 듯했다. 그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정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듯한 모양새의 가면 쓴 무언가가 있었다. 한나는 모래비를 맞으며 니, 니 살아있었나?! 라고 소리쳤다.
"미안하다! 내는 니가 증말로 죽은 줄로만 알았대이...!"
뒤늦게서야 하는 사과이지만 한나는 정말로 미안하다는 눈치였다. 이것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진 미지수지만 그와 한나가 협력 관계라면 이만큼 박살난 첫인상은 없을 것이다. 빠지는 게 정답이었나? 라고 3초 정도 생각도 해봤다.
간질거린다 . 머리가 간질거린다 . 두꺼운 뼈 밑에 , 물렁거리는 뇌보다도 깊은 곳에 , 간지러움이 존재하고 있다 . 공기 중에 팽배한 살의가 당신의 피부 위로 겹쳐지며 목이 바짝 마르고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다 . 일 초 뒤 , 이 초 뒤의 광경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며 검지가 익숙한 모양을 한다 .
환상통이 격렬하다 . 외부로 확장된 당신의 신경이 , 당신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사라졌다고 , 비명을 지르고 있다 .
당신의 총 ! 당신의 무기 ! 당신의 생명선 ! 당신을 안심케하는 총열의 무게가 사라졌다 !
당신이 잃어버린 파트너를 찾아 눈을 뜨면 , 둥글게 몸을 말은 , 이형의 양철이 보일 것이다 .
할 말이 무척 , 아주 많아보였다 .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가면인이 가장 잘 알았기 때문에 , 하고 싶은 말을 참고 , 숨을 삼켰다 . 가면인은 우선 당신이 서는 고도까지 내려와 ,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 추적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 가면인이 용케 힘겹게 하나를 쓰러뜨렸지만 , 여전히 몇이나 되는 추적자가 모래 밑에 모습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 그것들을 모두 뿌리치거나 , 쓰러뜨리지 않으면 , 당신도 가면인도 안심할 수 없었다 .
근데 모습이 보여야 쓰러뜨리지 . 이대로는 아무 방법이 없었다 . 가면인이 초조하게 창을 떨었다 .
두 사람 사이에 선이 이어진다 .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분명 느껴진다 . 당신은 듀 락으로부터 당신이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를 돌려받았다 . 그것은 최후의 기억 , 당신의 숨이 끊어지면서 망막에 새겨진 최후의 풍경이었다 . 자유롭게 하늘을 날던 매의 기억이 당신의 심원에 떨어졌다 .
듀 락이 당신의 안에 머무르는 것이 느껴졌다 . 당신은 다소나마 자신 안의 구멍이 메워진 기분이 들었다 .
이제 우야믄 좋노...? 가장 큰 고민은 이것이었다. 내가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싸우는데 거치적거리지 않게 멀리 떨어지는 수 밖에 없나? 하필 말도 안 통하는 상대라 더 답답했다. 일단 상황을 살펴보자면... 나를 집어 삼키려는 무언가가 있고, 이게 그 모래 밑에 있으며, 삼켜지면 그 이후엔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다...
"음... 진짜 우야믄 좋지...?"
가면 쓴 존재가 초조한 듯 창을 떨자 그녀 역시 긴장된 듯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폈다.
>>200 먼저 쏴야 한다. 총구 앞에서 어물거리는 건 일단 갈기고 보는 게 옳다. 저게 뭐지? 하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것저것 재어서도 안된다. 가까운 거리에서 적과 마주칠 때 교전은 고작 5초에서 10초 안에 마무리된다. 짧은 시간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는 더 짧은 시간 안의 선제공격!
이제 눈 앞에 저것이 적인지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저걸 보았다는 사실이고, 저걸 공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뭐가 되었던 일단 공격하고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앗하는 사이에 ,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다 . 휘두르고자 이미 마음 먹은 당신이 망설임 따위 보일 리 만무하니 , 팔은 즉각 아래로 머리를 노린다 . 웅크린 채 아무것도 모르고 별안간 머리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은 양철 인형은 , 찌그러진 머리에도 당황 않고 태연하게 당신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
머리는 텅 비어 있었다 . 찌그러지면서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양철 인형의 속은 아무것도 아닌 공동이었다 .
소리를 넣으면 벽에 부딪히면서 메아리가 되겠지 . 당신이 오판을 저질렀다는 것을 눈치채면 , 양철 인형은 당신을 쥔 손을 휘둘러 암벽에 당신을 던져버렸다 .
>>203 초롱아귀와 비슷하다. 저것은 그림자로 이끌고 삼키는 생물인 것이다. 집게발, 가시침, 저것은 전갈인가? 발밑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는, 기억은 없으나 저런 생물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만은 확신했다. 제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에도 가라앉은 듯 아득한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잠시, 눈을 크게 떴을 뿐.
그리고 거리를 벌리려 몸을 던질 뿐. 날치는 수면 위를 난다. 사람은 그러지 못하나 흉내는 낼 수 있다.
괴물의 전모를 다 확인하는 것보다 먼저 당신이 뒤로 몸을 던졌다 . 결과적으로 좋은 판단이었던 것이 , 그대로 가만 있었다면 저 거대한 가시침에 꼬치처럼 몸이 꿰였을 것이다 . 불행 중 다행인 일만 생각하자 , 괴물이 가시 침을 회수해 당신을 뒤쫓기 시작하지만 , 덩치가 덩치라 속도가 붙으려면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
>>210 크다는 건 마냥 좋은 일이 아니다. 그 증거는 먹이를 놓친 괴물이다. 그는 곧장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모습이 퍽 익숙하였다. 망설임도 없었으니, 과거에도 분명 호전적이진 않았으리라. 사박거리는 모래를 짓밟으며 뛰어간다. 땀이 흐르고, 숨이 차는 게 금방이지만 멈추지 않는다. 죽음은 멀수록 좋다.
당신은 쉬지 않고 뛰었다 . 조금이라도 더 저 괴물에게서 멀어질 수 있도록 . 하지만 괴물의 집념도 만만치 않아 당신을 놓칠 세라 거칠게 사막을 부수며 달려드니 당신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차가 겨우 서너 걸음 밖에 되지 않을 때 , 괴물은 사냥의 성공을 확신하고 당신에게로 꼬리를 쏘았다 .
그런데 이상하지 , 괴물이 예상한 그림과 다르게 꼬리를 잘리고 회색 액체를 쏟는 것은 괴물이었다 .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니 그렇잖아. 적과 싸운다는 건 모퉁이를 사이에 두고 총격을 주거니 받거니. 아니면 핀 뽑힌 수류탄으로 폭탄돌리기하는거 아니었나? 아무리 직관과 본능을 모토로 삼아 싸운다 해도 말이지? 스스로 움직이는 양철 인형이 자기 머리를 똑 떼어내서 집어던지는 뭐 어떻게 하라는....아.
오른쪽 눈에서 불이 튀었다. 고개가 뒤로 크게 젖혀졌고 몇 발짝 물러났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아까 날아가서 암벽에 부딪혔을 때처럼. 또는 아무리 달려도 다리가 지치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줄줄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른쪽 눈에서만. 젖혀진 고개를 바로 하고 머리가 떨어진 깡통을 쳐다보았다.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고 겁먹어서 나오는 눈물도 아닐텐데. 그냥 불수의적으로 흐르는 눈물이었다. 격앙된 표정 없이 혼자서 흐르는 눈물. 그리고 이상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안 다치고 안 아프면 문제없잖아. 도망쳐서 뭐 해? 싸우자! 갈 길을 가더라도 저놈은 꼭 두들겨 패야 후련한 걸음 뒤통수가 따갑지 않을 것이다.
"안 아프다고! 망할 깡통!!"
그래서 발치를 굴러다니는 깡통 대가리를 다시 들어서 전력투구로 되돌려주었다. 다음에는 가지고 있던 돌멩이도 원 플러스 원으로. 상황이 덤앤더머 슬랩스틱처럼 흘러가는 느낌이지만....신경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