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당에는 여러 인간 군상이 존재했으니, 이상한 사람이라 칭해지는 사람도 충분히 많았다. 음주 가무 즐기는 적룡 기숙사의 여식과 그 형제자매라든지, 백룡 그 자체가 아니냐며 질겁하는 백룡 기숙사의 영식이라든지……. 그중에는 적룡 기숙사의 덤덤한 무 씨 선배도 있었다. 6년 동안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 방문 굳게 닫고 도통 나오질 않고 새벽에 사람 없을 적에만 잠시 나선단 소문만 무성하니, 사실 아무도 소속을 모르고 본인조차 모른다는 학당의 괴담 속 암룡 기숙사 소속이지 적룡이 아닐지도 모른단 이야기 있을 정도로 아회는 사람 많은 곳에 잘 나타나질 않았다. 최근엔 천부로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목격자들이 호들갑을 떨었으나, 지난번 제사장 가문 영식을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팬 싸움 이후로는 다시금 방에 틀어박히기 시작했으니 그것도 한때였구나 하며 학생들의 기대는 식어버렸다.
아회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봄은 봄이기 때문이요, 여름은 쥐약이며, 가을은 나가기 울적하고, 겨울은 가문의 호출이 잦으니 안 나가는 게 낫다. 모든 상황을 대충 빠져나갈 수 있는 허울 좋은 변명이라면 맞다. 솔직하게 고하자면 나가는 것이 질리도록 싫었다. 특히 천부. 사람 많은 곳은 예민한 청각을 시시각각 건드렸고, 예상치 못한 인연은 성질을 건드리며 그 속내까지 착실히 파먹었다.
"거스름돈은 그냥 가지시오." "에그머니나, 이번에도 말입니까?" "이럴 때 쓰지 언제 쓰겠소?" "감사히 받겠습니다요. 그것보다 덥지는 않으십니까? 여름인데도 그리 껴입으시면 쓰러집니다!" "추위를 심히 타는지라." "아하, 그랬구만요. 저는 또, 북부라도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신께 진노 받은 곳이니 발 들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마는요……."
유일무이한 안식처인 카페는 최근 형님과의 조우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 불가살과의 밀회도 최근엔 하지 않는다. 다과도 천부에서 직접 사지 않고 학당 근처로 장사꾼 불러내는 일이 더 잦아졌다. 그럼에도 오늘 천부로 남몰래 걸음 옮긴 이유는 하나였다. 학당의 교복 아니고, 계절에도 영 맞지 않는 흐린 벽자색감의 도포 갖춰 입고, 신도 비단신에, 희디흰 너울 입은 존재가 꽃다발을 품에 안았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나으리!"
어머니께 드릴 꽃다발만큼은 자기 손으로 사고 싶었으니까. 오늘은 어머니를 뵈러 가는 날이니 이리 꾸미었다. 후배가 준 빗으로 곱게 빗질한 긴 머리카락도 너울 너머로 살랑인다. 다만 어느 정도 걷다가 멈췄으니, 지팡이 있다 한들 상대와 부딪쳤기 때문이다. 그 정도가 크지 않았다마는 여린 꽃은 두어 송이가 후두둑 쏟아지고, 아회 이 상황 익숙한지 덤덤하게 고개 숙였다.
영노가 그렇게도 싫은지 불만스러운 소리까지 내는 하 사감 보고 빙긋 웃었다. 이것도 좋은 동기가 되어줄런지. 저 살필 적에는 슬쩍 몸 가리는 시늉 하기도 했다. 어차피 제 방에 호드기 두고 왔으니 눈에 띌 리 없을 것 잘 알면서도 말이다.
문득 생각난 것 물으니 또 미간 찡그린다. 실실 웃을 때는 언제고 아까부터 표정 구기질 못 해 안달인지. 어느 정도는 제 탓임을 알지만 그래도- 라고 할까. 표정 좀 펴라는 의미로 미간 살짝 눌러준다. 만지는 김에 한숨 쉬는 입도 검지로 꾹 눌러본다. 아까부터 한숨만 몇 번째냐고. 그리고 하 사감의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 슬핏 기울이며 말했다.
"합쳐지면서라. 신수는 다 이도저도 아닐 줄 알았는데. 구분이 있기도 하다니 의외네요. 다른 모습은- 여기서 나가거든 그 즈음에나 생각해보는 걸로."
사실 지금 모습에 눈이 가는 것이기도 하니 굳이 바꿀 필요는 못 느꼈다. 그가 가장 편하다고도 하고. 물론 바꾸겠다 하면 말리지 않을 것이지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 흉내라면 더 신경 쓰이지요- 그것도 궁금하긴 한데. 지금은 됐어요. 오늘 귀찮게 구는 건 여기까지 할게요."
하나 물으면 새로이 궁금한 것 둘이 늘어나니. 그것 다 풀려면 밤을 세워도 모자를 것이다. 묻는다고 다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은 들은 것에 만족하기로 하자. 급한 일은 달리 있기도 하니.
더 귀찮게 굴지 않겠다던 온화 느릿하게 숨을 쉬더니 잠시 머뭇거렸다. 조금 전까지 잘만 보고 떠들고 하던 모습 어디 간 듯 또 슬그머니 눈 돌리고 괜히 제 머리카락 만지고 그런다. 얼마 전까지 수더분하던 옆머리가 제법 길어 어색해서 그러는 것도 같고. 달리 할 말이 있는데 꺼내기 주저하는 것도 같다. 그러다 그냥 지나가듯- 별 것 아니라는 양 툭 꺼내는 말 있었다.
"그- 여태 나만 실컷 묻고 그랬는데. 당신은 물을 것 없어요? 아니면. 해 줄 말이라던가. 하고 싶은 말이라던가."
언뜻 보기에 별 의미 없어보이는 말 하는데 왜 시선을 자꾸 힐끔거리기만 하는지. 그 짧은 시선이 은근히 뭔가 바라는 듯 보이는지. 과연 눈치 챌 수 있을까. 이 신수님은.
즐거이 딱딱 대는 역린 단단히 쥐고. 엉결겁에 받은 털뭉치를 품에 꼭 안고 상황 살폈다. 그새 날아가는 불길이 아회 향하자 이번엔 다급한 탄식 입 밖으로 새었다.
"아이고 거 털이고 뭐고 다 태워먹겠네! 그만 좀 하소! 망할 신수여!"
그런데 걱정해야 할 건 저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갑자기 열 후끈 오르는 듯 해 뜨거운 기침 연달아 내뱉었다. 겉도 속도 바싹바싹 타들어가니 이러다 끝장 보기 전에 제가 먼저 잿가루 되어버리겠다. 그러면 안 되지. 그럴 수는 없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 문질러 떨쳐내고 역린 치켜세웠다.
"맞아도 정신을 못 차리니 짐승 만도 못 하구만!"
일부러 악을 쓰듯 일갈하며 달려든다. 정면으로 부딪힐 듯 하다가 춘 사감의 측면으로 돌아가 배 한 가운데를 깊숙히 찌르고자 한다.
신이 난듯 천진난만한 목소리와 날카로운 비명이 공존하니 간담이 서늘하다. 아무리 달관하였다 할 수 있어도 이런 순수함이 진실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모순적인 것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도 자신은 어쩔 수 없으니. 삑삑 비명 내지르는 소리에 그는 나뒹굴던 몸을 잽싸게 일으켰다. 불길이 춤추는 모습에 맹렬하게 달려들더니 높게 뛰어 오른다. 공중에서 일순 푸른 불꽃 일어나며 인간으로 돌아오고, 그대로 부적 입에 물어 찢으려 들었다.
부디 신수 잡는 법도 요괴 잡는 법과 똑같았으면 하는데.
얼음으로 이루어진 날선 도끼 쥔 채로, 그대로 공중에서 떨어지며 사감의 몸 들이받아 나뒹굴듯이 하려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 불타는 꼴은 보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