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났다. 긴 복도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된 요란한 몸싸움 소리 울린다. 오늘도 참 지치지도 않고 치고 받는구나. 제 방에 늘어져 있던 온화 그 소란 들으며 생각했다. 옆에는 집에서 보낸 서신이 아무렇게나 펼쳐지고 늘어져 있었다.
슬슬 나가볼까 했더니 이 무슨 난리인지. 조용해지거든 나가야겠다. 이미 다 읽은 서신 멀찍이 두고 느긋히 곰방대 불 당겼다. 새로 담은 담뱃잎 빨갛게 타올라 이윽고 한 모금 연기 뿜을 쯤. 학생 두엇이 문 앞 지나가며 떠들었다. 누구랑 누가 싸우는 거래? ...랑 무 선배라던데? 지나가는 이름 중 하나는 흐릿했으나 하나는 명확히 제 귀에 들렸다.
학생들 지나가고 잠시. 가만히 있던 온화 자리에서 몸 일으켰다. 후- 다시금 연기 내뱉으며 방에서나 걸치는 한벌옷 위에 적룡 두루마기 대충 걸치기만 하고 방을 나섰다. 다행이랄지. 싸우는 소란 이는 곳 그리 멀지 않았다. 안경도 없이 머리도 묶지 않고 헐렁한 차림새로 그 소란 가까이 가니. 누군가의 팔 붙잡은 수일 보였다. 피가 울긋불긋한 손이 머리통들 사이로 얼핏 비췄다. 그 손 누구 것인지 알자마자 걸음 서둘렀으나 가까이 하기 무섭게 한 줄기 연기가 학생들 사이를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제 걸음 당도하니 이미 끝난 상황에 낮은 한숨 내쉬었다.
아회 가버린 방향 보던 수일이 뒤늦게 온화 발견하고 다가와 제가 그랬던 것처럼 한숨 쉬었다. 벗 말려보겠다고 나섰다가 쓴 맛 본 꼴이 그럼 그렇지 였다. 상황 설명은 물을 것도 없이 모인 이들 떠드는 것 듣기로 되었다. 저기 저 바닥에 피떡 된 놈이 망언을 했다. 뭐 그 정도였다던가. 누군가는 눈쌀 찌푸려지는 바닥을 온화 덤덤한 눈으로 보았다. 그러다 힐끔 눈 돌렸다. 처음에 왜 싸웠나-를 말한 그 여후배에게. 그리고 말했다. 그 때 복도는 조용했기에 제 목소리는 낭창하게도 울렸다.
"그리 떠들 시간에 쫓아야겠단 생각은 안 들더냐? 혓바닥이 걸음보다 가벼우니 조만간 저 꼴 하나 더 치르겠구나."
그 하나가 누구일지 콕 집은 이 없었으나 온화 시선 그 여식에게 꽂혀 있었으니 달리 생각할 것 있을까. 낄낄. 한 손에 든 곰방대 까딱이며 웃으니 어디선가 딱딱딱! 하고 기묘한 소리 같이 울린다. 거기 모인 모두를 비웃듯. 분위기 더 싸하게 만들어 놓고서 그 한복판 천천히 가로질렀다. 가는 길에 널브러진 놈 배 지그시 밟아 숨은 쉬는지 확인하고. 그 여식 옆 지나가며 그저 흘리듯 중얼거렸다.
"그 머리가 장식이 아니라면. 혓바닥 놀리기 전에 생각이란 걸 하려무나."
그리 지나친 후에 수일 돌아보며 말했다.
"무 선배는 내가 쫓을 터니. 그거나 치우게. 더럽잖나. 바닥이."
어휴. 무슨 악취라도 난단 듯 코 앞서 손 흔들었다. 더러운 것 피하듯 걸음 성큼성큼 떼어 그곳서 멀어졌다. 그 뒤로 수일이 나서 자리 정리하는 것 멀리 들렸다.
적룡 기숙사 밖으로 나온 온화 곧장 호수로 향했다. 다년간 아회 알고 지낸 것 이럴 때 참 쓸모있었다. 조금은 급하게 잰걸음으로 두루마기 휘날리며 호숫가로 가니. 아니나다를까 거기 있었다. 산발이 된 잿빛 머리에 주저앉은 뒷모습이.
발견하자마자 안도의 한숨 내쉬었으면서도 가까이 갈 적에는 태연히 다가갔다. 쫓아나온 것 아닌 마냥.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던 양. 그리 평소처럼 말을 걸려고 했으나 제가 말 거는 것보다 아회 돌아보는 것 먼저였다. 돌아보는 얼굴에 흐른 핏자국부터 눈에 들어와 희미하게 미간 일그러뜨린 것 순간이었다. 돌아본 아회가 저를 향해 하는 말 어째 이상했다.
약조? 무슨 약조를 했었나? 아니. 전혀 기억에 없다. 제가 목이 빠지게 기다릴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저 선후배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이거늘. 딱 그 말 한 번 만으로도 평소같지 않음을 감지하자 아무리 온화여도 순간 고민했다. 이거 정말로 하 사감 불러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궁금해졌다. 지금의 아회가 무엇을 보여주진 않을지. 온화 안의 저울은 찰나 삐걱이고 슬그머니 후자로 기울었다. 크흠. 작게 헛기침을 해 목 가다듬곤 차분히 낮춘 목소리로 대답했다.
"찾느라 늦었습니다. 맞은 곳은. 어떠신지요."
말투는 어찌할까 하다가 향이 오라비 것을 흉내내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저 답지 않았으니까. 대답하고 반응 슬쩍 살피고. 조심히 그 옆에 가서 앉으려 했다. 저도 모르게 한 쪽 무릎 꿇으며 저를 낮추는 듯한 자세 취하게 되었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경솔히 손 대고 싶은 것 일단은 참으며 말 덧붙였다.
엽 씨 가문 여식은 그 동그란 눈을 정확히 당신 향해 마주했다가, 다른 학생이 눈 가려주며 제지하자 한 번 몸만 움찔했다. 싸움 생기려던 것 간신히 참듯 입술 꾹 다물다 성큼성큼 걸어갈 적에야 아르릉 화 참아내고 자리 휙 떠버리는 것이 조그마한 강아지 같았다. 네게 신의 악의가 느껴지니, 역시 궁기 있는 집안은 무언가 다르긴 한가 보다. 거듭 저주만 받는 집안이니 하루 빨리 제사장들의 손에 궁기는 이리저리 조각 내어 산 제물로 바치고 너 또한 바치면 딱이겠구나!
악의 가득한 조롱을 평소 같으면 넘길 수 있을 터인데도 오늘은 참을 수 없었다. 아마 꾸었던 꿈 때문의 탓도 있으리라. 꿈 내용에 감정이 동하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인내심이 뚝 떨어져 주먹을 내지르게 됐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녀석의 얼굴이 피로 물들 적엔 희열마저 느꼈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긴 한가? 아니, 현실이 아니면 뭐가 어떻지? 어디에서든 내 행동은 옳고 정명하다. 몽중이었어도, 현실이었어도 두들겨 팼을 것이고, 심하면 그 목숨을 뺏기까지 했을 것이다. 도발에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나는 틀리지 않았어……."
씹어뱉기가 무섭게 얼마 없는 세상의 정명함을 판가름하고, 옳고 그른 이치를 구분하던 이성은 점차 흐려지고, 이내 수마에 빠지듯 갈피를 잃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아회란 자는 조용한 곳을 그리도 좋아하는 사람이니, 인적 드문 학교 호수는 그 난리가 났을 때도 도망치기 딱 좋은 곳이라. 평소 같으면 호수에 비치는 물 쳐다보듯 고개가 그쪽으로 향했을 터인데, 오늘은 호수를 옆에 두고 앉은 모습이 다르다면 다를 터였다. 자신이 앉은 방향마저 판단하지 못했으니, 당연하게도 당신을 알아볼 리도 없었다.
"죽을 날이 다가왔나 보다, 네 나를 걱정하는 날도 다 있다니."
이렇다 할 꾸짖음의 기색은 없었다. 그냥 하는 말이라는 듯 가볍게 핀잔하고는 터진 입안에서 고인 피를 적당히 먼 곳에 뱉었다. "북부에서 이리 늦었다면 이미 내 죽었을 터지만 학당이라 멀쩡하다. 나보다는 내게 맞은 놈이 고역일 게야." 손등으로 아무렇게나 입을 훔치는 것이 평소와는 제법 달랐다. 어쩌면 격한 싸움의 여운이 가시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하!"
아회의 웃음은 제법 탁했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호탕함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문장이나 단어라기엔 감정이 있었다. 그 감정을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유쾌함은 아니다. 아회는 손을 한 번 내젓곤 느릿하게 까딱인다. 제 차림은 됐고, 더 가까이 오기나 하라는 듯. 이제 보니 안경도 싸움 도중에 날아가 버린 모양이다.
올 해의 학당은 이상한 일 많아도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작은- 하 사감의 폭주였나. 아니. 과거의 잔영 희미하게 드리울 적 부터였다. 학당에서 세간에서 핏빛 명성 자자한 이들 그 실체 드러내면서부터. 이변과 풍랑은 줄곧 이어져오고 있었다. 단지 그것 인정하고 싶지 않아 줄곧 모른 체 했을 뿐이지.
그래. 제 문제는 여지껏 외면해놓고서 제 것 아닌 문제는 그러질 못 했다. 그저 저잣거리서 스쳤던 학생 하나도 눈에 띄면 그냥 두질 못 하는데. 자그마치 삼 년을 알고 지낸 이는 오죽하랴. 어설프게 남은 본질은 늘 저를 충동질하고 멈춰서게 만든다. 들리면 귀 기울이게 하고. 보이면 눈 쫓게 한다. 아직 제가 그 시절에 머물러있는 듯. 상냥한 착각 불러일으켜 마주한 이를 보게 하였다.
...각설하고.
쫓아온 아회는 호수 앞에 있었다. 그러나 늘 앉은 방향 아니라 호수를 옆에 두었다. 호수 앞에 앉은 아회는 항상 얼굴이 호수물 비친 듯 맑았는데. 지금은 비산하는 조각빛이 옆 얼굴 겨우 비췄다. 하필 멍든 볼에 비추어 낯빛 창백히 보였다. 그 모습 보며 온화 문득 생각했다. 저대로 툭 쓰러져 호수 안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 같다고. 아회가 죽을 날이 다가왔다는 둥 하여 든 생각일 지도 모른다. 허나 그리 되기 전에 잡아야 하는데. 아. 과연 제가 그럴 분수이던가. 여느 때와 같지 않은 이 상황이 저마저 듬성듬성 조각내는 듯 했다.
"...예. 언사 수월하신 것 보니. 제가 괜한 걱정을 한 듯 싶습니다."
멀리 내뱉어진 핏덩이 힐끔 보며 그리 말하고. 아회가 허한다면 곧장 옷이며 머리며 정도해주려 했으나 짧게 흐른 웃음이 저를 벙-하게 했다. 저리 웃는 것 제 앞에서는 없었, 지 않나. 그보다 웃을 줄 알았냐고. 이 사람. 늘 입 꾹 다물고 꿍얼대거나 기껏해야 눈썹 들썩이는 것 보는게 고작이었던 제 지난 날들 떠오른다. 저 행색에 들었던 안쓰러움 한 켠에 삐죽한 가시 하나 솟는다. 쑥 자라난 가시 곧 제 심장 쿡 찔러서 눈 가늘게 떠 아회 흘겨보게 하였다. 제가 듣기엔 퍽이나 친근하게 건네는 말들- 말벗을 해달라거나 얼굴 좀 보자거나. 그 말들이 가시의 크기 한층 키워 행동 조금 불퉁스럽게 만들었다.
하. 짧게 한숨 내쉬곤 낮추었던 몸 휙 일으켰다. 크게 펄럭일 정도로 호탕하게 제 두루마기 벗어선 아회 머리 위로 펼쳐 덮는다. 덕분에 저는 방에서 뒹굴 적에나 입는 검은 한벌옷 차림에 팔다리며 등판까지 훤히 드러났지만. 제 살 드러나는 것보다 저 안쓰러운 몰골 가리는게 제겐 우선이었다. 행여나 벗어낼라 확실히 덮고 있도록 소매며 자락이며 매만져주곤 그 옆에 다시 슥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신경 쓰지 말래도 눈에 뵈니 안쓰럽습니다. 손 대는 것 원치 않으시면 그거나 덮고 계시지요. 저기. 빌려온 것이니."
짧은 치마 입고도 경망스럽게 양반다리 하고 앉은 온화 그제야 곰방대 물었다. 거의 꺼져갈 듯한 불 겨우 살려 한 모금 피우니 잠시 술렁였던 것 담배연기마냥 흩어져버린다. 희뿌연 연기 아회에게 닿지 않게 바람 태워 멀리 보내버리곤 다시금 차분히 내려앉힌 목소리로 물었다.
북부 사람이라면 새하얀 피부가 특징이나, 그는 유달리 창백한 편에 속했기 때문인지 상처가 조금만 나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방금 얻어맞은 얼굴은 금세 푸른 자국을 남기기 시작했고, 주변은 발갛게 물들어 있으니 시체 꼴이 딱 그러할 것이다. 하물며 눈까지 감고 있었으니 더욱. 다만 어딘가 고통스러운 기색 없고 평온하니 기이한 사람이라면 기이하리라. 아회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적룡 기숙사에서 싸움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는가, 죽여 패지 못한 것이 한일뿐이다.
"그래야지."
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착각하는 존재는 걱정을 그다지 하지 않는 성격인 듯싶다. 그리고 제법 친밀한, 혹은 그 이상을 넘어선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원내에서, 아니, 재학하며 단 한 번이라도 웃은 적이 있었나? 아니다. 아회라는 인물은 웃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잿더미처럼 초연하게 그럼 그렇지, 그렇군, 그런가? 이 세 반응 중 하나를 적당히 고르는 사람이었다. 지금 하나하나 보이는 행동이나 언사가 당신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아."
펄럭이는 두루마기가 머리를 덮기가 무섭게 외마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벗어내려 꾸물댔으나 이번엔 당신이 빨랐다. 소매요 자락 다 정갈히 매만져버린 손길에 아회의 입에서 더 불만은 튀어나오지 못했다. 대신 다른 것이 튀어나오니, 당신이 뱉은 얘기 때문이다. "에이잉, 영이 이 녀석." 짤막히 튀어나온 것은 타인의 이름이다. 앙상한 듯 관리되지 못한 손이 두루마기 사이를 빠져나오더니 허공을 잠시 더듬거린다.
"서로 동정하지 않기로 했잖니. 그런 부차적인 것은 짐만 될 뿐이라니까…… 이래서 북부 바깥 녀석들이란."
당신을 잡지 못하는 손길은 계속되다가 이내 힘없이 내려갔다. 담뱃잎 태우는 내음에 "끊겠다면서." 덤덤히 얘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착각의 대상 또한 흡연자인 모양이다. 차분한 목소리에 아회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몸을 웅크리듯 하며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내 두루마기 사이로 드러난 표정은 초연했다. 잿더미로 돌아왔다는 듯.
"너도 참, 오늘따라 이상하구나. 어련히 알 것을 모르는 체하니 마치 다른 사람 같아."
농이다. 덧붙이는 목소리는 덤덤하다. 아까 전 웃었던 것을 제외하면 평소의 아회와 같은 어조요, 모습이거늘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서 큰 이질감 부를 뿐이다.
"개운하단다, 당장은 그러하지."
희미하게 눈썹 내려가는 것이, 당신에게 으레 보여주던 표정 중 하나다. 어딘가 언짢을 때마다 드물게 보여주곤 하였던.
친근히 대하는 화법. 들어본 적 없는 웃음소리. 저는 알지 못 하는 이야기. 명백하게 저를 다른 사람으로 보고 대하는 행동.
투명한 물에 검은 먹물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간다. 조용히 물들어가는 그 속에 희미한 앙금마저 가라앉는다.
평소라면 볼멘소리 없이 끌어내리거나 그냥 두었을 두루마기조차 외마디 불만 표하며 손 허우적대는 아회를 붉은 눈동자가 응시했다. 저를 대체 누구에 빗대어 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기 무섭게 이름 하나 들렸다. 영이. 누군데 그거? 지난 삼 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은 곰방대 쥔 손에 슬그머니 힘 불러일으켰다. 손등에 핏줄 툭 불거질 만큼. 조금만 더 세게 쥐면 죽대 부러지겠거니 싶을 즈음. 돌연 손에 힘 풀렸다. 뾰족히 돋아 심장 찔러오는 가시 하나 늘어난 탓이다.
제가 감히 그런 생각 할 처지더냐 하는. 일종의 자책. 가책이자 꾸짖음.
담배 내음과 더불어 저를 옥죄는 그것 아니었으면 당장 저 앙상한 손목 잡아채어 누구를 보느냐 다그쳤을 것이다. 그리 할 수 없어서 다행이었다. 주절주절 들려오는 목소리 들으며. 비뚝 기운 머리에 머리칼 사이 붉은 수정 반짝인다. 담지 말아라. 흘려 듣자. 스스로 되내이며 필요한 최소한의 말 만을 입에 담았다.
"답지 않은 날도 가끔은 있을 만 하지요."
그 영이란 사람도 사람이라면 말이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말 혀와 같이 씹어 삼켰다. 담배 얘기엔 조만간 끊을 겁니다 하고 뚝 잘라 답했다. 아. 문득 눈치 빠른 제가 원망스럽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알고 싶지 않아도. 아회 말과 행동에 그 영이란 자 누구인가 그려진다. 아회와 가까우면서 걱정 그다지 하지 않으며 흡연을 하고 동정을 부차적인 것이라 표할 만한 사이이며 묻는 말에 얼버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답해주는 상대. 저보다 지낸 시간 오래일 것 분명해 뵈는 분명하게 만드는 상황의 연속에 스스로 휘말려드는 듯 했다.
답지 않아? 다른 사람 같아? 누가 할 소리를.
끊고 싶다. 다시금 저 웅크린 어깨 붙잡아 고성 지르고 싶다. 악 쓰고 싶은 마음 동시에 그러면 안 된다 목 죄는 마음 있다. 아니지. 안 된다고? 솔직해져라. 이 둘도 없을 상황을 직접 끊고 싶지 않을 뿐이지 않나.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어떻게 저 본 적 없는 모습 볼 건데. 지금이 아니면 저런 말 언제 들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덤덤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 기울인 채로 눈만 굴려 저 봉긋한 두루마기 덩어리 보았다. 평소와 같이 초연해졌으나 분명 제가 보던 것과는 다른 그 얼굴을. 제가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저는 모른다. 잠시 응시하다 정 반대로 눈 돌리고 담배만 태웠다. 그리고 말했다.
"...무엇이 그리 불쾌할 것 같으십니까."
딱히 그 영이란 사람 의식해서 말 고르진 않았다. 그저 제 오라비 흉내 내었던 것이 점점 비틀려가는 심사에 비추어 그럴 듯 하게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목소리 역시. 낮게 가라앉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