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_자캐에게_할로윈_사탕을_다_먹어버렸다고_한다면 : "아, 그, 그게…….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 그만큼 드시고 싶었던 걸 테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으시다면, 그러니까, 그게." "ㅈ, 제가 사용인 몰래 숨겨둔 사탕이 있는데, 그것도 드실래요…?"
자캐의_공포를_참는방법 : 아회에게 있어서 느낄 수 있는 공포의 범주는 무의식이 반응하고 방어기제가 착실히 일을 하는 것일 텐데, 과연 참을 수 있을까요…? 불가항력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물지요. 아회는 최소한의 반응으로 공포를 승화할 수 있다 생각한답니다.
자캐가_현실세계에서_구사하는_언어는 : 음~ 분명 무 씨는 한국계니 한국어를 쓸 것 같은데, 어째 제 마음 속에서는 고대 중국도 생각이 나서인지, 중국어도 쓰지 않을까~ 싶답니다. 픽크루나 네카가 한복이 아닌 치/창파오나 한푸를 주 아이템으로 내세워서 그런가...?
#오늘의_자캐해시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436 자캐는_어떤_이유로든_방황했던_적이_있는가 : 있답니다. 어릴 적에, 그리고 지금도 방황하고 있죠. 인생의 기로는 늘 방황하는 법이라 생각해요~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새로운 길을 걷는 게 사람 사는 것 아니겠나요? 바라는 길로만 간다면 만사 오케이죠~
112 자캐의_이상형 : 음 어 아~ 모르겠네요~ 아회에게 이상형이 있나? 달리 이상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막말로 살아있는 사람이면 된다...라고 하기엔 얘는 뭐 살아있지 않아도((심해에서 기어올라온 발언이 이어질 것 같아 생략할게요))
96 자캐가_일어나서_가장_먼저_하는_일은 : 음~ 목화가 잘 자는지 확인하기? 요즘엔 그렇다네요~
아회, 이야기해주세요!
#자캐썰주세요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90034 아회, 어서오세요. 오늘 당신이 표현할 대사는...
1. 『가엾게도』 : "저런. 안타깝게 됐소."
2. 『사라지고 싶지 않아』 : 이걸 또 주네요~ 못된 진단 같으니라고! 그래서 다른 최후도 조금 상상했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여기에서 저승길 같이 갈 동무라도 끌고 갈 생각인데 어찌, 그쪽 태도를 보아하니 영 절박하지 않구나." "…어쩌나, 난 절박한데."
"영아, 네 거기 있니. 그래, 있으면 말벗이라도 해주려무나. 응? 그게 무슨 말이더니. 잠이 오지 않냐니, 새삼 당연한 것을 묻는구나." "그냥 오늘은, 날이 영 마땅치 않아 밤을 새우고 싶구나. 괜히 그런 날이 있지 않더니. 오늘이 날일 뿐이다." "네게 너무 많은 말을 했구나. 열 냥의 가치는 넘는 중대한 말일 터인데……. 하하, 녀석, 긴장하기는! 농이다, 농. 내 너를 어찌 손대겠어. 여기서 널 보내버리면 많이 섭하지." "거사를 위해 일평생을 함께 하기로 했잖아. 그렇지?"
3. 『이제야 말해주는구나』 : "……너무 늦지 않았소." "만일 공이 소인에게 3초만 더 일찍 얘기했더라도, 소인이 파인애플을 수프에 넣으면 대단한 일이 벌어진다는 청룡 아이의 말에 속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오…… 수프가 참으로 새콤하구료……." < 꿍얼꿍얼!
"이제야, 이제야 말씀하시는군요. 다만 너무 늦었지 않았습니까……. 단 1년이라도 일찍 말씀하셨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인데. 군자의 세월이 어느덧 10년이거늘." "이미 엎질러진 운명을 어찌 수습하오리까. 부적을 태우십시오." "무덤은 하나만 파두었으니 말입니다."
>>3 쟤랑 쟤랑 저기있는 애랑 그리고 쨰랑.. (온화주는 임가현주를 쓰다듬었다!)(임가현주는 투정부리기 시작했다!)(?) 아늬 이 날씨에 따끈하게 해둬버리면 나는 찐만두가 되고 말거야~~~! 하지만 어장의 온기라면 그렇게 되더라도 좋지 차라리 날 만두로써 살게 해줘... (??)
>>4 할로윈 사탕 다 먹어도 괜찮다고 하는게 어른스러운데 성장스토리 떠올려보면 또 짠하고 그래~~ 숨겨둔 사탕까지 내어주는게 어른스러운 느낌도 있고 물건에 미련이 없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고대 중국어 쓰는거 좀 끌린다 ㅋㅋㅋㅋㅋ 언어도 배경도 그 시대에 투입해보면 진짜 맛깔나는 사극 한편 뚝딱인데~~! 맞아 방황하더라도 새로운 길 찾고 그 길 중에서 바라는 길으로 가는것만큼 좋은건 없으니까~~! 현실에서도 유용한 이야기를 캐릭에게 적용하니까 덕질해야할 이유가 한층 늘어난 느낌 X3 심해에서 기어올라온 발언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음. 오케이. 해석 완료(?)
사라지고 싶지 않아 저거는 내가 놓친게 있나 해서 정주행해봤는데 아니 이런 맛집이 또 있었단 말여...?? 지난번꺼는 처절하면서 애절한 느낌 한껏이라면 이번꺼는 꽤 담담하면서도 한켠으로는 비장한 느낌 한가득이라 비교하면서 즐기는 재미가 있는걸! 무덤은 하나만 파두었으니 말입니다. 이 대사 너무 멋있는데 파인애플 수프 때문에 집중을 못하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따뜻한 과일은... 파이에 들어가는 과일만 인정... 나머지는 인정할수 없음....! 😑
사탕은 응, 다 먹어도 된다니까 마음껏 뺏어가도 된답니다...(?) 어릴 때부터 달리 미련은 없었?다?나? 봐요~ 그쵸그쵸, 고대 중국어로 얘기하는 아회... 저도 가현이를 덕질할 이유가 더 늘었다고 받아들여도 되는거죠?! >:3 ㅋㅋㅋㅋㅋㅋㅋㅋ앗, 해석은요~ 응~ 그렇~네~요~ (고장!)
저번에는 좀 발악? 유언? 이었다면 지금은 전투와 호상이래요~(취급이 너무함) 수프... 파이... 어, 파인애플... 피자...? >;3
>>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맞아 문지방에 엄지발가락 찧고 뽑아둔 콘센트까지 밟아야한다고 생각해 (히) 미식은 언제나 즐겨줘야지~~~! 물음표 붙는게 굉장히 의미심장한데...? 있지만 한껏 없는척 하는것 같아져버려~~! 고대 중국어가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막 그럴거같애 좀 분위기 있는 드라마에서 왕족들이나 쓸법한 그런 말투..? 앗 임가현이 갑자기 거기 왜 들어가 에헤이 그거 지지야~~~! (임가현 뒷덜미 잡고 쏙 빼냄) 하 우리 아회를 조금 더 애껴주세요 ㅠㅠㅠ 하지만? 그래도 진단에서 이런 꿀맛 대사들을 볼수 있다는건 어쩌면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 저번에 아회랑 개여시 진행에서 찐하게 대립 각 세워둬서 그런가 언젠가 첫번째 대사를 직접 캐입으로 듣고 싶다는 몹쓸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ㅋㅋㅋㅋㅋㅋ... 으아아악 파인애플 피자라니 멈 춰!!!
그거 알아...? 안 자도 내일은 와.... 아니 이미 왔어.... ^-ㅠ 조금이나마 덜 힘든 하루를 보낼수 있도록 얼른 푹 자자~~!
오늘의 위스키는 라이터즈 티얼스(Writers Tears)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리쉬 위스키예요. 그중에서도 코퍼 팟이요. 오크도 마셔보고 싶은데~ 위스키가 좀 많아져서 자중하려고요...🥲 싱글 몰트와 코퍼 팟(아일랜드 전통 증류)의 블렌딩 위스키인데, 아이리쉬 위스키들이 그러하듯 부드러운 맛으로 입문하기도 편하지만, 그레인이 많이 섞여 끝맛이 톡 쏘는 듯한 유니크함이 특징이에요. 신선한 느낌이 든 뒤 달고, 부드러운 느낌이, 끝으로는 향신료 풍미가 있다 해야 할까요, 다크 초콜릿과 궁합이 좋답니다.
뭐, 이런 주절거림 보다는요, 이 위스키가 특별한 이유를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19세기~20세기 초반까지 아이리쉬 위스키와 아일랜드 문학이 호황이었고,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한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은 자연스레 아이리쉬 위스키를 영감의 원천으로 여겼노라는 이야기가 있답니다. 그 시절의 작가들이 위스키를 한 모금씩 즐기고 사람들을 눈에 담고, 영감을 받아 글을 썼단 이야기가 전해지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엔 스틸 팟과 몰트 위스키를 블렌딩한 블렌디드 위스키가 대단한 인기를 얻었고요. 동시에 작가들이 하도 위스키를 사랑하다 보니 향간에 떠도는 말로는, '그들의 감정으로 비롯하되 환희하거나 비탄에 빠져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이 위스키로 되어 있을 것 같다'(that they enjoyed it so much, that when they cried, their tears were of whiskey.)고 해요. 그만큼 아일랜드의 작가들이 위스키를 즐기며 마셨던 시기였고, 위상이 높았으며, 이 위스키는 그 당시의 것을 현재적으로 재현한 제품이랍니다.
즉! 위대한 창작의 순간을 함께하였던 위스키라는 말이고, 그 영광을 여러분께 한 잔 바치고 싶었답니다... 여러분께도 위대한 창작의 가호가 함께 하셨음 해서요~🥰
위스키라는 녀석들이 호달달 하지만, 한 잔당 1oz-1.5oz 사이로 마신다는 걸 감안하면 나를 위한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되곤 하더라고요.😋 언젠가 마음이 동한다면, 혹은 내게도 작은 선물이 필요하다 싶으면 구매하시는 걸 추천드려요. 술이라는 것은 다수 그런 법이니까요.🥰
이리저리 들쑤시면서 찾기엔 정말로 도움이 안 되기에 도움 안 된다 말했을 뿐이고 뻔뻔함에 관해서도 제 주관 밝혔을 뿐인데, 그것들은 겸양과 포용 쯤으로 절로 포장되었다. 거기까지는 유현도 어느 정도는 의도한 지점이었다. 그러나 그 호감이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어 끝없이 치솟고 있다는 사실만은 그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몰라서 다행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알았더라면 겨우 평범하게 이끌어 온 대화가 또다시 재미없는 인간 탐구로 새었을 테니……. 아니나다를까 어찌저찌 굴려서 여기까지 도달한 회화에도 슬슬 한계가 찾아왔다. 평소대로 제 하고 싶은 이야기 하는 것이라면 문제 없으나 친절한 사람인 체하는 건 어렵다. 마땅히 평범하거나 살갑게 들릴 법한 대답 떠올리지 못한 그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잠깐이라기엔 조금 길고, 그렇다고 상대의 말 무시했다고 치기엔 애매한 짧은 시간이 흘렀다. 적당히 부드럽게 지은 미소가 그나마 시간을 끌며 침묵의 의중을 흐려 주었다. 속으로 팽팽히 돌아가던 머리가 드디어 그럴싸한 답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을 안 했었죠? 저는 화유현이라고 합니다. 백룡 4학년이에요."
영원 같던 찰나간 열심히 생각해 본 결과, 유현은 그냥 딴소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대화의 맥락 상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소리는 아니었으리라. 그는 이내 늘봄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쩐지 조금 각오를 한 듯한 상대방의 모습을 가만히, 그러니까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말은 곧 일어나서도 스스럼없이 꽤 가까운 거리에 붙어 있었다는 뜻이었다. 부적 꺼내는 모습 멀뚱멀뚱 구경하던 그가 그제야 한 마디 덧붙였다.
"아, 사실은 제가 눈이 좀 어두워서 말이에요. 제대로 보려면 이렇게 해야 할 것 같네요."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으나 말하는 투는 양해보다는 통보에 가까웠을 테다. 그리 말하는 표정 여전하게도 미미한 미소 남아 있었다. 단순히 미소가 잦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눈썰미 좋은 사람이 보기엔 그 표정에서 미묘한 괴리가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 배려, 적절한 열중, 소통에 필요한 그것들을 꼭 표정 하나로 죄 때워버린 듯한 모습이지 않은가. 정체되었던 공기가 일제히 흐르며 곧이어 바람이 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히 한 곳으로 몰려드는 흐름이 그에게도 느껴지는 듯했다. 인위로 자아낸 연풍의 끝에는……. 음. 역시 깨알같은 인형 눈은 안 보인다. 그는 늘봄의 곁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화유현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잘하는_운동 화유현이... 잘하는 운동...?(생전 처음 보는 단어 등장 짤)
숨쉬기... 밍기적.....
가끔 체력단련 수업... 끝.....
자캐가_고문을_당한다면 예? 갑자기 이런 살벌한 질문이...ㅋㅋㅋㅋㅋㅋ 어떤 비밀이나 정보가 목적인 고문이라면 그냥 당하기 전에 알아서 다 불어요. 진실의 주둥아리 on!🤦🏻♀️ 고문자체가 목적인 고문, 불리한 자백이나 증언이 목적인 경우, 본인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사안 같은 경우라면 상황에 따라 일부러 시간을 끌거나 저항하기도 하겠지만요. 그렇지만 웬만해서는 '저라도 해도 고통은 반갑지 않아요 사양하겠습니다 낱낱이 실토할 테니 우리 좋게 좋게 넘어갑시다'가 기본 스탠스겠네요... 어딜 가도 배신 잘할 상임(핵꿀밤!)
자캐가_휴게소에_들리면_먹는_음식 아무것도 안 먹어요!
"정량 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프다는 의미인가요?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고요? 설마 실질적인 공복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음식을 먹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는 건가요? 저로선 이해하기 힘든 감각이네요." 라고 한대요... 이자식 카페 가면 아무것도 안 하고 커피만 마시는 미치광이일 거야(?)
1. 『난 네 편이야』 "제가 지금껏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요. 그러니 불신 역시 어느 정도는 감안할 수 있어요. 신뢰성 없는 호소는 할 수야 있겠지만 좋은 수는 아니겠죠? 그러니 방향을 바꿔 봅시다. 저를 믿기보다는 제가 당신의 편이 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적 조건과, 저를 편 삼기로 한 당신의 안목을 믿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마음 놓이실까요?"
"정말이에요. 저는 당신의 편입니다. 당신이 믿지 못할지라도 이번엔 그 사실 불변할 테죠."
2. 『왜 이제 말한거야』 "왜 이제야 그런 말씀을 하시죠? 저는 분명 당신의 동의를 구했고, 당신 스스로 찬동하지 않았던가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할말이 많은 표정이시네요. 네, 가감 없이 말씀해 주세요. 당신의 반발로 인해 이 일이 얼마나 망쳐질지에 관해선 우선 미루어 두죠.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당신의 심정과 이유를 가장 알고 싶으니."
3. 『마음은 기쁘지만』 "그동안의 고찰과 성찰의 결과로 미루어 본 바, 저는 이 상황을 썩 만족스럽게 느끼는 것 같아요. 아니, 어쩌면 단순한 만족 그 이상의 감각을 느끼는 중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기분마저도 '고작'이란 생각이 드네요. 어째서일까요? 분명 욕구는 충족되었는데도, 만족할 수가 없어." "……."
>>50 ㅋㅋㅋㅋ 우리 유현이는 숨쉬기 운동의 권위자로구나~! 귀여워 ㅋㅋㅋ 아니 배신 잘할 상 ㅋㅋㅋㅋㅋㅋ 그래그래 아픈것보다 호로록 불어버리는게 낫지~ 어 휴게소에 들렀는데 아무것도 안 먹는다구? 그럴순 없지 당장 데려다가 버터알감자 석화구이 오징어 마약 옥수수 세트 먹여버려~! 유현이를 골려줄 땐 이에 들러붙는 끈적이는 걸 먹이자...(메모)(?) 유현이의 거짓말은 뭐라고할까~ 그냥 생각나는대로 뱉어본다? 라는 느낌이야 ㅋㅋㅋㅋㅋ 그래서 들켜도 아 그래? 아님말고 한 적 자주 있을거 같은 적폐~ 대사 진단은 1번 보니 딱 그런 질문이! 유현이가 어떤 형태로든 온화에게 신뢰의 표시 같은 걸 한 적이 있을지? 말이나 행동적으루~ 2번은 가벼운 백룡맨 모먼트라면 3번은 딮-한 백룡맨이 나오려고 하는구나...! 뭐가 부족하니! 우리 유현이 하고 싶은거 다 해! ><
>>52 ㅋㅋㅋㅋㅋㅋㅋㅋ입 어디까지 가 벼 워 지 는 거 예 요? 거사를 계획할 때는 이 친구를 빼는 걸 권장드리며...😊 우아악 지금 살짝 배고픈데 휴게소 음식 썰 보니까 더 배고파졌어요... 근데 화뭐시기는 그거 챙겨주면 각각 1~3입씩만 먹고 남김🤦🏻♀️ 에잇 넘해~ 하지만 왠지 츄잉검이나 엿 같은 게 취향이 아니라는 티엠아이를 말하고 싶은 기분은 왜일까~😙 그리고 온화주 해석 정답!! 들키면 아무렇지 않게 발뺌하거나 네가 잘못 이해한 거라며 책임전가하거나, 대놓고다른 이야기를 꺼내서 회피할 거예요. 제캐지만 정말 꿀밤 먹여주고 싶어라...() 거짓말 스타일은 1.일단 아무렇게나 막 던진 말이지만 뻔뻔한 태도로 정신차릴 틈 없이 밀고 나가거나 2.나름대로는 고심해서 그럴듯하다 생각하고 꺼냄... 인데, 2번의 경우 사고방식의 문제로 보통 사람이 보기엔 앞뒤가 맞지 않아 폭사하는 경우도 많아요....😇
앗 오늘도 완전 맛있는 질문~⸜(*ˊᗜˋ*)⸝ 음~ 널 믿는다며 드러내놓고 티를 낸 적은 없지만, 직접 말하진 않아도 특별대우하는 지점은 있네요. 온화한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 일부러 모호하게 구는 경우는 있어도 작정하고 속일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일반적으론 듣는 당사자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말("네 등 뒤에 칼 꽂을 거임")을 솔직하게 꺼내기까지 할 정도기도 하고요. 이 지점은 유현이에게 있어서는 굉장한 표현이긴 한데... 친구한테 그게 할 말이냐 역시 오너로서는 또 꿀밤 먹여주고 싶어요...😇
>>54 유현주도? 나도~ 배고파서 자꾸 간식박스에 눈길이 가~ ㅋㅋ 유현이 식성은 온화가 다 파악하고 있을테니 하나씩 사서 유현이 몇입 먹여주고 온화 먹고 그럴거 같네~ 히히 적폐 맞았다~ 이럴때 기분 짱조음~ ♪(´▽`) 고심한 거짓말이 오히려 폭사할 때가 있다니 유현이 허당끼 증말 ㅋㅋㅋㅋㅋ
오호~ 일부러 속이지는 않는다는거지? 모호하게 구는 거에 왠지 '속인게 아니라 말을 안 했을 뿐'인 것도 포함인거 같은걸~ 온화야 어릴적부터 익숙하니까 대놓고 칼 꽂느니 어쩌니 해도 상처받지 않는다구~ 오히려 유현이라면 속이는 걸 알아도 속아줄거야~ 마 그게 우정 아이가~(?)
음, 칭찬이 좀 부담스러웠나? 아마 그랬나보다. 손늘봄의 머리는 또다시 제멋대로 상대의 침묵과 미소 속에 담긴 의중을 지레짐작한다. 겉으로 보기엔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얼추 손발이 맞아 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서로 영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이 상황이 한 편의 희극처럼 보인다. 배우들에게도 본인의 파트만 주어져서 전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극본으로 연기하느라 파트너의 마음조차 바로 알 수 없는 기이한 연극. 하지만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적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렇다. 애초에 첫만남부터 모든 것을 까발리고 속을 뒤집어 전부를 내보여야 할 이유는 뭔가? 포장된 선의와 오해로 빚어낸 호감은 정녕 진정한 선의와 호감이라고 할 수 없나? 더군다나 그것이 단편적인 첫만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진실되지 않은 감정일지라도 긍정에 가깝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괜찮지 않을까. 이 질문에 정답은 없겠지만 적어도 현재 손늘봄의 유현에 대한 첫인상과 호감도는 하늘에 닿는다. 그럼 그걸로 된 일 아닐까. 비록 언젠가 돌변할지 모르는 일시적인 감정이라도, 중요한 건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니까.
"성공... 성공... 했나? 했을까요? 했을지도?"
성공한 것 같냐고 묻는 목소리에 늘봄은 꽉 감았던 두 눈을 서서히 뜨며 눈동자를 데굴 굴린다. 한 쌍의 물망초 빛깔 눈동자에는 일말의 기대가 담겨 있다. 바닥부터 동글동글 원을 그리며 구르던 늘봄의 시선은 이윽고 스스럼없이 꽤 가까운 거리에 붙어 서 있는 상대에게 가 닿는다. 어, 가까워. 어째 도로 귀끝이 조금 뜨거워지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눈이 좀 어둡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건 어쩔 수 없는 거군. 그렇지? 하지만 저 은은한 미소는! 달디단 꿀을 머금은 혓바닥처럼 머리가 아려온다. 우와, 심미적 의미로 치명적이다. 이 사람 본인 미소가 위험한 걸 알까? 알아도 문제고 몰라도 문제다... 뭐라고 이름 붙이기 애매한 위화감이 한번 더 가슴 속 깊은 어딘가를 건드리고 지나간 것 같긴 하지만— 근데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이번에도 다른 이유로 상대에게 느낀 위화감은 한꺼풀 덮어지고 만다. 어쩌면 지금의 괜찮은 기분을 굳이 깨기 싫어서 회피했을지도 모르고. 늘봄은 어째 한순간 스스로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생각 들었다. 그렇지만 역시, 아무렴 어때.
"어! 여기!! 여기이!!! 와!!!!"
그 순간, 도르륵... 통통... 톡. 하는 익숙하고 쥐콩만한 소리가 늘봄의 청각을 자극했다. 시선을 발끝으로 떨어뜨리자 두 사람의 발 근처로 겨우 돌아온 작은 구슬이 보인다. 늘봄은 목소리를 점층적으로 키우며 쾌재를 불렀다. 허리를 후다닥 숙여 돌아온 분실물을 집어올린 늘봄은 이윽고 눈이 어둡다던 당신이 보기 좋도록 구슬을 반짝 들어보였다. 정말 작고... 작다. 솔직히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크기다.
"와, 못 찾는 줄 알았는데! 찾았어요, 찾았어! 헤헤, 기뻐라. 아 참참. 이름! 제 이름도 얘기해야죠! 청룡 기숙사 4학년인 손늘봄이예요. 동갑이었네요, 우리!"
늘봄의 얼굴엔 맑은 웃음이 꽃핀다. 겨우 찾아낸 구슬 녀석이 또 도망가면 곤란하니 빠르게 반짇고리를 꺼낸 뒤 도로 안전하게 집어넣은 늘봄은 손이 자유로워지자 기쁨을 못 이기고 양 손을 꾹 쥐었다가, 아마 유현이 피하지 않았다면 유현의 손을 잡고 한바퀴 빙글 돌려고 했을 것이다. 피했다면 또다시 예의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갈길 잃은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고 그저 만세를 불렀겠지만.
"아! 속이 다 시원하다! 너무너무 고마워요, 정말. 아, 그렇지. 어차피 동갑인데 말 편하게 해도 돼요! 나는 유현이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정말이지 주술 써보란 조언 없었으면 하루 종일 무릎으로 바닥 청소하고 다닐 뻔했네. 너무너무 고맙고... 너무 친절한 학우님이고... 헤헤. 아, 기뻐라~ 행복해~"
에이드의 존재를 상기시켜주니 겨우 도령 표정 풀리며 빨대 문다. 그래- 할 수 있는 말 없다면 그저 먹기나 해야지. 저도 홍차 마시며 이제야 이쪽 보냐는 둥 하자 잠시 식었던 허연 얼굴 다시 붉어졌다. 거 참. 놀리는 맛이 별미인 도령이다. 방금처럼 표정 없이 구는 건 영 마음에 안 들었으니 괜히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오늘 이 자리 한정이지만.
"오래 살고 싶으면 가능한 주변에 눈 돌리지 않는 것이 좋긴 하지. 허면 사는 이유가 있나 싶지만. 아이고. 뭐가 그리 급해?"
음료 잘못 마신 듯 켁켁대길래 온화 낄낄 웃으며 등 쓸어주려 했다. 이것도 저 때문인가? 아무렴 어떤가. 등 적당히 쓸어주고 식은 홍차 한 모금 느긋히 머금었다. 식을수록 쓴 맛이 강해져 다 마실 즈음엔 혀가 얼얼하겠거니 싶다. 다른 무언가를 먹어야 할까. 아까 보았던 메뉴 중 오늘의 디저트에 무엇 있었나 떠올려보다가 도령 목소리에 눈 한 번 깜빡였다.
"음? 하나든 한 번이든 물고 싶으면 몇 번이든 좋지. 도령 취향은 어딘가? 여기?"
아주 그냥- 마음 놓을 틈 주지 않을 듯 말장난을 하며 목덜미 쪽 옷깃을 슬쩍 들춘다. 희고 매끈한 목덜미 슬그머니 드러나도록. 그래놓고 키득키득 웃는게 매우 얄밉기도 하다. 옷깃 두어번 팔락거리다 놓고 웃음 띈 얼굴로 도령 보았다.
"무얼 묻든 도령 자유이나 나도 질문 요지에 따라선 답을 아니 할 수도 있네. 그것만 염두하고 물으시게."
도령 그랬던 것처럼 저도 질문 따라선 답을 안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미리 말하곤 턱짓 까딱 한다. 이제 물어보란 듯.
가끔- 발이 땅 딛지 아니하고. 몸이 허공 붕 뜬 듯 느껴질 때가 있다. 도술을 쓴 것도 아니거늘. 그럴 때는 늘 그렇다.
그래. 저는 지금 꿈 속에 있었다.
낯익은 듯 낯설음 느끼며 눈 떴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제 몸 돌아보기였다. 쥐었다 펴는 손 조그마하고. 산발에 가까울 머리 가지런하니 곱게 내려져있고. 무엇보다 목- 가느다란 목에 아무것도 없다. 안경도. 귀걸이도. 걸친 것 없이 한 때 가장 아끼던 예쁜 나들이옷 차림의 저였다. 가장 고우며 아직은 어렸던 그 시기의.
오늘은 이런 꿈이로구나.
아직 생기 초롱초롱한 눈 천천히 깜빡였다. 이대로 깨어날까 하다가 조금 나아가보기로 했다. 자그마한 손 가벼이 쥐고 고개 꼿꼿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 둘러보았다. 눈 닿는 곳까지.
요리조리 돌아보니 늘 쓰는 제 방인 듯 싶다. 몸이 작아져서 그런가 하나 같이 큼지막하게 보인다. 몸에 익숙해질 겸 방 안 한 바퀴 달려본다. 도도도도. 손만큼 작은 발이 요란하지 않게 소리 내었다. 키드득. 그게 어쩐지 재밌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럼 이제 뭘 해볼까?
제가 생각한 건지. 누가 속삭인 건지. 무언가 해야겠다고 느껴 다시 주변 보았다. 제일 먼저 침대가 보여서 다시 우다다 달려가 침대에 푹 묻혔다. 몸이 작으니 평소보다 더 푹신하게 느껴진다. 이대로 자버리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긴 했지만 모처럼인데 아깝다. 작은 몸 열심히 움직여 침대에서 내려왔다. 머리와 옷 토닥토닥 두드려 정리하고. 토닥토닥 걸어 문으로 다가갔다. 문 손잡이가 조금 높았지만 발돋움 하니 열 수 있었다. 철컥. 잠금 열리는 소리 나며 끼익. 문 열렸다. 열린 틈으로 고개 내밀어 바깥 슥 살펴보고. 냉큼 문 밖으로 나갔다.
>>152 주량은 제법 되는 편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위스키 두 잔 정도는 괜찮은...? 천천히 마시는 기준이고, 한국인 평균 잔 채워! 건배! 하는 술집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면 1병 하고도 반, 2병 정도 마시면 기분 좋게 취해서 노래방 가는 정도의 취함 정도를 생각하고 있답니다.
취하면 자리를 벗어나려 들어요. "형님이 기다리고 계셔서..." 같은 자신이 절대 언급하지 않던 유일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하겠죠...🤔 제법 얌전한 주정이라, 돌아가야 한다며 계속 자리를 피하려고 옹알대다 어느 순간 조용해지면 잠든 거랍니다. 웃음도 늘어요. 예쁘게 웃는 편인데다 웃음이 간드러지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웃지 않던 아회가, 하물먀 평소 아무런 반응 없던 농담에도 으하하, 하면서 박장대소 하겠네요.
>>153 커피... 아회는 무조건 아메리카노랍니다. 시럽은 앖이요. 스무디와 프라페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당류가 많다는 이유라고 해야 할지... 정확히는 너무 단 것을 '마시는 행위'는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도 스무디를 마신다면 망고 스무디를 가끔, 자바칩 프라페를 가끔 마실 느낌이어요.
아, 늘봄이 노래... 인어공주 영화로 보러 갔을 때 들었던 그 노래의 한국어 버전이군요...!! 최고여라...
출신 지역을 생각해서 푸른 빛이 돌게끔 엘더플라워 베이스를 사용한 칵테일을 생각하고 있어요. 블루 큐라소와 엘더플라워, 그리고 약간의 탠커레이, 마지막으로 캐나다 드라이나 주스 계열을 넣는 거죠!
아회 자체를 생각한다면 크렘 드 바이올렛, 블루 큐라소, 체리 리큐르, 하우스 진(칵테일용으로 자주 쓰는, 가게의 흔한 진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레몬 주스를 합치지 않을까 싶어요. 이 모든 리큐르를 합치면 gray ghost라는 해외의 마이너 칵테일을 만들 수 있거든요. 희미한 잿빛에, 향긋한 듯 은은하면서도 진을 다른 술로 바꾼다면 참 독하게 되는 녀석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이상한 거라는 게 다름이 아니라 이거라서요... 링크 참조하시기!😉 적폐캐붕사심덩어리 픽크루였습니다~(짤)
니오주도 어서오세요!!! 요즘 바쁘신 것 같아서 걱정됐는데 오랜만에 다시 봐서 반가워요~⸜(*ˊᗜˋ*)⸝
>>159 오오 역시 술잘알 아회주~ 일반 주량과 코리안 주량을 따로 계산하는 섬세함...! 아 아니 형님 이야기를...? 웃어...? 이... 이렇게 굴면 유죄야 아회 이 귀여운 재롱둥이 가만안둬~!!!!!(호로롭!) 귀여우면서도 평소엔 절대 내보이지 않는 데 이유가 있는 행동들이라 살짝 눈물이 나요...🥲
몽롱한 건지 졸린 건지 몰라도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정신이 뿌옇게 흐트러지고 현실감이 없다. 손늘봄은 두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깜빡, 깜빡.
어둡다.
모든 것이 검다. 한치 앞 모를 어둠에 공포감이 더럭 몰려온다. 늘봄은 눈을 다시 감았다가 뜬다. 아니, 감았다 뜬 게 맞을까? 여전히 눈앞은 검었고 몸을 감싸고 있는 천의 촉감은 잠들 적 입고 잠든 옷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그저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하얀 천의 움직임으로 걸쳐진 게 내 잠옷이긴 하구나, 지레짐작 할 뿐.
여기 어디지? 이거 꿈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현실이면 눈 앞이 왜 새까맣기만 하지? 잠든 새 눈이 멀어버리기라도 한 게 아니라면 이 망망대해 같은 어둠이 설명되지 않는다. 늘봄은 제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모르고 손을 휘저었다. 다행히 발 딛고 있는 곳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은 아니었던지 무언가가 손끝에 닿는다. 단단한... 문이다. 문고리가 잡힌다. 잡아 돌리는 동시에 힘주어 밀어보자 얄팍한 문은 어렵지 않게 열리고, 그 틈으로 새하얀 빛이 들이닥친다. 손늘봄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가 도로 천천히 떴다. 꿈이든 생시든, 여기가 어디고 뭐가 있나 좀 보자!
인간에게 있어 잠에서 깨어난 듯싶어도 아직 깊은 몽중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잠이 얕아 자각하기도 전에 금세 깨곤 하는 그에게 있어선 이 상황이란 제법 어려운 일이었을 터다. 다만 달리 보자면 이 즉슨 오늘의 잠이 깊었다는 얘기요, 그간 받아온 심적 부담이 컸다는 반증이리라. 고작 1년, 단 1년만 있으면 되는 생활이 꼬이기 시작했으며 그 사실을 회피하고자 잠에 빠져든다니, 자존심이란 것이 제법 심지가 곧되 터무니 없는 것에도 고개를 드는 편에 속하는 그에게 있어 이 상황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
하물며 또렷한 시야 속에서 보이는 몽중이란 자신이 바라지 않는 미지의 시점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세상은 내게 아낌없이 염병에만 고혈을 쏟누나 생각하며 그는 몽중 가장 깊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금 이 상황은 위의 단어 둘 중 아무거나 써도 설명할수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도, 지난번처럼 신의 장난은 아니었기에,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기분과 자신이 자신의 형상으로써 남아있을수 없는 참혹한 느낌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 신 님의 장난에도 꿋꿋이 정신 유지하며 단 한 사람. 영원불멸하며 절대적인 존재 하나만을 바라봤던게 자신 아니었니. 이까짓 꿈 쯤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해.
"으응... 참, 요즘 별에별 일들이 꽤 많이 생기네..?"
사뿐하게 앓는소리를 내며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막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지만- 이것 또한 또 다른 꿈임을 느끼며. 가현은 굳게 잠겨있는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천장이 선명하게 눈에 닿는다. 상반신을 완전히 일으키며 눈을 흘기니 불쾌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온다. 모든 것이 익숙하되 어색했기 때문이다. 교복, 전신거울, 벽난로, 마침내 불쾌함의 정점을 찍는 것은 청룡 선추가 달린 부채였다. 청옥 특유의 선명한 푸른 빛. 그는 눈을 슥 비비고 다시금 선추를 바라보았으나 청옥이 홍옥 되는 일은 없었고, 더욱 선명한 세상만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
꿈이니까 다시 잠들면 어떻게 될까. 꿈에서 다시 잠든다 하여 깨어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나? 평소 같으면 그저 잠들겠으나 지금의 상황은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이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주술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딴, 이딴 고문은 바라지 않았어……. 나를 농락하려고."
차라리 잠든다면 이 빌어먹을 선명한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아, 이 빌어먹을 세상이 나를 농락하려고. 꼬여버린 마음이 가시를 세운다.
삼베라는 것은 거친 녀석으로, 조금만 움직여도 연약한 살갗이 쓸려 새빨간 자국이 남거니와 자세를 잘못 잡고 무릎을 꿇다 보면 허벅지를 찔려 상처가 남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것이 옷을 벗을 이유는 못 됐고, 벗을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즈음엔 크고 작은 느낌이 전부 그러했다. 아픈 것도 없고 배고픈 것도 몰랐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면 무엇에 집중했는지 금세 까먹고 말았다. 얼굴도 이렇다 할 표정을 짓는 법을 잊어버렸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릎을 꿇는 일밖에 없었다. 이렇게 몸이 게으른 것을 보니 시린 북부의 추위가 야금야금 몸을 집어삼키나 보다.
아, 그것참 잘된 일이다.
어린 아회는 멍하니 무릎을 덮어가는 눈더미를 보며 생각했다. 눈발이 거센 것을 보니 이제 종아리를 완연히 뒤덮은 눈은 곧 다리를 온통 뒤덮을 것이다. 그렇게 냉기가 혈관을 타고 오르며 온몸을 맴돌고, 마침내 심장에 냉기가 도달하면 얼음 동상이 되어 더는 움직이지 않겠지. 자신은 북부의 일부가 되고, 북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간절히 소원을 빌고 동상이 되어버린다니, 일면만 보먼 참 아름다운 얘기다. 이 집안의 사람들은 차라리 그래버리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부디 이번만큼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내 바람을 들어준다면 좋을 텐데. 단 한 번이라도……. 아회는 사무친 추위 속에서 뽀얀 숨을 뱉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회의 편이 아니었다. 다시금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익숙한 무늬가 새겨진, 별채 한구석에 자리 잡은 자신의 방 천장이었다. 아회는 한참이고 천장을 쳐다보다 허탈한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따스한 공기가 온몸을 뒤덮고, 어디선가 고소한 내음이 났으며, 부드러운 감촉이 몸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다가왔다. 거친 삼베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 걸로 보아 누군가 분명 아회를 데려와 깨끗하게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음은 쉬이 짐작이 갔다. 아회는 천천히 상황을 파악하고는 몸을 느릿하게 일으켰고, 그제야 보인 전경에 다시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넉넉하게 장작을 넣은 난로, 협탁에 놓인 따스한 옥수수 죽, 몸을 덮은 비단 옷…… 아회는 시선을 내려 몸을 덮은 것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손으로 얼굴을 덮어 가렸다.
어째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걸까.
따스한 피풍의가 몸을 덮고 있었음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무력감이 밀려왔다. 속절없이 떠밀려오는 감정이 온몸을 짓누르고 가슴 깊숙한 곳을 찌르는 것만 같아 몸을 웅크렸다. 귀한 피풍의를 덮어준 것으로 보아 누군가의 온정임은 분명했으나, 아회가 느끼기에는 사생아 따위가 아직 고통을 사함 받기에는 이르다는 것 같았다. 집안을 뒤집어버린 존재, 태어나서는 안 될 인물, 결국엔……. 어찌 되었든 죄 그 자체인 녀석이 어딜 편해지려 들까!
"흐."
아회는 웃음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숨을 뱉고 울음을 삼켰다. 공허하게 몇 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는 얼굴을 꽉 쥐었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참함? 모른다. 비참함이 이런 것이라고 배워본 적이 없다. 슬픔? 아니다. 슬픈 건 이런 곳에서 쓰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어머니의 품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같이 바다에 가자고 했을 때, 차라리 하루만 더 일찍 바다로 가자고 할걸. 그랬더라면 이렇게 서로 떨어지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이 설움을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음이 아회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설렁줄을 당겨 사용인을 불러 그 이야기를 해봤자 돌아올 반응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설렁줄을 당긴다 쳐도 사용인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얼굴을 덮어가리고 새벽 동이 틀 때, 아회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시비는커녕 청지기도 방을 찾지 않았다. 형님 또한 마찬가지다. 소식을 들었다면 본가로 왔을 것 같은데, 자신을 보러 오지 않았다. 다시금 유령이 되어버렸음을 실감했으나 무력감에 짓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 차라리 이 안에서 쓸쓸히 지내다 진짜 유령이 되어버렸으면. 그럼에도 한 명 정도는 나를 기억해 줬으면…….
아무리 누군가 삶을 포기한다 한들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세 번째 밤이 찾아왔다. 그날은 달도 뜨지 못해 별채 안은 어두웠고, 궁상맞게도 빗방울이 흩날렸다. 아무리 귀기 무 씨라 한들 요괴들이 도사리는 북부인지라 호법하는 호위가 있기 마련이거늘 별채엔 호위는커녕 사용인의 발길도 끊겨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아회는 별채에 홀로 남아 한참이고 창밖을 바라봤다. 공허한 눈빛을 뒤로 벼락이 쳤을 때, 무언가 뚝 끊기는 소리를 뒤로 아회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촛불 하나 없이 몸을 일으켜 침상 밖으로 나섰을 뿐.
관리가 안 되어 풀이 무성히 자란 땅은 물에 젖어 미끄럽고, 차가운 빗방울은 살을 에고 서늘하게 몸을 적신다. 세상은 어두웠고 바람은 매서우며, 이따금 치는 천둥번개는 귀를 먹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길게 뻗은 머리카락이 물기를 머금어 빛을 잃었고, 눈빛은 알 수 없었다. 아회는 유령이 되어 비바람 속을 배회했다. 세찬 비바람 속에서 휘청이는 발걸음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우면서도 옷깃 나부끼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그마한 유령이 향한 곳은 유일하게 빛이 남아있는 본채의 한구석이었다. 호위는 유령의 존재를 눈치채어 경계했다.
"누구냐." "……."
호위는 유령을 정확히 마주 보다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사락거리는 소리를 뒤로 창호문이 끼익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달캉, 하고 문이 닫혔을 적, 호위는 뒤를 돌며 깊은 시름에 빠져 탄식했다.
다 젖었네. 우산도 없이 온 걸까…… 여긴 어쩐 일이에요?
아마 당신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있었나, 잠을 잘 채비를 마쳤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학업에 열중했나. 아회는 대답 대신 몽롱하게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리고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젖은 맨발이 족적을 남겼고, 젖은 머리카락은 길게 줄을 그었다.
"용서해 주실 거죠. 제가 이렇게 방자히 굴어도."
형이라면 용서해 줄 거라 믿어요. 제멋대로 얘기한 아회는 팔을 벌렸다. 조그마한 몸을 파묻고, 옷깃에 고개를 묻었다. 실로 무례한 행동이었다. 젖은 몸으로 타인 품에 파고드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몸에 온기가 퍼지는 것이 지금은 더 중했기 때문이다. 아회는 등허리를 팔로 감으며 눈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긴 속눈썹이 올라가 공허한 눈동자를 온전히 드러냈다.
나긋나긋 속삭이는 목소리는 작았다. 어린 나이에도 감정이 무뎌지듯 어딘가 마모되어 삭막했고, 몽롱한 눈 너머로 투명하게 무언가 차오르다 공허하게 떨어지길 반복했다. 목 놓을 수도 없었다. 울음소리를 들켜 본관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님이라도 나타나면. 아회는 품에 고개를 묻었다. 자신보다 큼직한 존재의 품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그리고 꿈결을 걷듯 나긋한 목소리가 작은 몸집에서 흘러나왔다.
"형, 별채는 춥고 어두워요…. 저는 사무치게 외로우니 부디 오늘만큼은 밤 동안 함께 있어 주세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더라.
아회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한참을 침묵했다. 우습게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호위를 보고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버리고 말았다. 과거를 회상하던 자신을 속으로 몇 번 탓하고는 아회는 손을 뻗었다. 아직 감상과 현실의 경계에 위치했는지 느릿한 손길은 멀리 가지 못하고 다시금 침상 위로 툭 자리를 잡았다.
"영아."
아회의 나긋한 목소리에 검은 머리를 질끈 올려 묶은 금빛 눈의 남성은 고개를 한층 더 깊이 숙였다가 들어 올렸다. "예, 주군." 묵직한 목소리가 기숙사실 안을 울렸다. 암실 속은 벽난로가 피어오르지 않고, 땅 신령은 단잠에 빠져든지 오래였다. 호롱불 하나에 의지하던 아회의 얼굴이 천천히 드러났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영원한 것이 있다 보니?" "……아니요,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합니다." "그래. 영원한 법은 없는 법이지……."
아회는 느릿하게 중얼대다 침상 위에 모로 뉘었던 몸을 뒤척이더니 이불을 그러쥐었다.
"이부자리가 차구나." "난로 불을 피워드릴까요?"
아회는 호위를 가만히 바라보다 눈을 내리깔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었는지 입을 작게 벌리다가도 이내 입을 다물곤, 지그시 잇새 사이로 깨문 입술을 휘고 숨을 뱉듯 희미한 웃음만 흘렸다.
거울 속에 비친 낯선 모습에 늘봄은 그만 굳어버리고 말았다. 할 수만 있었다면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에 감긴 붕대가, 그로 인해 짐작할 수 있는 묵직함의 원인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손늘봄은 경악에 휩싸여 스스로의 얼굴—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는 생판 남의 얼굴—을 양손으로 더듬는다. 뭐야 이거! 꿈인가? 아, 그래. 꿈이로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당연히 꿈이니까 말이 안 되겠지만 이건 진짜 말이 안 되잖냐!
목 위로 솟구치지 못한 외침들이 갈비뼈 속에서 맴돈다. 그 즈음 문이 거칠게 열리고, 늘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누가 이렇게 요란을 떨어?!
>>214 지금까지 읽어온 아회 관련 독백은 전부 눈물 나는데 동시에 문장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읽는 게 즐거워요:) 내용은 눈물바다인데 문장이 보석이라니 이 서글픈 아름다움이란... 아회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ㅠㅠㅠㅠ 전 아회주를 믿어요 행복하게 해 주실 거라고... 행복하자 아회ㅠㅠㅠㅠ
꿈이라는 것은 늘 그렇다. 상식 외의 상황이 던져지며, 자신은 그것에 맞춰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된다. 어떠한 거부 의사도 표할수 없이 그저 무기력하게. 원래 그랬던 것처럼. 가끔은 자신이 자신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가. 익숙한 여학생을 바라보던 시선은 느릿하게 깜빡여지다 이윽고 호선을 그린다.
"으응, 고마워~ 애정이니까. 조금 더 버텼어야 했는데."
양피지 묶음을 받았다. 이 시간선 내의 수업 내용이 적혀져있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지켜본 당신은 자신보다 앞서 있었으며, 이런저런 마법들을 자신에게 보여주곤 했는데. 그런 당신이었다면, 이것을 당장 펴 읽어보았을까.
푹신한 침대가 몸을 감싼다. 이대로 모든 것을 잊고 깨어났으면. 깨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정신을 차리고 차가운 커피를 한 잔, 그리고 적룡 특유의 싸움박질 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인간이란 다 그런 존재라며, 무상한 삶이라 생각하겠지…….
다만 이 도피처 속에서 어떻게든 자리 잡게 흉계라도 꾸미는 것인지, 도저히 그를 가만 두지 않는다. 연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베개로 귀를 묻어버리려 할 적, 익숙한 목소리에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이게 자신의 무의식이 보여주는 꿈이라면 깨어나 혀를 깨물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꿈을 꾸게 만든 자에게 그 이유를 따져 물을 것이며, 만일 신이라면…… 그는 자신이 MA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으나 신앙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리 나오는 것이라면 뭐라 말할 도리는 없으나 본인이 어찌 믿지 않는지를 알만하신 분이 그런다는 것은 제법 심사가 꼬이리라.
>>277 응? 죄송해할 필요 없답니다. 캡틴 말씀처럼 요즘 비가 내렸으니 비 내린 탓도 있고 세상은 흉흉하니 사람들의 마음도 그렇지 않노라 생각해도 삭막해지고 지치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온화주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 잘못도 없다 생각해요...! (꼬옥!)(복복복복복)
웃는 여학생을 잠시동안 시선에 담았다. 이윽고 자신 역시 여학생을 따라 웃는다. 꿈 속에서나, 실제 세상에서나 이런 류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뻤다. 오직 신 하나만 바라보고 나아갈 뿐인 자신이었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나.
비록 지금은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아무렴 어떠한가. 여학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킨다. 졸업. 졸업이라. 지금의 자신은 자신이 예상했던 사람이 맞을까? 확실한 증거 없이 머릿속으로 확정지은 것의 해답을 찾기 위해 전신거울으로 나아갔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리고 이 꿈 속의 풍경이 현실과 얼추 비슷하게 흘러간다고 한다면...
어렴풋하게 피어오른 자신의 의심과 잠깐이나마 모호해졌던 확신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처럼, 흐릿하던 실루엣은 점차 모습을 선명히 비추었고,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은 저도 모르게 방싯 미소지었다. 아아. 역시. 괜히 아는 사람이 보인게 아니었어. 잠깐이나마 이 꿈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에 단죄를. 꿈을 창조해낸 자에게 속죄를. 거울 속에 비쳐보이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으응, 역시는 역시였구나.."
언니. 역시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어. 이제 나는 무얼 해볼까? 지금 당장이라도 그때의 언니가 그랬듯이, 얼른 이 방에서 나가 모두에게 '사랑'을 퍼트려줄까? 아니면 지금 이 모습을 조금 더 만끽해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다시 잠에 빠져들어서, 이 악순환은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아무런 의미 없는 위선과 정신승리의 늪 속으로 한 걸음 내딛어볼까.
잠깐의 고민 끝에 자신이 채택해낸 답은 두번째였다. 꿈이 이끄는 방향대로. 원하는 방향대로. 그저 하염 없이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재미있는 무언가가 생길지도 모른다.
사랑스러운 날씨. 사랑스러운 학생들. 사랑스러운 풍경.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함 가득 담긴 풍경을 두 눈에 한껏 담았다. 아아. 내가. 내가 이 입장이 되다니. 운명일까? 신께서 정해주신 하나의 필연일까? 어느 쪽이든, 꿈이 주는 느낌을 오롯이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할 것이 없는 기분이었다.
"으음..?"
이윽고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누군가의 속삭임. 호의적이면서도 위협적인 속삭임.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그것으로 지금 들려오는 속삭임이 형태가 있는 다른 누군가가 걸어온 말이 아니라는걸 알았다. 간단하게 계획을 세워볼까. 사감실으로 가는 것은 언니를 방해하는 멍청한 짓이다. 그렇다면 역시 지금 당장 죽일까? 으음. 그것도 좋지만...
"그러자~ 모두와 영원히 함께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한 기분으로. 가장 행복한 모습을 영원히 즐길 수 있게 해주자. 일단, 나가서 한번에 어우러지게 해볼까? 아니면, 여기 있는 사람들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볼까?"
역시 이끌어가는 대로 행하는것이 좋아. 지금의 나는 당신이지만, 그 속까지 당신은 아니기에. 그저 당신의 완벽한 계획만을 위하여.
>>317 휴 오늘은 또 다른 엔딩의 위협에서 무사히 벗어났군 ^--^! (뿌듯!)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 괜히 사축이 사축이라고 불리는게 아니라는걸 요즘 다시 뼈다구 아프게 깨닫는중이야 민초의 난 블루투스 스피커로 틀고 ㅌㅌ하고싶어... 크아악 살아남는다! 끝까지 살아남는다! (화르륵)
몸을 일으켰을 적 들었던 생각은 가뿐하다, 였다. 트인 시야 너머로 햇빛은 따가운 것 같고, 문고리를 잡는 손은 망설임이 없었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보인 인물에 그는 잠시 속으로 자신의 시야를 저주했다. 어째서 나는 꿈에서도 당신을 봐야 하는거지? 왜 평온하던 나의 삶에 다시금 암운이 드리우는 거냔 말이다. 진청색 머리카락은 여전하고, 눈웃음 또한 여전하다. 뱀과 까마귀는 없지만 불편한 감정이 샘솟는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의 모습이다.
"……."
아니, 그가 한때 알았기 때문에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당신의 모습이다. 춘 사감이라면 명백하게도 청룡 기숙사이리. 그런데 뭐? 걱정, 당신이란 사람이 걱정이라. 그것도 친절한 목소리로 베푸는 걱정이라! 그는 탄식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아, 이거 고마워서 어쩌지."
본가 의원이라. 회초리를 맞았을 때 마님의 눈치를 보며 연고 하나 주지 않던 그 작자 말인가. 결국 양심에 실토하며 죄를 고하긴 했으나 여전히 탐탁지 않았던 자. 당장이라도 손을 쳐내고 싶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고, 마음속에 칼을 숨기는 것은 능하니 지금은 기다릴 때임을 알았다. 애써 약봉지 받아들이려는 듯하며 그는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아서."
손이 가늘게 떨렸으나 능란히 넘기려 했다. 확실한 것은 이 몸이 과거의 자신은 아니다. 청룡 선추가 있다는 것과 기숙사 전경이라 함은 이곳이 학당이란 뜻이요, 당시의 자신은 학당에 가지 못할 나이의 어린 소년이었으니.
>>331 아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으악 빨간글씨가 여기서 왜나와~~~~! :0 임가현주는 후회하지 않는다 왜 와이! 임가현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q^ () 본편에서도 멘헤라루트 타면 초반에는 되려 얘가 더 앵기면서 평생 그렇게 나한테만 어리광부려달라며 한껏 들이댈것 같다는 추측도 해보고..? 🤔
이름도 알고 있겠다, 무얼 더 망설일까? 그렇기는 했지만 앞의 사람들을 향하던 시선은 근처에 놓여져있던 양손도끼로 슬쩍 옮겨진다. 제아무리 꿈이라지만 너무 무방비하다. 그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으며, 어떠한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저 무심한 사람들의 입에서 즐거운 노랫소리를 흘러나오게 해 볼까? 괴롭힐래 괴롭히고 싶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예쁘게 표정이 구겨지면서- 순식간에 생명의 빛이 꺼져버리는 그 모습마저 한껏 담아주고 싶어. 이런건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짓고 있던 표정 그대로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내 눈으로 끝까지 바라봐준다면 분명 다들 기뻐해주지 않을까?
생각을 바꾼 듯 부적을 집어넣고 양손도끼를 들었다. 지금이라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무엇이든지 이루어질것만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방해받지 않고, 쫓겨나지 않고, 이 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어줄수 있을거야.
속으로 실소하고 말았다. 자신이 아는 그 '궁기'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직 집안을 뒤엎지 않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정원을 피로 물들이지 않았고, 어머니를 미치게 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아직 때가 아니던, 한없이 가깝던 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실로 고문이리라. 다만 이때의 당신이 자신을 훑는 것이 그 싹이 보이는 것만 같아, 다른 감정도 같이 들기 시작하였다.
"……아, 응. 그런 편이지, 그러니까, 음. 돌아갈 때 조심히 가고."
지금의 당신을 말리면 그 참사도 일어나지 않을까. 어쩌면 이미 그 참사를 계획하고 다짐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애초에 당신이 그 궁기가 아니라면? 당신의 기숙사가 다른 점에서 혼란이 온다. 하물며 이 몸의 주인은 대체 누구인가? 도통 알 수가 없어 그는 말의 끄트머리를 애매하게 흘렸다. 반말도, 그렇다고 높이는 것도 아닌 애매한 어조로 얘기하고는 자신의 손을 흘긋 바라보다 멋쩍은 듯 웃어 넘기려 들었다.
"하하, 악몽이긴 했나…… 기억은 안 나는데 아직도 이러는 걸 보면 좋은 꿈은 아니었던 모양이라."
걱정은 말고, 라는 말을 차마 뱉기 어렵다. 수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지금 여기에서 목을 비틀고 싶다, 지금 여기에서 붙잡고 앞으로 있을 일을 막아내고 싶다…… 그런데, 그 둘 중 하나를 행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 삶에 의미가 있어지나? 몽중이라 할지언정 이 안에서도 의미가 생길까? 어차피 갈라섰는데, 멀어졌는데. 알 도리가 없다. 그는 그저 누구의 인두겁일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웃을 뿐이지.
유현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상대의 모습을 넌지시 엿보았다. 자신과는 다른 빛깔로 반짝이는 푸르른 눈에 맺힌 감정들은, 아마 기쁨이나 그 엇비슷한 이름이 붙은 것들이었으리라. 쉬이 체감하기 힘들, 이다지는 경험하지 못할, 이해할 수 없기에 명확히 정의 내리지 못하는 모호한 일련의 기의. 찾던 물건을 발견했으니 이해는 되는 반응이지만 그게 그렇게나 좋아할 일인가? 눈앞의 상대 파악하기 용이하다 말했으나 사실은 그럼에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더욱 많다. 날 적부터 늘 이래 왔으니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지만.
"성공이네요. 축하해요."
점점 격해지는 상대의 반응과는 달리 그는 영 심심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역시나 물건엔 관심 없고 자기는 꼿꼿하게, 조금은 성심 없으나 건성은 아니도록 선 채로 사람만 멀뚱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눈앞에 구슬이 가까워지자 그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뺏긴다. 무어라 감탄을 하거나 반응이라도 해 준다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유현은 별다른 감상을 느낄 수 없었다. 정말 작기야 하나 그뿐이다. 물건 찾았으면 되었지 왜 제게 보여주기까지 하는가 싶지만 구태여 말로 꺼내거나 눈빛으로 내보이지는 않기로 했다. 그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했다는 의사만 표현했다.
"역시 청룡이셨네요."
4학년이라. 그만한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면 기숙사의 영향으로 성격과 감정의 폭이 상당히 널뛰게 될 시기다. 저 역시도 동갑이니 성격이 상당히 변했느냐 하면, 우습게도 정작 자신은 제대로 돌아보지 않아 그것은 잘 모르겠다. 천성이 그런 것인지 기숙사 탓인지 늘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슬 나오라며 역정을 내던 게 언제였냐는 듯 이번에는 기쁨에 방방 뛰고 있다. 가뜩이나 행동 굼뜬 유현이 피할 새도 얼결에 휘말리기엔 충분한 분위기였다. 한 바퀴 휙, 다 돌고 나서야 그는 조금 얼떨떨한 듯한 기색으로 엉거주춤하게 설 수 있었다. 그래도 조금 갑작스럽긴 해도 싫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적거리기에 도가 튼 어떤 친구의 손길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서. 그는 애매하던 자세 이내 고쳐 다시 반듯하게 섰다. 내린 손 한 번 가볍게 움켜쥐다 펴는 동작이 짧게 스쳐간 방금의 순간을 잡아 보는 것만 같다.
"네, 얼마든지 편하게 부르세요."
저 반응은 아마 같은 나이에서 비롯된 친밀감 같은 것일 텐데 역시나 잘 와닿지는 않는다. 감정적으로도 그렇지만 그는 원체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었다. 당장 둘 있는 친구들이 모두 저보다 연상인데도 옛날부터 반말 찍찍 하고 다녔으니. 자기도 편하게 부르겠다거나, 혹은 저 역시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느냐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말도 상대방에 비하면 길지가 않다. 은근하게 거리 느껴지는 태도였다. 유현이 사람 탐구하길 좋아한다 해도 살갑게 사귀길 잘하는 편은 아니라……. 어찌됐든 호감은 샀으니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을 테다. 사실 이렇게까지 큰 호감을 사게 될 줄은 그도 몰랐지만. 외모 때문인가? 아니면 청룡인 탓에? 행복이며 기쁨이라 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흡족한 감각을 말한다. 고작해야 구슬 찾기에 그만한 마음을 느끼다니, 구슬에 그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였나? 그만큼이나 염원이 강했던 걸까? 그는 또 다시 성큼 늘봄에게로 다가갔다.
"지금, 어느 정도로 행복하신가요? 묘사를 한다면 어떤 식이죠?"
그렇지, 무척이나 기뻐하는 듯한 모습에 또 몹쓸 관심사가 도진 것이다. 게다가 백룡은 대체로 청룡을 좋아하곤 했다. 화유현이 워낙에 이런저런 감각 무딘 자라 외력으로 인한 친근감을 제대로 느끼고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여하간 툭하면 이런 태도 나오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마주본 시선에는 기이한 탐심이 서려 있다. 마치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어떤 것에 지대한 욕망을 느끼기라도 하듯. 다른 이들처럼 현저한 마음 가지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충동만은 저주스러울 만치나 쉬이, 항시 선명히도 그의 생을 따라다니리라.
막내? 형님? 꿈이라서 그런가, 나는 내가 아닌가. 이제서야 조금 상황이 파악되는 것 같다. 하지만 머리가 안다고 언제나 마음이 따라가는 건 아니다. 저 친근한 목소리는 늘봄에게 너무 낯설게만 느껴지는데 남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늘봄이 멍하니 서 있는 사이 머리를 헝클이고 손을 거둬갔다. 제 것과 정반대 색깔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졌지만 이걸 정리해야 할 지 아니면 그냥 내버려둬야 할 지, 정확히는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러울지 몰라 늘봄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아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황의 연속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움직이는 신체 부위는 혓바닥이었는데 그 아래서부터 막혀있으니 행동이 원천봉쇄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늘봄은 남자의 질문에 눈을 한 번 데굴 굴렸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최선이었다. 그래도 다정하네. 형님이라더니, 동생을 아끼나보다.
이것은 꿈이다. 어느 순간부터 유현은 그렇게 자각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본다 느낀 모든 것들이, 맺힌 상들이, 제게 더는 있을 수 없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그는 세상을 이렇게 인식할 수 없었다. 그리 되기 이전까지의 기억이나 체감이 지워지지는 않았으니 현실감 따위 중요하지 않은 꿈에서는 예전의 기억이 구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자각몽은 드물다. 애당초 그는 꿈을 꾸는 일 자체가 드물고 깨어난 이후 꿈을 기억하는 일 역시 드문 편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차피 꿈은 저 자신의 무의식의 산물이니 무언갈 행하거나 파헤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싫다. 단 한시라도 좋으니 제 괴리를 인지시키는 자의식으로부터는 늘 눈 돌려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런 마당에 외면하고픈 제 무의식이 뭉쳐져 만들어졌을 꿈 속에 덩그러니 남아 있기란……. 어디에서 뛰어내리면 깨기라도 하려나? 어차피 꿈이니 떨어진다 해서 깰 것이란 보장도 없지만, 시도해 본다 한들 더 나빠질 것도 없다. 뛰어내리든 꿈 속에 빠져 있든, 무엇이라도 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유현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배틀로얄에_강참된다면_살해_자살_생존_중_어느_쪽 싸우긴 하겠지만 얘가 그렇게 싸움 잘하는 애는 아니라 도중에 탈락해버릴 것 같은데요🤔 몇명 해치웠지만 중도탈락하고 마는 엔딩...
자기에게_동물_귀꼬리가_생긴걸_알게된_자캐반응 이 정도 일이야 그렇게 특이한 일이 아니라서(MAㄴ쥬 사태를 기억해요...◠‿◠)그냥 신께서 장난이라도 치셨나보다 하고 넘기는 게 다겠네요. 잠깐 만지작거리다가 없어질 때까지 신경 끄고 있는대요... 노잼 안 없어지면?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뭐...
자캐의_양심은 그게... 뭐지? 진짜로 모르십니다...🤦🏻♀️ 하지만 잘 몰라도 일단 외워서 눈치는 보는 편이고, 언제나 말하듯 머리에 힘 주고 살고 있기도 하고... 양심이 조금 없을 뿐 성격 자체가 악랄한 건 아니라서 일상에서는 의?외?로? 큰일은 없네요.
1.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겉으로 드러내는 편인가?」 으음... 이걸 상처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처보다는 스스로 괴롭다 여기는 지점이 있긴 하네요🤔 그걸 기준으로 답변하자면 드러내지 않는 편이에요. 자칫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말한다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데 굳이?라는 생각이라서요.
2. 「서점에 들어갔을 때 자연스럽게 먼저 발이 향하는 곳은?」 음~ 신간도서나 베스트셀러, 학업에 관련된 책이 있는 코너로 갈 것 같네요! 특별히 지정해서 보고 싶은 주제가 생긴 게 아니라면 일단 대중픽을 참고하는 타입이에요.
3. 「선의의 거짓말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가치판단보다는 참/거짓으로 나뉘는 사실 자체만을 따졌기에 거짓이라 생각하는 거지만요. 사실 선의의 거짓말과 악의적인 기만이 윤리적 측면에서 어떻게 다르고 왜 선의에서 비롯한 행동에만 예외를 두는 건지 잘 모르겠대요. 그러면서도 의도만 좋다면 무엇이든 정당화되어도 된다는 전제는 틀렸다고들 하는데, 선의로 참작이 되는 기준이 정확히 뭔지 애초에 선이란 무엇인지 이하생략 화유현 내적고민 4348줄...🤔
낯설은 흑의 사이 벗어나 낯익은 적의 학생들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기숙사 안으로 발을 들이기나 했을까. 저를 보기만 해도 으르릉거리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는 것이지만 이리 보니 새로웠다. 저도 모르게 새어나오려는 웃음 참으며 겨우 싱긋 웃는 얼굴로 말해보았다.
"안녕. 하 사감님께 전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누군가 불러주지 않겠어?"
직접 들어가 휘젓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괜한 시비는 일단 피하는게 좋았다. 깊이 들어가진 않고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않은 채 학생들 향해 미소지어보였다.
그의 인생에서 연기는 하면 안 되는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침묵 속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뜸 반말을 했다 더 큰 의심을 살까 싶었더니 그건 또 아닌가 보다. 아니,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많이 하긴 했지. 손을 떨질 않나, 말을 흘리질 않나. 다만 당신의 미래가 자신에게 한 짓을 생각하고 과거는 과거라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아무리 몽중이라 한들, 이미 벌어진 세계선에 있는 자신이 선을 그을 수 있겠냔 말이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행하는 큰 기만이자 존재의 의미조차 지우는 것으로, 이 세상에 굳건히 존재함을 부정하는 것이거늘…….
"……동생?"
동생을 만나는 날이, 오늘이라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듯하여 그는 표정을 갈무리하려 무진 애썼다. 오늘, 아, 오늘.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순간을 잊을 리가 없다. 본채로 처음 들어선 날. 사용인들의 수군거림과 함께 기죽은 듯 시선만 굴리던 날, 자신의 아버지를 처음 고개를 똑바로 하여 보고, 당신을 처음 마주한 날. 인생이 뒤집히고 돌이킬 수 없는 길의 첫 발을 뗀…… 끔찍한 악몽이다. 어서 깨고 싶단 충동이 머리를 헤집는다. 당신은 눈치도 빠르게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고, 이대로라면 그 당시의 자신, 몽중의 자신 또한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한참의 침묵 끝에 문에서 비킨 당신을 향해 입을 벌려본다.
그래. 저것이 맞다. 이 학당에서 붉은 옷 두른 것들은 죄다 저렇다. 그게 옳게 된 형상- 이라 하는 것이 맞을까 싶지만. 여기서 적룡의 학생이란 저것이 보통이며 당연하다. 저것이야말로.
치고 받을 것 염두하긴 하였으나 힘도 모르는 몸으로 싸운들 괜한 짓거리란 생각도 들었다. 하여 뒤로 슥 물러섰다. 이 이상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허나 그저 물러나기엔 조금 울컥 하는 것 있어 웃는 얼굴로 쾌활히 지껄였다.
"분명 용건을 말했는데. 왜 궁금해하냐니. 내가 흑룡인게 그렇게 거슬리는 걸까나? 기껏해야 내가 검은 옷 걸쳤고 네가 붉은 옷 걸쳤을 뿐인데? 너무하지. 내가 원해서 입은 것도 아니고. 내가 바라서 여기 있는 것도 아닌데. 아. 이 검은 옷이 실로 내 것이었다면 그런 반응도 기꺼이 받아들였을거야. 하지만 나는 붉어지지 않으면 살 수 없어. 붉은 옷이 아니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 것이 아니면. 음. 시시해라.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람. 허상한테 지껄여봐야 나만 비참하지. 됐단다. 바라는 대로 사라져줄게. 안녕."
맨정신으로는 하지 않을 말까지 주절대다가 문득 여기서 이리 떠든들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래서 휙 돌아섰다. 지금의 저는 외견 만큼은 흑룡이었다. 돌아서 적룡탑을 나와- 그냥 그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가 보이나 하고.
자캐가_대답할_수_없는_질문은 : "무 씨 사람이라며? 그러면 궁기 알아?" 제사장 아이들이 물어보면 늘 대답하지 않고 '이젠 우리 가문 사람도 아니오.' 라고 넘겼답니다.
"후회해?" 이건 답할 수 없겠네요. 어느 부분의 후회를 뜻하는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어떤 것을 답해도 자신의 과거를 드러낼 수 있으니 필히 약점이 된다나 뭐라나~
"졸업하면 뭐 할거야?" 이건 정말 답할 수 없어요. 일단 졸업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서요……😶 살아남아야 답할 수 있어요...🤦♀️🤦♀️
자캐와_2P자캐가_만난다면 : 잘 웃고, 잘 울며, 호기심 많고, 마음 여리고, 모든 것에서 사랑을 느끼며 같이 받는데다, 인생의 찬란함을 충분히 느끼고 있으며, 흑룡에다가, 어딘가 소심한 듯 사람 앞에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지만 어떠한 부분에서는 용기를 얻고 대단히 능동적인 아회라……🤔
음, 아회는 대화하지 않으려 들 것 같아요. 어떻게 대화를 해도 자신이 될 수 없는 가장 찬란하고 숭고한 삶의 사람이란 점에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아회는 인간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어떠한 갈래라도 부러워 하거나 질투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흑룡이잖아요...? 응, 흑룡이잖아...
적룡은 흑룡을 혐오하는 수준이고, 아회는 하필 적룡인지라, 그것도 보통 적룡이 보여주는 다혈질이 아닌, '냉랭한' 부류의 적룡인지라 "같은 나라 할지언정 주제를 아시오. 아무리 찬란한들 흑룡의 삶이라면 그대는 결국 목표를 내려두고 순간의 탐욕만을 좇아 패배한 자에 불과하오."라며 고아하게 뺨을 한대 칠 것 같지요.
유년시절 인간관계 대단히 협소! ((친구가 유현이 뿐인데 그것도 9살 이후임)) 입학 이후 인간관계 개박살! ((적룡+아싸임)) 집착광공 형님의 존재! ((???: ^^))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한 답을 도출할 수 없어요!😱
135 자캐는_잠을_잘_자는가 : 짧게 잠들지만 그만큼의 질을 보장 받지는 못하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무조건 만성피로는 아니고 복불복이랍니다. 어느 날은 3시간만 자도 개운한데 어느 날은 하루를 건너뛸 정도로 잤음에도 피곤하다나 봐요.
응, 결론은 애매하단 거예요!
아회, 이야기해주세요!
#자캐썰주세요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90034 "네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부정당했다면?" 아회: "인간이란 본디 그런 법이오. 나에게 중요한 것이 타인에겐 별 가치 없을 수 있지.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데 어찌 화를 내거나 설득하겠소? 제대로 납득할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부정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게요. 내 앞가림이나 잘 하는 수밖에." "무엇보다, 애초에 기대한 적도 없소."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지 못했다면?" 아회: "……이 세상에서 지당히도 당연한 일을 묻는구려. 잊고 받아들여야지. 운명적인 사랑이니, 끊어지지 않을 인연이니, 그런 것이 맺어질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오. 하루에도 몇 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시대요. 그런 혼란한 시대에서 순간적인 충동에 휩싸여 이치를 분간하지 못하는 감정을 가지고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이곳은 동화 속이 아니오." "……." "오히려 그 사람에겐 잘 된 일이지. 북부의 가문과 엮여 좋을 일 어디 있겠소?" (그는 드물게 환히 미소 지었다.)
"난 포기할 거야. 다 관둘 거라고." 아회: "그것이 방법이라면 말리지 않겠소. 현명한 방법이구료. 관두는 법을 일찍이 깨닫는 것도 좋지." "왜 말리지 않냐니?" (그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포기하지 말라며 그쪽이 붙잡는 순간, 삶에는 큰 의미와 책임이 부여되는 법이오. 시생은 그쪽의 삶까지 책임질 이유가 없소." "어차피 인간의 삶은 한철 봄과 같이 무상한 법이거늘, 스쳐가는 타인에게 무얼 바라나?"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770083
왜 말이 길어질까요, 아회 녀석 말 없다면서 오너가 말 많아서 수다쟁이 됐대요.🥲 캡틴 쪽잠이라도 푹 주무셔요...!
주변을 살펴보려 마음먹자 머지않아 귓가에 파도 소리가 들린다. 소리뿐만이 아니다. 함께 느껴지는 끈적한 소금 내음과 비린내. 이런 냄새가 날 만한 곳은…… 령도인가? 평생을 냉혹한 겨울과 얼어붙은 물가를 접하며 살았던 유현에겐 썩 익숙지 않은 바다의 심상이다. 깨어야겠다 마음 먹었던 것보다 앞서 의문이 든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 그가 령도에 방문한 경험은 손에 꼽는다. 삭막한 제 머리가 꿀 만한 꿈이 아닌 듯한데. 주변을 둘러보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마찬가지로 제 것 아닌 누군가의 공간과 물건들이다. 왜인지 이것이 평범한 꿈이 아닌 것 같다는 직감이 든다. 그는 방 안의 물건들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짙은 미소. 이 질문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생각하기로는 몽중이노라 굳게 믿는 것이 나을 터라 판단했고, 이 또한 깨면 허상이리라 믿었다. 차라리 허상이어야 한다.
허상이어도 결국 도피처는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삽시간에 정적이 일었다. 쑥스러운 모습에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이건 꿈이다. 자신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드러나는 온갖 추악한 욕망이란 소리다. 그러니, 당신은 꿈 속에서 음흉하고 추잡한 망상 속에서 뜻대로 놀아나며 원하는 답만 뱉는 것이다. 그것이 아닐 리가 없다. 아닐 이유도 없거니와 아니어서는 안 된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역함의 주체를 되짚고는 입을 다물었다. 무아회, 이 추하고 역겨운 작자야. 너는 끔찍하게도 그렇지 아니하다면서도, 증오한다면서도 기대를 품고 있었구나. 나는 당한 일을 알고도 저런 말을 내심 바라오던 것인가? 무르고도 무르다!
"……."
더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여러 생각이 충돌하고 있었고, 그 사실이 끔찍한 가시를 세우며 온몸을 찔러오는 것 같았다. 어째서 나는 꿈이 아니길 바라는 것인가? 그러면서도 어찌 꿈이길 바라는가, 그 모든 생각의 끝에서 느껴지는 안도감과 공포심이 어지러이 뒤섞이다가, 끝내 역함의 주체가 자신임을 깨닫자 머리가 차게 식는다. 아, 이 물러터진 놈. 약해빠진 녀석. 꿈에서도 기대를 품는, 허상을 좇는 멍청이. 불태워야 옳을 녀석……. 자신을 몇 번이고 비하적으로 정의하며 체념한 듯 하하, 웃음을 두어 번 뱉었다. 어지럽다. 또한 하나 더 확실한 것이 생겼다. 아무리 몽중이라 한들 당신은 당신이요, 타인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자신이 이 끝없는 형제의 난에서 이길 수 있음을.
"……다른 사람이라 추측할 지경까지 왔다면, 내 무슨 말을 해도 참과 거짓 정도는 능히 헤아릴 수 있겠지."
여러 충격이 겹쳐 세상이 흔들린다. 정신이 일정치 못했다. 몽중이노라 굳게 믿으라며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이는 나의 무의식이요, 내 뜻은 하나 정도 있어도 되는 곳이리라. 그러니 마음껏, 지금이라도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깨면 스쳐갈 연이다.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될 현실이 기다린다.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든 깨부수면 된다.
"네 동생은 무얼 해도 죽을 놈이다. 팔자가 그러하니 정을 쏟지 말아. 네 아무리 외로워도 홀로 있던 것처럼 살아야지, 어찌 외롭다고 유령에게 정을 쏟으려 들어. 그럴수록 집안에 큰 흉조가 들 텐데."
어떻게든. 혼란 속에서 그리 믿으며 문고리를 부여잡고, 환히 미소 지었다.
"네 욕심이 걷잡을 수 없는 파멸을 불러올 터이니, 손에 쥐려 들지 말고 사라지게 두어라. 그게 서로에게 이로울 게야."
몽중의 나는 그리 잊힌 존재로 살다가 령도로 도망을 쳤더라면. 구차하게 북부에서의 생 갈구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어머니와 함께 령도로 떠났더라면. 차라리 쫓기다 죽는다 한들 지금의 삶 따위를 잇지 않을 터인데…….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는 막아세우려 들지 않는 이상, 문을 닫으려 들었을 것이다.
"……흘려들으십시오."
그리 씹어 뱉듯 희미하게 속삭이며. 아, 꿈이라면 깨고 싶다. 깨어나고 싶다. 꿈에서 깨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으니, 문을 닫고 행하면 되겠지.
즐거워? 기뻐? 행복해? 당신이 그렇다면, 나도 만족해. 당신이 바라왔고, 당신이 걸어왔던 이 길을 내가 당신의 모습으로 똑같이 따라가고 있는거잖아? 아름답고 무결한 이 광경을 그려내기 위해- 꿈 속일지라도, 오직 당신의 목표 하나만을 위해. 눈 앞의 풍경을 시선에 한껏 담아내다가 도끼를 바로쥔 채 앞으로 나아간다.
"정말 아름다우면서도 황홀한 풍경이야- 부디, 다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와서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잖아. 더 많은 사랑을. 더 많은 애정을, 너희들에게 퍼부어줄게.
이상한 일이다. 이 공간이 제 것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 역시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하게 인식하고자 하지 않으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기이한 기분. 그동안 이런 얼굴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는 미추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었으나 그런 그의 기준에서도 희소하니 인상적인 외모였건만 기억에는 없다. 오로지 상상만으로 만들어내기엔 지나치게 상세한 조형에, 더군다나 그는 타인을 그려내어 이입할 만큼의 이해와 공감을 가지지 못하는데……. 그런즉 기이함을 넘어 괴이하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제 그토록 '자기' 안에 갇힌 비참한 기분 느끼는 게 다 무엇 때문인데.
……어찌되었건 평범한 꿈은 아닐 테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적어도 제 자아로부터 비롯된 상황은 아니리라 생각하자 불쾌한 기분만은 조금 가시는 듯했다. 의심의 방향은 이제 외부로 향한다. 누군가의 술수든, 요괴의 수작이든, 신의 장난이든 자신이 이 모습이 된 데엔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울려 주어야지. 마음이 한결 편해지니 백룡의 고질적 기질도 드디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는 거울로부터 등 돌리고 문을 열었다.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니 속내가 다시금 뒤집어진다. 이건 통쾌한 건가? 그래, 저런 표정을 한 번은 보고 싶었으니 통쾌한 것이 맞는 것 같다. 이 정도로도 당신의 가면이 깨지는데, 내가 한때 꿈꾸던 것을 그대로 속삭이면 당신의 표정은 어떻게 변할까. 그 고운 낯짝이 일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을까? 비록 몽중이더라도 그런 표정 정도는 상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미 그는 당신의 표정이 웃을 적 그 눈가의 주름이 어느 방향으로 지는지, 입술의 올라가는 대칭이 어떠한지 모두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는 상상하며 그려볼 수 있었지만 실제와 망상은 다른 법이니 미칠 듯이 궁금해진다.
"……."
문 너머로 당신이 끈덕지게 시선을 따라 보내나 야속하게 갈라지게 된다. 그 시선을 곰곰이 되짚자니 문을 열고 얘기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조금 더, 당신이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싶다. 내가 고통 받았던 것처럼, 만고의 슬픔을 떠안아 보았으면 한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여 미련도 갖지 않을 수 있으리라. 하물며 그 슬픔이 나로 하여금 비롯된다면……. 하지만 이 충동을 참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이미 추잡한 망상에 당신을 몰아세우며 자신의 잣대로 보았고, 헛된 망상을 믿었으니 더 추해질 수 없었다, 더 추해질 수…….
"……."
문에 쓰러지듯 몸을 맡겼다. 그대로 주저앉아 고개를 기대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세상이 어두워 환한 미소를 짓게 된다. 아, 역시 이것이 옳다. 나는 결국 당신으로 하여금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었기에, 이리 문 하나만 사이에 두어도 양반 될 수 없는 것이 이치였기에.
누군가 내게 물었다.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왜 자꾸 그곳으로 향하냐고. 그땐 가야만 하는 일이 있기에 간다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새하얀 거짓말이다. 그들이 점차 자신의 통제 아래에서 벗어나는 '재앙'을 마주할때마다 부정하고 도망치려 발버둥 치는 모습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다. 아무 말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서있기만 해도 두려움이 차오르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나 재미있는 일이 있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 끼이이익 '
여느때처럼 기름칠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경첩의 삐걱이는 소리가 한가득 울리는 이 대문은 예전엔 그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소리였다. 문이 열렸다는 것은 가족들이 돌아온다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이 소리를 듣고 느끼는 감정은 반대가 되었고 이러한 점도 그에겐 자꾸만 집을 찾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역시나 마당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던 사람들은 문이 열리고 보인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에 띄게 얼굴이 굳었다.
" 제가 왔는데 반갑지 않으신가봅니다. "
그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는 능글맞은 태도로 웃어보였다. 사실 오늘은 딱히 할 일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었다. 직계와 방계의 권한이 다른 가문에 비해서도 엄격하게 구분 되어있던 그의 가문이었기에 그의 존재가 필요한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그까짓거 포기하면 편하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나름 알려진 가문이었던 그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듯 했지만 말이다.
" 뭐, 좋은 반응을 기대하진 않았으니까요.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좋은 표정을 지어주신적이 없으니. "
어릴적엔 공포, 경멸, 혐오를 담은 눈빛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이유만큼은 완전 달라졌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라 할만하다. 사실 가문에 들른 목적은 다른게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가져갈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자신이 살던 방에서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는데 갑자기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표정이 어떻든 말든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고선 물건만 챙겨서 다시 기숙사로 향할 예정이었다. 딱히 위해를 가할 생각도 없었지만,
" 윽?! "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팔의 격통에 팔을 크게 휘둘러 무언가를 쳐냈다. 팔에선 피가 이미 잔뜩 흘러나와 손까지 적시고 있었고 주변엔 팔에 꽂혔던것 같은 칼과 함께 여자 한명이 나동그라져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기에 윤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을 부여잡은채 외쳤다.
" 하, 이젠 날 죽이시겠다? " " ... 더러운 재앙의 종자, 그때 널 죽였어야했는데. " " 죽이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랬으면 저도 그런 꼴은 겪지 않았어도 됐을테니까요. "
깊게 찔렸는지 계속해서 피가 흐르는 팔을 오른팔로 누른채 그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변할리가 없었다. 물론 그들이 변할 것이라 생각한적은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그대로일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상종하지 못할 사람들. 고통으로 인해 제대로 생각하기 힘든 와중에도 이 생각만큼은 뇌리에 깊숙하게 박혔다. 다행히 그들도 이 이상으로 무언가 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사실 일격으로 끝내지 못했으니 기회는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분명 후회할거다, 그런 진부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
하지만 여기에 계속 있으면 다른 마음을 먹을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들어왔던 문을 어깨로 밀고 나가며 뒤를 돌아본 그는 말했다.
한때 두려워 하던 것을 현재는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 정 반대의 입장에서 행동한다는 것에서 윤하가 굳게 마음을 먹은 것이 보이지만, 여전히 시선이 날카롭고 지금처럼 위협을 하니 씁쓸하네요...😥 윤하가 후회조차 하지 못할 거라 말하는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윤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것은 결국 타인이나 다름이 없는, 현재로서는 적이나 다름이 없는 존재구나... 윤하야 행복하자...😭
그 날 이후로 타인에게 바라지 않게 되었다. 아니. 그리 하려 무딘 애를 썼다. 누구도 눈에 담지 않으려 했다. 누구도 마음에 품지 않으려 했다. 혈연. 지인. 친우. 누구에게도. 정도 무엇도 주지 않고 받고자 하지도 않으려 했다. 보이는 것은 눈 가려 외면하였으니 마음 또한 그리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래버리면.
뒷모습 하나 보고 불러보았다. 뒤 돈 모습 익히 아는 모습이었다. 여기가 어느 기숙사인가 생각해보면 당연히 당신이 나올 것이었다. 제가 바랐는지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미간 찡그리는 것. 금방이라도 으르렁거릴 목소리. 그저 보고만 있으려 했으나. 당신 내뱉은 말에 그만 실소 터뜨려버렸다.
그리고 생각한다. 뭐 이런 꿈이 다 있을까. 정말이지.
낄낄. 키득키득. 제 것 아닌 소리 내며 제 것 아닌 얼굴에 웃음 띄웠다. 이것 정녕 꿈인가. 꿈이란 말인가. 덜컥 겁이 났다. 여태 꿈이라 여겨놓고 이제와 이게 현실일까봐 지레 겁먹었다. 제 것 아닌 옷에 빈 허리춤이 현실일까 봐. 웃는 얼굴 서서히 일그러졌다.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걸음 황망히 내달렸다. 감히 검은 옷 두른 몸으로 당신에게 안기려들었다. 그것 안 된다면 하다못해 옷소매라도 붙잡아 쥐려 했다.
"내가. 뭐 하는 놈이냐니. 잊으셨나 봐요. 내가 감히 당신 역린 쥐고 있지 않던가요. 매일 같이 피와 살 먹여달라 시끄러이 구는 역린의 주인이 나란 말이오. 아무리 내 이 꼴 하고 있어도. 그건 알아봐야지. 그것 뿐인데."
아무 말이나 내뱉다가 뚝 끊었다. 뭐 하러 이래야 하나 싶어졌다. 절로 힘 풀린 손 툭 하니 늘어뜨리고. 그대로 서 있었다. 고개 역시 아래를 향하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문 너머를 타고 귓전을 때린다. 자세히 설명할 것이 어디 있을까, 당신 동생은 기실로 죽을 팔자인데. 북부에서 태어나 그런 수모를 당하며 몇 번이고 생사의 고비를 넘겼고, 지금은 당신과 당신의 수족들의 손에 죽어버릴까 노심초사하며 살고 있는데 그것이 어디 죽을 팔자가 아니겠는가, 당신 탓이라 지금이라도 문 열고 속삭여버릴까? 그렇게 되어버리면 당신은.
"흐."
가볍게 어깨가 들썩인다. 한 번의 숨을 뒤로 입을 급히 틀어막아도 들썩이던 몸짓은 점점 커져간다. 사위가 조용해졌음을 깨닫고 나서야 손 너머로 소리가 흐른다. 흐흐, 으흐흐, 으흐흐흐─ 결국 목청 높여 폭소하더니 눈에 고인 눈물을 닦는다. 만족스러운 듯 길게 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넘기기가 무섭게 표정 굳히었다.
"촌극도 이딴 촌극이 없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어떤가, 몽중이지 않은가. 그는 자리에서 느긋하게 일어섰다. 기실 알고 있다. 몽중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느낀다. 당신의 태도가 절대 정상이 아니란 것도, 자신이 이런 꿈을 꿀 사람도 아니라는 걸. 그렇지만 뭐 어떠한가, 평생 의문하고 살아라, 그리고 내 안전한 것을 확인하며 안도하고 살아라. 그 안전함이 깨질지 모르는 불안함에 살아라.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며 체념해라, 형제라는 것에 매달려라. 아니면 버려라, 아예 내쳐버리고 희망을 짓밟아도 좋다.
"밧줄이 어디 있지."
당신이 내게 손을 댄 뒤 떠나버리고, 내가 그렇게 살아오던 것처럼. 슬슬 잠에서 깰 시간인 것 같다. 아니면 이 몸뚱이를 버릴 시간이거나. 놀랍지 않은가, 잿더미인 자가 이리도 날뛰는 꼴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곧장 누군가가 다가와 의미 모를 이야기를 한다. 정확한 맥락이 모두 잘려 나간 말은 당연하게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말하는 투를 봐선 상대는 이 얼굴과 이전부터 아는 사이인 듯했다. 그러면 어쩔까. 적당히 저 역시 아는 체하며 적당히 얼버무려야 하나? 짧게 고민이 스치고, 해답은 어렵잖게 떠올랐다.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무슨 노래?"
모르는 것 괜히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상대를 가만히 응시한 채로 말이 없었다. 바라보는 시선은 누구인지 모를 자의 눈이 아닌, 화유현 본연의 기질이 진득히 담겨 있다. 눈앞의 것을 당장이라도 파헤칠 것만 같은 집요한 시선. 꿈속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고질적인 탐구욕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이 꿈은 이미 실존하거나 언젠가 벌어질 사건의 시간을 그리고 있는가? 저 자는 이야기를 선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완전한 허구와 가상의 인물인가? ……거기에까지 생각이 닿자 확인해 보고 싶은 점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대답을 듣고 나서 생각해 보아도 늦지 않을 테다. 그는 대답을 요구하듯 다시금 상대방을 가만 바라보고만 있다.
검은 옷 걸친 몸에 어색한 두드림 느껴졌다. 여전한. 아. 여전했구나. 당신은 인간이 싫지만 학생을 무턱대고 밀어내지도 않았다. 싫다면서 사감 노릇은 해주었다. 제 멋대로인 판단일 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리 혼란스럽게 굴어도. 제대로 듣고 판단해주었으니까.
노려보는 눈 제대로 보진 않았지만 시선 꽂히는 찌릿함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봐도 이게 무언가 싶겠다. 갑자기 달려들어 영문 모를 소리 해대니. 그런데. 그런데 이건 꿈이 아니었던가? 조금 전부터 제 머릿속 감돌기 시작한 위화감 급히 잡아채었다. 꿈치고는 당신의 반응 과히 생생했다. 제 무의식이 그러내었다기엔 너무나도.
이게 꿈이 아니라면. 뭐지?
그거 네 몸 아니지- 그 말에 고개 들었다. 꿈이 저런 말까지 할 수 있나? 아니. 적어도 제가 여태껏 꿨던 꿈 중에서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꿈을 빙자한 그것의 농간인가. 잠시 멍하니 있다 고개 내려 제 손. 아니지. 그 몸의 손 보았다. 제 것 아니지만 제 의지대로 움직이는 손 두어번 쥐고 펴보곤. 피식- 웃었다.
같잖기는. 그래도 나쁘지는 않아.
무슨 색인지 모를 눈 가늘게 좁혀 뜨곤 쯧 하고 혀도 한 번 차주고. 슥 표정 풀었다. 그리고 하 사감 보며 말했다.
"이것 내 몸인가 물었지. 맞소. 이 몸 내 것 아니오. 여느 때처럼 잠들었고 눈 떠보니 이러하여 내가 꿈을 꾼다고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그냥 꿈은 아닌가 보오. 거 참. 누가 무슨 농간을 친 건지."
하- 별로 난감하지도 않은 한숨 짧게 내쉬었다. 새로이 드러난 화제에 어쩐지 머릿속 차분해졌다.
지금이 꿈이 아니라면 이제 어떡해야 하나. 평소처럼 깨려고 하면 깨질까? 이왕 있는 김에 나중 일 다 불어버려? 아니다. 그건 혹시 모르니 삼가자. 그랬다 돌아갔는데 역린 없으면 저만 손해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이- 음-
"나도 학생이긴 학생이라 이런 일은 처음 겪건만. 보소. 사감님요. 어찌해야 내 돌아갈 수 있을지 짐작 가는 거 없소?"
혼자 앓아봤자 답 안 나오고 저는 아는 것도 없으니. 일단은 이 사태 관련하여 도움 될 것 있나 하 사감에게 물었다. 사감이고 신수니까 뭐든 알겠거니 싶었다.
쓸모 없는 것. 이 몸의 주인은 밧줄 하나도 가지지 못한 건가? 당연한 사실을 탓하면서도 그는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이 빌어먹을 꿈에서 깨게 해주었으면. 아니, 이 빌어먹을 몸뚱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선명하게 눈에 박히는 모든 정경이 계속해서 속삭이고 있었다. 세상이 네 희망을 깨부수러 올 것이노라고.
당연한 사실에 쓸모를 논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 이후 찾아냈다는 사실이 더 우스운 듯하다. 숨겨진 밧줄을 찾아 손 뻗었을 적, 그는 불가항력에 쓰러지듯 그대로 털썩, 바닥에 몸을 맡기며 수마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잃는 것은 쉬운 일이다마는 그 사이 깨어날 수 있다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났을 적 느껴지는 것은 옷깃을 부여잡는 우악 진 손길이었다. 적룡 기숙사의 녀석들도 이리 쥐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떤 경위로 자신의 멱살이 틀어잡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무엇인가 고민하던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에 꽂혔다.
"눈치도 빠르지……."
이것은 몽중인가, 현실인가. 몽중이라면 필히 끔찍한 악몽이요, 현실이라면 당신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을 터인데. 확인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니 두 눈을 온전히 떴다. 눈동자에 담기는 당신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사감들이 달려오는 소리는 점점 귓가에서 아득해지는것만 같았다. 아, 잠이, 오는건가? 아무렴 어때.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은 버리고, 지금 이대로 이 꿈을 끝내는것도 좋을 것이다. 자. 이제 푹 자고 일어나자.
"... 언니. 언니가 바라는대로, 다시 한번 이루었어.."
리본을 머리에 매며 밝게 웃었다. 그래. 이왕이면, 끝마무리까지 완벽하게 하는게 낫지 않겠니? 어차피 꿈일 뿐이었으며- 결과는 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바꿀수 없으니.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어지는건 아닐 뿐이었으니. 다른 방향도 궁금하기야 했지만 덧 없는 환상을 쫓기에는 자신은 너무 무관심했다.
이 상황 어찌해야 할지 물으니. 꿈이라면 깨면 되지 않느냐는 대답 돌아왔다. 그게 그렇게 간단할까 싶었는데 갑자기 잠기운 미친듯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듯 했다. 정해진 흐름이 있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곧 나오는 하품 작게 하고 저도 하 사감 보았다.
"그 말 듣자마자 잠 오는 것 보니 이대로면 깨어날 듯 한데. 흐암... 그래도 이대로 가기는 조금 아쉬우니 말이네."
나중 생각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역시 그러기엔 기회가 아깝잖아.
"거 팔 좀 빌려주소. 아 빨리."
제 몸 아닌 것 심히 아쉬우나 지금은 이것 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하 사감 팔 붙들고 얼른 저 안아올리라며 보챘다. 빨리. 잠들기 전에. 어떻게든 안겨서 어떻게든 그에게 매달려 뺨 맞대려고 했다. 지금이 그저 꿈 아닌 실상의 언젠가라면. 정말로 그렇다면 이것도 혹시 모르니까. 뺨 맞대 문질거리는 것까지 어떻게든 하려고 하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 흐흐."
웃을 적 무어라 중얼거린 것 같으나 너무 작아 그저 웃음소리 같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악몽일 줄 알았던 것 이리 끝나니 그것 만으로도 편히 눈 감을 수 있었다.
여전히 시야 선명하니 몽중이다. 시점이 바뀐 것인가, 가까이 얼굴을 보니, 기억하던 이전의 얼굴이다. 기억이 오래 되어 흐렸던 얼굴이 이리도 선명하니 우스움만 치고 올라온다. 내게 무얼 바라는지 모르겠으나 계속 이리 나온다면 재미 보기는 어려울 터입니다. 인간이간 쥐는 대로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거니와 내가 북부 사람이지 않습니까?
"내가 사라졌더라면 궁금한 대로 살았어야지."
속삭이며 입술 비틀어 올린다. 그게 이치이거늘 이리 찾아보려는 것도 가상하고, 팔 하나 날리지 않는 것은 퍽 얌전하구나, 그래, 학당에서는 아직 정원 피로 물들였듯 다 붉게 물들이지 않는다 그 사실이로구나, 이런 면에서는 닮았다. 쓸데없는 곳에서 피를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
한데, 내가 뭐냐고?
"무엇일까?"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가늘게 미소 지었다. 눈치도 빠르지, 무 씨 집안 사람인 건 어땋게 알았담? 본가에 갔는데 어르신이나 사용인이 아닌 것 같았다면서. 어찌 자신일 것이라 생각하진 못했을까? 실로 오만하다, 그리도 영민하면서도 오만하고 아둔하다! 통쾌했다. 그래, 모르겠지, 전혀 모르겠지. 내 속내를, 이지러지고 뒤틀려버린 내─
"내가 누구일까, 응? 과연 누구일까. 빌어처먹을 무 씨 집안의 장자야, 내가 누구인가? 나를 광대로 보느냐, 아니면 네 뜻에 휘둘리고 검은 털 짐승에게 쉬이 목 물리게 대줄 요괴로 보느냐?"
모두 틀렸단다, 틀렸어. 나긋나긋 속삭인다. 단전 깊은 곳이 들끓는 기분이다. 배덕한 감각이 온몸을 훑는다. 얼굴에 뱉어줄 침조차 아까울 정도로, 금방이라도 입술이 탈지면처럼 말라버릴까 싶을 정도로 목이 마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두 눈이 첨예한 호선을 긋는다. 누구인지 모를 몸으로도 사근사근하니 간드러진 목소리 내는 것은 제법 쉬운 일이었다.
"나에 대해 계속 고민하려무나, 일평생을! 그래도 하나 단서를 주마, 나는 네가 그 빌어먹을 제사장들이 신에게 외경 품듯이 감정 품을지도 모르는 존재이며, 어쩌면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는 존재란다……."
손을 뻗어본다. 얼굴 부여잡으려 하더니, 만일 붙잡힌다면 제법 과장스럽게 귓가에 속삭이려 들었을 터다.
"너희는 결국 무 씨 집안의 피를 받았어. 그래, MA가 내게 쓸모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주었으니, 무 씨 집안이 용서받은 것이 맞단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지?"*
─아. 당신의 이름까지 달싹인 뒤엔 고개를 훅 떼며 찢어질 듯 폭소하였다. 이것이 당신이 훗날 모든 것을 빼앗고 그 북부에 두고 가버린 최후라는 듯.
꿈의 연장선일까? 실루엣이 흐릿한 남성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인다. 원하는 만큼의 애정을. 후배들에게도 똑같은 애정을. 자신은 아직 농질의 모습이었을까. 그것보다, 학당이 문을 닫는 순간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 사람은 어떻게 알고 있는걸까?
문득 기억 한 켠에서 비슷한 상황이 미묘하게 피어올랐다. 분명 동 사감님의 폭주 이전, 누군가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것을 자신에게 알려줬던것만 같았다. 누구였지? 그것까지는 기억이 닿지 않았다. 깨어있어 정신이 온전한 상황도 아니었으며- 당장 눈 앞의 누군가도 식별하지 못할 실루엣으로 비쳐 모호했으니.
".... 어머나. 정말?"
그 분을 만날수 있다는 이야기에는 자연스럽게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아. 고결하고 위대하신 그 존재를. 모호한 꿈 속에서나마 다시금 당신의 존엄함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당신도 제사장이야?"
이성을 바로잡고, 질문을 건냈다. 꿈이라기엔 모든게 너무나 잘 짜여진 각본 같아서. 무의식의 흐름 속 느껴지는 모호한 규칙성이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악의가 느껴지고, 동시에 희열이 몰려온다면 이는 광인인가? 하지만 어찌 하겠는가, 아직 신께서 그를 지켜보는 반증이 아닌가. 자신의 삶을, 몰락해가는 운명을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이리 내게 저주를 걸 것이라면 북부를 구제하는 그 순간까지 지켜보십시오. 그리 바라면서도 잠시 신에 대한 생각을 접기로 했다. 하나에 집중하면 눈앞의 존재에 집중하기 퍽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그것보다 알현이라. 알현하였구나, 그쪽은 신을 알현했어. 그래서 나를 떠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불쾌함도.
"모를 리가 없지……. 솔직하게 말해보렴, 내가 누구인지 그쪽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설마, 부정하는 건 아니지? 즐거운 듯 이야기하는 모습에 단전이 뒤틀릴수록 목소리는 더 간드러지게 된다. 이 내가 그쪽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다. 신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 또한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모른다면 북부 사람이 아닐 것이며, 귀기 무 씨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 모르는 것이 있으니 당신이 멱살 틀어쥘 때, 그는 다시금 폭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흐, 하-! 하하하…… 잡아둬? 네가, 나를? 아마 평생 그럴 수 없을 게야……. 잡으려 들면 말이지, 흩어지는 것이 신기루 아니겠느냐? 네 보기에 내가 붙잡힐 것 같노라면 그 마음 정도는 가상히 여겨줄 터이지만. 아, 하루 정도는 붙잡히겠구나. 북부에서 그리도 드물다는 비 오는 날을 주시하거라. 기회 정도는 있겠지."
현세의 당신에게도 붙잡히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자신의 꿈을 정하지 않았는가, 이미 당신이 떠나버린 삶이지 않은가. 그런 주제에 어딜 잡으려 드는 것인가, 기대를 산산이 부수고, 모든 것을 빼앗고, 내버려둔 사람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을 그 춥고 삭막한 곳에 홀로 남겨버린 사람이 어찌 잡으려 든단 말을 쉬이 할 수 있는가. 무책임한 사람, 증오하는 사람, 증오를 쏟아야만 하는 사람 같으니라고…….
"내가 잠들면 다시는 이 모습으로 깨어나지 않을 게야."
여러 번 생각했고, 실행에 옮길까 했던 나날이 있었으며 시행착오도 많았다. 또한 아직도 그 생각은 유효하니 언제라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애처로이 미소 지었다.
"어디 용 써봐라. 과연 신기루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그대로 몽중의, 누구인지 모를 몸 주인의 혀를 강하게 깨물어버리려 했던가. 어차피 우린 지옥에서라도 다시 만날 터인데 어리석기도 하지.
흑룡의 목소리. 그것이 제 머릿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맞다면, 저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가? 꿈 속이니까 그럴수 있다며 넘어가기에는 썩 석연치 않은 부분이었다. 제아무리 꿈이더라도 자신의 심상세계가 남들에게 투명하게 비쳐 보이지는 않지 않았던가. 아니라면 지금 이것은 다른 부류의 꿈이라거나, 아무튼 그럴 것이다.
"으응.. 꽤 많은걸 알고 있네? 소문은 항상 빠르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봐~"
그래서, 그것과 거절하는 것이 무슨 연관성이 있냐만은, 애초에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달콤한 유혹은 늘 사람의 판단을 흐트러트리기 일쑤였으니. 그렇다고 마냥 유혹에 흔들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꿈을 더 이어갈수만 있다면- 제사장도 아니면서 감히 그 분을 멋대로 알현하려 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기필코 알아낼 수 있으련만, 언제 깨어날지 모를 꿈이었기에 그 끝을 볼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호하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렇지? 네 말대로, 진짜 사랑을 후배들에게도, 그리고 사감들에게도 알려줄 수 있다면... 분명, 분명 엄청나게 기쁠 테니까..."
>>664 표지 보고 딱 먼저 떠올라버렸지 뭐야~~! 아늬 팔을 다쳤다구 :0...? (후딱 확인하고 옴) 아마 가리고 있을땐 당연하게도 모르지 싶은데 어떠한 연유로든 알게 된다면 '누구야? 역시 그 빌어먹을 가문 사람들이려나?' 하고 얀모먼트 한껏 내비칠것 같은걸~~!
>>668-669 아회가 정한 꿈이라... 자신이 정당한 무 씨 집안의 핏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네요.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문을 이을 수도 없지만, 자신 또한 살아가고 있음을, 그렇게 어머니가 매일같이 바라던 북부의 구제를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자신 또한 있음을 세상에 알려보고 싶대요~ 고작 학생인데 꿈이 너무 크죠. 응.
맞질문! 온화는 최근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만약 부정적이라면 파훼할 생각이나 사상, 혹은 단기적인 목표를 만들었을까요? :3?
>>671 왠지 빨간 폰트가 단순히 정당함을 입증하는 것 만은 아닌 것 같은걸...? 어떤 방식 어떤 방법으로 아회 자신을 세상에 알릴지 궁금해지네~ 원래 꿈은 크게 가져야하는 법이랬ㅇ어~ ㅋㅋㅋㅋ 아 나 북부 구제하니까 생각난게 있는데 만약 구제의 방법이 현 시점 북부인을 모두 죽이는 거라면 아회는 가차없이 해버릴거 같달까... 피로 물든 눈밭 등 뒤에 두고 태연하게 구제받을 것 같달까~ 음 너무 적폐였나~?
오~ 따끔한 질문인 걸~ 일단 최근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런가 보다'랑 '될대로 되라' 이 두 스탠스를 취하는 중~ 그 일들로 인해 가깝게 지내던 이가 어떤 폐해를 입는다면 나름의 반응은 있겠지만~ 긍정적이라기보다 무기력하고 자포자기에 가까운거라 부정적인 쪽~ 그치만 파훼한다거나 뭘 해야겠다 정하진않아. 생각은 많이 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건 아니지만 온화는 현실주의니까~ 적어도 당장은 아무 것도 안 한대~
잡히지 않으리라. 당신에게 잡히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인데 어찌 잡히겠는가. 미소가 사라진 얼굴이 새삼 새로운 듯하니, 이리 생각하면 당신은 그의 앞에서 제법 자주 웃어주던 사람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앞으로의 당신이 행할 일이고, 나는.
"……."
그는 무엇보다 기쁘다는 듯 환히 웃었다. 깨문 혀와 함께 피가 울컥 쏟아진다. 살덩이가 바닥을 나뒹굴고 고통과 함께 극심한 졸음이 쏟아진다. 마지막까지 환한 미소와 함께 당황한 목소리를 자장가 삼기로 하였다. 증오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듣기 좋아 한때의 애정을 되살리듯 편히 눈 감는다.
>>674 어떤 목표이든 결국 현재의 아회는 막아세우려 들 거랍니다. 자신의 뜻과 일맥상통해도 말이에요. 무작정 저 사람이 미워서 하는 것마다 방해하고 싶다, 는 아니고, 궁기의 컨트롤프릭 성향을 생각하면 자신이 가진 목표에 서로 지대한 방해가 되기 때문일 테니까요. 선수를 치고 싶다나 뭐라나. 그리고 사적인 감정으로는 '기어이 미쳤군.' 같은 말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너도 미쳤잖니!
>>674 (대충 찔려서 쓰러진 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 음 그건 오너도 아직 못 정했는데(?) ㅋㅋㅋㅋㅋ 글쎄~ 전부를 원할 수도 있고 아예 아무것도 안 바랄 수도 있지~ 그래도 하나 꼽아보라면 졸업 후에도 가까이 있을 방법이라던가? 그런거 뿐이지 않을까~ (휘파람)
머리를 박박... 후다닥 감고 왔답니다... 아침에 감았어도 오늘의 습도로 인한 찝찝함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675 가차없이 그럴 것 같단 느낌이 있긴 하죠. 아무래도 남은 남, 자신도 타인이라 생각하는 녀석이니... 저 아파요!(적폐에 찔렸어요!)
맛있는 답변을 위해서라면! >:3 두 스탠스가 체념에 가까운 듯해서 안타깝긴 하지만, 요즘 상황이 확실히 그랬지요... 가깝게 지내던 사람에게 일이 터지면 반응은 있지만 현재로서는 부정적이다, 군요... 생각도 많이 했거니와 방법을 갈구할 수도 있으나 현실적인 온화의 모습이라. 지금은 많은 것을 더 생각하고 현실적으로 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명확해질 때, 개입할 것만 같단 느낌이 들어요. 우리 온화 복복복복... 행복하자...(머리 복복복)(?)
>>686 현실의 형제(눈 마주치면 포켓몬 배틀처럼 뭘 꼬라봄 시전함)...라기엔 거리가 있죠... 아회야 네가 할래?
아회: 이미 했소.(형한테 네가? 한 사람) 아회주: 궁기님 죄송해요 우리 애가 버릇을 고쳐야지 원 (도끼 가져옴) 아회: 꺄아악
>>690 ㅋㅋㅋㅋㅋㅋㅋㅋ 으악 캡틴이 희망고문한다! 나쁜 캡틴! 못된 캡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691 앗 적폐 적중한거야? 유후~ 기분조타~ 기분 좋으니 쪼금만 더 풀어보자면~
사실 꿈에서 취한 태도가 현재 온화 그 자체야~ 제가 어떻게 되던~ 주변이 어떻게 되던~ 내 알 바냐 아몰랑~ 뜻 밖의 기회가 생겼다고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하지도 않아. 어쩌다 충동적으로 나서긴 하지만. 그때 왜 그랬을까 라며 뒤돌아보지 않은 적 없지. 현실적이면서 누구보다 현실에서 눈 돌리려고 하고. 뭐가 어떻게 어찌되건 눈감고 귀막고 입막고 외면하고 싶어해. 하지만 온화의 가장 깊은 본질은 극과 극으로 정반대라서 내면 싸움 오지게 하는 중~이라나 뭐라나~
오너적으로는 아 얘는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행복해질 수 없겠구나 하는 중~
>>69 떼이잉 뭐가 무언지 정확하게 알려주란 말야! >:3
캡틴 질문이라~ 음 ㅋㅋㅋ 하 사감은 온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ㅋㅋㅋㅋㅋ
>>699 적룡 학생들 중에선 신경 쓰고 있어요:3 역린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일상 때마다 자신 방으로 무방비하게 찾아오는 걸 보면서 '내가 많이 무른가?' 싶다가도 역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요:3 애초에 두 존재가 섞여서 만들어진 게 지금의 하 사감인 걸요:3 이 놈 분리 가능하냐구요? MA가 그렇게 해줄 리가..
MA: (키득키득
어쨌든 학교 밖에서 넘어오는 형제들이 '역린 뺏겼으면 죽여서 다시 되찾으면 되잖아?(인외모먼트)' 일 때마다 슬쩍 말을 돌리기도 한답니다.
묵직한 목소리가 방을 나지막이 울렸다. 더듬거리며 이불의 끝을 쥐던 아회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끝에는 큰 체구와 함께 질끈 올려 묶은 머리는 탁한 잿빛이요, 눈은 노랗게 물들었으니 마치 늑대를 빼닮은 남성이 뒷짐을 지고 있었다.
"세상이 흉흉하잖니. 가문에 지랄 한 번 했으니 네 입지를 걱정했을 뿐이란다." "그런 위인이셨습니까?"
아회는 느릿하게 눈을 치켜떴다. "오냐오냐 받아줬더니 버르장머리가 없어." 툭 뱉은 말에 남성은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원내 학우분들께서 주군의 그 성격을 알아주셔야 할 텐데요……." "다들 나를 잘 알고 있으니 걱정일랑 말거라." "얌전하다고 하더이까?" "현자라고들 하지." "세상 현자 다 죽은 듯싶습니다, 주군." "역시 버르장머리를 잘못 들였어."
아회의 한숨에 남성은 눈을 굴렸다. 소파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도롱도롱 작게 코를 고는 조그마한 땅신령을 한 번 바라보고, 자신의 주군을 향해 한 번 시선을 던졌다. 기실 제 주군에게 농 많이 던진다지만 알고 있다. 자신의 주군은 가벼이 대할 사람이 아니다. 가문 몰락하여 허드렛일하던 자신을 거두고 호위대주까지 올려준 존재가 아니던가. 이리 부르는 것에서 입지를 걱정한 것또한 알고 있었다.
"됐고, 자고 가거라." "오늘도…… 말입니까?" "싫으면 돌아가서 가주님께 보고라도 올려야지." "아, 그건 좀 끔찍하니 바닥에 이부자리라도 펴야겠습니다."
아회는 제 이불을 덮기가 무섭게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이부자리가 차구나." "벽난로에 불을 붙일까요?" "……됐다." "농이었습니다."
옷고름에 손이 가는 것을 바라보던 아회는 손을 까딱였다. 남성은 옷고름을 풀기가 무섭게 손가락이 까딱인 방향을 향해 자신의 옷을 걸어두고는 침대를 향해 걸어가다, 이내 이불 속으로 느릿하게 파고들었다. 아회는 느릿하게 묶인 머리를 더듬다 머리를 동여맨 끈을 풀어주곤 자신의 손목에 아무렇게나 묶었다.
"에잉, 좁아 터졌구나." "다시 내려갈까요?" "나보고 얼어 죽으라고?" "고드름 숲에 잘 묻어드리겠습니다." "그땐 너도 같이 묻어주거라. 피 값은 해야지." "제 자유는 어디 있습니까?" "하하."
아회는 한숨에 가까운 웃음을 흘렸다. 남성 또한 자신의 말에 담긴 어폐를 깨닫고 작게 웃었다. 잠시간의 침묵 후, 아회는 입을 벌렸다.
"……영아." "예, 주군." "네 나와 같이 지옥에 가기로 약조하였지?" "예. 주군께서 피 나누어주실 적 맹세하였습니다." "약속한 게다. 내 목숨은 네가 쥐고 있고, 네 목숨 또한 내가 쥔 걸로…… 다만." "다만?" "가끔은 너는 지옥이 아닌 선계로 가였으면 하는구나. 네가 무슨 죄가 있느냐." "주군." "흘려들어라."
아회는 눈을 감으며 몸을 돌렸다. 뒷모습을 지켜보던 남성은 팔 뻗을까 하다가도 이내 멈추곤 이불만 다시 제대로 덮어줄 뿐이었다.
보잘 것 없는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흔한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 하고. 예닐곱 살부터 나보다 세 살 많은 형의 치다꺼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내 존재 이유였다. 처음부터.
나는 형의 깔개가 되기 위해 태어나 그런 식으로 자랐다. 자아가 형성될 무렵부터 그게 내 존재 이유라고 주입 받았으니. 부조리한 처사에 단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학당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무 의심도 없었지만. 내 나이 열넷이 되어 학당 들어간 후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그 전에는 형의 수발을 드느라 노는 것은 생각지도 못 했으니. 당연히 또래와 만날 일도 없었다. 그러니 학당에 들어가 또래를 만나고. 집 바깥의 전혀 몰랐던 세상을 알아버렸다. 충격이었다. 그 전까지의 내가 전부 부정당하는.
막 들어간 후는 그야 크게 놀랐지만. 학당에 적응하니 어느새 스스로 집안도 형도 부모도 다 이해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나는 그 때 미쳐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버티지 못 했을 것이다. 내가 흑룡이 아니었다면. 그 정신 나갈 것 같은 포용력과 근본 모를 애정을 독처럼 들이키지 않았다면.
... ... .
그래서 학당을 다니는 동안은 다른 의미로 의심도 불만도 없이 생활했다. 하필 적룡에 들어간 형을 보필하면서. 흑룡답게 저주에 해박한 재능을 보이면서. 나름 친구도 만들고. 동갑내기의 귀여운 연인도 사귀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나를 얽매인 족쇄로부터 아주 해방된 듯 생각했다. 너무나도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졸업 후부터는 다시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어릴 때보다는 나았다. 어릴 때 보다는. 형 대신 돈을 벌어오라며 내몰려 가혹하게 일을 했지만. 숨 돌릴 곳은 있었다. 졸업 후에도 연인과 사랑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자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 사랑이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여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 그녀가 있었다. 수년간 내가 죽어라 번 돈으로 마련한 사치스럽게 큰 집의 화려한 거실에. 그녀의 옆에는 형이 있었고 상석엔 부모가 있었다. 그녀는 형의 옆에서 뺨을 붉히며 수줍어하고 형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팔로 다정히 끌어안았다. 부모는 그 둘을 보며 선남선녀니 하늘이 맺어주었다느니 온갖 소리를 했다.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그 속에서 퇴근한 나를 가장 먼저 눈치 챈 건 그녀였다. 그녀는 나를 보고 순간 놀란 눈을 했지만. 그녀의 표정을 형이 가렸다. 나를 향항 득의양양한 얼굴의 의미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형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 연인인 걸 알면서. 단지 그 이유 만으로. 그녀를 꿰어 그 옆에 앉혔다. 그랬었다. 부모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인성이 아니었다. 저 형은. 내 혈연 관계는.
그리고 나는 천천히 내 방으로 들어갔다. 크디 큰 집에서도 가장 작고 허름한 방에. 해가 저물면 가장 먼저 어두워지는 그 방에서 무슨 생각을 하긴 했다. 생각을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고하다가했다가하던말던했던가하다가하다말고하고했다가했던가하던말던하고하고또하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정신을 차린 건 외마디 비명소리 들려서 였다. 문득 고개 들어 앞을 보니 거실이 보였다. 깨끗하던 벽이며 천장이며 바닥이며 죄다 새빨갛고 시커먼 자국 투성이였다. 여기저기 드문드문 무슨 덩어리나 검은 실뭉치 같은 것도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현관까지 시선이 갔다. 거기엔 낯익은 이웃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아주머니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고 있어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고 입을 떼는 순간 쏜살같이 도망갔다. 저런 무례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그 순간 으지직 하고 낯선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아래에서 들려 고개 내려보니.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거실 바닥에 앉아있었다. 피가 웅덩이마냥 고인 거실 한 복판에 앉아 한 손에 시커멓게 물든 식칼을 들고 있었다. 낯선 소리는 굳은 피에서 내 옷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피가 나왔을까. 왜 이 피가 거실에 있을까. 의문과 동시에 답이 떠올랐다.
지난 밤. 나는 내 부모와 형과 연인이었던 사람을 죽였다. 매일 지겹도록 쥐는 식칼로 네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철이 들 적부터 식사 만들기 위해 칼 들고 고기 썰거나 했으니. 살 자르고 관절 끊고 토막내는 것 쯤 일도 아니었다. 시끄럽지 않게 성대부터 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뒤늦게 그들이 지었던 공포와 혼란과 경악의 표정들이 떠올랐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입을 뻐끔거려 말을 하려던 그 얼굴들을.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나를 더러운 오물 보듯 하던 그 시선을.
그녀의 형언할 수 없는 마지막 표정을.
천천히 칼 쥔 손 들어올렸다. 이들 다 죽였으니 이제 내 역할도 없어졌다. 그러면 나도 살 필요가 없었다. 식칼은 피가 굳어 뻑뻑했지만 내 목 한 번 뚫을 수는 있었다. 뻐근한 손으로 칼 다시 쥐고. 내 목에 겨누고. 그대로 찔러넣으려 했다. 손잡이 쥔 손에 힘 주는 순간.
뻑!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누가 옆에서 걷어찬 탓이었다. 내 몸은 바닥의 아직 덜 굳은 핏물 위로 철퍽 넘어지고. 덩달아 놓친 칼은 거실 구석까지 미끄러졌다. 찐득한 핏물에서 고개 들어 칼 보다가 걷어채인 쪽을 보았다. 거기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다섯 명이.
"어이. 이렇게 거하게 저질러놓고 도망가면 안 되지. 엉?"
그 중 가장 덩치 큰 한 명이 걸걸한 사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도망. 도망이라니. 나는 그저 역할이 없어진 나를 끝내려고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말하는 거.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어허. 이게 뭔 일이여. 눈 뜨고 실성했나." "그러길래 살살 차라니까." "힘도 안 줬다 어! 그래서 이거 어째?" "글쎄다."
그저 가만히 핏물에 엎어져 눈만 끔뻑이는 나를 두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 그들은 서로 쑥덕대었다. 그러다 서로 무언의 신호를 주고 받았다. 그 중 가장 뒤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나를 일으켰다. 걷어찰 때와는 정 반대로 친절한 손길이었다. 핏물 투성이인 내게 그들의 옷을 씌워주고. 데려가는 마차 안에서도 손을 구속한 것 말곤 달리 제압이랄게 없었다. 심지어 어느 저택에 도착했을 때도 그 저택의 사람들이 나를 데려가 씻을 물과 새 옷까지 주었다.
죄인에게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의문이 들 법도 했지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하라는 대로. 보내지는 대로. 내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순순히 씻고 나오니 사람이 의원을 데려와 진찰까지 해주었다. 무턱대고 식칼을 휘둘러대서 엉망인 손에 그제서야 약이 발라지고 붕대가 감겼다. 진맥을 보고 평생 먹어본 적 없는 약탕도 마셨다. 그 뒤엔 어느 독방에 가두어졌다. 독방이라고 했지만 내 방보다 조금 작을 뿐. 깨끗한 개인실이었다. 단지 내 뜻대로 나가지 못 할 뿐.
거기서 일주일을 보냈다.
하루 세 번 제공되는 식사를 먹고. 하루 한 번 주는 세숫대야와 수건으로 세면을 하고. 종일 멍하니 있다가 해가 지면 구비된 이불에서 자고. 하루는 그렇게 보내고. 하루는 눈 뜬 내내 숨이 차게 울고. 하루는 앉아서도 누워서도 미친 사람마냥 웃고. 또 하루는 시체마냥 보내고. 반복.
해가 일곱번 지는 동안 그렇게 지냈다. 그래서였는지. 해가 일곱번째 뜨는 날은 그저 멍했다. 더이상 털어낼 것도 없는 그 날 아침. 멀거니 앉아있는 내 앞에 그가 마주 앉았다.
"이제 좀 시원한가요?"
말쑥한 차림을 한 그는 아직 소년의 티가 엿보이는 청년이었다. 붉은 빛 감도는 갈색 곱슬머리에 금빛 눈을 가진 그는 홀로 독방에 들어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를 똑바로 마주보면서. 그의 시선은 맑았고 그것이 나를 편하게 했다. 이미 다 털어버린 후라 그랬을 지도 모르지만. 일주일 만에 입을 열어 그 말에 대답해주었다.
잘 모르겠다고.
"하하. 그럴 만도 하죠. 음. 그럼 우선 차부터 마시도록 할까요. 당신. 목소리가 많이 갈라졌어요."
그리고 그는 정말로 다과상을 차렸다. 차주전자와 찻잔 두 개 뿐인 소반을 두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말없이 그가 따라준 차를 마셨다. 차는 곡물을 우린 것인지 빈 속에도 마시기 편하고 향도 좋았다. 그도 차를 마셨다. 서로 말없이 차만 마시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이제 어찌 되느냐고. 사형인 거냐고.
"음. 무슨 말을 할까 했는데 그것부터 묻는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답하자면. 당신 하기 나름이에요. 평생을 지하에 갇혀 살다 죽을지. 죄인으로라도 새 삶을 살지."
새 삶?
"네. 새 삶을 사는 겁니다. 여기는 천부의 류 가. 대외적으로는 온갖 물건을 만들어 파는 상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면으로는 이렇게 각지의 죄인을 잡아들이는 일도 하고 있지요. 잡혀온 죄인은 죽고서도 죄의 낙인을 벗을 수 없지만. 하기에 따라 사는 동안은 사람 대접 받으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집안이거든요. 저희 류 가는."
겨우 이해되는 설명을 한 그는 싱긋 웃으며 다시 차를 마셨다. 천부의 류 가. 그러고보니 들어본 적은 있었다. 천부에서 제일가는 도구상이며 장인가라고. 그런 집안에서 죄인을 잡는 일도 하고 있었다니. 그러나 죄인의 취급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물며 나는 극형에 처해야 할 죄인 아닌가? 살인을. 그것도 친족살해를 저질렀는데.
"왜 당신에게 처형이 내려지지 않는지 모르겠단 표정이시네요."
순간 뜨끔 했지만. 사실이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세간에서 당신과 같은 이는 죄인일 뿐이지요. 허나 저희 류 가가 보기엔 세간이나 당신들이나 똑같습니다. 단지 얼마나 눈에 띄는 죄를 저질렀나 그 차이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일손이 아주 아주 많이 필요한 집안인지라. 어차피 세간에서 쫓겨난 당신들을 거둬 이용해먹는 것이랍니다."
뭔가 구구절절 나올 것 같았지만. 그의 설명은 그게 다였다. 이 집안에 일손이 부족하니 잡아온 죄인들을 일꾼으로 쓴다. 뭔가 많이 빠지고 생략된 것 같았지만. 수년간 길러온 눈치가 경종을 울렸다. 이 이상 알려고 해선 안 된다고. 알아낸 것도 없지만. 더 알아서는 안 된다고. 혹하지 말고 얌전히 죄인의 처사를 받아야 한다고. 나는 죄인이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당신은 죄인이니 앞으로도 아무 것도 누려선 아니 된다고."
끄덕.
"어째서죠? 기껏 지옥 같은 집에서 벗어났지 않나요. 주어진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여기에선 그 집과 같은 처사는 받지 않을 거에요. 당신이 그러길 원한다면."
...정말로?
"예. 물론이죠. 제가 장담하지요.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일 것이라고. 죄인으로서의 새 삶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그렇다면...
그의 목소리는 매우 친절하고 다정했다. 그 울림이 나를 흔들었다. 그 참사를 벌여가며 집에서 벗어나놓고 또다시 스스로를 가두려 하는 나를 흔들어. 기어코 내가 바깥을 택하게 만들었다. 복잡하게 밀려드는 심사는 눈물을 불러와. 소반에 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주하고 있던 그는 조용히 내 옆으로 건너와 손수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 쏟으며 꺼억꺼억 우는 내가 울음 그칠 때까지.
그로부터 사흘 뒤. 나는 류 가의, 현 가주의 아들 류 일향의 종자가 되었다.
독방에 홀로 찾아왔던 그 청년이 가주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적지 않게 놀랐으나. 가문 내의 분위기 보고 이내 납득했다. 나 외에도 일하는 죄인이 많았으며. 그들 모두 이 집 안에서만큼은 보통 사람으로 대접 받고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대접받았다. 그가. 일향이 말했던 대로 였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친절히 대해주었기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평범히 가족 대하듯 해주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싶기도 해서 몇 번 훌쩍였더니.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울보 아저씨라는 별명도 얻었다. 스물 다섯에 아저씨 소리는 조금 억울했지만 그마저도 편안했다. 나고 자란 그 집에서 느낀 그런 감정은 다시 들지 않았다.
일향을 따라 가문에 대해 배우고 일을 하며 아는 것 늘어갔다. 류 가는 앞서 말한 두 일 말고도 각지의 갖가지 요괴를 잡거나. 갖은 지식을 수집하여 축적하고 있다던가. 특출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살리도록 해주기도 하거나 등등. 다양한 걸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학당 다닐 적 흑룡이었고 저주에 능통했다 하니 일향이 그럼 나는 도술 관련된 걸 하라며 그쪽 일을 맡겨주었다.
처음이었다. 나를 알아봐주고 내게 맞는 것을 찾아준 것은. 모순적이게도 전부를 잃은 뒤에야 내 삶을 제대로 찾아가는 듯 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류 가는 도술 중에서도 특히 저주 방면을 깊게 파고들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적격이라며 탐구하는 곳에 자리가 생겼고. 처음엔 서먹했지만 곧 내 재능을 인정 받아 같이 속한 사람들과 밤낮없이 저주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물론 일향의 종자 노릇도 하면서. 하루 종일 바빴지만 그 지옥보다는 훨씬 나았다.
원래 삶에선 상상도 못 하던.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한켠으로는 지울 수 없는 위화감이 있었다. 일향이 일부러 뭉개었던 가문의 설명. 사람들 사이 가끔 보이는 미묘한 벽과 같은 분위기. 그 벽이 느껴질 때마다 울리는 본능적인 경고. 하지만 동시에 드는 호기심이 의문을 더 불러왔다. 이걸 직접 물어야 할지. 끝까지 모른 채 해야 할지. 두 고민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무렵.
그 아이를 만났다. 이 집안에서 누구보다 이질적이지만 가장 본질에 가까운 듯한 그 아이. 류 온화를.
세상에, 온화의 독백... 온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시점에서 보는 이야기인데도 읽을 거리가 쏠쏠하네요. 죄인들은 결국 류 가로 가서 어떤 식으로든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작은 사회에 갇히게 된 느낌 같기도 하고, 언젠가 쓸모가 없어지거나 하면 저번 독백처럼 역린이 밥으로 쓱싹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의 인생 또한 씁쓸하지만 죄는 죄구나 싶기도 하고. 전부를 잃은 뒤에야 삶을 찾았다, 이 말과 맨 마지막에 보인 '본질에 가까운 듯한' 온화라는 언급에 무언가 지대한 사건에 연루될 느낌도 들고...!!! 온화주가 너무나도 부럽네요... 이 이후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테니까요...!🥹 (손수건 물어뜯음) 보배로운 독백 맛있게 먹었답니다~!
제가 지금 호수로 아회가 도망쳐버렸고, 거기에서 결국 정신 놓고 타인으로 온전하게 착각해버렸단 전개로 써버린지라... 혹시 지문을 통해 상황을 짤막히 설명하고, 그 상황(싸움) 도중에 도망쳐버린 아회를 온화가 찾게끔 유도해도 괜찮을까요? "그래서 누가 사감쌤한테 무 선배 끌고가는데요?" 같은 대사로요...👀
싸움이 났다! 적룡 기숙사라 하면 호전적이고 예민한 사람이 많았기에 눈만 마주쳐도 싸우니 주먹다짐 흔하다지만, 상대가 아회라면 이야기는 달라져 구경거리가 되곤 했다. 적룡 기숙사 내부에서도 온건하다 못해 싸움이라곤 거의 하려 들지 않아 타인들도 잘 건드리지 않으려 드는 잿더미 같은 사람이라 평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싸움이라! 상대가 대체 어떤 말로 속을 뒤집었길래 주먹다짐까지 갔는지, 학생들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며 먼발치에서 당사자들을 둘러싸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잿더미의 싸움엔 한 가지 묘미가 있었으니, 아회가 절대 싸움을 못 하는 쪽이 아니었단 점이다. 지금도 그러했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상대의 앞니는 나가버렸고, 코피를 줄줄 흘리며 더는 반응하지 못해도 주먹질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둔탁한 소리에 질척대는 소리까지 함께 나더니 으지끈! 소리가 나자 보다 못한 누군가 싸움판에 난입했다. 그의 벗, 수일이었다. 수일이 뛰쳐나가 주먹을 붙잡기가 무섭게 아회는 고개를 돌렸다. 아회의 꼴도 정상이라 할 수 없었던 것이, 볼에는 시퍼런 멍이 들고 이마는 찢어졌다. 옷도 멱살 틀어쥔 손에 발버둥이라도 쳤는지 옷고름 뜯겨있으며 머리는 산발에 붓은 저 멀리 동강 나 나뒹군지 오래다. 입도 터졌는지 피가 선명했다.
"애 죽겠어. 진짜 위험하니까 그만해." "……." "야, 듣고 있어?" "……놔." "뭐?" "이 새끼 죽여버릴 테니까 놓으라고." "그러지 말고, 너도 지금 상태 안 좋은 것 같은데-" "어차피 사람은 죽는데 지금 보내도 괜찮지 않나?"
대화가 도저히 통하지 않는다. 수일은 위험을 직감했으나 팔을 그대로 뿌리친 아회는 부적이 불타버리기가 무섭게 인파를 뚫고 사라져버렸다. "야! 무아회!" 누군가 수일 대신 목청을 높였지만 이미 아회는 연기가 되어 사라진지 오래였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에 생겨난 침묵. 보다 못한 적룡 학생 하나가 질문했다.
"근데 아ㅂ, 아니, 아회 선배님은 왜 싸운 거예요?"
엽 씨 가문의 어린 여식이다. 맹랑하고 호기심 어린 질문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학생이 핏자국 널리 퍼진 바닥과 늘어진 학생을 보고 끔찍한 듯 눈을 좁혔다.
"저거, 쟤가 먼저 시비를 걸었어. 뭐라고 했더라? 무 씨 집안 궁기가 뭐 어쨌다고 하던데, 그런 거에 평소엔 말로만 반응하던 애가 왜 저러지." "어, 저야 모르죠. 그런데 선배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데 누가 쫓아가서 데려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진짜 궁기처럼……." "입 조심해. 제사장 아닌 애들도 있어."
다른 제사장 집안 아이의 일갈과 함께 복도는 삽시간에 새로운 싸움을 국면 하듯 싸늘해졌고, 여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 눈을 굴렸다.
"그래서 누가 사감쌤한테 무 선배 끌고가는데요?" 호수. 상처투성이로 눈을 부릅 뜨고 얼굴을 몇 번이고 더듬던 아회는 그대로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 그렇게 한참을. 무어라 씹어뱉었으나 들리지 않는다. 들어줄 사람도 없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부릅 뜨던 눈을 평온히 감은 아회는 고개 올리며 인기척 나던 곳을 향해 입 벌렸다.
"그리 느려서야 어디 약조를 지킬 수나 있겠느냐. 어서 오련, 이러다 목이 빠지겠구나……."
눈두덩이 더욱 움푹 들어가고, 어제보다 다크서클이 더 길게 내려앉아 있다고. 연의 룸메이트인 아이가 걱정을 내비치나, 연은 그에 괜찮다며 아이가 안심할 말 하나 하지 못한다. 무기력하고, 어깨는 단단히 뭉쳤고, 머리는 더욱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옷에도 구김이 가득하니 단정함은 온데간데없다. 그러니 변명을 해보아야 걱정만 더 끼칠 뿐이라, 그저 옅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다. 매일 같이 침대에 몸을 눕히나, 매일 같이 연은 단잠의 시간으로 떠나지 못했다. 허우적거리며 무기력한 꿈의 끝에서 연은 희미한 달빛 속 어두운 천장을 뜬 눈으로 올려다보며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 못 이루는 날이 길어지니 룸메이트인 아이 연에게 무언가 작은 쿠폰 같은 걸 쥐여주며 말하기를, 천부에는 악몽을 쫓는 부적 같은 것도 팔지 않겠냐며. 이것은 카페의 케이크 세트 쿠폰이니, 달콤한 것도 먹고, 부적도 지어 오라며. 등 떠밀려 천부에 오게 된 것이라. 연은 인파에 치이며 부적을 지어줄 곳을 찾았으나 찾지 못한 채. 쿠폰만 손에 꼭 쥐고서 카페 앞에 서 들어갈지, 아니면 그냥 돌아갈지 망설이고 있었다.
과연 자신이 케이크가 나오기 전까지 졸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반쯤 감긴 눈, 무거운 눈꺼풀을 껌뻑껌뻑 거리며 고민하다 연은 길게 하품을 내쉰다. 부적을 써줄 가게를 찾아 인파 속을 헤치고 다니느라 더욱 피로한 것이라. 케이크가 나와도 먹다가 깜빡 졸아버리진 않을지, 비몽사몽하니 제대로 입으로 가져가지도 못하고 흘릴 것만 같으니. 그냥 돌아가자고 마음을 먹던 때. 연은 제 눈앞에 나타난 궁기를 보고서 토끼 눈을 떠낸다. 다정하단 듯 말을 걸어오는 재앙을 목도하니 어떤 각성의 상태에 들어선 것만 같은지라. 자꾸만 감기던 눈도 크게 떠지고, 정신이 확 드는 것에 연은 궁기가 해오는 말을 듣고선 연은 화난 듯 잔뜩 표정을 구긴다.
"좋아할 거라고 했었잖아. 왜 거짓말을 했던 거야?"
연의 눈가에 주름이 잡히니. 따지듯 묻는 것이 화가 난 듯한 눈치라. 제 물음에 대한 답이나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을 시 연은 선배고, 뭐고 당장이 궁기의 무릎을 발로 까 버릴 생각을 하며 궁기를 올려다본다.
싸움이 났다. 긴 복도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된 요란한 몸싸움 소리 울린다. 오늘도 참 지치지도 않고 치고 받는구나. 제 방에 늘어져 있던 온화 그 소란 들으며 생각했다. 옆에는 집에서 보낸 서신이 아무렇게나 펼쳐지고 늘어져 있었다.
슬슬 나가볼까 했더니 이 무슨 난리인지. 조용해지거든 나가야겠다. 이미 다 읽은 서신 멀찍이 두고 느긋히 곰방대 불 당겼다. 새로 담은 담뱃잎 빨갛게 타올라 이윽고 한 모금 연기 뿜을 쯤. 학생 두엇이 문 앞 지나가며 떠들었다. 누구랑 누가 싸우는 거래? ...랑 무 선배라던데? 지나가는 이름 중 하나는 흐릿했으나 하나는 명확히 제 귀에 들렸다.
학생들 지나가고 잠시. 가만히 있던 온화 자리에서 몸 일으켰다. 후- 다시금 연기 내뱉으며 방에서나 걸치는 한벌옷 위에 적룡 두루마기 대충 걸치기만 하고 방을 나섰다. 다행이랄지. 싸우는 소란 이는 곳 그리 멀지 않았다. 안경도 없이 머리도 묶지 않고 헐렁한 차림새로 그 소란 가까이 가니. 누군가의 팔 붙잡은 수일 보였다. 피가 울긋불긋한 손이 머리통들 사이로 얼핏 비췄다. 그 손 누구 것인지 알자마자 걸음 서둘렀으나 가까이 하기 무섭게 한 줄기 연기가 학생들 사이를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제 걸음 당도하니 이미 끝난 상황에 낮은 한숨 내쉬었다.
아회 가버린 방향 보던 수일이 뒤늦게 온화 발견하고 다가와 제가 그랬던 것처럼 한숨 쉬었다. 벗 말려보겠다고 나섰다가 쓴 맛 본 꼴이 그럼 그렇지 였다. 상황 설명은 물을 것도 없이 모인 이들 떠드는 것 듣기로 되었다. 저기 저 바닥에 피떡 된 놈이 망언을 했다. 뭐 그 정도였다던가. 누군가는 눈쌀 찌푸려지는 바닥을 온화 덤덤한 눈으로 보았다. 그러다 힐끔 눈 돌렸다. 처음에 왜 싸웠나-를 말한 그 여후배에게. 그리고 말했다. 그 때 복도는 조용했기에 제 목소리는 낭창하게도 울렸다.
"그리 떠들 시간에 쫓아야겠단 생각은 안 들더냐? 혓바닥이 걸음보다 가벼우니 조만간 저 꼴 하나 더 치르겠구나."
그 하나가 누구일지 콕 집은 이 없었으나 온화 시선 그 여식에게 꽂혀 있었으니 달리 생각할 것 있을까. 낄낄. 한 손에 든 곰방대 까딱이며 웃으니 어디선가 딱딱딱! 하고 기묘한 소리 같이 울린다. 거기 모인 모두를 비웃듯. 분위기 더 싸하게 만들어 놓고서 그 한복판 천천히 가로질렀다. 가는 길에 널브러진 놈 배 지그시 밟아 숨은 쉬는지 확인하고. 그 여식 옆 지나가며 그저 흘리듯 중얼거렸다.
"그 머리가 장식이 아니라면. 혓바닥 놀리기 전에 생각이란 걸 하려무나."
그리 지나친 후에 수일 돌아보며 말했다.
"무 선배는 내가 쫓을 터니. 그거나 치우게. 더럽잖나. 바닥이."
어휴. 무슨 악취라도 난단 듯 코 앞서 손 흔들었다. 더러운 것 피하듯 걸음 성큼성큼 떼어 그곳서 멀어졌다. 그 뒤로 수일이 나서 자리 정리하는 것 멀리 들렸다.
적룡 기숙사 밖으로 나온 온화 곧장 호수로 향했다. 다년간 아회 알고 지낸 것 이럴 때 참 쓸모있었다. 조금은 급하게 잰걸음으로 두루마기 휘날리며 호숫가로 가니. 아니나다를까 거기 있었다. 산발이 된 잿빛 머리에 주저앉은 뒷모습이.
발견하자마자 안도의 한숨 내쉬었으면서도 가까이 갈 적에는 태연히 다가갔다. 쫓아나온 것 아닌 마냥.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던 양. 그리 평소처럼 말을 걸려고 했으나 제가 말 거는 것보다 아회 돌아보는 것 먼저였다. 돌아보는 얼굴에 흐른 핏자국부터 눈에 들어와 희미하게 미간 일그러뜨린 것 순간이었다. 돌아본 아회가 저를 향해 하는 말 어째 이상했다.
약조? 무슨 약조를 했었나? 아니. 전혀 기억에 없다. 제가 목이 빠지게 기다릴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저 선후배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이거늘. 딱 그 말 한 번 만으로도 평소같지 않음을 감지하자 아무리 온화여도 순간 고민했다. 이거 정말로 하 사감 불러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궁금해졌다. 지금의 아회가 무엇을 보여주진 않을지. 온화 안의 저울은 찰나 삐걱이고 슬그머니 후자로 기울었다. 크흠. 작게 헛기침을 해 목 가다듬곤 차분히 낮춘 목소리로 대답했다.
"찾느라 늦었습니다. 맞은 곳은. 어떠신지요."
말투는 어찌할까 하다가 향이 오라비 것을 흉내내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저 답지 않았으니까. 대답하고 반응 슬쩍 살피고. 조심히 그 옆에 가서 앉으려 했다. 저도 모르게 한 쪽 무릎 꿇으며 저를 낮추는 듯한 자세 취하게 되었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경솔히 손 대고 싶은 것 일단은 참으며 말 덧붙였다.
엽 씨 가문 여식은 그 동그란 눈을 정확히 당신 향해 마주했다가, 다른 학생이 눈 가려주며 제지하자 한 번 몸만 움찔했다. 싸움 생기려던 것 간신히 참듯 입술 꾹 다물다 성큼성큼 걸어갈 적에야 아르릉 화 참아내고 자리 휙 떠버리는 것이 조그마한 강아지 같았다. 네게 신의 악의가 느껴지니, 역시 궁기 있는 집안은 무언가 다르긴 한가 보다. 거듭 저주만 받는 집안이니 하루 빨리 제사장들의 손에 궁기는 이리저리 조각 내어 산 제물로 바치고 너 또한 바치면 딱이겠구나!
악의 가득한 조롱을 평소 같으면 넘길 수 있을 터인데도 오늘은 참을 수 없었다. 아마 꾸었던 꿈 때문의 탓도 있으리라. 꿈 내용에 감정이 동하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인내심이 뚝 떨어져 주먹을 내지르게 됐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녀석의 얼굴이 피로 물들 적엔 희열마저 느꼈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긴 한가? 아니, 현실이 아니면 뭐가 어떻지? 어디에서든 내 행동은 옳고 정명하다. 몽중이었어도, 현실이었어도 두들겨 팼을 것이고, 심하면 그 목숨을 뺏기까지 했을 것이다. 도발에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나는 틀리지 않았어……."
씹어뱉기가 무섭게 얼마 없는 세상의 정명함을 판가름하고, 옳고 그른 이치를 구분하던 이성은 점차 흐려지고, 이내 수마에 빠지듯 갈피를 잃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아회란 자는 조용한 곳을 그리도 좋아하는 사람이니, 인적 드문 학교 호수는 그 난리가 났을 때도 도망치기 딱 좋은 곳이라. 평소 같으면 호수에 비치는 물 쳐다보듯 고개가 그쪽으로 향했을 터인데, 오늘은 호수를 옆에 두고 앉은 모습이 다르다면 다를 터였다. 자신이 앉은 방향마저 판단하지 못했으니, 당연하게도 당신을 알아볼 리도 없었다.
"죽을 날이 다가왔나 보다, 네 나를 걱정하는 날도 다 있다니."
이렇다 할 꾸짖음의 기색은 없었다. 그냥 하는 말이라는 듯 가볍게 핀잔하고는 터진 입안에서 고인 피를 적당히 먼 곳에 뱉었다. "북부에서 이리 늦었다면 이미 내 죽었을 터지만 학당이라 멀쩡하다. 나보다는 내게 맞은 놈이 고역일 게야." 손등으로 아무렇게나 입을 훔치는 것이 평소와는 제법 달랐다. 어쩌면 격한 싸움의 여운이 가시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하!"
아회의 웃음은 제법 탁했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호탕함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문장이나 단어라기엔 감정이 있었다. 그 감정을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유쾌함은 아니다. 아회는 손을 한 번 내젓곤 느릿하게 까딱인다. 제 차림은 됐고, 더 가까이 오기나 하라는 듯. 이제 보니 안경도 싸움 도중에 날아가 버린 모양이다.
올 해의 학당은 이상한 일 많아도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작은- 하 사감의 폭주였나. 아니. 과거의 잔영 희미하게 드리울 적 부터였다. 학당에서 세간에서 핏빛 명성 자자한 이들 그 실체 드러내면서부터. 이변과 풍랑은 줄곧 이어져오고 있었다. 단지 그것 인정하고 싶지 않아 줄곧 모른 체 했을 뿐이지.
그래. 제 문제는 여지껏 외면해놓고서 제 것 아닌 문제는 그러질 못 했다. 그저 저잣거리서 스쳤던 학생 하나도 눈에 띄면 그냥 두질 못 하는데. 자그마치 삼 년을 알고 지낸 이는 오죽하랴. 어설프게 남은 본질은 늘 저를 충동질하고 멈춰서게 만든다. 들리면 귀 기울이게 하고. 보이면 눈 쫓게 한다. 아직 제가 그 시절에 머물러있는 듯. 상냥한 착각 불러일으켜 마주한 이를 보게 하였다.
...각설하고.
쫓아온 아회는 호수 앞에 있었다. 그러나 늘 앉은 방향 아니라 호수를 옆에 두었다. 호수 앞에 앉은 아회는 항상 얼굴이 호수물 비친 듯 맑았는데. 지금은 비산하는 조각빛이 옆 얼굴 겨우 비췄다. 하필 멍든 볼에 비추어 낯빛 창백히 보였다. 그 모습 보며 온화 문득 생각했다. 저대로 툭 쓰러져 호수 안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 같다고. 아회가 죽을 날이 다가왔다는 둥 하여 든 생각일 지도 모른다. 허나 그리 되기 전에 잡아야 하는데. 아. 과연 제가 그럴 분수이던가. 여느 때와 같지 않은 이 상황이 저마저 듬성듬성 조각내는 듯 했다.
"...예. 언사 수월하신 것 보니. 제가 괜한 걱정을 한 듯 싶습니다."
멀리 내뱉어진 핏덩이 힐끔 보며 그리 말하고. 아회가 허한다면 곧장 옷이며 머리며 정도해주려 했으나 짧게 흐른 웃음이 저를 벙-하게 했다. 저리 웃는 것 제 앞에서는 없었, 지 않나. 그보다 웃을 줄 알았냐고. 이 사람. 늘 입 꾹 다물고 꿍얼대거나 기껏해야 눈썹 들썩이는 것 보는게 고작이었던 제 지난 날들 떠오른다. 저 행색에 들었던 안쓰러움 한 켠에 삐죽한 가시 하나 솟는다. 쑥 자라난 가시 곧 제 심장 쿡 찔러서 눈 가늘게 떠 아회 흘겨보게 하였다. 제가 듣기엔 퍽이나 친근하게 건네는 말들- 말벗을 해달라거나 얼굴 좀 보자거나. 그 말들이 가시의 크기 한층 키워 행동 조금 불퉁스럽게 만들었다.
하. 짧게 한숨 내쉬곤 낮추었던 몸 휙 일으켰다. 크게 펄럭일 정도로 호탕하게 제 두루마기 벗어선 아회 머리 위로 펼쳐 덮는다. 덕분에 저는 방에서 뒹굴 적에나 입는 검은 한벌옷 차림에 팔다리며 등판까지 훤히 드러났지만. 제 살 드러나는 것보다 저 안쓰러운 몰골 가리는게 제겐 우선이었다. 행여나 벗어낼라 확실히 덮고 있도록 소매며 자락이며 매만져주곤 그 옆에 다시 슥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신경 쓰지 말래도 눈에 뵈니 안쓰럽습니다. 손 대는 것 원치 않으시면 그거나 덮고 계시지요. 저기. 빌려온 것이니."
짧은 치마 입고도 경망스럽게 양반다리 하고 앉은 온화 그제야 곰방대 물었다. 거의 꺼져갈 듯한 불 겨우 살려 한 모금 피우니 잠시 술렁였던 것 담배연기마냥 흩어져버린다. 희뿌연 연기 아회에게 닿지 않게 바람 태워 멀리 보내버리곤 다시금 차분히 내려앉힌 목소리로 물었다.
북부 사람이라면 새하얀 피부가 특징이나, 그는 유달리 창백한 편에 속했기 때문인지 상처가 조금만 나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방금 얻어맞은 얼굴은 금세 푸른 자국을 남기기 시작했고, 주변은 발갛게 물들어 있으니 시체 꼴이 딱 그러할 것이다. 하물며 눈까지 감고 있었으니 더욱. 다만 어딘가 고통스러운 기색 없고 평온하니 기이한 사람이라면 기이하리라. 아회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적룡 기숙사에서 싸움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는가, 죽여 패지 못한 것이 한일뿐이다.
"그래야지."
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착각하는 존재는 걱정을 그다지 하지 않는 성격인 듯싶다. 그리고 제법 친밀한, 혹은 그 이상을 넘어선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원내에서, 아니, 재학하며 단 한 번이라도 웃은 적이 있었나? 아니다. 아회라는 인물은 웃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잿더미처럼 초연하게 그럼 그렇지, 그렇군, 그런가? 이 세 반응 중 하나를 적당히 고르는 사람이었다. 지금 하나하나 보이는 행동이나 언사가 당신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아."
펄럭이는 두루마기가 머리를 덮기가 무섭게 외마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벗어내려 꾸물댔으나 이번엔 당신이 빨랐다. 소매요 자락 다 정갈히 매만져버린 손길에 아회의 입에서 더 불만은 튀어나오지 못했다. 대신 다른 것이 튀어나오니, 당신이 뱉은 얘기 때문이다. "에이잉, 영이 이 녀석." 짤막히 튀어나온 것은 타인의 이름이다. 앙상한 듯 관리되지 못한 손이 두루마기 사이를 빠져나오더니 허공을 잠시 더듬거린다.
"서로 동정하지 않기로 했잖니. 그런 부차적인 것은 짐만 될 뿐이라니까…… 이래서 북부 바깥 녀석들이란."
당신을 잡지 못하는 손길은 계속되다가 이내 힘없이 내려갔다. 담뱃잎 태우는 내음에 "끊겠다면서." 덤덤히 얘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착각의 대상 또한 흡연자인 모양이다. 차분한 목소리에 아회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몸을 웅크리듯 하며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내 두루마기 사이로 드러난 표정은 초연했다. 잿더미로 돌아왔다는 듯.
"너도 참, 오늘따라 이상하구나. 어련히 알 것을 모르는 체하니 마치 다른 사람 같아."
농이다. 덧붙이는 목소리는 덤덤하다. 아까 전 웃었던 것을 제외하면 평소의 아회와 같은 어조요, 모습이거늘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서 큰 이질감 부를 뿐이다.
"개운하단다, 당장은 그러하지."
희미하게 눈썹 내려가는 것이, 당신에게 으레 보여주던 표정 중 하나다. 어딘가 언짢을 때마다 드물게 보여주곤 하였던.
친근히 대하는 화법. 들어본 적 없는 웃음소리. 저는 알지 못 하는 이야기. 명백하게 저를 다른 사람으로 보고 대하는 행동.
투명한 물에 검은 먹물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간다. 조용히 물들어가는 그 속에 희미한 앙금마저 가라앉는다.
평소라면 볼멘소리 없이 끌어내리거나 그냥 두었을 두루마기조차 외마디 불만 표하며 손 허우적대는 아회를 붉은 눈동자가 응시했다. 저를 대체 누구에 빗대어 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기 무섭게 이름 하나 들렸다. 영이. 누군데 그거? 지난 삼 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은 곰방대 쥔 손에 슬그머니 힘 불러일으켰다. 손등에 핏줄 툭 불거질 만큼. 조금만 더 세게 쥐면 죽대 부러지겠거니 싶을 즈음. 돌연 손에 힘 풀렸다. 뾰족히 돋아 심장 찔러오는 가시 하나 늘어난 탓이다.
제가 감히 그런 생각 할 처지더냐 하는. 일종의 자책. 가책이자 꾸짖음.
담배 내음과 더불어 저를 옥죄는 그것 아니었으면 당장 저 앙상한 손목 잡아채어 누구를 보느냐 다그쳤을 것이다. 그리 할 수 없어서 다행이었다. 주절주절 들려오는 목소리 들으며. 비뚝 기운 머리에 머리칼 사이 붉은 수정 반짝인다. 담지 말아라. 흘려 듣자. 스스로 되내이며 필요한 최소한의 말 만을 입에 담았다.
"답지 않은 날도 가끔은 있을 만 하지요."
그 영이란 사람도 사람이라면 말이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말 혀와 같이 씹어 삼켰다. 담배 얘기엔 조만간 끊을 겁니다 하고 뚝 잘라 답했다. 아. 문득 눈치 빠른 제가 원망스럽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알고 싶지 않아도. 아회 말과 행동에 그 영이란 자 누구인가 그려진다. 아회와 가까우면서 걱정 그다지 하지 않으며 흡연을 하고 동정을 부차적인 것이라 표할 만한 사이이며 묻는 말에 얼버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답해주는 상대. 저보다 지낸 시간 오래일 것 분명해 뵈는 분명하게 만드는 상황의 연속에 스스로 휘말려드는 듯 했다.
답지 않아? 다른 사람 같아? 누가 할 소리를.
끊고 싶다. 다시금 저 웅크린 어깨 붙잡아 고성 지르고 싶다. 악 쓰고 싶은 마음 동시에 그러면 안 된다 목 죄는 마음 있다. 아니지. 안 된다고? 솔직해져라. 이 둘도 없을 상황을 직접 끊고 싶지 않을 뿐이지 않나.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어떻게 저 본 적 없는 모습 볼 건데. 지금이 아니면 저런 말 언제 들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덤덤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 기울인 채로 눈만 굴려 저 봉긋한 두루마기 덩어리 보았다. 평소와 같이 초연해졌으나 분명 제가 보던 것과는 다른 그 얼굴을. 제가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저는 모른다. 잠시 응시하다 정 반대로 눈 돌리고 담배만 태웠다. 그리고 말했다.
"...무엇이 그리 불쾌할 것 같으십니까."
딱히 그 영이란 사람 의식해서 말 고르진 않았다. 그저 제 오라비 흉내 내었던 것이 점점 비틀려가는 심사에 비추어 그럴 듯 하게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목소리 역시. 낮게 가라앉은 채로.
당신은 잿빛 머리를 가졌다. 사실 잿빛이 아닌 것 정도는 보인다. 그렇지만 이미 머리는 잿빛으로 인식했고, 금색 눈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인이 아닌 사내로 판단하고 있으되 이곳이 몽중의 경계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회라는 존재는 원래 신기루와 같아, 이런 허상의 경계에 존재함이 옳기에. 그렇기에 무 씨 집안의 유령이라 불리지 아니하였나? 당신이 누구인지 이미 완벽히 착각한 순간부터, 유령은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더니."
아회는 나지막이 되물을 뿐이다. 답지 않은 날도 있을 법한가? 그런 의도를 가지며 속으로 하나를 센다. 조만간 끊겠다는 말에는 속내로 셈했던 수의 반을 덜었고, 온화하게 인내했다. 여전히 무표정 여상하며 웅크린 몸은 작다. 금세 흩어질 듯 초연한 모습으로 한참을 침묵했다. 담배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폐부 깊숙하게 들어와도, 당신의 질문이 끝났음을 깨달은지 한참이 지나도.
"영아."
마침내 침묵이 깨졌다. 한참이고 입만 다물던 아회는 당신을 향해 온전히 시선을 돌렸다. 당신이 쳐다보지 않는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렇게 쳐다보며 표정을 점차 굳혔다. 약간이나마 언짢음을 표하던 얼굴에 처음 보는 획이 그어진다. 차갑게 식어버린 표정은 북부를 빼닮았다. 눈을 감았음에도 차가움이 온전히 느껴지고 첨예한 고드름처럼 입매는 다물린다. 고개가 서서히 기우는 꼴이 기이했다. 그대로 눈을 뜨면 상대를 노려보듯 치켜뜰 것만 같았다.
"나는 말이지, 같잖은 도발에 넘어가서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팼단다……. 그 아이는 아마 지금쯤 고역을 치르면서도 예상을 하였을 게야."
사근사근 뱉는 단어와 달리 여전히 표정 서늘하다. "무아회, 그 녀석이 궁기와 관련이 있구나, 하고."
"그 사실이 나를 끝없이 옥죄겠지. 그게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인간이란 모두 그런 존재지 않니. 무언가 좋은 것이 있다면, 쥐어 휘두르기 위해 모르는 척 이야기를 흘리고, 남몰래 스며들어 동조하게 만들고, 그렇게 누군가의 속내를 엿보려 들고, 끝내 잡아채어 목을 꺾어버리지. 너 또한 그쪽 부류였으니 잘 알 터인데……. 특히 제사장이라는 것들은 그 치세를 떨치며 대리인이랍시고 많은 것을 누리며, 그 과정에서 없던 것을 있던 것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란 것을."
천천히 입 다물고 잠시 생각하던 아회 천천히 손 뻗는다. 이번엔 명확히 당신을 향했다. 여전히 허공 한 번 배회하지만 이번엔 갈피를 제대로 잡았다.
"영아, 우리 영이. 나는 그 순간이 불쾌하고 두렵단다. 궁기가 그 소식을 어디선가 흘려듣고 움직이려 들까, 아니면 건수 하나 물어버린 인간의 표적 되어 쫓길까 노심초사하는 이 순간이 말이다. 그런데, 호위인 네가 지금 이리 모른 체 굴면 나는 어찌해야 하니?"
당신의 얼굴 향함이다. 뺨 더듬으려는 듯 손 느릿하게 뻗었으니, 내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
"날, 날 지켜준다 했잖아. 맹세했잖아. 그 빌어먹을 새끼와 다르게 날 떠나지 않는다며. 그런데 왜 그렇게 퉁명스레 구는 게야……."
"둘째 도련님 눈은 가주님을 쏙 빼닮았으니, 아무리 작은 마님이 미워도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느니 그런 소문은 퍼질 수가 없었지요." "기실 첫째 도련님은 눈을 다소곳이 감고 계시니 그 시선을 잘 알 수는 없었으나, 둘째 도련님은 다소 불편하였습니다. 가주님을 쏙 빼닮았으니, 가끔은 그 안의 감정을 보노라면 가주님의 감정을 엿보는 것만 같았지요." "……지금은 가주님의 감정과는 다른 이유로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불편합니다." "사람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미지의 것을 보면 늘 공포에 떨기 마련이라는데 딱 그 꼴입니다……. 도통 어딜 보는지 모르겠는데, 그 종착점이 내 속내일 것만 같아서……."
자기 감정에 취한 손늘봄은 상대의 축하가 어느 정도의 온도를 띄고 있는지 섬세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지독한 우연의 연속의 오늘따라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건 신의 안배일까, 그 반대일까.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늘봄은 행복했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응, 그거면 된 거지.
"'역시'라고 하는 걸 보니 짐작 중이었구나? 하긴... 아, 좀 뻘쭘하다. 내가 초면부터 너무 오르락 내리락 했지? 아무튼 갈수록 청룡 티를 낸다니까, 티를 내. 민망해라~"
그거면 됐다. 행복에 젖어 웃음을 한없이 흘리던 늘봄은 유현의 한마디에 저의 뺨을 한번 긁적이며 민망함을 드러냈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 자신의 성격은 청룡 자체였으므로 이런 평가를 받아도 할 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나 남의 입으로 적나라하게 평가되는 건 또 다른 문제라, 어쩔 수 없이 조금 부끄러워지고 마는 것이다. 그 감정은 곧 성큼 다가온 유현의 모습과 기묘한 탐심이 서린 눈빛, 이어지는 질문에 또 다른 색깔의 감정으로 덧칠되고 만다. 늘봄은 눈을 깜빡였다. 상대방의 두 눈이 바짝 다가와 정면에서 맞닿고 있으니 이제는 정말로 각자 색깔 다른 저 눈동자 안에 도사리고 있는 기이한 탐심을 모르거나 은근슬쩍 아님 체 묻을 수도 없다. 아, 그나저나 눈 예쁘네. 아니 이게 아니지! 손늘봄은 제멋대로 이리저리 튀는 마음을 매우 쳐서 한 갈래로 정돈한 뒤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응? 그런 게 궁금하구나? 많이 궁금했나 봐... 흐으음, 어려운 질문인데... 일단 숫자로 표현해서 10점을 만점이라고 치면 지금 딱 10만큼 행복한 것 같고, 문장으로 묘사를 한다면 나비랑 새들이 가슴 안에서 열심히 날갯짓 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하하, 새삼 말로 표현하려니까 어색하네. 그만큼 기쁘고 두근두근 벅찬다는 소리인데, 어때? 잘 전달됐을까!"
어색한 웃음이 섞인, 그러나 착실한 답변이 한바탕 지나간다. 이윽고 손늘봄은 적절한 문장을 궁리하느라 또다시 이리저리 구르던 눈동자를 유현의 눈에 똑바로 맞춘다. 그 안에는 의외로 약간의 불만이 서려 있다.
"근데 왜 너는 계속 존댓말 써? 나만 반말 하면 좀 그렇잖아. 유현이 너도 나한테 말 얼마든지 편하게 해도 되는데~! 그게 더 좋다고!"
강요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요구하는 게 참 당당하기도 하다. 상대가 존댓말이 입에 붙어 반말보다 편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런 건 고려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늘봄은 꿍얼거렸다. 참 귀찮은 인간이다, 라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무엇이 계기가 되었던 아회가 저렇게까지 흐트러진 모습 되지 않았다면 저는 영원히 저 사람 또한 웃고 침울해하며 그것 누군가에게 내비치는 사람이란 것 알 일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 보며 깨닫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외면했던 것 중에서도 가장 깊숙히 밀어넣고 감추어 저조차도 알지 못 하고 싶은 마음. 진작에 잘라 내쳤어야 하는 그 우스운 마음의 존재를. 영원히 모르는 채 끝냈어야 했다.
- 돌이켜보면 후회의 시작은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설프게 나서버려 처음으로 내가 왜 그랬지 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부터다. 이전까지만 해도 단단히 봉해두었을 터인데. 제 경솔함이 봉한 것 무르게 풀어내어 그간 쌓아둔 것 무색하게 무너뜨렸다. 이제 다시 봉할 자신 없는데. 다시 쌓아올려 견고히 만들 자신 없는데. 무너진 것 앞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없다 되내일 뿐이 제 최선이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작디 작게 웅크리는 것이.-
아마 본의가 아니겠지만은. 모르는 모습 사이 알고 있는 모습 얼핏 비치는 것에 속 더 비틀린다. 그러나 담배 연기와 함께 씹어삼켰다. 그렇게 내뱉는 쓴 숨과 함께 무엇이 그리 불쾌할 것 같으냐 묻고 한참을 그저 침묵으로 흘려보냈다. 물음에 답 없으니 저 역시 말을 아꼈다. 그 사이 꾹꾹 눌러 담았던 담뱃잎 거의 다 타들어가 슬슬 마지막 한 모금 만을 남겨두어갔다. 빨갛게 타들어간 담뱃잎은 서서히 희색빛으로 식는다. 그 마지막을 빨아들이려는 찰나. 아회가 불렀다. 저 아닌 영이를.
"예."
그리고 태연히 대답하는 제가 비틀린 속 아주 끊어낼 듯 움켜쥔다. 분명 손 따로 두었는데 지금 이 순간도 제 목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견딜 수 없으면 피하라고. 버틸 수 없으면 도망치라고. 저도 종종 그리 말 하고 다녔으면서 이 순간 스스로 그 말 지키지 않고 있었다. 직접 빚는 모순이 더할 나위 없이 추하다 여기면서도 뒤늦게 고개 돌려 아회 보았다. 금방이라도 노려 볼 듯 기운 얼굴 흔들림 없는 눈으로 보았다. 그 어떤 붉은 옷 걸쳐도 푸르스름한 백색 잃지 않는 아회 가만히 주시하며 조곤히 이어지는 목소리에 새삼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이런 일 없었다면 영원히 듣지 못 했을 이야기다. 그리고 그 모습도.
궁기. 라는 이름 듣자 단박에 검은 호랑이와 일전 보았던 푸른 머리 사내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전해달라 부탁하던 사내. 아. 그래. 그 선물 전해주며 누구냐고 물을까 하다가 관두었지. 그 때 묻지 않았어도 이리 알게 되니 결국 알아야 할 것은 알게 됨일까. 이전 사실 떠올리기 무섭게 다음 말이 비수 되어 제 명치를 헤집는다. 너 또한 그쪽 부류였으니. 제가 아닌 영이에게 하는 말이지만 저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 여기서 아회 착각한 대로 영이 행세 하는 것 그 반증이다. 아니면. 정말로 착각한 것이 아닌 진정 저에게 하는 말일지 모른다 생각하며 당장이라도 명치서부터 뜨끈한 것 올라와 게워버릴 것 같다.
또다시 짧은 침묵 흘렀다. 그 사이 입 안 지그시 깨물어 역력한 구토감 참아내었다. 역히 굴 것이라면 끝까지 뻔뻔해라. 스스로를 다그치며 제게로 뻗어오는 손 바라보았다. 그만큼 벌어진 두루마기 사이에 아회 얼굴도. 그 입이 하는 말 들으며 그 손이 제 얼굴에 닿게 내버려 두었다. 불쾌하고 두렵다. 궁기가 누군가가 무엇 저지를지. 맹세. 지켜준다고. 떠나지 않는다 했으면서. 왜 그리 퉁명스레 굴어. 아회의 손 하고픈 대로 두며 이어지는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들었다. 이윽고 제 입 열었을 때. 유순한 행동과 달리 나온 목소리 사뭇 서늘했다.
"제가 어째서 이러는 지는. 더 잘 알지 않으십니까."
과연 그럴까? 아니어도 상관 없어.
"지켜드리겠다. 떠나지 않겠다. 맹세요? 글쎄. 제가 언제 그런 것을 했던지요."
느릿느릿 말 이어지는 사이에도 제 얼굴 더듬고 있었다면 느껴졌을 것이다. 눈매 빙긋 휘고 입매 곱게 호선 긋는 것. 차분히 웃는 얼굴을 하고 그 때까지 미동도 없던 몸 움직였다. 이번엔 제가 팔 뻗어 아회에게 닿으려고- 덮어씌운 두루마기 흘러내릴새라 조심히 등과 허리에 제 팔 휘감으려 하며 그만큼 거리 좁힌다. 피했다면 피한대로 두었겠지만. 아니라면 평소와 같이 허나 기묘한 분위기 두른 채 제 품에 안으려 했겠지. 좁든 멀든 그 귓가에 똑똑히 들리게 말했겠지.
"통 기억이 나질 않으니. 어째. 이 자리서 다시 한 번 맹세해 드리리까."
문득 지금 제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무슨 대답을 할지 얼른 듣기나 했으면.
어떠한 사람인지 중요한가, 알 수 없다. 잿더미는 잿더미, 타오르는 것은 타오르는 것! 아니, 아회란 인물은 지나치게 자신을 숨겨두어 타인에게 배신감 느끼게 하기 충분한 작자였다. 철저하게 자신의 감정 숨겼다는 것은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단 반증이기도 하니. 그것이 아무리 삼 년이라는 세월 동안 함께한 당신이라 할지언정. 서로의 인생을 알지 못하니 이해도 없고, 이해한다 쳐도 그간의 행동이 정당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영아."
내막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숨기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얼굴을 느릿하게 더듬는 손길에 감정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윤곽이요 당신을 구성하는 온기를 통해 자신이 기억하는 얼굴 맞는지 가늠할 뿐.
"……."
그리고, 삽시간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미소 짓는 얼굴을 더듬던 손길도 멈춘다. 품에 안긴 채 한참이고 입을 다무니 금방이라도 부적 태우고 도망쳐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 느껴진다. 아니, 지금의 아회라면 검붉은 부적 태워 앞발을 내지를지도 모른다. 잔뜩 긴장해버린 몸은 고양감에 긴장한 것이 아니다. 이는 날선 경계였다. 당신이 그런 것을 했느냐 물었던 순간부터, 마지막 남은 일말의 이성까지 산산이 조각난 듯이.
"……내가 우습니?"
소름 끼치는 정적 속에서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가 흐른다. 감정 흐려 삭막하던 어조는 동일하지만 구성하는 소리는 조금 더 낮다. 그리고 삭막한 만큼 싸늘하고, 첨예했다. 실시간으로 감정을 승화시켜 버린다는 듯, 당장 어조가 높아질 기미는 없어 보였다. 기이한 사람이자, 그만큼 자신을 놓는 것에 능한 인간이었다.
"본디 인간에겐 자유가 있으며 구순을 열어 의견을 표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지, 영아."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하였단 뜻이다. 아회의 두 눈이 뜨였다. 그간 눈을 뜨지 않았던 자였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기대를 하지 아니하여 볼 이유도 없거니와, 타인을 인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빌어먹을 문제가 있었기에. 다만 오늘은 다르다. 아회는 당신의 낯짝을 보고 싶었노라 생각했다. 지껄이는 그 표정을, 서린 감정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너는 아니야. 이 내가 너의 주인 된 자가 아니었어도, 네가 맹세한 것을 잊었더라도 너는 그러지 말았어야만 했어. 내가 안 했다고 해도 너는 했다고 해야만 한다. 억울하더라도 그게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지 않니."
짐승의 눈이다.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닌 그것이라 표현해야 응당 옳을, 인간의 것이 아닌 눈이었다. 번뜩 뜨인 빛바랜 은빛 눈동자는 선득했고, 동공은 먹잇감을 발견하여 물어뜯기 직전의 맹수처럼 풀려있다. 사물이 아닌 저 너머를 바라보는 듯한 인위적인 시선은 이질감을 불러왔다. 그가 천천히 손가락을 들었다 놓길 반복한다. 어느새 돋아난 날선 손톱이 툭, 툭, 느릿하게 당신의 관자놀이를 건드리려 들었다. 다시, 다시라.
"내가 아는 너는 말이다, 무 씨 집안의 사람들이 두 번 맹세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맹세란 것은 그 순간으로 향후를 정하는 것인데 어찌 꽁무니 내빼듯 두 번 정할 수 있겠느냐 반문하였겠지. 어설픈 맹세는 족쇄가 되는 법이라며. 그런데 잊었다고? 두려우냐? 네 죽음이 두려워서 이리 내빼는 것이냐? 이제 와서? 때늦은 반항 따위는 듣지 않으마. 그렇다고 하여서 네 그 사람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속삭이는 목소리 너머로 관자놀이 건드리던 손톱 멈춘다. 일순 입 다물리며 가늠하듯 눈을 좁히다가도, 이내 정확히 시선 마주하듯 머리카락과 똑같은, 희미한 푸른 기운 남은 은빛 눈이 붉은 눈 똑바로 응시하려 들었다.
어이가 없으려니 짧게 한숨을 흘리던 연은 헛헛하게 웃으며 아니꼬울 궁기를 올려다본다. 그 본래의 모습을 보이긴 했다만, 인간의 모습을 싫어한다니. 그렇다니 왜 사감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인지 그때의 반응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그럴 적에 미안하다는 어투를 두고선 연은 낯을 찡그리며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다. 이 역시도 진심이 아닐 것 같아서. 진심이라 하더라도 당한 것이 있는 자신으로썬 거짓말쟁이, 범죄자일 당신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쯧."
그건 그렇지만. 연은 혀를 차더니 고개를 젓는다. 주머니에 관해 물으면, 연은 두루마기 소매 안에서 끈으로 팔목 묶어둔 비단 주머니를 꺼내 보인다.
으아악 오늘로 며칠 못 왔지... 이런저런 사고가 좀 있었어서 접속이 뜸했네요_(:3」∠)_
갱신합니다!!! 늘봄주 답레 확인했어요!! 앗 많이 바쁘고 아프셨다니 뒤늦은 위로를...🥺 으음~ 텀은 신경쓰지 않는 편이라 저는 괜찮아요! 되도록이면 제대로 끝맺고 싶긴 한데 제가 요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저도 텀이 좀 늦어질 것 같은데 늘봄주만 괜찮다면 느긋하게 이어오는 걸로 해도 될까요? 우웃 주말 미니이벤트도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접속을 못해 버렸네요.... 캡한테 죄송하고 이런... 이런 현생 억까 규탄하고 고소하겠다........(;´༎ຶД༎ຶ`)
제가 아회에 대해 모르는 것 이상으로 영이에 대해서도 모른다. 지금 들은 말 만으로 아회 이해할 수 없듯 편린 혹은 그조차도 되지 않을 추측으로 무엇을 안다 할까. 그래도 그건 확신할 수도 있었다. 아회가 이리 대하는 영이라면 그 맹세란 것 번복하지 않을 것이라. 무 씨 가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도 영이가 그저 무 씨의 규율을 따를 뿐이라 해도 그럴 것이라. 동시에 납득하고 만다.
얼굴 내어준 만큼이란 듯 그 마른 몸 품에 안았다. 그동안 숱하게 들어올리고 끌어안고 어루만지고 온갖 희롱이란 희롱은 다 했으면서. 지금은 이 이상 힘 주면 부서지지 않을까 그 손길 참 조심스럽기도 하다. 한 팔 등 받치고 한 팔 허리 두르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품 안에서 굳어버린 아회처럼. 저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말 차분히 내뱉고 아회가 영이 한 번 불렀다. 그리고 또 한참을 시간 흘려보냈다. 무수히 흘린 시간에 마냥 밝을 줄 알았던 하늘 서서히 기울며 저 멀리서부터 땅거미 져온다.
연이은 침묵 그냥 둔 것은 딱히 유순하게 굴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냥. 그건 알고 있었으니까. 아회는 항상 곧장 답하지 아니하고 간격을 두어 말하곤 했으니까. 단지 그게 조금 길 뿐이다. 지금은.
...그래서- 알고 있었으니까 침묵 깨고 흐른 그 목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정적으로 벼려진 듯 차고 날선 목소리가 오히려 아회다웠다. 심연의 바닥은 저 목소리 같지 않을까. 분명 이처럼 싸늘하고 선득할 것이다. 그 목소리가 내뱉는 말들 하나하나가 그렇듯.
서서히 이어지는 소리에 저 아닌 영이를 향한 말 나올 것도 예상은 했으나 곧 또다시 겪은 적 없는 일 일어났다. 아회가 눈을 떴다. 영영 감겨 있을 줄만 알았던 얇은 눈커풀 들어올려지며 그 속 만큼이나 감추었던 희디 흰 눈동자가 나타났다. 결코 호의적이지도 상냥하지도 않은 눈이었다. 제 사람을 책망하기 위한 눈이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온화가 아니라 여태 몇 번이고 부른 영이를 꾸짖기 위한 눈.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역시나 영원히 볼 일 없었을 너무나도 아름다우며 인간 초월한 듯 이형적인 은빛 눈동자.
아회의 눈이 영이 보며 말했다. 영이라면 응당 하지 않았을 말을 어찌 했느냐고 이제와 변심하였으냐고 조곤히 꾸짖고 나긋히 따져물었다. 온화가 요괴에게 홀려 주먹 들었을 적에도 탓하거나 혼도 내지 않던 아회가 영이. 제 호위에겐 잡아먹을 듯이 서늘한 화를 내보이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손톱 뾰족하여 금방이라도 제 가죽 뚫어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눈동자 처음 보았다는 기쁨에 웃음 사라질 줄 몰랐다.
그러나 돌연 손 멈추고 말도 끊겼다. 갑작스러움에 왜. 보다는 이제야. 라고 느꼈다. 여태 말하던 것 환영인 마냥 입 다문 아회가 온화 본다. 보고 있었다. 온화를 보게 된 것일 터다.
저것 봐. 저렇게 말하잖아.
여태 환히 지었던 미소 그제야 식어갔다. 붉은 눈동자 식어 검게 흐려졌다. 핏기 식어 낯빛 희어졌다. 먼발치부터 드리우는 황혼 되려 붉은 머리칼 칙칙하게 비추었다. 검게 죽어 떨어지는 낙엽처럼. 검붉은 눈 역시 은빛 눈 마주 응시하다가 먼저 아래로 시선 떨구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목소리는 가라앉은 앙금처럼 침잠해있었다.
"그러셨나. 그리도 귀애하셨던가."
느릿느릿 말을 하고 뚝. 소리 날 듯이 온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을 적 조심스럽던 손길이 여태 흐트러진 채 였던 아회의 차림 정돈해주려 했다. 난장판이 된 머리 차분히 넘겨주고. 죄 벌어진 옷깃 당겨 옷의 구실 제대로 하게끔 갖추어주고. 그것 하였든 아니든 온화 단 하는 하지 않았다. 아회가 손 거두지 않는 한 그 손에서 얼굴 먼저 떼지 않았다. 단지 온화 평상시 그러하듯 멋대로 아회 돌보아주고 다 하고서도 그 자리에 머물렀다. 다른 말 없이. 별개의 행동도 없이.
아회가 지금 화를 내거나 더 날카롭거나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그랜절)(비설 하나 챙겨와서 조공 바치기...)
아회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특히나 '무 씨 가문의 아회'라는 부분에 대해 아주 과민하게 반응하고, 사소한 것도 부풀려서, 그리고 예민하게 받아들여요... 살아오며 눈치를 심하게 본 탓이고, 제대로 교정받지 못했기 때문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고작 싸움 하나로도 제사장 집안까지 생각하고, 현재 온화를 알아본 이상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거랍니다... 인간불신이 아주아주 심한 애인데 하필 멘탈 깨지고 비설 털리니 원내에서 아회 기준으로 잘 대해준 후배가 있어……🥲
낙일의 때가 다가와 세상이 타오르는 것만 같다. 곧 암흑이 드리울 터라는 듯 마지막으로 비명 지르는 하늘이 피를 쏟아내듯 머리카락에 옅은 주홍빛을 덧씌운다. 품 속에서 아회는 한참이고 침묵했다. 평소와 다르게 길고 긴 침묵은 무언가를 참아내는 것과 같았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듯 그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당신을 무영으로 보았듯 아회만 아는 것이 있다.
"하."
확실한 것은 자신이 아는 무영이라는 자는 자신에게 그래서는 안 됐는데, 싶은 배신감이 남은 이성마저 산산이 부숴버렸단 점이다. 그나마 이치를 구분할 수 있었던 분간의 시선은 이지러지고 뒤틀려 새로운 시각을 만들고, 양가적인 인내심은 온몸을 잠식하며 함부로 손찌검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네가 나를 배신해서는 안 됐다. 우리의 약조를 어겨서는 안 됐다. 맹세를 잊어서도 안 됐다.
그런데, 네가 맞긴 한가? 세상은 잔인하게도 자신의 편을 들어준 적이 없고 지금도 그러하다. 낙일 너머로 보이는 붉은 잔상은 더 어둡게 물들지 않는다. 익숙한 얼굴을 보여주며 일순 현실을 깨우듯 속삭인다. 네 여전히 살아가며 앓던 광증 낫지 못하고 기어이 일을 쳤다고. 네가 한 사람에게 네 치부를 보였고, 제 형제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기를 쓰던 네 패를 보였으며, 네 본성까지 속삭였노라고. 눈을 마주치기가 무섭게 다른 감정이 스몄고, 아회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었음을.
"귀애하였지.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신뢰란 역시 허상에 불과함을. 배신감이 든다. 먼저 시선을 떨구듯 붉은 잔상이 사라지자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아내려 들었다. 양심상 내리는 건가? 아니면 실망했나? 이쪽의 치부를 캐고 행세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지? 불신이 스민다. 약점을 캐 물어 죽이기 위함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 부릅 뜨인 눈은 애석하게도 분노의 눈물 하나 나오지 못했다. 대신 눈동자는 석양 지는 것 그대로 색 담아내는 주제에 빛도 반사하지 못한 채, 더 차분해지고 있었다. 싸늘히 식어가는 눈은 어떠한 감정도 비추지 못했다.
"하, 하하. 틀린 말 하나 없었구나."
자신을 챙겨주는 손길을 노려보듯 한 번 훑고는 아회는 천천히 손을 거뒀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정확히는 비구를 덮어 가리려 들었다. 다른 손으로는 눈 가까이를 덮자 헛웃음이 툭 튀어나왔다. 감정 없이 숨 뱉는 것에 가까운 웃음이. 뒤로 조금 더 물러나려는 듯 다리가 움직인다. 두루마기가 흘러내렸다.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 본성을 드러내는 법이거든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것 같았다. 나긋한 그 소리가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 같았다. 졌다. 져버렸다. 그 사실을 당사자를 통해 깨달은 것도 아닌 타인을 통해 알아버렸다. 하물며 가깝기 때문에 빌어먹을 집안 사정에 휘말리게 두지 않으려 기를 썼던 상대를 통해.
"……즐거웠나?"
당신에게 나지막이 묻는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되짚었다. 결론은 제법 빠르게 도출된다. 지독한 모멸감이다. 타인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휘둘린 자신이 과연 가족이라고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간 외면한, 분해도 인정해야만 했던 진실을 목전에 둔 이상 아회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는 형님에게 질 것이다. 철저히 패배하고, 이상을 꿈꾸지도 못한 채 사냥 당하여 전시될 것이다.
"부디 이 상황이 즐거웠길 바라지."
손 틈새로 비친 눈동자가 당신을 노려보았다. 하늘은 어느덧 해가 죽고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림자 짙게 깔렸다.
조금 뒤늦게 하늘 부서지는 소리 들린 듯 싶다. 조각조각 부서지고 떨어져내려 드러난 것이 황혼 같았다. 소리 들린 순간은 아회가 재차 정신 들었음을 확인하였을 때다. 귀애하였다고.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게 하고 싶을 만큼 그러하였다고. 온화 아니면 들을 일 없는 말 들은 순간이었다. 붉은 하늘에조차 서서히 금이 가고 있던 건.
은빛 눈동자는 생전 받아본 적 없는 차디 찬 눈빛 하고 있었다. 그 눈빛으로 저를 보고. 제 손길을 보고. 아회가 손으로 얼굴 가려도 그 손의 틈 사이로도 보였다. 지난 삼 년간 제게 보인 적 없는 눈이 저를 보았다. 시선이 비수 되어 재차 심장 찔러온다. 깊게도 푹푹 찌르는데 피 한 방울 안 나니 지금이 현실 맞나 싶다. 이제 제가 이것이 꿈인가 싶어지려 했다. 하지만 두 번째 비수가 조용히 틈 비집고 들어온다. 아회의 차가운 목소리가 빚어내는 말의 비수였다.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제가 착란 상태의 아회를 보고 즐겼을 거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 걸까? 무언가 바라는게 있어서 그 모습 그대로 두고 보았을 거라고. 제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차라리 화를 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적룡 답게 불 같이 화를 내며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였으면. 날 선 손톱으로 살 쥐어뜯을 듯 목 쥐고 단단히 입막음이라도 시켰으면. 오늘의 일을 오롯이 온화 속에만 묻고 그리 넘겼을 것이다. 이해라던가 납득이라던가. 단 하나도 생각지 않고 그저 눈 감고 입 가렸을 것이다.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한 어둠 속 미지근한 바람 지나가니 붉은 머리칼 일제히 흐트러진다. 이젠 제가 산발이 되어 아회 보았다. 무릎에 늘어뜨린 손 파르르 떨렸다. 반사적으로 제 옷 움켜쥐는데 살갗 긁히는 소리 같이 난다. 금방이라도 내지를 듯이 움켜쥔 손이었으나 정작 나간 것은 목소리였다. 떨림 누르느라 한껏 깔렸음에도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말했다.
"내가- 내가. 무 아회 당신을 보고. 제정신이 아니었던 당신을 보고. 즐겼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리 여겼어? 나를? 내가 그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어찌 어찌 차분히 이어지던 말은 결국 참을 수 없었는지 비명처럼 터졌다. 늘 웃는 것만 보여주던 얼굴이 형태 없는 아픔에 괴로워하는 표정 띄고 있었다. 흑- 숨 들이키는 소리 짧고도 먹먹하게 흘렀다. 이성이라는 둑에서 벗어난 물의 말이 마구잡이로 흐르기 시작했다.
"즐거웠냐고? 즐거웠길 바란다고?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내가 단 한 번이라도 고의로 당신 난처하게 만들고 그 모습 즐긴 적이 있어? 내가 당신 약점 잡아서 그걸로 겁박하기를 했어? 나는 당신한테 그럴 사람이야? 그럴 사람인 거야? 그 동안 나조차도 그렇게 봐온 거야?"
아. 가슴을 저며 그 사이로 말 나오는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저 눈빛이 몇 배는 더 아파.
"귀애하였다고. 나를. 대체 무엇이 귀애함이었어?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거리 좁혀준 것? 장난에 역정 내지 않고 받아준 것? 그게 귀애함이야? 당신이야말로 귀애한다 하며 나를 우롱한 것 아니야? 하하! 얼마나 우스웠을까!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걱정하고 들러붙는 내 꼴 퍽이나 볼 만 했겠지! 오라비 오라비 하며 뒤 쫓아다니는 꼴이 멍청하니 아주 재밌었겠어! 그 멍청한게 기어코 봐선 안 될 것 봤으니 그리 화 날 만도 하지. 그저! 그 몰골로 뛰쳐나가는 것 걱정되어 따라왔을 뿐인데! 그게 잘못이었어? 아. 그래. 잘못이구나. 멍청한 나 따위보다 훨씬 나은 호위가 있는데. 그 영인지 뭔지가 있는데 내가 주제 넘게 나섰지! 어차피 나 같은 건 학당 나서면 잊어버릴 하찮은 아무개인데 분수도 모르고-"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하늘빛에 뺨 반짝였다. 뺨 위로 구른 물방울이 어둠이 완전히 덮히기 직전의 빛 비추고 이윽고 손등 위로 뭉개졌다. 그 위로 또 하나. 둘. 비도 안 오는데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어찌나 선명하던지.
"나는.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불러 준 적 없으면서. 그렇게 웃은 적도 없고. 그런 얘기도 해준 적 없고. 아무 것도 몰랐는데. 나는 그래도 좋았는데. 그렇게 아무 것도 해주기 싫을 만큼. 내가 싫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어영부영 들러붙게 하지 말고. 지금처럼. 그리 모질게 말해서 멀리 떼어내지 그랬어. 당신 적룡이잖아. 때릴 줄 알고 화 낼 줄 알잖아. 진작 그랬으면 오늘도 따라오지 않았어. 그 복도서 그리 싸우는게 당신이란 말 하나만 듣고 나오지 않았어. 그저 늘 보던 것과 다르단 이유만으로 걱정해서 찾으러 뛰쳐나오고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그 이상은 목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야도 물기에 흐려지고 뭉개져 제대로 앞으로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흰 형상이 보이니 그게 아회인갑다 했다. 하지만 제대로 보였다간 또 그 시선에 마주칠까 봐 여전히 저를 그렇게 보고 있을까 봐- 눈 깊이 내리깔았다. 그 뒤는 아이마냥 우는 소리 뿐이었다.
싸늘한 시선은 당신의 내리깔던 시선을 추격하다 손에 덮여 잠시 사라졌다.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다. 정확히는 평소처럼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가 없었다. 식어버린 잿더미에 찬물을 부어놓고, 누가 억지로 불을 붙이려 계속해서 불씨를 옮기는 느낌이다. 이미 젖어버려 온기마저 사라지는 잿더미인데. 온전한 판단도 할 수 없으니 의심은 커져만 간다. 어쩌면 처음부터 당신을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기실 그러하였으리라. 아회란 자는 적룡의 영향을 받기 이전부터 인간에 대해 큰 환멸을 느꼈으니. 그렇다고 그 사실이, 이 꼬인 성격이 이 상황을 변호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안다.
"그리하면."
오히려 당신을 상처 입히는 무기가 되겠지.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금 꼬인 성격을 숨겨야 하나? 그러면 기만이나 다름 없지 않나? 그 작자들과 다를 바 없는 짓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만 하지? 천천히 손을 떼어내도 한 번 숙였던 고개는 도저히 올라가지 않는다. 웅크리듯 허리를 굽혀 앉은 자세로 짐승처럼 눈만 치켜 떠 당신을 응시했다. 그럴 사람이냐 생각하였냐고?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네 맹세 운운하던 것은 어떤 연고였느냐. 동정? 호기심? 안타까움? 그저 흐름을 타였느냐? 인간이 다 그런 법이니까 그리 하였더냐?"
감정 어린 당신의 목소리와 달리 여전히 목소리엔 별다른 고저가 없다. 억누르던 것이 터지는 비명에도 미동 없었다. 괴로운 표정을 지어도, 울음 섞인 숨을 들이 마셔도은색 눈의 동공은 좁혀지지도 않는다. 지독히도 차분하고 차갑게 당신 있는 곳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한들 어째서 떠보듯 운운했느냐. 어째서 내게 얘기했느냔 말이야. 흉내를 내면서 막상 흉내 내지 못하고 부인해버리는 것에 정녕 의도가 없었나? 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내가 물을 말이다. 어찌 내게 그리 말할 수 있어. 즐긴 것이 아니라면 가여이 여겨 그리 쉬이 이야기 했느냐? 상황 빠져나가려 한 게냐? 어찌 맹세한 적 없다 속삭였느냐? 내 반응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껏 네가 본 나는 맹세를 흑룡 새끼들의 애정이란 단어처럼 가볍게 쓰는 것 같은 존재라 그리 보던 것이냐? 네가 지금 한 일에 대해 내게 할 말은 정녕 없고, 나보고 네가 그런 사람으로 보였느냐 하는 게야?"
일순 그림자 일렁였다. 지금 서로 다른 주제에 초점을 맞추는구나. 그 사실을 깨닫기가 무섭게 속내의 불길이 치고 올라온다. 서로 해명하기엔 다른 곳을 보고 있으니 대화가 통할 리가 있나? 통한다 쳐도 어떻게 수복하지? 애초에 왜 수복을 논하지? 물기 어린 목소리는 처절하게 자신에게 부르짖는다. 우스웠겠다며, 주제 넘게 자신이 나섰다며. 그 순간 폭죽이 터져버리듯 잿더미가 타올랐다.
"형님의 손에 죽을까봐─!!"
끝내 노성을 내지른다. 한 번도 목소리 높여본 적이 없어 끝은 갈라지고 처참했다. 이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부르르 떨리는 몸과 함께 숨 마시는 소리가 격양됨 틀림 없다. 고개를 번쩍 들었을 때, 정녕 아회가 맞나 싶을 정도로 표독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마저도 찰나였다. 너무나도 쉬이 식어버린다. 목소리도, 표정도. 순간 폭발해버렸고, 그걸로 쓸모를 다했다는 듯.
"……전부 죽어버릴까봐. 네 우롱하였다 생각한다면 그리 받아들여라. 선택적인 녀석으로 보고, 이 일로 나를 증오할 거라면 평생을 그리 보고 살아도 좋다. 다만."
아회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우는 사람을 달래는 법은 모른다. 차가운 무 씨 집안에서 울었던 것은 자신 혼자 뿐이었고, 어머니가 울 적엔 달래지 않고 한참이고 그 곁을 지켜야만 했다. 당신도 곁에 있으면 알아서 눈물을 그칠까? 모른다. 당신은 광인이 아니다.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기만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사람이다. 달래주려 손 뻗는다고 해도 닿을 수 있나? 애초에 어떤 얼굴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내가 뭘 한다고. 겁 잔뜩 집어먹고 도망치는 놈이 뭘 한다고. 그저 아이처럼 우는 당신을 내려다볼 뿐이다. 손 뻗지 못하고.
"내가 웃으면 그 표정 본 사람들의 눈이 후벼 파였고, 울기라도 하면 세상에서 사라졌다. 너 또한 그 꼴 면치 못할까 그랬다. 영이에게 웃어준 연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너보다 더 귀애하여서?"
죽을 놈이라 그렇지.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방금 꺼낸 이야기에 답은 자연스레 도출될 터이니.
"내가 널 북부의 방식으로 귀애하였으니 네 모를법도 하다. 이는 나의 잘못이나, 사과하면 기만이 될까 그것에 대해 말 얹지 않으마. 하지만, 내, 내 너를 경히 여긴 적은 없다… 어찌 내가 타인을 경히 여겨. 그것만 알아다오. 위험이란 것은 지척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렇게 되기 전에. 이리 극으로 치닫기 전에 더 많은 대화를 했었어야 했다. 아니면 더 거리를 두었어야 했다. 바라지 않을 것이라면. 기대하지 않을 것이었다면. 어떤 상황에도 예외를 두지 않고 대했어야 했다. 감정과 충동으로도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두어 저를 당신을 각자를 지켰어야 했다. 지금에 달하지 않을 수없이 많은 방법 있었다. 그러나 항상 모든 방법이 해결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첫 마디부터 참지 못 하고 내지른 온화와 달리 아회 목소리는 끝까지 그 선 유지할 것만 같았다. 온화 무얼 해도 눈 뜰 만치 놀라지 않았던 것처럼. 눈 떠버린 지금은 언제라도 이 자리 일어나 가버릴 것처럼 보였다. 아. 처음부터 그랬다. 잿더미가 왜 잿더미인가. 언제라도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것이 잿더미 아닌가. 사라진다. 또 누군가 제 곁에서 사라져. 아회에게 거짓 고하지 않으면서도 그리 말한 것은 그 무의식의 발로였을 지도. 혹은.
...온화 그러한 것처럼 아회도 다그쳤다. 즐긴 것이 아니라면 왜 그런 말을 하였느냐. 온화야말로 왜 그랬느냐. 동정. 호기심. 그 따위 것으로 그리했냐. 가지고 놀 것이 아니라면 어찌 그럴 수 있느냐.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를 비수가 사정없이 날아든다. 아회의 말은 아팠지만 그 원인은 저였다. 제가 한 짓이다. 그 순간의 치졸한 감정에 휘둘려 충동적으로 저질러 버린 결과였다.
"아ㄴ... 아..."
아. 아아. 말을 해야 했다. 적어도 제가 그런 마음으로 한 것은 아니라 하고 싶은데. 생각과 다르게 입은 그 동안 담아두었던 것들 쏟아내기에 정신없었다. 저와 당신은 말을 너무 아꼈다. 그 동안 아낀 말이 너무 많아 이리도 격히 부서진다. 제 바람이. 당신의 바람이. 상충할 것은 당연한 것을.
일방적으로 극렬히 흐르던 공기 터지는 것 찰나였다. 이 역시 단 한 번도 듣지 못 했던 아회의 고성이었다. 순간 어찌나 놀랐는지 울음도 숨도 그쳤다. 눈물에 엉망된 얼굴과 표독히 일그러진 얼굴 마주쳤다. 잠깐이었지만 너무나 선명했던 표정에 숨이 역으로 들이쉬어진다. 그 뒤로 들리는 말 반은 웅웅거려 제대로 들리지 않았으나 기묘하게도 머리는 다 이해했다. 지금까지의 모든게 그것이 아회의 방식이었노라고. 그러한 연유로 그러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이해하지만 이해를 받아들일 정신이 되질 못 했다. 머리로 할 말을 생각하는 것 보다 아회 일어나 가버리려 한다는게 더 크게 와닿아 버렸다.
"나도... 나도 맹세하면 당신 지킬 수 있게 해줄까 싶었어. 나. 나 도술도 제대로 못 쓰고. 멍청하고. 재주도 없지만... 그렇지만 당신 아끼는 마음 참말이니까. 나도 단 한 번도 허투로 대한 적 없었어... 항상 소중한 오라버니야..."
고성에 그쳤던 눈물 다시 왈칵 차올라 떨어진다. 저러다 다 쏟고 말라 바스러지지 않을까. 제 옷 겨우 움켜쥐고 있던 손이 부들거리며 아회에게 향했다. 아회의 손이든 팔이든 바짓가랑이든 잡히는 것 쥐려고 했을 것이다. 피하면 고꾸라질 듯 위태로이 몸 일으키기도 했겠지. 다시금 시작된 울음에 떨리는 목소리 말한다.
"...ㄹ다면... 위험이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 당신도 나 지켜주면 되잖아. 그렇게 위험하면 멀어지면 안 되는 거잖아. 혼자 두면 안 되잖아. 왜. 왜 위험하다면서 나만 두고 가...?"
다 제 잘못이다. 그리 바란 것이 잘못이다. 멍청한 고물 주제에 과한 것 바란 탓이다. 누구에게도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겠노라 스스로 다짐해놓고 제 손으로 다짐 깨버렸으니 응당 받아야 할 대가인 것이다. 이 어찌 어리석고 아둔한지. 그럼에도 아회 가지 말라 잡으려 하는 꼴이 추잡스럽기도 하지.
"나를 가벼이 여긴게 아니라면 그렇게 가면 안 되잖아... 내가 이렇게 우는데. 울지 말라 한 마디도 안 해주는데. 그게 가벼이 여긴게 아니란 말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 차라리 화를 내... 뺨이라도 때려. 차라리 그게 낫겠어.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마냥 남겨지는 것 보다 차라리 맞기라도 할래..."
겨우 겨우 말 다 할 쯤에는 하도 울어 목소리 쉬었다. 가쁜 숨에 간신히 들썩이는 어깨가 무거워 보일 정도로 그 몸에 기력 수척해졌다. 그럼에도 손 만은 아회가 어거지로 떼어내지 않는 이상 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고개조차 가누기 힘들어 푹 숙였으면서.
"진실... 그래 원하던 것이긴 했지. 하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고, 불편한 관계로 맞닥뜨리는 건 원하지 않았어."
그 진실을 너무나도 가볍게 알게 되며, 호기심이 충족되는 순간이었건만은. 비밀을 알게 된 이후의 의심을, 그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한계를 연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오히려 부담을 안게 된 기분이었으며. 앞으로 사감님들을 볼 때마다 그 본 모습을 생각하게 되니, 끈질긴 의심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은 제가 왜 화를 내는지 진심으로 모르는 듯한 궁기를 보고선 입술을 비죽 내민다.
"친절한 선배인 양 나를 속인 게 괘씸해서."
궁기가 주머니 손끝을 건들 적에 극도로 싫다는 표정과 동작으로 휙 보따리를 거둔 연은 물끄레 궁기를 바라보단 흥, 하며 주머니를 옷소매 속으로 다시 감춘다. 더 못 쓸 것이라 하여도 그 안의 내용물을 두고 춘 사감이 보인 반응을 생각하면 쉽게 버릴 수는 없다. 여전히 자신이 보따리를 열지 못할 것임을 다시금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못마땅하다는 얼굴이던 연은 이어지는 말에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의심하는 눈으로 보며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