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호수로 아회가 도망쳐버렸고, 거기에서 결국 정신 놓고 타인으로 온전하게 착각해버렸단 전개로 써버린지라... 혹시 지문을 통해 상황을 짤막히 설명하고, 그 상황(싸움) 도중에 도망쳐버린 아회를 온화가 찾게끔 유도해도 괜찮을까요? "그래서 누가 사감쌤한테 무 선배 끌고가는데요?" 같은 대사로요...👀
싸움이 났다! 적룡 기숙사라 하면 호전적이고 예민한 사람이 많았기에 눈만 마주쳐도 싸우니 주먹다짐 흔하다지만, 상대가 아회라면 이야기는 달라져 구경거리가 되곤 했다. 적룡 기숙사 내부에서도 온건하다 못해 싸움이라곤 거의 하려 들지 않아 타인들도 잘 건드리지 않으려 드는 잿더미 같은 사람이라 평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싸움이라! 상대가 대체 어떤 말로 속을 뒤집었길래 주먹다짐까지 갔는지, 학생들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며 먼발치에서 당사자들을 둘러싸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잿더미의 싸움엔 한 가지 묘미가 있었으니, 아회가 절대 싸움을 못 하는 쪽이 아니었단 점이다. 지금도 그러했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상대의 앞니는 나가버렸고, 코피를 줄줄 흘리며 더는 반응하지 못해도 주먹질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둔탁한 소리에 질척대는 소리까지 함께 나더니 으지끈! 소리가 나자 보다 못한 누군가 싸움판에 난입했다. 그의 벗, 수일이었다. 수일이 뛰쳐나가 주먹을 붙잡기가 무섭게 아회는 고개를 돌렸다. 아회의 꼴도 정상이라 할 수 없었던 것이, 볼에는 시퍼런 멍이 들고 이마는 찢어졌다. 옷도 멱살 틀어쥔 손에 발버둥이라도 쳤는지 옷고름 뜯겨있으며 머리는 산발에 붓은 저 멀리 동강 나 나뒹군지 오래다. 입도 터졌는지 피가 선명했다.
"애 죽겠어. 진짜 위험하니까 그만해." "……." "야, 듣고 있어?" "……놔." "뭐?" "이 새끼 죽여버릴 테니까 놓으라고." "그러지 말고, 너도 지금 상태 안 좋은 것 같은데-" "어차피 사람은 죽는데 지금 보내도 괜찮지 않나?"
대화가 도저히 통하지 않는다. 수일은 위험을 직감했으나 팔을 그대로 뿌리친 아회는 부적이 불타버리기가 무섭게 인파를 뚫고 사라져버렸다. "야! 무아회!" 누군가 수일 대신 목청을 높였지만 이미 아회는 연기가 되어 사라진지 오래였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에 생겨난 침묵. 보다 못한 적룡 학생 하나가 질문했다.
"근데 아ㅂ, 아니, 아회 선배님은 왜 싸운 거예요?"
엽 씨 가문의 어린 여식이다. 맹랑하고 호기심 어린 질문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학생이 핏자국 널리 퍼진 바닥과 늘어진 학생을 보고 끔찍한 듯 눈을 좁혔다.
"저거, 쟤가 먼저 시비를 걸었어. 뭐라고 했더라? 무 씨 집안 궁기가 뭐 어쨌다고 하던데, 그런 거에 평소엔 말로만 반응하던 애가 왜 저러지." "어, 저야 모르죠. 그런데 선배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데 누가 쫓아가서 데려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진짜 궁기처럼……." "입 조심해. 제사장 아닌 애들도 있어."
다른 제사장 집안 아이의 일갈과 함께 복도는 삽시간에 새로운 싸움을 국면 하듯 싸늘해졌고, 여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 눈을 굴렸다.
"그래서 누가 사감쌤한테 무 선배 끌고가는데요?" 호수. 상처투성이로 눈을 부릅 뜨고 얼굴을 몇 번이고 더듬던 아회는 그대로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 그렇게 한참을. 무어라 씹어뱉었으나 들리지 않는다. 들어줄 사람도 없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부릅 뜨던 눈을 평온히 감은 아회는 고개 올리며 인기척 나던 곳을 향해 입 벌렸다.
"그리 느려서야 어디 약조를 지킬 수나 있겠느냐. 어서 오련, 이러다 목이 빠지겠구나……."
눈두덩이 더욱 움푹 들어가고, 어제보다 다크서클이 더 길게 내려앉아 있다고. 연의 룸메이트인 아이가 걱정을 내비치나, 연은 그에 괜찮다며 아이가 안심할 말 하나 하지 못한다. 무기력하고, 어깨는 단단히 뭉쳤고, 머리는 더욱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옷에도 구김이 가득하니 단정함은 온데간데없다. 그러니 변명을 해보아야 걱정만 더 끼칠 뿐이라, 그저 옅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다. 매일 같이 침대에 몸을 눕히나, 매일 같이 연은 단잠의 시간으로 떠나지 못했다. 허우적거리며 무기력한 꿈의 끝에서 연은 희미한 달빛 속 어두운 천장을 뜬 눈으로 올려다보며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 못 이루는 날이 길어지니 룸메이트인 아이 연에게 무언가 작은 쿠폰 같은 걸 쥐여주며 말하기를, 천부에는 악몽을 쫓는 부적 같은 것도 팔지 않겠냐며. 이것은 카페의 케이크 세트 쿠폰이니, 달콤한 것도 먹고, 부적도 지어 오라며. 등 떠밀려 천부에 오게 된 것이라. 연은 인파에 치이며 부적을 지어줄 곳을 찾았으나 찾지 못한 채. 쿠폰만 손에 꼭 쥐고서 카페 앞에 서 들어갈지, 아니면 그냥 돌아갈지 망설이고 있었다.
과연 자신이 케이크가 나오기 전까지 졸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반쯤 감긴 눈, 무거운 눈꺼풀을 껌뻑껌뻑 거리며 고민하다 연은 길게 하품을 내쉰다. 부적을 써줄 가게를 찾아 인파 속을 헤치고 다니느라 더욱 피로한 것이라. 케이크가 나와도 먹다가 깜빡 졸아버리진 않을지, 비몽사몽하니 제대로 입으로 가져가지도 못하고 흘릴 것만 같으니. 그냥 돌아가자고 마음을 먹던 때. 연은 제 눈앞에 나타난 궁기를 보고서 토끼 눈을 떠낸다. 다정하단 듯 말을 걸어오는 재앙을 목도하니 어떤 각성의 상태에 들어선 것만 같은지라. 자꾸만 감기던 눈도 크게 떠지고, 정신이 확 드는 것에 연은 궁기가 해오는 말을 듣고선 연은 화난 듯 잔뜩 표정을 구긴다.
"좋아할 거라고 했었잖아. 왜 거짓말을 했던 거야?"
연의 눈가에 주름이 잡히니. 따지듯 묻는 것이 화가 난 듯한 눈치라. 제 물음에 대한 답이나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을 시 연은 선배고, 뭐고 당장이 궁기의 무릎을 발로 까 버릴 생각을 하며 궁기를 올려다본다.